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를 위한 사도행전 이야기
(85) 가이사랴의 벨릭스 총독 앞에서의 재판
  • 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성전에서 정결예식을 지키다가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사로잡혀서 살해당할 위기에 처했는데 로마 천부장의 극적인 개입으로 성전 옆 로마 군인들의 안토니오 요새에 구금되었다. 천부장은 그곳에서 바울을 채찍질하면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는 이유를 심문하려 했지만 바울이 로마 시민임을 밝히자 그를 고문하는 대신 산헤드린(공회)에 세워서 자초지종을 알고자 했다. 70명 공회원의 절반이 바리새인인 것을 간파한 바울이 그들 앞에서 자신이 바리새인의 가치인 ‘죽은 자의 부활’을 전하다가 심문을 받는다고 하자 바리새인들이 바울 편을 들고 사두개인들과 논쟁을 벌이는 바람에 혼란이 야기 돼 천부장은 다시 그를 영내로 데려가도록 했다. 그후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는 40여 명의 결사대가 바울 암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소식이 바울에게 전해지자 천부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천부장 루시아는 밤에 삼엄한 경호 하에 바울을 총독이 주둔하고 있는 해안가의 가이사랴로 호송하면서 그에게 서신까지 함께 보냈다. 총독은 바울이 길리기아 사람인 줄 알고 바울을 고발하는 사람들이 오면 재판을 열겠다고 하면서 그를 헤롯 궁에 가둘 것을 명했다. 닷새 후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장로들 몇과 더둘로라고 하는 변호사(연설가)와 함께 가이사랴로 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했다. 그러자 바울도 소환되었다. 더둘로가 먼저 재판장에게 아첨하는 말을 한 후에 본격적으로 고발 사항을 늘어놓았다. 바울을 극단적인 이단자로 매도했다.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행 24:5). 그러고는 그가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그를 잡았다고 하면서 총독이 직접 심문하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자 함께 온 유대인들도 이에 동조해서 옳다고 외쳤다. 이에 총독이 바울에게 말하라고 머릿짓을 했다. 바울은 총독을 높이는 말을 한 후에 자신이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12일밖에 안 됐고,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거나 회당이나 시중에서 아무런 소동을 일으키지 않았기에 자신을 고발할 아무런 근거도 없다고 강변했다. 그러고는 담대하게 신앙고백을 했다. 자신은 유대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십자가 복음)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구약성경)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하나님께 향한 소망, 즉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확신하노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그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음을 호소했다. 여러 해 만에 예루살렘에 간 것도 동족을 구제하고 제물을 드리며 예배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정결예식을 수행하면서 아무런 모임이나 소동이 없었는데도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그를 잡았는데, 자신을 반대할 사건이 있다면 총독 앞에 와서 고발하든지 아니면 산헤드린 심문 때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다면 그것을 말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슈는 단 하나,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라고 한 말뿐이라고 했다. 바울이 유대인들의 참소로 일 대 수십 명의 비대칭적 재판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고 그들을 이긴 것은 주님의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눅 12:11~12)는 말씀대로 성령께서 바울과 함께하셨기 때문이다.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요일 4:4b). 김호성 부목사(목회)
  • 2023.11.10

    (84)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 바울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사로잡혀 성전 밖으로 끌어내져서 살해당하기 직전에 로마 천부장의 즉각적인 개입으로 살아나게 되었다. 그런데 로마군 수비대로 오르는 층계에서 유대인 군중들에게 한 연설이 오히려 화근이 되어 사태가 험악해지자 천부장이 그를 부대로 끌어가 채찍질하며 심문하라고 했다. 그 순간 바울이 자신이 로마 시민임을 밝히자 천부장은 로마 시민을 학대한 것을 두려워하여 그를 공회(산헤드린)에 세워서 유대인들이 그를 고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내고자 했다. 바울이 공회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로 구성된 것에 착안하여 자신이 바리새인의 가치인 죽은 자의 부활 신앙을 수호하다가 이런 곤경 속에 빠졌다고 하자 두 당파 사이에 논쟁이 격화되어 큰 소란이 일게 되어 천부장이 다시 바울을 로마군 병영으로 데리고 갔다. 바울 죽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던 유대인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급기야 그를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한 무리들이 생겨났는데 무려 40여 명이나 되었다(행 23:12~13). 이들은 천부장에게 바울을 공회로 다시 보내달라고 요구해서 오는 길에 매복하고 있다가 그를 죽이려는 흉계를 꾸몄다. 다행히 이 계획을 바울의 조카가 미리 알게 되어, 바울의 지시를 받아 천부장에게 이를 알렸다. 그러자 천부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부하들에게 ‘바울 긴급 야간 이송 작전’을 지시했다. 매복 암살조까지 있는 상황에 천부장은 최선을 다해 호송 인원을 증강했다. 출발 시간은 밤 ‘제 삼 시’(오늘날 밤 9시). 목적지는 로마 총독이 주둔하고 있는 가이사랴. 호송 병력은 보병 200명, 기병 70명, 창병 200명이 동원되었다. 또한 바울을 예루살렘에서 96.5㎞ 떨어진 가이사랴까지 무사히 보낼 수 있도록 탈 짐승까지 준비하도록 했다. 일개 죄수를 호송하는데 이처럼 엄청난 인적, 물적 자원을 쏟아붓는 것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런데 로마 시대의 기록을 보면 지방 관리들이 로마 시민들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막대한 경비를 지출한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끝으로 천부장은 총독에게 편지까지 써 보냈다. 이 편지에서 글라우디오 루시아라는 천부장의 이름이 밝혀지게 된다. 그 편지는 바울서신에서처럼 문안으로 시작한다. 그러고는 바울을 그에게 보내는 이유가 설명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루시아는 로마 시민권자인 바울을 채찍질하며 심문하라고 명령한 잘못을 숨긴 채 사실과 동떨어진 보고를 한다.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행 23:27~28). 그러나 그는 총독에게 “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행 23:29)라고 씀으로써 바울의 무죄를 확신하고 있음을 밝힌다. 그리고 바울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알려 줘서 총독에게 보낸다는 말로 서신을 끝맺는다. 천부장의 명령대로 보병이 밤에 바울을 예루살렘에서 약 56㎞ 떨어진 안디바드리까지 호송하고, 나머지는 이튿날 기병이 그를 가이사랴까지 이끌어 총독 앞에 세우게 된다. 오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어떠한 곤경에 처하더라도 능히 구원해 내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오른손과 함께 사도 바울의 결코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오뚝이 신앙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 4:8~9). 김호성 부목사(목회)
  • 2023.10.13

    (83) 바울을 죽이려는 흉계를 꾸민 유대인들
  • 3차에 걸친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잡혀서 죽임 당하기 직전 로마 천부장의 발 빠른 개입으로 위기를 벗어나게 되었다. 로마 군인들의 영내로 올라가는 층계에서 그를 죽이려는 유대인 무리에게 연설한 것이 화근이 되어 그들을 분노하게 하자 천부장은 그를 영내로 끌고 가서 유대인들이 왜 그토록 흥분하는지 그 이유를 채찍을 치며 심문하라고 명령했다. 그때 바울이 자신이 로마 시민임을 밝히자 천부장은 두려워하면서 심문 대신 제사장들과 공회(산헤드린)를 소집해서 바울의 죄목을 밝히고자 했다. 바울은 그들을 향해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라고 당당히 말했다. 그러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선 사람들에게 그의 입을 치라고 명령했다. 그때 바울이 강하게 맞대응했다. “회칠한 담[‘겉만 번지르르한 취약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이는 재판도 없이 처벌을 명함으로써 율법(신 19:15)을 범했다는 것이다. 이에 곁에 선 사람들이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라고 꾸짖었다. 그제야 바울은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했다고 하면서 “너의 백성의 관리를 비방하지 말라”라는 율법(출 22:28)을 인용했다. 그리고는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라고 말했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70명의 공회원의 절반은 사두개인이고 나머지 절반은 바리새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두개인들은 모세5경만 받아들이면서 부활, 천사, 영의 존재를 전면 부인하고, 바리새인들은 구약 성경을 다 받아들이고 부활, 천사, 영을 다 믿었기 때문에(행 23:8) 바울은 자신이 부활을 증거하다가 이렇게 잡혀서 심문을 받는다고 한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어져 큰 소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때 바리새인 쪽 서기관 몇이 일어나 강한 어조로 “우리가 이 사람을 보니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냐?”라고 하자 큰 분쟁이 생겼다. 그러자 천부장은 바울이 그들에게 찢겨질까 염려하여 군인들에게 “바울을 빼내어 영내로 들어가라”고 명령했다. 그날 밤 주께서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그가 로마에 가기 전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죽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증하는 것이었다. 날이 새자 유대인 중 사십여 명이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라고 맹세하고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이 사실을 전했다. 그리고는 그들이 바울에 대해 더 자세히 물어보려는 척하면서 천부장에게 부탁해서 그를 그들에게로 데려오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매복하고 있다가 그를 죽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바울의 ‘생질’(조카)이 알게 되었다. 그래서 급히 로마 군인의 영내로 들어가 바울에게 알렸다. 바울은 한 백부장에게 그의 조카가 천부장에게 할 말이 있으니 그에게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천부장은 그를 조용한 곳으로 데려가서 무슨 일인지를 물었다. 이에 바울의 조카는 유대인들의 바울 암살 계획을 말했다. 천부장은 그에게 그 사실을 함구하라고 경계하고 나서, 한밤중에 로마 군대의 삼엄한 호위 하에 바울을 총독 벨릭스가 있는 가이사랴로 이송할 계획을 세운다. 이처럼 바울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그를 구출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보이시고 그에게 큰 위로와 확신을 공급해 주셨다. 김호성 부목사(목회)
  • 2023.09.08

    (82) 바울의 ‘예루살렘 층대 연설’<하>
  •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 성전 서북쪽의 ‘안토니아 요새’라는 이름의 로마 수비대로 끌려가는 중 층대 중간에서 로마 천부장의 허락을 받아 자신을 죽이라고 외치는 유대인 무리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해서 지금까지 이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나간다. 그가 어떤 면에서 그를 고발하는 어떤 유대인들보다 더 유대교에 열심이었는지, 왜 다메섹까지 가게 되었는지, 다메섹에 도착하기 전 길에서 천상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직접 대면하게 되었는지, 그때 어떻게 시력을 잃게 되었는지, 일행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에 들어가서 누구를 만났는지, 어떻게 해서 그의 시력을 회복하고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확실하게 듣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게 되었는지 하는 것을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나갔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다메섹을 떠나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발생한 일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는 성전에서 기도할 때 그가 본 환상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사도행전 9장에 기록된 그의 다메섹 회심 사건 설명에는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가 성전에서 기도했다는 사실은 유대인들이 그에게 뒤집어씌운 성전 모독죄(행 21:28)가 허위였음을 보여준다. 이미 다메섹 도상에서 환상을 통해 주님을 만난 바울에게 환상은 주님과 직접 소통하는 통로였다. 환상을 통해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고 하시면서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확증해 주는 말씀이었다. 바울이 이방인 선교를 언급하자 그때까지 잠자코 듣기만 하던 유대인 무리들은 소리를 지르며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고 떠들면서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신성모독에 대한 혐오를 표현하는 유대인들의 관행이었다. 그러니 바울은 더 이상 연설을 이어갈 수 없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천부장은 부하들에게 바울을 영내로 데려가서 무슨 이유로 유대인들이 떠드는지 채찍질하며 심문하라고 명령했다. 그래서 군인들이 바울을 가죽 줄로 맸다. 그러자 바울은 곁에 있는 백부장에게 “너희가 로마 시민 된 자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채찍질 할 수 있느냐?”라고 항의했다. 그가 천부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자 천부장이 바울에게 와서 사실인지를 묻고는 자신은 많은 돈을 주고 시민권을 샀다고 했다. 그러자 바울은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임을 밝혔다. 이것은 최소한 바울의 부모 또한 로마 시민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천부장은 로마 시민을 아무런 법적 절차도 없이 결박한 것 때문에 두려워했다. 당시 재판하기 전에 로마 시민을 채찍질하며 심문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었다(포르치아 법). 다음날 그는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진상을 알려고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소집하고 바울을 그들 앞에 세웠다. 예수님께서 산헤드린(공회)에서 심문 당하셨던 것처럼(눅 22:66) 바울도 그들 앞에 서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예루살렘의 사도들(행 4:15, 5:27)과 스데반(행 6:12)과 같이 예수님을 따르는 참 제자들이 공통적으로 당하는 일이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막 13:9). 이리하여 사도 바울의 산헤드린 앞에서의 설교가 계속된다.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
  • 2023.08.11

    (81) 바울의 ‘예루살렘 층대 연설’<중>
  •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성전에서 정결 예식을 거행하던 중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에게 사로잡혀 성전 바깥으로 끌려 나가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그때 로마 천부장이 소요 상황을 보고받고 급히 출동해 부하들에게 바울을 잡아 로마 군대 영내(안토니아 요새)로 끌고 가라고 명령했다. 요새로 연결된 층대를 오르는 중 바울이 천부장의 허락을 받아 층대 위에 서서 흥분한 유대인 무리들에게 연설을 시작한다. 그가 그들을 손짓으로 진정시키며 헬라어 대신 본토 예루살렘 주민들의 ‘히브리 말’(아람어)로 말하자 군중들은 놀라면서 일순간에 조용해졌다. 바울은 먼저 자신도 지금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정통파 유대교도임을 강조한다(행 22:1~5). 자신은 ①유대인으로서 ②길리기아 다소에서 나서 ③예루살렘에서 자라나 ④당대의 석학 가말리엘(행 5:34)의 문하에서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⑤군중들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임을 밝혔다. 또한 그가 ‘이 도’(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를 열렬히 박해한 사실의 증인이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며, 그들에게서 공문을 받아 다메섹에서 예수 믿는 자들을 결박해서 끌고 오려고 길을 떠났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그 후에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 변화된 체험을 이야기한다(행 22:6~11). 다메섹에 거의 다다랐을 때 정오쯤 갑자기 하늘로부터 큰 빛이 그를 둘러 비치자 그는 땅에 엎드러지고 말았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라는 소리가 들려서 그가 “주님, 누구시니이까?”라고 하자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라는 대답이 들렸다. 그와 함께 가던 자들은 빛은 보았지만 음성은 듣지 못했다. 그가 다시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여쭙자 주께서는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라고 하셨다. 그는 “그 빛의 광채(원문은 ‘영광’)로 말미암아”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게 되어 일행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다. 다메섹에 들어간 그는 심신을 회복하며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알게 된다(행 22:12~6). 이전에 단순히 ‘다메섹의 제자’(행 9:10)로만 소개됐던 아나니아가 이번에는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이’라고 묘사함으로써 바울을 회복시킨 그가 율법에 열심인 군중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아나니아가 그에게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라고 말하자 즉시 그를 쳐다볼 수 있었다. 여기에 사용된 ‘보다’(아나블레포)라는 동사는 ‘다시 보다’라는 뜻과 함께 ‘위를 보다’, ‘쳐다 보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주님께서 맹인 바디매오의 눈을 열어주셨을 때도 같은 동사가 쓰였다(막 10:51~52). 바울도 육신의 시력을 회복하면서 동시에 영의 눈도 밝아져서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빌 3:8)함을 깨닫게 되었다. 아나니아는 바울의 사명을 선언한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행 22:14~15). 그리고 그는 바울에게 “주저하지 말고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부르며 침례를 받고 죄를 씻으라”고 권면한다. 이는 주님의 박해자로서의 과거를 청산하고 돌이켜 주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위대한 초청의 메시지였다. 이제 바울은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의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되었다(롬 6:3~5; 엡 5:14 참조).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
  • 2023.07.07

    (80) 바울의 “예루살렘 층대 연설”<상>
  •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교회 지도자들의 조언에 따라 율법을 준수하는 유대 기독교인들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성전에서 일주일간 정결 예식을 거행했다. 그것이 거의 끝날 즈음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그를 붙잡고 큰 소리로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자로서 이방인을 성전에 데리고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라고 고발하면서 무리들을 선동했다. 이는 스데반을 죽일 때 뒤집어씌웠던 구실과도 흡사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온 성이 소동하여’ 많은 사람들이 달려와서 바울을 잡고서 그를 죽이려고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갔다. 성전이 소란하다는 소식이 성전 북서쪽에 위치한 로마 수비대(안토니아 요새)의 천부장에게 전해졌다. 그가 급히 백부장들과 군인들을 데리고 현장으로 달려가자 유대인들이 바울 치기를 그쳤다. 천부장이 바울을 두 쇠사슬로 결박하도록 한 후에 그가 누구며 무슨 일을 했는지를 물었지만 흥분한 무리들이 이 말, 저 말 하는 것을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어서 그를 영내로 데려가도록 명령했다. 바울이 수비대로 올라가는 계단쯤 갔을 때까지 그를 죽이려는 유대인들의 폭행이 계속되자 로마 군인들이 그를 들고서 올라갔다. 영내로 들어가기 직전 그가 천부장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그러자 그가 바울에게 “헬라어를 할 줄 아느냐?”라고 하면서, 혹시 “이전에 소요를 일으켜 자객 사천 명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라고 물었다. 이에 바울은 자신이 유대인인 동시에 길리기아 다소 시민이라고 하면서 무리들에게 말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그가 허락하자 바울은 로마 수비대로 이르는 층대 위에 서서 무리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도록 한 후에 히브리 말(아람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유명한 ‘예루살렘 층대 연설’이다. 바울의 예루살렘 층대 연설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① 다메섹 회심 이전(행 22:1~4) ② 다메섹 회심(행 22:5~16) ③ 다메섹 회심 이후(행 22:17~21). 이 연설은 바울 자신이 자신의 말로 다메섹 회심 체험을 설명하는 첫 번째 경우이다. 바울은 나중에 가이사랴에서 아그립바 2세 왕 앞에서 또 다시 이에 대해서 설명할 것이다(행 26장). 이처럼 사도행전에는 바울의 다메섹 회심에 관한 기사가 세 번 기록되어 있다(행 9, 22, 26장). 바울은 “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라는 말로 연설을 시작한다. “부형(父兄)들아”라는 말은 ‘아버지와 형제들이여’라는 뜻으로 바울을 고발하는 유대인들 대다수가 남자들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특기할 사항은 바울이 자신의 연설을 가리켜 ‘변명하는 말’이라고 했다는 점이다. 이 단어(헬라어 ‘아폴로기아’)는 ‘변증’, 또는 ‘변호’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문자 그대로 ‘자신의 신앙, 또는 신념, 주장의 타당성을 논리적으로 입증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하여 이단 사설의 공격이나 세속 철학의 비난에 맞서서 기독교의 복음 진리를 수호해 온 사람들을 가리켜 ‘변증가’라고 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목숨을 걸고 선교 사역을 수행해 왔는데 그런 그를 가리켜 ‘율법과 성전을 비방하고 이스라엘을 모독한다’라고 모함하는 유대인들과 적극적으로 맞서서 변증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처럼 주님의 교회는 지난 2000년 동안 교회 안팎에서 제기된 여러 모양의 반대와 비난, 모함과 박해에 분연히 일어나 복음 진리를 변증하고 수호해 온 결과 오늘날까지 바른 신앙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
  • 2023.06.09

    (79)제3차 선교여행 -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바울
  • 3차에 걸친 선교여행을 마친 후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예루살렘의 형제들이 그를 뜨겁게 환영했다. 다음날에는 야고보와 장로들을 문안하고 이방인들 가운데서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일들을 자세히 보고했다. 그러자 그들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이 수만 명이나 되었는데 대부분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들이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동시에 유대교의 율법도 중시하고 있어서 바울이 로마제국의 판도를 세 차례나 오가며 복음을 전파하면서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라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듣고는 바울에 대한 적대감이 극에 달해 있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은 유대인 신자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묘안을 바울에게 알려 주었다. 그것은 “지금 네 사람이 정결 예식을 지키기로 서원했는데 그들과 함께 정결 예식을 행하고, 그들이 머리 깎을(아마도 나실인 서약) 비용을 부담하라”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들었던 바울의 이방 선교에 대한 풍문이 사실이 아니고, 바울도 율법을 존중하고 잘 지키는 사람인 줄 알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전의 ‘예루살렘 사도회의’의 결론, 즉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행 21:25; 15:20, 29 참조). 바울은 사도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서원한 사람들과 함께 정결 예식을 행한 후에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정결 예식 기간이 언제 끝나는지를 신고했다. 정한 기간인 일주일이 거의 다 되었을 때 ‘아시아’(소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그를 붙잡고,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라고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을 선동했다. 전에 바울이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와 함께 시내에 있는 것을 보고 바울이 그를 데리고 성전에 들어간 줄로 잘못 생각한 것이었다. 만일 그들의 생각처럼 드로비모가 성전에 들어갔다면 당시 규정에 의해 바울보다 그가 처벌을 받아 죽임을 당했을 것이라고 성경학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들의 고발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바울을 죽이려고 그를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갔다. 그러자 불길한 징조처럼 예루살렘 성전 문들이 곧 닫혔다. 이렇게 닫힌 성전 문들은 다시는 바울을 위해 열리지 않았다. 이제 바울은 꼼짝없이 그들에게 죽을 위기에 처했다. 바로 그때 성전 경내가 소란스럽다는 소식이 로마 군대 천부장에게 전해졌다. 그는 급히 군인들과 백부장들과 함께 달려 내려갔다. 로마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소요가 발생하면 즉시 개입할 수 있도록 성전 북서쪽에 안토니아 요새를 만들어 성전 경내를 바라보면서 성전 바깥뜰과 층계로 연결해 놓았기 때문에 이처럼 신속하게 출동할 수 있었다. 군인들을 보자 유대인 무리들은 그제야 바울 치기를 멈췄다. 사도행전을 보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유대인들은 호시탐탐 바울을 죽이려고 온갖 흉계를 다 부리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때마다 피할 길을 예비하셔서 바울을 보호하시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살후 3:3).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
  • 2023.05.12

    (78)제3차 선교여행 -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
  • 밀레도 항구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초청해서 고별 설교를 마친 바울은 배편으로 두로와 가이사랴를 거쳐 예루살렘에 도착한다. 바울 일행은 먼저 밀레도에서 고스, 로도, 바다라로 가서 베니게로 가는 배로 갈아타고 두로에 상륙했다. 여기서부터 다시 ‘우리’라는 1인칭 복수형 관점에서 사건이 서술된다.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행 21:1). 바울은 두로에 일주일을 머물렀는데 제자들(믿는 자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한 목소리로 바울의 예루살렘 행을 만류했다. 하지만 그는 초지일관 예루살렘을 향해 떠나고자 했다(행 20:24 참조). 두로의 제자들은 하는 수 없이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나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바울을 전송했다. 유대인들이 기도할 때는 서서 하는 것이 보통인데(눅 18:11 참조), 바울과 제자들은 밀레도에서와 마찬가지로(행 20:36)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이는 그들이 바울의 생사 문제를 놓고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가를 보여 준다. 바울은 두로에서 배를 타고 돌레마이에 도착해서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이튿날 그곳을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헬라파 일곱 지도자 중 하나인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큰 부흥을 일으킨 이래로 살고 있어서(행 6:5, 8:40 참조) 그 집에 들어가서 머물렀다. 여기에서 빌립은 ‘전도자’라고 불리는데(행 21:8) 이것은 에베소서 4장 11절에서도 ‘사도, 선지자, 목사와 교사’와 함께 언급되는 초대교회 내의 직분(복음 전하는 자) 중 하나로 생각된다. 그에게 딸 넷이 있었는데 모두 미혼으로서 ‘예언하는 자’(또는 선지자)였다고 기록되어 있다(행 21:9). 역시 ‘그 아버지에 그 딸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며칠 후 전에 안디옥에서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라고 예언했던(행 11:28) 선지자 아가보가 가이사랴에 와서 이사야를 방불하게 하는 행동 예언을 했다. 그는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서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고 말했다(행 21:11).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이구동성으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바울을 권했다. 그러나 바울은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행 21:13)고 말하면서 단호히 거부했다. 이에 무리들은 어쩔 수 없이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하면서 그만두었다. 이것은 사도행전에 세 번째 기록된 바울의 ‘고난 예고’이다. 처음 것은 성령께서 바울에게 직접 하신 말씀(행 20:23)이고, 두 번째 것은 두로의 형제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을 말리면서 한 말(행 21:4)이다. 세 번의 고난 예고 모두 성령을 통해 전해진 것이다. 특히 셋째 예언 중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고난 예고(눅 18:32~33)에도 나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고난의 장소인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던 것처럼 바울도 고난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 길을 피하려 하지 않는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 8:34). 한참 후 바울 일행은 가이사랴의 몇 제자들과 구브로 출신의 오랜 제자인 나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그러자 예루살렘의 형제들이 반갑게 영접했다. 다음날 바울 일행은 주의 형제 야고보와 장로들과 만났다.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이방인들 가운데서 행하신 일을 자세히 설명하자 온 무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렇게 해서 바울의 제3차 선교여행은 막을 내리게 된다.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
  • 2023.04.07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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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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