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요약본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
  •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예레미야 29장 11~13절) 늘 성령님과 동행하며 하나님 주시는 평안 누리고 진심으로 주님께 기도하면 거룩한 꿈과 소망 얻게 돼 세상에는 하나님의 길과 인간의 길,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도 두 길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1. 우리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평안 성경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과 뜻이 평안이라고 말씀합니다.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오늘날 세상은 불안과 근심, 염려로 가득하기에 많은 사람이 마음의 평안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로 물든 이 세상에서는 참된 평안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평안을 얻으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깊은 근심과 고통에 빠지게 됩니다. 사도 바울도 죄로 인해 마음의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탄식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우리에게 참된 평안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평안을 구하려고 애쓰는 대신 예수님 앞에 나아가 우리의 모든 문제를 내려놓고 평안을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또한 우리가 참된 평안을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힘과 노력만으로는 예수님이 주신 평안을 온전히 지켜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 충만하여 늘 성령님과 동행하면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이 주신 평안을 지킬 수 있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 위대한 사도인 베드로와 바울 그리고 감리교를 창시한 요한 웨슬레도 성령 충만을 받은 후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면 우리의 인격과 삶 속에 성령의 열매가 풍성히 맺히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평안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성령님이 임하시면 우리 마음에 사랑과 기쁨이 가득하게 되고 예수님이 주신 평안으로 넘쳐나게 됩니다. 우리 안에 주어진 평안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인정하시며 도우신다는 믿음의 확신에서 비롯됩니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야훼이시니이다”(시 4:8). 하나님이 주신 평안을 소유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불안해하거나 분노하지 않으며, 불평하지도 않습니다. 항상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리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하나님께서 주시는 미래와 희망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안과 함께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주십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남유다의 멸망을 앞둔 절망의 때에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낙심에 빠져 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이루실 미래와 희망을 전했습니다. 비록 눈앞의 현실은 고난과 슬픔만으로 가득한 것 같지만 지금 겪는 고난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의 미래로 이끄시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절망은 끝이 아니라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징검다리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눈앞의 문제만 바라보고 쉽게 좌절하며 절망합니다. 이는 어둡고 부정적인 세상에 익숙해져서 불안을 견디고 이겨낼 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는 이들은 무속에 기대어 위안을 얻으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그들의 불안을 더욱 깊게 만들 뿐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참된 꿈과 희망을 주실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 우리는 눈앞의 고난에 좌절하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믿으며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승리와 축복을 주시고 기적의 내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들에게는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는 것 같은 새 힘을 주신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야훼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 40:31). 세상이 절망과 어둠을 이야기할지라도 우리는 희망과 미래를 선포해야 합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창조 이야기를 보면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는 말씀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는 것’이 세상의 시간표라면,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시간표입니다. 고난의 저녁이 지나가면 희망의 새벽, 축복의 새벽, 기적의 새벽이 밝아옵니다. 그러므로 주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3.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주시는 미래와 희망을 품기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렘 29:12).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와 대화하기를 원하십니다. 부모와 자녀가 대화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알고 이해하듯이 우리도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고난 중에도, 평안할 때도, 외롭고 지치거나 병들었을 때도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우리에게 크고 은밀한 일들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야훼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시 3:4).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를 절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전심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3).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우리 인생에 고난의 밤이 지나가고 희망의 새벽이 밝아올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기도를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이 평안과 희망임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혜의 길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다가오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문제와 씨름하거나 사람을 찾기보다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처한 형편과 처지를 보고 안타깝게 여길 수 있지만 문제에 대한 답을 줄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오면 마음에 평안이 임할 때까지 계속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마음의 평안 가운데 하나님이 거룩한 꿈과 소망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성령 충만을 받아 모든 문제를 이기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꿈과 소망 안에서 담대히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불안과 염려, 근심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평안과 미래의 소망을 부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함으로써 놀라운 응답과 기적을 체험하길 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평안 안에서 믿음으로 담대히 전진하는 우리가 되게 해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06.08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지도자
  •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그가 주의 백성을 공의로 재판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정의로 재판하리니 의로 말미암아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 그가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 그들이 해가 있을 동안에도 주를 두려워하며 달이 있을 동안에도 대대로 그리하리로다 그는 벤 풀 위에 내리는 비 같이, 땅을 적시는 소낙비 같이 내리리니 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시편 72편 1~7절 세계 역사는 창조적인 소수에 의해 발전해 왔습니다. 크리스천들은 십자가 신앙 위에서 절대 긍정과 절대 감사로 무장하고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전하는 창조적 소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크리스천이 사람들을 바른길로 이끄는 영적 지도자가 되어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기를 원하십니다. 1. 공의로운 지도자 하나님은 공의로운 지도자를 찾고 계십니다. 공의로운 지도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판단하고 하나님의 지혜로 일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시 72:1). 하나님은 악을 멸하시고 죄인을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그분이 인정하시는 의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내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때, 우리는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이 땅 가운데 펼쳐 나갈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왕의 자리에 오르고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린 후,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라고 물으셨습니다(왕상 3:5). 이에 솔로몬은 듣는 마음 곧 분별력을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 솔로몬이 구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것이었기에, 하나님은 그에게 분별력뿐만 아니라 부귀와 영광까지도 함께 허락하셨습니다(왕상 3:12-13). 지도자는 자기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를 기준 삼아 모든 일을 판단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지혜를 소유해야 하고, 겸손히 자신을 돌아볼 줄 알며 공의롭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가 주의 백성을 공의로 재판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정의로 재판하리니 의로 말미암아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시 72:2~3). 우리는 선한 일을 이루는 데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기를 소망하며, 공의와 사랑으로 세상을 섬기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2. 약한 자의 편에 서는 지도자 세상은 힘 있고 권력 있는 자 앞에 줄을 서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회적 약자의 편이 되셔서 그들과 함께하시며 사랑으로 섬기셨습니다.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마 9:10~11).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사랑으로 돌보며,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도울 때, 이를 보시고 기뻐하시며 우리 삶에 더욱 풍성한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의로 말미암아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 그가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시 72:3~4). 또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들이 해가 있을 동안에도 주를 두려워하며 달이 있을 동안에도 대대로 그리하리로다”(시 72:5). 요셉은 노예로 팔려가고 감옥에 갇히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늘 그와 함께하시며 그를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야훼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야훼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야훼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창 39:21, 23). 사도 바울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자 힘썼습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 우리 역시 바울처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 길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에 행하신 3대 사역은 말씀을 가르치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며 병든 자를 고치시는 일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 4:23). 이처럼 예수님은 약한 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고 이를 채워줌으로써 그들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신 것처럼, 우리도 이 세상에서 메마른 땅에 내리는 단비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닮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주위에 평안과 위로와 용기를 전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는 벤 풀 위에 내리는 비 같이, 땅을 적시는 소낙비 같이 내리리니”(시 72:6). 서로를 격려하고 용서하며 화합하여, 사랑의 공동체를 함께 세워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 평화를 가져오는 지도자 오늘날 세상은 전쟁과 기근, 각종 재난으로 인해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합니다. 우리나라 또한 분열과 갈등 속에 국민들의 마음이 편치 않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혼란한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참된 평화입니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만이 분열과 상처로 얼룩진 이 시대를 치유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셔서 정의와 사랑으로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야훼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6~7).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길을 따르는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헌신하는 이들입니다. 이 땅 가운데 평화를 이룰 사명을 품은 크리스천과 지도자들을 통해 하나님은 놀라운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의로 말미암아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 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시 72:3, 7) 극심한 분열과 갈등으로 깊은 상처를 입은 이 세상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치유하고,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불안과 염려와 근심으로 가득한 이 세상 속에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따라 우리도 세상에 평안과 위로를 전하는 삶을 살아가길 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대로 세상을 섬기는 영적인 지도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06.01

    일어나서 함께 가자
  •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아가 2장 10~12, 15절 고난의 시간 겪을 때 하나님 뜻 잘 분별해 뜨거운 사랑 회복하고 선한 영향력 나타내야 우리의 신앙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날마다 믿음의 주시며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앞으로 전진해 나아가야 합니다. 구약 아가서는 이 믿음의 여정을 남녀 간의 사랑으로 비유하며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대해 말씀합니다. 1.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인 교회와 성도 아가서의 남자 주인공은 솔로몬 왕입니다. 그는 많은 여인 중에서 술람미 여인을 특별히 사랑하고 귀하게 여겼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 2:10). 이 말씀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와 우리를 사랑하시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보여줍니다.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해도 하나님은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라고 말씀하시며 우리를 부르십니다. 술람미 여인은 포도원에서 일하느라 햇볕에 그을려 얼굴이 검게 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솔로몬 왕은 그녀를 택하여 매우 사랑했습니다.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아 1:6).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의 사랑을 받고 있었기에 겉모습이 햇볕에 그을려 검게 되었어도 자신의 내면은 왕의 휘장처럼 아름답다고 담대히 고백합니다.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아 1:5).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은 수많은 사람 가운데 우리를 택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생각하는 대신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다는 자부심을 품고 긍정적인 자화상을 세워가야 합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야훼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때로는 삶이 절망스럽고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지만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사 43:4).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에 응답하여 절망과 슬픔의 자리에서 일어나고,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2. 우리에게 다가오는 희망의 봄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듯 고난의 겨울이 지나가면 축복의 봄이 우리에게 반드시 찾아옵니다. 어떤 절망 가운데 있더라도 우리는 곧 봄이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하나님만 바라보며 전진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절망은 희망으로 슬픔은 기쁨으로 문제는 응답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아 2:11~12).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을 볼 수 없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 병까지 얻었다고 고백합니다.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하게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아 2:5).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에게도 겨울과 같은 문제와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지 않으시는 듯한 외로움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며 변함없는 사랑으로 언제나 우리 곁에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고난의 겨울을 겪게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두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우리를 영적으로 더욱 강하게 훈련하시고 변화시키기 위함입니다. 둘째는 우리 삶 속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하심으로 우리에게서 죄의 모습을 제거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고난의 겨울이 찾아왔다고 해서 절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가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다시 일어나기로 결단하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기쁨의 꽃과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아 2:13). 절대 긍정과 절대 감사의 믿음으로 전진하며 희망의 봄을 맞이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 여우 같은 불신앙의 요소를 제거하라 포도원을 망치는 주범은 곰이나 사자와 같은 큰 맹수가 아니라 몰래 나타나 포도나무 뿌리를 갉아 먹고 도망가는 작은 여우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아 2:15). 우리의 신앙에도 은혜와 기쁨을 앗아가는 작은 여우들이 찾아옵니다. 영혼에 해를 가져오는 작은 여우, 곧 불신앙의 요소들을 우리는 쫓아내야 합니다. 우리가 큰 죄를 범할 때는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음을 쉽게 알아차리지만 사소해 보이는 죄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죄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아 하나님과 멀어지게 합니다. 우리 삶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사라지고 받은 은혜가 지속되지 못하며 예배의 열정마저 식어버렸다면 이는 이미 ‘작은 여우’가 우리의 마음에 들어왔다는 신호입니다. 사소하지만 반복되는 거짓말, 말씀에 대한 불순종, 영적 나태함, 시기와 질투, 원망과 불평, 부정적인 생각, 쉽게 화내는 태도, 남을 헐뜯고 비판하는 것, 다투고 분열하는 것 등 이 모든 것이 작은 여우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다른 사람에게는 엄격하면서도 자신에게는 관대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래서 타인의 작은 잘못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만 자기 잘못은 쉽게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우리의 연약함을 경고하셨습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 7:3).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 앞에서 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기도 중에 그리고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숨겨진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는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점검하고 작은 죄까지 철저히 회개하며 모든 불신앙의 요소를 깨끗이 제거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신앙과 사랑의 관계를 해치는 어떤 모습도 우리 안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생각과 말, 행동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도록 날마다 믿음 안에서 자신을 연단해야 합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1~22).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 삶의 중심이며 전부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가 마음과 영혼에 품고 있다면 우리는 어떤 문제도 능히 이겨내고 우리의 신앙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회복하여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내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연약한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시며 늘 우리와 동행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인생에 어떤 문제와 어려움이 찾아와도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담대히 일어나 믿음으로 전진하길 원합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우리 안에 불신앙의 요소를 깨끗이 씻어주시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05.25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
  •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에베소서 2장 20~22절 교회는 하나님이 이 땅에 세우신 구원의 방주이자 축복의 통로입니다. 또한 교회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성도들이 모인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영광을 받으십니다. 1.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신 교회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고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모퉁잇돌이 되십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엡 2:20).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엡 1:22). 우리는 교회 안에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또한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 외에 인간의 터 위에 세워지는 일이 없도록 늘 주의해야 합니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 3:11).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되심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비롯됩니다. 자기 뜻을 앞세우고 예수님의 뜻을 따르지 않으려는 이들은 교회 안에 분열과 갈등을 불러오며 파벌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섬김의 자리로 주어진 직분을 권력으로 오해해 도리어 성도들에게 섬김을 받으려는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잘못된 모습들을 경계하고 우리의 신앙에서 멀리해야 합니다. 건강한 교회 공동체는 섬김의 마음으로 무장한 성도들을 통해 세워집니다. 사랑과 기쁨, 감사로 서로를 섬길 때 하나님의 은혜가 교회 안에 충만히 임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세주이며 온 인류의 참된 희망이 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하나님은 예수님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셔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으로 높이셨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9~11).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인으로 고백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성령 안에서 하나되는 교회 교회는 성령 안에서 하나 된 공동체입니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엡 2:21). 성전의 벽과 기둥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건물을 이루는 것 같이,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 되어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겸손, 온유, 오래 참음과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며 성령님이 하나 되게 하신 교회를 힘써 지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1~3). 하나 됨은 성령의 역사이며 분열하고 나뉘는 것은 마귀의 역사입니다. 서로 마음이 갈라져 다투고 갈등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깊은 상처를 주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됩니다. 우리는 손에 쥔 모든 비난의 돌을 내려놓고 사랑과 용서로 서로를 품어 화목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님의 인도를 따르는 모습입니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 5:15). 우리의 얼굴에 눈, 코, 입이 있고 또 손과 발이 있어 하나의 몸을 구성하는 것처럼 성도들도 서로 다른 역할을 감당하며 하나의 교회로서 공동체를 이룹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2~13). 모든 지체가 조화롭게 협력할 때 몸이 제대로 기능하듯 우리도 한마음으로 연합하여 교회를 아름다운 공동체로 세워가야 합니다. 때로는 교회가 계획하며 준비한 일들이 내 생각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교회 공동체의 목표라면 기꺼이 뜻을 모아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용납하고 사랑하며 교회를 건강하게 지켜나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기 때문입니다(엡 4:2~3). 우리가 하나 됨의 본을 보일 때 하나님은 그 모습을 기뻐하심으로 우리를 축복하시고 우리 교회를 통해 위대한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3. 날마다 성장하는 교회 어린아이가 자라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날마다 성장해 나가야 합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2).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불완전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순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고후 5:17). 그렇기에 이제 우리는 날마다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우리의 신앙과 인격이 날마다 성숙해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크리스천은 이웃과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선한 영향을 끼쳐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슴에 품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며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숙한 인격과 사랑의 마음으로 이웃을 섬기면 복음 앞에서 굳게 닫혀 있던 마음들이 열리고 복음이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지상명령 곧 복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5~16). 복음 증거와 선교에 헌신하는 교회는 반드시 부흥하고 성장합니다. 과거 유럽교회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할 때 유럽 각국은 부강한 나라가 되어 복음 증거에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이후 복음의 열정이 미국으로 옮겨 심어지면서 미국은 하나님이 크게 사용하시는 위대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교회에 복음 증거의 뜨거운 열정이 있을 때 한 나라가 부강해지고 진정한 부흥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 땅에 부흥을 일으키는 주역이요 이 나라를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일꾼임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셔서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우리 가운데 이루실 것입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 되신 우리 교회가 성령 안에서 하나 되고 복음 증거의 열정으로 부흥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칭찬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하나님의 귀한 일꾼으로 부르시고 사랑으로 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인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하나 되어 맡겨주신 복음 증거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길 원합니다. 날마다 성령 충만하여 이 세대에 부흥의 역사를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2025.05.18

    하나님의 사랑, 부모님의 사랑
  •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에베소서 6장 1~4절)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첫 계명 부모는 신앙의 본 되어 말씀 위에 가정 세워야 오늘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부모님의 사랑과 헌신 그리고 부모님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마음에 새기고 감사와 기쁨으로 온 가족이 함께 하나님을 섬길 때 우리의 가정은 든든히 세워지고 행복과 사랑이 가득한 복된 가정이 될 것입니다. 1. ‘주 안에서’의 신앙으로 부모를 공경하라 성경은 자녀가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합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엡 6:1).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부모에게 순종하며 온전한 신앙의 삶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이 믿음의 순종은 가정에서 부모를 섬기고 공경하는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부모에 대한 순종은 단순한 의무감에서 비롯되거나 외적인 모습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깨닫고 그 사랑을 깊이 이해할 때 우리는 부모님을 하나님이 주신 사랑으로 마음을 다해 섬기고 순종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이며 우리를 향한 깊은 관심과 풍성한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그 사랑으로 인해 우리는 죄의 사슬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복 받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어 건강한 마음과 영혼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 찬양하고 예배드릴 수 있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복 받은 인생을 누리므로 우리는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마 22:37).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며 그 믿음을 바탕으로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우리를 이 땅에 존재하게 하신 부모님을 사랑하고 공경함으로 하나님께 칭찬받고, 하나님 앞에서 복 있는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2. 부모에게 순종하라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이 명하신 첫 번째 계명입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엡 6:1~2).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그 10가지 계명 중, 1~4계명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계명, 5~10계명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계명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 중 첫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출 20:12). 즉,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인간관계에서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도리입니다. 오늘 본문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이 “약속이 있는 첫 계명”임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약속은 범사에 잘되고 건강과 장수의 복을 누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3). 불효하는 자녀는 이 땅에서 형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부모에게 불순종한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부모를 공경할 때 그 약속하신 복이 우리 삶에 임하게 됩니다. 부모의 자식 사랑은 흔히 ‘내리사랑’이라 불립니다. 부모는 자나 깨나 자식을 생각하고 잘되기를 바라며,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사랑을 쏟습니다. 그러나 자녀는 그 깊은 사랑과 헌신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가다가 자신이 부모가 되었을 때 비로소 그것이 얼마나 크고 귀한 사랑이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지금, 주어진 시간에 부모님께 마음을 다해 사랑과 감사를 표현해야 합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 23:25).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어머니 마리아를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맡기시며 부모 공경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요 19:26~27).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부모에게 소홀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눈물과 희생으로 우리를 돌보시고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 아낌없이 수고하신 부모의 사랑을 기억하며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 자녀를 주의 교훈으로 양육하라 부모는 자녀를 하나님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며 가장 먼저 힘써야 할 일은 예수님을 잘 믿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나도록 돕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삶을 살면, 하나님이 그들의 인생을 책임져 주십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부모에게 맡기신 귀한 선물이자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보라 자식들은 야훼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 127:3). 부모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자녀를 바르게 세우도록 부름 받은 사명자입니다. 자녀가 건강한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나 하나님의 기쁨이 되며 그 은혜 가운데 복된 삶을 살아가도록 부모는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많은 부모가 자녀에게 물질적인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애쓰지만 때로는 그것이 자녀들 사이에 다툼과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자녀에게 진정으로 필요하고 복된 유산은 신앙의 유산입니다. 신앙의 유산은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축복입니다. 우리는 자녀의 인격을 존중해야 합니다. 자녀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소중한 인격체입니다. 자녀를 양육할 때 감정에 치우쳐 상처를 주기보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품고 돌보며 바르게 양육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의 자녀에게 주신 개성을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부모의 뜻이나 바람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기보다, 자녀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기도하며 분별하고 그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자녀의 소망을 귀하게 여기고 그 길을 응원함으로 용기를 더해 주는 것이 부모의 참된 사랑입니다. 자녀를 신앙으로 양육하려면 부모가 먼저 본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의 태도, 말과 행동, 부부 사이의 관계가 곧 자녀의 신앙 교육이 됩니다. 부모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질 때, 자녀 역시 자연스럽게 믿음의 길을 따르게 됩니다. 무엇보다 자녀를 위한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가 장차 부와 명예를 얻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구하기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우리 자녀의 삶을 친히 인도하시고 모든 것을 책임져주실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우리의 가정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건히 세워서 온 가족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복된 삶을 누리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가정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지켜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자녀를 말씀으로 양육함으로 신앙의 본이 되는 우리의 가정이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화목한 가정이 되어 이웃과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전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05.11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
  •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8장 15~17절 어린 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며 세상의 빛과 소금 되어야 아이들은 가정의 꽃이며 희망이고 행복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소중한 미래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아이와 같은 마음을 지닌 자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이처럼 순수하고 겸손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1. 어린 아이를 귀하게 여기신 예수님 예수님은 아이들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눅 18:15~16).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여성과 어린이를 존귀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인구를 셀 때도 여성과 아이는 제외하고 오직 성인 남성만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출애굽기에는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60만명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는 20세 이상 성인 남성만을 헤아린 수치입니다(출 12:37). 어느 날 사람들이 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려와 안수받기를 원하자 제자들은 그들을 꾸짖으며 막아섰습니다. 당시 사회적 통념대로 제자들 역시 아이들을 하찮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크리스천들은 어린이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욱 따뜻한 시선과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누구도 차별받아서는 안 되며 배움의 정도나 가진 것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주 안에서 하나 된 형제자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행동을 책망하시고 아이들이 가까이 오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눅 18:16).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아이처럼 순수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이들의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아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으로 예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연약한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고 모든 일을 은혜와 기쁨으로 감당하는 믿음의 자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어린 아이같이 순수한 믿음 천국은 아이와 같이 순수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눅 18:17). 죄에 물들고 타락한 사람들은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힘쓰는 순수한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하나님이 천국의 문을 여시고 그들을 영접해 주십니다. 아이들의 특성은 세상의 죄에 때 묻지 않은 순수함에 있습니다. 아이들은 높은 지위나 권력을 탐하지도 않고 남을 모함하거나 갈등을 일으켜 다투지도 않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부모님과 선생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알고 이를 인정하기에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일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도우심을 구하며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복음의 진리를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아이같이 순수한 마음과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밝히 보여주십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 11:25). 복음은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도저히 깨달을 수 없는 비밀입니다. 우리가 아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 복음의 비밀을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합니다. 우리의 어떤 노력과 행위가 아닌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그 믿음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믿었을 때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순수한 삶을 살았습니다. 만약 우리의 입술에서 감사가 줄어들고 불평이나 남을 판단하는 말이 앞서게 된다면, 우리는 회개하고 돌이켜 아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처음 은혜 받았을 때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을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열정과 전도자의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때의 순수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아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으로 어디서든 예수님의 향기를 내고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 어린 아이같이 겸손한 신앙 우리는 아이와 같이 겸손한 믿음을 가져야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얻습니다. 자신이 높아지기를 원했던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천국에서 누가 큰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한 아이를 불러 세우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2~3). 천국은 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곳입니다. 그렇기에 이웃을 겸손히 섬기며 그 섬김 안에서 기쁨을 얻는 사람은 지금 천국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크고 으뜸이 되고자 한다면 모든 사람의 끝자리에 서서 기꺼이 모두를 섬겨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막 9:35).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 20:26~27). 섬김의 삶을 사는 사람은 먼저 남을 이해하려 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고자 노력합니다. 다른 사람의 연약함과 허물을 비판하기보다는 자신의 허물과 죄를 먼저 돌아보며 남이 회개하기까지 인내로 기다리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천국을 소유한 겸손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고백하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을 본받아 온유와 겸손을 우리의 삶에서 나타내야 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어린 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겸손한 신앙으로 이 땅에서도 천국의 삶을 경험하고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서 큰 상급과 영광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아이와 같이 연약한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앞에서 늘 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겸손한 믿음의 모습으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겸손히 교회와 이웃을 섬기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복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05.04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
  •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요한복음 21장 15~17절)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신 주님 우리에게 다시 일어설 힘 주셔 주님 주신 사명 기억하며 사랑 전하는 삶 살아야 해 인생에서 겪는 크고 작은 실패와 좌절은 우리를 넘어뜨리고, 절망과 고통 속에 머물게 합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 역시 깊은 자책과 낙심에 빠져,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름 받았던 자신의 사명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그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회복시키시며 다시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1. 용서하시는 예수님 예수님 없는 인생은 절망 그 자체이며 그 앞에는 실패와 좌절, 고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가 바로 그 현실을 마주한 인물입니다. 그는 깊은 낙심 속에 갈릴리로 돌아가서 다시 물고기를 잡는 어부의 삶을 살아가려고 했습니다. 배를 타고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그는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절망에 빠져 뱃머리에 앉아 있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처음에 그는 물가에 서 계신 분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지만, 곧 그분이 예수님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배가 육지에 닿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물속으로 뛰어들어 예수님을 향해 헤엄쳐 갔습니다. 마침내 그가 육지에 도착했을 때 예수님은 모닥불 앞에 구운 생선을 준비해 놓으시고 베드로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변함없는 사랑으로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요 21:9). 사람들은 흔히 다른 사람의 과거 실수와 상처에 많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정작 자신도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마치 의로운 사람인 듯 타인의 과거를 들추어 비난하고 공격하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과거나 실패에 초점을 두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의 모든 허물을 용서하시고 상처를 치유하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으로 세워 가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은혜를 입은 우리는 서로를 용서하고 사랑으로 품으며,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 일은 베드로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고, 그는 배신자라는 깊은 자괴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를 위해 불을 피워 놓으시고 음식까지 준비해 주시니, 베드로는 자신이 모닥불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했던 순간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낙심하고 좌절해 있는 모습을 누구보다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을 세 번이나 반복하여 물으셨습니다. 이는 베드로의 마음 깊은 상처를 온전히 회복시키고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다시 고백할 기회를 주시려는 사랑의 배려였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 삶의 무너진 자리까지 찾아오셔서 실패와 상처를 치유하시고 우리에게 다시 일어설 힘과 용기를 주십니다. 한없는 예수님의 사랑을 의지하여, 과거의 아픈 기억을 극복하고 거룩한 사명자의 길을 걷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사명을 주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신 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시며, 세 번에 걸쳐 그의 마음을 회복시키시고 세 가지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요 21:15).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베드로에게 주신 첫 번째 사명이었습니다. 여기서 ‘어린 양’은 교회 안에서 믿음이 약한 성도들이나 아직 믿음이 자라지 않은 새신자들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들이 신앙 안에서 견고히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특히 다음 세대인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두 번째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신 다음, “내 양을 치라”라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요 21:16). 예수님이 주신 두 번째 말씀은 교회의 성도들을 보호하고 돌보라는 사명이었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이웃 성도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거짓 교사들과 이단 그리고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서로를 지켜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우리 삶을 도둑질하고 무너뜨리려는 악한 원수 마귀로부터 승리할 수 있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또한 우리는 어려움을 겪는 성도들과 고난 중에 있는 이웃을 돌보는 것이 곧 예수님을 섬기는 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받은 은혜를 나누는 삶이야말로 올바른 신앙의 모습이며, 베풀고 섬기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으로 복 받은 인생입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 25:35~36, 40). 예수님은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요 21:17). 예수님이 첫 번째에 말씀하신 “내 어린 양을 먹이라”와 세 번째로 말씀하신 “내 양을 먹이라”라는 말씀은 그 대상이 서로 다릅니다. 예수님이 세 번째로 주신 사명은, 이미 예수님을 믿으며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을 잘 양육하고 그들의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세우라는 영적 성장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이 세 가지 사명을 주시며 그의 마음을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그를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우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 속에서 회복되어 예루살렘 교회를 이끄는 하나님의 종으로 한평생 쓰임을 받았습니다. 우리 또한 예수님과의 사랑의 관계 속에서 믿음을 굳건히 세워,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명자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세 가지 사명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죄책감에 사로잡혀 절망하던 베드로를 찾아와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우리에게도 베풀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이 맡기신 사명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신실한 일꾼으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교회와 이웃을 섬기며, 우리가 받은 사랑을 온전히 나누는 은혜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04.27

    부활의 은혜
  •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요한복음 20장 19~23절) 예수님 부활로 구원받은 우리 죄 용서하신 은혜 기억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 전하며 작은 예수 되어 사랑 나눠야 예수님의 부활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적이자 기쁨과 감격의 사건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신 예수님은 사흘째 되는 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오셔서 전하신 본문 속 말씀에는 모든 믿는 자들을 향한 위로와 소망이 담겨있습니다. 1.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문을 닫은 채 숨어 있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친히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19, 21). 예수님이 주신 평강의 말씀은 당시 절망에 찼던 제자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모든 인류를 향한 희망과 축복의 메시지입니다. 여기서 평강 곧 ‘샬롬’은 단순한 감정적 위로가 아닌 영, 혼, 육의 모든 것이 회복된 상태를 뜻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전인적으로 회복되길 원하십니다. 평강이 있으라는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이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여주실 때 제자들의 마음속에 어두운 그림자는 사라지고 평안과 기쁨이 넘쳐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요 20:20).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평강은 세상이 줄 수도, 빼앗을 수도 없는 참되고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두려움과 불안의 뿌리는 죄와 사망의 권세에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주신 평강은 십자가를 통해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한 것이기에 우리에게 더욱 값지고 소중한 은혜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2. 성령을 받으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평강을 선포하신 후에 숨을 내쉬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요 20:22). 이 모습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며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던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야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 2:7). 하나님이 자신의 영을 불어넣으시자 사람은 생명을 지닌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을 간절히 구하면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셔서 우리는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성령님의 임재 없이는 누구도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할 수 없고 성령 충만하지 않고서는 생명력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령님을 우리 안에 모시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믿음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 충만을 받을 때 비로소 내 힘이 아니라 성령님의 능력으로 살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우리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말씀에 순종하면 성령님이 임재하셔서 놀라운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이러한 성령님의 권능으로 우리는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을 받게 됩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예수님의 성품인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우리 삶에 맺히게 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성령님과 동행하는 우리는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며 머무는 곳마다 예수님의 흔적을 남겨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 우리 모두 땅끝까지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3. 누구의 죄든지 용서하라 용서는 사랑의 결정체이자 부활 메시지의 완성입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요 20:23). 하나님은 죄인이었던 우리를 사랑으로 용서해 주셨고 그 은혜로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값없이 용서받은 자로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기꺼이 용서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삶에 강물처럼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과거의 상처를 마음에 담고 살아갑니다. 상처는 미움과 증오를 낳고 결국 우리 자신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마음의 모든 상처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크리스천의 싸움은 상대를 용서할 때 끝나며 용서를 통해서만 참된 승리를 경험하게 됩니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그리 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야훼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잠 25:21~22). 예수님이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실 때도 그 안에 용서에 대한 말씀을 담아 두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 6:12).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누군가를 용서할 때 하나님의 기적이 우리 삶에 임하고 기도의 응답이 다가오게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자신을 못 박고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들을 위해 용서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눅 23:34). 모든 인간은 연약하기에 용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지은 죄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해야 하고 또한 우리에게 상처를 준 이들을 용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시고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채워주실 것입니다. 마음속의 모든 미움과 원한을 내려놓고 기꺼이 용서함으로 부활의 은혜 안에서 승리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가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자유를 얻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이 주신 평강 안에서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으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용서하는 삶을 살며 예수님께 받은 사랑과 은혜를 나누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04.20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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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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