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QT
“모든 것이 잘 될 거야.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테니까” - 스칼렛 오하라
  • 유명했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명대사이다. 이것은 ‘아무리 어려운 때라 할지라도 오늘의 어둠은 지나가고 내일은 또 다른 희망이 있을 것이다’라는 소망을 담고 있다. 올여름 맹위를 떨쳤던 폭염의 기세도 이제 슬슬 꼬리를 감추고,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더위도 결국 지나가고 있다. 어떤 어려운 상황이나 고통의 시간도 그렇게 결국은 지나간다. 프랑스의 유명 패션잡지 『엘르』의 젊은 편집장이었던 쟝 도미니크 보비(J. D. Bauby, 1952~1997)는 행복한 가정의 가장이었지만, 안타깝게도 43세 때 그만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사경을 헤매다 3주 만에 겨우 깨어났으나 몸은 완전히 마비됐고 오직 왼쪽 눈꺼풀만 움직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왼쪽 눈꺼풀을 이용해 책을 쓰기 시작했다. 눈을 깜박거려 알파벳을 하나씩 찾아 글을 이어갔다. 엄청난 고통이었다. 쉬지 않고 눈을 깜박여야 했고 하루에 겨우 반 페이지를 쓰기도 어려웠다. 결국 그는 1년 3개월 동안 20만 번이나 눈을 깜박거려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잠수복과 나비』라는 책을 출간하고 세상을 떠났다. 절대 절망의 상황에서 절대 희망을 몸소 알려주고 떠난 것이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책에서 인간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병은 바로 ‘절대절망’이라고 했다. 삶은 여전히 만만치가 않다. 치솟는 물가, 얇아진 주머니, 각종 경제지표는 부정적 전망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 지나갈 것이다.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게 될 것을 기대하는 소망으로 오늘을 살아보자. “희망은 우리 일생의 어느 시간에도 우리를 버리지 않는다” - 스티븐슨 -
  • 2025.09.11

    콘크리트의 법칙
  • 사람의 첫인상은 5초 만에 결정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진 5분간의 대화를 통해 나머지 인상이 결정된다. 이처럼 짧으면 5초, 길면 5분 만에 결정되는 첫인상이 다시 바뀌려면 40시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나 첫인상에 ‘나쁜 느낌’을 받았다면 그 상대방이 첫인상과 다르게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납득하기까지 최소 40시간이 걸린다. 반대로 첫인상이 ‘좋은 느낌’이었지만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고 바뀌는 데 걸리는 시간도 40시간이 된다고 한다. 이를 ‘콘크리트의 법칙’이라고 한다. 요즘 같이 바쁜 세상에 가까운 지인 외에 40시간씩 교제를 나누기는 쉽지 않다. 그런 이유로 첫인상은 콘크리트처럼 굳어져 관계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매주 중요하다. 미국의 이미지 컨설턴트 매리 미첼(Mary Mitchell)은 “두 번의 기회가 없으므로 첫인상은 모르는 사람과의 관계를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추어지는가는 세상 사람들이 보는 주님의 첫인상일 수도 있다. 성경 말씀처럼 사랑으로 선을 행하고 나눔을 실천함으로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심어주어야 할 것이다. 주님을 닮은 성품으로 이웃에게 선향 영향력을 끼치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한다.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몬 1:6).
  • 2025.08.29

    너무 부유해진 나라
  • 올해 노르웨이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고 있는 책은 『너무 부유해진 나라』(Landet som ble for rikt)이다. 석유 펀드로 축적된 막대한 부는 오늘날의 부유한 국가와 복지 시스템을 만들어냈지만 2013년 이후 노르웨이 경제가 여러 분야에서 크게 퇴보하고 있음을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인 마틴 베흐 홀테(Martin Bech Holte)는 노르웨이가 펀드의 성공에 도취되어 경제적 절제와 혁신을 상실했으며, 지금은 모든 것이 풍족해 보일지라도 미래에는 다시 가난해질 수 있음을 심각하게 경고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 문제를 경제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지만 우리는 신앙의 관점에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2013년은 노르웨이가 헌법을 개정하여 480년간 유지해 온 기독교 국가의 지위를 내려놓은 첫 해이다. 풍요로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로 나아가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은 교회와 신앙에서 멀어지는 길을 택했다. 눈에 보이는 자원과 복지 시스템이 앞으로도 계속 자신들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결과는 심각한 사회적 퇴보와 어두운 미래로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를 영원히 부요하게 하실 분은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시다. 그 어떤 천연자원을 소유한 것보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이 우리에게 더 큰 능력이 됨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도 신앙 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실 밝은 미래와 진정한 풍요를 믿음으로 바라보자.
  • 2025.08.21

    별을 노래하던 마음들이 쌓이고 쌓여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교토에 갈 때면 언제나 도시샤대학 교정에 놓인 윤동주 시인의 시비 앞에 잠시 멈춰 청년 윤동주의 마음을 묵상하게 됩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이란 어쩌면 암흑보다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동안에도 사람이 지녀야 할 존엄과 사랑, 하늘이 준 온갖 좋은 것들을 끝내 지키려는 다짐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비록 식민지의 가난하고 연약한 청년으로 아직 꽃도 피워보지 못한 채 꺾여버릴 운명을 살아갈지라도 그는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끝내 부끄럽지 않고자 했을 겁니다. 1945년 2월 16일 새벽, 스물일곱의 윤동주는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의 차디찬 감방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연한 순처럼 곱고 여린 그의 시를 읽으며 우리는 비로소 모국어가 길어올린 깊고 맑은 샘물을 맛보아 알았습니다. 광복 80년, 오늘은 어쩌면 80년 전 감옥에서 어두운 밤하늘의 별을 보며 한 청년이 그렇게도 간절하게 꿈꾸던 희망이 비로소 펄럭이는 시간입니다. 그러니 이날은 결코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진 하루가 아닙니다. 내일이 올 것 같지 않은 날들을 살면서도 묵묵히 오늘 받아야 할 억압을 견뎌내며 켜켜이 쌓아올린 수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들이 비로소 꽃을 피운 그런 날입니다.
  • 2025.08.15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날이 40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광복절 노래의 1절이다. 감동으로 시작되는 첫 소절은 눈물겹다. 되찾은 조국 우리 땅을 다시 ‘만져보자’하며 ‘바닷물도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다’고 표현한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은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순국선열과 그 부모들을 뜻한다. “벗님”은 함께 해방을 맞이한 동시대의 사람들을 말한다. 나라 잃은 40년의 세월이야말로 “뜨거운 피 엉긴 자취” 그대로다. ‘엉기다’는 ‘점성 있는 액체나 가루가 한 덩어리가 돼 굳어지다’ 또는 ‘감정이나 기운 등이 뒤섞여 응어리가 생기다’는 표현을 담는다. 광복된 우리나라는 바로 일제 치하 40년 우리 민족의 한 맺힌 눈물과 피가 엉긴 자취이다. 올해로 80번째 맞이하는 광복절이 곧 다가온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뒤 광복절은 법정 공휴일로 지정된다. 이어 1950년에는 문교부에서 <광복절 노래>를 제정해 공포했다. <광복절 노래>는 역사학자이자 대한민국 초대 감찰위원장을 역임한 정인보가 작사했고, <보리밭>, <동백꽃> 등을 작곡한 윤용하가 곡을 썼다. 일본과의 관계가 많이 개선되고 한일 양국이 서로 화해의 시대를 열었어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힘이 없으면 다시 나라를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꿈엔들 잊을 건가 지난 일을 잊을 건가 다같이 복을 심어 잘 가꿔 길러 하늘 닿게 세계에 보람 될 거룩한 빛 예서 나리니 힘써 힘써 나가세 힘써 힘써 나가세” 광복절 노래 2절의 가사처럼 우리는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힘써 힘써’ 함께 기억하며 나가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 윈스턴 처칠
  • 2025.08.08

    ‘휘떼’(Hytte)가 주는 단순한 행복
  • 노르웨이에는 ‘휘떼’(Hytte)라고 불리는 독특한 별장 문화가 있다. 휴가 기간 동안 도시를 벗어나 산이나 호숫가, 바닷가에 자리한 작은 오두막에 머물며 자신을 돌아보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요즘은 편의 시설이 잘 갖춰진 현대식 휘떼도 생기고 있지만, 대부분의 전통적인 휘떼는 깊은 자연 속에 위치하고 있어 전기나 수도 시설이 없는 경우가 많다. 물을 사용하려면 직접 호수나 우물로 가야하고 친환경적으로 설계된 간이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 우리 눈에는 다소 불편해 보일 수 있지만 노르웨이 사람들은 이러한 간소함 속에서 자연을 더 깊이 느끼고 삶의 단순함을 배우며 소박한 기쁨을 누린다. 아이들은 휘떼와 자연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부모와 함께 음식을 준비하며 깊은 추억을 쌓는다.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은 내려놓게 되고, 화면보다 가족의 얼굴을 더 자주 마주하게 된다. 모든 것이 갖춰진 화려한 휴가도 우리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가끔은 분주한 일상과 복잡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 속에서 조용하고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누려보는 것도 우리 삶을 더 깊이 있고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2025.07.25

    산소마스크의 법칙
  • 비행기를 타면 늘 듣게 되는 안전 수칙이 있다. “객실 기압이 떨어질 경우 산소마스크가 자동으로 내려옵니다. 어린이와 함께 계신 경우 보호자가 먼저 마스크를 착용한 후 아이를 도와주십시오.” 어른보다 아이가 더 위급한 상황인데 왜 먼저 자신부터 챙기라는 걸까? 바로 이 점이 ‘산소마스크의 법칙’이 전하는 깊은 지혜이다. “내가 먼저 숨을 쉬어야 남을 살릴 수 있다”는 가르침. 이 법칙은 일상의 수많은 상황에도 적용된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모든 걸 내어주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과 건강은 돌보지 못할 때가 많다. 매일 야근을 하고, 아이들 뒷바라지에, 심지어 교회 봉사까지 열심히 하며 다른 사람의 존경을 받는 분들이 어느 날 갑자기 건강에 적신호가 켜져 모든 것을 내려놓는 모습을 본다. 그때야 비로소 “나는 멈추지 않았는데, 내 몸이 먼저 멈춰버렸어”하고 안타까워한다. 그래서 좋은 돌봄은 자기를 챙길 줄 아는 용기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기 돌봄은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책임감 있는 삶의 태도인 셈이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사회에서 우리는 ‘좋은 도우미’로 살고자 하지만 먼저 우리 자신에게 ‘좋은 도우미’가 되어야 한다. 산소마스크의 법칙은 인성교육 현장에서도 자주 인용된다. 인성교육 역시 자기 자신을 먼저 이해하고 돌보는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성경도 같은 이치를 알려준다.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9)고 하셨다. 이는 이웃 사랑의 출발점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임을 뜻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이웃 사랑의 시작이다.
  • 2025.07.18

    “불신은 비싼 대가를 치른다” - 랠프 월도 에머슨
  • 한국인들이 정말 자주 쓰는 말이 있다. “그거 진짜야?” 누군가의 말에도 시장의 물건을 고를 때도 자주 쓰고 듣게 되는 말이다. 습관적 의심일까? 이런 불신은 점점 더 팽배해 가고 있다. 비단 타인에 대한 불신을 넘어 각종 정보와 뉴스 그리고 정부의 정책까지도 진위여부를 의심하는 불신(不信)의 시대. 이처럼 서로를 맘 편히 믿고 신뢰할 수 없는 뿌리 깊은 이 시대 불신의 자화상은 참 안타깝고 씁쓸하다. 불신의 모습은 개인적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23년 통계에 따르면 공정성과 신뢰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필리핀, 중국보다 낮은 세계 107위이며 특히 공공기관 신뢰도가 낮아 사법 시스템은 155위, 정치 114위, 정부 111위이다. 사법 시스템은 2013년 146위에서 2023년 155위로 9계단 하락해 신뢰도가 더 낮아졌고, 거짓말 범죄로 불리는 ‘사기·무고·위증’에 대한 고소·고발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런 불신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엄청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언젠가 마트의 과일 판매대에서 봤던 문구가 떠오른다. “오늘 딸기는 산지에 비가 와서 평소보다 덜 달고 조직이 다소 무릅니다. 수박과 참외는 아직 제철이 아니어서 덜 답니다. 구매에 참고 하세요.” 참 솔직한 문구에 절로 미소가 번졌던 기억이 난다. 불신의 시작은 말과 행동의 서로 다름에서 시작한다. 누군가를 향한 손가락질보다는 바로 우리부터 언행일치(言行一致)를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믿을 만한 ‘믿을 맨’이 되어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의 곁을 든든히 지켜주자! 나는 너에게 이 말을 선물로 준다. “나는 너를 믿는다” - 파스칼
  • 2025.07.11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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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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