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QT
십자가 앞에 새로워지는 삶
  • 부활절을 앞둔 고난주간은 모든 성도에게 다시 한번 십자가 앞에 서도록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청이다. 우리는 이 시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깊이 묵상하며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점검하게 된다. 바쁜 일상 속에서 희미해졌던 십자가의 의미를 다시 붙드는 시간이 바로 고난주간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2000년 전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 나를 위한 현재의 은혜이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셨다. 이 사실을 단순한 교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이 새기는 것이 신앙의 출발이다. 영국의 목회자이자 찬송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을 지은 존 뉴턴은 젊은 시절 노예무역에 직접 가담했던 사람이었지만, 1748년 대서양에서 폭풍을 만나고 죽음의 공포 앞에서 그는 처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그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기 시작했다. 그가 남긴 찬송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한 한 죄인의 진실한 고백이었다. 고난주간을 맞아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결단해야 한다. 십자가를 기억하고 죄를 회개하며, 삶으로 동참하고 부활의 소망을 붙드는 것이야말로 고난주간을 살아가는 성도의 참된 자세이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24)
  • 2026.03.27

    속도보다 생명을
  • 북유럽은 도로에서 발생하는 보행자 사고가 한국의 약 10분의 1 수준으로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보행자 사망률을 유지하고 있다. 날씨로 인해 어둡고 미끄러운 곳이 많음에도 이렇게 보행자의 안전을 철저히 지킬 수 있는 이유는 속도보다 생명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법과 사람들의 인식 덕분이다. 주거지역의 도로는 차가 속도를 내지 못하도록 일부러 길을 좁게 설계한 경우가 많으며 대부분 시속 30㎞ 정도로 속도 제한을 두고 있다. 또한 직진 차량보다 우측에서 진입하는 차량이 우선권을 가진 도로가 많다. 전체적으로 차량 속도를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춘 도로 규칙이 많음을 볼 수 있다. 특히 횡단보도에서는 법이 절대적으로 보행자를 보호하고 있다.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없더라도 갑자기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해 차량은 의무적으로 시속 25㎞ 이하로 속도를 줄여야 하며 만약 보행자가 있다면 신호와 관계없이 언제든지 멈출 준비를 해야 한다. 필자도 매일 자녀와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멀리서부터 속도를 줄이고 주의하는 운전자들을 보며 마음에 큰 안도감을 느끼곤 한다. 이처럼 보행자를 우선으로 하는 도로 규칙 때문에 때로는 빠르고 신속하게 이동하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있지만 속도보다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에 북유럽 사람들은 차가 느리게 이동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도 일상에서 늘 연약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배려하려 노력한다면 결국 우리 모두도 삶 속에서 동일한 보호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 2026.03.20

    옥좌를 떠나 식탁으로 오신 왕
  • 사순절은 우리를 위해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시간입니다. 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며 저는 유배지 영월의 척박한 땅에서 비로소 ‘진정한 왕’으로 거듭나는 단종(이홍위)의 모습에서 우리 주님의 성육신적 사랑을 묵상합니다. 화려한 의전과 엄격한 법도가 지배하던 궁궐을 떠나 사방이 절벽인 영월 청령포에 던져진 소년왕. 세상의 기준에서 유배는 추락이고 실패이지만 신앙의 시선에서 낮아짐은 진정한 통치가 시작되는 성소(聖所)가 됩니다. 이는 하늘 왕께서 친히 이 땅의 비천한 왕으로 오셔서 우리를 섬기고 사랑하신 그 거룩한 행보를 상기시킵니다. 영화 속 단종이 백성들의 거친 손마디와 그 안에 담긴 정성을 하나하나 기억하려 애썼듯이,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우리의 고통을 친히 담당하며 우리 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셨습니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세상의 가장 소외된 식탁에 앉으신 그분은 권위로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사랑으로 생명을 내어주는 ‘섬기는 왕’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우리가 이처럼 낮은 곳으로 오셔서 섬김의 왕이 되신 주님을 깊이 묵상하고 그 발자취를 따를 때 우리의 삶은 비로소 진정한 기쁨을 회복합니다. 나를 증명하려 애쓰는 고단한 경쟁을 멈추고 주님이 허락하신 환대와 사랑의 식탁에 머물 때 우리는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참된 복을 얻게 됩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완성된 주님의 리더십이 우리 안에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생명의 풍요를 누리며 누군가를 위한 좋은 이웃으로 기억될 수 있습니다.
  • 2026.03.13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 지난해 10월 생후 4개월 된 신생아가 친모의 학대로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일명 ‘여수 4개월 영아 살인 사건’. 검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홈캠 자료를 추가로 확보한 결과 친모 양 씨의 아동학대 사실이 확인됐다. 양 씨는 울고 있는 아기에게 “죽어” “너 같은 거 필요 없어” 등 욕설은 물론이요 아기의 발을 잡아 거꾸로 들고 다니거나 집어던지고 심지어 누워있는 아기의 얼굴을 밟고 지나다니기도 했다. 결국 양 씨는 아동학대 살해 혐의로 구속됐으나, 현재 아동학대는 인정하면서도 “살해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등골이 서늘하고 가슴이 먹먹하지만 아직 놀라긴 이르다. 2019~2023년 아동학대로 사망한 아이들은 219명이며, 그중 22.7%가 1세 미만이고 59.1%가 5세 이하였다. 안타깝게도 학대 행위자 중 82.9%가 친부모이고 아동학대 발생 장소 중 82.9%가 가정에서였다. 누군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던 아이들이 다름 아닌 친부모의 손에 죽어가고 있다. ‘구두쇠 스크루지’로 유명한 영국 소설가 찰스 디킨스(C. Dickens)는 “세상에 태어난 아기는 누구나 가치가 있다”라고 말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절대 변치 말아야 할 것이 모정(母情)이요 부정(父情)일진대 무엇이 그 천륜(天倫)조차 변질시키는 것일까?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아이들의 안타까운 죽음. 이제 미안함으로만 끝내지 말고 주변의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이고 유심히 살펴보자. 우리의 관심이 귀하고 여린 한 생명을 지킬 수 있음을 기억하자. 어린이를 때리기 전에 자신의 기분 때문에 잘못하는 것이 아닌지 분명히 살피라! - 오스틴 오말리
  • 2026.03.06

    한국인이라는 자부심
  • 한국이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나라인지는 해외에 살아 보면 더욱 깊이 깨닫게 된다. 내가 살고 있는 노르웨이에서 한국을 모른다고 말하는 외국인은 아직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다. 방과 후 초등학교 교실에서는 K-팝을 따라 노래하고 춤을 추는 외국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고, 학부모들을 만나면 저마다 자신이 본 K-드라마가 무척 인상 깊고 재미있었다고 이야기한다. 한국의 자동차와 다양한 제품들 역시 이곳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며 명절에 교회에서 음식을 나눌 때면 많은 외국인 배우자들과 외국인 지인들이 교회를 찾아 함께 예배하고 K-푸드를 즐기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최근에는 한국에 가서 문화를 직접 체험하는 것이 자신의 ‘버킷 리스트’라고 말하는 외국인들이 늘어나면서, 기존에 없던 한국행 항공 노선이 이곳에 새롭게 신설되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들을 바라보며 한국인으로서 깊은 자부심과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대한민국은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참으로 동경하는 아름답고 복된 나라임을 기억하면 좋겠다. 오랜 역사 속에서 이어져 온 귀한 전통과 눈부시게 성장한 현대 문화가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를 돕는 따뜻한 마음과 정이 살아 있는 나라가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수많은 성도의 예배와 기도가 한국 땅에 넘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2026년 대한민국에 다가올 여러 도전과 문제들 또한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지혜롭게 잘 이겨 내고, 한국 문화와 함께 복음을 힘 있게 전파하여 선교대국으로 마지막 때에 귀하게 쓰임 받는 민족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 2026.02.20

    가장 연결되어 있으나 가장 외로운 당신에게
  • 오늘날 MZ세대와 Z세대는 스마트폰과 SNS를 통해 24시간 세상과 연결된 ‘디지털 네이티브’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들은 역사상 ‘가장 연결되어 있지만 가장 외로운 세대’라 불립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Z세대의 약 73%가 상시적인 외로움을 느끼며, 이는 전 세대 중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이러한 고립감은 심각한 정신건강 문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내 20대 우울증 환자가 몇 년 사이 두 배 가까이 급증했고, 해외 조사에서도 청년층의 36%가량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심리학자 장 트웬지가 지적했듯 스마트폰 이후의 세대는 무한한 연결 속에서도 감정적 고립과 불안이라는 역설적인 파도를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지독한 고립을 끊어낼 유일한 해답은 성경의 정신에 있습니다. 성경은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라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위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완벽하게 ‘우리 편’이 되어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조건이나 완벽함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허물 많고 지친 모습 그대로를 긍정하며 곁에 다가오셨습니다. 당신의 아들을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향한 지지를 멈추지 않으시는 영원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진정한 편이 될 수 있는 비결도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경험할 때 비로소 타인을 판단이 아닌 긍휼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오늘 그 든든한 품에 먼저 안겨보십시오. 그 평안이 당신을 통해 이웃에게 흘러가 고립된 영혼을 살리는 진정한 연결이 될 것입니다.
  • 2026.02.13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할까?
  • ‘영끌족’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이 말은 ‘영혼까지 끌어 모아 어떤 것을 얻으려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MZ세대들을 주로 일컫는다. 또한 이 말은 원하는 것은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얻고 말겠다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는 욕망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용어이다. 서울과 수도권의 아파트값이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다. 주거 불안을 해소하려는 ‘영끌족’으로 대표되는 실수요자들뿐만 아니라, 안정자산을 확보하려는 투기 세력까지 몰려들면서 정부가 여러 가지 긴급조치를 내놓고는 있지만, 녹록지 않은 상황임은 분명해 보인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할까?”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러시아 민화집』에 수록된 단편 소설의 제목이다. 땅에 대한 욕심이 남달랐던 ‘바흠’이라는 남자는 작은 마을 촌장의 제안으로 지평선에 해가 떨어지기 전에 한 치라도 더 많은 땅을 차지하려는 욕심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겨우겨우 시간에 맞춰 돌아왔지만, 약속된 땅을 얻으려는 순간 안타깝게도 입에서 피를 토하며 죽게 됐다. 그는 하루에 걸을 수 있었던 거리 50㎞에 5분의 1인 10㎞만 걸어갔다가 돌아왔어도 엄청난 땅을 단돈 1000루블(한화 1만5000원)에 얻을 수 있었다. 지나친 욕심이 결국 화를 부른 것이다. 성경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가르친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바흠의 하인은 괭이를 들고 주인을 묻기 위해 구덩이를 팠다. 그 구덩이는 바흠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단 2의 길이밖에 되지 않았다. 그는 그곳에 묻혔다.” 인간은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많이 좋은 것을 갖고자 하는 욕구를 타고났다. - 마크 트웨인 -
  • 2026.02.06

    겨울을 이기는 방법
  • 겨울철 북유럽에 오면 거리 한편에 유모차가 줄지어 서 있고 그 안에서 아기들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부모들은 카페나 공원에서 담소를 나누는 동안 아기를 밖에서 재운다. 어린이집에서도 추운 겨울에 아이들을 단체로 야외에서 재우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아기들은 두꺼운 옷과 담요로 단단히 싸여 있지만 영하로 내려가는 날씨 속에서 아기들을 밖에서 재운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매우 낯설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곳의 부모들은 아기들이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겨울과 친해질 때 더 건강하게 자란다고 믿고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에도 북유럽의 아이들은 겨울을 즐기며 이겨 내는 법을 배우고 훈련한다. 영하 15℃까지는 날씨와 관계없이 매일 야외에서 놀이 시간을 갖고, 비가 오는 날에도 우비를 입고 선생님과 함께 산책을 한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추위에 지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작 밖에서 노는 아이들은 언제나 무척 즐거워하며 행복해 한다. 한참을 밖에서 놀고 온 아이를 안아 보면 놀랄 만큼 몸이 따뜻하고 땀까지 흘리는 모습을 보며 마음을 놓게 된다. 우리는 따뜻한 온실처럼 좋은 환경에 머물기를 원하며 늘 기도한다. 그러나 그러한 환경은 때로 우리의 마음을 연약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를 과잉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감당할 수 있는 계절을 통과하게 하시며 그 과정 속에서 우리를 단단하게 빚어 쓰임 받는 삶이 되게 하는 것이다. 추운 겨울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는 사람들처럼 우리도 주어진 환경에서 매일 감사의 제목들을 찾아가며 넉넉히 올 한 해를 이겨 나가기를 바란다.
  • 2026.01.23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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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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