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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목사, 남·여선교회 모범봉사자 표창
  • 이영훈 담임목사는 15일 성전비서실에서 남선교회 윤한율(심방실)·박선규(교통실) 안수집사와 여선교회 이병례 권사(은평성전 지회장)에게 모범봉사자 표창장을 수여했다. 이영훈 목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교회를 위해 한평생 충성하고 헌신하는 봉사자들에게 하늘 나라의 상급이 클 것이다”라고 격려하고 축복기도했다.
  • 2026.04.17 / 복순희 기자

    김열매 선교사(V국)
  • - 종려나무집 학생들이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 한국 전주로 파송된 청년이 하나님 보호하심 속에 맡은바 사명 다하도록 - 현지인 목회자와 청년 사역자가 사역을 충성되게 감당하도록
  • 2026.04.17 / 오정선 기자

    성경의 무게(The Weight of the Bible)
  • 1562년 네덜란드 판화가 위제 알라드(Huijeh Allardt)가 새긴 한 장의 그림은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큰 울림을 준다. <성경의 무게(The Weight of the Bible)>라 불리는 이 판화는 종교개혁의 핵심 원리인 ‘오직 성경’을 가장 직관적으로 시각화한 작품이다. 그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천장에 매달린 커다란 저울이다. 그림의 중앙에 있는 이 저울은 작품 전체를 좌우로 나누는 기준이 된다. 저울에 달린 양쪽 접시 위에는 서로 다른 물건들이 놓여 있어 긴장감을 자아낸다. 왼쪽 저울 접시 위에는 화려한 것들이 가득하다. 교황의 절대 권위를 상징하는 삼중관(Tiara), 베드로의 열쇠 그리고 수 세기 동안 교회를 지탱해 온 방대한 교회법전과 전통의 기록 등이 쌓여 있다. 반면, 오른쪽 접시에는 단 한 권의 책, 성경만이 놓여 있을 뿐이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다르다. 온갖 물건들이 쌓인 접시는 가볍게 위로 솟아올라 있고, 아무런 장식이 없는 성경 쪽 접시는 바닥에 묵직하게 내려앉아 있다. 알라드는 이 극적인 대비를 통해 진리의 힘을 드러낸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무리 화려하고 거창해도 말씀이라는 실재적인 무게 앞에서는 깃털처럼 가볍다는 사실이다. 저울이 성경 쪽으로 기울자 당황한 수도사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어떤 이는 접시 위로 올라가 무게를 더하고 어떤 이는 체중을 실어 저울의 줄을 아래로 끌어당긴다. 심지어 그들 틈에는 사탄의 기만과 속임수를 상징하는 이미지까지 가세하여 저울을 조작하려 애쓴다. 이 장면은 인간의 종교적 열심이나 인위적인 노력이 진리를 이길 수 없음을 풍자한다. 성경에 담긴 진리는 노력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증명한다. 성경 주변에 서 있는 루터와 칼뱅을 비롯한 종교개혁가들을 보라. 그들은 저울을 붙들거나 조작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말씀이 지닌 본연의 무게가 승리하는 과정을 확신에 찬 눈빛으로 지켜볼 뿐이다. 종교개혁가들의 머리 위 벽면에는 둥근 초상화들이 걸려 있다. 이들은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이전에 먼저 믿음의 길을 갔던 초대교회 사도들과 교부들이다. 알라드는 이 장치를 통해 종교개혁이 결코 ‘새로운 종교’를 만드는 혁명이 아님을 나타낸다. 성경의 무게를 지지하는 이들은 교회의 가장 뿌리 깊은 선조들이었다. 종교개혁은 변질된 전통의 가벼움을 걷어내고, 사도 시대로부터 이어져 온 말씀의 묵직한 정통성을 회복하는 운동이었던 것이다. 성경 한 권이 지닌 무게 속에는 구약의 예언자들로부터 신약의 사도들 그리고 초대교회의 순교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신앙의 선배들이 고백했던 진리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위제 알라드의 저울은 오늘날 우리 각자의 삶 앞에도 놓여 있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저울 위에 수많은 가치를 올려둔다. 나의 경력, 사회적 평판, 쌓아 올린 지식, 안정적인 미래라는 이름의 무거운 짐들을 한쪽 접시에 가득 채우곤 한다. 때로는 그 무게가 너무나 대단해 보여서 그것이 내 인생을 지탱해 줄 절대적인 무게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고난의 폭풍이 불어오고 삶의 본질적인 의미를 물어야 하는 순간이 오면 그 화려했던 것들이 얼마나 가볍게 흩어지는지를 경험하게 된다. 그때 우리를 바닥에 단단히 고정해 주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말씀의 무게를 견디는 신앙이란 내 삶의 모든 판단 기준을 그 묵직한 성경 아래에 두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때로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는 불편함일 수도 있고 나의 자아를 짓누르는 거룩한 부담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무게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는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잡힌 인생을 살 수 있다. 위제 알라드가 묘사한 저울의 바늘은 지금도 변함없이 성경을 가리키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과학적 이론과 화려한 문화를 동원하여 저울의 균형을 맞추려 해도 진리의 질량은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신앙의 모습은 저울 접시 위에 더 많은 장식품을 얹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를 유혹하는 가벼운 것들로부터 눈을 돌려, 바닥에 묵직하게 닿아 있는 말씀의 무게를 온몸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그 거룩한 성경의 무게를 신뢰하며 나아갈 때 우리는 그림 속에 있는 종교 개혁가들처럼 흔들리지 않는 평온함으로 세상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 2026.04.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플로깅부터 QR까지…청년들의 노방전도 
  • 오프라인 전도가 온라인으로도 이어져 소통 공감 전도 위해 청년들 지혜 모아 쓰레기봉투를 들고 거리로 나선 청년들의 손길이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됐다. 꽃구경 인파 속에서 버려진 컵을 줍는 섬김에 마음을 연 시민들은 청년들이 건넨 전도 물품을 받아들었다. 전도 방식이 빠르게 변화하는 가운데 ‘노방전도’ 역시 소통과 공감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여의도 벚꽃축제가 한창이던 12일, 축제 거리 일대에서 우리 교회 대학청년국 카리스선교회 청년들이 환경 정화에 나섰다. ‘세상을 치유하는 플로깅 캠페인’을 주제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청년 300명이 참여했다. 청년들은 쓰레기를 수거하며 시민들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전도 물품을 건네며 선한 영향력을 전했다. 이 같은 시도에는 전도를 위한 청년들의 고민과 지혜가 담겨있다. 특히 이날 선교부 최명철 총무가 기획한 ‘내 마음의 봄날 찾기’ QR 이벤트는 시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꽃으로 피어난다면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나요?”와 같은 질문에 답하면, 각자의 유형에 맞는 성경 구절을 받아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참여자들은 부담 없이 이벤트에 참여하고 선물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복음을 접하는 시간을 가졌다. 최 총무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표현으로 복음을 전하고자 AI를 활용해 치유와 회복의 언어 그리고 전도 상황에 맞게 키워드를 입력해 제작했다”며 “매달 진행하는 플로깅 행사 역시 교회 안에 머무르지 않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SNS로 홍보할 예정”이라고 했다. 노방전도의 변화는 ‘접근 방식’에서 두드러진다. 단순히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짧은 만남 속에서도 관계를 형성하려는 시도가 강조되고 있다. 음식 나눔이나 상담, 참여형 이벤트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하는 방식이 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오프라인 전도가 온라인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만난 이들과 QR코드나 SNS를 통해 다시 소통을 이어가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노방전도와 온라인 전도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연결되는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비전브릿지선교회 전도팀(THE99)은 한 달에 2~3회 수요일 새벽예배 후 국회의사당역 인근에서 노방전도에 나선다. 이 전도를 위해 청년들은 금요성령대망회 이후에 모여 직접 전도 물품을 제작한다. 그때그때의 아이디어를 담아 직접 일러스트를 디자인하고, 대학청년국 홈페이지로 연결되는 QR코드를 넣어 예배를 안내하고 있다. 박혜령 전도총무는 “이 작은 전도지를 통해 하나님을 궁금해 하는 마음이 생기길 바란다”며 “출근길에 잠시라도 말씀을 묵상하고 위로를 얻는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출근길로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전도지를 건네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청년들은 복음을 전하는 기쁨과 사명을 현장에서 경험하고 있다. 수없이 거절을 마주하는 순간에도 멈추지 않는 이유는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다. 거리에서 시작된 만남이 온라인과 일상의 관계로 스며들며 구원의 기쁜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전도의 방법은 시대에 따라 다양해지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자라는 복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 2026.04.17 / 김주영 기자

    따뜻한 공감으로 교회로 돌아오는 청년들
  • 교회 리더십, 영적 부모 역할 감당 공감은 ‘정신적 산소’, 적절한 좌절도 필요 ◎ 고민Tick 청년들이 교회와 멀어지고 교회를 떠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청년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이 있을까요? ◎ 상담Talk 교회로부터 멀어진 청년 중에는 진학과 취업의 이유로 가정에서도 독립한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청년들에게 교회 리더십은 영적 부모의 역할을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필자는 지난 2년간 청년 담당 목사로서 목회 상담 집단 프로그램, 바울서신과 로마서, 잠언에 상담적 관점을 적용한 강해 설교, 금요 철야 예배 전 개인 상담과 진로 상담을 진행했다. 청년들은 다양한 목회 상담 사역 모델을 통해 공감 해주는 사역자를 건강한 자기대상(selfobject, 자기가 ‘자기의 일부로 경험하는 대상’)으로 경험하면서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체험하고 청지기적 사명을 찾게 됐다. 한 청년은 본인 은사와 맞지 않는 전공의 대학을 졸업한 뒤 20대 후반까지 계속 취업에 실패했다. 그런데 청년 수련회 때 성격유형검사를 받고 필자와의 진로 상담을 통해 본인 은사에 맞는 전공으로 편입하면서 이 청년은 자존감을 회복하고 일터에도 취업했다. 또 다른 청년은 많은 아동들이 꿈으로 이야기하는 소방관의 꿈을 청년기까지 이어왔다. 그러던 중 이 청년은 본인이 불을 무서워한다는 솔직한 이야기를 목회상담자인 필자에게 평생 처음으로 표현했다. 올해는 청년부 회장까지 맡아서 토요 청년 찬양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토요일에 쉴 수 있는 다른 문화재단으로 이직까지 하는 성숙한 신앙을 보여주었다. 청소년 시절 학교 문제로 힘들어하다가 대학에 입학하지 못한 한 청년은 목회 상담을 받고 심리적으로 회복된 뒤 청년 공동체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다시 느끼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음악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해 청년 예배 찬양단과 대학 공연팀에서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마음껏 펼치고 있다. 지역 교회에서 자신의 은사를 헌신적으로 발휘한 자기심리학자 하인즈 코헛(Heinz Kohut)은 자기대상과의 건강한 관계 경험이 어떠했는가에 따라 인간은 ‘응집적 자기’ 또는 ‘파편화된 자기’를 다르게 구축하게 된다고 했다. 코헛은 ‘응집적 자기’가 형성되기 위해 ‘정신적 산소’인 공감을 충분히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 꼭 산소가 필요하듯 유아는 심리적 산소인 공감과 반영을 자기대상으로부터 받아야 건강한 자기 구조가 구축된다. 유아는 자기대상과의 접촉, 목소리 등을 통해 자기대상의 감정을 자신의 감정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주양육자로부터 공감적 자양분을 공급받지 못할 때 자기의 결핍이 발생하고 수치심을 경험하게 된다. 심리적으로 건강한 자기를 강화하고 회복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공감적 자기대상과의 관계 경험을 통해서 재경험 되며 이는 건강한 자기 발달에 필수이다. 공감적인 자기대상과의 충분한 관계 형성은 심리적 좌절과 외상으로 오는 좌절을 견디고 조율하며 자기대상 관계 안에서 좌절의 경험과 공감의 경험을 반복하면서 현실을 내면화한다. 청년이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절망하고 있을 때 교회 리더십과 사역자의 진심 어린 기도는 청년에게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강함과 담대함을 부여할 수 있었다. 모세와 함께 했던 하나님은 다음 세대인 여호수아와도 함께 하셨음을 청년들이 깨달아야 한다. 교회 리더십이 축복의 통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때에 우리 모두의 기도 제목과 꿈도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수 1:5~6). 박은정 교수(목회상담학)
  • 2026.04.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 2026.04.17 / 육은영 기자

    강광희 권사(여의도순복음청라교회) - 절망의 순간마다 하나님께 감사
  • 절대 긍정과 간절한 기도로 문제 응답 1983년 친구의 전도로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출석하게 된 나는 성령 침례를 받고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요식업을 통해 일터 복음화를 이루겠다는 꿈을 품게 됐다. 결혼과 동시에 우리 부부는 인천에서 작은 일식집을 운영했다. 하지만 막상 장사를 시작하니 여러 어려움이 닥쳐왔다. 그럼에도 우리 부부는 늘 하나님 안에서 ‘잘 된다. 할 수 있다. 해보자. 하면 된다’라는 절대 긍정의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이루기 위해 힘썼다. 하지만 가게 형편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직원의 급여를 마련하기 어려웠고, 당장 집에는 먹을 쌀과 김치마저 다 떨어진 상태였다. 막막한 상황 속에서 우리 부부는 오직 하나님께 매달렸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교회 구역 식구들이 갑자기 찾아와 쌀 한 가마와 김치를 한 들통 가득 담아준 것이다. 형편이 어렵다는 것을 알리지도 않았는데 구역 식구들은 하나님께서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오게 되었다고 전했다. 그때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간절히 구할 때 우리의 필요를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채워주신다는 것을 깊이 체험하게 됐다. 하나님의 이끄심은 이뿐만이 아니다. 사업장 계약 만료를 보름 앞두고도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빈손으로 떠나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였다. 모든 것이 막혀있다고 느껴졌던 그때 나와 남편은 아이들을 업고 여의도순복음교회로 철야예배를 드리러 갔다. 평소처럼 교회로 가는 전철 안에서 우연히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게 됐다. 그런데 알고 보니 얼마 전까지 일본에서 요리를 배우고 돌아와 가게 자리를 알아보던 중이었던 것이다. 우리 사정을 들은 그는 우리 가게를 인수하겠다고 했고, 그렇게 갑작스레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발걸음 속에서 하나님은 이미 응답의 길을 준비해 두셨던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때와 계획이 얼마나 정확한지 깨닫게 됐다. 삶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가장 먼저 기도의 자리로 나아간 우리 부부에게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역사하셨다. 하나님은 남편에게 다시 요식업을 통해 일터 복음화의 사명을 감당케 하셨다. 자녀들 또한 훌륭한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했다. 큰아들은 뮤지컬과를 졸업하고 최근 인천시립극단에서 활동하게 됐다. 둘째 딸은 다시 재기한 아버지의 사업에서 마케팅을 돕고 있다. 이 모든 영광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할렐루야! 나는 요즘 여의도순복음청라교회에서 다시금 기도의 불을 뜨겁게 지피고 있다. 돌이켜보면 내 삶의 모든 문제의 해답은 언제나 기도의 자리에서 시작됐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이겨낼 힘이 기도에 있음을, 기도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통로임을 세상 모든 이들이 알게 되기를 소망한다. 정리=금지환 기자
  • 2026.04.17 / 금지환 기자

    (171) 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84>
  • 참된 사랑은 마음 깊이 뿌리내린 자기의 유익을 위한 자기중심성 거부하는 것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에 이어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5). 여기서 말하는 ‘자기의 유익’을 의미하는 말은 원어를 번역하면 ‘자기 자신의 것들’이라고 표현된다. 이것은 단순히 물질적 이익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자기의 권리, 방식, 편의, 명예, 의견 등 자기로부터 비롯되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표현이다. 현대의 영어 번역들이 이 구절을 “자기 방식을 주장하지 않는다”(ESV),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NIV)로 다양하게 옮기는 것도 이 구절이 품고 있는 넓은 의미 때문이다. 결국 이것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뿌리내린 자기중심성을 거부하라는 사랑의 명령이다. 그렇다면 자기중심성이 왜 그토록 위험할까? 그것은 세 가지 뚜렷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첫째, 자기가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된다. 둘째, 자기 생각을 어떻게든 관철시키려 한다. 셋째,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든 별로 관심이 없다. 흥미로운 것은 세 가지가 언제나 함께 움직인다는 점이다. 자기가 기준인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기 뜻을 밀어붙이게 되고, 그런 사람은 상대방의 입장과 형편에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 이 삼중 구조가 인간관계를 통해 작동하면 그 결과는 참으로 안타깝다. 그것은 결국 외로움, 우울, 분노, 미움, 배신, 심지어 질병까지 줄줄이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나는 전혀 문제없어, 저 사람이 문제지’라고 쉽게 단정 짓는 사람에게 오히려 문제가 있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두 남매를 키워 결혼시킨 한 어머니가 있었다. 그 어머니가 딸네 집을 방문했을 때, 마침 사위가 혼자 아침을 해 먹고 도시락을 싸서 출근하는 모습을 보았다. 어머니 눈에는 딸을 아껴 주는 사위가 참 대견하게 보였다. 그런데 아들네 집에 갔을 때, 아들이 똑같이 혼자 아침을 해 먹고 도시락을 싸서 출근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번에는 아들이 한없이 측은하고, 며느리가 몹시 괘씸하게 느껴졌다. 일어난 상황은 똑같은 데, 마음으로 느껴지는 감정은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기중심적 주관성의 민낯이다. 우리의 삶 곳곳에서 이런 모습은 쉽게 발견된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 남이 천천히 운전하면 소심한 것이고, 내가 천천히 운전하면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며느리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고, 딸은 남편을 잘 다스려야 한다. 우습지만,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이런 이중 잣대를 갖고 살아간다. 그 근본 원인은 자신의 주관적 판단에 대한 맹신과 자기중심성이 단단히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성령으로 충만하고 사랑이 넘치는 성도는 스스로 자기 안에 남아있는 자기중심성을 부인하고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참된 사랑은 이중 잣대를 내려놓고 자기중심적 주관성을 솔직히 인정하며, 상대방을 자신과 같은 동등한 무게와 위치로 바라보는 데서 시작된다. 이것이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하는 사랑의 핵심이다.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6.04.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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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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