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담임목사 주일설교
조용기 원로목사 주일설교
오늘의 묵상
4월 4일(토) - 십자가만 자랑하라
  • ◎ 말씀 : 갈 6:12~14 ◎ 찬송 : 149장(통 147장) 사도 바울은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자랑할 만한 것이 많았습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졌고 당대 최고의 율법 학자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했으며 누구보다 열심히 율법을 지키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순간 그의 가치관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제 그에게는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유일한 자랑이 되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세상이 추구하는 모든 영광이 무의미함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학벌, 직업, 재산, 업적을 자랑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내세울 것이 없는 존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를 구원하신 십자가만을 자랑하며 겸손히 주님을 따르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유일한 자랑이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십자가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3.2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4월 3일(금) -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 ◎ 말씀 : 사 53:4~6 ◎ 찬송 : 144장(통 144장) 오늘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념하는 성금요일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이 오시기 약 700년 전 이미 메시야의 고난을 상세히 예언했습니다. 그 예언은 예수님을 통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허물과 죄를 대신하여 찔리고 상하셨습니다. 가시면류관에 머리를 찔리시고 손발에는 못이 박혔으며 옆구리를 관통한 창끝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이 고난을 통해 우리에게 참된 평화와 완전한 치유가 임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그 순간 우리를 옭아매던 죄의 사슬은 끊어졌습니다. 어둠의 권세는 이제 우리를 지배할 힘을 잃었습니다. 성금요일을 맞아 주님의 보혈을 가슴 깊이 새기며 세상을 이기는 담대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은혜로운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새기며, 그 길을 따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3.2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4월 2일(목) - 하나님 사랑의 확증
  • ◎ 말씀 : 롬 5:6~9 ◎ 찬송 : 311장(통 185장) 바울은 하나님 사랑의 특별함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의 확실한 증거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대부분 조건적입니다. 선한 사람이나 의로운 사람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 수도 있지만 죄인을 위해 죽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어려운 상황에 놓이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기도의 응답이 더디게 올 때면 원망의 마음을 품기도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오늘도 나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신 주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그 크신 사랑을 늘 기억하고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3.2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순복음의 12대 핵심진리
    7. 좋으신 하나님 신앙
  • 사랑과 공의의 완전하신 ‘좋으신 하나님’ 임마누엘 하나님 믿고 믿음의 전진 순복음 신앙은 하나님을 ‘좋으신 하나님’으로 바라본다. 하나님은 우리와 늘 동행하시며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축복을 베풀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이는 가장 먼저 하나님의 성품에서 나타난다. 사랑은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서도 가장 중심적인 성품이다(요일 4:8). 하나님의 사랑은 일반적인 인간의 사랑과는 차원이 다르다. 상황이나 형편에 따라 흔들리고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닌, 무조건적이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이다. 이 같은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절정을 이뤘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통해 확증된 것이다(롬 5:8). 또한 하나님은 정의롭고 공의로우신 분이시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모든 이를 차별 없이 대하시고, 모든 일을 치우침 없이 공정하게 행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시다(신 32:4). 하나님의 공의는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특히 아모스 선지자는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이 불의를 행하고 힘없고 가난한 자들을 핍박하는 것을 비판하며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4)라고 외쳤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공의를 전하는 통로가 되길 원하신다. 우리의 말과 행동과 삶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며, 우리의 믿음은 삶의 선한 열매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완전하심은 전지성, 전능성, 편재성, 영원성, 불변성 등의 속성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이러한 능력으로 우리를 이끌고 보호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창조에서 종말에 이르기까지 절대주권으로 만물을 다스리고 계신다. 이를 하나님의 ‘섭리’라고 하는데, 이 섭리를 통해서도 우리를 향한 좋으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비록 현실이 어렵고 고난이 닥쳐와도 낙심하거나 절망하면 안된다.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 여정을 통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를 원하신다. 부모가 자식에게 늘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듯,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마 7:11).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며 우리와 늘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종종 목자와 양의 관계로 비유된다. 다윗의 인생은 고난과 문제의 연속이었지만, 그는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시 23:6)라며 주님이 늘 자신과 함께하심을 믿음으로 고백했다. 주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그렇기에 ‘좋으신 하나님 신앙’을 가진 순복음의 성도는 어떤 문제 앞에서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믿음의 전진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좋으신 하나님의 신앙으로 무장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신뢰하고 복 주시는 하나님,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김주영 기자
  • 2026.02.27 / 김주영 기자

    6. 땅끝까지 전하는 신앙
  • “가서 제자 삼아라” 예수님의 지상명령 세상 어떤 보물보다 귀한 영혼을 주께로 복음 전파는 먼저 믿은 자가 감당할 사명 우리는 누군가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주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됐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복음 전파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사명이며 교회의 존재 이유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온 마을을 두루 다니며 천국 복음을 전하셨다. 예수님은 홀로 전도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을 불러 그들을 훈련하시고 전도의 일꾼으로 세우고자 하셨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유언과 같은 말씀을 남기셨다. 이를 예수님의 ‘지상 명령’이라고 한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20) 예수님의 지상 명령의 핵심은 전도이다. 제자로 삼으라 할 때 ‘제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고 예수님의 삶을 따르는 사람을 말한다. 이 세상에는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채 멸망의 길로 가는 수많은 영혼이 있다. 먼저 믿은 우리에게는 그들을 전도할 책임이 있다.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최선을 다해 열정적으로 전도해야한다. 바울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랐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가지 말라고 하는 곳일지라도 갔다. 바울은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행 20:22)고 고백했다. 전도는 성령에 매여하는 사역이다. 성령님이 함께하시면 우리에게 할 말을 주시고 보호하신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오순절 신앙을 전파한 사람은 메리 럼시 선교사이다. 그녀는 1906년 시작된 아주사 거리의 대부흥 집회에 참석했다가 그곳에서 성령 충만을 체험하고 ‘한국으로 가라!’는 성령님의 음성을 들었다. 낯선 땅이었지만 오랜 기도와 준비 끝에 1928년 봄, 마침내 복음을 들고 조선에 들어왔다. 메리 럼시 선교사를 통해 한국 오순절 운동이 시작됐고 이를 기반으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교단과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우리가 전도를 하면 전도된 사람이 구원받고 영생을 얻게 될 뿐 아니라 전도자에게도 주어지는 여러 복이 있다. 전도자는 영적 기쁨을 맛볼 수 있으며 빛나는 영예를 얻는다. 천국에서 누릴 영예는 우리가 이 땅에서의 삶에 따라 달라진다. 성경은 복음을 전파해 많은 사람을 죄와 타락의 길에서 돌이켜 의와 구원의 길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별과 같이 찬란하게 빛나게 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전도는 이 세상의 어떤 보물보다 귀한 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는 일이다. 땅 끝까지 전하는 신앙을 가진 순복음의 성도는 모두 선교 사역에 동참해야한다. 선교와 전도 일선에 나가 복음을 전할 수도 있고 선교사를 기도와 물질로 후원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지는 그날까지 순복음의 성도는 전진 또 전진해야한다.
  • 2026.01.30 / 복순희 기자

    5.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
  • 지금도 계속되는 성령의 역사 성령 충만의 삶은 곧 예수 충만의 삶 주님과 동행하며 인격적 신앙 갖춰야 사도행전 2장 1~4절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을 받는 장면을 생생하게 전한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 일은 오순절 성령강림이라 불리며 교회 역사상 새로운 시대의 출발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오순절은 유월절과 초막절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 하나로 유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에 드리는 감사절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120명의 제자가 기도할 때에 성령님이 임했다. 이 때 먼저 하늘로부터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있던 집에 가득 했다. 또한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임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했다.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임하셨을 때 모두 다른 언어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 방언 기도의 가장 큰 특징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행 2:4) 말한다는 것이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 약속의 성취이자 성령 시대의 개막이었다. 성령님은 나이·지위·인종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에게 임하셨고, 오늘날에도 그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오순절에 임한 성령 충만의 역사가 지금도 계속됨을 믿으며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위해 간구해야 한다. 순복음 신앙은 성령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중요하게 여긴다. 성령님은 우리 곁에서 보혜사로 함께하시며(요 14:16),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요 14:26), 예수님을 증언하도록 우리를 세우신다(요 15:26). 또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시며,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요 16:8,13). 하나님은 성도들이 주님의 일을 부족함 없이 할 수 있도록 성령의 은사를 선물로 주신다.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 체험은 ‘성령 침례’와 ‘성령 충만’으로 나눌 수 있다. 성령 침례는 성도가 성령 안에 완전히 잠기는 체험을 말한다. 순복음 신앙에서는 성령 침례의 외적 증거를 방언이라고 믿는다.성령 침례를 받으면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된다. 성령 충만은 외적인 성령의 은사와 내적인 성령의 열매가 충만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성령 침례이후에도 계속해서 성령으로 가득한 상태를 유지하는 삶이 성령 충만한 삶이다. 성도는 성령 충만을 통해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 사도 바울은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고 권면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에서 성령의 열매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사랑, 희락, 화평), ‘나와 이웃과의 관계’(오래 참음, 자비, 양선), ‘하나님과 나 자신과의 관계’(충성, 온유, 절제)로 분류해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소개했다. 이는 성령 충만한 성도의 내면에서 나타나는 변화이며,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의 증거다. 오순절 신앙은 매일 성령으로 충만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의미한다. 오순절에 임한 성령의 불길은 지금도 여전히 꺼지지 않았다. 순복음의 성도는 날마다 그 불길을 사모하며 성령의 은사로 교회를 세우고 성령의 열매를 맺어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작은 예수로 살아가야 한다.
  • 2026.01.02 / 이미나 기자

    선교 열전
    (18) 김창식 목사
  • 머슴 출신 한국인 최초 목회자 박해 속 복음 지키며 ‘한국의 바울’로 불려 한국 초기 교회사의 빛나는 별 중 한 사람인 김창식 목사는 머슴 출신으로 한국 최초의 목사가 됐다. 한평생 순회 전도인으로 살아간 그는 당시 선교사들의 회고록에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굳게 붙들었던 ‘한국의 바울’로 기록되어 있다. 1857년 황해도 수안군 성동면 생금리에서 태어난 그는 머슴살이를 하던 시절, 선교사들에 대한 괴소문을 접했다. 당시 “아이들의 간을 떼어 약을 만든다”, “눈을 빼어 만든 것이 카메라다”라는 소문이 퍼져 있었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미국 북감리교 올링거 선교사의 집에 잡부로 취직해 선교사의 사생활을 감시했다. 하지만 불미스러운 행동은 전혀 찾을 수 없었고 오히려 올링거 부부의 인격과 겸손한 삶에 감동을 받아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1888년 4월 아펜젤러에게 침례를 받은 뒤 선교사들의 든든한 조력자가 됐다. 김창식 목사가 ‘한국의 바울’로 불린 가장 큰 계기는 1894년 평양에서 일어난 기독교인 박해 사건이었다. 이때 김창식도 잡혀가 죽을 지경의 고문을 받았으나, “나는 기독교가 옳다는 사실을 안 이상 기독교 신자로 살 것이며 나가서도 복음을 전하겠다”며 끝까지 굴하지 않았다. 그는 감옥에서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라는 말씀과 함께 “주님을 배반할 수 없다”고 고백했다. 석방 직후 곧이어 청일전쟁이 발발했다. 평양은 격전지가 됐고 교회와 병원은 피난민들의 은신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당시 김창식은 홀 선교사와 함께 남아 피난하지 못한 사람들과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았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홀 선교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김창식 목사는 평양 선교 전반을 홀로 맡아 감당했다. 이후 그는 노블 선교사와 함께 평양 이북 지역의 교회를 이끌었다. 거리와 산골을 누비며 복음을 전해 ‘길바닥의 목사’, ‘민중 전도인’으로 불렸던 그는 1901년 5월 서울 정동교회에서 한국 최초의 목사 안수를 받았다. 목회 사역 동안 김창식 목사는 48개 교회를 개척하고 전국 170여 교회를 돌보며 교파와 지역의 경계를 넘어 순행 사역자로 전국을 누비며 목회에 헌신했다. 교인들에게 스스로 신앙을 세우고 전도하는 ‘자립·자전’ 정신을 강조했던 김창식 목사는 1929년 1월 29일 향년 72세로 소천 받았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가장 작은 자’라 칭하며 겸손과 헌신의 삶을 살았다.
  • 2025.08.29 / 금지환 기자

    (17) 존 로스
  • 최초의 한글 성경 번역으로 선교 토대 마련 최초의 한글 신약성경인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를 출판하고 이후 신약성경 전체를 번역하는데 기여한 존 로스(John Ross, 1842~1915)는 조선인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섰다.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로스는 조선의 복음화를 꿈꾸며 한글 성경 번역에 자신의 젊은 날을 헌신했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그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신학교에 입학했다. 신학교에 입학한 로스는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비롯해 독일어, 중국어 등 외국어를 공부했다. 사람들이 외국어를 공부하는 이유를 묻자 로스는 “예수님은 너희가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는데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당연히 많은 외국어를 공부해야 한다”고 답했다. 신학생 시절 로스는 중국 선교사인 허드슨 테일러의 강연에 참석해 “중국에서 수억 명의 사람들이 복음을 모른채 죽어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듣고 복음을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선교사가 될 것을 결단했다. 1872년 중국에 도착한 로스는 먼저 선교 중이던 존 매킨타이어와 함께 길거리에서 한문으로 번역된 성경을 나눠주며 전도를 시작했다. 로스가 중국어로 설교를 할 수 있을 만큼 유창한 어학 실력을 갖추게 된 후에는 직접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순회 전도를 했다. 그는 중국인들에게 익숙한 유교적 표현을 이용해 기독교 교리를 이해시키려 노력했고 현실에 지쳐 불교·도교 사원으로 도피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찾아가 복음을 전했다. 당시 만주 지역에는 중국인뿐 아니라 조선인, 러시아인, 일본인 등 다양한 민족의 사람들이 거주했다. 주변 선교사들을 통해 조선을 알게 된 로스는 만주 지역에서 전도하며 머지않아 조선에도 복음의 문이 반드시 열릴 것을 확신했다. 그는 “조선인이 쉽게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우리가 한글 성경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 않겠습니까?”라며 주변 사람들에게 한글 성경에 대한 필요성을 알리고 번역에 힘썼다. 그는 당시 한문으로 된 성경은 이미 있었지만 쉽게 배울 수 있는 한글을 통해 복음이 더 많은 이들에게 전파될 것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다. 로스는 자신이 한글을 공부하면서 정리한 내용과 예문을 바탕으로 조선을 방문할 선교사들에게 도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국어 교재인 ‘조선어 첫걸음’이라는 책도 저술했다. 비록 그는 조선의 쇄국 정책과 기독교 박해로 조선 땅을 밟지는 못했다. 그러나 조선과 가까운 중국 만주를 선교 거점으로 삼고 조선인들과 교류하며 복음을 전해 조선에 공식적인 선교사가 입국하기 전 기독교 신앙이 자리 잡도록 기틀을 마련한 선교사다.
  • 2025.05.23 / 금지환 기자

    (16) 말콤 펜윅
  • 초기 한국기독교 토대 마련 성경·찬송 번역하며 46년간 헌신한 선교사 말콤 펜윅(Malcolm C. Fenwick, 1863~1935)은 국내에서 헌신하며 신약성경과 찬송을 우리말로 번역한 선교사다. 찬송이 수록된 『복음찬미』, 전도를 위한 성경 구절을 모은 『만민됴흔긔별』 발간뿐 아니라 1919년에는 『신약젼셔』 를 출판했다. 캐나다인인 그는 26살 때 초교파 모임인 나이아가라 사경회에 참석해 성경을 공부하던 중 인도 선교사로 활동한 로버트 와일더의 “사막에서 애타게 물을 찾으며 죽어가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유리 주전자에 담긴 물이 아닌 오직 물이다”라는 간증을 듣고 선교사로 결단했다. 1889년 입국한 펜윅은 국내에서 복음을 전하며 250여 개의 교회를 세웠다. 펜윅은 장로교 조사 서경조와 동행하며 한국어를 배워 황해도 송천에서 ‘예수 사랑하심은’(Jesus Loves Me), ‘나는 참 기쁘다’(I am so glad) 찬송과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해 소년들에게는 성경을 가르치고 마을의 여성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성경 공부를 이끌었다. 그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롬 15:20)는 사도 바울과 같은 신념을 갖고 개신교 선교부가 없는 원산으로 이동해 자립 선교의 토대 마련을 위해 농장을 운영했다. 1906년 ‘대한기독교회’를 조직한 펜윅은 다른 사람이 전하지 않은 곳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선교 정책으로 삼고 원산을 중심으로 만주와 시베리아까지 소외된 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교단의 목사와 전도사는 순회사역자가 되어 전국에서 전도 활동을 펼쳤고 교인들도 전도 현장에 투입돼 복음 전파에 앞장섰다. 펜윅은 전도자들이 개척한 교회들을 돌아보며 그들의 신앙을 격려했고 가는 곳마다 사경회를 개최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집회가 끝나면 참석자들에게 성경을 읽도록 해 원산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이단 활동에 효과적으로 대처했다. 펜윅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만주를 거쳐 시베리아까지 복음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마지막 순간까지도 선교에 힘썼다. 복음 전파를 향해 기관차처럼 달려온 그는 원산의 자택에서 72세의 나이로 하나님 곁으로 갔다. 말콤 펜윅은 이 땅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이래 46년간 선교하며 어떤 교파에도 의지하지 않고 한국인 사역자와 함께 초기 한국기독교의 토대를 마련했다.
  • 2025.01.31 / 박찬웅 기자

    주일설교 요약본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장 4~7절 절망은 삶의 끝이 아닌 새로운 희망 향한 과정 마음의 평안 임할 때까지 기도하는 삶 살아야 올해로 106세가 된 김형석 교수님은 장수의 비결로 마음의 평안을 강조하며 그 평안은 오직 예수님으로부터 온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처럼 승리하는 신앙생활의 비결은 주님이 주시는 마음의 평안입니다. 평안은 우리의 삶 가운데 기쁨으로 나타납니다. 날마다 기쁨 충만의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녀로 쓰임 받기를 소원합니다. 1. 기쁨 충만의 신앙 사도 바울이 빌립보교회에 편지를 보낼 당시 그는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가 감옥에서 기록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일컬어 옥중 서신이라고 하는데 이 서신들에는 주님이 주신 기쁨이 충만하게 담겨 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있는 자신을 염려하는 성도들에게 오히려 주님이 주신 기쁨을 전하며 항상 기뻐하라고 격려했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삶의 지혜를 담은 잠언에서도 마음의 기쁨, 즐거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잠 15:13, 17:22).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엇보다 마음이 즐겁고 기뻐야 합니다. 모든 병의 근원이 마음의 스트레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주님 안에서 얻은 기쁨을 마음속에 간직하며 살아야 합니다. 시편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에 즐거움을 가져다준다고 말씀합니다.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시 119:92). 고난 중에도 말씀이 기쁨이 되었기 때문에 결국 승리할 수 있었다는 고백입니다. 이처럼 세상의 재물을 얻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기쁨이 훨씬 큽니다. “사람이 많은 탈취물을 얻은 것처럼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시 119:162).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할 때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또 야훼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4). 그러므로 한 번뿐인 인생을 살아갈 때 절대 긍정과 절대 감사의 믿음으로 무장하여 오직 주님께 영광 돌리는 복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기도 충만의 신앙 성경은 우리가 염려하고 걱정할 시간에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기도로 충만한 신앙생활을 할 때 우리는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이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세상을 살다 보면 우리를 염려하게 만드는 일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염려는 염려를 낳고 근심은 근심을 낳습니다. 염려와 근심, 걱정은 두려움과 불안을 가져와 우리 마음과 육신의 건강을 파괴할 뿐입니다. 기도가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입니다. 우리가 여전히 문제 속에서 허덕이는 이유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세상의 소리와 사람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불안이 찾아오고 결국 스스로 무너집니다. 인생의 고난을 만나 마음이 아프고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당할 때가 바로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할 때입니다.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풍랑을 만났고 바다에 던져져 물고기 뱃속이라는 절망적인 현실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요나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절히 기도했을 때 주님이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욘 2:1~2).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기도가 매 순간 하나님께 드리는 대화이자 고백이라면 간구는 간절히 부르짖는 것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면 주님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시며 새로운 길을 열어주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감사는 응답과 기적을 가져오는 통로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원망과 불평 대신 감사를 고백하면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하늘 문을 열어 복을 내려주십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감사를 체질화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감사하고 또 감사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다가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범사에 감사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3. 평안이 넘치는 신앙 우리는 마음에 평안이 임할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마음의 불안과 초조함이 사라질 때까지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기도할 때 주님이 주시는 평안함이 임하게 됩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7). 언제나 성령 충만해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마음에 넘치기를 바랍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평안, 평강, 평화, 화평은 모두 같은 의미로, 히브리어로는 ‘샬롬’이라고 합니다. 주님의 평안이 우리 마음에 임하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 3:15).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이 세상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부활하신 주님이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에게 주신 첫 번째 메시지도 바로 평안이었습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19, 21). 그리스도인들에게 절망은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향해 나가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날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함으로 무장해 승리의 삶을 살아가길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주님께 아뢰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마음에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임할 때까지 끝까지 부르짖어 기도하게 하시고, 주님 주시는 그 평안으로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3.2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
  •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빌립보서 2장 13~16절 하나님의 거룩한 꿈과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겸손과 온유의 삶을 통해 넉넉히 이기는 신앙인 돼야 많은 사람이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너무 쉽게 부정적인 말을 쏟아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부정적인 말을 할지라도 거기에 동조하지 말고 절대 긍정과 절대 감사의 고백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성령님이 우리를 통하여 위대한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1.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한 꿈과 소원을 주시고 그 꿈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자 우리에게 거룩한 꿈과 소원을 주시고 그 꿈을 이루어 가게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모두 꿈꾸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꿈을 꾸면 그 꿈이 우리를 이끌어갑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 11:1~2). 믿음이란 꿈꾸고 믿고 바라는 것이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믿는 것입니다. 세계 역사는 이러한 믿음을 가진 5% 미만의 꿈꾸는 사람, 즉 창조적 소수에 의해 발전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라는 말을 원어로 보면 진행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을 받고, 또 받고 또 받으라는 것입니다. 날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거룩한 꿈을 꾸며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나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꿈꾸는 사람,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하나님은 언제나 믿음의 사람, 꿈꾸는 사람과 함께 일하셨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꿈꾸지 않는 사람이나 부정적인 사람과 일하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사람이 되어서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믿음으로 전진할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며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엡 3:20). 2. 절대 긍정의 믿음의 삶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무장해서 전진해야 합니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 2:14). 가정과 직장, 이웃 간의 관계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원망과 불평, 시비와 다툼이 사라져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부정적인 모습이 나타나면 안 됩니다. 입만 열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 감사합니다”라는 감사의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감사가 사라지면 원망과 불평이 나오고, 이는 결국 우리를 파멸의 길로 이끌어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다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면 “할렐루야! 감사합니다”라고 해야 하는데 홍해가 가로막았다고 불평하고,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했습니다. 불평을 입에 달고 살았던 그들은 결국 40년 동안 광야를 돌고 돌다가 다 죽고 말았습니다. 오직 긍정적인 고백을 한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요셉 또한 형들에게 팔려 가고 억울한 일을 당해 감옥에 갔어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그를 높이시고 애굽의 총리가 되는 큰 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분노와 다툼이 있으면 안 됩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몸 된 교회에 상처를 입혀서는 안 됩니다.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딤전 2:8).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시비하고 다투기보다 하나님 앞에 항복하며 기도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아픔과 외로움을 다 알고 계십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2~3). 겸손과 온유 그리고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고 성령 안에서 하나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녀의 삶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된 우리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녀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받으면 하나님께서 우리 일생을 만사형통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빌 2:15). 우리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흠 없고 순전한 자가 되면 이 세상 그 누구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넘어뜨릴 수 있습니까?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1,33~34).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나를 비난하고 공격해도 조금도 흔들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죄악 된 세상에 살면서 그 세상에 영향을 받지 말고 주님의 도우심으로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간신히, 겨우, 가까스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흠 없고 순전한 자녀로 살아가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거룩한 꿈과 소원을 주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긍정과 감사의 고백으로 전진하게 하시고, 성령으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게 하옵소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흠 없는 자녀로 살아가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날마다 넉넉히 이기는 승리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3.1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립보서 2장 1~5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품는 생각이 결국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삶을 무너뜨리지만 예수님의 마음으로 채워진 생각은 삶을 새롭게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하나 되는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 때 이 세상이 행복한 세상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1. 주 안에서 하나 되는 사랑의 공동체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라고 권면합니다. 서로를 격려하며 상처 입은 이들을 사랑으로 위로하고 성령 안에서 깊이 교제하고 어려운 이들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빌 2:1~2). 예수님은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 사랑이며 그다음은 이웃 사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마 22:37~39). 우리가 늘 예배드리며 바라보는 십자가는 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결합입니다. 수직선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수평선은 나와 이웃 간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상징을 넘어 우리 삶의 모습이 되길 바랍니다. 분열과 다툼, 미움과 갈등은 마귀의 역사입니다. 마귀는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를 죄짓고 타락시켜 하나님과 분리되게 했고, 아담과 하와에게서 태어난 가인의 마음에 미움을 집어넣어 살인을 저지르게 했습니다. 그 후 인류는 죄의 뿌리로 인해 끊임없이 다투고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인류 역사 중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약 268년(7.8%)에 불과할 정도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경고합니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 5:15). 오늘날 우리 사회 역시 편 가르기와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으로 하나 되어 국민 대통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만찬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우리가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요 17:21). 우리는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며 사랑 안에서 서로를 존중함으로 하나 된 공동체를 이뤄가야 합니다. 2. 주 안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삶 우리는 주 안에서 하나 되어 서로를 존중하며 어떤 경우에도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합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 서로 다투지 않으려면 내 주장만 고집하지 말고 상대의 입장이 되어 이야기를 잘 들어주어야 합니다. 상담의 기본이 경청이듯이 우리가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 그 사람은 자기가 존중받고 있음을 깨닫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용기를 얻게 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낮아져야 합니다. 겸손은 성숙한 신앙인이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입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잠 18:12). 사람을 대할 때 내가 더 배웠거나 가졌다는 이유로 남을 무시하지 말고 상대방을 존중해야 합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힘을 가졌을 때 힘을 휘두르는 사람이 아니고, 그 힘으로 섬기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늘 나 중심적으로 살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한평생 ‘내가 최고’라고 하는 교만이 우리 삶의 숙제입니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것은 초보적인 신앙에 불과합니다. 이제는 내 속에서 나는 죽고 주님이 존귀케 되시며 주님의 영광만이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를 택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 4:6).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겸손과 사랑으로 온 세상을 품으셨습니다. 우리가 겸손의 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때 우리 마음은 참된 쉼을 얻게 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우리가 주님을 닮아 이웃을 사랑하고 돌볼 때 비로소 주님의 기쁨이 우리 삶에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3. 주님의 기쁨이 충만한 삶 우리가 먼저 주님의 기쁨으로 충만할 때 비로소 이웃을 사랑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일을 돌보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고 권면합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 2:4).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학생은 학생으로, 직장인은 직장인으로, 사업가는 사업가로, 의사는 의사로, 예술인은 예술인으로, 자영업자는 자영업자로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 앞에 성실하고 이웃을 사랑으로 섬길 때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롬 15:2). 이처럼 사랑으로 이웃을 섬길 때 비로소 주님의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주 안에서 하나 되고 겸손하게 충성할 수 있는 비결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소유하는 데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C. S. 루이스는 그의 저서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작은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목적은 오직 이것 하나뿐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 예수님처럼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주님 닮은 모습으로 이웃을 섬길 때 이웃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고 그들을 변화시키는 영적 지도자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날마다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며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나는 죽고 겸손과 사랑의 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게 하옵소서. 우리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주님의 겸손을 따라 이웃을 섬길 때 주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우리가 겸손하고 충성되게 주님 닮은 모습으로 살아갈 때 오직 주님만이 홀로 영광 받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3.0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성경 인물
    (113) 사랑의 사도, 요한
  • 요한복음 등 저서 통해 복음 전파 예수님 만나 사랑의 사도로 변화돼 예수님의 제자였던 사도 요한은 이며 기독교에 매우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이다.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제자이며 요한복음,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를 기록했고 신약성경의 유일한 예언서인 요한계시록을 썼다. 세베대의 아들인 요한은 형제 야고보와 함께 갈릴리에서 어부로 지내던 중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다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르시자 바로 예수님께 달려가 제자가 됐다. 예수님을 따른 이 두 형제는 예수님께 사랑받는 열 두 제자에 속했지만 감정이 격발할 때가 많았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소란을 뜻하는 의미의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실 정도였다. 요한은 급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었지만 어디든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고 조급하고 폭력적이던 성격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인해 변화됐다. 그는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 다른 제자들이 모두 도망을 했을 때에도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따라갔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 제자 중에 유일하게 그곳을 지킨 제자였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무덤으로 맨 먼저 달려간 사람도 요한이었다. 예수님은 요한을 특별히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는 순간에 자신의 어머니를 그에게 의탁하셨고 그는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극진히 모셨다. 초대교회 설립의 핵심 인물이었던 요한은 사도 바울에게 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이라고 칭함을 받기도 했다. 노년을 에베소에서 설교와 저술활동으로 보내던 요한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기독교 박해 시에 황제 숭배를 거부한다는 죄목으로 밧모섬에 유배됐다. 그곳에서 신약의 마지막 복음서인 요한계시록을 저술했다. 사면되어 다시 에베소로 귀환한 그는 교회들을 지도하고 성경을 기록하며 에베소에서 말년을 보냈다. 요한은 요한복음에 자기 자신을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제자”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을 전심으로 사랑했던 요한은 자신이 예수님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사랑의 사도인 요한은 설교할 때마다 성도들에게 서로 사랑할 것을 강조했다. 그의 설교의 핵심은 늘 예수 그리스도였다. 우리 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을 강조하며 불신자와 믿는 자 모두를 아우르는 설교를 했다. 그가 남긴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에 가장 강조된 것이 바로 사랑이다. 전도지나 교회에서 가장 많이 보고 듣는 이 성경 구절 안에 사도 요한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확실히 담겨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 2024.11.29 / 이미나 기자

    (112) 한나
  • ‘간절한 기도의 여인’ 표상 문제 앞에 탄식하며 부르짖어 기도하면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은총 얻게 돼 한나는 ‘기도의 여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자신의 괴로움을 극복할 만한 힘과 능력이 없을 때 어떤 자세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지 한나를 통해 우리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에브라임 산지 여로암의 아들 엘가나에게는 한나와 브닌나 두 아내가 있었다. 소실인 브닌나에게는 자녀가 있었지만 한나에게는 이름의 뜻인 ‘은총’과는 달리 자녀가 없었다. 매년 고통을 겪어야 했던 한나는 고통 중에 부르짖고 또 부르짖으며 하나님 앞에 통곡의 기도를 드렸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야훼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야훼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야훼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10~11). 한나가 주께 드린 기도는 처절한 절규였으며 가슴에 멍이 드는 탄식의 간구였다. 그런 한나의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그 마음을 감찰하시고 한나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셨다. 성경 사무엘상 2장 1~10절은 한나가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치면서 기도에 응답해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격의 내용이 기록돼 있다.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야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야훼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은 먼저 자녀를 두어 그동안 한나를 업신여겼던 브닌나의 교만을 꺾어주시며 가정의 질서 또한 바로 세워주셨다. “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아니하도다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삼상 2:5).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삼상 2:9). 한나의 고백적 탄원과 언약의 서원을 보면 아들 사무엘이 하나님의 깊은 섭리와 은총에 의해 태어났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사무엘이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따라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는 것을 보면서 몇 가지 교훈도 얻게 된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헤아리신다는 것이다. 한나는 능력의 하나님을 믿었기에 포기하지 않고 응답을 얻을 때까지 기도했다. 또 성전에 나와 기도할 때 엘리 제사장이 술에 취한 것으로 오해할 정도의 절박하고 애끓는 기도를 드렸다. 기도 없이는 결코 응답을 얻을 수 없다. 둘째, 하나님은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는 역전의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이 신다. 자녀가 없던 한나는 브닌나의 업신여김을 참고 견뎌야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한나가 간구할 때 ‘은총’을 허락하셨고 고난의 주인공에서 영광의 주인공으로 그 삶을 변화시켜주셨다. 셋째, 한나의 기도를 통해 우리는 기도의 깊은 통찰력과 겸손의 지혜를 깨닫게 된다. 한나는 사무엘을 낳기까지 숱한 고통을 겪었지만 사무엘을 낳은 후 자녀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린다. 자녀가 내 소유물이 아님을 인정하는 겸손이다. 자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업이다(시 127:3). 이 땅에 사는 동안 청지기 사명을 가지고 자녀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자라도록 욕심을 버리고 말씀과 기도로 양육하며 한나와 같은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를 드려야 한다.
  • 2024.11.01 / 오정선 기자

    (111) 안디바
  •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 주님을 섬기는 일에 타협 없던 안디바 한 사람의 순교가 지역 변화시켜 소아시아 버가모는 우상숭배가 만연한 도시로 유명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갖은 이유로 타협하고 우상숭배를 할 때 단 한 사람, 안디바는 우상숭배를 거부했다. 그는 뛰어난 석공이었지만 로마 황제의 신상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놋 가마 위에서 순교했다. 안디바는 로마 제국의 명령을 거절한 대가로 철판 위에 산 채로 구워져 순교를 당했지만 버가모교회 부흥의 씨앗이 됐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충성된 증인이라고 높여주셨다. 안디바라는 이름도 ‘모든 사람을 반대하는 자’라는 뜻이다. 안디바는 죽음 앞에서도 자신을 핍박하는 로마 관리들에게 당당했다. 그는 순교를 당하는 순간에도 “만왕의 왕, 만주의 주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으니 예수 외에는 내가 절하지 않겠노라”고 외칠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순교를 통해 책망받던 초대교회 중 하나인 버가모교회가 변화됐다.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지나온 삶을 끊지 못한 채 죄의 유혹에 빠져 살아가던 버가모교회의 성도들은 안디바의 순교를 보고 180도 달라졌다. 작은 유혹에도 넘어지고 흔들리던 이들이 우상숭배로 만연한 지역에서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외치게 된 것이다. 버가모교회가 있는 지역은 해발 300m의 높은 지역에 있었다. 또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사탄의 권좌’라고 불리는 무려 12m나 되는 거대한 제우스 신전과 로마 황제를 예배하는 신전도 있었다. 라틴 교부였던 터툴리안의 『순교자에 대해서』라는 책을 보면 안디바에 대해 알 수 있다. 당시 버가모교회의 그리스도인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한 부류는 예수님을 영접한 유대-그리스도인들이었다. 이들은 할례, 음식에 대한 규제, 율법을 지키는 것과 복음 사이에서 갈등했다. 또 다른 부류는 이방인이지만 기독교인이 된 헬라 성도들이었다. 이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 거리낌 없이 해 왔던 우상숭배, 성적인 문란,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경건한 삶을 지켜가는 것에서 갈등했다.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도 당당히 하나님께 순종한 안디바의 신실한 믿음은 신앙이 흔들리던 많은 크리스천의 마음에 경종을 울렸다. 생계를 위한다는 이유로 세상과 타협하고 고난과 박해가 두려워 주님을 의지하지 못할 때가 있다면 고통 속에서도 주님 한 분만을 바라보며 의지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 안디바를 기억하자.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계 2:13).
  • 2024.10.04 / 박찬웅 기자

    예수님의 팔복
    ⑧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
  • 의를 위한 고난은 복된 길 산상수훈은 신앙생활의 핵심 천국 소망 갖고 믿음 지켜야 마태복음 5~7장에 기록되어 있는 산상수훈은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제자들과 무리를 향해 가르치신 말씀이다. 기독교 윤리와 신앙생활의 핵심을 담고 있는 예수님의 설교 중 가장 위대한 가르침이라고도 불린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다. 예수님의 산상수훈 가운데 마지막 팔복은 오늘날 신앙인들에게 가장 도전적인 말씀이자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 5:10)는 말씀은 고난이라는 현실 너머에 있는 하늘의 상과 위로를 선포한다. 예수님은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들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다. 여기서 말하는 ‘의’란 윤리적 정의를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뜻한다. 인간의 행위로 얻는 의로움이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그 의다. 그러므로 의로운 삶이란 곧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을 자랑하며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어둠을 드러내는 의와 진리는 세상의 가치와 충돌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하라고 격려한다. 마태복음 5장 11~12절은 이렇게 덧붙인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이러한 복은 단지 위로의 말이 아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삶이라는 증거다. 예수님 때문에 조롱받고 오해받는 그 길은 하나님이 그 위에 함께하신다는 확증이 된다. 베드로전서 4장 14절은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고 말씀한다. 세상에 빛과 소금되신 의로우신 예수님께서는 가장 많은 핍박을 받으셨다. 빛은 어둠을 불편하게 하고, 소금은 부패를 막아 거부감을 일으킨다. 예수를 따르는 삶은 세상과 갈등하게 마련이고 박해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에 자연스럽게 따르는 열매인 것이다. 팔복의 시작과 끝은 모두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는 동일한 복으로 연결된다. 이는 팔복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과 궁극적 소망을 드러내는 말씀임을 보여준다. 믿음의 길에는 고난이 따르지만 가장 복된 길이다. 예수님을 따라 의로운 삶을 살다가 핍박을 받는 자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는 이미 천국의 시민이며 하늘의 상이 예비 됐기 때문이다. 의로운 삶은 하늘의 상급으로 이어지며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때 고난이 오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담대히 나아가자. 그 길 끝에는 주님의 상급과 위로가 반드시 기다리고 있다.
  • 2025.07.31 / 이미나 기자

    ⑦ 화평하게 하는 자
  • 피스메이커,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사람 평화의 왕 예수님 세상에 전하며 하나님의 자녀로 일컬음을 받는 복 누려야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세상이 추구하는 물질적인 복이 아닌,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과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 진정한 복이라 소개하는 팔복에서 일곱 번째로 소개된 ‘화평하게 하는 자’는 헬라어 ‘에이레네포이오스’로 ‘에이레네’(평화)와 ‘포이에오’(만들다)의 합성어이다. ‘팔복’에서 화평은 성경의 평화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단순히 평화를 사랑하는 수준을 넘어 적극적으로 갈등을 중재하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을 뜻한다. 일명 ‘피스메이커’(Peace Maker)이다. 성경이 말하는 피스메이커는 혼자 평화롭게 살면서 평화의 열매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과 공동체를 화해시키는 어려운 일에 자신을 바쳐 헌신하는 사람이다. 대표적인 피스메이커로는 예수님이 있다. 그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처한 인류의 ‘피스메이커’로 오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자녀가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됐다(롬 5:1). 독단과 분열이 가득했던 이 세상에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인해 화평의 길이 열린 것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군림하고 누리는 삶을 살지 않으셨다. 우리에게 평안을 주기 위해 헌신적인 사랑을 베푸셨다.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 갈등과 분열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하나 되게 하는 ‘피스메이커’가 되어야 한다. 경쟁하거나 다투는 대신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삶을 본받아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될 때 이 세상에 평화가 임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일컬음 받는 진정한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성경이 말하는 화평에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기쁜 소식, 즉 복음을 전하는 것도 포함된다는 점이다(사 52:7). 그래서 화평케 하는 자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로 말미암아 궁극적인 평화가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전파하는 것이 곧 평화를 이루는 핵심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중세 평화의 사도인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처럼 우리도 세상의 화해자가 되어야 한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심이 있는 곳에 신앙을, 거짓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가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멘.”
  • 2025.07.04 / 금지환 기자

    ⑥ 마음이 청결한 자
  • 천국에서처럼 이 땅에서도 하나님 볼 수 있어 예수님의 보혈 의지해 마음 지켜 나아가야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본문으로 설교한 이영훈 목사는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마음에 더러움이 없고 깨끗한 것이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정결해야 했다. 흠이 있는 것은 드릴 수 없었다”면서 “하나님께 우리가 드려지기 위해서는 흠이 없는 모습으로 나아와야 한다. 우리는 죄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기 때문에 예수의 보혈로 우리가 정결함을 입고 변화 받아야한다. 주 앞에 예배를 드릴 때에 우리가 정결한 모습으로 흠이 없는 모습으로 드려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하나님은 구만리장천 먼 곳에 계신 분이 아닌 무소부재하신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볼 수 없다. 모든 인간은 죄를 범하였고 율법적으로 온전하고 정결해질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대하는 마음 자세만큼은 순전하고 순수할 수 있다. 이는 두 마음을 품지 않고 마음을 청결히 하여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는 우상숭배의 죄, 음란의 죄, 누추함의 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회개해야 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대속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을 수 있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면서 마음을 청결히 하고 매 순간 성령님께 마음을 드리고 정결케 해주시기를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다. 조용기 목사는 마음 상태에 따라서 보이는 것이 다르게 보인다고 설명하면서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내 주먹을 믿으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해를 봐도 하나님이 보이고 달을 봐도 하나님이 보이고 별들을 봐도 하나님이 보이고 꽃 한 포기를 봐도 ‘아! 하나님이 묘하게 지으셨구나’ 사람들을 봐도 ‘하나님이 얼마나 이쁘고 아름답게 사람을 만드셨느냐’라고 말한다”고 했다. 또한 조용기 목사는 “밉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밉게 보인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면 미운 가운데도 모든 아름다운 것이 눈에 보인다. 마음이 나의 환경을 바라보게 하고 결정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요소가 되는 것이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고 전했다. 우리는 날마다 성령 충만을 간구하고 예수님의 보혈에 의지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스스로 마음을 잘 지켜서 하나님만 바라볼 때 천국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처럼 이땅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고 교제하면서 살아가는 은혜와 복을 누릴 수 있다.
  • 2025.05.30 / 복순희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PDF

    지면보기

  • 행복으로의 초대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