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인물
(113) 사랑의 사도, 요한
  • 요한복음 등 저서 통해 복음 전파 예수님 만나 사랑의 사도로 변화돼 예수님의 제자였던 사도 요한은 이며 기독교에 매우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이다.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제자이며 요한복음,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를 기록했고 신약성경의 유일한 예언서인 요한계시록을 썼다. 세베대의 아들인 요한은 형제 야고보와 함께 갈릴리에서 어부로 지내던 중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다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르시자 바로 예수님께 달려가 제자가 됐다. 예수님을 따른 이 두 형제는 예수님께 사랑받는 열 두 제자에 속했지만 감정이 격발할 때가 많았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소란을 뜻하는 의미의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실 정도였다. 요한은 급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었지만 어디든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고 조급하고 폭력적이던 성격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인해 변화됐다. 그는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 다른 제자들이 모두 도망을 했을 때에도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따라갔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 제자 중에 유일하게 그곳을 지킨 제자였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무덤으로 맨 먼저 달려간 사람도 요한이었다. 예수님은 요한을 특별히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는 순간에 자신의 어머니를 그에게 의탁하셨고 그는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극진히 모셨다. 초대교회 설립의 핵심 인물이었던 요한은 사도 바울에게 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이라고 칭함을 받기도 했다. 노년을 에베소에서 설교와 저술활동으로 보내던 요한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기독교 박해 시에 황제 숭배를 거부한다는 죄목으로 밧모섬에 유배됐다. 그곳에서 신약의 마지막 복음서인 요한계시록을 저술했다. 사면되어 다시 에베소로 귀환한 그는 교회들을 지도하고 성경을 기록하며 에베소에서 말년을 보냈다. 요한은 요한복음에 자기 자신을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제자”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을 전심으로 사랑했던 요한은 자신이 예수님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사랑의 사도인 요한은 설교할 때마다 성도들에게 서로 사랑할 것을 강조했다. 그의 설교의 핵심은 늘 예수 그리스도였다. 우리 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을 강조하며 불신자와 믿는 자 모두를 아우르는 설교를 했다. 그가 남긴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에 가장 강조된 것이 바로 사랑이다. 전도지나 교회에서 가장 많이 보고 듣는 이 성경 구절 안에 사도 요한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확실히 담겨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 2024.11.29 / 이미나 기자

    (112) 한나
  • ‘간절한 기도의 여인’ 표상 문제 앞에 탄식하며 부르짖어 기도하면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은총 얻게 돼 한나는 ‘기도의 여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자신의 괴로움을 극복할 만한 힘과 능력이 없을 때 어떤 자세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지 한나를 통해 우리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에브라임 산지 여로암의 아들 엘가나에게는 한나와 브닌나 두 아내가 있었다. 소실인 브닌나에게는 자녀가 있었지만 한나에게는 이름의 뜻인 ‘은총’과는 달리 자녀가 없었다. 매년 고통을 겪어야 했던 한나는 고통 중에 부르짖고 또 부르짖으며 하나님 앞에 통곡의 기도를 드렸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야훼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야훼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야훼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10~11). 한나가 주께 드린 기도는 처절한 절규였으며 가슴에 멍이 드는 탄식의 간구였다. 그런 한나의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그 마음을 감찰하시고 한나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셨다. 성경 사무엘상 2장 1~10절은 한나가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치면서 기도에 응답해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격의 내용이 기록돼 있다.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야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야훼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은 먼저 자녀를 두어 그동안 한나를 업신여겼던 브닌나의 교만을 꺾어주시며 가정의 질서 또한 바로 세워주셨다. “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아니하도다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삼상 2:5).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삼상 2:9). 한나의 고백적 탄원과 언약의 서원을 보면 아들 사무엘이 하나님의 깊은 섭리와 은총에 의해 태어났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사무엘이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따라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는 것을 보면서 몇 가지 교훈도 얻게 된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헤아리신다는 것이다. 한나는 능력의 하나님을 믿었기에 포기하지 않고 응답을 얻을 때까지 기도했다. 또 성전에 나와 기도할 때 엘리 제사장이 술에 취한 것으로 오해할 정도의 절박하고 애끓는 기도를 드렸다. 기도 없이는 결코 응답을 얻을 수 없다. 둘째, 하나님은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는 역전의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이 신다. 자녀가 없던 한나는 브닌나의 업신여김을 참고 견뎌야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한나가 간구할 때 ‘은총’을 허락하셨고 고난의 주인공에서 영광의 주인공으로 그 삶을 변화시켜주셨다. 셋째, 한나의 기도를 통해 우리는 기도의 깊은 통찰력과 겸손의 지혜를 깨닫게 된다. 한나는 사무엘을 낳기까지 숱한 고통을 겪었지만 사무엘을 낳은 후 자녀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린다. 자녀가 내 소유물이 아님을 인정하는 겸손이다. 자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업이다(시 127:3). 이 땅에 사는 동안 청지기 사명을 가지고 자녀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자라도록 욕심을 버리고 말씀과 기도로 양육하며 한나와 같은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를 드려야 한다.
  • 2024.11.01 / 오정선 기자

    (111) 안디바
  •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 주님을 섬기는 일에 타협 없던 안디바 한 사람의 순교가 지역 변화시켜 소아시아 버가모는 우상숭배가 만연한 도시로 유명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갖은 이유로 타협하고 우상숭배를 할 때 단 한 사람, 안디바는 우상숭배를 거부했다. 그는 뛰어난 석공이었지만 로마 황제의 신상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놋 가마 위에서 순교했다. 안디바는 로마 제국의 명령을 거절한 대가로 철판 위에 산 채로 구워져 순교를 당했지만 버가모교회 부흥의 씨앗이 됐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충성된 증인이라고 높여주셨다. 안디바라는 이름도 ‘모든 사람을 반대하는 자’라는 뜻이다. 안디바는 죽음 앞에서도 자신을 핍박하는 로마 관리들에게 당당했다. 그는 순교를 당하는 순간에도 “만왕의 왕, 만주의 주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으니 예수 외에는 내가 절하지 않겠노라”고 외칠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순교를 통해 책망받던 초대교회 중 하나인 버가모교회가 변화됐다.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지나온 삶을 끊지 못한 채 죄의 유혹에 빠져 살아가던 버가모교회의 성도들은 안디바의 순교를 보고 180도 달라졌다. 작은 유혹에도 넘어지고 흔들리던 이들이 우상숭배로 만연한 지역에서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외치게 된 것이다. 버가모교회가 있는 지역은 해발 300m의 높은 지역에 있었다. 또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사탄의 권좌’라고 불리는 무려 12m나 되는 거대한 제우스 신전과 로마 황제를 예배하는 신전도 있었다. 라틴 교부였던 터툴리안의 『순교자에 대해서』라는 책을 보면 안디바에 대해 알 수 있다. 당시 버가모교회의 그리스도인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한 부류는 예수님을 영접한 유대-그리스도인들이었다. 이들은 할례, 음식에 대한 규제, 율법을 지키는 것과 복음 사이에서 갈등했다. 또 다른 부류는 이방인이지만 기독교인이 된 헬라 성도들이었다. 이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 거리낌 없이 해 왔던 우상숭배, 성적인 문란,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경건한 삶을 지켜가는 것에서 갈등했다.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도 당당히 하나님께 순종한 안디바의 신실한 믿음은 신앙이 흔들리던 많은 크리스천의 마음에 경종을 울렸다. 생계를 위한다는 이유로 세상과 타협하고 고난과 박해가 두려워 주님을 의지하지 못할 때가 있다면 고통 속에서도 주님 한 분만을 바라보며 의지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 안디바를 기억하자.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계 2:13).
  • 2024.10.04 / 박찬웅 기자

    (110) 엘리
  • 하나님보다 자녀를 더 사랑했던 제사장
    잘못된 자녀 교육으로 비극 낳아 이스라엘이 왕정 시대로 넘어가기 전 사사시대 말기에 40년을 하나님의 제사장이자 사사로 활동한 사람이 있다. 바로 엘리 제사장이다. 엘리는 사무엘의 스승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가르친 사무엘은 사울과 다윗을 왕으로 세운 제사장으로 유명하다. 엘리 제사장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32㎞ 지점에 위치한 실로 성소를 지키는 제사장이었다. 엘리가 처음 성경에 등장하는 곳은 사무엘상이다.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와 아내 한나는 매년 매년제와 서원제를 드리기 위해 실로에 있는 성소를 순례했다. 엘나가에게는 브닌나와 한나라는 두 아내가 있었는데 한나는 자녀가 없었지만 엘나가의 사랑을 더 받았다. 그래서 늘 브닌나의 괴롭힘에 시달렸다. 그 해는 유독 괴롭힘이 심했는지 마음의 답답함을 토로할 곳이 없었던 한나는 성소에서 하나님께 통곡하며 기도하고 있었다. 때마침 야훼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있었던 엘리가 이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아무 소리를 내지 않고 입술만 움직이는 모습이 꼭 술에 취한 모습 같았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었다. 한나는 엘리에게 그동안의 서러움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다고 말했고 이에 엘리는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고 축복했다. 이후 한나는 엘리의 축복대로 사무엘을 얻게 되었다. 그녀는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서원했고 제사장 엘리에게 사무엘을 맡긴다. 사무엘은 엘리의 가르침에 따라 야훼를 섬기며 훌륭한 하나님의 제사장이자 사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엘리는 사무엘과 달리 자녀들을 올바른 제사장으로 가르치지 못했다. 그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 제사장 직권을 남용했고 야훼의 제사를 멸시했다. 물론 아버지로서 엘리는 아들들을 꾸짖었다. 하지만 그들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오히려 무시하고 더한 패역을 저질렀다. 성경은 이에 대해 엘리가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를 하나님보다 더 중히 여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느 날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나타나 말한다. “너는 나보다 네 아들들을 더 귀하게 여기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에게 바치는 고기 중에서 제일 좋은 부분을 먹어 살이 쪘도다”(쉬운성경 삼상 2:28~29). 결국 엘리는 자신의 제자인 사무엘로부터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된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삼상 3:14). 얼마 후 엘리의 두 아들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전사한다. 두 자녀의 죽음과 언약궤를 빼앗겼다는 비보를 들은 엘리는 앉아있던 의자에서 떨어져 목이 부러져 죽고 말았다(삼상 4:1~18). 40년간 사사와 제사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섬겼던 그의 공직 생활이 비참하게 끝난 것이다. 엘리가 만약 두 아들을 사무엘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고 훈계했다면 그들은 올바른 선지자로 더 큰 복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나는 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소중히 여길 것이고,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은 나도 소중히 여기지 않을 것이다”(쉬운성경 삼상 2:30). 엘리의 가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경외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 2024.08.30 / 금지환 기자

    (109) 실라
  • 바울, 베드로, 디모데의 신실한 동역자
    복음 증거 사역의 중요한 요소 ‘협력’ 사도행전을 펼치면 가슴을 뛰게 하는 놀라운 사건의 기록들로 가득하다. 그중 16장에는 바울이 빌립보에서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을 불쌍히 여겨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쳐줬지만 칭찬을 받기는커녕 감옥에 갇히게 된 일이 기록되어 있다. 귀신 들렸던 여종의 주인이 자신의 수입이 끊어지게 됐다며 바울과 실라를 관리들에게 끌고 갔고 동네를 요란스럽게 한다는 이상한 죄목으로 고발한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옷이 찢기고 매질을 당하며 감옥에 갇혔다. 그때 바울만 끌려간 것이 아니라 동역하던 실라도 같이 감옥에 갇혔다. 억울하게 맞고 갇힌 처지에도 불구하고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했다. 어찌나 담대히 당당하게 찬양했는지 그 소리를 감옥에 있는 모든 사람이 들을 정도였다. 찬양과 기도 소리를 하나님도 들으셨는지 갑자기 큰 지진으로 옥문이 열렸다. 하지만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나가지 않았다. 놀라 깬 간수가 죄수들이 모두 도망쳤을 것이라 절망해 칼로 자결하려 하자 바울은 “우리가 다 여기 있으니 몸을 상하지 말라”며 간수의 목숨을 살렸다. 이 일로 간수와 가족들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다. 이후 바울과 실라가 로마 시민권자임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두려워하여 그들에게 떠나달라고 간청을 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후 빌립보교회는 계속 성장할 수 있었다. 사건에 앞선 15장에는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에 체류했을 때 바나바의 조카 마가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가 심하게 다투고 결별하는 사건이 있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선교여행의 동역자로 실라를 택했다. 실라는 바울처럼 로마 시민권자였고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였다. 상상컨대 바울이 바나바와 안좋게 결별한 가장 힘들고 어려울 그때 실라는 바울의 손을 잡아주어 하나님의 사역을 이어가게 해준 사람이었다. 실라는 헬라파 유대인으로서 그의 로마식 이름은 ‘실루아노’이다. 그래서 사도행전에서는 ‘실라’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지만 고린도후서와 베드로전서, 데살로니가전·후서에서는 ‘실루아노’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실라는 바울 뿐 아니라 초기 교회 지도자 모두의 동역자로서 활약한 흔적을 성경 곳곳에 남겼다. 실라는 베뢰아 전도에서 유대인들의 박해를 피해 아덴으로 떠난 바울을 대신해 디모데와 더불어 사역하기도 했고(행 17:13∼14), 나중에는 고린도에서 바울을 다시 만나 사역을 했다. 고린도에서의 사역을 마지막으로 실라는 더 이상 성경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교회 전승에 따르면 베드로의 조력자로 계속 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베드로는 자신의 편지에서 실라를 ‘신실한 형제’(벧전 5:12)로 부르고 있다. 많은 성경연구가들은 실라의 동역이 없었다면 바울의 사역은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실라의 조력이 없었다면 말년의 베드로도 여러 가지로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복음 증거의 사역에 동역자의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바로 실라이다.
  • 2024.08.02 / 복순희 기자

    (108) 삼손
  • 블레셋을 물리친 괴력의 사사
    유혹에 빠져 성령 떠나게 돼 성령 충만이 중요한 이유 알려줘 이스라엘의 사사로 20년간 활동한 삼손은 엄청난 괴력의 소유자로 유명하다. 기독교가 아닌 사람도, 어린 아이도 삼손의 이야기는 알고 있다. 17세기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는 들릴라가 삼손을 배신하는 순간을 절묘하게 묘사해 그려 걸작을 남겼고, 렘브란트 또한 삼손과 관련해 두 작품을 남겼다. 또한 삼손의 이야기는 오페라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사사기 13~16장에 삼손의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삼손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범죄한 결과로 블레셋 사람들에게 40년 동안 통치를 받고 있을 때 태어났다(삿 13:1∼5). 그의 아버지 마노아는 이스라엘 단 지파의 사람이었다. 어느 날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임신하지 못하던 마노아의 아내에게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삿 13:5)고 말해 주었다. 마노아는 아내가 아들을 낳자 ‘태양과 같다’라는 의미를 담아 삼손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었던 삼손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힘이 매우 강했다. 삼손은 블레셋에 의해 억압당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싸웠고, 많은 블레셋 사람들을 죽였다. 또한 그는 블레셋의 사원을 파괴하고 군대를 물리쳤다. 하지만 삼손은 욕망에 빠져 큰 실수를 하고 만다. 사사기 16장에는 삼손의 가장 유명한 일화이자 죄로 말미암아 성령을 소멸하게 된 그의 비극적인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삼손은 블레셋 여인 들릴라를 사랑하게 됐다. 블레셋 방백들은 삼손의 놀라운 힘이 어떻게 생기는지 알아보기 위해 들릴라를 돈으로 매수하여 삼손의 힘의 근원을 알아내게 했다. 삼손은 들릴라의 끈질긴 요구에 못 이겨 결국 머리가 밀리면 힘이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아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만다. 삼손의 비밀을 알게 된 들릴라는 자기 무릎에서 삼손이 잠든 때에 그의 머리털을 밀어버렸다. 하나님의 사람인 삼손은 들릴라의 유혹에 넘어가 자신의 비밀을 말해주었고 성령이 떠나갔다. 하나님의 사람인 삼손이 나실인의 율례를 범하자 성령이 떠나 더 이상 아무런 힘을 쓸 수 없게 됐다. 그는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두 눈이 뽑힌 채 놋 줄에 묶여 맷돌을 돌리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제야 삼손은 “야훼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야훼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삿 16:28)라며 하나님께 마지막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하나님께서는 삼손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셨고,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생포한 것을 기념하여 축제를 벌이고 있던 다곤 신전을 무너뜨리고 죽었다. 그 결과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 많았다. 삼손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사람이지만 세상의 유혹에 빠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모습에 머물러 있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성령이 떠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 2024.07.05 / 이미나 기자

    (107) 에바브로디도
  • 바울에게 충성한 믿음의 사람
    사명 위해 헌신한 빌립보교회 성도 바다를 가로지르면 1200㎞, 육로로 이동하면 2000㎞ 대략 서울에서 대만까지의 거리를 육박하는 선교 여정을 다녀온 한 성도가 있다. 빌립보교회의 성도 에바브로디도이다. 그는 빌립보서에 딱 2번(2:25, 4:18) 언급된다. ‘사랑스럽다’란 뜻을 가지고 있는 에바브로디도는 성경에 언급된 횟수와 달리 빌립보교회와 바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충성된 믿음의 사람이다. 에바브로디도는 로마 감옥에 투옥 중인 바울을 돕기 위해 빌립보교회에서 파송한 자이다. 당시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로마 제국에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힌 사실을 알게 되고(빌 1:12~13) 선교 후원금 전달자이자 위로자로 에바브로디도를 파송한다. 빌립보교회는 사도 바울과 관계가 깊다.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그리스에 첫발을 내디뎠는데 그 도시가 바로 빌립보였다. 바울은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히기도 했지만 큰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했다. 이로 인해 자결하려는 간수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됐고 유럽 땅에 최초의 교회인 빌립보교회를 세우게 됐다. 그래서 그런지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 1:8). 당시 빌립보교회가 있던 마게도냐에서 로마까지의 거리는 한 달은 족히 걸리는 머나먼 길이었다. 에바브로디도는 나홀로 가는 길이 두려웠을 법도 했지만 기꺼이 선교의 길에 나섰다. 치안이 열악해 선교에 필요한 재정과 재원 강탈은 물론 목숨까지도 위협당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갔고 어떠한 해도 입지 않고 로마에 도착했다. 이런 그를 바울은 ‘나의 형제’,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 ‘너희 사자’ ‘내게 쓸 것을 돕는 자’라고 말한다. 이는 그가 동역자로서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존재인지, 얼마나 충성된 주님의 자녀인지 알려주고 있다(빌 2:25). 하지만 에바브로디도는 로마에서 다시 빌립보교회로 돌아가야 했다. 그가 얼마나 로마에 체류했는지는 모르지만 바울을 돕다 그만 병에 걸리게 된 것은 분명하다.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에바브로디도가 오랜 여정으로 몸이 쇠약해진 상태에서 옥바라지를 하면서 로마에 돌고 있는 열병에 전염됐다는 의견도 있다. 에바브로디도는 아픈 와중에도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염려할까 근심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에 대해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빌 2:30)라고 말하며 에바브로디도가 사명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을 빌립보 교인들에게 설명하며 그를 따뜻하게 맞아달라고 요청한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헌신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에바브로디도의 행적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목숨걸고 사역에 임하는 선교사들이 생각났다. 에바브로디도처럼은 아니더라도 우리의 시간과 물질, 마음을 에바브로디도와 같이 헌신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기꺼이 보내는 선교사로 동참하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 2024.05.31 / 금지환 기자

    (106) 입다
  • 암몬과 에브라임 무찌른 입다
    잡초 같은 삶에서 아홉 번째 사사로 이스라엘의 아홉 번째 사사 입다는 길르앗 유지와 무명의 기생 사이에서 태어났다. 서자로 태어나 어린 시절 많은 핍박을 받았다. 이복형제로부터 핍박을 받다가 이스라엘 변방에 있던 돕으로 떠난 입다는 타고난 언변과 지도력으로 사람들을 모아 두목 노릇을 하며 약탈을 일삼는 부족으로부터 이스라엘을 보호했다. 그러던 중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삶을 청산하고 이스라엘의 사사로 발탁되는 사건을 맞았다. 오랜 시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힌 암몬이 작정하고 땅을 빼앗기 위해 길르앗에 쳐들어온 것이다. 암몬을 막아낼 방법이 없던 길르앗 장로들은 입다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데 입다는 장군의 지위와 승전 후 영구적인 지도권을 자신에게 보장할 것을 장로들에게 요청했다. 장로들에게 약속을 받은 입다는 암몬을 무력으로 상대하기 전에 역사적인 근거를 암몬 왕에게 제시해 싸움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암몬 왕은 입다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 상황으로 볼 때 입다는 고향을 떠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역사를 잃지 않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으로 보인다. 제안을 거절한 암몬 왕으로 인해 이스라엘과 암몬은 전쟁을 치뤘고 하나님께서 입다의 손에 암몬을 넘겨 주셔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입다는 전쟁에 임하기 전 하나님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갔을 때 가장 먼저 영접 나온 자를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다’라는 서원을 했다.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그를 맞이한 사람은 하나뿐인 딸이었다. 입다는 자기 옷을 찢으며 괴로워했지만 하나님을 향해 서원했으니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을 하나님께 드려야 했다.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야훼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삿 11:35). 평소 길르앗 사람들을 업신여겼던 에브라임 사람들은 승전하고 돌아온 입다에게 ‘암몬과의 전쟁에 왜 자신들을 부르지 않았느냐’, ‘길르앗은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들이다’라며 시비를 걸었다. 암몬과의 전쟁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입다는 에브라임의 모욕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길르앗 사람을 모아 에브라임과 싸워서 승리했다. 길르앗 사람들은 에브라임 사람들이 퇴각하는 요단강 나루턱을 장악하고 에브라임 사람들을 색출했다. 겉모습으로 쉽게 구분할 수 없었기에 나루턱을 지나는 모든 사람에게 ‘쉽볼렛’이라는 단어를 발음하게 했다. 길르앗 사람들은 정확한 발음이 되지만 당시 에브라임 사람들은 십볼렛으로 발음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4만2000여 명의 에브라임 사람을 찾아내 죽였다. 입다는 암몬과 에브라임을 격퇴해 이스라엘을 구하고 무력을 앞세우기 보다 싸우지 않도록 제안하는 지략을 가졌지만 경솔한 서원으로 무남독녀를 잃게 됐다. 입다를 통해 배경도 없고 연약한 삶도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감정에 이끌린 서원으로 괴로운 마음을 겪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교훈도 얻게 된다.
  • 2024.05.03 / 박찬웅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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