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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감사
  •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라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로새서 2장 5∼7절)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감사보다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감사는 성숙한 신앙인의 가장 귀한 모습입니다. 감사는 절망적 상황을 희망적 상황으로 바꾸어 놓는 위대한 능력입니다. 감사는 과거의 어두운 내 마음속 모든 상처를 씻어 버리고, 오늘을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살게 하며, 거룩한 꿈을 품고 희망의 내일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도구입니다. 중세의 성자 성 어거스틴이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을 설명하면서 “믿음, 소망, 사랑에 한 가지를 더하라면 감사를 더 하겠다.”라고 했습니다. 감사는 믿음, 소망, 사랑의 완성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난 후 우리는 평생 감사해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은 은혜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 없이 사는 것은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메마르고 건조한 신앙이 될지 모릅니다. 감사가 풍성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넘치게 임하는 것입니다. 1. 믿음의 굳건함 사도 바울이 골로새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지난주에 하남에 새 성전을 지은 교회를 방문했는데 그 교회 이름이 ‘감사드림교회’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감사를 강조하는 것에 큰 도전을 받아, 담임목사님이 전 성도에게 감사라는 이름을 넣어서 교회 이름을 짓자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 성도가 찬성해서 ‘감사드림교회’가 되었습니다. 교회를 짓고 나서 감사밖에 드릴 것이 없다고 그 담임목사님은 고백합니다. 우리가 넘치는 감사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감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우리는 굳건한 믿음으로 먼저 무장되어야 합니다. 골로새서 2장 5절은 말씀합니다.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 신앙생활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아직 초보적인 신앙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쉽게 시험에 들고, 상처받고 넘어지고, 어린아이가 조금만 불편하면 울듯이, 무언가 불편하다고 자꾸 말이 많아지는 것은 아직 내 신앙이 초보적인 신앙, 어린 신앙에 머물러 있다는 뜻입니다. 믿음이 성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히브리서 6장 1절에서 2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침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밤낮 제자리걸음 하지 말고 더 나은 모습으로, 완전한 모습으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하면서 믿음이 자라나야 합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 감사의 근원 되시고 우리 믿음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은 말씀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주님께 딱 시선을 고정하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우리 삶 가운데 풍성한 감사가 임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바라보고 환경을 바라보고 나 자신을 바라보면 때때로 우리가 낙심하고 실망하고, 또 상처받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쏟아놓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바라보면 우리 주님은 절대 긍정, 절대 희망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넘치는 감사함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2.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 나의 주 되심으로 인하여,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골로새서 2장 6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여러분, 예수를 믿고 난 다음 삶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 여러분을 구원하신 구세주 예수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삶의 주인이 바뀌었는데도 주인 되신 예수님을 높이고 주의 뜻을 따르지 아니하고 여전히 옛사람의 모습을 따라가는 것은, 아직 내 믿음이 성숙하지 못하고 은혜를 제대로 체험하지 못한 모습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만 믿고 바라보고 나아가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복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뭔가 우리를 안심시키는 것이 없습니다. 전쟁이 일어나서 환율이 오르고, 기름값이 오르고, 경제는 어렵고,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속인을 찾아갑니다. 최근에 제가 자료를 찾아보니까 2025년, 26년 기준으로 무속인, 무당의 수가 약 80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2천년대 초반에 무당 숫자가 20만 명이었으니까, 20년 동안에 4배가 늘었습니다. 불안한 경제 상황,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무속 콘텐츠의 대중화로 말미암아 무속인이 급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드라마를 틀면 뭐 이렇게 TV에 무속인들이 많이 나오는지,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무속인이나 세상의 인간들이 만든 우상은 우리에게 참된 기쁨과 만족감을 주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 삶에 참된 기쁨과 만족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고 빈 우상이 우리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과거의 어둠을 보는 귀신이 들린 무당들이 좀 있는데 그래서 뭐 “족집게 무당이다.” 그러는데 그 사람들이 과거는 봐도 절대 미래를 보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과거를 보니까 “대단히 용한 점쟁이다.” 그래서 그 앞에 줄을 섭니다. 한 번 무당 앞에 가서 점을 치려면 몇 달씩 기다려야 되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요. 그것은 다 거짓 영이 우리를 속이는 것입니다. 절대 우리의 미래를 얘기해 주지 못합니다. 우리의 어두운 부분을 들춰내서 “너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지?” 하고 마음에 두려움을 넣어 놓고 그것을 가지고, 거기에 현혹하게 해서 돈을 갖다 바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 외에는 우리 삶에 참된 기쁨과 만족을 주실 분이 없습니다. 주님 외에는 우리의 미래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인도하실 분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한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기 때문에 우리가 바른길을 갈 수 있고, 우리의 삶 속에 주님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게 되고, 우리가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갈 자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내 삶의 중심에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야 합니다. 사나 죽으나 이 몸은 주님의 것입니다. 내 일생 소원 우리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주님을 더욱 닮아가고, 주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죽어 지면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셔서 우리의 삶을 그러한 놀라운 은혜 가운데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일생의 신앙의 고백인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우리 다 같이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우리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입니다. 절망하고 그저 어둠에 갇혀서 부정적인 얘기만 하고, 원망, 불평하는 옛사람은 죽었습니다. 죽었어요.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부활의 영으로 오셔서 내 삶의 주인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로다.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면 영원히 잘 됨같이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한 은혜를 우리에게 더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면서 우리는 모든 걸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맡기면 주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5절은 말씀합니다. “네 길을 야훼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주님께 믿고 의지하고 맡기면 주님이 모든 걸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천년만년 살고 지고 하는 것 같지만 우리가 제한된 시간 속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하나님 부르시면 우리는 가야 합니다. 그렇기에 하루를 살아도 의미 있게 보람 있게 행복하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문제와 어려움을 만날 때 엎드려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토요일마다 기도원에 올라가서 기도굴에 엎드리면 그렇게 마음이 평안할 수가 없습니다. 엎드려서 하나님께 다 맡깁니다. “주님, 저는 감당하지 못합니다. 주일날 그 많은 성도님이 오시는데 주님께서 일일이 그 마음을 어루만져 주셔서 상처 입은 영혼을 치료하여 주시고, 낙심한 심령에 새 힘을 허락하여 주시고, 병든 육체를 주님이 고쳐주시고, 주님의 기쁨을 충만케 하여 주옵소서.” 그냥 주님께 다 맡기고 오면 마음이 편안합니다. 그래서 토요일 날은 하루 종일 저는 찬송만 듣습니다. 그냥 찬양을 들어놓고 있으면 그 찬양이 얼마나 마음에 기쁨과 평안함을 주는지…, 여러분,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사람의 소리를 듣고 흔들리지 말고, 환경이 가져다 주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예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빌립보서 4장 6절, 7절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염려할 시간에 기도와 간구를, 감사를 드리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우리 주님으로 모시고 살면 그저 감사할 것밖에 없습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기뻐하고 감사하며 주님 안에서 맡겨진 사명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일생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감사는 성숙한 신앙인들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저는 물론 문제도 있고 여러 가지로 요즘 전 세계 사람들이 많은 말을 하는 나라이기도 하지만 ‘왜 미국이 잘 살까?’ 제가 미국에서 담임 목회자로 한 7년 반, 교회를 섬기는 가운데 미국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것이 뭐냐? 감사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감사. 그들은 감사 문화 속에 나라를 세웠습니다. 무슨 감사냐?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1620년, 100여 명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와서 감사 제단을 쌓은 것입니다. 그때 도착하자마자 저 매사추세츠 동북부 플리머스라는 데를 가보면 도착하자마자 지은 교회가 있습니다. 그들이 감사로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감사를 통해서 나라가 복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1776년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미합중국을 세우고 올해로 250주년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렇게 세계 최대의 강대국으로 세워주신 것은 감사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를 당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어려워도 감사하고 답답해도 감사하고 힘들어도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복이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 넘치는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은 말씀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넘치는 감사로 우리가 나가야 되는데, 골로새서 2장 7절은 말씀합니다.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누가 감사할 수 있느냐? 믿음이 있는 사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3장 17절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믿음과 십자가, 사랑으로 충만하게 될 때 우리는 넘치는 감사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감사하면 삶이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축복이 임합니다. 기적이 임합니다. 내 삶에 지금 문제가 많아서 정말 개인적으로 힘들고 가정에 여러 가지로 어려운 일이 많을 때 여러분의 감사를 뒤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감사하지 못했구나. 내가 주시는 은혜가 너무나 많았는데 원망하고 불평했구나.” 오늘 이 시간 여러분 마음의 자세를 바꾸기 바랍니다. “나는 한평생 감사하며 살리라.” 그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에베소서 5장 17절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주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주님 안에서 넘치는 감사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3. 넘치는 감사 골로새서 2장 7절 다시 봉독합니다.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살아 숨 쉬는 동안 넘치는 감사의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1690년에 증기기관의 핵심 기술을 발명해 낸 프랑스 물리학자 드니 파팽이 있습니다. 드니 파팽이 이와 같은 말을 했습니다. “나는 세 가지로 인해 늘 감사한다. 첫째는 날마다 주시는 일용할 양식이요, 둘째는 몸의 건강이요, 셋째는 영원한 삶을 향한 소망이다.” 우리는 이미 세 가지를 다 갖고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이 있습니다. 지금 일용할 양식이 없어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더 많이 가지려고 해서 문제지, 또 많이 먹어서 이게 자꾸 배가 나오고 비만이 되어서 문제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려 죽는 사람 없습니다. 일용할 양식이 있고, 또 몸의 건강을 주신 것. 여러분이 건강한 몸으로 이렇게 나와서 주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리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 얼마나 감사합니까? 어저께 우리 교회 장애인대교구에서 한 2000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데, 감사가 넘쳐납니다, 감사가. 그들이 우리보다 조금 불편한 몸을 갖고 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분도 있고, 듣지 못하는 분도 있고, 말을 못하는 분도 있고, 신체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그런 지체 장애를 가진 분이 있지만 감사해요. 넘치는 감사. 그냥 얼굴이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여러분, 기도하고 감사하면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4장 2절입니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에베소서 5장 20절입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여러분, 시편 50편 23절을 보면 감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 앞에 올바른 행위요,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놀라운 역사인 것입니다. 여러분, 결심해야 합니다. “한평생 감사하며 살리라. 답답해도 감사, 억울해도 감사, 괴로워도 감사, 슬퍼도 감사, 몸이 아파도 감사, 감사, 감사, 감사하면서 살리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위대한 선언이 나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러분, 지금 나에게 어려움이 다가오고 문제가 다가오고 병이 나서 몸이 아프고 이것은 하나의 지나가는 과정입니다. 우리를 더 잘 되게 만들어주셔서 우리를 연단시키는 것입니다. 고난은 축복의 도구입니다. 요셉이 꿈꾸고 13년 동안 말할 수 없는 연단을 받았습니다. 노예로 팔려 갔다가 누명을 써서 감옥에까지 갔습니다. 그러나 13년을 그가 믿음으로 지켜냈기 때문에 긍정의 믿음으로, 감사의 믿음으로 지켜냈기 때문에 30살이 되어서 당시 최대 강대국인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주님이 높여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일생 살아가면서 주님의 은혜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은혜」를 작곡, 작사 작곡한 손경민 목사님. 이분은 사실 모든 것이 은혜라고 고백할 수 없는 참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태어났을 때 아버지가 집을 떠나시고, 빚에 쫓겨서 거리에 나앉을 그러한 형편에 처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낮에는 가사도우미와 산후 도우미로, 밤에는 식당에서 밤늦게까지 일하면서 자녀를 돌보았습니다. 그래서 이 손경민 목사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신문 배달, 구두닦이를 하면서 학업과 일을 병행하게 되었습니다. 몸이 아주 많이 망가졌어요. 그래서 군대 가서 신체검사를 받는데, 간 수치가 20에서 30배가 높아서 불합격, 내년에 다시 와서, 또 검사를 받으라고. 다음에 또 가서 신체검사 받는데 너무 간 수치가 높아서 또 불합격, 내년에 또 오라고. 그래서 세 번째 가서 검사를 받는데, 아직도 간 수치가 너무 높아서 군대 면제. 그리고 ‘당신은 곧 간경화가 올 테니까 빨리 병원에 가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기가 몸이 안 좋아서 군대 면제받으면서도 뒤를 돌아보면 다 주님의 은혜였고 감사했다고 말합니다.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그의 어머니께서는 단 한 번도 힘들다고 어렵다고 부정적인 말을 입에 담아본 적이 없으신 절대 긍정의 믿음의 소유자이셨습니다. 아침이면 이른 새벽에 아들을 깨워서 30분을 걸어서 교회를 가서 맨 앞자리에 앉아서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늦은 밤 일이 끝나고 집에 들어오셔서 아이들이 잠을 자고 있으면 머리에다 손 놓고 안수하며 다시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는 참으로 위대한 어머니였습니다. 어려운 형편이지만 토요일마다 동네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 모아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나눠주면서 전도하셨고, 밖에 나가 김을 팔 때에도 “예수님 믿으세요. 예수님을 믿어야 죄 용서받고 천국에 갑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행복합니다.” 늘 당당하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어머니 덕분에 한 번도 자기는 불행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았지만, 늘 감사가 넘쳐났습니다. 행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2018년, 목사 안수를 앞두고, 이제 가사를 묵상하다가 ‘삶의 은혜가 무엇인가?’ 그 은혜에 감사하면서 지은 찬송이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결국 모든 것이 은혜가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게 되어서 「모든 것이 은혜」라고 하는 찬송을 지었는데, 이 찬송이 코로나 때 수많은 성도에게 큰 위로를 선물로 주었고, 3천만 명이 넘는 사람이 이 유튜브를 듣고 감동했고, 또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감사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가사를 작사하던 어느 날, 갑자기 목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동네 병원에 가도 차도가 없어 대학병원에 가니까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수술을 기다리는 중에 둘째 아이가 또 폐렴으로 입원합니다. 갓 태어난 아이는 또 저 아내가 이 아이를 돌봐야 하는 그런 어려운 상황인데, 지금 집 안에 환자가 많아서 환자를 돌봐야 했습니다. 어머니가 첫째와 셋째를 돌보고 있었는데 무릎 통증으로 가보니까, 또 어머니도 수술을 받아야 한대요. 너무 힘들고 어려운데 그가 지었던, 차 안에서 감사에 대한 그 가사가 마음속에 떠올랐습니다. ‘오늘 숨을 쉬는 것 감사, 나를 구원하신 것 감사, 내 뜻대로 안 돼도 주가 인도하신 것 모든 것 감사’ 자기가 눈물 흘리면서 진정한 감사를 드리지 못한 것을 회개하면서 감사에 대한 고백을 드렸습니다. “이제는 한평생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감사하며 살리라. 이것이 내 신앙의, 하나님 앞에 드리는 아름다운 나의 고백이요, 내 삶이 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그는 살아 숨 쉬는 동안 이 감사와 이 은혜를 어린아이부터 모든 어른에게 전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이런 고백을 합니다. “어느덧 저 역시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는데요. 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사는 삶, 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하며 사는 삶, 기도하며 주 뜻대로 사는 삶이 진정한 ‘행복’임을 믿고 우리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습니다.” 할렐루야. 모든 것이 감사고, 모든 것이 행복이고, 모든 것이 은혜라고, 그는 고백합니다. 여러분, 일생 살아가는 동안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음성가 '은혜'> 후렴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한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것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1절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아침 해가 뜨고 저녁의 노을 봄의 꽃향기와 가을의 열매 변하는 계절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2절 내가 이 땅에 태어나 사는 것 어린아이 시절과 지금까지 숨을 쉬며 살며 꿈을 꾸는 삶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며 오늘 찬양하고 예배하는 삶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축복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기도> 사랑의 하나님,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오늘 이 시간, 이 자리까지 저희가 살아온 모든 것이 은혜였습니다. 인생의 굽이굽이 굴곡진 그 어려운 시점마다 주님이 붙들어 주셨고 함께하셨고 은혜 주셔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수많은 고난을, 눈물의 골짜기를 지날 때 눈물을 닦아주시고 마음의 평안함을 주셨던 주님의 은혜를 이 시간 다시 기억하고, 한평생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2026.04.1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이영훈 목사, 남·여선교회 모범봉사자 표창
  • 이영훈 담임목사는 15일 성전비서실에서 남선교회 윤한율(심방실)·박선규(교통실) 안수집사와 여선교회 이병례 권사(은평성전 지회장)에게 모범봉사자 표창장을 수여했다. 이영훈 목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교회를 위해 한평생 충성하고 헌신하는 봉사자들에게 하늘 나라의 상급이 클 것이다”라고 격려하고 축복기도했다.
  • 2026.04.17 / 복순희 기자

    김열매 선교사(V국)
  • - 종려나무집 학생들이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 한국 전주로 파송된 청년이 하나님 보호하심 속에 맡은바 사명 다하도록 - 현지인 목회자와 청년 사역자가 사역을 충성되게 감당하도록
  • 2026.04.17 / 오정선 기자

    성경의 무게(The Weight of the Bible)
  • 1562년 네덜란드 판화가 위제 알라드(Huijeh Allardt)가 새긴 한 장의 그림은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큰 울림을 준다. <성경의 무게(The Weight of the Bible)>라 불리는 이 판화는 종교개혁의 핵심 원리인 ‘오직 성경’을 가장 직관적으로 시각화한 작품이다. 그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천장에 매달린 커다란 저울이다. 그림의 중앙에 있는 이 저울은 작품 전체를 좌우로 나누는 기준이 된다. 저울에 달린 양쪽 접시 위에는 서로 다른 물건들이 놓여 있어 긴장감을 자아낸다. 왼쪽 저울 접시 위에는 화려한 것들이 가득하다. 교황의 절대 권위를 상징하는 삼중관(Tiara), 베드로의 열쇠 그리고 수 세기 동안 교회를 지탱해 온 방대한 교회법전과 전통의 기록 등이 쌓여 있다. 반면, 오른쪽 접시에는 단 한 권의 책, 성경만이 놓여 있을 뿐이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다르다. 온갖 물건들이 쌓인 접시는 가볍게 위로 솟아올라 있고, 아무런 장식이 없는 성경 쪽 접시는 바닥에 묵직하게 내려앉아 있다. 알라드는 이 극적인 대비를 통해 진리의 힘을 드러낸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무리 화려하고 거창해도 말씀이라는 실재적인 무게 앞에서는 깃털처럼 가볍다는 사실이다. 저울이 성경 쪽으로 기울자 당황한 수도사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어떤 이는 접시 위로 올라가 무게를 더하고 어떤 이는 체중을 실어 저울의 줄을 아래로 끌어당긴다. 심지어 그들 틈에는 사탄의 기만과 속임수를 상징하는 이미지까지 가세하여 저울을 조작하려 애쓴다. 이 장면은 인간의 종교적 열심이나 인위적인 노력이 진리를 이길 수 없음을 풍자한다. 성경에 담긴 진리는 노력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증명한다. 성경 주변에 서 있는 루터와 칼뱅을 비롯한 종교개혁가들을 보라. 그들은 저울을 붙들거나 조작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말씀이 지닌 본연의 무게가 승리하는 과정을 확신에 찬 눈빛으로 지켜볼 뿐이다. 종교개혁가들의 머리 위 벽면에는 둥근 초상화들이 걸려 있다. 이들은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이전에 먼저 믿음의 길을 갔던 초대교회 사도들과 교부들이다. 알라드는 이 장치를 통해 종교개혁이 결코 ‘새로운 종교’를 만드는 혁명이 아님을 나타낸다. 성경의 무게를 지지하는 이들은 교회의 가장 뿌리 깊은 선조들이었다. 종교개혁은 변질된 전통의 가벼움을 걷어내고, 사도 시대로부터 이어져 온 말씀의 묵직한 정통성을 회복하는 운동이었던 것이다. 성경 한 권이 지닌 무게 속에는 구약의 예언자들로부터 신약의 사도들 그리고 초대교회의 순교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신앙의 선배들이 고백했던 진리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위제 알라드의 저울은 오늘날 우리 각자의 삶 앞에도 놓여 있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저울 위에 수많은 가치를 올려둔다. 나의 경력, 사회적 평판, 쌓아 올린 지식, 안정적인 미래라는 이름의 무거운 짐들을 한쪽 접시에 가득 채우곤 한다. 때로는 그 무게가 너무나 대단해 보여서 그것이 내 인생을 지탱해 줄 절대적인 무게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고난의 폭풍이 불어오고 삶의 본질적인 의미를 물어야 하는 순간이 오면 그 화려했던 것들이 얼마나 가볍게 흩어지는지를 경험하게 된다. 그때 우리를 바닥에 단단히 고정해 주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말씀의 무게를 견디는 신앙이란 내 삶의 모든 판단 기준을 그 묵직한 성경 아래에 두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때로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는 불편함일 수도 있고 나의 자아를 짓누르는 거룩한 부담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무게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는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잡힌 인생을 살 수 있다. 위제 알라드가 묘사한 저울의 바늘은 지금도 변함없이 성경을 가리키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과학적 이론과 화려한 문화를 동원하여 저울의 균형을 맞추려 해도 진리의 질량은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신앙의 모습은 저울 접시 위에 더 많은 장식품을 얹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를 유혹하는 가벼운 것들로부터 눈을 돌려, 바닥에 묵직하게 닿아 있는 말씀의 무게를 온몸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그 거룩한 성경의 무게를 신뢰하며 나아갈 때 우리는 그림 속에 있는 종교 개혁가들처럼 흔들리지 않는 평온함으로 세상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 2026.04.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플로깅부터 QR까지…청년들의 노방전도 
  • 오프라인 전도가 온라인으로도 이어져 소통 공감 전도 위해 청년들 지혜 모아 쓰레기봉투를 들고 거리로 나선 청년들의 손길이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됐다. 꽃구경 인파 속에서 버려진 컵을 줍는 섬김에 마음을 연 시민들은 청년들이 건넨 전도 물품을 받아들었다. 전도 방식이 빠르게 변화하는 가운데 ‘노방전도’ 역시 소통과 공감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여의도 벚꽃축제가 한창이던 12일, 축제 거리 일대에서 우리 교회 대학청년국 카리스선교회 청년들이 환경 정화에 나섰다. ‘세상을 치유하는 플로깅 캠페인’을 주제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청년 300명이 참여했다. 청년들은 쓰레기를 수거하며 시민들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전도 물품을 건네며 선한 영향력을 전했다. 이 같은 시도에는 전도를 위한 청년들의 고민과 지혜가 담겨있다. 특히 이날 선교부 최명철 총무가 기획한 ‘내 마음의 봄날 찾기’ QR 이벤트는 시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꽃으로 피어난다면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나요?”와 같은 질문에 답하면, 각자의 유형에 맞는 성경 구절을 받아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참여자들은 부담 없이 이벤트에 참여하고 선물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복음을 접하는 시간을 가졌다. 최 총무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표현으로 복음을 전하고자 AI를 활용해 치유와 회복의 언어 그리고 전도 상황에 맞게 키워드를 입력해 제작했다”며 “매달 진행하는 플로깅 행사 역시 교회 안에 머무르지 않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SNS로 홍보할 예정”이라고 했다. 노방전도의 변화는 ‘접근 방식’에서 두드러진다. 단순히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짧은 만남 속에서도 관계를 형성하려는 시도가 강조되고 있다. 음식 나눔이나 상담, 참여형 이벤트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하는 방식이 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오프라인 전도가 온라인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만난 이들과 QR코드나 SNS를 통해 다시 소통을 이어가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노방전도와 온라인 전도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연결되는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비전브릿지선교회 전도팀(THE99)은 한 달에 2~3회 수요일 새벽예배 후 국회의사당역 인근에서 노방전도에 나선다. 이 전도를 위해 청년들은 금요성령대망회 이후에 모여 직접 전도 물품을 제작한다. 그때그때의 아이디어를 담아 직접 일러스트를 디자인하고, 대학청년국 홈페이지로 연결되는 QR코드를 넣어 예배를 안내하고 있다. 박혜령 전도총무는 “이 작은 전도지를 통해 하나님을 궁금해 하는 마음이 생기길 바란다”며 “출근길에 잠시라도 말씀을 묵상하고 위로를 얻는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출근길로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전도지를 건네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청년들은 복음을 전하는 기쁨과 사명을 현장에서 경험하고 있다. 수없이 거절을 마주하는 순간에도 멈추지 않는 이유는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다. 거리에서 시작된 만남이 온라인과 일상의 관계로 스며들며 구원의 기쁜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전도의 방법은 시대에 따라 다양해지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자라는 복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 2026.04.17 / 김주영 기자

    따뜻한 공감으로 교회로 돌아오는 청년들
  • 교회 리더십, 영적 부모 역할 감당 공감은 ‘정신적 산소’, 적절한 좌절도 필요 ◎ 고민Tick 청년들이 교회와 멀어지고 교회를 떠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청년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이 있을까요? ◎ 상담Talk 교회로부터 멀어진 청년 중에는 진학과 취업의 이유로 가정에서도 독립한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청년들에게 교회 리더십은 영적 부모의 역할을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필자는 지난 2년간 청년 담당 목사로서 목회 상담 집단 프로그램, 바울서신과 로마서, 잠언에 상담적 관점을 적용한 강해 설교, 금요 철야 예배 전 개인 상담과 진로 상담을 진행했다. 청년들은 다양한 목회 상담 사역 모델을 통해 공감 해주는 사역자를 건강한 자기대상(selfobject, 자기가 ‘자기의 일부로 경험하는 대상’)으로 경험하면서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체험하고 청지기적 사명을 찾게 됐다. 한 청년은 본인 은사와 맞지 않는 전공의 대학을 졸업한 뒤 20대 후반까지 계속 취업에 실패했다. 그런데 청년 수련회 때 성격유형검사를 받고 필자와의 진로 상담을 통해 본인 은사에 맞는 전공으로 편입하면서 이 청년은 자존감을 회복하고 일터에도 취업했다. 또 다른 청년은 많은 아동들이 꿈으로 이야기하는 소방관의 꿈을 청년기까지 이어왔다. 그러던 중 이 청년은 본인이 불을 무서워한다는 솔직한 이야기를 목회상담자인 필자에게 평생 처음으로 표현했다. 올해는 청년부 회장까지 맡아서 토요 청년 찬양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토요일에 쉴 수 있는 다른 문화재단으로 이직까지 하는 성숙한 신앙을 보여주었다. 청소년 시절 학교 문제로 힘들어하다가 대학에 입학하지 못한 한 청년은 목회 상담을 받고 심리적으로 회복된 뒤 청년 공동체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다시 느끼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음악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해 청년 예배 찬양단과 대학 공연팀에서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마음껏 펼치고 있다. 지역 교회에서 자신의 은사를 헌신적으로 발휘한 자기심리학자 하인즈 코헛(Heinz Kohut)은 자기대상과의 건강한 관계 경험이 어떠했는가에 따라 인간은 ‘응집적 자기’ 또는 ‘파편화된 자기’를 다르게 구축하게 된다고 했다. 코헛은 ‘응집적 자기’가 형성되기 위해 ‘정신적 산소’인 공감을 충분히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 꼭 산소가 필요하듯 유아는 심리적 산소인 공감과 반영을 자기대상으로부터 받아야 건강한 자기 구조가 구축된다. 유아는 자기대상과의 접촉, 목소리 등을 통해 자기대상의 감정을 자신의 감정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주양육자로부터 공감적 자양분을 공급받지 못할 때 자기의 결핍이 발생하고 수치심을 경험하게 된다. 심리적으로 건강한 자기를 강화하고 회복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공감적 자기대상과의 관계 경험을 통해서 재경험 되며 이는 건강한 자기 발달에 필수이다. 공감적인 자기대상과의 충분한 관계 형성은 심리적 좌절과 외상으로 오는 좌절을 견디고 조율하며 자기대상 관계 안에서 좌절의 경험과 공감의 경험을 반복하면서 현실을 내면화한다. 청년이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절망하고 있을 때 교회 리더십과 사역자의 진심 어린 기도는 청년에게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강함과 담대함을 부여할 수 있었다. 모세와 함께 했던 하나님은 다음 세대인 여호수아와도 함께 하셨음을 청년들이 깨달아야 한다. 교회 리더십이 축복의 통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때에 우리 모두의 기도 제목과 꿈도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수 1:5~6). 박은정 교수(목회상담학)
  • 2026.04.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 2026.04.17 / 육은영 기자

    강광희 권사(여의도순복음청라교회) - 절망의 순간마다 하나님께 감사
  • 절대 긍정과 간절한 기도로 문제 응답 1983년 친구의 전도로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출석하게 된 나는 성령 침례를 받고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요식업을 통해 일터 복음화를 이루겠다는 꿈을 품게 됐다. 결혼과 동시에 우리 부부는 인천에서 작은 일식집을 운영했다. 하지만 막상 장사를 시작하니 여러 어려움이 닥쳐왔다. 그럼에도 우리 부부는 늘 하나님 안에서 ‘잘 된다. 할 수 있다. 해보자. 하면 된다’라는 절대 긍정의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이루기 위해 힘썼다. 하지만 가게 형편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직원의 급여를 마련하기 어려웠고, 당장 집에는 먹을 쌀과 김치마저 다 떨어진 상태였다. 막막한 상황 속에서 우리 부부는 오직 하나님께 매달렸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교회 구역 식구들이 갑자기 찾아와 쌀 한 가마와 김치를 한 들통 가득 담아준 것이다. 형편이 어렵다는 것을 알리지도 않았는데 구역 식구들은 하나님께서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오게 되었다고 전했다. 그때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간절히 구할 때 우리의 필요를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채워주신다는 것을 깊이 체험하게 됐다. 하나님의 이끄심은 이뿐만이 아니다. 사업장 계약 만료를 보름 앞두고도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빈손으로 떠나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였다. 모든 것이 막혀있다고 느껴졌던 그때 나와 남편은 아이들을 업고 여의도순복음교회로 철야예배를 드리러 갔다. 평소처럼 교회로 가는 전철 안에서 우연히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게 됐다. 그런데 알고 보니 얼마 전까지 일본에서 요리를 배우고 돌아와 가게 자리를 알아보던 중이었던 것이다. 우리 사정을 들은 그는 우리 가게를 인수하겠다고 했고, 그렇게 갑작스레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발걸음 속에서 하나님은 이미 응답의 길을 준비해 두셨던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때와 계획이 얼마나 정확한지 깨닫게 됐다. 삶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가장 먼저 기도의 자리로 나아간 우리 부부에게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역사하셨다. 하나님은 남편에게 다시 요식업을 통해 일터 복음화의 사명을 감당케 하셨다. 자녀들 또한 훌륭한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했다. 큰아들은 뮤지컬과를 졸업하고 최근 인천시립극단에서 활동하게 됐다. 둘째 딸은 다시 재기한 아버지의 사업에서 마케팅을 돕고 있다. 이 모든 영광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할렐루야! 나는 요즘 여의도순복음청라교회에서 다시금 기도의 불을 뜨겁게 지피고 있다. 돌이켜보면 내 삶의 모든 문제의 해답은 언제나 기도의 자리에서 시작됐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이겨낼 힘이 기도에 있음을, 기도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통로임을 세상 모든 이들이 알게 되기를 소망한다. 정리=금지환 기자
  • 2026.04.17 / 금지환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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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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