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담임목사 주일설교
조용기 원로목사 주일설교
오늘의 묵상
12월 3일(토) - 하나님의 상을 기대하라
  • ◎ 말씀 : 에 2:21~23 ◎ 찬송 : 새 354장(통 394장) 모르드개는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알게 되자 지체하지 않고 에스더를 통해 왕에게 알립니다. 조사 결과 이 암살 계획은 사실이었음이 드러났고, 음모자들은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왕을 위해 큰 공을 세운 모르드개는 아마도 왕이 줄 상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따르면 궁중 일기에 기록된 것 외에 어떠한 상도 모르드개에게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훗날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는 놀라운 이야기의 시발점이 됩니다. 때로 우리가 기대하고 생각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맙시다. 하나님이 주실 최고의 상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전진하는 하루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상을 기대하며 매일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믿음으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선한 결과가 삶 가운데 나타나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2.11.2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2월 2일(금) - 예수님을 찾아다니는 이유
  • ◎ 말씀 : 요 6:24~26 ◎ 찬송 : 새 250장(통 182장)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한 무리가 예수님을 찾아다녔습니다. 배를 타고 바다 건너편까지 와서 예수님을 찾아내는 열심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예수님을 찾아다닌 무리에게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 6: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찾고 의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예수님이 우리 삶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만 그것이 본질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찾는 이유는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찾는 이유가 무엇인지 묵상하고 마음을 다해 예수님을 찾는 신앙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고백합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만을 믿고 의지하며 살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2.11.2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2월 1일(목) - 중보기도의 힘
  • ◎ 말씀 : 출 32:31~32 ◎ 찬송 : 새 500장(통 258장) 하나님은 금송아지를 만드는 죄를 지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멸하려고 하셨습니다(출 32:10). 이때 모세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간절하게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여 회개했습니다.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마음을 돌이키셨고(출 33:17),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시 언약을 맺으시면서 “아직 온 땅 아무 국민에게도 행하지 아니한 이적”을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출 34:10). 이 약속대로 하나님은 많은 이적을 베푸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모세의 중보기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우리도 모세처럼 진실한 중보기도를 통해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역할을 감당합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도 모세처럼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진실한 중보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2.11.2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성경 인물
    (88)아론
  • 모세를 도와 출애굽한 이스라엘 첫 대제사장
    아론은 우리가 잘 아는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의 형이다. 모세와 함께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고 사명을 수행한 인물로 이스라엘 초대 대제사장을 지냈다. 아론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가운데 레위 지파 출신으로, 아므람과 요게벳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누이가 미리암이고 동생이 모세이다. 그리고 암미나답의 딸이자 유다 방백 나손의 누이인 엘리세바와 결혼해 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이다말 네 아들을 두었다. 성경에서 아론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곳은 출애굽기 4장이다. 광야에서 40년간 훈련을 받은 모세에게 하나님이 애굽의 압제로부터 고통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모세는 “나는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라며 대신 “보낼만한 자를 보내라”고 답한다. 이때 하나님이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을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에 아론은 모세와 함께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달라고 청한다. 하지만 바로가 이를 듣지 않자 애굽에 임할 열 가지의 재앙을 선포한다. 그들이 바로에게 말할 때에 아론의 나이는 팔십 삼세였고, 모세는 팔십 세였다. 애굽 사람과 생축의 초태생이 모두 죽는 열 번째 재앙이 있은 후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자 아론은 모세와 함께 출애굽의 대역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애굽의 군대를 피해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마라의 쓴 물을 단 물로 바꿔주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신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한다.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과 르비딤에서 싸울 때 훌과 함께 기도하는 모세의 팔을 받쳐 올림으로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나님은 시내산으로 부르신 모세를 통해 그런 아론을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대제사장으로 세우시고, 아론의 아들들 역시 제사장 직분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출 28장). 하지만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마주하며 십계명을 기록한 두 돌판과 언약의 말씀을 받는 40일 동안 아론은 백성의 요구에 못 이겨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백성이 환락과 방탕에 빠지게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만다(출 32:1~6). 그리고 이를 꾸짖는 모세에게 변명을 내세웠다. 우유부단함에 이어 아론은 질투심도 강해 미리암과 함께 모세가 이방 구스 여인과 결혼한 것을 비난하고 모세만이 하나님의 유일한 대변자가 아니라고 불평하기도 했다(민 12:1~2). 모세와 함께 출애굽에 성공한 아론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을 보지 못하고 광야 생활 40년이 끝나갈 즈음 죽음을 통고 받는다. 아론은 모세와 함께 호르산에 올라 제사장 옷을 벗어 아들 엘르아살에게 주고 123세로 생을 마쳤다(민 20:22~29; 33:38; 신 10:6; 32:50).
  • 2022.11.04 / 오정선 기자

    (87)아볼로
  • 지성과 인성 두루 갖춘 위대한 전도자
    바울과 동역하며 고린도교회 부흥 이끌어 아볼로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 학자이자 초대교회 전도자로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초대 교회에서 가장 뛰어난 설교가로 인정받을 만큼 달변가였고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에 사용했다. 그는 일찍이 침례 요한으로부터 구약성서에 대해 배웠는데 얼마나 총명했는지 성경은 그를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하며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쳤다’고 기록하고 있다(행 18:24~25). 하지만 그는 구약성경에 능통했으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은 불완전했었다(행 18:25). 그가 전한 메시지에는 인류의 구원자인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복음이 없어 ‘팥소 없는 찐빵’과 같았다. 왜냐하면 구약에서 나오는 그리스도가 나사렛 예수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이처럼 불완전했던 그의 복음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면서 완벽해졌다. 이들은 에베소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는 아볼로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에 대해 더 정확하게 알려줬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도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인간이 구원과 영생, 참된 자유를 얻게 된 것을 뜻한다. 아볼로는 대학자이자 구약성경에 능통한 자였음에도 천막 제조업자였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경험한 복음을 귀담아 들으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완전하게 얻었다. 이는 신분의 고하를 따지지 않았다는 뜻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고자 하는 열정이 남들보다 더 갈급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후 아볼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도움으로 에게 해를 건너 고린도를 수도로 하고 있는 그리스 남부 지역인 아가야로 떠났다. 그는 아가야에서 믿는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며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유대인 앞에서 힘 있게 증거했다(행 18:27~28). 그의 메시지는 많은 유대인들을 변화시켰다. 아볼로는 바울이 개척한 고린도교회에 가서도 사역을 하게 됐는데 이때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그의 설교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볼로는 타고난 언변으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지만 이러한 존경은 이내 교회를 분열시키는 추종세력을 낳게 됐다. 크게 아볼로와 바울파로 나뉘었고 게바파, 그리스도파까지 형성됐다. 이 소식을 접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전하며 자신은 밭에 씨앗을 심은 사람으로, 아볼로는 그 씨앗에 물을 주는 사람으로 비유하며 각각의 달란트가 다름을 알려주고 이를 자라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임을 완곡하게 권면했다(고전 3:6). 교회 내 다툼이 생길 때 잠시 자리를 떠났던 아볼로는 바울의 편지로 모든 것이 일단락 된 후에야 다시 고린도교회로 돌아와 본인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했다. 지성과 인성을 두루 갖춘 아볼로의 행실을 살펴볼수록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아볼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격과 지식의 정도가 깊어질수록 점점 더 겸손해지고 복음의 열정을 회복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큰 교훈을 주고 있다.
  • 2022.09.30 / 금지환 기자

    (86)미리암
  • 일순간 교만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산 여인
    모세는 애굽 왕 바로에게서 박해받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해내고 이들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인도한 하나님이 선택한 인물이다. 이런 모세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 수많은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왔다. 그의 출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어머니보다 누나인 ‘미리암’이지 않을까 싶다. 미리암은 남동생을 살리고자 역청과 진을 칠한 갈대 상자에 넣어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어떻게 되는지를 지켜보았다. 동생을 강에 떠밀고 혹시 물길에 휩쓸려 떠내려가지는 않을지, 다른 것들의 먹잇감이 되지는 않는지 먼발치에서 노심초사 지켜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떨림의 순간에도 미리암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동생을 구원할 것을 확신하고 바라봤다. 때마침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와 모세를 거두게 되고 젖을 먹일 수 있는 유모를 찾으니 미리암이 지혜롭게 유모를 구해오겠다고 나선다(출 2:3~7).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도 눈에 띈 활약을 한 여성이 바로 미리암이다. 그녀는 출애굽 당시 바짝 추격해 오는 애굽의 파라오의 말과 병거와 마병을 홍해에서 수장시킨 하나님을 기리며 승전가도 지어 불렀다.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야훼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출 15:20~21). 그런데 애굽을 탈출한 후 미리암은 사뭇 달라진다.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아론과 함께 모세를 비방하며 심지어 “야훼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민 12:1)라며 모세의 영적 지도력에 대항한다. 이런 미리암에게 야훼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벌을 내리신다.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진영 밖에 이레 동안 갇혀있게 된다(민 12:9~10, 15). 아론이 모세에게 용서를 빌며 “우리가 어리석은 일을 하여 죄를 지었으나 청하건대 그 벌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민 12:11) 하니 모세가 야훼께 부르짖어 고쳐 달라 기도해 고침을 받았다. 미리암은 동생을 살리고 최측근으로 있을 만큼 지혜로운 여성이었으나 교만에 빠져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고 비방을 일삼은 여인이 되었다. 그를 보면 잠언 16장 18절에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라는 훈계 말씀이 적절하다. 겸손함이 없는 지혜는 다른 사람에게 해악을 끼칠 뿐이다. 또한 미리암이 이레 동안 갇힘으로 그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진하지 못하고 광야에 진을 치고 머무르게 된 것처럼 자신의 부족함과 문제를 보지 못하고 타인의 잘못만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발전과 성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김주영 기자
  • 2022.09.02 / 김주영 기자

    선교열전
    (13) 코리 텐 붐 여사
  • 전 세계에 용서의 복음 전한 위대한 전도자
    나치 독일로부터 800여 명의 유대인 구출하고 전쟁 후유증 겪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 전해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 전쟁을 일으킨 당시 나치 독일은 도시 곳곳에서 유대인들과 이들을 돕는 사람들까지도 학살했다. 이때 죽음을 무릅쓰고 유대인들을 도운 사람이 바로 네덜란드의 전도자 코리 텐 붐 여사이다. 코리 텐 붐 여사는 1892년 네덜란드 하를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신앙교육을 받아온 그녀는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을 도와야한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위험을 무릅쓰고 유대인 난민들을 숨겨주고 탈출하는 일을 도왔다. 당시 나치 독일 정권이 유럽계 유대인들을 제도적으로 탄압하고 조직적으로 학살했는데 이때 텐 붐 여사가 탈출시킨 유대인은 800여 명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1944년 2월 28일, 전쟁 종식을 앞두고 독일 나치의 정치경찰인 게슈타포에 의해 발각돼 그녀의 일가족이 체포됐다. 유대인들을 도왔다는 이유로 유치장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이후 나치 수용소에 수감 된 그녀는 열흘 만에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그 누구보다 가장 많이 의지했던 아버지의 소천 소식에 깊은 절망에 빠졌던 그였지만 슬픔을 뒤로하고 몰래 들여온 성경을 보며 하나님을 예배했다. 하루하루 버티며 사는 것이 전부였던 수용소에서 언제 목숨을 잃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텐 붐 여사는 매일 밤 성경공부 모임을 갖고 수감자들과 군인들을 위해 기도했다. 절망이 드리운 수용소에 복음은 한 줄기 희망이 됐고 수감자들이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다. 이후 기적적으로 석방된 그녀는 전쟁으로 상처 입은 이들이 회복할 수 있는 재활센터를 설립했다. 텐 붐 여사는 가족과 친척을 잃은 고아, 수용소에서의 트라우마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사람 그리고 전쟁 중 독일과 협력했던 실직한 자국민들까지도 센터에 입소시켰다. 이는 모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는 차별이 없음을 실천한 것이었다. 코리 텐 붐 여사하면 널리 회자 되는 이야기가 있다. 독일의 한 교회에서 용서에 대한 강연을 마치고 나왔는데 강제수용소에서 언니 베시를 고문했던 악랄한 간수를 만나게 된 것이다. 텐 붐 여사는 그를 본 순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그를 용서 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나는 언니를 죽게 한 장본인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그를 용서하게 하셨습니다.” 세계 각국을 다니며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의 복음을 전한 텐 붐 여사는 그녀의 삶의 여정이 담긴 『주는 나의 피난처』 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전쟁 중에도 전쟁 후에도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은 그녀는 1983년 4월 15일 91번째 생일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 2022.10.21 / 금지환 기자

    (12)이기풍 선교사
  • 제주도 복음화에 헌신한 한국 최초의 선교사 13년간 제주 전 지역에 30개 교회 설립 이기풍 선교사는 한국교회 최초의 목사 7인 중 1명이자 첫 공식 선교사로 파송 받았다. 1865년 11월 21일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난 이기풍 선교사는 어려서부터 학문에 조예가 깊었다. 그는 6세 때 유교의 기본 경전인 사서삼경을 외웠고 12세에는 붓글씨로 백일장 장원에 뽑힐 정도로 특출났다. 이기풍 선교사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다. 이기풍 선교사는 조선에 들어온 외국인에게 돌을 던져 턱을 크게 다치게 했는데 그가 훗날 스승인 된 모펫 선교사였다. 이기풍 선교사는 소안론 선교사의 전도로 예수님을 믿고 난 후 모펫 선교사에게 용서를 구했고 그가 세운 조선 최초의 평양신학교에 입학해 서경조, 길선주, 방기창, 한석진 등과 함께 신학을 공부했다. 1907년 신학교 졸업과 동시에 목사안수를 받은 그는 같은 날 동기인 길선주 목사의 집례로 제주도 선교사로 파송됐다. 이것이 한국교회 최초의 선교사 파송이었다. 1908년 제주도에 도착한 이기풍 선교사는 조랑말을 타고 전도여행을 다녔다. 하지만 그가 복음을 전할 때면 도민들은 그에게 굴욕을 주었고 집단 구타까지 행했다.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헌신을 잊지 않았다. 그런 그의 선교 사역에 물꼬가 트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제주도에 큰 홍수가 나서 주민들이 떠내려갈 때 이기풍 선교사가 물속으로 뛰어 들어 주민 5명을 구조한 것이다. 또한 구렁이 신에게 제물로 바쳐진 소녀를 구하며 기독교인은 사람을 살리는 존재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이기풍 선교사는 제주도민들에게 큰 신뢰를 얻게 됐고 그가 세운 제주 성안교회에 큰 부흥이 일어났다. 이기풍 선교사는 제주 지역 복음화를 위해 순회 전도사역을 이어갔고 금성·조천·모슬포·한림·용수 등의 지역에 교회를 설립했다. 중간에 건강상의 이유로 잠시 내륙으로 돌아왔지만 이내 다시 돌아가 13년 동안(1909~1915, 1927~1932) 제주도에서 사역하며 30여 개의 교회를 설립했다. 제주도 사역을 마무리하고 순천에서 사역하던 그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반발하다 미제의 간첩이라는 죄목으로 1938년 체포됐다. 순천 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당한 그는 1942년 6월 20일 77세의 나이로 소천 받았다. 제주시 조천읍에는 제주도 복음화에 한 획을 그은 이기풍 선교사를 기리기 위한 '이기풍선교기념관'이 건립됐다. 현재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운영이 중단되어 모든 자료는 제주 모슬포교회 '이기풍 기념관'으로 이관됐다.
  • 2022.04.24 / 금지환 기자

    (11)에릭 리들
  • “주일은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는 날입니다” 영화 ‘불의 전차’ 통해 그의 일생 알려져 올림픽 금메달 영광 버리고 선교사 결단 “저는 주일에는 뛰지 않습니다.” 1924년 8회 파리올림픽 육상 100m 금메달 후보였던 영국의 한 선수가 한 말이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중국 선교사인 그의 이름은 에릭 리들이다. 에릭은 아버지 제임스 리들 선교사의 아들로 1902년 중국에서 태어났다. 그는 16세가 됐을 때 처음으로 참가한 교내 육상대회에서 100m 1등, 200m 2등을 하며 육상선수로서의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에든버러 대학으로 진학해 교내는 물론 영국이 자랑하는 최우수 육상선수가 됐고 마침내 올림픽 단거리 육상선수로 발탁됐다. 에릭은 올림픽 육상 100m 경기가 평일이 아닌 주일에 열려 경기를 포기했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그는 주일은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는 날이라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고 했다. 이후 에릭은 평일에 열린 200m와 400m 경기에 출전해 예상을 뒤엎고 동메달과 금메달을 획득했다. 특히 400m 경기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고 “처음 200m는 제 힘으로 최선을 다해 뛰었고, 나머지 200m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더 힘차게 달릴 수 있었습니다”라는 말을 남겨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올림픽 이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명성이 높아갈 때쯤 에릭 리들은 사람들에게 중국 선교사가 될 것을 선포했다. 이전부터 아버지와 형을 이어 중국 선교사가 되고 싶었던 에릭은 이듬해 23세의 젊은 나이로 중국 선교사로 파송됐다. 에릭 선교사는 12년간 톈진 중영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이후 7년 동안 자신이 태어난 샤오창 지역에서 농촌 사역을 펼쳤다. 그가 도시에서 농촌으로 사역지를 옮긴 이유는 선교사로 활동하던 당시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과 일본군의 침략으로 수많은 농촌 주민들이 전쟁의 희생양이 됐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에릭 선교사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마을 사람들을 치료하는 병원에서 일하며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마을을 방문해 전도 집회를 열었다. 또한 외국인 선교 활동이 제한될 것을 예상하고 제자훈련과 교인양육 지침서 등을 직접 저술하며 현지인 사역자를 세우기 위한 방안도 모색했다. 1939년 현지에서의 사역을 마무리하던 에릭 선교사는 뜻하지 않게 중국에 억류됐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일본이 중국의 일부 지역을 점령하면서 외국인들을 수용소에 억류했다. 이때 에릭 리들은 1만 8000여 명의 서양인들이 모인 수용소를 제2의 사역지로 삼고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일에 힘썼다.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분쟁을 해결하는 대표로 활동하며 사람들을 섬기는 일에 매진했다. 에릭은 1945년 2월 뇌출혈로 수용소에서 43세의 나이에 짧은 생을 마감했다. 훗날 에릭 리들의 일생을 담은 영화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가 제작돼, 이를 계기로 에릭 리들의 일생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 2022.03.27 / 금지환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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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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