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목사의 행복편지
나눌수록 행복한 삶
  • 계속되는 물가 상승과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모두가 힘든 때에 이웃에게 사랑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김병록 씨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김병록 씨는 구두 수선공으로 일하며 헌 구두를 깨끗이 수선하여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있습니다. 1996년부터 지금까지 26년이 넘도록 헌 구두를 수선하여 노인,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등 어려운 이웃에게 선물했고 쉬는 날에는 양로원, 장애인시설, 치매센터 등을 찾아가 무료 이발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김병록 씨가 이 같은 일을 하게 된 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독립하여 직업보도원에서 생활하며 구두를 닦는 기술을 배웠고 상경하여 생계를 위해 온갖 일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다 성인이 되어 명동의 고급 음식점의 책임자로 일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직원을 괴롭히는 손님을 보고 분을 참지 못하여 손찌검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러고 나서 술에 잔뜩 취해 잠을 자다가 잠깐 깨보니 음식점 사장님이 자신을 붙잡고 울고 있었습니다. 사장님은 “어떻게 하면 사람이 될래?”라면서 교회에 갈 것을 권면했습니다. 김병록 씨는 그때부터 억지로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지 한 달째 될 때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송을 부르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자신과 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신 주님의 은혜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 은혜에 감격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지만 김병록 씨에게 또다시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폐결핵에 걸려 한쪽 폐를 절단해야 할 정도로 경과가 심각해진 것입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기도원에 올라 하나님께 기도로 매달렸고 8년 만에 깨끗하게 완치되었습니다. 이후 구두센터를 차려 하나님께 약속드린 대로 세상에 필요한 삶을 살기 위해 “하루에 처음 것은 하나님께, 마지막 수입은 강도 만난 이웃에게”라는 원칙을 갖고 돈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결식아동, 소년소녀가장, 은퇴 목사, 수술비가 없는 이웃에게 전하고 있으며 2020년 3월에는 노후를 위해 마련한 7억원 상당의 땅을 파주시에 기부해 국민포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김병록 씨는 나누는 삶을 통해 얻는 보람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같은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덤으로 사는 인생들이에요. 그러니 욕심부릴 게 없지요. 다 주고 가야지요. 저는 나누고 사는 게 가장 즐겁고 행복하니까, 그 행복을 나누는 겁니다.” 부와 명예를 쌓는 것을 통해 성취감을 얻을 수 있지만 남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면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큰 행복과 보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때에 서로를 돌아보며 행복을 나누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2022.11.04

    희망이 가져다주는 기적
  •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희망을 전하는 유튜브 채널 ‘위라클’(WERACLE)의 운영자인 박위 씨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위라클은 박위 씨의 이름인 위(WE)와 기적을 의미하는 미라클(MIRACLE)의 ‘RACLE’을 합쳐 ‘우리 모두에게 기적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약 43만명의 사람들이 위라클을 구독하고 있으며 채널 속의 영상을 통해 큰 힘을 얻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다가 위라클의 영상을 보고 삶의 의지를 다잡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박위 씨가 이 같은 귀한 일을 하기까지는 길고 험난한 과정이 있었습니다. 2014년 5월, 박위 씨는 취업을 자축하는 파티에서 술을 마시고 낙상하여 목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경추 6, 7번이 손상되어 의사는 “당신은 영원히 걷지도, 손가락을 사용하지도 못할 겁니다”라고 진단했습니다. 하지만 박위 씨는 단 한 번도 하나님을 원망한 적이 없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전신마비가 되는 절망 가운데서도 다 자신의 잘못이라며 하나님이 일으켜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매일 밤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여느 때와 같이 눈물로 기도하는데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위야, 너처럼 아픔이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어 주렴.” 이후 박위 씨에게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손가락이 살짝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된 것을 시작으로 치열한 재활 훈련을 통해 혼자 휠체어에 앉고 또 휠체어를 타고 매일 6~10㎞를 달렸습니다. 그리고 장애인도 일반인과 같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혼자서 운전하는 영상, 여행 다니는 영상, 강연하는 영상 등을 올리며 사람들에게 희망과 긍정의 믿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박위 씨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전신마비인 저를 세운 건 믿음의 힘입니다. 하나님 덕분에 천국의 삶을 소망하며 살 수 있어 기쁩니다. 이 모습으로 희망을 줄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하나님께서 ‘오케이’ 하시면 지금 당장 저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80살, 90살, 아주 먼 훗날에 일어날 수도 있겠죠. 어렵더라도 희망을 가지고 사는 것과 ‘절대 못 일어날 거야’라고 단정 짓고 사는 것은 분명 그 내용이 다르니까요. 사람들이 사는 동안 희망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일상이 기적이고 은혜입니다.” 매일 들려오는 물가 상승, 코로나19의 장기화, 전쟁 등 세상의 소식은 우리를 낙담하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서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늘 좋은 길로 인도하시리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희망을 가지고 일상 속에서 기적을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 2022.09.30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
  • 시각 장애를 딛고 일어선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선 씨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김지선 씨는 미숙아 망막증으로 신생아 때부터 시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김지선 씨를 8개월 만에 조기출산 하게 돼 인큐베이터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산소 과다 투입으로 시력을 잃게 된 것입니다. 신생아 시절에는 저시력으로라도 앞을 볼 수 있었지만 이후 수술 과정에서 완전히 실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김지선 씨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대한 재능이 남달랐습니다. 3살 때부터 장난감 피아노로 처음 듣는 멜로디를 곧잘 따라 치기 시작했습니다.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는데 옆방에서 들린 바이올린 소리를 듣고 호기심에 바이올린을 시작하게 되었고, 9살에는 처음으로 참가한 콩쿠르에서 2위를 수상할 정도로 재능을 보였습니다. 분명 김지선 씨에게 음악적 재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은 그녀가 시각장애인이었기 때문에 바이올리니스트로서 한계가 있을 것이라 냉정하게 평가하기도 했고 대학 입시에서도 좋은 대학에 진학하지 못할 것이라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김지선 씨는 포기하지 않고 그럴 때일수록 구약 성경 스가랴 4장 6절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라는 말씀을 암송하며 끊임없이 연습하며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김지선 씨는 한국에서 예술전문학교로 유명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했습니다. 또한 카네기 홀의 뮤직 페스티벌에 초대되어 우승을 차지했고 그곳에서 뉴저지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 악장의 눈에 띄어 미국 유학을 제의받았습니다. 이후 맨해튼 음대의 오디션에 초대되어 입시를 준비했는데 오디션 자체를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싶어서 바흐의 교회 소나타 중의 한 곡을 연주했고 시각장애인 바이올리니스트로는 세계 최초로 맨해튼 음대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김지선 씨는 지금까지 자신을 인도하신 하나님에 대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노력해서 당연하게 얻은 대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역사하셨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모든 여정이 가능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저와 같이 작은 자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안 됐을 것입니다. 나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장점을 계발하기보다는 약점에 붙들려 낙담하곤 합니다. 또는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기보다는 가지지 못한 것에 원망하거나 불평하기도 합니다. 장애 때문에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도리어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통해 세상을 위로하는 김지선 씨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에 감사하며 그것으로 사랑의 결실을 맺는 9월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2022.09.02

    엄마 품의 기적
  • 막 태어난 캥거루는 2.5㎝ 정도의 크기에 무게는 1g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새끼 캥거루는 4~5개월 정도 어미 캥거루의 주머니 속에서 젖을 먹으면서 4㎏ 정도가 될 때까지 생활합니다.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갓 태어난 신생아를 부모가 가슴에 안고 품어 키우는 방법이 있는데 이를 가리켜 ‘캥거루 케어’라고 합니다. 이를 통해 아기는 부모의 심장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고 또 부모의 따듯한 체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캥거루 케어는 아기의 정서적 안정과 성장을 돕는 것은 물론 아기의 면역력을 높여주고 심각한 질병의 발병 확률을 낮춰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캥거루 케어의 효능은 실질적인 사례를 통해서도 입증된 바 있는데 다음은 한 신문에 실렸던 기사의 내용입니다. 2010년 3월 호주에 사는 케이트 오그라는 산모가 임신 7개월이 채 안 되었을 때 몸무게 900g의 이란성 쌍둥이 남매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중 한 아기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의사가 20분 넘게 소생술을 했지만 결국 아기의 숨이 멎고 말았습니다. 허망하게 아기를 보낼 수 없었던 케이트는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아기를 품에 안고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네 이름은 제이미란다. 엄마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니? 너에게는 에밀리라는 동생이 있어.” 그렇게 아기를 토닥이며 2시간을 안고 있었는데 갑자기 죽은 줄 알았던 아기의 몸이 움찔거렸습니다. 그리고 아기는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고 천천히 손을 뻗어 엄마의 손가락을 잡았습니다. 숨이 멎었던 아기가 엄마의 품에서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신문 기사의 제목처럼 ‘엄마 품의 기적’이었습니다. 아기에게 엄마의 품은 생명이 소생하는 자리입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첨단 의료시설을 갖추고 있어도 아기에게 엄마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아기의 생명의 원천인 엄마의 품보다 더 평안하고 힘을 주는 곳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품이 그렇습니다. 우리의 생명의 원천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상처 입은 영혼은 하나님의 품에서만 회복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그 품에 안기면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의 병을 치료하시고 우리의 병든 영혼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세상 속에서 힘들고 지칠 때마다 우리가 향해야 할 곳은 오직 우리 영혼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품입니다. 내 영혼이 쉴 곳은 오직 하나님의 품입니다. 하나님의 품에 안길 때, 그 사랑 안에 잠길 때, 숨이 멎었던 아기의 심장이 엄마의 품에서 다시 뛰었던 것처럼 우리 영혼의 심장이 다시 힘차게 뛰기 시작할 것입니다.
  • 2022.08.05

    다시 시작하는 7월
  • 날지 못하는 새들을 ‘주금류’라고 합니다.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키위 새도 그중 하나입니다. 13세기 사람이 정착하기 전까지 뉴질랜드는 오랫동안 무인도였습니다. 무인도에서 살던 키위 새들에게는 천적이 없었고 먹이도 풍부했습니다. 당연히 천적을 피해 도망치거나 먹이를 찾기 위해 날아다닐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 시간이 계속되면서 날개 근육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결국은 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날개가 퇴화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주해오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을 통해 키위 새의 천적들도 따라왔고 키위 새들의 평화로운 생활 역시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이제 키위 새들은 천적 때문에 낮에는 땅굴이나 나무 틈에 숨어 있다가 밤에만 나와 작은 벌레들을 잡아먹으며 살아가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다가 나는 능력을 잃어버린 키위 새는 이제 포식자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멸종 위기에 내몰리고 말았습니다. 키위 새의 이야기는 우리 대부분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우리 역시 현실에 안주하며 편안함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두려운 것, 귀찮은 것, 어려운 것, 불편한 것. 우리는 그런 일을 싫어합니다. 뛰기보다는 걷기 원하고 걷기보다는 앉기를 원합니다. 우리 역시 현실에 안주하려는 마음이 큽니다. 미국의 변호사이자 작가인 멜 로빈슨은 이런 우리의 모습을 인간의 뇌가 불편한 것을 거부하는 쪽으로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키위 새처럼 현실에 안주하는 것은 아닙니다. 평안함만을 추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누군가는 도전하고, 누군가는 변화하고, 누군가는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납니다. 이 세상은 이렇게 도전하고, 변화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났던 사람들로 인해 발전해왔습니다. 그런 사람들로 인해 더 나은 세상이 되어왔고 또 더 나은 세상이 되어갈 것입니다. 2022년 7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6개월 동안 여러분의 모습은 어땠습니까? 연초에 세웠던 계획들은 잘 진행되어 왔습니까? 뜻하는 것들을 이루고 바라던 것들을 얻었습니까? 키위 새처럼 현실에 안주하며 하루하루를 살지는 않았습니까? 게으름과 나태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지는 않았습니까? 7월은 지나간 6개월을 마감하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기에 좋은 달입니다. 어쩌면 우리 안에 숨어있는 게으름과 나태의 키위 새는 계속해서 우리의 발걸음을 무겁게 할지 모릅니다. 변화하고 비상하려는 우리의 도전과 노력의 근육을 퇴화시키려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탈 때 넘어지는 것을 각오하고 페달을 밟아야 안 넘어지고 앞으로 나가는 것처럼 우리는 계속해서 시도하고 도전해야 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때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힘들더라도 비상하기 위한 날갯짓을 멈춰서는 안될 것입니다. 2022년 7월이 삶의 멋진 비상을 위해 새롭게 도전하는 달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2022.07.01

    희생의 의미를 되새기며
  • 칼 야스퍼스라는 독일의 철학자가 있습니다. 독일의 하이델베르크대학교와 스위스의 바젤대학교에서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현대 철학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한 사람입니다. 그는 ‘한계 상황’이라는 개념을 통해 현대문명 속에서 잃어버린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는 것을 추구했습니다. 그런데 철학자로서 그의 이론과 업적이 널리 알려진 것에 비해 그의 사생활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아내를 향한 그의 애틋한 사랑과 희생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내 게르트루트 마이어는 그의 의과대학 동료였던 에른스트 마이어의 누이였습니다. 그녀를 처음 만났던 때를 기억하면서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내가 1907년 24살의 나이로 게르트루트 마이어와 만났을 때 고독, 우울, 자의식 등 모든 것이 변했다 … 첫 순간부터 우리 사이에는 결코 예상하지 못했던 이해하기 어려운 일치가 있었다.” 아내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린 그는 결국 그녀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그는 하이델베르크대학교의 심리학 교수로 임명되었고 이어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그의 삶은 부족한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독일에 히틀러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의 삶에 먹구름이 덮이기 시작했습니다. 나치 정권을 반대하는 야스퍼스의 사상도 문제였지만 그의 아내 게르트루트 마이어가 유대인이라는 사실 역시 큰 문제였습니다. 유대인 말살 정책을 추구하던 나치 정권은 야스퍼스에게 아내와 이혼을 하든지 대학을 떠나든지 선택하라고 강요했습니다. 그의 삶에서 아내와 교수직은 모두 소중한 부분이었습니다. 대학의 교수가 된 것은 가문의 영광이었고 아내를 만난 것은 인생의 최대 행복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아내를 위해 교수직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나치 정권은 아내와 결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야스퍼스의 저술 활동과 강연은 물론 여행까지 금지했습니다. 야스퍼스는 모든 어려움을 견뎌내며 아내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내를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그가 버린 사회적 지위나 명예보다 아내가 더욱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나치 정권이 몰락했을 때 오랜 고통의 시간을 함께 견뎌온 야스퍼스 부부는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철학자 야스퍼스는 아내를 향한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가졌던 것들을 기꺼이 희생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독립과 주권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바쳤던 분들의 희생과 섬김 덕분입니다. 일제의 국권 강탈에 저항했던 순국선열의 희생과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 덕분입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고귀한 희생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평범하고 당연한 일상을 가능하게 해준 분들의 희생에 대해 진심 어린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표현하는 6월이 되기를 바랍니다.
  • 2022.06.05

    ‘가족’이라는 이름
  • 『사랑하기 위해 살고 살기 위해 사랑하라』라는 책은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원목실에서 30년 넘게 사역하셨던 김복남 전도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이 책에 보면 전신 마비로 11년 동안 입원한 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신이 마비되었음에도 이분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즐겁게 했고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분은 30대 초반에 택시기사를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 마비가 된 분으로 부인과 자녀들을 두고 있었습니다. 전신 마비가 되고 나서 처음 3년 동안은 죽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고 합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짐이 되기 싫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족의 사랑이 이분을 살렸습니다. 아내는 죽고 싶다고 말하는 남편을 붙잡고 울며 이렇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제발 살아만 있어주세요. 제가 당신의 팔과 다리가 되어 평생 밥도 먹여주고 옷도 입혀주고 다 해드릴게요. 전 당신을 사랑해요.” 이렇게 끝까지 남편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했던 아내는 11년 동안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남편을 돌보았습니다. 아이들도 늘 아빠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아빠의 병상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이분은 “움직일 수 있는 얼굴 근육으로 아이들과 아내에게 넉넉한 웃음이라도 보여줘야지”라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이후 이분은 즐겁고 행복하게 병원 생활을 했습니다. 하루는 이 환자 분이 김복남 전도사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전도사님, 저는 11년 동안 불편했을 뿐이지 불행하지는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정말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말 행복합니다.” 이 고백에 김 전도사님은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전도사님은 이 아름다운 가족의 이야기에서 사랑의 힘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환자 분이 11년 동안 그 처절한 절망과 고통을 참고 이겨낸 것은 아내와 아이들의 사랑 때문이구나.’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가정의 중요함을 다시금 생각하는 달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있음에 감사하고 자녀는 부모의 은혜를 되새기는 달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이번 5월에는 앞만 보고 바삐 뛰어가던 걸음을 멈추고 가족의 소중함을 생각해보길 소망합니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셨던 부모님의 투박한 손을 잡아보십시오. 5월의 푸른 하늘을 가득 담고 있는 아이들의 눈을 들여다보십시오.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을 안아주십시오. 나를 사랑해주는 가족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를 믿어주는 가족이 있기에 오늘도 우리는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가족’의 또 다른 이름은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가족’이라는 이름이야말로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이유입니다. ‘가족’으로 인해 우리의 5월은 더욱 푸르릅니다.
  • 2022.05.01

    벚꽃처럼 피어나는 나눔의 삶
  • 중국 저장성에 있는 한 국수 가게 이야기입니다. 이 가게에는 매일 국수를 사기 위해 찾아오는 할아버지가 계십니다. 가게 주인이 할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국수를 포장해서 건네면 그것을 받아든 할아버지는 가게 주인에게 값을 지불합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주인에게 건네는 돈은 조잡하게 손으로 그린 가짜 지폐입니다. 그런데도 가게 주인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할아버지가 건네는 가짜 돈을 받습니다. 가짜 돈을 건네는 할아버지와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는 주인의 모습은 일반인의 눈에는 분명 이상하게 보일 것입니다. 국수 가게 주인인 이 씨 부부는 가게를 열기 전부터 이 할아버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고 그 아들을 의지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안타깝게도 아들을 잃었고 이후 할아버지는 생계를 걱정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는 이 씨 부부는 매일 할아버지가 가져오는 가짜 돈을 받고 할아버지가 원하는 만큼의 국수를 내어드리기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도 하루에 한 번 이상 국수 가게에 오지 않습니다. 자신이 필요한 만큼의 국수만을 가져가고 때로 가게가 붐비기라도 하면 밖에서 기다립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씨 부부가 다른 음식이나 물건을 드리려고 할 때마다 할아버지는 한사코 사양합니다. 이 씨 부부의 이런 선행은 무려 8년 이상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씨 부부는 이야기합니다. “저희 부부도 도시 생활을 시작하기 전 산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배고픔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잃고 홀로 살아가는 할아버지께서 식사를 거르시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시는 동안 저희 부부가 국수를 계속 만들어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자신이 가진 작은 것으로 더 어려운 이들을 돕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씨 부부가 그런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각박한 세상에서 이 씨 부부의 이야기가 우리의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는 이유입니다.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돕고 섬기는 데에는 거창한 선행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고통을 공감하려는 마음과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려는 결심이면 충분합니다. 그런 마음과 결심이 어려운 이웃들에게는 큰 울림으로 다가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감하고 배려하고 나눌 때 이 세상은 더욱 환한 곳으로 변할 것입니다. 봄이 완연한 4월, 이제 곧 벚꽃이 피어나겠지요. 그 벚꽃과 같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공감과 배려와 나눔의 마음들이 활짝 피어나길 소망해봅니다.
  • 2022.04.03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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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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