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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4일(토) -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 ◎ 말씀 : 마 5:13~16 ◎ 찬송 : 502장(통 259장)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소금은 자신을 녹여 맛을 내고 부패를 막습니다. 빛은 어둠을 몰아내어 주변을 밝힙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로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지 분명히 하셨습니다. 우리는 비록 적은 무리일지라도 소금처럼 세상에 맛을 내는 사람입니다. 캄캄한 방도 작은 불빛 하나면 환해지듯이 우리는 착한 행실로 세상을 밝힙니다. 소금이 맛을 내고 빛이 어둠을 밝히듯 우리의 선한 행실을 통해 세상이 변화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오늘 하루도 내가 만나는 이들에게 친절과 정직의 맛을 전하고 따뜻한 배려의 빛을 비추며 소금과 빛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소금과 빛의 사명을 잘 감당하여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6.2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7월 3일(금) -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 ◎ 말씀 : 마 4:18~22 ◎ 찬송 : 324장(통 360장) 예수님이 갈릴리 바닷가에서 제자들을 부르셨을 때 베드로와 안드레는 생업을 내려놓고, 야고보와 요한은 가족과 안정된 삶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이 부르심은 단순한 직업의 변화가 아니라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 앞에서 주저하지 않았고, 즉시 그물과 배를 버려두고 새로운 삶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들의 순종은 무엇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하는지 보여 주는 과감한 선택이자 믿음의 결단이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라” 주님을 따르려면 내가 움켜쥐고 있던 익숙한 것을 내려놓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도 주님의 부르심에 기쁨으로 응답하여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부르심에 기쁨으로 응답하며 하나님을 가장 우선시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6.2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7월 2일(목) - 침묵 속에서 드리는 믿음의 고백
  • ◎ 말씀 : 욥 30:20~23 ◎ 찬송 : 546장(통 399장) 오늘 본문에서 욥은 극한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 부르짖지만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신을 잔혹하게 대하시는 것만 같은 하나님의 침묵 앞에서 깊은 절망을 느낍니다. 그러면서도 욥은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아룁니다. 그의 고백은 믿음 없는 불평이 아니라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기에 나오는 솔직한 표현이었습니다. 때로는 잘 다듬어진 경건한 말보다 눈물 섞인 탄식이 더 깊고 진실한 기도가 됩니다. 기도가 막히고 하나님의 응답이 들리지 않는 침묵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면 욥처럼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진실한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가장 적절한 때에 놀라운 위로와 회복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응답이 들리지 않는 침묵의 시간에도 정직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 약속의 말씀 위에 서서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6.2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7월 1일(수) - 내 공의를 굳게 잡고
  • ◎ 말씀 : 욥 27:1~6 ◎ 찬송 : 543장(통 342장) 욥은 깊은 고난 속에서도 자신의 의로움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친구들의 정죄와 의심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결백을 호소했습니다. “내가 내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라는 고백에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살아온 삶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이 담겨 있습니다. 욥의 고백은 우리에게도 큰 도전을 줍니다.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과 억울한 상황 앞에서 우리는 쉽게 흔들리지만, 욥처럼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눈앞의 현실이 불공평해 보일지라도,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실현됩니다. 이 믿음을 붙들고 욥처럼 고난 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고난 중에도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공의를 바라보며 끝까지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6.2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6월 30일(화) -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 ◎ 말씀 : 계 22:11~13 ◎ 찬송 : 176장(통 163장) 예수님은 우주의 시작과 완성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또한 완성을 위해 다시 오실 주님은 우리가 행한 대로 갚아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죄를 짓고 불의하게 산 사람에게는 심판이 따르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 애쓴 사람에게는 하늘의 귀한 상급이 주어질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선택과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합니다. 결국 우리는 뿌린 대로 영원한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인생길을 돌아보며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합니다.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기보다 주님 앞에 서는 날을 신실하게 준비하여,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칭찬과 상을 받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주님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선하고 의로운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6.2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6월 29일(월) - 우리가 바라봐야 할 곳
  • ◎ 말씀 : 계 21:23~27 ◎ 찬송 : 488장(통 539장)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되었을 때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하며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등불이 되어 만국을 비추십니다. 어둠과 거짓은 결코 발붙일 수 없고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만 그곳에 들어갑니다. 이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은 우리가 평생 사모해야 할 ‘영원한 본향’입니다. 불의와 죄로 가득한 세상이나 우리를 절망하게 하는 환경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믿음의 눈을 들어 저 높은 곳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날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믿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때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과 빛이 가득한 그곳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어두운 세상 가운데 살고 있더라도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을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6.2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김덕수 선교사(영국)
  • - 런던 핀칠리순복음교회 전 성도가 성령으로 거듭나 예수님의 증인 되도록 - 유학생 전도의 풍성한 열매와 제자화가 이뤄지도록 - 런던 복음화의 동역자들(장년부, 청년부, 교회학교)이 세워지도록
  • 2026.06.26 / 오정선 기자

    종교와 전통의 굴레
  • 이스라엘 사회 안의 유대교, 그 빛과 그림자 이스라엘 하면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검은 모자에 검은 정장, 양쪽 귀밑으로 길게 늘어뜨린 구레나룻, 두꺼운 경전을 들고 예루살렘 골목을 걷는 남자들. 우리가 흔히 ‘유대인’이라고 상상하는 바로 그 모습이다. 이들이 하레디다. 히브리어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이라는 뜻을 가진 초정통파 유대교도들로 현대 문명과 거리를 두고 토라와 율법을 삶의 중심에 놓는 공동체다. TV도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제한한다. 남성은 평생 토라 연구에 전념하고 여성은 가정을 지킨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그들의 시계는 멈춰 있다. 외부에서 보면 경건해 보이고 때로는 신비롭기까지 하다. 이스라엘은 유대 국가다. 그러나 모든 유대인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건 아니다. 이 나라 안에는 지금 두 개의 균열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하나는 예루살렘 거리에서, 또 하나는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마을에서. 이스라엘 대법원은 2024년 하레디 병역 면제가 위헌이라고 최종 판결했다. 그에 따라 이스라엘군은 하레디 남성에게 징집 명령을 발송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징집 대상 하레디 남성 약 7만9000명 중 실제로 입대한 인원은 2100명에 그쳤다. 나머지는 거부했다. 예루살렘 도심은 검은 모자와 검은 정장의 시위대로 뒤덮였다. 이들의 구호는 간단했다. “토라 공부가 나라를 지키는 것이다.” 하레디의 논리는 분명하다. 레위 지파가 다른 지파와 달리 성직만을 수행하며 전쟁에 나가지 않았듯이, 자신들은 토라를 연구함으로써 나라를 영적으로 지킨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군 복무는 국가적 의무가 아니라 신앙적 타협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세속 시민들의 눈에는 다르게 보인다. 이란과의 전쟁이 한창인 지금, 전선에서 피를 흘리는 병사의 어머니가 묻는다. 왜 내 아들은 가고, 저 아들은 토라를 읽고 앉아 있는가. 신앙의 언어와 희생의 현실 사이에서 이스라엘 사회는 깊이 갈라지고 있다. 이스라엘 건국 초기, 초대 총리 벤구리온이 홀로코스트로 거의 전멸한 유대교 학통을 살리기 위해 불과 400명의 토라 연구자에게 병역을 면제해 준 것이 출발이었다. 그런데 그 400명의 후손이 지금은 전체 유대인 인구의 14%, 약 130만명으로 불어났다. 한편, 2025년 한 해 동안 서안지구에서 극단주의 유대인 정착민들의 팔레스타인인을 향한 공격 건수는 전년 대비 27% 증가한 867건에 달했다. 총격, 방화, 폭력을 포함한 중대 사건은 무려 50% 이상 늘었다. 2025년 한 해에만 하루 평균 다섯 건의 공격이 기록됐고, 3만7000여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강제로 삶의 터전을 잃었다. 이 공격들의 중심에는 ‘힐탑 유스’(Hilltop Youth)라는 극단주의 그룹이 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마을을 습격해 집을 불태우고, 올리브 나무를 뽑고, 모스크와 교회에 혐오 낙서를 남겼다. ‘프라이스 태그’(Price Tag), 즉 값을 치르게 하겠다는 보복 테러다. 그러나 2017년부터 2025년 9월까지 1500건의 살해 사건 중 이스라엘 당국이 수사를 개시한 것은 112건,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단 1건이었다. 종교의 이름 뒤에 법도 멈춰 섰다. 토라를 붙들고 징집을 거부하는 하레디와 하나님의 땅을 지킨다며 팔레스타인 마을을 불태우는 극단 정착민. 두 집단의 언어는 모두 종교다. 그러나 그 종교가 가리키는 방향은 정반대다. 하나는 국가적 책임을 신앙으로 회피하고, 하나는 신앙을 폭력의 도구로 삼는다. 그리고 이 두 극단 사이에서 평범한 이스라엘 시민들은 지쳐가고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장면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필자는 이스라엘을 사랑한다. 그리고 바로 그 사랑 때문에, 이 문제 앞에서 눈을 감을 수 없다. 종교는 인간을 자유케 하도록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종교가 특권의 언어가 되고, 폭력의 명분이 될 때, 그것은 더 이상 하나님을 향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가장 종교적인 사람들에게 가장 날카로운 말씀을 하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마 23:13). 이스라엘의 위기는 밖에서만 오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의 미래에 닥칠 가장 큰 위기는 군사적 위협이 아니라 극단주의 종파 인구의 급증과 세속주의 유대인 국가라는 정체성의 상실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종교가 국가를 삼킬 때 그 국가가 어디로 가는지를 역사는 이미 보여준 바 있다. 한국 교회는 이 장면을 거울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을 향한 기도가 막연한 응원이 아니라 이 내부의 균열을 알고 드리는 중보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면 그 사랑 안에는 이 어두움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요셉 목사
  • 2026.06.2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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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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