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담임목사 주일설교
조용기 원로목사 주일설교
오늘의 묵상
8월 3일(토) -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 ◎ 말씀 : 눅 4:18~19 ◎ 찬송 : 191장(통 427장)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서 이사야의 말씀을 읽으셨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처럼 그가 성령으로 기름 부음 받은 메시야이심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3년 반 동안 두루 다니시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시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당시 회당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이 진정 누구신지 깨닫지 못했던 것처럼, 지금도 구원자 되신 예수님을 깨닫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온전히 알고 있다면, 내 주변 이들에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선포해야 합니다. 특히 가난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에게 전해진 좋은 소식을 이웃에게 기쁨으로 전할 때에 그들에게도 좋은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주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기쁨으로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7.2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8월 2일(금) - 짐을 져 주시는 주님
  • ◎ 말씀 : 시 68:19~20 ◎ 찬송 : 369장(통 487장) 시인은 우리에게 구원의 하나님을 날마다 찬양하라고 선포합니다. 찬양할 이유는 주님이 우리 인생의 문제와 죄의 짐을 대신 지시기 때문이며, 죽음의 저주 가운데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찬양하기 위해서 우리는 날마다 그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은 친히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와 고난의 짐뿐만 아니라, 그 결과로 인한 사망의 저주까지 해결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그늘 밑에 나아가 모든 죄의 짐을 내려놓고,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 앞에서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죄의 짐을 지시며 사망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날마다 기억하는 우리가 됩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모든 짐과 문제를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내려놓고, 전심으로 주님만 의지하며 참된 자유를 누리게 해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7.2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8월 1일(목) - 비천한 자를 통해
  • ◎ 말씀 : 눅 1:46~50 ◎ 찬송 : 305장(통 405장) 마리아는 나사렛이라고 하는 가난한 동네에 살던 한 처녀입니다. 그녀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정결하고 순수한 모습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섬긴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마리아를 택하셔서 그녀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잉태하게 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마리아는 자신의 영혼이 기쁨으로 가득 찼다고 고백하며, 비천한 자신을 택하여서 위대한 일을 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렸습니다. 가진 것 없고 어떤 높은 위치에 있지 않더라도 순수하고 정결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있다면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통해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쓰임 받아 매일의 삶 속에서 감사의 고백을 올려드리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비천한 우리를 택하여 큰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매일 기쁨으로 살아가게 해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7.2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성경 인물
    (108) 삼손
  • 블레셋을 물리친 괴력의 사사
    유혹에 빠져 성령 떠나게 돼 성령 충만이 중요한 이유 알려줘 이스라엘의 사사로 20년간 활동한 삼손은 엄청난 괴력의 소유자로 유명하다. 기독교가 아닌 사람도, 어린 아이도 삼손의 이야기는 알고 있다. 17세기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는 들릴라가 삼손을 배신하는 순간을 절묘하게 묘사해 그려 걸작을 남겼고, 렘브란트 또한 삼손과 관련해 두 작품을 남겼다. 또한 삼손의 이야기는 오페라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사사기 13~16장에 삼손의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삼손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범죄한 결과로 블레셋 사람들에게 40년 동안 통치를 받고 있을 때 태어났다(삿 13:1∼5). 그의 아버지 마노아는 이스라엘 단 지파의 사람이었다. 어느 날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임신하지 못하던 마노아의 아내에게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삿 13:5)고 말해 주었다. 마노아는 아내가 아들을 낳자 ‘태양과 같다’라는 의미를 담아 삼손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었던 삼손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힘이 매우 강했다. 삼손은 블레셋에 의해 억압당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싸웠고, 많은 블레셋 사람들을 죽였다. 또한 그는 블레셋의 사원을 파괴하고 군대를 물리쳤다. 하지만 삼손은 욕망에 빠져 큰 실수를 하고 만다. 사사기 16장에는 삼손의 가장 유명한 일화이자 죄로 말미암아 성령을 소멸하게 된 그의 비극적인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삼손은 블레셋 여인 들릴라를 사랑하게 됐다. 블레셋 방백들은 삼손의 놀라운 힘이 어떻게 생기는지 알아보기 위해 들릴라를 돈으로 매수하여 삼손의 힘의 근원을 알아내게 했다. 삼손은 들릴라의 끈질긴 요구에 못 이겨 결국 머리가 밀리면 힘이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아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만다. 삼손의 비밀을 알게 된 들릴라는 자기 무릎에서 삼손이 잠든 때에 그의 머리털을 밀어버렸다. 하나님의 사람인 삼손은 들릴라의 유혹에 넘어가 자신의 비밀을 말해주었고 성령이 떠나갔다. 하나님의 사람인 삼손이 나실인의 율례를 범하자 성령이 떠나 더 이상 아무런 힘을 쓸 수 없게 됐다. 그는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두 눈이 뽑힌 채 놋 줄에 묶여 맷돌을 돌리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제야 삼손은 “야훼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야훼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삿 16:28)라며 하나님께 마지막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하나님께서는 삼손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셨고,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생포한 것을 기념하여 축제를 벌이고 있던 다곤 신전을 무너뜨리고 죽었다. 그 결과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 많았다. 삼손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사람이지만 세상의 유혹에 빠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모습에 머물러 있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성령이 떠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 2024.07.05 / 이미나 기자

    (107) 에바브로디도
  • 바울에게 충성한 믿음의 사람
    사명 위해 헌신한 빌립보교회 성도 바다를 가로지르면 1200㎞, 육로로 이동하면 2000㎞ 대략 서울에서 대만까지의 거리를 육박하는 선교 여정을 다녀온 한 성도가 있다. 빌립보교회의 성도 에바브로디도이다. 그는 빌립보서에 딱 2번(2:25, 4:18) 언급된다. ‘사랑스럽다’란 뜻을 가지고 있는 에바브로디도는 성경에 언급된 횟수와 달리 빌립보교회와 바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충성된 믿음의 사람이다. 에바브로디도는 로마 감옥에 투옥 중인 바울을 돕기 위해 빌립보교회에서 파송한 자이다. 당시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로마 제국에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힌 사실을 알게 되고(빌 1:12~13) 선교 후원금 전달자이자 위로자로 에바브로디도를 파송한다. 빌립보교회는 사도 바울과 관계가 깊다.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그리스에 첫발을 내디뎠는데 그 도시가 바로 빌립보였다. 바울은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히기도 했지만 큰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했다. 이로 인해 자결하려는 간수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됐고 유럽 땅에 최초의 교회인 빌립보교회를 세우게 됐다. 그래서 그런지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 1:8). 당시 빌립보교회가 있던 마게도냐에서 로마까지의 거리는 한 달은 족히 걸리는 머나먼 길이었다. 에바브로디도는 나홀로 가는 길이 두려웠을 법도 했지만 기꺼이 선교의 길에 나섰다. 치안이 열악해 선교에 필요한 재정과 재원 강탈은 물론 목숨까지도 위협당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갔고 어떠한 해도 입지 않고 로마에 도착했다. 이런 그를 바울은 ‘나의 형제’,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 ‘너희 사자’ ‘내게 쓸 것을 돕는 자’라고 말한다. 이는 그가 동역자로서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존재인지, 얼마나 충성된 주님의 자녀인지 알려주고 있다(빌 2:25). 하지만 에바브로디도는 로마에서 다시 빌립보교회로 돌아가야 했다. 그가 얼마나 로마에 체류했는지는 모르지만 바울을 돕다 그만 병에 걸리게 된 것은 분명하다.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에바브로디도가 오랜 여정으로 몸이 쇠약해진 상태에서 옥바라지를 하면서 로마에 돌고 있는 열병에 전염됐다는 의견도 있다. 에바브로디도는 아픈 와중에도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염려할까 근심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에 대해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빌 2:30)라고 말하며 에바브로디도가 사명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을 빌립보 교인들에게 설명하며 그를 따뜻하게 맞아달라고 요청한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헌신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에바브로디도의 행적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목숨걸고 사역에 임하는 선교사들이 생각났다. 에바브로디도처럼은 아니더라도 우리의 시간과 물질, 마음을 에바브로디도와 같이 헌신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기꺼이 보내는 선교사로 동참하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 2024.05.31 / 금지환 기자

    (106) 입다
  • 암몬과 에브라임 무찌른 입다
    잡초 같은 삶에서 아홉 번째 사사로 이스라엘의 아홉 번째 사사 입다는 길르앗 유지와 무명의 기생 사이에서 태어났다. 서자로 태어나 어린 시절 많은 핍박을 받았다. 이복형제로부터 핍박을 받다가 이스라엘 변방에 있던 돕으로 떠난 입다는 타고난 언변과 지도력으로 사람들을 모아 두목 노릇을 하며 약탈을 일삼는 부족으로부터 이스라엘을 보호했다. 그러던 중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삶을 청산하고 이스라엘의 사사로 발탁되는 사건을 맞았다. 오랜 시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힌 암몬이 작정하고 땅을 빼앗기 위해 길르앗에 쳐들어온 것이다. 암몬을 막아낼 방법이 없던 길르앗 장로들은 입다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데 입다는 장군의 지위와 승전 후 영구적인 지도권을 자신에게 보장할 것을 장로들에게 요청했다. 장로들에게 약속을 받은 입다는 암몬을 무력으로 상대하기 전에 역사적인 근거를 암몬 왕에게 제시해 싸움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암몬 왕은 입다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 상황으로 볼 때 입다는 고향을 떠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역사를 잃지 않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으로 보인다. 제안을 거절한 암몬 왕으로 인해 이스라엘과 암몬은 전쟁을 치뤘고 하나님께서 입다의 손에 암몬을 넘겨 주셔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입다는 전쟁에 임하기 전 하나님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갔을 때 가장 먼저 영접 나온 자를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다’라는 서원을 했다.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그를 맞이한 사람은 하나뿐인 딸이었다. 입다는 자기 옷을 찢으며 괴로워했지만 하나님을 향해 서원했으니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을 하나님께 드려야 했다.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야훼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삿 11:35). 평소 길르앗 사람들을 업신여겼던 에브라임 사람들은 승전하고 돌아온 입다에게 ‘암몬과의 전쟁에 왜 자신들을 부르지 않았느냐’, ‘길르앗은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들이다’라며 시비를 걸었다. 암몬과의 전쟁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입다는 에브라임의 모욕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길르앗 사람을 모아 에브라임과 싸워서 승리했다. 길르앗 사람들은 에브라임 사람들이 퇴각하는 요단강 나루턱을 장악하고 에브라임 사람들을 색출했다. 겉모습으로 쉽게 구분할 수 없었기에 나루턱을 지나는 모든 사람에게 ‘쉽볼렛’이라는 단어를 발음하게 했다. 길르앗 사람들은 정확한 발음이 되지만 당시 에브라임 사람들은 십볼렛으로 발음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4만2000여 명의 에브라임 사람을 찾아내 죽였다. 입다는 암몬과 에브라임을 격퇴해 이스라엘을 구하고 무력을 앞세우기 보다 싸우지 않도록 제안하는 지략을 가졌지만 경솔한 서원으로 무남독녀를 잃게 됐다. 입다를 통해 배경도 없고 연약한 삶도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감정에 이끌린 서원으로 괴로운 마음을 겪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교훈도 얻게 된다.
  • 2024.05.03 / 박찬웅 기자

    선교 열전
    (15)로티 문(Lottie Moon) 선교사
  • 일평생 중국 복음화 위해 헌신한 선교사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일평생 수 만명의 중국인에게 찬양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파한 독신 여성 선교사가 있다. 미국 남침례교에서 파송한 로티 문이다. 1840년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로티 문은 어릴 적부터 침례교 신앙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로티의 본명은 샬롯 딕스 문(Charlotte Diggs Moon)이다. 미국 버지니아 알베말 출신인 로티는 18세가 되던 해에 브라더스 목사의 집회에 참석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했다. 이후 대학에서 성경 공부와 기도 모임을 주도하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다. 갑작스런 사고로 아버지를 일찍이 여읜 로티는 당시 남녀 차별이 심각했던 시대적 배경에도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고등교육까지 받아 미국 남부에서 가장 학식이 높은 여인이 됐다. 1873년 중국에서 학원 사역을 펼치고 있었던 선교사 부부를 돕기 위해 중국 선교사로 파송된 로티는 평일에는 학생들을 가르쳤고 주말에는 시골 마을을 순회하며 전도에 매진했다. 로티는 1885년 외국인이 한 명도 없고 외국인 보호 조약과 거리가 먼 지역인 핑투라는 곳에 정착해 본격적으로 현지인 복음화에 앞장섰다. 전도를 위해서는 먼저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며 선교지에서 관계 전도를 이어갔던 그는 현지인과 같은 옷을 입고 활동하며 마을에 복음을 전했다. 복음을 전할 때마다 현지인들의 핍박이 거셌다. 그러던 어느 날, 현지에서 로티가 가르치는 성경을 비난하고자 참석했던 중국인 리 쇼우팅이 성경을 접하며 개종하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후 리 쇼우팅은 사도 바울처럼 성경에 정통한 사람이 되어 북부를 다니며 전도하고 1000여 명에게 침례를 베풀며 귀하게 쓰임 받았다. 38년간 중국에서 헌신한 로티의 노력으로 16개 교회와 56개 학교가 세워져 많은 학생을 배출하게 하는 열매를 맺었다. 또한 남성 전도사 42명, 여성 전도사 14명의 현지인 제자를 세웠고 이들을 통해 2000여 명 현지인이 침례를 받았다. 1912년 로티는 미국 남침례교의 재정 상황의 악화로 더 이상 선교 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됐다. 거기에 기근까지 들어 아이들이 굶주리게 되자 자신의 식사를 나눠주며 본인은 금식을 하다 결국 25㎏까지 몸무게가 줄었다. 쇠약해진 몸을 회복하기 위해 미국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지만 미국으로 가는 길에 72세의 생일을 일주일 앞둔 크리스마스 이브에 만추리아 호에서 소천을 받았다.
  • 2024.02.23 / 금지환 기자

    (14) 서만수 선교사
  • 한국 교회 최초 인도네시아로 파송 된 선교사
    정글 지대 순회하며 현지에 384개 교회 세워 현지인 사역자 양성 위해 스틴신학교도 설립 한 평생 인도네시아 복음화를 위해 헌신한 주의 종이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선교사로 40년 동안 활동하면서 384개의 교회를 세운 그는 한국 교회에서 처음으로 인도네시아로 파송한 서만수 선교사이다. 1939년 평양에서 태어난 서만수 선교사는 6·25 전쟁 중 월남해 서울에 정착했다. 그는 남한에서 주의 종의 소명을 받고 목회자로 사역을 하다 1970년 9월 아내 정소라 선교사와 함께 인도네시아로 파송 받았다. 그는 파송 1년 만에 한국인과 인도네시아 현지인 25명과 함께 최초의 한인교회인 자카르타한인연합교회를 개척했다. 교회가 설립될 당시만 해도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많지 않았는데 한인들은 이 교회에서 타향살이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달랬다. 한인 공동체가 형성되자 그는 한인들의 고민이었던 자녀 교육을 해결하기 위해 1973년 한인 유치원을, 그 이듬해에는 자카르타 한인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서 선교사는 한인교회 사역과 동시에 정글 지대를 순회하며 각 지역에서 전도집회와 부흥회를 인도했다. 차가 갈 수 없는 오지 촌락은 말과 당나귀를 타고 순회 선교를 이어갔는데 그는 식인 풍습이 남아있는 수마트라와 이리얀자야 지역을 다닐 때 몇 차례 죽을 고비도 넘겼다고 했다. ‘녹슬어 없어지기보다 닳아 없어지겠다’는 조지 휫필드처럼 그는 인도네시아 복음 전파에 매진했다. 그런데 1997년 그의 선교 활동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정글 순회 사역의 후유증으로 근무력증을 진단 받은 것이다. 더 이상 순회 선교를 할 수 없게 됐지만 서 선교사는 “선교사는 아프다는 것을 피난처로 삼을 수 없다”는 말을 남기며 귀국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인도네시아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슬람 국가에서 외국인이 직접 선교 활동을 하는 것에는 제한이 많았다. 이에 서 선교사는 정부와 마찰 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는데 그것이 바로 현지인 목회자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그는 스틴(STTIN) 신학대학교를 설립해 현지인을 대상으로 신학교육과 교회개척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이는 인도네시아 미전도종족 선교에 큰 역할을 감당했다. 인도네시아에서 40년 세월을 한결같이 선교하던 서만수 선교사는 2009년 9월 16일 향년 70세를 일기로 소천 받았다. 그는 생전에 자카르타에서 추진하던 종합대학교 건립 부지 근교 공원묘지에 안치됐다. 인도네시아에 3000개 교회 개척을 목표로 삼았던 서만수 선교사. 우리는 그의 선교 열정을 기억하고 그가 이룬 인도네시아 선교가 앞으로도 계속해 발전해 나아가도록 힘써 기도해야만 할 것이다.
  • 2023.07.21 / 금지환 기자

    (13) 코리 텐 붐 여사
  • 전 세계에 용서의 복음 전한 위대한 전도자
    나치 독일로부터 800여 명의 유대인 구출하고 전쟁 후유증 겪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 전해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 전쟁을 일으킨 당시 나치 독일은 도시 곳곳에서 유대인들과 이들을 돕는 사람들까지도 학살했다. 이때 죽음을 무릅쓰고 유대인들을 도운 사람이 바로 네덜란드의 전도자 코리 텐 붐 여사이다. 코리 텐 붐 여사는 1892년 네덜란드 하를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신앙교육을 받아온 그녀는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을 도와야한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위험을 무릅쓰고 유대인 난민들을 숨겨주고 탈출하는 일을 도왔다. 당시 나치 독일 정권이 유럽계 유대인들을 제도적으로 탄압하고 조직적으로 학살했는데 이때 텐 붐 여사가 탈출시킨 유대인은 800여 명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1944년 2월 28일, 전쟁 종식을 앞두고 독일 나치의 정치경찰인 게슈타포에 의해 발각돼 그녀의 일가족이 체포됐다. 유대인들을 도왔다는 이유로 유치장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이후 나치 수용소에 수감 된 그녀는 열흘 만에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그 누구보다 가장 많이 의지했던 아버지의 소천 소식에 깊은 절망에 빠졌던 그였지만 슬픔을 뒤로하고 몰래 들여온 성경을 보며 하나님을 예배했다. 하루하루 버티며 사는 것이 전부였던 수용소에서 언제 목숨을 잃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텐 붐 여사는 매일 밤 성경공부 모임을 갖고 수감자들과 군인들을 위해 기도했다. 절망이 드리운 수용소에 복음은 한 줄기 희망이 됐고 수감자들이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다. 이후 기적적으로 석방된 그녀는 전쟁으로 상처 입은 이들이 회복할 수 있는 재활센터를 설립했다. 텐 붐 여사는 가족과 친척을 잃은 고아, 수용소에서의 트라우마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사람 그리고 전쟁 중 독일과 협력했던 실직한 자국민들까지도 센터에 입소시켰다. 이는 모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는 차별이 없음을 실천한 것이었다. 코리 텐 붐 여사하면 널리 회자 되는 이야기가 있다. 독일의 한 교회에서 용서에 대한 강연을 마치고 나왔는데 강제수용소에서 언니 베시를 고문했던 악랄한 간수를 만나게 된 것이다. 텐 붐 여사는 그를 본 순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그를 용서 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나는 언니를 죽게 한 장본인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그를 용서하게 하셨습니다.” 세계 각국을 다니며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의 복음을 전한 텐 붐 여사는 그녀의 삶의 여정이 담긴 『주는 나의 피난처』 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전쟁 중에도 전쟁 후에도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은 그녀는 1983년 4월 15일 91번째 생일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 2022.10.21 / 금지환 기자

    주일설교 요약본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야훼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네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 너를 헐며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이사야 49장 14~17절 고난으로 상처받고 낙심될 때 엎드려 눈물로 기도하면 회복의 은혜 임하고 놀라운 영적 부흥 경험하게 돼 하나님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우리를 향한 계획을 예정하셨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셔서 부르셨습니다. 자녀가 부모의 말을 경청하듯이 우리는 항상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1.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고 선포합니다.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야훼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사 49:13). 우리가 고난을 겪을 때 고난 외에도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혼자된 것 같은 외로움과 그로 인한 절망감입니다. 그러나 갓난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는 어머니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절망 가운데 버려두지 않으시고 긍휼히 여기십니다.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야훼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 49:14~15). 하나님은 고난 당하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위로하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고난은 우리를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어린아이가 잔병치레하면서 면역력이 생기고 건강하게 자라나듯이 크리스천도 크고 작은 고난을 통해 믿음이 자라고 성숙해집니다. 또한 고난을 통해 우리는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교만이 깨어져 겸손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변화됩니다. 하나님은 사소한 일에 상처받고 무너지는 우리의 체질 곧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야훼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 103:13~14). 우리의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고 품으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을 힘입어 인생에 다가오는 고난을 이겨내야 합니다. 고난이 축복의 전주곡이 되는 기적을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2. 나를 가까이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와 훨씬 가까이 계십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사 49:16). 손바닥은 언제나 펴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를 손바닥에 새기셨다는 말씀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면서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심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한순간도 우리 존재를 잊으시거나 소홀히 여기시지 않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고난의 환경에서도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을 때 예루살렘 성벽이 다 무너져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존귀한 예배의 장소였는데, 그곳이 무너진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너희들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성벽이 무너져서 예배할 수 없고 보호받을 수 없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무너진 성벽이 다시 견고히 세워진 것을 보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삶의 성벽이 문제와 질병, 그 외 많은 고난으로 다 무너진 것 같은 상황이 되어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와 예배를 받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손으로 친히 무너진 성벽을 다시 견고히 세워 주십니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질병을 치료해 주시며 고난을 이겨낼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 영혼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야훼의 이름에 있도다”(시 124:8). “야훼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야훼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 121:7~8). 우리는 우리의 힘이 되어주시는 하나님을 항상 의지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언제나 우리 가까이 계시며 영원한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과 평생토록 동행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가 상처받고 낙심했을 때 우리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네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 너를 헐며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야훼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를 장식처럼 몸에 차며 그것을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사 49:17~18). “네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라는 말씀은 포로기를 마친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의 무너진 성벽을 서둘러 재건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느헤미야 선지자를 통해 이 일을 이루셨습니다. “성벽 역사가 오십 이일 만인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느 6:15~16). 악한 대적들이 끊임없이 방해했으나 하나님은 불과 52일 만에 성벽이 재건되게 하심으로 말씀하신 바를 성취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한 때 하나님 앞에 불의하고 죄를 범하여 심판받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주전 722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했고, 남유다는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성벽이 무너지고 삶의 터전이 잿더미처럼 사라졌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 생활에서 눈물의 회개로 하나님께 간구하자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우리도 고난을 겪더라도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눈물로 회개하면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회복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에 더하여 이전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우리의 인생을 사용하여 주실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1970~1980년대에 큰 부흥을 이루어 기독교 인구가 1200만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물질의 풍요 속에서 믿음의 열정을 많이 잃어버렸고 이후로 많은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정치적인 혼란과 경제 불황이 다가왔고 동성애와 마약 중독 등 영, 혼, 육에 심각한 피해를 가져오는 죄악에 빠져들었습니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가진 저출생 국가가 되어 나라의 존립조차 크게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갈 때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회개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우리를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나아가 다시금 놀라운 영적 부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어떠한 문제와 고난을 겪더라도 오직 하나님 앞에 나아가 도우심을 간구하십시오. 우리 모두에게 참된 회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삶의 많은 문제와 고난 속에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어떠한 고난을 겪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여 이겨내게 하시고 이전보다 더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여 하나님께 인정받고 크게 쓰임 받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7.2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하나님은 구원이시라
  •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야훼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야훼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이사야 12장 1~3절 하나님만 의지할 때 깊은 절망 사라져 영원한 기쁨 누리며 예수님 사랑 전해야 인생을 사는 동안 아무런 문제없이 평탄한 시간만 보내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부와 명예, 권력을 아무리 많이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인생의 깊은 절망과 외로움을 피할 길은 없습니다. 오직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할 때 우리는 인생의 어둠과 절망을 극복하고 참된 기쁨과 평강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1. 주께 감사하라 우리를 품으시고 안위하시는 좋으신 하나님께 우리는 언제나 감사해야 합니다.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야훼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사 12:1). 하나님은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 때 진노하시지만 그 진노는 우리가 옳은 길로 돌아오길 바라시는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혹시 죄를 지었다면 회개하고 돌이켜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시며 우리 마음에 위로와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한없는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상처 입은 모든 영혼을 그 품에 안아주십니다. “야훼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야훼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시 34:18~19). 이처럼 고난에서 건지시는 주님의 은혜에 우리가 드릴 것은 감사밖에 없습니다.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야훼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사 12:4).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감사의 제사를 기쁘게 받으십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우리가 감사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 은혜를 날마다 풍성히 누리고, 이를 허락하신 주님께 찬양과 감사의 고백을 올려드리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야훼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사 12:2). 하나님은 죄와 죽음, 인생의 피할 수 없는 깊은 절망과 고통의 사슬에서 우리를 건져주십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우리가 인생의 어려움을 만날 때 사람을 의지하거나 인간적인 방법을 찾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의 염려,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우리는 모든 문제로부터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다가 해방되어 출애굽 할 때, 그들 앞에 홍해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두려워 떨며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자 모세는 그들을 향해 담대히 외쳤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야훼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야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3~14).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손을 내밀자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홍해와 같은 인생의 문제 가운데 길을 여시는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분을 믿고 담대히 기도할 때 우리는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홍해를 건넌 후 물이 다시 합쳐지게 하셔서 바로의 군대를 멸하시고 그분의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야훼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출 15:2). 찬양의 고백대로 하나님은 우리의 힘과 구원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는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이 함께하십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로 담대함을 얻으면 우리는 모든 환난과 문제로부터 승리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은 나의 기쁨의 근원이 되신다 하나님은 고난 많은 세상 속에서 우리에게 참된 기쁨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사 12:3). 우리는 불안, 염려, 근심이 마음에 자리 잡지 않고 하나님의 기쁨이 늘 충만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4장에는 사마리아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다섯 번 결혼을 실패한 가정사로 인해 사람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뜨거운 대낮에 물을 길으러 나왔습니다. 이때 사마리아 여인은 우물가에 앉아 계신 예수님과 마주쳤고, 예수님은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공허함을 보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3~14). 예수님이 말씀하신 물은 영혼의 생명수입니다. 예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면 성령님을 통해 우리 마음에 영혼의 생수, 기쁨의 생수가 흘러나오게 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마음의 문이 열려 그분이 누구신지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뛰어 들어가서 예수님이 메시야, 곧 그리스도이심을 전했습니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요 4:29). 그리고 그녀로 인해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요 4:39).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의 마음과 영혼에 생수가 솟아나게 하심으로 그녀의 삶에 참된 만족과 기쁨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우리 마음에 기쁨과 평안함이 흘러넘칩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요 7:37~38). 예수님이 말씀하신 생수의 강은 성령 충만의 은혜입니다. 오순절에 성령님이 강림했을 때 제자들은 성령 충만을 받고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1~4). 우리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영원한 기쁨이며 끝없이 샘솟는 성령의 생수와도 같은 기쁨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과 성령 충만이 주는 기쁨을 평생토록 누리며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주는 삶을 사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 안에서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항상 성령으로 충만하여서 우리 마음에 기쁨의 생수가 흘러나오게 하시고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드리는 삶을 살게 해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7.1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로뎀 나무 아래서
  •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야훼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야훼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열왕기상 19장 4~8절) 부정과 비판의 말로부터 말씀과 기도로 마음 지키고 십자가 밑에서 새 힘 얻어 주님 주신 사명 감당해야 태초에 만물과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그날에 안식하셨습니다.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우실 때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라는 계명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쉼 없고 피곤한 인생길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을 날마다 누리고 이를 통해 흔들리지 않는 사명자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1. 부정적인 말에 무너진 엘리야 북이스라엘 아합왕 때 사역했던 엘리야 선지자는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하는 850명과 맞섰습니다. 그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하나님의 불로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고 우상 숭배자들을 모두 결박하여 진멸했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아합왕의 부인 이세벨은 엘리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다음 날에는 그를 똑같이 죽이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왕상 19:2). 방금 전만 해도 담대하게 우상 숭배자들을 진멸했던 엘리야였는데 이세벨의 이 말을 전해 듣고 엘리야의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그는 광야로 도망가 하나님 앞에서 죽기를 자청했습니다.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왕상 19:3~4). 이처럼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라고 해도 피곤하고 지칠 때는 부정적인 말 한마디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우리가 지켜야 할 것 중에 특히 마음을 잘 지킬 것을 권면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부정적인 이야기와 비판적인 이야기에 우리 마음이 무너져서는 안 됩니다. 부정적인 말을 듣더라도 목표를 향하여 가던 길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음성에 귀를 닫고 우리를 살리시고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며 기도로 나아갈 때 우리는 부정적인 말들로부터 마음을 지키며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 로뎀 나무 아래 주저앉은 엘리야 엘리야는 이세벨로부터 도망하여 브엘세바까지 갔다가 다시 하룻길을 더 들어가 로뎀 나무가 있는 한 장소에 다다랐습니다.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야훼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왕상 19:4). 그는 로뎀 나무 아래에서 절망하여 기도하다가 그만 쓰러져 잠들고 말았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쓰러진 엘리야에게 천사를 보내셔서 그를 일으켜 주시고 음식을 먹도록 하셨습니다.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왕상 19:5~6). 엘리야는 천사가 가져다준 음식을 먹고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그 후에도 천사는 새로운 음식을 준비하여 그가 먹게 하였고, 엘리야가 회복하도록 어루만지며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엘리야의 몸과 마음에 새로운 힘이 채워졌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가 피곤과 절망에 지쳐 누웠던 로뎀 나무 아래를 쉼과 회복의 자리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달리신 갈보리 십자가는 우리에게 참된 쉼과 안식을 누리게 하는 로뎀 나무 그늘과도 같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절망과 고통, 아픔과 근심, 죽음을 다 짊어지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 인생의 무거운 짐을 십자가 밑에 내려놓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그러므로 힘들고 괴로운 순간이 다가올 때마다 인생의 무겁고 곤비한 짐들을 주님 앞에 내려놓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참된 평화와 안식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는 지쳐 쓰러진 영혼을 위로하고 돌봐줌으로써 그가 다시 일어나도록 도와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힘든 상황에 있는 이웃에게 사랑의 손길을 펼쳐 꿈과 희망을 나누어 주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3. 다시 사명자의 길 간 엘리야 하나님의 손길과 양식으로 다시 힘을 얻어 일어난 엘리야는 40일을 걸어 호렙산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왕상 19:8). 그가 호렙산에 도착하여 그곳 굴에 머물 때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셨습니다.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야훼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왕상 19:9). 그는 그곳에서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났고, 새로운 왕과 선지자를 기름 부어 세워야 할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엘리야가 낙심하여 로뎀 나무 아래에 왔을 때, 그리고 40일을 더 걸어서 호렙산에 왔을 때도 그는 자신이 혼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마음을 아시고 ‘넌 혼자가 아니다. 이스라엘에 준비된 7000명을 남겨 두었다’라고 엘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 19:18). 이렇게 우리가 인생에서 외로움을 느낄 때 하나님은 믿음과 기도의 동역자들을 우리 곁에 보내어 우리를 위로하고 힘을 더해 주십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인생의 힘들고 어려운 시간에 항상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가 주님께 소망을 두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주님은 우리를 위해 기적을 베푸시며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우리의 약함은 주님 안에서 강함이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십자가 그늘 밑에서 새 힘을 얻고 다시 일어난 우리에게 주님은 새로운 사명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개인의 욕심과 만족을 위해서가 아닌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사명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위에 상처 입은 사람들을 치료하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베푸는 사명자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지치고 힘들 때 세미한 음성으로 위로해 주시고 용기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십자가 은혜와 사랑을 주위의 상처받고 쓰러진 이웃들에게 전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맡겨진 섬김과 위로의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7.0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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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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