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인물
(108) 삼손
  • 블레셋을 물리친 괴력의 사사
    유혹에 빠져 성령 떠나게 돼 성령 충만이 중요한 이유 알려줘 이스라엘의 사사로 20년간 활동한 삼손은 엄청난 괴력의 소유자로 유명하다. 기독교가 아닌 사람도, 어린 아이도 삼손의 이야기는 알고 있다. 17세기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는 들릴라가 삼손을 배신하는 순간을 절묘하게 묘사해 그려 걸작을 남겼고, 렘브란트 또한 삼손과 관련해 두 작품을 남겼다. 또한 삼손의 이야기는 오페라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사사기 13~16장에 삼손의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삼손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범죄한 결과로 블레셋 사람들에게 40년 동안 통치를 받고 있을 때 태어났다(삿 13:1∼5). 그의 아버지 마노아는 이스라엘 단 지파의 사람이었다. 어느 날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임신하지 못하던 마노아의 아내에게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삿 13:5)고 말해 주었다. 마노아는 아내가 아들을 낳자 ‘태양과 같다’라는 의미를 담아 삼손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었던 삼손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힘이 매우 강했다. 삼손은 블레셋에 의해 억압당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싸웠고, 많은 블레셋 사람들을 죽였다. 또한 그는 블레셋의 사원을 파괴하고 군대를 물리쳤다. 하지만 삼손은 욕망에 빠져 큰 실수를 하고 만다. 사사기 16장에는 삼손의 가장 유명한 일화이자 죄로 말미암아 성령을 소멸하게 된 그의 비극적인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삼손은 블레셋 여인 들릴라를 사랑하게 됐다. 블레셋 방백들은 삼손의 놀라운 힘이 어떻게 생기는지 알아보기 위해 들릴라를 돈으로 매수하여 삼손의 힘의 근원을 알아내게 했다. 삼손은 들릴라의 끈질긴 요구에 못 이겨 결국 머리가 밀리면 힘이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아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만다. 삼손의 비밀을 알게 된 들릴라는 자기 무릎에서 삼손이 잠든 때에 그의 머리털을 밀어버렸다. 하나님의 사람인 삼손은 들릴라의 유혹에 넘어가 자신의 비밀을 말해주었고 성령이 떠나갔다. 하나님의 사람인 삼손이 나실인의 율례를 범하자 성령이 떠나 더 이상 아무런 힘을 쓸 수 없게 됐다. 그는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두 눈이 뽑힌 채 놋 줄에 묶여 맷돌을 돌리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제야 삼손은 “야훼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야훼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삿 16:28)라며 하나님께 마지막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하나님께서는 삼손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셨고,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생포한 것을 기념하여 축제를 벌이고 있던 다곤 신전을 무너뜨리고 죽었다. 그 결과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 많았다. 삼손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사람이지만 세상의 유혹에 빠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모습에 머물러 있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성령이 떠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 2024.07.05 / 이미나 기자

    (107) 에바브로디도
  • 바울에게 충성한 믿음의 사람
    사명 위해 헌신한 빌립보교회 성도 바다를 가로지르면 1200㎞, 육로로 이동하면 2000㎞ 대략 서울에서 대만까지의 거리를 육박하는 선교 여정을 다녀온 한 성도가 있다. 빌립보교회의 성도 에바브로디도이다. 그는 빌립보서에 딱 2번(2:25, 4:18) 언급된다. ‘사랑스럽다’란 뜻을 가지고 있는 에바브로디도는 성경에 언급된 횟수와 달리 빌립보교회와 바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충성된 믿음의 사람이다. 에바브로디도는 로마 감옥에 투옥 중인 바울을 돕기 위해 빌립보교회에서 파송한 자이다. 당시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로마 제국에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힌 사실을 알게 되고(빌 1:12~13) 선교 후원금 전달자이자 위로자로 에바브로디도를 파송한다. 빌립보교회는 사도 바울과 관계가 깊다.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그리스에 첫발을 내디뎠는데 그 도시가 바로 빌립보였다. 바울은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히기도 했지만 큰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했다. 이로 인해 자결하려는 간수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됐고 유럽 땅에 최초의 교회인 빌립보교회를 세우게 됐다. 그래서 그런지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 1:8). 당시 빌립보교회가 있던 마게도냐에서 로마까지의 거리는 한 달은 족히 걸리는 머나먼 길이었다. 에바브로디도는 나홀로 가는 길이 두려웠을 법도 했지만 기꺼이 선교의 길에 나섰다. 치안이 열악해 선교에 필요한 재정과 재원 강탈은 물론 목숨까지도 위협당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갔고 어떠한 해도 입지 않고 로마에 도착했다. 이런 그를 바울은 ‘나의 형제’,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 ‘너희 사자’ ‘내게 쓸 것을 돕는 자’라고 말한다. 이는 그가 동역자로서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존재인지, 얼마나 충성된 주님의 자녀인지 알려주고 있다(빌 2:25). 하지만 에바브로디도는 로마에서 다시 빌립보교회로 돌아가야 했다. 그가 얼마나 로마에 체류했는지는 모르지만 바울을 돕다 그만 병에 걸리게 된 것은 분명하다.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에바브로디도가 오랜 여정으로 몸이 쇠약해진 상태에서 옥바라지를 하면서 로마에 돌고 있는 열병에 전염됐다는 의견도 있다. 에바브로디도는 아픈 와중에도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염려할까 근심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에 대해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빌 2:30)라고 말하며 에바브로디도가 사명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을 빌립보 교인들에게 설명하며 그를 따뜻하게 맞아달라고 요청한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헌신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에바브로디도의 행적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목숨걸고 사역에 임하는 선교사들이 생각났다. 에바브로디도처럼은 아니더라도 우리의 시간과 물질, 마음을 에바브로디도와 같이 헌신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기꺼이 보내는 선교사로 동참하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 2024.05.31 / 금지환 기자

    (106) 입다
  • 암몬과 에브라임 무찌른 입다
    잡초 같은 삶에서 아홉 번째 사사로 이스라엘의 아홉 번째 사사 입다는 길르앗 유지와 무명의 기생 사이에서 태어났다. 서자로 태어나 어린 시절 많은 핍박을 받았다. 이복형제로부터 핍박을 받다가 이스라엘 변방에 있던 돕으로 떠난 입다는 타고난 언변과 지도력으로 사람들을 모아 두목 노릇을 하며 약탈을 일삼는 부족으로부터 이스라엘을 보호했다. 그러던 중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삶을 청산하고 이스라엘의 사사로 발탁되는 사건을 맞았다. 오랜 시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힌 암몬이 작정하고 땅을 빼앗기 위해 길르앗에 쳐들어온 것이다. 암몬을 막아낼 방법이 없던 길르앗 장로들은 입다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데 입다는 장군의 지위와 승전 후 영구적인 지도권을 자신에게 보장할 것을 장로들에게 요청했다. 장로들에게 약속을 받은 입다는 암몬을 무력으로 상대하기 전에 역사적인 근거를 암몬 왕에게 제시해 싸움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암몬 왕은 입다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 상황으로 볼 때 입다는 고향을 떠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역사를 잃지 않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으로 보인다. 제안을 거절한 암몬 왕으로 인해 이스라엘과 암몬은 전쟁을 치뤘고 하나님께서 입다의 손에 암몬을 넘겨 주셔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입다는 전쟁에 임하기 전 하나님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갔을 때 가장 먼저 영접 나온 자를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다’라는 서원을 했다.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그를 맞이한 사람은 하나뿐인 딸이었다. 입다는 자기 옷을 찢으며 괴로워했지만 하나님을 향해 서원했으니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을 하나님께 드려야 했다.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야훼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삿 11:35). 평소 길르앗 사람들을 업신여겼던 에브라임 사람들은 승전하고 돌아온 입다에게 ‘암몬과의 전쟁에 왜 자신들을 부르지 않았느냐’, ‘길르앗은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들이다’라며 시비를 걸었다. 암몬과의 전쟁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입다는 에브라임의 모욕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길르앗 사람을 모아 에브라임과 싸워서 승리했다. 길르앗 사람들은 에브라임 사람들이 퇴각하는 요단강 나루턱을 장악하고 에브라임 사람들을 색출했다. 겉모습으로 쉽게 구분할 수 없었기에 나루턱을 지나는 모든 사람에게 ‘쉽볼렛’이라는 단어를 발음하게 했다. 길르앗 사람들은 정확한 발음이 되지만 당시 에브라임 사람들은 십볼렛으로 발음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4만2000여 명의 에브라임 사람을 찾아내 죽였다. 입다는 암몬과 에브라임을 격퇴해 이스라엘을 구하고 무력을 앞세우기 보다 싸우지 않도록 제안하는 지략을 가졌지만 경솔한 서원으로 무남독녀를 잃게 됐다. 입다를 통해 배경도 없고 연약한 삶도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감정에 이끌린 서원으로 괴로운 마음을 겪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교훈도 얻게 된다.
  • 2024.05.03 / 박찬웅 기자

    (105) 오네시모
  • 비천한 종에서 위대한 종으로 변화된 인물
    “나의 형제여, 성도들에게 베푼 그대의 사랑이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었고, 또한 내게도 큰 기쁨과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그대에게 한 가지 부탁할 일이 있습니다 …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나는 믿음의 아들 오네시모를 얻었습니다. 그가 이전에는 그대에게 아무 쓸모없는 종이었지만 이제는 그대나 나에게 큰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위 편지 내용은 주인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도망쳤던 종을 용서하고 더 이상 종이 아닌 주 안에서 한 형제로 받아달라고 부탁하는 바울의 편지 내용이다. 1장으로 구성된 신약의 빌레몬서는 바울이 사랑과 믿음의 일꾼인 빌레몬에게 보내는 서신이다. 편지에 등장하는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으로 주인에게서 도망치고 감옥에 갇혔다가 바울을 만난 인물이다. 바울은 감옥에서도 죄수들에게 주의 복음을 전하며 “모든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서 감동으로 기록되었기에 진리를 가르쳐 주며, 삶 가운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게 해준다. 또한 그 잘못을 바르게 잡아 주고 의롭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고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게 한다”라고 가르쳤다. 이러한 바울의 가르침에 회심하고 개종한 사람이 바로 오네시모다. 빌립보서 4장에는 바울이 오네시모를 가리켜 “오네시모 역시 우리가 사랑하는 신실한 형제”라고 표현하며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이”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울은 골로새 지역 교회의 핵심적인 인물이었던 빌레몬에게 그의 종이었던 오네시모를 직접 보내며 자신이 직접 쓴 편지를 빌레몬에게 전한다. 사랑으로 용서하고 자신을 대하듯 ‘종이 아닌 사랑하는 형제로 대해줄 것’을 당부하며 “오네시모가 잘못한 일이 있거든 그 책임을 나에게 돌리고, 갚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도 나에게 돌리라”고 까지 언급한다. 당시 로마법은 주인과 종(노예)의 관계가 엄격해 도망친 종은 주인에 의해 생사가 갈렸다. 바울은 ‘감옥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빌레몬이 용서해 바울의 조력자로 헌신할 수 있게 도와주길 기대했다. 결국 오네시모는 바울의 헌신과 사랑, 주인인 빌레몬의 용서로 종에서 자유의 몸이 된다. 그리고 ‘쓸모 있는 자’라는 오네시모의 뜻처럼 유익한 하나님의 종으로 후에 에베소 교회 감독으로 쓰임 받는다. 비천한 신분이었던 오네시모가 위대한 일꾼이 된 것은 복음이 지닌 위대한 능력의 결과다. 복음 앞에서 모든 것은 변할 수 있다. 예수님이 피 흘려 돌아가신 구속의 이유다. 바울의 복음을 들은 오네시모처럼 우리 역시 성경 안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삶의 변화를 체험하면 하나님의 쓸모 있는 자로 이 땅에서 값진 삶을 살아낼 수 있다.
  • 2024.04.05 / 오정선 기자

    (104) 나오미와 룻
  • 하나님만 따르기로 결단한 두 여인 ‘신앙, 효, 사랑’이 삶 바꿀 수 있어 나오미와 룻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이다. 고부 관계를 맺고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애초에 혈육이 아니고 서로 살아온 환경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때로는 고부 갈등이 가정을 파탄 내기도 한다. 하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했던 나오미와 룻은 기적의 주인공이 됐다. 원래 나오미는 유다 베들레헴 사람이다. 남편 엘리멜렉은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 말론, 기룐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갔다. 아들들은 모압 여인인 오르바, 룻과 결혼을 했다. 하지만 모압으로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엘리멜렉이 죽었고, 두 아들도 자녀를 남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당시 남편이 없는 여성, 아들이 없는 여성은 부모 없는 고아와 같은 처지였다. 남자들이 모두 죽었기에 가정은 완전히 몰락하고 세 과부만 남겨졌다. 이방 땅에서 과부로 살아갈 방법이 없었던 나오미는 고통과 슬픔밖에 남지 않은 모압 생활을 정리하고 하나님의 은혜만 바라며 이스라엘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처음에는 유다 땅을 향해 같이 길을 나섰지만 나오미는 이내 두 며느리에게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이스라엘에 가도 며느리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나오미는 슬픈 이별을 고한 것이다. 오르바는 떠났고 룻은 나오미를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룻은 야훼 하나님을 언급하며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고 믿음의 백성으로 남겠다는 결단을 한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아훼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 1:16~17).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룻은 헌신적으로 시어머니를 봉양했다. 생활 기반이 없기에 하루 종일 밭에서 이삭을 주웠고 그의 희생적 모습이 보아스의 눈에 들었다. 보아스는 룻과 나오미를 위로하고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룻에게 호의를 베푼 보아스는 룻의 기업 무를 자가 되어 마침내 둘은 결혼에 이르렀다. 룻은 나오미의 뜻에 따라 비록 보아스의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했다. 이 둘 사이에서 장차 다윗 왕의 조상이 되는 아이가 태어났다(룻 4:13∼17). 하나님은 룻에게서 아름다운 믿음을 보시고 기적을 베푸셨다. 이방 여인 룻이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되고 예수님의 조상으로서 족보에 들어가게 됐다. 아무 소망도 의지할 곳도 없던 두 여인이 하나님만 따르기로 결정하고 나아갔을 때 개인의 삶만 바뀐 게 아니라 멸절됐던 가문이 이어지고, 한 국가의 운명이 달라졌다. 나오미와 룻이 지닌 신앙과 서로에 대한 효와 사랑은 오늘을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 2024.03.01 / 복순희 기자

    (103) 유니게
  • 신앙교육과 기도는 자녀의 운명을 바꾼다 말씀으로 디모데 양육한 믿음의 어머니 성경에 나오는 많은 기도의 어머니 중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유니게이다. 디모데의 어머니인 유니게는 독실한 신앙인으로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그 신앙은 유니게의 어머니인 로이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디모데의 외할머니인 로이스는 신앙의 유산을 물려준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유니게와 로이스는 디모데가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열심히 가르쳤고 믿음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돼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디모데가 어렸을 때부터 신앙으로 철저히 교육을 시키며 지혜로운 아들이 되도록 늘 기도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가르쳤고 거짓이 없고 남에게 칭찬을 받는 훌륭한 인물로 양육했다. 사도 바울은 로이스와 유니게의 신앙을 배우고 본받아 진실하고 온전한 믿음을 가진 디모데를 동역자로 삼았다. 디모데는 복음을 위해 살며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쳤고 사도 바울은 이런 디모데의 믿음을 크게 칭찬했다. 사도 바울이 마지막 순교하기 전에 남긴 편지에서 유니게와 로이스의 신앙적 가르침을 귀히 여기고 디모데를 무척 아꼈던 마음이 담겨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 1:5) 유니게라는 이름의 뜻은 ‘유명한 정복자’라는 의미이다. 유니게는 루스드라 출신의 헬라계 유대인으로 당시 불신 세계라 할 수 있는 헬라 사회에서도 믿음과 전통을 지킨 신실한 신앙인이었다. 유대인인 로이스와 유니게는 순결한 신앙의 소유자들이었는데 유니게는 이방인(헬라인)과 결혼하여 디모데를 낳았다. 사도행전 16장 1절에서 디모데에 대해 “모친은 믿는 유대 여자요, 부친은 헬라인”이라고 소개하는데 이방인과 결혼한 유니게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당시 유대 여자가 이방 민족과 결혼한다는 것은 자신의 신앙을 위협받기에 더욱 꺼리는 일이었다. 또한 당시 사회가 부계 중심의 사회인데도 성경에 디모데의 아버지가 아닌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만 언급된 것으로 보아 남편이 일찍 죽었을 것으로도 여겨진다. 결혼 생활이 평온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유니게는 철저한 신앙으로 아들을 키웠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신앙의 유산을 아들에게 물려줬고 디모데는 사도 바울에게 큰 힘이 되고 초기 교회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믿음의 어머니 유니게를 통해 참된 부모의 역할을 배울 수 있다. 그녀는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었고, 부모의 기도가 자녀의 운명을 바꾼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었다. 부모의 역할은 자녀들에게 굉장히 중요하다. “그 부모의 손끝에는 하나님이 계신다”라는 외국 속담처럼 하나님께서 부모의 손길을 통해 자녀들을 이끌어 주신다.
  • 2024.02.01 / 이미나 기자

    (102) 기드온
  • 미디안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용사 300명 용사들과 보인 믿음과 순종이 낳은 결과 300명의 용사로 미디안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물은 이스라엘의 다섯 번째 사사 기드온이다. 므낫세 지파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의 아들로 태어난 기드온은 ‘벌목하는 사람’이란 뜻을 가졌으며 오브라라는 성읍에 살고 있었다. 그 당시 미디안 족속은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이스라엘의 소산을 모조리 망쳐놓으며 괴롭힘을 일삼았다. 기드온은 이러한 미디안을 피해 타작마당이 아닌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했다. 그런 그에게 야훼의 사자가 나타나 “큰 용사여 야훼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며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할 것을 명하게 된다. 하지만 기드온은 자신의 연약함을 나타내며 상황을 피해보려 한다. 그런 그를 하나님이 사용하시겠다 하자 표징을 구한다. 그리고 반석 위에 올려놓은 희생제물이 야훼의 사자로 인해 불살라지는 것을 목격하고 그곳에 제단을 쌓아 ‘야훼 살롬’이라 불렀다(삿 6:24). 그리고 그날 밤 바알의 제단을 헐고 아세라 상을 찍어 버렸고 여룹바알(바알과 더불어 논쟁하는 자)이란 별명을 얻는다. 미디안과 아말렉, 동방사람들이 함께 모여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 기드온은 전쟁에서의 승리 표징으로 또 다시 하나님의 표적을 구한다. 그 증거물로 타작마당에 있는 털뭉치에만 이슬이 내리고 주변 땅은 마르는 역사와 반대로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 이슬이 내리는 기적을 체험하며 소명을 확신한다. 기드온이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싸울 용사를 모집하고 추려내는 과정은 유명하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모인 3만2000명 중 기드온은 두려움에 처한 이와 엎드려 물을 마신 이를 제외하고 물을 손으로 떠서 핥아 먹는 용사 300명만 선발한다(삿 7:1~8). 하나님이 소수의 인원을 의도적으로 택하신 까닭은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전쟁을 경험함으로 보다 성숙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백성이 되길 원하셨던 하나님의 뜻이 크다. 그 때문에 이스라엘 300용사가 적진으로 뛰어들며 준비한 무기는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 항아리 안에 숨긴 횃불이 전부였다. 300명이 동시에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횃불을 높이 들며 “야훼와 기드온의 칼이다!”라고 외치자 적진은 대혼란이 일었다. 결국 기드온과 300용사는 미디안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생포하는 등 대승을 거두고, 이스라엘 지경을 요단강까지 확장하게 된다(삿 7:22~23; 8:1~21). 결코 이길 수 없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던 요인은 기드온의 믿음과 용사들이 보여준 순종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드온에게도 실수는 있었다. 백성이 그를 왕으로 삼으려 할 때 거절한 것은 좋았지만 전쟁에서 탈취한 귀고리로 에봇을 만들어 오브라에 둔 것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이 됐고, 기드온과 그 집안의 올무가 됐다(삿 8:24~27). 또 기드온 사후 71명의 아들 중 세겜의 첩이 낳은 아비멜렉이 막내 요담을 제외한 형제 모두를 살해하는 등 이스라엘은 다시 혼란으로 빠져 들고 만다.(삿 9:1~6).
  • 2024.01.05 / 오정선 기자

    (101)브리스길라와 아굴라
  • 성경에서 가장 아름답고 모범적인 부부
    평신도 사역자로 가정 교회 이끌며 복음 전해 바울 선교 사역 동역하며 유럽 복음화의 기반 닦아 성경에서 가장 아름답고 모범적인 부부로 기록된 이들이 있다. 브리스길라(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이다. 이들은 훗날 유럽 복음화를 이룰 수 있도록 바울과 함께 복음의 씨앗을 뿌린 부부로 기억되고 있다. ‘브리스길라’(행 18:2)는 ‘브리스가’의 애칭이며 ‘작은 노부인’이란 뜻을, 남편 ‘아굴라’는 ‘독수리’란 뜻을 가지고 있다. 이들 부부는 성경에서 늘 나란히 언급되는데 이는 그들이 주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부부의 모습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성경에서 간혹 브리스가가 남자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남편 아굴라보다 아내 브리스가가 먼저 언급된다는 사실이다. 학자들은 이에 대해 브리스가는 남편 아굴라보다 신앙심과 열정이 뛰어나고, 교회 활동에서도 그가 더 추진력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로마에 거주하고 있던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각각 로마 귀족, 유대 사람 출신으로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통치할 당시(41~54년) 유대인 동족 간 벌어진 유혈 폭동으로 인해 추방되어 고린도로 이주했다(행 18:2). 당시 천막 제조업에 종사했던 이들 부부는 고린도에서도 천막을 만들었는데 항구도시였던 고린도는 각종 올림픽 경기와 행사로 사시사철 천막 수요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이들 부부는 이때 2차 선교여행으로 고린도를 방문한 사도 바울과 우연한 기회로 만나게 됐고 거처를 제공하고 함께 천막을 제작하며 사도 바울의 든든한 동역자가 됐다. 이들 부부는 자신들의 일터의 일부를 사도 바울에게 제공함으로 바울이 자연스럽게 전도할 수 있도록 도왔고 작업장은 곧 선교 본부가 됐다. 바울을 물질적 정신적으로 후원하며 자신의 집 또한 성도들을 위한 가정교회로 제공하며 평신도 사역자로서 바울이 유럽선교의 교두보를 구축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왔다. 바울은 이들을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롬 16:3~4)고 소개하며 이들 부부가 그리스도 안에서 모범적인 신앙생활의 표본이라 자랑한다. 바울은 브리스가 아굴라 부부와 고린도에서 에베소로 이동해 함께 선교활동을 펼쳤다. 이들 부부는 에베소에 머물며 교회를 개척하는 선교사 역할을 했고 가정에서 예배드리며 교회를 만들었다. 이들은 에베소에서 알렉산드리아 태생의 유대인 학자인 아볼로에게 성경 말씀을 올바르게 일러주는데 아볼로는 이를 계기로 바울과 동역하며 고린도교회를 크게 부흥시키기도 했다. 바울이 소천 받기 전 디모데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는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고 말하며 끝까지 이들 부부를 아끼고 사랑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바울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목숨을 내어놓고 도왔던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목숨까지 주저하지 않고 헌신한 이 시대에 본이 되는 부부로 여겨지고 있다.
  • 2023.12.08 / 금지환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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