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차진호 목사(교회개척국 담당) - 제주도 돌고래의 협력 호흡
  • 여의도순복음서귀포교회가 있는 제주도에서 12년 동안 목회하며 서귀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올레길을 종종 산책하곤 했다. 가끔 갯바위 근처에서 수십 마리의 돌고래 무리를 마주할 때면 수족관에서 보던 몇 마리의 돌고래 쇼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장엄하고 신비로운 생명력을 느끼곤 했다. 그 경이로운 광경을 목격한 이후 제주 남방큰돌고래에 대해 찾아보며 발견한 두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곧 나의 신앙과 목회 철학이 되었다. 첫째, 돌고래는 바다에 살지만 반드시 ‘하늘의 공기’로 호흡해야 한다. 물고기와 달리 허파로 숨을 쉬는 포유류인 돌고래는 3분에서 10분마다 주기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한다. 등에 있는 분수공으로 신선한 공기를 마시지 않으면 바다 한가운데서 질식하여 죽고 만다.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는 세상은 깊고 거친 바다와 같다. 세상이라는 바다에 잠겨 지내는 동안 우리 영혼은 끊임없이 질식의 위협을 받는다. 잠시라도 기도의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으면 신앙의 맥박은 급격히 약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에 함몰되지 않고 영적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시로 수면 위를 향하는 ‘영적 분수공 호흡’이 필요하다. 둘째, 돌고래는 병든 동료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어깨를 내어준다. 무리 생활을 하는 돌고래들은 병들거나 다쳐 스스로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는 동료가 생기면 그 아픈 동료를 아래에서 위로 받쳐 올려 숨을 쉴 수 있게 돕는다. 최근 여러 환경적 제약으로 현장 예배의 뜨거움이 식거나, 홀로 신앙을 지키며 ‘영적 호흡곤란’을 겪는 이들이 많다. 기도의 맥박이 약해지고 세상의 무게에 가라앉은 성도들이다. 우리는 이들을 그저 관망하기보다 돌고래처럼 사랑의 어깨로 받쳐 올려주어야 한다. 중풍병자를 예수 앞에 인도하기 위해 지붕을 뜯어냈던 친구들처럼(막 2:1~12), 다른 교우들과 힘을 합쳐 지친 영혼들을 돌봐야 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나의 영적 생명이 살아야 가족과 교우의 신앙도 도울 수 있다. 2026년 1월의 마지막 주, 열두 광주리 새벽기도회의 열기가 식지 않도록 예배와 기도, 봉사의 삶을 더욱 열심히 실천하자. 아침부터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수시로 기도하며 영혼의 폐부에 하늘의 생기를 채우자. 그리하여 나를 살리고 이웃을 살리는 ‘영혼의 구조대’,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2026.01.23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백근배 목사(강서성전 담당) - 신앙안에서 근심으로부터 벗어나기
  • 몇 년 전, ‘과잉근심사회’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이는 사건과 사고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불안이 SNS와 같은 연결망을 통해 확산되면서 실제보다 과도하게 반응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우리는 팬데믹 시대를 지나오면서, ‘과잉근심사회’를 경험했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변이 바이러스 소식과 경제적 불안은 사람들로 하여금 실제보다 더 큰 위협에 노출된 것처럼 느끼게 했다. 물론 적당한 근심은 미래를 대비하게 하는 지혜의 동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과잉된 근심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과도한 분노를 표출하게 하여 작은 사건에도 과잉 반응하도록 만든다. 성경은 이 세상에 근심이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다”(벧전 1:6). 그러나 문제는 근심 그 자체가 아니라 근심에 사로잡히는 태도이다. 과잉된 근심은 우리의 심령과 뼈를 상하게 하고(잠 17:22), 개인을 넘어 공동체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근심을 이기려는 신앙적 노력은 개인과 공동체 모두에게 필수적이다. 성경의 인물들 역시 근심 앞에서 무너지는 대신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 야베스는 “나로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대상 4:10)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이 짧은 기도가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이유는 근심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인간의 보편적 갈망과 하나님의 응답이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과잉된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해봐야 한다. 첫째로는 가려서 들을수 있어야 한다. 불안을 조장하는 소식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 복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박국 선지자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부흥을 소망했다. 수로보니게 여인과 소경 바디매오 역시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절망이 아닌 회복을 선택했다. 다음으로는 복음의 시선으로 현실을 해석해야 한다. 리츠 쉰은 『과잉근심』에서 사람들이 근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상황이 바뀌기만을 기다리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성경은 상황보다 관점의 변화를 요구한다. 성도는 어떤 현실 속에서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롬 8:28). 마지막으로 우리에겐 기도만이 해답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뿐 아니라 상황까지도 바꾸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기도를 시작하는 순간, 하나님은 이미 일하고 계신다. 과잉된 근심의 시대를 사는 오늘 그리스도인은 근심에 끌려 다니는 존재가 아니라 믿음으로 근심을 다스리는 존재다. 불안을 키우는 소리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복음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평안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 2026.01.1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김판호 목사(영산신학연구원 총장) - 새로운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갑시다
  • 역사 속에서 전쟁과 전염병 같은 거대한 위기는 언제나 당대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뒤흔드는 변곡점이 되어왔습니다. 로마와 잉카, 아라비아와 중화 제국 등 수많은 문명의 흥망성쇠는 그 사실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우리 삶을 뒤흔든 코로나19 역시 현대 문명의 지형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게다가 4차 산업혁명과 정보화 사회의 도래로 스마트폰과 인터넷은 지구촌을 촘촘한 네트워크로 연결했습니다. 마치 인체의 신경조직처럼 서로 얽혀 있는 환경 속에서 우리는 이제 미디어의 그물망을 떠나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연결이 깊어질수록 ‘더불어 사는 관계적 사고’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효율과 개발을 앞세운 무분별한 생태계 파괴, 생명 윤리에 대한 혼란은 이제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 중대한 갈림길에서 우리는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까요? 아프리카 반투족의 언어에는 ‘우분투’(Ubuntu)라는 아름다운 말이 있습니다. “네가 있기에 내가 있고,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다”는 뜻입니다. 한 인류학자가 아이들에게 달리기 시합을 제안하며 “1등에게만 과일을 전부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경쟁하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손을 잡고 함께 달렸습니다. 놀란 학자가 이유를 묻자 아이들은 당연하다는 듯 이렇게 답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모두 슬픈데 어떻게 나 혼자만 기쁠 수 있겠어요?” 이 짧은 한마디는 그 어떤 철학자의 이론보다 깊은 울림으로 마음에 남습니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성부·성자·성령 하나님은 완전한 사랑의 연합 가운데 서로를 향해 자신을 내어 주시는 공동체적 존재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 또한, 자기 안에 갇힐 때가 아니라 타인에게 마음을 열고 사랑의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바로 이 ‘우분투 정신’의 회복입니다. 경쟁의 논리를 넘어 연대의 길로, 고립의 습관을 넘어 돌봄의 공동체로 다시 나아가야 합니다. 새해가 밝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라 하신 주님의 말씀은 단지 감정의 위로가 아니라 공동체적 책임에 대한 부르심입니다. 손을 잡고 함께 달려간 아이들처럼 우리도 이웃의 손을 잡고 나란히 걸어갑시다. 혼자만의 성공이 아니라 함께 살아나는 회복을 위해 더 나은 내일을 향해 함께 나아갑시다.
  • 2026.01.0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평신도를 위한 사도행전 이야기
    (111) 사도행전의 설교에 관한 가르침 ⑦
  • 지난 호에 이어서 사도행전에 기록된 사도 바울의 설교 내용을 분석하고자 한다. 4) 상황: 바울이 밀레도 항구에서 에베소의 장로들을 초청하여 고별설교(20:17~38) (1) 대상: 에베소의 교회 장로들(17절) (2) 바울의 밀레도 고별설교(18~35절) ① 바울이 소아시아(에베소)에 들어와서 그때까지 어떻게 행하였는지는 주지하는 바(18절) - 모든 겸손과 눈물,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19절) -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거리낌 없이 전하고 가르침(20절) -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21절) ② 예루살렘에서 당할 환난에 대한 경고와 바울의 단호한 복음전파에의 의지(22~25절) - 이제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함(22절) - 결박과 환난이 바울을 기다리고 있다고 성령께서 각 성에서 증언하심(23절) - 그러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4절) - 이제는 그의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것(25절) ③ 그때까지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파한 바울(26~27절) - 바울의 증언: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26절) - 이유: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27절) ④ 장로들에게 주는 권면(28~31절) - 자기 자신과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께서 그들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심(28절) - 바울이 떠난 후, 사나운 이리가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않을 것(29절) - 장로들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것(30절) - 그러므로 깨어서, 바울이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31절) ⑤ 에베소 장로들을 하나님께 부탁(32절)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⑥ 물질적인 면에서 그들에게 모본을 보인 바울: 약한 사람을 도우라(33~35절) - 바울은 누구의 은이나 금, 의복을 탐하지 않음(33절) - 바울 자신의 손으로 자신과 동행들의 쓰는 것을 충당한 것을 알 것(34절) - 범사에 바울이 그들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35절) (3) 결과: ①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36절) ②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춤(37절) ③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 까지 그를 전송”(38절) 김호성 목사(여의도순복음동부교회 담임)
  • 2026.01.0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10) 사도행전의 설교에 관한 가르침 ⑥
  • 지난 호에 이어서 사도행전에 기록된 사도 바울의 설교들을 계속해서 분석하고자 한다. 2) 상황: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된 사람을 고쳐 주자 주민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신이 사람의 형상으로 내려왔다고 하면서 제사하고자 할 때(14:8~ 20) (1) 대상: 루스드라의 이방인들(11~13절 참조) (바나바를 제우스라고 하고, 바울을 헤르메스라고 하면서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와서 제사하려고 하자, 바나바와 바울이 옷을 찢고 무리들에게 설교함) (2) 바울과 바나바의 설교(14~17절) ① 우리도 같은 사람들: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15a절) ②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이유: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15b절) ③ 하나님께서 자연 현상으로 자신을 증언하심: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16~17절) (3) 결과: ① 겨우 무리들을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함(18절) ② 죽도록 돌에 맞은 바울: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침(19절) ③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갔다가 1차 선교여행 여정의 역순으로 안디옥으로 귀환함(20~26절) 3) 상황: 바울의 2차 선교여행 중 각종 우상과 철학의 중심지인 아덴의 아레오바고에서의 설교(17:16~34) (1) 대상: 아덴(그리스 아테네) 사람들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21, 22절) (2) 바울의 아레오바고 설교(22~31절) ① 아덴사람들의 종교성을 활용(22b~23절)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② 하나님에 대한 설명(신론) (24~27절) -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24a절) - 인간을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24b~25a절) - 생명의 공급자: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25b절) -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심(26절) - 하나님을 더듬어 찾도록 하심: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27절) ③ 인간 존재의 성격(28~29절) 두 명의 헬라 시인 인용 -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크레타 섬의 시인 에피메니데스)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시칠리 섬의 시인 아라쿠스) - 우상숭배 금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29절) 김호성 목사(여의도순복음동부교회 담임)
  • 2025.12.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09) 사도행전의 설교에 관한 가르침 ⑤
  • 지난 호에 이어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울의 설교’ 중에서 바울의 제1차 선교여행 시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안식일 회당 설교(13:14~52)에 대해 계속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②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으나, 하나님이 살리셨고, 우리가 증인’(26~31절) -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 관리들이 …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26~27절; 29절 참조) -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28~29절) -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지라”(30절) -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그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의 증인이라”(31절) ③ 하나님께서 예수를 일으키심으로써 조상에게 주신 약속이 이루어지게 하심(32~37절) -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함(32절):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33a절) - 하나님께서 예수를 일으키실 것에 대한 구약 예언들(33b~35절; 시 2:7, 16:10 인용) - 다윗은 죽어 썩음을 당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않으심(36~37절) ④ 예수를 통한 죄 사함, 예수를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음(38~39절): 너희가 알 것 -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 -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 ⑤ 준엄한 경고(40~41절) -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합 1:5 인용) (3) 결과: 상반된 반응 ① 긍정적 반응: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는 요청(42절) -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름(43절) -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임(44절) ② 부정적 반응: 유대인들이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함(45절) ③ 바울과 바나바: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46절; 47절) ④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음(48절).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짐(49절) ⑤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냄(50절) ⑥ 바울과 바나바,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감(51절)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52절) <다음호에 계속> 김호성 목사(여의도순복음동부교회 담임)
  • 2025.11.0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쉽게 풀어 쓴 교회사 산책
    (86) 종교개혁㉖
  • 비텐베르크의 종교개혁 양상의 변화 개혁은 언제나 사람들 사이에서 혼란과 갈등을 겪으며 진행된다. 독일의 작은 대학 도시 비텐베르크는 그 과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다. 1521년, 루터는 선제후의 보호 아래 바르트부르크성에 머물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가 쓴 두 번째 글은 『수도사 서원론』이라는 글이었다. 이 글에서 루터는 수도사들이 평생 지키겠다고 맹세한 가난, 순결, 복종이 과연 복음적인지 질문했다. 그의 결론은 분명했다. 그리스도인은 제도에 매인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양심이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생각은 곧 비텐베르크의 현실을 바꾸기 시작했다. 일부 수도사들이 수도원을 떠났고 수도사도 결혼할 수 있는지 공개적으로 논의됐다. 루터 자신은 여전히 수도복을 입고 있었지만 “나는 수도사이면서 동시에 수도사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신앙의 중심이 점차 외형이 아니라 마음과 양심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1524년 10월 4일 루터는 수도복을 벗었다. 루터가 자리를 비운 사이 비텐베르크에서는 예배 개혁이 빠르게 진행됐다. 사제들이 회중 없이 죽은 자를 위해 집행하던 개인미사는 폐지됐다. 공적을 쌓기 위해 드리는 희생 제사로서의 미사도 폐지되었으며, 평신도에게도 성찬의 잔이 주어졌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오래 기다린 변화였지만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갑작스럽고 낯선 일이었다. 문제는 변화의 방향보다 속도였다. 충분한 설명과 합의 없이 제도가 먼저 바뀌자 도시 전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1522년 초에는 상황이 더욱 거칠어졌다. 과격론자들은 교회 안의 성상들을 부수고 예배형식을 일방적으로 바꿨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강하게 밀어붙여도 된다”는 생각이 힘을 얻었다. 이 무렵 ‘쯔비카우의 예언자들’이라 불린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비텐베르크의 혼란은 더욱 가중됐다. 이들은 외적인 계시로서 성경보다 성령의 직접적인 내적 계시를 강조하며 곧 세상이 완전히 바뀔 것이라고 외쳤다. 개혁은 점점 말씀에서 멀어지고 열정과 흥분에 치우치면서 위험한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결국 비텐베르크의 사람들은 루터를 다시 불렀다. 그리하여 1522년 3월 루터는 바르트부르크를 떠나 비텐베르크로 다시 돌아왔다. 그는 돌아온 후 행한 첫 설교에서 분명히 말한다. “개혁은 강요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믿음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는 급하게 바뀐 많은 것들을 잠시 멈췄다. 미사는 당분간 기존의 방식으로 드렸고 성찬의 변화도 서두르지 않았다. 대신 설교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차분히 준비시키는 길을 택했다. 이것이 비텐베르크 종교개혁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루터가 선택한 길은 빠른 개혁이 아니라 느린 개혁이었다. 그는 형식을 바꾸는 것보다, 사람들이 복음을 이해하고 자기 말로 고백하게 되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런 확신에서 나온 작업이 바로 독일어 성서 번역이다. 1522년에 출간된 독일어 신약성서는 복음을 평범한 시민의 언어로 옮겨 놓았다. 비텐베르크의 개혁은 이제 한 도시의 경계선을 넘어 독일 사회 전체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비텐베르크의 종교개혁은 단순한 개혁의 성공 사례가 아니다. 그것은 너무 빠른 개혁이 어떤 혼란을 낳는지, 그리고 기다릴 줄 아는 개혁이 어떻게 성공하는지를 보여주는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김형건 목사(영산신학연구원 학장)
  • 2026.01.23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85) 종교개혁㉕
  • “어떤 설교가 복음적 설교인가?”(루터의 기준) 1521년 5월 4일부터 이듬해 3월 3일까지 루터는 바르트부르크에 머물렀다. 이곳은 루터에게 ‘밧모섬’과 같은 장소였다. 그는 이곳에서 여러 글을 집필했고 이는 이후 비텐베르크 종교개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당시 비텐베르크에서는 루터의 부재 가운데 칼슈타트와 멜란히톤,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 엄수파 수도원 출신 동료들을 중심으로 개혁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개혁 방식의 차이로 인해 혼란과 갈등이 계속되고 있었다. 루터는 이러한 상황을 방관하지 않고, 글을 통해 개혁을 바로잡고자 했다. 루터는 비텐베르크 종교개혁이 난항을 겪는 근본 원인을 당시 설교자들의 설교에서 찾았다. 설교자들의 신학적 수준이 제각각이었고 성경 해석 역시 여전히 로마 가톨릭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루터는 바르트부르크 체류 동안 『교회 설교집(Church-Postil)』을 집필했다. 이 설교집은 설교자들에게는 복음적 설교의 기준을 제시하고 동시에 평신도들도 읽을 수 있도록 독일어로 작성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제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이는 매우 혁신적인 시도였다. 『교회 설교집』에서 루터가 제시한 설교의 기준은 분명하다. ① 루터에게 설교란 성경에 대해 설명하는 행위가 아니라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는 시간이었다. 따라서 복음적 설교는 지식을 전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하나님이 지금 여기서 말씀하시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② 루터의 설교 중심에는 언제나 그리스도가 놓여 있다. 모든 성경은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이기에 설교의 결론은 반드시 그리스도를 가리켜야 한다는 것이다. ③ 이를 위해 루터는 율법과 복음을 명확히 구별했다. 율법은 인간의 죄와 한계를 드러내지만 복음은 무너진 인간을 다시 살린다. 이 둘이 혼동될 때 설교는 절망을 낳거나 값싼 위로로 전락한다. 따라서 루터는 율법을 통해 인간의 절망적인 실존을 드러낸 후,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생명과 자유의 복음으로 나아갔다. ④ 루터가 설교에서 강조하는 또 다른 기준은 ‘십자가 신학’이었다. 그는 인간의 공로와 종교적 성취를 강조하는 설교를 ‘영광의 신학’이라 비판했다. 하나님은 인간의 성공과 강함 속에서가 아니라 약함과 고난, 곧 십자가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광의 신학 위에 선 설교자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위대하고 강하신 분이다. 열심히 믿으면 복 받는다, 하나님을 잘 섬기면 성공한다, 더 거룩해져야 하나님께 인정받는다.”라고 말하지만 십자가의 신학 위에 선 설교자는 “인간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아무런 공로를 내세울 수 없을 때, 의지할 것이 전혀 없을 때 하나님은 절대 희망이요 절대 소망이 되신다! 너는 약해도 괜찮다. 망가진 상태로 하나님 앞에 올 수 있다. 구원은 너의 힘과 능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일이다!”라고 말한다. ⑤ 흥미로운 점은 루터가 설교의 능력과 결과를 설교자에게서 철저히 분리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설교자는 사람들의 귀에 말씀을 전할 수 있을 뿐, 그들의 마음에 믿음을 넣을 수는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믿음은 오직 성령의 역사로 생겨나며, 설교자는 그 결과를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루터의 설교가 삶과 무관한 신학적 이론에 머무는 것은 아니었다. ⑥ 오히려 그는 복음적 설교가 참된 믿음을 낳고, 그 참된 믿음은 이웃을 향한 책임과 사랑의 실천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보았다. 이렇듯 루터에게 『교회 설교집』은 단순한 설교 모음집이 아니었다. 그것은 종교개혁이 폭력이나 급진적 행동이 아니라 참된 말씀의 선포를 통해 이루어져야 함을 보여주는 루터의 설교 신학이었다. 바르트부르크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집필된 이 설교집은 이후 비텐베르크의 혼란을 정리하고, 개신교 설교의 기준을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결국 루터의 개혁은 제도보다 앞서 설교의 개혁이었다. 김형건 목사(영산신학연구원 학장)
  • 2025.12.2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84) 종교개혁㉔
  • 루터와 프리드리히 선제후 루터를 호위하기 위해 동행하던 황제의 전령과 작센의 의원들이 돌아간 후, 튀링엔 숲의 알텐슈타인 성 근처 계곡에 이르렀을 때, 루터는 무장한 기사들에 의해 납치됐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어떤 방식으로, 어디에서 은둔하게 될지는 알지 못했던 루터는 신약성경과 히브리어 성경만 손에 쥔 채 마차에서 끌어 내려져 손이 묶인 상태로 걸어가야 했다. 밤 11시쯤 되어서 도착한 곳은, 이후 루터가 융커 외르크라는 가명으로 약 10개월을 지내게 될 바르트부르크 성이었다. 작센의 프리드리히 선제후는 자신의 영지에 속한 바르트부르크에 루터가 안전하게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들었다. 그는 성유물을 수집하고 미사를 꾸준히 드리는 인물이었다. 그가 모은 성유물은 1만 9000점이 넘었고, 예수의 가시면류관에서 떨어진 가시 조각과 성모 마리아의 모친 성 안나의 엄지손가락 뼈 같은 귀중한 유물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진지한 신앙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사순절마다 수도원에서 지내고 성지를 순례했으며, 교회 음악을 사랑하고 성당과 수도원 건립을 후원했다. 또한 종교 서적을 읽고, 에라스무스와 아벤티스 등 당대 유명한 지식인들과 신앙을 주제로 서신을 나누었으며, 이들과의 인연을 통해 루터와도 연결됐다. 프리드리히는 정치적으로도 매우 영향력 있는 군주였다. 1486년부터 1525년까지 작센을 통치하면서 제국의회에 30차례 넘게 참석했고, 막시밀리안 황제의 조언자로 활동했다. 이러한 정치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그는 종교개혁의 운명을 짊어진 루터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했다. 1518년 교황청이 루터를 로마로 소환하자 프리드리히는 이를 허락하지 않고, 아욱스부르크에서 교황청 사절과 면담하도록 조정했다. 끝까지 주장을 철회하지 않는 루터를 인도해달라는 교황의 요구를 거절하며, 루터가 독일 내에서 재판받아야 한다고 황제를 설득했다. 비록 루터는 1521년에 파문되었지만, 프리드리히 선제후는 미리 확보해 둔 안전통행증을 활용해 루터가 무사히 보름스를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왔다. 튀링엔 숲의 납치 작전 역시 루터를 보호하기 위해 그가 세운 계획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리드리히와 루터는 직접적으로 소통한 적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연락은 선제후의 보좌 신부이자 루터의 친구였던 슈팔라틴을 통해 이루어졌다. 슈팔라틴의 기록에 따르면 프리드리히는 루터를 “분명 너그럽게 사랑하고 아꼈으나” 정작 루터의 주장은 항상 선제후를 괴롭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1522년 루터의 책 한 권을 가리키며 프리드리히는 “마음에 드는 내용이 하나도 없는 저 책을 위해 내가 이렇게 고생한단 말이지”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루터의 개혁을 가로막지 않았다. 프리드리히는 루터의 단순한 후원자가 아니라, 어떠한 난관 속에서도 개혁의 가능성을 지켜낸 보호자였다. 1525년 종려주일에 프리드리히는 토르가우 인근 자신의 성에서 처음으로 루터의 방식으로 예배를 드렸다. 2주 후에는 슈팔라틴이 집례한 성찬식에서 처음으로 빵과 포도주 모두를 받았다. 로마가 1415년에 평신도에게 잔을 주는 것을 금지한 뒤로 축성된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사제만의 특권이었기에, 이는 그가 루터의 개혁신앙을 매우 신뢰했음을 보여준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프리드리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전통적 경건함과 개혁적 신앙 사이에서 참된 믿음을 찾으려 노력한 군주로 생을 마쳤다. 평범한 출신에 불과했던 한 수도사의 비범함과 열정을 끝까지 보호하고 지지했던 그의 혜안과 결단 덕분에, 종교개혁이라는 위대한 역사는 실현될 수 있었다. 김형건 목사(영산신학연구원 학장)
  • 2025.11.2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뿌리깊은 순복음
    (168) 순복음의 7대 신앙-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81>
  • 참된 사랑은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것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에 이어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5).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라는 문구의 의미는 ‘사랑은 자기의 유익에만 몰두하지 않는대’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그 어떤 상황에도 자기를 먼저 내세우지 않는 예의의 바탕이 되는 마음과 생각의 근본적인 태도를 묘사하는데, ‘사랑은 이기적이지 않다’라는 번역이 의미상으로 좀 더 가깝다. 하지만, 현시대의 상황과 문화를 고려해 볼 때,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주의’와 스스로 세상 모든 것의 중심이 되려고 하는 ‘자기중심주의’라는 두 개념을 모두 포함해야만 될 것으로 보인다. 진정한 사랑은 욕망이 중심이 되는 전형적 ‘에로스’의 사랑과는 달리 자기희생을 근본으로 하는 ‘아가페적’ 사랑이다. 참된 사랑은 결코 스스로 자신의 만족을 위해 다른 사람을 ‘소유하려’ 들지 않는다. 연인, 부부, 부모, 자식 혹은 그 어떤 친근한 관계라 할지라도, ‘나는 너를 원해’라는 말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일종의 위험 신호일 수도 있다. 그러한 소유욕은 자기 유익의 충족 혹은 자기만족이라는 어긋한 바람에 위험할 정도로 바짝 붙어 항해하는 종류의 사랑이기 쉽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존중하고 지키기 위해 애를 쓰지만, 그러한 노력의 대가로 상대방을 통제하거나 억압하려 들지 않는다. 또한 참된 사랑은 결혼과 가족 안에 존재하는 여러 종류와 수준의 관계뿐 아니라, 교회 내에서나 삶의 다른 영역에 존재하는 관계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그것은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으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반영하는 것이다(롬 15:3).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발생한 문제들은 상당 부분 성도들이 이런 삶을 살지 못함에서 기인한다고 여겼다.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에 대한 나름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고전 10:24, 33), 주의 만찬에 서둘러 달려들거나 혹은 세심하지 못한 방식으로 주의 만찬을 ‘주관하는 것’(고전 11:21~22), 이미 말하고 있는 사람의 말을 막아서고 갑자기 자기가 받은 계시를 들이대거나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을 기회가 없을 정도로 자기 말만 길게 늘어놓는 것(고전 14:29~33) 등이다. 자신의 유익에 집착하는 이러한 모든 태도의 표현은 ‘다른 사람’을 그 자체로 자신과 동등한 권리를 지닌 사람으로 보지 않고 무시하는 것이다. 성령 충만하며 참된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는 그리스도가 행하셨던 것처럼 ‘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닌 다른 이들의 ‘유익’에 더 큰 관심을 가진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롬 15:2~3).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6.01.1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67) 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80>
  • 사랑하는 관계에 금이 가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무례히 행하는 것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 교만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5). 창조주 하나님도 피조물인 인간을 함부로 대하지 않으신다. 만일 하나님이 믿지 않는 이들에게 지옥에서 형벌을 받는 모습을 보여주시며 “이래도 나를 믿지 않을 거냐?”라고 말씀하시며 협박과 위협으로 신앙을 강요하셨다면, 정말 효과적으로 전도와 선교가 이뤄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곧 ‘사랑’이시기 때문이다(요일 4:8,16). 사랑은 절대로 무례히 행치 않음을 가장 잘 보여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들에게도 무례히 행치 않고 예의를 갖추신다. 예수님도 우리 마음의 문을 계속해서 두드리신다. 그분은 절대로 강력한 힘이나 능력으로 밀어붙이지 않으신다. 그분은 사랑으로 무례히 행치 않으시고, 우리가 반응할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 주신다. 이처럼 우리도 사랑한다면 예의를 지켜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무례함이 가득하다. 무례함은 누구에게나 상처를 남긴다. 사랑하는 관계가 금이 가는 이유는 바로 ‘무례함’ 때문이다. 요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데이트 폭력’이 그러한 예이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아무렇게나 막 거칠게 대하고 폭력을 가하며 협박까지 해놓고 그것이 사랑이라고 말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범죄이다. 어떤 이유로도 폭력과 억압은 참된 사랑일 수 없다. 진정한 사랑은 친절하게 배려하는 사랑이다. 참된 사랑은 절대로 무례히 행치 않는다. 많은 부부가 이혼하는 중요한 이유도 이러한 무례함과 깊은 관련이 있다. 사랑이 무례함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같이 살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신앙적 지혜가 필요하다. 무례함이 권리이고, 그것을 권력으로 여기는 세태를 따라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의 예절은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행동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의 변화된 행실을 따라 진심으로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이다. 참된 예수님의 제자 된 성도는 절대로 다른 형제자매들에게 무례히 대하며 상처를 주지 않는다. 성도의 예절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의 삶과 참된 신앙적 영성의 중요한 요소이다. 이것은 단순히 예절의 문제가 아닌 영적인 문제이다. 이것은 교회를 온전하고 든든히 세우는 중요한 토대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지키는 중요한 도구이다. 만일 성도들이 일상의 삶에서 예절을 지키지 않고 무례하게 굴며 거칠게 행동한다면, 과연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전도하여 교회로 이끌 수 있겠는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제자로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절대로 무례히 행치 않는 성경적 예절을 심각하게 고민하며 존중과 배려를 실천해야 한다.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5.12.1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66) 순복음의 7대 신앙-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79>
  • 과격하고 무례한 부모의 훈육은 자녀에게 상처와 분노 남겨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 교만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5). 부모들이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자녀가 자신들의 소유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녀들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하나님의 기업이요 선물이다. “보라 자식들은 야훼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 127:3). 유대인의 교훈 중에는 “신(神)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드셨다”라는 말이 있다. 즉, 어머니는 신(神)의 대리자라는 의미이다. 그만큼 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자녀들을 기르는 중요한 사명을 위임받은 청지기이다. 청지기는 주인이 아니다. 하나님의 소유물을 자기 생각대로 함부로 대하거나 처리해서는 안 된다. 이후에 주인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지 않으려면 맡겨주신 자녀들을 사랑으로 보듬으며 자녀에게 절대로 무례히 행치 말아야 한다. 시인이요 철학자였던 칼릴 지브란은 『예언자』라는 책에서 자녀에 대한 부모의 소유의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계한다. “당신의 자녀는 당신의 것이 아니다. 자녀는 당신을 통하여 나왔을 뿐 당신이 만든 것은 아니다. 비록 자녀는 당신과 함께 있지만, 당신의 소유물은 아니다. 당신은 자녀에게 당신의 사랑을 줄 수는 있지만 당신의 생각들을 줄 수는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자녀는 스스로 생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자녀의 몸을 머물게 할 수는 있지만, 자녀의 영혼을 머물게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자녀의 영혼은 미래의 집에 살고 있으며, 당신은 꿈속에서조차 그곳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자녀처럼 되려고 애쓰는 것은 좋지만 자녀를 당신처럼 만들려고 하지는 마라. 위대한 생명은 뒤로 물러가지 않으며, 결코 어제에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녀를 훈육할 때 부모는 조심해야 한다.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무례히 행함은 옳지 않으며, 감정적으로 분노를 쏟아내도 안 된다. 어떤 부모는 성경이 매를 허락했다는 이유로 가혹하게 매를 들고는 자신은 성경대로 행했다며 합리화한다(잠 13:24). 물론 자녀를 양육할 때 때로는 엄한 훈육이 필요할 때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때에도 상황과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훈육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절대로 과격하고 무례하게 자녀를 몰아붙여 그 마음에 분노를 쌓이게 해서는 안 된다. 자녀를 위한 부모의 희생은 사실 자신들이 받은 은혜를 되돌려 주는 것이다.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부모들도 자신의 부모로부터 아낌없는 희생과 사랑을 받아 이만큼 성장했고, 받은 그 사랑을 다시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권리의식이 아니라 ‘내리사랑’이며 이는 하나님이 만드신 가장 숭고한 사랑의 모습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5.11.1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기독교 설교자 열전
    레오 1세
  • 교황권을 공고히 한 레오 1세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 강조해 설교를 교리 교육과 신앙 고백 수단으로 사용 로마교회의 종교적 권위가 강화된 시기는 402년부터 417년 교황 인노첸시오 1세 재위 때였다. 이후 인노첸시오 1세를 이어 그리스 출신의 자시머스가 교황으로 선출됐지만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선종한 뒤에 레오 1세가 새로운 교황으로 등극한다. 기독교의 중세 역사에서 레오 1세가 중요한 것은 교황의 권위를 공고히 했기 때문이다. 특히 레오 1세는 예수님이 베드로와 베드로의 후계자들을 교회가 서있을 초석으로 삼으셨기에 로마교회의 주교, 곧 교황이 로마에서 순교한 베드로를 이을 자이며 교회를 지탱하는 궁극의 기초가 된다고 주장했다(알리스터 맥그라스, 『기독교의 역사』, p.161). 이렇듯 교황권을 강화하는데 탁월한 행정가였던 레오 1세는 설교를 통해 동서분열 가운데 있던 교회를 하나로 묶는데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던 설교자이기도 했다. 그의 설교는 서방교회 설교 전통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레오 1세의 출생은 분명하지 않다. 다만 호노리우스 황제 말기 게르만족이 로마를 계속해서 괴롭히던 시기인 400년 어간에 토스카나 지방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서로마 제국의 정치가 혼란하던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냈던 그는 당시 사회 지도층 자제들에게만 허락되었던 수사학을 공부했다. 이렇게 수사학 교육을 받았던 레오 1세의 진가는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이 분리되었다고 주장하던 네스토리우스와 같은 이단들과의 논쟁에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과 인성에 대한 양성론(Two Natures of Christ)을 통해 드러났고 훈족 왕 아틸라가 로마에 침입했을 때 협상을 통해 약탈을 막아낸 일을 통해 빛을 발했다. 설교에 있어서도 탁월함을 드러낸 레오 1세는 단순한 도덕적 권면이 아니라 교리 교육과 신앙 고백의 수단으로 설교를 사용했다. 특히 성육신, 그리스도의 양성론, 교회 일치 등의 주제를 반복해서 강조했다. 로마 주교가 베드로의 교황권을 전수받았다는 정당성을 설교를 통해 전개했다. 또한 그는 교회력에 따라 설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오 1세의 설교는 약 96편 정도가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다. 그 설교들 대부분은 교황으로서 그가 재임하던 처음 5년 동안 했던 것들이다. 레오 1세의 설교가 가지는 특징은 첫째, 굉장히 짧다는 것이다. 평균적으로 4페이지를 넘기지 않았으며 표현은 간결하고 적절했다. 어떤 설교는 심지어 3분을 넘지 않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설교학자 O. C. 에드워드는 레오 1세의 설교를 공부하기 원하는 사람은 그의 454년 성탄절 설교를 공부하라고 조언한다(O. C. 에드워드, 『교부들의 설교』, p. 159-161). 앞서 살펴본 대로 예수님의 양성론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던 칼케톤 회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레오는 이 설교를 통해 예수님의 성육신의 신비를 다루고 있다. 그는 예수님이야말로 참된 하나님이시며 참된 인간이 되신다고 선언하며 그와 같은 예수님의 양성의 신비를 그 어떤 인간의 말로도 표현하거나 찬미할 수 없다는 말로 설교를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신비는 최대한 올바른 언어로 선포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양성에 대해 너무도 아주 많은 사람이 잘못 이해함으로써 이단의 논설을 믿거나 퍼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레오 1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은 초자연적인 신비가 인간의 일상 속에 인간의 역사 속에 개입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 사건이야말로 인간 구원의 사건이며 인간에게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 편에서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구유의 낮아짐’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와 사랑의 표현이다. 하나님의 겸손과 자비가 무엇인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통로인 것이다. 동시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죄악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을 새로운 삶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행동이다. 그는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2)라는 말씀을 인용하며 “이와 같은 사실을 어느 누구도 의심할 수 없다”라고 단언한다. 또한 그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은 이제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하는 삶을 세상에서 살아내야 한다. 곧 성화와 윤리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 설교에서 레오 1세는 ‘우리’ 또는 ‘신자 여러분’과 같은 호칭을 통해 청중과의 친밀감을 높이고 윤리적 삶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청중의 적극적인 반응과 내적 변화를 촉구한다. 조지훈 목사(한세대학교 설교학 교수)
  • 2025.11.07 / 이미나 기자

    중세 시대의 설교(Ⅰ)
  •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서로마·동로마 분열 서로마 멸망한 476년, 중세 시대의 시작 기독교의 설교에서 성경으로부터 어떤 메시지를 도출해낼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설교자와 그 설교를 듣던 청중들의 삶의 자리 역시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앞으로 살펴보게 될 중세 시대 개별 설교자들에 대해 논하기 전에 그들이 활동했던 중세 시대의 특징을 살펴보려고 한다. 영국의 신학자이자 역사가이며 저술가인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강제 퇴위당하고 서로마제국이 막을 내린 476년을 중세의 시작으로 간주한다(알리스터 맥그라스, 『기독교의 역사』,p. 158).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325년 로마제국의 서부와 동부의 통제권을 장악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제국의 동쪽에 새로운 도시를 세우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해서 선택된 장소가 바로 지중해와 흑해에 걸쳐 있는 보스포루스 해협 가운데 있는 비잔티움이며 이후에 황제의 이름을 따라 ‘콘스탄티노폴리스’(‘콘스탄티누스의 도시’)이라고 불리게 됐다. 이 도시는 330년 5월 11일 봉헌되었으며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이 도시를 ‘새 로마’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새 도시 건설은 동·서로마의 탄생과 동·서교회 분열의 서막이 되고 말았다. 그 씨앗은 379년부터 395년까지 로마를 다스렸던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뿌려졌다.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공식 종교로 만드는데 중요한 조치들을 단행한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넓은 영토를 혼자 통치할 수 없다고 판단해 395년 제국을 동서로 분할하여 자신의 두 아들 아르카디우스(동로마)와 호노리우스(서로마)에게 맡겼다. 이후 동서제국은 각자 발전하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서로마제국은 476년 멸망하게 된다. 4세기 후반 훈족의 등장으로 인해 게르만족은 생존을 위해 남쪽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이동해온 게르만족은 자연스럽게 로마에 흡수됐다. 로마에 편입된 게르만족은 부족한 노예 대신 농사를 짓고 용병이 되어 로마를 위해 전쟁터에 나갔다. 그 가운데 공을 세워 출세하는 인물들이 등장했고 그중 한 사람이 바로 서로마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를 폐위시키고 이탈리아의 왕이 된 오도아케르이다. 서로마를 멸망시킨 오도아케르는 독자적인 왕국을 건설하기보다는 동로마 황제 제논에게 “콘스탄티노폴리스에 계신 폐하께서 진정한 황제”라는 서신을 보냄으로써 동로마의 그늘에 있기를 원했다. 서로마제국의 멸망은 첫째,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제국 분할이라는 정치적인 이유와 둘째, 도시 귀족의 사치와 허영으로 인한 사회적인 이유 때문이며 셋째, 오랫동안 외부의 침략자들을 막아내는 과정에서 군사력이 약화되는 군사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한편, 서로마제국이 몰락했다고 해서 교회 조직이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동로마에 있는 로마교회는 여전히 교황이 있는 명실상부한 로마 기독교의 중심지였다. 4세기 중엽부터 대교구인 로마, 콘스탄티노폴리스, 알렉산드리아, 안디옥의 주교들이 다른 곳의 주교들보다 더 우위에 있는 것으로 인정을 받게 됐다. 특히 서쪽 지역의 교회들에서는 로마 주교가 교회 내외의 문제를 중재하는 이로 인정받게 됐다. 로마 주교가 그런 권위를 인정받았던 것은 로마가 로마제국의 수도라는 정치적인 요인과 더불어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로마에서 순교했고 로마에 묻혔다는 영적인 요인도 있었다. 원래 ‘교황’이라는 말은 존경받는 기독교 주교를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로마 주교를 위한 칭호로 바뀌었다. 384년부터 399년까지 로마 주교였던 시리치오는 오직 자신과 자신의 후계자에게만 이 칭호를 사용하도록 규정했다. 이런 이유로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교황들은 여전히 로마에 남아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 중앙 행정 체계가 무너지고 정치권력의 공백 상태가 발생했을 때 이를 메운 것이 교황과 교회였다. 6세기 말이 되었을 때, 오직 교회만이 서로마 지역에서 유일한 국제 조직으로 남게 됐다. 또한 590년부터 14년 동안 교황을 지낸 그레고리오 1세 때에 선교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기독교의 세력권이 한층 확장됐다. 선교활동을 통해 교황의 영향력이 이탈리아 바깥 지역에도 미치게 됐으며 8세기에는 잉글랜드, 독일, 프랑스 등 서유럽 여러 지역이 교황의 권위 아래 복속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도 이전 시대와 같이 많은 설교자가 등장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했다. 조지훈 목사(한세대 설교학 교수)
  • 2025.10.10 / 이미나 기자

    찬가 설교의 대가 로마노스
  • 성경이나 교리 등을 시 형식으로 노래해 이영훈 목사의 설교에서도 그 흔적 발견 설교학자 다간은 방대한 분량의 책 『설교의 역사』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죽은 5세기 초부터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는 11세기까지의 시기를 설교 역사의 두 번째 기간으로 분류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이 시기는 거대한 제국 로마가 부패로 치닫고 있었고 그에 따라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고 종말 의식이 팽배해 있었다. 제국 로마의 멸망을 알리는 종소리가 저 멀리에서 들려오고 있었고 이제 온 유럽에 중세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 활동했던 사람 중의 하나가 동방교회 전통에 속해있던 로마노스(Romanos the Melodist)이다. 로마노스는 설교자라기보다는 콘타키온(Kontakion) 형식의 찬가 작곡자였다. 폴 스캇 윌슨은 설교 역사를 인물별로 정리하는 자신의 책 『그리스도 설교의 역사』에서 로마노스를 “동방교회 내의 시적인 설교자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설교자요 모든 시대에 걸쳐서 위대한 종교적인 시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있다(폴 스캇 윌슨, 『그리스도 설교의 역사』, 대한기독교서회, p 62). 로마노스를 설교자로 분류할 수 있는 이유는 콘타키온이 무엇인지를 살펴봄으로써 좀 더 분명히 알 수 있다. 콘타키온은 비잔틴교회의 교회 전례음악으로 6세기경 콘스탄티노플에서 한창 발전했다. 성경 이야기나 교리를 운문(시) 형식으로 서술하는 장문의 찬가인 콘타키온은 성도들에게 성경 이야기, 교리, 성인들의 생애 등을 감성적이고 시적인 언어로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콘타키온의 구조는 서곡에 해당하는 프로이미온(prooimion)과 여러 개의 연으로 구성된 오이코이(oikoi)로 되어있다. 프로이미온은 1절로 된 짧은 도입부분으로 전체 주제를 요약해주고 계속되는 후렴구를 제시한다. 18개에서 24개의 연으로 구성된 오이코이는 각 연이 동일한 운율과 리듬 구조를 가지고 있고 프로이미온에서 소개된 후렴구를 사용함으로써 통일성을 유지한다. 현재에도 동방교회 전통의 교회에서는 콘타키온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전의 긴 형식 대신 서곡만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 다른 설교학자들과는 달리 폴 스캇 윌슨은 강단에서 행해진 설교뿐만 아니라 순교자의 죽음이나 찬가 역시 하나의 설교로 간주한다. 그런 이유에서 윌슨은 로마노스를 한 설교자로 분류하고 있다. 윌슨에 따르면 기독교 역사 속에서 운율과 박자에 따른 설교의 전통이 있어왔다. 165년 소아시아의 줄 사르디스의 멜리토(Bishop Melito of Sardis)가 발견한 ‘수난에 관한 설교’가 그 대표적인 예이며 아우구스티누스의 라틴어 설교 역시 운율, 박자, 평행법, 대조법, 모음을 통한 협음 만들기 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운율과 박자에 근거한 설교라고 할 수 있다. 전승에 따르면 성가대원이었던 로마노스는 노래를 잘 부르지 못했다고 한다. 어느 성탄절 전야에 찬가를 불러야 했던 그는 성모 마리아에게 전심으로 기도하며 도움을 구했다. 그날 밤 꿈속에서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이 두루마리를 먹어라”라고 말했다. 잠에서 깨어난 그는 두루마리를 입에 넣어 삼켰고 다음 날부터 놀라운 음성과 즉흥적인 찬송시를 만드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로마노스는 1000개 이상의 콘타키온을 썼지만 오직 59개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로마노스가 작곡한 콘타키온은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개인적인 삶에 대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특징은 당시 예술가들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겸손한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그들의 작업이 교회에 속한 것이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작곡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윌슨은 추정한다. 둘째, 로마노스의 시적인 설교들은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보통 24개의 연으로 구성된 설교들은 행마다 하나의 해설이 곁들여졌고 어떤 경우는 각 행에 들어있는 음절의 숫자에까지도 해설이 덧붙여졌다. 셋째, 설교를 행하는 설교자는 음율과 박자에 맞추어 노래하면서 이야기를 진행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여러 등장인물을 다른 목소리로 표현해야 했다. 이렇게 여러 등장인물을 통해 성경과 교리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가르침도 전달됐다. 이렇게 진행되는 설교의 마무리 과정에서 “회중은 합창단이 그 설교의 중심 주제로 사용하는 동일한 후렴구를 최소한 25회나 반복해서 부르는 것을 들었고, 또한 그 회중도 합창단에 합세해서 따라 부르곤 했다”(『그리스도 설교의 역사』, p 65). 오늘날 로마노스가 행했던 찬가 설교는 찾기 어렵다. 그러나 그가 강조했던 감성적이고 이야기 중심의 설교 전통은 지금도 많은 설교자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 이야기 중심의 설교, 감성을 자극하는 설교는 현대 청중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게 하는 좋은 매개체가 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로마노스의 콘타키온의 마지막 부분에 회중들이 성가대와 함께 부르는 찬양을 자신의 설교에 적용하는 현대 설교자들도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는 설교 마지막 부분에 예화를 하고 이어 설교 주제에 맞는 찬송으로 설교를 마무리한다. 설교 후반부를 찬송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성도들이 지금까지 들은 설교의 내용을 되돌아보게 하고 그 내용을 따라 한 주간을 살아가도록 결단하게 한다. 로마노스의 찬가 설교의 흔적을 이영훈 목사의 설교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조지훈 목사(한세대학교 설교학 교수)
  • 2025.05.09 / 이미나 기자

    기독교 렌즈로 보는 문화
    기억하려면 기록해야 한다
  •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잡지 중 하나인 <타임>은 매년 ‘올해의 인물’을 선정한다. 특이하게도 2025년에는 특정 개인이 아닌 AI 시대를 설계한 IT 공학자 8명을 선정했다. 이 명단에는 일론 머스크, 마크 저커버그, 젠슨 황 등 우리 시대의 거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인류의 미래를 바꾼 이들의 공통점은 ‘데이터’, 즉 방대한 기록의 힘을 활용했다는 점이다. 시간을 거슬러 1999년,밀레니엄을 앞두고 의미 있는 작업이 있었다. 보우버스 부부와 고트리브 부부는 수년 동안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지난 1000년간 가장 위대한 인물 1000명을 선정한 『1000년, 1000명(1,000 Years, 1,000 People: Ranking the Men and Women Who Shaped the Millennium)』을 출간했다. 당시 <타임>에서도 지난 1000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을 선정하여 발표했는데 두 조사에서 1위로 선정된 인물은 동일했다. 그 인물은 바로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이다. 그는 세상을 놀라게 한 위대한 사상가나 정치인이 아니라 세공업자이자 인쇄업자였다. 그러나 그가 발명한 금속 활판인쇄기는 인류 역사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이전까지 기록물은 일일이 손으로 베껴 쓰거나 목판으로 찍어내야 해서 시간과 인력의 소모가 크고 품질 또한 낮았다. 하지만 활판인쇄기가 발명되자 대량 인쇄가 가능해져 지식의 전파 속도가 폭발적으로 빨라졌다. 인쇄술의 발전은 복음 전파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의 ‘95개 조 반박문’이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할 수 있었던 것도, 라틴어 성경이 독일어로 번역되어 일반 대중의 손에 들려질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인쇄술 덕분이었다. 기록되었기에 인쇄할 수 있었고, 인쇄할 수 있었기에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이다. 기록은 역사적 사건과 개인의 경험을 보존하여 미래로 전달하는 핵심 동력이다. 기록은 문화의 토대가 되고 문화를 기록하는 과정은 공동체의 유대감 형성과 지식을 공유하는 역할을 한다. 즉, 기록과 문화는 ‘바늘과 실’, ‘불과 연기’, ‘수레와 바퀴’ 같이 뗄 수 없는 관계라 할 수 있다. 천재라고 불린 인물 301명의 일상을 조사한 결과도 흥미롭다. 아인슈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에이브러햄 링컨, 토마스 에디슨, 벤저민 프랭클린 등의 삶을 연구한 미국의 심리학자인 캐서린 콕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격과 특성은 모두 다르지만, 이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종이에 기록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기록은 기독교 신앙과 문화를 전승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도 바울은 신약성경 중 13개의 서신을 기록하여 당시 교회들을 믿음 위에 굳게 세웠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 『하나님의 도성』 등 100여 권의 저서와 설교, 편지 등을 남겨 중세 신학의 토대를 마련했다. 존 번연이 감옥에서 쓴 『천로역정』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고전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예로부터 기록을 중요하게 여겼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훈민정음 해례본』, 『동의보감』 등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을 20건 이상 보유한 것이 그 증거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 국가기록원을 통해 국가의 주요 기록물을 체계적으로 보존하며 그 정신을 면면히 이어가고 있다. 조선 최고의 실학자 정약용은 “기록하기를 좋아하라. 쉬지 말고 기록해라. 생각이 떠오르면 수시로 기록하라. 기억은 흐려지고 생각은 사라진다. 머리를 믿지 말고 손을 믿어라”라고 강조하며 500여 권의 책을 남겼다. 이순신 장군 역시 7년간 『난중일기』를 쓰며 생각을 정리하고 치밀한 승리의 전략을 세웠다. 기록은 단순히 과거를 담아두는 창고가 아니라, 현재의 나를 세우고 미래를 설계하는 설계도이다. 기록되지 않은 경험은 단편적인 기억으로 흩어지지만, 기록된 경험은 성찰의 도구가 되어 지혜로 응축된다. 우리가 매일의 삶을 기록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잊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다. 기록하는 행위를 통해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힘을 얻기 위함이다. 결국 기록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경영하며,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삶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도 기록을 통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기록된 성경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하고 생명을 얻게 한다(요 20:31).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아 알게 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기록된 그 말씀이 오늘 하루를 살아갈 힘을 주며 우리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롭고 바른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시고 지금도 함께하시는 주님의 은혜는 너무나도 많다. 이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으려면 기록해야 한다. 특히 올해는 『감사QT 365』를 통해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감사를 적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2026년 새해에는 감사와 기도, 응답과 찬양의 기록을 남겨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기억하는 모두가 되길 소망한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6.01.1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가장 낮은 곳에서 들려온 기쁜 소식 - 카라바조의 ‘목자들의 경배’
  •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1571~1610)는 바로크 미술의 문을 연 거장이자 미술사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논란 많은 인물이다. 그는 화폭에서는 ‘빛과 어둠의 마술사’로 불렸지만 현실에서는 분노와 폭력에 휘말려 살았다. 1606년 로마에서 테니스 경기 중 사소한 시비가 결투로 번졌고 그는 상대를 살해하고 말았다. 화려하던 명성은 한순간에 ‘살인자’라는 낙인으로 바뀌었고 도망자 신세가 됐다. 1609년, 시칠리아 메시나에 도착한 그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나폴리와 몰타를 전전하며 쫓겨 다닌 그의 내면은 죄책감과 죽음의 공포로 가득했다. 그러나 절망의 끝자락에서 그는 다시 붓을 들었다. 카라바조의 작품 <목자들의 경배>는 ‘가장 낮은 이들’에게 구원의 소식이 전해진 거룩한 밤을 그려냈다. 성경은 그 밤을 이렇게 기록한다.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8~11). 구원의 첫 소식은 왕궁이 아닌 들판의 목자들에게 전해졌다. 당시 목자들은 ‘암 하아레츠(땅의 백성)’라 불리며 멸시받던 유대 사회 최하층민이었다. 안식일을 지킬 여유도, 회당에 들어갈 자격도, 법정에서 증언할 권리도 없던 이들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가장 먼저 다가왔다. 카라바조는 이 장면을 이상화하지 않고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찬란한 천사도, 웅장한 건물도 없다. 낡은 나무 기둥, 거친 돌바닥, 메마른 짚더미가 흩어진 초라한 마구간이 전부다. 그러나 이 초라함이야말로 성육신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준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가장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가장 낮은 곳에 오셨다는 사실을 그는 가감 없이 담아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놀라운 신비가 일어난다. 강보에 싸인 아기 예수님에게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온다. 카라바조는 등잔도, 횃불도 그리지 않았다. 아기 예수가 유일한 빛의 근원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요 8:12)라는 말씀이 마구간이라는 현실 공간에서 시각적으로 구현된 셈이다. 이 빛은 지친 산모 마리아를 어루만지고 목자들의 거칠고 주름진 얼굴을 따뜻하게 감싼다. 화폭 속 목자들의 모습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햇볕에 그을린 피부, 투박한 양털 옷, 흙투성이 맨발, 굽은 등, 굳은살 박인 손까지 양을 치다 급히 달려온 목자의 삶이 그대로 배어있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은 모두 아기 예수에게 모인다. 지팡이에 기댄 늙은 목자도, 허리를 깊이 숙인 젊은 목자도 경외감에 잠겨 있다. 가장 작고 연약한 아기가 세상의 중심이 되는 신비,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존재가 모든 것을 내어주는 역설을 카라바조는 빛과 구도로 표현했다. 그의 명암법(키아로스쿠로)은 단순한 기법이 아니라 신앙 고백이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는 말씀처럼 주변의 어둠이 짙을수록 아기 예수의 빛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빛은 차별이 없다. 왕이든 목동이든 그 앞에서는 모두 평등하다. 오히려 가장 낮고 가난한 이들이 이 빛을 가장 먼저 맞이했다. 어쩌면 살인자이자 도망자였던 카라바조에게 이 그림은 처절한 기도였는지도 모른다. 그의 내면에 깃든 어둠은 목자들의 밤보다 훨씬 깊고 짙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붓끝으로 빛을 그려내며 자신이 갈망하던 용서와 구원을 화폭에 담았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시대의 어둠은 더욱 복잡하고 미묘하다. 물질은 풍요롭지만 영혼은 메마르다. 수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지만 고립은 더 깊어진다. 정보는 넘치지만 진리를 향한 갈증은 더욱 커진다. 밤새 양을 지키던 목자들처럼 고단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성탄은 한 가지 사실을 선포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둠 속으로 친히 들어오셨다. 2000년 전 마구간에서 시작된 그 빛은 시공간을 넘어 오늘 우리의 어둠 속에도 여전히 비추고 있다. 성경은 말한다. “목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갔더라”(눅 2:20). 목자들은 경배를 마친 뒤 다시 척박한 들판으로 향했다. 환경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들 안에는 이제 ‘빛’이 있었다. 어두운 현실을 견딜 이유, 희망의 근거가 생긴 것이다. 죄책감과 두려움에 시달리던 카라바조가 어둠 속의 빛을 그려 넣은 것처럼 400년이 지난 오늘 이 그림은 우리에게 진리를 건넨다.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희망의 빛은 존재하며 그 빛은 가장 낮은 마음을 가진 자에게 먼저 닿는다는 사실을. 성탄절을 맞아 목자들처럼 꾸미지 않은 우리의 모습 그대로 그 빛 앞에 서기를 소망한다. 마구간의 어둠 속에서 시작된 생명의 빛이, 우리 삶에 드리운 어둠까지 따뜻하게 밝혀 주기를 기도한다. 그것이야말로 성탄이 주는 약속이며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이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5.12.19 / 김용두 기자

    다 감사드리세
  • 17세기 초 유럽은 깊은 혼란 속에 있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100년이 지났지만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 간의 갈등이 여전히 심각했다. 이러한 갈등은 신성 로마 제국 내에서 권력을 차지하려는 여러 왕의 야망과 얽히며 더욱 정세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결국 1618년 보헤미아(체코)에서 개신교 탄압에 대항하여 일어난 반란이 불씨가 되어 유럽 전역을 피로 물들인 ‘30년 전쟁’이 시작되었다. 독일은 이 전쟁의 주 무대가 되어 큰 피해를 입었다. 그중에서도 작센 지역의 작은 도시 아이렌부르크(Eilenburg)가 가장 참혹한 상황을 겪었다. 전쟁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이 도시가 안전할 것이라 믿고 몰려들었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도시는 난민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를 넘었다. 거리 곳곳에는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쓰러진 시신들이 방치되어 있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 마틴 린카르트(Martin Rinkhart, 1586~1649)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가난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목사가 되었다. 하지만 목회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흑사병까지 기승을 부리던 1637년 그는 혼자 하루에 50여 명의 장례를 치렀으며 그해 집례한 장례만 4000건이 넘었다. 더욱이 사랑하는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는 깊은 슬픔을 겪었다. 그러나 린카르트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을 믿으며 묵묵히 자신의 사명을 감당했다. 가진 것을 내어 굶주린 자들을 먹이고 설교 때마다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를 잃지 말자고 권면했다. 어느 날 평소처럼 수많은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그는 방 한가운데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날마다 죽어가는 영혼들을 바라봐야 했다. 그들이 대부분 믿음의 형제자매이며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늘나라의 소망을 품고 있음에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가 흘러나왔다. 그날 저녁 린카르트는 온 가족이 모인 식사 자리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우리가 죽음과 삶의 경계에 서 있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마음과 목소리를 다해 하나님께 감사드리자.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 안에서 기뻐할 수 있다.” 눈앞의 현실은 절망과 고난으로 가득했지만 그의 입술에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감사가 넘쳐났다. 시를 즐겨 쓰던 그는 식사 전 드리던 감사기도를 바탕으로 한 찬송시를 지었다. 그 찬송시가 바로 우리가 부르는 새찬송가 66장 「다 감사드리세」(Nun danket alle Gott)이다. 찬송가 가사에는 그의 믿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다 감사드리세 온 맘을 주께 바쳐/ 그 섭리 놀라워 온 세상 기뻐하네/ 예부터 주신 복 한없는 그 사랑/ 선물로 주시네 이제와 영원히” 참혹한 고난 속에서도 린카르트는 과거부터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여전히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하며 찬양을 올려드렸다. “사랑의 하나님 언제나 함께 계셔/ 기쁨과 평화의 복 내려주옵소서/ 몸과 맘 병들 때 은혜로 지키사/ 이 세상 악에서 구하여 주소서” 그는 전쟁의 폐허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항상 함께하시며 지켜주심을 굳게 믿었다. 참된 기쁨과 평화는 오직 주님께 있으며 주님만이 이 세상의 악과 고난에서 건져주실 진정한 구원자이심을 고백했다. “감사와 찬송을 다 주께 드리어라/ 저 높은 곳에서 다스리시는 주님/ 영원한 하나님 다 경배하여라/ 전에도 이제도 장래도 영원히” 린카르트는 하나님이 세상의 왕이자 통치자 되심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높여드렸다. 그의 고백은 우리로 하여금 전에도 이제도 장래도 영원히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것이 성도로서 마땅한 삶임을 깨닫게 한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이다. 한 해 동안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와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의 손길을 돌아보며 감사드리는 날이다. 감사는 환경을 초월하는 믿음의 고백이다. 기쁨의 순간뿐 아니라 눈물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하신다. 우리는 언제나 감사할 수 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이 절망의 한가운데일지라도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원의 은혜와 영생의 소망을 붙들며 온 마음을 다해 감사드리자. 오늘 우리가 드리는 감사의 고백이 모든 어둠을 이기고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5.11.14 / 김용두 기자

    선교 뉴스
    “열두광주리 새벽기도회 받은 은혜 커” (일본 순복음사카타교회에서 온 감사 글)
  • 이선미 선교사(일본) 할렐루야! 2026년이라는 새해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린다. ‘신년축복 열두광주리 새벽기도회’는 한 해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마음으로 드려지는 예배로, 우리 성도들에게 한 해를 여는 가장 중요한 영적 출발점이 되었다. 매년 모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진행되는 이 새벽기도회에 온라인으로 함께 참여하며, 성도들은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고 새롭게 결단하는 귀한 시간을 갖고 있다. 새벽 4시, 일본 야마가타현 사카타 지역의 성도들은 어둠과 눈길을 뚫고 교회로 모였다. 이 지역은 겨울이면 눈길이 미끄러운 ‘설국’이지만, 예배를 사모하는 성도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매일 드려진 찬양과 기도, 이영훈 목사님의 은혜로운 말씀은 화면을 넘어 성도들의 심령 깊이 스며들었다. 한 시간 동안 집중하여 기도한 후 돌아가는 성도들의 발걸음에는 평안과 기쁨이 가득했다. 사카타는 해안을 끼고 있어 바람이 매우 강한 지역이다. 강풍으로 인해 교회 간판이나 시설이 손상되는 일도 여러 차례 있었는데, 이번에도 교회 외벽의 전기 미터기가 떨어질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다. 그러나 1월 10일 새벽예배 후 가또상 남편이 직접 수리를 해주었고, 그날 밤 다시 강한 바람이 불었음에도 아무 피해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미리 도우심의 손길을 준비해 주셨음을 깨닫고 감사했다. 올해 열두광주리 새벽기도회의 주제는 ‘믿음의 영웅들’이었다. 성도들은 말씀 속 믿음의 인물들을 묵상하며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고 회개와 결단의 시간을 가졌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는 윌리엄 캐리 선교사의 고백처럼, 성도들은 일본 땅의 영적 회복과 복음화를 위해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기대하며 헌신을 새롭게 다짐했다. 특별히 가또상 모녀에게 이번 새벽기도회는 큰 은혜의 시간이었다. 이들은 송구영신예배부터 열두광주리 새벽기도회까지 빠짐없이 참석하며 “기도가 방법이고 예수님이 해답”임을 고백했다. 1월 14일에는 딸과 함께 금식기도를 드리며 자신의 형식적인 신앙을 회개하고, 자녀의 장래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겼다. 방언의 은사를 사모하던 가또상은 1월 20일 새벽기도회 후 방언을 받는 은혜를 경험했고, 이후 이 가정은 일본 부흥과 전도를 위해 기쁨으로 교회를 섬기고 있다. 또 다른 간증의 주인공인 하루미 집사는 남동생의 재판 문제를 위해 오랜 기간 기도해 왔는데 이번 새벽기도회 가운데 하나님께서 상대편의 마음을 움직여 주시는 응답을 경험했다. 1월 21일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로마서 8장 28절 말씀으로 약속의 응답을 받았다. 이번 열두광주리 새벽기도회는 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를 깊이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온라인으로 참여했지만 은혜의 깊이는 현장과 다르지 않았다. 2026년을 시작하며 열두광주리에 담아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일본 땅 곳곳에 흘러가기를 소망한다.
  • 2026.01.23 / 오정선 기자

    정대섭(미국)·이영직(케냐) 선교사 파송
  • 선교사 파송식이 18일 주일3부 예배 설교 후 대성전에서 진행됐다. 재단법인 순복음선교회 이사장 이영훈 목사는 정대섭(미국 애틀랜타 스와니순복음교회 담임·사진 위) 선교사와 이영직(케냐 굿 후르츠 파운데이션·Good Fruit Foundation) 선교사에게 각각 파송장을 수여하고 선교 사명 감당을 위해 안수기도 했다.
  • 2026.01.23 / 오정선 기자

    캄보디아 조재영 선교사 소천
  • 캄보디아 선교 현장에서 복음 전파에 매진해 온 조재영 선교사가 10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11일 서울 영등포구 교원예움서서울장례식장에서는 조 선교사의 위로예배가 드려져 조 선교사를 아꼈던 목회자와 성도, 제직들이 참석해 이 땅에서 사명을 다한 조 선교사를 애도했다. 예배는 선교국 담당 정용훈 목사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이영훈 담임목사가 ‘주님이 예비하신 천국’(요 14:1~6)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통해 조 선교사의 사역을 기렸다. 이 목사는 “조재영 선교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모든 사명을 다하고 하나님 품에 안겼다”며 “그가 보여준 뜨거운 헌신을 기억하며, 남겨진 가족들이 하나님의 평안 속에서 다시 만날 천국을 소망하며 위로받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15년간 캄보디아 영혼 구원에 앞장 서온 조 선교사는 한세대학교와 동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서대문대교구와 교회개척국 등에서 사역하며 목회자로서의 역량을 쌓았다. 이후 2010년 캄보디아 선교사로 파송되어 최근까지 척박한 땅에서 영혼 구원과 현지 복음화를 위해 헌신해 왔다. 13일 오전 천국환송예배를 마친 후 조 선교사의 유해는 크리스찬메모리얼파크에 안치됐다. 유족은 연은영 사모와 아들 민준 군이다.
  • 2026.01.16 / 오정선 기자

    선교지 소식
    김명준 선교사(말레이시아)
  • 말레이시아 사역 위한 변함없는 중보가 필요합니다 마을 사역에 대한 행정기관의 제약 점점 심해져 성전 건축·제자 양성 주력, 함께할 사역자 필요 할렐루야! 말레이시아에서 사역하는 김명준 선교사입니다. 한국은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여기는 며칠 사이 유난히 더 더운 것 같습니다. 말레이시아는 평균 연령이 높아지면서 길어지는 노후에 대한 준비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최근 말레이시아 정부에서는 연금 제도를 수정하면서 2028년도까지 점진적으로 기본 저축액 한도를 높일 계획이라고 합니다. 여기도 국민의 노후 문제와 관련 정부 정책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 같습니다. 9월 말부터 휘발유 값이 내린다고 해서 내심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내국인에게만 적용되고 오히려 외국인에게는 30퍼센트 가까이 올렸습니다. 현장에서는 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여하튼 저희에게는 이래저래 무거움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샤론 교회는 성도들이 사바 지역 단기 선교를 다녀왔습니다. 성도들이 귀한 시간을 보내고 와서 감사하고, 다음에는 좀 더 많은 준비를 해서 새로운 지역을 다녀오고자 합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있는 라슬리 형제와 우니 자매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교회에서 만나 오랫동안 함께 봉사를 하면서 사랑을 키워나가 가정을 이룬 모습이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의 결과임을 믿습니다. 피카 자매는 그동안 임신 중독 증세로 입덧이 너무 심해 어려움이 많았는데 감사하게도 큰 어려움 없이 출산했습니다.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해서 너무 다행입니다. 자르니 전도사가 사임을 해서 여러 가지 절차의 어려운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데 제직들과 계속 만나 논의를 하고, 일단 라이만 전도사가 3개월간 사역을 맡아서 해주기로 했기에 당분간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자 합니다. 캄풍 마을 원주민 사역자들은 여러 상황으로 인해 신학 과정을 계절 학기 형식으로 많이 하곤 합니다. 이번 가을 학기에 수업이 많은 관계로 사역자들이 학업에 매달리고 있어 힘들지만 힘내라고 독려하고 있습니다. 아이르드낙 교회 리더인 아딘 집사가 십 수 년 신장 투석을 해오고 있습니다. 요즘은 한 주에 세 번씩 해야 한다는 얘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예전처럼 사역은 못하지만 변함없이 예배에 열심인 모습이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청년 사역의 하나로 스포츠 사역을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잠브리 전도사를 중심으로 청년 축구팀이 결성돼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샤론이나 조호바루 교회 청년들과 축구 시합을 추진해 볼까 합니다. 바뚜음빳블라스 교회 건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작은 규모여서 빨리 완공되기를 기대하지만 우기 시즌과 겹치고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 수 있기에 계속 기도와 함께 진행해 나가고자 합니다. 사역지의 행정 기관에서 외국인의 원주민 마을 방문 혹은 활동을 금한다는 방침을 발표해서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일선 경찰서에서 저희 사역지 마을에 직접 통보를 해오는 등 점점 더 사역에 제약이 늘고 있어 시름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조호바루 교회는 기존 사역을 더해 성경 나눔, 현지 목회자 초청 예배 등을 진행했습니다. 지난번 선교팀이 방문해서 많은 은혜를 받았던 물리야 교회의 사모인 야펜젤라 전도사가 강사로 말씀을 전했는데 차분하면서도 명쾌한 말씀을 통해 성도들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름이 아펜젤러 선교사님과 비슷해서인지 저에게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출산을 앞두고 있던 루이사 자매가 갑자기 얼굴에서부터 반신마비 증세가 와서 걱정됐었는데 무사히 건강한 사내아이를 출산했습니다. 산모의 마비 증세도 사라지고 아기도 건강해서 정말 감사합니다. 한국어부 학생부의 인원이 늘어나는 등 전체적으로 함께 할 사역자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재정이 여의치 않아 이래저래 고민 되고 있습니다. 지금보다는 미래를 바라보고 인적, 물적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 시기인 듯싶은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계속 하나님께 그 뜻을 구하고 있습니다. 한층 깊어져 가는 가을의 정취와 함께 하나님의 깊은 사랑의 정취를 경험하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라며 말레이시아 사역에 변함없는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공식적으로 마을 사역이 제한 된 상황을 지혜롭게 헤쳐 나갈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또 샤론 교회에서 사역할 신실한 사역자가 세워질 수 있도록, 바뚜음빳블라스 교회 건축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조호바루에서 함께 할 동역자가 올 수 있는 환경적인 상황이 열리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사모와 자녀 등 가족의 신변과 안전을 위해 기도를 요청 드립니다.
  • 2025.10.3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윤성빈 선교사(노르웨이)
  • “복음의 깃발 휘날릴 수 있도록 성령의 역사 기대” 노르웨이 유일한 한인교회 ‘예수만이 생명’ 전파 할렐루야! 노르웨이순복음교회를 맡고 있는 윤성빈 선교사입니다. ‘북쪽으로 가는 길’이라는 이름답게 국토의 절반 이상이 북극권에 속한 노르웨이는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입니다. 여름에는 백야 현상으로 잠시 낮이 길지만, 긴 겨울 동안은 낮에도 짙은 어둠이 드리우는 곳입니다. 1970년대 석유와 천연자원이 발견되면서 노르웨이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나라가 되었지만 복지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과도한 세금과 높은 인건비로 인해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비싼 나라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노르웨이는 일찍이 종교개혁의 영향을 크게 받아 약 480년 동안 루터교를 국교로 삼아왔습니다. 1907년에는 노르웨이 감리교 소속 토마스 바렛(Thomas B. Barratt) 목사가 미국 아주사에서 은혜를 받고 돌아와 북유럽에 성령운동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노르웨이는 2012년 헌법에서 기독교 국가의 지위를 삭제하였고 2016년부터는 교회에서 동성 커플의 결혼과 입양을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성경의 권위가 약화되고 교회가 점차 축소되었습니다. 이제는 국민의 약 1%만이 교회에 출석하는 신앙의 불모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노르웨이인들은 신앙보다 천연자원과 복지 시스템을 더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반면 많은 나라에서 난민들이 유입되면서 이슬람과 여러 종교들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제가 이곳에 파송될 때, 선교국으로부터 “노르웨이에는 한인교회가 단 한 곳밖에 없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국의 네 배나 되는 이 넓은 땅에 교회가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막상 현지에 와 보니 춥고 어두운 날씨, 높은 물가, 제한된 먹거리 때문에 한인들이 정착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교회를 세우려는 여러 교단 선교사들의 노력이 있었지만 정식으로 교회가 세워진 곳은 노르웨이순복음교회 한 곳뿐이었습니다. 이는 1986년 먼저 이곳에 파송된 이종욱 선교사님과 채옥병 사모님의 기도와 헌신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이종욱 선교사님은 손수 만든 김치와 한국 음식을 들고 기차로 8시간이 넘는 거리의 성도들을 30년 넘게 매달 찾아가며 구역을 세우셨습니다. 오슬로와 각 지방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이 모일 때마다 한마음으로 교회를 위해 기도했고, 그 결과 1997년 노르웨이순복음교회는 정식으로 노르웨이 정부에 등록될 수 있었습니다. 이어 2004년에는 오슬로에 성전을 매입하여 지금까지 예배와 교제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현재 노르웨이순복음교회는 한인들과 국제 가정 그리고 한국에서 온 입양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함께 사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매주 금요일과 주일에는 성전에 모여 예배와 기도를 드리고 있으며, 주중에는 먼 곳에 거주하는 성도들을 직접 찾아가는 심방 사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매년 5월에는 특별 바자회를 열어 한국 음식과 문화를 알리고, 11월에는 입양인들을 초청해 함께 음식을 나누며 위로하는 사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복지제도가 잘 갖추어진 선진국에서는 교회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말이 사라질 수 있도록 이곳 노르웨이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평생 교회에 다니지 않는 영혼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모든 관공서, 기업, 학교, 심지어 교회까지 무지개 깃발을 걸고 동성애를 지지하는 이 나라의 변화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노르웨이는 세계에서 가장 맑고 깨끗한 자연환경을 가진 나라입니다. 매년 노벨 평화상을 수여하는 평화의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다시 한번 크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온 유럽에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성도 여러분의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 2025.10.03 / 오정선 기자

    남광우 선교사(남아프리카공화국) 
  • “선교는 내가 아닌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열방선교교회 통해 선교와 미혼모 돕기 등 나서 다음 세대 깨워 아프리카 복음화 힘써 할렐루야! 아프리카 대륙 남단에 위치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사역하는 남광우 선교사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대한민국의 약 12배 크기의 나라로 저는 수도인 케이프타운 더눈(Dunoon) 지역에서 열방선교교회를 담임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 남아프리카에 처음 온 것은 IMF 외환위기가 터진 이듬해인 1998년 4월이었습니다. 결혼 후 첫 아이가 백일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참으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순복음의 정식 선교사로 파송 받은 것은 그 뒤 2008년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사역한 지도 벌써 26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그동안 여기저기에 건물들이 세워졌고 제자 교회도 3개가 됐습니다. 섬기고 있는 열방선교교회는 비록 큰 교회는 아니지만 선교하는 교회로서 동남부 아프리카 내륙에 위치한 말라위로 선교사를 파송해 두 가정이 사역 중에 있습니다. 넉넉지 않은 재정이지만 조금씩 후원을 하면서 함께 사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말라위는 아프리카의 최빈국들 중의 한 국가로서 여전히 가난합니다. 음식 재료가 거의 없으며 주식으로 옥수수를 가루로 만들어 식사를 합니다. 이곳에서 3개 초등학교(음칼란조카, 음판데, 고고)를 대상으로 급식 사역을 진행하며 3000명 아이들의 배고픔을 달래주고 있습니다. 혼자하기에는 어려운 일이나 도움의 손길들이 있어 감사합니다. 예수님을 잘 믿으면 굶어 죽는 일은 절대 없다는 것을 아이들의 기도와 간증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 굶기지 않으십니다. 세워진 현지인 목사들이 다 각자 자기의 교회를 맡아 열심히 봉사하고 섬기는 모습을 볼 때면 감사가 먼저 나옵니다. 제가 아프리카 선교지에서 사역하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선교는 내가 아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차려놓으신 밥상에 저를 초대해 주셔서 함께 사역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때문에 선교는 내 생각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생각을 가지면 됩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사역에 어려움을 겪고 떠나신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처음 사역을 시작할 때는 제 주변에 저희를 포함해 일곱 가정이 있었는데 지금은 저희 가족만 남았습니다. 자신을 내려놓고 사역할 때 점점 예수님께 가까이 가려했고 예수님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제 생각이 바뀌자 삶이 바뀌었고, 저희를 만나는 현지인들이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곳에서 저희가 두 가지 사역을 하게 하셨습니다. 첫째가 미혼모를 위한 사역입니다. 아프리카에는 미혼모가 많은데 10대 여자 아이들의 소원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들의 소원이 직장을 가진 유부남의 아이를 낳아 그 집에서 아이를 키우며 사는 것이라 합니다. 축복된 결혼 속에 자녀를 잉태하고 출산해야할 여성들이 임신으로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안타까워 아내와 저는 미혼모를 위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이들에게 올바른 성교육과 함께 잉태된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요, 결혼과 가정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2년 전 아내가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천국에 가면서 미혼모를 위한 사역은 제자 목회자의 사모들이 맡아 진행하게 됐습니다. 또 다른 사역은 다음 세대를 위한 사역입니다. 하나님은 이곳에서 소중한 보석들을 발견하게 하셨습니다. 다음 세대를 세우고 부흥시키는 일을 위해 저는 제자들과 힘써 달려갈 것입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아프리카를 위해 기도해주셨으면 합니다. 모두 보내는 선교사, 힘써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 동역해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선교 사역에 귀한 열매가 맺히길 기도합니다.
  • 2025.09.05 / 오정선 기자

    선교사를 위한 중보 기도
    배다윗 선교사(M국)
  • - R순복음교회(선교센터) 건축을 위해 - 사용 중인 시설의 모든 공간 통합해 예배 장소를 만들 수 있도록
  • 2026.01.23 / 오정선 기자

    주윤식 선교사(파라과이)
  • - 출석 성도 1000명 돌파를 위해 - 1월 지교회 연합 청소년·청년 수련회로 다음 세대가 부흥하도록 - 지교회 목회자들과 사모들의 건강 - 다음 세대를 이어갈 영적 리더들이 세워지길
  • 2026.01.16 / 오정선 기자

    김현철 선교사(캄보디아)
  • - 깜뽕톰순복음교회 성도들의 성령 충만 - 깜뽕톰순복음교회 청소년 리더들의 믿음 성장과 사명 - 교회 리더들의 부모님 예배 출석
  • 2026.01.09 / 오정선 기자

    순복음영성스케치
    기도의 종류(Ⅳ) - 중보 기도
  • 세계적인 설교자 찰스 스펄전 목사는 “위대한 일을 행하실 때마다 하나님은 먼저 기도의 사람을 세우신다”고 말했다. 그가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본인 스스로가 기도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며, 특히 그를 위해 중보하며 기도하던 무명의 기도 동역자들의 영적 지원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 역시 그의 사역에 있어 중보 기도의 능력을 인정했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만 사랑하는 기도의 사람 백 명을 원했다고 한다. 타인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기도하고 연약함과 어려움을 지탱해주고자 하는 중보 기도는 영적 지도자를 위한 중보 기도로 이어질 때 더욱 강한 능력으로 나타난다. 1. 중보의 의미와 예수 그리스도 중보(intercession)의 문자적 의미는 ‘사이에 나아가다’, ‘상치하는 양자를 화해하기 위해 행동하다’의 의미가 있으며 법정에서 의뢰인을 돕는 변호사나 법률적 행위를 대신해주는 대리인의 개념을 갖고 있다. 요한복음 1장 18절은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증거하고 있는데, 앞선 중보의 개념에 따르면 예수님이 하나님과 인간을 중보하는 최고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은 지금도 성령님을 통하여 계속되고 있으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기도할 때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도와주신다. 2. 예수님의 중보 기도와 훈련 모델 능력 있는 중보 기도자가 되고자 소원하는 사람은 단연코 최고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따라가야 한다. 그러나 한 명의 중보 기도자가 세워지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중보 기도자로서의 소원과 결심이 있어야 하며 더 나아가 훈련이 필요하다.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의 최우선 순위는 기도였는데 어떠한 때에 기도하셨는지를 알아보면 중보 기도자로 서는 훈련에 도움이 될 수 있다. (1)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침례를 받으실 때 기도하셨다(눅 3:21~22). (2) 사람들에게 인정받던 전성기 때에 많이 기도하셨다. (3) 진리에 대한 계시가 필요할 때 기도하셨다. (4) 제자들을 선택하고 훈련하실 때 기도하셨다. (5) 사랑과 용서가 필요할 때 기도하셨다. 3. 중보 기도의 올바른 태도 중보 기도자로서 훈련을 받고자 하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훈련 방법은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매일 일정한 시간을 내어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 증진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아래의 5가지 올바른 태도를 유지하기만 해도 효과적인 중보 기도자로 설 수 있다. (1) 자발적으로 중보 기도하라 억지로 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지 못한다.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가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이다. (2) 구체적으로 중보 기도하라 중언 부언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신다(마 6:7). 구체적인 기도는 응답을 통하여 능력을 체험하는 통로가 된다. (3) 올바르게 중보하며 구하라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하고 정당한 것을 구해야 한다. 응답이 올 때까지 찾고 두드리는 실행의 과정을 능동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4) 전심으로 중보하며 구하라 두 마음을 품는 것을 하나님은 싫어하신다(약 1:8). 이런저런 생각이 많으면 기도에 집중하기 어렵다. 마음이 분산되는 것을 막는 실제적인 방법은 크게 소리 내어 기도하는 것이다. (5) 쉬지 말고 중보 기도하라 기도는 호흡이요 습관이 되어야 한다. 한꺼번에 일시적으로 많은 기도를 드리는 것보다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자주 드리는 기도가 효과적이다. 4. 영적 지도자를 위한 중보 기도 중보 기도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 지도자를 위한 기도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에게 순종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지도자를 판단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을 갖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시 66:18). 그리고 아래와 같이 영적 지도자의 영성과 생활과 사역의 3가지 영역에서 중보하며 기도하면 사역에 큰 능력이 나타난다. (1) 영성을 위하여(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기도) 지도자의 위치에서 듣게 되는 비난과 겪게 되는 억울한 일들을 견디고 이길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2) 생활을 위하여(개인적인 삶을 위한 기도)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추구하며, 행복한 가정의 모범이 되고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도록 기도해야 한다. (3) 사역을 위하여(사명 감당을 위한 기도) 교회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는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 끝까지 사명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귀한 뜻을 이루어 가야 한다. 성도들은 영적 지도자의 권위에 순종하고 그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하나되게 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끝> 김현동 선임목사(교무국 기도처지원팀)
  • 2023.12.2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기도의 종류(Ⅲ) - 방언 기도
  • 올해는 우리 교회가 속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교단이 창립한 지 70년이 되는 해로서 한국의 복음화를 위한 오순절 운동을 되돌아보게 한다. 오순절 운동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의 생명력을 회복시키려는 운동으로서 성령 침례의 결과가 방언, 신유, 능력으로 나타남을 강조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교회도 성령 충만과 방언 기도를 강조해 왔고, 이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신유 사역과 사회 참여를 통하여 세계 최대의 교회로 성장했다. 오늘은 우리 교회와 교단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 부흥의 큰 원동력이 된 방언 기도에 대해 알아보고, 방언 기도를 통해 성령 충만의 영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다짐의 시간이 되기를 기도한다. 1. 방언 기도의 의미와 성경 상의 언급 방언 기도는 영적인 언어로 말하는 기도로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통을 가능하게 하며 개인 신앙 발전에 큰 유익을 주는 기도이다. 방언은 성령 침례의 외적 증거이며 성경 많은 곳에서 성령 침례의 표적으로 나타난 방언 기도의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오순절 날 제자들에게 임한 성령의 임재(행 2:1~4), 둘째는 베드로가 고넬료와 집안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을 때의 성령의 임재(행 10:44~46), 덧붙여 바울이 에베소의 제자들에게 안수할 때의 성령의 임재(행 19:5~6)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2. 현대 오순절 운동과 방언 기도 성경 상에 등장하였던 방언 기도는 20세기 초 현대 오순절 운동에서 재발견된다. 1901년에 감리교 목사 찰스 팔함(Charles F. Parham)은 그가 가르치는 신학교 학생들과 함께 성경을 철저히 연구하던 중, ‘방언이 성령 침례의 최초의 증거’임을 깨닫게 된다. 이들은 이렇게 발견한 말씀의 내용을 철저히 믿고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 침례와 방언을 체험하게 되었고 이것이 현대 오순절 운동의 시작이다. 이어 방언 기도를 강조하는 오순절 운동은 1906년 윌리엄 시무어(William J. Seymour)의 아주사 부흥으로 이어졌다. 방언과 방언 통역, 예언, 축사, 신유 등이 강력하게 나타났던 아주사 거리 집회는 무려 3년이나 지속되며 기도의 불길을 이어갔다. 3. 방언 기도의 유익 성령 침례의 최초의 증거로서 방언 기도는 다음과 같은 유익을 가져다준다. (1) 방언 기도는 성령 충만의 확신을 준다. 성경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제자들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방언)로 말하기를 시작하였다고 증거하고 있다(행 2:4). 한편 믿는 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한다고 분명히 적고 있다(막 16:17). 성령 침례를 받으면 방언이라는 표적을 통하여 분명하게 성령 충만의 증거를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방언 기도를 한다는 것은 기도하는 자에게나 듣는 자에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성령 충만의 확신을 가져다준다. (2) 방언 기도는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통을 나누는 비밀한 언어이다. 방언 기도에 대해 비교적 많은 언급을 하고 있는 고린도전서에서는 방언을 하나님과 비밀한 영적 교통을 나누는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고전 14:2)고 하면서 또한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고전 14:14)라고 증거하고 있다. 이러한 방언 기도는 하나님과 비밀의 기도이기 때문에 사탄도 알아듣지 못한다. (3) 방언 기도는 자기 신앙의 덕을 세운다. 성경은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운다(고전 14:4)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덕’을 세운다는 것의 원어적 의미는 ‘집을 지어 올라간다’는 의미가 있다. 우리는 방언 기도를 통하여 마치 집을 짓듯이 우리의 신앙을 더욱 견고히 할 수 있다. (4) 방언 기도는 마음을 부정적인 상태에서 해방시켜준다. 방언으로 기도하면 우리의 잠재 의식 속에 있는 모든 불안, 초조, 절망, 미움, 원한, 상처 입은 것을 깨끗이 청산해 준다. 마음의 공간이 방언 기도를 통하여 깨끗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부정적인 상태에서 해방되어 절대긍정의 마음으로 변화 된다. (5) 방언 기도는 연약함을 돕는 탄식의 기도이다. 성경은 성령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고 하고 있다(롬 8:26~27). 방언 기도를 통하여 탄식하듯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6) 방언은 깊고 오랜 기도를 가능하게 한다 고린도전서 14장 15절에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고 증거하고 있다.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기 위해서는 기도의 시간이 길어야 한다. 방언 기도는 기도의 언어로서 기도를 오래 할 수 있게 하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코로나19 엔데믹 선언 이후인 지금은 성도 개개인이 기도를 통해 성령 충만한 영성을 회복하고 교회 내외적으로 전례 없는 부흥을 꿈꾸어야 할 때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 교회 성령 충만과 부흥의 토대가 된 오랜 시간의 깊은 방언 기도를 회복하는 것은 교회와 성도 모두가 부흥으로 향하는 최선의 지름길을 제공해 줄 것이다. 김현동 선임목사(목회자제직훈련소)
  • 2023.11.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기도의 종류(Ⅱ): 대적 기도
  • 그리스도인들에게 악한 영들과의 영적 전쟁은 선택 사항이 아닌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과정이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영적 전쟁에 대해 무의미하게 여기거나 막연히 신비적인 것이라고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영적 전쟁은 성경 여러 곳에서 많이 언급되고 있으며 오늘날도 실제적으로 많은 이들에 의해 체험되고 있다. 이러한 영적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대적 기도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오늘은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신 권세(창 3:15)에 힘입어 선포하는 대적 기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대적 기도의 의미와 특징 대적 기도는 문자 그대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권세에 힘입어 악한 영들에게 명령하고 선포하는 기도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도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의 형식이지만 대적 기도는 악한 영들에 대한 것으로 간구가 아닌 명령과 선포의 형태를 지닌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는 권세를 주셨다(눅 10:19). 이 말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악한 영들을 대적함으로써 승리하였던 것과 같이 오늘날 우리들도 예수님이 주신 권세와 능력을 믿고 명령하며 선포함으로써 귀신을 쫓아내고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2. 성경에 나타난 대적 기도 성경은 영적 전쟁을 실제적으로 묘사하면서 대적 기도의 상대인 악한 영들과 이들을 어떻게 상대하여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1) 대적 기도의 대상 성경은 우리가 물리쳐야 할 대상에 대해 직접적으로 ‘대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라고 하거나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고 말한다. 이러한 성경의 언급을 통해 우리의 대적이 바로 ‘마귀’임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2) 대적 기도의 사례 예수님은 귀신을 꾸짖는 방법(막 9:25)과 명하여 내어 쫓는 방법(눅 8:29)을 통하여 대적 기도를 행하셨다. 바울은 이러한 예수님의 권세에 힘입어 빌립보의 귀신 들린 여종을 향하여 명하였고, 귀신은 즉시 나오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행 16:18)는 명령과 선포는 오늘날 대적 기도의 대표적인 형태로 활용되고 있다. 3. 대적 기도의 방법 대적 기도는 보이지 않는 적과의 영적 대결이므로 마치 전쟁터에서 배수의 진을 친 것과 같은 비장한 각오로 준비하고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기도해야 한다. (1) 보혈을 의지하는 기도 유월절 어린 양의 피는 예수님의 보혈에 대한 예표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음에서 보호하실 것에 대한 약속이었다(출 12:13).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친히 흘려주신 보혈의 권세를 갖고 있으므로, 보혈에 의지하는 기도는 마귀에게 대적하는 가장 큰 기초가 된다. 연약한 육신을 입고 있는 우리들은 매일 같이 마귀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데 특별히 개인의 감정과 사회적 관계 그리고 환경 가운데 보혈을 뿌리며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2) 예수 이름의 권세를 의지하는 기도 예수님이 이 땅에 성육신하시어 오신 이유는 우리의 상실한 권세를 회복해 주시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셨으나 부활하셔서 승리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히 8:1). 이러한 예수님의 권세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됨과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요 1:12). 성경은 예수님의 권세에 의지할 때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고 하였고(마 16:18), 매고 푸는 권세가 있어서 마귀들을 묶고 포로된 자들을 구원하는 권세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마 16:19). (3)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갖는 기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으나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이긴 싸움을 싸우는 중이다. 그러나 아직 대적의 수중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겼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패배 의식에 빠지고 좌절과 낙심 가운데 살아가게 된다. 우리는 대장 되신 예수님이 죽음을 정복하셨고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주셨으며, 흉악과 결박에서 놓임 받게 해주심을 굳게 믿고 마귀를 대적하며 기도해야 한다. 4. 대적 기도의 실제와 유익 대적 기도를 통하여 의심, 두려움, 교만, 불안, 낙심과 염려 등 마음의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사라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대적 기도는 육체의 치유와 믿음의 회복도 가져다준다. 우리는 각종 암, 우울증, 중풍, 고혈압, 당뇨병, 만성 피로 등 육체의 질병에 대해 꾸짖고 명령하고 선포하여 승리할 수 있고, 영적 성장과 신앙생활에 방해를 주는 악한 영들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대적하며 기도할 수 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하노니, 사람의 육체와 정신과 영혼을 괴롭히는 악한 원수 마귀야! 지금 즉시 하나님의 자녀에게서 떠나갈지어다!” 이러한 선포를 통하여도 우리는 마귀와 효과적으로 대결하고 영적 전쟁의 승리에 다가설 수 있다. 김현동 선임목사(목회자제직훈련소)
  • 2023.10.2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구속사적 성경읽기
    (19)영적 무장을 위한 3대 신앙
  •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은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로 했다면 영적 전쟁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영적 무장이다. 영적 무장이 없이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전쟁에 임하는 병사가 무장 없이 맨몸으로 나서는 법이 없듯이 영적 전쟁에서도 영적 무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 시간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영적 무장, 곧 3가지 신앙적 무장에 대해서 알아보자. 1. 창조 신앙 하나님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창조주이시다.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자 우리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신 장본인이시다. 이 세상 모든 만물 가운데 스스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아무리 과학이 하나님을 배제하고 진화론과 같은 이론으로 이 세상을 설명하려고 해도 그런 과학은 극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다음과 같은 우화가 있다. 어느 날 과학자 한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와 말했다. “우리 과학이 발전해 흙으로 사람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과학이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은 다 할 수 있다는 의미죠.” 하나님이 답하셨다. “정말 그러한가? 그렇다면 네 말대로 흙으로 사람을 만들어 보아라. 대신 네 흙으로 해라.” 이 우화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가?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생명의 근원, 우주의 근원은 밝혀낼 수 없다는 것이다. 생명의 근원, 우주의 근원은 어디 있는가?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셨다.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전 12:1~2).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다. 렇다면 창조 신앙을 가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절대 주권을 인정하며 살아야 한다. 달리 말해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창조주 되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 영광을 올려 드리며 살아야 한다. 2. 십자가 신앙 예수님의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써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받은 것이다. 그뿐 아니라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함을 얻으며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축복을 얻은 것이다. 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말했다.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 마르틴 루터는 이 말을 통해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어야 함을 천명한 것이다. 달리 말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빼놓고서는 기독교 신앙을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갈라디아서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 3:13~14). 예수님이 율법이 정한 대로 나무에 달려 죽는 저주받은 죽음을 당하심으로써 우리를 죄와 사망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아브라함의 복과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셨다. 그렇다면 십자가 신앙을 가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담대한 복음 증거자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세상 앞에 절대로 주눅 들지 않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만큼 나를 사랑하셨고 모든 저주의 굴레에서 해방하셨다. 또한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녀가 되게 하셨으니 우리가 삶의 형편과 조건, 세상의 시선에 위축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3. 부활 신앙 기독교 신앙의 위대함은 부활 신앙에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예수님의 부활은 기정사실이다. 그 증거가 무엇일까? 첫째,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다. 둘째, 부활의 목격자들이 있다. 도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 15:4~8). 특히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을 당하실 때 비겁한 도망자들이 되었던 제자들이 어떻게 다시 그 예수님을 전하다 순교자까지 될 수 있었을까?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부활이 거짓일 수 없는 이유다. 물론 이런 증거에도 부활이 거짓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셋째, 부활이 거짓이라면 그 거짓이 2000년 넘게 지속될 수 있었을까? 수없이 많은 사람이 그 거짓에 자기 목숨을 걸 수 있었겠으며 자기 인생을 헌신해 가며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을까? 부활은 사실이고 진리이다. 그렇다면 부활 신앙을 가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결단코 세상에 얽매인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안개처럼 쉽게 사라지는 인생길을 걷고 있으며 잠시 왔다가 떠날 나그네 인생을 살고 있다. 이 세상은 우리 삶의 종착지가 아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단기 선교 온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의 몸을 입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될 것이다. 바울 사도는 말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 15:19). 이 세상에 얽매여 잠시 잠깐뿐인 헛된 것을 찾다가 인생의 허망함에 무릎을 치며 후회하지 말고 부활 후 누릴 영원한 생명을 바라며 살아가자. 오정섭 목사
  • 2022.07.1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절대긍정의 믿음
  •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선교라고 정의되는 시대가 찾아왔다.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인의 복음 증거만큼이나 그리스도인의 삶이 주목받는 시대라는 뜻이다. 요즘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전하는 복음의 진정성을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에서 찾는다. 따라서 성경을 삶의 원리 원칙으로 삼는 성경적인 삶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성경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절대긍정의 믿음이다. 왜냐하면 복음의 결론은 성도의 최후 승리를 말하고 있으며 다시 오실 예수님이 성도의 최후 승리를 반드시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져야 할 절대긍정의 믿음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그 땅을 정탐 다녀온 여호수아와 갈렙의 반응에서 절대긍정의 믿음이 지녀야 할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1.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을 갖고 싶어 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각 지파에서 대표 한 사람씩을 선발해 모두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에 보낸다. 그들은 40일간 그 땅을 돌아본 후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이며 그 땅의 과일들은 극상품이라고 할 수 있고 그들이 누리는 것은 풍요롭다는 데에 일치된 의견을 내놓는다(민 13:25~27). 그러나 그 땅을 정복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의견은 긍정적인 의견 2명, 부정적인 의견 10명으로 갈린다.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은 두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이다. 갈렙은 다음과 같은 의견을 피력한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민 13:30).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을 취하고자 하는 데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땅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원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비관적인 전망과 비판적인 어조에 쉽게 동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사람은 미래를 알 수 없고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매일 마주하는 삶의 과제 앞에 불안, 염려,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고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대면하는 문제보다 훨씬 더 크신 분이시고 자녀 된 우리의 삶을 위해 좋은 것을 예비해 놓고 계신 분이시다. 로마서 8장 32절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씀한다. 2.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는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의견을 밝힐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야훼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야훼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야훼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민 14:7~9). 그러나 나머지 10명의 정탐꾼들은 육신의 눈으로 확인되는 그 땅 주민들의 어떠함에 주목했다.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32~33). 그들은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지 않았기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땅에 대해 악평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라며 자신들에 대해서도 악평했다.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이 무너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삶에 부정적이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라는 것을 믿었다. 그 땅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약속의 땅이기 때문에 분명히 차지할 수 있다고 그들은 믿었다. 하나님은 그 땅을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셨고, 모세에게 정탐꾼을 보내라고 말씀하실 때도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했기에 그 땅을 차지하는 데에 긍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성경 말씀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약속이 담긴 책이다.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온갖 좋은 약속을 붙잡는 적극적인 신앙 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한 사람은 절대긍정의 믿음을 소유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 사람들의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에 대한 기대로 가득하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실 것에 대한 거룩한 원함,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으로 충만한 절대긍정의 믿음으로 살아가자.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약속하신 가나안을 차지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오정섭 목사(국제신학연구원 신학연구소)
  • 2022.06.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구속사적인 삶 - 감사(2)
  • 대한민국 법 중에 최고 상위법은 헌법이다. 헌법 10조에 보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흔히 말하는 행복추구권이다. 그런데 행복권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국가도 행복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해 줄 따름이다. 다시 말해 행복은 어떤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정해진 조건이 있으면 국가가 일정 수준의 국민은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1. 행복의 근원, 감사 그렇다면 행복은 어디 있을까? 감사하는 마음에 있다. 감사하면 행복해진다. 감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사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감사가 저절로 되거나 쉽게 되지 않는다. 만약 감사가 저절로 되고 쉽게 되는 것이면 감사가 하나님의 뜻이니 범사에 감사하라고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감사는 우리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다. 감사가 쉬운가? 불평이 쉬운가?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한 달 동안 5층 집까지 매일 걸어가야 한다고 가정하자. 억지로라도 계단을 오를 일이 생겨 운동할 수 있게 되었으니 감사할까? 아니면 곧바로 불평할까? 감사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원망 불평이 자연스러운 우리 본성이라는 중력, 그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감사가 등산처럼 힘든 이유다. 그러나 등산도 하면 할수록 쉬워진다. 감사가 그렇다. 산 정상을 향해 오르다 보면 달라지는 것이 있다. 시야다.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감사하면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못 보던 것을 보게 된다. 감사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불평하는 일들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그 일들 외에는 제대로 못 본다. 불평하는 일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마음이 계속 불편하다. 물론 해결이 돼도 불평할 거리는 또 있다. ‘왜 이제야 해결이 되는 거지?’ 감사하는 사람은 시야가 다르다. 보이는 것이 다르다. 눈에 거슬리는 것보다 세상 아름다운 것이 훨씬 더 많다. 보이는 게 다르니 말이 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왜 그렇게 사소한 일에 집착했지?’ 하는 생각이 드니까 감사하는 사람의 말에는 여유가 있다. 타인에 대한 포용의 한도가 그만큼 크다. 원망 불평으로 마음의 용량이 늘 마이너스가 되어 가면 타인에 대한 용납의 한도가 계속 줄어든다. 감사를 결단하고 훈련하자. 감사한 다음에 기쁨이 따라오고 불평한 다음에 짜증이 따라온다. 감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우리 삶을 이끌어 가지만 불평은 사탄이 원하는 방향으로 우리 삶을 이끌어 간다. 감사의 종점은 천국이고 원망 불평의 종점은 지옥이다. 2. 그리스도인의 감사, 넘치는 감사 우리의 감사가 어떠한 감사가 되어야 하는지 바울 사도의 권면을 들어 보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6~7).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했다면 우리 삶은 예수님 안에 있다. 예수님께 우리 인생의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것이다. 여기저기 왔다 갔다, 이리저리 오락가락하지 않고 예수님 안에 콕 박혀서 사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예수님 안에서 성장하는 여정이다. 말씀대로 살면서 굳센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는 것이다. 정리하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셨으니 예수님 안에 뿌리내리고 말씀 따라 사는 믿음이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바울 사도는 믿음이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감사가 넘치게 하라고 권면한다. 누가 믿음이 강한 사람일까? 감사하는 사람이다. 내 믿음의 강도는 감사가 말해 준다. 내 믿음이 명품인지 불량품인지는 감사가 보여 준다. 감사는 명품 믿음의 보증서다. 감사가 없다면 불량품 믿음이다. 감사는 넘치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넘치는 감사다. 자기 분량 이상의 감사를 하는 것이다. 내 기준 이상의 감사, 내 판단 이상의 감사, 내 감정 이상의 감사, 내 선택 이상의 감사다. 그러려면 ‘범사에 감사, 무조건 감사’가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범사에 감사, 무조건 감사’가 가능한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예수님을 주로 영접했기 때문이다. 주는 ‘주인’을 말한다.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시니까 감사하라는 것이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했으니”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영접했으니”라고 했다. 그리스도는 직분, 예수는 이름이다. ‘그리스도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는 강조하는 바가 다르다. 그리스도가 먼저 나오면 예수님이 그리스도, 곧 구원자로서 하신 일에 강조점이 있다. 구원자 예수님이 하신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떠난 내 죄 때문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다. 나의 주님이 되셔서 천국 가는 그날까지 내 삶을 인도하시며 보호하시고, 도우시며 책임져 주신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성경이 다시 쓰이기 전까지는 변하지 않는다. 내 삶의 형편과 조건은 오락가락해도 나를 향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 주님이 나의 삶의 주인이 되셔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도록 역사해 주실 것임은 변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 삶의 형편, 조건, 기분, 감정과 상관없이 감사할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범사에 감사, 무조건 감사, 일평생 감사할 수 있다. 감사하자.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어렵고 힘들고 괴로울 때 인생이 마음대로 안 될 때 감사하자. 감사하면 사탄이 틈타지 못한다. 영적 시야가 넓어지고 안 보이던 것이 보인다. 관계가 회복되고 인생이 달라지고 행복해진다. 아니 이미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Thanksgiving’뿐만 아니라, ‘Thanks-living’하자! 오정섭 목사(국제신학연구원 신학연구소)
  • 2022.05.0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다시보는 영산 신학과 목회
    영산의 세계선교
  • 선교는 주님의 지상 명령이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복음 전도와 선교에 대한 꿈과 비전으로 충만하게 된다(행 1:8). 성령님은 영산에게 대조동 천막교회 시절부터 세계선교의 꿈을 부어주셨다. 그때부터 영산은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은빛 날개를 타고 전 세계를 다니며 선교하는 꿈’을 품었다. 그 꿈처럼 영산은 당시 해외 여권을 얻기도 쉽지 않았을 때 이미 여러 나라를 다니며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다. “전 세계는 주님의 교구입니다.” 웨슬리의 유명한 말을 떠올리게 하는 영산의 고백은 절대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세계 최대 교회를 세우고 오대양 육대주를 다니며 선교 사역을 감당했다. 그가 머물렀던 수많은 선교 현장은 성령님이 역사하는 기적의 장소였다. 영산이 세계선교를 위한 뜨거운 열정을 갖게 된 배경은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7년 5월 세계오순절총회를 마친 영산은 100일 동안 18개국, 39개 도시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던 그는 결국 스위스에서 쓰러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 침대 밑에 놓인 엽서 한 장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주님의 종으로 부름 받았으니 이 시대에 한 획을 긋는 종이 되리라”라는 글귀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적고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다. 다시는 못 일어날 만큼 쇠약해졌던 영산의 몸은 이튿날이 되자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고 기적처럼 회복되었다. 그때의 체험은 영산의 사역 가운데 세계선교를 항상 강조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영산은 유럽 선교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세계 교회성장을 위해 봉사하는 국제기관을 조직하라”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1976년 11월 4일 국제교회성장연구원(이하 CGI: Church Growth International)을 설립했다. 영산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부흥성장에 관한 노하우를 전 세계 교회와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담임하고 있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에만 집중하지 않고 전 세계 교회가 함께 부흥하는 일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다. CGI는 설립 이래 2022년 현재까지 한국을 비롯한 100여 개국 이상에서 총 600회 이상 CGI 콘퍼런스를 개최했고, 여기에 전 세계에서 연인원 120만명이 참석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세계선교와 교회 성장에 이바지한 CGI는 2022년 10월 이영훈 목사를 제2대 총재로 만장일치 추대하면서 ‘다음 세대의 부흥’을 외치며 제2기 사역에 돌입하게 되었다. 영산은 세계선교의 사역을 더욱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2000년 3월 28일 DCEM(David Cho Evangelistic Mission)을 설립했다. 이 기구를 통해 전 세계 선교지와 선교단체 간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선교 자원의 교류에 힘썼다. DCEM은 교파를 초월해 영적으로 갈급한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 그리고 복음의 사명을 심어주는 기관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감당했다. 영산은 그 목회 사역 동안에 약 600회 이상의 해외 부흥회를 인도했는데 이런 왕성한 사역은 성령님이 주시는 비전과 열정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럼 세계 기독교 역사에서 영산의 선교 사역의 의미는 무엇일까? 20세기 기독교의 가장 큰 특징은 기독교의 무게 중심이 서구권에서 비서구권으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1980년대에 들어와서 비서구권의 기독교 인구가 서구권의 기독교 인구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기독교 신학이나 선교가 서구권 교회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서구권 교회는 갈수록 쇠퇴를 거듭했고, 반대로 비서구권의 교회는 급속히 성장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역사적 맥락 속에서 영산의 세계선교 사역은 기독교 선교의 주체를 서구권 교회에서 비서구권 교회로 전환하는 데 아주 지대한 역할을 했다. 영산은 선교가 ‘순복음’의 최우선 과제임을 보여주었다. 선교하는 교회가 진정한 ‘순복음교회’(Full Gospel Church)이고 선교하는 성도가 진짜 ‘순복음성도’(Full Gospel Christian)이다. 교회가 선교를 멈추는 순간 침체와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영산 안에 넘쳤던 복음의 확신과 순복음의 영성은 많은 사람의 가슴에 희망을 불러일으켰고 나도 하나님 사명에 쓰임 받고자 하는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의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David Yonggi Cho’라는 이름은 안다”라는 말이 수많은 증인에 의해 회자된 것만 보아도 그가 가진 세계선교의 열정과 영향력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만약 누군가 “순복음 신앙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에 나아가 선교하는 삶이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계선교에 평생을 바친 영산의 삶이었고, 그의 선교 정신을 이어받은 모든 순복음 성도들의 꿈이 되어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선배의 본을 따라 인내로써 믿음의 경주를 하라고 권면하고 있다(히 12:1). 오늘날 교회가 영산으로부터 반드시 전해 받아야 하는 믿음의 영적 바통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선교의 바통’이다. 이제 영산의 뒤를 이어 우리도 성령 충만함 가운데 ‘선교 바통’을 이어받아 주님 오시는 날까지 세계선교의 꿈을 이뤄가야 할 것이다. 국제신학연구원 제공
  • 2022.11.2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영산의 신유 사역 
  • 영산에게 신유 사역은 그의 핵심적인 목회 철학 중 하나였다. 영산은 신유의 기적이 과거 예수님 시대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사역임을 확고히 믿었다.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을 받았으면 믿음으로 값없이 병 고침 받는 것도 마땅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영산이 믿었던 신유의 은사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은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포함되어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영산에게 신유 사역은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표징이자 ‘아직’, 그러나 반드시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었다. 영산은 치유의 현장에서 예수님의 임재를 보았고 하나님 나라에서의 믿는 자의 부활을 보았다. 그래서 영산은 목회 현장이나 부흥회 사역에서도 병 고침을 강조했는데, 그가 인도하는 집회에서 질병의 치료를 경험한 사람들의 간증거리는 수없이 많다. 영산이 이같이 신유를 강조하게 된 것은 어떤 특정한 치유 신학을 공부한 결과가 아니었다. 그를 ‘신유의 종’으로 만든 것은 그가 처한 삶의 현장 속에서 실제 경험했던 치유의 하나님 때문이었다. 폐결핵 3기로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을 때 주님을 만나서 완치되었던 경험이 그것이다. 또 대조동 천막교회 시절 중풍에 걸린 여인이 낫고 걷지 못했던 소년이 일어나 뛰며 듣지 못했던 사람이 듣게 되는 기적이 나타났다. 이런 경험을 통해 영산은 하나님이 오늘날에도 병든 자를 치료하신다는 사실을 체득할 수 있었다. 자신의 삶과 목회 현실에서 신유의 역사를 분명하게 체험했기에 영산은 가는 곳마다, 서는 곳마다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 영산의 신유 사역은 교회 부흥에도 크게 기여했다. 실제로 영산의 개척교회가 빈민촌 지역사회에 깊이 뿌리 내리게 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치유의 기적이었다. 그래서 영산은 신유를 하나님 나라의 가시적인 표적으로 보고 목회 사역에 열심히 적용하고 실행했다.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으로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낫게 되는 신유 사역”(막 16:18)이 복음 전파에 동반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이후에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에 대해서 회고할 때도 신유 사역의 중요성을 언급한 적이 있다. 복음에 저항적이던 사람들이 육체의 질병을 치료받고 은혜를 받아 복음의 말씀을 세상에 나아가 강력하게 전하기 때문에 교회가 크게 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교회 공동체를 신유 공동체로 보았다. 영산의 신유 사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믿음이다. 영산은 그 어느 목회자보다도 병 고침에 대한 메시지를 많이 선포했고 신유의 기적도 많이 행했지만 정작 자신이 ‘신유의 은사’를 받았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성령이 필요에 따라 자신을 통해 은사를 나타내실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산 자신이 분명히 받았다고 주장하는 은사가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믿음의 은사’였다. “내가 받은 은사를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담대한 믿음입니다. 담대함을 가지고 믿음으로 선포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성경은 표적이 여러분의 믿음보다 앞선다고 하지 않습니다. 표적이 여러분의 믿음 뒤에 따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믿음의 역사는 천막교회 시절에 나타났다. 걷지 못하던 소년이 영산을 찾아왔을 때 처음에는 그가 낫는다는 것을 믿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영산이 한 시간이 넘도록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자 뭉게구름 같은 믿음이 그의 마음으로부터 차오르기 시작했다. 영산은 그때의 기분이 마치 지구를 자기 손으로 밀면 지구가 밀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간증한 바 있다. 하나님이 주신 이러한 믿음으로 기도하고 선포할 때 영산은 그 소년을 포함한 수많은 이들의 병을 고칠 수 있었다. 영산은 오늘날 병 낫기를 간구하는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믿음의 기도를 잘 드리지 못하거나 주님의 말씀에 담긴 뜻을 잘 알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한다고 말했다. 영산에 따르면 신유의 역사는 단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회복시키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실 때까지 성령님이 살아 역사하셔서 은사를 베푸시고 병든 자들을 일으키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산은 신유가 지금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임을 분명히 믿었다. 따라서 성도는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써 신유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기에 자신의 아픈 부분에 손을 얹고 믿음으로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영산을 통한 성령의 신유 사역은 여의도순복음교회뿐 아니라 국내외 수많은 교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신유의 복음을 포함한 예수 그리스도의 전인적인 순복음을 이해하는데 큰 유익을 주었다. 앞으로도 영산의 신유 사역의 원리를 계속 연구하고 실행함으로 새로운 신유행전의 역사가 계속 나타나길 희망한다. 국제신학연구원 제공
  • 2022.10.2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문서·방송 선교의 선구자…1988년 기독교 일간지 국민일보 창간
  • 영산은 미디어의 활용이 미미하던 시절, 문서 선교와 방송 선교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닫고 사역에 적용한 선구자였다. 영산은 자신이 가진 뜨거운 선교적 영성을 담아내어 빠르게 전파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 놀라운 교회 성장을 이루었다. 순복음의 신앙이 한국과 세계에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의 그 어떤 교회보다 멀티미디어를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문서 전도』의 저자 조지 버워는 “기독교 문서는 인쇄된 선교사”라고 말한 바 있다. 문서 선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보게 하는 말이다. 영산은 누구보다도 문서 선교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사역에 적용하였다. 1964년 당시 순복음교회 성도들에게 교회와 관련된 각종 소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순복음지』를 발간했다. 이것이 점점 발전하여 1978년에 이르러서는 영산의 설교와 칼럼, 성도들의 신앙 간증과 구역 성경 공부 및 교회 소식을 담은 『순복음뉴우스』가 되었다. 이후 『순복음가족신문』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오늘날까지 문서 선교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다. 영산은 또한 순복음교회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한국교회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월간 잡지 『신앙계』를 창간함으로 문서 선교의 폭을 확장했다. 『신앙계』는 기독교의 대중지,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위한 교양지, 불신자들을 위한 전도지, 교회를 하나로 묶는 기독교 잡지로서 자리매김했다. 해방 이후 대중적인 기독교 잡지로는 『신앙계』를 능가하는 잡지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신앙계』가 말씀에 기초한 성령운동의 건전한 보급과 한국교회 평신도들의 신앙 성장에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서울신학대학교 명예교수인 박명수 박사는 “『신앙계』야말로 오순절 신앙을 한국교회에 널리 전파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영산의 문서 선교의 열정은 『순복음가족신문』과 『신앙계』의 성공으로 끝나지 않았다. 1987년 한 이단 종교 단체가 일간 신문을 발간하려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영산은 만약 그 단체에서 신문을 발간하게 된다면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이 자명하다고 판단했다. 이를 두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가운데 기독교 일간지 창간에 대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1988년 세계 최초의 기독교계 일간지 『국민일보』가 창간되었다. 정부와 사회에 기독교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언론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영산은 신문사를 설립하는 과정 가운데 막대한 재정적 부담과 근거 없는 비난의 목소리로 큰 고통을 받았지만, 믿음의 확신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나갔다. 복음 실은 일간지 『국민일보』는 매일 하나님의 복음을 한국 땅에 전파하는 발 없는 전도사로서 한국 기독교의 성장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기독교 정신으로 발간된 최초의 기독교 일간지로서 한국 교계의 대사회적인 발언의 장으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나아가 기독교 문화의 채널로써 한국 사회에 기독교 세계관을 전파하는 사명도 이뤄가고 있다. 영산의 『국민일보』 창간은 대한민국 1200만 기독교인을 대변하는 신문으로서 한국 기독교 역사 가운데 매스컴 선교의 새 장을 열었다는 데 큰 의의를 가진다. 영산은 문서 선교뿐 아니라 방송 선교를 통해서도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당시 영산은 복음 전도의 방법을 새로운 형태로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도 방송 선교의 파급력과 중요성을 일찍 깨달았던 영산은 1966년 라디오 설교와 1979년 컬러TV 방송을 송출했다. 영산의 라디오 설교 방송은 1979년, 1980년 연속, 전국 청취자 애청 프로그램 조사 결과 청취율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청취자가 많았다. 이처럼 한국교회 방송 선교의 선구자는 단연 영산이었다. 당시 흑백 TV에 익숙했던 공중파 제작자들이 방송 장비와 시스템을 구경하기 위해 여의도순복음교회에 견학을 올 정도였다. 방송 선교는 교단의 장벽을 뛰어넘는 데 중요한 매체가 되었을 뿐 아니라 기독교의 울타리를 넘어 일반인들에게 오순절 신앙을 전하는 통로가 되었다. 영산의 방송 선교를 통해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이 설교 말씀을 듣고 구원받는 역사가 나타났다. 또 위성과 인터넷을 활용한 예배와 설교 실황은 각 지성전 및 지교회 설립과 더불어 교세 확장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영산의 방송 선교는 국내를 넘어 전 세계에 이르기까지 사상과 국경을 초월하여 복음이 전파되었다. 1982년에는 미국 TV 프로그램 제작 회사인 KCWC사의 특별 기획으로 주일 예배 실황이 미국, 캐나다,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이스라엘, 홍콩, 필리핀, 남아공 등 25개국에 동시 위성 중계되기도 했다. 이처럼 영산의 성령 충만의 복음은 21세기 정보화 시대와 함께 전 세계에 발 빠르게 퍼져나갔다. 영산은 커뮤니케이션의 대가였다. 설교뿐 아니라 설교를 전달하는 매체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아무리 훌륭한 설교라도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면 세계적인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을 것이다. 영산의 설교와 성령 충만의 영성은 멀티미디어 사역 시스템을 통하여 세계 곳곳에까지 전파될 수 있었고 이러한 사역이 세계 교회에 끼친 영향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복음의 메시지는 불변해도 그것을 전달하는 방법은 시대에 맞게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영산의 멀티미디어 사역이 우리에게 남겨준 값진 유훈이다. 국제신학연구원 제공
  • 2022.09.23 / 김용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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