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담임목사 주일설교
조용기 원로목사 주일설교
오늘의 묵상
6월 22일(토) - 달지만 쓰다
  • ◎ 말씀 : 계 10:9~10 ◎ 찬송 : 508장(통 270장) 오늘 본문을 보면 요한이 천사로부터 두루마리를 받아서 먹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그가 두루마리를 먹었을 때 입에서는 꿀처럼 달았지만 먹은 후에는 배에서 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았지만 그 계시의 내용이 이후 전개될 참혹한 대재앙을 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요한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달지만 쓴 말씀을 전할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과 기쁨과 소망의 소식이지만 말씀대로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일은 더욱 어렵습니다. 고난과 핍박, 때로는 죽음도 불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순종해 복음 전파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게 하시고 그 말씀을 전하는 사명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6.1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6월 21일(금) - 사랑과 위로의 말
  • ◎ 말씀 : 욥 4:1~8 ◎ 찬송 : 86장(통 86장) 사탄의 시험으로 극심한 고난 가운데 있던 욥은 친구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은 욥을 위로하기는커녕 고난에 대한 자신들만의 해석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엘리바스는 욥의 고난이 죄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그에게 회개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세상에는 욥의 친구들처럼 자신의 잣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상대방의 형편이나 문제의 원인도 알지 못하면서 쉽게 비판하고 정죄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비판의 눈이 아닌 사랑의 눈으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주변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나요? 우리가 먼저 다가가서 사랑과 위로의 말을 전합시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살리는 힘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비판하기보다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고 위로하게 해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6.1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6월 20일(목) -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하시나요?
  • ◎ 말씀 : 욥 1:20~22 ◎ 찬송 : 383장(통 433장)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욥 1:1)였습니다. 그러한 욥이 재산과 가족, 건강까지 잃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모든 것을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듯, 모든 것을 거두어 가신 분도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욥은 고난까지도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음을 믿으며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살다 보면 왜 경건한 사람에게 고난이 다가오는지 의문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과 경험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광대하신 하나님을 인정할 때 그분을 끝까지 신뢰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 속의 욥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 듯합니다. “당신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시나요?”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일을 마주할 때에도 주님의 선하심을 찬양하고 신뢰할 수 있는 신앙을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6.1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성경 인물
    (107) 에바브로디도
  • 바울에게 충성한 믿음의 사람
    사명 위해 헌신한 빌립보교회 성도 바다를 가로지르면 1200㎞, 육로로 이동하면 2000㎞ 대략 서울에서 대만까지의 거리를 육박하는 선교 여정을 다녀온 한 성도가 있다. 빌립보교회의 성도 에바브로디도이다. 그는 빌립보서에 딱 2번(2:25, 4:18) 언급된다. ‘사랑스럽다’란 뜻을 가지고 있는 에바브로디도는 성경에 언급된 횟수와 달리 빌립보교회와 바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충성된 믿음의 사람이다. 에바브로디도는 로마 감옥에 투옥 중인 바울을 돕기 위해 빌립보교회에서 파송한 자이다. 당시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로마 제국에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힌 사실을 알게 되고(빌 1:12~13) 선교 후원금 전달자이자 위로자로 에바브로디도를 파송한다. 빌립보교회는 사도 바울과 관계가 깊다.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그리스에 첫발을 내디뎠는데 그 도시가 바로 빌립보였다. 바울은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히기도 했지만 큰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했다. 이로 인해 자결하려는 간수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됐고 유럽 땅에 최초의 교회인 빌립보교회를 세우게 됐다. 그래서 그런지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 1:8). 당시 빌립보교회가 있던 마게도냐에서 로마까지의 거리는 한 달은 족히 걸리는 머나먼 길이었다. 에바브로디도는 나홀로 가는 길이 두려웠을 법도 했지만 기꺼이 선교의 길에 나섰다. 치안이 열악해 선교에 필요한 재정과 재원 강탈은 물론 목숨까지도 위협당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갔고 어떠한 해도 입지 않고 로마에 도착했다. 이런 그를 바울은 ‘나의 형제’,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 ‘너희 사자’ ‘내게 쓸 것을 돕는 자’라고 말한다. 이는 그가 동역자로서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존재인지, 얼마나 충성된 주님의 자녀인지 알려주고 있다(빌 2:25). 하지만 에바브로디도는 로마에서 다시 빌립보교회로 돌아가야 했다. 그가 얼마나 로마에 체류했는지는 모르지만 바울을 돕다 그만 병에 걸리게 된 것은 분명하다.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에바브로디도가 오랜 여정으로 몸이 쇠약해진 상태에서 옥바라지를 하면서 로마에 돌고 있는 열병에 전염됐다는 의견도 있다. 에바브로디도는 아픈 와중에도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염려할까 근심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에 대해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빌 2:30)라고 말하며 에바브로디도가 사명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을 빌립보 교인들에게 설명하며 그를 따뜻하게 맞아달라고 요청한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헌신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에바브로디도의 행적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목숨걸고 사역에 임하는 선교사들이 생각났다. 에바브로디도처럼은 아니더라도 우리의 시간과 물질, 마음을 에바브로디도와 같이 헌신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기꺼이 보내는 선교사로 동참하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 2024.05.31 / 금지환 기자

    (106) 입다
  • 암몬과 에브라임 무찌른 입다
    잡초 같은 삶에서 아홉 번째 사사로 이스라엘의 아홉 번째 사사 입다는 길르앗 유지와 무명의 기생 사이에서 태어났다. 서자로 태어나 어린 시절 많은 핍박을 받았다. 이복형제로부터 핍박을 받다가 이스라엘 변방에 있던 돕으로 떠난 입다는 타고난 언변과 지도력으로 사람들을 모아 두목 노릇을 하며 약탈을 일삼는 부족으로부터 이스라엘을 보호했다. 그러던 중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삶을 청산하고 이스라엘의 사사로 발탁되는 사건을 맞았다. 오랜 시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힌 암몬이 작정하고 땅을 빼앗기 위해 길르앗에 쳐들어온 것이다. 암몬을 막아낼 방법이 없던 길르앗 장로들은 입다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데 입다는 장군의 지위와 승전 후 영구적인 지도권을 자신에게 보장할 것을 장로들에게 요청했다. 장로들에게 약속을 받은 입다는 암몬을 무력으로 상대하기 전에 역사적인 근거를 암몬 왕에게 제시해 싸움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암몬 왕은 입다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 상황으로 볼 때 입다는 고향을 떠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역사를 잃지 않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으로 보인다. 제안을 거절한 암몬 왕으로 인해 이스라엘과 암몬은 전쟁을 치뤘고 하나님께서 입다의 손에 암몬을 넘겨 주셔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입다는 전쟁에 임하기 전 하나님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갔을 때 가장 먼저 영접 나온 자를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다’라는 서원을 했다.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그를 맞이한 사람은 하나뿐인 딸이었다. 입다는 자기 옷을 찢으며 괴로워했지만 하나님을 향해 서원했으니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을 하나님께 드려야 했다.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야훼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삿 11:35). 평소 길르앗 사람들을 업신여겼던 에브라임 사람들은 승전하고 돌아온 입다에게 ‘암몬과의 전쟁에 왜 자신들을 부르지 않았느냐’, ‘길르앗은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들이다’라며 시비를 걸었다. 암몬과의 전쟁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입다는 에브라임의 모욕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길르앗 사람을 모아 에브라임과 싸워서 승리했다. 길르앗 사람들은 에브라임 사람들이 퇴각하는 요단강 나루턱을 장악하고 에브라임 사람들을 색출했다. 겉모습으로 쉽게 구분할 수 없었기에 나루턱을 지나는 모든 사람에게 ‘쉽볼렛’이라는 단어를 발음하게 했다. 길르앗 사람들은 정확한 발음이 되지만 당시 에브라임 사람들은 십볼렛으로 발음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4만2000여 명의 에브라임 사람을 찾아내 죽였다. 입다는 암몬과 에브라임을 격퇴해 이스라엘을 구하고 무력을 앞세우기 보다 싸우지 않도록 제안하는 지략을 가졌지만 경솔한 서원으로 무남독녀를 잃게 됐다. 입다를 통해 배경도 없고 연약한 삶도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감정에 이끌린 서원으로 괴로운 마음을 겪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교훈도 얻게 된다.
  • 2024.05.03 / 박찬웅 기자

    (105) 오네시모
  • 비천한 종에서 위대한 종으로 변화된 인물
    “나의 형제여, 성도들에게 베푼 그대의 사랑이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었고, 또한 내게도 큰 기쁨과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그대에게 한 가지 부탁할 일이 있습니다 …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나는 믿음의 아들 오네시모를 얻었습니다. 그가 이전에는 그대에게 아무 쓸모없는 종이었지만 이제는 그대나 나에게 큰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위 편지 내용은 주인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도망쳤던 종을 용서하고 더 이상 종이 아닌 주 안에서 한 형제로 받아달라고 부탁하는 바울의 편지 내용이다. 1장으로 구성된 신약의 빌레몬서는 바울이 사랑과 믿음의 일꾼인 빌레몬에게 보내는 서신이다. 편지에 등장하는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으로 주인에게서 도망치고 감옥에 갇혔다가 바울을 만난 인물이다. 바울은 감옥에서도 죄수들에게 주의 복음을 전하며 “모든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서 감동으로 기록되었기에 진리를 가르쳐 주며, 삶 가운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게 해준다. 또한 그 잘못을 바르게 잡아 주고 의롭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고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게 한다”라고 가르쳤다. 이러한 바울의 가르침에 회심하고 개종한 사람이 바로 오네시모다. 빌립보서 4장에는 바울이 오네시모를 가리켜 “오네시모 역시 우리가 사랑하는 신실한 형제”라고 표현하며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이”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울은 골로새 지역 교회의 핵심적인 인물이었던 빌레몬에게 그의 종이었던 오네시모를 직접 보내며 자신이 직접 쓴 편지를 빌레몬에게 전한다. 사랑으로 용서하고 자신을 대하듯 ‘종이 아닌 사랑하는 형제로 대해줄 것’을 당부하며 “오네시모가 잘못한 일이 있거든 그 책임을 나에게 돌리고, 갚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도 나에게 돌리라”고 까지 언급한다. 당시 로마법은 주인과 종(노예)의 관계가 엄격해 도망친 종은 주인에 의해 생사가 갈렸다. 바울은 ‘감옥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빌레몬이 용서해 바울의 조력자로 헌신할 수 있게 도와주길 기대했다. 결국 오네시모는 바울의 헌신과 사랑, 주인인 빌레몬의 용서로 종에서 자유의 몸이 된다. 그리고 ‘쓸모 있는 자’라는 오네시모의 뜻처럼 유익한 하나님의 종으로 후에 에베소 교회 감독으로 쓰임 받는다. 비천한 신분이었던 오네시모가 위대한 일꾼이 된 것은 복음이 지닌 위대한 능력의 결과다. 복음 앞에서 모든 것은 변할 수 있다. 예수님이 피 흘려 돌아가신 구속의 이유다. 바울의 복음을 들은 오네시모처럼 우리 역시 성경 안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삶의 변화를 체험하면 하나님의 쓸모 있는 자로 이 땅에서 값진 삶을 살아낼 수 있다.
  • 2024.04.05 / 오정선 기자

    선교 열전
    (15)로티 문(Lottie Moon) 선교사
  • 일평생 중국 복음화 위해 헌신한 선교사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일평생 수 만명의 중국인에게 찬양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파한 독신 여성 선교사가 있다. 미국 남침례교에서 파송한 로티 문이다. 1840년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로티 문은 어릴 적부터 침례교 신앙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로티의 본명은 샬롯 딕스 문(Charlotte Diggs Moon)이다. 미국 버지니아 알베말 출신인 로티는 18세가 되던 해에 브라더스 목사의 집회에 참석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했다. 이후 대학에서 성경 공부와 기도 모임을 주도하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다. 갑작스런 사고로 아버지를 일찍이 여읜 로티는 당시 남녀 차별이 심각했던 시대적 배경에도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고등교육까지 받아 미국 남부에서 가장 학식이 높은 여인이 됐다. 1873년 중국에서 학원 사역을 펼치고 있었던 선교사 부부를 돕기 위해 중국 선교사로 파송된 로티는 평일에는 학생들을 가르쳤고 주말에는 시골 마을을 순회하며 전도에 매진했다. 로티는 1885년 외국인이 한 명도 없고 외국인 보호 조약과 거리가 먼 지역인 핑투라는 곳에 정착해 본격적으로 현지인 복음화에 앞장섰다. 전도를 위해서는 먼저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며 선교지에서 관계 전도를 이어갔던 그는 현지인과 같은 옷을 입고 활동하며 마을에 복음을 전했다. 복음을 전할 때마다 현지인들의 핍박이 거셌다. 그러던 어느 날, 현지에서 로티가 가르치는 성경을 비난하고자 참석했던 중국인 리 쇼우팅이 성경을 접하며 개종하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후 리 쇼우팅은 사도 바울처럼 성경에 정통한 사람이 되어 북부를 다니며 전도하고 1000여 명에게 침례를 베풀며 귀하게 쓰임 받았다. 38년간 중국에서 헌신한 로티의 노력으로 16개 교회와 56개 학교가 세워져 많은 학생을 배출하게 하는 열매를 맺었다. 또한 남성 전도사 42명, 여성 전도사 14명의 현지인 제자를 세웠고 이들을 통해 2000여 명 현지인이 침례를 받았다. 1912년 로티는 미국 남침례교의 재정 상황의 악화로 더 이상 선교 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됐다. 거기에 기근까지 들어 아이들이 굶주리게 되자 자신의 식사를 나눠주며 본인은 금식을 하다 결국 25㎏까지 몸무게가 줄었다. 쇠약해진 몸을 회복하기 위해 미국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지만 미국으로 가는 길에 72세의 생일을 일주일 앞둔 크리스마스 이브에 만추리아 호에서 소천을 받았다.
  • 2024.02.23 / 금지환 기자

    (14) 서만수 선교사
  • 한국 교회 최초 인도네시아로 파송 된 선교사
    정글 지대 순회하며 현지에 384개 교회 세워 현지인 사역자 양성 위해 스틴신학교도 설립 한 평생 인도네시아 복음화를 위해 헌신한 주의 종이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선교사로 40년 동안 활동하면서 384개의 교회를 세운 그는 한국 교회에서 처음으로 인도네시아로 파송한 서만수 선교사이다. 1939년 평양에서 태어난 서만수 선교사는 6·25 전쟁 중 월남해 서울에 정착했다. 그는 남한에서 주의 종의 소명을 받고 목회자로 사역을 하다 1970년 9월 아내 정소라 선교사와 함께 인도네시아로 파송 받았다. 그는 파송 1년 만에 한국인과 인도네시아 현지인 25명과 함께 최초의 한인교회인 자카르타한인연합교회를 개척했다. 교회가 설립될 당시만 해도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많지 않았는데 한인들은 이 교회에서 타향살이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달랬다. 한인 공동체가 형성되자 그는 한인들의 고민이었던 자녀 교육을 해결하기 위해 1973년 한인 유치원을, 그 이듬해에는 자카르타 한인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서 선교사는 한인교회 사역과 동시에 정글 지대를 순회하며 각 지역에서 전도집회와 부흥회를 인도했다. 차가 갈 수 없는 오지 촌락은 말과 당나귀를 타고 순회 선교를 이어갔는데 그는 식인 풍습이 남아있는 수마트라와 이리얀자야 지역을 다닐 때 몇 차례 죽을 고비도 넘겼다고 했다. ‘녹슬어 없어지기보다 닳아 없어지겠다’는 조지 휫필드처럼 그는 인도네시아 복음 전파에 매진했다. 그런데 1997년 그의 선교 활동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정글 순회 사역의 후유증으로 근무력증을 진단 받은 것이다. 더 이상 순회 선교를 할 수 없게 됐지만 서 선교사는 “선교사는 아프다는 것을 피난처로 삼을 수 없다”는 말을 남기며 귀국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인도네시아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슬람 국가에서 외국인이 직접 선교 활동을 하는 것에는 제한이 많았다. 이에 서 선교사는 정부와 마찰 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는데 그것이 바로 현지인 목회자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그는 스틴(STTIN) 신학대학교를 설립해 현지인을 대상으로 신학교육과 교회개척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이는 인도네시아 미전도종족 선교에 큰 역할을 감당했다. 인도네시아에서 40년 세월을 한결같이 선교하던 서만수 선교사는 2009년 9월 16일 향년 70세를 일기로 소천 받았다. 그는 생전에 자카르타에서 추진하던 종합대학교 건립 부지 근교 공원묘지에 안치됐다. 인도네시아에 3000개 교회 개척을 목표로 삼았던 서만수 선교사. 우리는 그의 선교 열정을 기억하고 그가 이룬 인도네시아 선교가 앞으로도 계속해 발전해 나아가도록 힘써 기도해야만 할 것이다.
  • 2023.07.21 / 금지환 기자

    (13) 코리 텐 붐 여사
  • 전 세계에 용서의 복음 전한 위대한 전도자
    나치 독일로부터 800여 명의 유대인 구출하고 전쟁 후유증 겪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 전해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 전쟁을 일으킨 당시 나치 독일은 도시 곳곳에서 유대인들과 이들을 돕는 사람들까지도 학살했다. 이때 죽음을 무릅쓰고 유대인들을 도운 사람이 바로 네덜란드의 전도자 코리 텐 붐 여사이다. 코리 텐 붐 여사는 1892년 네덜란드 하를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신앙교육을 받아온 그녀는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을 도와야한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위험을 무릅쓰고 유대인 난민들을 숨겨주고 탈출하는 일을 도왔다. 당시 나치 독일 정권이 유럽계 유대인들을 제도적으로 탄압하고 조직적으로 학살했는데 이때 텐 붐 여사가 탈출시킨 유대인은 800여 명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1944년 2월 28일, 전쟁 종식을 앞두고 독일 나치의 정치경찰인 게슈타포에 의해 발각돼 그녀의 일가족이 체포됐다. 유대인들을 도왔다는 이유로 유치장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이후 나치 수용소에 수감 된 그녀는 열흘 만에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그 누구보다 가장 많이 의지했던 아버지의 소천 소식에 깊은 절망에 빠졌던 그였지만 슬픔을 뒤로하고 몰래 들여온 성경을 보며 하나님을 예배했다. 하루하루 버티며 사는 것이 전부였던 수용소에서 언제 목숨을 잃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텐 붐 여사는 매일 밤 성경공부 모임을 갖고 수감자들과 군인들을 위해 기도했다. 절망이 드리운 수용소에 복음은 한 줄기 희망이 됐고 수감자들이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다. 이후 기적적으로 석방된 그녀는 전쟁으로 상처 입은 이들이 회복할 수 있는 재활센터를 설립했다. 텐 붐 여사는 가족과 친척을 잃은 고아, 수용소에서의 트라우마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사람 그리고 전쟁 중 독일과 협력했던 실직한 자국민들까지도 센터에 입소시켰다. 이는 모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는 차별이 없음을 실천한 것이었다. 코리 텐 붐 여사하면 널리 회자 되는 이야기가 있다. 독일의 한 교회에서 용서에 대한 강연을 마치고 나왔는데 강제수용소에서 언니 베시를 고문했던 악랄한 간수를 만나게 된 것이다. 텐 붐 여사는 그를 본 순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그를 용서 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나는 언니를 죽게 한 장본인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그를 용서하게 하셨습니다.” 세계 각국을 다니며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의 복음을 전한 텐 붐 여사는 그녀의 삶의 여정이 담긴 『주는 나의 피난처』 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전쟁 중에도 전쟁 후에도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은 그녀는 1983년 4월 15일 91번째 생일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 2022.10.21 / 금지환 기자

    주일설교 요약본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누가복음 11장 13절) 우리가 회개할 때 죄와 허물 용서받고 성령 충만의 은혜 임해 하나님 영광위해 살게 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붙잡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은 빛 가운데 오신 예수님을 만난 후 완전히 변화되어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역시 인생 가운데 전환점이 되는 사건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죄로 물든 우리의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우리 안에 성령님이 거하시는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은 우리 일생의 가장 큰 축복이자 중대한 사건입니다. 1. 악한 인간의 모습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죄 가운데 태어나고 살다가 죽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그 마음에 생각하고 계획하는 바가 악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들의 악함을 먼저 지적하셨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 ”(눅 11:13). 하나님이 노아 시대에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셨던 것은 온 지면에 죄악이 가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훼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홍수 심판 이후에는 의인으로 인정받던 노아와 그의 가족만 살아남았는데 다시 그 후손이 번창하면서 사람들의 죄도 끝없이 퍼져갔습니다. 그들의 교만은 결국 바벨탑 사건으로 이어졌습니다.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창 11:4). 이처럼 아담 이후 모든 사람은 자기 자아를 지배하는 죄성에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평생 우리 안에 있는 죄와 싸우며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15, 24)라고 탄식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이 죄성을 버릴 수 없습니다. 죄를 이기는 방법은 영적으로 죽고 하나님의 은혜로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라고 고백했던 사도 바울처럼 우리는 죄의 옛사람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를 향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께 구하기 위해 나아가는 자 오늘 성경 본문에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눅 11:13)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날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뢰며 도우심을 구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부모님에게 필요한 것을 달라고 요청하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나아가 무언가를 구하기 전 선행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모든 죄를 철저히 회개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범죄한 후에 하나님께 눈물의 회개 기도를 올렸습니다.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 51:9~11).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한시도 살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죄로 인해 성령님이 떠나실 것을 두려워하여 철저히 회개하는 가운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라고 간청했습니다. 죄는 우리의 삶을 오염시키고 파멸로 이끌어갑니다. 어둠과 절망 속에서 살게 하고 기쁨과 평안을 빼앗아 갑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멀어지게 합니다. “야훼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사 59:1~2). 그러므로 우리는 매 순간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다 용서하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죄의 담을 허물어야 합니다. 그러면 죄 사함과 참된 자유를 누리고 정결함과 기쁨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용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하시고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사 38:17). 이제 우리를 얽어매는 모든 죄의 속박을 벗어던지고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라 하나님이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한 것은 성경에 기록된 분명한 약속입니다.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13).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 밖으로 나가서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에게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 2:38). 이처럼 하나님은 갈급한 심령을 안고 나아와 간구하는 사람을 성령의 생수로 채워주십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7:38~39). 1907년의 평양 대부흥운동은 1903년 원산의 선교사 모임에서 하디 선교사가 한 회개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디 선교사는 선교사 모임에서 말씀을 읽다가 그동안 선교의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이 자신의 교만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자기 잘못을 모든 선교사 앞에서 고백했는데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선교사도 가슴을 치며 통회자복했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이들에게 성령의 은혜와 큰 부흥을 허락하셨습니다. 성 어거스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많은 방황을 했습니다. 이단에 빠지기도 했고 이방 여인과 동거하며 아이까지 낳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을 위한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A.D. 384년 어거스틴이 30세가 되었을 때 그는 삶이 극적으로 변화되는 체험을 했습니다. 죄책감에 시달리며 비참함과 슬픔 속에 빠져 있던 그에게 어디선가 “톨레 레게”(집어서 읽어라)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 음성에 따라 성경책을 펼쳤을 때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3~14)라는 말씀이 그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곧 구원의 확신과 함께 성령님이 그에게 임했고 그 순간 그의 방황은 끝났습니다. 완전히 새사람으로 변화된 그는 기독교사에 길이 남을 신학자이자 교부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죄 사함과 회심, 성령 충만은 하나님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죄로 인해 절망하며 어둠 속에서 살지 말고 이 순간 하나님께 모든 죄를 회개하며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성령의 은혜를 넘치도록 부어주실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어 한평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죄 가운데 태어나서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악한 우리를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구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가장 좋은 선물인 성령 충만을 받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귀한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6.0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은혜로 나아가는 길
  •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빌립보서 2장 12~14절) 날마다 말씀 묵상하며 성령 안에서 기도하면 하나님 영광 되는 꿈 꾸고 주 안에서 복된 삶 살게 돼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원망과 불평, 섭섭함과 같은 부정적인 것들이 우리 삶을 파고드는 이유는 마음으로부터 은혜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을 가까이하여 항상 은혜의 길로 나아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 구원을 이루라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구원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하나님의 전적이며 일방적인 은혜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 태어나고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절망적인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구원의 길에 이를 수 없는 우리를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선택하셔서 불가항력적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4~5).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날마다 입술로 감사를 고백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또 하나는 우리가 구원받은 이후 마지막 날에 이르기까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 구원을 이뤄가야 한다는 점입니다(빌 2:12). 구원을 이룬다는 것은 구세주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가 날마다 닮아가서 영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2). 그러므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초보적 신앙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고 의와 진리를 따라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 언제나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을 온전히 이루어 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하나님을 의지하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순간부터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해 우리 안에서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빌 2:13).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도록 이끄십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바 대로 우리가 사명을 잘 감당하며 살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해야 합니다. 자기 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쉽게 지치고, 시험에 들며, 상처받곤 합니다. 교회를 섬기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처음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으면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깊이 감사하고 감격하며 봉사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매일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힘과 은혜를 공급받지 못하면 곧 받았던 은혜가 고갈되고 결국 사람은 자신의 힘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문제가 생겨나고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지은 찬송가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 2절 가사에는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도다’라는 고백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시편 기자도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야훼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시 37:3). 하나님은 연약한 우리를 도우시기 위해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우리와 항상 동행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부름을 받은 우리는 범사에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행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으면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우리 가운데서 행하시는 일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3. 거룩한 소원을 가지라 하나님은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해서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십니다.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이에 우리는 인간적인 욕심이나 야망이 아닌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한 꿈과 소원이 늘 우리 안에 자리하도록 해야 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던 바디매오는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구걸하는 일밖에 없을 정도로 절망적인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면 눈을 뜰 수 있겠다’라는 소원을 가졌습니다. 마침 예수님이 그의 곁을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예수님께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막 10:46~47).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소원대로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거룩한 꿈과 소원을 가진 사람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토대로 거룩한 꿈과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모두 성경 안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모습대로의 온전함을 회복하고 성령님이 이끄는 선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주신 거룩한 꿈과 소원을 이루기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엡 3:20). 하나님은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통해 일하시며 우리가 기도한 것보다 더 넘치도록 응답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성령 안에서 기도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꿈을 꾸며 복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한평생 아름답고 희망찬 하나님의 꿈을 꾸며 이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함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며 거룩한 소원을 품고 살아가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6.0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사명
  •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사도행전 20장 17~21절) 성령 충만으로 주님 섬기며 믿음의 사명자로 쓰임 받아 온유와 겸손으로 복음 전할 때 하나님의 구원 역사 이뤄져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진정한 인생의 행복과 보람도 느끼며 살게 됩니다. 비록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사명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기쁨과 감사함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행복한 인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 주님을 섬기는 삶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한 이후 오직 사명에 붙잡혀 순교하는 날까지 예수님만을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일평생 고난, 눈물, 인내와 겸손의 길을 걸으며 주님을 섬겼던 자신의 삶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습니다.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행 20:19). 사도 바울은 당시 최고의 학자인 가말리엘의 수제자로서 장래가 촉망받는 젊은 지도자였습니다.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나 로마 시민권도 가지고 있으며 부족함이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그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오직 예수님만 높이고 자랑하고 닮아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사도 바울은 주님을 섬길 때 말할 수 없는 환난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민족이 아닌 동족 유대인들이 끊임없이 그를 해치려 하고 핍박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가 복음을 전하러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그의 사역을 방해했습니다. 심지어 루스드라에서는 사람들을 선동해 그를 돌로 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행 14:19). 사람들은 그가 죽은 줄 알고 끌어내어 도시 밖에 버렸으나 다행히 기절한 것이기에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도 바울을 이렇게 핍박하는 유대인들의 모습은 이방 민족에게 덕을 끼치지 못했고 사도 바울의 복음 전파 사역에도 큰 어려움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함께 섬기는 우리들이 서로 비난하고 싸운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됩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 5:15)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모두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어 서로 사랑하고 화목해야 합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3). 우리가 하나 되어 주님을 섬기고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많은 영혼을 살리시는 귀한 일들을 행하실 것입니다. 2. 유익한 것은 거리낌 없이 전하는 삶 사도 바울은 전파하며 가르치고, 권면하며 훈계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복음 안에서 그의 행보는 가정에서나 공중 앞에서나 담대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행 20:20).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행 20:27). 바울이 이토록 담대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관심이 오직 성도들에게 유익을 주는 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늘 성도들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도록 눈물로 기도하며 그들을 훈계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행 20:31). 이처럼 우리도 이웃의 유익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히 13:16). 힘을 다해 우리 주위의 소외된 이웃에게 선을 베풀고 사랑을 나눠야 합니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9~11).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의 사랑과 관심, 도움이 필요한 많은 이웃이 있습니다. 250만 다문화 가족과 3만5000여 탈북민 가족, 몸에 불편함을 겪고 있는 장애인들, 소년·소녀 가장들, 미혼모 가족들, 또 전국의 보육시설에 있는 청소년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진정한 크리스천은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자신의 형제자매로 여기며 사랑으로 품고 섬기는 사람입니다. 이웃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삶을 드리고 예수님께 받은 사명 안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크리스천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3.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사도 바울은 만나는 모든 사람 곧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을 비롯해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행 20:21). 사도 바울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증언함과 동시에 회개를 선포했습니다. 이처럼 믿음에는 회개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과거 침례 요한도 회개의 메시지를 전파했습니다. “침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막 1:4).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첫 번째로 선포하신 메시지도 회개였습니다.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5). 회개는 세상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완전히 돌이켜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회개한 사람은 행동이 달라지고 마음 자세도 달라집니다. 교만과 고집의 모습에서 예수님을 닮은 겸손과 온유의 모습으로 바뀌게 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우리가 회개하여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품게 되면 이웃 사람들에게 덕을 끼치고 그들의 마음에 기쁨을 주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회개의 삶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어집니다. 믿음의 사람은 철저히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믿음의 사명자라고 부릅니다. 이권희 집사님이 작사, 작곡한 ‘사명’이라는 곡의 가사는 믿음의 사명자인 우리가 어떤 마음과 믿음으로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주님이 홀로 가신 그 길 나도 따라가오. 모든 물과 피를 흘리신 그 길을 나도 가오. 험한 산도 나는 괜찮소. 바다 끝이라도 나는 괜찮소. 죽어가는 저들을 위해 나를 버리길 바라오. 아버지 나를 보내주오. 나는 달려가겠소. 목숨도 아끼지 않겠소. 나를 보내주오.” 이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했던 나의 교만, 고집, 완고함을 내려놓고 오직 예수님처럼 온유와 겸손으로 무장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목숨을 바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명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온몸이 찢겨 피 흘림으로써 구원의 사명을 이루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크신 은혜를 누리며 살면서도 한없는 교만과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이제 겸손히 사람을 살리는 사명, 사랑을 실천하는 사명을 감당하며 살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5.2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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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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