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를 위한 사도행전 이야기
(73)제3차 선교여행 - 에베소 대부흥
  • 바울의 제3차 선교여행의 주요 사역지는 소아시아의 주도(州都) 에베소였다. 바울은 먼저 성령 충만 사역을 펼쳤다. 그곳에서 바울은 열두 명쯤 되는 믿는 자들과 만났는데 그들은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했고” 요한의 침례만을 받았을 뿐이었다. 어떤 성서학자들은 이들이 그들과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던 아볼로(행 18:25~26)에 의해 믿음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본다.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이 강림하셔서 그들이 방언도 하고 침례도 하게 되었다. 학자들은 이를 가리켜 ‘에베소의 오순절’, 또는 ‘이방인의 오순절’이라고 부른다. 다음으로 바울은 말씀 사역에 매진했다. 처음에는 회당에서 석 달간, 그리고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 날로 증가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매일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했다. 그러자 아시아 지역의 많은 유대인들과 ‘헬라인’(이방인)들이 주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행 19:10). 바울이 이처럼 성령과 말씀 사역을 전개해 나가자 놀라운 능력이 수반되었다. 그에게 신유의 능력과 귀신 내쫓는 능력이 얼마나 강하게 나타났는지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천막 작업용)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기만 해도 병 고침을 받고 악귀가 쫓겨 나갈 정도였다. 이것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어서 병 고침을 받은 혈루증 걸린 여인 이야기(막 5:25~34)뿐만 아니라 베드로의 그림자가 지나갈 때 병든 자가 치료 받고, 귀신 들린 자에게서 귀신이 떠났던 사건(행 5:15~16)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능력의 근원은 이런 물건이나 도구 자체에 있지 않고 주님께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사실이다. 이때 한 가지 웃지 못 할 일이 일어났다. 유대인 유랑 마술사들 중 자칭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있었는데 바울의 은사 사역을 흉내 내서 악귀 들린 자들에게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악귀야, 물러가라!”라고 외쳤다. 그러자 악귀 들린 사람이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라고 하면서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김에 따라 그들이 상처를 입은 채 벗은 몸으로 줄행랑칠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이 에베소 전역에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두려워하면서 주께로 나아왔다. 그런데 이 유대인 마술사들은 빌립의 사마리아 선교 시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안수하자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고 돈을 주면서 안수함으로써 성령을 받게 하는 능력을 사고자 했다가 베드로에게 저주에 가까운 책망을 들은 마술사 시몬을 떠올리게 한다(행 8:17~24). 마술사 시몬이 베드로의 사역을 방해했던 것처럼 마술사인 스게와의 아들들이 바울의 사역을 방해한 것이다. 이와 같이 성령 충만, 말씀 충만, 능력 충만의 대부흥이 일어나자 에베소 사람들 가운데서 대규모 변화가 일어났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주께로 돌아와 자복하며 회개하고 주를 영접했다. 그중에는 마술사들이 자신들이 사용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책들(주로 비밀 주문을 기록한 두루마리)을 가지고 와서 사람들 앞에서 불로 태웠는데 그 책값이 은 오만 드라크마나 될 정도였다. 이것은 에베소가 고대 세계에서 마술의 중심지였다는 기록과 연관이 있다. 이 시점에서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행 19:20)고 사도 바울의 에베소 선교를 요약하고 있다.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
  • 2022.11.11

    (72) 제3차 선교여행 -­ 에베소 선교
  • 오랫동안 안디옥에 머물다가 제2차 선교여행을 떠났던 것과는 달리 바울은 안디옥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3차 선교여행을 떠났다. 그는 먼저 오늘날 터키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과 같은 기존의 선교지를 돌아보면서 성도들을 든든하게 했다. 그즈음 아볼로가 에베소에 도착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 출신 유대인으로서 ‘언변이 좋고 성경(구약)에 능통’했고 ‘주의 도’를 잘 배워서 회당에서 열심히 예수님에 관한 것을 자세히 가르쳤다. 그런데 그는 요한의 침례만 알고 있어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에게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가르쳤다. 그 후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려고 하자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면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추천서를 써서 잘 영접하라고 했다. 그는 아가야 지방에 가서 믿는 자들에게 큰 유익을 주었는데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사람들 앞에서 힘 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겼다. 그 무렵 바울은 당시 로마 제국의 소아시아 주(州)의 수도인 에베소에 도착했다. 바로 이 에베소가 바울의 제3차 선교여행의 최대 선교지가 된다. 바울은 그곳에서 열두 명 정도의 ‘제자들’(믿는 자들)을 만났다. 그는 그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아니라고 하면서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요한의 침례를 받았다고 했다. 바울이 그들에게 바로 그 요한이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고 했는데 그가 예수님이라고 했다. 그들이 그 말을 듣고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 이것은 신약에 기록된 유일한 재침례의 사례였다.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이 임하셔서 그들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게 되었다. 학자들은 이를 가리켜 ‘에베소의 오순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바울은 회당에서 석 달 동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했다. 그러자 바울은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했다. 이 두란노 서원은 두란노라는 선생의 교습소로서 하루 중 가장 더운 시간 동안(오전 11시~오후 4시) 비워 뒀는데 바울이 그 시간을 이용한 것이다. 먼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은 후에 바울이 직접 말씀으로 훈련시킨 결과 에베소 교회는 아시아 지역에서 든든한 선교 기지가 될 수 있었다. 문자 그대로 성령 충만과 말씀 충만이 균형을 이루게 되자 건강하고 탄탄하게 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다. 2년 동안 바울이 이런 사역을 펼치자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는”(행 19:10) 열매가 나타났다. 여기에서 제2차 선교여행 때 바울이 아시아에서 선교하려 했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마게도냐로 가게 된 것을 일컬어 ‘바울이 유럽을 향해 올라탄 배에 눈부신 서구 물질문명도 함께 갔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도행전의 내용에 전혀 맞지 않는 해석임을 재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제2차 선교여행 때는 바울이 소아시아에서 유럽 땅인 마게도냐로 건너갔지만 제3차 선교여행 때는 소아시아 지역의 에베소로 돌아와 무려 2년 3개월 이상이나 머무르며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독교 복음과 함께 물질문명이 유럽으로 갔다가 다시 아시아로 복귀했다는 말인가? 유럽과 마찬가지로 아시아도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의 대상이었다.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
  • 2022.10.07

    (71)제2차 선교여행-고린도교회의 부흥
  • 바울의 2차 선교여행에서 꽃을 피운 곳은 고린도였다. 고린도에 오기까지 그가 헬라의 주요 도시 네 곳에서 복음을 전했지만 끊임없는 박해와 환난 속에서 겨우 탈출하는 위기일발의 연속이었다. 그에 따라 선교의 열매도 그다지 풍성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인적, 물적 교역이 가장 활발했고 경제적으로는 풍요했지만 각종 이방신들을 섬기는 우상숭배와 음란 방탕으로 영적 도덕적으로는 소돔과 고모라를 방불하게 하는 고린도에 도착했으니 바울이 의기소침해지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장미꽃을 피우도록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바울의 든든한 동역자가 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먼저 로마에서 고린도로 보내셔서 천막 만드는 일에 종사하도록 하셨다. 따라서 생업이 같은 바울은 자연스레 그들과 함께 살며 일도 같이 하게 되었다. 바울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하고 거기에 모인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권면했다(행 18:4). 그때 마침 베뢰아에 있던 실라와 디모데가 고린도로 내려와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극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믿음 위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고 있고 데살로니가를 급히 떠난 바울을 여전히 사모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살전 3:6~8). 기쁜 소식을 들은 바울은 더욱 담대히 “예수가 메시야(그리스도)”임을 선포했다. 그러자 회당의 유대인들이 바울을 대적하고 비방하기 시작했다. 이에 바울은 옷을 털면서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행 18:6)라고 선언하고 회당 옆에 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이방인 중에서 유대교 신앙을 가진)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갔다. 바로 이 집이 고린도교회가 되었다. 새로운 모임 장소에서 회당장 그리스보 일가를 비롯해서 수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복음을 믿고 침례를 받았다. 그즈음 밤에 주님께서 바울에게 환상으로 나타나셔서 바울에게 담대함과 확신을 주셨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행 18:9b~10). 이 말씀 그대로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 바울 일행이 2차 선교여행 중 가장 긴 기간인 1년 6개월 동안이나 고린도에 머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수 있었다. 갈리오가 아가야의 총독이 되었을 때 유대인들이 바울을 잡아서 법정으로 끌고 갔다. 그들은 총독에게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라고 고발했다. 바울이 이에 대해 해명하려고 하자, 총독은 그를 제지하면서 “문제가…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라고 하면서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냈다. 그러자 그들은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렸지만 갈리오는 모르는 척 했다. 며칠 후 바울은 고린도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를 타고 2차 선교여행의 출발지인 안디옥을 향해 떠났다. 인간의 눈과 하나님의 눈은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을 바울의 고린도 선교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 55:9). 복음의 불모지 같았던 고린도가 부흥의 도가니가 되어서 바울이 2년 가까이 그곳에 머물며 복음을 전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 인간의 모든 불가능은 가능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
  • 2022.09.08

    (70)제2차 선교여행 - 고린도 선교의 시작(행 18:1~11)
  • 바울은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도착했다. 그때의 바울의 심경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졌다. 그가 지나온 네 개의 도시에서 큰 성과 없이 겨우 목숨만 보전해서 빠져나왔기 때문이다. 마게도냐의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어느 한 곳에서도 박해와 고난이 없었던 곳이 없었다. 아가야의 아덴에서는 물리적 박해는 없었지만 세상 철학과 다신론적 우상 숭배라는 정신적, 영적 박해로 인해 많은 회심자를 얻지 못했다(행 16~17장). 이런 상황에서 고린도는 바울에게 더더욱 기대감을 주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고린도는 우상숭배와 음란, 방탕이 성행하는 세속적인 도시였기 때문이었다. 고린도는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연결해주는 좁은 지협(地峽)에 위치했기 때문에 동서로 두 개의 항구를 끼고 있어서 수 많은 사람들과 문물이 오가는 교통과 교역의 요지였다. 그래서 고대 시인 호머는 그의 서사시 「일리아드」에서 ‘부유한 고린도’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고린도에는 ‘사랑과 미의 여신’으로 섬기는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1000명이 넘는 ‘성창’(聖娼)들이 있어서 그곳을 찾는 자들과 음행을 벌였다고 한다(고전 6:12~20의 배경). 이처럼 물질적으로는 풍요했지만 영적, 도덕적으로는 소돔과 고모라를 방불하게 하는 고린도에 도착했을 때의 바울의 심경은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고전 2:3). 이런 바울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장차 그의 든든한 동역자가 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미리 고린도로 가게 하셔서 그를 돕게 하신다. 사실 이들은 로마에서 살고 있었는데 당시의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클라우디우스)가 공포한 ‘유대인 추방령’(AD 49년)에 따라 로마에서 쫓겨나 고린도로 이주했다. 마침 그들의 직업이 바울의 직업과 같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어서 바울은 그들 부부와 함께 살면서 같이 일을 하며 고린도에 정착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고 떨고 있던 바울에게 환상 가운데 나타나셔서 확신의 말씀을 주셨다(행 18:9~10). 하나님께서는 먼저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고 말씀하신다. 우상숭배와 음란의 도성이라고 해서 주눅이 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울이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고 명령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그다음 하나님께서는 마치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듯이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바울은 나중에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담대하게 선포했다(롬 8:31). 끝으로 하나님께서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으니라”는 말씀으로 바울에게 고린도 선교에 대한 확신을 주신다. 이 말씀대로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나 고린도 교회가 든든하게 세워지고 바울은 2년 가까이 그곳에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다(행 18:11). 영적으로 볼 때 가장 열악한 지역이라고 생각되었던 고린도에서 놀라운 부흥이 일어난 것은 귀중한 교훈을 준다. 우리 눈으로 볼 때 절망적인 상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면 황무지가 변하여 장미꽃 동산으로 바뀌게 되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
  • 2022.08.12

    (69)제2차 선교여행 - 아덴 선교(하)(행 17:22~34)
  • 마게도냐(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에서 온갖 박해를 당한 뒤 아가야의 아덴(아테네)으로 피신한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면서 온 도시에 가득한 우상과 신전들을 보고 격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대 헬라 문화와 철학, 문명의 발상지로서 아덴의 웅장한 건물들과 조각, 신전들은 바울의 눈에는 한갓 우상 박물관이자 전시물에 불과했다. 그래서 바울은 만나는 사람마다 헛된 우상숭배를 그만두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했다. 그러자 뭔가 새로운 것에 흥미를 느끼는 아덴 사람들이 바울을 아레오바고 법정으로 데려가서 할 말을 하라고 했다. 바울은 법정 가운데 서서 아덴 사람들의 만신전(판테온) 숭배를 연결 고리로 삼아 그의 설교를 시작한다. 아덴 사람들의 유별난 ‘종교심’을 언급하면서 신전들 중에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을 보게 되었는데, 바로 그들이 알지 못하고 섬기는 신이 하나님이시라는 취지로 그의 설교를 풀어나간다. 바울은 먼저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분”)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천지의 주재”)이심을 분명히 밝힌다. 또한 우상숭배의 대상이 아니시며(“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온 생명체를 보존, 유지하시는 분(“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이시라고 설명한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한 사람으로부터 인류가 시작되어 온 세상에 퍼져 살게 하시고 그들이 사는 기간과 살 지역을 특정하셨는데, 이를 통해 그들이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도록 하시기 위함(롬 1:20 참조)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않다는 사실을 강변한다. 계속해서 바울은 성경을 모르는 아덴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고대의 유명한 시인들의 말을 인용한다. 에피메니데스의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는 말과 아라투스의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바울은 이 문구가 곧 하나님에 대해 말한 것이라고 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으니 하나님을 사람들이 만든 우상처럼 섬겨서는 안 된다고 했다(“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끝으로 바울은 지금까지는 잘 몰라서 행한 우상숭배를 회개하고(“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를 믿으라(“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는 구원의 메시지로 결론을 맺는다. 바울의 설교를 듣고 아덴 사람들은 엇갈린 반응을 나타냈다. 어떤 자들은 바울이 말한 “죽은 자의 부활”을 조롱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말을 다시 듣고 싶다고 했다. 바울이 그들을 떠날 때 몇몇 사람들이 믿었는데, 그중에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행 17:34). 바울의 전도 전략인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고전 9:22)이 아덴에서보다 더 잘 나타난 곳이 없다. 구약을 전혀 모르는 이방인 청중 앞에서 성경 대신 그들이 익숙한 그리스 문화를 접촉점으로 해서 복음을 전함으로써 구원의 열매를 맺어 나갔다.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b).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
  • 2022.07.15

    (68)제2차 선교여행-아덴 선교(상)(행 17:16~21)
  • 제2차 선교여행을 떠난 바울은 그리스 북부 마게도냐의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를 거쳐서 남부 아가야의 아덴에 이르게 되었다. 아덴은 오늘날 그리스의 수도인 아테네로 BC 6~5세기 고대 그리스 문명의 중심지였다. 로마제국에 점령되어 그 옛날의 영화와 영향력을 잃고 말았지만 바울 시대에도 그 흔적의 대부분은 남아 있었다. 아덴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로스, 제논과 같은 철학자들의 활동 무대이자 고대 민주주의를 꽃피웠던 지역이기도 했다. 다신교를 숭배하는 아덴에는 수많은 신전들과 조각상들이 곳곳에 자리했는데 그중 주신(主神)은 아덴의 수호 여신으로 받든 ‘팔라스 아테네’로 아덴 사람들은 그를 위해 파르테논 신전을 지어 헌납했다. 유대인들의 박해를 피해 베뢰아를 떠나 혼자 아덴에 온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면서 아덴 시내를 돌아보다가 우상들과 신전들이 온 도시에 가득한 것을 보고서 격분을 참지 못했다. 아덴 사람들과 여행자들은 휘황찬란한 신전들과 조각상들에 압도되어 찬탄을 금치 못했겠지만,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라는 신앙으로 철저하게 무장된 바울(고전 8:4~6 참조)의 눈에는 우상전시관과 우상창고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웅장한 예술 작품이냐 아니면 역겨운 우상 놀음이냐 하는 것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바울의 격노는 구약 비느하스의 전통을 잇는 ‘거룩한 분노’라고 할 수 있다(민 25:11 참조). 그리하여 바울은 안식일에는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경건한 사람들’(이방인 유대교도)에게 복음을 전했고, 평일에는 장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우상 숭배를 버리고 예수를 믿으라고 했다. 나중에는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과도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에피쿠로스(BC 314~270)를 추종하는 철학자들은 행복과 쾌락을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여기고 신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평온한 삶을 누릴 것을 강조했다. 제논(BC 340~265)이 창시한 스토아 철학은 우주를 다스리는 이성(로고스)에 순응하여 자족하는 삶을 이상으로 여겼다. 아덴 철학자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갈렸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라고 했다. 여기에서 ‘말쟁이’로 번역된 단어는 매우 경멸적인 표현으로 ‘새가 여기저기서 부리로 씨앗을 줍듯이 이곳저곳에서 지식 부스러기들을 주워 모아서 소화도 못한 채 마구 떠들어대는 지식 행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 마디로 바울의 말을 철저하게 무시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바울을 새로운 ‘이방 종교’를 전하는 자로 여겼다. 그가 ‘예수’와 ‘부활’을 전파하는 것이 마치 ‘예수’라는 남신(男神)과 ‘부활’(성경 원어로 ‘아나스타시스’라는 여성 명사)이라는 여신을 전하는 것으로 잘못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덴 사람들은 바울 일행을 내치지 않고 그들을 아레오바고 광장으로 이끌고 가서 바울이 가르치려 하는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듣고자 했다. 그들이 이렇게 한 것은 아덴의 도시 정서가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했기 때문이다(행 17:21). 이처럼 아덴은 고대 사회에서 매우 드문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도시였다. 이렇게 해서 바울은 자연스럽게 ‘아레오바고 설교’(행 17:22~31)를 선포하게 된다. 고대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 아덴에서 복음은 인간 문명, 우상 숭배, 철학, 지적 호기심의 총화(總和)와 맞부딪치게 된다. ‘그리스도와 문화’가 만날 때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 우리는 계속될 바울의 아레오바고 설교를 통해 그것을 보게 될 것이다.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
  • 2022.06.12

    (67)제2차 선교여행 - 베뢰아 선교(행 17:10-15)
  • 바울과 실라는 제2차 선교여행을 떠나 빌립보와 데살로니가에서 사역을 마치고 제3의 도시인 베뢰아로 갔다. 빌립보를 떠날 때는 그 도시 관리들이 떠나기를 요청해서 추방되었고, 데살로니가에서는 그곳 유대인들이 불량배들을 선동해서 바울 선교팀에 박해를 가해서 밤중에 형제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데살로니가에서 서남서 방향으로 약 8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베뢰아에 도착해서도 바울은 항상 그랬듯이 먼저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그곳의 회당 사람들(다수의 유대인들과 소수의 경건한 이방인들)은 직전의 데살로니가 사람들과는 달리 바울의 메시지에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았다. 이에 대해 사도행전은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않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행 17:11~12). 여기에서 “더 너그러워서”라는 단어는 ‘출신 배경이 더 좋은’, ‘더 고상한’이란 뜻이다. 바로 이 구절을 이용해서 자신이 만든 이런저런 기관에 “베뢰아”라는 이름을 붙인 자가 속칭 “귀신파” 이단 성락교회 김O동 씨이다. 베뢰아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인 과정은 사도행전에 기록된 여러 교회들 중에서도 매우 모범적이다. 우선 그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다.” 말씀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다음에 나온다. 그들은 바울에게서 들은 말씀이 자신들이 알고 있었던 (구약)성경의 내용과 일치하는지를 날마다 비교 검토해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후에 믿었다. 뭔가 새로운 메시지를 전한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 필요한 자세가 바로 이러한 태도이다. 바울과 실라 선교팀이 베뢰아에서 큰 부흥을 일으키고 있다는 소식이 데살로니가까지 전해졌다. 그러자 데살로니가의 악한 유대인들이 베뢰아까지 와서 또 다시 무리들을 선동해서 소동을 일으켰다. 그들의 박해는 늘 똑같은 방식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데살로니가에서 베뢰아까지가 약 75㎞나 되었기 때문에 당시 쉬지 않고 편도로 이동하는데도 2~3일이나 걸리는 거리였는데 오로지 복음전파를 저지하기 위해 그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왔다는 것이다. 제1차 선교여행 때도 이고니온에서 바울 일행을 박해했던 유대인들이 약 32㎞ 떨어진 루스드라에까지 가서 무리들을 충동질해서 바울을 돌로 쳐서 거의 죽도록 한 바 있다(행 14:19). 베뢰아의 상황이 험악해지자 그곳의 “형제들”(믿는 자들)은 우선 바울만이라도 급히 피신시켜서 배를 타고 멀리 남쪽 아가야 지방의 아덴(오늘날 아테네)까지 보냈다. 실라와 디모데도 빨리 그곳을 떠나 아덴에서 합류할 수 있도록 하라고 바울이 형제들에게 부탁했다. 이처럼 바울을 우선 대피시킨 것은 바울이 전체 선교를 주도했기 때문인 것 같다. 바울의 제1차 선교여행뿐만 아니라 제2차 선교여행 여정도 고난과 박해의 연속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바울이 뭔가를 잘못해서 그런 일을 당한 것이 아니었다. 선교야말로 가장 치열한 영적 전쟁이기에 흑암의 세력들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서 공격해 오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가시밭길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베뢰아 교인들의 모범적인 말씀 수용 자세를 보여주심으로써 선교사들의 지친 심신을 위로해 주셨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7b).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
  • 2022.05.08

    (66)제2차 선교여행 - 데살로니가 선교
  • 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은 유럽의 관문인 헬라(그리스)에 집중되었다. 첫 사역지인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매 맞고 차꼬에 채여 깊은 감옥에 갇혔다가 추방된 바울 일행은 다음 도시인 데살로니가에 도착했다. 데살로니가는 헬라 북부 지역인 마게도냐 주의 주도(州都)로서 항구 도시이자 로마에서 동방으로 가는 군사도로인 ‘비아 에그나시아’가 관통하는 교통과 문화, 상업의 중심지였다. 낯선 지역에 가면 우선적으로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 전략에 따라 바울은 안식일에 회당을 찾아 성경 강론을 펼쳤다. 아직 신약성경이 완성되지 않았던 때라 여기에서의 ‘성경’은 구약성경을 가리킨다. 바울은 구약 예언들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가리킨다고 하면서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고 설명했다(행 17:3). 이에 회당에 모인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감화를 받아 바울과 실라를 따랐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경건한 헬라인’이란 백부장 고넬료처럼 이방인 중에서 유대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구약성경을 잘 알았고 바울의 성경 강해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마게도냐 지역에 유력한 귀부인들이 많았다는 것은 당시 역사 기록이 증언하고 있다(예: 빌립보의 루디아). 바울과 실라는 이런 식으로 세 번의 안식일 동안 복음을 전함으로써 많은 이방인들이 주님께 돌아오도록 했다. 데살로니가 선교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이 바울이 직접 쓴 데살로니가전서에 나온다. 바울은 말로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도 했다(살전 1:5). 다시 말해 강력한 말씀 운동과 함께 성령 사역을 전개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복음을 전했다(살전 2:9). 그에 따라 수많은 데살로니가인들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변화와 대부흥이 일어나게 되었다(살전 1:9). 놀라운 점은 그들이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바울과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다는 것이다(살전 1:6). 데살로니가에 큰 부흥이 일어나자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시중의 불량한 자들을 선동하여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했다. 급기야 선교팀이 머물고 있던 집을 급습하여 그들을 끌어내려 했지만 실패하자 대신 야손과 몇몇 형제들을 관리들에게 끌고 갔다. 선교팀을 가리켜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그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면서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라고 말한다고 함으로써 로마제국의 전복 세력으로 매도했다(행 17:6~7). 이 말을 듣고 무리와 관리들이 소동한 끝에 야손과 형제들을 보석금을 받고 풀어주었다. 상황이 이처럼 험악해지자 밤에 형제들이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냈다. 한 달 남짓 짧은 기간 동안 큰 부흥과 함께 극심한 박해가 일어나 데살로니가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바울은 베뢰아를 거쳐서 아덴까지 가서도 온통 데살로니가 성도들 염려뿐이었다. 그리하여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보내서 그곳 사정을 확인하고자 했다(살전 3:1~5). 잠시 후 그가 돌아와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믿음을 잃지 않고 굳게 서서 여전히 사도 바울을 사모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큰 기쁨 속에서 쓴 편지가 데살로니가전서다.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
  • 2022.04.10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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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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