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요약본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가라
  •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브리서 10장19~22절) 날마다 우리를 새롭게 하는 예수 보혈의 능력으로 마음을 성결케 하고 하나님 영광 위해 살아야 그리스도인은 하루를 살아도 의미 있고 보람되며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주 안에서 거룩한 꿈을 품고 그 꿈을 향해 믿음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 옛 사람의 모습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꿈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 멀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길, 주님이 열어주신 새로운 살길을 보여줍니다. 1. 예수님의 피의 능력 히브리서 10장은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이 계신 성소로 나아갈 때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힘입으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 10:19). 이처럼 예수님의 보혈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믿음으로 전진할 때 우리의 발걸음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옛 사람, 곧 죄성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히 12:1). 과거의 상처, 실패의 경험, 죄와 허물, 인간의 욕망, 자존심과 교만 등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붙잡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이 모든 결박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입니다. 주님의 보혈에 죄 사함과 정결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만 오직 예수님의 보혈만이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 그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변화되어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우리는 더 이상 옛 사람의 모습에 붙잡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담대히 주님 앞에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 10:19). 날마다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여 주님의 은혜와 축복, 사랑과 용서 가운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큰 제사장되신 예수님 예수님은 우리의 큰 제사장으로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히 10:21). 구약의 제사장은 백성의 죄가 사함받도록 하기 위해 짐승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히 2:17). 구약시대의 대제사장은 1년에 한 번,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사하기 위해 짐승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갔습니다. 4000년의 구약 역사는 피로 드리는 제사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장차 오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피를 흘려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히 4:14).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자유케 하셨습니다. 주님의 보혈이 우리의 죄와 허물을 깨끗이 씻어 주시며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나아가 주님의 은혜와 축복의 자녀로 변화시켜 주셔서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거하게 하십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의 통로가 되십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종교나 훌륭한 사람도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십니다(요 14:6).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이 지금도 우리를 은혜의 보좌 앞으로 이끌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우리는 날마다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보혈의 은혜를 힘입어 때를 따라 돕는 은혜와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3.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가라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말씀의 생수로 씻음을 받아 새롭게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더욱 깊이 누리기 위해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 10:22). 온전한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 바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첫 번째 순서입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면 자녀도, 사업도, 범사도 잘 되지만 우리가 우선순위를 바꾸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되어 문제 속에 갇히게 됩니다. 첫째도 주님의 은혜, 둘째도 주님의 은혜, 마지막도 주님의 은혜입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상처를 받고 배신을 당하지만 하나님께 나아가면 용서와 사랑, 치유와 회복의 은혜가 임합니다. 하나님은 실패가 변하여 성공이 되게 하시고 상처가 변하여 치료와 용서가 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은혜의 보좌 앞에, 긍휼의 보좌 앞에, 사랑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히 4:16). 우리는 거짓 없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을 감동시키는 그런 믿음의 사람이 될 때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은혜가 임합니다. 세상은 지금 너무나 힘들고 어렵다고 말하지만 주님을 바라볼 때 희망이 있습니다. 오히려 힘들고 어려울 때가 바로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야훼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시 73:2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 4:8). 먼 훗날 주님을 만날 그날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부족하고 연약하며 허물투성이인 우리들을 택하사 주의 보혈로 정결케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주님만 바라보며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길 원합니다.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10.05

    절대 절망이 변하여 절대 희망으로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 11장 23~26절) 고난 중에 믿음으로 나아갈 때 절망은 희망으로 바뀌게 돼 걱정과 근심 하나님께 맡기고 주와 동행하며 승리의 삶 살아야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면서 가장 슬픈 일은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는 것입니다. 가족을 잃은 아픔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때로는 그 슬픔이 사람을 절망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순간에도 우리는 남아 있는 가족을 생각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을 붙잡아야 합니다. 인생에는 누구에게나 절망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오직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나아갈 때 절망은 소망과 승리로 바뀌게 됩니다. 1. 절대 절망에 처한 가정 요한복음 11장에는 절대 절망에 빠진 한 가정이 나옵니다. 바로 나사로와 마르다, 마리아 삼 남매의 가정입니다. 그 집안의 가장이었던 나사로가 죽은 것입니다.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요 11:17). 예수님은 베다니에 살던 이 가정을 특별히 사랑하셨습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 동쪽 약 3.2㎞ 지점에 있는 마을로 예루살렘으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오실 때마다 이 집에 머물며 제자들과 함께 쉼을 얻으셨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언제나 예수님을 정성껏 섬겼습니다. 언니 마르다는 손이 커서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찾아와도 늘 풍성하게 대접하느라 분주했습니다.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눅 10:40). 반면 동생 마리아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말씀을 듣기를 사모하는 영적인 여인이었습니다. 나중에는 값비싼 향유를 깨뜨려 예수님의 발에 붓기도 했습니다.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요 11:2).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이 부모처럼 의지하던 오라버니 나사로가 중병에 걸렸습니다. 자매들은 급히 사람을 보내 예수님께 알렸습니다.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요 11:3).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오지 않으시고 며칠 더 머물러 계신 뒤에야 베다니로 오셨습니다. 그때는 이미 나사로가 세상을 떠난 지 나흘이나 지난 후였습니다.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요 11:17). 사랑하는 오라버니의 죽음을 목격한 마르다와 마리아는 깊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우리 역시 인생을 살다 보면 예고 없이 절망의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절망이 끝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절망의 자리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준비하시고 믿는 자에게 다시 일어설 길을 열어주십니다. 2. 절대 절망이 주는 교훈 나사로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은 그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요 11:4). 이처럼 고난이 다가와도 그 뒤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창세기에 나오는 꿈꾸는 요셉의 인생이 그 증거입니다. 요셉은 어린 시절 하나님이 보여주신 꿈을 품었지만, 그의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렸고 억울하게 감옥살이까지 했습니다. 무려 13년 동안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시간을 보낸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꿈을 붙들고 하나님만 바라보았고 하나님은 그와 함께하시며 그를 형통케 하셨습니다. 하루아침에 애굽 왕 바로의 꿈을 해석하게 된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가 말한 대로 7년 풍년과 7년 흉년이 찾아왔고, 애굽은 흉년에 대비하여 많은 사람들을 살려낼 수 있었습니다. 그때 22년 전 자신을 팔아버린 형들이 양식을 구하러 와서 요셉 앞에 절하였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이 보여주신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형들이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에게 절하며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을 원망하거나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 50:20). 절망 같았던 고난은 사실 하나님의 축복을 이루는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역사의 주관자가 되십니다. 때로 억울한 일을 당하고 모함을 받고 고통 가운데 버려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악인을 심판하시고 의인을 세우셔서 결국 주님의 영광을 온 천하에 나타내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오직 주님만 믿고 의지하면 절망이 변하여 희망이 되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3. 절대 희망을 선포하신 예수님 절대 절망에 빠진 마르다에게 예수님은 절대 희망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요 11:23). 마르다는 이 말씀을 먼 미래의 부활로 이해했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곧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선포하시며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제서야 마르다가 고백합니다.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 11:27). 예수님의 말씀은 절대 희망입니다. 예수님이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외치셨을 때(요 11:43) 죽었던 나사로가 온몸에 베를 칭칭 감은 채로 걸어 나왔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기적과 생명, 능력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절망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음성은 염려와 근심, 걱정을 가져오지만 주님의 음성은 우리에게 기쁨과 희망, 생명과 축복, 은혜를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베로 감긴 채 걸어 나왔을 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요 11:44).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난 것처럼 예수님을 믿음으로 죽어 있던 우리가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생각과 과거의 상처가 여전히 우리를 묶어 절망하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우울증, 상처, 문제와 고통이 우리를 감싸지만 주님은 우리를 그 모든 것에서 자유롭게 하십니다. 과거의 상처와 문제, 질병에서 자유함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성령 충만 받으면 모든 결박이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믿음은 맡기는 것입니다. 염려 근심 걱정을 주님께 맡기면 주님이 우리를 붙잡아 주십니다(시 55:22). 모든 결박에서 풀려나 자유케 되며 절대 절망이 절대 희망으로 바뀌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를 돌보시며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과 동행하며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인생에 찾아오는 고난과 이별, 절망과 시련 속에서도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약한 믿음으로 원망하고 불평했던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난 것처럼 우리의 모든 결박이 풀려 자유케 되고 절대 절망이 절대 희망으로 변하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09.28

    영적인 맹인
  • “그들이 전에 맹인이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물으니 이르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이에 맹인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하니” (요한복음 9장 13~17절) 빛 되신 주님 바라볼 때 영적인 맹인에서 눈 뜨고 빛 되신 예수님 만나 복음 전하는 삶 살게 돼 세상에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영적인 눈이 가려져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적인 맹인이고 다른 하나는 영적인 눈이 열려 주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적인 눈이 열려 하나님의 자녀로 복되게 살아가야 합니다.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던 사람은 절망 가운데 있었지만 예수님을 만나 눈을 뜨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1. 절망 중에 태어난 인생 예수님이 길을 가시다가 날 때부터 눈을 뜨지 못하고 어둠 속에 살고 있던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요 9:1). 그는 죄와 절망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람은 죄 가운데 태어나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 죽어가는 영적인 맹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눈은 뜨고 있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살아가면 모든 것을 육신의 눈으로만 보고 판단하기에 결국 죄에 갇힌 영적 맹인의 삶을 살게 됩니다. 영적인 눈이 가려진 사람은 모든 것을 인간의 눈으로만 판단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요 9:2). 문제를 가진 사람을 사랑으로 보살피고 도와주기보다 도리어 그의 문제를 지적했던 것입니다. 남의 허물을 발견하고 판단하는 것은 영적인 맹인의 공통적인 모습입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잘 섬기고 말씀을 철저히 지킨다고 자부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며 십계명을 지켰지만 실제로는 영적 맹인입니다.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을 보고도 안식일에 병을 고쳤다는 이유로 비난했습니다.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요 9:16). 이처럼 영적 맹인은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데만 급급합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할 때 영적인 눈이 열리게 됩니다. 한 번뿐인 인생, 우리 모두 세상의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나 주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갈 때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한평생 우리 삶 가운데 임하게 됩니다. 2. 생명의 빛 되신 예수님 예수님은 세상에 계시는 동안 생명의 빛이 되셔서 우리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요 9:5). 이 빛 되신 예수님을 영접할 때 구원의 은혜가 임합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9, 12). 생명의 빛 되신 예수님이 맹인을 보셨습니다. 주님이 보실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사람에게 잘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께 잘 보이는 것입니다. 주님의 시선이 우리에게 머무를 때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자리다툼과 갈등을 일으킵니다. 우리는 빛 되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임합니다. 예수님은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맹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요 9:6~7). 성경에서 침으로 흙을 이겨 눈에 바르신 사건은 이곳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빚어 생기를 불어넣으신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창 2:7). 흔히 있는 흙도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생명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은 무가치한 것을 가치 있는 것으로 바꾸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 전 우리의 모습도 무가치했습니다. 죄 가운데 살고 방탕과 문제 속에 얽매여 있었지만,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무가치한 존재가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흙이 예수님의 손에 들려 맹인의 눈에 발라지고 실로암 못에서 씻겼을 때 눈이 떠지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아무리 무가치해 보여도 주님의 은혜가 임하면 존귀한 존재로 변화됩니다. 날마다 주님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 눈 뜬 맹인의 고백 앞을 보지 못하고 절망 중에 살던 맹인은 예수님을 만나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담대히 증언합니다.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요 9:11). 이 소식을 들은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맹인의 눈을 뜨게 했다는 이유로 논쟁하며 고침받은 사람을 다시 불러 심문합니다. “이에 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요 9:24~25). 영적으로 눈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아붙였지만 그는 자신이 경험한 은혜를 고백했습니다. 우리도 혹시 바리새인처럼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며 살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고집과 교만, 불순종에 사로잡혀 다투고 분노하고 상처 주는 모습에서 떠나야 합니다. 잘못된 과거의 모습에서 떠날 때 우리 영의 눈이 열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 수 있습니다. 육신의 눈과 영적인 눈을 함께 뜬 맹인은 담대히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요 9:31~33). 당시 권력을 쥔 바리새인들이 그를 위협했지만 그는 당당히 자신이 받은 은혜를 증언했습니다. 세상 권력 앞에 입장을 바꾸는 이들과 달리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 편에 서서 진리를 선포하고 바른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눈을 뜬 맹인처럼 내가 만난 예수님을 담대히 고백해야 합니다. 만나는 모든 이에게 예수님이 구세주이시며 모든 문제의 해답이 되심을 전해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예수님을 전할 때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한평생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영적인 맹인에서 눈을 뜬 자로 살아가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육신의 눈은 뜨고 살아가지만 때로는 바리새인처럼 영적인 맹인으로 살았음을 고백하며 회개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고집, 편견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했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이제 우리 영의 눈을 열어주셔서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빛 되신 예수님을 전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09.21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한복음 4장 13~14절 문제의 해결자 예수님이 은혜의 생수 부어주실 때 영혼의 갈급함 채워지고 복음 전하는 사람으로 거듭나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와 자녀, 배우자와 형제자매, 이웃 등 여러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갑니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을 홀로 살아가도록 창조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창 2:18). 좋은 만남은 삶을 풍성하게 하지만 잘못된 만남은 상처와 불행을 가져옵니다. 2000년 전 한 사마리아 여인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행복을 얻고자 다섯 번이나 결혼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물을 길으러 나온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만나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는 예수님만이 우리의 참된 만족과 기쁨이 되심을 잘 보여줍니다. 1. 한낮에 물을 길으러 나온 여인 예수님은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 지역을 지나가셨습니다.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요 4:4~5). 사마리아 수가라는 지역에 이르렀을 때는 점심 무렵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구하러 동네로 들어갔고 예수님은 긴 여정에 피곤하셔서 동네 입구의 우물가에 앉아 잠시 쉬고 계셨습니다. 그때 한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나왔습니다. 성경은 그 시간이 유대인의 시간으로 “여섯 시쯤” 곧 정오였다고 기록합니다(요 4:6). 유대인은 해 뜨는 새벽 6시를 하루의 시작으로 계산했기 때문에 여섯 시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한낮 12시였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무더운 낮에는 물을 길으러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홀로 물을 길으러 나왔습니다. 다섯 번의 결혼이 실패로 끝나면서 그녀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과 조롱을 받는 ‘문제 많은 여인’으로 낙인찍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아무도 오지 않는 한낮에 우물에 물을 길으러 나온 것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면서 만남과 관계 속에서 수많은 실패를 경험합니다. 믿었던 사람이 배신하기도 하고 사랑했던 부부가 갈등 끝에 헤어지기도 하며 가까웠던 친구가 오해로 인해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누구나 사람으로 인해 마음에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사도 바울은 이 상처와 갈등 속에 사는 인간의 모습에 대해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연약한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날 때 인생이 바뀝니다. 오늘도 나의 연약함보다 크신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그 은혜 안에서 새 힘을 얻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예수님을 만난 여인 결혼을 다섯 번이나 실패했던 사마리아 여인은 한낮에 물을 길으러 왔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요 4:7). 사람과의 만남은 상처와 절망, 미움과 고통을 안겨주지만 예수님과의 만남은 모든 것들을 새롭게 합니다. 예수님은 미움과 증오를 사랑과 용서로, 상처와 절망을 희망과 용기로 바꿔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변하는 사람의 마음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변치 않는 예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사람에 대한 불신과 상처가 깊었던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을 처음 대하는 유대인 남자가 물을 달라고 하자 당황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요 4:9). 당시 유대인들은 혈통을 중시했고 이방인과 피가 섞인 사마리아 사람들을 멸시하며 대화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갈릴리로 갈 때도 사마리아를 피해 먼 길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꺼이 사마리아 지역을 지나며 바로 그 여인을 만나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마음 깊은 공허함과 갈급함을 아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요 4:10). 예수님은 그녀에게 생수를 주셔서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3~14). 사람이 주는 사랑은 늘 부족하고 갈급함을 남기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사랑은 영혼의 생수가 되어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합니다. 그 사랑은 상처를 치유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올바른 길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러므로 불완전한 사람에게 기대기보다 우리에게 참된 만족과 기쁨을 주시는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3. 문제의 해결자 예수님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의 상처를 치료해 주실 뿐 아니라 그녀가 영적으로 변화되어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여인이 붙들고 있던 문제의 핵심을 직접 지적하셨습니다.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요 4:16). 다섯 번이나 결혼에 실패하고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던 그녀는 시치미를 떼며 대답했습니다.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요 4:17~18). 예수님은 그 여인의 과거와 현재를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숨길 수 없었고 예수님 앞에 엎드려 고백했습니다.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요 4:19).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께 보냄 받은 메시야임을 인정한 고백이었습니다. 그 순간 다섯 번의 실패가 남긴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여인은 육신의 갈급함을 채워줄 물을 마시는 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달려가 증언했습니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요 4:28~29). 상처 많던 여인은 이제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증언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게 되었습니다.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요 4:39). 오늘 우리도 모든 문제의 해결자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께 나오면 마음의 상처와 과거의 실패, 현재의 모든 문제까지도 치유되고 해결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사람으로부터 만족을 얻으려 하지 말고 예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해야 합니다. 그때 주님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은혜의 생수를 부어주십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자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 영혼의 갈급함이 채워지고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공허하고 상처 입은 우리의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옵니다. 우리의 갈급한 영혼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가득 채워주옵소서. 날마다 주님만 의지하여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09.14

    상처를 치유하라
  •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요한복음 5장 5~9절) 과거의 상처와 아픔을 십자가 밑에 내려놓고 예수 사랑 감격해 용서하면 진정한 치유·회복 얻게 돼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크고 작은 질병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질병은 육신의 병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적인 병입니다. 또한 오늘날 많은 이들이 겪고 있는 또 다른 질병은 바로 마음의 병입니다. 마음의 병은 대개 과거의 상처와 아픔에서 비롯되어 시간이 흘러도 쉽게 지워지지 않고 삶 전체를 짓누르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상처와 아픔으로부터 반드시 치유 받아야 합니다. 세상의 방법으로는 참된 치유를 얻을 수 없지만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치유하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유일한 구세주이십니다. 1. 과거의 상처에서 자유함 받으라 예수님은 베데스다 물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요 5:6). 그런데 그 병자는 다른 사람들처럼 곧바로 “예, 낫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자기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상처를 예수님께 꺼내어 말했습니다.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요 5:7). 이 고백에는 3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단 한 사람도 자신을 도와주거나 돌보아주지 않았다는 외로움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질문 앞에서 마음속 깊은 상처와 쓸쓸했던 세월을 되새기며 그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와 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마음 한구석에는 잊히지 않는 아픈 기억이 자리 잡고 있고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붙들고 평생을 살아갑니다. 정작 상처를 준 사람은 이미 잊었을지 모르지만 상처받은 사람은 미움과 섭섭함, 증오와 아픔을 움켜쥔 채 현재를 살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 마음의 병은 결국 스트레스로 이어지고 스트레스는 육신의 여러 질병을 낳습니다. 공황장애, 불면증, 우울증, 만성두통, 위장병, 고혈압, 협심증과 같은 심장병, 뇌졸중, 위염, 소화불량, 탈모, 각종 암에 이르기까지 마음의 상처는 몸을 병들게 하고 마침내 죽음의 문턱으로까지 몰아갑니다. 우리는 반드시 과거의 상처와 트라우마로부터 자유함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으로는 그것을 온전히 벗어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위로가 잠시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오직 우리 구세주 예수님만이 절망과 상처 가운데서 우리를 건져주시고 완전히 치료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상처를 주님께 맡기고 예수님 안에서 참된 자유와 치유를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치료자 예수님 예수님은 우리의 치료자입니다. 과거의 상처에 붙잡혀 절망 가운데 살고 있는 38년 된 병자에게 예수님은 다가오셔서 물으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요 5:6). 주님은 그 병자에게 물으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물으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우리가 어떤 마음의 병이나 육신의 병을 가지고 있든지 주님은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아시고 친히 다가오셔서 물으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수님은 절망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일어나라”라고 명령하시며 희망을 선포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요 5:8). 주님은 자신의 능력의 말씀 한마디로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 한마디면 과거의 상처도, 그로 인한 마음의 병도, 육신의 모든 질병도 깨끗이 치료받고 온전하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과부의 죽은 아들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남편을 일찍 잃고 아들 하나만 의지해 살아가던 과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마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그녀는 절망 속에서 관을 따라가며 눈물로 통곡했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나와 슬픔을 나누었지만 그 누구도 그녀의 마음속 깊은 아픔을 치유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그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눅 7:13~14). 주님의 말씀 한마디에 죽은 청년이 살아나 일어났습니다. 사람의 눈으로는 끝없는 절망이었지만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가 절대 절망을 절대 희망으로 바꾸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일어나라”라고 말씀합니다. 절망의 자리, 과거 상처의 자리, 실패와 배신의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말씀합니다. 좌절과 고통의 자리, 술과 중독의 자리, 눈물의 자리에서 과감히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와 괴로움 가운데 있더라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반응할 때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또한 38년 된 병자에게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요 5:8). 그 자리는 38년 동안 병자가 누워 있던 곳, 때로는 온갖 세상 것으로 더럽혀진 절망의 자리였습니다. 주님은 그 절망의 자리를 들고 일어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상처를 이겨내려면 그 자리를 가슴속에 묻어놓고 있지 말고 과감히 들고 일어나 버려야 합니다. 집 안에 쌓인 쓰레기를 치워버리듯이 우리의 마음속에 쌓여 있는 미움과 분노, 증오와 갈등, 서운함과 절망의 쓰레기를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에 순종해 결단하고 과거의 실패와 상처, 절망의 자리를 내던져야 합니다. 그리고 뒤돌아보지 말고 주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의 상처로부터 치유 받아야 합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상처, 부부 사이의 상처, 인간관계에서 생긴 깊은 아픔까지도 십자가 밑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불교, 뉴에이지, 동양 철학과 같은 세상의 방법으로도 치유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해 그 사랑을 따라 용서하고 품을 때 진정한 치유와 회복이 이루어집니다. 무거운 짐을 계속 지고 살지 말고 십자가 밑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럴 때 오늘 하루를 의미 있고 보람 있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치료자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어떤 연약함과 상처, 고통 가운데 있더라도 주님의 십자가 밑에 나아가 우리의 모든 죄와 상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이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고쳐주십니다. 날마다 십자가의 그늘 아래 머물며 삶의 모든 짐을 주님께 맡기시길 바랍니다. 참된 치유와 회복이 우리 모두의 삶에 충만히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상처투성이의 인생을 살았음을 고백합니다.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을 만나 치유받았던 것처럼 우리 마음의 병과 육신의 병이 모두 다 치료받고 건강한 몸으로 회복되길 원합니다. 우리 모두의 상처를 치료해 주시고 주님의 기쁨과 평안함으로 충만히 채워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09.07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
  •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요한일서 5장 4~6절) 죄와 유혹이 가득한 세상 담대한 믿음으로 승리하고 구원의 은혜로 거듭나 일평생 주님과 동행해야 우리 인생은 단 한 번뿐이기에 의미 있고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마지막 때가 가까워져 온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하고 사도 바울도 말세에는 사람들이 죄와 쾌락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런 어두운 세상 속에서 승리하려면 우리는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우리는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1. 세상을 이기는 믿음 성경은 믿음의 사람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이긴다고 말씀합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 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요일 4:4).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문제와 어려움 속에서도 담대히 나아갈 수 있으며 주님이 함께하시기에 넉넉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동행하며 죄악이 만연한 세상 속에서 죄와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요일 3:9). 우리가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할 때 사랑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주님은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이기게 하시고 날마다 우리의 삶을 승리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7).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가 믿고 의지할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구원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문제와 어려움을 만나도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우리가 주님만 믿고 의지하며 바라보고 나아갈 때 주님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셔서 인생 전체를 은혜 가운데 이끌어주십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승리를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2.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세상에 믿고 의지할 것이 많다고 하지만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죄와 사망에서 나를 구원하신 구세주임을 믿을 때 우리에게 위대한 승리가 주어집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요일 5:5).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태어나 죄 가운데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약 율법을 정하시고 사람이 죄를 지으면 죄 없는 짐승이 피 흘려 죽음으로써 일시적으로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장차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을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 죽으셨습니다. 그분의 죽음으로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죄가 용서받게 되었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과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멸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승리자입니다. 죄 사함을 위해서는 반드시 피 흘림이 필요했기에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히 2:14~15).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는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한 믿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며 나아가야 합니다(요 16:33). 예수님을 믿을 때 그분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가 됩니다.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만물을 다스리시는 통치자이십니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기에 하나님이 그를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빌 2:8~10). 이 예수님이 한평생 우리와 함께하시며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며 결국 주님 앞에 서게 될 날이 옵니다. 그날에는 모든 고난과 눈물이 사라지고 주님이 친히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입니다(계 21:4). 그러므로 날마다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절대 감사와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3. 물과 피로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물과 피로 임하셨습니다.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5:6). 물과 피는 예수님의 사역 전체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물에 들어가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마 3:16). 또한 사역의 마지막은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심으로 완성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 19:30). 십자가 위에서 주님은 “다 이루었다”라고 선포하시며 구원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저주, 가난과 질병을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구원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때 군병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르자 물과 피가 흘러나왔는데 이는 예수님의 구원 사역이 완성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요 19:34). 성령께서 예수님이 침례 받을 때 그 위에 임하셨고 십자가에 달려 “다 이루었다” 하심으로 구원의 완성을 선포할 때 이에 대해 증언하셨습니다.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요일 5:6). 우리가 성령 충만할 때 주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더욱 깊이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신 그 구원의 은혜를 마음에 새기게 됩니다.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았다는 사실 앞에 우리는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일생은 감사의 일생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의 은혜로 삽니다. 은혜가 아니었다면 여전히 죄와 고통 속에 방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일방적으로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해 주셨기에 오늘 우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날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만 바라보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살아가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날마다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하며 성령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08.31

    말씀으로 승리하는 삶
  •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디모데후서 3장 14~17절)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말씀과 기도로 성령 충만해 날마다 승리하는 삶 살아야 부모에게 가장 큰 근심 중 하나는 아이가 잘 자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도 영적으로 자라지 못한 채 머물러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모든 문제는 결국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데서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말씀 안에서 성장하며 죄와 싸워 승리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1.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 우리가 날마다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이기에 하루에도 수많은 생각이 마음을 무겁게 하고 때로는 우울하게 만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말씀과 기도, 성경 필사, 신앙에 도움이 되는 책을 읽고 찬양을 들으며 우리의 생각을 단순화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생각을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을 다스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고 그 뜻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크리스천은 말씀과 기도로 늘 성령 충만해 영적인 귀가 열려야 합니다. 세상에서 들려오는 음성, 부정적이고 믿음이 없는 사람이 말하는 음성을 듣지 말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음성은 언제나 사랑의 음성이고 우리를 치료하시는 음성이며 용서의 음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돌보시는 양과 같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요 10:14). 우리의 목자 되시는 주님은 우리의 형편과 마음을 다 아시고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십니다.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요 10:4~5).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르듯이 우리도 주님의 음성만 듣고 따라가야 합니다. 세상의 음성을 따라가면 결국 멸망에 이르지만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는 생명의 길을 걷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인생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의 화살표와 같습니다. 날마다 말씀 앞에 귀 기울이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걸어갈 때 주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는 놀라운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2. 영적 거인이 되자 우리는 언제까지나 어린아이 같은 신앙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자기주장만 앞세우고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 받아 시험 들고 교회를 나왔다가 안 나왔다가 하는 것은 초보적인 신앙의 모습입니다. 성도는 이런 어린아이 같은 신앙을 벗어나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히브리서는 율법과 유대교 전통에 얽매여 제자리걸음을 하던 유대교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이상 초보적 신앙에 머물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침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히 6:1~2). 여기서 ‘죽은 행실’이란 예수님을 믿기 전의 방탕과 우상숭배, 부도덕과 이기심, 경건하지 못한 옛사람의 모습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옛 습관 속에 빠져 회개만 반복하는 생활은 떠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죽은 행실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알코올 중독, 도박 중독, 게임 중독, 음란물과 마약 중독 등은 사람의 인생을 무너뜨립니다. 이런 죽은 행실은 인간의 힘으로는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할 때 우리는 죄와 중독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에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하나님이 살아 계신지를 의심하거나 불평하며 교회를 멀리하는 태도는 초보적인 신앙의 모습입니다. 스스로 기도하지 않고 문제만 생기면 안수만 받으려 하는 신앙, 부활과 심판의 확신이 없어 흔들리는 신앙은 영적 어린아이의 상태입니다. 이제는 이런 상태를 벗어나야 합니다. 영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말씀으로 훈련될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고 영적인 거인으로 성장하여 승리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날마다 말씀으로 무장하여 성숙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3. 영적 성장과 말씀 훈련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영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육신의 건강을 위해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듯 영적인 건강을 위해서는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앙생활의 절대적 기준이며 우리가 믿고 따라야 할 지침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말씀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말씀으로 훈련되어야 합니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 1:20~21).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할 때 성령님이 우리 삶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때로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갈 때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를 책망하시고 올바른 길로 이끄십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7).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말씀과 동행할 때 점점 예수님을 닮아가는 주님의 귀한 자녀가 됩니다. 말씀 앞에 설 때 교만한 마음은 온유와 겸손으로 변화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나아가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 안에 자리 잡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우리는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춘 주님의 귀한 그릇으로 쓰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딤후 2:21). 세상은 지금도 주님의 사랑과 도움을 기다립니다. 날마다 말씀으로 훈련된 영적 거인이 되어서 주님과 동행하며 선한 일을 힘써 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시니 감사드립니다. 고난 속에서도 주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하길 원합니다. 날마다 말씀으로 승리하는 영적 거인으로 세워지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08.24

    성령을 경험하는 삶
  •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한복음 14장 15~17절) 지금 우리는 성령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1906년 아주사 부흥으로 시작된 오순절 성령 운동은 전 세계로 퍼져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엘 선지자를 통해 마지막 때에 성령을 모든 육체에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예수님도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13). 오순절 성령강림 때 베드로 사도는 이 말씀을 인용하여 선포했습니다(행 2:17~18). 그러므로 우리도 날마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이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야 합니다. 1.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신 성령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제자들에게 아버지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 14:16). 여기서 보혜사는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인데, 곁에서 돕는 자, 변호사, 조력자, 위로자 를 뜻합니다. 예수님이 첫 번째 보혜사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곁에서 인도자가 되어 주셨듯이 성령님은 두 번째 보혜사로 오셔서 지금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모든 유혹과 시험에서 우리를 지켜주시며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 또한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아울러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친히 간구해 주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 기억해야 할 것은 첫째도 성령 충만, 둘째도 성령 충만, 마지막도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기쁨과 감사가 사라지고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오고 원망과 불평이 입술에 가득 차며 남을 쉽게 비판하고 다툼과 분열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하면 우리의 삶에 하늘의 평안과 기쁨이 넘치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며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2. 진리의 영이신 성령 성령님은 진리의 영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7). 성령님은 우리 마음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 세상의 진리는 시대에 따라 변하지만 참 진리 되신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은혜와 진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요 1:17). 오직 예수님만이 유일한 진리요 구원의 길이 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그러므로 변하는 세상과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변치 않는 진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과 동행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증언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요 15:26). 성령으로 충만하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택시를 타면 기사에게, 버스를 타면 승객과 기사에게, 직장과 가정에서도 우리는 복음의 증인이 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성령 충만은 곧 예수 충만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하신 주님만 바라보게 됩니다. 날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과 동행하며 예수님만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3. 성령 충만의 길 성령 충만은 말씀 충만에서 시작됩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반드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말씀을 지킬 때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되고 주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십니다(요 14:21; 요 15:10). 성령 충만을 받으려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 때 성령이 임하시고 주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넘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요 14:23).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 15:12). 그러나 우리는 사랑하라 하신 말씀을 따르지 않고 미워하고 다투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용서하라 하셨는데 증오와 원한을 품고, 섬기라 하셨는데 오히려 섬김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고 잘못된 신앙을 회개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내가 죽고 예수님이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우리의 자존심과 고집이 여전히 살아 있으면 작은 일에도 쉽게 화를 내고 불편해합니다. 이는 결국 나를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령 충만하면 내 모습은 사라지고 오직 예수님만 드러나게 됩니다. 성령 충만하면 우리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옛 사람이 지나가고 새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주님의 은혜로 가득 차게 되고 어떤 문제와 어려움 속에서도 승리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날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변화되고 승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죄 가운데 있던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날마다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짧은 인생 동안 예수님을 잘 믿고 날마다 성령으로 충만하길 원합니다. 성령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하시고 마지막 날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08.17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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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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