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코로나 이후 청년세대를 위한 기도 - 김남준 목사(청장년국장)
  • 코로나 이후 청년세대들의 신앙생활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것을 가속화시킨 것이 온라인 예배다. 이전까지 우리는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형태를 대면 예배에 나올 수 없는 극한 상황 때나 드리는 예배로 생각하거나 집안일을 하면서 말씀을 주야로 들을 수 있는 등 신앙생활을 위한 보조 수단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릴 수 없는 현실 앞에 다른 선택지가 없던 청년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온라인 예배를 선택하게 되었고, ‘예배’라는 인식이 청년들에게 강하게 심어지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모임 금지가 해제된 지금에도 청년들은 대면 예배를 드릴지 또는 온라인 예배를 드릴지를 선택한다. 그리고 코로나를 지나며 온라인 예배를 ‘예배’로 인식한 세대들에게 더는 온라인 예배에 대한 신앙의 불편함은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그들은 대면 예배도 ‘예배’, 온라인 예배도 ‘예배’로 인식한다. 그들에게는 단지 방식만 다른 ‘예배’일 뿐이다. 세상은 이처럼 코로나 이후 변화된 트렌드를 쫓아 우리가 변화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방향성은 마가 다락방의 성령의 강력한 역사이다. 초대교회 당시 그들은 모였고, 모여서 함께 기도했고, 모여서 함께 기도할 때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나타났다. 성령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일하고 계신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는 다시 함께 모여야 하고 성령의 역사를 갈망하며 체험해야 한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외손자이자 미국에서 주목 받는 튤리안 차비진 목사는 이런 말을 했다. “무엇인가 알 수 없는 목마름과 갈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크리스천들은 세상과 전혀 다른 메시지를 고수해야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청년세대를 향해서도 복음을 향한 세상과 전혀 다른 메시지를 고수하며 나갈 때, 지금 이 시대 청년들의 알 수 없는 목마름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성령의 뜨거운 불을 가진 청년들이 더 깊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을 힘입어 도리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구별된 청년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시 110:3).
  • 2022.11.25

    스콴도를 기억하자 - 김형건 목사(국제신학연구원 부원장)
  • 1603년 3월 24일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라고 평가받는 여왕 엘리자베스1세가 사망했다. 자손이 없었기에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6세에게 왕위가 계승되었다. 그는 잉글랜드에서 제임스 1세로 즉위한 후 노골적으로 가톨릭 제도를 옹호하며 평소 염증을 느끼던 청교도들을 탄압했다. 청교도들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다른 곳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1620년 9월 16일 후세의 역사가들에 의해 ‘순례자 조상들’(Pilgrim Fathers)이라고 불리게 된 청교도 102명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북아메리카로 떠났다. 이들은 같은 해 11월 21일 케이프코드 끝의 낚시 바늘 모양의 프로빈스 타운 항구에 닻을 내렸다. 도착한 이듬해엔 첫 추수를 마치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 있었는데 여기에서 추수감사절이 유래되었다. 사실 ‘순례자 조상들’보다 10년 앞선 1608년 영국 무역상들이 그곳에 먼저 도착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왐파나옥이라는 인디언들을 스페인에 노예로 팔아넘겼는데 그중 스콴도라는 인디언 청년이 끼어 있었다. 그는 스페인의 한 사제에게 팔렸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는 기도하는 것을 배우게 되었고 세 가지 제목을 가지고 늘 기도했다. 첫째는 고향에 돌아가게 해달라는 것이고, 둘째는 자기를 팔아넘긴 백인들을 원망하지 않고 그들과 협력하여 고향을 스페인처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셋째는 자기 평생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스콴도는 그 사제의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10년 만에 고향에 돌아오게 되었다. 돌아와 보니 가족들은 전염병으로 모두 죽고 마을은 폐허가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기도한대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남은 자들을 이끌고 땅을 개간하며 마을을 재건했다. 바로 이때 메이플라워호가 도착한 것이다. 스콴도는 유창한 영어로 청교도들을 환영하고 정착을 도왔다. 영국에서 메이플라워를 타고 온 청교도 지도자인 윌리엄 브래포드 목사는 그의 일기장에 그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스콴도는 하나님이 우리의 유익을 위해 준비하신 특별한 도구였다. 그는 우리에게 옥수수를 어떻게 심는지, 낚시를 어떻게 하는지, 땅을 어디에 어떻게 개간하는지 가르쳤다. 그는 죽을 때까지 한순간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우리의 친구가 되어 우리를 인도했다.” 첫해가 지나고 청교도들과 스콴도 그리고 인디언들이 칠면조를 잡아 함께 식탁에 앉아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수년 후 그가 열병으로 죽게 되었을 때 그는 브래포드 목사에게 천국에 편히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하면서 부디 이 땅을 살기 좋은 땅으로 만들어 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땅을 축복해주옵소서…” 추수의 계절, 우리 각자의 스콴도는 누구일까? 그 사람으로 인해 감사가 넘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누구보다 우리에게 진정한 스콴도 되어 주신 주님을 기억하며 넘치는 감사로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자.
  • 2022.11.18

    세상을 구하는 오직 한 길 - 이상일 목사(용산대교구장)
  • 커피 하나로 전 세계 많은 가맹점을 운영하는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사장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하워드 슐츠는 뉴욕 브루클린의 빈민가에서 태어났지만 출신배경이 문제가 아니라 노력 여하에 따라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성공했습니다. 많은 기업이 성장하면서 이것저것 손을 대지만 스타벅스는 오직 커피 하나로 3만 4317개가 넘는 가맹점을 갖는 업계 최고의 회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성장 뒤에는 종업원들을 존경과 품위로 대해야 한다는 그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가 쓴 책 『스타벅스 커피 한잔에 담긴 성공 신화』라는 책에 보면 ‘성공은 나눠 가질 때 가장 달콤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승선에 혼자 도달하면 공허하지만 한 팀을 이룬다면 기쁨이 크다는 멋있는 교훈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도 스타벅스의 성공원리처럼 생애를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렛의 조그만 동네 출신으로 많은 사람이 비웃었지만, 그분은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이름처럼 구원자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사셨습니다. 훌륭한 의사가 될 수도 있었고, 또 유대의 정치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아니면 사람들이 많이 따르는 종교 지도자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오직 한 길, 세상을 구원하시는 분으로 사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 가난한 자, 어려움에 처한 자들과 함께 하셨고 결국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해 목숨까지 내어 주셨습니다. 성경 요한복음 2장에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인 가나의 혼인잔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며 하인들의 역할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부탁에 그들은 순종했습니다. 예수님의 지시에 역시 묵묵히 순종하며 항아리에 물을 채웠습니다. 이어 항아리에 있는 물을 떠서 연회장에 가져다주라는 명령에도 순종했습니다. 아무도 이 맛있는 포도주가 어디서 났는지 몰랐지만 하인들만은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하인들의 순종이 있었기에 빛을 발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내 스스로의 생각이 앞설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갈릴리 가나의 하인들처럼 조용히 자기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고 묵묵히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순복음의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 2022.11.11

    회복탄력성과 하나님의 은혜 - 한사무엘 목사(종로중구대교구장)
  • 오늘날 스트레스를 빼놓고는 현대인의 삶을 말할 수 없다. 특히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은 스트레스의 연속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뒷받침하듯 질병관리청의 지역사회건강조사 결과에 의하면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의 신체활동은 줄고 우울감과 스트레스가 늘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에 스트레스나 삶의 고난을 잘 이겨내는 능력을 의미하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에 관한 관심이 증가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회복탄력성은 어려운 상황에서 회복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 다양한 삶의 시련과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마음의 근력과 연관된다. 쉽게 말해서 회복탄력성은 인생의 역경과 고난에 맞설 수 있는 영혼의 맷집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성경은 회복탄력성의 책이고 믿음의 조상들은 강력한 영혼의 맷집을 소유한 인물들이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삶의 고난과 역경을 어떻게 믿음으로 이겨냈는지가 기록되어 있고 믿음의 조상들이 그 예이기 때문이다. 사실 시련과 역경이 없는 인생은 없고 실패와 고난이 없는 인생도 없다. 따라서 문제는 삶에서 역경과 시련이 다가올 때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고 회복하느냐이다. 상담가들은 회복탄력성을 높이기 위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취미 활동을 권장하거나 또는 분노 억제 및 현실 인정과 같은 삶의 태도의 변화를 조언하지만, 성경은 특별한 다른 것을 우리에게 말한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다. 야곱의 삶을 예로 들어보자. 야곱은 이집트의 바로 앞에서 자신 스스로 험악한 삶을 살았다고 고백할 만큼 고난과 시련이 많은 삶을 살았다. 그러나 험악한 삶을 살면서도 야곱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었다. 얍복강 건너에 있는 고향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기도할 때 야곱은 두 차례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언급한다(창 32:9,12). 파란만장한 삶의 터널에서 야곱을 지탱시켜 준 것은 바로 반드시 자신에게 은혜를 베푸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용기와 힘을 주시며 넘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게 하는 회복탄력성의 근원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사람은 삶의 시련을 인생의 걸림돌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축복의 디딤돌로 생각한다. 순복음의 열정이 회복탄력성의 은혜를 만나게 될 때 우리의 삶은 회복될 것이며 우리의 예배와 구역은 다시 부흥할 것이고 우리의 기도와 전도의 열정도 다시 불타오르게 될 것이다.
  • 2022.11.04

    씨앗의 교훈 - 김승만 목사(의례부장)
  • 성경에는 씨앗의 비유가 몇 가지로 기록되어 있다. 그중에 천국을 소개하는 씨 뿌리는 비유에서 씨앗의 주체는 말씀을 듣고 깨닫고 결실을 맺는 인간을 뜻한다. 그리고 또 다른 비유에서 바울은 씨앗을 몸의 부활에 비유하기도 한다. 기독교는 억지 믿음을 강요하는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정확한 사실을 믿는다. 그 정확한 사실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자연을 조금이라도 깊게 관찰한다면 부활을 증명할 수 있다.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소개할 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셨다. 그런데 자연(自然) 또한 스스로 자(自)에 있을 연(然)으로 ‘스스로 있다’라는 뜻 속에 하나님의 성품이 발현되어 있다. 자연은 그 자체로 정직하며 스스로 잘 유지되어 간다. 하지만 인간의 과욕으로 자연은 손상되고 파괴되고 있음을 최근 지구온난화가 증명해 주고 있다. 자연을 구성하는 씨앗은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이 땅에 뿌려져 썩어 죽은 듯하다. 그러나 다시 살아나 싹을 내며 가지가 자라 주렁주렁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겨울에 완전히 죽은 것만 같았던 나무가 봄이 되면 파릇파릇 살아나 또다시 열매를 맺는다. 매년 반복적으로 자연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풍성한 열매를 제공하고 그 덕분으로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게 된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자연을 통하여 그 부활의 열매로 인간들이 살아나갈 수 있게 하시며 부활이 있음을 계시하신다. 실제적으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어 사망 권세(죽음)를 깨뜨리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도록 하셨다. 예수의 제자들도 십자가의 처형 사건 전에는 모두가 예수를 멀리하고 자신들의 몸을 피신하였지만 부활하신 예수를 목격한 후에는 제자들 모두가 자신들의 몸을 초개와 같이 버리며 순교하였다. 인간이란 확실한 동기가 없이 남을 위해 절대로 죽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연 속에 씨앗의 비유와 예수의 부활의 실제적인 사건을 통하여 부활의 사실을 증명하고 계신다. 많은 선조들의 육신은 흙으로 영혼은 하나님 앞으로 떠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자연은 하나님의 역사가 마칠 때까지 영원할 것이다. 죽음은 주위에서 쉽게 접하는 삶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반드시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영원한 생명의 부활이 있기에 이 또한 삶으로 인식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제는 죽음과 부활이 연속적인 우리의 삶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제부터라도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아가 스데반처럼 열리는 하늘 문을 보고, 사도 바울처럼 삼층 천에 다녀오는 목표를 가져도 좋을 것이다.
  • 2022.10.21

    어. 예. 정 - 김진수 목사(상담소장)
  • “내가 알아? 당신이 알아?” 부산 태종대에 갔을 때 길에서 들은 한 부부의 대화다. 보아하니 20년 이상 함께 산 중년 부부가 부산으로 여행 온 모양이었다. 부부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져서인지 아니면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져서인지 모르겠지만 매우 선명하게 들려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아내에게 태종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남편의 계속되는 질문에 지친 아내는 “내가 알아? 당신이 알아?”라며 쏘아붙이고 있었다. 부부의 대화를 우연찮게 듣게 되며 생각한 것은 이렇듯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 계속되는 질문은 심신을 지치게 만들 수도 있고 답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성경은 인생의 다양한 각도에서 오는 여러 질문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알려준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으려 한다. 사람들에게서 위로받기를 원하며 격려받기를 원하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이처럼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를 ‘인정욕구’라고 하는데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인정욕구야말로 인간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심리적 욕구라고 본다. 하지만 이사야 2장 22절의 말씀을 보면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라고 반문한다. 시편 146편 4절에도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라고 단언한다. 우리에게 진정한 위로와 격려와 지지를 해줄 수 있는 존재는 사람이 아닌 예수님뿐이심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어)어차피 (예)예수님이 (정)정답이다”라는 공식이 필요하다. 기독교 상담은 기독교라는 ‘신본주의’와 상담이라는 ‘인본주의’ 학문이 더해져 모순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아시는 성령님의 개입이 있다는 점에서 기독교 상담은 모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목회자로서 상담을 진행하는 선생님들에게 기도제목을 여쭤보면 백이면 백 모두 한숨을 내뱉는다. 걱정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마는 내담자에게 상담을 해주는 전문가들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상담가로서는 “어차피 예수님이 정답이다”를 전제로 상담에 임하게 된다. 우리 인생의 정답이신 예수님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사랑하는 자녀들의 삶이 염려로 채워지기를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기독교 상담의 핵심이 아닐까. 아직도 삶의 문제 속에서 힘들어하는 지체들에게 권면해본다. <어.예.정>이라는 공식은 우리를 살게 하는 진정한 답이라는 것을. 예수님이 답이 되는 인생이야말로 참된 돌보심이 있는 삶이라는 것을 말이다.
  • 2022.10.14

    세계오순절대회를 개최하며 - 김영석 목사(교회성장연구소장)
  • 전 세계 6억 8000만 오순절 성도들의 축제인 ‘제26차 세계오순절대회’(Pentecostal World Conference)가 12일 우리 교회 대성전에서 개막 예배를 시작으로 공식적인 막을 연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대규모 국제 행사인 이번 세계오순절대회는 한국을 포함한 170여 개국에서 5000여 명의 국내외 목회자와 신학생 등이 참여하는 대회로 포럼과 공연, 전문인 워크숍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사흘 동안 진행한다. ‘세계오순절대회’는 1947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처음으로 3000명의 오순절 지도자와 성도가 모여 콘퍼런스를 개최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3년마다 콘퍼런스가 열렸고 1961년 공식적으로 ‘세계오순절대회’로 명명됐고 이를 계기로 세계오순절협회가 창립됐다. 이번 제26차 세계오순절대회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행사는 14일 경기도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열리는 ‘한반도 평화와 다음세대 부흥을 위한 기도대성회’이다. 이날 행사에는 전 세계 참가자 5000여 명을 포함 약 2만여 명이 참여해 남북한의 화해와 대화 재개를 요청하고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기도회를 갖는다. 이 기도회는 유튜브로 전 세계에 생중계되고 다양한 언어로도 통역될 예정이다. 한국에서 1973년과 1998년에 이어 3번째로 열리는 이번 ‘세계오순절대회’는 ‘다음 세대의 오순절 부흥’이라는 주제로 진행된다. 제26차 세계오순절대회 대표대회장 이영훈 목사는 세계 오순절 지도자들과 네트워킹을 강화하고 상호협력을 통해 세계 선교에 주력할 예정이다. 이번 ‘세계오순절대회’는 오순절 성령운동을 기성세대를 넘어 미래 세대의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전수하고 계승해 나갈지 모색한다는 점과 또한 코로나 팬데믹을 넘어 엔데믹으로 향하는 선교 사역 방향과 전략도 다룬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1960년대~1970년대 오순절적 성령의 능력을 강조하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통해 부흥의 역사를 이룬 것처럼 가장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 한국 교회에 이번 ‘세계오순절대회’가 다음세대 부흥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 한국 교회가 사도행전적인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고 오순절 성령운동을 통해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고 사회적 성화를 실천하는 교회가 되기를 기대하며, 성회가 주님의 은혜 가운데 성공적으로 치러지길 소망한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욜 2:28~29).
  • 2022.10.07

    보혈의 은혜 - 김범석 목사(반석대교구장)
  • 아프리카 우간다 선교지를 방문했던 적이 있다. 분홍색 지붕으로 올망졸망하게 지어진 가옥들과 연초록으로 물든 생소한 풍경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정작 눈이 가는 것은 다른데 있었다. 그것은 그림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짙은 황톳길이었다. 온통 황토로 덮인 그 길은 주변 풍경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다. 그래서 시선이 멈추곤 할 때마다 경탄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그런 찬사는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일정에 따라 선교지 교회를 방문하러 차를 타고 가다 보니 곧 그 황톳길이 곤욕스러운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렁이는 황토 먼지가 팔과 신발뿐 아니라 어느새 입안과 콧속까지 끈적끈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숙소로 돌아와서 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온통 황토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한 폭의 그림 같았던 그 길이 아이러니하게도 모두를 먼지 투성이로, 그리고 불편하게 만든 것이다. 그래도 숙소엔 깨끗이 씻을 물이 있어 불편하긴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흙먼지로 더럽혀져도 씻을 물이 있으면 다시 깨끗하고 개운해질 수 있는 것이다. 우간다의 그 황톳길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세상은 쳐다만 보면 참 아름다워 보인다. 그런데 그런 세상 역시 지나쳐 보면 흙먼지가 풀풀 난다. 누구나 원하든 원하지 않든 죄악의 흙먼지가 몸에 묻거나 스며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빛 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은 이 땅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소망이 되는 것이다.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세상에서 일렁이는 죄의 흙먼지를 뒤집어써 주홍 같을 수 있다. 그럴지라도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하며 씻어주시길 간청하면 예수님의 보혈이 양털처럼 희게 깨끗이 씻어주신다. 그래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자는 세상을 이길 복 받은 인생이다. 예수님의 보혈은 퍼주고 나누어주어도 모자람이 없다. 아무리 사용해도 마르지 않는 영생의 샘물이다. 그래서 그 보혈 안에서 우리는 늘 소망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깨뜨리신 몸과 흘리신 보혈을 기념하는 시월의 첫 주 성찬 주일이다. 지금도 변함없이 마르지 않는 생명의 보혈은 우리에게 묻은 죄악의 먼지를 씻어내 줄 것이다. 그 보혈이 온 마음과 몸을 정결하고 깨끗하게 해줄 것이라 확신하며 씻어야겠다.
  • 2022.09.30

    인생수업 - 이성광 목사(구로대교구장)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각자의 생각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생각한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들이 진짜 중요한 것일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기 위해 꼭 필요하다. 얼마 전 한 연예인이 방송에서 호스피스의 죽음체험이라는 것을 통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죽음체험이란 자신의 죽음을 가장(假裝)해서 인생의 마지막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 연예인에게 호스피스 한분이 종이 한 장을 주면서 신체 중 가장 소중한 부위 5개를 적으라고 하였다.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는 눈, 입, 귀 등 5개를 적었다. 그 다음은 가장 소중한 보물, 그 다음은 소중한 가족 이름을, 그 다음은 내 인생에 놓치기 싫은 것들을 적었다. 호스피스 분이 “당신은 병원에 입원했는데 당신에게 안 좋은 병이 생겼습니다. 목록 중에서 5개를 지우세요”라고 하여 5개를 지웠다. 다시 호스피스 분이 “다음날입니다. 당신의 상태가 아주 안 좋습니다. 2개를 더 지우세요”하자 계속해서 하나씩 목록을 지워 갔다. 결국 소중한 신체 부위를 다 지웠다. 소중한 일도 지웠다. 소중하게 생각한 집도 지우고 통장도 지우고 계속 지워 나갔는데 마지막 가족만이 남았다. 아이들을 지우려고 했는데 안 지워진다는 것이다. 눈물이 나면서 도저히 가족을 지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호스피스 분의 말이 “죽음을 앞둔 많은 환우 분들이 하고 계십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더 많은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더 많은 시간 더 웃으면서 추억을 되새기세요.” 그는 머리에 큰 망치를 맞은 것 같다고 말하였다. 덜 중요한 것에 집중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가족을 더 사랑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되면서 내가 일을 왜 하는지!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서 중요한 것들은 놓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
  • 2022.09.23

    채움과 비움 - 김태선 목사(마포1대교구장)
  •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문제들은 대부분 부족함 때문에 생기는 것보다 지나침 때문에 생기는 일들이 더 많다. 1960~1970년대에는 잘 먹지 못함이 서러움이었다면 지금은 너무 잘 먹어서 문제가 생긴다. 인스턴트식품 그리고 기름진 음식과 과식으로 인해 우리의 몸은 점점 병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질병으로 진단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육체의 비만을 넘어 마음의 비만이 문제다. 우리의 인생은 채워도 채워도 만족할 수 없다. 무엇인가 더 채우려고 하는 인간의 모습을 우리는 욕심이라고 한다.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 바흠이라는 청년이 등장한다. 이 청년은 땅을 얻기 위해 바시키르라는 유목지에 가게 된다. 하루 종일 걸은 만큼 땅을 차지할 수 있다는 말에 부지런히 땅을 밟게 된다. 그러나 조건이 한 가지가 있었는데 해가 지기 전까지 출발지로 돌아오지 못하면 모두 무효라는 것이다. 욕심으로 가득 찬 바흠은 하루 종일 많은 땅을 밟기는 했지만 출발점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결국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결국 그가 얻은 땅은 그를 장사하고 묻은 한 평의 땅이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바흠처럼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멈춰야 할 때를 분별하지 못하고 세상 것으로 더 채우기 위해 아등바등 살고 있는 것이 또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채움과 비움 사이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 우리는 사도 바울을 통해 그 답을 찾아볼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나서 그의 인생의 가치관이 흔들렸고 이방인과 복음의 사도로 부름을 받고 나서는 그의 인생의 채움과 비움을 깨닫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고백한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 3:8). 사도 바울에게 채움은 예수 그리스도였고 그 외 모든 것은 비움의 대상이었다. 어느덧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며 가을이 시작됨을 느낀다. 이 풍성한 가을을 맞이하면서 우리의 신앙에 무엇을 채워야 할지 그리고 무엇을 비워야 할지 거룩한 고민과 함께 가을을 맞이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 2022.09.16

    나의 살던 고향은 - 조종현 목사(실업인대교구장)
  • 어릴 적부터 이맘때면 많이 부르는 ‘나의 살던 고향은’이라는 노래가 있다. 시골 고향의 추억이 없어도 왠지 이 노래를 부르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그리워진다. 많은 사람이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을 찾는다. 하나님이 주신 귀소본능으로 동물조차 서식 장소나 둥지, 태어난 장소로 되돌아오려고 한다. 고향은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울음을 터트린 곳, 내 꿈이 잉태된 곳,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곳, 부모님과 마음을 터놓고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는 정겨운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고향이라 말한다. TV에서 선물 보따리를 들고 기차 또는 자동차로 고생고생하며 귀성 전쟁을 치르면서도 기쁨으로 고향에 가는 뉴스방송을 보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만 간다. 그런데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실향민들이 있다. 남북의 분단으로 북한에 고향이 있는 분들은 고향에 갈 수 없다. 일본 선교사로 있을 때 한국에 가고 싶어도 비자 문제 혹은 다른 사정으로 가지 못하는 분들을 많이 보았다. 군대시절 휴가 다녀온 동기가 댐으로 고향이 없어졌다고 눈물지었던 모습도 보았다. 실향민들은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린다. 돌아갈 고향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보다 훨씬 더 아픈 것은 영혼의 고향이 없다는 것이다. 육신의 실향민보다 영혼의 실향민이 더 비참하다. 왜냐하면 이 땅의 삶은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궁극적으로 돌아갈 본향이 있다. 누가 행복한 사람인가? 천국의 소망이 있는 사람, 내가 언제 세상을 떠나도 천국에 들어갈 확신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바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예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영혼의 고향으로 삼고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그날까지 우리는 이 땅 가운데서도 하나님 나라 천국을 만들어가야 할 사명이 있다. 요즘 들어 더욱 그리운 분이 있다. 1년 전 천국 가신 조용기 목사님. 목사님께 개인적으로 받은 사랑이 너무 많았기에 그리워 눈물이 난다. 목사님께서는 이 땅에서의 천국을 소망하셨다. 사랑하는 자들의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기도하셨고 이로 인해 많은 성도들은 천국을 바라보며 기도 응답으로 이 땅에서도 천국을 누렸다. 그리고 그 비전은 이영훈 담임목사님의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믿음으로 계승되어 이 땅에서 천국의 열매로 맺어지고 있다. 이번 추석에는 우리가 있는 곳이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고향이 되고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주님을 믿어 영혼의 고향을 바라보는 귀한 추석이 되길 소망한다.
  • 2022.09.08

    ‘걷기’와 ‘기도’ - 조지훈 목사(은평대교구장)
  •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 사회학과 교수인 다비드 르 브르통은 걷기 예찬론자이다. 그는 자신의 책 『느리게 걷는 즐거움』에서 “이 모든 걷기는 오로지 자신의 신체 수단 하나에만 몸을 맡긴 채 세상과 연결되는 느낌을 누리고자 하는 인간에게 어울리는 일이다. 빠른 속도, 유용성, 수익, 효율성을 중시하는 요즘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걷기는 느림, 유연성, 대화, 침묵, 호기심, 우정, 무용성을 우선시하는 저항 행위이다… 시간을 들인다는 것은 일상을 전복시켜 내재된 성질 속으로 깊이 파고드는 일이기도 하다. 이는 표면 위에서만 살아가며 그 표면을 자신의 유일한 깊이로 삼고 겉으로 보이는 외모와 이미지, 스타일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는 숱한 요즘 사람들에게는 심연처럼 여겨지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걷기는 자신의 신체와 세상을 연결하는 행위이다. 세상적인 기준들과는 정반대의 삶을 지향하는 이들의 전유물이다. 느리고, 유연하고, 대화하고, 때로는 침묵하는 그래서 호기심과 우정과 무용성을 우선시하는 그런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누리는 즐거움 중 하나이다. 또한 걷기는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해보이지만 우리의 일상을 전복시키는 힘이 있다. 걷기를 통해 우리는 세상의 이면으로 깊이 파고든다. 동시에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깊이 숙고한다. 세상에 좀 더 집중하고 동시에 그 세상과의 관련성 속에서 내 자신에 대해 집중하게 된다. 그것이 걷기이다. 따라서 이런 삶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걷기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일 수밖에 없다.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은 그대로 우리의 기도 생활에도 적용이 된다. ‘걷기’라는 말 대신에 ‘기도’라는 말을 대입해보아도 거의 동일한 의미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는 나의 신체를 통해 내 자신 밖의 세계와 접촉을 시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도는 그저 입술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우리의 영, 혼, 육이 혼연일체가 되어 우리 밖의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고 또 메시지를 받는 행위이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영적인 세계와 연결이 되고 동시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연결된다. 단순하고 무기력해보이지만 기도는 일상을 바꾸고 전복시키는 힘이 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가진 언어의 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입에서 발화된 언어는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행한다. 이것이 기도가 정적인 행위가 아니라 역동적인 행위라는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하는 사람은 세상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전복시키는 역동적인 삶의 소유자인 것이다.
  • 2022.09.02

    짬뽕과 기도 - 임 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군산교회 담임)
  • 군산에는 짬뽕이 없다. 대신 ‘군산 짬뽕’이 있다. 기도에도 왕도가 없다. ‘응답받는 기도’만 있을 뿐이다. 기도는 같을지라도 응답은 성도들 각자에게 다르다. 군산 짬뽕이 어느 집을 가도 다른 맛을 내듯이 말이다. 맛은 달라도 재료는 비교불가다. 항구도시답게 낙지와 오징어, 백합과 조개 등 화려한 더블캐스팅이다. 우리의 기도는 성령과 말씀의 두 기둥을 의지해야 한다. 한 시간 새벽예배로 시작하고 날마다 성경 말씀을 한 시간씩 읽는 삶의 혁신이 필요하다. 어느 짬뽕집에서는 낙지 위에 계란프라이가 올라가 있어 비주얼 혁신이다. 하얗고 뽀얀 일본 짬뽕에 비해 군산 짬뽕은 고추기름이 듬뿍 들어가 맵고 빨갛다. 그러나 결코 식도를 뜨겁게 달굴 만큼 맵지 않은 다시 생각나는 매운맛이다. 기도도 마찬가지다. 깊이 들어갈수록 자꾸 생각나는 맛집처럼 기도의 맛에 빠질 수 있다. 목이 터져라 기도하는 통성기도는 소중한 전통이다. 군산 짬뽕의 유래는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 짜장면의 시작이 인천 차이나타운이고 짬뽕은 군산이다. 짬뽕은 국수 이름이지만 “밥 먹었니?”라는 뜻이 있다. 우리들의 부모님들이 항상 하던 말이다. 지금을 살아가기에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스스로에게 묻자. “기도했니?” 짬뽕 한 그릇에 행복해지듯 기도로 우리 삶이 윤택해질 것이다. 8월 28일, 오늘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미국의 워싱턴 D.C. 링컨 기념관 발코니에서 워싱턴 기념탑을 바라보며 연설을 한 날이다. 1963년도의 일이다. 킹 목사 연설의 마지막은 “우리는 마침내 자유로워졌습니다”(We are free at last)라는 선언이다. 우리는 이미 자유로운 존재다. 간구하고 감사함으로 현실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성경을 보면 현실감각이 뛰어났던 두 제자의 모습이 누가복음 24장에 등장한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앉은 후에야 주님임을 알아보았다. 지식을 뜻하는 라틴어 ‘사페레’(sapere)에 ‘맛본다’는 뜻도 있듯이, 짬뽕 한 그릇에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이 더해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봄날의 햇살이다. 오시는 분들마다 짬뽕 추천을 요청한다. 아무래도 인플루언서 리뷰보다는 현지인의 추천이 확실하지 않을까. 화끈하게 기도하고 싶은 분들이 믿고 먹는 군산 짬뽕, 국룰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 2022.08.26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 안태경 목사(여의도순복음청주교회 담임)
  • 지금 하나님이 나와 함께 일하고 계시는가? 혹 나와 함께 하신다고 그냥 생각만 하고 있는가? 주님이 나와 동역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길은 그분이 나를 위해 정말 쉬지 않고 일하시느냐는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세 가지 질문은 첫째, 내게 빛이 있어 캄캄함과 어두움을 이기는가? 둘째, 오늘 내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는가? 셋째, 주와 함께 높이서 또 멀리 바라보는 비전이 있느냐이다. 야훼께서 나를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신다면 내 안에서 말씀의 회복이 일어난다. 신앙의 열정이 뜨겁게 채워진다. 기도할 때 말씀을 힘차게 외치는 힘을 얻게 된다. 회복에 대한 믿음과 비전이 일어난다. 약속의 성취를 끈기 있게 기다리는 의지가 생겨난다. 그 어느 것도 아니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가 일하셔야 내가 살아난다. 이사야 선지자는 야훼 하나님과 혼연일체 되어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한다. 물이 바다 덮음같이 물과 물이 하나로 연합되고 신랑과 신부와 하나가 되는 기쁨이 생겨난다. “야훼께서 일하시니 이스라엘아 너희도 함께하자. 힘을 내라, 힘을 내라. 성문을 향해 나아가라, 나아가라. 그의 길을 수축하라, 수축하라. 열정과 믿음과 의지를 다하여 야훼를 찾고 찾으라.” 그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기도하면 야훼 하나님은 쉬지 못하시게 된다. 그와 맺은 약속을 기억하고 그것을 야훼께 말하라. 외치라. 선포하라. 그렇게 기도하면 야훼께서 쉬지 않고 일하실 것이다. 우리는 담대한 믿음으로 외쳐야 한다. “야훼여! 빛의 속도로 오십시오. 내 안의 생명을 불러일으켜 주십시오. 영광의 광채를 비쳐주십시오. 내 안의 로고스가 살아나게 하십시오. 일어나라 말씀하십시오. 빛을 발하라 선포해주십시오. 내 주변에 덮여있는 어두움을 벗겨주시고 캄캄함을 씻어주십시오. 오래된, 아주 깊이 박혀있는 내 안의 상처와 고통을 닦아주십시오. 나를 묶고 있는 죄와 악의 굴레를 벗겨주십시오. 나를 가두고 있는 저 놋 문을 쳐서 부수며 쇠 빗장을 꺾어주십시오.” 열정으로 기도하는 것이 그로 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그로 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의지를 가지고 인내하며 기도하면 그가 쉬지 못하시고 일하신다.
  • 2022.08.19

    교회를 사랑합시다 - 채지석 목사(여의도순복음이천중앙교회 담임)
  • 지난 3년간 마귀는 코로나19로 교회를 파괴하고 성도들의 모임을 방해하여 교회의 성령의 충만함이 사라지고 성인, 청년, 교회학교의 예배가 극소수로 줄어들었으나 이제 다시 교회의 회복을 위한 뜨거운 소망이 일어나고 있다. 주님께서는 성도들에게 ‘교회를 사랑하라’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교회는 주님의 몸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세상 속에 있는 것 같지만 하늘에 속하고, 사람이 다스리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다스리고, 사람이 세운 것 같으나 하나님이 세운 곳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교회 사랑을 명령하시는 것이다. 교회를 어떻게 사랑할까? 우리는 무엇보다도 모이기에 힘써야 한다. 성경 히브리서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모여 하나 되길 원하신다. 우리가 모여 기도할 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그 모임 속에서 기적을 체험할 수 있다. 그래서 성도는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한다. 우리가 모이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이 침체되며 교회의 모든 부분이 약화 되는 것이다.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는 교역자와 성도 간에 아름다운 교제를 이루어 나간다. 그 가운데 아름다운 헌신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헌신은 나를 위하여 피 흘리신 주님을 위하여 나의 마음과 뜻과 힘을 다 하는 것이다. 이것이 주님을 위하여 내가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사랑은 관심이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섬기는 교회에 나는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나의 영혼이 자라나는 교회를 위해 나는 얼마나 헌신하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자.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 나의 마음이 평안을 얻고, 나의 가정이 천국이 되고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길 소망한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야훼를 사랑하라”(신 6:5).
  • 2022.08.12

    처음 사랑 - 심두진 목사(여의도순복음횡성교회 담임)
  • 강원도 횡성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저의 일상중의 하나가 치매 어르신과의 생활입니다. 교회에서 영혼구원을 목적으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믿지 않고 입소하신 어르신이 구원 받고 천국을 가실 때는 천하를 얻은 기분입니다. 하지만 치매 어르신을 돌본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치매로 인해 인지능력이 상실되다 보니 기억을 잘 못합니다. 방금 식사하고도 밥 안준다고 생떼를 부릴 땐 난감합니다. 하지만 남편의 폭행에 집을 나와 길거리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여 자식을 키웠는데 자식들이 자신을 외면하자 자식 소용없다고 하는 말은 사실입니다. 무엇이 사실이고 거짓인지 구별하여 도와주어야 합니다. 치매는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세계적인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도 노년에 치매의 일종인 파킨슨병으로 고생하셨으며 한국교회가 존경하는 한경직 목사님도 노년에 치매를 앓았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은퇴 후에 남한산성에 기거하셨는데 90세(졸수) 때 제자들이 신년인사를 드렸는데 목사님이 아무런 말씀이 없으신 겁니다. 옆에 있던 제자들이 “목사님 저희들에게 한마디 해 주시죠”라고 말하자 그때 한경직 목사님이 제자들을 뚫어지게 쳐다보시면서 “목사님들 예수 잘 믿으세요!” 한마디 하셨다고 합니다. 그때 참석하신 목사님들의 의견이 분분하였다고 합니다. “목사에게 예수 잘 믿으라니”라고 하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어떤 목사님은 “저 말씀이야말로 평생 한경직 목사님의 유언으로 여기고 크게 회개하겠다”고 했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처음 사랑을 잊어버립니다. 처음 예수님을 믿고 그 사랑을 받은 후에는 하나님의 모든 것이 나의 모든 것이 됩니다. 십자가만 바라보면 눈물이 나고 예배 때마다 은혜의 빗줄기가 내렸습니다. 봉사하면 기쁨이 넘치고 교회생활, 신앙생활이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영적 치매가 오면 놀라운 현상이 나타납니다. 일반 치매는 과거의 기억이 여전하고 현재 사실에 둔감한데 영적 치매는 정반대입니다. 과거의 은혜는 망각하고 현재의 일들만 불평과 비판으로 기억합니다. 이리되면 신앙생활이 건조하고 가슴에 찬바람만 불기 마련이지요. 한경직 목사님 말씀처럼 예수 잘 믿으려면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를 향한 책망을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이 여름 말씀과 기도로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4~5).
  • 2022.08.05

    내일 주님이 오신다면 - 박창호 목사(통일대교구장)
  •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 이미 지구가 멸망해 있을 수도 있어.” 수년 전 환경과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해 대화하던 중 지인이 던진 말이었다. ‘예수님의 재림 전에 인류가 먼저 멸망할 수도 있다니…’ 그때는 웃고 지나갔지만 오늘 우리의 현실은 예사롭지 않다.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 지금 세계 곳곳에 폭염으로 인한 산불과 이상 기후와 폭우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북극의 빙하가 녹고 있다. 이대로라면 수년 내 지구 해수면이 7.5m가 상승한다고 하니 그 사태가 너무 심각하다. 곤충들도 사라지고 있다. 지구 생태계가 파괴되면 결국 인간이 살 곳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유엔 사무총장이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다 함께 살 것이냐? 이대로 다 함께 죽을 것인가?” 정말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지구가 먼저 멸망할 수 있을까? 성경적으로 세상은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 그런데 지금 그 징조가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듯하다. 난리의 소문과 전쟁과 기근과 핍박. “깨어라! 때가 가까이 왔다.”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만약 내일 주님이 재림하신다면 오늘 우리의 할 일은 무엇인가? 주님은 우리에게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 명하셨다. 주 오실 길을 예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그럼 우리가 복음을 들고 가야 할 땅 끝은 어디일까? 가고자 해도 갈 수 없는 나라, 가장 먼 곳, 같은 언어를 쓰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 우리의 땅 끝은 바로 북한이다. 북한은 이 마지막 때에 우리에게 맡겨주신 마지막 사명지다. 주 오실 때가 심히 가까운 이때에 우리는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으며 한 몸 되어 통일한국의 비전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 우리 교회에 통일대교구가 신설된다. 주님이 교회에 주신 마지막 지상명령 땅 끝 사역을 완수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임을 믿는다. 자유를 찾아 내려온 자유시민과 흩어져있는 조선족 동포들을 모아 통일한국을 준비케 하시는 하나님의 비전임을 확신한다. 이 말세의 징조들을 보며, 이 마지막 때에 깨어 일어나 하나 되어 통일한국을 향해 기도하며 전진하는 순복음 용사들의 비전을 본다. 다시 오실 주님을 고대하며 땅 끝에서 기도한다.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2022.07.29

    우리 인생에 가끔 불이 꺼지는 이유 - 이철 목사(기도원 대교구장)
  • 어느 한 목사님이 딸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차 안에 있는 불을 껐다. “아빠 왜 불을 꺼?” “응, 밖이 더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야.” 실제 운전을 하다 보면 차 안에 불이 켜져 있으면 밖이 잘 보이지 않고 운전에 방해가 된다. 차 안의 불빛 때문에 시선이 방해를 받는 것이다. 그래서 차 안의 불을 끄는 것이다. 시골에 가면 밤하늘의 별이 참 잘 보인다. 그런데 요즘 도시에서는 좀처럼 별을 볼 수 없다. 누군가 말했다. 그것은 도시의 불빛이 너무 밝아서 별이 보이지 않는 거라고. 사실이다. 불빛을 모두 끄면 별이 보인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서 가끔 불을 끄시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더 잘 보게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하나님께 더 집중하도록 하기위해서다. 독서실이나 개인적인 공부방에는 불을 환하게 다 켜지 않는다. 공부하는 책상에만 스탠드 불을 켠다. 이유가 무엇인가. 불빛이 있는 곳에만 집중하기 위해서다. 전체적으로 불이 다 켜져 있으면 산만해지고 집중하기 어렵다. 우리의 눈은 빛이 있는 곳으로 향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전체가 환하면 집중하기 어렵다. 공연장에는 한 곳에만 집중되는 빛이 있다. 스포트라이트다. 우리말로 ‘핀 조명’이라 하는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이유는 이곳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빛이 비취는 곳은 환하지만 반대로 다른 곳은 순식간에 어둠에 싸여 캄캄하게 된다. 인생에 고난이 닥치고 어려움이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께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시선을 주님께로 향해야 한다. 그것이 기도이다. 7, 8월 세상 사람들은 휴가 계획을 잡기에 바쁘다. 하지만 믿음의 자녀인 우리들은 하나 더 준비할 것이 있다. 기도의 동산에 올라가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집중하고 기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2~13).
  • 2022.07.22

    참된 쉼 - 이승훈 목사(영등포대교구장)
  • 한여름 휴가철이 다가오고 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 문구처럼 일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평생 일만 하기 원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휴가를 떠나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오히려 일할 때보다 더 바쁘게 휴가를 보낸다. 휴가에서 돌아오면 더 지치고 피곤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휴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결혼 후 처가댁 식구들과 제주도 가족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유명 관광지와 맛집을 검색해 빡빡한 일정을 짰다. 내심 처가에 인정받는 사위가 되고 싶었다. 공항에 내리니 좋은 날씨와 청량한 바람이 우리를 맞이했다. 차를 렌트하고 출발하였다. 좋은 기억은 딱 거기까지였다. 짧은 기간 마라도, 우도, 유명한 관광지들을 쉬지 않고 달렸다. 거리가 먼 지역이라도 맛집을 찾아갔다. 가족들이 만족했으리라 생각했는데 완전 착각이었다. 가족들은 자동차, 비행기, 배로 옮겨 다니며 멀미를 시작했다. 힘들다고 말하고 싶은데 내 체면을 생각해 말하지도 못했다. 결국, 아이들이 열이 나고 제주도 병원까지 관광(?)한 후에야 나는 여행 계획이 잘못됐다는 걸 깨닫게 됐다. 가족들에게 남은 건 힘든 일정과 병원에 간 기억밖에 없게 되었다. 우리 시대 꼭 필요하지만 누리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쉼’이다. 참된 쉼을 얻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성경은 그런 인생들에게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배우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에서는 소 두 마리가 한 개의 멍에를 메고 밭을 갈게 한다. 경험 많은 소가 어린 소와 함께 멍에를 멘다. 힘이 센 소가 힘이 약한 소와 멍에를 멘다. 한 마리가 힘이 약할 때 다른 소가 힘을 낸다. 우리 인생에서 힘들고 낙심될 때가 있다. 그때 예수님께서 우리 옆에서 이끌어주시고 우리의 짐을 함께 지신다. 올여름 예수님께 나아가자. 모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예수님 앞에 내려놓자. 예수님께서 힘 되시며 스승 되셔서 우리에게 참된 쉼을 주신다. 코로나19로 인해 그동안 열리지 못했던 금식기도대성회가 개최되어 목마른 우리의 영혼에 생명수를 부어 주고 있다. 수련원에서는 참된 쉼과 함께 깊은 영성을 회복하며 주님과 만날 수 있다. 이번 여름 금식기도성회에 참석해 주님과 함께 참된 쉼을 얻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해보는 것은 어떨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 2022.07.15

    건강 하십니까? - 이연섭 목사(강서2대교구)
  • 동네에 새로운 도서관이 생겨 가족들과 방문한 적이 있다. 우선 넓은 공간에 충분한 거리를 두고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옛날 도서관은 자료열람실에서 책을 빌리고 독서실에서는 독서하거나 공부를 했는데 요즘은 열람실과 독서실을 통합으로 운영하고 책을 빌리는 것과 반납하는 것도 기기에 올려놓기만 하면 순식간에 처리 되어 무척 편했다. 눈에 띄는 제목의 책이 있어 그 자리에서 읽었던 책이 있는데 『절반만 먹어야 두 배 오래 산다』라는 제목이었다. 책 내용 중에 “미국 코넬대학 매케인 교수는 열량 섭취를 40%줄인 쥐가 음식을 통제하지 않은 쥐보다 두 배 오래 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먹고 싶은 만큼 먹은 쥐가 절반만 먹는 쥐 보다 수명이 절반이나 짧다는 거다. 음식을 소화하고 흡수하는 몸의 활동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소모 되는데 금식을 하면 소화에 쓰이는 에너지가 치유, 면역, 해독 에너지로 바뀌어 몸을 회복시키는 데 집중한다는 거다. 그래서 대다수의 동물들은 몸이 아프면 동굴에 들어가 금식하는데 반면 사람들은 몸에 좋은 것을 찾아다니며 더 먹으려는 욕심이 몸을 망친다고 한다. 금식을 통한 배고픔이 우리 몸에서 순간적으로 일종의 위기상태 경고 알람 신호를 보내고 신체의 생명유지 시스템을 일제히 작동시켜 면역력, 자연치유력, 해독력에 불이 들어와 백혈구 등 면역세포가 증가한다고 한다. 그래서 세포 내에서 해독 작용이 일어나고 온몸의 신진대사 속도가 빨라져 세포가 깨끗해지면서 젊어져 생명이 활기차게 되살아나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적게 먹어야겠다는 생각과 금식기도를 생각하게 됐다. 지난주에 ‘권사금식 기도대성회’가 오산리기도원에서 성황리에 종료되었고 이제 7월에 있는 ‘직장금식성회’와 ‘여성금식성회’가 남아있다. 이번 여름에 코로나19로 지친 우리 영 혼 육의 건강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해 보는 게 어떨까? 금식만 해도 몸에 좋다는데 금식하며 기도하면 육은 물론이고 영혼까지 챙기는 일석이조(一石二鳥)가 될 것이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6).
  • 2022.07.01

  • 순복음가족신문

    PDF

    지면보기

  • 행복으로의 초대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