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설교자 열전
설교자 -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누스(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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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교회 사도들을 잇는 교부들의 설교
    기독교 교리 기틀 세우며 박해 가운데도 기독교의 합리성 옹호 오리게누스, 금욕과 청빈의 삶 살며 복음 전해 영국 성공회 신학자이자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인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기독교의 역사』에서 기독교 역사를 초기 교회 시기(100년~500년),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500년~1500년), 종교개혁 시기(1500년~1650년), 근대 시기(1650년~1914년), 현대 시기(1914년~현대)로 나눈다. 신약성경이 완성된 100년 이후부터 칼케돈 공의회가 있었던 451년의 시기를 교부 시대(the partristic period)라고 한다. 여기서 ‘교부’(patristic)란 ‘아버지’를 뜻하는 라틴어 ‘파테르’에서 왔다. 이 용어는 교부 시대와 그 시대에 발전한 독특한 사상을 가리키는데 사용된다. 이 시대의 특징은 오늘날까지도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다양한 기독교 교리가 발전했다는 점이다. 또한 이 시기는 기독교가 박해를 받던 시기였다. 박해를 받는 가운데 기독교를 이방인들에게 설명하려는 변증학이 발전했다. 변증학이란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기독교 신앙의 합리성을 옹호하고 설명하는 학문이다. 순교자 유스티누스(100~165년), 리용의 이레니우스(130~200년), 오리게누스(185~254년), 테르툴리아누스(160~225년),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354~430년) 등 이 시대는 기독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신학자요 설교자들이 나타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 삼위일체론, 교회론 등 그리스도의 교리를 체계적으로 정립하고 이방인들에게 기독교를 알리는 시기였다. 교부 시대의 설교는 이전 사도 시대의 설교보다 능력 면에서 다소 뒤처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초기에는 교육받은 목회자가 설교하기보다는 일반인을 포함해 누구나가 설교를 할 수 있었다. 교사들, 복음전도자들, 사도들, 예언자들을 포함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장로와 주교만이 설교할 수 있도록 했다. 초대 교부 중 한 사람인 오리게누스는 185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알렉산드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 있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구약성경의 헬라어판인 ‘칠십인역’(Septuagint)을 번역한 곳도 알렉산드리아다. 그의 아버지 레오니데스는 알렉산드리아대학에서 헬라문학을 교수했다. 그는 아들 오리게누스에게 매일 성경을 가르쳤고 문법, 수학, 논리학, 수사학을 교육했다. 또한 오리게누스는 성 판테누스가 설립한 알렉산드리아의 교리학교에 다니는 동안 클레멘트에게 교육을 받았다. 초대교회의 중요한 교부 중 하나였던 클레멘트는 헬라철학과 기독교 교리를 결합하는 데 관심이 많았고 알렉산드리아의 교리학교를 통해 많은 제자를 길러내기도 했다. 클레멘트에게 사사 받을 당시 오리게네스는 이미 철학과 문학에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202년 로마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북아프리카 지역에 가한 핍박으로 인해 오리게누스의 아버지 레오니데스는 투옥되었고 결국 순교하고 말았다. 오리게누스 역시 아버지를 따라 순교하고 싶었지만 그의 어머니가 옷가지를 감추는 바람에 집을 나설 수 없었고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때 그의 스승 클레멘트도 핍박으로부터 피신하게 되었고 오리게누스가 알렉산드리아 교리학교의 수장으로 지명되었다. 그의 나이 18세에 그렇게 된 것이었다. 기독교인으로서 그는 매우 금욕적인 생활을 했다. 술은 입에 대지도 않았고 밤마다 맨땅에서 잠을 청했으며 계속해서 금식을 행했다. 단벌옷에 맨발로 다녔다고 한다. 줄곧 평신도 설교자로 지냈던 그는 228년 아가야 지방의 교회들을 방문하기 위해 머물던 가이사랴에서 안수를 받았다. 약 20년 동안 팔레스타인에서 활동하던 그는 아테네와 아라비아 등 넓은 지역에서 설교 사역을 행했다. 수많은 사람이 그를 따랐고 그 중에 암브로스라는 사람이 있었다. 기독교로 개종한 그는 매우 부유한 사람이었는데 오리게누스의 가르침에 큰 감명을 받고 오리게누스의 여생을 돌보아주었다. 특히 암브로스는 오리게누스가 하는 말을 받아 적을 속기사들과 필사자들을 고용했고 그들이 기록한 내용을 출판하도록 했다. 오늘날까지 오리게누스의 설교가 많이 남아있는 이유가 바로 암브로스의 헌신적인 도움 덕분이다. 250년 6월 로마 황제 데시우스의 칙령이 공표됐다. 이 칙령은 지방의 로마 관리들에게 로마의 신들과 황제에게만 희생 제사를 바쳐야만 한다고 명령했다. 희생 제사를 바친 사람에게는 증명서가 발급되기도 했다. 이 박해로 수천 명의 그리스도인이 혹독한 악형, 감금, 공갈로 고통당하다가 순교했다. 오리게누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붙잡힌 그는 갖은 고문을 당했다. 251년 데시우스가 군사 원정 도중 숨지면서 박해는 끝났지만 감옥에서 풀려난 오리게누스는 평생 불구로 살아야 했다. 옥고로 인해 그의 몸은 지쳐있었고 옥에서 풀려난 후 4년이 지난 254년 69세의 나이로 두로에서 생을 마감했다. 조지훈 목사(선교연합회 담당)
  • 2023.11.10

    설교자 - 야고보(Ⅱ)
  • 탁월한 적용으로 설교, 성도의 변화 이끌어 신앙 속 믿음과 행함의 균형 강조 은유 통해 말씀의 의미 쉽게 전달 야고보의 설교에서 발견되는 두 번째 특징은 적용의 탁월성이다. 성경 기록의 1차적인 목적은 기록이 아니다. 성경은 “창조로부터 재창조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 속에서 하나님 나라로 초대받은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계시되고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당대에 그리고 후대를 향하여 지속적으로 적용”해온 결과물이다. 즉 성경은 특정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에 적용된 결과물이다. 설교를 증인(witness)이 행하는 증언으로 정의하는 토마스 롱은 성경적 설교란 “설교할 때 성경을 얼마나 많이 인용하느냐와 상관없이 현재적 경험과 관련하여 얼마나 성경을 신실하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라고 말했다. 좋은 설교의 요소 중 하나는 그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회중들의 경험과 삶에 잘 적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회중들의 삶에 적용되지 않는 설교는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일 뿐이다. 설교의 적용이라는 측면에서 야고보의 설교는 뛰어나다. 그는 “말씀을 따르십시오”라거나 “말씀을 행하십시오”라고 불명확하게 설교하지 않는다. 실제적인 삶의 적용을 강조하는 그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것, 자신의 말과 행동을 잘 다스리는 것, 교회의 지체 간에 비방하지 말고 판단하지 말고 서로 자랑하지 않는 것 등 실제적인 적용의 내용을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그의 설교에서 적용은 눈에 보이는 것 같고 손에 잡힐 듯 구체적이다. 셋째, 야고보의 설교는 신앙생활에서 믿음과 행함의 균형을 강조하고 있다. 믿음과 행함에 대해 사도 야고보가 사도 바울과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야고보는 ‘행함’(약 2:14)을 강조했던 반면 바울은 ‘믿음’(롬 3:23~24, 갈 2:16)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설교가 전혀 다른 상황과 대상을 향해 행해진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바울은 할례나 음식법과 같이 유대교의 행위들이 구원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설교했던 반면 야고보는 그저 머리로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면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설교했다. 그뿐만 아니라 바울과 야고보의 설교의 대상이 서로 달랐다. 바울은 아직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설교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는다고 설교했다. 그런 의미에서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반면 야고보는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구원 이후의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아무도 행위로(by works) 구원받을 수 없다. 하지만 아무도 행위를 만들어 내는(producing) 것 없이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우리는 선한 행위로(by) 구원을 받지 않지만, 선한 행위를 위해(for) 구원을 받는다.” 야고보는 구원에 필요한 믿음에 행위를 추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을 통해 구원받은 사람이 믿음의 삶을 살아내는데 행함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믿음을 통한 구원 이후의 행함은 자주 강조되지 않는 부분이다. 사도 야고보는 이렇듯 믿음과 행함의 적절한 균형을 강조함으로써 성도들이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해야 함을 권면하고 있다. 넷째, 사도 야고보의 설교에는 적절한 은유가 사용되고 있다. 은유란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다른 대상을 이용해서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문학적 기술”이다. 사도 야고보는 자신의 메시지를 좀 더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은유를 사용한다. 그의 은유가 특별한 것은 그의 설교를 듣는 청중들이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것들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의 핵심을 좀 더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야고보서 1장 23~25절에서 야고보는 거울이라는 물건을 통해 말씀 행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또한 샘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언어 사용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약 3:11). 이렇듯 사도 야고보는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자주 접하는 물건이나 장소를 통해 자신의 가르침을 좀 더 분명하게 했다. 일상의 삶에서 발견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사도 야고보는 이미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조지훈 목사(순복음선교연합회 담당)
  • 2023.10.12

    설교자 - 야고보(Ⅰ)
  • 예수님 부활과 성령 침례 통해 참 신앙 갖게 돼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믿음 강조 예수님은 2000년 전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고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를 따라 갈릴리 나사렛에 정착하셨다(마 2:22~23; 눅 2:4~6). 성경은 요셉과 마리아 부부에게 예수라는 아들 외에 다른 자녀들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즉, 예수님에게 형제, 자매가 있었다는 것이다(마 12:46; 눅 8:19; 막 3:31). 야고보는 예수님의 형제 중 하나였다(마 13:55). 예수님의 다른 형제들이었던 요셉, 시몬, 유다와는 달리 야고보는 성경에서 자주 등장한다. 바울은 예루살렘교회의 야고보가 주님의 형제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갈 1:18~19). 이뿐 아니라 바울은 야고보가 예루살렘교회의 기둥 같은 존재였음을 기록하고 있다(갈 2:9). 특히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였던 야고보는 이방 기독교인들에 관한 문제로 교회가 분열될 위기에 놓여있을 때 중재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행 15:1~21). 예수님의 형제였던 야고보가 기록한 성경이 ‘야고보서’이다. 야고보서의 서두에서 야고보는 자신을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약 1:1)이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야고보가 처음부터 예수님을 주님으로, 자신을 예수님의 종으로 고백했던 것은 아니다. 마가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가족들과 친척들은 예수님을 종교적 광신주의자로 생각했다. 그들은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했던 것이다(막 3:21).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고 기록한다.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요 7:5). 물론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이 태어나기 전 천사를 만났고(눅 1:26~38), 어린 시절 예수님의 명민함을 익히 알고 있었다(눅 2:42~52).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마리아의 이해와 생각이 그녀의 다른 자녀들에게 영향을 주지는 못했던 같다.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을 종교에 미친 광인으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야고보는 어떻게 예수님을 자신의 주님으로, 자신을 예수님의 종이라고 고백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증인들의 목록을 보여준다.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고전 15:7)라는 구절 속에서 우리는 야고보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증인이요 사도들과 함께 활동했던 초대교회의 지도자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사도행전의 기록에 따르면 오순절 성령 침례를 받기 위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비롯해 예수님의 형제들과 제자들이 함께 기도했다. “여자들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 1:14).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야고보는 어머니 마리아와 다른 형제들과 함께 성령의 오심을 기다리며 열정적으로 기도했던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 침례의 경험이야말로 야고보가 자신의 형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주님으로 고백하게 하는 통로였던 것이다. 야고보서는 설교자 야고보의 모습을 짐작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야고보서를 통해 알 수 있는 야고보의 설교의 특징은 먼저 믿는 자들에게 ‘행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야고보는 ‘진리의 말씀’(약 1:18)은 행할 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한다(약 2:14). 그가 생각하는 경건함은 신자로서 자신의 말과 행동에 주의하며(약 1:19, 26), 환난 중에 있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며(약 1:27), 세속에 물들지 않고 자신을 지킬 때 가능한 것이다. 즉, 진정한 신앙은 내적으로는 자신의 언행에 주의하며 외적으로는 사랑과 자비를 베풀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봄으로써 완성된다는 것이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을 속이는 자’(약 1:22)이다. 이와 같은 말씀과 행함을 강조하는 야고보의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기독교인의 행동을 좌우하는 진정한 행동 지침이라는 사실 역시 의미한다. “‘진리의 말씀’(약 1:18)은 구체적 행위를 추동하고 삶의 실천으로 이끌어가는 하나의 힘”인 것이다. 조지훈 목사(굿피플 사목)
  • 2023.09.08

    설교자 요한(Ⅱ)
  • 요한 설교의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 강조 불신자와 믿는 자 모두 아우르는 설교 전해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요한복음 20장에서 자신이 복음서를 기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0~31). 이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요한이 설교자로서 가졌던 몇 가지 특징을 유추해볼 수 있다. 첫째, 요한은 자신이 무엇을 선포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이를 통해 생명을 얻게 할 목적으로 복음서를 기록했다. 설교자 요한에게는 자신이 행하는 설교의 목적이 분명했던 것이다. 설교학자 토마스 롱은 모든 설교에는 초점과 기능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초점이란 설교 전체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주제를 의미하며 기능이란 설교자가 설교를 통해 회중들에게 일어나기를 바라는 일을 의미한다. 그는 초점과 기능이 있는 설교를 만들기 위해서 설교 전에 반드시 초점문과 기능문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요한은 자신의 선포에 있어서 주제가 되는 초점이 무엇이며 자신의 선포를 듣거나 읽게 될 사람들의 삶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선포의 초점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이었다. 또한 그의 설교의 기능은 자신의 선포를 듣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었다. 둘째, 요한의 선포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물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었다. 요한복음 20장 31절의 ‘믿게 하려 함이요’라는 동사는 어떤 사본에서는 헬라어 문법상 부정과거 가정법으로 쓰였고 다른 사본에서는 현재 가정법으로 기록되어있다. 전자의 경우, 믿는다는 것은 “믿음의 행위를 하는 것, 즉 예수를 메시야로 신뢰하는 것”을 의미한다. 후자는 “이미 예수 안에서 형성된 믿음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 성경 원본이 없는 상황에서 사도 요한이 어떤 내용을 기록했는지를 정확히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각각의 동사를 사용한 사본의 비율이 비슷하다는 점을 통해 우리는 요한의 복음서를 필사했던 기독교인들이 성경의 내용이 불신자들은 물론 믿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짐작해볼 수 있다. 성경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알리는 강력한 도구이다. 동시에 성경은 이미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신앙을 점검하고 계속해서 성숙되게 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우리의 신앙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끊임없이 새롭게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앞서 잠시 살펴보았듯이 요한의 선포의 중심은 언제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였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은 모두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각 복음서에서 중점적으로 그리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은 조금씩 상이하다. 마태복음은 첫 장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족보를 내세움으로써 왕이 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강조한다. 족보가 생략된 마가복음은 이 땅에 오셔서 섬기고 고난 당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누가복음은 완전하신 인간이셨던 예수님의 모습, 곧 인자로서의 예수님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한편 요한이 그리고 있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세상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시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은 예수님 역시 하나님과 같은 신적 존재라는 의미이다. 그러기에 그의 복음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하셨고 만물을 창조하실 때도 하나님과 함께하셨다는 선포로 시작된다(요 1:1~3).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만물을 창조하셨던 분이시며 이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기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라는 고백의 결론은 ‘그 이름을 힘입어 얻게 되는 생명’이다. 그 생명은 새로운 시대의 생명이며 ‘종말론적인 생명’이며 구원자의 은혜를 힘입어 그리고 그와 연합함으로써 이 세상에서 미리 맛보는 다가올 세계의 생명이다.” 요한은 이처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창조주가 되시는 예수님,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을 선포함으로써 그것을 듣는 사람들에게 참된 생명을 주고 그들이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교제를 누리길 소망하고 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요일 1:3). 조지훈 목사(굿피플 사목)
  • 2023.08.11

    설교자 요한(Ⅰ)
  • ‘보아너게’라는 별칭을 가졌던 사도 요한 예수님과 만남 통해 거듭나고 변화돼 확고한 신앙에 근거해 복음 선포 신약성경에서 ‘요한’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책은 모두 다섯 권이다. 요한복음,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요한계시록. 전통적으로 교회는 이 다섯 권의 책을 쓴 사람을 예수님의 제자였던 요한으로 이해해왔다. 설교자로서 요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영적으로 어떤 변화를 경험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요한과 그의 형제 야고보가 세베대라는 사람의 아들들이었다고 소개하는 마가복음은 이 형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덧붙이고 있다.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막 3:17). ‘보아너게’라는 말은 히브리어에서 온 것으로 ‘소란’(tumult) 또는 ‘대소동’(uproar)이라는 의미이다. 예수님이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에게 그와 같은 별칭을 붙여주신 이유는 감정이 격발하는 그들의 성향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런 성격의 소유자였다는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누가복음 9장에 등장하는 사건이다. 구약시대 북왕국의 수도였던 사마리아는 앗수르에 의해 멸망했고 앗수르의 이방인 이주 정책에 의해 사마리아 지역에는 유대인과 이방인 간 혼인으로 인한 혼혈 민족이 생기게 됐다(왕하 17:24-41). 순수한 혈통이라 자부했던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인들은 순수 혈통을 더럽힌 혼혈 민족이 되고 말았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간의 적대적 감정이 본격화한 것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 유대 땅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의 성전 건축을 사마리아인들이 방해했기 때문이었다(스 4장). 그와 같은 역사적인 사건들로 인해 예수님 당시까지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서로 적대적인 상태로 살아가고 있었다. 예수님이 자라셨던 갈릴리 지역에서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서는 두 지역 중간에 위치한 사마리아를 지나쳐야 했다. 그러나 앞서 말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간의 적대감으로 인해 많은 유대인은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지름길을 버려두고 요단강을 건너 사마리아 맞은 편 지역을 지난 뒤 다시 요단강을 건너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누가복음 9장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던 예수님은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하길 원하셨고 이를 위해 사마리아의 한 마을에 몇 사람의 제자들을 보내셨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이 예수님과 그 일행이 자신들의 마을을 지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와 같은 소식을 접한 야고보와 요한은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눅 9:54)라고 말했다. 예수님 일행을 거부하는 사마리아인들에게 불을 내려 응징하자는 것이었다. 야고보와 요한은 ‘보아너게’라는 별칭에 걸맞는 행동을 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요한은 어떤 사람이 귀신을 내쫓는 것을 보고 자신이 그들을 제지했다고 말했던 적이 있으며(눅 9:49~50), 예수님에게 무엇이든지 자신들이 구하는 것을 해주실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막 10:35~44). 이렇듯 세베대의 아들 요한은 “폭력적이며 화를 잘 내는 동시에 또한 매우 자기중심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측근으로 삼으셨고, 늘 함께하셨으며,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는 순간에는 자신의 어머니를 그에게 의탁하셨다(요 19:26~27). 그는 자신의 복음서에서 자기 자신을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제자”라고 기록하고 있다(요 13:23, 19:26, 20:2, 21:20, 24). 무엇이 조급하고 폭력적이던 요한을 변화시킨 것일까?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그런 그를 부르셨고, 사랑하셨고, 함께하셨던 예수님의 사랑 때문이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할 잠재력이 있음을 보신 예수님의 선택 때문이었다. 예수님의 용납과 사랑과 인정을 통해 야생마 같던 요한이 “강하면서도 온유하고, 직선적이면서도 자애롭고, 용기가 있으면서도 겸손한 사람으로 변화”된 것이다. 이현웅 교수는 “설교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확고한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라며 “자기가 확신하는 것만이 확신 있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요, 듣는 사람에게도 확신 있게 받아들여지게 된다”라고 말했다. 설교자로서 요한이 이 땅에서의 예수님의 삶은 물론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해 확신 있게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분명히 변화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을 변화시켜주신 예수님에 대한 확고한 신앙이 있었고 그 신앙에 근거해 예수님의 복음을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지훈 목사(굿피플 사목)
  • 2023.07.07

    설교자 바울(Ⅲ)
  • 성경뿐 아니라 다양한 자료를 설교에 사용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 알아 청중이 원하는 것 아닌 ‘반드시 들어야 할 말씀’ 전해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울 설교의 세 번째 특징은 그가 어느 곳에서나 복음을 전했다는 점이다.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곳은 유대인의 회당, 고등법원, 시장, 가정집, 감옥 등 다양했다. 유대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행 13:16~41), 거리에서 이방인에게 전한 메시지(행 14:15~17), ‘강의실’에서 지성인들에게 보낸 메시지(행 17:22~31)를 통해 우리는 바울이 어디에서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복음의 증인으로서, 그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딤후 4:2) 어디서나 말씀을 전했던 것이다. 네 번째로 바울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성경뿐만 아니라 다른 자료들을 사용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사도행전 17장 15~34절은 아덴(아테네)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바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스의 수도였던 아덴은 로마, 알렉산드리아와 더불어 세계 3대 도시 중 하나였고 세계 문명의 발상지로 철학, 문학, 예술 등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였다. 바울이 이곳을 방문했을 당시 아덴은 로마에 합병된 상태였지만 여전히 자유시의 지위를 얻고 있었다. 아덴에 도착한 바울은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경건한 이방인들을 상대로 설교했고 아레오바고 광장에서 에비오구레(에피쿠로스)와 스도이고(스토아) 철학자들과 만나 변론을 벌였다. 에피쿠로스학파는 쾌락을 삶의 최고의 선으로 여겼다. 반면 창조를 부인하고 생명의 발생이나 운명을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했으며 사후의 심판이나 내세를 믿지 않았다. 한편 금욕적이었던 스토아학파는 사후의 심판이나 내세를 부정했지만 사물의 영원성을 믿었다. 아레오바고 광장에서 이방 철학자들을 향해 선포된 바울의 설교는 이방인들을 직접으로 상대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설교하면서 바울은 당시 철학적인 내용을 토대로 설교했다. 특히 그는 그리스 시인이었고 크레타의 현인으로 알려진 에피메니데스와 클린티스의 시를 인용했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행 17:28). 바울이 아덴의 이방인들을 상대로 설교하면서 이방 시인의 시를 인용한 것은 그들이 구약성경의 내용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그와 같이 이방 시인의 시를 인용한 것은 파격적인 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구약성경이 아니라 이방인들이 알고 있는 내용으로부터 설교를 행함으로써 자신이 전하는 내용을 그들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들을 수 있도록 했다. 효과적인 복음 전파를 위해 다양한 자료를 사용하는 바울의 모습은 현대 설교자들에게도 도전이 되는 부분이다. 바울의 설교가 갖는 다섯 번째 특징은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비시디아의 안디옥에 도착한 바울이 안식일에 회당에서 설교하는 모습을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행 13:16). 이 구절을 쉬운성경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바울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짓을 해 가며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 여러분, 제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현대 설교학자들은 설교에서 있어서 비언어적 요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설교자의 메시지가 청중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언어적 요소가 미치는 영향이 35%에 불과한 것에 비해 비언어적 요소(얼굴표현, 눈맞춤, 손의 움직임 등)가 미치는 영향은 65%에 달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설교에서 비언어적 요소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 설교가 그런 바울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자신의 설교를 통해 성도들이 원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이 듣기 원치 않는, 그러나 그들이 반드시 들어야 하는 말씀도 선포했다.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에서 바울은 잠깐 머물렀던 밀레도에서 에베소의 장로들을 초청했다(행 20:17). 그들을 향한 권면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행 20:20).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행 20:27). 바울은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주저하지 않고 전했다. 그들이 듣기 원하는 것을 선포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들어야만 하는 말씀을 전한 것이다. 바울은 2000년 전에 살았던 설교자이지만 그가 행한 설교의 내용과 형식은 현대 설교자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그의 행적과 편지는 오늘을 살아가는 설교자들에게 진정 복음을 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가 에베소 장로들에게 행했던 다음과 같은 설교의 구절이 현대 설교자들의 마음에 여전히 큰 울림으로 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조지훈 목사(굿피플 사목)
  • 2023.06.09

    설교자 바울(Ⅱ)
  • 설교 대상에 깊은 관심과 이해 가져 각 사람에 맞게 친숙한 내용으로 전달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울의 설교를 통해 우리는 그의 설교가 가지는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사도행전에는 모두 24개의 연설이 담겨있는데 이는 사도행전의 약 3분의 1에 해당한다. 이중 바울의 연설은 9개이며 6개가 설교라고 할 수 있다. 이 설교들은 비시디아 안디옥(13:16~41, 46~47), 루스드라(14:15~17), 아덴(17:22~31), 밀레도(20:17~38), 예루살렘(22:1~21, 23:1~11), 가이사랴(26:1~32) 등에서 행한 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바울은 여러 곳에서 설교를 행했을 것이다(9:20, 22, 28~29). 사도행전에서 발견되는 바울의 설교의 첫 번째 특징은 목양 설교(pastoral preaching)와 전도 설교(evangelistic preaching)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C. H. 다드와 A. M. 헌터는 자신들의 책 『설교의 원형과 그 발전: 케리그마』에서 초대교회의 설교를 디다케(didache) 설교와 케리그마(kerigma) 설교로 나누고 있다. 디다케 설교는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 즉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믿음이 성숙되도록 양육하고 가르치기 위한 설교이다. 이를 목양 설교라고 할 수 있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행한 목양 설교의 전형은 사도행전 20장 18~35절에 기록된 것이다. 제3차 선교여행을 마친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이 여정 속에서 밀레도에 도착한 그는 에베소에 있는 교회 장로들을 불렀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유언과도 같은 설교를 행한다. 그의 설교의 요지는 앞으로 있을 환난의 때를 대비해 자신이 교훈한 것들을 기억하며 자신의 사역을 이어서 잘 감당해달라는 것이었다.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 20:35). 바울은 자신이 가장 오랫동안 머물렀던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을 불러 목양의 관점에서 설교했던 것이다. 한편 케리그마 설교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설교, 즉 전도설교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제시하고 전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행한 것이다. 바울이 선교여행 가운데 가장 많이 했던 설교가 이것이었다. 바울의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은 유대인들, 헬라인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했던 이방인들이었다(13:16). 중요한 사실은 바울은 그 대상에 따라 설교의 강조점을 조금씩 달리했다는 점이다. 유대인들을 향한 설교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를 행했다. 사도행전 13장 16~41절에 기록된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행한 바울의 설교는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를 언급한 뒤에 그 역사의 종결점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로 결론을 맺고 있다.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행 13:32~33). 바울은 유대인들이 친숙한 구약성경의 내용으로부터 설교를 시작했고 이를 근거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시했다. 반면 이방인을 향한 바울 설교의 강조점은 하나님이었다. 에덴에서 행한 설교(17:22~31)를 보면 하나님이 창조주가 되시며(24절), 인간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시는 분이며(25절), 인간의 모든 것을 관장하시는 분이며(26절), 인간과 관계하시는 분(27절)임이 강조되고 있다. 이렇듯 바울은 목양설교와 전도설교를 행했고 각각의 설교를 행하면서 대상에 따라 설교의 강조점을 달리했다. 바울이 행한 목양설교와 전도설교를 통해 발견하는 그의 설교가 가지는 두 번째 특징은 그가 설교 대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을 향한 설교를 그들이 친숙한 내용에서부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바울은 대상에 따라 설교의 강조점을 달리했다. 유대인들에게는 그들에게 친숙한 구약성경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에게로 이어지는 구원의 역사를 다루었던 반면 이방인들에게는 그들이 믿고 있는 신들을 이야기하면서 하나님이 어떤 면에서 이방신들과 다른지를 다루고 있다. 바울이 설교 대상에 따라 강조점을 달리했다는 것은 그만큼 설교 대상에 대해 깊은 관심이 있었다는 방증이다. 그들이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그 관심사를 어떻게 복음에 접목시킬 것인지, 어떻게 설교를 시작해야 그들이 그의 설교에 귀를 기울일 것인지 등 설교 대상에 대한 깊은 관심과 이해가 바울에게 있었던 것이다. 조지훈 목사(굿피플 사목)
  • 2023.05.12

    설교자 바울(Ⅰ)
  • 바울 메시지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 교회공동체에 13개의 편지 보내며 권면 신약성경은 27권으로 되어있다. 이중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가 4권이고 역사서(사도행전)가 1권이며 예언서(요한계시록)가 1권이다. 이상의 6권을 제외한 21권이 편지이다. 그런데 21개의 편지 중에서 바울이 쓴 것이 무려 13개나 된다. 신약성경의 절반을 바울이 쓴 것이다. 바울 서신은 크게 교회공동체를 위한 것이 9개(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이고, 개인에게 보낸 것이 4개(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이다. 초대교회 당시 편지는 단순히 편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편지는 그것을 보낸 사람을 대신했고 보낸 사람이 가진 권위를 그대로 가지는 것이었다. 즉, 편지는 송신자와 동일시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편지는 단순히 글로 여겨지지 않았다. 소아시아 여러 지역에 퍼져있던 교회에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문맹자들이 많았다. 따라서 바울의 편지들은 대독자(代讀者)에 의해 큰 소리로 읽혀지도록 의도되었다. 특히 데살로니가전서가 대표적인 예이다.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주라”(살전 5:27). 또한 바울의 편지는 한 지역 또는 한 교회에서만 읽혀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교회에서 읽혀지도록 의도되었다.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골 4:16). 바울의 편지들을 통해 우리는 그가 유대적인 배경과 헬라적인 배경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는 헬라 도시인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유대 가정에서 유대적인 관습에 따라 성장했다(빌 3:5). 그는 유대적인 유산에 긍지를 가지고 있었고(롬 9:3, 11:1), 늘 율법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빌 3:6). 그는 유대 전통을 수호하는데 있어서 다른 이들보다 더 열심이 있던 사람이었다(갈 1:14). 다소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것과 유대적인 전통 속에서 교육받고 성장했다는 것은 바울이 헬라문화와 유대문화에 모두 잘 적응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헬라 도시에 잘 전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가 방문하는 어떤 도시가 되었던 가장 먼저 유대인들의 회당을 찾았던 이유 역시 그의 출신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 가장 적절했던 바울을 준비시키셨고 가장 적절한 때에 그를 부르셔서 사용하셨던 것이다. 바울의 이름으로 보내진 신약성경의 13개의 편지와 사도행전에 기록된 그의 선교활동을 통해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설교에 대해 많은 부분을 알 수 있다. 바울의 설교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그리스도’이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도망간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위해 가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다(행 9장). 회심을 경험한 것이다. 바울이 경험한 회심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회심과는 조금은 다른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이미 유대인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바울은 “불신앙에서 신앙으로, 죄에서 의(義)로 회심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바울의 회심은 예수님을 만남으로서 한 관점에서 다른 관점으로의 변화라고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바울에게 있어 구원은 자신의 의로운 행위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롬 9:30).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바울은 당시 사도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선포했던 내용이 옳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율법을 지킴으로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됐다. 구원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을 통해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다. 바울은 더 이상 다른 메시야를 기다릴 이유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이야말로 진정한 메시야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진정한 메시야로 깨닫게 되는 순간 바울은 구약성경을 비롯해 모든 것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예수님이라는 렌즈를 통해 바울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새롭게 보고,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이다. 바울이 이와 같이 세상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는 사실을 사도행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행 9:18). 예수님 중심으로 모든 것을 보게 되면서 바울은 구약성경의 사건 역시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고린도전서 10장에서 바울은 구약 출애굽기에 기록된 홍해 사건과 광야 사건을 그리스도를 통해 해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침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 10:1~4). 갈라디아서에서도 바울은 이삭과 이스마엘의 이야기를 그리스도를 통해 새롭게 해석해낸다. 이삭과 이스마엘은 성령을 따라 난 자와 육체를 따라 난 자를 대표한다는 것이 바울의 해석이다(갈 4:22~31). 다메섹으로 가는 길 위에서 만난 부활하신 예수님은 바울에게 이 세상과 성경을 새롭게 읽어내는 새로운 렌즈가 되어주신 것이다. 조지훈 목사(굿피플 사목)
  • 2023.04.07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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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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