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목사의 행복편지
시선
  • 우리는 일상 속에서 수많은 상황을 마주하고 다양한 장면을 목격하며 살아갑니다. 아름다운 자연이나 선한 행동을 보며 감동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유혹과 어둠이 가득한 세상을 마주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무엇에 시선을 고정하는가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느냐에 따라 마음과 생각이 형성되고 나아가 우리의 행동까지도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볼 때는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지만 풍랑과 바람에 시선을 빼앗겨 두려워하는 순간 물에 빠졌습니다(마 14:30).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할 때 흔들림 없는 믿음과 평안을 가질 수 있다는 교훈을 줍니다. 반대로 세상의 두려움과 어려움에 시선을 빼앗기면 곧 혼란과 불안 속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교훈을 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작은 마을에 오래된 집이 하나 있었는데 그 집에는 커다란 창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창문은 오랜 세월 동안 먼지와 얼룩으로 가득해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집 주인은 창문을 방치한 채 살면서 창밖을 보며 이웃의 집이 지저분하고 정리가 안 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매일 창밖을 보며 ‘왜 저 집은 그렇게 엉망일까?’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던 중 친구가 찾아왔고 집 주인은 친구에게 이웃집이 얼마나 더럽고 정리되지 않았는지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친구는 잠시 창문을 유심히 보더니 “창문을 한 번 닦아보는 게 어떨까?”라고 제안했습니다. 마지못해 창문을 닦기 시작한 집 주인은 깜짝 놀랐습니다. 창문이 깨끗해지자 이웃집이 전혀 지저분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깔끔하고 정리된 모습이 보였던 것입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창문에 묻은 먼지로 인해 왜곡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시선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창문을 닦아야 바른 시야로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날마다 우리 마음과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유혹과 불안, 편견에 사로잡혀 왜곡된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인도하심에 시선을 고정할 때 비로소 세상의 혼란 속에서도 평안과 소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시편 123편 1절)라는 고백처럼 우리의 시선이 향해야 할 곳은 언제나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는 삶은 우리에게 혼란과 불안을 이겨내고 평안을 누리는 길을 열어줍니다. 세상의 불안이 우리를 덮치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에 집중할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어디에 두고 살아가는지를 점검하며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세상의 어두움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과 소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 2024.10.04

    모두를 위한 길
  • 넓은 숲속에 두 개의 마을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나무의 마을’, 다른 하나는 ‘꽃의 마을’이라 불렸습니다. 나무의 마을은 나무를 가꾸는 데 뛰어나고 꽃의 마을은 꽃을 장식하는 데 뛰어난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마을 사이에는 큰 나무 벽이 있어 서로 단절된 채 살았습니다. 어느 날 두 마을의 어린 소녀들이 우연히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벽을 넘어서 서로의 마을을 방문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벽이 허물어진 후 나무의 마을 사람들은 꽃의 마을에서 꽃 장식법을 배우고, 꽃의 마을 사람들은 나무의 마을에서 나무 가꾸는 기술을 익혔습니다. 이렇게 두 마을은 서로의 장점을 살리며 협력하여 더욱 풍요롭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 갔습니다. 이 이야기는 기원전 3세기 동서양에서의 대규모 토목사업을 연상케 합니다. 중국의 만리장성은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어선으로 국경을 보호하고 국가의 안정을 도모했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중국은 외부와의 교역 및 문화적 교류가 제한되었고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상태를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반면, 로마제국의 도로망은 제국 전역을 연결해 군대의 이동을 빠르게 하고 상업과 무역을 활성화했습니다. 도로망을 통해 다양한 문화와 사상이 교류할 수 있었고 이는 로마 문화를 더욱 풍부하고 다채롭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정보와 지식의 확산을 통해 더욱 연결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방송은 과거의 교역로처럼 문화와 사상을 교류하며 보다 수평적이고 평등한 사회구조를 구축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과거의 수직적이고 계층적인 사회구조에서 벗어나는 변화를 의미하며 협력과 공유의 중요성을 부각시킵니다. 우리 사회가 독점과 소유의 개념이 점차 사라지고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만들어 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성경의 가르침과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바리새인들은 방어적이고 폐쇄적인 성벽을 세우는 사람들로 묘사됩니다. 그들은 기득권을 보호하고 외부와의 소통을 제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방어적인 자세와는 달리 모든 이에게 열린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시며 사람들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그들과 소통하셨습니다(요 14:6). 예수님은 죄인과 세리와도 함께 식사하시며 정죄하기보다는 그들의 삶에 깊이 들어가 이해하고 사랑을 바탕으로 구원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는 당시 사회적 편견과 갈등을 넘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바벨탑처럼 성벽을 쌓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여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용납하고 허용하며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협력과 나눔을 통해 공동체의 번영을 추구해야 합니다. 서로의 길을 열어주고 이해와 사랑으로 교류하며 함께 성장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때입니다.
  • 2024.08.30

    주님을 따르는 인생
  • 세상에는 다양한 삶이 존재합니다. 같은 나무를 보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는 과학자는 자연의 원리를 탐구하여 삶을 더욱 편리하게 만듭니다. 나무의 아름다움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시인은 우리의 감성을 풍요롭게 하고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합니다. 나무를 존재하게 한 창조주를 찬양하는 신앙인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생명력 있는 삶을 살도록 인도합니다. 이와 같이 다양한 시각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다채로운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중요한 것은 헛된 가치를 좇지 않도록 경계하는 일입니다. 잘못된 가치에 매몰되면 삶은 본질에서 멀어지게 되고 참된 행복과 만족을 누리기 어렵게 됩니다. 진짜 가치를 바라보지 못하고 가짜에 속는 어리석음이 어떠한지 보여주는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골동품 수집가로서 귀한 물건들을 많이 소유하고 있었는데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6개월 동안 집을 비우게 되었는데 그사이 자신의 귀한 골동품이 도난당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고심 끝에 동네 뒷골목의 화방에 가서 값싼 그림을 구매했습니다. 그리고 그림 밑에 값비싼 가격표를 붙여두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예상대로 도둑이 들었습니다. 도둑은 진짜 귀한 골동품은 그대로 둔 채, 가짜로 비싼 가격표를 붙인 그림들만 훔쳐 갔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종종 겉으로 드러나는 외적인 가치에 속아 본질적인 가치를 놓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탄은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거짓 행복에 비싼 가격을 붙여 놓고 사람들이 거기에 몰두하게 만듭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사탄이 붙여 놓은 가짜 행복에 속아 하나님이 예비하신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모른 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따르며 살아야 할까요. 답은 간단하고 명확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하나님만 따르며 사는 것입니다. 그림자를 떠올려보십시오. 태양을 바라보고 걸으면 우리 뒤에 그림자가 따라옵니다. 아무리 그림자를 떨쳐내려고 애써보아도 태양을 보고 걸어가는 한 그림자는 언제나 우리 뒤에 붙어 있습니다. 반대로 태양을 등지고 걸으면 우리 앞에 그림자가 생깁니다. 앞에 있는 그림자를 잡으려 하면 할수록 더욱 멀어집니다. 그 누구도 결코 이 그림자를 잡을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등지고 복을 구하며 사는 사람에겐 그 복이 절대로 오지 않습니다. 손에 닿을 듯 잡힐 듯 보이지만 절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반대로 주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주님이 주시는 축복이 따라옵니다. 축복은 우리의 노력이나 계획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을 바라보고 따를 때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을 등지고 얻는 축복은 일시적이고 헛된 것이며 참 기쁨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복잡한 인생길에서 방황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참된 행복과 평안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 2024.08.02

    진정한 친구
  •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은 뛰어난 문학적 통찰과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깊은 감동과 교훈을 전해주는 작품입니다. 등장인물인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와 가난한 군인 바사니오는 모두 신실한 기독교인입니다. 어느 날 안토니오는 바사니오에게 청혼을 위한 경비를 빌려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안토니오는 모든 재산이 해상무역을 하는 상선에 있어 당장 빌려줄 돈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소중한 친구를 위해 자기 재산을 담보로 고리대금업자인 샤일록에게 돈을 빌리러 갑니다. 샤일록은 기한 내에 돈을 갚지 못하면 안토니오의 가슴살 1파운드를 받아가겠다는 조건으로 돈을 빌려줍니다. 바사니오는 안토니오에게 빌린 돈으로 청혼에 성공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곧 도착할 줄 알았던 안토니오의 상선이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못해 빌린 돈을 갚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에 샤일록은 가슴살 1파운드를 독촉하며 안토니오를 재판장에 세웁니다. 심장 근처의 살을 1파운드나 내놓으라는 것은 사실상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법정에서 바사니오는 샤일록에게 원금의 3배를 갚아주겠다고 말하며 자비를 베풀 것을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샤일록은 그 제안을 거절하고 계약서대로 살을 떼어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안토니오의 변호사가 말했습니다. “계약서에는 가슴살 1파운드만 가져간다고 되어 있지 피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따라서 피는 단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됩니다. 만약 피 한 방울이라도 흘리게 되면 계약을 위반한 죄로 당신의 땅과 재산은 베니스 정부로 귀속될 것입니다.” 변론을 들은 재판장은 변호사의 주장에 동의했고 샤일록은 아무 소득 없이 패소하게 됩니다. 솔로몬의 명판결과 같은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끝까지 신뢰를 지킨 안토니오와 바사니오의 우정 때문일 것입니다. 안토니오는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친구 바사니오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행복하게 살 것을 당부합니다. 바사니오 역시 빌린 돈의 3배를 갚겠다며 친구 안토니오를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성경의 다윗과 요나단 이야기 역시 참된 우정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요나단은 사울의 장남이자 블레셋 군사를 여럿 쓰러트린 용맹한 용사로 실력으로나 혈통으로나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요나단에게 다윗은 왕권을 위협하는 존재였지만 그는 다윗을 진심으로 위하며 돕는 일에 힘썼습니다. 이처럼 진정한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보다 더 놀라운 친구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셨고, 예수님을 따라 제자의 길을 가는 우리를 친구라 부르십니다. 형제보다 더 친밀한 친구가 되어 주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진정으로 성공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에 힘입어 우리도 이웃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어 주고,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2024.07.05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 17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적장애인 줄 알고 살다가 천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사람이 있습니다. 상위 2% 지적능력을 가진 사람들만 모이는 멘사 최고 경영자가 된 빅터 세레브리아코프의 이야기입니다. 1912년 영국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는 말투가 어눌했고 학교 수업 내용을 따라가는 것조차 어려워 친구들에게 바보라고 놀림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학교 선생님도 “너는 공부해도 소용없다. 네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노동뿐이다”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15살에 학교를 자퇴하고 여기저기 전전하며 겨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지능 검사를 받았습니다. 놀랍게도 당시 육군에서 한 검사 결과 중 최고 수치의 IQ가 나왔습니다. 군에서는 그에게 신병 교육을 담당하는 중요한 업무를 맡기는 파격적인 인사 조치를 취했습니다. 빅터는 그 임무를 누구보다 훌륭하게 수행했고 육군으로부터 장교 자리를 제안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장교 제안을 거절하고 군을 제대한 후 이전에 꿈꾸었던 목재 회사에 취업했습니다. 단순히 전에 하지 못하던 일을 하게 된 것을 넘어 목재 등급을 자동으로 측정하는 기계를 발명해 영국 목재 표준위원회 회장 자리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IQ를 알게 된 빅터의 인생이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 것입니다. 1949년에는 아내의 권유로 멘사에 가입했고 거기서도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멘사의 회장을 역임하며 조직이 국제적으로 확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977년 멘사에서 만든 퍼즐이 한 잡지에 게재되면서 회원 가입 신청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을 때 일입니다. 빅터는 가입 절차를 체계화시켜 입회 시험을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많은 이들이 전보다 손쉽게 자신의 지능을 평가받을 기회를 얻게 되었고 멘사는 100여 개국 11만 명 회원을 가진 단체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빅터가 평생을 지적장애인이라고 알고 살았다면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천재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천재에 걸맞은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의 정체성은 그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성경은 우리의 존재, 정체성이 어떠한지 설명한 후 그에 합당한 삶을 살라고 권면합니다. 성경이 언급하는 우리의 정체성은 세상과 율법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갈 4:8~9).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종의 신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뀌고 축복받은 일생을 살게 됩니다. 우리의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로 바뀐 줄도 모르고 세상의 기준과 판단, 부정적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근심하고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자 왕 같은 제사장들이며 거룩한 나라요 소유된 백성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기대하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받은 복이 무엇인지 정확히 깨닫고 이를 누리며 사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2024.05.31

    부족함을 채우는 사랑
  • 인생을 살다 보면 부족함으로 인해 불편하고 스트레스 받는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건강이든, 물질이든, 관계이든, 외모이든 어쩌면 모든 것을 만족하는 것보다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부족함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파라다이스’라는 말은 걱정과 근심이 없는 이상적인 곳을 나타내고자 할 때 사용되곤 합니다. 그러나 이 용어의 원래 뜻은 이집트어에서 나온 것으로 아무것도 없는 쓸쓸한 광야를 의미합니다. 물도 먹을 것도 모든 것이 부족한 광야에서 절망하는 사람이 있고, 나무와 꽃을 심고 집을 지으며 새로운 희망을 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아무 것도 없는 광야가 새로운 가능성의 터전이 될 때 그곳이 낙원, 파라다이스가 됩니다. 오래전 한 음료 회사에서 ‘2% 부족할 때’라는 음료수를 출시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반응은 대단했습니다. 주스라고 하기에도 2% 부족하고 물이라고 하기에도 2% 부족한 맛이 많은 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았습니다. 주스를 마시고 싶은 사람도, 물을 마시고 싶은 사람도 찾는 음료수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부족함이 때로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을 가집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서로의 부족함을 이해하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겸손을 배우고 다른 사람을 살피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부족함은 주님을 만나는 자리, 주님의 능력이 머무는 공간이 됩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부족함을 알고 주님 앞에 엎드리는 사람에게 한없는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그래서인지 사도 바울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 고백했습니다(고후 12:9).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함을 탓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부족해서 비어 있는 공간을 은혜로 채워주시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잘나서, 선한 일을 많이 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심지어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주시기까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롬 5:8). 하나님의 사랑은 ‘때문에’가 붙는 조건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때때로 우리에게 하나님을 실망시켜드리는 부족한 모습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품어주십니다. 가정의 달 5월입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입양의 날 그리고 부부의 날과 같이 가족을 위한 다양한 기념일이 있어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시기입니다. 아무 조건 없이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부모와 자녀 간에, 형제자매간에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조금은 부족하고 못나 보이는 그 모습을 품어주는 가족이 있기에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쉽게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사랑이 가득한 5월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 2024.05.03

    성숙한 미래를 향해
  •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리더십의 의미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 말이 한 조직의 지도자로서 구성원들을 강력한 힘으로 이끄는 역할로만 이해되었습니다. 그래서 불도저 같은 추진력, 좌중을 압도하는 강한 카리스마로 위기 상황을 돌파하는 모습을 리더의 주요 덕목으로 꼽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리더십은 강압적인 태도와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권위적인 모습으로 변질되기 쉬우며 지도자의 부패와 권력 남용이라는 부작용을 가져왔습니다. 이에 따라 지도자의 새로운 자질이 요구되었고 ‘섬김의 리더십’이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리더는 구성원들을 섬기면서 동시에 조직 구성원들 모두가 공동의 목표에 도달하도록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또한 구성원이 가지고 있는 잠재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이를 통해 모두의 성장과 발전을 도모합니다. 이 같은 모습을 잘 보여 준 사람은 이삭토스트 김하경 대표입니다. 그녀가 생활고를 겪던 평범한 주부에서 전국에 800개가 넘는 매장을 보유한 프랜차이즈 대표가 될 수 있었던 성공 비결은 섬김의 리더십에 있었습니다. 남편의 건강 악화로 생계를 혼자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이르자 아침 7시부터 새벽 1시까지 하루 16시간, 주 6일을 일하며 토스트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고된 노력을 보상해주듯 손님들이 몰려와 많을 때는 하루에 1500개의 토스트를 팔기도 했습니다. 장사가 잘된 덕분에 힘든 시절을 이겨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파트 단지에서 좌판을 펼치고 장사하는 젊은 부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부부의 딱한 사정을 듣고 “나도 토스트 장사로 일어났으니 당신들도 도전해보세요”라며 보증금 8000만 원에 10평짜리 가게를 얻어주며 토스트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렇게 이삭토스트 가맹점이 시작되었습니다. 김하경 대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가맹점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기 위해 시작한 만큼 다른 프랜차이즈의 가맹점 운영 방식과 다릅니다. 보통 가맹비용이 1000만원 이상인 것과 달리 이삭토스트는 가맹비가 전혀 없습니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 가맹점주들을 ‘가뭄을 만난 나의 이웃’으로 여기며 “내가 이 땅에 살아있음으로 인해 한 사람이라도 행복하다면 그게 성공”이라고 생각했기에 가능한 결정이었습니다. 김하경 대표가 자신의 이익보다 직원들과 가맹점주들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며 섬길 수 있었던 이유는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러 왔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삶을 본받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시대 지도자들이 섬기는 자세를 가지고 리더십을 발휘할 때 우리 사회가 한층 더 성숙해질 것입니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구성원을 섬길 수 있는 리더십이 절실한 요즘, 예수님의 모습을 닮은 섬김의 리더들이 많이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2024.04.05

    돌‘봄’의 계절
  • 기나긴 겨울 추위가 끝나고 황량했던 나뭇가지에 새순이 하나둘 돋는 모습과 한층 따사로운 햇살을 느끼며 봄이 성큼 다가왔음을 실감합니다. 미국의 작가 다이앤 프롤로브는 “귀 기울여보라. 들리는가? 봄의 달콤한 칸타타가, 눈을 뚫고 나오는 봄의 선율이, 꽃봉오리의 노래가”라며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풍경을 생동감 있게 묘사했습니다. 이처럼 봄은 즐겁고 행복한 이미지입니다. 그래서인지 기나긴 고생이 끝나고 좋은 날이 시작될 때 ‘겨울이 가고 봄날이 왔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봄이 주는 긍정적인 의미가 많지만, 그리스도인의 봄은 이웃을 향한 돌‘봄’이 있을 때 더 따뜻하고 의미있게 다가오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한 경쟁의 시대, 학교에서는 성적순으로 일등과 꼴찌가 정해지고 직장에서는 성과에 따라 직급이 정해집니다. 도태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합니다. 심지어 결혼이나 자식을 키우는 일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경쟁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웃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이겨야 하는 경쟁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경쟁을 강요하는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경쟁을 통해 일등부터 차례를 줄 세우는 것, 다른 사람을 이기고 나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마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전에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게임에서 진 사람이 소금물같이 짜고, 맵고, 신맛이 나는 등 먹기 괴로운 음식을 먹는 벌칙을 받는 장면이 연출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출연자 중 한 사람이 게임에서 이기고 손을 번쩍 들며 “나만 아니면 돼!”라고 소리쳤고 이 같은 반응이 대중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이니 웃음을 주기 위해 과도하게 표현한 것이겠지만 얼마나 경계해야 하는 말인지 모릅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은 절대로 “나만 아니면 돼!”와 같은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고통의 쓴잔을 마셔야 한다면 나도 함께 마시겠다고 나서며 모두가 함께 고통을 분담하는 것이 기독교적인 방식입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 앞에 “나만 아니면 돼”라며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함께 울어주고 동참하는 그것이 바로 이웃을 향한 돌봄과 사랑의 자세입니다. 이처럼 돌봄은 가진 것을 나누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짊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보며 고통을 분담해야 할 이웃은 누구일까요? 사전은 이웃에 대해 ‘가까이에 사는 사람’ 이라 정의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웃을 물리적 거리의 개념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같은 동네, 같은 민족, 친한 사람이 이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이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눅 10:29~37). 성별과 국적과 상관없이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봐야 할 이웃입니다. 주위를 둘러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며 끊임없는 경쟁으로 혹독한 겨울과 같은 세상에 따스한 봄을 전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2024.03.01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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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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