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인물
(88)아론
  • 모세를 도와 출애굽한 이스라엘 첫 대제사장
    아론은 우리가 잘 아는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의 형이다. 모세와 함께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고 사명을 수행한 인물로 이스라엘 초대 대제사장을 지냈다. 아론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가운데 레위 지파 출신으로, 아므람과 요게벳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누이가 미리암이고 동생이 모세이다. 그리고 암미나답의 딸이자 유다 방백 나손의 누이인 엘리세바와 결혼해 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이다말 네 아들을 두었다. 성경에서 아론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곳은 출애굽기 4장이다. 광야에서 40년간 훈련을 받은 모세에게 하나님이 애굽의 압제로부터 고통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모세는 “나는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라며 대신 “보낼만한 자를 보내라”고 답한다. 이때 하나님이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을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에 아론은 모세와 함께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달라고 청한다. 하지만 바로가 이를 듣지 않자 애굽에 임할 열 가지의 재앙을 선포한다. 그들이 바로에게 말할 때에 아론의 나이는 팔십 삼세였고, 모세는 팔십 세였다. 애굽 사람과 생축의 초태생이 모두 죽는 열 번째 재앙이 있은 후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자 아론은 모세와 함께 출애굽의 대역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애굽의 군대를 피해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마라의 쓴 물을 단 물로 바꿔주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신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한다.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과 르비딤에서 싸울 때 훌과 함께 기도하는 모세의 팔을 받쳐 올림으로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나님은 시내산으로 부르신 모세를 통해 그런 아론을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대제사장으로 세우시고, 아론의 아들들 역시 제사장 직분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출 28장). 하지만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마주하며 십계명을 기록한 두 돌판과 언약의 말씀을 받는 40일 동안 아론은 백성의 요구에 못 이겨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백성이 환락과 방탕에 빠지게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만다(출 32:1~6). 그리고 이를 꾸짖는 모세에게 변명을 내세웠다. 우유부단함에 이어 아론은 질투심도 강해 미리암과 함께 모세가 이방 구스 여인과 결혼한 것을 비난하고 모세만이 하나님의 유일한 대변자가 아니라고 불평하기도 했다(민 12:1~2). 모세와 함께 출애굽에 성공한 아론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을 보지 못하고 광야 생활 40년이 끝나갈 즈음 죽음을 통고 받는다. 아론은 모세와 함께 호르산에 올라 제사장 옷을 벗어 아들 엘르아살에게 주고 123세로 생을 마쳤다(민 20:22~29; 33:38; 신 10:6; 32:50).
  • 2022.11.04 / 오정선 기자

    (87)아볼로
  • 지성과 인성 두루 갖춘 위대한 전도자
    바울과 동역하며 고린도교회 부흥 이끌어 아볼로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 학자이자 초대교회 전도자로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초대 교회에서 가장 뛰어난 설교가로 인정받을 만큼 달변가였고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에 사용했다. 그는 일찍이 침례 요한으로부터 구약성서에 대해 배웠는데 얼마나 총명했는지 성경은 그를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하며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쳤다’고 기록하고 있다(행 18:24~25). 하지만 그는 구약성경에 능통했으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은 불완전했었다(행 18:25). 그가 전한 메시지에는 인류의 구원자인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복음이 없어 ‘팥소 없는 찐빵’과 같았다. 왜냐하면 구약에서 나오는 그리스도가 나사렛 예수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이처럼 불완전했던 그의 복음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면서 완벽해졌다. 이들은 에베소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는 아볼로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에 대해 더 정확하게 알려줬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도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인간이 구원과 영생, 참된 자유를 얻게 된 것을 뜻한다. 아볼로는 대학자이자 구약성경에 능통한 자였음에도 천막 제조업자였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경험한 복음을 귀담아 들으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완전하게 얻었다. 이는 신분의 고하를 따지지 않았다는 뜻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고자 하는 열정이 남들보다 더 갈급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후 아볼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도움으로 에게 해를 건너 고린도를 수도로 하고 있는 그리스 남부 지역인 아가야로 떠났다. 그는 아가야에서 믿는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며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유대인 앞에서 힘 있게 증거했다(행 18:27~28). 그의 메시지는 많은 유대인들을 변화시켰다. 아볼로는 바울이 개척한 고린도교회에 가서도 사역을 하게 됐는데 이때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그의 설교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볼로는 타고난 언변으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지만 이러한 존경은 이내 교회를 분열시키는 추종세력을 낳게 됐다. 크게 아볼로와 바울파로 나뉘었고 게바파, 그리스도파까지 형성됐다. 이 소식을 접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전하며 자신은 밭에 씨앗을 심은 사람으로, 아볼로는 그 씨앗에 물을 주는 사람으로 비유하며 각각의 달란트가 다름을 알려주고 이를 자라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임을 완곡하게 권면했다(고전 3:6). 교회 내 다툼이 생길 때 잠시 자리를 떠났던 아볼로는 바울의 편지로 모든 것이 일단락 된 후에야 다시 고린도교회로 돌아와 본인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했다. 지성과 인성을 두루 갖춘 아볼로의 행실을 살펴볼수록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아볼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격과 지식의 정도가 깊어질수록 점점 더 겸손해지고 복음의 열정을 회복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큰 교훈을 주고 있다.
  • 2022.09.30 / 금지환 기자

    (86)미리암
  • 일순간 교만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산 여인
    모세는 애굽 왕 바로에게서 박해받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해내고 이들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인도한 하나님이 선택한 인물이다. 이런 모세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 수많은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왔다. 그의 출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어머니보다 누나인 ‘미리암’이지 않을까 싶다. 미리암은 남동생을 살리고자 역청과 진을 칠한 갈대 상자에 넣어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어떻게 되는지를 지켜보았다. 동생을 강에 떠밀고 혹시 물길에 휩쓸려 떠내려가지는 않을지, 다른 것들의 먹잇감이 되지는 않는지 먼발치에서 노심초사 지켜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떨림의 순간에도 미리암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동생을 구원할 것을 확신하고 바라봤다. 때마침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와 모세를 거두게 되고 젖을 먹일 수 있는 유모를 찾으니 미리암이 지혜롭게 유모를 구해오겠다고 나선다(출 2:3~7).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도 눈에 띈 활약을 한 여성이 바로 미리암이다. 그녀는 출애굽 당시 바짝 추격해 오는 애굽의 파라오의 말과 병거와 마병을 홍해에서 수장시킨 하나님을 기리며 승전가도 지어 불렀다.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야훼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출 15:20~21). 그런데 애굽을 탈출한 후 미리암은 사뭇 달라진다.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아론과 함께 모세를 비방하며 심지어 “야훼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민 12:1)라며 모세의 영적 지도력에 대항한다. 이런 미리암에게 야훼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벌을 내리신다.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진영 밖에 이레 동안 갇혀있게 된다(민 12:9~10, 15). 아론이 모세에게 용서를 빌며 “우리가 어리석은 일을 하여 죄를 지었으나 청하건대 그 벌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민 12:11) 하니 모세가 야훼께 부르짖어 고쳐 달라 기도해 고침을 받았다. 미리암은 동생을 살리고 최측근으로 있을 만큼 지혜로운 여성이었으나 교만에 빠져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고 비방을 일삼은 여인이 되었다. 그를 보면 잠언 16장 18절에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라는 훈계 말씀이 적절하다. 겸손함이 없는 지혜는 다른 사람에게 해악을 끼칠 뿐이다. 또한 미리암이 이레 동안 갇힘으로 그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진하지 못하고 광야에 진을 치고 머무르게 된 것처럼 자신의 부족함과 문제를 보지 못하고 타인의 잘못만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발전과 성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김주영 기자
  • 2022.09.02 / 김주영 기자

    (85)실라
  • 바울과 함께 이방인 선교에 앞장선 지도자 실라는 초기 교회의 통합과 선교를 이끈 지도자로 기록되어 있다. 실라는 예루살렘 교회의 초기 지도자들 가운데 한사람으로 로마 시민권을 가진 몇 안 되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이었다. 사도행전에서 불린 ‘실라’라는 이름은 유대식 이름인데 바울서신과 베드로서신에서는 라틴식 이름인 실루아노로 불린다.(고후 1:19; 살전 1:1; 살후 1:1; 벧전 5:12)그는 바울의 선교 동역자요, 베드로가 베드로전서를 기록할 때 실제적인 도움을 준 사람이며(벧전 5:12), 선지자 중 하나였다(행 15:32). 실라는 성경에서 사도행전 15장에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함께 처음 등장한다. 그는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예루살렘 공의회의 편지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을 말로도 보고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행 15:27), 중요 서신을 전달할 정도로 유다와 실라에 대한 예루살렘교회의 신임이 두텁고 교회 내에서 상당한 신분의 위치에 있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실라는 바울의 선교 동역자로 활동했다.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에 체류했을 때 그곳에서 바나바의 조카 마가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와 심히 다투고 결별하는 사건이 일어났다(행 15:37~39). 당시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해 선교여행의 동역자로 삼았다. 그들은 함께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역으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히 했다(행 15:40,41). 그 선교여행 중에 그가 바울과 함께 빌립보 감옥에 갇히는 일이 발생했다. 그들이 빌립보에서 선교 사역을 하던 중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 그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준 것이 빌미가 되어 로마 사람들의 풍속을 더럽히는 사람들이라 하여 고소를 당했다. 결국 체포되어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께 기도와 찬양을 했고 죄수들은 이를 들었다. 바로 그때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리고 사람들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자다 깬 간수가 죄수들이 모두 도망했을 것이라 생각하여 칼로 자결하려자 그때 바울이 우리가 다 여기 있으니 몸을 상하지 말라고 했다. 간수는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려 그는 물론이고 그의 가족 모두가 구원을 받게 된다.(행 16:30~32) 이후 바울과 실라가 로마 시민권자인 것을 안 그곳 사람들은 두려워하며 그 성에서 떠나달라고 청한다. 그들은 신자인 루디아의 집에 들러 형제들을 격려하고 데살로니가로 내려가서 많은 복음의 열매를 거두고 베뢰아에서도 전도했다. 실라는 디모데와 함께 그곳에 머물러 남은 일을 하고 바울은 아덴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 바울이 고린도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는 실라와 디모데도 그리로 가서 합류했다. 디모데와 마찬가지로 실라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전후서를 보낼 때 함께 그 서신을 보낸 사람으로 되어 있다(살전 1:1; 살후 1:1) 실라가 성경에서 마지막으로 모습을 나타낸 곳은 마케도니아의 고린도였다(행 18:5). 그곳에서 실라는 바울과 함께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했다(고후 1:19). 실라는 초기 교회의 주요 지도자인 베드로와 바울과 바나바와 거의 동급인 자격으로 이방인 선교에 앞장섰던 인물이었다.
  • 2022.08.04 / 복순희 기자

    (84)요셉
  • 하나님과 동행한 꿈과 비전의 사람 온갖 고난 속에서 굳건한 믿음지켜 노예에서 총리까지 오르며 복 받아 요셉은 성경에서 예수님을 가장 닮은 인물이다. 요셉은 야곱의 12명의 아들 중 11번째 아들이다. 야곱이 가장 사랑한 아내 라헬이 낳은 늦둥이라 큰 사랑을 받고 자랐다. 하지만 양을 치는 형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요셉을 미워했다. 형들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해 형들을 보러온 요셉을 죽이기로 결심했고 요셉의 채색 옷을 벗겨 구덩이에 던진 후 그 곳을 지나던 미디안 상인들에게 은 이십을 받고 노예로 팔아넘겼다. 17세에 애굽의 노예로 팔려간 요셉은 말할 수 없는 고난의 시간을 지내야 했다.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신실하게 하나님만을 바라봤고 늘 열심히 일했다.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아 경호대장 보디발의 집에 팔려갔는데 요셉은 자신의 손에 닿는 것은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보디발은 그런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맡길 정도로 신임했다. 그런데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했지만 요셉이 거듭 뿌리치자 그를 모함해 감옥에 가게 했다. 요셉은 옥에 갇혀서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철저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았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시니 간수장이 옥 중 죄수를 요셉의 손에 맡길 정도로 그를 신임했다. 요셉은 13년이란 긴긴 세월을 노예로, 죄수로 온갖 고난을 겪으며 지냈지만 하나님은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다. 어느 날 애굽왕 바로가 꿈을 꾸었는데 7년간 엄청난 풍년이 들 것과, 7년이 지난 후 7년 풍년을 집어삼킬만한 지독한 흉년이 들 꿈이었다. 그러나 애굽의 어떤 술객도 박사도 그 꿈을 해몽할 수 없었다. 감옥에 있을 때 꿈 해몽을 해 주어 복직되었던 술맡은 관원장의 추천으로 드디어 요셉은 감옥에서 벗어나게 된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요셉은 30세의 나이에 애굽 전체를 다스리는 총리의 자리에 올랐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7년 풍년 기간 동안 잘 준비해서 7년 대기근 때 애굽을 잘 지켜냈다. 형들의 시기와 질투로 시작된 고난이 13년 후에 영광스러운 축복으로 바뀌어진 것이다. 자기를 노예로 판 형들이 곡식을 얻기 위해 찾아와 자기에게 절을 했을 때에도 요셉은 그 형들을 다 용서해주고 오히려 그 가족들을 초청해 편하게 지내게 했다. 아버지 야곱이 죽은 후에 형들은 요셉이 복수할까 심히 두려워했는데 그때 요셉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창 50:19~21).
  • 2022.06.30 / 이미나 기자

    (83)바울
  • 핍박자에서 위대한 복음 전도자 쓰임 받은 주의 종 이방인에게 최초로 복음 전파 길리기아(현재 터키) 다소에서 태어난 바울은 베냐민 지파 혈통으로 히브리인이었다. 로마의 시민권자로 태어난 그는 존경받는 율법학자 가말리엘로부터 체계적인 신학 교육을 받고 율법에 열심인 바리새파 일원으로 성장했다. 바울이라는 이름은 로마식 이름으로 사도행전에는 히브리어 본명인 ‘사울’로 기록돼 있다. 유대교를 신봉한 광적인 신도였던 사울은 유대인이지만 율법을 소홀히 하는 그리스도 교도들을 박해 하는데 앞장섰다.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 한 명이었던 스데반 집사가 공의회의 재판을 받을 때 증인으로 나서 스데반의 처형을 마땅하게 생각했다. 초대교회를 없애고 주님의 제자들을 죽이겠다는 생각으로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남자든 여자든 닥치는 대로 끌어내어 감옥에 넣었다(행 8:3). 사울은 예루살렘교회를 핍박 하는데 그치지 않고 다메섹에 있는 성도들을 잡아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기 위해 다메섹으로 떠났다가 주님을 만나 회심하는 사건을 경험하게 됐다(행 9장). 대낮 밝은 빛으로 임하신 예수 앞에 무너진 사울은 이때 이방 사람들과 여러 왕들 앞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부여받았다(행 9:15). 주님의 제자였던 아나니아로부터 침례를 받은 사울이 다메섹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자 당황한 유대인들은 사울을 핍박하고 죽이려 했다. 가까스로 다메섹을 탈출한 사울은 3년간 아라비아 사막에서 수도 생활을, 그후 고향인 길리기아 다소에서 10년 동안 조용히 지냈다. 그러다가 예루살렘과 안디옥에서 이방인과 로마에 기독교를 전하는 복음 전도에 나섰다. 이것이 바울의 선교 여행이다. 바나바가 주도하고 바울이 동행하는 형식으로 이뤄진 제1차 선교여행(행 13:1~14:28)은 최초 이방 교회인 안디옥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안디옥 교회로부터 파송 받은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AD 47~49년까지 2년간 2240여 ㎞에 달하는 거리를 이동하며 복음을 전했다. 바울의 2차 선교여행(행 15:36~18:22)은 시기적으로 볼 때 AD 49~52년까지 약 3년에 걸쳐 이뤄졌다. 바울에 의해 복음을 듣고 세워진 이방교회들을 돌아보고 양육하기 위해 출발한 여행은 실라가 동행했고 디모데와 누가가 합류했다. 더베, 데살로니가, 베뢰아, 에베소를 거쳐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오는 2차 선교여행 여정은 바울이 ‘마게도냐인의 환상’(행 16:9)을 통해 유럽으로 선교의 영역이 넓혀지는 계기가 됐다. 3차 선교여행(행 18:23~21:16)은 AD 53년에 시작되는데 바울은 5년에 걸쳐 4500~5600㎞의 거리를 여행하며 복음을 전했다.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며 참된 복음을 외쳤던 바울은 선교 여행을 다니면서 교회와 개인을 위해 많은 글을 남겼는데 이것이 신약성경에서 13권을 차지하는 바울서신이다. 바울서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신앙생활의 가르침으로 이 시대 교회에도 큰 교훈을 주고 있다.
  • 2022.06.05 / 오정선 기자

    (82)레아
  • 하나님의 은총으로 이스라엘 지파를 세운 여인 아들 레위와 유다 통해 제사장·왕위 세워져 레아는 야곱의 외삼촌 라반의 장녀로 야곱의 첫 번째 아내이자 라헬의 언니이다. 레아는 라헬과 함께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세우는 민족의 어머니가 된다. 창세기는 레아와 비교했을 때 동생 라헬은 곱고 아리따운 용모를 가지고 있고 레아는 시력이 약하다고 설명한다. 야곱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했다. 고향 땅을 떠나 하란에 도착한 야곱은 라헬을 보고 첫눈에 반해 그녀를 아내로 받아들이기 위해 7년을 봉사했다. 하지만 라반의 계략에 속은 야곱은 레아를 첫 번째 아내로, 라헬을 두 번째 아내로 맞이해야 했다. 레아는 야곱의 사랑을 갈구했지만 야곱의 관심은 오직 라헬에게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받지 못하고 외롭고 슬픈 나날을 보내는 레아를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다. 당시 태의 복은 아들을 낳아 대를 잇는 것으로 여자들에게 최대의 특권이었다. 레아는 첫째 아들을 ‘보라, 아들이다’라는 뜻의 르우벤이라 이름 짓고 “야훼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창 29:32)라고 말했다. 이어 시므온(‘야훼께서 내 기도를 들으셨다’는 뜻), 레위(‘이제 야곱이 나와 연합하리로다’는 뜻), 유다(‘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라는 뜻)를 낳았다. 4명의 자녀를 출산했지만 여전히 야곱의 마음이 라헬에게 향해 있자 레아는 더 이상 야곱의 마음을 얻기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기를 결심한다. 반면 동생 라헬은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 했음에도 자녀를 낳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옛 이스라엘에서는 여자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을 수치로 여겼다. 라헬은 하나님께 기도하기보다 직접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녀 빌하를 통해 단과 납달리를 낳았다. 이때 레아도 시녀 실바를 통해 갓과 아셀을 얻는다. 한번은 아들 르우벤이 출산이 멈춘 어머니 레아에게 합환채를 가져다주었는데 라헬이 찾아가 이를 요구하며 그 대가로 레아가 야곱과 동침할 수 있도록 약속했다. 당시 합환채 열매의 즙은 아이를 가지는데 좋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하지만 라헬은 합환채를 얻고도 아이를 갖지 못했다. 정작 아이를 낳은 사람은 레아였다(창 30:14~18). 레아를 통해 얻은 자녀들은 훗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일부가 되는데 그중 아들 레위의 후손은 제사장 가문으로, 유다의 후손은 왕의 집안으로 하나님께 택함 받았다. 특히 유다의 후손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게 되면서(마 1:1~17) 레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됐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혼사를 치렀고, 남편의 사랑마저 동생에게 빼앗겼음에도 분을 내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간구하며 모든 문제를 지혜롭게 헤쳐 나간 레아는 후손들에게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자”(룻 4:11)로 알려지게 됐다. 레아는 헤브론에 위치한 막벨라 굴에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가 안장된 곳에 야곱과 함께 장사되었다(창 49:29∼31). 성경 학자들은 이를 통해 레아가 야곱의 첫째 아내로서 위상을 누리게 되었다고 해석한다.
  • 2022.05.01 / 금지환 기자

    (81)바나바
  • 착하고 믿음 충만한 하나님의 사람 바울을 위대한 복음전도자로 이끌어 바나바는 구브로 출신의 레위인으로 원래 이름은 요셉이다. 사도들은 그를 ‘바나바’(번역하면 위로의 아들)라고 불렀다(행 4:36). 바나바는 이름의 뜻대로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으로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성품을 갖춘 사람이었다(행 11:24).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주님의 제자들은 성령을 받기 위해 마가 다락방에서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성령께서 임해 마가 다락방에서 초대 교회가 탄생하게 됐다(행 2). 바나바도 이때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해 받은 은혜에 보답하고자 자신의 소유물을 가져다가 주님과 교회 공동체를 섬기기 위해 내놓는다. 구브로는 지중해 동북부에 위치한 큰 섬으로 구리 산지로 유명하고 무화과와 꿀, 밀 등이 생산되는 비옥한 지역이었다. 그런 땅을 소유하고 있는 바나바는 상당한 재력을 가진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땅에서 주는 부요는 성령으로 충만한 바나바에게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땅을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행 4:37).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는 그는 믿는 무리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지 않았다.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이 회심한 사울을 믿지 못하고 경계하자 적극적으로 변호해 준 사람도 바나바였다(행 9:26~28). 바나바는 사울을 사도들에게 데리고 가서 다메섹 도상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간증했는지를 전했다(행 9:27). 그가 사울을 믿었고 우정을 나눴기 때문에 나중에 바울로 불리는 사울이 복음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다.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에서 목회 사역을 하게 됐을 때 다소까지 가서 사울을 안디옥으로 데리고 온다. 둘은 일 년간 함께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된다(행 11:25~26). 바나바는 하나님께서 사울을 회심시킨 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믿은 것 같다. 그는 과거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사울의 모습이 아닌 복음 전도자로서의 사울의 모습을 바라봤다. 사울은 헬라어에 정통했고 디아스포라 교회인 안디옥교회에서 그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었다. 바나바가 먼저 사울의 자질을 알아보고 길을 열어줬기에 후에 위대한 복음전도자가 될 수 있었다. 바나바는 자신을 앞세우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이 도와준 바울이 더 위대한 사도로 불렸어도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았다. 그는 바울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바울의 협력자로, 바울의 제1차 선교여행의 동반자로 그를 도왔다. 비록 제2차 전도 여행을 떠날 때 조카인 마가의 동행 문제로 바울과 심하게 다툼하고 결별하지만, 주님 안에서 그들의 교류는 계속 이어져 바울 서신에 여러 번 바나바의 이름이 언급된다.
  • 2022.04.03 / 김주영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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