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순복음
(130)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43>
  • 자기 자랑으로 충만한 삶이 아닌 성령 충만의 삶 살아야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무엇보다 성령으로 충만하고 신실한 성도들은 자랑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현대 사회는 각종 광고로 넘쳐나고 있다. 조금만 눈을 돌려도 여기저기 광고가 눈에 띄고 듣고 싶지 않아도 각종 광고의 소리에 묻혀 살아간다. 각종 방송매체를 통한 온라인 광고는 물론이요 거리 곳곳마다 건물마다 현란한 광고로 요란하다. 현시대는 범람하는 광고들에 휩쓸려 사는 ‘광고 홍수의 시대’라 정의할 수 있다. 이런 넘쳐나는 광고는 비단 기업들의 광고 전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각종 인터넷 플랫폼과 사회관계접속망(SNS)을 통해 자신의 외모나 재능 그리고 사생활까지도 당당하게 노출해 광고하는 개인들도 많아졌다. 현시대는 자기를 드러내는 ‘자기 광고의 시대’임에 분명하다. 물론 이런 것이 모두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상업적이고 자극적으로 변질해 가는 것은 우려할 만한 상황임에 틀림없다. 심리학에서 어떤 개인의 심리상태를 측정하는 방법 중에 일정한 시간 동안 그 대상자의 연설 대화 혹은 일정한 길이의 문장에서 ‘나’라는 단어를 얼마나 자주 사용하는지 그 횟수를 측정하는 조사법이 있다. 이에 따르면 ‘나’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사람일수록 그 심리상태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성향이 두드러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한 언어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600만명 이상의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A. Hitler, 1889~1945)는 ‘나’라는 단어를 53단어에 한 번씩 사용했고, 그의 동조자였던 이탈리아의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B. A. A. Mussolini, 1883~1945)는 ‘나’라는 단어를 83단어에 한 번씩 사용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나’로 충만했던 두 독재자가 일으킨 전쟁이 온 세계를 절망의 소용돌이로 몰고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눅 12:16~21)를 살펴봐도 부자의 언어인 짧은 3개의 절(눅 12:17~19)에 ‘내가, 내’라는 자기중심적 단어가 6번이나 등장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자기중심적 삶의 결과는 과연 무엇일까? 독특하지만 의미심장한 분석을 본적이 있다. 영어에서 ‘죄’를 의미하는 단어 ‘sin’의 중심에는 ‘나’를 의미하는 단어 ‘i’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죄는 자기중심적인 ‘자기 충만’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하나님’ 중심이 아닌 ‘내가’ 중심이 되는 것이 ‘죄’의 시작이라는 의미이다. 제일 무서운 우상은 바로 ‘나’라는 우상이다. 성도는 세상 풍조를 따라 ‘자기 충만’으로 살지 말고 말씀을 따라 ‘성령 충만’의 삶을 살아야 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 2022.11.18

    (129)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42>
  • 인간의 모든 자랑은 허무하고 허망한 희망 없는 그림자 같아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무엇보다 성령으로 충만하고 신실한 성도들은 자랑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성도가 자랑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신의 힘 혹은 강함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나름대로 훌륭한 삶을 살던 사람이 무너지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자기 자랑’ 때문인 경우가 많다(렘 9:23~24). 그 대표적인 인물이 유다의 왕 히스기야다. 그는 바벨론의 사자에게 자랑하기 위해 자기의 보물고를 열어 자랑 하다가(왕하 20:13) 결국 모든 보물이 바벨론으로 옮겨지는 수치를 당하게 되었고, 자손 중에 몇몇은 바벨론의 환관이 됐다(사 39:1~7). 이는 하나님의 은혜로 죽음에서 구원을 얻고 생명을 15년이나 연장받은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신의 힘을 과시한 결과였다. 둘째, 어떤 권력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고 했다(롬 13:1). 그런 이유로 세상의 모든 권력자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겸손히 그 분을 경외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권력가는 결국 변질돼 교만하게 우쭐대다가 자기도 망하고 백성들도 망하게 한다. 남이 나를 높여 주면 권위가 되지만 스스로 자신을 높이면 권위주의가 된다. 권위는 신뢰를 얻지만 권위주의는 불신을 낳는다(잠 27:2; 시 52:1). 권력자들은 자신에게 아첨하는 입술과 스스로의 권력을 자랑하는 것 두 가지 모두를 조심해야 한다(고전 3:21). 스스로를 살아있는 신(神)으로 여겨 교만했던 헤롯 왕은 그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그를 쳐서 충이 먹어 죽게 됐다(행 12:21~23). “야훼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시 12:3). 셋째,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잠언 27장 1절은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고 기록한다. 야고보서 4장 13~14절은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기록하며 안개 같은 인생의 허무함을 묘사하고 있다. 예수님도 한 부자의 비유를 통해 유한한 인간이 장래 일을 자랑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가르치셨다(눅 12:16~21). 이렇듯 인간의 모든 자랑은 허무하고 허망한 희망 없는 그림자와 같다(대상 29:15; 고전 3:19~21).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2.10.14

    (128)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41>
  • 허탄하고 악한 자랑은 스스로 올무와 함정에 빠지게 만들어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특히 ‘자랑’은 그 특성상 풍선처럼 부풀려 과시하며 말하게 되는 습성이 있어 자주 문제가 발생한다.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거나 과시하려고 허위로 자신의 이력이나 경력을 부풀려 기록했다가 망신을 당하는 유명 인사들의 이야기는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흔한 일이 돼버렸다. 그들의 결말은 너무나 부끄럽고 비참하다. 이처럼 성경은 ‘이생의 자랑’은 세상적이요 정욕적이고 악마적이라고 말씀하며(요일 2:15~16), 이러한 자랑은 허탄한 자랑이며 악한 것이라고 기록한다(약 4:16). 사슴 한 마리가 숲속의 샘에서 물을 먹는데 물에 비친 자기 자신을 보니 뿔이 얼마나 장엄하고 훌륭한지 스스로 감탄하고 있었다. 이와 달리 얇은 다리를 보니 너무 볼품이 없어 불만이었다. 다른 동물들 앞에서도 뽐을 내며 자신의 뿔을 자랑하고 있을 때, 갑자기 사자 한 마리가 덤벼들었고 사슴은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사자도 빠르지만 평지에서 뛰는 것은 사슴에게 당할 수가 없었다. 끝까지 사자가 쫓아오자 사슴은 울창한 숲으로 숨어들었다. 아뿔사, 그것은 실수였다. 울창한 나뭇가지에 사슴이 그렇게 자랑하던 뿔이 걸리고 말았다. 사슴은 스스로 뽐내던 장엄한 뿔 때문에 결국 사자에게 잡아먹혔다. 누구든지 자랑을 하다 보면 그것의 올무에 걸리고 스스로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기골이 장대하고 이목구비도 수려하며 특히 그 머릿결은 여느 여자들보다 아름답고 탐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렇게 잘 난 것을 감사히 여기고 아버지 다윗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충성했으면 좋았으련만 그는 반란의 우두머리가 돼 아버지 다윗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반역을 꾀했다. 어느 날 아버지를 쫓아가다 그 탐스러운 머리채가 상수리나무에 걸리게 됐다. 결국 타고 가던 노새만 빠져나가고 나무에 매달려 버둥거리고 있는데, 때마침 다윗의 장수 요압의 군사들이 발견했고 그를 쳐 죽이고 말았다(삼하 18:1~18). 허탄한 자랑이 그를 죽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하고 사랑이 넘치는 성도들은 자랑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야훼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야훼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야훼의 말씀이니라”(렘 9:23~24).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2.09.16

    (127)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40>
  • 십자가 사랑 체험해 성령 충만한 성도는 결코 자기를 자랑치 않아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자랑하다’를 의미하는 헬라어 원어 ‘페르페류오마이’는 보다 쉬운 의미로 ‘풍선처럼 부풀려 말하다’라는 뜻과 ‘무익한 잡담을 하다’라는 뜻을 지닌다. 타락한 인간 본성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고무풍선처럼 부풀려 과시하기를 좋아한다. 자기를 자랑하며 잘난척함을 의미하는 우리말 ‘뻐기다’는 ‘우쭐대며 자랑하다’라는 뜻을 잘 드러낸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자랑은 자신의 열등한 부분을 감추려 하는 무의식적 행동’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 진정한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해 성령 충만한 성도들은 결코 자기를 자랑하지 않는다(갈 6:14). 세계정복을 꿈꿨던 나폴레옹의 몰락을 가져왔던 워털루 전투(1815년)의 영웅 웰링턴(A. Wellesley, 1769~1852) 장군이 승전기념 파티를 열었다. 함께 공을 세운 육해공군의 장군들이 모두 모였다. 우쭐해진 웰링턴은 참석자들에게 보석이 촘촘히 박힌 자신의 지갑을 자랑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방금까지 있던 지갑이 사라졌다. 깜짝 놀란 웰링턴은 “이 방에 내 보석 지갑을 훔친 범인이 있다. 어서 문을 닫아라!”라고 소리쳤다. 순간 참석자들은 소지품 검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때 한 노(老) 장군이 소지품 검사를 반대하며 황급히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결국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던 그가 범인으로 소문이 났다. 1년 후에 다시 파티가 열렸다. 1년 만에 파티 외투를 입던 웰링턴은 깜짝 놀랐다. 도둑맞은 줄 알았던 보석 지갑이 외투 주머니에 있었던 것이다. 웰링턴은 황급히 그 노장군을 찾아가 용서를 구하고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왜 소지품은 검사를 거부했는가?” 노장군은 “사실 그날 밤 아내와 아이들이 집에서 굶고 있었고, 제 주머니에는 가족에게 줄 빵 몇 조각이 들어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답했다. 그 말에 웰링턴은 눈물을 흘리며 하며 다시 용서를 구했다. 자신이 호화스런 잔치를 여는 동안 부하의 가족은 굶주림으로 고통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웰링턴은 그 어떤 것도 자랑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도 여러 가지 고난을 겪고 있는 이들을 생각하며 자랑치 않음으로 참된 사랑을 실천하길 소망한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약 1:9~11).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2.08.19

    (126)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39>
  • 지나친 자랑은 형편 어려운 이웃에게 좌절과 상실감 안겨줘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자랑하다’를 의미하는 헬라어 원어 ‘페르페류오마이’는 ‘허영심이 강한, 허풍을 잘 떠는’이라는 뜻을 가진 ‘페르페로스’에서 유래했다. 주로 쓰이는 의미로는 ‘자만심이 강하다’ ‘허영심이 강하다’ ‘허풍떨다’ ‘자랑하다’ 등이 있는데, 온갖 미사여구를 사용해 상대방을 칭찬하며 아부하는 ‘아첨’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오직 고린도전서 13장 4절에 단 한 번 사용됐다. 초대교회 중 하나인 고린도 교회에서는 여러 가지 신령한 은사들이 나타났다. 문제는 때로는 그러한 것들이 자랑거리로 왜곡돼 변질해 버렸다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에서 이를 경고하며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으며,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했다(고전 1:29~31). 자랑은 시기, 질투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시기와 질투가 다른 이들과 비교해 자신이 열등하다고 여길 때 일어나는 감정이라면 자랑은 이웃과 비교해 자신이 우월하다고 생각될 때 일어나는 감정이다. 자랑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 연약하고 형편이 어려운 이웃에게 깊은 좌절과 상실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랑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높은 장벽을 쌓는 계기가 돼 다시 메꿀 수 없는 거리감을 형성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요일 2:16). 네 명의 아이들이 풍선을 들고 운동장에서 즐겁게 놀고 있었다. 한 아이는 노란 풍선, 다른 아이는 하얀 풍선, 또 다른 아이는 파란 풍선 그리고 나머지 아이는 빨간 풍선을 들고 신나게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놀던 중 갑자기 파란 풍선이 ‘뻥’ 터져 버렸다. 그 아이는 노는 것을 멈추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서럽게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 곁에 있던 하얀 풍선을 갖고 있던 아이가 순간 자기의 풍선을 꼬집어 터뜨렸다. 그러자 울던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그것을 바라봤다. 바로 옆에 있던 노란 풍선을 갖고 있던 아이도 자기의 풍선을 꼬집어 터뜨렸다. 뒤이어 빨간 풍선을 갖고 있던 아이는 자기의 풍선을 하늘 높이 날려버렸다. 그 순간 한 아이가 웃기 시작하자 나머지 세 아이 모두 ‘깔깔’대며 웃었다. 이처럼 진정한 사랑이란 자기를 과시하고 자랑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고통과 어려움을 함께하고 자기를 부인(否認)하는 행동이다. 성령으로 충만해 그리스도의 참된 사랑을 깨달아 실천하는 성도들은 결코 자기 자랑을 늘어놓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자기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깊이 인식해 항상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의 자세를 잃지 않아야 한다(빌 2:3~4).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2.07.22

    (125)순복음의 7대 신앙-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38>
  • 진정한 사랑만이 시기와 질투의 감옥에서 벗어나게 해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에 이어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우리 속담에 ‘사촌이 밭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인간의 그릇된 본성은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특징이 있다. 시기는 반드시 질투에서 비롯된다. 시기와 질투는 옛사람의 성품이다. 사도 바울은 시기와 질투에 속한 사람들을 영에 속하지 못하고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들로 정의했다(고전 3:3). 심리학자 케이치프 노이드에 의하면 인간이 벗어나기 힘든 6가지 마음의 감옥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소위 공주병이나 왕자병과 같은 ‘자기도취의 감옥’이고, 둘째는 다른 사람의 단점만을 보고 험담하는 ‘비판의 감옥’이다. 셋째는 온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절망의 감옥’이며, 넷째는 지나치게 과거에 연연해 현재를 낭비하는 ‘과거지향의 감옥’이다. 다섯째는 자기의 것은 하찮고 남의 떡만 더 커 보이는 ‘부러움의 감옥’이고, 여섯째는 남이 잘되는 것을 보면 괜히 배가 아프고 자꾸 헐뜯고 싶어지는 ‘시기와 질투의 감옥’이다.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약 3:16). 유대인의 지혜 모음집 탈무드는 “질투는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그러나 한 가지도 올바로 보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시기와 질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세상을 온전히 볼 수가 없고 형체도 없고 실체도 없는 마음의 감옥에 스스로 갇혀버린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성령의 충만함을 통한 진정한 사랑은 시기와 질투를 극복한다. 고난에 처한 자와 함께 슬퍼함은 물론,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며 다른 사람의 복을 나의 일처럼 함께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롬 12:15). 진실하고 참된 사랑을 가지고 질투를 극복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이다. 그는 일국의 왕자였고 왕위를 물려받을 사람이었다. 그에 비해 그의 친구 다윗은 평민 출신이면서 양치던 사람이었지만 민중의 폭발적 인기를 얻으며 요나단의 경쟁자로 등장했다. 하지만 요나단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보면 그 아버지 사울과는 달리 다윗을 향한 시기나 질투의 흔적이 없다. 그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 대답은 사무엘상 20장 17절에 있다. “요나단이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다윗을 사랑함이었더라.” 이처럼 진정한 사랑은 시기하고 질투하지 않는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2.06.19

    (124)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37>
  • 시기와 질투는 마음 상하게 하고 뼈 썩게 하는 질병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에 이어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시기’와 ‘질투’처럼 사람을 치사하게 하는 것도 없다. 잠언 14장 30절은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라고 기록한다. 이처럼 자신이 소유하지 못한 다른 사람들의 성공 부요 행복을 보고 마음이 상해 분노가 그 속에서 끓어오르는 시기와 질투는 뼈를 썩게 하는 질병과 같다. 시기와 질투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역사를 가진다. 하나님같이 되리라는 사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선악과를 따먹었던 아담과 하와, 질투를 극복하지 못해 결국 자기의 친동생을 들에서 잔인하게 죽였던 인류 최초의 살인자 가인, 아버지의 편애에 대한 시기 질투로 어린 동생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결국 상인에게 팔아버린 요셉의 형들, 자기 아들과 같은 부하의 인기가 높아지자 그때부터 칼과 창을 들고 어린 다윗을 죽이려 평생을 쫓아다녔던 사울 왕, 오랜 방황 끝에 돌아온 아들을 끌어안고 잔치를 벌이는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해 속이 뒤집혀 함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문밖에서 증오와 원망의 모습을 보이던 탕자의 형, 시기와 질투는 고린도 교회 안에서도 큰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고전 1:1; 3:3). 어느 날 마귀의 졸개들이 리비안 사막을 배회하다가 성자가 되기 위해 길을 떠난 순례자를 만났다. 마귀의 졸개들은 이 경건한 순례자를 타락시키기 위해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도 하고 이성의 쾌락을 연상시키기도 하며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이를 우두머리인 마귀에게 보고하자 마귀는 그 부하들과 함께 그 순례자에게 접근해 그의 귀에다가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순간 순례자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발걸음을 돌이켰다. 마귀의 부하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를 돌이키게 했느냐고 물었다. 마귀는 빙그레 웃으며 “그거야 간단하지. ‘너의 동생이 방금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가 됐다’고 말해 주었지”라고 했다. 그는 연이어 이렇게 설명했다. “인간은 시기 질투하게 만들어 놓으면 손쉽게 우리 손에 들어올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영국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O. Wilde, 1854~1900)는 ‘시기와 질투의 악마성’을 비유하며 소위 성직자들조차 넘어지기 쉬운 죄가 바로 시기와 질투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약 3:14~15).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2.05.15

    (123)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36>
  • 시기 질투의 불꽃은 반드시 누군가에게 화상 입혀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에 이어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여기서 ‘시기’라는 의미로 사용된 헬라어 ‘젤로오’는 원래 ‘열정적이다 혹은 열심이다’(to bo zealous)를 뜻한다. 이에 덧붙여 파생된 적대적인 의미로 ‘다른 사람들이 가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시기하다 혹은 질투하다’라는 뜻을 지니게 됐다(약 4:2; 행 7:9). 시기와 질투는 다른 사람의 성공이나 부(富)와 명예 행복 등을 자신과 비교해 마음이 상하는 것이며 타인의 재능이나 형통함에 대해 부러워하고 자신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이런 마음이 긍정적으로 나타나면 자기 발전이라는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지만 인간의 악한 본성은 그 반대의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결국 타인을 헐뜯고 원망하고 자신의 처지를 불평하게 된다. 예일대학 심리학 교수 피터 샐러비(P.Salovey)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일어나는 범죄의 20%가 시기와 질투 때문에 발생한다. 사실 시기와 질투는 무서운 범죄행위의 핵심 원인인데 그런 특성 중 하나는 서로의 이해관계와 연결된다는 점에 있다. 옷가게 주인은 농부가 거액을 벌었다고 시기하지 않으며 회사원은 같은 동네의 편의점이 잘된다고 해서 질투하지 않는다. 시기와 질투는 비슷한 분야에서 경쟁 관계에 있을 때 일어난다. 더불어 이런 시기와 질투의 불길은 가까운 관계에 작용하면 더욱 그 불꽃이 사나워진다. 부부, 애인, 친구 관계에서 이 불꽃이 일어나면 반드시 누군가는 그 불길에 화상을 입게 된다. 고대 그리스 어느 도시에 경기에서 늘 우승하는 육상 선수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그 선수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국위를 선양하며 공을 세웠기에 나라에서 동상을 세워주었다. 한편 그 나라에 그와 맞먹는 또 다른 선수가 있었다. 그는 운이 없는 탓인지 경기에서 번번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실의에 빠져 걷던 중 그는 경쟁자의 동상을 보게 됐다. 곧바로 시기와 질투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 맞았어. 바로 저 녀석 때문에 내게 승리가 돌아오지 않는 거야. 저 녀석만 사라진다면….’ 그는 그날 밤부터 매일 동상을 찾아가 조금씩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흥! 이 동상이 쓰러지는 날, 네 놈도 끝장이다. 이젠 내가 승리자가 되는 거야.’ 끓어오르는 시기와 질투로 동상에 분풀이하던 그는 마침내 동상을 쓰러뜨리고 말았다. 그가 ‘와아!’하는 환호성을 지르는 순간, 동상의 조각들이 쏟아져 내려 그의 몸을 덮었고 그는 그대로 눈을 감고 말았다.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욥 5:2).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2.04.17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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