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QT
겨울을 이기는 방법
  • 겨울철 북유럽에 오면 거리 한편에 유모차가 줄지어 서 있고 그 안에서 아기들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부모들은 카페나 공원에서 담소를 나누는 동안 아기를 밖에서 재운다. 어린이집에서도 추운 겨울에 아이들을 단체로 야외에서 재우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아기들은 두꺼운 옷과 담요로 단단히 싸여 있지만 영하로 내려가는 날씨 속에서 아기들을 밖에서 재운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매우 낯설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곳의 부모들은 아기들이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겨울과 친해질 때 더 건강하게 자란다고 믿고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에도 북유럽의 아이들은 겨울을 즐기며 이겨 내는 법을 배우고 훈련한다. 영하 15℃까지는 날씨와 관계없이 매일 야외에서 놀이 시간을 갖고, 비가 오는 날에도 우비를 입고 선생님과 함께 산책을 한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추위에 지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작 밖에서 노는 아이들은 언제나 무척 즐거워하며 행복해 한다. 한참을 밖에서 놀고 온 아이를 안아 보면 놀랄 만큼 몸이 따뜻하고 땀까지 흘리는 모습을 보며 마음을 놓게 된다. 우리는 따뜻한 온실처럼 좋은 환경에 머물기를 원하며 늘 기도한다. 그러나 그러한 환경은 때로 우리의 마음을 연약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를 과잉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감당할 수 있는 계절을 통과하게 하시며 그 과정 속에서 우리를 단단하게 빚어 쓰임 받는 삶이 되게 하는 것이다. 추운 겨울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는 사람들처럼 우리도 주어진 환경에서 매일 감사의 제목들을 찾아가며 넉넉히 올 한 해를 이겨 나가기를 바란다.
  • 2026.01.23

    만남이 그리운 시대의 하나님
  • 기네스북에 오른 전설적인 자동차 판매왕 조 지라드는 그 비결을 ‘고객과의 인격적인 만남’에서 찾았다. 그는 매달 수천 명의 고객에게 “I Like You”(당신이 좋습니다)라고 적힌 친필 카드를 보냈다. 단순히 차를 파는 기계가 아니라 상대의 존재 자체에 관심을 갖고자 한 그의 노력은 기술이 대신할 수 없는 ‘만남의 힘’을 증명했다. 하지만 이제 그 자리는 이메일, 문자, 알고리즘이 대신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도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접속의 시대’를 살고 있다. 현대인은 타인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피하면서도 역설적으로 누군가의 온기를 그리워한다. ‘접속’은 늘어났지만 ‘접촉’은 사라진 시대,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연결되어 있으나 그 어느 때보다 외롭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하나님께 기댄다. 성경의 역사는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러 오시는 역사’였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거니시며 아담을 찾으셨고, 광야에서 방황하는 이스라엘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직접 동행하셨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인간과의 만남을 위해 직접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배고픔을 느끼며 눈물을 흘리고, 사람들의 손을 직접 어루만지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나는 너와 단순히 연결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너를 직접 만나고 싶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였다. 기술이 제공하는 차가운 ‘접속’에 지친 우리를 향해 팔 벌리고 계시는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나아가고 싶다. 세상의 방식은 판매와 효율을 위해 우리를 숫자로 대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이름으로 부르며 마주 보길 원하시므로.
  • 2026.01.16

    “어느 누구도 과거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할 수는 없지만 누구든 지금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결말을 만들 수 있다” - 칼 바르트 -
  • 해마다 연말연시가 되면 자주 듣게 되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는 말이 있다. 한자어 그대로 풀면 “묵은 것은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이하다”라는 의미를 지니며 옛 관가에서 전임자를 보내고 후임자를 맞이하는 것이 그 유래다. 현재는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다”라는 의미로 널리 쓰인다. 여기서 같은 음으로 읽지만, 뜻은 다른 동음이의어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나를 돌아보고 생각과 마음을 새롭게 하자”라는 뜻의 ‘송구영신’(悚懼靈新)이다. 송구(悚懼)는 ‘죄송하다’는 뜻이다. 한 해를 보내는 마음은 언제나 참 송구하다. 사랑과 충성으로 행하지 못하고 게을러 열심을 내지 않았던 일들. 참지 못해 용서치 못하고 스스로 절제하고 감사치 못한 일들이 그저 송구할 따름이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자신을 살펴 잘한 일보다는 부족한 일이 더 많다고 인정하는 ‘송구’의 태도가 있다면 다른 사람의 상한 마음도 녹일 수 있을 것이다. 영신(靈新)은 영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영(靈)은 마음이고 생각이다. 마음과 생각이 변화돼 바뀌지 않으면 몸도 변하지 않는다. 새해는 영(靈)이 새로워져야 한다. 진실과 성실, 겸손과 사랑으로 우리 영이 변화된다면 스스로 달라지고 주위 사람이 달라지고 가정과 직장과 교회가 분명히 달라진다. 새해라는 시간의 흐름과 반복은 인생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회임을 잊지 말자.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 소크라테스 -
  • 2026.01.09

    “여러분 모두 힘내세요”
  • 62세 췌장암 말기로 임종을 앞둔 성도를 만나기 위해 급히 호스피스를 찾았다. 예배와 섬김에 늘 앞장서던 신실한 성도였지만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지금이 이 땅에서 함께할 마지막 순간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우리는 성도의 손을 잡고 주님이 함께 하셔서 몸과 마음의 고통을 덜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 후 마지막으로 물었다. “혹시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성도는 힘겹게 숨을 고르며 대답했다. “저만 힘든 것이 아니라 다들 힘든 시기인데 여러분도 모두 힘내세요.” 성도의 마지막 한마디에 호스피스에 있던 모두가 깊은 위로를 느끼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리가 서로에게 전하는 작은 손길과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깨닫는 귀한 시간이었다. 2025년의 마지막 주간이다. 한 해 동안 각자의 삶 속에서 겪은 경제적, 사회적, 개인적 고난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러나 주변을 돌아보며 우리보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이웃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감사의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성도의 마지막 말처럼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서로에게 조금이라도 용기와 힘이 되도록 2025년 남은 한 주 아름다운 말과 행동으로 채워나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여러분, 모두 힘내세요!”
  • 2025.12.26

    사람의 존엄을 다시 묻는 성탄절
  • 얼마 전 한 대형 유통 기업에서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일용직 노동자가 현장에서 숨진 다음 날, 회사의 한 고위 인사가 내부 메신저를 통해 나눈 대화가 알려졌다. 그 내용은 차마 옮기기 어려울 정도로 냉담했고, 한 사람의 삶이나 죽음보다는 “그가 열심히 일했다는 흔적을 남기지 말라”는 지시가 주된 내용이었다. 이 대화를 접하면서 마음 깊이 슬픔이 밀려왔다. 어떻게 사람을 숫자처럼, 도구처럼 여길 수 있을까. 더 많은 수익, 더 빠른 효율, 더 낮은 비용만을 추구하는 언어들은 때때로 사람이 얼마나 존엄한지를 삼켜버린다. 사람을 단지 “시급으로 움직이는 존재”로 바라보는 사람이 수많은 직원을 가진 기업의 경영자라는 사실이 아찔해 보인다. 성탄의 계절이다. 거리엔 불빛이 반짝이고 어딘가는 캐럴이 흘러나오지만 이 차가운 현실 앞에서 문득 마음이 멈춘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 잊혀진 사람들 곁으로 오신 주님 그분이 말씀하셨다. 너는 귀하단다. 하늘과 땅보다 소중하단다. 사람을 그저 이익 추구와 소비의 수단으로만 보고 효율과 수익으로만 평가하는 우리 시대의 슬픈 자화상 앞에서 잠시 눈감고 성탄의 따뜻한 기운을 맞고 싶다. 구유에 누우신 아기의 조용한 숨결 앞에서 인간의 참된 가치가 다시 회복되기를. 그리고 우리 사회가 ‘한 영혼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구주 예수님’을 다시 붙잡기를.
  • 2025.12.19

    “인간의 지혜는 기다림과 희망이란 두 가지 말로 요약된다” - A. 뒤마
  • 제법 추워진 날씨에도 시린 손을 비비고 발을 동동 구르며 여기저기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 세상살이는 매일매일 바쁘고 분주하며 그만큼 세상은 기다림이 사라져가고 있다. 버튼 하나, 클릭 한 번이면 쉽게 결론을 얻을 수 있는 초(超)스피드를 넘어 광(光)스피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이제 AI에게 묻기만 하면 어떤 질문에도 몇 분이면 빠르게 대답을 얻을 수 있는 편리한 세상. 그런 편리함이 ‘조급증’과 ‘강박증’이라는 병을 만들었고 그렇게 매일 들려오는 각종 사건과 사고의 소식들은 기다리지 못하고 참지 못해 벌어지는 일들로 가득하다. 모든 일에 자꾸 조급증이 생겨 잠시의 기다림도 짜증으로 밀려오는 이 시대의 자화상.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쓸 수는 없으니 잠시만 기다리며 하늘 한 번 바라보고 크게 숨 한 번 삼켜보자. 그러면 무심코 지나친 것들에서 소소한 행복들을 찾게 될 것이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무언가를 고대하며 설렜던 날들의 기쁨을 함께 되새겨 보기를 소망한다. “만약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흐를수록 난 점점 행복해지겠지. 4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하지 못할 거야. 그래서 기다리는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 쌩떽쥐뻬리의 <어린왕자> 중에서 -
  • 2025.12.12

    나쁜 날씨란 없다
  • 한 해 중 절반이 긴 어둠과 추위 속에 있고, 비바람과 눈보라가 변덕스럽게 일어나는 북유럽은 자칫 날씨로 인해 불평하기 쉬운 곳이다. 그러나 추운 겨울이 찾아오면 노르웨이 사람들은 서로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데트 피네스 이낏 다를리그 베어, 바레를리예 클레어”(나쁜 날씨란 없다. 나쁜 옷차림만 있을 뿐이다). 그들은 변하지 않는 날씨를 탓하기보다 자신이 스스로 바꿀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하며 철저히 대비함으로써 마음의 행복을 지켜 나간다. 외부의 상황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긍정적인 태도와 준비를 통해 행복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즉, 행복을 빼앗는 것은 나쁜 날씨나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마음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춥고 어두운 날씨는 오히려 이곳에서 독특한 장점이 되고 있다. 상점에는 혹독한 기후를 견딜 수 있는 기능성 의류가 가득하고, 어둠을 밝히기 위한 아름다운 조명들이 곳곳에 많이 설치되어 있다. 긴 겨울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서 지내면서 실내 인테리어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정도로 발달하게 됐다. 다양한 겨울 스포츠 역시 이 지역에서 큰 인기를 누리며 많은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 전 세계가 외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생각과 마음을 긍정적으로 잘 지켜서 모든 상황들을 감사함으로 이겨내길 소망한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 2025.11.28

    감사하는 한 사람
  • 브라질 원시림에서 복음을 전하던 한 선교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부족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원인은 ‘감사’에 있었습니다. 자존심이 강했던 부족은 누가 도와주면 “당신은 나에게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주 큰 도움을 줘도 “나에게 아주 좋은 일이군요”라고 대답하면 끝이었습니다. 이들에게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없었다고 합니다. 북아프리카의 한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선교사들이 밤낮 없이 섬겨도 마음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선교사들에게 “우리가 있어서 당신이 하나님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혹시 이들처럼 수많은 은혜에 감사하지 않고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오지는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은혜를 떠올려 보십시오. 감사를 모르는 사람보다 감사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 더욱 큰 죄를 짓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열 명의 한센병 환자를 고쳐주셨지만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주님께 돌아와 감사한 사람은 사마리아인 한 명 뿐이었습니다. 나는 오늘 어디에 속하는 사람일까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 2025.11.21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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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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