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의 달인
[봉사의 달인] 박봉남 권사(여선교회 성미실장)
  • “성미에는 감사와 사랑, 섬김과 나눔이 담겨있죠” 성미실 봉사하며 성도들의 정성에 날마다 감동 한 포대에 10㎏씩 담아 어려운 성도에게 전달 주일이 되면 많은 성도들이 한 주간 정성껏 모은 성미를 교회에 가지고 온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밥을 지을 때마다 모은 쌀이다. 성미는 성도들의 기도와 이웃을 섬기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기에 더없이 소중하다. 여선교회 성미실은 모아진 성미를 쌀포대에 담아 각 교구의 어려운 성도에게 전달하며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고 있다. 주일 오전 6시부터 오후 2시까지 대성전 제5출입구(한강둔치 방향)와 대성전 지하 1층 영등포대교구실 맞은편 성미함으로 가면 봉사자들이 밝은 미소로 성도들을 반긴다. 성도들의 편의를 위해 대성전 지하 1층 대교구실 주변으로 4곳의 성미함이 추가로 비치되어 있다. 성미실은 실장 박봉남 권사를 포함해 5명이 봉사하고 있다. 이들은 성미가 들어오면 그 위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한 후 함에 담아 보관한다. 박 권사는 “성미는 각 교구의 추천을 받아 생활이 어려워 쌀이 필요한 성도들에게 전달된다. 나누고 섬기는 귀한 손길이 이어져 이웃들의 소중한 양식이 된다”며 많은 성도들이 동참해줄 것을 부탁했다. 박봉남 권사는 2005년 여선교회에 와서 봉사를 시작했다. 성찬실에서 봉사하다가 2019년에 성미실로 옮겼고 2020년부터 실장으로 섬기고 있다. 성도들이 성미를 가지고 오면 포대에 10㎏씩 바로 담아 묶어놓는다. 코로나19 이전에 매달 3500㎏ 이상의 성미가 모아졌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양이 많이 줄었지만 지금도 매월 평균 2000㎏의 성미가 모인다. 박 권사는 성찬실 봉사를 하면서 날마다 성도들의 정성에 감동한다.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께서 성미를 모아 한짐을 짊어지고 힘겹게 오시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어요. 코로나로 인해 교회에 못오시니 계속 성미를 모았다가 가져오신거죠. 그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성미를 택배로 보내는 성도도 있다. 특히 코로나로 교회 출입이 제한됐던 지난해에는 성미 택배가 많이 들어왔다. “8월 14일에는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백미 20㎏짜리 2포대가 성미실로 배달됐어요. 어느 분이 보내주신 것인지 적혀있지 않지만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죠.” 박 권사는 1989년부터 우리 교회 다니기 시작했다. 교구버스를 탈 때 어떤 권사님의 권유로 여선교회 봉사를 시작했다. 봉사는 박 권사에게 축복의 통로가 됐다. “하나님이 신앙을 훈련 시키신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을 알게 되고 그 사이에 함께 기도할 일도 많아지면서 제 신앙도 자라났죠. 살다 보면 꼭 좋은 일만 있지 않잖아요. 속상한 일이 있거나 고난이 와도 하나님이 이겨낼 힘과 지혜를 주세요.”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보며 열심히 봉사한 박 권사에게 기적도 많이 일어났다. 큰 아들이 2년간 허리디스크로 고생했는데 기도로 건강해졌고, 둘째 아들은 좋은 대학에 가고 어려운 시험에 합격해 원하는 직장에 들어갔다. 살던 집도 재건축이 되면서 기도했던 동, 호수가 뽑혀 아파트로 이사도 갔다. 박 권사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인도하심이고 은혜라고 고백한다. “하나님은 정말 좋으신 분이세요. 우리가 늘 주님을 생각하고 이웃을 섬길 때 많은 복을 받잖아요. 성미는 가장 실천하기 쉬운 생활 속의 나눔이에요. 많은 분들이 성미에 동참해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주시길 기도합니다.”
  • 2022.10.21

    [봉사의 달인] 황문성 안수집사(남선교회 보호실)
  • 87세 건강하게 봉사할 수 있는 비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맡은 사명에 충실
    황문성 안수집사는 41년째 남선교회 보호실에서 봉사의 한 우물을 파고 있다. 1982년 사람들이 물밀듯이 교회로 몰려오던 어느 날 주일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황 안수집사의 눈에 봉사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남선교회 봉사자만 보였다. 당시 성령 충만으로 가슴이 뜨거웠던 황 안수집사는 그대로 집으로 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성령을 받으니 봉사를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자진해서 사람들에게 물어서 남선교회 본부를 찾아갔죠. 그때부터 한순간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적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황 안수집사는 보호실에서 봉사를 시작했다. 보호실은 예배가 드려지는 성전은 물론 교회 곳곳에서 성도들과 목회자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부서다. “지금은 그런 일이 별로 없지만 예전에는 사람들이 많아 정신없는 틈을 노린 소매치기나 절도범들 때문에 예배 드리러 왔다가 어려움 당한 분들을 보면 저도 마음이 안 좋았죠” 황 안수집사는 성도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 수상한 기색을 보이는 이들을 예의주시하며 불미스런 일들을 미연에 방지했다. 황 안수집사는 “항상 많은 성도들이 오고 가다 보니 쓰러지는 분들도 있었다. 미리 배워둔 심폐소생술로 응급조치를 해 도움을 드린 일도 있다”고 말했다. 황문성 안수집사는 올해 87세이다. 젊은 시절 제약회사에 근무할 때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주일 성수는 물론이고 봉사도 빠트린 적이 없다. 퇴직 후에는 수요말씀강해와 금요성령대망회 때도 봉사에 참여했다. 그의 봉사는 코로나19로 거리두기로 예배가 재개되었을 때도 멈춤이 없었다. 예전처럼 성도들이 성전에 나와서 자유롭게 예배드릴 수 있기를 기도하며 봉사에 임했다. 항상 교회를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임무에 충실하게 지내왔다. “사람들이 저에게 건강 비결을 많이 물어봐요. 어렸을 때는 육상선수로도 활동 했지만,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동생들을 키워야 했고 18살부터 일을 했어요. 동생들을 먼저 먹이느라 저는 잘 못 먹고 살았죠. 그래서 더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건강의 복을 주셨다는 말 뿐이에요” 황문성 안수집사는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사다. 믿음이 있으면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다. 내가 봉사하는 이유는 감사 때문이다. 아내가 지금도 내가 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내조해주고, 2남 2녀 사남매도 주님 안에서 장성하여 효도하며 각자 직장에서 신임받으며 활동하고 있다”면서 “형제와 같은 남선교회 회원들과 함께 힘이 닿는 데까지 봉사하면서 좋으신 하나님,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을 증거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소망을 전했다.
  • 2022.07.29

    [봉사의 달인] 염정임 권사 (여선교회 회계1실장)
  • “여선교회 봉사는 내 삶의 목적이고 힘이죠” 27년간 헌신하며 건강의 복 받아 성도 섬기는 귀한 사명 주신 주님께 감사 “여선교회 봉사는 내 삶의 목적이고 힘이죠. 여선교회라는 기도공동체, 섬김공동체에 속해 있다는게 얼마나 든든하고 감사한지 몰라요. 그냥 예배만 드리시는 분들에게 함께 봉사하자고 말하고 싶어요.” 염정임 권사는 “은혜 받았으면 일을 해야 한다”는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해 1995년 12월부터 여선교회 봉사를 시작했다. “맨 처음에는 봉사실에 들어가 헌금봉사, 성전 출입 안내봉사 등을 맡았어요. 예배 시간에도 성도들이 불편한 점은 없는지 살피며 강대상을 바라보고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이런 것이구나 깨달았죠.” 말씀을 들으면서 기도할 때 대성전 십자가에 예수님에 달리신 환상을 보기도 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매주일 봉사하는 것이 어렵기도 했지만 하나님은 염 권사가 힘들 때마다 더 뜨거운 은혜를 부어주셨다. 염정임 권사는 여선교회 기도처 담당 부서를 거쳐 2000년부터 회계차장을 맡아 회계업무를 보고 있다. 여선교회의 모든 운영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22년째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하고 있다. “모두 성도들의 귀한 헌금이고 하나님의 돈이니 예산이 적절하게 사용되도록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피죠. 특히 기억 남는 것은 여선교회에서 실로암식당을 운영했을 때에요. 많이 바빴지만 교직원들과 봉사자들의 식사를 준비하는거라 기쁘고 감사했어요.” 27년간 여선교회에서 봉사해온 염 권사는 “봉사하면 하나님께서 영육간에 강건함을 주신다”고 고백했다. “젊었을 때 늘 몸이 약해서 오래 서 있기도 힘들었고 결혼 후 아이가 4살 때는 난소가 파열돼서 4000㏄나 수혈했어요. 의사들도 이런 약한 몸으로 살아가는게 대단하다고 할 정도였죠.” 주일마다 아침 5시에 교회에 나와 밤 9시 넘어서 집에 들어가면 힘들기도 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는 컸다. 염 권사는 2년 전 또 한 번 기적을 체험했다. 2020년 4월 남편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자동차에 부딪히는 큰 사고를 당했다. 10미터를 날아가 떨어졌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중상을 입었다. 다섯 번이나 위급한 상황에 이르렀고 중환자실에 갈 때마다 그가 의지할 곳은 하나님뿐이었다. 머리뼈와 팔, 다리에 금이 가고 무릎 뼈가 부러져서 앞으로 살아나기도 힘들고 걷기는 더욱 힘들다는 진단을 받았다. 여선교회원들과 교구 식구들의 중보기도로 기적이 일어났고 3개월 입원 후 남편은 건강을 되찾았다. 건강의 축복, 영적 축복을 받아 날마다 기쁘게 생활하고 있는 염 권사는 “봉사는 남들이 알 수 없는 큰 기쁨”이라며 “많은 성도들이 주저하지 말고 여선교회의 문을 두드려 함께 봉사했으면 좋겠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같이 체험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 2022.06.24

    [봉사의 달인]박준상 안수집사(남선교회 외국인 안내실)
  • 외국인에게 선교한다는 마음으로 봉사 세계 각국에서 온 이들 통해 신앙 배워 박준상 안수집사는 지난 5년 동안 주일마다 한주도 빠짐없이 우리 교회를 방문한 외국인들 옆을 지켜왔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주일 하루에 평균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250명 정도이고 교회에 큰 행사나 국제대회가 열리면 4000~5000명씩 교회에 방문했는데 코로나 이후에는 20여 명으로 줄었다가 입국자 격리 해제가 된 이후부터 한주씩 지날 때마다 방문객의 숫자가 눈에 띄게 늘어가고 있다. “우리 교회를 오신 분들은 다들 특별한 마음으로 세계 각국에서 오신 분들이세요. 평생 한 번만 우리 교회를 방문하는 분들이 절반 이상인데 대부분 우리 교회를 배우고 본국으로 가서 적용을 하려는 분들이죠. 그분들 신앙을 보며 제가 오히려 배워요. 또 관광차 오는 분들도 계시는데 그분들에게도 안내를 자세하게 해드려요. 지금은 관광이지만 어느 순간 마음이 변해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항상 누굴 만나든 선교한다는 마음으로 질문에 모두 다 응대를 해요.” 한번은 우리 교회에서 열린 국제 대회에 참석하신 한 목사님께서 가방을 잃어버렸는데 찾아 드린 적이 있다. 가방을 찾는 동안 목사님은 우리 교회에서 마지막 예배를 참석하셨고 예배 후에 가방을 찾아서 잘 귀국하신 일은 특별한 추억이 됐다. 박 안수집사에게도 외국인 안내실 봉사 이전에는 자기만의 봉사처 없이 어린 자녀들의 찬양반 활동을 도와주던 시절이 있었다. 매일 하나님께 달라고만 빌던 신앙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내 할 일을 다해야겠다는 결심한 후 남선교회 외국인 안내실의 문을 두드렸다. 봉사를 시작할 당시의 박준상 안수집사의 영어 실력은 일반인들이 그렇듯 한 문장을 이야기하려면 머릿속에서 단어를 떠올리고 문법을 생각하며 힘겹게 말을 하던 정도였다. 그래서 봉사 시작한 날부터 하루에 3시간씩 영어공부를 했다. 직접 봉사에 뛰어들어 6개월 쯤 되니 외국인에 대한 공포가 사라졌다. 이에 더해 CNN뉴스를 3년 동안 들었고 드라마를 보면서 공부를 했다. 요즘은 유튜브에 있는 영어콘텐츠를 보고 들으며 틈틈이 영어 공부에 매진 중이다. “외국인안내실에 계신 분들은 전문 통역을 하는 분도 계시고 다들 언어 실력이 출중하세요. 정말 잘하는 분인데도 단어장을 옆에 끼고 노력하시더라고요. 단어를 물어보거나 제 공부 방법이 맞는지 아닌지 여쭤보면 확인도 해주시고 모두 고마운 분들이세요.” 박준상 안수집사는 지면을 빌어 성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외국인석이 대성전 발코니에 있는데 대성전 전체가 한눈에 다 보이는 좋은 자리예요. 시간을 잘못 알고 온 외국인들이 올 때가 있어서 자리를 비워두곤 하는데 그 자리를 보고 앉고 싶어 하는 분들이 계세요. 정말 미안하고 감사합니다. 이 마음을 꼭 전하고 싶어요.” 복순희 기자
  • 2022.04.24

    [봉사의 달인] 강삼예 권사 (여선교회 성찬실장)
  • 25년간 여선교회 성찬실 봉사 … 주님께 감사 매년 2000㎏ 포도로 직접 성찬 포도주 담가 요즘은 성도들 위한 성찬키트 제작에 최선 여선교회 성찬실은 거룩한 성찬의식을 위해 수많은 봉사자들이 헌신하며 준비한다. 매년 9월마다 최고의 포도를 선별해 2000㎏의 포도로 성찬 포도주를 담그고 이듬해 6월 숙성된 포도주를 걸러낸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성찬실의 일은 조금 달라졌다. 성도들이 각자 집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성찬키트를 만들게 되면서 일일이 성찬 박스를 접고, 일회용 찬기에 포도주를 담고 무교병과 기도문을 넣어 완성 시킨다. 여선교회 성찬실장 강삼예 권사를 만나러 간 대성전 지하 성찬실은 성찬 키트를 위한 종이박스가 한가득 쌓여있었다. 강 권사는 성찬실원들과 성찬 키트 박스를 접고 있었다.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박스들을 빠른 속도로 접어냈다. "제가 원래 민첩하지 않은데 성찬을 준비할 때는 하나님이 기름을 부어주셔서 손이 빨라져요. 매주 수요예배, 주일예배를 마치고 봉사자들과 함께 3~5시간 동안 성찬 박스를 접어요. 다들 접기의 달인이 돼서 손이 엄청 빨리 움직여요." 위드 코로나 이후 첫 성찬주일이었던 지난해 11월 7일에는 강삼예 권사와 42명의 실원들이 나흘동안 5만5000개의 성찬 키트를 만들었다. 25년간 여선교회 성찬실에서 봉사해온 강 권사는 기적도 체험했다. 7년 전 오른쪽 어깨가 아파 약을 먹어도 통증이 계속됐고 병원에 가도 딱히 치료방법이 없었다. 왼쪽 어깨까지 통증이 심해져 양쪽 팔을 쓸 수가 없었다. 통증이 다리까지 내려와 걷기도 힘들었다. 성찬실에서 봉사하려면 어깨를 많이 사용해야 하는데 계속 봉사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극심한 통증에 진통제를 먹으며 버텼는데 2015년 3월 주일 2부 예배 신유기도 시간에 이영훈 담임목사가 "어깨가 심히 아픈 사람이 치유받았다"고 선포했고 이후 통증이 사라졌다. 강 권사는 기적과 함께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는 손길을 하나님이 잊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강 권사에게 25년 전 성찬실은 어땠는지 물었다. "예전에는 떡을 써는 것이 가장 손이 많이 갔어요. 쌀 5가마를 씻고 물에 불리고 그 다음날 새벽에 건져 방앗간으로 가서 백설기를 만들어오죠. 금요일에 떡을 받아와 굳혀서 토요일 아침부터 5시간 동안 썰었어요. 일일이 도마에 올려놓고 칼로 썰다보니 손은 늘 굳은살이 박히고 상처가 많이 났죠." 강 권사가 봉사를 시작하고 3년 쯤 뒤에 떡을 성찬 크기로 자르는 기계가 들어왔다. 강 권사는 성찬은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고 마시는 일이기 때문에 작은 부분에도 소홀할 수 없다고 말한다. 경건하게 성찬을 준비할 수 있도록 매월 마지막주에는 실원 모두 한끼 금식을 하고, 금요일 아침에는 대교구장들을 초청해 여선교회 회장단과 함께 성찬준비예배를 드린다. "내 힘이 아니라 성령님이 강권적으로 역사해주세요. 하나님이 기름을 부어주셔서 피곤해도 거뜬하게 일어날 수 있어요. 평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며 사는 것이 소망입니다."
  • 2022.03.27

    [봉사의 달인] 박숙희 권사(양천대교구) - 33년간 교회학교 학생들 섬긴 믿음의 교사
  • 방황하는 사춘기 청소년 예수님 사랑으로 섬겨 “오늘도 우리 학생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겠습니다. 학생들이 한걸음 더 주님 곁에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박숙희 권사는 33년간 학생들을 위한 기도로 매주일 아침을 시작했다. 올해로 68세가 된 박 권사는 우리 교회 교회학교에서 22년, 부산 문현순복음교회에서 11년 도합 33년을 교회학교 교사로 섬겼다. 박숙희 권사가 처음 교사에 대한 사명을 갖게 된 것은 부산에서였다. 문현순복음교회를 섬기던 시절, 박 권사는 다음세대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아이들을 말씀 안에서 가르치는 봉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해 교사를 지원하게 됐다. 박 권사는 의도치 않게 우리 교회에서 사춘기로 예민한 중등2부(현 중등교구 생명마을)를, 부산에서는 수험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맡았다. 사춘기 청소년들의 험궂은 행동에 지칠 법도 한데 박숙희 권사는 힘들기보다 오히려 그런 학생들에게 다가가 관심을 갖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섬겼다. 박 권사가 학생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일에 지치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30여 년간 매일 오후 9시가 되면 가정예배를 드렸기 때문이다. 가정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위로와 새 힘을 얻었고 그때마다 하나님께 더 집중하며 문제를 극복할 수 있었다. 박 권사는 교사 생활을 되짚어보면서 신학을 전공하고 주의 종의 길을 걷고 있는 학생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중2 학생인데 한창 사춘기가 심해 반항이 심했습니다. 예배 시간에도 적응하지 못해 늘 아픈 손가락이었는데 그 친구가 좋든 싫든 매주 붙들고 기도해주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로 진학해서 교회에서 봉사를 하더니 저를 찾아와 이제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해주더라구요. 지금은 주의 종의 소명을 받고 귀한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지난해를 마지막으로 이제는 정년교사가 된 박숙희 권사를 대신해 그의 딸이 교사의 사명을 이어가고 있다. 박숙희 권사는 현장에서 물러났지만 제2의 사역으로 3000 기도 용사가 되어 기도로 교회학교를 응원하고 있다.
  • 2022.01.23

    [봉사의 달인] 임주호 안수집사(남선교회 봉사실)
  • 주일 새벽 2시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 교회 중심으로 봉사와 헌신의 삶 드려 매년 성경 5~6독하며 하나님의 은혜 체험 임주호 안수집사는 남선교회 봉사실에서 매 주일 가장 먼저 봉사를 시작하는 35년 차 봉사자다. 임 안수집사는 모두가 잠든 새벽 1시에 일어나 2시 경 교회에 도착한다. 주요 봉사는 수전대(헌금주머니)를 대성전에 배치하는 것이다. 대성전 앞 강대상 아래 테이블 중앙에 수전대를 놓고 나머지 수전대들을 1층에는 90개, 2층에는 75개를 각각의 위치에 놓는다. 수전대를 정렬시키고 난 후 대성전 앞쪽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임주호 집사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한다. “세계 최대의 교회의 성도로서 봉사할 수 있다니 감격스럽고 감사하죠.” 대성전 수전대 배치가 끝나면 출입구로 가서 순복음가족신문과 주보를 성도들이 쉽게 가져갈 수 있도록 정리한다. 가나안성전에 가면 봉사 단짝인 권용호 안수집사를 만나 성전 정리를 한다. 임 안수집사는 “서로 의지도 되고 손발이 잘 맞아 참 좋다”면서 웃음 지었다. 임주호 집사는 1980년대 초반부터 우리 교회를 다녔다. 신앙을 가진 지 얼마 안됐을 때 갑작스레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 2년여 근무를 했고 회사에 있던 교회에서 신앙이 자랐다. 귀국한 뒤 1986년도부터 본격적으로 남선교회 봉사실에서 봉사를 시작했다. 한마디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떤 상황에도 교회 헌신과 봉사를 우선으로 살았다. 평일에는 동작대교구 기도처 관리를 맡아 한다. “코로나19 때문에 교회 문이 닫히고 예배를 드리지 못할 때 안타까웠어요. 평생 습관이 되어서 새벽 1시에는 어김없이 일어나 매일 하던 대로 성경을 읽었죠.” 하루에 10장 이상씩 성경을 읽어 임 안수집사는 매년 성경을 5~6독을 한다. “봉사를 하려면 저녁식사도 오후 5시에 마치고 잠도 7시 이전에는 들어야 해요. 아내 박인숙 권사도 제 신앙생활을 잘 이해해주고 도와주어 감사합니다” 새벽예배 후에는 여의도에 있는 사업장으로 간다. 5년 전부터 구두수선업을 하고 있는 임 안수집사는 출근 후 또 다른 봉사를 시작한다. 인근 빌딩에서 일하는 청소 노동자들은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임 안수집사의 구두수선점을 와서 잠시 차 한 잔을 하며 쉼을 얻는다. 사업장에는 ‘행복으로의초대’도 갖다 놓아서 누구나 보고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사람들에게도 늘 이야기 한다. “항상 말씀의 은혜에 젖어 살고, 기도하니 인생에 근심 걱정이 없고 건강은 덤으로 따라온다”고. “봉사도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셨으니 할 수 있죠. 저도 젊은 시절부터 봉사를 했어요. 많은 분들이 오셔서 하나님을 만나고 복도 많이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복순희 기자
  • 2021.11.28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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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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