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QT
노르웨이 ‘재능기부 나눔 섬김이’
  •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재능기부나눔센터가 있다면 노르웨이에는 김종채 성도님의 재능기부 섬김이 있다. 교회가 있는 오슬로에서 120㎞이상 떨어진 할렌(Halden)에 거주하시는 성도님은 교회에 공사가 있을 때면 어김없이 달려와 일을 도맡아 주신다. 핵공학 박사 출신의 김 성도님은 노르웨이에서 수년간 자신의 집을 지은 경험을 바탕으로 교회의 이곳저곳을 수리해 주신다. 한 달간 높은 곳에 매달려 교회 전체 페인트 도색을 혼자 해주시기도 했고, 교회의 노후 된 창문을 20개나 직접 갈아주셨다. 지금은 교회 마당에 나무 창고를 만들어 주시기 위해 일주일 넘게 땀을 흘리고 계신다. 나도 톱과 망치를 들고 성도님을 도와 함께 공사를 거드는데 몸에 생기는 많은 상처와 검게 타는 피부를 보면서 목수의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먼 곳에서 달려와 이렇게 힘들게 일하시고 또 먼 길을 돌아가시는 성도님께 여러 번 감사의 마음을 담아 식사와 교통비를 드려보았지만 항상 “제 이름으로 헌금해 주세요”라는 대답만 하며 받기를 거절하셨다. 인건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북유럽에서 아무 대가 없이 매일 달려와 상처 나고 땀 흘리며 교회를 섬기시는 이유는 그동안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자신의 재능으로 보답하는 것이 가장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오늘도 남은 공사를 위해 이른 아침 교회로 달려오신 성도님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낀다.
  • 2024.05.24

    진짜진짜 러브스토리는?
  • 서울대병원에서 말기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내 마음의 인터뷰’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어느 사회복지사의 이야기가 며칠 전 신문에 실렸다. 세상 떠날 날이 가까운 분들이 가족이나 지인에게 마지막으로 남기는 편지인 셈이다. 지난 11년 동안 257명과 만나서 쓴 편지들 중 기자가 전한 몇 편을 읽으며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다. 그중 한 편이 특히 와 닿았는데, 대장암으로 병마와 싸우다 세상을 떠난 어느 60대 남편에게 쓴 아내의 마지막 편지였다. “날 위해서라도 기운 내라고 했더니 당신이 그랬잖아. 악착같이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그 말이 섭섭하더라. 왜 내 생각은 안 하는 거야. (눈물) 그런데 얼마나 힘들면 그랬겠어. 지금 생각하니 미안하지만 여전히 섭섭해. 그래도 여보, 당신이 하늘나라에서 날 기다려 줄 것 같아서 좋아. 날 꼭 기다려.” 남은 사람이 떠난 사람에게 보낸 편지이다. 신기하게도 남편은 아내가 이 편지를 자신의 귓가에 읽어주고 나서 나흘 뒤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기자는 마치 아내가 마음의 준비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떠난 것 같다고 했다. 문득 이런 말이 떠올랐다. “가장 감동적인 러브스토리는 함께 죽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가 아니라 함께 살아 온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이야기이다”라는 말. 부모님 사랑과 부부 사랑, 형제자매의 사랑이 우리 인생에 줄 수 있는 큰 위로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큰 사랑 하나는 아마도 그들 곁에서 오래오래 함께 머물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래서 이 푸른 5월 가정의 달에 엉뚱할지도 모를 인사를 드려본다. “여러분 모두 건강하세요.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 2024.05.17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시인의 “꽃” 중에서- 언제부턴가 각종 뉴스나 언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서 익숙해진 표현이 있다. A모씨 K군 B양 등 이름 같지만 이름 같지 않은 어색한 표현들. 물론 숨겨야 할 이유가 있어 저런 표현을 사용했겠지만 이런 것을 보면 왠지 불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름은 사전적 의미로 ‘물건 사람 장소 생각 개념 등을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해 부르는 말’을 의미한다. 이름을 드러낸다는 것은 자기의식의 표출이며 친밀한 관계 형성의 시작이다. 사실 현대 사회는 너무 많은 것이 노출돼 ‘정보 과잉’의 시대이다. ‘나’를 드러내고 노출하는 것에 피곤해졌고 ‘남’의 노출까지도 귀찮고 식상해졌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아마도 이름을 숨기는 ‘익명’(匿名)이라는 방식일 것이다. 군부독재시절 ‘익명’은 하나의 자기방어적 기재였다. 현시대의 ‘익명’도 그런 의미일까? 혹시 비겁함과 책임회피의 또 다른 이름은 아닐까? 이 시대의 익명은 마음껏 악플을 달고 허위사실을 유포하기 위한 자기쾌락적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보낸 사람이 그리운 이의 이름으로 씌어 있어 봉투를 뜯는 기다림조차 설레던 그 첫사랑의 편지들 같은 마음이 아쉽고, 누군가에게 이름을 알려주고 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 그런 관계들이 못내 그립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 2024.05.10

    가장 빠른 길
  • 얼마 전 가족과 함께 독일에서 진행되는 금식성회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으로 장거리 운전을 하게 됐다. 우리가 살고 있는 북유럽에서 성회 장소까지의 거리는 왕복 2800㎞로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독일을 지나야 했다. 가족이 함께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이 비행기보다 저렴하다는 이유도 있었고,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나라들을 지나갈 수 있다는 이유도 있어 운전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어린 자녀가 있고, 아내가 운전을 하지 못하며 한주 내내 폭우가 내리는 상황에서 2800㎞의 여행은 결코 쉽지 않았다. 힘들어하는 아이를 달래며 하루 9시간씩 이동하면서 우리 가족은 4일을 차 안에서 보내야 했다. 불과 2시간 안에 우리 가족을 목적지에 데려다 줄 수 있는 비행기가 얼마나 빠른 이동 수단인지 운전을 하면서 생각하게 됐다. 힘들게 도착한 금식성회에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단번에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목사님의 말씀이 평소와 다르게 다가왔다. 구부러지고 험한 인생길을 영원히 달려도 갈 수 없는 곳이 천국인데,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단번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의 모든 조급함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렇게 빠른 길을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께 다시 한번 깊이 감사하게 됐다.
  • 2024.04.26

    내 인생 안단테 칸타빌레
  • 바이올린을 만드는 김호기 마에스트라는 원래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그녀는 바이올린의 아름다운 선율과 우아한 모양새에 매료되어 20년 넘게 연주자로 바이올린과 한 몸처럼 지냈다. 부산시립교향악단의 일원으로 보낸 8년은 그 무엇도 부럽지 않은 행복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왼손가락에 이상이 생겼고 더 이상 연주자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새로운 선택을 요구하는 운명 앞에서 그녀는 오래 울지 않고 이번에는 바이올린 제작자의 길을 선택했다. 곧장 바이올린 제작자가 되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났다. 언어의 장벽과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바이올린 제작자로서 마에스트라 자격을 땄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하나의 문이 열린다고 했던가. 그녀는 절망의 순간 또 하나의 문이 열린 셈이었다. 그녀는 언젠가부터 ‘안단테 칸타빌레(andante cantabile)’라는 악상기호를 자기 인생의 악상기호로 여겼다고 한다. ‘천천히 노래하듯이’. 안단테 칸타빌레의 대표적인 연주곡이 차이코프스키의 현악 4중주곡 제1번 제2악장인데 편안하고 다정다감한 선율이 마음의 위안을 주는 명곡이다. 톨스토이가 처음 이 곡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감동했다고 전해지는 곡이다. 어쩌면 그 곡처럼 그녀의 삶도 천천히 노래하듯 일궈낸 삶이었는지 모른다. 온갖 장애물을 넘어 마침내 꿈을 맛본 그녀의 삶은,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과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며 노래하듯 경쾌하게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렇다. 세상일은 한 번의 좌절로 모든 것이 끝나버릴 만큼 단순하지 않다. 그러니 일희일비하지 말 것, 느리더라도 자신의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것, 무엇보다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노래하듯 즐거운 마음으로 삶이라는 악보를 연주해 나갈 것, 그렇게 우리 자신에게 말해주자.
  • 2024.04.19

    분노는 무분별하게 시작되어 후회로써 끝을 맺는다 - 피타고라스 -
  • 2022년 제94회 오스카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윌 스미스가 질병으로 인해 탈모증을 앓고 있는 자신의 아내를 빗대 농담을 했던 동료 배우 크리스 락이 서 있는 시상대에 직접 올라가 뺨을 때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다음 날 바로 사과했으나 그는 아카데미 징계 위원회에 회부됐고 그를 주인공으로 제작하려던 각종 영화는 보류 및 취소됐다. 한 번의 분노에 이은 폭행이 만들어낸 안타까운 결과다. 사실 ‘분노’는 강력범죄의 주요 동기이다. 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2020년 발생한 전체 강력범죄 2만 6971건 중 9228건(34.2%)이 ‘분노’ 범죄였다. 건강보험공단은 2022년 ‘분노조절장애’로 인한 진료 건수가 1만 869건으로 7년 전인 2015년(6977건)에 비해 무려 55%나 증가한 것으로 발표했다. 빅토르 위고의 단편 『93년』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큰 배가 항해 도중 폭풍을 만났다. 배에 실려 있던 수송용 대포를 묶었던 쇠사슬은 큰 풍파에 끊어졌다. 대포들은 배를 파괴하며 무섭게 굴러다녔고 선원들은 결사적으로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대포를 붙잡는다. 작가는 이 배를 인생에 비유한다. 이처럼 인간을 파괴하는 가장 무서운 적은 밖에서 오는 풍파가 아니고 바로 배 안의 대포인 미움과 원한 무엇보다 ‘분노’이다. ‘참을 인(忍)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라는 옛말이 있다. 짜증나는 일상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가? 잠시 눈을 감고 천천히 심호흡을 세 번만 해보자. 분노는 기묘한 사용법을 가진 무기이다. 다른 무기는 인간이 사용하지만 분노란 무기는 반대로 인간을 사용한다. - 몽테뉴 -
  • 2024.04.12

    그리스도의 십자가
  •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가 ‘아, 골고다’라는 곡을 쓸 때였습니다. 바흐의 아내 안나는 남편의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느 늦은 밤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디가 아픈가 싶어 달려가 보니 바흐가 책상에 성경을 펴놓고 엎드려 울고 있었습니다. 작곡을 위해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다가 감정이 복받쳐 참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내가 온 것도 모르고 펑펑 우는 남편을 두고 밖으로 나온 안나도 큰 감동을 느껴 복도에 앉아 눈물을 흘렸습니다. 훗날 안나는 『내 남편 바흐』라는 책을 통해 이 일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남편이 그토록 힘겨운 고통을 느끼며 곡을 쓴다는 것을 저는 몰랐습니다. 아마 완성된 곡을 듣는 사람들도 몰랐겠지요. 남편은 이 모든 순간을 오직 하나님과만 공유하길 원했기에 단 한 번도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겪으신 고난, 성경이 믿는 자들에게 약속한 축복, 부활과 천국을 향한 소망 등 성경의 말씀들을 우리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주님의 모든 고난과 구원, 축복의 약속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에게 주시는 귀한 말씀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찬양하며 말씀 가운데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더욱 깊이 느끼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 2024.03.29

    작은 것의 소중함
  • 세계 최고의 해양자원을 가진 노르웨이에는 크고 질 좋은 해산물들이 언제나 많다. 마트에 가면 깨끗한 물에서 자란 연어, 대구, 킹크랩과 같은 큰 생선들이 잘 손질되어 항상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이런 큰 생선들로 스테이크나 훈제 요리를 만들어 빵이나 감자 등과 함께 먹곤 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구할 수 없는 해산물이 몇 있다. 우리가 늘 먹던 멸치다. 큰 물고기들이 주로 잡히는 곳이다 보니 반대로 멸치와 같은 작은 생선은 잡지도 않고 먹지도 않는다. 멸치 뿐 아니라 미역, 다시마, 조개류도 이곳에서는 구할 수 없다. 미역이 없으니 김도 없고, 큰 새우는 많아도 작은 새우는 없다. 당장 국을 끓여야 하는 한국인들은 이곳에 멸치가 없어 어려움에 처하곤 한다. 여기저기 마트를 돌아다니다 결국 소고기나 닭고기로 국을 끓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타국에서 돌아오시는 분들이 가방 한가득 멸치를 사와 나눠주실 때는 큰 생선을 받을 때보다 더 기쁜 마음이 든다. 큰 것도 귀하지만 작은 것도 소중하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다 필요에 따라 요긴하게 만드셨다는 것을 노르웨이에서 깊이 깨닫게 된다. 주 안에서 귀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귀하지 않은 일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번 한 주도 예수님처럼 모든 영혼을 존귀하게 대하는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 2024.03.22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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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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