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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를 타신 예수님
  •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마태복음 21장 6∼9절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2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을 기념하여 드리는 참으로 뜻깊은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모든 백성이 나와서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겉옷을 펴서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종려나무 가지를 펴고 그렇게 예수님을 맞이합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예수님의 마지막 한 주간이 시작됩니다. 이 한 주간을 ‘고난 주간’, ‘수난 주간’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한 주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사복음서의 약 30%가 마지막 일주일간의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33년 반 동안 사셨는데, 3년 반 동안 공생애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일주일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사복음서의 3분의 1 가까이, 그리고 마가복음하고 요한복음의 약 40%가 마지막 1주간의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주일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월요일에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고,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에 모든 장사하는 사람을 내쫓으시며, 성전을 정결케 하셨습니다. 화요일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종교 지도자들과 많은 논쟁을 하십니다. 수요일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일 공모를 하고, 예수님은 기도와 명상으로 십자가 고난을 준비하셨습니다. 목요일,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최후의 만찬을 하신 후에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시다가 금요일이 되었을 때 한밤중에 가룟 유다가 군인들을 이끌고 와서 예수님을 붙잡아 당시 대제사장 가야바의 장인 안나스에게로 데려가고, 그다음 가야바 대제사장에게 가서 심문을 받고, 실제적인 모든 권한을 쥐고 있는 빌라도 총독에게 갔다가 다시 헤롯왕에게 가서 심문을 당하고, 다시 빌라도 총독에게 와서 최종 사형 판결을 받습니다. 이 모든 것이 새벽 3시부터 6시까지 적법한 절차 없이 불법 재판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사형 선고를 받으시고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사, 오후 3시에 운명하십니다. 토요일, 안식일에는 무덤에 쉬고 계시다가 주일 새벽에 주님은 부활하십니다. 이 한 주간은 예수님의 고난을 깊이 생각하는 뜻깊은 한 주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천여 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것은 주님의 그 겸손하신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왕처럼 당당하게 말을 타고 앞뒤에 호위 군사를 이끌고 들어오신 것이 아니라, 어린 나귀 새끼를 택하여 그 나귀 새끼를 타시고, 겸손한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1. 나귀 새끼를 택하신 예수님 만왕의 왕 되신 예수님께서 가장 겸손하고 낮아진 모습으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이 예루살렘 입성에 대한 예언은 약 500년 전에 스가랴 선지자가 이미 예수님의 이와 같은 예루살렘 입성을 예언해 기록해 놓았습니다. 스가랴 9장 9절입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왕들은 자기의 위엄과 권세를 나타내기 위해서 출정을 나갔다가 돌아올 때 말을 타고 들어오면서 대행렬이 앞뒤로 호위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백마, 흰말을 타고 들어왔습니다. 그 어디에도 왕이 나귀를 탔다고 하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런데 만왕의 왕 되신 예수님께서 가장 평범하고 초라하신 모습으로 어린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나귀를 타셨을까요? 나귀는 평범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의 짐을 나르고 또 사람들을 태우고 다니는 일상생활의 수단이었습니다. 나귀는 평화의 상징이요, 겸손의 상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힘없고 평범한 존재인 나귀 새끼를 택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진 자, 힘 있는 자의 편이 아니라 언제나 평범한 자, 약자의 편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평범하고 힘없는 나귀 같은 우리를 택하셔서 하나님 자녀 삼아주셨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나갈 때 사람들에게 박수갈채를 받을 때, 내가 잘나서 그렇게 사람들에게 박수갈채를 받는 것이 아니라, 나를 타고 계신 예수님 때문에 박수갈채를 받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잘 되면 착각합니다. 다 자기가 잘나서 그렇게 된 줄 아는데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우리가 잘 될수록,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권력을 쥐고 힘을 휘두를수록, 더 겸손히 낮아져 약자를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그냥 무기력하고 연약한 나귀 새끼 같은 존재입니다. 그 나귀 새끼 자체로는 무엇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박수갈채를 보내고 겉옷을 깔고, 그리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환영한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받는 칭찬, 예수님 때문에 받는 그러한 영광스러운 모습을 내 것으로 착각하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평생 주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으려면 우리는 늘 나귀처럼 겸손히 주님을 잘 모시고, 주님의 역사를 이루어야 합니다. 겸손은 예수님 모습 그 자체입니다. 예수님께 쓰임을 받으려면 예수님을 본받아서 겸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에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 말씀을 바꿔 말하면 너희 마음에 쉼이 없고 평안함이 없는 것은 너희가 겸손하고 온유하지 못해서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왜? 내가 잘나서, 강한 성격으로 내 고집, 내 주장을 하다 보니까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입니다. 강한 성격과 교만한 모습은 내 주변에서 사람이 떠나게 하지만, 온유하고 겸손한 모습은 내 주변에 사람이 몰려오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겸손과 온유의 사람이 되어서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예수님을 환영한 무리들 우리가 오늘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예수님을 환영하는 무리의 모습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의 압제하에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로마는 통치하는 모든 나라에 군사를 보내 많은 세금을 거둬들였습니다. 또 로마 정권에 아부하는 세금 걷는 세관원들은 덧붙여서 중간에 착복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로마로부터 해방될까?’ 저들의 마음속에 간절한 해방에 대한 꿈이 있었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니까 메시아가 와서 우리를 해방시켜준다는데, 그 메시아가 누군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말을 듣고, “예수님이 그러면 우리를 로마에서 구원해 줄 왕이시겠구나.” 그래서 열렬히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마태복음 21장 8절에 보니까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1) 겉옷을 길에 편 백성들 저들이 겉옷을 길에 폈습니다. 고대 사회에 자기 옷을 땅에 펴는 행위는 자신의 권리와 지위를 내려놓고 상대방에게 복종과 충성을 다짐하는 행위였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다는 그러한 저들의 충성된 모습으로, 복종의 모습으로 겉옷을 펴서 깔았던 것입니다. 구약시대 예후가 왕이 될 때 이와 같은 기록이 나옵니다. 열왕기하 9장 13절입니다. “무리가 각각 자기의 옷을 급히 가져다가 섬돌 위 곧 예후의 밑에 깔고 나팔을 불며 이르되 예후는 왕이라 하니라” 예수님을 왕처럼 모시며 저들은 옷을 깔고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2) 종려나무 가지를 길에 폄 나아가서 저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그 가지를 길에 폈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는 당시 유대 나라에 있어서 승리의 상징이요 해방의 상징이었습니다. “로마를 무너뜨릴 메시아가 오셨다!” 그 뜻을 담아서 종려나무 가지를 길에 편 것입니다. (3)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침 그리고 그들은 나가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를 외쳤습니다. 마태복음 21장 9절입니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호산나’라는 말은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를 로마 제국에서 구원해 주옵소서! 저들이 간절히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호산나는 하나님께 드리는 간절한 기도요, 간구였습니다. 시편 118편 25절입니다. “야훼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야훼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 저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을 외쳤는데, 다윗의 자손은 메시아를 상징하는 칭호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에게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 다윗의 왕권을 회복할 메시아여!”하고 저들이 외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열렬히 예수님을 환영했던 무리가 닷새 만에 마음이 싹 돌변합니다. 저들은 생각하기를 예수님이 오셔서 백성들을 선동해, 무장 봉기해서 혁명을 일으키고, 로마 제국을 대항해 싸울 줄 알았는데, 도리어 성전에 와서 장사꾼을 내쫓으시고, 성전에 가서 장차 말세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언제 마지막 때가 올지 모르니까 준비하라”고 하는 이해되지 않는 말씀만 전하시고, 종교 지도자들과 논쟁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실망했습니다. 그래서 저들의 마음이 싹 돌아섰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로마에서 구원해 줄 메시아가 아니야.’ 그래서 닷새 만에 마음이 완전히 돌변해, 그 예수님을 환영했던 군중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못 박으소서”라고 외친 성난 군중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마가복음 15장 6절 이하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한대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무리가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가 은혜받을 때는 눈물 콧물 쏟으면서 ‘내가 죽도록 주님을 위해서 충성 헌신하겠습니다.’라고 다짐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봉사하고, 열심히 교회 일에 참여해서 그저 교회 일이라면 너무나 기쁘고 감사해서 앞장서서 일을 하고, 열심히 주님 앞에 헌물을 드리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나가서 전도하고 하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사람들이 날 알아주지 않고, 뭔가 내 뜻대로 안 되면 ‘섭섭이’라는 귀신이 들어와 혼자 시험에 듭니다. 그렇게 열심히 주님을 섬기고, 그냥 예배를 드릴 때마다 찬송을 불러도 기쁘고, 말씀을 들어도 기쁘고, 기도해도 감사해서 눈물이 났는데 눈물은 싹 말라 버리고, 마음이 굳어져서 마음에 기쁨이 사라지고, 감사가 사라지고, 사소한 일에 원망, 불평하고, 남을 비판하고 있다면 이 무리와 다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다음에 다가온 현상이 무엇이냐? 예배에 대한 감격이 사라집니다. 예배의 주인은 예수님이신데,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마음이 돌아선 무리와 똑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 내가 주님을 배반했습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첫사랑의 감격을 잃어버리고, 내가 나 혼자 시험에 들어서 불편해하고, 감사가 사라지고, 기쁨이 사라지고, 그래서 남을 비판하고 있고, 불평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다시 첫사랑을 회복할 수 있도록 주님 은혜 내려주옵소서.” 요한계시록에 예수님께서 에베소교회를 책망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4절, 5절입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우리가 회개하고 돌이켜 첫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첫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주님! 내가 첫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눈물이 메말랐습니다. 감사가 메말랐습니다. 내가 조금씩 불평하게 되고,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지 않고, 내가 무시당하면 혼자 섭섭해서 시험에 들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고, 나 혼자 불평하며 살았던 내 모습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여러분, 다시 첫사랑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사랑의 감격을 갖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일생을 함께하시며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 첫사랑의 감격으로 선교사가 되어서 한국 최초의 순교자가 된 토마스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영국 웨일스에서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목회자의 가정에서 선교 비전을 꿈꾸며, 어머니의 기도 속에 자랐습니다. 1859년 런던대학교 뉴칼리지에서 신학 과정을 마치고, 1863년 목사 안수를 받은 그해 7월에 24살의 나이에 런던선교회의 파송을 받아 아내 캐롤라인 고드프리와 함께 중국 상하이로 향합니다. 몇 달 걸려 상해에 도착했는데 부인이 풍토병에 걸렸습니다. 당시 아이를 임신한 상태라 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토마스 선교사가 아내를 돌볼 수 있는 선교지를 찾으러 간 동안에 그만 아내가 유산했습니다. 급히 자기에게 메시지가 전해져 왔는데 ‘나는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아내의 편지를 받고 선교지로 돌아갔지만, 아내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습니다. 20대 초반에 꽃다운 나이에 남편을 따라 중국 선교를 왔다가 아이를 잃고, 자신도 목숨을 잃게 된 것입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너무나 충격이 컸습니다. 그때 그를 파송한 런던선교회에 보낸 편지의 내용입니다. “저는 지금 감당할 수 없는 슬픔으로 인하여 제 마음을 걷잡기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그녀의 평화롭고 고통 없는 죽음에 대하여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주신 자도 야훼시오, 취하신 자도 야훼시니 야훼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라. 1864년 4월 5일.” 아내를 잃은 슬픔 가운데 잠시 선교사역을 멈췄는데, 스코틀랜드 성서공회 소속 알렉산더 윌리엄슨 목사님이 지금 조선에 복음을 듣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절망 가운데 살고 있다고 조선의 선교사로 가라고 권면합니다. 그때 그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제 믿음이 좋아서 이곳 중국까지 와서 복음을 전하게 된 줄 알았는데 캐롤라인의 죽음 앞에서 사정없이 흔들리는 제 약한 모습을 보면서 제가 참으로 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선교는 자식을 무덤에 묻는 아픔 없이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하셨던 분들의 이야기가 실감이 납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잠시도 제 스스로 설 수 없는 자란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래서 1865년, 그는 조선의 첫 선교사로 와서 황해도 장연(백령도)지역에서 3개월 동안 머물면서 한국말을 배우며 성경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1866년 이듬해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통역으로 승선해서 두 번째 조선을 향해 옵니다. 당시 대원군은 쇄국정책을 펼쳐 조선에 오는 외지인들을 적으로 여겼기에 배가 대동강으로 들어오자 배를 공격했습니다. 배가 대동강 중간의 섬에 걸리게 되니까 위에서 조선 수군들이 조그만 조각배에 불을 붙여 내려보내 배가 불타게 됐습니다. 불길에 휩싸여 있는 그 순간에도 “예수! 예수! 예수!”를 외치면서 그 앞에서 뛰어내려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 앞에 성경을 주며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주여, 이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복음이 이 땅에 열매 맺게 하소서.”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국 1866년 9월 2일, 27살의 젊은 나이로 대동강의 백사장에서 순교합니다. 제가 평양에 심장병원을 지으러 가서 평양 지도를 사보았습니다. 그 지도에 토마스 선교사가 순교한 그 자리를 ‘선교강안거리’라고 표시해 놨고, 그 지역 전체가 ‘선교구(區)’로 되어 있었습니다. 아마 북한 사람들이 선교라는 말의 의미를 모르고 쓰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나라는 마포구, 동대문구는 있어도 선교구는 없거든요. 근데 북한의 평양에는 ‘선교구’가 있습니다. 언제고 북한의 문이 열리면 우리가 그 순교자의 자리에 가서 우리가 예배드리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날이 다가오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를 찔러 죽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박춘권은 그에게 던져준 성경을 가지고 와서 예수를 믿은 다음 ‘안주교회’ 영수가 되고 그 가족들이 평양에서 신앙 명문가를 이루고, 조카 이영태도 ‘평양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한 후에 성서번역의 주역인 레이놀즈 목사님을 도와서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불타는 제너럴 셔먼호를 목격했던 11세 소년 최치량은 받은 성경이 금서였기 때문에 그 당시 평양 영문주사 박영식에게 전해 주었는데, 박영식은 여관을 운영하면서 그 성경을 뜯으며 종이 질이 좋다며 벽에 도배했는데, 누워서 그 성경을 본 사람들마다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분도 예수를 믿고 그 집터에 평양 최초의 교회인 ‘널다리골 예배당’이 세워지고 이 교회가 나중에 이 예배당이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중심인 ‘장대현교회’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어린 소년이었던 최치량 역시 기독교인이 되어서 ‘오촌리교회’를 세우고 ‘경신학교’를 설립해서 평생을 교육과 선교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이 한 사람의 순교의 피로, 그가 젊은 날에 세상을 떠났지만, 많은 열매가 맺혀져서 오늘날 이렇게 대한민국이 아시아 최대의 기독교 국가로 변화된 것입니다. 한평생 십자가 은혜에 감사하며 주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찬송가 135장, 갈보리산 위에> 1절 갈보리산 위에 십자가 섰으니 주가 고난을 당한 표라 험한 십자가를 내가 사랑함은 주가 보혈을 흘림일세 후렴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2절 멸시함을 받은 주의 십자가에 나의 마음이 끌리도다 귀한 어린양이 영광 다 버리고 험한 십자가 지셨도다 3절 험한 십자가에 주가 흘린 피를 믿는 맘으로 바라보니 나를 용서하고 내 죄 사하시려 주가 흘리신 보혈일세 4절 주가 예비하신 나의 본향집에 나를 부르실 그날까지 험한 십자가를 항상 달게 지고 내가 죽도록 충성하리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린 나귀와 같은 저희들을 주님이 택하셔서 우리 위에 타시고, 하나님의 뜻을 펼치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어리석어서 내가 잘되면 내가 잘나서 잘 된 줄 알고 착각했던 나의 고집과 교만을 용서하여 주시고, 수시로 마음이 변해서 교회와 멀어지고 주님과 멀어졌던 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무리와 같은 그 모습을 주님 용서하여 주시고, 남은 여생 죽도록 충성하여 하늘나라 큰 상급 받는 저희 모두가 되도록 주님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2026.03.2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부활절 앞두고 동아일보, 뉴시스와 인터뷰 진행
  • “교회는 통합·섬김·희망의 역할”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 4월 5일 우리 교회서 이영훈 담임목사는 26일 성전비서실에서 부활절을 앞두고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이번 부활절 연합예배의 가장 큰 의미로 한국교회의 온전한 연합을 강조했다. 이영훈 목사는 “2026년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는 명실공히 한국교회가 100% 하나 되어 모이는 연합예배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교회 73개 교단 총무단이 준비위원회를 구성해 한교총, NCCK 모든 회원 교단은 물론 대표성을 지닌 중소교단들까지 함께 드리는 예배”라고 설명했다. 한국교회 연합의 중요성에 대한 질문에 “한국교회가 분열된 모습을 극복하고, 사회적 약자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회복해야 한다”며 “종교의 본질은 사회적 약자를 섬기는 데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도 낮아짐과 섬김이었다”고 피력했다. 이어 이영훈 목사는 국내 민영 뉴스통신사 뉴시스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목사는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지속되고 세계 곳곳에서도 갈등과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며 “교회는 이념과 지역, 계층 간 갈등을 심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연결하고 화해로 이끄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영훈 목사는 “이번 연합예배가 한국교회가 먼저 하나로 모이고, 평화의 필요성을 사회에 알리며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갈등이 심화된 ‘분열 사회’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평화가 임해 국민 모두가 소망과 기쁨을 회복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영훈 목사가 대회장을 맡은 ‘2026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는 4월 5일 오후 4시 우리 교회 대성전에서 열린다. ‘생명의 부활! 한반도 평화!’를 표어로, ‘부활! 평화! 사랑!’을 주제로 드려지는 이번 예배는 분열과 갈등의 시대 속에서 부활의 복음과 평화의 메시지를 한목소리로 선포하는 자리가 될 예정이다. 글=오정선·이미나 기자
  • 2026.03.27 / 오정선 기자

    안현주 목사(동작대교구장) - 가장 화려한 입성, 가장 고독한 순종
  • 2026년의 봄, 우리는 인공지능이 일상이 되고 초개인화된 알고리즘이 우리의 취향과 선택을 설계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손안의 스마트폰은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을 보여주며 대중의 ‘좋아요’와 실시간 트렌드는 곧 그 시대의 정의이자 가치가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맞이하는 종려주일은 우리에게 예루살렘 입성의 화려한 ‘트렌드’ 이면에 숨겨진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금 묻게 합니다. 2000년 전 예루살렘의 거리도 오늘날의 사회관계망(SNS)만큼이나 뜨거웠습니다. 예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실 때, 군중은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호했습니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막 11:9). 그들의 환호는 당시 유대 사회의 가장 뜨거운 ‘실시간 검색어’였으며 로마의 압제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해 줄 강력한 메시야를 향한 집단적 열망의 투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열광적인 트렌드는 불과 며칠을 가지 못했습니다. 군중이 원했던 ‘정치적 해방자’가 아니라 고난받는 ‘인류의 구주’로서 십자가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시는 예수님의 행보는 대중의 기대라는 알고리즘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의 니즈(Needs)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메시야를 향해 군중은 순식간에 등을 돌렸고, “호산나”라는 찬양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분노의 함성으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군중을 낯선 눈으로 바라볼 수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을 때 실망하고, 내 기대를 벗어날 때 등을 돌리는 것, 그것은 2000년 전 예루살렘 군중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그렇기에 종려주일은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나의 실제적인 이야기입니다. 종려주일은 단순히 예수님의 입성을 축하하는 날이 아닙니다. 군중의 변덕스러운 환호 속에 감춰진 고독한 순종을 묵상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박수 소리에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소리 너머에서 들려오는 아버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 종려주일을 맞아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세상의 소음을 잠시 끄고, 나귀를 타신 주님의 겸손한 뒷모습을 바라봅시다. 화려한 종려나무 가지 아래 가려진 거친 십자가의 길, 그 길 끝에 진정한 생명이 있음을 기억하며 고난 주간의 문을 열어야 할 때입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호산나’를 외치며 나에게 유익을 줄 메시야를 소비하고 있는가, 아니면 나의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온전히 주님의 길을 따르고 있는가.
  • 2026.03.2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88) 종교개혁㉘
  • 스위스 종교개혁 - 성만찬 논쟁 츠빙글리의 사상은 여러 저술과 편지를 통해 전해진다. 소시지 사건과 관련해 쓴 “음식 선택과 자유에 관하여”(1522.3.9.)는 그의 첫 종교개혁 저술로 금식 규정을 어긴 일이 왜 정당한지를 설명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강조했다. ‘콘스탄츠 감독에게 보낸 진정서’(1522.7.2.)와 “하나님 말씀의 명백성과 확실성에 대하여”(1522.9.6.)에서는 성직자 독신 제도의 폐지와 성경적인 복음 설교의 자유를 요구하면서 교회와 신학을 개혁하는 가장 중요한 권위는 오직 성경이라고 주장했다. 취리히 시의회는 성경적 설교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이 거세지자 1523년 1월 29일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츠빙글리가 제시한 ‘67개 논제’는 성경의 권위에 기초한 교회 개혁의 방향을 밝힌 문서로서 스위스 종교개혁의 출발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선언이었다. 토론 과정에서 아무도 츠빙글리의 67개 논제를 반박하지 못하자 시의회는 그의 손을 들어주었고 그 결과 누구나 성경에 근거하여 설교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신앙이 약한 이들에게 개혁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쓴 “기독교 입문서 요약”(1523.11.17.)에서 그는 성상 금지와 미사 폐지 등을 설명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취리히에서는 1524년 4월 사제들의 결혼이 이루어졌고, 기도 행진과 의전 행렬, 순례 등이 차례로 폐지되었다. 1524년 9월부터 1525년 3월 사이에 쓴 “참 종교와 거짓 종교에 관한 주석”에서 츠빙글리는 교황권, 미사의 희생 개념, 성인 숭배 그리고 행위로 얻는 의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특별히 성만찬을 중요한 주제로 다루면서 이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 자체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상징적 예식으로 이해했다. 그가 로마가톨릭의 화체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고 보는 주장이 자칫 골고다 십자가의 단번의 희생을 되풀이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성만찬의 빵과 잔은 그리스도의 몸 자체가 아니라 그 몸을 상징하는 것이었다(요 6:63). 그러나 바로 이 점에서 그는 루터와 끝내 하나가 되지 못했다. 루터는 츠빙글리와 달리 “이는 내 몸이다”라는 말씀을 상징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그에게 성만찬은 단순히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는 예식이 아니라 말씀에 근거하여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시는 자리였다. 루터는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셨다고 해서 우리와 멀리 떨어져 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어디에나 임하실 수 있다고 이해했다. 반면 츠빙글리는 그리스도의 몸은 하늘에 계시므로 성만찬의 떡과 잔 안에 실제로 계실 수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루터는 떡과 잔에 주님의 살과 피가 함께 임재함(공재설)을 주장하면서 두 사람의 견해 차이는 더욱 커지게 되었다. 이 논쟁은 1529년 마부르크 회담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헤센의 필립은 루터와 츠빙글리를 한자리에 모아 개혁 진영의 일치를 이루고자 하였다. 양측은 여러 항목에서 의견을 같이했고 미사가 은혜를 얻는 반복적 희생이 아니라는 점에도 동의했다. 그러나 성만찬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어떻게 임재하는가 하는 문제에서는 끝내 뜻을 모으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완전한 일치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서로를 향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데에는 함께 동의한 후 헤어졌다. 성만찬 논쟁은 단순한 예식 이해의 차이를 넘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리고 그리스도의 임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둘러싼 종교개혁 내부의 중요한 갈림길이 되었다.
  • 2026.03.2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4월 4일(토) - 십자가만 자랑하라
  • ◎ 말씀 : 갈 6:12~14 ◎ 찬송 : 149장(통 147장) 사도 바울은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자랑할 만한 것이 많았습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졌고 당대 최고의 율법 학자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했으며 누구보다 열심히 율법을 지키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순간 그의 가치관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제 그에게는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유일한 자랑이 되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세상이 추구하는 모든 영광이 무의미함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학벌, 직업, 재산, 업적을 자랑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내세울 것이 없는 존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를 구원하신 십자가만을 자랑하며 겸손히 주님을 따르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유일한 자랑이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십자가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3.2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4월 3일(금) -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 ◎ 말씀 : 사 53:4~6 ◎ 찬송 : 144장(통 144장) 오늘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념하는 성금요일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이 오시기 약 700년 전 이미 메시야의 고난을 상세히 예언했습니다. 그 예언은 예수님을 통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허물과 죄를 대신하여 찔리고 상하셨습니다. 가시면류관에 머리를 찔리시고 손발에는 못이 박혔으며 옆구리를 관통한 창끝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이 고난을 통해 우리에게 참된 평화와 완전한 치유가 임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그 순간 우리를 옭아매던 죄의 사슬은 끊어졌습니다. 어둠의 권세는 이제 우리를 지배할 힘을 잃었습니다. 성금요일을 맞아 주님의 보혈을 가슴 깊이 새기며 세상을 이기는 담대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은혜로운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새기며, 그 길을 따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3.2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4월 2일(목) - 하나님 사랑의 확증
  • ◎ 말씀 : 롬 5:6~9 ◎ 찬송 : 311장(통 185장) 바울은 하나님 사랑의 특별함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의 확실한 증거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대부분 조건적입니다. 선한 사람이나 의로운 사람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 수도 있지만 죄인을 위해 죽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어려운 상황에 놓이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기도의 응답이 더디게 올 때면 원망의 마음을 품기도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오늘도 나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신 주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그 크신 사랑을 늘 기억하고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3.2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성령 충만한 성도의 봄맞이 신앙생활
  • 교회는 지금 전도의 계절 ‘전도, 정착, 양육’ 3박자 행진 잃어버린 영혼 찾아나서 노방 전도, 관계 전도에 열심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왔다. 우리 교회는 씨 뿌리는 계절 봄을 맞아 전 성도가 예수님의 지상명령인 복음을 전파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기 위해 전도와 정착,양육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성도들은 이웃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먼저 영적으로 각성과 재무장에 나섰다. 이영훈 목사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해서 우리가 구원의 복음을 들고 나아가야 한다”면서 “복음을 들고 나아갈 때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셔서 우리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며 많은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이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절대긍정선교회는 전도에 대한 열의와 소망은 있으되 전도 방법을 고민하고, 삶에서 지속적인 실천을 원하는 성도들을 위해 3월부터 10주간의 일정으로 전도훈련세미나를 매주 토요일 진행 중이다. 대교구와 지성전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 위해 노방전도와 관계 전도 등 다방면으로 열심을 기울이고 있다. 여의도직할성전은 전도왕들을 초청해 전도간증예배와 세미나를 연속으로 개최했다. 마포1대교구는 2026년도 전도발대식 이후 지역 복음화와 태신자 전도에 꾸준히 힘써오고 있다. 특히 장년 성도들의 교구 정착과 양육을 돕기 위해 이삭줍기 활동도 병행 중이다. 마포2대교구 역시 성도들이 화요일 또는 목요일마다 각 교구 기도처에서 ‘화목기도회’를 열고, 태신자를 품고 지속적으로 기도해 오고 있다. 용산대교구도 교구 중심의 태신자 전도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날씨가 풀리면서 부침개 전도 등 다양한 달란트를 활용한 전도로 지역 주민들에게 다가가며 복음 전파에 힘쓰고 있다. 강서2대교구는 상반기에 기도원에서 전도발대식을 개최하고 “영혼구원, 나의 사명! 기도로 준비하고 성령으로 전하자!”라는 구호아래 성도들이 ‘3-3-3 전도법’으로 전도중이다. 영등포대교구는 19일 안디옥성전에서 올투게더 연합예배를 개최하고 교구 부흥과 전도 목표 달성을 위해 기도하고 전도시상식으로 성도들을 격려했다. 양천대교구는 전도활동과 더불어 어디서든 언제나 가능한 ‘1대2 양육’을 강화해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의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신앙인으로 업그레이드 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쳤다. 15개 대교구는 4월 한 달 간 2026년 상반기 새생명행복축제를 위해 총력전도에 임한다. △관악·동작·마포1·영등포(5일), 양천·은평·종로중구(12일), 강서2·반석·마포2·서대문(19일), 강서1·구로·금천·용산대교구(26일). 각 대교구는 새생명행복축제를 앞두고 태신자들과 잃어버린 양, 가족 전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축제 당일에 초청되는 새가족들을 위해 대교구실 등에서 축하 행사를 갖고 특별히 준비한 기념품을 전달하는 등 다채로운 환영 행사를 통해 새생명의 기쁨을 나눌 예정이다.
  • 2026.03.27 / 복순희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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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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