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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감사의 삶
  •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편 23편 1~3절)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추수감사절은 한 해 동안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놀라운 은혜를 기억하면서 넘치는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우리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날입니다. 우리가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지키는 것은 미국에서 청교도들이 드린 추수감사절 예배의 전통을 따른 것입니다. 1620년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청교도 102명이 메이플라워라고 하는 배를 타고 영국을 떠나 신대륙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이 102명이 배에 탄 것을 기념해서 미국 뉴욕에 지어진 것이 102층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입니다. 65일이라는 험난한 항해 끝에 미국 북동부 지역 매사추세츠에 있는 플리머스라고 하는 곳에 도착합니다.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먼저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고 교회를 건축합니다. 그러고 나서 첫해 겨울을 지나는데 식량난과 추위, 질병, 영양실조 등으로 102명 가운데 44명이 세상을 떠나고 나머지도 질병과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봄이 되어서 저들이 이제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원래 청교도들이 다 상류층 사람들이라 농사를 한 번도 지어본 경험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현지 원주민 부족인 ‘와마노아그’(Wampanoag)’라고 하는 아주 착한 원주민들이 도와줘서 옥수수, 콩, 호박 등을 재배할 수 있게 되었고, 그해 가을에 첫 곡식을 거둬드립니다. 그들이 거둬들인 곡식이 많지 않지만, 하나님 앞에 추수한 곡식을 놓고 감사예배를 드리는데 자기들에게 농사를 가르쳐준 와마노아그 인디언들을 초청해서 같이 감사의 제사를 드립니다. 3일 동안 감사 절기를 드린 것이 계기가 되어서 1623년도에 매사추세츠 주지사인 윌리암 브레드포드가 추수감사절을 지킬 것을 선포했고, 1789년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전국적으로 추수감사절 절기를 지킬 것을 선포했습니다. 그 이후에 여러 주에서 각기 추수감사절 절기를 지내왔는데, 미국 최대 여성 잡지인 가디스 레이디스 북(Godey’s Lady’s Book) 편집장 세라 조세파 헤일(Sarah Josepha Hale)이라고 하는 여성분이 “추수감사절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미국 건국 초기의 은혜를 기념하고 국가적 단합을 이끌고 가족 중심의 가치관을 강화하는 날로 지켜져야 한다.” 그래서 17년 동안 미국 5명의 대통령에게 계속해서 편지를 보내고 캠페인을 해서 “미국 모든 사람이 함께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날을 공휴일로 만들어 주십시오.” 그랬는데 남북전쟁이 한창 진행되는 중에 제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1863년 9월에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감사를 선포할 때이다.” 그래서 매년 11월 넷째 목요일을 추수감사절 공휴일로 제정해서 지금까지 그 전통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가장 큰 절기가 추수감사절입니다. 11월 넷째 목요일인데 수요일부터 수, 목, 금, 토, 주일 닷새 동안을 감사 절기로 보냅니다. 흩어졌던 가족이 모여서 함께 칠면조 고기를 먹으면서 가족끼리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이 귀한 날을 기념하는 것이 바로 추수감사절 전통입니다. 이 전통을 복음이 들어간 모든 나라에 전해져 우리 대한민국도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보내고 있습니다. 1. 목자 되신 하나님 우리는 한평생 주님의 은혜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우리의 감사기도 제목입니다. 우리는 늘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시편 23편은 다윗이 그 많은 어려움과 고비를 겪고 그의 인생을 돌아보니까 감사할 것밖에 없다는 신앙고백입니다. 목자 되신 하나님에 대해서 그는 시편 23편 1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양들의 삶은 전적으로 목자에게 달려있습니다. 양들이 좋은 목자를 만나면 행복하고 무엇 하나 부족함 없는 풍성한 삶을 삽니다. 그러나 나쁜 목자를 만나면 그 자체가 불행입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상처투성이인 그러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악한 원수 마귀는 나쁜 목자와도 같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우리 인간을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지금도 우리들의 연약한 부분, 약점들을 공격하고 과거에 우리의 잘못을 들춰내서 또 우리를 멸망시키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0장 10절에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마귀가 하는 일입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은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자기 몸을 희생하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1절은 말씀합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이 같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예수님의 희생적인 사랑으로 인해서 구원받은 우리들은 그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밖에 드릴 것이 없습니다. 우리 자신을 살펴보면 우리는 참 지지리도 못난 인생입니다. 고집불통이고 자기밖에 모르고 욱하고 그저 남을 물고 뜯고 싸우고... 여긴 그런 분 없겠지만 저쪽 가면 많아요. 이런 허물투성이 인생을 하나님이 택하셔서 자녀 삼아 주시고 양들을 돌보듯이 우리를 돌봐주고 계십니다.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양을 직접 기르면서 양들의 생태를 연구했던 필립 켈러라는 분이 『양과 목자』라고 하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을 보면 양의 습성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는 양과 인간이 공통점이 많다고 합니다. 두려움과 소심함, 완고함과 어리석음, 군중심리, 비뚤어진 습관 등이 비슷하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양은 고도 근시라 약 50~60cm밖에 못 봅니다. 1m 앞을 못 봅니다. 그러니까 앞에 양의 뒤꽁무니만 보고 따라가는데, 목자가 맨 앞에 고참 양을 세우고 양들을 따라오게 합니다. 그래서 이 목자가 이끌어가는 대로 양들은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부족하고 연약하고 문제투성이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무조건적으로 우리를 긍휼히 보시고 사랑하셨습니다.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지명하여 택하여 부르시고 주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절은 말씀합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야훼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우리가 잘나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못난 것투성이인데, 주님이 우리를 일방적으로 “너는 내 것이라”라고 택하고 부르셔서 하나님 자녀로 삼아 주시고 우리의 일생을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2. 우리의 인도자 되시는 하나님 목자가 되신 하나님은 우리 삶에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도록 우리의 삶을 은혜의 길로, 복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한평생 주님이 예비하신 그 놀라운 은혜의 자리로 우리를 이끌어가십니다. 시편 23편 2절은 말씀합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다윗은 한평생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철저히 믿고 의지했습니다. 시편 31편 3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광야 같은 인생길을 살아가는 동안 주님이 참 목자가 되셔서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십니다. 시편 78편 52절입니다. “그가 자기 백성은 양 같이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양 떼 같이 지도하셨도다” 언제나 우리를 그 사랑의 품에 품으시고 가장 좋은 길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이사야 40장 11절입니다.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 절망에 처하고 고통에 처하고 문제 가운데 낙심해 있는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시편 23편 3절은 말씀합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10번 넘어져도 11번 일으켜 주시고 우리를 의의 길로, 은혜의 길로, 복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이 놀라운 은혜에 우리는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합니다. 3. 우리의 공급자 되시는 하나님 나아가서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걸 공급해 주시는 공급자 되십니다. 목자가 양의 모든 것을 공급하듯이 우리의 필요한 모든 걸 공급해 주십니다. 주님 안에서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고백합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주님이 나의 목자이시기 때문에, 주님 모든 걸 다 갖고 계시기 때문에, 주님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주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넘치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주님 앞에 감사의 고백을 드린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바라보고 환경을 바라보고 나 자신을 바라보면 부족한 것투성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꾸 비교 의식이 있어서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지 아니하고,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 보고 ‘왜 저 사람이 더 많이 가졌지?’ 그 마음속에 불평, 불만이 생깁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면 ‘주님이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이사야 49장 10절은 말씀합니다.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이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라” 목자가 양을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는 것처럼, 우리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를 말씀의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여서 언제나 하나님의 복된 말씀으로 우리를 먹이시고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더하여 주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령의 생수가 흘러넘치는 물가로 인도하여 주셔서 성령의 생수를 마심으로 성령 충만한 신앙으로 모든 문제의 어려움을 이기며 승리의 삶을 살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시편 23편 2절은 말씀합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갈 때 풍족한 은혜 가운데 살게 하십니다. 주님을 찾는 자들에게는 부족함이 없는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34편 9절, 10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너희 성도들아 야훼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야훼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할렐루야. 좋으신 목자 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걸 다 채우시고 심지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 주시고 머리에 기름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5절입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다윗은 얼마나 많은 연단의 시간을 지나야 했습니까?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사울 왕이 그를 시기해서 10여 년 동안 그를 쫓아올 때 그는 새우잠을 자며 이곳저곳을 쫓겨 다녔습니다. 그리고 왕이 되고 난 후에도 많은 전쟁이 있었습니다. 그런 고비마다 주님이 보호하시고 함께하실 뿐 아니라 언제나 그에게 축복의 상을 베풀어 주셔서 풍성한 주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 23:5) 할렐루야. 여러분,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는 삶은 복된 삶이며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면 주님 안에서 부족함이 없습니다. 의사로서 의료선교의 길을 가고 있는 이창우 장로님의 간증입니다. 1961년, 인천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가 외과의사였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주 믿음이 좋아 기도로 남편을 보필했습니다. 그는 어릴 때 병원 옆 10평 남짓한 집에서 살면서 병원을 놀이터 삼아 지냈습니다. 어린 시절 엄마가 그 젊은 나이에 두꺼운 안경에 또 돋보기를 겹쳐 써서 글을 보는 것을 보면서 의문을 가졌습니다. ‘아니, 우리 집안에 눈 나쁜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왜 엄마는 저렇게 고도 근시가 돼서 안경이랑 돋보기를 겹쳐 쓰고 보나?’ 근데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된 다음 부모님에게 큰 감동이 왔습니다. 어머니가 임신 중독으로 의사가 말합니다. “태아를 떼어 내야 산모가 산다.”라고. 그런데 “내 생명이 위태해도 내 아이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무리해서 이 아이가 태어나게 되었는데 시신경이 완전히 손상되어 거의 시력을 잃고 고도 근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나고 난 다음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시력과 맞바꾼 생명이다. 나는 어머니의 시력을 대신해 하나님께 드려야 할 생명이다.” 그래서 아버지처럼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되길 원해서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합니다. 정형외과 전문의가 되고 의학 박사 과정을 마친 그는 더 깊고 폭넓게 의학 공부하기 위해서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유학 시절 중에 IMF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는 주님의 부르신 사명을 깨닫고 미국에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하나님, 미국 땅에서 많은 것을 배우도록 도와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학문적인 것도 있지만 제일 크게 배운 것은 우리 인생을 우리 마음대로 사는 것에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부부가 한국에 돌아가면 선교에 열심을 내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피츠버그대학,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하고 귀국한 다음 충북 제천서울병원에서 일하면서 선교병원을 준비합니다. 모교인 한양대에서 의과대학 교수로 오라는 청빙을 받았지만, 누구나 꿈꾸는 의과대학 교수의 자리를 포기하고 “주님, 제 삶은 선교를 위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한 그 서원 기도를 지키기 위해서 그는 선교하는 의사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2001년 서울 역삼역 인근에 작은 공간을 얻어 ‘선한목자병원’을 세우고 이곳에서 환자를 돌보면서 저소득층 어르신들, 미자립교회, 농어촌교회 목사들의 사역을 돕기 시작하다가 개원 3년째 되었을 때 해외 의료봉사를 시작합니다. 의료 환경이 가장 열악한 지역부터 찾아가서 병원을 세우고 많은 환자를 진료했는데, 2004년 라오스, 파키스탄을 시작으로 2006년 네팔, 2009년 미얀마, 2012년 필리핀 등지에 선교병원을 설립합니다. 미얀마 양곤에는 35병상 규모의 선교 병원을 세웠는데 언어와 문화의 장벽과 의료 장비의 부족, 재정난 등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결코 실패가 없다. 주님이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다.’라는 믿음으로 나아가서 병원을 세우고, 그가 간증하는 놀라운 일은 미얀마에서 평생 걸어보지 못한 아이를 수술해서 기적적으로 아이가 걷고 뛰게 되었어요. 할렐루야. 그는 말합니다. “그날 수술실은 예배당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의학의 승리가 아니라 은혜의 승리였고, 과학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였습니다.” 병원이 힘들고 어려울 때도 그는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오고, 주님께서 사명을 주셔서 ‘굳셰퍼드재단’을 만들어서 전 세계 의료 취약 지역에 진료소를 세우고, 질병과 장애로 고통받는 소외된 이웃을 돌보며 ‘한국이 받은 이 복음의 은혜를 다시 주의 사랑으로 우리가 섬김으로 되갚아야겠다.’ 그래서 그는 고난당하는 이웃을 향해 그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두 아들인 사무엘과 다니엘도 그 아버지의 사명을 이어받아서 현재 21개국 24곳에서 복음과 치유의 사역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 이창우 장로님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은혜라 쓰고 빚이라 읽으십시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모든 은혜는 결코 우리 안에서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은혜는 사랑으로 흘러가 생명을 살리고 관계를 회복시키고 세상을 새롭게 만듭니다. 이스라엘이 언약궤를 성막 중앙에 두었던 것처럼 저는 병원 한가운데에 하나님을 모시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을 세울 때부터 중심에 지성소와 같은 예배당을 마련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공간을 다른 용도로 바꾸자고 제안했지만 저는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곳은 우리병원의 심장이요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하심이 머무는 보좌이기 때문입니다. 받은 은혜를 사랑으로 갚으며 은혜가 더 멀리 흘러가 세상을 살리는 열매가 맺어지기를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우리 교회 의사 선생님들이 다 이 같은 선교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받은 은혜를 이렇게 베풀고 나누는 자에게 더 큰 은혜와 복을 주시고, ‘주님이 나의 목자이시기 때문에 내가 부족함이 없다.’라는 은혜가 평생 차고 넘치도록 그 삶에 풍성히 임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한평생 감사의 삶을 사십시오.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면서 소외되고 병들고 연약한 문제 있는 이웃을 섬기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일생을 가장 복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믿음의 고백으로 찬송가 393장을 고백합니다. <찬송가 393장(통 447) ‘오 신실하신 주’> 1절 오 신실하신 주 내 아버지여 늘 함께 계시니 두렴없네 그 사랑 변찮고 날 지키시며 어제나 오늘이 한결같네 후렴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날마다 자비를 베푸시며 일용할 모든 것 내려주시니 오 신실하신 주 나의 구주 2절 봄철과 또 여름 가을과 겨울 해와 달 별들도 다 주의 것 만물이 주 영광 드러내도다 신실한 주 사랑 나타내네 3절 내 죄를 사하여 안위하시고 주 친히 오셔서 인도하네 오늘의 힘 되고 내일의 소망 주만이 만복을 내리시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신실하신 주님을 손을 들고 찬양했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너무나 크고 너무나 깊고 너무나 넓고 감당할 수가 없는데, 우리 인간이 고집불통이 되어서 늘 자기밖에 모르고 쉽게 불평하고 남 탓하고 원망하고 분노하며 살았던 저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목자 되신 주님만 바라보고 감사하며 받은 은혜를 강물처럼 널리 흘려보낼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도록 주님 은혜 내려주옵소서. 추수감사절뿐 아니라 일생이 그와 같은 감사의 일생이 되도록 우리의 삶을 주관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2025.11.1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나는 내년부터 달(력)꾸(미기)한다!”
  • 2026년 달력 … 감사 기록하고 스티커로 장식 『감사 QT 365』를 바탕으로 일상의 감사 제목을 기록하며 신앙의 흔적을 남길 수 있는 2026년 우리 교회 달력이 추수감사주일인 16일(오늘) 배부됐다. 새해 달력은 레트로 감성의 심플한 디자인 위에 성도들이 직접 꾸미고 채워가는 참여형 달력으로 우리 교회는 이를 중심으로 ‘감사로 하루를 시작하고 은혜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연중 감사 캠페인을 전개한다. 홍보국이 제작한 이번 달력에는 교회 절기와 주요 사역 일정이 함께 표기됐다. 신년축복 열두광주리 새벽기도회, 교회창립주일, 추수감사절 등 주요 일정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성도들이 자연스럽게 신앙의 흐름을 따라가도록 돕는다. 올해 달력은 단순한 일정표를 넘어 일상 속 감사를 기록하는 신앙 도구로 구성됐다. 매일 한 줄 감사 제목을 적고 특별한 날에는 꾸미기 스티커로 표시해 한 해의 감사 여정을 시각적으로 남겨 감사의 발자취가 남도록 했다. 2026년, 감사로 시작해요! 새해 감사 여정은 ‘열두광주리 새벽기도회’로 시작된다. 홍보국은 새벽기도회에 참석한 성도들에게 ‘달력 꾸미기 스티커 세트’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성도들이 주어진 스티커로 출석일을 표시하고 감사 제목을 기록해 새벽기도회를 완주할 수 있도록 동기를 심어줄 계획이다. 또한 완주한 성도에게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사계 엽서 세트’를 증정해 감사의 실천이 가정과 이웃에게까지 확산 되도록 할 예정이다. 5월은 가정의 달, 감사의 마음 전해요! 완연한 봄, 가정의 달에는 열두광주리 새벽기도회를 완주한 성도에게 전달되는 엽서 세트를 활용해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 이벤트를 마련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부부의날을 맞아 가족과 스승, 이웃에게 감사와 사랑, 존경의 메시지를 엽서에 담아 전하는 시간을 갖는다. 감사의 마음 우리 함께 모아요! 9~10월에는 1년 동안 정성껏 채워온 감사 달력을 제출하는 행사가 열린다. 추수감사주일을 앞두고 ‘감사수기 공모 & 달력 전시’를 진행해 차곡차곡 모아왔던 크고 작은 감사의 결실을 성도들과 함께 나누는 시간을 마련한다. 우수작은 베다니홀에 전시될 예정이다. 소중한 감사 열매, 함께 나눠요! 11월 추수감사주일에는 ‘감사수기 공모전과 달력 전시회’ 시상식을 진행한다. 성도들이 1년간 기록하며 모은 소중한 감사 열매들은 심사를 거쳐 주일 예배 시간에 시상하며 선정된 이들에게는 감사365 북 콘서트 초청권과 기념품을 수여한다.
  • 2025.11.14 / 금지환 기자

    다 감사드리세
  • 17세기 초 유럽은 깊은 혼란 속에 있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100년이 지났지만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 간의 갈등이 여전히 심각했다. 이러한 갈등은 신성 로마 제국 내에서 권력을 차지하려는 여러 왕의 야망과 얽히며 더욱 정세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결국 1618년 보헤미아(체코)에서 개신교 탄압에 대항하여 일어난 반란이 불씨가 되어 유럽 전역을 피로 물들인 ‘30년 전쟁’이 시작되었다. 독일은 이 전쟁의 주 무대가 되어 큰 피해를 입었다. 그중에서도 작센 지역의 작은 도시 아이렌부르크(Eilenburg)가 가장 참혹한 상황을 겪었다. 전쟁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이 도시가 안전할 것이라 믿고 몰려들었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도시는 난민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를 넘었다. 거리 곳곳에는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쓰러진 시신들이 방치되어 있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 마틴 린카르트(Martin Rinkhart, 1586~1649)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가난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목사가 되었다. 하지만 목회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흑사병까지 기승을 부리던 1637년 그는 혼자 하루에 50여 명의 장례를 치렀으며 그해 집례한 장례만 4000건이 넘었다. 더욱이 사랑하는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는 깊은 슬픔을 겪었다. 그러나 린카르트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을 믿으며 묵묵히 자신의 사명을 감당했다. 가진 것을 내어 굶주린 자들을 먹이고 설교 때마다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를 잃지 말자고 권면했다. 어느 날 평소처럼 수많은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그는 방 한가운데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날마다 죽어가는 영혼들을 바라봐야 했다. 그들이 대부분 믿음의 형제자매이며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늘나라의 소망을 품고 있음에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가 흘러나왔다. 그날 저녁 린카르트는 온 가족이 모인 식사 자리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우리가 죽음과 삶의 경계에 서 있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마음과 목소리를 다해 하나님께 감사드리자.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 안에서 기뻐할 수 있다.” 눈앞의 현실은 절망과 고난으로 가득했지만 그의 입술에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감사가 넘쳐났다. 시를 즐겨 쓰던 그는 식사 전 드리던 감사기도를 바탕으로 한 찬송시를 지었다. 그 찬송시가 바로 우리가 부르는 새찬송가 66장 「다 감사드리세」(Nun danket alle Gott)이다. 찬송가 가사에는 그의 믿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다 감사드리세 온 맘을 주께 바쳐/ 그 섭리 놀라워 온 세상 기뻐하네/ 예부터 주신 복 한없는 그 사랑/ 선물로 주시네 이제와 영원히” 참혹한 고난 속에서도 린카르트는 과거부터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여전히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하며 찬양을 올려드렸다. “사랑의 하나님 언제나 함께 계셔/ 기쁨과 평화의 복 내려주옵소서/ 몸과 맘 병들 때 은혜로 지키사/ 이 세상 악에서 구하여 주소서” 그는 전쟁의 폐허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항상 함께하시며 지켜주심을 굳게 믿었다. 참된 기쁨과 평화는 오직 주님께 있으며 주님만이 이 세상의 악과 고난에서 건져주실 진정한 구원자이심을 고백했다. “감사와 찬송을 다 주께 드리어라/ 저 높은 곳에서 다스리시는 주님/ 영원한 하나님 다 경배하여라/ 전에도 이제도 장래도 영원히” 린카르트는 하나님이 세상의 왕이자 통치자 되심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높여드렸다. 그의 고백은 우리로 하여금 전에도 이제도 장래도 영원히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것이 성도로서 마땅한 삶임을 깨닫게 한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이다. 한 해 동안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와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의 손길을 돌아보며 감사드리는 날이다. 감사는 환경을 초월하는 믿음의 고백이다. 기쁨의 순간뿐 아니라 눈물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하신다. 우리는 언제나 감사할 수 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이 절망의 한가운데일지라도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원의 은혜와 영생의 소망을 붙들며 온 마음을 다해 감사드리자. 오늘 우리가 드리는 감사의 고백이 모든 어둠을 이기고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5.11.14 / 김용두 기자

    11월 22일(토) - 우리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
  • ◎ 말씀 : 딛 2:11~13 ◎ 찬송 : 310장(통 410장)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종교적 행위나 철학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구원할 뿐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이 은혜만이 돌 같은 마음을 깨뜨리고 경건하지 않은 것과 세상 정욕을 버리게 합니다. 나아가 우리를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여 새사람이 되게 하고 근신함과 의로움, 경건함으로 살아가도록 가르칩니다. 이처럼 은혜는 단지 감정이나 위로가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변화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진정으로 경험했다면, 그 은혜는 반드시 삶에 흔적을 남깁니다. 경건한 삶은 구원받은 자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은혜를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로 나를 새롭게 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된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11.1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1월 21일(금) - 지금이 전도할 때입니다
  • ◎ 말씀 : 딛 1:3 ◎ 찬송 : 305장(통 405장) 하나님은 정하신 때에 복음을 세상에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때”는 헬라어로 ‘카이로스’입니다. 마침내 카이로스의 때가 이르자 예수님이 오셔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그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바울 역시 하나님의 때가 이르자 맡겨진 전도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복음은 단지 교리나 지식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능력입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이들이 생명의 말씀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그들은 들을 수 없습니다. 듣지 못하면 믿을 수 없고 믿지 못하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지금은 전도의 문이 열려 있는 때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복음을 듣도록 우리는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을 전할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며 행동하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전도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생명을 전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11.1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1월 20일(목) - 진정한 구원자
  • ◎ 말씀 : 겔 23:9~10 ◎ 찬송 : 435장(통 492장) 에스겔 23장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두 여인 오홀라와 오홀리바로 비유하며 하나님을 배신한 그들의 행위를 영적인 간음으로 묘사합니다. 북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신흥 강대국 앗수르를 의지했습니다. 그들은 앗수르가 자신들을 보호하고 구원해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앗수르의 침공으로 멸망했습니다. 세상의 힘은 진정한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의 권력이나 재물은 잠시 위로를 줄 뿐 영원한 안식은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참된 구원자이십니다. 그러므로 고난 속에서 세상을 붙들기보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해야 합니다. 실패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은 구원의 길을 제시하십니다. 오늘도 삶의 방향을 세상에서 찾지 말고 하나님께 돌아오십시오. 오직 그분만이 우리를 끝까지 지키십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어떤 문제가 와도 세상이 아닌 진정한 구원자이신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11.1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66) 순복음의 7대 신앙-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79>
  • 과격하고 무례한 부모의 훈육은 자녀에게 상처와 분노 남겨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 교만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5). 부모들이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자녀가 자신들의 소유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녀들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하나님의 기업이요 선물이다. “보라 자식들은 야훼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 127:3). 유대인의 교훈 중에는 “신(神)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드셨다”라는 말이 있다. 즉, 어머니는 신(神)의 대리자라는 의미이다. 그만큼 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자녀들을 기르는 중요한 사명을 위임받은 청지기이다. 청지기는 주인이 아니다. 하나님의 소유물을 자기 생각대로 함부로 대하거나 처리해서는 안 된다. 이후에 주인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지 않으려면 맡겨주신 자녀들을 사랑으로 보듬으며 자녀에게 절대로 무례히 행치 말아야 한다. 시인이요 철학자였던 칼릴 지브란은 『예언자』라는 책에서 자녀에 대한 부모의 소유의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계한다. “당신의 자녀는 당신의 것이 아니다. 자녀는 당신을 통하여 나왔을 뿐 당신이 만든 것은 아니다. 비록 자녀는 당신과 함께 있지만, 당신의 소유물은 아니다. 당신은 자녀에게 당신의 사랑을 줄 수는 있지만 당신의 생각들을 줄 수는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자녀는 스스로 생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자녀의 몸을 머물게 할 수는 있지만, 자녀의 영혼을 머물게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자녀의 영혼은 미래의 집에 살고 있으며, 당신은 꿈속에서조차 그곳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자녀처럼 되려고 애쓰는 것은 좋지만 자녀를 당신처럼 만들려고 하지는 마라. 위대한 생명은 뒤로 물러가지 않으며, 결코 어제에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녀를 훈육할 때 부모는 조심해야 한다.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무례히 행함은 옳지 않으며, 감정적으로 분노를 쏟아내도 안 된다. 어떤 부모는 성경이 매를 허락했다는 이유로 가혹하게 매를 들고는 자신은 성경대로 행했다며 합리화한다(잠 13:24). 물론 자녀를 양육할 때 때로는 엄한 훈육이 필요할 때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때에도 상황과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훈육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절대로 과격하고 무례하게 자녀를 몰아붙여 그 마음에 분노를 쌓이게 해서는 안 된다. 자녀를 위한 부모의 희생은 사실 자신들이 받은 은혜를 되돌려 주는 것이다.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부모들도 자신의 부모로부터 아낌없는 희생과 사랑을 받아 이만큼 성장했고, 받은 그 사랑을 다시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권리의식이 아니라 ‘내리사랑’이며 이는 하나님이 만드신 가장 숭고한 사랑의 모습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5.11.1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윤광현 목사(동작성전 담당) - 추수 감사의 진정한 의미
  • 황금빛으로 물들었던 들녘은 가을걷이도 끝나고 농부가 흘린 땀방울은 한 해의 열매로 결실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은 그 풍성한 결실을 보며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아름다운 절기입니다. 우리는 이 감사의 본질은 단순히 “많이 거둔 것”에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추수감사절이 ‘누구에게 드리는 감사인가’와 그리고 ‘무엇을 드리는 감사인가’를 다시 묵상할 때 추수 감사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추수 감사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시간이었습니다. “네 하나님 야훼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야훼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야훼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신 16:15). 추수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손길이 아니면 어떤 곡식도 자라날 수 없다는 고백이 담겨 있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에 백성은 첫 열매를 거둘 때마다 그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곡식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 되신다”는 믿음의 고백이 바로 그 제사의 중심이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해 동안 우리가 거둔 결실-건강, 가정, 일터, 관계, 그리고 믿음의 열매-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진정한 추수 감사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것은 풍성할 때뿐만 아니라 부족할 때도 드리는 감사입니다.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고 고백했습니다. 그 고백 속에는 ‘환경의 풍성함’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의 충만함’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감사는 소유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마음의 열매입니다. 추수감사절에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단지 헌금이나 곡식의 일부를 드리는 행위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삶을 다시 하나님께 드리는 결단입니다. 이번 추수감사절은 ‘감사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풍성한 결실이 아닌 결실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께로 돌리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경작하시고 다음 계절의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주십니다. 오늘 우리의 감사의 예배가 단지 입술의 고백으로 그치지 않고, 삶으로 드려지는 예배이기를 소망합니다. 감사의 제단 위에 우리의 마음을 올려드릴 때 하나님께서 그 향기를 기쁘게 받으시며 새로운 은혜의 추수를 허락해 주십니다. “야훼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07:1).
  • 2025.11.1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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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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