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요약본
절망 중에 감사
  •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야훼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야훼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야훼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야훼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요나 2장 2절, 6~9절) 고난 중의 감사는 절망을 뛰어넘게 하고 환난이 변하여 축복이 되도록 이끕니다. 진정한 감사는 절망 가운데에서 드리는 감사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며 삽니다. 오늘 말씀에는 선지자 요나가 절망에 처했을 때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어 기도하며 감사의 고백을 드렸는지 나타나 있습니다. 1. 절망 중에 드리는 기도 하나님은 요나에게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적국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니느웨와 정반대에 있는 다시스로 향하는 배를 타고 떠났습니다. 요나가 탄 배는 처음 출발했을 때 순풍을 탄 것 같았으나 곧 배가 침몰할 만큼 큰 풍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제비뽑기를 통해 풍랑의 원인이 요나에게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바다를 잔잔하게 하기 위해 요나를 바다에 던졌고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예비하셔서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큰 물고기 배 속에 갇히게 되자 깊은 절망 중에서 죽음의 공포와 싸우며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야훼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욘 2:2). “스올”은 죽음을 의미하는데 요나는 죽음의 위기 가운데 빠진 자신의 부르짖음을 하나님이 들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축복의 통로이며 우리 영혼의 호흡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대화하며 영적인 교제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그래서 문제를 만나거나 중병에 걸리는 등 고난을 당할 때 우리는 절망하지 말고 하나님께 엎드려 눈물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감옥에 갇혀있던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고난의 때에 사람이나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해 주시고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기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기도의 모본을 보이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셨음에도 예수님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한평생 기도에 힘쓰셨습니다. 사람이 많은 곳을 떠나 한적한 곳에 가셔서 밤이나, 새벽이나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간에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을 뽑으시기 전에는 밤새 기도하셨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에는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셔서 땀방울이 핏방울로 바뀔 정도로 힘써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런 기도 생활을 배워야 합니다. 2. 성전을 향해 드려진 기도 요나는 물고기 배 속에서 하나님의 성전을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했습니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욘 2:4).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해서 물고기 배 속에 들어가게 된 요나는 죽음의 목전에서 성전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기도하겠다는 영혼의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것은 솔로몬이 성전 봉헌식에서 했던 기도와 맥락을 같이 합니다.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왕상 8:30). 성전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시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솔로몬과 요나의 기도에 녹아 들어가 있습니다. 시편 84편에는 하나님의 성전을 간절히 사모하여 지은 노래가 있습니다. “만군의 야훼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야훼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야훼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시 84:1-4). 하나님의 성전을 얼마나 사모했던지 그의 몸과 마음이 쇠약해질 정도라는 이 고백은 오늘날 성전과 예배를 향한 우리의 마음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우리 교회는 대조동 천막교회에서 시작해 서대문 순복음중앙교회를 거쳐 지금의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이르기까지 지난 65년간 예배 때마다 성령의 은혜가 충만히 임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주일 예배 1시간 전부터 성전 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고 예배 후에는 나가려는 사람들과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뒤엉켜 정신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구름 떼와 같이 몰려온 사람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며 뜨겁게 기도할 때면 하나님의 은혜가 폭포수와 같이 임했고 마음이 뜨거워진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이렇게 예배를 통해 은혜받은 성도들이 한국교회에 큰 부흥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 예배를 드리고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만약 습관적으로 예배하거나 구경꾼처럼 예배하고 있다면 다시금 예배를 향한 간절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마음을 다해 드리는 예배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성령의 은혜를 넘치게 받게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3. 절망 중에 드리는 감사 의지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절망의 자리에서 기도를 이어가던 요나는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드렸습니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야훼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욘 2:9). 요나가 감사하자 하나님은 물고기가 그를 다시 토해놓게 하셨고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이처럼 감사할 때 모든 절망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이 성숙할수록 우리는 넘치는 감사의 삶을 살게 됩니다. 미국은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진 나라입니다. 그들의 삶에는 기독교 정신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Thank you.’ 문화입니다. 물건을 사면서 돈을 줄 때도 그들은 “Thank you.”라고 말합니다. 물건을 파는 사람이 감사하다고 해야 하는데, 물건을 사는 사람도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미국인들은 “Thank you.”라고 말하며 감사를 표현합니다. 우리도 이런 좋은 문화는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감사의 제사를 가장 기뻐하십니다. 시편 기자의 노래처럼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구원의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시 50:23).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의 삶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감사하십시오. 안 되는 것은 잘 되게 해주실 것을 믿고 감사하고, 잘 되는 것은 잘 되게 해주신 은혜에 감사하십시오. 감사로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복을 받아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아버지 하나님, 요나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감사할 수 있게 하옵소서. 또한 성전을 사모하며,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인도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3.11.26

    절대 감사
  •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골로새서 1장 13~14절) 흑암의 권세에서 구원하신 하나님 은혜 기억하고 천국가는 그날까지 하나님 찬양하며 감사해야 1620년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갔던 102명의 청교도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미국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교회를 세우고 감사예배를 드린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극심한 식량난과 추위 그리고 질병과 영양실조로 힘겨운 첫 겨울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에도 그들은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농사를 지으며 주님을 섬겼습니다. 농사에 익숙하지 않던 그들에게 원주민들이 찾아와서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줬고, 그 덕분에 1년 뒤 그들은 첫 수확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추수한 곡식을 하나님께 드리며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또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준 원주민들을 초청해 함께 식사를 나누고 감사를 표했습니다. 이것이 추수감사절의 유래입니다. 1. 흑암의 권세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 크리스천들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자녀로 삼아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 1:13).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서 구원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택하시고 구원의 은혜를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모든 죄와 저주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던 우리가 구원의 은혜로 천국 백성이 된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의 결과로 우리에게 임한 질병, 가난, 저주까지 청산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며 강건케 되는 복을 누리며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영원히 감사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야훼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18:1). 감사의 절기를 맞아 감사하는 것도 좋지만 이제 다가오는 365일이 감사의 날들이 되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호흡이 다하는 그날까지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살다 보면 감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순간도 다가옵니다. 그러나 그런 때에도 우리는 감사의 제목을 찾아야 합니다. 억지로라도 감사의 제목을 찾고 또 찾으면 더 많은 감사를 하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2. 사랑의 아들 나라로 옮기신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시어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 1:13~14). 비록 이 땅에 사는 동안 고난과 역경이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 그리고 마침내 우리를 영원하고 완전한 안식처인 천국에 이르게 하실 것을 믿으며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소망을 붙잡고 모든 환난을 이겨냈습니다. 바울이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쓴 편지인 디모데후서 뒷부분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8). 사도 바울은 천국 소망이 있어, 다른 사람이라면 감옥에 갇혀 절망에 빠질만한 상황 속에서도 불평하지 않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바울은 환난 중에도 즐거워했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롬 12:12). 우리도 바울처럼 어려움을 당하거나 문제를 만나도 천국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고 기뻐하면 넉넉히 어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20세기의 저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는 “기쁨은 감사의 가장 단순한 형태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 주시고 그 은혜로 인해 기뻐할 수 있습니다. 절대 감사는 그래서 중요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마음의 기쁨을 충만히 채워주실 것이고 이 기쁨은 고난을 넉넉히 이기는 힘이 될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인생의 경주를 할 때 지치고 쓰러져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순간이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삶에 찾아오는 어려움과 위기 때문에 당황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말고 믿음으로 끝까지 하나님만 바라보며 의지하고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책임져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는 우리가 천국 가는 그날까지 계속됩니다.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시 48:14). 이처럼 끝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진 마르틴 루터는 1517년 담대하게 종교개혁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이 믿음으로 무장한 영국의 청교도들은 새로운 땅에 정착해야 한다는 두려움을 이기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험한 항해 길을 거쳐서 미국으로 이주할 수 있었습니다. 이 믿음이 있었기에 1958년 천막교회에서 시작한 우리 교회가 서대문교회 시절을 지나 오늘날 여의도교회 시대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끝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65년간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끝까지 보호하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끝까지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시편 121편은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는 시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야훼에게서로다 야훼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야훼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야훼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야훼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야훼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 121:1~8). 이 말씀을 날마다 입으로 고백하시고 묵상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의 출입을 지키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의 삶 속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기독교는 감사의 종교입니다. 감사가 빠지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감사는 성령 충만의 표지이며 영성의 최고봉입니다. 그래서 크리스천은 첫째도 감사, 둘째도 감사, 마지막도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 한 분으로 인해 감사하십시오.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지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십시오. 마귀의 일을 멸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십시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십시오. 우리가 광야와 같은 인생의 여정을 마치고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우리를 끝까지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십시오. 영원토록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아버지 하나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의 마음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의 보살핌과 인도하심을 기억하며 어려움 속에서도 오직 감사와 기쁨이 넘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3.11.19

    절대 긍정과 감사의 기적
  •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야훼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야훼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야훼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창세기 39장 19~23절) 문제와 고난 우연이 아닌 다가올 축복의 전주곡 하나님 주시는 거룩한 꿈 꾸고 믿음으로 살면 반드시 이루어져 인생을 살다 보면 예기치 못한 어려움이나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재수 없다’, ‘운이 나빴다’라고 반응합니다. 하지만 우리 크리스천에게 문제와 고난은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우연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를 더욱 성숙한 신앙인으로 빚어가는 과정이자 장차 다가올 축복의 전주곡입니다. 1. 삶의 환난이 다가올 때 요셉은 꿈꾸는 소년이었습니다. 그는 17살 때 해와 달과 11개의 별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꾸고 자신이 장차 높은 사람이 될 것을 확신하며 형들에게 꿈을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이 일로 형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형들은 그런 요셉을 죽이려 했지만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은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비참한 노예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요셉은 하나님만 의지하며 범사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 보디발의 집에 형통의 복을 주셨습니다. “야훼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야훼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야훼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창 39:2~3).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했던 요셉은 하나님의 은혜로 보디발의 신뢰와 인정을 받아 가정 총무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했다가 실패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거절한 요셉을 모함했고, 보디발은 아내의 말만 듣고 진노해 요셉을 감옥에 가뒀습니다. 그곳은 왕의 사면이 없이는 나올 수 없는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감옥이었습니다. 왕은 요셉을 알지 못했으니 요셉은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요셉은 변명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감옥에 갇힌 죄수가 된 것입니다. 요셉이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꿈에 붙잡힌 절대긍정의 사람 요셉은 감옥에서도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고 하나님은 그런 요셉을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야훼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야훼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창 39:22~23). 간수장은 요셉을 감옥의 관리자로 세웠는데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죄수가 죄수를 관리하는 총책임자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고난 중에도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붙들고 절대긍정의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때에 주저앉지 말고 늘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다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십시오. 환난이 변하여 소망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2.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 요셉은 애굽으로 팔려갔을 때도, 노예 생활을 할 때도, 감옥에 갇혔을 때도 불평하거나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늘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잡았고 하나님은 그런 그와 함께하셨습니다. “야훼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창 39:21). 요셉처럼 우리도 힘들고 억울한 일을 당할지라도 원망과 불평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는 우리를 부정적 생각에 사로잡히게 만들어 자신은 물론 이웃에게까지도 파괴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꿈꾸는 사람, 절대긍정과 감사의 사람과 함께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거룩한 꿈을 꾸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감사하며 살 것인지 불평하며 살 것인지에 대한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이 선택에 따라 우리 삶의 결과도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눈앞의 상황이 어둡고 막막할지라도 좋으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절대긍정과 감사의 믿음을 선택하십시오. 찬양과 감사, 말씀과 기도로 나아가면 하나님의 복을 풍성히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3. 하나님의 사람에게 임하는 형통의 축복 요셉은 감옥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누렸습니다.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야훼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야훼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창 39:23). 모두가 절망할 수밖에 없는 곳에서도 요셉이 형통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긍정의 사람인 요셉을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어느 날 왕의 최측근 신하인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요셉이 있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그들의 꿈을 해석해 주었는데 그 해석대로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되고 떡 굽는 관원장은 사형 당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이 풀려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정작 복직된 후에는 이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말았습니다. 2년 후에 왕이 흉흉한 꿈을 꾸었고 온 나라에 그 꿈을 해석할 사람이 아무도 없자 술 맡은 관원장은 그제야 요셉을 떠올리고 왕에게 추천했습니다. 왕에게 불려 간 요셉은 왕의 꿈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요셉은 왕의 꿈이 앞으로 다가올 7년 풍년과 7년 흉년에 관한 것임을 알려주었습니다. 왕은 요셉의 해몽을 듣자마자 하나님이 요셉에게 허락하신 지혜에 감동해 그 자리에서 요셉을 국무총리로 세웠습니다.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창 41:40~43). 소년 요셉에게 임했던 꿈이 13년이 지나 하나님의 때가 되자 한 치의 오차 없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꿈을 꾸고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이 반드시 그 꿈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요셉처럼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들고 최선을 다하십시오. 불평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절대긍정의 믿음으로 나아가십시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꿈이 이루어지는 놀라운 은혜와 복을 받게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아버지 하나님, 어떤 환난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들고 최선을 다하며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주님,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시고 온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만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3.11.12

    이삭의 순종
  •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창세기 22장 6~8절) 이삭의 절대적 순종은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예표 하나님 뜻에 따라 살아갈 때 놀라운 은혜와 축복 누려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의 뜻과 계획을 앞세우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순종하는 믿음을 보여준 사람이었습니다.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지체하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갔고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명령에도 전적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부전자전이라는 말처럼 이삭도 놀라운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1. 이삭의 순종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모리아 산으로 향했을 때의 일입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불과 나무는 준비했는데 정작 번제물인 양을 준비하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창 22:7). 아브라함은 아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 22:8). 이삭은 질문을 하면서 자신이 번제로 드려질 수도 있다고 직감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삭은 아버지의 대답에 더 이상 묻지 않고 묵묵히 아버지를 뒤따랐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곳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은 후 제단 위에 장작을 준비했습니다. 그런 다음 이삭을 묶어서 장작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칼을 들어 그를 죽여 번제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창 22:9~10). 학자들은 당시 이삭이 20~30세의 혈기왕성한 나이였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렇다면 100세에 이삭을 낳은 아브라함은 120세를 훌쩍 넘긴 노인이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박하려 했을 때 이삭은 마음만 먹으면 능히 노쇠한 아버지를 밀쳐 내고 도망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아버지의 결박에 순순히 응하며 죽음을 기다렸습니다. 이삭은 어떻게 이런 순종을 할 수 있었을까요? 이삭의 순종은 아버지의 권위를 온전히 인정하고 아버지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 이삭의 순종과 예수님의 순종 이삭의 순종은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예표합니다. 이삭이 아브라함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한 것같이 예수님도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셔서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희생 제물이 되어 죽으셨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하나님은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을 사흘 만에 다시 살려주셨고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9~11). 모든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온전한 순종으로 인해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며 자기의 생각을 앞세웠던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에게 사무엘 선지자가 했던 말을 기억하십시오. “사무엘이 이르되 야훼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때로 매우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순종으로 인해 고난을 겪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순종을 통해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순종할 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며 놀라운 은혜와 복을 우리에게 부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삭처럼,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지금은 천국에 계신 저의 어머니 김선실 목사님은 제가 어릴 적부터 항상 순종을 강조하셨습니다. 어머니께 순종을 배운 저는 우리 교회에 출석한 이후로 조용기 목사님의 말씀에 한 번도 “아니오”라고 대답해본 적이 없습니다. 여러 차례 미국과 일본으로 선교를 나가고 복귀하는 과정을 반복했어도 단 한 번도 망설이거나 “못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린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의 종을 통해서 일하신다는 것을 저는 믿었기 때문에 순종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순종하면 놀라운 복을 받게 됩니다. 3. 순종의 축복 이삭은 아버지에 대한 절대적 순종을 통해 한평생 평탄하고 복 받은 삶을 살았습니다. 훌륭한 아내 리브가와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고 농사할 때 100배의 수확을 얻어 거부가 되었습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야훼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창 26:12~13). 또한 고대 근동에는 물이 매우 귀했는데 이삭이 우물을 파기만 하면 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야훼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창 26:19~22). 이처럼 하나님은 범사에 이삭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은 이삭의 삶을 본 주변 민족들은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이삭의 우물을 빼앗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책망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들이 이르되 야훼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야훼께 복을 받은 자니라”(창 26:28~29). 그래서 그들은 이삭을 찾아가 평화조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순종은 하나님께 복을 받는 신앙생활의 열쇠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뜻과 계획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복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한평생 순종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귀히 여김을 받고 많은 이에게 복을 나누어주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허락하옵소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인정받을 수 있는 복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3.11.05

    아브라함의 믿음
  •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야훼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세기 22장 7~12절) 믿음은 순종과 행동으로 증명 주님 감동시키는 믿음의 사람돼야 ‘야훼 이레’ 하나님 바라보며 예비된 복 받아 누리길 살아있는 믿음, 진정한 믿음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이 믿는다고 말하지만 참된 믿음은 말이 아니라 삶 속에서의 행동과 결단을 통해 증명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100세 때 낳은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1. 아브라함의 믿음 모리아 땅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이삭과 함께 산을 오르기 전에 종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창 22:5). 아브라함은 종들에게 혼자가 아닌 ‘우리’가 돌아오겠다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처럼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바 있습니다. 그 약속대로 아브라함은 100세 때 기적처럼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하셨던 약속이 이삭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리켜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이라고 칭찬했습니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롬 4:17~18). 우리는 아브라함을 통해 희망이 사라진 것 같은 순간에도 소망을 가지는 믿음,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줄 확신하고 의심하지 않는 믿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한편 자신이 제물로 바쳐질 것을 몰랐던 이삭은 제물로 드릴 양이 없다는 것을 궁금하게 여겨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창 22:7). 그런데 놀랍게도 아브라함은 아들의 질문에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셨다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창 22:8).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미 경험한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이 번제물도 준비하셨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이삭을 데려가셔도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7~19). 이처럼 아브라함은 절대긍정과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2. 아브라함의 결단 아브라함은 산에 올라가 제단을 만들고 아들을 결박한 후 죽이려고 했습니다.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창 22:10). 이렇게 아브라함의 믿음은 순종과 행동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행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죽이려 하자 하나님의 사자가 다급하게 그를 막았습니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아브라함은 이 일로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하고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믿음을 완전히 인정받았습니다. ‘이제야’ 아브라함을 인정하셨다는 말씀은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또 자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성장해 ‘이제야’ 하나님께 인정받았듯이 우리도 초보적인 신앙에서 점점 자라나 하나님께 인정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행동으로 실천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도 아브라함처럼 주님께 믿음을 인정받은 인물이 있는데 그 사람은 바로 로마의 백부장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이 직접 집에 찾아오시지 않으셔도 말씀만 하시면 병든 하인이 나을 줄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놀라운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마 8:10)고 말씀하시며 그를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하인을 고쳐주셨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과 백부장처럼 주님을 감동시키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3. 순종과 헌신의 결과로 주신 축복 아브라함의 순종을 보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위해 이삭 대신 번제물로 드릴 양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야훼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야훼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창 22:13~14). ‘야훼 이레’는 야훼 하나님이 준비하신다는 뜻을 가진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과 순종을 보시고 우리 일생에 필요한 모든 것을 예비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넘치는 복도 허락하셨습니다. “이르시되 야훼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 22:16~18).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결과 믿음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은 그의 후손들이 큰 민족을 이루고 대적들로부터 승리하며 그의 후손에게서 메시야가 나오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때로 우리의 인생길이 캄캄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가는 길에 통과하기 힘든 시험이 있는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믿음은 이런 환경 속에서도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마저도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아브라함처럼 기꺼이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순종과 행함으로 믿음을 증명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넘치는 복을 받아 누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던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해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는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3.10.29

    아브라함의 결단
  •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야훼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창세기 22장 1~3절) 인생은 선택과 결정의 연속 하나님 최우선 순위로 살며 절대 순종으로 믿음 지켜 주님 주시는 놀라운 복 받아야 사람의 일생은 선택과 결정의 연속으로 이루어집니다. 좋은 선택과 결정은 삶을 아름답고 윤택하게 만들 수 있지만, 한 번의 잘못된 선택과 결정은 삶을 파멸로 만들기도 합니다. 매 순간 가장 좋은 선택을 하고 최선의 결정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택과 결정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1.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보다 독자 이삭을 더 사랑하는지 알아보시기 위해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창 22:1). 이삭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기로 약속하신 후 25년이 지나 태어난 아들입니다. 아브라함의 나이가 100세였을 때 얻은 아들이니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고 사랑했겠습니까? 이삭은 아브라함의 가장 소중한 존재이며 삶의 가장 큰 기쁨과 소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귀한 아들이라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그것은 문제가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인생의 최우선 순위에 하나님이 계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순서가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때때로 사람들은 선물을 주신 하나님보다 선물 자체를 더 사랑합니다. 선한 일을 많이 하라고 하나님이 물질의 복을 주시거나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있는 높은 자리에 앉게 해주었더니 도리어 그것들이 사람들의 우상이 되어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삶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삶의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복을 받았을지라도 그 복이 하나님보다 더 앞서서는 안 됩니다. 오직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받은 시험의 내용이었습니다. “야훼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시험일 때가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재물이 많은 부자 청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이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가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는 것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마 19:21). 이 말을 들은 청년은 자기가 가진 재물을 포기할 수 없어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마 19:22). 청년은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했기에 예수님을 따르지 못했던 것입니다. 욥은 동방의 의인이자 큰 부자였습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10명의 자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욥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수천 마리의 가축이 다 죽고 재산도 다 잃었으며 10명의 자녀도 모두 죽었습니다. 심지어 그의 몸에는 악성 피부병이 생겨 가려운 곳을 기와 조각으로 긁어야 할 만큼 비참해졌습니다. 그의 아내는 그의 비참함을 보고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 2:9)고 말하고 그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시험을 당하면서도 욥은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 1:22). 욥은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았습니다. 그 결과 모든 시험이 끝난 이후에 욥은 갑절로 복을 받아 동방의 거부가 되었고 건강을 되찾았으며 10명의 훌륭한 자녀도 새로 얻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치라고 시험하신다면 우리는 무엇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아브라함의 결단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듣자마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단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창 22:3). 성경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번제 드릴 곳을 향해 떠났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신속한 결단과 순종의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하는 일을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명령받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아내 혹은 다른 사람과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의논했더라면 아내의 강력한 반대로 인해 이삭을 데리고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을 때 그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머뭇거리면 핑계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참된 순종은 내 생각과 판단을 뒤로 밀어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최우선으로 삼아 즉시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3일 길을 걸어갔습니다.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창 22:4). 순종은 나 자신이 죽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3일 동안 철저히 하나님 앞에 깨어졌습니다. 만약 그의 자아가 하나님 앞에서 먼저 죽지 않았다면 자기 생명보다 귀한 이삭을 바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내가 죽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내가 죽으면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나셔서 위대한 역사를 이루십니다. 반대로 내가 살아있으면 내 뜻과 욕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문제 속에 빠지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 순종하고 자기주장을 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도 즉시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결단하고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우리를 시험하시는 것 같은 상황이 다가와도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게 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여 놀라운 하나님의 복을 받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삶에 최우선 순위가 하나님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만을 가장 사랑하고 신뢰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 순종하여 아브라함과 같은 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3.10.22

    너는 내 앞에서 완전하라
  •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창 17:1~5) 주님 말씀 믿고 전진하면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고 불가능이 가능케 되는 놀라운 기적 체험하게 돼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성격이 급한 편입니다. 해외에 나가보면 우리가 ‘빨리빨리’라고 말하는 것을 외국인들도 알아들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빠른 것에 익숙한 우리가 계획했던 일이 20여 년이 지났음에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1. 아브람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 아브람은 75세 때 처음 약속의 말씀을 받았고 그 후로도 그 약속이 분명히 이루어질 것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여러 차례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백발이 성성한 99세가 되었는데도 약속은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24년 동안 응답이 없어 낙심하고 있던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말씀의 성취가 늦어진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으신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불가능한 현실이 아닌 전능하신 하나님만 바라보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할 수 없어도 주님은 하신다’라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가치와 판단의 중심이 자신이 아닌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라는 것입니다. 이 명령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하나님은 모세에게도 말씀하셨고(신 18:13), 예수님도 산상수훈에서 동일하게 말씀하셨습니다(마 5:48).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삶을 ‘코람데오’의 삶이라고 부릅니다. 사람이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식하고, 사람 대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코람데오의 삶을 살 때 하나님은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십니다. “행위가 온전하여 야훼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시 119:1).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늘 순종하여 삶의 행위가 온전한 사람들은 하나님께 인정받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그러므로 연약하고 불완전한 우리의 생각과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말씀을 믿고 나아가 하나님의 약속과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2. 언약을 통한 축복 하나님은 아브람과 언약을 세우시며 그 언약을 따라 그를 번성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창 17:2). 아브람에게 복을 주시고 그를 창대하게 만드시겠다는 약속은 하나님이 처음에 그를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실 때, 그리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주신 것이기도 했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창 13:16),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5). 사람은 한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이 생겼더라도 그 약속의 성취가 더디면 쉽사리 실망하곤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심으로써 아브람이 약속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도록 이끄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성취됩니다. 우리의 시선으로는 환경의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이고, 지속해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처럼 보여도 신실하신 하나님은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해 성실하게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실하게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갔던 아브람은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아브람의 믿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롬 4:16).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믿음으로 받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도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하고 또 전진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3. 여러 민족의 아버지 아브라함 아브람에게 약속의 말씀을 상기시키신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큰 아버지’라는 뜻의 ‘아브람’에서 ‘많은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브라함’으로 바꿔 주셨습니다.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창 17:4~5). 한 사람의 이름에는 그의 존재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름이 바뀐 순간 이미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롬 4:17). 그는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을 수 없는 중에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롬 4:18). 또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고백하고 또 고백했습니다.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롬 4:19~21). 그의 믿음대로 마침내 그는 100세에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창 21:2~3).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을 믿었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불가능한 현실이 가능하게 되는 기적을 경험한 것입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계속해서 믿음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주님이 함께하신다. 주님이 이루어 주실 것이다.” 이렇게 절대긍정의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이 복을 내려주십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성취됩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언제나 믿음으로 전진하십시오. 하나님이 베푸시는 기적을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창대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베푸시는 놀라운 은혜를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3.10.1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 “이 후에 야훼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이르되 주 야훼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야훼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야훼를 믿으니 야훼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세기 15장 1~6절 ‘나’라는 공간 벗어나 하늘 볼 때 믿음 생겨 절대긍정 믿음 품으면 하나님 약속 성취 세상의 모든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고 안정된 삶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현실 속 가정, 자녀, 사업 등 모든 일은 우리가 바라고 소원하는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때가 많습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창 12:2),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창 13:16)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음에도 자녀가 생기지 않아 고민했습니다. 1. 아브람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 아이가 없어서 고민하던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후에 야훼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 하나님이 아브람의 방패이며 지극히 큰 상급이시라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그돌라오멜왕의 연합군에게 잡혀간 조카 롯을 구출하면서 방패처럼 대적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신 하나님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창 14장). 그러나 상급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다시 여쭤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브람에게 가장 중요한 상급은 바로 자녀였는데 아직 그에게는 자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몸에서 난 자녀가 없었던 아브람은 하나님께 자신의 속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아브람이 이르되 주 야훼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창 15:2~3). 다메섹 출신인 엘리에셀은 아브람의 집에서 어릴 적부터 종으로 일했던 사람입니다. 그가 얼마나 충성되게 일했는지 아브람은 하나님이 주신다고 약속하신 자녀가 생기지 않자 그를 상속자로 삼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엘리에셀이 아니라 아브람의 몸에서 날 자가 그의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야훼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창 15:4). 우리는 문제가 있을 때 낙담하며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 나서곤 합니다. 그러나 문제의 참된 해결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그러므로 절망의 때에 문제와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직 야훼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 40:31).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께 우리의 문제를 아뢰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문제를 돌파할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2. 아브람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신 하나님 하나님은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창 15:4)라고 말씀하신 후에 아브람을 이끌고 천막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5). 아브람이 자고, 깨고, 생활하는 세계는 천막이라는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아브람은 천막 안에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만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아브람을 넓은 밖으로 이끌고 나가셔서 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분명하고 확실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5). 좁은 공간에서 좁디좁은 생각밖에 하지 못했던 아브람이 그 생각의 한계를 뛰어넘도록 인도하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과거의 상처와 실패, 피해의식에 갇혀 살아갑니다. 밤낮 과거의 실패만 돌아보며 신세타령을 합니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그 외의 것들은 받아들이지 못한 채 ‘나’라고 하는 좁은 공간에 갇혀 절망으로 신음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는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절망의 공간에서 밖으로 나오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세계를 바라보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의 복을 경험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을 가두는 비좁은 환경과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새사람이 되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풍성한 복의 세계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하나님의 생각과 뜻에 우리의 생각과 뜻을 일치시킬 때 하나님이 우리의 미래를 성공으로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3. 아브람의 믿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라는 공간에서 나와서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아브람에게 믿음이 생겨났습니다. “아브람이 야훼를 믿으니 야훼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 아브람은 하늘의 셀 수 없는 별들을 바라보며 장차 자기 자손이 그렇게 번성하게 될 것이라는 꿈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꿈과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렇듯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던 아브람의 모습을 하나님은 귀하게 보시고 의롭게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바로 이 믿음입니다. 눈에는 보이는 것 없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귀에는 들리는 것 없어도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나아갈 때 그것이 우리에게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믿음의 역사입니다. 아브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은 큰 기적을 행할 수 있고 작은 믿음을 가진 사람은 작은 일을 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큰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아이를 낳지 못해서 절망적인 자신의 현실만 바라보던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천막 밖으로 나와서 하늘을 바라보며 큰 꿈을 갖게 된 것처럼 우리도 변화되어야 합니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믿음이 견고하고 성숙하게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꿈꾸는 사람, 믿음의 사람을 찾으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믿음으로 현실을 뛰어넘어 하나님을 감동하게 해드리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우리가 과거의 상처와 절망의 공간에 갇혀 있지 않게 해주옵소서. 꿈꾸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해주옵소서.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게 해주옵소서.’ 우리 모두 절대긍정의 생각으로 무장해 믿음으로 한계를 뛰어넘어 하나님이 주시는 무한대의 복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갇혀 부정적으로 살아왔던 우리를 찾아오셔서 무한히 넓은 축복의 세계를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아브람처럼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이 이루어지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3.10.08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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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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