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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0일(토) -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 ◎ 말씀 : 계 6:9~11 ◎ 찬송 : 515장(통 256장) 어린양 되신 예수님이 다섯째 인을 떼실 때 제단 아래에는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있었습니다. 말씀을 증거하다가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의 영혼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라고 간절히 호소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억울함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순교자들의 수가 찬 뒤에 심판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는 심판이 지연되는 것이 아니라 구원 계획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정확히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당장은 악이 득세하고 불의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은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완전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불의가 가득하고 악인이 잘되는 듯 보여도 낙심하지 말고 인내하며 믿음을 지키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이 불의하다고 낙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신뢰하며 믿음을 지키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6.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6월 19일(금) - 오직 주님께
  • ◎ 말씀 : 계 5:12~14 ◎ 찬송 : 264장(통 198장)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죽임을 당하셨으나 다시 살아나신 어린양으로서 모든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피조물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양 앞에 나아가 경배하며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그 찬양은 특정한 시대나 장소에 국한되지 않으며 온 우주가 함께 드리는 영원한 고백입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세상의 가치와 기준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말과 행동, 삶의 모든 자리에서 주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며 날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주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일평생 우리의 구원자 되신 예수님만 섬기며 오직 예수님께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리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6.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6월 18일(목) -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 ◎ 말씀 : 에 4:13~16 ◎ 찬송 : 310장(통 410장) 우리의 인생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모두 알 수 없지만 기도하며 맡길 때 하나님이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에스더는 두려움 앞에서도 자신의 안전보다 하나님의 백성을 먼저 택하며 결단의 자리에 섰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그녀의 고백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겠다는 믿음의 선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흔들림 없는 담대한 믿음을 통로로 삼아 구원을 이루시며, 오늘날에도 그러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써 내려가십니다. 오늘 우리도 에스더처럼 상황을 두려워하기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한 걸음 내딛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어떤 문제 앞에서도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6.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6월 17일(수) - 작은 능력으로
  • ◎ 말씀 : 계 3:7~8 ◎ 찬송 : 336장(통 383장) 물질적 풍요와 이방 문화가 가득한 빌라델비아 지역에서 경건함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교회를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이 구절은 시련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낸 그들의 진심이 주님께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잘 보여주며 성도에게 진정 중요한 것은 외부 환경이나 능력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변함없는 충성과 순종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하나님은 큰일을 해낸 사람보다 작은 능력이라도 끝까지 주님 앞에 드리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우리도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가 적다고 불평하기보다 작은 능력이라도 주님을 위해 온전히 드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주어진 능력이 작다고 불평하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주님께 충성하며 순종함으로 칭찬받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6.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6월 16일(화) - 기억하시는 하나님
  • ◎ 말씀 : 느 13:29~31 ◎ 찬송 : 450장(통 376장) 느헤미야서 마지막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욕망을 따라 악을 행한 사람들과 끝까지 하나님 앞에서 충성되고 정결하게 살았던 느헤미야가 대비됩니다. 느헤미야는 공로를 내세우거나 사람의 평가를 구하지 않고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맡기며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기억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외적인 성공이 아니라 말씀 앞에서의 태도와 마음의 중심을 기억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을까요?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기억하시고 그 행위에 따라 심판과 복을 내리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선하게 기억하시는 복된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충성되고 정결한 모습으로 기억되어 복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6.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6월 15일(월) -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
  • ◎ 말씀 : 요삼 1:1~4 ◎ 찬송 : 413장(통 470장) 여의도순복음교회가 강조하는 삼중축복의 출발점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선포하실 때 죄로 인한 영혼의 죽음과 환경의 저주, 육신의 사망이 모두 제거되었고, 우리는 삼중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이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는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해지는 복을 받았습니다. 이 삼중의 축복은 하나님의 자녀가 마땅히 누려야 할 복입니다. 진리 안에서 행하며 삼중축복을 누리는 가운데 죄의 저주에서 벗어나 영혼과 삶과 몸이 모두 풍성해지는 복된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지는 복을 누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6.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가경자 베다(1)
  • 영국 교회사 집필, 민족 정체성 형성 기여 로마에서 물품 가져와 지역교회 성장 도모 평생 성경 연구하며 수련 수사들 훈련시켜 평생 수도원 밖을 나가지 않았음에도 유럽 전역에 명성을 떨쳤던 수도사가 있다. 중세 초기 영국에서 활동하던 ‘가경자 베다’(Beda Venerablilis, 672~735)이다. 베다 수도사는 현재 영국 잉글랜드의 선덜랜드 지방에 있는 웨어마우스(Wearmouth)의 성 베드로 수도원과 재로우에 있는 성 바오로 수도원에서 수도했다. 베다 선교사가 중세 시대에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것은 성경 연구 분야뿐만 아니라 영국의 교회 역사 집필에도 뛰어난 자질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731년경에 쓴 『영국인의 교회사』는 영국 기독교회는 물론 영국 역사를 다룬 것으로 영국에서의 기독교 성장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라틴어로 쓰여진 이 책은 앵글로색슨 역사 연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본 중 하나이며 영국의 민족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모두 5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학문적인 측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수집된 문서 자료는 물론 구술 증언에 대한 진위 여부를 매우 비판적으로 검토했기 때문이다. 고대 잉글랜드의 앵글로색슨족이 세운 7왕국 중 하나였던 노섬브리아에서 태어난 베다 수도사는 7세 때에 웨어마우스의 성 베드로 수도원에 맡겨졌고 그곳에서 양육되고 자랐다. 이후 재로우에 있는 성 바오로 수도원으로 옮겨졌고 735년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곳에서 수도했다. 19세에 부제 서품을 받았고 30세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수도 생활과 성경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 그는 “수도 규칙의 규율을 지키고 교회에서 매일 찬송하는 일 속에서도 배우고 가르치고 글을 쓰는 것이 언제나 나의 기쁨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수도원에서의 삶에 만족했었던 인물이다. 평생 로마를 다섯 차례 방문했던 베다 수도사는 여행 때마다 수도원에 필요한 것들을 가지고 왔다고 한다. 그 목록에는 그림이나 성직에 필요한 물품들뿐만 아니라 유리를 다루는 직공들과 로마 베드로 성당의 수석 성가대원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로마에서 가져온 물품 중에서 가장 의미 있었던 것은 다양한 종류의 기독교 서적들이었다. 이런 서적들을 통해 당시 로마교회의 신학과 문화가 영국 교회에도 전파될 수 있었다. 베다 수도사는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라틴 수사학에 대해 능통했으며 라틴 교부들의 설교를 연구한 마지막 설교자이기도 했다. 그의 이름 앞에 ‘가경자’(the Venerabilis)라는 말이 붙은 것은 주목할만한다. 라틴어 ‘Venerabilis’는 영어의 ‘venerable’이라는 말의 어원으로, ‘존경스러운’, ‘공경할 만한’이라는 의미이다. 중세교회에서 이 칭호는 성인 추대 과정 중 첫 번째 단계에 오른 사람에게 붙인다. 우리말로는 ‘가경자’(可敬者)로 번역되며, 단순히 나이가 많다라는 의미를 넘어 그 사람이 지닌 도덕적 가치나 품격에 대한 경의의 마음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베다 수도사에게 붙여짐으로써 이 칭호가 널리 알려지게 됐다. ‘가경자’라는 칭호가 붙여졌다는 것은 베다 수도사가 영국 교회에서 수석 부주교였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칭호를 통해 베다 수도사가 당대는 물론 이후에도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베다 수도사는 평생을 성경 연구에 바쳤다. 그가 연구하는 일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그의 글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 “나는 비록 규칙적인 훈련을 준수해 왔고, 또 교회 합창단에서 매일 찬양해 왔지만, 나의 주된 즐거움은 언제나 공부하고 가르치며 글을 쓰는 것이다”(O. C. 에드워드, 『교부들의 설교』, p.183). 또한 그는 자신의 연구와 사역을 통해서 성직자들을 세우기를 원했다. 그는 그와 같은 사실을 이렇게 적고 있다. “성직을 받은 그때로부터 59살에 이르기까지 나는 덕망 있는 교부들의 성경에 관한 작품들로부터 짧은 발췌문들을 수집하기 위해서, 그것들의 의미와 해석에 해설을 달기 위해서, 또 나 자신의 유익과 내 형제들의 유익을 위해 일해 왔다”(『교부들의 설교』, p.183~184). 성 바울로 수도원에서 그는 수련 수사들을 훈련시켰다. 교육과정에는 기초 과목인 읽기, 쓰기, 셈하기 교육을 비롯해서 라틴어까지 포함됐다. 그는 수련 수사들에게 라틴어를 가르쳤고 그들의 모국어로 시를 배우도록 했으며, 교회력의 축제들의 날짜를 계산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특히 라틴어를 배울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앵글로 색슨어로 번역을 시도하기도 했다. 조지훈 목사(한세대학교 설교학 교수)
  • 2026.06.12 / 이미나 기자

    영혼의 숨구멍 ‘제3의 공간’
  • 일상과 거룩한 가면을 벗고, 하이터치 영성 회복하기 기도원부터 바다까지… 야훼와 독대하는 거룩한 피난처 하루 종일 시달리다 돌아온 집은 산더미 같은 집안일과 부대끼는 식구들에 짓눌려 온전한 휴식처가 되지 못할 때가 많다. 오죽하면 쉴 곳 잃은 현대인들이 자조적으로 ‘집구석’이라 부르겠는가. 영혼의 피난처가 되어야 할 교회마저 때로는 직분과 체면 때문에 ‘믿음 좋은 척’ 거룩한 가면을 쓰고 연기해야 하는 숨 막히는 공간이 되곤 한다. 6, 7월이면 수많은 기독교인이 기도원으로 향한다. 일상의 짐과 껍데기만 남은 종교적 형식을 훌훌 벗어던지고, 온전히 숨 쉴 수 있는 영적인‘제3의 공간(Third Place)’이 미치도록 절실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잣대 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위로받고 영혼의 숨을 고를 수 있는 거룩한 피난처를 찾아야 할 때다. 1. 4070, 안전지대가 필요하다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Ray Oldenburg)는 가정과 일터 외에 목적 없이 머물며 사람들과 교류하고 쉴 수 있는 비공식적인 장소를 ‘제3의 공간’이라 불렀다. 평생교육의 관점에서도 성인들이 팍팍한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고 내면을 치유하는 곳은 딱딱한 교실이 아니라 바로 이런 편안한 공간이다. 특히 가족 뒷바라지와 무거운 책임감에 소진된40~70대 우리 세대에게 집은 종종 또 다른 출근지가 된다. 부모, 아내, 남편이라는 역할의 껍데기도 모자라 교회에서조차 거룩한 척 연기하느라, 존재 자체로 편히 숨 쉴 수 있는 안전지대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2. 심야식당이 주는 위로 영화<심야식당>에 등장하는 밤12시의 허름한 식당은 철저한 ‘제3의 공간’이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그저 마음의 소리에 묵묵히 귀 기울여 주는 곳. 지친 하루를 끝낸 사람들은 이곳에 들러 남몰래 흘린 눈물과 징글징글한 세월의 무게를 따뜻한 밥 한 끼의 온기로 위로받는다. 고도화된 하이테크(High-Tech) 세상일수록 사람들은 이처럼 사람 냄새나는 하이터치(High-Touch) 공간에 목말라한다. 세상 사람들은 심야식당이나 동호회를 찾아 헤맨다는데, 뻔한 정답과 형식에 지쳐 영혼이 찢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도대체 어디서 참된 위로를 얻어야 하는가. 3. 영적‘제3의 공간’, 예수님의 빈 들 예수님은 공생애의 치열한 사역과 제자들과 부대끼는 일상 속에서도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빈 들)’을 찾으셨다. 메시야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온전히 성부 하나님 품에 안겨 숨을 쉬는 날것 그대로의 안식 자리였다. 구약의 모세 역시 백성들의 불평과 소음이 닿지 않는 진영 밖 ‘회막’에서 창조주와 독대했다(출 33:7). 세상의 스위치를 끄고, 남의 시선을 의식한 얄팍한 연기를 멈춘 채 오직 야훼 하나님께만 주파수를 맞추는 은밀한 회막, 영적인 빈 들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4. 영혼의 닻을 내리는 피난처 사수하기 영적인 제3의 공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가식을 벗고 아픔을 나누는 소그룹, 깊은 산속 기도원뿐만 아니라 하루 일과를 마친 주차장 차 안에서의 10분, 전철 안 짧은 기도 시간도 훌륭한 회막이 될 수 있다. 여름에는 탁 트인 바다로 달려가 목청껏 외칠 작정이다. 가슴속을 갉아먹던 미움과 원망, 어깨를 짓누르던 지독한 스트레스 그리고 거룩한 척하느라 얹힌 영적인 체증까지 거친 파도에 다 토해내 버릴 것이다. 체면 따위 던져버리고 날것 그대로의 찌꺼기를 쏟아내는 그 바다가 바로 야훼와 독대하는 제3의 공간이 된다. 먼저 참된 쉼을 누리고 회복되어야 지긋지긋한 ‘집구석’도 메마른 교회도 다시금 따뜻한 생명력을 얻는다. 세상의 짐과 종교적 허울을 훌훌 벗어던지고 야훼 하나님의 은혜에 영혼의 닻을 내리는 거룩한 피난처를 반드시 사수하자. Think! 오늘 하루, 숨 막히는 일상에 지쳐 야훼와 독대할 영혼의 ‘빈 들’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가? Thank! 너덜너덜해진 마음으로 찾아갈 때마다, 아무것도 묻고 따지지 않고 완벽한 피난처이자 제3의 공간이 되어 주시는 야훼 하나님, 감사합니다! 김선희 교수(교육학 박사)
  • 2026.06.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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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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