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64>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 고백하고 주님만 의지해 겸손히 따르는 삶 살아야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교만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교만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씀은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눅 18:9~14)의 비유이다. 예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대상은 바로 ‘바리새인들’이다. 그들은 자기 스스로 의롭게 여기고 다른 사람들을 멸시했다(눅 18:9). 이것이 교만의 주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첫째로, 교만은 극단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죄악이다. 인생들은 쉽게 착각 속에 빠져 스스로 대단한 존재처럼 여길 때가 있다. 이렇게 교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은 자기를 절대화시키고 자기주장을 절대화한다. 둘째로, 교만이란 ‘이웃’과 ‘나’ 사이에 담을 쌓는 죄악이다. 바리새인들은 따로 서서 기도했다고 했다(눅 18:11). 또한 바리새인의 기도에는 두 번씩 반복되는 단어가 있다. 바로 ‘같지 아니하다’는 말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라고 기도했다. 사실 바리새인들은 세리를 로마에 아부하며 동포들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죄인들, 상대할 가치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예수님은 세리를 멸시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우월감, 즉 뿌리 깊게 점철된 교만을 꿰뚫어 보고 계셨다. 셋째로, 교만은 하나님 앞에서도 자신을 속이라는 죄악이다. 바리새인의 이런 기도에서 강조된 단어가 하나 있다(눅 18:11). 그것은 바로 ‘나’라는 단어이다. 한글 성경에는 두 번 밖에 나오지 않는 것으로 번역돼 있지만 원문에는 구절마다 다음과 같이 ‘나’라는 단어가 여러 번 등장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나는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나는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행위와 의로움을 자랑하는 아주 교만한 고백으로 보인다. 기도의 주어는 ‘나’라는 사람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이어야 하는데, 놀랍게도 바리새인의 기도는 주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바로 ‘나’라는 자기 자신이다. 교만을 버리고 겸손한 삶을 살기 원하는 성령 충만한 하나님의 사람은 바리새인의 자리가 아니라 세리의 자리에 서야 한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가슴을 치며 하나님을 향하여 불쌍히 여겨 달라”(눅 18:13)고 간절히 고백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있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들이며, 이웃의 도움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의 비유에 이어진 말씀은 예수께서 어린 아기들에 대해 하신 말씀이다. 겸손한 사람은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다. 어린아이들은 단순하고 솔직하며 누구든 잘 믿고 의지하고 따른다. 성령 충만한 성도는 주님 앞에서 바리새인과 같지 않고, 세리와 어린아이처럼 단순하며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솔직히 고백하고 주님만을 의지하고 따라가는 겸손한 사람이다.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눅 18:16~17).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2024.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