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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순복음의 7대 신앙-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83>
  • 사랑의 실천은 나 자신의 필요 아닌 대방의 필요로부터 시작돼야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에 이어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5). 참된 사랑은 절대로 이기적일 수 없다. 유대인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그만 강도를 만났다. 강도들은 옷을 벗겨 거의 죽을 만큼 그를 때렸고 그대로 길에 버려두고 도망갔다. 때마침 그곳에 유대인 제사장 한 사람이 지나갔다. 그는 강도 만난 사람을 보았지만,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잠시 뒤, 성전에서 봉사하는 레위인 한 사람이 지나갔지만, 그도 멀찌감치 강도 만난 사람을 피해 지나쳐 버렸다. 얼마 후, 사마리아인 한 명이 그곳을 지나게 됐다. 그 당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서로 상종하지도 않을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고, 유대인들은 그들을 무시하고 배척했다. 그럼에도 그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자에게 다가와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싸매 주었고, 자신의 짐승에 태워 주막까지 와서 그를 보살폈다. 또한, 치료에 필요한 추가 비용까지도 부담할 것을 약속했다(눅 10:25~37). 강도 만난 자의 진정한 이웃은 같은 동족이었던 제사장도 레위 사람도 아닌, 자기의 유익을 생각지 않고 먼저 강도 만난 사람의 유익을 먼저 생각한 사라미아 사람이었다. 이처럼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고 아낌없이 자신의 것을 기꺼이 희생하는 것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그림동화집이 있다. 이 동화는 어떤 나무가 자신을 다 버리기까지 한 소년을 사랑하는 모습을 그렸다. 그 나무는 어린 시절 소년의 그네가 돼 주었고, 놀이터가 돼 주었다. 소년이 성장한 후에는 돈이 필요하다고 하자 자기 열매를 주어 장사할 밑천으로 내어준다. 나이가 든 소년이 집이 필요하다고 할 때는 나뭇가지를 잘라 집을 지을 수 있도록 허락했고, 멀리 여행을 가기 위해 배가 필요하다고 하자 나무는 남아있는 자신의 몸통을 잘라 배를 만들도록 허락한다. 마지막으로 나이가 들어 돌아온 그 소년이 쉴 곳이 없어 하자 “편히 쉬기에는 나무 밑동만 한 곳은 없지”라고 하며 겨우 남아있는 뭉툭하게 잘린 밑동을 휴식을 위한 의자로 제공한다. 이처럼 사랑의 실천은 나 자신의 필요가 아닌 상대방의 필요로부터 시작된다. 혈연, 지연, 학벌, 재산의 규모 그리고 사회적 지위에 따라 이웃을 구분하는 것은 자기중심적 태도다.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은 강도 만난 자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던 것처럼,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이 우리의 이웃이다. 성경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한다(레 19:18, 마 22:39).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는 우리가 특별한 존재여서가 아니다. 바로 우리가 마치 강도 만난 사람처럼 죄와 사망으로 죽어가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예수님은 고통당하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오셨다.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6.03.2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3월 28일(토) - 도우시는 성령님
  • ◎ 말씀 : 롬 8:26~27 ◎ 찬송 : 543장(통 342장) 사도 바울은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신앙생활은 고독한 싸움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며 도우십니다. 너무 지쳐서 기도조차 나오지 않을 때 무엇을 구해야 할지 막막할 때도 성령님은 우리 마음을 아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고 계십니다. 때로는 우리의 기도가 미숙하고 어설퍼도 괜찮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부족한 기도를 완전하게 만드십니다. 오늘 하루도 도우시는 성령님을 의지하고 그분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연약함 가운데서도 성령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연약한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께 감사드립니다. 날마다 성령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3.2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3월 27일(금) - 믿음의 역사
  • ◎ 말씀 : 삿 7:13~14 ◎ 찬송 : 302장(통 408장) 기드온은 자신을 보잘것없는 존재로 여겼지만 하나님은 그를 위대한 용사로 택하셨습니다. 미디안 진영에서 전해진 꿈 이야기는 하나님이 이미 승리를 준비해 두셨다는 분명한 증거였습니다. 하나님은 ‘보리떡 한 덩어리’에 불과했던 기드온을 통해 강성한 미디안 군대를 완전히 무너뜨리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계산을 초월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능력이나 조건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연약함이 오히려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가 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기드온처럼 담대히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통해 위대한 승리를 이루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연약함 가운데서 주님의 강하심이 나타나게 하옵시고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3.2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3월 26일(목) - 예수님과 연합한 사람
  • ◎ 말씀 : 롬 6:4~6 ◎ 찬송 : 407장(통 465장)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난 존재임을 선포합니다. 옛 사람은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혔고, 우리는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실제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힘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우리는 놀라운 자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 의의 종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죄의 유혹이 찾아올 때 “나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노라”라고 선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비결입니다. 매일 아침 자신의 정체성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난 새사람입니다.” 오늘도 이 진리를 붙잡고,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로, 하나님께 대해서는 산 자로 여기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와 연합한 새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날마다 의의 길을 선택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3.2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3월 25일(수) -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 ◎ 말씀 : 롬 5:2~5 ◎ 찬송 : 357장(통 397장) 바울은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환난이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이 부끄럽지 않은 이유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이미 경험했습니다. 이 확실한 사랑이 있기에 어떤 고난도 인내할 수 있고 오히려 기뻐할 수 있습니다. 고난은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더 단단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묵상하며 모든 상황 속에서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환난 중에도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감사와 기뻐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3.2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3월 24일(화) - 나와 내 집은 야훼를 섬기겠노라
  • ◎ 말씀 : 수 24:14~15 ◎ 찬송 : 176장(통 163장) 여호수아는 생애 마지막에 이스라엘 백성을 세겜에 모아 결단을 촉구했습니다. 백성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섬긴다 했지만, 실제로는 우상과 세상 가치관에 흔들렸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담대히 선포합니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야훼를 섬기겠노라!” 오늘 우리도 같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겉으로는 신앙인이지만 실제로는 돈, 성공, 명예를 더 의지하고 있지는 않나요? 하나님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이 우상입니다. 마음을 나누어 섬기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온전히 섬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호수아처럼 분명한 결단을 내리시길 바랍니다. “나는 오직 하나님만 섬기겠습니다!” 이러한 결심을 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참된 평안과 풍성한 축복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모든 우상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 섬기겠다는 결단을 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3.2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3월 23일(월) - 외모를 보지 않으시는 하나님
  • ◎ 말씀 : 롬 2:6~11 ◎ 찬송 : 86장(통 86장)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여기서 ‘외모’는 단순한 겉모습은 물론 종교적 열심, 사회적 지위, 겉으로 보이는 경건의 모습까지 아우릅니다. 사람들은 흔히 외적인 성공과 평판에 따라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중심과 숨겨진 동기까지 정확히 꿰뚫어 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것은 진리를 따라 선을 행하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은 영광과 존귀와 평강의 열매를 맺습니다. 사람의 시선과 평가에 흔들리지 마세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묵묵히 선을 행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오늘도 외모가 아닌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을 의식하며 그분 앞에서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사람의 평가보다 주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진실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3.2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권성민 목사(반석대교구장) - 왕과 사는 남자
  • 얼마 전 가족과 함께 영화 한 편을 보았다. 계유정난으로 왕위를 빼앗긴 열두 살의 어린 왕 단종 이홍위가 강원도 영월 청령포에 유배되고, 그 유배지를 지키는 촌장 엄흥도와 함께 짧고도 애절한 마지막 나날을 보내는 <왕과 사는 남자>라는 영화이다. 엄흥도는 처음부터 왕과 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저 가난한 자신의 마을에 유배지를 유치하면 먹고살 수 있을 것이라는 인간적인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유배되어 온 사람은 왕위에서 쫓겨난 어린 소년이었다. 그는 이홍위를 감시해야 할 죄인으로 대해야 했지만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채 유배되어 온 아이가 점점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엄흥도는 어느 순간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왕을 위해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 영화를 본 후 성도의 삶을 생각해 보았다. 성도의 삶은 어떠한가? 처음 신앙의 문에 들어설 때 우리는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삶의 고된 문제의 해결이 필요해서, 상한 마음에 위로가 필요해서 또는 알지 못하는 두려움을 해소하고 싶어서, 혹은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서….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는 알게 된다. 만왕의 왕이신 야훼 하나님이 이미 내 삶에, 유배지와 같이 돼버린 가난한 심령에 오셔서 함께하신다는 사실 말이다. 시편 기자는 고백한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시 139:8). 왕이신 하나님은 형통하고 평안한 삶에 있을 때만 함께하시는 분이 아니다. 유배지처럼 막막하고 외진 삶의 자리에도 함께 계신다. 영화에서 마을 사람들은 유배되어 온 단종 이홍위와 함께 지내면서 왕과 사는 삶을 경험한다. 함께 먹고, 배우고, 어울려 소소한 웃음을 나누며 가난과 상관없는 기쁨을 경험한다. 엄흥도는 본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왕과 함께 지내는 나날 속에서 그는 달라졌다. 손해를 감수하며 위험을 무릅쓰고 마침내 역적의 누명을 각오하면서까지 왕의 곁을 지켰다. 만왕의 왕 야훼 하나님과 함께 사는 성도의 삶도 다르지 않다. 그분의 임재 안에 머무는 사람은 변한다. 세상의 두려움보다 왕의 말씀이 더 크게 들리고, 자신의 손익을 따지던 계산 대신 왕의 마음을 먼저 구하게 된다. 입술의 언어가 바뀌고 관계를 대하는 마음이 바뀌고, 고난을 해석하는 시선이 바뀐다. 이것이 성령 안에서 왕과 동행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변화다. 우리 삶의 자리가 어디에 있든지 만왕의 왕이신 야훼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 그리고 그분이 함께하시는 삶은 반드시 변화된다. 왕과 사는 성도,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이요 우리의 영광이다.
  • 2026.03.2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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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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