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담임목사 주일설교
조용기 원로목사 주일설교
오늘의 묵상
11월 16일(토) - 말씀과 기도로
  • ◎ 말씀 : 딤전 4:1~5 ◎ 찬송 : 422장 초기 기독교에 위협이 되었던 이단 중 하나는 영지주의였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물질은 악하고 정신은 선하다는 이분법적인 사상을 주장하며 육체와 관련된 쾌락을 멀리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에 결혼을 금지하거나 일부 음식을 제한하는 등의 잘못된 교훈을 퍼뜨렸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거룩함을 추구했던 성도들을 혼란에 빠지게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금욕주의적 태도를 지지하는 주장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할 위험이 있습니다. 온전한 거룩은 육신의 즐거움을 제한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가능합니다. 오늘 하루도 잘못된 가르침을 분별하고 멀리해 오직 말씀과 기도로 온전한 거룩을 향해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잘못된 가르침을 잘 분별하게 하시고 말씀과 기도를 통해 우리 삶을 거룩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11.0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1월 15일(금) - 직분과 성품
  • ◎ 말씀 : 딤전 3:1~3 ◎ 찬송 : 214장(통 349장) 오늘날 교회에는 목사, 장로, 권사, 집사 등 여러 형태의 직분이 존재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영광스럽고 복된 사명입니다. 오늘 말씀은 어떤 사람이 만일 감독의 직분을 얻고자 한다면 이는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고 증언합니다. 이러한 직분을 맡을 사람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덕목들을 살펴보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와 연결된 것이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직분을 맡아 섬기는 일을 감당하는 사람은 여러 오해와 억울한 순간을 마주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때가 직분자의 성숙함이 드러나야 하는 시간입니다. 다투지 않고, 성내지 않고, 인내와 사랑으로, 신중함과 절제함으로 형제자매를 대하는 직분자의 성숙함은 다른 이의 마음을 감화시키고 신앙의 성장을 이루게 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제게 맡기신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예수님을 닮은 성품으로 저를 무장시켜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11.0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1월 14일(목) - 측량할 수 없는 은혜
  • ◎ 말씀 : 딤전 1:12~14 ◎ 찬송 : 305장(통 405장) 바울은 성경에 예언된 메시야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의 신념에 따르면 하나님께로부터 기름부음 받은 자가 무력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바울은 초대교회 성도들을 이단으로 정죄하며 맹렬히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로 그의 삶은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자신과 같은 죄인 중에 괴수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깊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 은혜는 바울이 순교하는 순간까지 감사하며 헌신하도록 그의 삶을 이끌었습니다. 우리 또한 주님이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묵상할 때 그 은혜와 사랑이 우리에게 살아갈 힘을 줍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기며 감사로 충만한 하루를 보내시길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받을 자격이 없었음에도 베풀어 주셨던 그 은혜를 잊지 않고 맡기신 일에 충성하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11.0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성경 인물
    (112) 한나
  • ‘간절한 기도의 여인’ 표상 문제 앞에 탄식하며 부르짖어 기도하면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은총 얻게 돼 한나는 ‘기도의 여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자신의 괴로움을 극복할 만한 힘과 능력이 없을 때 어떤 자세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지 한나를 통해 우리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에브라임 산지 여로암의 아들 엘가나에게는 한나와 브닌나 두 아내가 있었다. 소실인 브닌나에게는 자녀가 있었지만 한나에게는 이름의 뜻인 ‘은총’과는 달리 자녀가 없었다. 매년 고통을 겪어야 했던 한나는 고통 중에 부르짖고 또 부르짖으며 하나님 앞에 통곡의 기도를 드렸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야훼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야훼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야훼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10~11). 한나가 주께 드린 기도는 처절한 절규였으며 가슴에 멍이 드는 탄식의 간구였다. 그런 한나의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그 마음을 감찰하시고 한나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셨다. 성경 사무엘상 2장 1~10절은 한나가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치면서 기도에 응답해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격의 내용이 기록돼 있다.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야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야훼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은 먼저 자녀를 두어 그동안 한나를 업신여겼던 브닌나의 교만을 꺾어주시며 가정의 질서 또한 바로 세워주셨다. “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아니하도다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삼상 2:5).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삼상 2:9). 한나의 고백적 탄원과 언약의 서원을 보면 아들 사무엘이 하나님의 깊은 섭리와 은총에 의해 태어났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사무엘이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따라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는 것을 보면서 몇 가지 교훈도 얻게 된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헤아리신다는 것이다. 한나는 능력의 하나님을 믿었기에 포기하지 않고 응답을 얻을 때까지 기도했다. 또 성전에 나와 기도할 때 엘리 제사장이 술에 취한 것으로 오해할 정도의 절박하고 애끓는 기도를 드렸다. 기도 없이는 결코 응답을 얻을 수 없다. 둘째, 하나님은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는 역전의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이 신다. 자녀가 없던 한나는 브닌나의 업신여김을 참고 견뎌야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한나가 간구할 때 ‘은총’을 허락하셨고 고난의 주인공에서 영광의 주인공으로 그 삶을 변화시켜주셨다. 셋째, 한나의 기도를 통해 우리는 기도의 깊은 통찰력과 겸손의 지혜를 깨닫게 된다. 한나는 사무엘을 낳기까지 숱한 고통을 겪었지만 사무엘을 낳은 후 자녀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린다. 자녀가 내 소유물이 아님을 인정하는 겸손이다. 자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업이다(시 127:3). 이 땅에 사는 동안 청지기 사명을 가지고 자녀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자라도록 욕심을 버리고 말씀과 기도로 양육하며 한나와 같은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를 드려야 한다.
  • 2024.11.01 / 오정선 기자

    (111) 안디바
  •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 주님을 섬기는 일에 타협 없던 안디바 한 사람의 순교가 지역 변화시켜 소아시아 버가모는 우상숭배가 만연한 도시로 유명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갖은 이유로 타협하고 우상숭배를 할 때 단 한 사람, 안디바는 우상숭배를 거부했다. 그는 뛰어난 석공이었지만 로마 황제의 신상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놋 가마 위에서 순교했다. 안디바는 로마 제국의 명령을 거절한 대가로 철판 위에 산 채로 구워져 순교를 당했지만 버가모교회 부흥의 씨앗이 됐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충성된 증인이라고 높여주셨다. 안디바라는 이름도 ‘모든 사람을 반대하는 자’라는 뜻이다. 안디바는 죽음 앞에서도 자신을 핍박하는 로마 관리들에게 당당했다. 그는 순교를 당하는 순간에도 “만왕의 왕, 만주의 주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으니 예수 외에는 내가 절하지 않겠노라”고 외칠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순교를 통해 책망받던 초대교회 중 하나인 버가모교회가 변화됐다.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지나온 삶을 끊지 못한 채 죄의 유혹에 빠져 살아가던 버가모교회의 성도들은 안디바의 순교를 보고 180도 달라졌다. 작은 유혹에도 넘어지고 흔들리던 이들이 우상숭배로 만연한 지역에서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외치게 된 것이다. 버가모교회가 있는 지역은 해발 300m의 높은 지역에 있었다. 또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사탄의 권좌’라고 불리는 무려 12m나 되는 거대한 제우스 신전과 로마 황제를 예배하는 신전도 있었다. 라틴 교부였던 터툴리안의 『순교자에 대해서』라는 책을 보면 안디바에 대해 알 수 있다. 당시 버가모교회의 그리스도인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한 부류는 예수님을 영접한 유대-그리스도인들이었다. 이들은 할례, 음식에 대한 규제, 율법을 지키는 것과 복음 사이에서 갈등했다. 또 다른 부류는 이방인이지만 기독교인이 된 헬라 성도들이었다. 이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 거리낌 없이 해 왔던 우상숭배, 성적인 문란,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경건한 삶을 지켜가는 것에서 갈등했다.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도 당당히 하나님께 순종한 안디바의 신실한 믿음은 신앙이 흔들리던 많은 크리스천의 마음에 경종을 울렸다. 생계를 위한다는 이유로 세상과 타협하고 고난과 박해가 두려워 주님을 의지하지 못할 때가 있다면 고통 속에서도 주님 한 분만을 바라보며 의지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 안디바를 기억하자.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계 2:13).
  • 2024.10.04 / 박찬웅 기자

    (110) 엘리
  • 하나님보다 자녀를 더 사랑했던 제사장
    잘못된 자녀 교육으로 비극 낳아 이스라엘이 왕정 시대로 넘어가기 전 사사시대 말기에 40년을 하나님의 제사장이자 사사로 활동한 사람이 있다. 바로 엘리 제사장이다. 엘리는 사무엘의 스승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가르친 사무엘은 사울과 다윗을 왕으로 세운 제사장으로 유명하다. 엘리 제사장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32㎞ 지점에 위치한 실로 성소를 지키는 제사장이었다. 엘리가 처음 성경에 등장하는 곳은 사무엘상이다.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와 아내 한나는 매년 매년제와 서원제를 드리기 위해 실로에 있는 성소를 순례했다. 엘나가에게는 브닌나와 한나라는 두 아내가 있었는데 한나는 자녀가 없었지만 엘나가의 사랑을 더 받았다. 그래서 늘 브닌나의 괴롭힘에 시달렸다. 그 해는 유독 괴롭힘이 심했는지 마음의 답답함을 토로할 곳이 없었던 한나는 성소에서 하나님께 통곡하며 기도하고 있었다. 때마침 야훼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있었던 엘리가 이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아무 소리를 내지 않고 입술만 움직이는 모습이 꼭 술에 취한 모습 같았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었다. 한나는 엘리에게 그동안의 서러움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다고 말했고 이에 엘리는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고 축복했다. 이후 한나는 엘리의 축복대로 사무엘을 얻게 되었다. 그녀는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서원했고 제사장 엘리에게 사무엘을 맡긴다. 사무엘은 엘리의 가르침에 따라 야훼를 섬기며 훌륭한 하나님의 제사장이자 사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엘리는 사무엘과 달리 자녀들을 올바른 제사장으로 가르치지 못했다. 그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 제사장 직권을 남용했고 야훼의 제사를 멸시했다. 물론 아버지로서 엘리는 아들들을 꾸짖었다. 하지만 그들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오히려 무시하고 더한 패역을 저질렀다. 성경은 이에 대해 엘리가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를 하나님보다 더 중히 여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느 날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나타나 말한다. “너는 나보다 네 아들들을 더 귀하게 여기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에게 바치는 고기 중에서 제일 좋은 부분을 먹어 살이 쪘도다”(쉬운성경 삼상 2:28~29). 결국 엘리는 자신의 제자인 사무엘로부터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된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삼상 3:14). 얼마 후 엘리의 두 아들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전사한다. 두 자녀의 죽음과 언약궤를 빼앗겼다는 비보를 들은 엘리는 앉아있던 의자에서 떨어져 목이 부러져 죽고 말았다(삼상 4:1~18). 40년간 사사와 제사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섬겼던 그의 공직 생활이 비참하게 끝난 것이다. 엘리가 만약 두 아들을 사무엘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고 훈계했다면 그들은 올바른 선지자로 더 큰 복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나는 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소중히 여길 것이고,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은 나도 소중히 여기지 않을 것이다”(쉬운성경 삼상 2:30). 엘리의 가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경외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 2024.08.30 / 금지환 기자

    선교 열전
    (15)로티 문(Lottie Moon) 선교사
  • 일평생 중국 복음화 위해 헌신한 선교사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일평생 수 만명의 중국인에게 찬양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파한 독신 여성 선교사가 있다. 미국 남침례교에서 파송한 로티 문이다. 1840년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로티 문은 어릴 적부터 침례교 신앙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로티의 본명은 샬롯 딕스 문(Charlotte Diggs Moon)이다. 미국 버지니아 알베말 출신인 로티는 18세가 되던 해에 브라더스 목사의 집회에 참석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했다. 이후 대학에서 성경 공부와 기도 모임을 주도하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다. 갑작스런 사고로 아버지를 일찍이 여읜 로티는 당시 남녀 차별이 심각했던 시대적 배경에도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고등교육까지 받아 미국 남부에서 가장 학식이 높은 여인이 됐다. 1873년 중국에서 학원 사역을 펼치고 있었던 선교사 부부를 돕기 위해 중국 선교사로 파송된 로티는 평일에는 학생들을 가르쳤고 주말에는 시골 마을을 순회하며 전도에 매진했다. 로티는 1885년 외국인이 한 명도 없고 외국인 보호 조약과 거리가 먼 지역인 핑투라는 곳에 정착해 본격적으로 현지인 복음화에 앞장섰다. 전도를 위해서는 먼저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며 선교지에서 관계 전도를 이어갔던 그는 현지인과 같은 옷을 입고 활동하며 마을에 복음을 전했다. 복음을 전할 때마다 현지인들의 핍박이 거셌다. 그러던 어느 날, 현지에서 로티가 가르치는 성경을 비난하고자 참석했던 중국인 리 쇼우팅이 성경을 접하며 개종하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후 리 쇼우팅은 사도 바울처럼 성경에 정통한 사람이 되어 북부를 다니며 전도하고 1000여 명에게 침례를 베풀며 귀하게 쓰임 받았다. 38년간 중국에서 헌신한 로티의 노력으로 16개 교회와 56개 학교가 세워져 많은 학생을 배출하게 하는 열매를 맺었다. 또한 남성 전도사 42명, 여성 전도사 14명의 현지인 제자를 세웠고 이들을 통해 2000여 명 현지인이 침례를 받았다. 1912년 로티는 미국 남침례교의 재정 상황의 악화로 더 이상 선교 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됐다. 거기에 기근까지 들어 아이들이 굶주리게 되자 자신의 식사를 나눠주며 본인은 금식을 하다 결국 25㎏까지 몸무게가 줄었다. 쇠약해진 몸을 회복하기 위해 미국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지만 미국으로 가는 길에 72세의 생일을 일주일 앞둔 크리스마스 이브에 만추리아 호에서 소천을 받았다.
  • 2024.02.23 / 금지환 기자

    (14) 서만수 선교사
  • 한국 교회 최초 인도네시아로 파송 된 선교사
    정글 지대 순회하며 현지에 384개 교회 세워 현지인 사역자 양성 위해 스틴신학교도 설립 한 평생 인도네시아 복음화를 위해 헌신한 주의 종이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선교사로 40년 동안 활동하면서 384개의 교회를 세운 그는 한국 교회에서 처음으로 인도네시아로 파송한 서만수 선교사이다. 1939년 평양에서 태어난 서만수 선교사는 6·25 전쟁 중 월남해 서울에 정착했다. 그는 남한에서 주의 종의 소명을 받고 목회자로 사역을 하다 1970년 9월 아내 정소라 선교사와 함께 인도네시아로 파송 받았다. 그는 파송 1년 만에 한국인과 인도네시아 현지인 25명과 함께 최초의 한인교회인 자카르타한인연합교회를 개척했다. 교회가 설립될 당시만 해도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많지 않았는데 한인들은 이 교회에서 타향살이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달랬다. 한인 공동체가 형성되자 그는 한인들의 고민이었던 자녀 교육을 해결하기 위해 1973년 한인 유치원을, 그 이듬해에는 자카르타 한인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서 선교사는 한인교회 사역과 동시에 정글 지대를 순회하며 각 지역에서 전도집회와 부흥회를 인도했다. 차가 갈 수 없는 오지 촌락은 말과 당나귀를 타고 순회 선교를 이어갔는데 그는 식인 풍습이 남아있는 수마트라와 이리얀자야 지역을 다닐 때 몇 차례 죽을 고비도 넘겼다고 했다. ‘녹슬어 없어지기보다 닳아 없어지겠다’는 조지 휫필드처럼 그는 인도네시아 복음 전파에 매진했다. 그런데 1997년 그의 선교 활동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정글 순회 사역의 후유증으로 근무력증을 진단 받은 것이다. 더 이상 순회 선교를 할 수 없게 됐지만 서 선교사는 “선교사는 아프다는 것을 피난처로 삼을 수 없다”는 말을 남기며 귀국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인도네시아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슬람 국가에서 외국인이 직접 선교 활동을 하는 것에는 제한이 많았다. 이에 서 선교사는 정부와 마찰 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는데 그것이 바로 현지인 목회자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그는 스틴(STTIN) 신학대학교를 설립해 현지인을 대상으로 신학교육과 교회개척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이는 인도네시아 미전도종족 선교에 큰 역할을 감당했다. 인도네시아에서 40년 세월을 한결같이 선교하던 서만수 선교사는 2009년 9월 16일 향년 70세를 일기로 소천 받았다. 그는 생전에 자카르타에서 추진하던 종합대학교 건립 부지 근교 공원묘지에 안치됐다. 인도네시아에 3000개 교회 개척을 목표로 삼았던 서만수 선교사. 우리는 그의 선교 열정을 기억하고 그가 이룬 인도네시아 선교가 앞으로도 계속해 발전해 나아가도록 힘써 기도해야만 할 것이다.
  • 2023.07.21 / 금지환 기자

    (13) 코리 텐 붐 여사
  • 전 세계에 용서의 복음 전한 위대한 전도자
    나치 독일로부터 800여 명의 유대인 구출하고 전쟁 후유증 겪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 전해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 전쟁을 일으킨 당시 나치 독일은 도시 곳곳에서 유대인들과 이들을 돕는 사람들까지도 학살했다. 이때 죽음을 무릅쓰고 유대인들을 도운 사람이 바로 네덜란드의 전도자 코리 텐 붐 여사이다. 코리 텐 붐 여사는 1892년 네덜란드 하를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신앙교육을 받아온 그녀는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을 도와야한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위험을 무릅쓰고 유대인 난민들을 숨겨주고 탈출하는 일을 도왔다. 당시 나치 독일 정권이 유럽계 유대인들을 제도적으로 탄압하고 조직적으로 학살했는데 이때 텐 붐 여사가 탈출시킨 유대인은 800여 명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1944년 2월 28일, 전쟁 종식을 앞두고 독일 나치의 정치경찰인 게슈타포에 의해 발각돼 그녀의 일가족이 체포됐다. 유대인들을 도왔다는 이유로 유치장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이후 나치 수용소에 수감 된 그녀는 열흘 만에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그 누구보다 가장 많이 의지했던 아버지의 소천 소식에 깊은 절망에 빠졌던 그였지만 슬픔을 뒤로하고 몰래 들여온 성경을 보며 하나님을 예배했다. 하루하루 버티며 사는 것이 전부였던 수용소에서 언제 목숨을 잃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텐 붐 여사는 매일 밤 성경공부 모임을 갖고 수감자들과 군인들을 위해 기도했다. 절망이 드리운 수용소에 복음은 한 줄기 희망이 됐고 수감자들이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다. 이후 기적적으로 석방된 그녀는 전쟁으로 상처 입은 이들이 회복할 수 있는 재활센터를 설립했다. 텐 붐 여사는 가족과 친척을 잃은 고아, 수용소에서의 트라우마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사람 그리고 전쟁 중 독일과 협력했던 실직한 자국민들까지도 센터에 입소시켰다. 이는 모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는 차별이 없음을 실천한 것이었다. 코리 텐 붐 여사하면 널리 회자 되는 이야기가 있다. 독일의 한 교회에서 용서에 대한 강연을 마치고 나왔는데 강제수용소에서 언니 베시를 고문했던 악랄한 간수를 만나게 된 것이다. 텐 붐 여사는 그를 본 순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그를 용서 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나는 언니를 죽게 한 장본인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그를 용서하게 하셨습니다.” 세계 각국을 다니며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의 복음을 전한 텐 붐 여사는 그녀의 삶의 여정이 담긴 『주는 나의 피난처』 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전쟁 중에도 전쟁 후에도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은 그녀는 1983년 4월 15일 91번째 생일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 2022.10.21 / 금지환 기자

    주일설교 요약본
    마음을 주께로 향하라
  • “우리의 마음을 주께로 향하여 그의 모든 길로 행하게 하시오며 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키게 하시기를 원하오며 야훼 앞에서 내가 간구한 이 말씀이 주야로 우리 하나님 야훼께 가까이 있게 하시옵고 또 주의 종의 일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일을 날마다 필요한 대로 돌아보사 이에 세상 만민에게 야훼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열왕기상 8장 58~60절 모든 인생의 문제는 하나님을 찾지 않기 때문 오직 마음을 주께로 향하며 말씀과 기도의 삶 살아야 10월 마지막 주일은 종교 개혁 주일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신부 마르틴 루터가 로마 가톨릭 교회의 부패에 항거하여 비텐베르크 성당 문 앞에 95개조 반박문을 써 붙였고,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대규모 종교개혁 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지상의 교회는 날마다 개혁되는 가운데 주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존재해야 합니다. 그런데 개혁은 무엇보다도 우리 마음으로부터 먼저 일어나야 합니다. 1. 마음을 주께로 향하라 우리 인생에 찾아오는 모든 문제의 출발점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지 못한 데 있습니다. 성경은“우리의 마음을 주께로 향하여”(왕상 8:58)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향해야 하는 자신들의 마음을 지키지 못해 선악과에 눈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뒤로하고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죄를 지어 파멸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또한 그들이 인간의 욕심을 따라 원하는 대로 행했기 때문에 인류 가운데 죄가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 무엇보다 먼저 마음을 지킬 것을 권면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우리는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는 선하고 정직하며 긍정적인 마음을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반대로 우리가 부정적이고 악한 마음을 품고 산다면 우리 자신은 물론 가정과 사회까지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늘 살피고 계신 것입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야훼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 17:9~10).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변화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삶의 변화는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에 우리는 세상과 탐욕으로 향하는 마음에서 돌이켜 먼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게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시 119:36).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고 그분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날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마음을 새롭게 해 하나님이 뜻하신 길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길로 행하라 우리는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그분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주께로 향하여 그의 모든 길로 행하게 하시오며”(왕상 8:58). 우리 인생에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인정받아 복을 받는 의인의 길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거역하여 심판과 멸망에 이르는 악인의 길입니다. 우리는 일평생 악인의 길을 피하고 오직 하나님께 인정받는 의인의 길로 향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야훼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 1:5~6). 하나님의 길로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을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우리는 세상에 만연한 죄악의 길에서 벗어나 구원의 길, 영생의 길로 행하며 삶으로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걸어가기를 원하시는 길은 좁고 험해도 우리를 영생에 이르게 하는 길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14).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영생에 이르는 길로 인도받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길을 비추어 주는 등불과 같습니다. 우리 인생의 어두운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면 우리는 길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나아갈 수 있습니다. 평생토록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인의 삶을 살며 하나님의 길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 주님께 간구하라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변함없이 마음을 지키고 바른길로 가기 위해서는 언제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야훼 앞에서 내가 간구한 이 말씀이 주야로 우리 하나님 야훼께 가까이 있게 하시옵고”(왕상 8:59). 하나님께 기도로 간구하며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주십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세계 최대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뜨거운 믿음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모일 때마다 ‘주여’ 삼창을 외치며 부르짖어 기도했고,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을 통해 금식기도 운동을 전 세계로 확산시켰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부흥의 큰 사명을 기억하며 부르짖어 기도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직 그분 앞에 엎드려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뿐 아니라, 우리가 구한 것 그 이상의 크고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지도자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야훼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삼상 12:23). 이 말씀은 기도를 멈추는 것이 곧 죄를 짓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 교회와 주의 종을 위해, 그리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언제나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라고 우리를 권면합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을 때 문제가 생겨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고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우리 인생을 은혜의 자리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날마다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여 평생토록 하나님의 길로 행하며 주님께 인정받는 복된 인생을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평생토록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생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10.2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맏아들의 불신앙
  •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누가복음 15장 25~30절 자기만 의롭다고 생각하는 ‘또 다른 탕자’ 같은 우리들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되어 주 안에서 사랑 실천해야 누가복음 15장에는 잃어버린 자를 다시 찾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탕자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아버지의 집을 떠나 재산을 허비한 둘째 아들만을 탕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집에는 아버지의 참사랑을 깨닫지 못한 채 메마르고 형식적인 삶을 살고 있던 또 다른 탕자 맏아들도 있었습니다. 1. 남을 판단하는 인생 맏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들고 집을 떠난 동생처럼 허랑방탕하게 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집을 지키며 열심히 일했고 아버지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기쁨도, 만족도 없었고 그의 영혼은 깊이 병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항상 모범적이고 옳다고 믿어왔지만 동생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형제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자기 고집과 교만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처럼 자기중심적인 사고, 자기만이 의롭다고 생각하는 자기 고집과 교만에 빠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문제만 지적하고 남 탓만 합니다. 자기의 생각과 뜻에 맞아야만 만족하고 그렇지 않으면 쉽사리 화를 내거나 다른 사람들과 충돌하고 갈등을 일으킵니다. 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일수록 갈등과 문제도 심해집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사람들 대부분이 이것이 영적인 병인지조차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맏아들과 다름이 없는 ‘또 다른 탕자’입니다. 자신을 모든 일의 중심에 두고 자기 생각과 판단을 절대적으로 여기며 남을 비판하는 것은 영적인 교만이며 예수님이 금하신 일입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7:1~2). 우리 모두 죄와 허물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한 채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며 타인을 정죄하는 일은 자신의 영혼을 죄로 물들게 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깨뜨리며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시게 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자기중심의 잣대로 손에 든 미움과 정죄의 돌을 내려놓고 용서와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분노하는 인생 맏아들이 밖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집에서 큰 풍악소리가 들렸습니다. 둘째 아들이 돌아왔기에 이를 기뻐한 아버지가 잔치를 베푼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맏아들은 돌아온 동생으로 인해 기뻐하기는커녕 집에 들어가지도 않고 분노했습니다.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눅 15:28). 형은 인정이라고는 없고 일과 자기밖에 모르는 매우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잔치에 같이 들어가자고 권하는 아버지에게 강력하게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눅 15:30). 맏아들은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동생뿐만 아니라 동생을 사랑으로 맞아주고 그를 위해 잔치를 베푸는 아버지에게도 심히 못마땅한 마음을 품고 대들며 분노한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맏아들 같은 마음을 갖고 살았는지 모릅니다. 내 생각과 기준에 맞지 않으면 모든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쉽게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가정에서는 부모님과 갈등하고, 부부 사이에 다투었습니다. 회사나 교회에서 회의할 때 내 주장만 펼치고 내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회의를 지연시키거나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기도 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셔서 자비와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도 주변의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며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동정’을 뜻하는 영어 단어 ‘컴패션’(Compassion)은 함께라는 뜻의 ‘컴’(Com)과 고통, 수난이라는 뜻의 ‘패션’(Passion)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 단어의 뜻처럼 상대방의 입장을 함께 느끼고 이해하는 사람, 배려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3. 아버지의 사랑에 도전한 아들 아버지는 집 밖에 서 있는 맏아들에게 집으로 함께 들어가기를 권했습니다. 그런데 맏아들은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면서 아버지를 야박한 사람으로 비난했습니다.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눅 15:29~30). 맏아들에게는 세 가지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맏아들은 자기 분노가 자녀를 공평하게 대하지 않은 아버지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라며 자기를 정당화했습니다. 동생에 대해서는 ‘이 아들’이라고 말했는데 영어 성경(NIV)에는 ‘당신의 아들’(this son of yours)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는 동생을 자기와 상관없는 타인 취급을 하며 매정한 성품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는 또한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도 표출했습니다. 아버지는 부자였고 자녀를 위해 아낄 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맏아들은 아버지가 자기를 향해서는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지 않는 인색한 사람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맏아들은 겉으로는 효자였을지 모르나 자기 동생을 용서하지 않고 아버지의 사랑을 비난하는 영적으로 메마른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이 맏아들처럼 사랑의 결핍 속에서 미움과 분노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 사랑의 결핍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일어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됩니다. 교회 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고 배려할 줄 모르니 교회 내에서 자기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만 그룹을 만들고 타인을 배척하여 갈등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인 곳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는 우리 중심의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교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용서하신 것처럼 언제나 사랑으로 하나 되고 용서를 실천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 어디를 가도 이 같은 사랑을 체험할 수 없는 사랑의 용광로와 같은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날마다 순종하십시오. 오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어 사랑을 실천하는 가운데 날마다 부흥해 가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날마다 넉넉한 은혜를 부어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을 기억하게 하시고 주변의 사람에게 그 사랑을 전하며 자비를 베푸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사랑과 섬김을 통해 교회가 부흥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10.2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떨기나무 인생
  •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야훼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야훼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출애굽기 3장 1~4절) 인본주의 모습 속에 떨기나무 같은 인생이 성령의 불로 하나님 만나면 복음의 증인으로 변화 돼 고대 그리스에서는 배우들이 다양한 감정을 나타내는 가면을 쓰고 연극을 했는데 그 가면을 ‘페르소나’(Persona)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연극에서만이 아니라 실제 삶 속에서도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 크리스천들은 인본주의의 가면을 모두 벗어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1. 떨기나무 인생 나일강에 버려져 죽을 운명이었던 모세는 바로의 공주에게 발견되어 왕자의 신분으로 40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스라엘 사람을 학대하는 애굽인을 살해함으로 인해 도망자의 신세로 전락하여 미디안 광야에서 또 40년을 보냈습니다. 80세 노인이 되어 모든 인생의 꿈을 접고 무기력하게 살고 있을 때, 하나님은 호렙산의 한 떨기나무 앞에서 모세를 만나주셨습니다.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야훼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출 3:1~2). 모세가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 살아온 80년의 인생은 떨기나무 인생이었습니다. 모세처럼 우리도 실패와 좌절을 겪으며 어느새 마음에 가시가 자라난 떨기나무 같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안에 있는 이 연약함에 대해 탄식하며 고백합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롬 7:18~19). 이처럼 떨기나무 같은 우리 인생에 참된 희망과 생명을 주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는 없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하면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로 풍성한 열매를 맺는 축복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 들임으로써 우리 안에 있던 가시들이 사라지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인생으로 변화되길 소망합니다. 2. 불붙은 떨기나무 모세가 광야에서 한 떨기나무를 주목했던 이유는 그 나무에 불이 붙어있음에도 나무가 불타 소멸하지 않는 광경 때문이었습니다. “야훼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출 3:2~3). 하나님은 아무 곳에도 쓸데없는 그 떨기나무에 불을 붙이셨고 그 자리를 모세의 삶의 전환점으로 만드셨습니다. 마른 막대기 같은 우리 인생도 예수님을 모셔 들이고 성령의 불이 붙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은혜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인간의 지식과 경험이 아무리 많을지라도 성령의 불이 꺼져있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온전히 깨닫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보낸 편지에서 성도들이 성령으로 충만할 것을 강조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 성령 충만이란 예수님의 십자가 체험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작은 예수로서 십자가의 사랑을 세상에 전할 수 있습니다. 떨기나무 같은 우리 인생도 성령의 불을 받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시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십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받은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살전 5:19). 성령의 은혜가 떠나고 성령을 소멸하게 되면 우리는 다시 떨기나무 인생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날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가졌던 첫사랑의 감격을 누리며 살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계 2:4~5).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면 하나님은 놀라운 은혜를 우리 삶에 부어주셔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8).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영생을 선물로 받고 마침내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3.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 모세는 떨기나무의 불꽃 가운데서 그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야훼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출 3:4). 이때 모세가 들은 하나님의 음성은 지난 80년 동안 그가 들어왔던 수많은 소리와 어떤 이야기들보다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부르심이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수많은 이야기를 듣지만 그중 대부분은 부정적이며 우리 마음에 상처와 절망을 남기는 불필요한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를 살리고 치유하는 음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그분의 음성을 듣고 살아야 합니다. 항상 영적으로 깨어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그분의 말씀 앞에서 결단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목자이시며 생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응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시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려 했으나 하나님이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을 보내셔서 그를 유럽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행 16:9). 이에 따라 바울은 아시아 대신 마게도냐, 즉 그리스 지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유럽 복음화의 시발점이 되었고 훗날 유럽을 넘어 미국, 나아가 세계 곳곳에 복음이 전파되는 놀라운 역사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각자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을 붙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재능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크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예수님의 제자로 불러 주신 그 부름의 상을 받기 위해 우리는 날마다 전진해야 합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3~14). 이처럼 우리도 늘 성령으로 충만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일평생 믿음으로 전진하고 또 전진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떨기나무 인생을 변화시키셔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으로 세워주심을 감사합니다. 나의 일생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합니다. 항상 성령으로 충만하여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10.13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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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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