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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붙은 귀, 목이버섯
  • 나무에 달린 사람의 귀를 닮았다고 해서 '목이(木耳)'라 불리는 버섯이 있다. 갓이 얇고 굴곡진 형태이며, 어릴 때는 컵 모양이다가 자라면서 넓은 귀 모양으로 주름이 생긴다. 죽은 나무에 붙어 자라는 목이버섯과 대조적으로, 바위 위나 절벽에 붙어 사는 귀 모양의 석이(石耳)버섯이 있다. 겉모양은 비슷해 보이지만 생물학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종류이다. 목이버섯은 담자균류에 속하는 버섯으로, 엽록체가 없는 일종의 진균류(곰팡이)이다. 광합성을 하지 못하고 죽은 나무에서 영양분을 얻어 자란다. 한편, 석이버섯은 이름에 '버섯'이 붙었지만 실제로는 버섯이 아니라 균류와 조류(藻類)가 공생하는 지의류(地衣類)의 일종이다. 목이버섯은 진균(버섯)이고 석이버섯은 광합성을 하며 두 종류의 생물이 함께 사는 공생체라는 점에서 전혀 다르다. 특히 지의류인 석이버섯은 성장 속도가 매우 느려 1년에 겨우 몇 밀리미터(mm) 정도만 자란다. 하지만 수명은 매우 길어 척박한 바위 표면에서 수십 년에서 수백 년 동안 생존한다. 대부분의 버섯은 고온 다습한 환경에서 잘 자란다. 목이버섯은 보통 여름철 비가 온 뒤 야생의 나무에서 발견되지만, 겨울에도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자라기도 한다. 젖어 있을 때는 젤리처럼 말랑하지만, 건조되면 종이처럼 얇아지고 가죽처럼 단단해진다. 일반적인 버섯은 보통 5~7일 정도면 갓이 피고 곧 시들거나 썩지만, 목이버섯은 수개월 동안 생존하며 비에 젖고 햇볕에 마르는 과정을 반복하는 강한 회복탄력성을 지니고 있다. 목이버섯은 식용버섯 중 식이섬유 함량이 가장 높아 변비 예방과 저속노화를 위한 탁월한 식품이다. 영양학적으로도 칼슘 흡수에 필요한 비타민 D와 칼슘이 풍부해 골다공증 예방과 뼈 건강에 좋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장 건강과 뼈 건강을 위해 목이버섯 섭취를 추천한다. 또한 혈관 내 혈전 생성을 억제하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데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화요리인 잡채, 탕수육, 짬뽕 등에 들어간 목이버섯은 특유의 쫄깃하고 꼬들꼬들한 식감이 매력적이다. 조리할 때는 찬물이나 미지근한 물에 충분히 불린 뒤 씻어서, 나무에 붙어 있던 단단한 밑동(꼭지) 부위를 잘라내야 한다. 건조된 목이버섯과 석이버섯은 다른 건조 버섯보다 부피가 훨씬 크게 부풀어 오른다. 물에 불리면 부피가 7~10배까지 증가하므로 조리 시 양 조절에 유의해야 한다. 끓는 물에 1분 정도 살짝 데쳐서 조리하면 식감이 더욱 좋아지고 위생적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도 늘 좋을 수만은 없다. 평탄할 때는 성장하고 시련 앞에 위축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과 위축의 반복 속에서 우리의 믿음은 비로소 깊어지고 성숙해진다. 이 과정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영성을 회복할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의 탄력성을 갖게 된다(전7:14). 윤철종 목사(또오고싶은교회, 이학박사)
  • 2026.01.22 / 이미나 기자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 “이제 보소서 야훼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 날에 야훼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야훼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를 온전히 좇았음이라”(여호수아 14장 10~14절) 하나님이 주신 이 축복의 한 해, 희망의 한 해를 살아가면서 여러분 모두가 믿음의 사람, 꿈꾸는 사람, 긍정적인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믿음의 사람, 꿈꾸는 사람, 긍정적인 사람과 함께 일하십니다. 성경을 보면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단 한 번도 하나님께서 부정적인 사람, 원망과 불평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신 적도 없고, 그들에게 복을 내려주신 적도 없습니다. 우리가 복 받는 길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모든 사람이 긍정적인 사람, 꿈꾸는 사람,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거룩한 꿈을 꾸며 절대 긍정인 믿음을 갖고, 말씀 붙잡고 전진했습니다. 이 한 해 여러분께서 거룩한 꿈을 꾸고 주님 안에서 꿈을 이루어 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께서 생존케 하신 자 오늘 성경은 꿈꾸는 사람, 믿음의 사람 갈렙을 소개합니다. 갈렙은 모든 전쟁과 고난 속에서도 승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85세까지 건강한 삶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생존하게 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여호수아 14장 9절과 10절입니다.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야훼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이제 보소서 야훼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45년 동안 함께하며, 하나님께서 그를 붙들어주셔서 건강한 몸으로 생존하여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이 45년이라는 기간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광야로 되돌아가서 38년과 가나안을 정복하면서 함께 보낸 시간 7년, 합쳐서 45년입니다. 45년을 하나님께서 붙드시고 생존하게 해 주셔서 위대한 하나님의 일을 이루었습니다. 한평생 갈렙같이 하나님이 함께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가득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다가 해방되어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합니다. 결국 가나안의 입구인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합니다. 원래 애굽에서 가나안까지는 한 달이면 충분히 올 수 있는 거리인데, 그들이 입만 열면 불평하고, 또 불평하고, 불평해서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그들을 계속 돌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2년이나 걸려서 왔는데, 이제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 “지파별로 한 명씩 대표를 뽑아서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둘러보고 오게 해라.” 40일을 정탐하고 난 다음에 그들이 돌아와서, 그들 중에 10명이 부정적으로 보고합니다. 그들이 그 땅을 악평합니다. 민수기 13장 32절과 33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가나안 땅을 점령하기 전에 대표로 뽑아서 그 땅을 돌아보게 했는데, 12명 중 10명이나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부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그 땅은 우리를 삼키는 땅이요. 거기 거인들이 있는데 우린 그 앞에 볼 때 메뚜기 같습니다.” 이들은 메뚜기 자화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메뚜기의 자화상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모습이 있습니다. 예수 믿어 은혜받고 모든 것이 감사할 것뿐인데,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는 그 순간, 스스로 메뚜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인 여호수아와 갈렙은 정반대로 보고합니다. 긍정의 고백을 합니다. 민수기 14장 7절과 8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야훼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여러분, 언제나 긍정의 고백만 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6·25 한국전쟁 이후에 굉장히 절망적이고, 어려운 상황을 살았는데,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우리가 잘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풍요로워졌고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때보다 불평하고,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더 많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긍정적이고, 말이 긍정적이고, 행동이 긍정적이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갈렙은 절대 긍정의 믿음을 갖고, 하나님 앞에 충성한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여호수아 14장 8절은 설명합니다.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야훼께 충성하였으므로” “나는 하나님께 충성하였습니다.” 여러분 일생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 앞에 충성하기를 바랍니다. 사람을 따라가면 그 사람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늘 자기 욕심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어서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나를 실망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면 우리에게 은혜가 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긍정의 고백을 한 갈렙에게 너와 네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민수기 14장 24절입니다.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갈렙은 오직 하나님 앞에 충성한 긍정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한평생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해 나가던 중에 여호수아가 모든 지파를 불러 모았습니다. 그 가나안 땅을 이제 12지파에게 분배해 주고, 그 땅을 점령해 나가도록 하려고, 그들을 불러 이야기하려고 할 때, 갈렙이 45년 전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그 약속을 자기가 이룰 수 있게 해달라고 청원합니다. 여호수아 14장 12절입니다. “그 날에 야훼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야훼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거기는 아낙 자손이 있고 성읍이 견고하고 크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그 땅은 내가 점령할 수 있습니다. 그 산지 헤브론을 내게 주시옵소서.” 헤브론 땅은 해발 4,000미터의 난공불락의 험한 산지요, 아직 누구도 정복하지 못한 땅이며, 싸움에 능하고 강한 거인 아낙 자손들이 지키고 있는 성읍이 크고 견고한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정탐꾼으로 거기를 둘러보고 돌아온 갈렙은 절대 긍정의 믿음을 갖고, “하나님이 저 땅을 내게 주셨다. 그 땅을 내게 주옵소서. 내가 그 땅을 점령하겠습니다.” 지금 가나안 땅을 정복하면서 전쟁에 지친 다른 지파들은 제비를 뽑아서 기름지고 비옥한 땅, 편한 땅 얻기를 원하는데,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강한 적이 있는 그 땅을 갈렙은 달라고 한 것입니다. 꿈꾸는 사람 갈렙은 하나님 말씀에 의지하여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라고 외쳤습니다. 여러분 앞에 어떤 문제와 어려움이 있든지 간에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고, 긍정적으로 고백하기를 바랍니다. “주님, 나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함께하시면 모든 문제의 산을 정복할 수가 있나이다.” 2. 믿음으로 말씀을 붙잡은 자 갈렙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나아갔습니다. 한평생 말씀을 가슴에 품고,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갔을 때 주님의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여호수아 14장 9절입니다.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야훼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긍정적인 보고를 하니,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신명기 1장 36절입니다.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야훼께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그는 모든 대적과 싸워 이기며 긴 세월이 흘러 오늘의 말씀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당시 그의 나이 85세입니다. 85세이면 머리가 흰머리가 성성한 노인의 나이입니다. 그러나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았기 때문에 그에게 나이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85세까지 나를 모든 전쟁에서 이기게 하시고, 생존하게 하신 것은 이 약속의 말씀을 이루기 위한 것이오니, 주여! 이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젊은 시절 지도자였던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말씀을 그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 14장 6절입니다. “그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야훼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이 말씀대로 “내게 그 땅을 주시옵소서. 내가 그 땅을 점령하겠나이다.”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반드시 그 약속의 꿈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신실하셔서 한번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사야 55장 11절 말씀합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세월이 흘러도 환경과 여건이 바뀌어져도, 하나님의 약속과는 정반대로 내 앞에 일들이 펼쳐져도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약속의 말씀을 결코 잊어버리거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주신 이 약속의 말씀을 실행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말씀을 붙잡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가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 살아가면 길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습니다. 내 생각을 따라가고, 내 경험을 따라가고, 사람을 따라가면 때때로 잘못된 길로 가고, 또 문제를 만나게 되고,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나아가면 문제가 다가와도, 어려움이 다가와도, 절망이 다가와도 모든 문제를 뛰어넘고, 이기고 승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자녀로 쓰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갈렙은 말씀을 붙잡고 나갔습니다. 갈렙은 한평생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자였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여러분 앞에 불가능이 없습니다. 3.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자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 긍정적인 사람, 꿈꾸는 사람을 통하여 그분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여호수아 14장 12절은 말씀합니다. “그 날에 야훼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야훼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내가 그들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시옵소서. 야훼께서 나와 함께하시면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주님이 함께하시면 불가능이 없습니다. 주님이 함께하시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하시면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물론 그곳에는 거인 아낙 자손들이 있었습니다. 정복하기 어려운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정복하기 어려운 지역도 쉽게 정복하고, 물리치기 힘든 아낙 자손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거룩한 꿈을 품고 나아갈 때 여러분 앞에 때때로 아낙 자손과 같은 방해꾼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함께하시면 모든 방해꾼을 물리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크고 견고한 헤브론 산지 같은 엄청난 장애물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우리는 장애물을 뛰어넘을 것입니다. 문제의 장애물을 뛰어넘을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 질병이라고 하는 거대한 헤브론산이 놓여있어도 우리는 그 질병의 헤브론을 뛰어넘을 것입니다. 어떠한 절망도, 어떠한 문제도, 우리에게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만군의 야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말씀을 붙잡고 나아갈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갈렙은 85세 나이에도 그는 주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땅을 그에게 기업으로,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여호수아 14장 13절과 14절은 말씀합니다.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주님이 함께하시면 어떤 문제도, 어떤 어려움도,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가 있습니다. 갈렙은 모세나 여호수아만큼 주목받는 그런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항상 뒤에 있는 이인자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절대적인 믿음을 가졌기에 하나님이 그를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주시고, 헤브론이라는 난공불락의 지역을 그가 소유할 수 있도록, 그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에게 인정받으면 여러분이 지금 사람 앞에 주목받지 못하는 그러한 이인자 같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일하십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내 힘으로 하려고, “내가”, “내가” 하니까, 내 앞의 문제가 더 커지고, 어려움이 생겨나고, 많은 고난과 어려움이 우리를 둘러싸는 것입니다. 우리는 갈렙의 신앙을 소유하여 믿음으로 외쳐야 합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내게 있는 절망의 반이 희망이 되게 하여 주옵시고, 문제가 변하여 축복이 되게 하여 주옵시고, 나를 괴롭히는 모든 적이 멸망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히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약속의 말씀 붙잡고,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놀라운 이 천국의 기업을 다 차지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서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하며 이 땅에 왔던 아펜젤러 선교사의 아들 닷지 아펜젤러 선교사를 소개하기를 원합니다. 닷지 아펜젤러 선교사는 1889년 11월 6일, 서울 서대문구 정동 23번지에서 태어납니다. 1900년, 안식년을 맞아서 아버지와 온 가족이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는데, 일 년 뒤 아버지 아펜젤러 선교사님이 먼저 한국에 와서 사역을 다시 시작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1902년 6월 11일 밤, 인천에서 배를 타고 목포에서 성경 번역과 선교 사역을 협의하기 위한 회의에 참석하러 가던 중, 한밤중에 안개가 깊이 끼었을 때 일본 증기선이 와서 배 옆을 들이받았습니다. 그래서 배가 침몰하게 됩니다. 선교사님은 맨 위 1등 칸에 타고 있어서 구명조끼를 입고 나와 헤엄쳐서 살아날 수 있었는데, 그 아래 칸, 밑에 타고 있던 학생, 또 본인을 보조하던 분을 살리려 내려갔다가 본인은 나오지 못하고, 학생과 보조자만 살리고 순교했습니다. 미국에 남겨진 어머니와 4남매가 이 소식을 듣고 너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큰아들이 13살입니다. 13살에 아버지를 여읜 닷지 아펜젤러는 학교 다닐 때 신문 배달하고, 방학 때는 삼촌의 공장에서 일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펜젤러 가문이 머리가 좋습니다. 그 아버지 아펜젤러 선교사도 드류대학교에 가보면 그가 쓴 책이 몇 권씩 있습니다. 이 아들도 학업에 열심히 충실해서 프랭클린 마샬 아카데미, 프린스턴 대학교, 드류신학대학교, 뉴욕대학을 졸업합니다. 1911년 8월 13일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 도와주십시오’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금세 암흑이 사라지고 마음에 평화와 영광이 일어나 말할 수 없이 행복해졌습니다. 나는 그때 첫 기쁨을 알았습니다. 그때 그분을 위해 영원히 일하겠다는 결심을 한 다음 그러기 위해 내가 보기에 가장 어렵고 필요한 곳, 즉 한국에 가 살면서 일하는 것이 옳은 일임이 자명해졌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빼앗아 간 그 슬픔의 나라, 그 한국 조선 땅이 자기 사명임을 깨닫고, 아버지처럼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1917년, 17년 만에 북감리회 파송으로 한국에 돌아와서 아버지가 세운 ‘배재학당’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제5대 교장으로서 학교를 섬깁니다. 학교 내에서 전도 집회와 부흥회를 열면서 아버지가 세운 설립 목적,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라는 기독교 정신과 애국심을 심어주며 많은 민족의 일꾼들을 양성합니다.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를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도 크고자 하면 남을 섬길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배재학당을 통해서 수많은 민족의 지도자가 세워졌습니다. 1940년, 일본이 모든 선교사를 추방하면서 그도 강제로 추방당하자, 미국 본토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한국에 가장 가까운 곳,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호놀룰루제일교회에서 목회하면서 이민 온 한국 사람들을 돕고, 한국의 독립을 도왔습니다. 해방 후에는 미군정 특별고문으로 와서 한국을 도왔고, 6·25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는 구호 활동을 전개하면서 한국기독교세계봉사회(Korean Church World Service)의 책임자로 임명되어서 부산에서 전쟁고아와 피난민을 섬겼습니다. 그가 펼친 복구, 구호사업은 후에 대한민국 사회복지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닷지 아펜젤러 선교사는 일제강점기를 지나고, 한국전쟁을 지나 한국의 근대화와 복음화에 크게 기여했는데, 그는 교육가로서, 선교사로서, 외국인 독립운동가로서, 목회자로서, 구호 봉사자로서 다양한 모습으로 한국의 절망에 처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습니다. 그는 너무나 일을 많이 해서 과로로 병이 나서 치료받기 위해서 뉴욕에 가서 치료받던 중 1953년 12월 1일, 64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는 죽기 전에 이런 말씀을 남겼습니다. “나는 한국 땅에 묻히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한국 땅에 묻어주십시오. 그리고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조선 사람을 사랑했는지 조선 사람들이 알게 해주십시오.” 그의 유언에 따라서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가면, 그의 아버지 아펜젤러 선교사의 추모비와 그의 누나, 엘리스 레베카 아펜젤러 선교사가 함께 옆의 묘지에 안장되어 있고, 그는 그 옆의 묘지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그의 비석을 보면 비석 밑에 신명기 33장 27절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그가 품었던 거룩한 꿈이 우리 한국의 기독교를 아시아 최대 기독교 국가로 만드는 데 공헌했고, 한국이 세계 10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경제 대국으로 세우는데 밑거름을 놓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갈렙처럼 꿈꾸고, 아펜젤러 선교사들처럼 꿈꾸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우리 삶 가운데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진 거룩한 꿈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올 한 해 어떤 꿈을 갖고, 우리 앞에 놓인 이 헤브론을 정복하며 나아갈 것입니까? 주님이 주신 거룩한 꿈을 꾸고, 말씀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송가 490장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찬송가 490장(통 542장) 주여 지난밤 내 꿈에> 1절 주여 지난밤 내 꿈에 뵈었으니 그 꿈 이루어 주옵소서 밤과 아침에 계시로 보여주사 항상 은혜를 주옵소서 2절 마음 괴롭고 아파서 낙심될 때 내게 소망을 주셨으며 내가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니 앞길 환하게 보이도다 3절 세상 풍조는 나날이 변하여도 나는 내 믿음 지키리니 인생 살다가 죽음이 꿈 같으나 오직 내 꿈은 참 되리라 후렴 나의 놀라운 꿈 정녕 나 믿기는 장차 큰 은혜 받을 표니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라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짧은 인생길을 지나가는 동안 우리 모두 하나님께 붙들린 자가 되어서 거룩한 꿈을 꾸고,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고백하며, 날마다 우리 앞에 놓인 헤브론을 정복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2026.01.1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따뜻한 눈빛과 말 한마디의 중요성
  •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이자 향기 마음 밭 기경하며 주님의 재림 기다려 ▶ 고민 Tick 아동 청소년기에 교회 학교를 다녀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자녀들에게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할지 고민입니다. ▶ 상담 Talk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목회학과에 재학 중인 이 전도사님의 이야기는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교회공동체에서의 인격적 돌봄이 얼마나 인생 전반에 걸쳐 좋은 토양으로서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지 증명해 준다. 이 전도사님은 해외 지사에서 20년 넘게 성공적으로 근무하며 4명의 딸, 아내와 함께 현지 한인교회 교육부에서 기쁨으로 최선을 다해 봉사하였다. 이 전도사님은 직장에 열심히 다니면서도 은퇴 후에는 신학교에 입학하여 남은 인생을 하나님께 바치고 싶다는 소원을 늘 마음속에 품고 있다가 올 봄 웨신대 목회학과에 입학하여 꿈을 이룬 것이다. 이 전도사님은 사실 불신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전도사님의 부모님께서 본인들은 교회에 다니지 않으면서도 어린 그를 집 앞 교회에 보내주셨다. 이 전도사님은 그 당시 국민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자주 혼내시고 꾸지람하시던 모습과는 달리 교회학교 선생님들은 늘 웃는 눈과 밝은 미소로 자신을 바라봐 주시고 칭찬과 격려의 말씀을 아끼지 않으셨다고 명확히 기억하였다. 특히 5~6학년 때 교회학교 선생님은 항상 진심으로 이 전도사님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따뜻한 눈빛과 인격적 언어로 대해주셨다. 그 덕분에 이 전도사님은 학업에서나 사회에서 성공하여 본인 결혼식에도 교회 선생님을 초대했다고 한다. 해외 지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던 어느 해에 이 전도사님은 그 교회 선생님을 꼭 다시 뵙고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에 모 교회에 연락해 보니, 70대의 권사님이 되신 선생님께서 아직 살아계심을 확인하고 아내와 함께 인사를 갔다. 교회 선생님은 오히려 이 전도사님에게 신앙 안에서 잘 자라주어서 고맙다고 하시며 안아주셨다고 한다. 이 전도사님은 교회 선생님께서 본인의 아동 청소년 시절에 대해주셨던 것처럼 자신의 딸들과 봉사 대상 아동 청소년들에게도 인격적으로 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고 한다. 현재 이 전도사님의 어머니는 신앙생활을 잘하고 계시며 돌아가신 아버님도 하나님을 구주로 고백하시고 소천하셨다고 하였다. 기독교 상담학 수업 시간에 늘 강조하였던 교회 공동체만이 이 땅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제대로 된 사랑과 인격적 공동체라는 증거가 이 전도사님의 삶 속에 그대로 실현되었다는 사실에 필자는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을 경험했다. 모든 학생들에게 필자가 변함없이 강조하는 한 가지 입장은 다음과 같다. 상담심리를 공부하는 목표는 길 가 밭, 돌 밭, 가시떨기 같은 ‘나쁜 마음 밭’이 복음의 씨앗이 잘 뿌리내리는 ‘좋은 마음 밭’이 될 수 있도록 ‘기경(起耕)’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마 13:3~8).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의 존재 이유는 복음의 씨앗이 삼십, 육십, 백배의 결실을 맺도록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씨앗을 뿌려도 새들이 먹어버리고, 타버리고, 기운이 막혀 자라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상담 현장에서 만나는 잃어버린 양들은 복음 씨앗이 마음 밭에 뿌려졌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밭으로 기경 되지 못한 채 길 가, 돌 밭, 가시떨기 속에서의 삶을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나쁜 밭에 뿌려진 복음 씨앗들도 교회공동체의 따뜻한 눈빛과 공감적 대화 속에서 제대로 양육된다면 잘 자랄 수 있다. 해석학적 목회상담의 권위자인 안톤 보이슨(Anton Boisen)은 인간을 ‘살아 있는 인간문서들(living human documents)’이라고 했다. 찰스 거킨(Charls Y. Gerkin)은 보이슨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목회상담자로서 개인 삶의 이야기로 구성되는 『살아있는 인간문서(living human document)』는 각각 그 삶의 이야기들로 완전한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목회 상담의 중요한 토대를 세운 거킨은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우리 인간들 자체가 ‘살아있는 인간문서’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주는 복음 전파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제시한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편지’이자 ‘그리스도의 향기’이다. 복음이 뿌리내리고 열매 맺은 우리 삶의 간증이 또 하나의 복음 씨앗인 것이다. 그 씨앗이 잘 뿌리 내리도록 교회공동체에 속한 우리들은 최선을 다해 자기 자신과 이웃의 마음 밭을 사랑으로 ‘기경(起耕)’하며 다시 오실 예수님을 함께 기다려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고전 16:23~24). 박은정 교수(목회상담학)
  • 2026.01.1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백근배 목사(강서성전 담당) - 신앙안에서 근심으로부터 벗어나기
  • 몇 년 전, ‘과잉근심사회’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이는 사건과 사고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불안이 SNS와 같은 연결망을 통해 확산되면서 실제보다 과도하게 반응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우리는 팬데믹 시대를 지나오면서, ‘과잉근심사회’를 경험했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변이 바이러스 소식과 경제적 불안은 사람들로 하여금 실제보다 더 큰 위협에 노출된 것처럼 느끼게 했다. 물론 적당한 근심은 미래를 대비하게 하는 지혜의 동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과잉된 근심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과도한 분노를 표출하게 하여 작은 사건에도 과잉 반응하도록 만든다. 성경은 이 세상에 근심이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다”(벧전 1:6). 그러나 문제는 근심 그 자체가 아니라 근심에 사로잡히는 태도이다. 과잉된 근심은 우리의 심령과 뼈를 상하게 하고(잠 17:22), 개인을 넘어 공동체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근심을 이기려는 신앙적 노력은 개인과 공동체 모두에게 필수적이다. 성경의 인물들 역시 근심 앞에서 무너지는 대신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 야베스는 “나로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대상 4:10)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이 짧은 기도가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이유는 근심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인간의 보편적 갈망과 하나님의 응답이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과잉된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해봐야 한다. 첫째로는 가려서 들을수 있어야 한다. 불안을 조장하는 소식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 복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박국 선지자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부흥을 소망했다. 수로보니게 여인과 소경 바디매오 역시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절망이 아닌 회복을 선택했다. 다음으로는 복음의 시선으로 현실을 해석해야 한다. 리츠 쉰은 『과잉근심』에서 사람들이 근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상황이 바뀌기만을 기다리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성경은 상황보다 관점의 변화를 요구한다. 성도는 어떤 현실 속에서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롬 8:28). 마지막으로 우리에겐 기도만이 해답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뿐 아니라 상황까지도 바꾸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기도를 시작하는 순간, 하나님은 이미 일하고 계신다. 과잉된 근심의 시대를 사는 오늘 그리스도인은 근심에 끌려 다니는 존재가 아니라 믿음으로 근심을 다스리는 존재다. 불안을 키우는 소리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복음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평안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 2026.01.1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주윤식 선교사(파라과이)
  • - 출석 성도 1000명 돌파를 위해 - 1월 지교회 연합 청소년·청년 수련회로 다음 세대가 부흥하도록 - 지교회 목회자들과 사모들의 건강 - 다음 세대를 이어갈 영적 리더들이 세워지길
  • 2026.01.16 / 오정선 기자

    기억하려면 기록해야 한다
  •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잡지 중 하나인 <타임>은 매년 ‘올해의 인물’을 선정한다. 특이하게도 2025년에는 특정 개인이 아닌 AI 시대를 설계한 IT 공학자 8명을 선정했다. 이 명단에는 일론 머스크, 마크 저커버그, 젠슨 황 등 우리 시대의 거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인류의 미래를 바꾼 이들의 공통점은 ‘데이터’, 즉 방대한 기록의 힘을 활용했다는 점이다. 시간을 거슬러 1999년,밀레니엄을 앞두고 의미 있는 작업이 있었다. 보우버스 부부와 고트리브 부부는 수년 동안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지난 1000년간 가장 위대한 인물 1000명을 선정한 『1000년, 1000명(1,000 Years, 1,000 People: Ranking the Men and Women Who Shaped the Millennium)』을 출간했다. 당시 <타임>에서도 지난 1000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을 선정하여 발표했는데 두 조사에서 1위로 선정된 인물은 동일했다. 그 인물은 바로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이다. 그는 세상을 놀라게 한 위대한 사상가나 정치인이 아니라 세공업자이자 인쇄업자였다. 그러나 그가 발명한 금속 활판인쇄기는 인류 역사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이전까지 기록물은 일일이 손으로 베껴 쓰거나 목판으로 찍어내야 해서 시간과 인력의 소모가 크고 품질 또한 낮았다. 하지만 활판인쇄기가 발명되자 대량 인쇄가 가능해져 지식의 전파 속도가 폭발적으로 빨라졌다. 인쇄술의 발전은 복음 전파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의 ‘95개 조 반박문’이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할 수 있었던 것도, 라틴어 성경이 독일어로 번역되어 일반 대중의 손에 들려질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인쇄술 덕분이었다. 기록되었기에 인쇄할 수 있었고, 인쇄할 수 있었기에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이다. 기록은 역사적 사건과 개인의 경험을 보존하여 미래로 전달하는 핵심 동력이다. 기록은 문화의 토대가 되고 문화를 기록하는 과정은 공동체의 유대감 형성과 지식을 공유하는 역할을 한다. 즉, 기록과 문화는 ‘바늘과 실’, ‘불과 연기’, ‘수레와 바퀴’ 같이 뗄 수 없는 관계라 할 수 있다. 천재라고 불린 인물 301명의 일상을 조사한 결과도 흥미롭다. 아인슈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에이브러햄 링컨, 토마스 에디슨, 벤저민 프랭클린 등의 삶을 연구한 미국의 심리학자인 캐서린 콕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격과 특성은 모두 다르지만, 이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종이에 기록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기록은 기독교 신앙과 문화를 전승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도 바울은 신약성경 중 13개의 서신을 기록하여 당시 교회들을 믿음 위에 굳게 세웠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 『하나님의 도성』 등 100여 권의 저서와 설교, 편지 등을 남겨 중세 신학의 토대를 마련했다. 존 번연이 감옥에서 쓴 『천로역정』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고전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예로부터 기록을 중요하게 여겼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훈민정음 해례본』, 『동의보감』 등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을 20건 이상 보유한 것이 그 증거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 국가기록원을 통해 국가의 주요 기록물을 체계적으로 보존하며 그 정신을 면면히 이어가고 있다. 조선 최고의 실학자 정약용은 “기록하기를 좋아하라. 쉬지 말고 기록해라. 생각이 떠오르면 수시로 기록하라. 기억은 흐려지고 생각은 사라진다. 머리를 믿지 말고 손을 믿어라”라고 강조하며 500여 권의 책을 남겼다. 이순신 장군 역시 7년간 『난중일기』를 쓰며 생각을 정리하고 치밀한 승리의 전략을 세웠다. 기록은 단순히 과거를 담아두는 창고가 아니라, 현재의 나를 세우고 미래를 설계하는 설계도이다. 기록되지 않은 경험은 단편적인 기억으로 흩어지지만, 기록된 경험은 성찰의 도구가 되어 지혜로 응축된다. 우리가 매일의 삶을 기록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잊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다. 기록하는 행위를 통해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힘을 얻기 위함이다. 결국 기록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경영하며,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삶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도 기록을 통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기록된 성경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하고 생명을 얻게 한다(요 20:31).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아 알게 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기록된 그 말씀이 오늘 하루를 살아갈 힘을 주며 우리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롭고 바른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시고 지금도 함께하시는 주님의 은혜는 너무나도 많다. 이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으려면 기록해야 한다. 특히 올해는 『감사QT 365』를 통해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감사를 적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2026년 새해에는 감사와 기도, 응답과 찬양의 기록을 남겨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기억하는 모두가 되길 소망한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6.01.1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콩히 목사, 수요예배 설교
  • 싱가포르 시티하베스트처치 담임인 콩히 목사는 14일 수요 1부 예배 강사로 나서 말씀을 전했다. 이영훈 담임목사의 소개로 통역을 맡은 김영석 부목사(국제)와 함께 등단한 콩히 목사는 ‘응답받는 기도의 세 단계’(눅 11:1)를 제목으로 설교했다. 콩히 목사는 “기도는 서두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안에 계속 머물고자 하는 마음으로 나아갈 때 영적으로 충만해진다”고 전했다. 이어 “목회를 시작한 지 4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기도를 배우고 있다. 매년 1월이면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열두광주리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 것도 이영훈 목사님께 기도를 배우기 위함”이라고 말해 성도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설교 후 예배에 참석한 우리 교회 성도들과 싱가포르 성도들은 기도 응답을 위해, 성령 충만을 위해 교회 부흥을 위해, 한국과 싱가포르의 부흥을 위해 통성으로 기도했다.
  • 2026.01.16 / 금지환 기자

    싱가포르 시티하베스트처치 성도 800여 명 방한
  • 3년째 열두광주리 새벽기도회 참석해 기도로 새해 시작 싱가포르 최대 교회인 시티하베스트처치 성도 800여 명이 12~16일 우리 교회 신년축복 열두광주리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이들은 새해를 기도로 열며 세계 교회 부흥을 견인해 온 우리 교회의 기도의 영성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 3년 전부터 매년 신년축복 열두광주리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고 있다. 우리 교회는 싱가포르 성도들에게 우리 교회와 시티하베스트처치 로고가 있는 방한 패딩과 열두광주리에 참석하면 주는 스티커와 엽서 세트, 한국 전통 부채 등 다양한 선물을 전달하며 이들을 환영했다. 매년 열두광주리 새벽기도회에 홀로 참석해 온 다니엘 탄 성도는 올해, 겨울 날씨에 대한 부담으로 그동안 참석을 망설여 온 아내 멜리사 성도와 함께했다. 멜리사 성도는 “열두광주리 새벽기도회는 우리 부부에게 오래전부터 마음에 품어온 ‘버킷리스트’였다. 올해 ‘이제는 믿음으로 한 걸음을 내딛어야 할 때’라고 다짐하며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용기를 냈다”고 전했다. 다니엘 탄 성도는 “바쁜 일상 속에서 짧게 드리던 기도와 달리, 하루의 첫 시간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을 보며 큰 도전을 받았다. 기도는 희생이자 영적인 훈련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싱가포르 성도들에게 새벽기도회는 단순한 문화 체험을 넘어 새로운 영적 도전을 받는 시간이었다. 이들은 고국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하루의 첫 시간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14일에는 수요 1부 예배 후 김영석 부목사(국제)의 사회로 시티하베스트처치 성도들을 환영하는 오찬이 더 파티움여의도에서 열렸다. 최경래 장로회장의 기도 후 등단한 이영훈 목사는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라며 “올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넘치는 복을 허락하실 것이다. 부흥을 기대하며 선포하는 믿음으로 큰 은혜를 경험하게 되길 바란다”고 축복했다. 이어 이영훈 목사는 콩히 목사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콩히 목사는 성도들과 함께 “이영훈 목사님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며 감사를 전했고, 성태환 장로의 식사 기도로 오찬이 진행됐다. 오찬 후에는 홍보국 주관으로 진행된 교회 투어에 참여하며 대성전과 조용기 목사 기념홀, 로뎀홀을 비롯한 십자가탑 등 교회 주요 랜드마크를 둘러봤다. 또한 시티하베스트처치 성도들은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을 방문해 조용기 목사 묘소에 헌화하고 기념관을 둘러보며 세계 교회 부흥의 한 획을 그은 조용기 목사의 신앙과 사역을 되새겼다. 콩히 목사는 “열두광주리 새벽기도회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켰고, 이제 시티하베스트처치의 가장 중요한 연례 행사 중 하나가 됐다”며 “이른 새벽부터 영어와 중국어 통역은 물론 찬양까지 영어로 준비해 주신 섬김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전했다. 글·금지환 / 사진·김용두 기자
  • 2026.01.16 / 금지환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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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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