아름다운 家
변찬규 안수집사·이은숙 집사·변재홍·변현홍 성도
  • 4차원의 영성으로 기도하는 가족 1인 1악기로 찬양하며 가정예배 드리니 감사의 고백이 넘치고 꿈과 비전으로 가득 변찬규 안수집사(강서대교구)와 이은숙 집사 그리고 두 아들 재홍, 현홍 성도는 모두 악기 하나씩을 다룰 수 있는 능력자들이다. 변 집사는 어쿠스틱 기타로, 이 집사는 드럼으로, 재홍이는 건반으로, 현홍이는 전자기타로 함께 찬양한다. “음악이 가족을 연합하게 하는데 큰 힘이 됐어요. 음악은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잖아요” 특히 변 집사는 찬양하는 것을 매우 좋아해 지난해 FMTC(평신도전문인선교사프로그램)를 통해 찬양인도과정을 수료했고 찬양으로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 집사도 변 집사의 이야기를 거들었다. “큰 아이가 방황할 때 아이의 마음을 잡아주기 위해 같이 찬양을 불렀어요. 당시 성경학교·대학을 수강 중이었는데 그 때 강사님이 가르쳐 주신 찬양을 집에 와서 아들과 함께 불렀어요. 그렇게 찬양을 통해 저도 아이도 치유받았어요. 찬양은 우리 가족화합의 치료제가 되어 주었죠” 현재 재홍이는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 중인데 현지 순복음교회에서 반주봉사를 하고 있고 얼마 전 군에 입대한 현홍이는 대학청년부 리조이스 찬양팀에서 리더를 맡기도 했다. 이들 가정이 하나님을 만나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게 된 것은 그리 오래 전은 아니다. 2006년 모시고 있던 장인이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부터였다. 늘 건강하셨던 장인이 3개월의 시한부 인생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연세가 많아 병원에서는 수술을 권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했지만 자식된 도리로서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 때 아내의 동생이 순복음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동생은 “하나님께 매달려 보자”라고 설득했고 온가족이 매일 같이 병원 기도실에서 장인을 위해 기도했다. “한 번은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난 목사님으로부터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이다. 아버지를 살려주실 것이다’는 말씀에 큰 힘을 얻고 위로를 얻었어요. 그래서 교회에 가보기로 결심을 했죠” 이들 부부는 동생의 권유로 여의도순복음교회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오전 9시에 예배를 드린다는 말에 찾아갔지만 이미 대성전은 사람들로 가득해 자리에 앉을 수조차 없었다. 깜짝 놀란 이들 부부는 앞자리에서 예배를 드리겠다고 결심하고 예배시작 40, 50분 전에 도착하기 위해 여의도로 향했다. 당시 분당에 위치한 병원에 장인이 입원해 계셨는데 인근 여의도순복음분당교회에서 조용기 목사 초청 축복성회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이 집사는 아버지의 신발을 들고 가서 성회에 참석해 기도를 할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변 집사도 말씀에 갈급함을 느껴 사업장에서도 늘 조용기 목사의 설교영상을 하루에 10개씩 보며 장인을 위해 기도했다. 하루는 변 집사가 승용차 키와 카탈로그를 누워계신 장인 손에 쥐어주며 “어서 회복하셔서 이 차를 직접 운전해 퇴원하시는 꿈을 꾸세요. 그리고 손자들 학교에 데려다주는 모습을 상상하세요”라고 말했다. 사실 타종교에 심취해 있던 완고한 장인이라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있다는 말을 아무도 못하고 있었는데 수술 후 잠시 깨어난 장인이 “조용기 목사님이 안수기도를 해주는 꿈을 꾸었다”라고 말했다. 이 집사는 아버지를 위해 매일 같이 찾아가 기도하고 마사지를 해드렸다. 다음해 3월 장인은 완치판정을 받고 건강하게 퇴원했다. 이 놀라운 사실에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들도 퇴원을 지켜보고 박수를 쳐주었다. 그리고 장인은 퇴원 후 꿈 꾼대로 승용차로 손자들을 학교와 학원에 데려다 주셨다. “그 때는 초신자라 잘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다 4차원의 영성이었던 거죠. 장인이 건강하게 회복된 것을 바라보고 기도했더니 기적같이 회복되어 퇴원할 수 있었어요. 그 이후 온 가족 모두가 교회에 출석하게 됐죠. 장인도 가까운 기도처로 주일성수하고 계세요” 삶의 업그레이드는 자녀들에게도 이어졌다. 변 집사 가족은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는데 운전병으로 군입대를 하는 재홍이를 위해 더욱 열심히 기도했다. 재홍이는 군입대 후 후반기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전화로 안부를 전하며 ‘대형차량을 운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평소 간부운전병을 바랐던 재홍이기에 가족들은 더욱 합심하여 이를 위해 기도했다. 주변에서는 기도한다고 결과가 바뀔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놀랍게도 기도한대로 보직이 변경됐고 심지어 여단장의 운전병이 됐다. 특히 여단장은 신앙도 좋아 재홍이가 군생활 내내 신앙생활하는데 어려움이 없었고 미래에 대한 꿈과 비전을 그리는 귀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재홍이는 제대 후 불어도 전혀 못하면서 프랑스 유학을 가겠다고 선포하더니 현재 1년 째 유학 중이다. 유창한 불어로 현지에서 열심히 아르바이트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자신의 꿈을 위해 기도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 둘째 현홍이는 교회학교 예제모 큐티스쿨을 통해 신앙의 훈련을 받았다. 그래서 가훈인 ‘생각 믿음 꿈 말’의 기도를 항상 한다. 대학진학 후에도 공부와 아르바이트 그리고 봉사를 겸하면서도 항상 최우선은 하나님과의 약속이었다. 신앙에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 모습은 부모인 변 집사와 이 집사에게도 큰 감동을 주었다. 특히 가족예배를 드리면서 ‘나의 기도제목’을 나누는 시간에는 항상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졌음에 대한 감사기도를 선포한다. “‘입학할 때 대학 4년간 장학금을 받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선포하며 기도했어요. 실제로 군입대 전 3학기 동안 장학금을 받았어요” 가족예배라고 해서 딱딱하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악기로 찬양하고 말씀과 기도제목을 나눈 후 10분간 기도한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기도하지만 언제나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해 주신다고. 자녀들이 기도하는 것은 어머니의 기도를 본받은 것 같다. 이 집사는 우리 교회 중보기도팀에서 늘 기도하고 교구에서는 지역장으로 매일 같이 기도로 섬기고 있다. 변 집사는 사업장에 예배공간을 마련해 사원들과 함께 신우예배를 드린다. 주변의 기독 실업인들도 함께 예배에 참석해 은혜를 나누면서 믿음으로 사업을 일구고 있다. “신앙생활하면서 늘 행복하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어요. 물론 늘 기도제목은 있어요. 사업을 하다보니 금전적으로 위기가 찾아오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기도할 때 응답해주시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는 거죠. 내가 원하는 기도를 하면 안돼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할 때 다 이루어 주세요. 선교와 구제라는 큰 꿈을 그리고 있어요. 이를 위해 사업에 축복을 주실 거라 믿고 기대하고 있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들들까지 모두 신앙으로 업그레이드되어 4차원의 영성으로 기적을 이끄는 신앙의 가정이 됐다. 이미 많은 꿈들이 이루어졌지만 앞으로도 꿈꿀 것이 많은 가정이다. “자녀들을 위해 기도제목으로 자녀들이 또다른 믿음의 가정을 이룰수 있도록 배우자기도를 하고 있어요. 배우자들도 악기를 다루고 신앙을 가지고 있어서 앞으로도 함께 찬양하고 선교하길 바라고 있어요” 글·복순희 정승환 / 사진·김용두 기자
  • 2015.08.02 / 복순희 정승환 기자

    장애인대교구 권오열 집사, 이향례 집사, 권미진·권세진 성도
  • 가족이 똘똘 뭉쳐 만드는 사랑의 하모니 아버지는 드럼, 어머니는 찬양대 소프라노, 딸은 교사로 봉사 가족 모두가 장애인대교구에서 봉사를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아름다운 가족이 있다. 아버지 권오열 집사는 장애인대교구 예배에서 찬양팀 드러머로 활동한다. 어머니 이향례 집사는 장애인대교구 에벤에셀찬양대에서 소프라노로 12년 째 봉사중이다. 동생 권세진 성도는 언니가 소속된 장애인대교구 소망부의 교사로 스무살 때부터 봉사해왔다. 가족들은 “그러고 보니 가족 모두가 한 대교구 안에서 봉사하며 신앙생활 할 수 있다는 게 큰 축복이었어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했다. 권오열 집사는 원래 프로 드러머였다. 1960∼70년대 미8군을 비롯해 국내뿐 아니라 일본에서 활동한 뮤지션이었다. 30년 전 첫째 딸 권미진 성도가 태어나면서 음악인의 삶을 접게 됐다. 출산 과정에서 양수가 아기의 뇌로 들어가 뇌병변을 일으킨 것이다. 작은 몸으로 울기만 하는 아기를 고쳐주기 위해 부부는 백방으로 병원과 시설을 찾아다녔지만 확실한 방법은 없었다. 그럴수록 부부는 장애아를 키우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각오하고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음악을 그만두고 상황 되는 대로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도 절대적인 시간은 미진이를 위해 쏟았다. 그러다 4년 후 예쁜 둘째 딸 권세진 성도가 태어났다. 권세진 성도는 신앙 안에서 바르게 성장했다. 대학에서 특수교육학과를 전공해 지금은 특수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 중이다. “원래 꿈이 교사였어요. 엄마가 남이 다 닦아놓은 길, 남들 눈에 좋아 보이는 길이 아니라 조금 힘들고 어려울 지라도 꼭 필요한 일, 의미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토요일과 주일에는 장애인대교구 소망부에서 교사로 봉사한다. 이향례 집사는 “어려서부터 세진이는 친구들을 집에 잘 데려왔어요. 친구들이 누워있는 미진이를 보고 ‘너네 집에 아기 있네’ 그러면 ‘아니야 우리 언니야’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아무렇지 않게 같이 놀았죠”라고 말했다. 권오열 집사는 “학교 다닐 때 장학금도 받고 똑똑하고 예쁜 딸이에요. 그리고 엄마 아빠를 많이 생각해주는 딸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저희도 언니는 우리가 다 책임질테니 너는 언니 걱정 말고 열심히 네 생활 하라고 해요”라고 말했다. 가족이 똘똘 뭉쳐 미진 성도를 돌보며 생활하기 때문에 각자의 달란트에 맞게 봉사도 할 수 있어 참 감사하다고 말한다. 목소리가 곱고 찬양을 좋아하는 이향례 집사는 몸과 마음이 힘들고 환경이 어려워도 기도와 찬양으로 이겨냈다. ‘자유롭게 믿음 생활하는 것’이 기도제목일 만큼 신앙생활을 핍박하던 시어머니가 몸져 누워 대소변을 받아내야 할 때도 신앙이 있었기에 감내할 수 있었다. 9년을 누워계시던 시어머니는 그러한 이 집사의 모습에 회심하여 예수님을 영접하고 천국으로 가셨다. 권세진 성도는 대학청년부에 가면서 봉사를 찾던 중 언니가 있는 장애인대교구 소망부에 교사로 자원했다. 소망부는 장애인대교구의 교회학교로서 말씀과 찬양을 배우며 신앙생활하는 곳이다. 권세진 성도는 “아이들이 소리도 지르고 과격해 질 때도 있지만 귀여운 모습을 많이 보여줘요. 한참 장난치다가도 갈 때는 정중하게 인사하고 가는 걸 보면 많이 발전했구나 생각하며 웃어요”라고 말했다. 가장으로서 봉사는 엄두도 못내 던 권오열 집사의 봉사는 우연히 시작됐다. “20년 전부터 교적을 장애인대교구로 옮기고 조용히 신앙생활을 했어요. 2월이면 장애인대교구 성도 전체가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가서 금식성회를 하는데 10여 년 전 당시 교구장님이 제가 예전에 드럼을 쳤다는 것을 알고 금식성회 때 드럼을 쳐보라고 하시는 거예요. 성회에서 드럼을 치면서 받은 그때의 은혜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20년 동안 드럼과는 담쌓고 살았지만 재능은 녹슬지 않았다. 그게 계기가 되어서 오랫 동안 놓았던 드럼 스틱을 다시 잡았고 감격 속에 드럼 봉사를 하고 있다. 장애인대교구 대예배인 토요예배와 수요철야예배에서 봉사 중이다. 30년을 뒤돌아보면 말로다 할 수 없는 고비 고비가 있었지만 가족은 언제나 하나였고 서로를 사랑했다. 식구들이 집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미진 성도에게 가서 인사를 한다. 가족들은 영혼이 맑고 순수한 미진 성도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가족들은 하루에 한번은 꼭 미진이가 바깥 출입을 한다는 원칙을 세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함께 우산을 쓰고 외출을 한다. 권오열 집사는 “예전에 비하면 이 정도로 발전 된 것도 감사하죠. 태어 났을 때 젖을 빨지를 못해 그냥 울기만 했으니까요. 이제는 감정 표현도 하고 평안해요. 가족 중 가장 잔병치레도 없고 소화력도 좋으니 더욱 감사해요”라고 감사했다. 이향례 집사는 “미진이 덕분에 제 믿음이 성장했어요. 우리 가족이 다 교회에 다니게 된 것도 미진이 덕분이고요. 아주 어릴 때 잘 토하고 소화도 못해서 병원에 매일 가다시피 했어요. 수요일이었는데 병원에 가지 않고 병원 진료비와 약값을 동전까지 계산해서 헌금봉투에 넣고 겉에는 미진이 기도제목 써서 애를 업고 가서 기도 한 적이 있어요. 하나님이 치료해주실 것이란 믿음으로 열정적으로 기도했는데 그때 많이 축적된 믿음으로 30년을 살아 온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들 가족은 자신들의 행복한 모습이 자기들만 좋은게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희망이나 기쁨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한다. 권오열 집사는 “제가 예전에 젊어서 드러머 생활할 때 동료들한테 농담 삼아서 난 60세까지 드럼 칠거다라고 했었어요. 그때는 그 나이까지 하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드럼을 사랑하는 제 애착의 표시이자 농담이었을 뿐이었죠. 그런데 지금 제가 66세인데 드럼을 치고 있잖아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이향례 집사는 “가족들이 다 같이 장애인대교구에서 봉사를 하니 좋은 선생님과 봉사자들이 많이 와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함께 봉사하면서 은혜를 누리셨으면 좋겠어요. 저희 가족의 공통된 소망이기도 해요”라고 말했다. 글·복순희 / 사진·김용두 / 편집·육은영 기자
  • 2015.07.05 / 복순희 기자

    황의대·이성순 교사 - “가족처럼 행복한 예제모 큐티 스쿨에서 만나요”
  • 아이들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돼 열정과 사랑으로 제자들 섬기며 양육 교회학교 예제모 큐티스쿨은 청소년들이 매일 하나님과의 경건의 시간 QT(Quiet Time) 묵상으로 주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고 삶의 변화가 일어나는 공동체이다. 현재 이곳에는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자신이 소속한 각 부서의 예배를 드린 후 자율적으로 찬양과 기도 모임에 참석해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과의 영성, 자기관리, 인간관계 섬김을 체험하고 있다. 말씀 묵상으로 변화되는 모습에 한가정의 네 남매가 오는 경우도 있고, 외로웠던 아이가 신앙 안에서 형, 누나, 선생님을 만나 인간관계를 배운다. 또 학생들이 기타나 키보드 등 악기도 배우고 번갈아 가면서 찬양을 인도하고 모임을 이끌며 리더 역할을 경험한다. 이곳에서 사랑을 많이 받고 변화 받은 학생들이 어른이 되어 사랑의 빚진 마음으로 교사로 헌신하고 있다. 예제모 스쿨의 초창기부터 이성순 교사와 황의대 교사는 엄마처럼, 아버지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학생들을 섬기고 있다. 부부 교사인 이들은 틈만 나면 하나님 안에서 만난 제자들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 한다. 이성순 교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아이들이라 생각이 성숙해져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깨어있어요. 얼마 전에는 교회들의 아픔을 위해서 애통해하며 울고 그것을 주제로 함께 이야기 하더라고요. 선배는 모든 의견을 경청하면서 선배로서 좋은 모범과 영향력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후배들은 선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인정해주니 존경의 마음을 갖는데 참 대견해요”라고 말했다. 황의대 교사는 “말씀 묵상한 것을 하루 동안 실천할 수 있는 뚝심도 필요해요. 십대들이 갖는 각자의 여려움이 있어요. 특히 왕따 등 친구관계에 어려움을 겪거나 결손 가정 등 아이 혼자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들 속에서 상처받고 힘들어하죠. 아이들이 말씀 묵상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서 변화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공통점과 교회학교 교사로 함께 봉사한다는 점 때문에 여느 부부들처럼 성격이나 의견 차이가 있어도 기도하며 가정을 꾸려왔다. 교회학교 봉사에 바쁜 엄마 아빠지만 두 아들도 신앙 안에서 바르게 성장했다. “아이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고 배웠어요. 엄마가 사랑으로 충만해지면 아이들도 채워진다는 마음으로 교사 봉사에 힘쓸 수 있었죠. 저희는 자녀 양육에 남다른 에너지를 쓰지 않았어요. 내 아이, 내 가정만 강조했다면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었을까 생각해요” 특히 둘째인 황태연 교사는 형과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고 청소년기에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었을텐데도 고등부 때부터 예제모 스쿨에서 활동하면서 말씀의 은혜를 체험했다. 졸업 후에는 예제모 스쿨의 교사가 되어 부모님과 함께 봉사해왔다. 지난해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군대에 입대 했는데 군으로 파송 받은 선교사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군에서 만난 동료들을 위해 더욱 공부하며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흔히들 자녀가 군대를 갈 때 좋은 곳으로 가게 해달라고 바라거나 기도하잖아요. 저희는 그런 기도를 한 적이 없는데 아들이 누구나 부러워 할만한 곳으로 가게 됐더라고요. 그곳도 좋았는데 더 좋은 곳으로 옮겨졌어요” 특별한 기도는 안했지만 어디에 있던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를 바라는 기도는 언제나 계속 되고 있다. 황 교사는 중등2부에서 교사로 봉사했었고 이 교사는 현재까지도 고등1부에서 봉사하고 있다. 모든 일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이 교사와 원칙과 규칙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황 교사이기 때문에 때때로 부딪히지만 각자의 생각을 충분히 듣고 소통하면서 의견을 조율한다. 또 상대방이 못 보는 것을 보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쓴 소리도 아주 많이 한다. 어렵지만 서로에게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황 교사는 아내의 사랑이 많은 품성을 배우고 싶어한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아픔을 가진 아이들이 상담을 청해오면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주죠. 그러면 하나님께서 치유하세요. 아내는 낮에 일도 해야 하는데 피곤한줄 모르고 늦게까지 문자로 상담을 하는 모습을 보면 감사해요” 이 교사는 남편의 열정적인 면모를 높이 평가한다. “저희 집에는 책이 서점만큼이나 있어요. 남편이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하나둘씩 읽고 모아둔 책들이에요.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섬기는 모습은 저도 배워야겠어요”라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하나님께서 부부를 한 마음으로 만들어주시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셔서 힘을 합쳐서 할 수 있게 하심에 감사한다. 부부는 아이들을 섬길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한다. “학생들에 대해 이야기 하다 새벽 3시가 되어서도 피곤한줄도 모르겠고 행복해요. 이 아이를 칭찬하다 저 아이의 장점을 치켜세우고, 변화된 모습에 함께 울고 웃고 기뻐하다보면 어디서 생기는지 에너지가 넘쳐요” 예제모 스쿨에서는 매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가 되면 J-파티 및 고3 파송식을 한다. 파송식 후 대학청년부로 올라간 학생들이 청년이 되어 프뉴마선교회나 캠선교회에 가서 리더로서 쓰임받는다는 소식을 들으면 더없이 기쁘다. “사랑도 배워야 하는 것 같아요. 누구나 마음속에 선악이 있는데 아이들도 누구나 선하게 살고 싶어해요. 그런데 세상 속에 살게 되니 경쟁을 하게 되고 강해 보이고 싶어서 욕을 배워서 하기도하죠.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선이에요.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표현하는 법을 알려주면 나쁜 행동이나 마음은 조금씩 줄어들고 행복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될 수 있죠.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도 배워가고 성장하고 있어요” 글·복순희 / 사진·김용두 기자
  • 2015.06.0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아동2부 네 모녀 교사(서보향 집사,임수아,임효주,임현수 성도)
  • 엄마와 세 딸, 한 부서에서 교사로 봉사 달란트 대로 ‘따로 또 같이’ 긍정에너지 발산 “모두 다 준비 됐지. 자! 이제 출발하자” 매주일 이른 새벽 여느 가정과 달리 네 모녀의 아침이 한낮처럼 바쁘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있는 곳, 천사같은 교사들이 모여있는 아동 2부에 갈 생각에 엄마와 세 자매는 발걸음을 바삐 움직인다. 주일 아침 교회학교 아동 2부에 가면 밝고 환한 웃음이 똑같이 닮은 ‘네 모녀 교사’가 있다. 엄마 서보향 집사는 구원 3반 담임이다. 첫째 딸 임수아 성도는 임원반에서, 둘째 딸 임효주 성도는 율동팀과 승리4반에서, 막내 임현수 성도는 구원5반 보조교사와 예배팀 키보드로 봉사하고 있다. 자그마한 체구 어디에서 그렇게 많은 긍정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지 모르겠다. 예쁘고 밝은 모습으로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는 세 딸들을 보며 사람들은 부럽다고 한다. 주변 교사들에게도 칭송이 자자하다. 성격도 개성도 제 각각일 수밖에 없는 딸들이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언제나 하나다. 그리고 서로에게서 좋은 모습은 배우려고 노력한다. 엄마라고 해서, 언니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는다. “저희 가족은 우리 교회를 다닌 순간부터 주일에 교구 버스 첫차를 놓친 적이 없어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성가반이어서 연습을 해야하니까 일찍 오는 게 당연했어요. 꾸며줘야 할 딸이 셋이나 되지만 지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죠” 막내 임현수 성도는 워낙 어려서부터 단련돼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들지 않다며 연약한 모습과 달리 단단함을 보였다. 딸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성가반, 중등부 음악반, 고등부 소리노을까지 봉사를 계속해왔고 엄마는 딸들의 교회학교 봉사를 적극 도왔다. 물론 아이들 마다 어려움이 생겨 봉사를 그만 두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에게 맡겼어요.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맡기고 저는 기도만 할 뿐이었죠” 딸들이 자라 서보향 집사는 비로소 자신의 꿈과 소망을 펼칠 수 있는 봉사를 찾게 됐다. 바로 교회학교 교사였다. 아이들을 교회학교에 보내면서 담당 선생님들께 많은 감동을 받아왔기에 보답과 감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제가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했기에 달란트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도 감사했어요” 먼저 교회학교에서 봉사하고 있던 큰 딸 임수아 성도가 엄마의 봉사를 적극 환영했다. 같은 봉사처에서 가족이 함께 하면 어려움과 부담이 따르리라 예상 됐지만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 찬성했다. “엄마가 하고 싶은 봉사를 못하셔서 나중에 후회하시면 안 되잖아요. 그리고 교사도 부족했고요. 하하하” 엄마는 엄마대로 “수아한테 정말 고마웠어요. 봉사를 잘하고 있고 자기만의 교회 생활이 있을 텐데 그 공간에 저를 허락해 줬잖아요. 하나님께도 감사하고 딸한테도 무지 고마웠죠”라고 말했다. 큰언니와 엄마의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둘째와 셋째도 아동 2부 교사로 봉사하게 됐다. 가족이어서 특별할 것은 없지만 동생들이 새로 들어올 때 마다 더욱 조용히 묵묵히 봉사하자고 함께 다짐했다. 교회에 와도 실질적으로 네 모녀가 같이 있는 일은 없다. 각자 맡고 있는 사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모습을 보아 두었다가 칭찬하기 바쁘다. “수아 언니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집에서도 컴퓨터가 고장 나면 언니가 다 고쳐요. 그런 언니가 교회에서는 임원반 율동을 직접 만들죠. 언니는 정말 대단해요” 3살, 1살 터울 딸 셋을 키우면서 언제나 시간이 모자라고 몸도 마음도 분주했지만 서보향 집사는 지·구역장을 맡아 활동했다. 언제나 하나님 먼저, 교회 중심의 삶을 강조하면서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공부하지 말고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봉사하라고 가르쳤다. 때로는 학교나 학원 선생님들로부터 아이들 성적에는 관심도 없고 교회밖에 모르는 이상한 엄마라는 억울한 소리를 듣기도 했다. “특히 둘째 효주 때 학원선생님이 많이 안 좋게 보셨어요. 그런데 효주가 대학에 떡하니 붙으니 현수를 가르치실 때는 그런 말 하나도 못하시더라고요. 저희한테는 그런 통쾌한 일이 참 많아요” 이제 큰 딸 임수아 성도가 24살, 임효주 성도가 21살, 임현수 성도가 20살이지만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것을 엄마와 자매들과 함께 기도하며 많이 체험했다. 또 매일 가정예배도 놓치지 않고 있다. “저희는 다 모이기가 힘들기 때문에 두 명만 모이면 바로 예배를 시작해요. 예배드리다 보면 다른 가족들이 와서 함께 예배드려요” 청년 취업이 어려운 이 때에 임수아 성도는 졸업하자마자 원하는 직장에 합격해 즐겁게 일하고 있다. 특히 가족들이 이사 갈 집을 구하기 위해 기도할 때는 구체적으로 방이 몇 개고 거실과 화장실이 어땠으면 한다고 벽에 적어놓고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 조건은 물론 생각지 못한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게 하셨다. 자매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각자 기도 노트를 썼다. 막내 임현수 성도는 “효주 언니가 대학에 가는 것을 보면서 저도 언니처럼 똑같이 봉사하고 똑같이 기도했어요. 언니가 읽은 책을 읽고 언니가 붙든 말씀을 함께 외우고요. 수능 후에는 언니의 조언대로 여리고 기도회에 열심히 참석했죠. 그랬더니 언니가 다니는 배화여대 영어통번역과에 합격했어요” 세 자매들에게는 공통적인 꿈이 있다. 넓은 세계로 나아가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일하는 꿈이다. 막내 임현수 성도는 대학청년국에서 주최하는 해외단기선교 프로그램인 월드미션 참가를 위해 기도로 준비하고 있다. 월드미션을 통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일들을 경험하도록 기도 중이다. 이를 위해 가족들도 큰 기대를 가지고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다. 엄마의 기도는 역시 딸들을 위한 기도였다. “세자매가 모두 섬기고 나누고 베푸는 믿음의 가정을 세웠으면 좋겠어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신랑감을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죠. 저희 가족이 제일 처음 교회에 다닐 때 우리 모두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거든요. 그 기도를 한지 딱 20년이 됐는데 돌아보니 하나님이 벌써 이루어 주고 계신 것 같아요. 각자 위치에서 하나님께 쓰임 받고 있어서 감사합니다” 글·복순희 정승환 / 사진·김용두 기자
  • 2015.05.03 / 복순희 정승환 기자

    김은국 장로·김명희 권사
  • “새신자 때 받은 사랑 평생 기억해요” 새신자 교육 직후 봉사시작 어느덧 19년 ‘감사’ ‘기쁨’이 부부 봉사의 원동력 봄이다. 봄은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은은하게 따뜻함과 포근함을 전해준다. 마치 전도새신자실의 봉사자들처럼 말이다. 우리 교회는 매주일 수많은 새신자들이 찾아와 예배를 드린다. 새신자들이 새학기 새내기들마냥 커다란 교회에서 헤매고 있을 때 봉사자들이 가장 먼저 다가와 인사와 함께 새신자들을 맞이한다. 이들에게 새신자는 반가운 새가족이다. 마치 어제봤던 것처럼, 오늘 다시 만난 것처럼 반갑게 맞이한다. 그래서 새신자들의 마음에 두꺼운 철문을 가지고 있더라도 가볍게 열어 복음을 심는다. 전도새신자실에는 총 65명의 봉사자들이 매주 새신자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이 중에서 부부 봉사자도 있으며 가장 첫 부부 봉사자이자 19년차인 김은국 장로와 김명희 권사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항상 미소를 잃지 않고 봉사를 하는 이들 부부의 비결은 “기쁨과 감사가 넘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이야기는 19년 전 이들이 새신자로 우리 교회를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시작된다. 김 장로는 원래 유통 관련 사업을 했었다. 그러다 IMF 경제한파로 그만 부도를 내면서 당장 손에 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집도 없었죠. 남은 건 가족과 두 손밖에 없었어요. 그냥 죽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는데 아내 친구의 권유로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 가게 됐죠. 아내와 함께 금식기도하면서 처음으로 성령체험을 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깨닫게 됐죠” 김 장로는 고등학생때부터 신앙생활을 했지만 우리 교회에 오기 전까지 성령님도, 방언기도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기도원에서의 성령체험은 그의 신앙생활을 바꾸는 전환점이 됐다. 아내와 함께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찾았다. 그렇게 문을 두들긴 곳이 바로 새신자실이었다. 처음부터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새신자교육을 받았다. 그 곳에서 이들 부부는 새신자실의 담당 전도사님과 봉사자들의 따뜻한 사랑에 큰 감명을 받았다. “당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평생 잊을 수가 없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부부가 그 때 새신자양육교육까지 정말 사랑 가득히 받았죠. 그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새신자실에서 봉사를 시작하게 됐죠. 당시는 정말 물질은 없어도 주일에 나와 봉사할 수 있음에 기쁨과 감사가 넘쳤어요. 정말 잠깐 있었는데 벌써 19년이 지났네요” 그 때는 예배만 드리면 눈물이 넘쳐나고 봉사를 하면 기쁨이 넘쳐났다고 회고한다.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절로 눈물이 난다고 한다. 얼마 후 김은국 장로는 기도원에서 기도를 하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세계최초로 초전도체 물질을 이용한 절전기술 ‘울트라’를 개발하는데 성공, 세계시장을 노크하게 됐다. 그가 세운 ㈜케세코는 기술력을 인정받아 세계 곳곳에 울트라를 수출하며 상상하지 못했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성공을 향한 고속철도가 놓인 듯 빠른 성장을 거듭하던 김은국 장로의 케세코는 생각지 못한 큰 난관을 만나고 말았다. 믿었던 직원들이 기술을 유출해 해외에 팔아버린 것은 물론 거래처들도 들고나가 다른 회사를 차려 버린 것이다. 이 사건은 TV 뉴스에 보도되기도 했다. 지금도 그와 관련한 재판이 진행 중에 있다. “4년 째 재판이 진행 중인데 변호사를 선임하자니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하나님만 의지해 기도하기로 작정했죠. 법원에서 요청하는 자료를 잘 정리해 제출하고 ‘하나님이 재판장이 되어주세요’라고 기도했어요. 재판이 진행되면서 재판장들이 몇 번 교체되었지만 모두 공정하고 꼼꼼하게 봐주셔서 곧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습니다” 이들 부부는 이전에도 그랬듯이 봉사하며 기도로 하나님께 의지했다. 김명희 권사는 매일 철야기도를 드리고 때로는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도 올라가 금식하며 기도했다. “시편 91편 등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감사하라는 말씀을 주시며 힘을 주세요.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게 힘 주셔서 감사해요. 우리는 기도 밖에 한게 없어요” 4년간 끌어온 재판으로 지칠만도 하지만 김은국 장로는 ‘고난은 유익이다’라고 말하며 감사할 뿐이라고 말한다. 도리어 김 장로는 언제나 기도로 내조하는 김 권사가 고마울 뿐이라고 고백한다. 그래서일까. 이들은 19년 동안 함께 봉사하면서도 절대 다툰 적이 없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는 이들 부부뿐 아니라 새신자실에서 봉사하는 봉사자들에게도 만연하다. “물론 다른 봉사자들도 그렇겠지만 특히 우리 전도새신자실의 봉사자들은 우애가 좋아요. 아침에 모이면 기쁨에 감사를 드리고, 봉사를 마치고 헤어질 때면 일주일 간 승리를 다짐하죠. 사랑으로 봉사하니 문제가 없는 것 같아요. 굳이 봉사자로서의 팁이 있다면 ‘서로를 깊게 이해하고 말은 적게, 작은 일이라도 기쁨과 감사로’가 되겠네요” 지난해 장로로 장립받은 김은국 장로는 현재 교회학교 중등2부를 섬기고 있다. 지난 주 새롭게 학생 5명이 등록했다는 김 장로는 새신자실과는 같으면서도 또 다른 행복과 감사를 느낀다고 말한다. “모든 영혼들이 소중하지만 교회의 미래인 아이들이기에 더 큰 기쁨과 감사가 있는 것 같아요. 이곳에서 학생과 교사를 섬기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들 부부를 보고 자라온 큰 딸 김희경 성도와 둘째 딸 김희진 성도는 부모님처럼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싶다고 고백한다. 어렸을 때도 집근처 교회에 출석했지만 믿음의 가정 롤모델인 부모님을 따라 남편과 함께 우리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항상 엄마 아빠에게 감사해요. 봉사로 인해 피곤해보이시면 안쓰러운데 행복해보이시니까 감사하죠. 믿음의 가정 이뤄주심에 특히 고맙고 우리도 믿음의 가정 이루고 부모님처럼 봉사도 하고 싶어요” 글 복순희 정승환 / 사진 김용두 / 편집 김성혜 기자
  • 2015.04.0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최광춘 안수집사·박명남 집사
  • 봉사하니 “자녀들의 복” 넘치게 임해 아버지 최광춘 안수집사 남선교회 보호실 11년 어머니 박명남 집사 여선교회 봉사차장으로 헌신 주일 새벽 4시면 남선교회, 여선교회 봉사자들이 우리 교회의 새벽을 깨운다. 남선교회 보호실 최광춘 안수집사도 예외가 아니다. 안내실에서 대성전 5층에 위치한 보호실 열쇠를 인계받아 문을 열고 들어와 흰 봉사복으로 갈아입고 주일봉사를 준비한다. 임원기도회 후 주일 1부예배부터 숨 가쁘게 주일하루가 지나간다. 보호실의 특성상 예배 방해 및 소란자들을 상담하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경찰서에 신고해 신원을 인도하기도 한다. 예배 중에 실신하거나 부상을 당한 성도가 있을 경우 119에 신고하고 환자를 후송하는 일도 종종 있다. 이밖에도 봉사 장소에 결원이 없도록 실원들을 배치하는 등의 일을 맡고 있는 최 집사는 “주일에는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간다”라고 고백한다. 때론 오랫동안 긴장도 하게 되고 힘이 들 때도 있지만 이 모든 것을 덮고 넘칠만큼 봉사하는 기쁨이 크다고 말한다. “봉사하기 전에는 봉사하는 분들은 모두 믿음이 대단한 분들이고 그런 분들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봉사하기 전에는 늘 야외로 가족과 함께 놀러 다닐 궁리만 했죠. 그런데 하루는 봉사를 권유하는 인도자들에게 보호실에 끌려오다시피 했어요. 얼떨결에 시작했지만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이 우리 가족에게 가득했어요” 부인 박명남 집사도 거든다. “사실 그 때 저희는 성경학교를 졸업하고 말씀 공부가 즐거워서 성경대학도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제게 와서는 ‘남선교회 보호실에서 봉사하게 됐어’라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서운한 마음도 있었지만 전과 달리 주일성수는 물론이고 토요일에도 실원들과 등산도 하는 등 끊임없이 믿음의 교제를 하는 모습에 더 큰 감사와 행복을 느끼게 됐죠” 박 집사도 3년 전부터 여선교회에서 봉사를 하고 있다. 남편 최 집사는 아내의 봉사 활동을 말렸다. 평소 당뇨증세가 있어 아내가 여선교회에서 봉사하기에는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주변의 지인들도 오래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하는 박 집사를 생각해 봉사를 만류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박 집사는 지금은 봉사실 차장으로 섬김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사실 처음부터 오랫동안 봉사를 하겠다고 결심한건 아니었어요. 잠깐 도와달라는 요청으로 시작했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죠. 그런데 봉사를 계속해야할지 고민하던 어느 날 제 입에서 상상도 못했던 성경구절이 튀어나왔어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에 나귀새끼를 끌고 오라고 하시면서 ‘주가 쓰시겠다 하라’고 말씀하신 그 부분이었죠” 스스로도 깜짝 놀랐지만 더 놀란 것은 그 주 교구예배에 말씀 제목도 ‘차출병’이었다. 더 이상 주님의 부르심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박 집사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 후 고민 없이 지금까지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 “제가 다른 것은 잘못해도, 잘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순종이에요. 힘들어도 기쁨과 은혜로 그리고 사랑으로 맡은 사명에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걱정과 달리 오히려 부인의 얼굴에 활력과 생기가 돈다고 남편 최광춘 집사가 말했다. 두 부부의 이런 고백에는 봉사와 섬김이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복이 있기 때문이다. 최지선, 최주연, 최준호 세 자녀를 둔 이들은 자녀들이 모두 잘된 것이 그 증거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얼마 전 있었던 열두광주리 새벽기도회 기간 중 박 집사는 반가운 전화 두 통을 받았다. 작년에 결혼한 장녀 최지선 성도가 건강한 손녀를 낳았다는 소식과 아들 최준호 성도가 씨티예술실용학교에서 교수직을 맡았다는 소식이었다. “저희는 그냥 봉사 열심히 하고 함께 기도했을 뿐인데 자녀들이 잘 컸어요.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자녀로 자라주었어요. 서로 우애도 좋고 신앙도 좋아요. 가스펠선교회에서 봉사하고 있는 주연이는 저에게 같이 작정금식기도를 하자며 도리어 제 신앙을 이끌어 주고 있어요. 부모로서 아이들의 신앙을 끌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했는데 이제는 아이들이 신앙을 물려받아 저희보다 더 뜨거워지고 성숙해진 거 같아요. 그게 가장 감사한 일이죠” 최 집사는 막내 최준호 성도가 학창시절 공부를 하지 않아 다소 걱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들은 댄스에 남다른 자질을 보이며 각종 퍼포먼스대회에 입상해 지금은 저스트 절크(JUST JERK)라는 얼반댄스팀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그는 유명 아이돌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는 등 국내는 물론 해외로까지 그 지경을 넓히고 있다고 한다. 항상 스스로 ‘교수’가 되겠다고 말하는 아들의 말에 갸우뚱 했었는데 당당히 실용학교 교수로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아들을 보면 뿌듯하기만 하다. “자녀들도 그렇고 모두 주님께 내어 맡길 때 걱정이 없어요. 모두 하나님께서 좋은 길로 인도하시고 책임져주시기 때문이죠. 오래해 온 직장 생활을 접고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면서도 아무런 염려나 걱정이 없었어요. 당장 어떠한 문제가 생겨도 걱정하지 않아요. 다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거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죠” 두 부부가 봉사에 매달리다보니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더욱 이해하게 됐다. 이들 부부는 남선교회나 여선교회에 젊은 봉사자가 없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며 자신들의 경험에 비추어 봉사를 하다보면 자연스레 믿음이 성장하고 자녀들에게 복이 임하는 계기가 된다고 당부했다. 그리고 형제보다 더 끈끈한 우애와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곳도 남선교회와 여선교회라고 빼놓지 않고 강조했다. “많은 분들이 봉사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하나님께 영광돌렸으면 좋겠어요” 글·복순희 정승환 / 사진·김용두 기자
  • 2015.03.01 / 복순희 정승환 기자

    이춘화·최 고·최민아 교사(용산분교)
  • 용산분교 신앙 토박이들의 멈추지 않는 수다 어머니, 누나, 남동생 모두가 용산분교 교사로 봉사 서로가 신앙 동반자, 영적 멘토, 기도중보자 자녀들의 변화, 어머니의 기도가 만사해결 키워드 “정말 싫었어요” 어머니 이춘화 선생님이 자녀들이 출석하는 용산분교에서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 자녀들의 첫 반응은 여느 아이들과 같았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누나 최민아와 동생 최고에게 어머니의 등장은 큰 부담이었다. 교사의 자제라는 타이틀이 붙다보니 이전과는 다르게 조금 더 모범적이어야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스트레스일 수밖에 없었다. “용산대교구에서 지역장으로 섬기다가 아이들이 있는 분교로 왔어요. 아이들이 전도를 한 친구들이 있었는데 아이들끼리 대중교통으로 여의도로 가는 것이 (안전 등) 어려울 것 같아 분교로 옮기라고 했죠. 아이들이 제가 분교로 오는 것이 부담되고 불편해 할지 몰랐어요. 그리고 분교로 와서 집에서 보던 아이들과 교회에서 보는 아이들이 전혀 다른 것에 깜짝 놀랐죠” 부모가 더 자신들의 자녀를 모른다는 말을 실감했다는 이 선생님은 분교로 와서 아이들의 영적상태를 직접 보고 더욱 기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욕심을 내려놓는 시간이 되었어요. 처음에는 자녀들의 다른 모습에 충격을 받기도 했지만 아이들을 바꾸기보다는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기로 마음을 먹었죠. 정말 기도를 많이 했어요. 그랬더니 자녀들이 변화되기 시작했죠” 기도를 통해 변화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다시한번 감사와 은혜를 체험한 것은 물론 이제는 함께 교사로 봉사하면서 영적으로 성장하는 동반자가 됐다고 고백한다. 누나 최민아 선생님은 처음에는 어머니가 분교 교사로 온 것이 너무 싫었지만 지금은 같은 교사로서 이해하고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한다. “지역장의 아들·딸도 부담스러운데 선생님의 아들과 딸이라는 것이 부담스러웠죠. 더욱이 교사 봉사는 생각도 못했어요. 처음에는 어머니의 강권과 함께 교회학교 부감님과 친해지면서 의리로 시작하게 됐죠. 막상 교사를 시작하면서 제 신앙이 약하다는 사실을 절감했어요. 성령체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래서 기도로 매달린 결과 7, 8개월이 걸려 성령을 받을 수 있었어요. 그 후부터 어른들의 말씀이 이해도 가고 같은 주제로 대화가 가능해 졌어요” 동생 최고 선생님은 어려서부터 친구들에게 전도를 잘했다. 특유의 넉살과 친화력으로 어디에서나 인기만점 훈남으로 통한다. 분교의 교사들도 아이들도 그가 입만 열면 웃음폭탄이 터진다. “엄마와는 별개로 분교에는 아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친구와 형들도 모두 어려서부터 함께 했으니까요. 그런데 분교교사를 하면서 조금씩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갔어요. 교사를 하면서 모르는 것이나 도움을 받을 일이 있으면 엄마한테 먼저 상담하게 되고 의견을 구하게 됐죠. 지금은 셋이서 신앙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하고 함께 봉사하다보니 세대 차이도 못 느끼는 것 같아요” 실제로 철야예배를 마치고 교회에서 집까지 혹은 집에서도 세 식구의 대화는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이를 지켜본 주변에서 늘 대화하며 붙어 다니는 이들의 모습을 신기하게 혹은 부럽게 여긴다고 한다. 특히나 이름만큼이나 최고의 입담을 자랑하는 최고 선생님의 대화는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지켜보는 이들마저도 웃음을 터트리게 만든다. “한 번은 학생들이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 집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요. 교회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웃기고 재미있는데 집에서는 얼마나 더 재미가 있을지 궁금하다고 하더군요” 최민아 선생님은 지금은 상상할 수 없지만 학생시절에는 동생 최고 선생님과는 반대로 무뚝뚝하고 붙임성이 없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일방적으로 동생을 질투했어요. 워낙 동생은 성격이 좋은데 저는 그렇지 못했죠. 그래서 싸우기도 많이 싸웠죠. 더욱이 아이들을 예뻐하는 성격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분교에서 교사 봉사를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변화됐어요. 처음에는 제가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을 통해서 제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특히 가장 변화게 된 계기는 성령체험이었죠. 누가 제게 아이들을 사랑하느냐고 물으면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대답하지만 곧 한계가 느껴질 때도 있어요. 예수님이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셨듯이 저도 그렇게 아이들을 사랑하고 싶어요”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최민아 선생님의 눈시울이 빨개졌다. 어머니 이춘화 선생님도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선교에 대한 비전을 품는 것을 보면 신기하고 감사하다”고 거든다. 최민아 선생님은 지금 태국의 단기선교를 준비하고 있다. 태국에서 선교사님을 도와 소수민족들을 섬기는 것은 물론 달란트를 활용해 그들의 언어로 그림성경제작에 참여할 예정이다. “이번 단기선교를 준비하면서 어머니에게 기도를 부탁했어요. 어머니의 기도가 우리 삶에 가장 큰 버팀목이죠” 최고 선생님은 식구들이 애틋한 이유 중 하나로 떨어져 지낸 3년이라는 시간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누나는 공부하러 일본 도쿄로, 저는 군대에 입대하면서 세 식구가 3년 가까운 시간을 떨어져 지냈죠. 그 시간 동안 서로가 서로를 더욱 생각하게 되고 성장하게 된 계기가 된 거 같아요” 또한 이들 식구들은 용산분교는 한 가족 같다며 이곳에서 함께 성장하고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지역 특성상 다문화가정, 결손가정이나 불신자 가정이 많아요. 부모님을 따라 이사를 가는 경우도 많고 아이들이 신앙적으로 정착하기 어려운 점도 많죠. 하지만 이곳에서 함께 성장하고 신앙을 키우다보면 절대로 분교를 떠날 수 없어요. 이곳 교사들이 다른 곳보다 끈끈한 것도 다 분교만의 특성 때문이죠” 방학을 맞아 갈 곳 없는 아이들이 주중에도 용산분교를 찾는다. 이곳에서 교사들이 마련한 간식을 먹기도 하면서 아이들은 사랑을 채우기도 한다. 교사들의 지극 정성어린 사랑은 아이들의 기억과 마음에 깊이 남아 당장 꽃을 맺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반드시 훌륭한 열매로 거두실 것을 이들은 믿고 있다. 그런 마음으로 한 아이라도 소중하게 대하고 있다고 한다. 최민아 선생님의 고백을 통해 이 세 식구가 분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다. “분교는 방황하던 저를 받아주고 사랑을 준 특별한 곳이예요. 저를 변화시켜주고 꿈을 심어준 곳이죠. 이런 분교의 사랑을 저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누렸으면 좋겠어요” 글·복순희 정승환 / 사진·김용두 기자
  • 2015.02.01 / 복순희 정승환 기자

    스포츠목회자 할머니와 국가대표 손녀의 이야기
  • 우리나라 알파인스키의 희망, 손녀 김소희 선수 강원 대관령 주무대로 선교, 할머니 장진선 목사 우리나라 스키의 희망이자 기대주인 국가대표 김소희 선수. 그의 뒤에는 그의 재능을 발굴하고 이끌어준 외할머니 장진선 목사가 있다. 신앙이 없었다면 이 두 사람의 특별한 이야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알파인스키는 발뒤꿈치를 고정해주는 스키를 타고 가파른 슬로프를 내려오는 경기다. 빠른 속도로 슬로프를 내리꽂듯 질주하는 활강 경기와 깃발을 세워 만든 기문을 미끄러지듯 통과하는 회전경기로 나뉜다. 회전·대회전·슈퍼대회전·활강·슈퍼복합 등 5개 분야에 모두 10개의 종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3살 때부터 스키를 탄 김 선수는 어릴 때부터 스포츠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장진선 목사는 “아기 때부터 힘이 좋았어요. 육상, 높이뛰기, 멀리뛰기 대회에 나갔을 때도 상을 탔고요. 인라인에서도 상을 탄 적이 있어요. 모든 스포츠에 재능을 보였죠”라고 말했다. 김소희 선수의 재능을 발굴한 것은 스키 강습 교사를 하는 할머니 장진선 목사의 영향이 크다. 올림픽순복음교회의 담임인 장진선 목사는 남편 황바울 목사와 함께 용평스키장과 알펜시아리조트에 오는 성도들이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고 평일에는 스키 강습을 하면서 자비량 사역과 전도를 하는 특수 목회를 하고 있다. 김 선수가 선수로서 스키의 길에 서게 된 데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10여 년 전 김 선수의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움을 맞게 돼 김 선수는 할머니댁에 맡겨졌다. 매일 스키장에 가는 할머니를 따라 다니며 본격적으로 선수가 됐다. 김 선수의 어머니, 아버지, 외할머니인 장진선 목사와 외할아버지까지 모두 김 선수의 뒷바라지에 나섰다. 부도라는 경제적인 시련은 컸지만 가족모두가 신앙으로 하나되어 똘똘 뭉쳤다. 김 선수의 어머니인 황기련 집사는 “소희 밑으로 동생이 둘 더 있어요. 동생들도 어렸을 때부터 스키를 탔는데 둘째 연희는 리더십도 있고 공부에 재능을 더 보여 지금은 공부에 집중하고 있어요. 중학교 때는 학생회장도 했었고 지금도 전교에서 상위권의 성적을 보이죠. 셋째 건희는 중학생인데 큰 누나처럼 스키선수예요. 아이들도 모두 신앙이 좋아 생활에 어긋남이 없고 나름대로 자기 일을 잘해주고 있어서 저는 감사기도만 해요”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3학년인 김소희 선수는 단국대학교 4년 장학생으로 이제 입학을 앞두고 있다. 얼마전 12월에도 중국에서 열린 극동아시아지역컵대회(PIS FEC)에서 3위를 차지했다(사진 왼쪽).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최고의 기량을 떨칠 나이가 되는 만큼 차근히 기록을 챙기며 국내 톱을 넘어 아시아의 톱은 물론 최상급 기량의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를 기도하며 나아가고 있다. 김소희 선수는 “운동은 할머니의 재능을 많이 물려받았어요. 하나님께 감사하고 할머니께 감사해요”라고 말했다. 김 선수는 재능과 기량을 통해 일찍이 남다른 면모를 보였다. 2011년 제92회 전국체전에서 알파인스키 여자중학부 3관왕을 차지했고 2012년 전국체전에서는 여자고등부 전 종목을 석권했다. 2013년에도 전국체전에서 3관왕을 차지해 7월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그리고 올해 2월 소치에서 열린 2014 동계올림픽에 당당히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하지만 슈퍼대회전을 앞두고 훈련도중 넘어져 머리를 다쳐 쓰러졌다. 하루만에 깨어나보니 병원이었다. 그렇게 경기에 나갈 수 없었다. 그리고 사고난지 4일째 되던 날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조용기 목사님께서 직접 전화를 주셨어요. 기도해주시고 아프지 말라고 하시는데 그 말에 펑펑 울어 버렸어요. 목사님께 기도를 받고 나니 다음 대회에 나가도 된다는 자신감이 솟았어요” 러시아 의료진과 우리나라 국가대표 관계자들의 만류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김소희 선수는 시합에 보내달라고 간청했다. 집에도 선수를 말려달라고 연락이 왔지만 누구도 김소희 선수를 막을 수 없었다. 그날 저녁 퇴원을 하고 이튿날 대회전 경기에 출전해 최종기록 53위로 생애 첫 올림픽의 기록을 남겼다. 당시 언론에서는 성적과 상관없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경기에 임한 김 선수의 부상투혼에 대해 이야기 했었다. 그때 김소희 선수는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 준 사람들, 직접 연락을 주신 목사님들의 기도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감사하고 있다. 그 기도 덕에 다시 일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장진선 목사는 “순복음 가족 전체가 김소희 선수를 하루에 한번 씩만 기도해주신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될까요. 김소희 선수가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세계적인 선수가 되고 세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많은 기도가 필요해요”라고 부탁했다. 김소희 선수 역시 “다른 것도 잘할 수 있지만 스키로 부르신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 스키는 메달을 딴 게 없으니까요. 기도 중에 생각을 주시는데 빙상종목 중 피겨스케이트는 김연아, 스피드스케이팅 이상화가 있는데 스키에는 없더라고요. ‘김소희, 네가 메달을 따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궁극적으로 제 꿈은 장차 전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IOC위원이 되는 것이에요”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연습만 하면 안되는건 없다고 말하는 김소희 선수이지만 “아무리 제가 스키를 잘 탄다고 해도 그 이상을 올라가려면 기도가 필요해요. 인간의 실력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김소희 선수는 경기 전 꼭 먼저 할머니와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자신이 타야할 슬로프와 환경 등을 알리며 기도 부탁을 한다. 장진선 목사는 “세계 어디를 가있더라도 믿음이 있기 때문에 꼭 기도해달라는 전화가 와요. 저희 가족은 어디에 있더라도 매일 저녁 9시면 성경을 한 장씩 읽고 묵상을 하죠”라고 말했다. 김소희 선수는 잠언을 5년 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고 읽어 왔다. “한달이 31일이니까. 매일 잠언을 1장씩 봐요. 묵상을 하다보면 항상 새로워요. 그리고 어려울 때나 시합 때는 평소 읽는 말씀이 확 떠올라요. 한번 해보세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장진선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였다가 부르심을 받고 신학을 한 후 교회를 개척하면서 이름을 올림픽순복음교회라고 지었어요. 사실 올림픽이라는 단어는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인데 ‘달린다, 전진한다’는 올림픽의 뜻을 살려서 이름을 지었죠. 그랬더니 진짜 손녀가 올림픽에 나가게 됐어요. 정말 신기하지 않나요”라고 말했다. 이제 갓 스물, 벌써 한번의 올림픽을 경험한 김소희 선수의 에너지가 통통 튀어 오르고 있었다. 실력과 자신에 대한 믿음을 뛰어 넘어 크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슬로프에 서는 작은 거인 김소희 선수가 당당히 세계 정상에서 환하게 웃음지을 날을 위해 기도한다. 평창=복순희 기자
  • 2015.01.04 / 복순희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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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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