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힐링
하나님의 타이밍
  • 무엇을 해도 안 되는 이상한 때가 있다. 20년 전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마련했던 드림카는 출고 일주일 만에 덤프트럭에 받혀 폐차가 되었고, 15만 팔로워가 모여 있던 인스타그램 계정은 알고리즘의 오류로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사업장의 전례 없던 매출 하락은 가슴을 쿵! 하고 떨어뜨려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 할지 머릿속이 어질어질하다. 한 번씩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나님, 왜요?” 하고 묻고 싶을 만큼 무엇을 해도 안 되는 이상한 때가 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눈앞에 벌어진 상황들이 억울하고 황당해 이해되지 않는 이 순간이 바로 ‘하나님의 타이밍’이다. 내 인생이 내 뜻과 계획안에 있지 않음을 깨닫는 이 순간이 말이다. 내 노력과 내 힘으로 열심히 이뤄낸 것 같던 내 꿈도, 성과도, 돈도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으시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릴 수 있다는 깨달음의 순간이 말이다. 차는 폐차되었지만 ‘사명’이 있는 자를 하나님은 살려 주셨고, 15만 계정이 사라지고 나서야 나의 교만을 깨닫게 하셨으며 사업체가 고꾸라지고 나서야 내가 가야 할 방향을 하나님께서 다시 알려주셨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야훼의 말씀이니라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이사야 55장 8~9절). 나의 생각과 나의 길이 막히는 그때야말로 비로소 하나님의 높으심을 경험할 기회임을 잊지 말자. 이해되지 않는 그 순간들마저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으니 말이다. 염미솔(플리크 대표)
  • 2025.11.14

    그냥의 힘
  • 오랜 시간 교육업에 종사하다 보니 수많은 수강생들을 만났다. 같은 시간 같은 내용을 가르쳐도 교육의 결과는 수강생마다 천차만별이었다. 그들의 능력이 달라서도, 열의의 수준이 달라서도 아니었다. 수강생들의 아웃풋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키워드 한 가지는 바로 ‘수용성’이었다.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감도의 차이가 결과의 차이를 만들어냈다. 내 생각과 다른 것을 마주했을 때,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무언가를 알려줬을 때, 내 수준에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을 해야 할 때도 수용성이 높은 사람들은 ‘그냥’ 했다. 내 생각보다 먼저 해 본 사람들의 경험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뢰 안에서 ‘그냥’ 해 본 사람들의 삶은 놀랍게 바뀌었다. 직업이 바뀌었고 끊어진 경력이 다시 시작되었으며 수입이 높아졌다. 배움을 대하는 수용적 자세가 아는 것을 실제로 행하게 만드는 가장 큰 경쟁력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신앙생활 안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산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순종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돌기만 하면 성이 무너질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의아했지만 순종했다. 베드로는 밤새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 다시 그물을 던지라는 말씀에 토 달지 않고 순종했다. 내 생각과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수용하는 자세를 가졌던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복을 받았다. 이해되지 않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곧 믿음이며 그 믿음 안에 순종할 때 우리는 놀라운 역사를 맛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도 주저하지 말고 주님의 말씀 앞에 ‘그냥’ 순종해보자! 염미솔(플리크 대표)
  • 2025.10.17

    삶의 나침반
  •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길 되신 하나님을 믿고 산다고 하면서도 가끔 세상에서 길을 잃은 것 같은 순간들이 있다. 그럴때면 어김없이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버텨볼 것인가?’ ‘빠르게 정리하고 다른 것을 시작할 것인가?’ 머릿속으로 수많은 경우의 수를 그려가며 “하나님, 잠시만 물러나 계세요! 제가 먼저 계산기 좀 두드려볼게요”했던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언젠가 한 간증을 들었다.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사업 아이템에 대한 영감을 주셨고 그 일을 통해 한 해 수십억의 매출을 만들어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마치 로또를 기다리듯 “하나님, 제게도 대박 아이템을 알려주세요!”라고 기도했던 적이 적지 않았다. 나의 필요에 따라 하나님의 자리를 이리저리 옮겨 놓으며 어떻게 하면 내게 더 유리한 상황이 펼쳐질까만을 고민하며 살 때도 있었다. 얼마 전 일적으로 너무 답답하고 힘들어 기도를 시작했다. 내내 하나님께 ‘무엇’을 해야 할지 묻고 또 물었다. 한참 기도하던 그때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이런 응답을 주셨다.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세상의 방법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무엇을 하더라도 주님이 함께하시며 형통케 하신다.’ 그 순간 알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하느냐’라는 것을. 하나님이 나의 길 되시면 길을 잃은듯한 이 순간조차 결국 그분의 손 안에 있는 과정이었다. 삶은 여전히 갈림길의 연속이고 길을 잃은듯 한 순간은 계속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필요한 것은 단 하나, 나침반을 다시 하나님께 맞추는 것이다. 주님이 이끄시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임을 신뢰함으로 말이다. 염미솔(플리크 대표)
  • 2025.09.19

    삶으로 배운 나의 성장원리
  • 좋아하는 일도 잘하는 일도 없던 시절이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던 그때, 세상은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말했지만 좋아하는 일을 발견할 여유도 없이 쫓기듯 살아왔던 나였다. 결국 내가 찾은 방법은 좋아하지도 않고 잘하지도 않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보는 것이었다. 문과생이었던 내가 춘천으로 가서 아이들의 수학을 가르치며 점심엔 엄마 식당 장사를 돕기 위해 왕복 4시간 거리를 움직이고, 블로그 이웃 50명으로 엄마 식당의 반찬을 온라인으로 팔기 시작하는 것들을 말이다. 그렇게 몸을 먼저 움직였더니 신기하게도 내안의 불안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해낸 일들이 쌓이면서 작지만 분명한 성취가 만들어졌다. 그 성취가 나를 다시 움직이게 했고 반복은 능숙함을, 능숙함은 자신감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나를 온라인 교육 플랫폼 ‘플리크’의 대표이자 40만 인플루언서로 성장시켰다. 잘하는 일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 쌓아올린 결과라는 걸 몸으로 배웠다. ‘꾸준함의 시간들’은 내가 하는 일을 능숙하게 만들었고 그 과정 속에서 조금씩 좋아지는 것들이 생겨났다. 여전히 나는 좋아하는 일이나 잘하는 일을 좇지 않는다! 지금 당장 내 눈앞의 일에 최선을 다했을 때 그 최선이 나를 성장시켜 준다는 것을 삶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 16:10). 작은 일에 순종함으로 나아갔을 때 나를 위해 준비될 더 큰일을 기대하며 신뢰하는 것! 그래서 나는 여전히 성장의 시간들을 쌓아가는 중이다.
  • 2025.08.15

    어른의 성장통 
  • 어린 시절 호되게 아플 때면 엄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미솔이가 또 훌쩍 크려나 보네.” 성장을 앞두고 찾아오는 성장통은 비단 어린시절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때때로 예고 없이 찾아오는 고난의 시간 뒤엔 어느새 그만큼 자라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됩니다. 고등학생이 되던 해 부모님은 신용불량자가 되었습니다. 예고 없이 닥친 가난 앞에 우리 가족은 컨테이너 집에 살게 되었고 그 후에도 단칸방, 반지하, 창고를 개조한 집을 전전하며 돈과 투쟁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내면은 온통 ‘생존’과의 사투를 벌여야 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투자만이 제가 가진 유일한 탈출구였습니다. 눈앞의 환경에 휘둘려 꿈마저 가난해지지 않는 것, 나의 잠재력을 믿고 기다려주는 것. 그게 제게 주어진 생존법이자 가난이 준 성장의 열매였습니다. 지독한 가난을 겪고 나니 가난한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밭이 생겼습니다. 돈에 휘둘려본 사람으로서 돈 때문에 가능성이 막힌 친구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고난을 허락하시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비슷한 아픔 속에 있는 사람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고 품을 수 있는 마음을 제 안에 심어 주셨으니까요. 누군가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습니다. “고난은 위장된 축복이다.” 성장을 향한 통증이 찾아올 때면 이제는 그 말이 떠오릅니다. 어쩌면 당신에게도 지금 더 크게 성장할 순간이 찾아온 것일지 모릅니다. 오늘의 고난이 내일의 열매가 될 것을 믿으며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더 단단해지기를 소망합니다. 염미솔(플리크 대표)
  • 2025.07.18

    인생에 기류변화가 일어날 때
  • 비행기를 타고 가다보면 ‘기류변화’로 인해 기체가 요동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기류변화로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면 자신도 모르게 좌석 팔걸이를 꽉 붙들게 된다. 사실 기류변화가 심할 때 시트벨트를 매는 것은 필수적이지만 내가 좌석 팔걸이를 붙드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류변화로 비행기가 요동칠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조속히 기류가 안정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사실 가운데 하나는 인생이 능동태라는 확신이다. 인생은 자력(自力)에 의해서, 나의 분투노력에 의해서 진행된다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인생에 기류변화가 일어나 삶이 요동칠 때 자력과 능동태의 삶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비행기나 인생이 추락하는 순간 자력보다는 타력(他力)이 작동한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일본의 작가 이츠키 히로유키는 “타력(他力)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나 이외의 뭔가 커다란 힘이 내 삶의 방식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고방식”이라면서 “나 이외의 타자가 나라는 존재를 떠받치고 있다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한한 인간의 삶은 철저히 수동태다. 특히 믿음의 삶은 자력갱생(自力更生)이 아니다. 인생에 기류변화가 일어날 때 나의 날개를 접고 내 삶의 조종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맡기는 수동태의 삶을 살아야 한다. 가만히 있으며 하나님만 바라보는 부동의 신뢰자로 살다보면 어느 순간 “이제 기류가 안정됐습니다. 시트벨트를 풀어도 됩니다”라는 안내 방송을 듣게 될 것이다. 이태형(기록문화연구원 대표)
  • 2025.05.16

    부활을 믿는 대한민국
  • “성경이 남겨 둔 길은 두 가지뿐이다. 우리는 부활을 믿어 나사렛 예수를 믿을 수 있고, 부활을 믿지 않아 나사렛 예수를 믿지 않을 수 있다.” 기독 작가 브레넌 매닝의 말이다. 그는 기독교 신앙의 가장 근본적인 요구는 용기를 동원해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하는 부활에 “예”라고 답하는 것이라고 했다. 부활이란 어디까지나 ‘현존하는 부활’로 체험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 이렇게도 말했다. “복음서의 핵심 기적은 나사로를 살리신 일이나 오병이어나 모든 극적인 치유사건을 다 합쳐 놓은 것이 아니다. 복음서의 기적은 부활하여 영화롭게 되신 그리스도 자신이다!” 매닝의 말대로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며 현존하는 부활을 삶의 순간마다 체험한다는 것이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깨어진 모든 관계와 빼앗긴 소망이 회복됨을 믿는 것이며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는 주님의 말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땅의 것이 아니라 위의 것을 추구한다는 뜻이며 옛 본성을 벗어버리고 새 본성을 입는 것, 완전히 새로워지는 것이다. 부활의 주님이 우리를 새롭게 만들어주신다. 부활하신 주님은 개인 뿐 아니라 사회와 국가, 열방을 새롭게 하신다. 지금 대한민국은 새로움이 필요한 시기다. 부활의 주님이 이 민족의 운명까지도 새롭게 해주시기를…. 형언하기 어려운 능력으로 독생자를 살리신 하나님이 이 땅의 온 백성들을 참 생명으로 이끄시기를…. 이태형(기록문화연구원 대표)
  • 2025.04.18

    최후변론
  •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5일 윤석열 대통령과 국회 측의 최후진술을 끝으로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을 마쳤다. 윤 대통령과 국회 측은 이날 ‘최후변론’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최후변론’이라는 엄중한 단어를 생각해보았다. 이 땅을 사는 누구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다. 그대로 연기처럼 사라지면 별문제 아니지만 인생들 누구나 마지막에 ‘판결의 골짜기’에 서게 된다. 거기서 헌법재판관과 같이 우리의 영원을 좌지우지할 심판자이신 하나님께 최후변론을 하게 된다.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그때 어떤 말로 자신을 변호할 것인가. 아니, 이 땅을 떠나기 전 우리의 마지막 말은 무엇이 될 것인가. 1945년 4월 9일 나치에 의해 교수형에 처해진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는 “이것이 마지막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목회자의 목회자’로 불린 유진 피터슨 목사는 2018년 10월 22일, 이 땅을 떠나기 전에 “함께 가자(Let’s go)”란 말을 남겼다. “이제 함께 새로운 믿음의 세계로 가자”란 뜻이다. 복음주의 지성 댈러스 윌라드 박사는 2013년 5월 8일, “땡큐(Thank You)”란 단어를 남기고 떠났다. 평생 주님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던 그는 감사하며 본향으로 떠난 것이다. 사람은 모두 살아온 방식대로 죽는다. 우리는 모두 이 땅에서 최후변론을 하고 저 하늘의 본향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사람들이다. 그날, 판결의 골짜기에서 어떤 최후진술을 할지 생각한다면 오늘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결정될 것이다. 이태형(기록문화연구원 대표)
  • 2025.03.14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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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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