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담임목사 주일설교
조용기 원로목사 주일설교
오늘의 묵상
9월 19일(토) - 어둠에서 빛으로
  • ◎ 말씀 : 행 26:16~18 ◎ 찬송 : 499장(통 277장) 바울은 아그립바왕 앞에서 자신이 어떻게 복음의 사도가 되었는지를 증언했습니다. 그는 한때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반대하는 일에 온 힘을 쏟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주님을 만난 뒤 자신이 본 것과 장차 보게 될 일의 증인으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사람들의 눈을 뜨게해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부르심은 바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세상에서 예수님의 증인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복음이 필요한 자리로 보내십니다. 오늘도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며 어두운 세상을 밝혀 가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어둠 가운데 있는 이들이 주님의 빛으로 돌아오도록 우리를 사용하시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9.1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9월 18일(금) -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 ◎ 말씀 : 전 3:1~11 ◎ 찬송 : 312장(통 341장) 우리 삶 속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습니다. 날 때와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와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울 때와 웃을 때가 있고, 슬퍼할 때와 춤출 때가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솔로몬은 세상의 이치를 하나하나 짚어 가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매 순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임을 가르쳐줍니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변하고 앞날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가장 알맞은 시기에 가장 선한 일을 이루십니다. 때로는 기다림이 길게 느껴지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도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때를 조용히 신뢰하며 걸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나아갈 때 우리는 선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도 지치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며 소망을 품고 인내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9.1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9월 17일(목) -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 ◎ 말씀 : 행 22:4~8 ◎ 찬송 : 144장(통 144장) 사도 바울은 한때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성도들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고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울이 “주님 누구시니이까”라고 묻자 주님은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만남을 통해 사울은 박해자에서 복음의 사도로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사울의 인생을 바꾸신 주님은 오늘도 사람을 새롭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죄와 어둠에 붙들려 있던 옛사람을 벗고 주님 안에서 새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오늘도 믿음의 길을 걸어가길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을 몰랐던 어리석고 교만한 과거를 버리고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9.1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믿음의 영웅들
    1. 희생의 제사를 드린 아벨
  •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러나 성경에는 죽었으나 지금도 말하는 사람이 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영웅 가운데 가장 먼저 등장하는 믿음의 영웅 아벨이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히 11:4). 히브리서 11장은 창세기의 흐름에 따라 믿음의 증인들을 소개한다. 아벨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은 첫 증인이다. 아벨의 히브리어 이름은 ‘헤벨’이다. 숨이나 입김,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안개를 뜻하며 여기서 ‘덧없음’과 ‘허무함’이라는 의미가 파생됐다. 반면 가인의 이름은 ‘얻다’, ‘획득하다’라는 뜻과 연결된다. 하와는 가인을 낳은 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고 고백했다. 주목할 것은 이름과 삶이 빚어낸 역설이다. 형 가인의 손에 죽임을 당한 아벨은 그의 이름처럼 덧없이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아벨은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었고, 반면 ‘얻은 자’ 가인은 하나님의 인정을 얻지 못했다. 창세기 4장은 가인과 아벨은 각자의 생업에서 얻은 것을 하나님께 예물로 드렸다고 기록한다. 농사를 짓던 가인은 땅의 소산을 드렸고, 양을 치던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드렸다. 가인의 제사가 거절된 이유를 단순히 ‘곡식이기 때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훗날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곡식으로 드리는 소제를 정식 예물로 규정하셨기 때문이다. 레위기 2장의 소제는 하나님의 은혜와 양식에 감사하며 자신을 봉헌하는 예물이었다. 레위기 5장에서는 산비둘기조차 마련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에게 고운 가루를 속죄제물로 허용하셨다. 두 제사를 가른 결정적인 차이는 아벨이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는 데 있었다. 아벨은 자신의 소유 가운데 가장 먼저 난 것과 가장 귀한 것을 구별해 하나님께 드렸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단순히 양이라는 제물만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한 아벨의 중심을 받으셨음을 알 수 있다. 가인의 농사와 수고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가인이 자신의 성과를 앞세워 믿음 없는 행위만으로도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데 있었다. 아벨은 이와 달리 자신이 이룬 성과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으며 그분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렸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외적인 행위에 앞서 그 사람의 믿음과 중심을 보신다. 오늘 우리의 기도와 예배, 봉사도 마찬가지다. 기도는 자신의 경건을 드러내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며 봉사는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얻기 위한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헌신이어야 한다. 자신의 행위를 내세우다가 분노와 시기에 사로잡힌 가인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가장 귀한 것을 드린 아벨의 길을 걸어야 한다.
  • 2026.09.04 / 금지환 기자

    선교 열전
    (18) 김창식 목사
  • 머슴 출신 한국인 최초 목회자 박해 속 복음 지키며 ‘한국의 바울’로 불려 한국 초기 교회사의 빛나는 별 중 한 사람인 김창식 목사는 머슴 출신으로 한국 최초의 목사가 됐다. 한평생 순회 전도인으로 살아간 그는 당시 선교사들의 회고록에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굳게 붙들었던 ‘한국의 바울’로 기록되어 있다. 1857년 황해도 수안군 성동면 생금리에서 태어난 그는 머슴살이를 하던 시절, 선교사들에 대한 괴소문을 접했다. 당시 “아이들의 간을 떼어 약을 만든다”, “눈을 빼어 만든 것이 카메라다”라는 소문이 퍼져 있었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미국 북감리교 올링거 선교사의 집에 잡부로 취직해 선교사의 사생활을 감시했다. 하지만 불미스러운 행동은 전혀 찾을 수 없었고 오히려 올링거 부부의 인격과 겸손한 삶에 감동을 받아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1888년 4월 아펜젤러에게 침례를 받은 뒤 선교사들의 든든한 조력자가 됐다. 김창식 목사가 ‘한국의 바울’로 불린 가장 큰 계기는 1894년 평양에서 일어난 기독교인 박해 사건이었다. 이때 김창식도 잡혀가 죽을 지경의 고문을 받았으나, “나는 기독교가 옳다는 사실을 안 이상 기독교 신자로 살 것이며 나가서도 복음을 전하겠다”며 끝까지 굴하지 않았다. 그는 감옥에서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라는 말씀과 함께 “주님을 배반할 수 없다”고 고백했다. 석방 직후 곧이어 청일전쟁이 발발했다. 평양은 격전지가 됐고 교회와 병원은 피난민들의 은신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당시 김창식은 홀 선교사와 함께 남아 피난하지 못한 사람들과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았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홀 선교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김창식 목사는 평양 선교 전반을 홀로 맡아 감당했다. 이후 그는 노블 선교사와 함께 평양 이북 지역의 교회를 이끌었다. 거리와 산골을 누비며 복음을 전해 ‘길바닥의 목사’, ‘민중 전도인’으로 불렸던 그는 1901년 5월 서울 정동교회에서 한국 최초의 목사 안수를 받았다. 목회 사역 동안 김창식 목사는 48개 교회를 개척하고 전국 170여 교회를 돌보며 교파와 지역의 경계를 넘어 순행 사역자로 전국을 누비며 목회에 헌신했다. 교인들에게 스스로 신앙을 세우고 전도하는 ‘자립·자전’ 정신을 강조했던 김창식 목사는 1929년 1월 29일 향년 72세로 소천 받았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가장 작은 자’라 칭하며 겸손과 헌신의 삶을 살았다.
  • 2025.08.29 / 금지환 기자

    (17) 존 로스
  • 최초의 한글 성경 번역으로 선교 토대 마련 최초의 한글 신약성경인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를 출판하고 이후 신약성경 전체를 번역하는데 기여한 존 로스(John Ross, 1842~1915)는 조선인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섰다.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로스는 조선의 복음화를 꿈꾸며 한글 성경 번역에 자신의 젊은 날을 헌신했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그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신학교에 입학했다. 신학교에 입학한 로스는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비롯해 독일어, 중국어 등 외국어를 공부했다. 사람들이 외국어를 공부하는 이유를 묻자 로스는 “예수님은 너희가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는데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당연히 많은 외국어를 공부해야 한다”고 답했다. 신학생 시절 로스는 중국 선교사인 허드슨 테일러의 강연에 참석해 “중국에서 수억 명의 사람들이 복음을 모른채 죽어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듣고 복음을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선교사가 될 것을 결단했다. 1872년 중국에 도착한 로스는 먼저 선교 중이던 존 매킨타이어와 함께 길거리에서 한문으로 번역된 성경을 나눠주며 전도를 시작했다. 로스가 중국어로 설교를 할 수 있을 만큼 유창한 어학 실력을 갖추게 된 후에는 직접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순회 전도를 했다. 그는 중국인들에게 익숙한 유교적 표현을 이용해 기독교 교리를 이해시키려 노력했고 현실에 지쳐 불교·도교 사원으로 도피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찾아가 복음을 전했다. 당시 만주 지역에는 중국인뿐 아니라 조선인, 러시아인, 일본인 등 다양한 민족의 사람들이 거주했다. 주변 선교사들을 통해 조선을 알게 된 로스는 만주 지역에서 전도하며 머지않아 조선에도 복음의 문이 반드시 열릴 것을 확신했다. 그는 “조선인이 쉽게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우리가 한글 성경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 않겠습니까?”라며 주변 사람들에게 한글 성경에 대한 필요성을 알리고 번역에 힘썼다. 그는 당시 한문으로 된 성경은 이미 있었지만 쉽게 배울 수 있는 한글을 통해 복음이 더 많은 이들에게 전파될 것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다. 로스는 자신이 한글을 공부하면서 정리한 내용과 예문을 바탕으로 조선을 방문할 선교사들에게 도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국어 교재인 ‘조선어 첫걸음’이라는 책도 저술했다. 비록 그는 조선의 쇄국 정책과 기독교 박해로 조선 땅을 밟지는 못했다. 그러나 조선과 가까운 중국 만주를 선교 거점으로 삼고 조선인들과 교류하며 복음을 전해 조선에 공식적인 선교사가 입국하기 전 기독교 신앙이 자리 잡도록 기틀을 마련한 선교사다.
  • 2025.05.23 / 금지환 기자

    (16) 말콤 펜윅
  • 초기 한국기독교 토대 마련 성경·찬송 번역하며 46년간 헌신한 선교사 말콤 펜윅(Malcolm C. Fenwick, 1863~1935)은 국내에서 헌신하며 신약성경과 찬송을 우리말로 번역한 선교사다. 찬송이 수록된 『복음찬미』, 전도를 위한 성경 구절을 모은 『만민됴흔긔별』 발간뿐 아니라 1919년에는 『신약젼셔』 를 출판했다. 캐나다인인 그는 26살 때 초교파 모임인 나이아가라 사경회에 참석해 성경을 공부하던 중 인도 선교사로 활동한 로버트 와일더의 “사막에서 애타게 물을 찾으며 죽어가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유리 주전자에 담긴 물이 아닌 오직 물이다”라는 간증을 듣고 선교사로 결단했다. 1889년 입국한 펜윅은 국내에서 복음을 전하며 250여 개의 교회를 세웠다. 펜윅은 장로교 조사 서경조와 동행하며 한국어를 배워 황해도 송천에서 ‘예수 사랑하심은’(Jesus Loves Me), ‘나는 참 기쁘다’(I am so glad) 찬송과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해 소년들에게는 성경을 가르치고 마을의 여성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성경 공부를 이끌었다. 그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롬 15:20)는 사도 바울과 같은 신념을 갖고 개신교 선교부가 없는 원산으로 이동해 자립 선교의 토대 마련을 위해 농장을 운영했다. 1906년 ‘대한기독교회’를 조직한 펜윅은 다른 사람이 전하지 않은 곳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선교 정책으로 삼고 원산을 중심으로 만주와 시베리아까지 소외된 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교단의 목사와 전도사는 순회사역자가 되어 전국에서 전도 활동을 펼쳤고 교인들도 전도 현장에 투입돼 복음 전파에 앞장섰다. 펜윅은 전도자들이 개척한 교회들을 돌아보며 그들의 신앙을 격려했고 가는 곳마다 사경회를 개최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집회가 끝나면 참석자들에게 성경을 읽도록 해 원산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이단 활동에 효과적으로 대처했다. 펜윅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만주를 거쳐 시베리아까지 복음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마지막 순간까지도 선교에 힘썼다. 복음 전파를 향해 기관차처럼 달려온 그는 원산의 자택에서 72세의 나이로 하나님 곁으로 갔다. 말콤 펜윅은 이 땅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이래 46년간 선교하며 어떤 교파에도 의지하지 않고 한국인 사역자와 함께 초기 한국기독교의 토대를 마련했다.
  • 2025.01.31 / 박찬웅 기자

    주일설교 요약본
    아사 왕의 개혁
  •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야훼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의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을 없애고 또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다만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야훼 앞에 온전하였으며 그가 그의 아버지가 성별한 것과 자기가 성별한 것을 야훼의 성전에 받들어 드렸으니 곧 은과 금과 그릇들이더라” 열왕기상 15장 11~15절 죄악과 타협하지 않고 모든 우상 과감히 제거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 되면 삶에 형통의 복 채워주셔 예수님을 믿은 후 우리의 삶은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모습으로 성장하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남유다 아사 왕은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우상을 제거하고 나라를 개혁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삶을 날마다 돌아보며 죄악된 모습을 버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으로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1.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 아사 왕은 다윗과 같이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함으로 하나님께 인정받았습니다.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야훼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왕상 15:11). 그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의식 곧 ‘코람데오’를 마음에 품고 유다 백성 가운데 우상과 죄악을 제거하며 선을 행하고 정의로운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아사가 그의 하나님 야훼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대하 14:2).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거짓과 악과 타협하며 살면 안 됩니다. 우리는 죄의 습성을 가지고 있어서 쉽게 죄의 유혹에 끌려가지만 죄의 유혹을 단호히 차단해야 합니다. 나쁜 것은 흉내도 내지 말아야 합니다. 거짓과 악과 손을 잡으면 결국 파멸의 길로 가게 됩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야훼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 1:6). 헤롯 왕(헤롯 아그립바 1세)은 부귀영화와 권세를 누린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교만에 빠져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행 12:23). 반면 다윗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겼기에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행 13:22). 우리가 잘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잘되고 형통하고 칭찬받을 때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아사 왕은 다윗 왕의 길을 따라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유다에서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가 되면 하나님은 우리 삶을 형통의 복으로 채워주십니다. 우리도 주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인정받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2. 남색하는 자와 우상을 없앰 아사 왕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행위를 일삼던 남색하는 자들을 쫓아내고 조상들이 만든 우상을 철저히 제거했습니다.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의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을 없애고”(왕상 15:12).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말씀에 어긋나는 죄악을 그대로 방치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과감하게 제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지으신 후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한 몸을 이루도록 창조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야훼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2~24). 하지만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거스르고 왜곡된 욕망을 따랐습니다. 당시 유다 땅에 있던 ‘남색하는 자들’은 이방 종교와 관련된 성적 행위를 하던 자들이었습니다. 아사 왕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죄악을 결코 방치하거나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듣고 마음을 강하게 하여 유다와 베냐민 온 땅에서 가증한 물건들을 제거하고 야훼의 제단을 다시 세웠습니다. “아사가 이 말 곧 선지자 오뎃의 예언을 듣고 마음을 강하게 하여 가증한 물건들을 유다와 베냐민 온 땅에서 없애고 또 에브라임 산지에서 빼앗은 성읍들에서도 없애고 또 야훼의 낭실 앞에 있는 야훼의 제단을 재건하고”(대하 15:8). 우리 삶에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의지하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이 곧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물질을 하나님보다 더 앞세우면 물질이 우상이 되고, 권력이나 명예, 인기가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녀라 할지라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면 삶을 무너뜨리는 영적 걸림돌이 됩니다. 아사 왕처럼 삶에 잘못된 것을 과감히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며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개혁에 문제가 되는 가족도 정리함 아사 왕은 개혁의 과정에서 우상을 제거했을 뿐만 아니라 개혁의 걸림돌이 되는 가족의 문제도 단호하게 정리했습니다. 태후 마아가가 아세라 상을 만들자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습니다. “또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왕상 15:13). 그의 개혁에 가장 큰 걸림돌은 가족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가족이라는 이유로 죄와 타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이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했지만 나라에 있는 산당을 모두 제거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아사 왕의 마음이 일평생 하나님 앞에 온전했다고 평가합니다. “다만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야훼 앞에 온전하였으며 그가 그의 아버지가 성별한 것과 자기가 성별한 것을 야훼의 성전에 받들어 드렸으니 곧 은과 금과 그릇들이더라”(왕상 15:14~15). 우리도 하나님보다 앞세우는 모든 우상을 내려놓고 신앙의 걸림돌이 되는 것들을 과감히 제거해야 합니다. 어 떤 이유로든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든 것이 있다면 회개하고 돌아와야 합니다. 이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 주님이 주신 은혜 가운데 우리에게 맡겨진 곳에서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주의 거룩한 백성으로 하나님의 일꾼으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도 아사 왕처럼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비록 우리가 부족해도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붙잡아 주시는 은혜에 감사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삶을 돌아보게 하시고, 하나님보다 앞세우고 사랑했던 모든 우상을 내려놓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2026.09.1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응답하시는 하나님
  •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야훼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야훼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야훼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열왕기상 18장 36~38절 우리 앞에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하면 주님이 우리 기도 들으시고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셔 많은 사람이 경제적인 어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힘겨운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문제와 깊은 절망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을지라도 문제만 바라보거나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를 절망에서 건져주시고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늘도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1. 유일하신 하나님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과 대결하기에 앞서 먼저 무너진 야훼의 제단을 다시 쌓았습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야훼의 제단을 수축하되”(왕상 18:30). 엘리야가 무너진 야훼의 제단을 수축한 것처럼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우리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회복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돌이켜 다시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엘리야는 먼저 주님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고백했습니다.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왕상 18:36). 하나님은 온 인류의 유일하신 하나님이며 구원자이십니다. 이 세상에서 찬양과 영광과 경배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십계명을 주시며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출 20:3).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는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계명을 어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지자들을 보내 경고하시고 징계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징계받을 때 잠시 돌이켰다가 다시 우상의 길로 돌아서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보다 앞세우는 우상이 있습니다. 돈과 물질, 권력과 명예, 인기와 성공의 우상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우상은 ‘나’라고 하는 우상입니다. 하나님보다 나 자신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보다 내 생각과 뜻을 앞세우는 우상을 제거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올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사 55:7). 우리의 마음에서 하나님보다 앞서는 것을 내려놓고 무너진 제단을 다시 세우며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2. 주의 말씀대로 행하는 종의 삶 엘리야 선지자는 자신을 ‘주의 종’이라 고백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했습니다.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왕상 18:36). 우리는 분명한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인 동시에 주님의 종입니다. 때로 힘들고 어려운 인생이 다가올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이자 주님의 종인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꿈과 계획을 이루기 위해 살아갑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각자의 자리에 세우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종들에게 필요한 것은 충성과 헌신입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2). 하나님이 각자에게 맡기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충성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이 도우실 것입니다. 맡겨진 일을 기쁨으로 감당하며 하나님을 섬김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과 능력이 아닌 주님의 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할 때 주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며 주님의 뜻 가운데 행함으로 어떤 어려움과 절망도 이겨내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3. 응답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때 응답이 다가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내게 응답하옵소서”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야훼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야훼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왕상 18:37). 엘리야가 기도를 마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도랑의 물까지 핥았습니다(왕상 18:38). 문제와 어려움을 만났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내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주님께 엎드려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하나님은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 우리의 삶 가운데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렘 33:3). 응답이 더디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끝까지 기도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엘리야의 기도가 응답 되어 하늘에서 불이 떨어진 것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엎드려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고백했습니다.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야훼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야훼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왕상 18:39). 어떤 이유로든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여 하나님과 멀어졌다면 이제는 돌이켜 처음 은혜받았던 그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절망과 어려움을 만났을 때 낙심하거나 세상의 우상을 찾지 말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 성령의 불이 임하면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 가운데 성령의 불이 임하여 하나님께 인정받는 기도의 사람, 순종의 사람, 말씀의 사람으로 귀하게 쓰임받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모든 문제와 어려움 가운데 함께하시며 주님만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보다 앞세웠던 것이 있다면 내려놓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문제와 어려움을 만날 때 우리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8.23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 여러분은 지금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혹시 소망을 잃고 마른 뼈처럼 메마른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약 2600년 전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깊은 절망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선지자 에스겔을 한 골짜기로 인도하셔서 사방에 널려 있는 수많은 마른 뼈를 보게 하셨습니다. 1. 마른 뼈 인생 에스겔이 본 골짜기의 마른 뼈들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합니다(겔 37:1∼2). 오늘날도 많은 사람이 바벨론에 끌려간 이스라엘백성들처럼 절망과 좌절 속에서 살며 각종 중독과 고통에 빠져 마른 뼈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혹시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첫사랑의 감격을 잃어버리고 예배와 신앙생활이 습관과 형식에 머물고 있다면 우리도 영적으로 마른 뼈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배를 드려도 기쁨과 감사가 사라지고 교회에서 은혜와 사랑으로 섬기기보다 비판과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이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가지 않는다면 주님이 우리의 촛대를 친히 옮기시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계 2:5). 우리가 하나님과 어디에서부터 멀어졌는지 돌아보고 마음을 찢어 회개하면 하나님이 노하지 않으시고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않는다고 요엘 선지자는 말씀합니다(욜 2:13).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하고 다시 처음 사랑과 은혜를 회복해야 합니다. 2. 주님의 권능 마른 뼈와 같은 인생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의 능력이 아닌 주님의 권능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에스겔 역시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사명을 감당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이 임했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주님의 권능을 힘입어야 합니다. 그러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삶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구하고 의심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3~24). 믿음으로 구했으면 환경과 현실만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여서 기적이 일어날 것을 선포해야 합니다. 믿음의 선포를 통해 우리 삶에 놀라운 기적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 복음의 증인으로서 날마다 전진 또 전진하면 우리의 삶을 통해 날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3. 성령의 역사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여 선포하자 마른 뼈들이 서로 연결되고 힘줄과 살이 생기며 사람의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겔 37:7). 그러나 아직 생명이 없었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생기를 향해 대언하자 하나님의 생기가 사방에서 불어와 그들에게 들어갔고 죽었던 자들이 살아나 큰 군대를 이루었습니다(겔 37:9~10). 이 생기는 하나님의 영, 성령을 의미합니다. 오순절 날 예수님의 말씀대로 모여 기도하는 그곳에 성령께서 바람같이 불같이 임했습니다.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성령의 역사가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도 성령의 충만함이 필요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적 군사로 세워져 마귀를 대적하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지식으로만 아는 신앙이 아닌 날마다 성령으로 충만한 신앙을 가진 하나님의 영적인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갈 때 흑암의 권세가 물러나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 2026.08.2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순복음의 12대 핵심진리
    12. 절대 감사
  • 감사는 믿음의 척도 성도의 삶은 감사의 삶이 되어야 한다.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의 행위, 즉 예배, 기도, 찬양, 봉사, 헌신 등은 모두 감사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골 3:16). 감사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 성도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하셨다. 여기서 ‘범사’라는 헬라어 ‘엔 판티’는 ‘모든 것에’라는 의미이다. 영어 성경에서는 이를 “모든 환경에서”라고 번역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명하시는 감사는 우리가 처한 상황이나 환경을 초월하여 감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우리는 절대 감사의 신앙을 실천해야 한다. 절대 감사를 실천했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사도 바울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소아시아와 유럽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는데, 그 과정에서 온갖 고난과 핍밥을 당했다. 그런데 그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라고 고백했다. 심지어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 속에서도 오히려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을 위로하며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감사하라고 권면했다(빌 4:6~7). 우리는 고난이 다가올 때 원망과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기도해야 한다. 감사함으로 구하는 기도는 고난을 축복으로 바꿀 수 있다. 욥은 다복한 가정, 사회적 명예와 재물 등으로 윤택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사탄의 시험을 받아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고, 재산을 잃고, 건강도 잃었다. 아내는 그를 원망하며 떠났고 친구들은 그를 정죄했다. 하지만 욥은 하나님께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대신 주신 분도, 거두시는 분도 모두 하나님임을 고백했다(욥 1:21). 우리가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있더라도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기 때문이다. 생명을 주신 은혜만으로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원의 은혜는 값싼 은혜가 아니다. 죄 많은 우리를 대신하여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 내어주시는 대가를 치르셨다. 더욱이 우리가 구원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서 구원받은 게 아니다. 이 같은 구원의 은혜에 우리는 한평생 감사해야 할 것이다. 감사는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깊은 곳까지도 아시는 분이시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입술을 통해 감사의 고백을 듣길 원하신다. 감사는 습관이 되어야 한다. 불평과 부정적인 생각을 물리치고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며 작은 것에서부터 감사하기를 실천하자. 사도행전 16장에 바울과 실라가 옥에서 감사를 드렸고 이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옥터가 흔들리고 닫혔던 문이 열리며 손과 발에 매인 것이 모두 풀어지는 기적을 베푸셨다. 감사 안에 기쁨, 평화, 사랑, 회복이 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넘치는 감사로 기적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 2026.07.31 / 김주영 기자

    11. 절대 긍정
  •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뢰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기다리는 힘 말씀 묵상, 기도로 훈련할 수 있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절대 긍정은 단순한 낙관주의적 사고방식이나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아니다.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나 더 나은 삶을 위한 방법론도 아니다. 절대 긍정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면서 하나님에 대해 전적으로 옳다고 인정하는 신앙의 자세를 말한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신 구주이시고, 우리 가운데 함께하시며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권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절대 긍정의 신앙으로 우리는 모든 일에서,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면 필연적으로 절대 긍정의 신앙을 소유하게 된다. 절대 긍정의 사람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성경 속에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은 믿음의 위인들은 모두 절대 긍정의 신앙을 소유한 사람들이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이 보여주실 땅으로 나아갔다. 하나님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나이인 100세 아브라함의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들 이삭을 주셨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에도 순종해 이삭과 함께 모리아 산을 향해 나아갔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가 죄 가운데 빠져 하나님을 외면하고 살 때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셨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죄와 절망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를 권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셔서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게 하셨다.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결코 부정적인 사람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살 길을 열어 주셨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은 고난을 승리로 바꾼 절대 긍정의 근원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의 능력을 믿는 사람은 어떠한 고난에 처할지라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부활의 소망, 영생의 소망을 마음에 품고 담대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셨다. 성령님은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신다. 우리와 함께 하셔서 기적을 행하시는 성령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절대 긍정의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절대 긍정의 신앙은 저절로 주어지는 건 아니다. 절대 긍정으로 살아가겠다는 결단을 해야하고 노력과 훈련도 필요하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절대 긍정이 우리 마음에 자리잡는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거룩한 꿈을 주신다. 이 꿈을 삶에서 실현하는 통로가 바로 기도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들고 기도할 때 성령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난다. 우리는 언어도 긍정적으로 바꿔야한다. 가나안에서 돌아온 열두 정탐꾼에게 하나님은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 14:28)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가나안 정복이 가능하다고 선포한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나님은 지금도 절대 긍정의 신앙을 소유한 하나님의 사람을 찾고 계신다.
  • 2026.07.03 / 복순희 기자

    10. 나누어 주는 신앙
  • 나누는 삶, 크리스천의 본분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 본받아 복 나누는 청지기의 삶 살아야 크리스천의 섬김과 나눔은 하나님께 받은 사랑과 은혜가 마음에 가득 차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신앙의 표현이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그 사랑을 이웃과 세상에 전할 수밖에 없다. 순복음의 ‘나누어 주는 신앙’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삶으로 드러내는 신앙이다. 나눔은 하나님의 백성이 갖추어야 할 삶의 자세이다. 나누어 주는 신앙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의 가르침에도 나와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추수할 때 밭의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가난한 자와 나그네를 위해 남겨두라고 명하셨다. 또한 십일조를 통해 레위인과 고아, 과부, 나그네를 돌보게 하셨다. 희년 제도를 통해서는 빚으로 잃어버린 삶과 자유를 회복하게 하셨다. 예수님은 병든 자를 고치시고 굶주린 자를 먹이셨으며 소외된 자들을 품으셨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다. 무엇보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가난과 저주와 질병의 모든 문제를 대신 짊어지고 돌아가심으로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어주셨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삶으로 실천했다. 그들은 자신의 소유를 자기 것이라 주장하지 않고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눴다. 안디옥교회는 유대 지역의 기근 소식을 듣고 구제 헌금을 보냈고, 마게도냐 교회들은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도 기쁨으로 나눔에 동참했다. 성령 충만한 삶은 자연스럽게 나눔과 섬김으로 이어졌고, 초대교회는 온 백성에게 칭찬받으며 부흥 했다. 나누어 주는 신앙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충성되게 관리하며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과 섬김을 이웃에게 전하는 청지기의 삶이다. 하나님께 받은 축복을 이웃과 나누고 교회와 선교, 구제와 사랑의 실천에 사용하는 것이 청지기의 책임인 것이다. 우리가 가진 시간과 재능, 물질과 건강, 직분과 은사는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이기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하게 관리하고 이웃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개인과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원과 사명을 세상을 섬기는 데 사용하며 복의 통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고 가난한 이웃을 돌보며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순복음의 나누어 주는 신앙은 청지기 신앙과 깊이 연결된다. 우리 교회는 선교와 구제, 사회복지 사역을 교회의 중요한 사명으로 실천해 왔다. 매년 예산의 약 3분의 1을 선교·전도·구제에 사용하며 국내외 선교와 취약계층 지원, 장학사업, 재난구호, 사회복지 사역에 힘쓰고 있다. 교회가 받은 축복을 세상과 나누며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시간과 재능, 관심과 사랑, 기도와 봉사 모두가 나눔이 될 수 있다. 성도들도 영혼 구원을 넘어 사회적 약자와 고통 받는 이웃을 돌보며 사회구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개인의 구원이 사회의 변화로 이어질 때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더욱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순복음 성도들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과 섬김을 본받아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이웃에게 먼저 다가가야 한다. 하나님께 받은 복을 기쁨으로 나누어 줄 때 우리에게는 더 큰 감사와 기쁨이 넘치고,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
  • 2026.06.04 / 이미나 기자

    성경 인물
    (113) 사랑의 사도, 요한
  • 요한복음 등 저서 통해 복음 전파 예수님 만나 사랑의 사도로 변화돼 예수님의 제자였던 사도 요한은 이며 기독교에 매우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이다.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제자이며 요한복음,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를 기록했고 신약성경의 유일한 예언서인 요한계시록을 썼다. 세베대의 아들인 요한은 형제 야고보와 함께 갈릴리에서 어부로 지내던 중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다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르시자 바로 예수님께 달려가 제자가 됐다. 예수님을 따른 이 두 형제는 예수님께 사랑받는 열 두 제자에 속했지만 감정이 격발할 때가 많았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소란을 뜻하는 의미의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실 정도였다. 요한은 급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었지만 어디든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고 조급하고 폭력적이던 성격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인해 변화됐다. 그는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 다른 제자들이 모두 도망을 했을 때에도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따라갔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 제자 중에 유일하게 그곳을 지킨 제자였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무덤으로 맨 먼저 달려간 사람도 요한이었다. 예수님은 요한을 특별히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는 순간에 자신의 어머니를 그에게 의탁하셨고 그는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극진히 모셨다. 초대교회 설립의 핵심 인물이었던 요한은 사도 바울에게 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이라고 칭함을 받기도 했다. 노년을 에베소에서 설교와 저술활동으로 보내던 요한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기독교 박해 시에 황제 숭배를 거부한다는 죄목으로 밧모섬에 유배됐다. 그곳에서 신약의 마지막 복음서인 요한계시록을 저술했다. 사면되어 다시 에베소로 귀환한 그는 교회들을 지도하고 성경을 기록하며 에베소에서 말년을 보냈다. 요한은 요한복음에 자기 자신을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제자”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을 전심으로 사랑했던 요한은 자신이 예수님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사랑의 사도인 요한은 설교할 때마다 성도들에게 서로 사랑할 것을 강조했다. 그의 설교의 핵심은 늘 예수 그리스도였다. 우리 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을 강조하며 불신자와 믿는 자 모두를 아우르는 설교를 했다. 그가 남긴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에 가장 강조된 것이 바로 사랑이다. 전도지나 교회에서 가장 많이 보고 듣는 이 성경 구절 안에 사도 요한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확실히 담겨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 2024.11.29 / 이미나 기자

    (112) 한나
  • ‘간절한 기도의 여인’ 표상 문제 앞에 탄식하며 부르짖어 기도하면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은총 얻게 돼 한나는 ‘기도의 여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자신의 괴로움을 극복할 만한 힘과 능력이 없을 때 어떤 자세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지 한나를 통해 우리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에브라임 산지 여로암의 아들 엘가나에게는 한나와 브닌나 두 아내가 있었다. 소실인 브닌나에게는 자녀가 있었지만 한나에게는 이름의 뜻인 ‘은총’과는 달리 자녀가 없었다. 매년 고통을 겪어야 했던 한나는 고통 중에 부르짖고 또 부르짖으며 하나님 앞에 통곡의 기도를 드렸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야훼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야훼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야훼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10~11). 한나가 주께 드린 기도는 처절한 절규였으며 가슴에 멍이 드는 탄식의 간구였다. 그런 한나의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그 마음을 감찰하시고 한나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셨다. 성경 사무엘상 2장 1~10절은 한나가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치면서 기도에 응답해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격의 내용이 기록돼 있다.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야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야훼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은 먼저 자녀를 두어 그동안 한나를 업신여겼던 브닌나의 교만을 꺾어주시며 가정의 질서 또한 바로 세워주셨다. “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아니하도다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삼상 2:5).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삼상 2:9). 한나의 고백적 탄원과 언약의 서원을 보면 아들 사무엘이 하나님의 깊은 섭리와 은총에 의해 태어났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사무엘이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따라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는 것을 보면서 몇 가지 교훈도 얻게 된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헤아리신다는 것이다. 한나는 능력의 하나님을 믿었기에 포기하지 않고 응답을 얻을 때까지 기도했다. 또 성전에 나와 기도할 때 엘리 제사장이 술에 취한 것으로 오해할 정도의 절박하고 애끓는 기도를 드렸다. 기도 없이는 결코 응답을 얻을 수 없다. 둘째, 하나님은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는 역전의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이 신다. 자녀가 없던 한나는 브닌나의 업신여김을 참고 견뎌야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한나가 간구할 때 ‘은총’을 허락하셨고 고난의 주인공에서 영광의 주인공으로 그 삶을 변화시켜주셨다. 셋째, 한나의 기도를 통해 우리는 기도의 깊은 통찰력과 겸손의 지혜를 깨닫게 된다. 한나는 사무엘을 낳기까지 숱한 고통을 겪었지만 사무엘을 낳은 후 자녀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린다. 자녀가 내 소유물이 아님을 인정하는 겸손이다. 자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업이다(시 127:3). 이 땅에 사는 동안 청지기 사명을 가지고 자녀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자라도록 욕심을 버리고 말씀과 기도로 양육하며 한나와 같은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를 드려야 한다.
  • 2024.11.01 / 오정선 기자

    (111) 안디바
  •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 주님을 섬기는 일에 타협 없던 안디바 한 사람의 순교가 지역 변화시켜 소아시아 버가모는 우상숭배가 만연한 도시로 유명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갖은 이유로 타협하고 우상숭배를 할 때 단 한 사람, 안디바는 우상숭배를 거부했다. 그는 뛰어난 석공이었지만 로마 황제의 신상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놋 가마 위에서 순교했다. 안디바는 로마 제국의 명령을 거절한 대가로 철판 위에 산 채로 구워져 순교를 당했지만 버가모교회 부흥의 씨앗이 됐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충성된 증인이라고 높여주셨다. 안디바라는 이름도 ‘모든 사람을 반대하는 자’라는 뜻이다. 안디바는 죽음 앞에서도 자신을 핍박하는 로마 관리들에게 당당했다. 그는 순교를 당하는 순간에도 “만왕의 왕, 만주의 주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으니 예수 외에는 내가 절하지 않겠노라”고 외칠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순교를 통해 책망받던 초대교회 중 하나인 버가모교회가 변화됐다.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지나온 삶을 끊지 못한 채 죄의 유혹에 빠져 살아가던 버가모교회의 성도들은 안디바의 순교를 보고 180도 달라졌다. 작은 유혹에도 넘어지고 흔들리던 이들이 우상숭배로 만연한 지역에서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외치게 된 것이다. 버가모교회가 있는 지역은 해발 300m의 높은 지역에 있었다. 또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사탄의 권좌’라고 불리는 무려 12m나 되는 거대한 제우스 신전과 로마 황제를 예배하는 신전도 있었다. 라틴 교부였던 터툴리안의 『순교자에 대해서』라는 책을 보면 안디바에 대해 알 수 있다. 당시 버가모교회의 그리스도인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한 부류는 예수님을 영접한 유대-그리스도인들이었다. 이들은 할례, 음식에 대한 규제, 율법을 지키는 것과 복음 사이에서 갈등했다. 또 다른 부류는 이방인이지만 기독교인이 된 헬라 성도들이었다. 이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 거리낌 없이 해 왔던 우상숭배, 성적인 문란,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경건한 삶을 지켜가는 것에서 갈등했다.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도 당당히 하나님께 순종한 안디바의 신실한 믿음은 신앙이 흔들리던 많은 크리스천의 마음에 경종을 울렸다. 생계를 위한다는 이유로 세상과 타협하고 고난과 박해가 두려워 주님을 의지하지 못할 때가 있다면 고통 속에서도 주님 한 분만을 바라보며 의지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 안디바를 기억하자.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계 2:13).
  • 2024.10.04 / 박찬웅 기자

    예수님의 팔복
    ⑧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
  • 의를 위한 고난은 복된 길 산상수훈은 신앙생활의 핵심 천국 소망 갖고 믿음 지켜야 마태복음 5~7장에 기록되어 있는 산상수훈은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제자들과 무리를 향해 가르치신 말씀이다. 기독교 윤리와 신앙생활의 핵심을 담고 있는 예수님의 설교 중 가장 위대한 가르침이라고도 불린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다. 예수님의 산상수훈 가운데 마지막 팔복은 오늘날 신앙인들에게 가장 도전적인 말씀이자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 5:10)는 말씀은 고난이라는 현실 너머에 있는 하늘의 상과 위로를 선포한다. 예수님은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들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다. 여기서 말하는 ‘의’란 윤리적 정의를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뜻한다. 인간의 행위로 얻는 의로움이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그 의다. 그러므로 의로운 삶이란 곧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을 자랑하며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어둠을 드러내는 의와 진리는 세상의 가치와 충돌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하라고 격려한다. 마태복음 5장 11~12절은 이렇게 덧붙인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이러한 복은 단지 위로의 말이 아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삶이라는 증거다. 예수님 때문에 조롱받고 오해받는 그 길은 하나님이 그 위에 함께하신다는 확증이 된다. 베드로전서 4장 14절은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고 말씀한다. 세상에 빛과 소금되신 의로우신 예수님께서는 가장 많은 핍박을 받으셨다. 빛은 어둠을 불편하게 하고, 소금은 부패를 막아 거부감을 일으킨다. 예수를 따르는 삶은 세상과 갈등하게 마련이고 박해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에 자연스럽게 따르는 열매인 것이다. 팔복의 시작과 끝은 모두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는 동일한 복으로 연결된다. 이는 팔복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과 궁극적 소망을 드러내는 말씀임을 보여준다. 믿음의 길에는 고난이 따르지만 가장 복된 길이다. 예수님을 따라 의로운 삶을 살다가 핍박을 받는 자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는 이미 천국의 시민이며 하늘의 상이 예비 됐기 때문이다. 의로운 삶은 하늘의 상급으로 이어지며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때 고난이 오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담대히 나아가자. 그 길 끝에는 주님의 상급과 위로가 반드시 기다리고 있다.
  • 2025.07.31 / 이미나 기자

    ⑦ 화평하게 하는 자
  • 피스메이커,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사람 평화의 왕 예수님 세상에 전하며 하나님의 자녀로 일컬음을 받는 복 누려야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세상이 추구하는 물질적인 복이 아닌,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과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 진정한 복이라 소개하는 팔복에서 일곱 번째로 소개된 ‘화평하게 하는 자’는 헬라어 ‘에이레네포이오스’로 ‘에이레네’(평화)와 ‘포이에오’(만들다)의 합성어이다. ‘팔복’에서 화평은 성경의 평화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단순히 평화를 사랑하는 수준을 넘어 적극적으로 갈등을 중재하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을 뜻한다. 일명 ‘피스메이커’(Peace Maker)이다. 성경이 말하는 피스메이커는 혼자 평화롭게 살면서 평화의 열매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과 공동체를 화해시키는 어려운 일에 자신을 바쳐 헌신하는 사람이다. 대표적인 피스메이커로는 예수님이 있다. 그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처한 인류의 ‘피스메이커’로 오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자녀가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됐다(롬 5:1). 독단과 분열이 가득했던 이 세상에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인해 화평의 길이 열린 것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군림하고 누리는 삶을 살지 않으셨다. 우리에게 평안을 주기 위해 헌신적인 사랑을 베푸셨다.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 갈등과 분열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하나 되게 하는 ‘피스메이커’가 되어야 한다. 경쟁하거나 다투는 대신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삶을 본받아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될 때 이 세상에 평화가 임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일컬음 받는 진정한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성경이 말하는 화평에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기쁜 소식, 즉 복음을 전하는 것도 포함된다는 점이다(사 52:7). 그래서 화평케 하는 자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로 말미암아 궁극적인 평화가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전파하는 것이 곧 평화를 이루는 핵심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중세 평화의 사도인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처럼 우리도 세상의 화해자가 되어야 한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심이 있는 곳에 신앙을, 거짓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가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멘.”
  • 2025.07.04 / 금지환 기자

    ⑥ 마음이 청결한 자
  • 천국에서처럼 이 땅에서도 하나님 볼 수 있어 예수님의 보혈 의지해 마음 지켜 나아가야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본문으로 설교한 이영훈 목사는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마음에 더러움이 없고 깨끗한 것이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정결해야 했다. 흠이 있는 것은 드릴 수 없었다”면서 “하나님께 우리가 드려지기 위해서는 흠이 없는 모습으로 나아와야 한다. 우리는 죄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기 때문에 예수의 보혈로 우리가 정결함을 입고 변화 받아야한다. 주 앞에 예배를 드릴 때에 우리가 정결한 모습으로 흠이 없는 모습으로 드려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하나님은 구만리장천 먼 곳에 계신 분이 아닌 무소부재하신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볼 수 없다. 모든 인간은 죄를 범하였고 율법적으로 온전하고 정결해질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대하는 마음 자세만큼은 순전하고 순수할 수 있다. 이는 두 마음을 품지 않고 마음을 청결히 하여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는 우상숭배의 죄, 음란의 죄, 누추함의 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회개해야 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대속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을 수 있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면서 마음을 청결히 하고 매 순간 성령님께 마음을 드리고 정결케 해주시기를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다. 조용기 목사는 마음 상태에 따라서 보이는 것이 다르게 보인다고 설명하면서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내 주먹을 믿으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해를 봐도 하나님이 보이고 달을 봐도 하나님이 보이고 별들을 봐도 하나님이 보이고 꽃 한 포기를 봐도 ‘아! 하나님이 묘하게 지으셨구나’ 사람들을 봐도 ‘하나님이 얼마나 이쁘고 아름답게 사람을 만드셨느냐’라고 말한다”고 했다. 또한 조용기 목사는 “밉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밉게 보인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면 미운 가운데도 모든 아름다운 것이 눈에 보인다. 마음이 나의 환경을 바라보게 하고 결정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요소가 되는 것이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고 전했다. 우리는 날마다 성령 충만을 간구하고 예수님의 보혈에 의지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스스로 마음을 잘 지켜서 하나님만 바라볼 때 천국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처럼 이땅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고 교제하면서 살아가는 은혜와 복을 누릴 수 있다.
  • 2025.05.30 / 복순희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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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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