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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대학 축복성회 및 발표회-성숙하고 아름다운 노년의 신앙 생활
  • 이영훈 목사 “건강 장수의 복 받는 인생” 당부 24개 팀 출연 … 악기 연주, 율동, 국악, 난타 등 공연 2026년 영광대학 축복성회가 8일 바울성전에서 개최됐다. 노년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아름답고 성숙하게 이끌고 있는 복지사업국 영광대학은 이날 예배와 특별활동 발표회로 하나님께 영광 돌렸다. 특히 강남·중동·분당·광명·새성북·성동·도봉·김포·동부·성북 등 제자교회의 학생들도 참석해 성전을 가득 채웠다. 영광대학 차성환 학장의 사회로 시작된 예배에서는 김형권 명예학장이 기도했고 영광대학 찬양대와 에벤에셀 몸찬양단이 찬양과 워십 공연으로 하나님을 경배했다. 이날 이영훈 담임목사는 ‘부족함이 없는 인생’(시 23:1~3)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면서 한평생 하나님께 헌신하며 노년에도 각자의 재능으로 주님을 섬기는 영광대학 학생들을 축복했다. 이영훈 목사는 “건강 장수의 시대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시길 바란다. 주님이 함께하시면 우리는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살 수 있다”면서 “야훼가 나의 목자되심을 믿음으로 고백할 때 하나님이 복된 인생으로 바꾸어 주실 것”이라며 감사의 삶을 당부했다. 예배 후에는 특별활동 발표회가 진행됐다. 올해는 24개 팀이 출연해 찬양과 악기 연주, 율동과 체조, 국악과 난타 공연 등을 펼쳤다. 차성환 학장은 “한 해 동안의 성장의 열매를 성도들과 나눌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영광대학은 65세 이상 성도들이 모여 신앙생활 하는 곳으로 성도들이 노년에도 건강하고 활기찬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미술, 한문·한글서예, 일어, 영어, 율동, 찬양 등 다양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글·복순희 / 사진·금지환 기자 영광대학 서예·미술·필사 작품 전시회
  • 2026.10.08 / 복순희 기자

    (120) 사도행전의 설교에 관한 가르침 ⑮
  • 3. 그 밖의 인물들의 설교 또는 연설 오늘은 에베소에서 있었던 은장색(은으로 우상을 만드는 사람) 데메드리오의 사도 바울 비난과 그로 인해 일어난 소동을 에베소의 서기장이 지혜롭게 진정시킨 발언을 살펴보고자 한다. 4) 에베소의 은장색 데메드리오의 선동 발언(19:23~27) (1) 대상: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드는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25절) (2) 데메드리오의 선동(19:25~27) ①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다(25절) ② 바울의 주장 -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에게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라고 말함(26절) ③ 바울의 위험성 -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 위험(27절) (3) 결과: ① 데메드리오의 선동이 성공하여 무리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를 외치며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감(28~29절) ② 바울이 그 연극장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제자들과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 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들어가지 말라고 만류함(30~31절) 5) 데메드리오의 선동으로 아데미 신상 모형을 만드는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 그리고 다른 에베소 사람들이 온 시내를 시끄럽게 하고 바울 일행을 붙들고 연극장으로 들어가서 소동을 벌이자 이를 진정시킨 에베소의 서기장의 연설(19:28~41) (1) 대상: ① 연극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으나 태반이 왜 모였는지조차 알지 못함(32절). ② 그 안의 유대인들이 바울 일행을 비난하려고 알렉산더에게 모인 사람들 앞에서 발언하라고 했지만, 무리들이 이를 묵살하고 두 시간 동안이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를 외침(33~34절) ③ 그러자 서기장이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에베소 사람들아!”라는 말로 발언 시작(35절) (2) 서기장의 연설(19:35~40) ① 먼저 무리들을 인정함 -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모든 사람이 안다(35절) ② 경고 - 그렇지만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36절) ③ 문제점 -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다”(37절) ④ 해결책 - “만일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38~39절) ⑤ 결론 -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자료가 없다”(40절) (3) 결과 -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함(41절) 김호성 목사(여의도순복음동부교회 담임)
  • 2026.10.0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강종복 목사(여의도순복음벧엘교회 담임) - AI시대 주의해야 할 영적 위험성
  •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일상과 사회 전반을 빠르게 변화시키는 시대가 됐다. AI 기술은 분명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성도들은 편리함 때문에 신앙의 본질을 잃지 않도록 더욱 깨어 분별해야 한다. 먼저 주의해야 할 것은 ‘관계 없는 영성’이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있으며 동시에 성도들이 서로 만나 예배하고 교제하는 공동체성이 있다. AI를 통해 성경 지식을 얻고 신앙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과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고 위로하며 함께 예배하는 것을 대신할 수는 없다. 히브리서 10장 24~25절은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AI 시대일수록 오히려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예배하며 서로의 삶을 돌보는 신앙 공동체가 더욱 중요하다. 성도의 궁극적인 신앙의 기준은 AI의 답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를지니”(사 8:20)라는 말씀처럼 모든 가르침과 정보는 성경의 빛 아래에서 분별되어야 한다. 교회는 효율성보다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체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목회자의 심방과 상담, 성도의 눈물에 함께하는 위로, 병든 사람을 찾아가 손을 잡고 기도하는 일, 함께 예배하고 식탁에서 나누는 사랑은 AI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책임이다. AI는 우리의 일을 돕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신앙의 주인이 될 수는 없다. 예수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고 말씀하셨다. 시대와 기술이 아무리 변하여도 이 말씀은 변하지 않는다. 성도는 AI에게 정보를 얻되 진리는 하나님 말씀에서 찾고, AI에게 도움을 받되 하나님을 의지하며, AI와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하나님과 기도하는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한다. 기술은 우리의 보조자가 되어야 하며 우리의 생각과 영혼을 지배하는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AI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지켜야 할 신앙의 원칙이다.
  • 2026.10.0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채정기 선교사(루마니아)
  • - 방과후학교 운영 재정을 위해 - 방과후학교 사역의 지경 확장을 위해 - 소외된 집시 어린이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 선교사의 영적 강건함과 사역을 위해 - 제자훈련에 집중하는 믿음의 공동체를 위해
  • 2026.10.08 / 오정선 기자

    노장의 기베르
  • 성경 본문의 네 가지 의미 정식화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설교학 교과서 집필 회중의 삶에 가닿는 설교 지향해 기베르 드 노장(Guibert de Nogent, 1055~1124)은 프랑스 북부 클레르몽앙보베지의 하급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신앙심 깊은 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어려서 성직자의 길로 이끌렸다. 열두 살 무렵 모자가 함께 들어간 생 제레마르 대수도원에서 교육받으며 처음에는 고전 시에 몰두했으나 안셀무스(훗날 캔터베리 대주교)의 영향으로 신학에 전념했다. 1084년 무렵 그는 은밀히 창세기 주석을 쓰기 시작했다. 그 안에 포함된 ‘헥사메론’(천지창조 6일) 주석은 그때까지 가장 학식 있는 교부들만 다룰 수 있다고 여겨지던 주제였으며, 그는 수도원장 사후 이 작업을 완성했다. 이 주석은 후일 『창세기 도덕론』으로 불리게 됐다. 1104년 그는 작고 가난한 노장수쿠시 대수도원의 원장이 됐고 이를 계기로 저술에 힘썼다. 1108년 제1차 십자군 역사서 『프랑크인들을 통한 하나님의 행적』을, 1115년경에는 『고백록』을 본뜬 자서전 『나의 삶에 관하여』를 남겼는데, 중세 초기의 가장 상세한 자전적 기록으로 꼽힌다. 또한 『성인들의 유물에 관하여』에서는 당대 유물 숭배 열풍에 이례적으로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1124년경 세상을 떠난 그는 생전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오늘날에는 중세 수도원 생활과 설교신학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를 남긴 인물로 재평가받는다. 기베르의 신학은 근본적으로 교부 전통, 특히 아우구스티누스의 성경 해석학에 뿌리를 둔다. 교부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헥사메론 주석에 도전한 것 자체가 이른바 ‘11·12세기 르네상스’ 학자들이 지녔던 새로운 지적 자신감을 보여준다. 그는 중세에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성경의 네 가지 의미’를 명료하게 정식화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첫째 역사(historia)는 실제 사건을, 둘째 알레고리(allegoria)는 사물이 다른 것을 상징함을, 셋째 도덕적 교훈(tropologia)은 삶의 질서를, 넷째 신비적 해석(anagogia)은 신성한 주제로 신자를 더 높은 영적 수준으로 이끄는 것을 뜻한다. 이는 후대에 “문자는 교부들의 행적을, 알레고리는 믿음이 숨은 곳을, 도덕적 의미는 일상의 규칙을, 영적 해석은 싸움의 끝을 보여준다”라는 16세기 운문으로 다시 정리됐다. 그러나 기베르의 관심은 사변적 알레고리보다 그리스도인의 일상적·도덕적 삶에 있었다. 그는 미덕에 대한 긍정적 설교와 악덕에 대한 부정적 설교가 똑같이 효과적이라 보았고, 설교의 궁극 목적을 인간의 자기 인식에 두었다.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알게 하는 설교, 마음속 깊은 것을 드러내게 하는 설교, 자신의 시선 앞에 벌거벗겨진 채 서게 만드는 설교보다 더 효과적인 설교는 없다”라는 그의 말은 신학이 교리적 사변보다 내면적 성찰과 도덕적 변화를 지향했음을 보여준다. 기베르의 가장 중요한 설교학적 유산은 창세기 주석 말미에 덧붙인 소논문 ‘설교가 마땅히 행해져야 하는 방식에 관하여’이다. 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독교 교리에 대하여』 이후 처음 등장한 새로운 설교학 교과서로 평가된다. 아우구스티누스 사후(430)부터 제1차 십자군(1095)까지 약 650년간 설교자를 위한 조직적 지침서를 시도한 이는 없었고 그저 덕스러운 삶과 성경 지식을 권면하는 데 그쳤다. 기베르는 이 공백을 메운 최초의 인물이다. 기베르의 설교 논문은 “설교의 의무가 있는 자들이 연구를 멈추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라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그는 설교의 의무가 주교·대수도원장·사제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절제하며 덕스럽게 살고 성경 지식을 갖춘 모든 이에게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세례·견진성사를 받은 모든 신자에게 그 책임이 있다는 논증까지 동원했다. 그는 명예욕 같은 세속적 동기의 설교조차 나름의 효과가 있다고 인정하며 설교의 실용적 가치를 폭넓게 옹호했다. 또한 설교 실무에 대한 구체적 조언도 남겼다. 설교는 기도로 시작해야 하는데, “성의 없는 설교는 설교자 자신조차 기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교자는 영적·지적 준비를 마친 뒤에야 문체를 고민해야 하며, 언제나 청중을 마음에 두어 “배우지 못한 이들에게 가르치더라도 동시에 교육받은 이들과 더불어 더 높은 수준에 이르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처럼 기베르는 전통적 성경 해석의 틀 안에 머물면서도 설교를 회중의 실제 삶에 가닿는 실천적 행위로 재정의한 인물로 기억된다. 조지훈 목사(한세대학교 설교학 교수)
  • 2026.10.0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0월 17일(토) -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 ◎ 말씀 : 사 58:3~10 ◎ 찬송 : 452장(통 505장) 이스라엘 백성은 금식하며 하나님께 나아갔지만 금식하는 날에도 자기 이익을 구하고 서로 다투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고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롭게 하며 주린 자에게 양식을 나누고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할 때 그들의 빛이 새벽같이 비치고 치유가 급속히 이루어지며 부를 때 하나님이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가진 물질과 힘을 어려운 이웃과 나누며 사랑을 실천하기를 원하십니다. 참된 금식은 자기 유익을 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이웃을 살리는 섬김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와 금식이 공동체의 치유와 회복으로 열매 맺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유익보다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고 금식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10.0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0월 16일(금) -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 ◎ 말씀 : 고후 4:8~10 ◎ 찬송 : 545장(통 344장) 사도 바울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는 길에서 생명의 위협과 파선과 환난 등 수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그 고난 때문에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는 것이 예수님의 생명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도 때로는 사방이 막혀 보이는 시간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함께하신 하나님이 우리와도 함께하시기에 낙심에 머물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도 고난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삶에 드러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앞날이 막막할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예수님이 가신 발자취를 따라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10.0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0월 15일(목) -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
  • ◎ 말씀 : 사 53:4~5 ◎ 찬송 : 144장(통 144장)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약 700년 전 이사야 선지자는 고난받는 종의 모습을 예언했습니다. 그 종은 우리의 허물로 인해 찔리고 우리의 죄악으로 인해 상하며 우리를 대신해 질고를 짊어질 분으로 묘사됩니다. 사람들은 그가 하나님께 벌을 받는다고 여겼지만 실상은 우리를 대신해 고난을 감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사야의 이 예언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모진 고난을 겪으셨으며 그 징계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 채찍으로 나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평화를 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은혜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늘 마음 깊이 새겨야 합니다. 오늘도 십자가의 은혜를 묵상하며 감사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은혜를 늘 기억하며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10.0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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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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