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목사의 행복편지
돌‘봄’의 계절
  • 기나긴 겨울 추위가 끝나고 황량했던 나뭇가지에 새순이 하나둘 돋는 모습과 한층 따사로운 햇살을 느끼며 봄이 성큼 다가왔음을 실감합니다. 미국의 작가 다이앤 프롤로브는 “귀 기울여보라. 들리는가? 봄의 달콤한 칸타타가, 눈을 뚫고 나오는 봄의 선율이, 꽃봉오리의 노래가”라며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풍경을 생동감 있게 묘사했습니다. 이처럼 봄은 즐겁고 행복한 이미지입니다. 그래서인지 기나긴 고생이 끝나고 좋은 날이 시작될 때 ‘겨울이 가고 봄날이 왔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봄이 주는 긍정적인 의미가 많지만, 그리스도인의 봄은 이웃을 향한 돌‘봄’이 있을 때 더 따뜻하고 의미있게 다가오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한 경쟁의 시대, 학교에서는 성적순으로 일등과 꼴찌가 정해지고 직장에서는 성과에 따라 직급이 정해집니다. 도태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합니다. 심지어 결혼이나 자식을 키우는 일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경쟁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웃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이겨야 하는 경쟁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경쟁을 강요하는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경쟁을 통해 일등부터 차례를 줄 세우는 것, 다른 사람을 이기고 나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마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전에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게임에서 진 사람이 소금물같이 짜고, 맵고, 신맛이 나는 등 먹기 괴로운 음식을 먹는 벌칙을 받는 장면이 연출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출연자 중 한 사람이 게임에서 이기고 손을 번쩍 들며 “나만 아니면 돼!”라고 소리쳤고 이 같은 반응이 대중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이니 웃음을 주기 위해 과도하게 표현한 것이겠지만 얼마나 경계해야 하는 말인지 모릅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은 절대로 “나만 아니면 돼!”와 같은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고통의 쓴잔을 마셔야 한다면 나도 함께 마시겠다고 나서며 모두가 함께 고통을 분담하는 것이 기독교적인 방식입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 앞에 “나만 아니면 돼”라며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함께 울어주고 동참하는 그것이 바로 이웃을 향한 돌봄과 사랑의 자세입니다. 이처럼 돌봄은 가진 것을 나누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짊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보며 고통을 분담해야 할 이웃은 누구일까요? 사전은 이웃에 대해 ‘가까이에 사는 사람’ 이라 정의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웃을 물리적 거리의 개념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같은 동네, 같은 민족, 친한 사람이 이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이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눅 10:29~37). 성별과 국적과 상관없이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봐야 할 이웃입니다. 주위를 둘러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며 끊임없는 경쟁으로 혹독한 겨울과 같은 세상에 따스한 봄을 전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2024.03.01

    준비된 자가 쓰임 받습니다
  •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1867~1957)는 20세기 최고의 클래식 음악 지휘자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1867년 3월 가난한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난 토스카니니는 어린 시절 음악에 재능을 보여 국립 음악원의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가난한 집안 형편을 생각해 아들의 입학을 거부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음악원장이 토스카니니가 장학금을 받을 수 있게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가까스로 음악원에 들어온 그는 첼로와 작곡, 지휘와 관련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음악가로 성장하고 있던 그에게 큰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시력이 나빠져 눈앞에 있는 악보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음악가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이었습니다. 그러나 토스카니니는 포기하지 않고 악보를 통째로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악보를 얼마나 열심히 외웠는지 악기별로 따로 악보를 외워서 옮겨 적을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피나는 노력 끝에 수석 졸업까지 하게 된 그는 세계 최고의 오페라 극장인 밀라노 스칼라 극장에서 첼리스트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브라질에서 오페라 「아이다」 공연을 앞두고 있을 때였습니다. 연주자들과의 다툼으로 화가 난 지휘자가 공연 도중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갑자기 공연장을 떠났습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그날 연주해야 할 곡들을 전부 암기한 토스카니니를 지휘자로 세웠습니다. 그는 연주가 끝날 때까지 한 번도 악보를 펼치지 않고 지휘하며 공연을 성공리에 마쳤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활약하게 되었고 세계적인 명지휘자 반열에 올랐습니다. 토스카니니는 갑자기 나빠진 시력에 좌절하는 대신 자신의 약점을 더 뛰어난 연주자가 되기 위한 기회로 삼았고 그 노력이 빛을 발하여 연주자 이상의 훌륭한 지휘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에 보면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결혼한 지 7년 만에 남편을 잃고 수십 년을 과부로 살았지만 절망하고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성전에서 주야로 금식하고 기도하며 주님 뵙기를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하루아침에 과부가 된 안나 선지자는 예기치 못한 시련을 하나님과 가까이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84세 때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떤 인생을 살고 계십니까? 옛말에 양병십년 용병일일(養兵十年 用兵一日)이란 말이 있습니다. 병사를 키우는 데는 10년이 걸리지만, 병사를 사용하는 데는 하루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로 하루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10년을 준비한다는 의미입니다. 인생의 여정 가운데 고난과 절망의 밤을 마주하게 될지라도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의 때를 준비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준비할 때 인생의 먹구름을 거두시고 희망의 햇살을 비춰주시는 하나님의 때에 존귀하게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 2024.02.02

    함께 성장하는 새해
  • 샌프란시스코 북쪽 해안에는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레드우드 국립공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은 암반이 깔린 척박한 땅이라 식물이 자랄 수 없는 토양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식물이 살아남기 힘든 이곳에 세계에서 가장 높이 성장하는 레드우드가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나무는 수명이 수천 년이나 되기에 높이가 100m 넘게 자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레드우드와 같이 거대한 나무가 자랄 수 있는지 연구하던 학자들은 나무의 뿌리가 아주 크고 길게 뻗어 있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조사해보니 레드우드의 뿌리는 고작 2~3m에 불과했습니다. 큰 몸통을 지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이는 뿌리의 크기에 학자들은 의아했습니다. 연구 결과 레드우드의 뿌리는 옆의 나무의 뿌리와 촘촘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렇게 얽힌 뿌리들을 통해 커다란 몸통을 지탱하며 서로의 영양분을 나누고 거센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었던 것입니다. 흔히 인생을 끝없는 경쟁이라고 합니다. 상대방을 이겨야 원하는 것을 이루고 성공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레드우드를 통해 혼자가 아닌 서로 힘을 합력할 때 위기도 더 잘 극복하고 잘 자랄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은 레드우드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일인불과이인지(一人不過二人智)라는 말처럼 혼자서는 두 사람의 지혜를 넘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여러 명이 함께 힘을 합하는 것만 못하다는 사실을 명심하며 함께 협력해야 할 이유입니다. 성경도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전 4:9~10). 하나님은 우리에게 함께 기도하고 말씀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를 주셨습니다.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과 손을 잡고 함께할 때 우리는 더 높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우리의 삶은 서로를 지탱해주는 삶입니다. 인생의 거센 바람이 불어도 서로를 붙잡아 줄 때 문제의 파도 앞에 흔들려도 아주 넘어지지 않고 넘어졌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2024년 새해에는 새로운 다짐을 하며 더 성장하고 발전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성장은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한마음 한뜻으로 함께 성장하기 힘쓰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갈수록 우리는 그 사랑 안에서 주변의 이웃과 형제자매와 연합하게 될 것입니다. 서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각 지체를 연결하는 마디가 되어 아름다운 연합을 이루는 것이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고 말씀 안에서 날마다 성장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혼자보다는 둘, 둘보다는 셋이 함께하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해가는 새해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 2024.01.05

    기다리며, 닮아가며
  • ↵ 너새니얼 호손의 『큰 바위 얼굴』은 산골짜기 시골 마을에서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위인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단편소설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어니스트는 어머니로부터 마을 입구에 있는 사람 형상의 큰 바위 얼굴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언젠가 이 마을 출신 중에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위대한 인물이 나타날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아직 그 사람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니스트가 성장하는 동안 마을 사람들이 큰 바위 얼굴을 닮았다고 칭송하는 여러 명의 인물이 등장했습니다. 수완이 좋은 상인으로 돈을 많이 번 부자, 여러 전쟁을 승리로 이끈 유명한 장군, 뛰어난 말솜씨로 대통령감으로 거론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린 정치가, 아름다운 글을 쓰는 시인과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 마을에서 오래도록 기다려 온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위인이 아니었습니다. 외형적으로 큰 바위 얼굴을 닮지 않은 것도 있지만, 어니스트는 이들에게서 무엇인가 모자란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부자는 영악하고 탐욕이 가득해 나누는 일에 인색했고 장군에게서는 지혜와 자비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정치인에게서는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며 시인 역시 시에 담긴 훌륭한 사상과 일치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여러 번의 실망에도 불구하고 어니스트는 여전히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위대한 사람이 나타나리라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자기도 큰 바위 얼굴처럼 되기를 소망하며 바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평범한 농부였던 어니스트는 마을에서 진리와 사랑을 전하는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뿐 아니라 먼 곳에 있는 사람들까지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찾아오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니스트가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교를 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니스트의 얼굴이 큰 바위 얼굴과 정말 닮았어요!” 그곳에 있던 마을 사람들은 어니스트의 얼굴과 큰 바위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니스트는 평생을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위인을 기다리며 자신도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 이웃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미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을 간절히 기다려 온 덕분에 어니스트 자신도 큰 바위 얼굴을 닮아가고 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불리는 우리 역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어니스트가 위대한 사람을 기다리며 큰 바위 얼굴을 닮아간 것처럼,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사는 우리의 삶이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기를 바랍니다. 성탄의 계절인 12월을 맞아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욱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 2023.12.01

    절대 감사
  • 2023.11.24

    우리 인생을 연주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 천재 플루티스트에서 최전방 선교사로 변신한 송솔나무 씨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송솔나무라는 특이한 이름은 예명이 아니라 아버지가 지어주신 본명입니다. ‘허준’, ‘이산’과 같이 인기 드라마 OST를 작곡하며 플루티스트로서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을 만큼 인정받은 그이지만 인생이 늘 탄탄대로였던 것은 아닙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쫓기듯 한국을 떠나 미국에 있는 친척 집에 얹혀살기도 했고, ABC 알파벳도 모른 채 미국에 가게 되어 학교에서 말 한마디 하는 것도 힘들었으며 친구들은 그런 그를 왜소한 동양인이라고 따돌렸습니다. 괴롭히는 아이들의 눈을 피해 화장실에 숨어있던 어느 날, 그는 변기 위에 쭈그리고 앉아 하나님께 따지듯 물었습니다. “저는 실수로 태어난 것 아닌가요!” 그러자 하나님이 그를 찾아오셔서 “나는 네 머리카락까지 세는 하나님이란다. 내가 널 만들었단다”라며 위로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때 어디선가 플루트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때부터 플루트의 매력에 빠진 그는 밴드부에 들어가 플루트를 배웠고 플루트 연주자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플루트 연주자로 성공하기 힘든 약점이 있었습니다. 알레르기성 천식으로 인해 폐를 64%밖에 사용할 수 없었고, 새끼손가락이 남들보다 한 마디 정도 짧았기 때문입니다. 불리한 조건 속에서 누구도 의지할 사람이 없었던 그는 하나님께 매달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13세라는 어린 나이에 미국 줄리아드 예비학교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뉴욕의 링컨센터와 카네기 홀에서 독주를 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고 명실공히 ‘하나님의 연주자’로 전 세계 118개국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플루티스트로서 복음을 전하던 그가 얼마 전 갑자기 우크라이나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누구라도 와서 도와 달라”는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의 절규가 그의 마음을 울렸기 때문입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우크라이나로 간 그는 최전방 전투지역에서 구호물자를 전달하거나 어린이들, 노약자들을 치료해 주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을 오가는 치열한 전투 현장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송솔나무 선교사는 지금까지 자신을 인도하신 하나님에 대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늘 ‘주님, 금과 같은 인생을 만들어주세요’라고 기도하며 남들 눈에 멋있어 보이길 원합니다. 하지만 정말 멋있는 것은 금 같은 악기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날 때가 아니라 볼품없이 초라한 악기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아름다운 소리가 흘러나올 때입니다. 연주자에 따라서 소리가 달라지듯 주님께서 우리 인생을 연주하시면 상상을 초월하는 소리가 납니다. 하나님이 연주하시면 우리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때때로 삶이 초라해 보일지라도 좌절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우리 인생을 연주하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감사를 고백해봅시다. 언제나 우리 인생을 책임져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것으로 사랑의 결실을 맺는 11월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2023.11.03

    가장 ‘나’다울 때
  • 우리가 스스로 가장 나답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나답다는 의미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특정 사건을 극복하기 위해 무언가 도전하는 것도 나다운 모습이고 평소 자기답지 않게 무엇인가 포기하는 것도 나다운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대의 지성으로 불렸던 이어령 교수님은 나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시도하며 무언가가 되어가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나답다는 것은 ‘이런 내가 되고 싶다’라는 지향점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런 목표도 없이 삶이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면 자기 자신을 잃을 뿐 아니라 의미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은 사람이 자기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나답게 살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 돌아보게 합니다. 주인공 그레고르는 새벽부터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던 성실한 영업 사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잠에서 깬 그는 자신이 커다란 벌레로 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놀란 것도 잠시 그레고르는 벌레가 되어서도 자신을 걱정하기보다는 출근을 못 하는 것, 그로 인해 가족들이 생활고에 시달리게 될 것을 걱정했습니다. 이같이 그의 삶에는 사회를 구성하는 ‘영업 사원’,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의 그레고르만 있을 뿐 자기 본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상황과 조건 속에 떠밀려 살았던 그레고르의 마지막은 비참했습니다. 일생을 바쳤던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해고 통보를 받았고 가족들은 돈을 벌지 못하는 그를 귀찮고 부담스럽게 여겼습니다. 직장에서는 유능한 영업 사원으로, 가정에서는 유일하게 생계를 책임지며 ‘꼭 필요한 존재’였던 그레고르는 벌레가 되면서 ‘혐오스러운 존재’ 심지어는 ‘없어졌으면 하는 존재’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애물단지로 전락한 그레고르는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아서 생긴 상처로 인해 죽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확인한 가족들이 안심하며 소풍을 나서는 모습으로 소설은 마무리됩니다. 사람이 나다운 모습을 잃어버릴 때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게 되는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우리 시대의 영적 거장 중 한 명이자 목회자들의 목회자라고 불렸던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저서 『잘 산다는 것』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성도란 하나님 편으로 구별된 상태를 뜻합니다. 이 단어는 인간이 톱니바퀴가 아님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상황의 물결에서 건짐을 받아 하나님이 하시는 중요한 일을 위해 선택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가 세상의 기준에 휩쓸려 어느새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먹고사는 오늘의 문제에만 끌려 다니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글귀입니다. 우리의 삶이 나다움을 잃고 세상에 떠밀려 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직장에서 얼마나 유능하고 가정에서 얼마나 책임감이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예수님을 닮기 위해 애쓰고 있는지 또 하나님이 하시는 존귀한 일에 얼마나 힘을 내어 동참하고 있는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며 나를 나 되게 하시는 예수님 안에서 참된 나다움을 발견하는 10월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2023.09.27

    또 하나의 언어 ‘침묵’
  • 우리는 말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정제되지 않은 수많은 말들이 의도와 상관없이 무분별하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결핍이 아닌 과도함이 우리로 하여금 참과 거짓을 분별하기 힘들게 만들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말을 아끼는 것이 필요합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는다고 하지만 ‘지혜는 들음으로 생기고 후회는 말함에서 생긴다’라는 영국 속담에서 알 수 있듯 백 마디 잘해서 얻는 이득보다 한 마디 실수로 인한 손해가 더 큰 법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말과 관련된 속담이 많습니다. ‘말이 씨가 된다’처럼 가볍게 한 말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니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 한 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을뿐더러 순식간에 멀리까지 퍼져 나가기 때문에 말을 신중히 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처럼 아무리 비밀스럽게 한 말이어도 반드시 다른 사람 귀에 들어가게 되어있으니 듣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도 말을 조심하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말은 보태고 떡은 뗀다’는 속담은 말을 여러 사람에게 옮길수록 부정적인 것이 더해지고 떡은 여러 사람을 거칠수록 줄어든다는 의미입니다. 그 예로 남편과 싸웠다는 말이 몇 사람을 거치면 이혼을 고민하고 있다는 소문으로 와전되는 상황을 들 수 있습니다. 남들이 잊어줬으면 하는 말일수록 더 또렷이 기억되고 감추고 싶은 말일수록 급속도로 전파되기 마련입니다. 공든 탑을 하루아침에 무너트리는 것도 ‘말’입니다. 그러므로 할까 말까 망설여지는 말은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면 좋겠지만 말이 많으면 많을수록 오해만 생길 뿐입니다. 우리가 말의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침묵의 힘을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유창한 말보다 굳게 다문 입이 더 영향력 있는 메시지를 전달할 때가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기 전 심문을 받으시던 예수님은 불합리한 증언들이 난무하는 상황에서도, 갖은 모욕과 조롱에도 묵묵히 침묵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심으로 죄로 인해 절대 절망에 처한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희망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또한, 침묵은 입을 다무는 행위를 넘어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행위입니다. 내가 할 말을 줄이고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관심을 가져보십시오. 말의 실수가 줄어들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더 이해하고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민족의 명절 추석이 다가오는 9월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흩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오랜만에 만나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입니다. 소중한 날, 사소한 말실수로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이 없도록 부정적인 말, 험담하는 말을 들을 때는 침묵의 언어를 사용해봅시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귀 기울이며 화목을 이루고 사랑으로 하나 되는 시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 2023.09.01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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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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