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를 위한 사도행전 이야기
(90) 로마로 압송되는 바울
  • 드디어 바울은 로마를 향해 떠난다. 사실 바울은 로마에 가서 복음 전하기를 간절히 원했다(롬 1:15). 당시 로마는 세계의 중심이었기에 모든 길은 로마를 향해 있었다. 그런데도 바울의 로마행은 번번이 가로막혔다(롬 1:13, 15:22). 이제야 비로소 로마에 가게 되었는데 자유인의 신분이 아니라 가이사 앞에서 재판을 받기 위한 죄수로서 압송 되었다. 바울의 로마까지의 호송 과정(행 27~28장)은 다시 1인칭 복수 시점인 ‘우리’로 서술된다(“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행 27:1). 성경학자들은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가 이 ‘우리’ 안에 있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이 여행기는 목격자의 진술이며 역사적 신빙성이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는 사실이다. 당시에는 기술적인 문제로 긴 항로를 한 번에 직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연안에 바짝 붙어서 단거리를 항해하는 여러 배편을 요즘 말로 ‘환승’해 가면서 목적지에 이르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 탄 배는 소아시아 해변의 여러 지역에 기항하는 ‘아드라뭇데노’라는 이름의 배였다. 아구스도 부대의 백부장 율리오가 바울 및 여러 죄수를 로마까지 호송할 책임을 맡았는데 그 배에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바울을 수행하기 위해 함께 탔다. 이튿날 시돈 항구에 도착했는데 백부장이 바울에게 호의를 베풀어 그곳의 지인들에게 가서 대접받는 것을 허락했다. 그곳을 떠나 맞바람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해 항해하며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시(市)에서 내렸다. 그곳에서 이달리야로 가는 ‘알렉산드리아’라는 배를 만나 백부장이 갈아타도록 했는데 배가 더디 가는 관계로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렀다. 하지만 역풍이 너무 거세어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바람막이 삼아 항해하며 간신히 라새아 시에서 가까운 미항(美港)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미항에서 순풍을 기다리다가 시간이 많이 지체됨에 따라 ‘금식하는 절기’(대속죄일, 보통 10월 초)도 이미 지났기 때문에 항해가 위태한 상황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9월 14일부터 11월 11일까지는 항해가 위태한 기간이었고, 11월 11일 후에는 탁 트인 바다에서 하는 모든 항해가 겨울이 끝날 때까지는 중지되었다(C. H. 탈버트 등). 그래서 바울은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치리라”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고, 어차피 미항이 겨울을 지내기에는 불편하기 때문에 그레데의 항구인 뵈닉스에 가서 과동하자는 의견이 많아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남풍이 순하게 불기에 그들의 뜻대로 되는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했는데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 향후 2주일 이상을 표류하다가 파선하기에 이른다. 절체절명의 위기였지만 바울은 하나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가 예루살렘 성전 옆 안토니아 요새에 구금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행 23:11)고 말씀하신 것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어떤 환난에서도 주님의 말씀은 그것을 극복할 힘과 용기와 소망을 공급해 준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김호성 목사(목회 담당 부목사 겸 영산성서연구원 학장)
  • 2024.04.12

    (89) 바울의 아그립바 2세왕 앞에서의 증언
  • 총독 벨릭스와 그의 후임자 베스도는 바울의 결백을 알면서도 자신들이 관할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고자 그를 계속 구금해 놓자 바울은 로마 시민의 권리 중 하나인 황제(가이사)에게 상소하는 카드를 사용함으로써 로마로 이송되어 재판을 받게 됐다. 그가 로마로 떠나기 전에 베스도 총독과 가까이 지냈던 헤롯(아그립바 2세)왕이 베스도를 찾아와서 교제를 나누다가 바울의 재판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는 자신도 그를 한번 심문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베스도가 총독 접견실에 고관들을 부르고 바울을 심문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바울은 발언권을 얻자 먼저 아그립바에게 유대인의 피가 흐르는 것에 착안해서 유대교에 대해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해서 자신이 바리새인으로서 죽은 자의 부활을 굳게 믿어왔음을 밝힌다. 그리고 유대교에 대한 열심으로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해서 그를 믿는 자들을 박해하다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해보다 더 밝은 빛”(행 26:13)을 보고 땅에 엎드러졌는데, 예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그에게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셨다고 증언했다. 그래서 그 즉시로 이 명령에 순종해서 다메섹과 예루살렘 사람,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라고 전하자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그를 잡아서 죽이려고 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지금까지 살아서 증언한 것이 “선지자들과 모세”(즉 구약성경)가 장차 반드시 되리라고 예언한 것, 즉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실” 것 뿐이었다고 강변했다. 바울이 여기까지 말하자 베스도 총독이 제지하면서 큰 소리로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라고 했다. 그러자 바울은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라고 대꾸했다. 그리고는 아그립바에게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 선지자를 …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라고 말을 이어갔다. 이에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라고 말하자, 바울은 담대하게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그립바 왕과 왕비 버니게 그리고 베스도 총독과 참석자들이 다 일어나서 물러가 이구동성으로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라고 했다(행 26:31). 그래서 아그립바는 최종적으로 베스도에게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행 26:32)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되면 베스도가 아그립바에게 먼저 이야기 한 것(행 25:17~21)까지 포함해서 바울의 무죄를 로마제국의 고위 관리들이 세 차례에 걸쳐서 증언하는 것이 된다. 이것은 빌라도 총독이 예수님의 무죄를 세 번 증언한 것(눅 23:4, 15, 22)을 떠올리게 한다. 누가가 저술한 2부작 ‘누가복음-사도행전’은 기독교 복음의 위대한 인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은 모두 로마제국에 의해 처형되었지만 사실은 로마의 최고위층의 세 번에 걸친 무죄 선언이 보여주는 것과 같이 로마제국에 항거한 정치범이 아니었음을 강변하고 있다. 바울의 심문 기록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세상 권세를 통해서도 그의 백성의 정당성을 밝혀주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호성 목사(목회 담당 부목사 겸 영산성서연구원 학장)
  • 2024.03.08

    (88) 세 번째 반복되는 바울의 회심 이야기
  • 예루살렘 성전 곁 로마의 안토니아 요새의 천부장 루시아는 유대인의 암살 흉계로부터 바울을 보호하기 위해 로마 총독의 거주지인 가이사랴로 이송했다. 그러나 끊임없이 바울을 고소하는 유대인들의 성화에 총독 벨릭스와 그의 후임자 베스도는 바울의 결백을 알면서도 그들의 환심을 사느라 바울을 계속 억류하자 그는 마침내 로마 황제에게 호소하기를 청한다. 베스도는 바울의 호소를 받아들여 로마로 압송하기로 했다. 그러는 중에 아그립바 2세왕과 버니게가 그를 찾아오자 베스도가 그들에게 바울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흥미를 느낀 아그립바는 자신도 한번 바울을 심문하겠다고 하자 베스도는 자신의 관저 접견 장소에서 여러 고위층을 초대하고서 심문을 시작했다.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말하라고 하자 그는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라는 말을 했다. 아그립바에게는 유대인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바울의 말을 잘 이해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바울은 자신의 젊은 시절 예루살렘에서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한 것은 세상이 다 아는 바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심문을 받는 것도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것, 즉 죽은 자의 부활을 전파한다는 이유(바리새인들의 신앙! 참조. 행 23:6~8) 때문이라고 밝힌다. 급기야 그는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라고 항변하기까지 한다(행 26:8). 그리고는 예수 믿는 자들을 극렬히 박해했던 지난날을 술회한다.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과 위임을 받아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고, 그들을 죽일 때에 찬성투표를 했으며, 회당마다 가서 박해하여 강제로 예수를 모독하는 말을 하게하고, 그것도 모자라 외국 도시에까지 가서 박해했는데 그러다가 다메섹까지 가게 되었다고 했다. 이제 다메섹 도상에서의 회심 이야기가 뒤따른다. 다메섹을 향해 가는 중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비추자 땅에 엎드러졌는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즉 ‘나를 박해하는 것은 너만 고생하는 일이다’)”라는 음성이 들려서, “주님, 누구시니이까?”라고 여쭸더니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는 말씀이 들렸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장차 바울이 감당해야 할 사명에 대한 말씀이 들려왔다.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행 26:16~18). 사도행전에는 중요한 기사가 세 번 반복되는 특징이 있는데 바울의 회심 이야기(행 9, 22, 26장)가 대표적이다. 각 기사마다 다소간의 차이점과 특이점이 있는데, 첫째는 사도행전 저자 자신의 설명이고 둘째는 바울의 유대인 폭도들에 대한 연설이었으며 셋째는 아그립바 왕에게 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 성서학자들의 설명이다. 이처럼 바울의 회심은 초대교회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였다. 그의 변화로 인해 복음이 이스라엘 땅을 넘어 아시아로, 유럽으로, 아프리카로 멀리 멀리 퍼져나가게 되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김호성 목사(목회 담당 부목사 겸 영산성서연구원 원장)
  • 2024.02.08

    (87) 아그립바 2세 왕 앞에 선 바울
  • 예루살렘에서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기 직전 로마 천부장에 구출되어 로마 병영에 구금되었던 바울은 그를 죽이려는 흉계가 밝혀져 밤중에 비밀리에 삼엄한 경호 하에 가이사랴로 이송되었다. 유대인들은 그곳까지 쫓아가 총독 벨릭스에게 바울을 고발하여 재판까지 열었지만 이미 기독교 복음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벨릭스가 재판을 중지시킴으로써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릭스는 바울을 석방하지 않고 자주 바울을 불러서 복음에 대해 듣기도 하고, 또 돈을 얻고자 했다. 2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벨릭스의 뒤를 이어 베스도가 총독으로 부임했지만 상황이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유대인들은 줄기차게 바울을 고발하며 이송 중에 살해하려는 흉계를 꾸몄다. 베스도도 바울이 결백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재판을 받겠느냐고 묻자 바울은 로마 총독들에게는 희망이 없음을 알고 최후의 수단으로 자신의 결백을 재천명하면서 가이사(로마 황제)에게 상소한다. 그는 로마 시민이었기에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 후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며칠을 묵었다. 이 아그립바는 야고보를 칼로 죽인 헤롯 아그립바 1세 왕(행 12:1~2)의 아들인 아그립바 2세 왕이었다. 베스도가 아그립바에게 바울에 대해 설명한다. 바울은 그의 선임 벨릭스가 구류해 둔 사람인데, 자신이 총독으로 부임해서 예루살렘에 갔을 때 유대인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를 고소하기에 가이사랴로 내려와서 재판을 열어주었지만 “악행의 혐의는 하나도 제시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고발하는 것 뿐”(행 25:18~19)이어서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심문을 받겠느냐 하고 묻자 “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 주기를 호소하므로”(행 25:21) 그렇게 하도록 했노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자신도 바울의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이튿날 아그립바 앞에서의 심문이 열리게 되었다. 베스도가 먼저 운을 뗐다. 유대인들의 고소와는 달리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그가 황제에게 상소한 고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나이다”(행 25:25)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혹시 황제에게 상소할 확실한 자료를 얻을 수 있을까 해서 이렇게 아그립바 왕 앞에서 바울을 심문하게 되었다고 취지를 밝혔다. 베스도는 “그 죄목도 밝히지 아니하고 죄수를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인 줄 아나이다”(행 25:27)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를 통해 분명한 것은 베스도 총독도 바울이 결백하다는 것을 확신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아무 죄도 없으시다는 것을 세 번이나 선언한 빌라도(눅 23:4, 15, 22)를 떠올리게 한다.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것은 바울에게 끊임없는 열망이었다(롬 1:11~15, 15:22~24). 그러나 바울은 정상적으로 로마에 들어가지 못했다. 사도행전의 이후의 기록으로 알 수 있듯이 그는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의 가택연금 장소(행 28:30~31)까지 이송되어 갔다. 물론 그곳에서도 2년 이상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계획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역사하신다는 진리를 이 경우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롬 1:10). 김호성 부목사(목회)
  • 2024.01.12

    (86) 정의를 외면한 총독들
  • 사도 바울이 3차에 걸친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도착했지만 그의 이방인 선교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잡혀서 죽기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로마 천부장 루시아의 즉각적인 개입으로 죽음을 면하고 로마군 진영 내에 구금되어 있다가 유대인들이 그를 암살하려는 흉계가 드러나자 천부장의 배려로 총독이 있는 가이사랴로 이송되었다. 유대인들은 그곳까지 따라와서 벨릭스 총독에게 바울을 고발하여 재판이 열리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가리켜 “전염병 같은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로서 이방 지역에 사는 유대인들을 다 소요하게 하며 성전을 더럽게 하는 자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늘어놓았다. 이에 대해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에 간 것도 동족을 구제하고 제물을 드리며 예배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면서 예루살렘 그 어느 곳에서도 소란을 일으키지 않았고, 자신은 단지 조상들의 하나님을 섬기고 성경과 죽은 자의 부활을 믿을 뿐임을 총독에게 강변했다. 벨릭스 총독은 이미 기독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아내 드루실라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재판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고 천부장 루시아가 가이사랴로 내려오면 그때 다시 속개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백부장에게 명을 내려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와 가까운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했다. 며칠 후 벨릭스 총독이 그의 아내와 함께 바울을 불러서 “예수 믿는 도”(복음)를 듣고자 했다(행 24:24).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에 대해 강론하자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이를 중지시키고 다음에 또 부를 것이라고 하면서 그를 돌려보냈다. 벨릭스가 바울을 자주 부른 것은 이처럼 말씀에 대해 궁금해하기도 했지만 상당한 액수의 구제 헌금을 모금해 온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 것을 바라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렇게 두 해가 지나고 벨릭스 후임으로 보르기오 베스도가 유대 총독으로 부임했다. 벨릭스도 정치적인 인물이어서 자신의 행정 구역민인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행 24:27) 바울을 그대로 가이사랴 감옥에 구류하여 두었다. 베스도가 총독에 부임한 지 3일 후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다. 그때 바울을 고소하는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고위층들은 총독에게 호의를 베풀 것을 간청하면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데려와서 재판할 것을 요구했다. 그가 이를 허락하면 예루살렘으로 이송하는 도중에 매복했다가 바울을 죽이려는 흉계였다. 이에 베스도는 바울이 지금 가이사랴에 구류되어 있으며 자기가 곧 갈 테니 유대인들 중 “유력한 자들”이 함께 가서 정식으로 고발하라고 했다. 가이사랴로 돌아온 베스도가 바울을 부르고 재판을 열었다. 유대인들은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바울을 고발했지만 그에 대한 증거를 대지 못했다. 이에 바울은 줄곧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행 25:8)라고 담대하게 외쳤다. 그러자 베스도는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행 25:9)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재판을 받겠느냐하고 물었다. 바울의 결백을 분명히 알면서도 정치적 목적에서 유대인의 환심을 사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로마 총독들에게서 환멸을 느낀 바울은 급기야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상소”하게 된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모든 시대의 모든 그의 백성에게 이같이 말씀하신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4). 김호성 부목사(목회)
  • 2023.12.15

    (85) 가이사랴의 벨릭스 총독 앞에서의 재판
  • 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성전에서 정결예식을 지키다가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사로잡혀서 살해당할 위기에 처했는데 로마 천부장의 극적인 개입으로 성전 옆 로마 군인들의 안토니오 요새에 구금되었다. 천부장은 그곳에서 바울을 채찍질하면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는 이유를 심문하려 했지만 바울이 로마 시민임을 밝히자 그를 고문하는 대신 산헤드린(공회)에 세워서 자초지종을 알고자 했다. 70명 공회원의 절반이 바리새인인 것을 간파한 바울이 그들 앞에서 자신이 바리새인의 가치인 ‘죽은 자의 부활’을 전하다가 심문을 받는다고 하자 바리새인들이 바울 편을 들고 사두개인들과 논쟁을 벌이는 바람에 혼란이 야기 돼 천부장은 다시 그를 영내로 데려가도록 했다. 그후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는 40여 명의 결사대가 바울 암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소식이 바울에게 전해지자 천부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천부장 루시아는 밤에 삼엄한 경호 하에 바울을 총독이 주둔하고 있는 해안가의 가이사랴로 호송하면서 그에게 서신까지 함께 보냈다. 총독은 바울이 길리기아 사람인 줄 알고 바울을 고발하는 사람들이 오면 재판을 열겠다고 하면서 그를 헤롯 궁에 가둘 것을 명했다. 닷새 후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장로들 몇과 더둘로라고 하는 변호사(연설가)와 함께 가이사랴로 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했다. 그러자 바울도 소환되었다. 더둘로가 먼저 재판장에게 아첨하는 말을 한 후에 본격적으로 고발 사항을 늘어놓았다. 바울을 극단적인 이단자로 매도했다.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행 24:5). 그러고는 그가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그를 잡았다고 하면서 총독이 직접 심문하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자 함께 온 유대인들도 이에 동조해서 옳다고 외쳤다. 이에 총독이 바울에게 말하라고 머릿짓을 했다. 바울은 총독을 높이는 말을 한 후에 자신이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12일밖에 안 됐고,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거나 회당이나 시중에서 아무런 소동을 일으키지 않았기에 자신을 고발할 아무런 근거도 없다고 강변했다. 그러고는 담대하게 신앙고백을 했다. 자신은 유대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십자가 복음)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구약성경)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하나님께 향한 소망, 즉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확신하노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그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음을 호소했다. 여러 해 만에 예루살렘에 간 것도 동족을 구제하고 제물을 드리며 예배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정결예식을 수행하면서 아무런 모임이나 소동이 없었는데도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그를 잡았는데, 자신을 반대할 사건이 있다면 총독 앞에 와서 고발하든지 아니면 산헤드린 심문 때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다면 그것을 말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슈는 단 하나,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라고 한 말뿐이라고 했다. 바울이 유대인들의 참소로 일 대 수십 명의 비대칭적 재판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고 그들을 이긴 것은 주님의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눅 12:11~12)는 말씀대로 성령께서 바울과 함께하셨기 때문이다.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요일 4:4b). 김호성 부목사(목회)
  • 2023.11.10

    (84)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 바울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사로잡혀 성전 밖으로 끌어내져서 살해당하기 직전에 로마 천부장의 즉각적인 개입으로 살아나게 되었다. 그런데 로마군 수비대로 오르는 층계에서 유대인 군중들에게 한 연설이 오히려 화근이 되어 사태가 험악해지자 천부장이 그를 부대로 끌어가 채찍질하며 심문하라고 했다. 그 순간 바울이 자신이 로마 시민임을 밝히자 천부장은 로마 시민을 학대한 것을 두려워하여 그를 공회(산헤드린)에 세워서 유대인들이 그를 고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내고자 했다. 바울이 공회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로 구성된 것에 착안하여 자신이 바리새인의 가치인 죽은 자의 부활 신앙을 수호하다가 이런 곤경 속에 빠졌다고 하자 두 당파 사이에 논쟁이 격화되어 큰 소란이 일게 되어 천부장이 다시 바울을 로마군 병영으로 데리고 갔다. 바울 죽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던 유대인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급기야 그를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한 무리들이 생겨났는데 무려 40여 명이나 되었다(행 23:12~13). 이들은 천부장에게 바울을 공회로 다시 보내달라고 요구해서 오는 길에 매복하고 있다가 그를 죽이려는 흉계를 꾸몄다. 다행히 이 계획을 바울의 조카가 미리 알게 되어, 바울의 지시를 받아 천부장에게 이를 알렸다. 그러자 천부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부하들에게 ‘바울 긴급 야간 이송 작전’을 지시했다. 매복 암살조까지 있는 상황에 천부장은 최선을 다해 호송 인원을 증강했다. 출발 시간은 밤 ‘제 삼 시’(오늘날 밤 9시). 목적지는 로마 총독이 주둔하고 있는 가이사랴. 호송 병력은 보병 200명, 기병 70명, 창병 200명이 동원되었다. 또한 바울을 예루살렘에서 96.5㎞ 떨어진 가이사랴까지 무사히 보낼 수 있도록 탈 짐승까지 준비하도록 했다. 일개 죄수를 호송하는데 이처럼 엄청난 인적, 물적 자원을 쏟아붓는 것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런데 로마 시대의 기록을 보면 지방 관리들이 로마 시민들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막대한 경비를 지출한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끝으로 천부장은 총독에게 편지까지 써 보냈다. 이 편지에서 글라우디오 루시아라는 천부장의 이름이 밝혀지게 된다. 그 편지는 바울서신에서처럼 문안으로 시작한다. 그러고는 바울을 그에게 보내는 이유가 설명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루시아는 로마 시민권자인 바울을 채찍질하며 심문하라고 명령한 잘못을 숨긴 채 사실과 동떨어진 보고를 한다.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행 23:27~28). 그러나 그는 총독에게 “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행 23:29)라고 씀으로써 바울의 무죄를 확신하고 있음을 밝힌다. 그리고 바울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알려 줘서 총독에게 보낸다는 말로 서신을 끝맺는다. 천부장의 명령대로 보병이 밤에 바울을 예루살렘에서 약 56㎞ 떨어진 안디바드리까지 호송하고, 나머지는 이튿날 기병이 그를 가이사랴까지 이끌어 총독 앞에 세우게 된다. 오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어떠한 곤경에 처하더라도 능히 구원해 내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오른손과 함께 사도 바울의 결코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오뚝이 신앙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 4:8~9). 김호성 부목사(목회)
  • 2023.10.13

    (83) 바울을 죽이려는 흉계를 꾸민 유대인들
  • 3차에 걸친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잡혀서 죽임 당하기 직전 로마 천부장의 발 빠른 개입으로 위기를 벗어나게 되었다. 로마 군인들의 영내로 올라가는 층계에서 그를 죽이려는 유대인 무리에게 연설한 것이 화근이 되어 그들을 분노하게 하자 천부장은 그를 영내로 끌고 가서 유대인들이 왜 그토록 흥분하는지 그 이유를 채찍을 치며 심문하라고 명령했다. 그때 바울이 자신이 로마 시민임을 밝히자 천부장은 두려워하면서 심문 대신 제사장들과 공회(산헤드린)를 소집해서 바울의 죄목을 밝히고자 했다. 바울은 그들을 향해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라고 당당히 말했다. 그러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선 사람들에게 그의 입을 치라고 명령했다. 그때 바울이 강하게 맞대응했다. “회칠한 담[‘겉만 번지르르한 취약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이는 재판도 없이 처벌을 명함으로써 율법(신 19:15)을 범했다는 것이다. 이에 곁에 선 사람들이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라고 꾸짖었다. 그제야 바울은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했다고 하면서 “너의 백성의 관리를 비방하지 말라”라는 율법(출 22:28)을 인용했다. 그리고는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라고 말했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70명의 공회원의 절반은 사두개인이고 나머지 절반은 바리새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두개인들은 모세5경만 받아들이면서 부활, 천사, 영의 존재를 전면 부인하고, 바리새인들은 구약 성경을 다 받아들이고 부활, 천사, 영을 다 믿었기 때문에(행 23:8) 바울은 자신이 부활을 증거하다가 이렇게 잡혀서 심문을 받는다고 한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어져 큰 소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때 바리새인 쪽 서기관 몇이 일어나 강한 어조로 “우리가 이 사람을 보니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냐?”라고 하자 큰 분쟁이 생겼다. 그러자 천부장은 바울이 그들에게 찢겨질까 염려하여 군인들에게 “바울을 빼내어 영내로 들어가라”고 명령했다. 그날 밤 주께서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그가 로마에 가기 전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죽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증하는 것이었다. 날이 새자 유대인 중 사십여 명이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라고 맹세하고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이 사실을 전했다. 그리고는 그들이 바울에 대해 더 자세히 물어보려는 척하면서 천부장에게 부탁해서 그를 그들에게로 데려오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매복하고 있다가 그를 죽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바울의 ‘생질’(조카)이 알게 되었다. 그래서 급히 로마 군인의 영내로 들어가 바울에게 알렸다. 바울은 한 백부장에게 그의 조카가 천부장에게 할 말이 있으니 그에게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천부장은 그를 조용한 곳으로 데려가서 무슨 일인지를 물었다. 이에 바울의 조카는 유대인들의 바울 암살 계획을 말했다. 천부장은 그에게 그 사실을 함구하라고 경계하고 나서, 한밤중에 로마 군대의 삼엄한 호위 하에 바울을 총독 벨릭스가 있는 가이사랴로 이송할 계획을 세운다. 이처럼 바울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그를 구출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보이시고 그에게 큰 위로와 확신을 공급해 주셨다. 김호성 부목사(목회)
  • 2023.09.08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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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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