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생각을 바꿔라 - 박찬대 목사(반석대교구장)
  • 지금 세상은 너무나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한 번은 인문학을 저술하시는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매년 책 한 권씩을 집필했는데 요즘은 책을 쓰다보면 세상이 또 다르게 변화되어 다시 책을 써야하는 상황이 와서 책을 집필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십년이면 세상이 변한다고 하는데 지금 시대는 일 년에도 몇 번씩 세상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로마(비잔틴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은 20여 ㎞에 이르는 견고한 성벽과 강풍으로 접근이 불가능한 마르마라 해변과 폭이 800m에 불과한 골드혼(금각만)으로 둘러싸여 난공불락의 성으로 불렸다. 그런데 오스만제국은 1000년 이상 버텨온 철옹성을 불과 2개월 만에 차지했다. 오스만제국은 도저히 공격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다른 이들이 생각하지 못한 전략을 펼쳤다. 황소와 병력, 장비를 총동원해 군함을 산으로 끌어 올린 후 기름칠을 한 목재 레일을 이용해 약 2㎞ 떨어진 골드혼에 이동 배치했다. 이렇게 70여 척의 군함이 골드혼에 배치되자 이 광경을 목격한 비잔틴 군대는 공포에 휩싸였다. 오스만은 육군과 해군의 협공으로 57일 만에 천해의 요새인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켰다. 이처럼 고정관념의 틀에 빠져 무사 안일한 콘스탄티노플성과 생각의 틀을 바꾼 오스만제국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던 멈춤이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때 우리는 생각의 틀을 깨야한다. 갈수록 교회의 부흥은 어려워진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을 한다. 그러나 이때가 다시 부흥의 시작이 될 것이다. 태풍이 불어와 바다를 다시 정화 하듯이 문제의 폭풍은 우리의 신앙을 다시 돌아보게 하였고, 2023년 2월 8일 수요일에 채플 후 현장에 남아 있던 19명의 학생들의 찬양과 기도로 시작된 미국의 애즈베리 부흥은 다시 새로운 부흥의 파도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는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가 그 파도를 타고 전 세계에 부흥의 파도를 몰고 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라는 세상의 고정관념을 벗어버리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의 믿음으로 배를 가지고 산으로 올라가 보자. 산에 오르면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세상이 보일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 2023.03.24

    지워짐의 은혜 - 오혁진 목사(장애인대교구장)
  • 오늘날 세계를 움직이는 최고의 지성인들이 전문적 의견과 성과를 토론하기 위해 만든 것이 엣지재단(Edge Foundation, Inc.)이다. 회장인 존 브록만(John Brockman)은 각 분야의 지성인에게 지난 2천년 동안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 무엇인가를 물어 『지난 2천년 동안의 위대한 발명』이란 책을 편집했다. 지성인들답게 대부분이 개념(교육, 민주주의, 과학적방법론 등)과 과학기술(인쇄, 컴퓨터, 인터넷 등)을 답했고, 특이하게 제시된 발명품으로 보온병, 말가죽, 클래식 음악 등이 있었다. 작가이자 평론가인 더글러스 러시코프(Douglas Rushkoff)는 이 질문에 ‘지우개’라고 답했다. 컴퓨터의 ‘del’키, 수정용 화이트, 헌법 수정 조항, 그 밖에 인간의 실수를 수정하는 모든 것들을 꼽았다. 돌아가서 지우고 다시 시작할 수 없었다면 과학, 정부, 문화, 도덕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지우개는 우리의 참회소이자 용서하는 자며 타임머신이기도 하다.” 지우개는 실수를 지우고 깨끗하게 하면서 또한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준다. 시대와 도구가 다양한 만큼 지우는 방법들도 다양하다.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은 아직 마르지 않은 진흙판에 잘못 쓴 글자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이집트의 파피루스는 마르기 전에는 젖은 헝겊으로, 잉크가 마른 다음에는 칼날로 긁어냈다. 돌에 잘못 새긴 글자는 쪼아내고 석회로 메운 뒤 다시 쪼아 새긴다. 우리에게는 십자가의 은혜가 지우개이다. 지울 수 없는 우리의 죄와 죄 자국들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대신 지워주셨다. 오늘도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모든 죄를 지워주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으로 옷 입은 우리를 의인이라 여겨주시고 만나주신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롬 4:3). 십자가는 실수와 실패, 상처와 미움을 딛고 다시 시작하는 힘을 주신다. 새로워질 주님의 기회를 나와 우리에게 허락하신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사 43:18~19). 사순절 기간에 십자가를 묵상하자. 지워짐의 은혜는 다시 시작하는 놀라운 기회임을 기억해보자.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시 32:1).
  • 2023.03.17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Change or Die) - 변원중 목사(영등포대교구장)
  • 미국의 교회 컨설팅으로 명성을 떨치는 톰 레이너 목사는 그의 책 『죽은 교회를 부검하다』에서 한 환자의 이야기를 전해 준다. 그녀는 무척이나 아팠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철저한 변화가 없다면 그녀가 가진 모든 희망은 결코 현실로 이루어질 수 없다고 의사는 진단을 내렸다. 그러나 그녀는 어떤 변화도 한사코 거부했다. 의사는 최대한 연민의 감정을 담아 이야기하려 했지만 “당신은 죽어가고 있습니다”라고 전하는 것만이 그녀를 정말 위하는 일임을 알았다. 기껏해야 5년이지… 5년도 길게 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의사의 소견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단호함과 저항, 분노를 담아 “저는 전혀 죽어가고 있지 않아요”라고 대답하고는 5년 이상을 살아냈다. 그리고 그녀는 10년을 더 생존하는 끈기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그녀는 말이 살아 있는 것이지 고통과 질병과 절망으로 가득한 채 겨우 숨만 쉬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는 죽었다. 저자는 그녀의 이름을 ‘교회’라고 알려준다. 거창한 비전 가운데 탄생했을 교회이지만 문을 닫는 교회들을 수도 없이 보며 저자는 그 교회의 갖은 실패의 원인을 부검하여 생명을 잃어가는 교회에 즉각적인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율법을 잘 지켜온 부자 청년에게 영생을 얻으려면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은 부자 청년은 근심하며 돌아갔다.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오히려 쉽다고 말씀하신다. 이렇듯 영생을 위한 변화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영원한 삶을 원한다면 반드시 변화가 필요하다. 바울 사도는 성도와 교회가 생명력이 넘치게 살기 위해서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롬 12:2). 성도와 교회는 이 세상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요구를 뛰어넘는 변화가 필요함을 알려준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것이 교회다. 주님께서 십자가로 음부의 권세를 이기셨기 때문이다. 사순절 기간 주님의 수난이 우리에게 소망이 됨은 고난 뒤에 따라오는 부활의 영광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교회인 성도는 고난의 자리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의 자리에서 절대긍정과 절대감사로 새롭게 변화되어야 한다.
  • 2023.03.10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 김용권 목사(서대문성전 담임)
  • 다니엘서의 마지막 12장은 세계 종말에 일어날 일들을 말해 주고 있으며 성경 곳곳에서는 세계 종말의 징조로 도덕적 타락, 폭력, 가치관의 혼돈과 재난, 전쟁을 특징으로 말씀한다. 현재 우리는 마지막 때를 살고 있으며 전 세계적인 전쟁, 지진, 기근 등을 체험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이 지난 현재 우크라이나군 10만명, 러시아군 20만명 등 약 30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또한 2월 6일 튀르키예 지진으로 사망자가 앞으로 1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UN(국제연합)은 이번 지진으로 전 세계의 단층들이 흔들려 연쇄적인 지진과 화산폭발이 염려된다고 전했으며, 세계보건기구(WHO)는 3년 넘게 진행된 코로나로 지난 1월까지 6억 7000만명 확진되고 사망자는 670만명을 넘어섰다고 전했다. 이와 같은 암울한 소식들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 나타날 징조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경의 예언은 우리 삶에서 하나씩 성취되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위에 계신 하나님만 바라보고 오직 하나님만이 역사를 통치하고 계심을 기억해야 하며 만물의 마지막 때를 잘 준비하는 깨어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정신을 차리고 날마다 기도에 힘써야 한다(벧전 4:7). 우크라이나와 튀르키예의 절망에 빠진 영혼들을 위해 중보기도하고 특히 구제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한다. 바울이 밤에 환상 가운데 마게도냐 사람이 나타나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달라고 청하는 것을 보게 된 것처럼(행 16:9) 우리 교회는 재난 소식과 함께 발빠르게 2주간의 재난 지원금을 모금하여 튀르키예에 10억원을 보내는 계획을 발표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 교회 성도들의 구제와 선교를 통해 절망에 빠진 많은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예수님 십자가 사랑의 손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것이 이 시대 교회와 전도자의 사명이다. 세상 종말의 때에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별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 12:3)고 했다. 우리는 복음의 사명자이다.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에게 성경의 말씀대로 세상 종말의 마지막 때에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날 것이다.
  • 2023.03.03

    영적 지진 대비법 - 차진호 목사(여의도순복음서귀포교회 담임)
  • 2월 6일 튀르키예에 진도 7.8의 대지진이 발생해 4만 60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런데 튀르키예 하타이주의 ‘에르진’이란 도시에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사망자 ‘0’, 무너진 건물 ‘0’이란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2019년에 에르진시의 시장으로 당선된 엘마소글루는 당시 튀르기예 법원에서 지진 대비법이 통과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취임 직후부터 지진 대비법을 기준으로 도시 내 건축물을 엄격하게 규제하기 시작했다. 내진 규제 강화법에 따라서 지진 취약 지역의 신축 건축물에 고품질 시멘트와 콘크리트를 사용하라고 지시했으며 기존 건물 중 지진에 취약한 건물들을 철강으로 보강하도록 지시했다. 그러자 에르진 시민들은 새로 임명된 시장의 지시에 큰 불만을 가졌고 자신의 건물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해 달라는 민원이 발생했다. 엘마소글루 시장은 타협하지 않고 단오하게 지진 대비 보강공사를 지시했다. 그 결과 지난 6일 튀르키예에 진도 7.8의 대지진이 발생했지만 에르진 시민들은 안전할 수 있었다. 4년 전에 엘마소글루 시장을 비난하고 욕했던 에르진 시민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지켜준 시장에게 큰 감사를 하고 있으며 엘마소글루 시장은 튀르키예 온 국민들의 존경을 받게 되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큰 전쟁이나 큰 지진이 발생할 때마다 묵상해야 할 성경구절이 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감람산 토론 중에 한 제자가 예수님의 재림과 인류의 종말의 때가 언제인지에 대해서 물어 보았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7~8). 또한 언제 다시 오실지 모르는 종말의 때에 영적 지진 대비법도 말씀해 주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4~27). 지금 우리는 코로나라는 광야를 건너 전쟁과 지진이란 여리고성을 만났지만,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의 법인 성경의 가르침대로 반석 같은 신앙의 집을 짓길 소망한다.
  • 2023.02.24

    희망의 빵 - 김석수 목사(금옥성전 담임)
  • 루이지 코멘치니라는 영화감독이 있다. 그는 이탈리아의 코미디 장르 영화의 거장 중에 한 명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빵과 사랑과 꿈’(Pane, Amore E Fantasia)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1953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이탈리아 사람들이 실직과 가난, 질병 등으로 패배감과 절망감 속에서 살아가는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에서 한 노인이 시골 길가에 앉아서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마을의 파출소장이 노인에게 “영감님, 무엇을 드시고 계십니까?” 하고 물으니까 노인은 빙그레 웃으면서 “곰보빵입니다”라고 대답했다. 파출소장이 “빵 속에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라고 다시 물어보자 노인은 손에 쥐고 있던 빵을 반으로 잘라 보이며 “빵 속에 꿈이 들어 있다오!”라고 대답했다. 사실 노인이 보여 준 빵 속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고 노인은 마른 빵만 먹고 있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원래 곰보빵 속에 고기나 치즈, 야채 등을 듬뿍 넣어서 먹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그들은 가난으로 빵 속에 아무것도 넣을 수 없어 속이 빈 빵으로 끼니를 때웠지만 내일에 대한 소망과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 주는 영화였다. 희망을 가졌다고 해서 배가 부르고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우리가 아무리 어렵고 힘들고 참기 어려운 일이 있을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우리를 돕고 희망을 주시는 예수님이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신다. 희망을 주시는 예수님과 함께 하면 죽음까지도 물리칠 수 있다. 코로나, 우크라이나 전쟁, 지진 등 세상의 현실은 우리를 힘들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놓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아무리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어도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면 희망이 생긴다. 내일에 대한 꿈이 생긴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임을 항상 기억하자.
  • 2023.02.17

    교회에서의 오픈 런(Open run) - 서상현 목사(은평성전 담임)
  • 최근 TV나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해 ‘오픈 런’이라는 단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원래 ‘오픈 런’의 의미는 종료일을 지정하지 않고 공연을 지속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농구 수업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개장, 열림’을 뜻하는 Open과 ‘달리다’의 뜻을 가진 run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즉 ‘개장과 동시에 (뛰어가서) 입장하다’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런(run)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느긋하게 천천히 입장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하듯이 뛰어 들어갈 때 사용합니다. 이처럼 매장의 문이 열리자마자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달려가는 오픈 런(Open Run) 현상이 MZ세대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것, 다른 이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짐으로서 자기를 표현하고 자기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려는 행동이 오픈 런에 숨어있는 속뜻입니다. 대부분 존재 자체의 행복이 아닌 소유가치의 행복에 더 무게를 두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오픈 런의 원조는 아마 우리 교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1973년 여의도로 부모님 손에 이끌려 교회학교 초등부에서부터 지내 온 기억에 의하면, 당시 대성전에 들어오기 위한 성도들의 발걸음은 항상 오픈 런이었습니다. 1시간 이상 성전 밖에 서서 기다리며 예배를 사모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이는 공동체입니다. 오늘의 교회는 성령님의 역사 아래 ‘예배, 선교와 전도, 교육, 교제, 봉사’ 등 다섯 가지 기본 기능을 수행합니다. 우리 교단 헌법은 제24조 교회의 구별의 항목에서 교회를 ‘예배하는 공동체의 모임’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교회의 기능 가운데 예배가 가장 중요하고 예배가 가장 우선이라는 말입니다. 예배는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최근 병원과 대중교통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곳에서 마스크 해제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다시금 예전처럼 예배 자리를 향한 오픈 런을 기대해보며 부모, 형제, 자매, 친구, 가정, 이웃, 동료들을 전도하여 복음의 오픈 런이 멈추지 않고 이어지길 꿈꾸어 봅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4).
  • 2023.02.10

    리추얼 라이프, 영으로 의식하라 - 권병수 목사 (복지사업국장)
  • 새해가 되어 우리 가족은 MZ세대 감성의 다이어리를 구입했다. 각 장의 메모장에는 요즘 자주 사용하는 ‘리추얼’(Ritual)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리추얼’은 의식적이라는 뜻으로 번역된다. 사실 리추얼은 ‘종교상 의식’이나 ‘제의적 의례’의 뜻을 담고 있다. Ritual의 어원적 뿌리는 라틴어 ‘Ritus’에 있다. 리투스 (Ritus)는 ‘성스러운 관습’을 뜻한다. 이는 한 시대에 통용되는 사회적 습관을 의미하기도 한다. 최근 리추얼과 라이프를 합해진 신조어 ‘리추얼 라이프’가 생겨났는데, 이것은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하나의 트렌드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규칙적인 습관을 의미한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습관 실천을 통해 코로나 블루와 취업난, 주택난 등에서 오는 무력감을 극복하고 심리적 만족감과 성취감을 얻으려는 MZ세대의 요구가 반영된 라이프 스타일이다. MZ세대들은 이런 리추얼 라이프 실현을 위해 새벽 시간을 활용하여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미라클 모닝은 본격적인 일과가 시작되기 2~3시간 전 이른 아침에 일어나 자기개발을 위해서 이불개기, 물 한잔 마시기, 기도, 독서, 일기쓰기 등 소소한 것부터 자신의 생활 습관(루틴)을 행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심리적 안정감과 새로운 에너지를 얻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러한 삶의 모델이 되시는 분이 계시다. 예수님은 새벽부터 먼저 일어나서 영으로 하나님을 의식하며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셨다. 그러기에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 찾을 필요 없이 매일 새벽에 성경 속으로 들어가면 된다. 새벽에 예배로 시작하는 것이다. 새벽에 주님과 만나 영으로 의식하며 사는 리추얼 라이프는 미라클 모닝이 되어 하루의 기적을 만들어내고 삶의 에너지를 공급할 것이다. 말씀 앞에서 예배하는 미라클 모닝을 실현해 내길 바란다. 주의 약속을 믿고 말씀에 운명을 거는 한해가 되어 그 능력이 개인과 교회와 나라와 민족, 세계를 향한 비전이 되어질 것을 믿는다. 나의 리추얼 라이프가 영적 라이프(Spiritual life)로 준비되어야 한다. 리추얼 라이프, 영으로 의식하는 한해를 기대한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7).
  • 2023.02.03

    예배와 식사 - 마웅갑 목사(교회학교장)
  • 러시아 사할린에 가면 다른 러시아 지방보다 색다른 음식 메뉴를 종종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러한 배경을 설명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1950년대 러시아 사할린에는 먹을 것이 없어 러시아 사람들은 굶주리고 있는데 조선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계속 입에 넣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대부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에서 끌려온 사람들이었는데 러시아인들이 가서 보니 산나물, 미역, 다시마, 조개, 명태, 오징어, 문어 등 당시 유럽 사람들은 알지도 먹지도 못하는 것들을 찾아 먹고 있었던 것이다.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조선인의 음식을 먹다 보니 지금의 사할린 러시아인들은 유럽 사람들과는 다른 음식 메뉴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경에도 먹을 것에 관심이 많다. 사람에게 주어진 첫 번째 하나님의 명령도 그리고 첫 번째 죄도 먹을 것에 관한 것이었다. 먹지 말라는 것을 호기심에 잘못 먹었더니 에덴에서 쫓겨나 유한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성경의 먹을 것에 대한 관점은 약간 다르다. ‘얼마나 다양한 먹거리를 어떻게 맛있게 먹고 건강해지느냐’가 아니라 어디서 누구와 함께 무엇을 먹느냐를 더 중요하게 본 것이다. “아론 자손의 남자는 모두 이를 먹을지니 이는 야훼의 화제물 중에서 대대로 그들의 영원한 소득이 됨이라 이를 만지는 자마다 거룩하리라”(레 6:18). 아론의 자손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드린 고운 곡물가루를 주님께 드린 후에 나머지를 성막에서 나누어 먹었다. 이 식사는 맛이 문제가 아니라 성소에서 하나님께 드려진 것을 소박하지만 나누어 먹었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예배와 더불어 식사에서 하나님의 것을 나눔으로 그들도 거룩하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것을 거룩한 곳, 성전에서 먹고 나누는 가운데 주의 백성이 되어 간다. 구약이나 신약에서 주님이 정하신 예배는 두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예배이고 두 번째는 공동식사이다. 공동식사를 준비하는 자는 예배를 준비하는 제사장과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영적인 말씀을 같이 나누어 먹는 것이고 다음은 육을 위한 음식 즉,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준비한 음식을 나누는 것이다. 이로서 예배는 완성된다. 처음 말씀을 나누는 예배와 다음의 애찬을 나누는 시간도 모두 예배인 것이다. 이는 인터넷에서 설교만 듣는 것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예배와 식사를 나누는 그곳에 성령님은 임하신다. 올해는 우리의 예배 가운데 거룩한 성찬을 온전히 준비하며 주님의 말씀을 나누고, 모든 모임에서 예배와 교제의 식사가 은혜로 활성화되길 소망한다.
  • 2023.01.27

    새롭다는 것은 - 이일섭 목사(선교국장)
  • 모든 인생에 있어 새롭다는 것,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주제입니다. 왜냐하면 새롭다는 것은 각각의 인생에 변화와 회복 그리고 희망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동경하고 추구하지만 저마다의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고 절망함으로, 다시 무언가를 시도하지 못하고 포기하거나 현실에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꿈 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그저 현실에 순응하여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살아가다 인생에 염증을 느끼는 순간도 찾아옵니다. 하지만 언제든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바로 길과 진리요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일본의 개신교 사상가였던 우치무라 간조(1861~1930)는 그의 저서 일일일생(一日一生)에서 “기독교는 날마다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가는 종교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그 역사의 출발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주님만을 신뢰하기로 믿음으로 결단하고, 전폭적으로 성령님을 의지하여 세상 속에서 전진할 때 변화하고 성장하며 또 다른 소망을 품을 수 있은 단계로 올라서게 됩니다. 헬라어로 ‘새롭다’는 의미를 지닌 ‘카이노스’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카이노스’는 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것을 의미할 때 쓰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는 말씀의 ‘새로운 피조물, 새 것’에 ‘카이노스’가 사용됩니다. 성도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삶으로 변화됐음을 의미합니다. 성도를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도록 도우시는 성령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면 생각과 꿈이 새로워지고, 입술의 고백과 믿음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질적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성도는 어떠한 일이 닥치더라도 위기의 순간에 마침내 나에게 기회가 왔다고 믿음으로 선언하고 성령님과 함께 담대하게 전진해야 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
  • 2023.01.13

    희망을 향해 앞으로 나아갑시다 - 백근배 목사(여의도직할성전 담임)
  • 소망의 해가 밝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뒤로 하고 희망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 바닷가에 진을 치던 때에 애굽왕 바로의 군대의 추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앞은 홍해요 뒤는 무서운 애굽 군대의 추격을 받은 것입니다. 실로 진퇴유곡의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 내용은 “이스라엘 자손으로 앞으로 나가게 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려운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나아갈 때 하나님이 승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과거라는 지난해를 뒤돌아 보지 말고 새로운 새해를 향해 앞으로 나가라고 말씀합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을 떠나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 약속의 땅으로 가는 중에 시련의 관문을 만난 것입니다. 이들이 만난 것은 앞은 홍해요 뒤는 애굽 군대이며 양 옆은 험한 산입니다. 축복의 땅에 대한 모든 공이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감사와 찬송의 소리가 갑자기 원망과 탄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래도 낙심치 말고 앞으로 나가라고 말씀합니다. 어떠한 환난과 어려움이 와도 낙심하지 말고 앞으로 전진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넘어지지 않는 법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가르침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방법을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때 넘어지고 쓰러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또 일어나 나가는 것입니다. 올해 우리에게 어떠한 애굽, 홍해, 산이 우리의 앞을 막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상황에서도 주저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합니다. 미국의 토크쇼 진행자인 오프라 윈프리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10대 여성 가운데 한 명이며 영화감독이자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 중 한명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사생아로 태어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 채 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9살 때 사촌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14살에 임신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세계적인 인물입니다. 그녀가 이러한 축복 된 삶을 살게 된 것은 할머니가 세 살부터 주기도문을 외우게 하고 교회 중심,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금년 한 해 우리에게 어떠한 문제가 있어도 희망을 가지고 나갈 때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가 무너지고, 애굽이란 적군을 이길 수 있습니다. 물러서지 아니하고 나갈 때 하나님이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금년 한 해도 새 소망과 꿈을 안고 앞을 향해서 전진해야 합니다.
  • 2023.01.06

    성령 충만한 삶이 드러나는 새해 - 윤광현 부목사(교무)
  •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 왜 ‘성령 충만과 술 취하지 말라’가 함께 나타날까요? 이것은 외형적인 관점으로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술 취한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얼굴은 빨갛고 걸음걸이는 휘청거리면서 말은 어눌하고 누가 봐도 술 마신 사람, 술 취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세상적인 인생들의 한 단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와 반대의 삶인 성령과 함께하는 삶,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하는 삶을 우리에게 명령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성령 충만이라고 하면 많은 성도들이 내적인 감흥, 뜨거워지는 것, 주관적인 요소들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에베소서 5장 18절 말씀의 명령은 성령 충만 받은 삶의 모습이 어떤 삶인지를 19절에서 21절까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찬양으로 화답하는 삶입니다. 사람이 기분이 좋으면 자기도 모르게 흥얼거리듯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의 삶은 입술에 찬양이 넘쳐나고, 깊숙한 곳에서부터 하나님을 경배하는 삶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감사하는 삶입니다. 그냥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감사하고,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인 것입니다. 이런 감사의 삶을 통해 성령 충만함이 나타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복종하는 삶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각자의 삶 속에 주님의 일하심을 바라볼 수 있기에 서로 섬기고 복종하는 삶입니다. 내 뜻은 죽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일하심이 나타날 수 있는 복종의 삶이 드러날 때 우리는 성령 충만한 삶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보았을 때, ‘술에 취한 세상 사람의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아니면 찬양과 감사, 복종의 삶이 보이는 성령 충만한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새해를 맞이해 열두광주리 새벽기도회를 시작하는 이 시점에 우리 모두가 성령 충만한 삶을 나타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 자신의 성령 충만함은 개인의 변화뿐만이 아니라 부부, 가정, 사회 환경 속에서도 성령의 일하심을 경험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시고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제2부 예배의 삶은 성령 충만한 삶으로 응답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 2022.12.30

    만병통치약! 감사를 바르라 - 홍형기 목사(강서1대교구장)
  • 한 때 겨울철만 되면 부모님들은 겨울 건조한 날씨에 피부보습을 유지하기 위해 바세린을 발라주시곤 하셨다.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졌던 바세린은 어느 집이나 하나쯤은 꼭 비치되어 있었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제품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실제로 바세린을 바르면 웬만한 병은 다 낫더라는 사실이다. 인생 전반에 예고 없이 찾아오는 문제에도 마치 바세린과 같이 만병통치약이라 불릴만한 신앙의 자세가 있다. 그것은 바로 ‘감사’이다. 매사에 감사를 바세린처럼 발라보자. 실제로 아픈 곳이 있으면 낫나 안 낫나 똑똑히 따져서 그에 맞는 약을 처방해야 될 것 같지만 이보다 앞서 먼저 ‘감사’를 바르게 되면 그 회복력은 훨씬 빨라진다. 사람들 사이에 생긴 문제 속에 씩씩거리고 화를 주체하지 못할 그때도, 누군가를 바라볼 때 마음이 불편해지는 그 때에도 일단 내 마음과 입술에 감사부터 바르다 보면 어느새 하나님께선 감사로 시작한 그 자리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계심을 보게된다.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1867~1957)는 원래 첼로 연주자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지독한 근시가 찾아와 눈앞에 있는 것조차 볼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절망의 자리에 서 있던 그는 그때부터 첼로부분 만이 아니라 다른 악기 파트의 모든 악보까지 통째로 외우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계속해서 연주자 생활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다. 어느 날 교향악단은 매우 중요한 아이다(Aida) 공연의 시작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악단을 이끌어야 할 지휘자는 관객들과 소통의 문제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고 말았다. 공석이 된 지휘자 자리를 두고 웅성거리고 있던 그 때 악단에서는 토스카니니를 떠오르게 된다. 그는 악보 전부를 외우는 유일한 단원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맡겨진 지휘봉을 가지고 토스카니니는 일반 지휘자가 해낼 수 없는 자신만의 음악적 감각으로 매우 성공적으로 연주를 마치게 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지휘자의 길을 걸어간 그는 점차 이름을 알리게 되었으며 결국엔 세계적인 지휘자로 명성을 얻었다. 토스카니니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어려울 때 힘이 되신 살아계신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좋은 환경이 아니라고 해서 불평하지 말아라. 좋은 환경이어야만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한 조건들이 많아져야 감사하는 것이 아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2022년을 감사함으로 마무리하고 2023년을 감사함으로 시작하게 될 때 천국은 죽어서만 가는 곳이 아닌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누리게 되는 축복의 선물로 주어질 것이다.
  • 2022.12.23

    섬김의 도 - 김종현 목사(동대문성전 담임)
  • 오늘날 예수를 믿는 성도는 교회와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사람은 누구나 높아지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남을 헐뜯고 비방하여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한다. 이러한 모습은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조금도 다른 것이 없다. 하지만 교회와 성도는 이 사회에 절대 필요한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 가진 자는 주린 자를 돌아보고 성한 자는 병든 자를 돌아보며 살아야 한다. 섬기는 자는 늘 허리를 굽혀 상대를 깍듯이 대하는 것이다. 섬김은 먹을 것을 주고 돈도 주고 무언가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어린 아이 하나라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섬김이라고 하는 것이다. 많은 성도들이 교회에서 봉사를 하는데 섬김의 바른 이해가 없이는 올바른 봉사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올바른 섬김을 배움으로 하나님께는 물론이요 교회와 성도를 바로 세워 가는데 필요한 일꾼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섬김에 필요한 것이 또한 겸손이다. 성경 빌립보서에서는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라고 말씀하고 있다. 겸손한 마음이 없으면 남을 업신여기게 되며 그 안에 섬김이란 단어는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섬김이 허영이 아니기를 바란다. 다툼이 없고 거짓이 없는 겸손으로 섬기는 성도가 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또한 성경에서는 청지기의 마음으로 섬겨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청지기란 말은 나에게 주인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의 일꾼인 것이다. 교회에서 식당일을 많이 한다고 섬기는 것이 아니다. 그 일로 인해서 어떠한 현상이 곧 어떠한 열매가 나타나느냐에 따라서 그 일이 섬김이 되고 봉사가 되고 구제가 되고 선교가 되는 것이다. 만약에 열매가 없다면 그것은 그냥 일을 한 것이지 섬김도 봉사도 헌신도 아닌 것이다. 올바른 섬김으로 하나님과 교회와 이 사회를 변화 시키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 2022.12.16

    강한 바람에 둥지를 짓는 새처럼 - 신준우 목사(동작대교구장)
  • 새는 둥지를 지을 때 결코 쉽고 편안한 방법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 작은 부리로 얼마 안 되는 나뭇가지를 물어 나르고, 흙을 이겨 틈새를 메우는 수고를 수백 수천 번 반복하면서도 낮은 곳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 오르기 힘든 높디높은 곳을 골라 둥지를 짓는다. 심지어 그 작은 몸으로 균형 잡기조차 버거운 강풍이 불어도 잔잔해질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강한 바람이 부는 날을 기다려 둥지를 짓는다. 새가 짓는 둥지는 탐욕스러운 짐승의 손길이 닿지 않는 안전한 곳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강한 바람에도 견뎌낼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거센 태풍 앞에서 나무가 뿌리째 뽑히거나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꺾일지라도 새의 둥지는 허물어지는 법이 없다. 이렇듯 새에게 있어 최악의 조건은 역설적으로 둥지를 짓기에 최적의 조건이 된다. 그러기에 새는 둥지를 짓는 일에 있어 결코 쉬운 길(easy way)이 아닌 가장 좋은 길(best way)을 선택한다. 최근 매서운 겨울을 알리는 한파 속에 크리스천의 삶의 기반을 흔드는 거센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굳이 사회, 정치, 경제 등 객관적인 지표를 확인하지 않아도 우리 귀에 들려오는 소식은 하나같이 우울하고 부정적이다. 이념의 대립으로 사회는 분열된 데다 나라 밖 거친 외풍까지 더해져 한 해의 유종의 미를 거두고, 다가올 새해를 기대해야 할 12월의 발걸음이 마냥 무겁고 어둡기만 하다. 하지만 강한 바람 앞에서도 새는 움츠리기는커녕 더욱 힘껏 날개를 펴 둥지를 짓듯이 우리 역시 믿음으로 희망이란 이름의 둥지를 지어야 한다. 칠흑같이 캄캄한 밤에 별이 더욱 밝게 빛나듯이 모두가 소리 높여 절망을 말할 때 우리는 묵묵히 희망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없을 때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우리의 무력함을 뼈저리게 절감하는 그때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가장 크고 가깝게 경험할 때인 것이다. 위기는 기회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도 새처럼 쉬운 길이 아닌 가장 좋은 길을 결단하며 거친 비바람과 태풍 앞에서도 결코 허물어지지 않는 튼튼하고 견고한 둥지를 지어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
  • 2022.12.09

    메타버스로 떠나는 성지순례 - 이상영 목사(서대문대교구장)
  • 메타버스는 ‘가상’, ‘초월’ 등을 뜻하는 영어 단어 ‘메타’(Me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세계와 같은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의 가상세계를 가리킨다. 메타버스는 가상현실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개념으로 아바타를 활용해 단지 게임이나 가상현실을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현실과 같은 사회·문화적 활동을 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가상세계에서 나만의 아바타를 이용하여 삶을 살아갈 수 있고 현실세계에서 이루지 못했던 꿈을 이룰 수도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도 있다. 현실에서는 되지 못했던 유명인의 삶도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메타버스의 세계이다. 특별히 코로나 시기에 메타버스는 더욱 대중적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우리 교회 역시 코로나로 인해 여름수련회를 하지 못했던 시기에 메타버스를 통해 수련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싫든 좋든 메타버스로 대표되는 가상세계는 앞으로 우리 곁에 더 발전된 모양으로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 며칠 전 한 장로님 부부와 식사를 하면서 메타버스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대화를 나누던 도중 앞으로는 성지순례도 메타버스를 통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이스라엘을 포함한 성지를 방문해보고 싶어하지 않는가? 하지만 많은 성도들이 재정, 시간 또는 건강상의 이유로 평생 성지를 방문해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앞으로 메타버스 기술을 잘 활용한다면 성지순례도 어렵지 않게 다녀올 수 있다. 예수님 사역의 중심지였던 이스라엘, 바울의 선교 여행지였던 터키 및 유럽 등의 지역도 다녀올 수 있고, 우리 주님이 걸어가셨던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걸어보며 신앙의 유익과 은혜를 경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런 일들은 이제 현실의 기술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고증을 바탕으로 구현된 1세기 팔레스타인 땅을 21세기에 밟아보고, 주님 곁에서 3년 반을 동행했던 제자들의 시점으로 주님이 행하셨던 일들을 엿볼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미 세상은 가상세계에 대한 수많은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교회 역시 가상세계 및 메타버스 기술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신앙적으로 고민하고 전문인들의 도움도 받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기술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성과 부작용을 경계하는 것 역시 교회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이 세상 모든 것을 선하고 지혜롭게 활용하여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 2022.12.02

    코로나 이후 청년세대를 위한 기도 - 김남준 목사(청장년국장)
  • 코로나 이후 청년세대들의 신앙생활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것을 가속화시킨 것이 온라인 예배다. 이전까지 우리는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형태를 대면 예배에 나올 수 없는 극한 상황 때나 드리는 예배로 생각하거나 집안일을 하면서 말씀을 주야로 들을 수 있는 등 신앙생활을 위한 보조 수단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릴 수 없는 현실 앞에 다른 선택지가 없던 청년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온라인 예배를 선택하게 되었고, ‘예배’라는 인식이 청년들에게 강하게 심어지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모임 금지가 해제된 지금에도 청년들은 대면 예배를 드릴지 또는 온라인 예배를 드릴지를 선택한다. 그리고 코로나를 지나며 온라인 예배를 ‘예배’로 인식한 세대들에게 더는 온라인 예배에 대한 신앙의 불편함은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그들은 대면 예배도 ‘예배’, 온라인 예배도 ‘예배’로 인식한다. 그들에게는 단지 방식만 다른 ‘예배’일 뿐이다. 세상은 이처럼 코로나 이후 변화된 트렌드를 쫓아 우리가 변화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방향성은 마가 다락방의 성령의 강력한 역사이다. 초대교회 당시 그들은 모였고, 모여서 함께 기도했고, 모여서 함께 기도할 때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나타났다. 성령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일하고 계신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는 다시 함께 모여야 하고 성령의 역사를 갈망하며 체험해야 한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외손자이자 미국에서 주목 받는 튤리안 차비진 목사는 이런 말을 했다. “무엇인가 알 수 없는 목마름과 갈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크리스천들은 세상과 전혀 다른 메시지를 고수해야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청년세대를 향해서도 복음을 향한 세상과 전혀 다른 메시지를 고수하며 나갈 때, 지금 이 시대 청년들의 알 수 없는 목마름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성령의 뜨거운 불을 가진 청년들이 더 깊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을 힘입어 도리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구별된 청년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시 110:3).
  • 2022.11.25

    스콴도를 기억하자 - 김형건 목사(국제신학연구원 부원장)
  • 1603년 3월 24일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라고 평가받는 여왕 엘리자베스1세가 사망했다. 자손이 없었기에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6세에게 왕위가 계승되었다. 그는 잉글랜드에서 제임스 1세로 즉위한 후 노골적으로 가톨릭 제도를 옹호하며 평소 염증을 느끼던 청교도들을 탄압했다. 청교도들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다른 곳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1620년 9월 16일 후세의 역사가들에 의해 ‘순례자 조상들’(Pilgrim Fathers)이라고 불리게 된 청교도 102명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북아메리카로 떠났다. 이들은 같은 해 11월 21일 케이프코드 끝의 낚시 바늘 모양의 프로빈스 타운 항구에 닻을 내렸다. 도착한 이듬해엔 첫 추수를 마치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 있었는데 여기에서 추수감사절이 유래되었다. 사실 ‘순례자 조상들’보다 10년 앞선 1608년 영국 무역상들이 그곳에 먼저 도착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왐파나옥이라는 인디언들을 스페인에 노예로 팔아넘겼는데 그중 스콴도라는 인디언 청년이 끼어 있었다. 그는 스페인의 한 사제에게 팔렸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는 기도하는 것을 배우게 되었고 세 가지 제목을 가지고 늘 기도했다. 첫째는 고향에 돌아가게 해달라는 것이고, 둘째는 자기를 팔아넘긴 백인들을 원망하지 않고 그들과 협력하여 고향을 스페인처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셋째는 자기 평생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스콴도는 그 사제의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10년 만에 고향에 돌아오게 되었다. 돌아와 보니 가족들은 전염병으로 모두 죽고 마을은 폐허가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기도한대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남은 자들을 이끌고 땅을 개간하며 마을을 재건했다. 바로 이때 메이플라워호가 도착한 것이다. 스콴도는 유창한 영어로 청교도들을 환영하고 정착을 도왔다. 영국에서 메이플라워를 타고 온 청교도 지도자인 윌리엄 브래포드 목사는 그의 일기장에 그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스콴도는 하나님이 우리의 유익을 위해 준비하신 특별한 도구였다. 그는 우리에게 옥수수를 어떻게 심는지, 낚시를 어떻게 하는지, 땅을 어디에 어떻게 개간하는지 가르쳤다. 그는 죽을 때까지 한순간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우리의 친구가 되어 우리를 인도했다.” 첫해가 지나고 청교도들과 스콴도 그리고 인디언들이 칠면조를 잡아 함께 식탁에 앉아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수년 후 그가 열병으로 죽게 되었을 때 그는 브래포드 목사에게 천국에 편히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하면서 부디 이 땅을 살기 좋은 땅으로 만들어 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땅을 축복해주옵소서…” 추수의 계절, 우리 각자의 스콴도는 누구일까? 그 사람으로 인해 감사가 넘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누구보다 우리에게 진정한 스콴도 되어 주신 주님을 기억하며 넘치는 감사로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자.
  • 2022.11.18

    세상을 구하는 오직 한 길 - 이상일 목사(용산대교구장)
  • 커피 하나로 전 세계 많은 가맹점을 운영하는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사장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하워드 슐츠는 뉴욕 브루클린의 빈민가에서 태어났지만 출신배경이 문제가 아니라 노력 여하에 따라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성공했습니다. 많은 기업이 성장하면서 이것저것 손을 대지만 스타벅스는 오직 커피 하나로 3만 4317개가 넘는 가맹점을 갖는 업계 최고의 회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성장 뒤에는 종업원들을 존경과 품위로 대해야 한다는 그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가 쓴 책 『스타벅스 커피 한잔에 담긴 성공 신화』라는 책에 보면 ‘성공은 나눠 가질 때 가장 달콤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승선에 혼자 도달하면 공허하지만 한 팀을 이룬다면 기쁨이 크다는 멋있는 교훈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도 스타벅스의 성공원리처럼 생애를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렛의 조그만 동네 출신으로 많은 사람이 비웃었지만, 그분은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이름처럼 구원자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사셨습니다. 훌륭한 의사가 될 수도 있었고, 또 유대의 정치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아니면 사람들이 많이 따르는 종교 지도자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오직 한 길, 세상을 구원하시는 분으로 사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 가난한 자, 어려움에 처한 자들과 함께 하셨고 결국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해 목숨까지 내어 주셨습니다. 성경 요한복음 2장에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인 가나의 혼인잔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며 하인들의 역할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부탁에 그들은 순종했습니다. 예수님의 지시에 역시 묵묵히 순종하며 항아리에 물을 채웠습니다. 이어 항아리에 있는 물을 떠서 연회장에 가져다주라는 명령에도 순종했습니다. 아무도 이 맛있는 포도주가 어디서 났는지 몰랐지만 하인들만은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하인들의 순종이 있었기에 빛을 발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내 스스로의 생각이 앞설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갈릴리 가나의 하인들처럼 조용히 자기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고 묵묵히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순복음의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 2022.11.11

    회복탄력성과 하나님의 은혜 - 한사무엘 목사(종로중구대교구장)
  • 오늘날 스트레스를 빼놓고는 현대인의 삶을 말할 수 없다. 특히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은 스트레스의 연속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뒷받침하듯 질병관리청의 지역사회건강조사 결과에 의하면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의 신체활동은 줄고 우울감과 스트레스가 늘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에 스트레스나 삶의 고난을 잘 이겨내는 능력을 의미하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에 관한 관심이 증가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회복탄력성은 어려운 상황에서 회복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 다양한 삶의 시련과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마음의 근력과 연관된다. 쉽게 말해서 회복탄력성은 인생의 역경과 고난에 맞설 수 있는 영혼의 맷집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성경은 회복탄력성의 책이고 믿음의 조상들은 강력한 영혼의 맷집을 소유한 인물들이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삶의 고난과 역경을 어떻게 믿음으로 이겨냈는지가 기록되어 있고 믿음의 조상들이 그 예이기 때문이다. 사실 시련과 역경이 없는 인생은 없고 실패와 고난이 없는 인생도 없다. 따라서 문제는 삶에서 역경과 시련이 다가올 때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고 회복하느냐이다. 상담가들은 회복탄력성을 높이기 위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취미 활동을 권장하거나 또는 분노 억제 및 현실 인정과 같은 삶의 태도의 변화를 조언하지만, 성경은 특별한 다른 것을 우리에게 말한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다. 야곱의 삶을 예로 들어보자. 야곱은 이집트의 바로 앞에서 자신 스스로 험악한 삶을 살았다고 고백할 만큼 고난과 시련이 많은 삶을 살았다. 그러나 험악한 삶을 살면서도 야곱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었다. 얍복강 건너에 있는 고향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기도할 때 야곱은 두 차례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언급한다(창 32:9,12). 파란만장한 삶의 터널에서 야곱을 지탱시켜 준 것은 바로 반드시 자신에게 은혜를 베푸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용기와 힘을 주시며 넘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게 하는 회복탄력성의 근원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사람은 삶의 시련을 인생의 걸림돌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축복의 디딤돌로 생각한다. 순복음의 열정이 회복탄력성의 은혜를 만나게 될 때 우리의 삶은 회복될 것이며 우리의 예배와 구역은 다시 부흥할 것이고 우리의 기도와 전도의 열정도 다시 불타오르게 될 것이다.
  • 2022.11.04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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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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