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를 위한 사도행전 이야기
(99) 사도행전의 성령에 관한 가르침④
  • 사도행전은 신구약 성경에서 오순절 성령 사역의 다양한 측면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 지난 호에 이어서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의 가르침을 살펴본다. 4. 장차 이루어질 일을 미리 말씀하시는 성령 (지난 호에 이어서 계속) 2) 성령은 신약시대에도 제자들을 통해 말씀하신다. (1) 성령이 예루살렘 출신의 아가보라는 선지자(성령의 은사 중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를 통해 안디옥에서 흉년을 예언하도록 하셨다(11:27~28). (2) 바울이 밀레도 항구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청하여 고별설교를 할 때 예루살렘에서 “결박과 환난이” 그를 기다린다는 성령의 말씀을 전했다(20:23). (3) 바울이 3차 선교여행 말미에 두로에 들렀을 때 두로의 제자들도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권했다(21:4). (4) 바울이 가이사랴의 빌립의 집에 머물 때 아가보 선지자가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고 예언하였다(21:11). 이 같은 현상은 구약 선지자 요엘이 예언한 것이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통해 성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2:16~18). 5. 성령과 방언 사도행전에는 성령이 처음으로 임하신 사건이 모두 다섯 번 기록되어 있다. 오순절 성령 강림(2장), 사마리아 대부흥(8장), 사도 바울의 회심(9장), 고넬료 집 모임(10장), 에베소 대부흥(19장).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2:4; 2:6, 8 참조; 오순절 성령강림)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8:17; 사마리아 대부흥)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9:17; 고전 14:18 참조; 사도 바울)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10:45~46; 고넬료 집)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19:6; 에베소 대부흥) 이상의 다섯 가지 경우 가운데 오직 사마리아 대부흥 기사에서만 방언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 때문에 성령이 처음 임하실 때(성령침례시) 반드시 방언이 나오는 것이 맞느냐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대해 우리 오순절 성령운동을 하는 교회에서는 빌립의 사마리아 대부흥 기사(행 8장)에 방언이란 단어는 안 나왔지만 베드로와 요한의 안수를 받은 사람이 성령 받은 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마술사 시몬이 즉시 돈을 주고 그 능력을 사기를 원한 것(8:18~24)을 미루어 볼 때, 성령 받기 전과 받은 후의 즉각적인 차이는 방언일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침례의 외적 표적은 방언이라고 믿으며 이를 가리켜 ‘은사 방언’과 구별된 ‘표적 방언’이라고 말한다. 김호성 목사(여의도순복음동부교회 담임)
  • 2025.01.10

    (98) 사도행전의 성령에 관한 가르침③
  • 사도행전은 신구약 성경에서 오순절 성령 사역의 다양한 측면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 지난 호에 이어서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의 가르침을 살펴본다. 3. 사도행전이 기록하고 있는 성령의 특징(지난 호에 이어서 계속) 2) 사도들과 복음 전도자들을 주권적으로 보내시는 성령 (1) 안디옥 교회에 의해 따로 구별된 바나바와 사울은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제1차 선교여행을 시작한다(13:4). (2)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침례를 베푼 후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가이사랴에 가게 하셨다(8:38~40). (3) 바울은 3차 선교여행 끝 무렵 밀레도에서 에베소의 장로들을 초청해서 “고별 설교”(20:18~35)를 하면서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20:28)라고 권면함으로써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를 강조하고 있다. (4) 바울은 “성령 안에서”(개역개정에는 없음)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고서 후에 로마에 이르는 여행을 계획한다(19:21). 이것은 성령의 인도에 따라 바울이 결정했음을 말해준다(이런 이해는 20:22~23에서 더 분명히 나타난다.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3) 성령을 속이거나 거스르는 것은 하나님께 그렇게 하는 것 (1) 베드로가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5:3~4)라고 말함으로써 성령이 곧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여기에서 의미심장한 것은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라는 말은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행 4:31)라는 표현과 날카로운 대조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서의 실제적인 대결은 베드로 대 아나니아가 아니라 성령 대 사탄이라고 할 수 있다. (2) 또한 베드로는 삽비라에게도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5:9)고 질책하고 있다. (3) 공회에 잡힌 스데반도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 조상들이 성령을 거스른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7:51). 4. 장차 이루어질 일을 미리 말씀하시는 성령 1) 사도행전은 구약 예언들의 실질적인 주체가 성령임을 밝히고 있다. (1) 베드로는 가룟 유다 대신 다른 사람을 12사도에 들이도록 할 것을 말하면서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시 69:25, 109:8]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1:16; 20절 참조)라고 말했다. (2) 베드로와 요한 일행이 석방된 후 주의 제자들이 영적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라고 말하고 있다(4:25~26; 시 2:1~2). (3) 로마의 유대인들이 바울의 강론을 듣고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28:25~27)라고 말하고서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졌음을 밝히고 있다(28:28). 김호성 목사(여의도순복음동부교회 담임)
  • 2024.12.13

    (97) 사도행전의 성령에 관한 가르침②
  • 사도행전은 신구약 성경에서 오순절 성령 사역의 다양한 측면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 지난 호에 이어서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의 가르침을 살펴본다. 2. 성령 충만 (지난 호에 이어서 계속) 3) 성령 충만할 때 나타난 현상 (1) 사도들은 성령 충만한 사람들을 교회 지도자로 세웠다. 예루살렘 교회가 급속히 부흥하자 교회 내의 과부 구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6:3)을 안수하여 지도자로 세웠다. (2) 사도행전은 사도들이 “성령 충만”함을 받아 많은 군중 앞에서 설교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① 베드로는 성전 미문 앞에서 구걸하던 나면서부터 못 걷던 사람을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고친 후 공회에 끌려가 심문을 받을 때 “성령이 충만하여”(4:8)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다. 이것은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눅 12:11~12)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예언의 성취로 볼 수 있다. ② 스데반도 공회에 끌려와 최후 심문을 받을 때 담대히 설교한 후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했을 때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7:55). (3) 바나바의 경우, 성령충만함을 받았을 때 안디옥의 새로 믿은 그리스도인들을 잘 양육시켜 큰 부흥이 일어나도록 했다(11:24). (4) 복음 전파를 방해하는 자를 물리침 사도 바울은 제1차 선교여행의 첫 선교지인 구브로 섬의 바보에 도착해서 총독 서기오 바울을 전도할 때 유대인 박수 바예수(또는 엘루마)가 방해하자 “성령이 충만하고” 그를 저주하여 시각 장애를 겪도록 했다(13:10~11). (5)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있었던 것과 같은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성령충만할 때 단호히 이를 이겨내고 기쁨과 평안을 유지할 수 있었다(13:52). 3. 사도행전이 기록하고 있는 성령의 특징 1) 사도들과 복음 전도자들에게 명령하시는 성령 (1) 예수께서는 공생애 기간 동안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셨다(1:2). (2) 성령은 빌립에게 에디오피아 내시가 탄 수레로 나아가라고 명령하셨다(8:29). (3)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가기를 주저하자 성령께서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라고 명하셨다(10:19~20, 11:12). (4) 안디옥 교회의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금식할 때 성령께서 선교를 위해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명하셨다(13:2). (5) 성령은 바울 선교팀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고(16:6). (6) “예수의 영”이 바울 선교팀을 무시아 앞에서 비두니아로 가지 못하게 하셨다(16:7). (7) 예루살렘 사도회의의 결론으로 성령께서 “우상 제물, 피, 목매어 죽인 것, 음행”을 멀리하는 것 이외의 짐을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지우지 않으셨다(15:28~29). 김호성 목사(목회담당 부목사 겸 영산신학연구원 학장)
  • 2024.11.08

    (96) 사도행전의 성령에 관한 가르침①
  • 부족하나마 사도행전 1장부터 28장까지의 내용 설명을 지난 호로 마무리하면서 이번 호부터는 사도행전의 주요 주제를 간략히 정리하고자 한다. 먼저 순복음 신앙인들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인 사도행전의 성령에 관한 가르침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1. 성령 침례 먼저 주요 용어를 정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성령께서 강력하게 임하셔서 지속적으로 능력 있고 열매 맺는 신앙인이 되게 하시는 현상을 ‘성령 충만’이라고 한다면 최초의 성령 충만을 ‘성령 침례’라고 한다. 따라서 성령 침례나 성령 충만은 같은 현상을 말하는데, 성령 침례는 처음으로 성령 충만을 경험했을 때를 가리키는 것이므로 일회적인 사건인 반면에 성령 충만은 성령 침례 이후의 지속적인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 된다. 1) 성령 침례에 대한 약속과 예언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셨다(1:5, 8). 또한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보고 놀라는 유대인들에게 성령 침례에 대한 요엘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된 것임을 강조했다(2:17, 18). 2) 어떻게 성령 침례를 받았는가? - 성령 침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할 때 : 120명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의 다락방에서 간절히 기도했을 때(1:13~14, 2:1~4). - 사도들이나 제자들이 안수할 때 : 빌립의 전도로 구원 받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했을 때(8:5~8, 14~17), 바울이 에베소의 열두 사람 쯤 되는 제자들에게 안수했을 때(19:1~7), 사울도 다메섹의 제자 아나니아의 안수를 통해 성령 침례를 받음(9:17). - 말씀을 들을 때 : 베드로가 고넬료 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성령 강림(10:44, 11:15). - 회개할 때 : 베드로는 오순절성령강림 설교(2:14~40)에서 회개가 성령 침례의 지름길임을 밝힘(2:38). 3) 성령 침례의 표적 사도행전은 성령께서 처음으로 임할 때(성령 침례시) 방언이 나온 것을 보도하고 있다(2:4, 10:46, 19:6). 2. 성령 충만 1) 사도행전은 성령 침례 후 지속적으로 성령 충만한 사람들을 명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베드로(4:8), 스데반(7:55), 바나바(11:24), 바울(13:9), 제자들(13:52). 사도행전의 전편인 누가복음도 침례 요한(눅 1:15), 엘리사벳(눅 1:41), 사가랴(눅 1:67), 시므온(눅 2:25~27) 그리고 예수님(눅 4:1, 14, 18)께서 성령 충만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2) 사도행전은 성령 침례를 받은 성도들이 합심해서 기도할 때 성령 충만이 반복됨을 증언하고 있다. 예를 들면 베드로와 요한이 감옥에서 석방되자 교회가 사도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드리자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게 되었다(4:24~31). 김호성 목사(목회담당 부목사 겸 영산신학연구원 학장)
  • 2024.10.11

    (95) 사도행전의 열린 결말
  • 드디어 사도 바울은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입성했다. 그러나 자유인으로서가 아니라 죄수로서 그나마 로마 시민이었기에 가이사에게 호소함으로써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을 미결수로서 로마에 들어갔다. 그런데 로마 당국은 그에게 호의를 베풀어 그를 지키는 군인 한 명과 따로 있도록 허락했다. 그러므로 상당한 자유가 그에게 부여되었다. 바울은 로마에 도착해서 사흘이 지난 후 로마에 거주하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중에서 지도층들을 초청해서 그들에게 자신의 사정을 설명해 나갔다. 자신은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 사람들에게 “죄수로 내준 바” 되어서 로마 사람들이 자신을 심문했는데 죽일 죄목이 없어서 석방하고자 했지만 유대인들이 반대해서 어쩔 수 없이 가이사에게 상소했다고 말했다(롬 28:17~19). 바울은 자신이 가이사에게 상소한 것은 절대로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강변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의 소망”이란 죽은 자의 부활을 말한다. 사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삽지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복음을 유대인들이 받아들이기 쉽게 설명한 것이다. 그러자 그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유대로부터 바울에 대한 어떤 편지를 받은 적도 없고, 누가 와서 그에 대해서 나쁜 소식을 전한 적도 없어서 특별히 어떤 관심은 없지만 그의 사상이 어떠한가를 듣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들도 그가 속한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바울이 속한 ‘파’란 예수님을 주로 섬기는 그리스도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날을 정해서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울이 유숙하는 집에 모여들었다. 바울은 그 유대인들에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권했다. 그런데 바울의 말을 들은 유대인들의 반응은 정반대로 엇갈렸다. 어떤 사람들은 믿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그러자 바울은 그들에게 준엄하게 선언했다.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행 28:25~28). 사도 바울은 이런 식으로 2년간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쳤다(행 28:30~31). 이것이 우리 성경에 있는 사도행전의 결말이다. 따라서 그것은 ‘열린 결말’이다. 즉 끝맺음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사도행전의 역사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김호성 목사(목회담당 부목사 겸 영산신학연구원 학장)
  • 2024.09.06

    (94) 사도 바울이 로마에 가다
  • 천신만고 끝에 사도 바울은 꿈에도 그리던 당시 세계 최강대국 로마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도착했다(행 28:14~16). 그러나 최정예 선교팀의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의 모습으로서가 아니라 곧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을 초라한 죄수의 신분으로 압송되어 갔다. 그는 복음을 전하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많은 고난을 당했는데 바울서신 곳곳에 이 같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b~27). 이 구절이야말로 바울의 3차에 걸친 선교여행 과정에서의 박해와 투옥, 예루살렘에서의 체포, 구금, 가이사랴 감옥으로 이송, 로마로 압송되며 겪은 유라굴로 폭풍과 파선을 생생하게 압축해서 묘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이렇게 인도하신 과정이 그가 전한 복음의 성격과 너무나도 빼닮았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하고 있고, 계속해서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라고 선포하고 있다(고후 4:7~9). 또한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라는 말씀과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9~10)라는 말씀으로 기독교 복음이 가진 역설과 그리스도인의 양면성을 잘 설명하고 있다. 바울이 전한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크고 광대하신 분이시지만 믿는 우리들은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과 같은 연약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복음을 전할 때마다 그는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던” 것이다(고전 2:3, 빌 2:12). 여기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라는 믿음의 선포가 나오게 된다. 능력의 주님이 함께하시는데 견디지 못할 고난이 없고, 넘지 못할 장벽이 없으며, 극복하지 못할 환난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어떤 모습으로 제국의 수도에 입성했느냐 하는 것은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흑암의 세력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음 전파를 방해하고 그 입을 틀어막으려 했지만 주님께서 하신 말씀, 즉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라는 약속이 성취되는 순간, 천국의 개선행진곡이 울리는 영광과 승리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김호성 목사(목회담당 부목사 겸 영산신학연구원 학장)
  • 2024.08.09

    (93) 드디어 로마에 도착한 사도 바울
  • 3차에 걸친 선교여행 후 예루살렘에 갔다가 유대인들에게 사로잡혀 죽을 위기에 처한 바울은 로마 천부장의 손길을 통해 구출 받아 로마군 진영에 갇혔다가 다시 가이사랴로 이송되었다. 그러나 그곳의 로마 총독인 벨릭스와 베스도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고자 그를 계속 감옥에 가두어 놓자 바울은 황제에게 상소해 로마로 압송 되었다. 배를 여러 번 갈아타고 로마로 갈 때 처음에는 순항하는 듯 했으나 그레데 섬 인근 해역에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보름 이상을 죽음의 공포와 굶주림 속에서 표류하다가 육지가 보여 상륙하던 중에 배가 파괴되어 배 안에 있던 276명 모두 헤엄을 치거나 부유물을 붙잡고 육지에 올라 기적적으로 구조되었다. 그 섬은 멜리데(몰타)였는데 아직 폭풍우 중이고 초겨울 날씨라 주민들이 불을 피우고 먹을 것을 주며 그들을 정성껏 영접하였다. 멜리데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인 보블리오가 바울 일행을 친절하게 영접해 사흘 동안 머물게 했는데 마침 그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고통당하고 있었다. 바울이 그에게 안수하며 기도하자 깨끗이 고침 받게 되었다. 그러자 그 섬의 많은 사람들이 바울에게 와서 병 고침을 받았다. 그들도 바울 일행을 극진히 섬기고 로마를 향해 떠날 때에는 식량을 비롯해서 필요한 물품을 배에 많이 실어주었다. 석 달 동안 멜리데 섬에 머물러 겨울을 보낸 후 ‘디오스구로’(제우스의 아들들이라는 뜻)라는 이름을 가진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 수라구사(시칠리아 섬의 시라큐스)에 들어가서 사흘을 머물고, 이탈리아 반도 남쪽에 위치한 레기온으로 가서 하루를 지냈는데 남풍이 불어와서 이틀 만에 나폴리 만에 있는 보디올에 도착했다. 그곳에 믿는 형제들이 있어서 그들의 초청으로 일주일을 함께 지낸 후 육로를 통해서 드디어 로마에 도착했다. 로마의 형제들이 바울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로마의 관문인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세 여관’이란 뜻)까지 맞으러 나왔다. 바울은 그들을 보자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담대함을 얻게 되었다. 사실 바울은 다른 어떤 곳보다 로마 방문을 원했다.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롬 1:11~15; 15:22~24 참조). 이처럼 바울은 전 세계의 중심지였던 로마에 가서 복음 전하기를 원했지만 계속되는 박해와 환난, 광풍과 각종 위험으로 인해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행 23:11)라는 주님의 음성을 굳게 믿고 앞만 보고 나간 결과 꿈에도 그리던 로마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사 55:11). 김호성 목사(목회담당 부목사 겸 영산신학연구원 학장)
  • 2024.07.12

    (92) 유라굴로를 극복한 비결
  • 3차에 걸친 선교여행 직후 예루살렘에서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잡혀 살해되기 일보 직전에 천부장 루시아의 개입으로 로마 군인들의 영내에 구금 되었던 바울은 그를 죽이려는 흉계가 드러나 삼엄한 경호 속에 가이사랴로 이송되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총독이 벨릭스에서 베스도로 바뀔 때까지도 정당한 재판 절차 없이 계속 감옥에 잡아 두는 것을 참다못해 바울은 로마 시민으로서 가이사에게 호소함으로써 로마로 이송돼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로마까지의 호송을 위해 바울은 배를 여러 번 갈아타고 그레데 섬의 ‘미항’이라는 항구에 도착했는데, 당시 겨울이 되면 항해가 불가능해져 바울이 그의 호송 책임을 맡은 백부장에게 이를 경고했지만 아무 문제없다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어 배를 출항시켰다가 얼마지나지 않아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고 만다. 엄청난 바람 때문에 배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밀려서 표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모래톱에라도 걸리면 배가 침몰하는 큰 위험에 빠질 수 있기에 닻을 내리고 배의 무거운 짐과 기구들을 바다에 버리며 바람에 맞서 버텨 나갔다. 여러 날 동안 폭풍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구원의 여망마저 사라져 가고 말았다. 바로 그 때 바울이 배 안에 있는 276명의 사람들을 향하여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하나님께서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행 27:22)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이제는 안심하라고 불안에 떠는 사람들을 다독였다. 십사일째 되는 밤에야 비로소 배가 육지에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알고서 암초에 걸리지 않도록 배 뒤편에서 닻 네 개를 내리고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날이 새어가자 바울이 그동안 식량을 아끼느라 거의 먹지 못한 사람들에게 마음껏 음식을 먹으라고 권하며 한 명도 생명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다 배불리 먹은 후 남은 식량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했다. 날이 새자 어떤 항만에 가까운 것을 보고서 선원들이 조심스럽게 접안을 시도하며 조금씩 육지를 향해 나아갔지만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에서 좌초하고 말았다. 군인들은 죄수들이 도망할 것을 우려하여 죽이자고 건의했지만 백부장이 바울을 구하기 위해 그것을 막고, 수영할 줄 아는 사람들은 바다에 뛰어들어 상륙하도록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널조각이나 배의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여 마침내 모두 육지에 올라 구조되었다. 바울 일행이 구조된 곳은 멜리데(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섬 남쪽의 몰타) 섬이었다. 폭풍 끝이라 비가 오고 날이 찼지만 섬 주민들은 불을 피워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모아서 불에 넣었는데, 뜨거운 열기 때문에 그 속에서 독사가 나와서 바울의 손을 물었다. 섬 주민들이 그 광경을 보고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행 28:4)라고 수군대었다. 그러나 바울이 그것을 불에 떨어 버리자 아무런 해를 받지 않았다. 섬 주민들은 바울의 손이 붓거나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생각했는데 시간이 흘러도 아무렇지도 않자 그를 신으로 여기게 되었다. 유라굴로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바울을 구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다”(행 27:24)라는 확신을 주셨고, 로마 백부장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죄수들을 죽이자는 군인들의 건의를 막아주셨다(행 27:42~43).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b). 김호성 목사(목회담당 부목사 겸 영산성서연구원 학장)
  • 2024.06.07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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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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