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古典)에서 길을 찾다
순전한 기독교 / C.S 루이스
  • 벽 앞에 서있는 청년들이 읽으면 좋은 책
    팔로잉하는 청년 중에 시도 때도 없이 달리는 형제가 있다. 운동선수도 아닌 그는 바쁜 직장 생활 중에도 곶감 빼먹듯이 시간을 내어 달린다. 급기야는 지난달 개최됐던 베를린마라톤에서 풀코스를 완주했다. 그런 그가 절대 빼먹지 않는 것이 온라인예배다. ‘플로팅 크리스천’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자유로운 신앙 패턴을 가진 사람들을 지칭하는 신조어다. 온라인예배를 드리며 사회변화에 따라 계속해서 움직이고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신앙생활을 추구한다. 그들에게는 신앙적 돌봄이 더욱 필요하다. 교회생활은 마라톤과 같은 경주다. 푯대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 그런 우리가 팬데믹이라는 벽 앞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험을 했다. C.S.루이스 교수가 방송을 통해 강연했던 당시도 그러했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사건은 많은 이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루이스는 그 혼란함을 통해 흔들리는 기존 기독교인들을 보았을 것이고, 더욱더 교회로부터 멀어지는 불신자들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일터에서 때로는 술집에서 영국 국민들은 루이스의 강연을 청취했다. “제 얘기가 별로 도움이 안된다면 그냥 무시해버리십시오”라고 말하는 저자의 당당함이 강연을 묶어 펴낸 책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 곳곳에서 나타난다. 이 책은 ‘옳고 그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옳고 그름을 따지며 살아간다.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사람은 자연법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스스로는 지키지 않는다. 인간은 도덕율이라는 규정을 만들어냈다. 문제는 그 규정의 잣대가 상대방에 대한 것과 스스로에 대한 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옳고 그름’의 문제는 논쟁의 의미가 아닌, 하나님에 대해 매력적인 설명을 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 이 책은 기독교의 핵심을 논리적인 변증법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짜장면은 맛없다. 짬뽕은 먹을 만하다. 그래서 짬뽕을 먹는 게 낫다. 쉬운 변증법의 예다. 옥스퍼드대학과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를 역임했던 그 만의 화법으로 기독교를 맛깔나게 소개한다. 교회를 떠난 청년들은 믿음을 잃어서가 아니다. 청년들에게 신학적 논쟁이나 교회사적 토론은 큰 의미가 없다. 복음의 핵심이 들려져야 한다. 그들의 언어로 들려져야 하며 토론돼야 한다. 변증법으로 복음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변증법이든 아니든 최상이 아니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자세다. ‘안읽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읽는 사람은 없다’라는 말로 이 책을 자신 있게 추천한다. 특별히 교회 안팎에서 영끌로 지쳐있는 청년들에게. 임 훈(여의도순복음군산교회 담임)
  • 2022.10.06

    영적 감정을 분별하라 / 조나단 에드워즈
  • 영적 감정의 핵심은 ‘사랑’
    일론머스크의 하이퍼루프는 비행기보다 빠른 이동수단이다. 한국에서는 하이퍼튜브를 개발 중인데 서울에서 부산까지 16분 걸린다. 더 빠른 것이 흔들리는 사람 마음이다. 어느 책에선가 ‘감정 강아지는 우리에 잠시 가둬라. 지금은 이성 고양이가 움직여야 할 때다’라는 구절을 보았다. 다산 정약용이 마주했던 마지막 삶의 주제도 ‘마음’이었다. 기독교 사상가들은 한결같이 마음 즉, ‘영적 감정’을 이야기한다. 오늘 소개하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영적 감정을 분별하라’는 책이 그렇다. 신학자이면서 사회학자, 목회자이면서 철학자, 부흥사이면서 심리학자였던 그의 책이기에 탁월하다. 로이드 존스는 “청교도들을 알프스 산에 비유하고, 루터와 칼빈을 히말라야 산에 비유한다면, 조나단 에드워즈는 에베레스트 산에 비유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극찬했다. 살아가면서 뚜렷한 이유 없이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런 감정을 C.S.루이스는 세상적 가치로는 채울 수 없는 ‘실존적 빈 공간’으로 지칭했고, 존 오웬은 그 자리를 성령의 사역이 시작되는 곳으로 인식했다. 에드워즈 또한 깊은 거룩을 향한 갈망이 존재하는 공간으로 설명한다. 에드워즈는 우리에게 두 가지 영적 감정을 권면한다. ‘사랑’과 ‘기쁨’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봉사와 섬김, 금방 식어버리는 찬양의 감정, 겉모양만 그리스도인’ 등 12가지의 거짓된 영적 감정을 대신한다. 사랑은 많은 감정들 중의 하나일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영적 감정들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사랑과 반대되는 감정인 증오도 사랑으로부터 싹튼다고 한다. 죄에 대한 증오, 하나님을 분노케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감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기쁨, 하나님의 곁을 떠났을 때의 애통, 하나님을 바라는 소망,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자 하는 열심 등도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부터 우러나온다. 영적 사랑과 영적 기쁨은 한 몸이다. 9월부터 eSIM 시행으로 한 휴대폰에 두 개의 번호를 쓸 수 있듯이 말이다. 영적 기쁨이 가져다주는 만족감과 끊임없는 추구가 일치할 수 있을까? 영적 기쁨은 인간의 본성과 영혼의 요구에 완벽하게 반응한다. 또한 기대를 갖고 살게 한다. 영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만족의 한도 내에서 우리를 만족시키는 것이 영적 기쁨이다. 저자는 사랑과 기쁨의 영적 감정들이 믿음의 실천을 통해 열매 맺는다고 역설한다. 무엇보다도 나타나는 열매를 통해 분별하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생애 동안 두 번의 큰 부흥을 경험했던 에드워즈였기에 ‘영적 감정’에 대한 그의 관찰력은 프로파일러 이상 디테일하다.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고전이다. 임 훈(여의도순복음군산교회 담임)
  • 2022.09.07

    기도의 능력 / E.M.바운즈
  • 기도하지 않는 성도는 ‘거지’다
    시간 없어서 기도 못하는 분들을 위한 책 기도하지 않는 성도는 ‘거지’다. 이 책의 저자 E.M.바운즈가 우리에게 주는 경고다. 성도의 능력도 아름다움도 향기도 없는 거지와 같다고 한다. 궁금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읽는이의 가슴을 후벼파는 그 힘을 알고 싶었다. 한 단원을 넘기기도 전에 아무리 고고한 척 해보려 해도 모세혈관까지 밝히 드러난 듯 부끄러워진다. E.M.바운즈의 삶은 무릎으로 기도한 인생이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3시간씩 기도했던 그의 영성이 이 책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무릎의 영성으로 쓴 책이기에 검색엔진으로 지식을 탐닉하는 얄팍한 우리에겐 따라잡지 못할 레벨이다. 천재성, 두뇌, 똑똑함, 힘, 재능이 있다고 믿었던 우리의 모습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거침없이 무너져 내린다. 저자의 주장은 한결같다. 복음은 마음을 통해 흐르며, 마음이 세상을 구한다는 것이다. 머리로도 할 수 없고, 그 어떠한 경영방식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을 오직 기도만이 할 수 있다고 강력히 말한다. 철학자 파스칼도 “하나님이 기도를 만드신 목적은 피조물에게 ‘어떤 일을 유발하는 존재’로서의 특권을 부여하시기 위해서다”라고 뒷받침한다. 이 책의 저자는 짧게 드리는 기도와 아예 기도하지 않는 삶의 모습 중에 더 나쁜 행태는 바로 짧게 기도하는 삶이라고 말한다. 짧게 드리는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는 짧게라도 기도했으니까 나의 신자된 의무는 다한 것’이라는 책임회피용으로 쓰이는 잘못된 습관이다. E.M.바운즈는 기도의 절대적인 양을 권면한다. 꽉찬 스케줄대로 살아가는 우리에겐 긴 기도 시간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골방에서 하나님과 함께 머무를 수 있는 능력은 우리가 골방 밖에서 하나님과 같이 할 수 있는 능력을 결정한다고 한다. 반드시 하루 한 시간 기도해야 하는 이유다. 저자는 새벽시간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마틴 루터도 너무 바빠서 기도하기 위해 한 시간 더 일찍 일어났다고 한다. 성경 번역자 필립 브룩스는 “기도 없이 사는 것은 가장 저주스러운 일이며, 말할 수 없이 어리석은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설교자 스펄젼은 “기도만이 부흥과 성장의 비결이다”라고 했다. 기도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다른 다양한 방법으로 목표를 이루려 했다. 출발부터가 잘못됐다. 다시 기도로 시작하자. ‘당신의 최고의 시간과 능력을 기도에 쏟으라’는 100년 전 저자의 외침이 오늘을 무릎 꿇게 한다. 궁금증에 대한 답을 ‘기도의 절대적인 양’에서 찾았다. 기도해야겠다고 매번 결심하나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한 분들에게 이 책을 강력 추천한다. 임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군산교회 담임)
  • 2022.08.11

    그리스도를 본받아 / 토마스 아 켐피스
  • 참아왔던 숨을 내쉬며 안도감으로 읽는 책 토마스 아 켐피스는 성경필사에 진심이었다. 흑사병(pest)으로 온 유럽이 팬데믹 상황이었지만 그럴수록 토마스는 하나님의 말씀에 매달렸다. 책 ‘그리스도를 본받아’(Imitatio Christi)가 성경구절을 1000구절 이상 품고 있고, 600년 넘게 고전으로 남아 있는 힘이다. 마르틴 루터, 존 웨슬리, 존 뉴턴, 본 회퍼 등 알만한 인물들이 이 책을 통해 경건훈련을 했다. 평상시 말수가 적었던 토마스는 하나님에 관해 말할 때면 누구보다도 유창했다. “저는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제 골방에서 저와 대화하려고 기다리는 분이 계시거든요.” 그는 행동가이기도 하다. “지금은 행동해야 할 때요, 지금은 노력해야 할 때이며, 지금이 나를 고치기에 적절한 때이다”라고 강조한다. 누군가를 고치기 원한다면 이 책을 탐독해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우리에게 4가지 주제로 권면한다. 1부 ‘영적생활에 유익한 권면’에서는 25편의 글들을 통해 세상과 어느 정도 거리두기 할 것을 요구한다.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안에 거하자고 권면하며 그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강조한다. 한주간의 생활이 너무 세상쪽에 기울어져 있다고 느낀다면 첫 번째 파트를 촘촘히 읽어보자. 세상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아이템들을 겟(get)할 수 있다. 2부 ‘내면을 향한 유익한 권면’에서는 “내 안에 주님을 들어오ㅁ 하자”면서 특히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내공을 강하게 만들고자 한다면 빨간펜으로 줄 치면서 읽어야 한다. 키워드는 ‘겸손’이다. 그리스도를 깊게 알수록 겸손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12편으로 너무 겸손할 만큼 짧다. 반면에 3부 ‘주님만이 주시는 내적 위로’는 59편으로 제일 길다. 역시 겸손 아래 은혜를 감추라고 한다. 살면서 눈앞에 있는 어떤 것에 휘말리고 있다면 이 파트가 딱이다. 일시적인 것은 내려놓고 영원한 것을 구하라고 저자는 강력하게 말한다. 마지막 4부는 ‘주님과의 거룩한 하나 됨’이다. 시간이 부족한 독자라면 성찬의 유익을 알려주는 이 파트는 건너뛰어도 좋다. 재미있는 점은 96편의 권면을 읽다보면 우리가 평상시 교회생활 가운데 하는 말들이 이 책에 깨알같이 다 들어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만일 십자가를 벗어버린다면 틀림없이 또 다른 십자가, 어쩌면 더 무거운 십자가를 만날 것입니다”라는 목사님들이 자주 언급하시는 말씀이다. 심장이 멎는 듯한 날카로운 지적도 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그분의 가르침에 감추어진 만나를 찾아낼 것이다.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자주 들으면서도 거의 영향받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주님께만 집중되고 생각이 정리된다. 생각과잉이라는 불행의 파도 가운데 있는 성도라면 꼭 읽어보자. 롱 코비드(코로나 후유증)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에 마음을 튼튼하게 하는 고전중의 고전이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임 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군산교회 담임)
  • 2022.04.10

    천로역정 / 존 번연
  • ‘인정’과 ‘인터페이스’는 같은 말이다 다음 세대와 소통에 필요한 요소들 팬데믹에도 봄이 올까. 코로나19로 삶이 닭가슴살 씹는 것처럼 퍽퍽할 때 읽을만한 좋은 책이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이다. 줄거리는 익숙하다. 주인공 크리스천이 등에 무거운 짐(죄)을 지고, 손에는 한 권의 책(성경)을 들고 고향인 ‘멸망의 도시’를 떠난다. 도중에 여러 인물들을 만나며 ‘낙담의 늪’ ‘죽음의 계곡’ ‘허영의 거리’를 지나 천신만고 끝에 ‘하늘의 도시’에 당도하는 여정을 그렸다. 자녀들과 말이 안 통할 때 역정 내지 말고 천로역정을 한 손에 들어보자. 저자 존 번연은 “쇠사슬에 묶인 사람들에게 설교하기 위해 쇠사슬에 묶인 채 그들에게 갔다”고 자서전에 쓸 정도로 헌신적인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영적인 침체기를 겪고 감옥살이 가운데 오직 긍휼의 눈으로 이 책을 썼다. 우리가 긍휼함으로 품어야 하는 세대는 ‘다음 세대’다. 홈런왕 행크 아론은 얼마나 연습을 했던지, 날아오는 공이 수박처럼 크게 보였다고 한다. 다음 세대를 살리고 싶다면 날아오는 수박처럼 보일 때까지 관찰해야 한다. 천로역정을 읽다보면 개그코드 없이도 웃게 된다. 등장인물에 붙여진 이름 때문이다. 다음 세대와 재미있게 토론할 수 있는 팁조차도 천로역정은 친절히 제공한다. 우리가 신앙생활 가운데 만나야 할 대상은 도움, 선의, 해석자, 용감한 사나이, 분별, 경건, 자애, 믿음이다. 반대로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은 변절, 한때 믿음, 아첨꾼, 사심, 의심, 수다쟁이, 불만, 나태, 거만, 위선, 낙심, 고집 등이다. 전통적인 해석에서라면 ‘그런 사람들 만나지 마라’이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그렇게 사람을 가려 만나다가는 왕따되기 쉽다. 문제는 만남이 아니라 동행함이다. 답은 다음 세대도 알고 있다. 이때 필요한게 ‘인정’하는 소통의 기술이다. 스타벅스는 ‘라떼의 법칙’(Latte method)으로 고객과 소통한다. 말을 귀담아 듣고(Listen), 인정하며(Acknowledge), 문제해결을 위해 행동을 취하고(Take action), 감사한다(Thank). 그리고 이유를 설명한다(Explain). 설명은 경청으로부터 시작됨을 유의하자. 또한 설명은 질문을 허용해야 한다. 고전 명작들은 성경을 바탕으로 질문하고 해답을 찾았다. 파스칼의 <팡세>,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 그렇다. 우리는 참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다. 영화 <컨택트>(드니 빌뇌브 감독)에 보면 여주인공이 서로 다른 소통 체계로 인하여 큰 어려움을 겪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반면, 300년의 시공을 뛰어넘는 천로역정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와 소통한다. 책으로서만이 아니라 영화로 뮤지컬로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날 수 있다. 버저비터의 기적이 수 만번 연습을 통해 이루어지듯 인터페이스의 다양함을 통해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봄이 오면 냉이된장국이 제맛이다. 양파를 넣어야 맛깔나기도 하고 새우로 밑국물을 내야 시원하다고도 한다. 어느 쪽이든 냉이의 상큼함과 된장의 구수함이 잘 어우러지게 하기 위한 같은 방향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임 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군산교회 담임)
  • 2022.02.13

    기독교 고전 리뷰를 위한 프롤로그
  • 칫솔에 인공지능이 탑재되어 있어서 프로페셔널한 양치질이 가능해진 요즘에 ‘고전 읽기’라니. 교회도 메타버스에 탑승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때다. NFT(디지털 자산)를 어찌 다루어야 할까 고민 중인데 기독교 고전을 읽자고 하면 시대적 역행이 아닌가 댓글이 달릴 수도 있겠다. 책읽기는 백 번 천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평생을 병과 위협에 시달렸음에도 책을 놓지 않았던 조선 22대 왕 정조. 죄인으로 몰려 유배된 곳에서도 정약용은 복사뼈에 구멍이 날 정도로 독서에 매달렸다. 파스칼은 견딜 수 없는 치통과 뇌 장애의 고통 가운데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다. 애플을 정상으로 올려놓은 스티브 잡스는 고전 독서에 열광적인 사람이었다. 청나라 4대 황제인 강희제는 선교사들이 건네준 기독교 고전을 읽는 데에 피를 토할 정도로 열심이었다고 한다. 고전(古典)에 현타가 올 수도 있다. 오래된 책인 만큼 읽기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 때문이다. 하지만 고전은 시공간의 엄격한 테스트를 통과한 책이다. 오랜 시간동안 유익함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검증되어 명작이 되었다. 세월이 지난 유산일수록 값어치가 상승하듯 고전 명작은 읽을수록 천혜향처럼 향이 짙어진다. 그 향기에 취해 스펄전 목사가 100번 이상 읽은 고전이 『천로역정』이다. 천로역정을 읽고 길선주 목사는 회심했다. 서양철학사는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 기독교 서적도 사실 성경의 각주이다. 그럼에도 읽어야 하는 것은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피카소의 작품은 볼 때마다 왜 좋은지 모를 수 있다. 그러나 자꾸 보게 되면 알게 된다. 용기를 내어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읽고 보면 더 잘 보인다. 우리는 고전을 통해 얻은 지혜로 현재를 읽을 수 있다. 또한 받은 감동으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그 매개체로 서울대 김난도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 2022』에서 ‘내러티브’를 꼽고 있다. 스토링텔링은 이야기의 전달이고, 내러티브는 ‘해석적 소통’이다. 현재 우리에게 닥친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해석적 소통이 필요하다. 600년 전에 쓰여진 고전을 부모와 자녀가 같이 읽어보자. 갈등으로 생긴 세대간 틈을 해석적 소통을 통해 메꾸어 보자. 그것이 기독교 고전 리뷰를 하고자 하는 목적이다.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을 쓰기 위해 참고한 서적이 534권이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 한 권 책을 쓰기 위해 작은 도서관 분량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기독교 고전 명작 7권을 먼저 읽고 한 권씩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지루한 책 리뷰는 잊어버리자. 천혜향의 부드러운 껍질을 까듯 이제 고전의 향기 속으로 들어가 책린이가 되어보자. “지혜가 너를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잠 2:20). 임훈 목사
  • 2021.11.14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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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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