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순복음
(142) 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 <55>
  • 하루하루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참된 성도의 모습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사도 바울은 끊임없이 자신의 사도적 권위에 시비를 거는 고린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했다. “우리는 자기를 칭찬하는 어떤 자와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그들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고후 10:12)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그들이 “자기를 칭찬하는 어떤 자”라는 것이다. 고린도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분란은 바로 ‘자기 자랑’에 충만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는 지혜 없는’ 어리석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나누어 주신 범위의 한계’(고후 10:13)에서 벗어나 마치 궤도를 이탈해 탈선한 폭주 기관차처럼 신앙의 공동체를 위협하는 존재들이다. 이러한 자랑은 마치 누룩처럼 온 사방으로 퍼져나간다(고전 5:6). 잠언 27장 2절 말씀도 “타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하지 말며 외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하지 말지니라”고 경고했다. 이렇듯 스스로 높이며 자랑하는 것은 성령 충만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어느 날, 뉴욕에 있는 카네기 연주 홀에서 성대한 피아노 발표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어떤 젊은 피아니스트가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했다. 연주가 끝나자 모든 관중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그런데 오직 한사람, 맨 앞에 앉은 어떤 나이 지긋한 노인만은 여전히 자리에 앉은 채 그 젊은 피아니스트를 계속해서 응시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의 박수 소리가 멈추자, 사람들은 그 젊은 피아니스트를 둘러싸고 악수를 청하며 잘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칭찬이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그 젊은 피아니스트는 얼굴빛이 매우 어두웠다. 이어서 그는 “저의 연주는 오늘 그리 잘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오늘도 많은 실수를 했습니다. 그래서 저 맨 앞에 앉으신 노인이 저의 스승님이신데 박수를 치지도 않으셨고 일어나지도 않으셨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단을 내려와 황급히 연주 홀을 빠져나갔다. 그렇다. 아무리 많은 관중이 열광적 박수를 보내고 칭찬했어도 자신의 스승이 칭찬하지 않았으므로 그 피아니스트는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가장 의미있는 칭찬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스승의 칭찬이기 때문이다. 성도들의 삶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엡 5:10)고 말씀했던 사도 바울의 권면처럼, 하루하루의 삶을 통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오로지 주님으로부터 칭찬받은 참된 성도의 모습을 얻도록 경주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고후 1:12)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3.11.17

    (141) 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 <54>
  • 오직 주님으로부터 칭찬받는 사람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자랑’ 혹은 ‘자화자찬’(自畵自讚)은 권장되는 미덕(美德)으로 이해되기보다는 삼가야 할 악덕(惡德)으로 여겨왔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Platon, B.C.427~347 )은 말할수록 손해 보는 것 그래서 항상 비밀로 해야 하는 6가지 중에 ‘스스로 자랑하는 것’을 포함시켰다. “항상 비밀로 해야 하는 6가지가 있다. 첫째, 다른 사람의 단점을 말하지 마라. 누군가의 단점을 쉽게 말하면 자신의 이미지만 나빠진다. 둘째, 스스로 자랑치 마라. 남이 칭찬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 떠벌리면 자신이 한 일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셋째, 자신의 사생활을 필요 이상으로 발설치 마라. 혹시 관계가 틀어지면 그것으로 인해 곤란해진다. 넷째, 자신의 약점을 말하지 마라. 사람들은 타인의 약점을 통해 위안을 얻으며 자신도 모르는 새 은근히 즐긴다. 다섯째, 스스로 부(富)를 자랑치 마라. 인간은 상대방이 자신보다 더 많이 가졌다는 이유만으로도 상처받는 존재다. 앞에서는 다들 박수를 쳐 주는 듯해도 속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여섯째, 자신의 목표에 대해 말하지 마라. 어차피 그 목표를 만들고 이뤄내야 할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최대의 승리는 자기 자신을 정복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중세 페르시아의 시성(詩聖)으로 불렸던 사디(M. Al-Sa'di, 1213~1291)는 “자화자찬하는 사람은 자신 외에는 아무도 보지 못하는 법이다. 자신만을 보는 사람의 신세보다는 오히려 보지 못함이 더욱 낫다”고 했다. 또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L. Tolstoy, 1828~1910)는 “이름을 널리 알리려면 자화자찬하지 말며 칭찬하는 소리도 들으려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했고, 『팡세』의 저자인 철학자 파스칼(B. Pascal, 1623~1662)도 이와 유사하게 “칭찬받기를 원하면 자화자찬을 하지 말라”라고 강조하며 스스로를 칭찬하는 ‘자랑’에 대해 경고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0장 17~18절에서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라고 권면했다. 그렇다. 진정한 칭찬은 바로 주님으로부터 받는 칭찬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를 칭찬할지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결국 아무 의미 없는 영광이다. 하물며 자기 스스로 ‘자화자찬’하는 ‘자랑’이야 말로 성령 충만한 성도의 미덕은 아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자랑하시고 칭찬하는 자가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요 성령의 사람이며, 기쁘게 그리고 귀하게 쓰임 받는 성도이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엡 5:8~11).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3.10.20

    (140) 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53>
  • 성령의 사람은 십자가 신앙으로 자신의 연약함 자랑하는 예수님의 사람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어떤 사람이든 남보다 좋은 것을 갖고 있으면 자랑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별로 뛰어난 것 같지 않아 보여도 스스로 보기에 자랑스럽고 뽐내고 싶은 것들이 있다. 그래서 외모 자랑, 재산 자랑, 건강 자랑, 권력 자랑, 인맥 자랑 등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의 자랑은 입술의 말로 이뤄진다. 자랑은 혀를 사용한 언어로 행해지는 허탄한 행위이다(약 4:16). 성령으로 충만해 하나님의 뜻을 따른 성도라면 우리의 자랑은 자아도취적인 세상의 자랑과는 달라야 한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호를 자랑해야 한다. 시편 20편 7절은 “야훼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라고 했으며, 역대상 16장 10절은 “그의 성호를 자랑하라 야훼를 구하는 자마다 마음이 즐거울지로다”라고 기록한다. 둘째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자랑해야 한다. 우리 삶의 모든 일은 겉으로는 모두 우리 자신의 공로 같다. 하지만 신앙의 눈으로 잘 살펴보면 모두 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이다. 이것을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된다. “너희는 야훼께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릴지어다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고 그의 모든 기사를 전할지어다”(대상 16:8~9). 셋째로 주의 십자가를 자랑해야 한다. 현시대에는 십자가를 자랑한다고 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사도 바울의 시대에는 십자가는 죄수를 벌주기 위한 끔찍한 형틀이요, 혐오와 저주의 대상이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십자가를 생각하거나 말하기도 싫어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까지 했다(고전 1:18~25).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십자가를 자랑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신앙생활은 다른 것이 아니다. 십자가를 자랑하고 그 진리를 아는 것이다. 십자가의 진리를 알면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이고, 이걸 모르면 모든 것을 다 알아도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십자가만을 자랑하기를 소망한다. 십자가를 자랑한다는 것은 자신의 약점까지도 고백하고 자랑하는 것이다. 성령의 사람은 세상에서 잘난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족하고 못난 것을 자랑하는 사람이다. 이것이 예수 안에서 자랑하는 것이다.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3~14).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3.09.15

    (139)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52>
  • 성령 충만하고 마음 정직한 성도는 오직 하나님만 자랑해야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자신을 과대평가해 스스로 높이는 오만한 자세와 마음가짐. 그것이 바로 자랑의 출발점이다. 결국 온갖 종류의 세상적 확신은 어리석은 확신이며 천박한 자만심이고 결국 악으로 치닫게 된다(약 4:16). 인간의 지혜나 용맹이나 부요함은 다 자랑거리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허탄하며 악한 것이다(렘 9:23). 어떤 사람이 친구와 술을 마시다 술김에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범죄를 자랑하다가 덜미를 잡혔다는 신문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친구가 자신의 전과를 자랑하니 “겨우 그 정도를 자랑해?” 하면서 자신이 저지른 살인사건을 술김에 발설했고 그것이 알려져 결국 체포됐다. 정말 미련한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인간의 자랑은 다 헛되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자랑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자랑했다. 사도 요한은 믿음을 자랑했다. 바울은 더불어 십자가를 자랑했다(갈 6:13~14).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은 마음이 정직한 자로 거듭나야 한다. 마음이 정직한 성도는 바로 하나님만을 자랑하는 사람이다(시 64:10). 하나님만을 자랑하는 성도는 무엇보다 그 거룩한 이름을 자랑해야 한다. 시편 20편 7절은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야훼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라고 기록한다. 좋으신 우리 하나님은 오직 그 이름만으로도 자랑할 만한 분이다(시 105:3; 대상 16:10). 또한 이사야서에는 포로로 잡혀가게 될 이스라엘의 운명 앞에서도 이사야는 야훼를 자랑하게 될 것이며(사 41:16), 이스라엘 자손도 결국에는 모두 “야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고 하나님을 자랑하게 될 것”이라고 기록돼 있다(사 45:25). 이에 덧붙여 성경은 “너희는 야훼께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릴지어다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고 그의 모든 기사를 전할지어다”(대상 16:8~9)라고 기록한다. 이처럼 성도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과 함께 하나님이 이루신 모든 일들을 자랑해야 한다. “우리가 종일 하나님을 자랑하였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영원히 감사하리이다(셀라)”(시 44:8). 초대교회 공동체는 율법을 그 자랑으로 삼았으나 그 율법을 범해 죄를 지음으로 인해 위선적인 신앙의 모습을 지녔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고 책망했다(롬 2:23). 이처럼 오늘날의 성도들도 스스로 하나님의 복음을 거역하며 살면서 그 복음을 전하는 것은 위선이다. 성령의 힘은 무엇인가를 아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온전히 행하는 데서 나온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자랑하며(롬 5:2) 십자가로 구원받은 것을 자랑하고 예수 믿고 천국에 가게 된 것을 자랑해야 한다.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3.08.18

    (138) 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51>
  • 오직 십자가만 붙들고 십자가만 바라보고 십자가만 자랑해야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성경을 살펴보면, 자기 자랑만을 일삼는 사람들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악인’ 혹은 ‘포악한 자’라고 말씀한다(시 10:3; 52:1). 사도 야고보는 그래서 이런 자랑들을 모두 허탄하고 쓸데없고 악한 것이라 했다.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약 4:16).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다”고 말씀했던 사도 바울의 평생 자랑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받은 네 가지 은혜였다. 첫째,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였다. 유대교의 추종자로서 스데반 집사를 죽일 때 동참했고 교회 박해의 앞잡이였다. 그런 허물에도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둘째, 자신의 연약함이다. 각종 몸의 가시(안질과 간질) 때문에 수치를 당했지만 이런 약점으로 인해 그는 오히려 겸손케 되고 하나님의 도움과 위로를 받고 어떤 고난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셋째, 처절한 고난의 목록이다. 40에서 하나 감한 매를 5번 맞았고 3번의 태장과 한 번의 돌 맞음 3번의 파선도 당했다. 거기에 강도와 동족, 이방인, 광야, 바다의 위험을 겪었다. 바울은 주리고 춥고 목마르고 배고프고 잠을 자지 못했다. 모두 교회를 위해 받은 수난이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었다. 넷째는 십자가다. 바울은 십자가만 알고 십자가만 붙잡고 십자가만 바라보고 십자가만 전하고 십자가 길을 걸었고 십자가만 자랑했다. 영국 고대사 속의 전설적인 왕이며 ‘원탁의 기사’로 더 유명한 ‘킹 아서’의 일화이다. 큰 전쟁에서 승리한 후, 아서왕은 몰려든 여인들에게 다 물러가라고 명령했다. 이어서 전쟁에 직접 참여한 병사들에게 “너희들의 옷을 다 벗으라”고 명했다. 어리둥절 했지만 병사들은 명령에 따랐다. 그렇게 신하들과 함께 아서왕은 친히 그 많은 병사들을 일일이 몸을 검사했다. 그리고는 “가장 상처가 많은 순서로 포상을 내리라”고 명했다. 다시 말해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가장 많은 상처를 입은 사람의 순으로 포상을 주라는 뜻이었다. 주님을 위해 받은 고난은 하늘나라의 상급을 얻는 길이다. 바울은 이것을 자랑했던 것이다. 이처럼 바울의 자랑은 이생의 자랑이 아니라 모두 주님을 위한 것이었다. 수치스러운 고난의 흔적들이 하나님 나라의 화려한 이력서가 된 바울은 그 고난을 자랑했던 것이다. 성령 충만한 성도의 평생 자랑은 그래서 ‘주의 십자가’와 그 ‘십자가로 인해 받은 고난’이어야 한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 6:14).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3.07.14

    (137) 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50>
  • 세상 자랑은 허탄하고 미련하며 멸망케 하는 헛된 자랑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현재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목회자 중 한 사람인 존 파이퍼(J. S. Piper)는 “자기 자랑은 내적 교만의 외적 표현이다”라고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든지 다른 사람보다 좋은 것을 소유하고 있으면 자랑하고 싶은 것이 본성이다. 이처럼 누구든지 자랑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 이유는 남에게서 인정받고 혹은 자신이 남들과 차별화된 사람임을 과시하고 싶기 때문이다. 유다의 멸망을 예언하며 고통스러웠던 예언자 예레미야는 쓰러져가는 담을 온몸으로 떠받치는 절박함으로 백성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가자고 권면했다. 이미 유다의 백성에겐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갈 ‘의지’도 혹은 ‘능력’도 없었다. 그럼에도 예레미야는 포기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것이다. 인생들이 그렇게 살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다른 것이 각자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사람들의 마음을 온통 지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예민한 감성으로 분별해 하나님의 음성을 전했다. “야훼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렘 9:23).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경고했으나 유다의 백성과 지도자들은 나라가 멸망해 가는데도 자기들의 자랑만 일삼았고 결국 멸망에 이르렀다. 이처럼 세상에 대한 ‘자랑’은 진정 허탄하고 미련하며 멸망케 하는 헛된 자랑이다. 미국 침례교의 선구자로 알려진 조지 트루엣(G. W. Truett, 1867~1944) 목사의 일화이다. 어느 날 텍사스의 석유 부호 중 한 사람이 트루엣 목사를 자기 집으로 초대해 저녁을 대접했다. 식사가 끝나자 그 부자는 자신이 소유한 많은 재산을 자랑하고 싶어졌다. 그는 트루엣 목사를 옥상으로 인도했다. 거기서 거대한 유전들에 솟아 있는 석유 탑들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목사님, 저기 있는 저 유전들이 모두 저의 것입니다. 저는 25년 전 맨손으로 이 나라에 왔지만 이제는 저렇게 끝도 없는 유전탑을 지니게 됐습니다.” 이어 동쪽으로 가서 수많은 소와 다양한 가축 떼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것들도 모두 제 것입니다. 25년 전 저는 무일푼이었지만 열심히 일하고 저축해 이렇게 많은 것을 갖게 됐습니다.” 그러자 대부호의 자랑에 지긋한 미소를 보내며 고개를 끄덕이던 트루엣 목사는 가만히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물었다. “친구여, 이 방향으로는 가진 게 얼마나 있소?” 부자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면서 “아!… 그 점은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롬 5:2).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3.06.16

    (136) 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49>
  • 다른 사람의 평가 따라 행복과 불행 결정되는 삶은 참 평안 없어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자랑은 한마디로 정리하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눈과 입을 통해 자신을 분명히 나타내려는 노력’이다. 사실 이것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공들이는 허망한 노력이다. 세상에는 뛰어난 사람도 많으며 또한 사람들은 누군가를 칭찬하는 것에 매우 인색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자랑거리가 없다고 생각할 때는 누구든 불만이 생기거나 열등감에 빠진다. 우리 한국은 외모와 명품에 대한 자랑이 심한 편이다. 여성들 중에는 외모를 위해 성형 수술이나 미용시술을 받은 사람도 많고 최근에는 남성들까지 좀 더 나은 외모를 위해 성형을 하는 실정이다. 청소년들의 최대 관심사도 외모이다. 명품이나 값비싼 것을 과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각종 명품의 천국이고 형편상 명품 구매가 어려운 사람들은 짝퉁으로 명품 흉내라도 내려고 하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자기 신체를 아름답게 하거나 좋은 물건을 소유하는 것을 무조건 나쁘다고는 할 수는 없다. 문제는 다른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보느냐에 지나치게 민감한 것이다. 누군가 다른 이들의 이목과 평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는 삶은 진정한 평안이 없는 불행한 삶이다. 유난히 힘이 장사인 개미가 있었다. 다른 개미들은 쌀 한 톨을 겨우 드는데 이 개미는 두 톨씩도 거뜬히 들어 올렸다. 많은 개미들이 이 괴력을 지닌 개미를 우러러보고 부러워했다. 기고만장해진 그 개미는 보다 넓은 세상에 나가 자신의 힘을 자랑하고 싶어져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시장으로 찾아가서 자신의 힘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쌀 두 톨을 들어 올려 집어던지기도 하며 엄청난 괴력을 발휘하며 자랑했다. 하지만 지나다니는 누구 하나 개미를 봐주는 사람이 없었고, 결국 누군가의 커다란 신발에 밟혀 죽고 말았다. 다른 개미들의 선망하는 눈빛과 평판이 그 개미를 스스로 우쭐하게 만들어 허무한 죽음으로 이끈 것이다. 이처럼 힘이 세든 외모가 아름답든 돈이 많아 명품으로 온몸을 치장하든 그것이 왜 문제가 될까? 그것은 사람들이 그것들을 통해 스스로 못할 것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한낱 개미에 불과하다. 인간이 가진 힘이 아무리 대단한 것이라도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겨우 쌀 두 톨 드는 개미의 힘 정도 밖에 안되는 것이다. 세상의 것, 사람의 소유한 것 중에 진정으로 자랑할 만한 것은 없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야훼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시 20:7).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3.05.19

    (135)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48>
  • 자신을 낮추고 남을 낫게 여기는 것이 복된 삶의 지름길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자랑은 일반적으로 자기를 다른 사람보다 높여 우쭐대고 뽐내는 것이다. 은근히 자기를 높여 자랑하며 남들 앞에 스스로 과시하고 남을 낮추려는 마음.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하지만 성령 충만한 신앙으로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들은 자신을 낮추고 남을 나보다 더 높게 여겨야 한다. 한 아이가 가을 운동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마을 친구들과 어른들을 보며 말했다. “야! 걔 참 빠르더라. 제비같이 빠르더라. 정말 잘 달리더라.” 그러자 친구들이 물었다. “누구 말이야?” 그러자 그 아이는 태연하게 “못 봤어요? 바로 내 뒤에 바짝 따라오던 그 아이 말이에요”라고 대답했다. 자기 뒤에 따라오던 아이가 빠르다면 자기는 얼마나 더 빠르다는 말인가? 이 아이는 이렇게 은근히 자기를 내세우며 스스로 자랑한 것이다. 오래전에 피아노가 아주 귀했던 시절 우리 동네 천여 가구 중 피아노가 서너 집 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 동네 친구의 아버지가 음악을 좋아하는 3남매의 맏이였던 큰딸에게 피아노를 사 주었다. 그런데 그 큰 언니가 학교에 가고 나면, 대여섯 살밖에 되지 않아 피아노를 칠 줄도 모르는 막내딸이 집에 손님만 오면 그 피아노 앞에 앉아서 피아노를 치는 흉내를 내곤 했다. 그러다 손님이 가면 금방 피아노 두드리는 일을 멈추고 내려왔다. 내가 친구인 그 아이의 오빠를 만나러 갈 때마다 그랬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 집에 피아노 있다’라고 자랑이 하고 싶던 것이다. 그 어린아이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이처럼 사람은 누구나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나 그것은 별로 좋은 마음이 아니다. 신약성경 로마서 12장 10절은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라고 권면한다. 이는 ‘상대방이 먼저 나를 존경하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상대방을 존경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빌립보서 2장 3절도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고 말씀한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이것이 어쩌면 진정한 사랑의 참모습이다. 우리가 남을 업신여겨 낮게 여기고 스스로 으스대면 우리도 상대방도 불행하게 되고 하나님께서도 영광 받으실 것이 없다.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 낮추고 남을 낫게 여기면 그것은 우리에게도 상대방에게도 복이 되며 무엇보다 하나님께서도 영광을 받으신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5~6).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3.04.14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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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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