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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선교회 다니엘기도회로 영적 무장
  • 여선교회가 제49회 전국초교파여성금식기도대성회를 앞두고 영적 준비를 위해 다니엘기도회에 돌입했다. 이번 기도회는 6월 30일부터 7월 20일까지 3주간 여선교회 사무실에서 드려지며, 대교구장과 지성전 담당 목사들이 강사로 나서 말씀을 전하고 있다. 7월 6일에는 동작성전 담당 임석명 목사가 ‘엄위하신 하나님’(시 66:5~6)을 주제로 말씀을 전했다. 임 목사는 “우리는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쌓이고 쌓이면 엄청난 응답이 쏟아진다”며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응답해주실 것이라고 전했다. 여선교회 임원과 봉사자들은 7월 29일부터 8월 1일까지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서 열리는 성회가 성령 충만하고 은혜롭게 진행되도록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조양순 회장은 “이영훈 담임목사님을 비롯해 총 16분의 강사님들이 말씀을 전하실 때마다 놀라운 기적과 은혜가 임하길 기대한다”며 성도들의 많은 동참을 당부했다. 제49회 전국초교파여성금식기도대성회의 주제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3)이다.
  • 2025.07.08 / 이미나 기자

    종로중구대교구 남성연합예배
  • 종로중구대교구 선교사 초청 남성연합예배가 6월 26일 베들레헴성전에서 안수집사회 종로중구지부 주관으로 드려졌다. 지부장 강연원 안수집사의 사회, 지구장 이육현 장로의 기도 후 순복음군마교회 김기태 선교사가 설교했다. 김기태 선교사는 ‘성령의 불이 내려야만 한다’(왕상 18:30~40)를 제목으로 설교하며 일본 일천만 구령을 위해 복음 전파에 주력하는 교회 사역을 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전했다. 설교 후 대교구장 홍승원 목사는 선교지와 종로중구대교구의 부흥을 위해 중보기도를 인도했다. 또한 7월 25일에 출발하는 순복음군마교회 단기선교팀 사역을 소개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고 간절히 기도했다.
  • 2025.07.08 / 이미나 기자

    제32회 전국여교역자회 7월 임원회 및 회장 취임감사예배
  •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제32회 전국여교역자회 7월 임원회 및 회장 취임감사예배가 7일 영산복지센터 8층 총회 사무실에서 열렸다. 회장 조금자 목사 사회로 진행된 이날 예배에서는 직전회장 송만순 목사의 기도 후 기하성 총무 강인선 목사가 설교했다. 강인선 목사는 ‘만남의 축복’(눅 5:3~7)을 제목으로 설교하며 “목사로 부름 받아 어려운 고비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고 지금 이 자리에서 여러분을 만나기까지 수많은 만남의 축복을 경험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여교역자회를 통해 만남의 축복을 이루고, 섬김의 실천으로 열매 맺기를 기대한다”며 “우리가 사명을 다해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워주신다. 섬김의 실천을 통해 많은 열매를 맺자”고 강조했다. 설교 후에는 임원 임명장 수여, 부총회장 진덕민 목사의 축사 등이 이어졌다. 여교역자들은 나라와 교회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부흥과 회복의 역사를 소망했다.
  • 2025.07.08 / 이미나 기자

    찰스 디킨스 『예수의 생애』
  • 바로 옆에서 들려주는 따뜻한 책 한 가문에 일종의 가보처럼 내려오던 원고가 있었다. 『위대한 유산』, 『올리버 트위스트』, 『두 도시 이야기』등의 고전으로 널리 알려진 찰스 디킨스의 작품. 사후 64년이 지나서야 출판된 『예수의 생애』는 아더왕에 빠져있던 아들에게 왕 중의 왕인 예수님을 알려주기 위해 쓴 책이다. 위대한 작가를 아빠로 둔 아들이 아빠찬스를 쓴 셈이다. 본서를 모티브로 만든 애니메이션 ‘킹오브킹스(The King of Kings)’는 미국 극장가에서 다 큰 어른들이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께 빠져들게 하는 쾌거를 이루고 있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가 영화 ‘다크나이트’의 세기말적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면, 본서는 사랑과 희망을 우리에게 선물한다. 이 책은 예수님의 탄생과 어린 시절, 열두 제자에게 남긴 가르침, 기적, 십자가 죽음과 부활 등 1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들에게 침대 머리맡에서 차근차근 스토리텔링 하기에 좋다. 본서는 성경을 풀어 놓았다기보다는 저자의 풍성한 지식과 성경에 대한 이해도가 반영되어 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사랑스러운 문체와 배려 깊은 어투, 그리고 마치 옆에서 다정한 얼굴의 디킨스가 직접 읽어주는 듯한 흡인력이 디킨스의 품성을 대변하는 것 같다. 관심 갖고 읽어야 하는 부분이 제11장인데 저자는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라”라고 한 말의 뜻을 디킨스는 자세히 설명한다. 십자가위에서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 피터르 반 몰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벤베누토 티시의 ‘예수의 승천’ 세 장의 명품 그림도 스토리를 돕고 있다. 다른 작품에 나타나는 디킨스의 정교하고 날카로운 묘사는 이 작품에서는 볼 수 없다. 대신 예수님의 따뜻한 시선이 돌봄받지 못했던 디킨스의 인생을 위로하는 듯하다. 그래서 이 책은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따뜻한 플롯이다. 임 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군산교회)
  • 2025.07.08 / 이미나 기자

    크리스찬메모리얼파크 수기 공모전 수상작 1-‘사랑상’ 수상자 - 유지현
  • 제목 : 사랑하는 아버지께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 부르심을 받고 가신 지 한 달여가 지났네요. 그동안 변덕스럽던 날씨도 어느새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봄이 됐어요. “집 앞 공원 두 바퀴만 돌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봄 되면 힘내서 나갈 거야” 하셨던 그 말에 기댔는데… 그토록 좋아하시던 산들의 들꽃이 주인을 잃은 듯 서글퍼 보이네요. 1년 전 직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과 항암치료를 이어오던 아버지. 목숨보다 소중하다시던 10살 손녀를 마음에 품고 삶의 의지를 불태우셨죠. ‘아버지가 다시 일어서시리라.’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이 참 절묘하죠.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그날 저녁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날 어쩌다 일찍 퇴근해서 집 근처 아버지 댁으로 향했죠. 컴컴한 집으로 들어가 방 한구석에 웅크리듯 주무시고 계신 아버지 뒷모습을 본 순간 마음이 쿵 무너져 내렸어요. 누군가 깨우지 않으면 그대로 천국으로 가실 것만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아버지!” 크게 부르니 신음인지 대답인지 모를 단말마가 새어 나왔어요. 어머니가 일하는 딸을 대신해 손녀를 돌보시는 동안, 아버지는 이부자리 하나 펴면 꽉 차는 작은방에서 홀로 사투를 벌이셨죠. 스탠드를 켜니 약 껍데기며 요구르트 빈 통이 어지러이 굴러다녔어요. 종일 혼자 얼마나 힘드셨을까, 무거운 마음으로 주섬주섬 치우는데 아버지가 말씀하셨죠. “고맙다. 열심히 살아줘서.” 아버지는 그날 많이도 우셨죠. “빨리 딸에게 가봐라!” 재촉하셔서 돌아 나올 때 식탁에 엎드려 계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선해요. 청년처럼 뛰어오르던 4층 계단을 한 칸도 힘들어하셔서 거처 옮기는 문제를 가족들이 상의하고 있었어요. 내려서실 양지바른 작은 마당이라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조금 더 빨리, 더 간절히 알아보지 못했던 제가 원망스러워요. 평생 가진 것 없이 천진한 아이처럼 사셨던 아버지. 남은 생은 예쁜 손녀 재롱 보시면서 보내실 수 있도록 제 집 근처에 소담한 주택 마련해 드리는 게 제 꿈이었어요. 시내 정겨운 집들을 보며 ‘저 집이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는 게 제 즐거움이었는데… 그런 부담조차 주고 싶지 않으셨나요. 왜 그리도 빨리 가셨나요. 돌아가시기 전 하나뿐인 손녀를 두고 “그 아이를 두고 내가 어찌 눈을 감을까?” 많이 우셨다는 것 잘 알아요. 인생 첫 친구이자 온 우주였던 할아버지를 잃은 아이는 한동안 말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밤 제가 “슬퍼해도 괜찮아”라고 말하자 베갯잇을 다 적시도록 울었어요. “할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라면서요. 아버지, 저는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요. 동네에서 등산복 차림에 모자 눌러쓴 어르신을 보면 아닌 걸 알면서도 슬쩍 얼굴을 확인해 보는 버릇이 생겼어요. 꼭 어딘가에서 “그동안 놀랐지!” 하며 나타나실 것 같거든요. 아이와 스쿨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면 평소처럼 “어이!” 놀래며 장난꾸러기처럼 웃으실 것만 같아요. 딸 그림자처럼 저희집 근처 작은 거처에 살면서도 기쁨으로 여기셨던 아버지. 그 딸이 낳은 딸이 숨만 쉬어도 “예쁘다” 외쳐주셨던 아버지. 그 작은 집 창가에서 자녀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힘차게 손 흔들어주시던 아버지. 언제까지나 그러실 것 같았는데 이제 그 창가는 텅 비어 있네요. “잘한다” “최고다” 늘 흘려들었던 아버지의 그 음성이 귓가에 맴돌아요. 나를 향한 최고의 격려이자 사랑이었던 것을 이제야 깨닫네요. 병원 대기실에서 “열심히 살았어야 했는데” 하시며 후회하신 것, 가족들에게 온몸으로 미안하다 사죄하시던 모습으로 기억해요. “너희는 최선을 다했다"라며 저희 들을 위로하셨죠. 아버지, 아버지도 최선을 다하셨어요. 지구에서 단연코 최고의 할아버지셨어요. 그토록 아끼셨던 손녀, 이제는 저희 부부가 호위무사가 되어 끝까지 지킬게요. “불쌍하다” 걱정하셨던 어머니도 잘 모실게요. 아버지가 자랑스러워하시던 딸이었노라, 잊지 않으며 고개 들고 씩씩하게 살아갈게요. 아기처럼 평안하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위안 삼습니다. 하나님 품 안에서 예의 그 천진난만함으로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그려 봐요. 하늘 집에선 작은 마당에서 개 한 마리 키우시고 산책도 마음껏 하세요. 뵙고 싶을 때 가족들과 크리스찬메모리얼파크 벚꽃 동산에 와서 기도하며 재회할 그날을 소망할게요. 감사해요! 사랑해요!
  • 2025.07.08 / 복순희 기자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마태복음 8장 23~27절) 지금 우리는 혼돈과 불안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말세에 일어날 징조가 온 세계 도처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끊임없이 전쟁의 소식이 들려오고, 나라마다 크고 작은 분쟁이 그치지 않고 수많은 사람이 질병, 가난, 기근으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을 우리가 다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큰 문제와 어려움을 당했을 때 우리 힘으로 해결하려고 몸부림쳐도 문제는 더 커지고 우리 삶의 절망은 더욱 깊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어려움 당할 때 우리가 믿고 의지해야 할 분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건너게 되었을 때 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1. 인생의 풍랑이 다가올 때 이처럼 인생의 풍랑은 예고 없이 다가옵니다. 인생의 풍랑이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그날은 예수님께서 하루 종일 바쁘게 사역하시고 날이 저물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배를 저어서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건너가자.” 그래서 배를 타고 건너가는데 갑자기 큰 풍랑이 일었습니다. 그래서 큰 물결이 덮여 배 안에 물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8장 23절, 24절입니다.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우리 인생에도 갑자기 고난의 광풍이 불어오는 것입니다. 감당하기 힘든 고난의 풍랑 속에서 마음이 짓눌리고 염려, 근심, 걱정, 불안에 사로잡힐 때가 때때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큰 풍랑이 일어난 그때 제자들의 배에 누가 타고 있었느냐? 예수님이 타고 계셨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겨납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고난이 없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고난이 다가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12절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 해도 늘 좋은 일만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때때로 우리의 믿음을 연단시키시기 위해서 주님이 이 고난의 풍랑이 다가오도록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잘못된 길로 가고 원망, 불평,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살면 하나님이 사랑의 채찍을 때리시고 연단의 채찍을 때리셔서 회개케 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인생의 풍랑은 다가옵니다. 욥은 동방의 의인으로 불렸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와서 저 사람이 가진 게 많으니까 저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척한다고 그를 시험해 보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욥에게 고난의 풍랑이 다가왔습니다.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다 잃고 열 자녀를 다 잃고, 몸의 건강마저 잃어버리고, 보다 못해 부인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그를 떠나가고, 친구들은 와서 너 무슨 죄를 지어서 그러냐고 그를 비난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극한 고난의 풍랑을 맞아 그가 엎드려 깨어졌을 때, 본인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다시 모든 걸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우리가 건강하게 잘 지내다가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 병이 들어 입원하기도 하고, 잘 되던 사업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기도 합니다. 착하고 말 잘 듣던 아이가 사춘기를 지나가면서 갑자기 난폭해지고 술, 담배를 배우고 부모에게 대들고 하는 그런 일도 종종 생겨나기도 합니다. 우리 인생살이는 이 같은 경제적인 풍랑도 다가오고, 가정적인 풍랑도 다가오고, 건강의 풍랑도 다가오고, 믿었던 사람이 배신하는 인간관계의 풍랑도 다가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풍랑을 만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우리에게 다가온 풍랑을 어떻게 잘 극복해 나가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봄으로 모든 풍랑을 잘 이겨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대부분이 이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 갈릴리 호수가 가끔 큰 풍랑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풍랑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스스로 풍랑을 이겨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노를 젓고 풍랑을 이겨보려고 해도 점점 풍랑이 심해지고 물이 쏟아져 들어와서 배가 잠기게 되어서 가라앉을 위험에 처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4장 37절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사람들은 누구나 문제를 만나면 자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몸부림칩니다. 그런데 온갖 노력을 기울여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점점 상태가 더 악화가 되고 깊은 수렁에 빠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게 하고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는 하나의 신앙 훈련 과정입니다. 미국같이 잘 사는 나라도 허리케인이 한 번 불고 돌풍이 지나고 나면 쑥대밭이 됩니다. 이번에 LA에 산불이 일어났는데 24일 동안 일어난 이 산불을 통해서 서울 면적의 약 1/3 정도 되는 큰 지역이 다 불타게 되었고, 피해액이 이백삼십칠조 원입니다. 우리나라 1년 예산의 삼십육 퍼센트 정도가 24일 동안에 불에 타서 다 사라진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아무리 지혜롭고 모든 것을 다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도, 자연의 분노 앞에서는 전혀 손을 쓸 수 없이 무기력한 것을 우리는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깨닫고 ‘주여, 주님께 모든 걸 맡깁니다. 난 아무것도 아닙니다.’ 두 손 들고 주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모든 문제 해결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고, 우리를 고쳐주시고, 우리를 주님의 곁으로 인도하십니다. 풍랑을 만나서 저들이 더 이상 자기들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게 되었을 때, 그제서야 그 배에 예수님이 타고 계신 것을 알고 예수님을 깨웠던 것입니다. 2. 구원자 예수님 예수님은 우리의 풍랑에 만난 배에 함께하고 계시는 구원자가 되십니다. 마태복음 8장 24절, 25절은 말씀합니다.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큰 풍랑 속에서도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가지신 분이시라, 풍랑이 다가와도 전혀 염려할 것이 없이 편히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사역하셨던지, 피곤이 몰려와서 그 배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자기들의 힘으로 풍랑을 어떻게 이겨보려고 노를 젓고 또 젓고 또 젓다가 배가 물이 가득하고 침몰하기 직전에야 그때야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이 바로 제자들의 태도입니다. 자기 힘으로 하다 하다 안 되니까 그제서야 예수님을 깨운 것입니다. 깨우면서 예수님께 원망조로 말했습니다.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 뭐 하고 계십니까? 우리가 죽게 된 걸 돌아보지 않습니까?” 우리의 신앙이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인생의 광풍이 다가오면 내 힘으로 애써보고 노력하다가 안 되면 불평하고 원망하고 남 탓을 합니다. 우리 인생의 배에 예수님이 함께 타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선장님이십니다. 예수님께 맡기면 예수님께서 풍랑을 잠잠케 하시고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축복의 길로, 은혜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인생의 거친 풍랑을 만났을 때 예수님을 깨우길 바랍니다. 예수님을 깨운다는 것은 예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주님께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주님, 내가 이런 문제를 만났습니다. 이 문제를 주님이 해결하여 주시옵소서.’ 풍랑이 다가올 때, 문제가 다가올 때, 어려움이 다가올 때 주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는 해결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지금 어떠한 풍랑을 만나고 계십니까? 질병의 풍랑을 만났습니까? 가정적인, 경제적인 어려움의 풍랑을 만났습니까? 어떤 풍랑을 만났더라도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기 바랍니다. 주님을 깨우기 바랍니다. 우리의 간절한 기도로 주님을 깨우기만 하면 광풍은 그 순간에 잠잠해지는 것입니다. 기도만이 환난을 이기는 유일한 길인 것을 잊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불퇴진’의 믿음을 갖고 부르짖어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할 때 주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은 말씀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부르짖으라” “부르짖으라” 주님 말씀하십니다. 고난 가운데 절망 가운데 낙심하고 주저앉아 있지 말고, 주님 앞에 부르짖으라고 말씀합니다. 도울 힘이 없는 세상의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고 문제 해결자 되신 주님 앞에 나와 부르짖어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 놀라운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를 젓지 말고, 기도의 노를 저어서 풍랑을 잠잠케 하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깨우셔서 주님께서 ‘잠잠하라.’하는 그 순간, 모든 풍랑이 잠잠해지는 그 은혜를 체험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때때로 주님이 주무시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이런 고통을 당하는데 왜 주님은 나를 지켜만 보고 계신가? 근데 왜 기도는 응답되지 않는가? 왜 내가 이렇게 어려움 당하는데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는가?’ 이럴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때가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할 때입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 주님의 은혜와 응답과 축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기도원에 올라가서 기도굴에 들어가서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금식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사생결단을 내려서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박국 2장 3절입니다.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예수님이 깨어나셔서 바람을 꾸짖으시니 바람이 그치고 바다가 잠잠해졌습니다. 마태복음 8장 26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우리 인생의 풍랑을 잠잠케 하시는 분은 예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3. 풍랑을 잠잠케 하시는 하나님 예수님이 ‘잠잠하라.’ 그 순간 풍랑이 잠잠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꾸짖듯이 광풍을 꾸짖으셨습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예수님 말씀 한마디에 모든 풍랑이 잠잠해지고 고요한 바다가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탄은 때때로 사람을 통해서, 물질을 통해서, 환경을 통해서 우리를 괴롭힙니다.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시험이 다가오는데, 우리를 넘어뜨려서 하나님을 멀리하고 주님을 떠나게 하려는 사탄의 계략인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예수 이름으로 명하여 이 흑암의 세력을 물리치시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내 속에 풍랑을 가져오는 흑암의 권세는 물러갈지어다. 인생의 풍랑아, 잠잠하라. 질병의 풍랑아, 잠잠하라. 가정의 풍랑아, 잠잠하라. 사업의 풍랑아, 잠잠하라.’ 믿음으로 선포하기 바랍니다. 몸이 아플 때 ‘질병의 풍랑아, 잠잠하라.’ 사업이 어려울 때 ‘사업의 풍랑아, 잠잠하라.’ 아이들이 속 썩이고 가정에 문제를 일으킬 때 ‘가정의 풍랑아, 잠잠하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고 그 풍랑을 잠잠케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 한마디면 온 천하가 그 앞에 조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풍랑이 잠잠하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의 문제, 가정의 문제, 생활의 문제, 자녀의 문제, 직장의 문제, 사업의 문제, 여러분 육신의 질병까지도 주님이 ‘잠잠하라.’ 하면 그 순간 모든 것이 잠잠해지는 것입니다. 문제가 떠나가는 것입니다. 병이 고침 받는 것입니다. 사업이 잘 되는 것입니다. 자녀가 잘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선포하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은 살아 있는 능력의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우리가 믿음으로 고백할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늘 이 약속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믿음으로 선포하기 바랍니다. 절대 긍정의 믿음을 갖고 말씀을 선포하고 나아갈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내가 너와 함께하고 있는데 왜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느냐? 너의 믿음을 어디다 두었느냐?’ 말씀합니다. 어떤 다른 성경 버전을 보니까 ‘어찌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나와 함께 그렇게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기적의 현장에, 그 사역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모습을 보았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 이상의 많은 사람을 먹이고, 열두 바구니가 남았고, 죽었던 사람을 살려내고, 내게 다가오는 모든 병자를 고치는 것을 너희들이 두 눈으로 보았거늘, 아직도 믿음이 없어서 무서워하느냐?’ 주님 말씀하십니다. 교회 나와서 10년, 20년 신앙생활 하면서 조금만 문제를 당해도 염려하고 근심하고 걱정할 때 주님 말씀하십니다. ‘왜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우리 주님만 믿고 나가면 모든 질병은 떠나갑니다. 모든 문제는 해결됩니다. 사업은 안정되고 다시 번창하게 됩니다. 잠시 잠깐 어려움의 시간을 지나가지만, 풍랑이 잠깐 일지만 주님이 명령하시면 풍랑은 잠잠해지고 모든 것이 정상이 되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갖고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꿈꾸는 자의 무한도전』의 저자인 시각장애인인 신인식 목사님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습니다. 네 살 때 시력을 잃고 초등학교 4학년 때 폐결핵 말기 판정을 받습니다. 당시 결핵 말기라고 하면 열에 아홉은 죽는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절대 절망의 상황에서 문제의 해결자 되신 하나님을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주님이 나를 고쳐주실 것이다. 이 폐결핵의 풍랑은 잠잠할지어다!’ 6개월 못 넘기고 죽는다고 했는데, 6개월이 지나고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고 4년이 지나서 완전히 그는 폐결핵에서 놓여남을 받고 건강한 몸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그가 앞을 보지 못하니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참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신문 배달, 전화 교환원 등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하는데, 앞도 볼 수 없는 그가 어떻게 신문 배달을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고등학교 2학년 때 생활비를 벌고자 신문 배달을 하기 위해서 신문사를 찾아가서 책임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그랬습니다. “제가 신문 좀 배달해야 하겠으니 저를 신문 배달하는 사람으로 좀 채용해 주세요.” 그러니까 “너 앞도 못 보면서 무슨 신문을 돌리려고 그러냐?” 사람들이 혀를 차면서 말했습니다. “살다 살다 별일을 다 보네. 앞도 못 보면서 신문 배달을 한다고?”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매일 찾아갔습니다. “여기 책임자를 좀 만나게 해주세요.” 일주일을 찾아가니까 책임자를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웬 애가 와서 자꾸 떼를 쓰는데 한번 만나주세요.” 그러니까 만나자마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월급은 안 받을 테니 신문 배달만 하게 해주십시오! 저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 최초의 시각장애인 신문배달원이 되었습니다. 보여야 신문을 갖다가 각 가정에 배달할 텐데 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신문을 배달합니까? 그래서 처음 150가정에 신문을 배달하라고 신문을 맡기고 약 10킬로미터를 걸어가면서 신문을 배달해야 하는데, 첫날 그 지역을 담당한 총무가 함께 다니며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여기 첫 번째 집이다, 두 번째 집이다, 세 번째 집이다 해서 150집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들어가면 그는 저녁때 다시 나와서 아침에 총무가 이끌었던 것을 생각하면서 다시 한 바퀴를 딱 돌면서 150집을 돌아봤습니다. 다음 날 또 그 총무가 그를 인도해 주면서 이게 첫 번째 집 두 번째 집 하면서 150집을 돌았습니다. 이 둘째 날도 그렇게 밤에 나와서 다시 한번 또 길을 복습을 했습니다. 세 번째 날이 되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이제부턴 제가 혼자 배달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신문지를 가지고 그 150집을 다 돌았습니다. 마지막 집에 가서 신문을 탁 놓고 나오는데 누가 손목을 꽉 잡았습니다. 총무가 불안해서 그 뒤를 따라왔는데 “야, 기적이구나. 한 집도 안 틀리고 어떻게 이렇게 다 150집을 다 돌렸냐.”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에게 배정해 준 집은 신문 구독을 끊겠다고 연락이 온 150집입니다. 신문 구독을 끊기로 한 곳에 이 아이를 배달시켰는데 한 달이 지나도록 신문 구독을 안 하겠다고 한 집이 하나도 없고, 신문을 끊으려고 그랬는데 웬 앞을 못 보는 애가 와서 신문을 넣으니까 불쌍해서 옆집에 있는 사람들이 “저 애가 앞도 잘 못 보는데 신문을 넣으니까 당신들도 좀 봐주라.” 그래서 오히려 독자가 늘어났습니다. 하루는 신문 지국 사장님이 불러서 찾아가니까 “네 덕분에 신문을 계속 보겠다고 하시는구나. 그렇게 잘 해낼 줄 몰랐다.” 하고 보너스를 또 주셨어요. 할렐루야. 하나님이 주시는 월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그는 새로운 꿈을 가졌습니다. ‘시각장애인들에게 꿈을 줘야겠다.’ 그래서 그는 잘 살게 하는 것보다 영적인 눈을 떠서 복음의 빛을 그들이 발견하게 하고, 예수 믿고 변화된 삶을 살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1986년에 한국시각장애인선교회를 설립하여 시각장애인 자녀 돌봄 활동을 시작합니다. 시각장애인의 알 권리를 실천하기 위해서 테이프 잡지인 『사랑의 메아리』를 창간하고, 1994년에는 세계 최초로 무형 도서관인 종달새 전화도서관, 전화 걸어서 모든 책을 들을 수 있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서관을 또 개관했습니다. 그는 수많은 고난을 이긴 비결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믿음’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절대 긍정의 믿음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을 거닐고 있는가? 별거 아니다. 아무리 짙은 안개라도 담으면 물 한 컵밖에 되지 않는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그는 절대 포기하지 않고 절대 긍정의 믿음을 갖고 전진, 또 전진했습니다. 웬만한 악기는 다 연주하고 세계 일주와 국토 순례도 하고, 10년 동안 기도로 최고의 아내도 얻고 슬하에 남매를 두고 있는데, 이 두 아이가 중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가서 학비를 벌면서 스스로 공부하는 청년으로 잘 컸습니다. 그는 스스로 더 주의 복음을 잘 전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는데 서울 장로교신학대학을 졸업한 후에 미국 페이스신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명지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석사를 하고, 대구대학교 재활과학대학에서 직업재활 전공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기도 했습니다. 할렐루야. 저는 이분의 간증을 읽으면서 ‘우리는 두 눈 뜨고 뭐 했지?’ 여러분, 꿈과 믿음을 가지면 불가능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분보다 훨씬 더 좋은 신체적 조건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꿈과 믿음을 갖고 도전하고 또 도전하고 또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절망의 풍랑이 다가와도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나아가면 풍랑은 잠잠해 지는 것입니다. 그는 일생을 뒤돌아보면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오늘도 무한도전을 꿈꿉니다. 절망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저를 대체 얼마나 크게 쓰시려고 이런 아픔을 주시나요. 어떤 계획을 하고 계시기에 이런 경험을 하게 하시나요. 그러나 기다리고 또 기다리겠습니다.’ 그러면 오래지 않아 하나님은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안달복달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며 모든 일에는 정해진 때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과거의 고난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할렐루야. 어떤 고난이 다가와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염려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염려할 시간에 기도하고 주님 앞에 부르짖어 간구하면 응답과 기적이 여러분 삶 가운데 임하게 될 것입니다. <찬송가 382장(통 432) ‘너 근심 걱정 말아라’> 1절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후렴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2절 어려워 낙심 될 때에 주 너를 지키리 위험한 일을 당할 때 주 너를 지키리 3절 너 쓸 것 미리 아시고 주 너를 지키리 구하는 것을 주시며 주 너를 지키리 4절 어려운 시험 당해도 주 너를 지키리 구주의 품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떠한 인생의 풍랑이 다가와도 주님이 함께하시며 주님께서 모든 풍랑을 잠잠케 하시며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신 그 놀라운 은혜를 깨닫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한평생 살아가면서 우리의 믿음을 굳게 지켜서 풍랑 가운데 함께하시는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풍랑이 다가올 때 예수님을 깨워 풍랑을 잠잠케 하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2025.07.0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7월 12일(토) -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 ◎ 말씀 : 시 13:1~6 ◎ 찬송 : 191장(통 427장) 시편 13편은 다윗이 “야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라고 하나님께 괴로움을 호소하는 기도로 시작합니다. 그는 사울 왕에게 쫓기면서 두려움과 슬픔 속에서 고통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결국 찬양으로 기도를 마무리합니다. 사방이 대적으로 둘러싸인 상황에서도 다윗은 눈을 돌려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는 고난 중에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며 그분의 구원과 은혜를 믿음으로 노래합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고통을 호소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통을 이겨낼 힘은 언제나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서 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소망하며 그분을 찬양해야 합니다. 이러한 찬양과 감사는 결국 우리를 승리로 이끌어 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슬픔과 고난 중에도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더욱 찬양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해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07.0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7월 11일(금) - 어긋난 열심
  • ◎ 말씀 : 마 15:7~11 ◎ 찬송 : 423장(통 213장)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본 유대교 지도자들은 그들을 비난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의 전통을 비판하며 ‘고르반’의 관행을 예로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유대교 장로들은 율법에서 자식이 부모에게 도움을 드려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르반’ 즉 “하나님께 드렸다”라고 말하기만 하면 더 이상 부모에게 드릴 의무가 없어진다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심에서 시작된 전통이 결국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말씀을 무시하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 우리도 자신의 신앙을 기준으로 삼아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신앙이 사람에게 보이는 겉치레에 그치지 않고 삶 가운데 진실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날마다 정직하고 진실하게 행하게 해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07.0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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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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