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QT
작은 나무 조각
  • 벽난로가 주요 난방수단인 노르웨이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 씩 두꺼운 장작에 불을 붙여야 추위를 이길 수 있다. 나무라면 다 쉽게 불이 붙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른 아침 차갑고 두꺼운 나무장작에 불을 놓으면 하얀 연기만 날 뿐 불이 잘 붙지 않는다. 불이 붙어도 잠시 눈을 떼면 쉽게 꺼지고 만다. 이러한 때를 위해 먼저 계셨던 선교사님은 작은 나무 조각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아두셨는데, 이것이 정말로 유용했다. 작은 나무 조각은 불이 잘 붙고 그 불이 금세 커져 두꺼운 장작에도 옮겨 붙었다. 이렇게 난로 가득 불이 커지고 난 후에는 아무 연기도 없이 주변이 따뜻해졌으며, 두꺼운 나무를 많이 넣어도 순식간에 불이 붙었다. 우리에게는 어두워진 세상에 성령의 불을 밝혀야 하는 사명이 있다. 하지만 열정이 식어 버리고 이기심과 자만으로 한껏 두꺼워진 영혼의 장작들이 될 때가 많다. 제대로 타지 않는 나무에서 나오는 매운 연기처럼 늘 부정적이고 비판적으로 세상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두꺼운 장작도 언젠가는 불이 붙는다. 불이 붙으면 연기는 사라지고 장작은 따뜻하고 밝은 빛을 만들어 낸다. 우리가 매일 작은 나무 조각과 같은 기도의 불을 끄지 않고 이어간다면 하나님은 큰 성령의 역사를 베풀어 주실 것이다. 작은 나무 조각의 소중함을 잊지 말자. 그리고 함께 기도함으로 큰 성령의 불을 만들어 가자.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약 3:5).
  • 2023.11.24

    우리가 바라는 성공 ‘신수성가(神手成家)'
  • ‘자수성가(自手成家)’는 물려받은 재산 없이 자기 힘으로 벌어 재산을 모은 사람이다. ‘부수성가(父手成家)’라는 말도 있다. 아버지 또는 조상의 힘으로 부자가 된 사람인데, 대부분의 재벌 2세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자수성가를 이룬 사람은 대체로 경쟁이 치열한 정글의 생애를 살게 마련이어서 고든 맥도날드의 말대로 ‘쫓아다니는 삶’ ‘남을 추격하는 생애’를 살기 쉽다. 때로는 내가 성공하기 위해 남을 실패하게도 만든다. 부수성가를 이룬 사람은 특별한 고생도 없지만 영향력도 떨어지며 존경받지 못한 삶을 살기 쉽다. 『교사의 벗』이라는 교회학교 교사들을 위한 잡지를 평생 만들어 온 강정훈 목사는 여기에 더해 ‘신수성가(神手成家)’를 이야기한다. 신수성가는 자수성가도 부수성가도 아닌 제3의 성공유형인데 하나님의 손으로 성공한 사람들이다. 신수성가는 믿음으로부터 오는 인격과 존경이 성공의 중요한 요인이며 동시에 결과물이다. 대표적인 신수성가 인물이 요셉인데 그는 총리 이후에 더 멋진 생애를 살아냈다. 총리가 그의 목표가 아니었고 오히려 총리라는 성공이 여러 사람을 살리고 구원하고 번영시키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더 돈독하게 하는 사명의 수단이 되었다. 이런 점에서 신수성가를 이루는 좋은 신앙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성취해 가며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도움으로 인격을 다듬어 성숙시킨다. 요셉은 평생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생애를 살았다. 자존심에 상처가 나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람들에 대한 성실함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그 배후에는 지하수처럼 흐르는 평생의 순종이 있었다. 우리가 거둬야 할 추수의 내용 또한 이것이 아닐까.
  • 2023.11.17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이다
  •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이다” - 괴테 - 사회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1950년대 사람들에게 필요했던 생필품은 72가지였고 그중에 절대 필요한 필수품은 18가지였다고 한다. 21세기 현대인들의 생필품은 500가지 이상이고 꼭 필요한 물품만도 50가지가 넘는다. 집에 전기가 들어오고 컬러TV와 전화기가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던 시대에 비하면 모든 것이 풍족한 시대다. 많은 이들이 승용차 및 각종 디지털 가전기기를 소유하고 런닝머신 및 안마기 등 헬스기구까지 갖추고 있으며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과일과 산해진미의 풍요를 누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풍요를 누리며 사는 현대인들은 이전 시대의 사람들보다 그만큼 더 행복할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그것은 바로 모든 사람의 마음에서 ‘감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저명한 비평가 크루치(J. W. Krutch)는 “행복은 감사하는 마음이다”라고 말했으며,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D. Bonhoeffer)는 “감사를 통해 사람은 부자가 된다”라고 말했다. 많이 가져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많이 감사해야 행복하다. 행복은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감사의 크기에 비례하며 감사가 바로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다. 경제 불황으로 삶의 그늘이 깊게 드리워진 요즘 세상이 온통 불평과 불만의 소리만 넘쳐나고 답답하게 막혀 불행하다면 바로 지금이다! 조건 없이 감사의 열쇠로 열고 나가보자! 생각보다 우리는 더 많이 행복한 사람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 두 곳이 있는데 한 곳은 천국이요, 다른 한 곳은 감사하는 마음이다” - 아이작 뉴튼 -
  • 2023.11.10

    잘 산다는 것
  • A는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꿈을 향해 달렸건만 결국 자신의 주머니에 남은 건 욕심이 가져온 실패 뿐이라며 “나처럼 안타깝게도 죽은 과거의 시간에 매여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한탄했다. 그리고 P에게 물었다. “정말이지, 잘 산다는 건 뭘까요?” 수목을 보는데 익숙한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는 나무라도 뻗은 수관의 형태로 수종을 가려낸다고 한다. 수종에 따른 수목의 고유형은 유전되지만 환경인자가 변하면 수목은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고 만다. 전정 작업으로 잘 가꾸면 최고의 나무가 되지만 방치하면 나무는 값어치를 잃고 만다. 사람도 이와 같다. 잘 살기 위해선 고통이 뒤따른다. 그러면서 P는 시편의 한 대목을 들려줬다. “조각난 내 삶을 다 맡겨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온전하게 만들어주셨다. 내 행실을 바로 잡았더니 새 출발을 허락해 주셨다. 나 이제 하나님의 도에 늘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하나님을 예사롭게 여기지 않으리라. 매일 그분이 일하시는 방식을 유심히 살피며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애쓰리라.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신중히 내딛는다. 내 마음을 열어 보여드리니 하나님께서 내 인생 이야기를 다시 써주셨다.”(시 18:20~24, 메시지성경) P는 계속해서 말했다. “잘 사는 것의 핵심은 성취 소유 안락함이 아니라 언행일치 진실성 그리고 사랑입니다. 내면을 잘 관리하는 것에서 잘 사는 법은 시작되죠. 땅에 살지만 하늘을 사는 삶, 속사람을 다스려 겉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삶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P가 가르쳐준 방법은 ‘기도’였다. “우리는 흔히 기도를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해요. 할 수 있는 일을 다해보고 그래도 안 될 때 기도하는 거라구요. 천만에요. 기도는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려는 시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미 시작하신 일에 참여하는 거죠. 기도가 ‘대답하는 말’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 2023.10.27

    좋지 않은 날씨는 없다
  • 겨울이 길고 눈과 비가 자주 내리는 북유럽은 춥고 어두운 날이 많다. 햇살이 밝게 비치는 날에도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와 하루에도 여러 번 비가 내리곤 한다. 짧은 여름 동안 밤 10시가 넘도록 해가 지지 않기도 하지만 긴 겨울 내내 오후 3~4시면 해가 지고 온 땅이 어두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는 아무도 날씨를 탓하는 사람이 없다. 그들은 늘 이렇게 말한다. “좋지 않은 날씨는 없습니다. 당신에게 장비가 부족할 뿐입니다.” 바꿀 수 없는 날씨를 탓하기보다 스스로 노력하고 바꿀 수 있는 부분을 찾아 보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이를 따라 유치원에 간 첫 날, 비가 쏟아지는 추운 날씨 속에서 이곳 아이들은 모두가 즐겁게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우리 아이도 준비해 간 장화와 장갑 그리고 두툼한 우비를 입혀주자 친구들과 함께 비를 맞으며 신나게 놀았다. 혹여 춥지 않을까 아이의 몸을 여러 번 살펴보았지만 아이의 몸은 평소보다 훨씬 따뜻했다. 우리도 바꿀 수 없는 삶의 환경을 원망하기보다 노력하고 바꿀 수 있는 부분들을 생각하며 기도해보자.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떠한 환경도 극복할 수 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전 10:10).
  • 2023.10.20

    가족의 거리
  •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은 동생 폴의 죽음을 맞은 어느 날 밤의 가족들 풍경이다. 가족들은 그 소식 앞에서 모두 할 말을 잊은 채 깊은 절망의 나락으로 빠진다.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아들이나 동생에 대해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아니 서로를 향해서도 해야 할 말을 잊어버린다. 그들은 함께 있으나 홀로 있다. 무겁고도 힘겨운 시간을 가족들은 ‘함께’ 보낸다, 아니 살아낸다. 형은 아버지의 마지막 설교를 기억하면서 폴이 아버지의 마음속에 언제나 남아 있었다고 말한다. 아버지로부터 형이 들은 마지막 설교는 깊고도 아득했다. “여기 계신 여러분 중 누구나 한 번 쯤은 사랑하는 사람이 도움이 필요한 것을 보고 이렇게 기도해 보셨을 겁니다. ‘주여! 기꺼이 도와주고 싶은데, 도대체 무엇이 부족한 것입니까?’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조차 그들이 위기에 빠졌을 때 우리가 도울 수 없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이 또한 인정해야 할 사실입니다. 자신의 어떤 부분을 주어야 할지 우리는 모르기도 하거니와 우리가 준 그것을 그가 진정 원하는 건지도 우린 모릅니다. 우리의 손을 미끄러져 가는 그들이 바로 우리와 함께 살면서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을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온전히 사랑할 수는 있는 겁니다.” 가족의 거리는 꼭 그만큼이지 싶다. 멀고도 가까운…. 아버지는 인생을 통하여 그 거리를 익혔을 것이다. 목사인 아버지는 그 거리에서 사람이 사랑할 수 있는 한계를 보았을 것이다. 목숨을 내줄 수 있을 것 같은 가족조차,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거리에 떨어져 있음을…. 아버지는 이 슬프고도 절망적인 한계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그렇게 한계를 가진 불완전한 사람의 사랑이야말로 완전한 사랑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우리는 사랑의 비밀을 깨달아 가는지도 모른다.
  • 2023.10.13

    인생의 희망은 늘 괴로움이라는 언덕길 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다.
  • 2020년 기준 OECD 국가 중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24.1명으로 2위인 리투아니아(20.3명)와 3위인 슬로베니아(15.7)보다 한결 높다. 출산율은 OECD 꼴찌인 0.78명 상황에서 자살률은 1위를 지키고 있으니 국가적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코로나19와 비교하면 더 확연하다. 2020~2022년까지 3만2156명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 같은 기간 자살로 숨진 사람은 3만9267명으로 7000여 명이나 더 많다. 무엇보다 20대 청년 자살률이 60대 노년층을 제치고 가파르게 증가해 심각한 상황이다. 자살 청년 5명 중 1명이 자살 이유로 경제문제를 꼽아 취업난 및 빈곤의 심각성을 드러냈다. 물론 ‘그래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렇게 되뇌다가도 문득 ‘그래도 살아보지. 죽을 용기로 한번 살아보지!’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북아메리카 로키산맥의 해발 3000m 높이에 수목 한계선 지대가 있다. 이곳의 나무들은 거친 환경을 극복하고 살아남기 위해 곧게 자라지 못하고 자신의 몸을 비틀고 웅크려 마치 ‘무릎 꿇고 있는 모습’으로 자란다. 키가 작고 모양도 뒤틀려 있으니 가구를 제작하는 목공소에서도 반기지 않고 심지어 꽃이나 잎도 제대로 피우지 못해 초식동물조차 거들떠보지도 않는 무릎 꿇고 있는 나무는 대단히 귀하게 쓰인다. 세계적으로 가장 공명이 잘 되는 명품 바이올린은 바로 이 나무로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영혼을 갖고 인생의 절묘한 선율을 내는 사람은 어떤 고난도 없이 좋은 조건에서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 온갖 역경과 아픔을 겪어온 사람이다. 인생은 평화와 행복만으로는 살수 없으며 괴로움이 필요하다. 이 괴로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슬퍼하지도 말라. - 몽테뉴
  • 2023.10.06

    땅을 차지하는 방법
  • 한국을 떠나 북유럽에 살게 되면서 마당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를 관리하는 새로운 일상이 생겼다. 무성한 잔디 위로 기계를 돌려 대부분 풀과 잡초를 먼저 제거하고, 날카로운 낫이나 가위로 기계가 닿지 않는 곳들을 정리해준다. 한참 동안 풀들과 꽃 그리고 나무들을 정리하고 나면 마당은 깔끔한 모습이 되고 그 위에서 사람과 새들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2주만 지나면 어느새 정리한 풀들이 소리 없이 자라 마당은 다시 이전처럼 무성해지고 만다. 여기저기 가지가 잘린 나무도 모습을 회복하고, 줄기를 잘라 병에 꽂아둔 민트와 허브에서는 작은 뿌리가 나와 물을 흡수하고 있다. 창고로 돌아가 다시 기계를 꺼내 오는데 기름이 부족했는지 좀처럼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쇠로 만들어진 칼날 부분은 묻어 있던 수분으로 인해 그동안 녹이 슬어 잘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그 순간 소리 없이 잘려나갔어도 다시 나오는 풀들과 아무 힘없이 열매를 빼앗겼어도 다시 생명을 이어가는 나무들이 날카로운 기계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을 들어 주변을 살피니 온 땅을 차지하고 있는 온유한 풀과 나무들이 보였다. 보이지 않는 땅속 깊은 곳에 뿌리를 두고 온 세상을 소리 없이 지탱하고 있었다. 우리의 생명과 호흡까지도 그 안에서 조금씩 이어져 나가고 있었다. 온유한 자가 온 땅을 차지하고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깊이 묵상 되는 하루였다.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시 37:11).
  • 2023.09.22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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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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