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마웅갑 목사(여의도순복음신안산교회 담임) - 하나님 나라의 확장자로 살아가기
  • 최근 교회에 등록한 성도가 출석하게 된 동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회사의 과도한 업무로 항상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승진 경쟁, 인간관계, 경제적 부담이 그를 짓눌렀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일하는 동료의 모습에서 뭔가 다른 점을 발견했다. 같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평안함과 여유로움이 있었다. 도대체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 지 궁금했던 차에 교회 출석을 권유 받고 전도의 열매가 맺어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도의 자연스러운 출발점이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다운 삶을 살 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다름의 근원’에 대해 궁금해 한다. 폴 트립은 『지금 누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가 현재적 실재라고 강조했다. 이는 전도에 있어 핵심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우리는 미래의 천국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경험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현실을 나누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한 간호사는 환자들을 대할 때 다른 동료들과 달리 두려움 대신 평안함을 보였다. “죽음도 두렵지 않아요. 저에게는 영원한 소망이 있거든요.” 그녀의 고백을 들은 동료들이 하나둘씩 교회를 찾기 시작했다. 또 다른 자연스러운 전도의 열매였다. 그것은 말이 아닌 삶으로 하나님 나라를 증명한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전도를 ‘부담스러운 의무’로 생각한다. 하지만 리처드 포스터가 『영적 훈련』에서 말했듯 진정한 영적 실재를 경험한 사람은 그것을 나누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평안을 맛본 사람에게 전도는 자연스러운 흘러넘침이다. 제리 브릿지스가 『거룩한 삶의 추구』에서 말했듯 우리의 일상적인 거룩함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전도 도구다. 직장에서의 정직함, 가정에서의 희생적 사랑, 이웃을 향한 친절함이 모두 하나님 나라를 증명하는 증거가 된다. 전도를 의무가 아닌 특권으로 생각하자.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소식을 가진 사람들이다. 사도행전 3장에 나오는 베드로와 요한처럼 우리에게 은과 금은 없지만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외로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두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평안을 전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가치를 아는 그리스도인으로의 특권을 누리자.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면 우리 삶 자체가 전도가 된다.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하나님 나라의 현실을 증명할 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근원이신 하나님을 찾게 된다. 전도하기 복된 계절이 왔다.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자로서 이 땅에 복음의 향기를 퍼뜨리며 살아가자.
  • 2025.09.12

    이용우 목사(여의도순복음횡성교회 담임) - 뜻 밖의 손님, 나그네 대접의 즐거움
  • 강원도 횡성에서 목회한지 어느덧 2년이 훌쩍 넘어 3년을 바라보고 있다. 지리적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1시간 20분이면 오는 거리이기 때문이다. 횡성이라는 위치상 심리적 거리가 멀어서 많은 분들이 시골 목회를 하는 줄 아신다. 그래서 이번 여름에는 선교하러 청년들이 많이 다녀갔다. 오지 선교를 꿈꾸고 온 청년들에게 미안했지만 여름사역에 함께 힘을 쏟아주어 너무 반갑고 고마웠다. 여의도순복음횡성교회는 읍내에 위치하고 있고, 주변에 아파트와 초, 중, 고등학교에 둘러 쌓여 도시 목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성도들 가운데 소를 키우시는 분이 한 분도 없을 정도다. 횡성은 인구가 2024년 7월 기준, 4만 6000명 정도이며 횡성하면 유명한 한우 사육두수는 6만 1000두정도 된다. 춘천에서 사역하는 친구 목사님이 계시는데, 그 목사님은 손님이 오시면 늘 ‘춘천 닭갈비’를 대접한다. 하지만 횡성은 한우가 유명해서 손님이 오시면 늘 난감하다. 횡성 한우는 일반 한우보다 값이 더 비싸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뜻 밖에 손님이 오면 대접에 고민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우리 교회는 1층에 요양원을 운영 중이다. 대부분의 치매 어르신을 천국 갈 때 까지 모시고 있다. 요양원은 우리 인생이 나그네임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현장이다. 교회에도 수많은 나그네가 다녀간다. 아는 지인 뿐 아니라 뜻 밖에 찾아오는 손님들도 많다. 2년 전 여름, 태풍 카눈이 북상했을 때 파주 예수전도단에 속한 팀이 2박 3일간 거처를 찾고, 사역을 하겠다고 해 극진히 대접했다. 그 팀을 통해서 우리 교회에 잃어버린 한 청년의 영혼이 소생되는 기쁨이 있었다. 그 팀은 매년 여름 마다 찾아와 위로를 더해주고 간다. 최근 교회 인근 어르신들에게 ‘말복 삼계탕’을 대접한 것도 그분들의 후원이 큰 몫을 했다. 올해 여름 우리교회에 본교회 가스펠청년들과 순복음강남교회 청년들, 여의도순복음구로교회 청년들이 와서 RK사역을 하고 돌아갔다. 그들도 우리 교회도 모두 대접하기에 서로 힘썼다. 그래서 모두에게 큰 기쁨이 있었다. 나그네 대접의 힘씀은 당연하다. 성경은 나그네를 대접하라고 당부하고 있으며 뜻 밖의 손님 대접에는 하나님의 큰 보상이 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곁에서 세 나그네(주의 천사)를 극진히 대접한 이야기는 후에 아내 사라에게 아들 이삭이 태어날 것을 예고 받고, 이어서 소돔을 위해 아브라함이 중재하는 장면으로 이어지는 커다란 사건이었다. 횡성에 뜻 밖에 오실 분들은 극진히 환영한다. 오셔서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가시길 바란다. 대접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 2025.09.05

    임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군산교회 담임) - 도전, 살아난다
  • 출석 교인이 아직 100명이 안 된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라는 사자성어를 되뇌며 어느 날 면접장으로 향했다. ‘우리 목사님! 우리 통장님!’이라고 3년 후 쓸 책 제목까지 정해놓고 말이다. 동네 주민들을 밑바닥부터 쌍끌이 조업으로 건져 올리려면 합법적인 신분이 필요하다. 집집마다 전도할 때 “안녕하세요. 통장입니다!”만한 명찰이 또 없겠다 싶었다. 면접 당일, 탱탱한 꼬치어묵 같았던 그 확신은 부풀렸던 복어 배 꺼지듯 축 처져버렸다. “목사님! 통장 지원은 왜 하신 거예요? 저희 일하기 부담스러워요.” 면접관들의 볼멘소리였다. 강원도에서만 잡히는 도루묵을 왜 군산 어시장에서 찾느냐는 소리처럼 들렸다. 다시스로 도망가던 배 밑창 요나의 깨어남처럼 당황스러웠다. 여리고성을 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끝날 외마디 함성을 외쳤을 때 여리고성이 무너졌던 기적은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목적은 분명했으나 적확한 전술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군산에는 예수님 제자 마태가 앉아있을 법한 ‘호남관세박물관’이 있다. 세워진 지 120년이 되어가는 일본식 근대 건축물이다. 군산은 이렇게 지역의 역사성이 깊다. 한 발 더 뻗으면 광활한 고군산 군도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는데 ‘환경으로서의 지역’이 주는 자산이다. 로컬전문가들은 지방 소도시가 살아나려면 ‘지역과 환경과 사람’이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이 모든 것을 움직이는 것은 역시 ‘사람’이다. 교회가 그 ‘살아남’의 중심에 있을 수밖에 없는 근거다. 살리려면 끌어내야 한다. 한국인의 사회적 고립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울증 환자는 100만명을 넘어섰고 외로움 지수도 영국보다 더 높다. 교회가 멘탈 케어 커뮤니티로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목회데이터연구소의 주장도 과하지 않다. 얼핏 서울 등 대도시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실제는 지방 소도시에서 그 고립도는 더욱 심각하다. 교회는 사회적으로 붐을 일으킬 수 있는 어젠다를 생성해 내야하고 사람들을 끌어낼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야 한다. 동시에 불신자들이 자연스럽게 성도들과 섞일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남녀노소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인프라가 축적된다면 교회의 도전도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혁신과 성장을 향한 도전은 계속되어야 한다. 주한 외국인들을 선교적 자원으로 품기 위해 내가 ‘한국어교원자격’에 도전하고 있듯이… 도전 100명, 살려내야 한다.
  • 2025.08.29

    임지택 목사(천안순복음소망교회 담임) - 여름 끝자락에서 피어나는 믿음
  • ‘처서’가 지나면 계절의 공기가 달라집니다.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는 점차 누그러지고 들판에는 어느새 가을의 기운이 깃들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바쁘고 뜨거웠던 여름이 저물어 갈 때 우리 마음도 함께 지쳐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바로 이 순간 우리는 믿음 안에서 다시 중심을 잡아야 할 때임을 깨닫게 됩니다. 성경은 우리 삶의 모든 계절에 각기 다른 의미가 있음을 분명히 알려 줍니다. 전도서 3장 1절은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여름의 뜨거운 열정도 소중하지만 동시에 쉼과 회복이 필요한 시간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또 하나의 때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여도 그 시간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은밀하게 다듬고 계십니다. 이 특별한 시기를 영적인 전환점으로 삼아 보시길 바랍니다. 단순히 더운 계절이 지나가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의 삶과 믿음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새롭게 정돈되는 은혜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설령 여전히 분주하고 마음이 복잡하더라도 잠시 멈춰 하나님 앞에 서 보십시오. 하나님은 쉼 없이 달려가는 우리를 기다리시며 상한 심령을 따뜻하게 감싸 주시는 분이십니다. 가을이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왔습니다. 풍성한 열매의 계절입니다. 그러나 그 열매는 결코 우연히 맺히지 않습니다. 여름 동안의 땀과 인내, 그리고 눈물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실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지치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입으며 예기치 못한 문제들 앞에 마음이 무너질 때도 있지만, 그 모든 순간에도 하나님은 분명한 뜻을 두시고 회복의 길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순복음의 믿음은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감사와 절대 긍정으로 반응하는 믿음입니다. 현실이 불안정할수록 우리는 더욱 굳건히 믿음을 선택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이 우리의 믿음을 다시 바로 세울 때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이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낙심을 멈추고 감사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염려와 두려움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삶을 다듬으시며 다가올 계절을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여름의 끝자락에 서 있는 지금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이 계절이 끝나는 자리는 새로운 믿음의 계절이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당신의 계절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은혜의 새 계절로 들어가는 문 앞임을 믿으십시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사 40:29).
  • 2025.08.22

    김태선 목사(여의도순복음목포교회 담임) - 고정관념을 버리면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다!
  • 2011년 여의도순복음교회 제1호 독립지교회가 되면서 본격적인 순복음의 신앙을 세워 나가고 있는 여의도순복음목포교회는 올해로 창립 21주년을 맞이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코로나 팬데믹과 교회 내 어려운 문제들이 생기면서 교회는 점점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절대 긍정과 절대 감사를 외치며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갔지만 오래된 신앙의 습관은 쉽게 변화되지 못했다. 다양한 예배와 행사를 통해 교회 분위기 전환에 힘쓰고 있던 중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조직개편과 더불어 구역예배와 지역예배 등에 변화를 주었다. 우리 교회 성도의 대부분은 주중에 생업에 종사하는 분들과 이제 연로하여 거동이 힘든 분들이다. 그래서 주중 구역예배와 지역예배 참석이 쉽지 않았고 이로 인해 구역조직이 탄탄하게 세워지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주중의 구역예배와 지역예배의 틀을 과감히 깨버리고 주일에 구역예배와 지역예배 그리고 교구 연합 성령대망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기존 주일 1시 예배는 예전 예배의 틀을 벗어나 구역장은 구역원들과 구역예배를 드리고 매주 2개 구역은 담임목사와 지역예배를 드리면서 전 성도가 교회 내 정해진 장소에서 구역예배와 지역예배를 드리도록 했다. 이를 통해 주중에 드리기 힘들었던 구역예배와 지역예배는 주일에 전 성도가 교회 곳곳에서 함께 드리는 예배가 되었다. 주중에 참석률이 저조했던 상황과는 다르게 주일에 드리는 구역예배와 지역예배는 전 성도가 마음을 같이 할 수 있었고 구역이 활성화되어 이전과 다른 교회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주중 사역은 심방에 중점을 두고 지역별로 사업장과 가정 심방을 하여 상담 및 기도로 성도 각 개개인의 신앙이 회복되는 것에 초점을 맞춰 진행하고 있다. 또한 1개 교구로 운영되던 것을 최근 1교구(긍정교구), 2교구(감사교구)로 교구 분할하여 각 교구 내에서 모이고 협력하는 분위기를 만들었고 1교구와 2교구는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며 전도에 열심을 다하고 있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던 생각의 틀을 깨고 나니 교회 분위기에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오게 되었고 예배가 활성화되니 성도들의 닫혔던 마음들도 하나둘씩 열리기 시작했다. 여의도순복음목포교회는 다음 세대를 위한 공간을 마련 중이며 순복음 다운 교회를 꿈꾸며 오늘도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달려가고 있다. 새로운 변화의 시작은 고정관념을 버릴 때 시작된다.
  • 2025.08.15

    변성우 목사(여의도순복음강동교회 담임) - 좋은 일이 오려나 보다!
  • “좋은 일이 오고 있습니다.” 제가 사역하는 여의도순복음강동교회의 인사입니다. 우리 교회는 2023년 11월 1일부터 강동구 천호동에서 새롭게 시작하였습니다.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매일 매일 성실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의 인도함 속에 지내다 보니 벌써 21개월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환경과 상황은 좋을 때보다 힘들 때가 더 많았고 현재도 어려움 속에 있는 분들도 있지만 성도들은 좋으신 하나님을 믿고 소망하며 늘 그것을 입술로 고백하며 기도하고 서로 축복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현재의 고난과 어려움에 소화되지 않고 매일 매일 승리의 삶을 살며 누리고 있습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소망하고 믿음으로 살며 서로 사랑하며 기쁨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이웃을 섬기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습니다.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좋은 일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런 믿음을 갖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알고 믿으면서도 우리가 맞이하는 현실은 이 믿음대로 사는 것을 어렵게 합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믿음의 담대함보다는 걱정과 근심을 더하게 하기도 합니다. 바벨론의 침공과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며 유다의 회개를 촉구했던 예레미야는 유다가 멸망할지라도 하나님의 계획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며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렘 29:11). 그리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시며 응답하시고, 심지어 크고 비밀한 것을 알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렘 29:12~13, 렘 33:3). 강동교회 성도들은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아픈 사람이 없고 가난한 사람이 없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란 기도를 드립니다. 이렇게 기도하며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좋은 일들을 기대하고 소망하니 믿음의 지경이 좀 더 넓고 깊어진 것 같습니다. 큰 부흥은 아니더라도 날마다 성도가 늘어나며 구원받는 사람의 수가 더해지고 이런 일들이 우리가 좋으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합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소원하는 것을 바라보며,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되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이 ‘좋은 일이 오려나 보다!’란 기대와 소망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좋은 일들을 만나게 되고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기적이 일어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에게 엄청나게 좋은 일이 오고 있습니다.
  • 2025.08.01

    김현동 목사(마포2대교구장) - 지금 문안(問安)하세요!
  • 얼마 전 대교구로 발령을 받아 사역을 시작하면서 어떤 준비가 필요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때였다. 때마침 목회의 대선배이신 한 목사님으로부터 격려와 조언의 말씀을 듣게 되었는데, ‘인사 잘하세요!’라고 조언해 주시는 것이었다. 평상시 본인께서 인사를 잘하시는 모범을 보여주신 분이었기에 ‘인사’를 강조하신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했지만 많은 강조 사항 중에서도 ‘인사’를 제일 먼저 말씀해 주신 것은 뜻밖이었다. 수십 년 목회 사역을 해오신 대선배님께서 사역의 핵심 노하우를 조언해 주셨을 터인데 ‘인사’가 이토록 중요한지는 이제껏 알지 못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사’에 대한 표현은 ‘문안’(問安)이다. 헬라어로는 ‘아스파사스데’라고 하며, ‘인사하다’, ‘문안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러면 성경에 ‘문안’이라는 표현을 가장 많이 쓴 사람은 누구이고, 어떤 성경에서 가장 많이 강조하고 있을까? 목적 지향적으로 보이는 바울이 ‘문안’(問安)이라는 관계적인 표현을 가장 많이 사용하였고, 그가 지은 ‘로마서’에서는 16장이 ‘인사’ 바로 ‘문안’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신약학자는 ‘문안’을 뜻하는 헬라어 단어 ‘아스파사스데’가 신약 성경 전체를 통틀어 총 59회 등장하는데, 이 중 41회가 바울 서신서에서 사용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바울을 ‘인사를 중시하는 매우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고까지 평가하고 있다. 마지막 장인 16장을 온전히 ‘문안’에 대한 내용으로 채우고 있는 로마서의 경우에는 ‘문안’에 대한 언급을 무려 17회나 반복하고 있다. 30여 명이 넘는 다양한 배경과 신분을 가진 사람들에게, 심지어 로마에 가 본 일이 없는 바울은 얼굴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문안’하도록 명령하거나 ‘문안’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목회 대선배님의 귀한 조언은 대교구 사역에 큰 도움과 활력을 주고 있다. 그저 밝은 얼굴로 ‘인사’ 한번 드렸을 뿐인데, 특별한 용건은 없지만 건강하신지 어려운 일은 없으신지 ‘문안’ 전화 한번 드렸을 뿐인데 성도님들로부터 돌아오는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바울과 같이 아무리 능력 있고 탁월한 사도라고 할지라도 ‘문안’과 교제 그리고 위로하는 것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것은 전도와 선교는 혼자서 감당하는 것이 아니며 이러한 ‘인사’가 어떠한 신학적인 교리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믿음의 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고 풍성한 교제가 일어나게 하는 ‘문안’, 말씀대로 실천할수록 더욱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된다. 오늘 성령님께서 마음 속에 생각나는 이에게 주저 말고 연락해 보면 어떠할까? 지금 문안(問安)하세요!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롬 16:16).
  • 2025.07.25

    윤호근 목사(은평대교구장) - 선택
  •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은 B와 D사이의 C다”라고 말한다. 인생은 태어남(Birth)과 죽음(Death) 사이에 있는 선택(Choice)의 연속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한 연구에 따르면 평범한 사람이 하루 동안 내리는 의사 결정은 약 3만5000회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는 눈을 뜨는 순간부터 크고 작은 선택 앞에 놓인다. 오늘 어떤 옷을 입을지 어떤 길로 갈지 무엇을 먹을지…. 삶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그리고 우리는 종종 “그때 왜 그렇게 선택했을까?”라는 후회 속에 머물게 된다. 인간은 기억의 존재이다. 그런데 이 기억의 창고는 유독 실패, 후회, 상처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더 깊이 저장한다. 이러한 기억들은 때때로 우리의 발걸음을 붙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선택을 막는 보이지 않는 굴레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우리의 모든 선택 위에는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이 있다는 사실이다. 사르트르는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라고 말했지만 하나님의 자녀에게 “인생은 B와 D 사이의 C, 곧 Christ(그리스도)”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지만 그 모든 선택 가운데 중심되시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요 14:6),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 길에 주님은 함께 하시며 때로는 우리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길 위에서도 주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을 이루어 가신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야훼시니라”(잠 16:9). 잠언 기자는 우리가 어떠한 선택과 계획을 할지라도 결국 우리를 이끄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선포한다. 때때로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고 설령 실수하고 넘어질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거나 떠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 실패마저도 직조하셔서 놀라운 은혜의 작품으로 빚어 가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 안에 모든 선택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절대 긍정하고, 선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절대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 2025.07.18

    김진태 목사(영등포대교구장) - AI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의 지혜
  •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 지능)가 현실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인간의 영역을 점유하고 대체하는 모습은 놀라움을 넘어 때로는 위협감마저 느끼게 합니다. 공영방송 신입사원 채용 광고에 가상 인물이 등장하고, 범죄 재연 영상이 AI로 대체되는 사례는 기술 발전의 속도와 파급력을 실감하게 합니다. 이러한 AI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AI 기술을 무조건 거부하거나 두려워하기보다 기술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분별력 있게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AI는 인간의 편의를 증진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강력한 도구이지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한 존재는 아닙니다. 일본은 인간을 대체할 로봇을 서비스, 복지 등 여러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점점 사람을 닮아가고 사람을 대체하는 AI 기술력이 만들어져도 그것이 인간의 모든 영역, 특히 영적인 영역까지 대체할 수 없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AI는 방대한 성경 지식을 학습하여 설교문을 작성하거나 신학적 논쟁에 대한 답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AI가 제공하는 지식은 데이터 기반의 논리적 추론일 뿐 인간만이 경험할 수 있는 영적인 깨달음이나 감동과 계시를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AI를 신앙의 보조 도구로 활용하되 궁극적인 진리의 원천은 오직 성경과 하나님의 계시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AI는 지능적이고 효율적인 작업을 수행할 수 있지만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사랑, 연민, 공감, 창의성, 도덕적 판단력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영적인 차원은 결코 모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첫째, 깊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이루는 개인적 영성과 둘째, 깊은 관계를 맺는 능력, 아름다움을 느끼고 창조하는 능력 그리고 고통받는 이웃에게 손을 내미는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사회적 영성을 발전시켜야 할 것입니다. AI는 인간의 관계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가상현실, 소셜 미디어 등 디지털 환경 속에서 인간 관계는 더욱 복잡해지고 때로는 피상적으로 변모할 수 있습니다. AI는 정보를 제공하고 효율성을 높일 수 있지만 인간적인 공감, 위로, 돌봄 등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통한 관계 형성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따뜻하고 친밀한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강화해야 합니다. 소외된 이웃을 돌보고 고독을 느끼는 이들에게 위로를 제공하며, 디지털 피로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영적인 안식처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직 믿음 안에서 진정한 인간 관계의 가치를 회복하고 신앙공동체의 본질적인 역할을 더욱 강조해야 합니다.
  • 2025.07.11

    김정대 목사(용산대교구장) - 신앙의 구간단속 - 십자가 앞에 멈추는 시간
  • 내가 살고 있는 파주에서 서울로 오가는 길목마다 구간단속 카메라가 있다. 한 지점을 빠져나가던 속도만으로는 과속 여부를 알 수 없어서 시작과 끝, 그 사이를 어떻게 달려왔는지 시간을 계산해서 판단한다. 단속 구간 안에서는 운전자가 속도를 의식해야 하고 스스로 규정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우리의 신앙도 이와 닮아 있다. 예배의 자리에서 은혜를 받고 결단하지만 다시 삶으로 돌아가면 우리는 종종 속도를 잃는다. 세상의 흐름에 쫓기고 분주함에 밀려 주님의 뜻보다 앞서 달리기도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신앙의 구간단속’을 허락하신다. 그것은 때로 문제이며 때로 고난이고 갑작스런 멈춤이다. 하지만 그 시간은 징계가 아니라 주님의 초대이며,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속도를 줄이며 멈추고 방향을 다시 설정하라는 부르심이다. 그 구간에서 우리는 회개의 길에 들어선다. 회개는 단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속도를 자각하는 일이며 내 신앙이 너무 앞서갔는지, 혹은 주님의 마음을 잊은 채 달려왔는지를 직면하는 자리다. 이 멈춤은 두려운 시간이 아니라 내면의 정비이고 영적 점검이다. 또한 그 시간은 말씀을 다시 붙드는 순간이다. 말씀은 우리의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고 목적지를 잊지 않게 하는 나침반이다. 하나님의 뜻을 잊지 않기 위해 삶의 속도를 조율하기 위해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낮추고 다듬는다. 말씀 없는 속도는 결국 탈선으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성령은 삶의 속도와 방향을 감지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다. 조용히 말씀하시고 필요할 땐 멈추게 하신다. 주님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우리 마음에 속도표를 새기신 분이다. 신앙의 구간단속은 결국 십자가 앞에 멈추는 것이다. 십자가는 단순한 고난의 상징이 아니라, 바른 신앙의 기준이다. 세상이 달려가라 말할 때도, 십자가는 멈추라 말씀하신다. 멈춤 속에서 우리는 다시 중심을 잡고, 주님의 속도에 걸음을 맞춘다. 오늘 당신의 삶에 구간단속의 시간이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속도를 줄이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요즘 여름 금식성회가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서 열리고 있다. 잠시 달려가는 길을 멈추고 성회에 참여하여 십자가를 바라보자. 우리의 삶은 바르게 가는 것이 빠르게 가는 것보다 중요하다. 신앙은 도착보다 ‘동행’의 길이며 그 길 위에서 주님의 손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 2025.07.04

    최진용 목사(강서1대교구장) - 젊고 건강하게 사는 비법
  • 어느덧 한 해의 절반을 지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 삶을 잠시 돌아보면 나이 듦이라는 단어에 얽힌 감정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나이 든다’는 것을 곧 ‘늙는다’고 여겨 한숨을 쉬고 그래서인지 실제로 더 빠르게 노화를 경험하곤 한다. 그런데 이 노화는 단순히 신체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일본의 정신과 의사 와타 히데키는 『사람은 감정부터 늙어간다』라는 책에서 흥미로운 통찰을 전한다. 그는 “노화는 지력이나 체력보다 감정에서 먼저 시작된다”고 말한다. 지능이나 지성은 비교적 늦게까지 유지되지만 감정은 세월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감정이 먼저 늙으면 육체도 빨리 따라 늙고 반대로 감정이 젊으면 몸도 자연스레 활력을 되찾게 된다. 그러니 ‘감정의 젊음’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젊고 건강하게 사는 비결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감정의 노화를 막을 수 있을까? 성경 빌립보서 4장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기뻐하라, 관용하라, 염려하지 말라, 감사하라.” 이 말씀은 단지 마음을 다스리라는 조언이 아니다. 이 네 가지는 감정의 영역이자 믿음의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영적 무기이다. 기쁨, 관용, 감사는 건강한 감정이지만 원망과 염려는 감정을 병들게 한다. 우리 마음이 원망과 불평, 걱정과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면 그것은 이미 감정이 늙어버렸다는 증거이다. 감정도 습관이다. 자꾸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히면 어느덧 우울한 것이 일상이 된다. 감정은 기질의 영향을 받지만 훈련을 통해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다. 날마다 절대 긍정, 절대 감사를 선포하고 삶에 실천을 해 나가면 성령께서 우리의 감정을 도우시고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신다. “기뻐하고 감사하자! 사랑하고 용서하자! 염려하지 말고 여유 있는 미소로 살자!” 감정의 늙음을 거절할 때 영적 젊음을 지키고 육체도 함께 회복된다. 그것이 곧 젊고 건강하게 사는 비법이며 모든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길이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4~7).
  • 2025.06.27

    김영석 목사(선교국 담당) - 선교의 불을 다시 지필 때입니다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마 28:19). 2025년 한국 교회는 복음 선교 140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1885년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조선 땅에 첫 발을 내딛은 그날의 순종과 헌신은 140년이 지난 오늘날 세계 170개국에 2만1000여 명의 장기 선교사를 파송하는 결실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수치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이정표에 불과합니다. 신록이 짙어지는 6월을 맞아 제51회 순복음세계선교대회가 열립니다. 이번 대회는 전 세계 67개국에 파송된 673명의 선교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는 주님의 사명을 새롭게 되새기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특히 여의도순복음교회 창립 70주년을 3년 앞두고 열리는 이 대회는 한국교회 선교의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선교의 지형은 급속히 변하고 있습니다. 북반구 중심에서 남반구 중심으로, 교회 중심에서 도시와 일상 중심으로, 그리고 현장 선교에서 디아스포라 사역과 디지털 미션으로 그 흐름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안에도 300만명이 넘는 해외이주민과 다문화 가정, 외국인 유학생들이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더 이상 먼 나라의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가 복음으로 품고 섬겨야 할 ‘이웃’입니다. 이제는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시대를 넘어 현지 교회와의 깊은 협력, 다음세대 선교 인재 양성, 국내 이주민과의 연합 사역이 요청되는 시대입니다. 단지 복음을 전하는 것을 넘어서, 복음을 ‘삶으로 살아내는 선교 공동체’로의 전환이 절실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태복음 28장 19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는 140년 전 낯선 이 땅에 복음을 들고 온 선교사들의 심장이었고 오늘날 우리가 다시 붙들어야 할 사명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성령의 이름으로 선교의 불씨를 다시 타오르게 할 때입니다. 모든 성도의 기도와 헌신이 한국 교회에 다시금 뜨거운 선교의 불길을 타오르게 할 것입니다. 이 선교의 맨 앞에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선교사들이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 2025.06.20

    고영용 부목사(개척) - 교회개척은 부르심에 대한 순종이자 믿음의 여정
  • 우리 교회는 올해로 창립 67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우리 교회의 기본 사명인 교회 개척과 선교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의 사역을 계승한 이영훈 담임목사님도 교회개척 사명을 이어받아 현재까지 전국에 569개의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교회개척과 선교는 단순한 조직의 확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확장하는 가장 역동적인 사역입니다. 세계 방방곡곡으로 파송된 선교사들과 전국으로 나아가 교회를 개척하는 개척 목회자들은 낯선 땅과 익숙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눈물로 기도하며 복음을 전파했고, 그 순종의 씨앗은 오늘날 수많은 생명과 공동체의 열매로 자라났습니다. 개척목회는 쉬운 길이 아닙니다. 때로는 외롭고 이해받지 못하며, 때로는 재정적·정신적 한계 앞에서 좌절도 경험합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십자가를 지는 길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여정입니다. 하나님은 개척교회 목회자들을 이 시대의 엘리야로 부르셨습니다.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도 확실한 하나님을 붙들며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불타는 심장을 다시 품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께도 부탁드립니다. 개척교회는 뿌리 내리는 과정에서 많은 기도와 헌신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일에 여러분의 손과 무릎이 함께할 때, 주님은 여러분의 삶 또한 견고한 반석 위에 세우실 것입니다. 작은 예배당에서 드리는 찬양이 천상의 향기로 올라가고 몇 사람과 함께 드리는 기도가 도시의 영적 기류를 바꾸는 거룩한 파장이 될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새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새 일은 바로 ‘개척’을 통해 시작됩니다. 이 사명에 함께 동참하는 모든 이들에게 성령의 위로와 담대함이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우리가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작하셨기에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개척사역을 기억하며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오늘도 씨를 뿌리는 모든 사역자들과 동역자들, 기도해 주시는 모든 성도님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사 43:19).
  • 2025.06.13

    오수황 목사(대학청년국 담당) - The Holy Spirit Festival 
  •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4). 해마다 6월이 되면 우리 나라의 미래를 짊어진 믿음의 청년들이 한 자리에 모여 주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해를 거듭하며 청년들의 뜨거운 믿음과 예배의 열정이 이어져 왔으며 이번에 열릴 ‘2025 The Holy Spirit Festival’ 성회는 17회째를 맞이합니다. 2006년 시작된 성회는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순복음의 청년들과 순복음을 넘어 초교파로 한국교회 청년들을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 회복의 자리로 초대해 왔습니다. 올해는 6월 14일 장충체육관에서 ‘Keep Moving Forward’(푯대를 향하여 나아가라)라는 주제를 가지고 진행됩니다. 말씀 선포는 이영훈 담임목사님을 비롯해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줄 최고의 강사진들이 함께 합니다. 이번 성회를 통해 성령님의 인도하심 안에서 이 시대 청년들에게 비전과 사명을 회복시키고 성령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새로운 세대가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또한 청년들이 옛사람의 모습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꿈을 꾸기를 소망합니다. 아울러 각자의 삶 속에 변화와 회복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청년의 시절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체험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여 나라와 민족과 세계와 열방을 품고 나아가는 믿음의 공동체, 선교의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성회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꿈을 가지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뜨거운 찬양과 기도를 통해 하늘의 문이 열리고 성령의 불이 내리는 오순절 마가 다락방과 같은 성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번 성회를 위해 많은 분들이 기도와 물질로 후원해 주고 계시는 것도 성회를 준비하는 청년들에게는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 성회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성회가 되기를 기대하고 바라봅니다. 예배의 자리, 은혜의 자리, 축복의 자리, 치유의 자리, 회복의 자리, 하나님 나라를 위해 다음 세대가 일어나는 자리, 회복을 넘어 부흥의 자리가 되기를 선포합니다. 푯대를 향하여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주님만이 영광 받으소서!
  • 2025.05.30

    김정은 목사(교육영성훈련원 선임) - 하나님밖에 빌 데 없사와
  • 우리 교회는 지난해 12월부터 국가안정과 국민대통합을 위한 특별새벽기도회를 하고 있다. 국가의 위기를 기도로 극복하려는 노력은 한국교회의 오래된 전통이다. 국가를 위한 기도회의 역사는 190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05년은 일제가 우리의 외교권을 강제로 박탈한 을사늑약이 체결된 해다. 을사늑약이 체결되기 넉 달 전부터 한국교회는 ‘위국기도문’(爲國祈禱文) 1만 장을 배포하여 매일 오후 3시에서 4시까지 나라를 위해 기도하자는 기도운동을 전개했다. 이 기도문은 1905년 7월 25일자 「황성신문」에 실렸는데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 한국이 죄악으로 말미암아 침륜에 들었으며 오직 하나님밖에 빌 데 없사와 우리가 일시에 기도하오니 한국을 불쌍히 여기사 예레미야와 이사야와 다니엘이 자기 나라를 위하야 간구함을 들으심같이 한국을 구원하사….” 나라의 위기가 일본의 야욕이 아닌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았다는 것,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호소할 곳은 어떤 권력자나 열강이 아닌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것 그리고 민족의 죄를 대신 회개한 구약의 선지자들을 인용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120년 전 기도문이지만 오늘날에도 유효한 내용에 놀랐고 그 절절한 심정이 느껴져 코끝이 찡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서 열린 구국기도회 역시 유명하다. 서울이 3일 만에 점령되고 낙동강 전선까지 무너질 위기 앞에서 전국의 목회자와 성도들은 부산 초량교회 등지에 모여 밤낮으로 통회하고 자복했다. 당시 기도회에 참석한 한 목사님은 이렇게 증언했다. “과거 신사참배를 했던 죄부터 개인의 죄, 민족의 죄를 있는 대로 다 털어놓으니 예배당 마룻바닥이 목사님들의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됐습니다.” 이후 성공 확률이 5000분의 1 이라고 하는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기사회생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2024년 12월에 시작한 국가안정과 국민대통합을 위한 특별새벽기도회가 한 번밖에 남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을 돌아보고, 개인의 죄뿐만 아니라 예레미야, 이사야, 다니엘처럼 민족의 죄를 대신 끌어안고 회개하며, ‘하나님밖에 빌 데 없사와’의 심정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이 땅을 고치시고 새롭게 하실 것이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대하 7:14).
  • 2025.05.23

    백근배 부목사(교무) - 믿음의 걸음 위에 세워진 교회
  • 1958년 대조동의 작은 천막교회로 시작된 여의도순복음교회가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어느덧 창립 67주년을 맞이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흘린 눈물과 땀, 그 헌신의 흔적 위에 오늘 우리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우리 교회의 지나온 시간들은 오직 말씀과 기도로, 절대 긍정과 절대 감사의 믿음으로 세워진 역사입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긍정하는 신앙, 모든 상황에 감사하며 드리는 헌신은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기둥이 되었고, 지금까지 수많은 성도님들의 삶을 변화시키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귀한 원동력이었습니다. 믿음을 지키며 자녀를 예배 자리로 인도하시던 부모들의 손길, 주보를 곱게 접어 성경에 끼워두시던 봉사자들의 모습, 찬양과 기도가 늘 함께하는 성도들의 눈물 등 평범한 일상들이야말로 교회를 이루는 가장 소중한 밑거름이었습니다. 우리 교회 창립기념일이 있는 5월은 ‘가정의 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정 안에 믿음을 심으시고 그 믿음을 통해 교회를 세워 가신다는 사실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게 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런 고백을 남깁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 1:5). 디모데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가정 안에 살아 있는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가 말씀과 기도로 전한 믿음은 결국 디모데의 삶 속에서 귀한 열매로 맺어졌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 안에도 로이스와 유니게 같은 분들이 계십니다. 기도로 자녀를 붙들고 감사로 하루를 살아내며 예배와 섬김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수많은 가정들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기도하는 가정에서 시작되어 성령의 역사로 연결될 때 가장 강력한 부흥의 통로가 됩니다. 이영훈 담임목사님도 가정의 달을 맞아 “가정은 신앙의 출발점이며 부모의 기도와 신앙이 자녀에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가정에서의 믿음이 교회의 기초가 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립 67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교회가 걸어온 길을 감사함으로 돌아보며 앞으로 다가올 시간 속에서도 가정을 통한 믿음의 유산이 더 풍성히 이어지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기도로 함께하며 다음 세대에게도 “믿음의 길은 이런 것”이라고 자신 있게 전해줄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믿음은 가정에서 시작되고 교회를 통해 이어집니다. 이 믿음의 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는 성도들이 있기에 우리 교회는 앞으로도 든든히 나아갈 것입니다.
  • 2025.05.16

    김나리 목사(전도새가족부 선임) - 잘했든지 잘못했든지
  • 교회학교를 섬기던 어느 주일, 예배시간이 다 되어갈 즈음 한 아이가 성전에 들어서는데 두 눈이 충혈 되어 있고 얼굴 한 쪽이 시퍼렇게 멍들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얼굴이 왜 이렇게 됐어?” 하고 물었더니 아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그렁그렁 머금고는 “친구와 싸웠어요”하고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아이의 얼굴에 난 상처를 바라보며 “왜 싸웠는데…”라고 물었지만 아이는 싸운 이유를 말해주지 않고 억울한 표정으로 “씨익~씨익~그 아이가 먼저 선빵 날렸거든요?”라고 소리치고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 상황에서 담당 교역자인 제가 할 일은 싸움의 장점과 단점, 싸움이 폭력으로 이어질 경우 나타나는 결과들에 대해 알려주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울고 있는 아이를 마주하고 있던 제게는 그 아이가 잘했든지 잘못했든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향한 제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속상했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는 함께 예배하던 우리 아이였으니까요. 저는 아이를 위해 기도하고 아이의 마음을 위로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많이 아팠지, 약 바르자. 괜찮아질 거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도 그러시지 않을까요.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잘 살아내고 싶었지만 실패와 실수를 경험하고 넘어져 상처투성이인 우리를 향해 “얼마나 아팠을까, 많이 아팠지! 내가 너를 고치고 내가 너를 회복시킬 거야”라고 말입니다. 단 한 번도 우리에게 “너는 언제까지 그러고 살래?” “또 실패했니? 한심 하구나”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의 죽음과 고통을 대신하시며 우리를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매 주일 새가족들은 세상에서의 처절한 실패와 상처를 가지고 교회를 찾아옵니다. 새가족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무조건 받아들여 주셨듯이 우리도 새가족들을 무조건 수용하고 아낌없이 섬기며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 한명을 섬기는 것이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 25:37~40). 예수님을 섬기듯 새가족을 섬길 때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될 것입니다.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야훼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사 49:13).
  • 2025.05.09

    홍승원 목사(종로중구대교구장) - 하나님이 설계하신 가정 
  •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가정’이라는 의미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가정들이 해체되고, 본질이 흔들리고 있으며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성경적인 가정의 그림이 흐려져 가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가족』이라는 책을 통해 하나님의 눈으로 가정을 바라보는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존스 목사님은 가정을 단순한 사회 구성의 단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설계하시고 세우신 영적 공동체로 봅니다. 가정은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부부로 연합시키신 그 순간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첫 번째 기관입니다. 이 가정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서로 사랑하고, 돌보며,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도록 디자인된 공동체입니다. 그는 에베소서 5장과 6장을 중심으로 아내와 남편, 자녀와 부모 사이의 관계를 세심하게 다루며 각각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명확히 제시합니다.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교회가 그리스도를 섬기듯 남편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도전이 됩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되 이는 단지 윤리적 교육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신앙의 기초를 이룹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현대 사회가 가정을 무너뜨리는 여러 사상과 풍조에 대해 경계할 것을 강하게 경고합니다. 특히 부모가 자녀에게 신앙을 물려주는 일에 실패할 경우 교회와 사회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는 교회가 가정을 회복시키는 데 앞장서야 하며 가정 안에서 말씀과 기도로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가정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요? 첫째, 말씀의 권위를 다시 가정 안에 세워야 합니다. 둘째, 예배가 가정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부모는 자녀에게 ‘보여주는 신앙’을 살아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서로를 향한 존중과 사랑이 그리스도 안에서 실천돼야 합니다. 가정은 작은 교회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수많은 가정이 모여 세워집니다. 이 가정의 회복이 교회의 부흥으로 나아가 사회의 변화로 이어질 것입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해 우리 각자의 가정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다시 세우는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시대의 ‘믿음의 가정’으로서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 2025.05.02

    권혁세 목사(동대문성전 담당) - 분별하는 그리스도인
  • 손 안의 컴퓨터인 스마트폰은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개발 후 전 세계 인구의 약 67%가 사용하고 있으며 전화 통화는 물론 업무, 쇼핑, 내비게이션, SNS 등 스마트폰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또한 실시간으로 지구 반대편의 상황도 확인할 수 있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은 사용자의 문제해결 및 의사결정능력을 떨어지게 합니다. 실제로 주변에서 의사 결정을 할 때 챗GPT에게 질문하고 그에 대한 답으로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진리와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방대한 정보 가운데 유튜브와 같은 AI 알고리즘을 통한 맞춤 서비스는 내가 관심 있고 좋아하는 것을 계속 보게 됩니다. 이는 내 생각은 옳고 내 생각은 세상과 같다고 판단해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배척하게 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사명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진리를 분별하며 살아가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분별은 세상 물정에 대한 바른 생각이나 판단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분별력’에서 일상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아는 영적인 통찰이자 경험지식이 분별이며, 우리가 각자의 소명과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주님께 합당하게 살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방향에 귀를 기울이며 격려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분별이라고 했습니다. 분별하지 못하고 선악과를 보면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좋아 보여 사명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옳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됩니다. 성경은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나에게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옳은 것을 분별하고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부끄럽지 않도록 힘쓰는 헌신과 섬김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나의 좋음과 하나님 말씀으로 옳음을 분별하여 좋음이 아닌 옳음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고 부끄럽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성령 안에서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생각이 내 생각이 되고 하나님의 비전이 나의 비전이 되는 하나님의 일꾼이며 예수님의 좋은 군사인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 2025.04.25

     차진호 목사(양서성전 담당)  - ‘도마’ 도 부활을 믿었습니다
  • 2023년 7월 서울에서 열린 ‘2023 청소년 사역 콘퍼런스’에서 2021년 26개국 2만4870명의 기독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글로벌 리서치 결과가 발표됐다. 설문 내용 중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후 부활한 것을 믿느냐’는 질문에 다른 나라 기독 청소년은 33%가 ‘그렇다’고 대답했으나 한국 기독 청소년은 28%만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교회학교에 출석하는 학생들 100명 중 72명은 예수님의 부활 신앙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교회 교회학교 학생들의 믿음은 다른 나라 기독 청소년들의 믿음보다 많이 떨어진다는 안타까운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 한국교회 청소년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던 도마의 모습과 비슷한 것 같다. 우리는 도마를 기억할 때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자신의 손가락으로 예수님의 몸에 난 창 자국을 만져본 이후에야 예수님의 부활을 믿겠다고 했던 도마로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불신앙의 대명사로 기억되는 의심투성이 도마는 과연 평생 불신앙으로 살다가 죽었을까? 그렇지 않다. 본인은 도마가 불신앙에서 부활 신앙으로 180도 바뀌었다는 증거를 직접 목격할 기회가 있었다. 2005년 여의도순복음교회 대학청년국 월드미션 지도목사로 있을 때 청년들과 인도 남부 지역에 위치한 첸나이라는 도시로 단기선교를 갔다. 그 곳에서는 도마가 엄청 믿음이 좋은 예수님의 제자요 선교사로 알려져 있었다. 도시 곳곳에 도마의 이름이 들어있는 교회들이 세워져 있었고 그 교회들을 방문할 때마다 예배실과 복도 벽에 걸려 있는 도마의 순교 그림들을 볼 수 있었다. 그 그림들 속에는 기도 중이던 도마가 한 자객의 창에 찔려 순교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 의심 많았던 도마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부활 신앙으로 인도에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그런 도마의 순교를 통해 첸나이를 중심으로 인도 남부 대부분의 도시에는 많은 교회가 세워졌고 많은 영혼을 구원한 도마의 흔적이 남게 되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고 평상시 의심이 가득했던 불신앙의 도마가 순교하기까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파했던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마가다락방의 성령 체험이었다. 바람 같은 성령, 불같은 성령을 체험함으로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고 불신앙이 부활 신앙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제 100명 중 100명 모두가 부활 신앙으로 거듭나길 소망한다. 그러기 위해서 한국교회 모든 성도가 부활 신앙으로 거듭난 제2의 도마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2025년 부활절이다. 우리 교회의 교회학교 친구들과 각자의 가정의 자녀들에게 부활을 기념하는 달걀을 선물하면서 부활의 예수님도 함께 선물했으면 좋겠다.
  • 2025.04.18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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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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