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김나리 목사(전도새가족부 선임) - 엠비스찬
  • 엠비스찬은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와 Christian의 합성어로 MBTI의 결과를 맹목적으로 신뢰하며 종교처럼 믿는 사람들을 부르는 신조어입니다. 최근에는 어딜가나 “MBTI가 어떻게 되세요?”라는 질문이 인사처럼 쓰이고 회사가 인력을 채용할 때 참고할 정도로 입지가 상당합니다. 과거 혈액형이나 별자리로 사람을 분류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MBTI가 하나의 문화 코드로 자리를 잡고 ‘독실한 엠비스찬’이라는 말이 만들어질 정도로 자신의 유형에 깊이 몰입하여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대변한다고 생각하는 모습도 종종 보입니다. MBTI는 칼 융의 심리유형론을 바탕으로 사람의 성격유형을 16가지로 분류하는 성격분석 도구로서 각자의 고유한 성향을 이해하고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는 데는 유용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몇 가지 성찰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첫째,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독특한 존재’로서 단 16가지의 유형으로 단순화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MBTI가 자신을 규정하는 절대적 잣대가 된다면 하나님의 형상으로의 정체성은 희미해지며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향해 계획하신 독특한 소명과 사명을 간과하게 됩니다. 둘째, 교회 공동체는 서로 다른 은사와 성품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지체가 됩니다. MBTI로 서로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것은 좋으나 차별하는 도구가 되어선 안됩니다. 오히려 각자의 독특함을 존중하며, 서로를 섬기는 도구로 사용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셋째, 우리 모두는 어떠한 인간 이해 방식에 앞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피조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MBTI 유형에 갇히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의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고 성장해 나가는 여정 중임을 되새기며 그 여정을 서로 격려하는 공동체가 되어 가길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MBTI는 무엇일까? 라는 재미있는 상상을 해 본다면 예수님의 MBTI는 ‘L.O.V.E’가 아니실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소망하는 우리의 MBTI역시 ‘L.O.V.E’아닐까요? 앞으로 우리의 MBTI는 ‘LOVE’입니다.
  • 2026.04.2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신의규 목사(강서2대교구장) - “나 혼자 못 산다”
  • “나 혼자 산다”는 독신 남녀와 1인 가정이 늘어나는 세태를 반영해 혼자 사는 유명인들의 일상을 담은 예능 프로그램입니다. 13년 전 시작된 이 프로그램이 장수하며 인기를 끄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TV 속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곁의 보편적인 풍경이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퇴근길에 사 오시던 ‘투게더(Together)’ 아이스크림을 기억하십니까? 그 이름처럼 온 가족이 둘러앉아 커다란 통에 숟가락을 맞대며 나누어 먹던 그 시절 가장 값비싼 간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스크림이 10년 전 1인용 프리미엄 제품인 ‘시그니처 싱글컵’을 출시했습니다. 참 아이러니합니다. 이름의 뜻은 “함께”인데, 정작 제품은 “혼자” 먹도록 나온 것입니다. 이 모습은 오늘날 우리 시대를 그대로 투영합니다. 구호는 여전히 ‘함께’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함께함의 불편함을 견디지 못해 자발적 고립을 선택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실제로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1인 가구 비율은 2026년 현재 36%를 넘어섰습니다. 세 가구 중 한 가구 이상이 홀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혼자 밥을 먹고(혼밥), 혼자 영화를 보는 문화는 이제 ‘당당한 취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고독사와 우울증 지수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본질은 “나 혼자 못 산다”에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서 홀로 서야 하는 존재입니다. 구원은 일대일의 관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지으실 때부터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창 2: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독립된 개별체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한 몸의 지체’로 부르셨습니다. 신앙은 홀로 골방에서 도를 닦는 수행이 아니라 때로는 나와 다른 지체들과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며 사랑의 넓이를 넓혀가는 과정입니다. “함께”라는 단어가 싱글컵에 담기는 시대 속에서 교회는 여전히 커다란 아이스크림 통을 나누어 들고 서로의 숟가락이 부딪히는 소리를 기쁨으로 여겨야 합니다. 세상이 ‘혼자서도 충분하다’고 속삭일 때 우리는 겸손히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는 못 삽니다. 그리고 형제 자매인 당신 없이는 나 혼자 못 삽니다.” 성령의 띠로 하나 되게 하신 공동체 안에서 혼자가 아닌 ‘함께함’의 행복과 은혜, 그리고 능력을 회복하는 4월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2026.04.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변원중 목사(서대문대교구장) - 봄의 속도와 부활의 은혜
  • 몇 해 전 일간지에 실린 한 기사가 떠오릅니다. 봄이 북상해 오는 ‘속도’를 측정한다는 흥미로운 내용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각 지역의 민간 관측자들이 개나리, 진달래, 벚꽃과 같은 봄꽃의 개화 시기를 기록해 제보하고, 기상청은 그 자료를 종합하여 봄이 얼마나 빠르게 찾아오는지를 수치로 분석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계절의 흐름조차도 이렇게 기록되고 예측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교회의 봄은 사순절과 함께 시작됩니다. 부활절은 춘분 이후 첫 만월 다음 주일로 정해지기에, 사순절의 시작은 곧 봄이 가까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특히 ‘재의 수요일’로 시작되는 사순절의 40일은 주일을 제외하고 거슬러 올라가며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게 합니다. 빠르게 지나가는 봄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부활절을 보냈습니다. 이처럼 여의도의 봄은 특별한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주변에서는 매년 여의도 벚꽃축제가 열려 수십만 명의 인파가 모여듭니다. 화사하게 만개한 벚꽃 아래에서 사람들은 봄의 정취를 만끽하고 거리에는 웃음과 활기가 넘칩니다. 동시에 교회 안에서는 영광과 승리의 부활절을 보내는 성도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합니다. 이렇듯 여의도의 봄에는 두 가지 모습이 공존합니다. 한편에서는 짧게 피었다가 지는 꽃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뻐하는 믿음의 공동체가 있습니다. 봄은 얼어붙은 대지를 녹이고 새로운 생명을 움트게 하는 소생의 계절입니다. 그러나 신앙 안에서의 봄은 단순한 계절의 변화를 넘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새 생명의 은혜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잠시 피었다 사라지는 꽃의 아름다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 6:4). 부활의 계절인 봄을 맞이하며 우리 역시 새 생명 가운데 살아가는 믿음의 여정을 걸어가야 합니다. 이번 봄, 눈에 보이는 꽃의 아름다움을 넘어 부활의 기쁨을 깊이 누리며 그 소식을 세상에 전하는 참된 부활의 계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2026.04.1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평신도를 위한 사도행전 이야기
    (114) 사도행전의 설교에 관한 가르침 ⑩
  • 이번 호에서는 베스도 총독으로부터 바울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아그립바 왕이 그를 심문하는 모습을 살펴보기로 한다. 7) 상황: 아그립바 2세 왕의 심문 시 바울의 자기 “변명”(26:1~32) (1) 대상: 아그립바 왕, 왕비 버니게, 천부장들, 시중(市中) 높은 사람들, 베스도 총독(25:23) (2) 아그립바 왕 앞에서의 바울의 자기 변명(26:2~23) ① 우호적인 인사(2~3절) ② 바울의 젊은 시절을 유대인들이 다 알고 있음(4~8절) - 나를 고발한 자들도 “내가…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라고 할 것(5절) - 지금 심문 받는 것도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6~7절) -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8절) ③ 바울의 그리스도인 박해 설명(9~11절) -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함 ④ 다메섹 도상 체험 설명(12~18절) -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감(12절) - 정오에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둘러 비추자 일행이 다 땅에 엎드러지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라는 소리가 들림(13~14절) - 내가 “주님, 누구시니이까?”라고 여쭙자, 주께서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심(15~18절) ⑤ 바울의 전도 사역과 체포 과정 설명(19~23절) -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순종하여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 자” 함(19~21절) -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증언하는 것: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22~23절) (3) 결과 ① 아그립바 왕: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28절) ② 바울: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29절) ③ 왕, 총독, 버니게, 함께 앉은 사람들: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30~31절) ④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32절) 김호성 목사(여의도순복음동부교회 담임)
  • 2026.04.1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13) 사도행전의 설교에 관한 가르침 ⑨
  • 이번 호에서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로 이송되어 심문 받는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6) 상황: 가이사랴에서 총독 벨릭스 앞에서 심문 받을 때 바울의 자기 변론(24:1~27) (1) 대상: 벨릭스 총독, 대제사장 아나니아, 어떤 장로들, 변호사 더둘로 더둘로의 바울 고발(1~9절): ①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5절). ② “그가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음”(6절). (2) 바울의 “변명”(반론) (24:10~21) ① 그들의 고발의 무고성(11~13절): -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고”(11절). - “그들은 내가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 또는 시중에서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12절). - “나를 고발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이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다.”(13절) ② 바울의 신앙고백(14~16절) -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14절). -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15절). -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16절) ③ 나의 예루살렘 여행은 동족 구제 여행: 여러 해 만에 내 민족을 구제 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드리는 중에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음(17~18a절). ④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나를 반대할 것이 있었다면 당신께 와서 고발하면 되었을 것(18b~19절). ⑤ 아니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20~21절). (3) 결과: ① 벨릭스가 “이 도[기독교 복음]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올 때까지 심문을 연기함(22절). ② 백부장에게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라고 명령함(23절). ③ 며칠 후,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들었는데,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자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라고 함(24~25절). ④ 벨릭스가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함(26절). ⑤ 이 년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후임 총독이 될 때까지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둠(27절). 김호성 목사(여의도순복음동부교회 담임)
  • 2026.03.0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12) 사도행전의 설교에 관한 가르침 ⑧
  • 이번 호에서는 바울 자신이 그의 다메섹 회심 이야기를 전하는 내용을 분석하고자 한다. 5) 상황: 바울이 제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왔을 때, 소아시아의 유대인들이 그를 잡아서 죽이려 하자 천부장이 개입하여 영내로 올라가는 층대에서 증언하게 함(22:1~30) (1) 대상: “부형들아”(1절), 즉 예루살렘의 유대인들 (2) 바울의 회심 증언(22:1~21) ① 다메섹 회심 이전의 바울(3~5a절): 유대인, 길리기아 다소 출생 - 예루살렘에서 자라나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음 - 교회 박해: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어서 “이 도”(믿음)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김.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증인. ② 다메섹 도상 체험 술회(5b~16절) - 다메섹에 가려던 목적: 대제사장으로부터 공문을 받아 그곳의 교인들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감(5b절) - 다메섹 도상 체험(5b~11절):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 오정쯤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둘러 비치자 땅에 엎드러져 소리를 들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7절) “주님, 누구시니이까?”라고 대답.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라고 하심(8절). 바울의 일행은 빛은 보았지만 소리는 듣지 못함.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여쭙자(8~9절), 주께서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하심(10절): 바울은 볼 수 없게 되어 동행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감(11절) - 다메섹에서 아나니아에 의해 고침 받고 새로운 사명을 받음(12~16절) 아나니아: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인물(12절) 아나니아가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라고 말하자 즉시 다시 보게 됨(13절) 아나니아의 말: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예수)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침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14~16절) ③ 환상 중에 예루살렘을 떠나라고 하시며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신 하나님(17~21절) -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환상 중 주께서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심(17~18절) - “주님,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박해한 일들을 그들도 아나이다”라고 대답(19~20절) - 하나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라고 하심(21절) (3) 결과: ① 무리의 분노: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22~23절) ② 천부장이 바울을 영내로 데려가 채찍질하며 심문하라고 명령함(24절) ③ 바울이 로마 시민임을 밝히자 천부장이 결박을 풀고 공회 앞에 세움(25~30절) ④ 바울은 공회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섞여 있는 것을 간파하고 자신이 바리새인의 부활 신앙 때문에 심문 받는다고 호소함으로써 위기 극복함(23:1~10) 김호성 목사(여의도순복음동부교회 담임)
  • 2026.02.0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쉽게 풀어 쓴 교회사 산책
    (89) 종교개혁㉙
  • 스위스 종교개혁 - 그 외 츠빙글리의 개혁과 죽음 츠빙글리의 개혁은 예배 개혁이나 성만찬 논쟁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의 개혁은 교회와 사회의 관계, 세례의 의미 그리고 스위스 여러 지역으로의 확산 속에서 더 큰 긴장과 갈등을 낳았고 마침내 그의 생애 마지막도 그 소용돌이 속에서 맞이하게 됐다. 츠빙글리는 신앙이 교회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교회가 바로 서야 할 뿐 아니라, 그 믿음이 공동체의 삶과 사회의 질서 속에서도 나타나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세속 정부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공적 권위로서 평화를 지키고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는 일에 책임이 있다고 여겼다. 이것은 츠빙글리 개혁의 중요한 특징이었다. 바로 이 점에서 츠빙글리는 더 급진적인 개혁자들과 부딪히게 됐다. 그들은 교회가 국가 권력과 가까워져서는 안된다고 보았고 믿음을 스스로 고백한 사람들만 교회의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차이는 세례 문제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츠빙글리는 유아세례를 인정했지만 재세례파는 그것이 성경적이지 않다고 보며 믿음의 고백을 재확인하고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갈등은 단순히 세례 방식의 차이만이 아니었다. 교회란 무엇인가, 또 교회와 사회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를 둘러싼 충돌이었다. 취리히 시의회는 재세례파를 도시 질서를 흔드는 세력으로 보았고 결국 강하게 탄압했다. 그 과정에서 재세례파는 다른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게 됐다. 이 사건은 종교개혁이 로마가톨릭과의 갈등만이 아니라 개혁 진영 안에서도 깊은 긴장을 안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츠빙글리의 개혁은 성 갈렌, 베른, 바젤 같은 스위스 여러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모든 지역이 같은 길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도시는 개혁을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가톨릭 편에 선 도시들도 있었다. 이렇게 스위스는 신앙의 차이와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히는 가운데 점점 더 큰 긴장 속으로 빨려들었다. 츠빙글리는 개혁을 위해 도시들 사이의 연대가 중요하다고 보았고 종교개혁은 점차 신학 논쟁을 넘어 현실 정치적인 문제와 맞물리게 됐다. 1529년 한 차례 충돌은 가까스로 진화했지만 결국 1531년 제2차 카펠전쟁이 일어났다. 츠빙글리는 종군목사로 전장에 나갔다가 10월 11일 생을 마감했다. 츠빙글리의 죽음이 곧 스위스 종교개혁의 끝은 아니었다. 그의 뒤를 이어 하인리히 불링거가 개혁을 더 안정되게 이끌었다. 그러나 교회를 새롭게 하려 했던 개혁자가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은 당시 종교개혁이 얼마나 치열한 현실 속에서 진행되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츠빙글리의 삶은 오늘 우리에게 여전히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교회는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신앙은 교회 안에만 머물지 않고 어떻게 세상 속에서 책임 있게 드러나야 하는가. 츠빙글리는 완전한 답을 남기진 못했지만 그 어려운 문제를 끝까지 붙들고 씨름한 개혁자였다. 그는 4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삶과 사역은 스위스 종교개혁에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겼다. 김형건 목사(영산신학연구원 총장)
  • 2026.04.2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88) 종교개혁㉘
  • 스위스 종교개혁 - 성만찬 논쟁 츠빙글리의 사상은 여러 저술과 편지를 통해 전해진다. 소시지 사건과 관련해 쓴 “음식 선택과 자유에 관하여”(1522.3.9.)는 그의 첫 종교개혁 저술로 금식 규정을 어긴 일이 왜 정당한지를 설명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강조했다. ‘콘스탄츠 감독에게 보낸 진정서’(1522.7.2.)와 “하나님 말씀의 명백성과 확실성에 대하여”(1522.9.6.)에서는 성직자 독신 제도의 폐지와 성경적인 복음 설교의 자유를 요구하면서 교회와 신학을 개혁하는 가장 중요한 권위는 오직 성경이라고 주장했다. 취리히 시의회는 성경적 설교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이 거세지자 1523년 1월 29일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츠빙글리가 제시한 ‘67개 논제’는 성경의 권위에 기초한 교회 개혁의 방향을 밝힌 문서로서 스위스 종교개혁의 출발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선언이었다. 토론 과정에서 아무도 츠빙글리의 67개 논제를 반박하지 못하자 시의회는 그의 손을 들어주었고 그 결과 누구나 성경에 근거하여 설교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신앙이 약한 이들에게 개혁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쓴 “기독교 입문서 요약”(1523.11.17.)에서 그는 성상 금지와 미사 폐지 등을 설명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취리히에서는 1524년 4월 사제들의 결혼이 이루어졌고, 기도 행진과 의전 행렬, 순례 등이 차례로 폐지되었다. 1524년 9월부터 1525년 3월 사이에 쓴 “참 종교와 거짓 종교에 관한 주석”에서 츠빙글리는 교황권, 미사의 희생 개념, 성인 숭배 그리고 행위로 얻는 의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특별히 성만찬을 중요한 주제로 다루면서 이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 자체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상징적 예식으로 이해했다. 그가 로마가톨릭의 화체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고 보는 주장이 자칫 골고다 십자가의 단번의 희생을 되풀이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성만찬의 빵과 잔은 그리스도의 몸 자체가 아니라 그 몸을 상징하는 것이었다(요 6:63). 그러나 바로 이 점에서 그는 루터와 끝내 하나가 되지 못했다. 루터는 츠빙글리와 달리 “이는 내 몸이다”라는 말씀을 상징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그에게 성만찬은 단순히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는 예식이 아니라 말씀에 근거하여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시는 자리였다. 루터는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셨다고 해서 우리와 멀리 떨어져 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어디에나 임하실 수 있다고 이해했다. 반면 츠빙글리는 그리스도의 몸은 하늘에 계시므로 성만찬의 떡과 잔 안에 실제로 계실 수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루터는 떡과 잔에 주님의 살과 피가 함께 임재함(공재설)을 주장하면서 두 사람의 견해 차이는 더욱 커지게 되었다. 이 논쟁은 1529년 마부르크 회담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헤센의 필립은 루터와 츠빙글리를 한자리에 모아 개혁 진영의 일치를 이루고자 하였다. 양측은 여러 항목에서 의견을 같이했고 미사가 은혜를 얻는 반복적 희생이 아니라는 점에도 동의했다. 그러나 성만찬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어떻게 임재하는가 하는 문제에서는 끝내 뜻을 모으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완전한 일치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서로를 향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데에는 함께 동의한 후 헤어졌다. 성만찬 논쟁은 단순한 예식 이해의 차이를 넘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리고 그리스도의 임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둘러싼 종교개혁 내부의 중요한 갈림길이 되었다. 김형건 목사(영산신학연구원 학장)
  • 2026.03.2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87) 종교개혁㉗
  • 츠빙글리와 스위스 종교개혁 성직 매매와 면죄부 남용, 왜곡된 예식 중심 신앙이 만연했던 16세기 유럽 교회의 위기 속에서 마르틴 루터가 독일에서 종교개혁을 이끌고 있을 때, 스위스에서는 취리히를 중심으로 츠빙글리가 새로운 개혁의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수도사 출신으로 중세 가톨릭 전통 속에서 신앙적 갈등을 겪었던 루터와 달리, 츠빙글리는 인문주의 교육을 받은 학자이자 성서 연구자였다. 1484년 스위스 알프스 산간 마을에서 태어난 츠빙글리는 바젤과 베른에서 기초교육을 받았으며 14세부터는 빈에서 고전문학, 철학, 신학, 과학을 공부했다. 이후 다시 바젤로 돌아와 석사 과정에 진학한 그는 고전과 교부 문헌 연구에 깊이 몰두했다. 1506년 석사학위를 마친 뒤 츠빙글리는 글라루스에서 첫 목회 사역을 시작했다. 당시 스위스 사회의 큰 문제였던 용병 제도는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몰고 있었다. 용맹하기로 이름난 스위스 용병은 주변 국가들의 전쟁에 자주 동원되었고 이를 통해 스위스의 13개 도시(칸톤)는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되었다. 츠빙글리는 종군 사제로도 사역하면서 이러한 현실을 직접 목격했고 용병 사업의 부도덕성을 비판하며 개혁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츠빙글리의 강경한 태도는 글라루스 지도층과의 갈등을 불러왔고 결국 1516년 아인지델른으로 전출되었다. 그러나 이는 그가 본격적으로 성경 연구에 몰두하여 헬라어와 히브리어에 능통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의 연구는 이후 큰 반향을 일으킨 성경 중심 설교의 토대가 되었을 뿐 아니라, 면죄부 판매 등 당시 로마가톨릭 교회의 개혁 필요성을 확신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1518년 츠빙글리는 취리히 그로스뮌스터 교회의 사제로 부임했다. 특히, 성경을 직접 읽고 해석하는 그의 설교와 성경이 근거하지 않는 교회의 전통과 관습은 폐지되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결국 취리히 시의회는 모든 성직자에게 츠빙글리와 같이 성경 중심 설교를 하도록 명령했다. 그 결과 금식 강요, 성인 기도, 연옥 교리, 성상 숭배, 성직자 복장과 음악 등 중세 교회의 여러 전통이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 1522년 일어난 소시지 사건은 이러한 개혁이 취리히 전역으로 본격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취리히의 인쇄업자 크리스토퍼 프로샤우어의 집에서 개혁 지지자들이 사순절 금식 기간에 소시지를 먹은 일이 논란이 된 것이다. 그 자리에 있었지만 유일하게 소시지를 먹지 않았던 츠빙글리는 “성경이 금하지 않은 일은 자유”라는 설교로 사순절 금식 관행을 비판했다. 그는 이 설교를 바탕으로 『음식 선택과 자유에 관하여』를 발표했고, 설교와 책자는 빠르게 퍼졌다. 흑사병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며 시민들의 신망을 얻고 있던 츠빙글리는 더욱 큰 지지를 얻게 되었다. 또한, 그가 제기한 성직자 결혼 문제를 둘러싸고 1523년 공식 논쟁이 열렸고 600여 명의 성직자와 평신도가 참석한 가운데 성경만을 권위로 한다는 원칙 아래 츠빙글리가 승리했다. 이후 개혁은 제도적으로 추진되어 1524년에는 성상 제거가 시작되었고 1525년에는 미사가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김형건 목사(영산신학연구원 학장)
  • 2026.02.2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뿌리깊은 순복음
    (171) 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84>
  • 참된 사랑은 마음 깊이 뿌리내린 자기의 유익을 위한 자기중심성 거부하는 것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에 이어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5). 여기서 말하는 ‘자기의 유익’을 의미하는 말은 원어를 번역하면 ‘자기 자신의 것들’이라고 표현된다. 이것은 단순히 물질적 이익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자기의 권리, 방식, 편의, 명예, 의견 등 자기로부터 비롯되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표현이다. 현대의 영어 번역들이 이 구절을 “자기 방식을 주장하지 않는다”(ESV),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NIV)로 다양하게 옮기는 것도 이 구절이 품고 있는 넓은 의미 때문이다. 결국 이것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뿌리내린 자기중심성을 거부하라는 사랑의 명령이다. 그렇다면 자기중심성이 왜 그토록 위험할까? 그것은 세 가지 뚜렷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첫째, 자기가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된다. 둘째, 자기 생각을 어떻게든 관철시키려 한다. 셋째,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든 별로 관심이 없다. 흥미로운 것은 세 가지가 언제나 함께 움직인다는 점이다. 자기가 기준인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기 뜻을 밀어붙이게 되고, 그런 사람은 상대방의 입장과 형편에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 이 삼중 구조가 인간관계를 통해 작동하면 그 결과는 참으로 안타깝다. 그것은 결국 외로움, 우울, 분노, 미움, 배신, 심지어 질병까지 줄줄이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나는 전혀 문제없어, 저 사람이 문제지’라고 쉽게 단정 짓는 사람에게 오히려 문제가 있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두 남매를 키워 결혼시킨 한 어머니가 있었다. 그 어머니가 딸네 집을 방문했을 때, 마침 사위가 혼자 아침을 해 먹고 도시락을 싸서 출근하는 모습을 보았다. 어머니 눈에는 딸을 아껴 주는 사위가 참 대견하게 보였다. 그런데 아들네 집에 갔을 때, 아들이 똑같이 혼자 아침을 해 먹고 도시락을 싸서 출근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번에는 아들이 한없이 측은하고, 며느리가 몹시 괘씸하게 느껴졌다. 일어난 상황은 똑같은 데, 마음으로 느껴지는 감정은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기중심적 주관성의 민낯이다. 우리의 삶 곳곳에서 이런 모습은 쉽게 발견된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 남이 천천히 운전하면 소심한 것이고, 내가 천천히 운전하면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며느리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고, 딸은 남편을 잘 다스려야 한다. 우습지만,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이런 이중 잣대를 갖고 살아간다. 그 근본 원인은 자신의 주관적 판단에 대한 맹신과 자기중심성이 단단히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성령으로 충만하고 사랑이 넘치는 성도는 스스로 자기 안에 남아있는 자기중심성을 부인하고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참된 사랑은 이중 잣대를 내려놓고 자기중심적 주관성을 솔직히 인정하며, 상대방을 자신과 같은 동등한 무게와 위치로 바라보는 데서 시작된다. 이것이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하는 사랑의 핵심이다.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6.04.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70) 순복음의 7대 신앙-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83>
  • 사랑의 실천은 나 자신의 필요 아닌 대방의 필요로부터 시작돼야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에 이어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5). 참된 사랑은 절대로 이기적일 수 없다. 유대인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그만 강도를 만났다. 강도들은 옷을 벗겨 거의 죽을 만큼 그를 때렸고 그대로 길에 버려두고 도망갔다. 때마침 그곳에 유대인 제사장 한 사람이 지나갔다. 그는 강도 만난 사람을 보았지만,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잠시 뒤, 성전에서 봉사하는 레위인 한 사람이 지나갔지만, 그도 멀찌감치 강도 만난 사람을 피해 지나쳐 버렸다. 얼마 후, 사마리아인 한 명이 그곳을 지나게 됐다. 그 당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서로 상종하지도 않을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고, 유대인들은 그들을 무시하고 배척했다. 그럼에도 그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자에게 다가와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싸매 주었고, 자신의 짐승에 태워 주막까지 와서 그를 보살폈다. 또한, 치료에 필요한 추가 비용까지도 부담할 것을 약속했다(눅 10:25~37). 강도 만난 자의 진정한 이웃은 같은 동족이었던 제사장도 레위 사람도 아닌, 자기의 유익을 생각지 않고 먼저 강도 만난 사람의 유익을 먼저 생각한 사라미아 사람이었다. 이처럼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고 아낌없이 자신의 것을 기꺼이 희생하는 것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그림동화집이 있다. 이 동화는 어떤 나무가 자신을 다 버리기까지 한 소년을 사랑하는 모습을 그렸다. 그 나무는 어린 시절 소년의 그네가 돼 주었고, 놀이터가 돼 주었다. 소년이 성장한 후에는 돈이 필요하다고 하자 자기 열매를 주어 장사할 밑천으로 내어준다. 나이가 든 소년이 집이 필요하다고 할 때는 나뭇가지를 잘라 집을 지을 수 있도록 허락했고, 멀리 여행을 가기 위해 배가 필요하다고 하자 나무는 남아있는 자신의 몸통을 잘라 배를 만들도록 허락한다. 마지막으로 나이가 들어 돌아온 그 소년이 쉴 곳이 없어 하자 “편히 쉬기에는 나무 밑동만 한 곳은 없지”라고 하며 겨우 남아있는 뭉툭하게 잘린 밑동을 휴식을 위한 의자로 제공한다. 이처럼 사랑의 실천은 나 자신의 필요가 아닌 상대방의 필요로부터 시작된다. 혈연, 지연, 학벌, 재산의 규모 그리고 사회적 지위에 따라 이웃을 구분하는 것은 자기중심적 태도다.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은 강도 만난 자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던 것처럼,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이 우리의 이웃이다. 성경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한다(레 19:18, 마 22:39).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는 우리가 특별한 존재여서가 아니다. 바로 우리가 마치 강도 만난 사람처럼 죄와 사망으로 죽어가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예수님은 고통당하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오셨다.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6.03.2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69) 순복음의 7대 신앙-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82>
  • 참된 사랑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베풀고 대가 없이 희생하는 것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에 이어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5).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에는 무례히 행치 않는 것과 비슷한 의미가 있다. 크리스천은 자신의 유익보다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 33절에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 권면했다. 예수님의 사랑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것은 자신의 말이나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를 항상 생각하고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참된 사랑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베풀고, 대가 없이 희생하는 것이다. 의사이자 신학자였던 슈바이처(A. Schweitzer 1875~1965)가 독일에서의 모든 명성과 지위를 버리고 아프리카에 의료선교를 가기로 결심했을 때, 헬레네(Helene B. Schweitzer, 1879 1957)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귀한 가정에서 고생 모르고 자란 헬레네가 아프리카 오지로 떠날 확률은 사실상 제로였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은 결국 슈바이처가 결국은 아프리카 선교를 포기하리라고 생각했다. 슈바이처가 헬레네를 정말 많이 사랑했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슈바이처는 헬레네에게 의료선교를 위해 자신은 아프리카로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이별 통보였지만, 이 말을 들은 헬레네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저는 간호사가 돼야겠군요. 그래야 당신 바로 옆에서 도우며 함께 지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그녀는 간호학을 공부해 간호사가 됐고, 슈바이처의 아내로서 아프리카 랑바레네 의료 봉사의 핵심 동반자가 됐다. 이후 사회복지학까지 공부해 헌신적으로 환자를 돌보며 병원 운영과 행정을 도맡았으며, 남편 슈바이처의 업적을 가능하게 한 실질적이며 정신적인 지주로서 그 곁에서 평생 헌신하며 살았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다. 정말 따뜻하고 아름다운 헌신과 참된 사랑의 모습이다. 이처럼 자신의 유익을 구하기에 앞서서 먼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생각할 줄 아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최고의 감정이 아닙니다. 사랑은 최고의 헌신입니다”라고 스코틀랜드의 출신 개혁 신학자 싱클레어 퍼거슨((S. B. Ferguson)은 말했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15장에서 ‘사랑’의 계명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 15:12~14)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진정한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기에 앞서 다른 사람의 유익을 생각하는 것이며,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예수님과 친구가 되는 지름길이다.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6.02.13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기독교 설교자 열전
    레오 1세
  • 교황권을 공고히 한 레오 1세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 강조해 설교를 교리 교육과 신앙 고백 수단으로 사용 로마교회의 종교적 권위가 강화된 시기는 402년부터 417년 교황 인노첸시오 1세 재위 때였다. 이후 인노첸시오 1세를 이어 그리스 출신의 자시머스가 교황으로 선출됐지만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선종한 뒤에 레오 1세가 새로운 교황으로 등극한다. 기독교의 중세 역사에서 레오 1세가 중요한 것은 교황의 권위를 공고히 했기 때문이다. 특히 레오 1세는 예수님이 베드로와 베드로의 후계자들을 교회가 서있을 초석으로 삼으셨기에 로마교회의 주교, 곧 교황이 로마에서 순교한 베드로를 이을 자이며 교회를 지탱하는 궁극의 기초가 된다고 주장했다(알리스터 맥그라스, 『기독교의 역사』, p.161). 이렇듯 교황권을 강화하는데 탁월한 행정가였던 레오 1세는 설교를 통해 동서분열 가운데 있던 교회를 하나로 묶는데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던 설교자이기도 했다. 그의 설교는 서방교회 설교 전통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레오 1세의 출생은 분명하지 않다. 다만 호노리우스 황제 말기 게르만족이 로마를 계속해서 괴롭히던 시기인 400년 어간에 토스카나 지방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서로마 제국의 정치가 혼란하던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냈던 그는 당시 사회 지도층 자제들에게만 허락되었던 수사학을 공부했다. 이렇게 수사학 교육을 받았던 레오 1세의 진가는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이 분리되었다고 주장하던 네스토리우스와 같은 이단들과의 논쟁에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과 인성에 대한 양성론(Two Natures of Christ)을 통해 드러났고 훈족 왕 아틸라가 로마에 침입했을 때 협상을 통해 약탈을 막아낸 일을 통해 빛을 발했다. 설교에 있어서도 탁월함을 드러낸 레오 1세는 단순한 도덕적 권면이 아니라 교리 교육과 신앙 고백의 수단으로 설교를 사용했다. 특히 성육신, 그리스도의 양성론, 교회 일치 등의 주제를 반복해서 강조했다. 로마 주교가 베드로의 교황권을 전수받았다는 정당성을 설교를 통해 전개했다. 또한 그는 교회력에 따라 설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오 1세의 설교는 약 96편 정도가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다. 그 설교들 대부분은 교황으로서 그가 재임하던 처음 5년 동안 했던 것들이다. 레오 1세의 설교가 가지는 특징은 첫째, 굉장히 짧다는 것이다. 평균적으로 4페이지를 넘기지 않았으며 표현은 간결하고 적절했다. 어떤 설교는 심지어 3분을 넘지 않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설교학자 O. C. 에드워드는 레오 1세의 설교를 공부하기 원하는 사람은 그의 454년 성탄절 설교를 공부하라고 조언한다(O. C. 에드워드, 『교부들의 설교』, p. 159-161). 앞서 살펴본 대로 예수님의 양성론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던 칼케톤 회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레오는 이 설교를 통해 예수님의 성육신의 신비를 다루고 있다. 그는 예수님이야말로 참된 하나님이시며 참된 인간이 되신다고 선언하며 그와 같은 예수님의 양성의 신비를 그 어떤 인간의 말로도 표현하거나 찬미할 수 없다는 말로 설교를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신비는 최대한 올바른 언어로 선포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양성에 대해 너무도 아주 많은 사람이 잘못 이해함으로써 이단의 논설을 믿거나 퍼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레오 1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은 초자연적인 신비가 인간의 일상 속에 인간의 역사 속에 개입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 사건이야말로 인간 구원의 사건이며 인간에게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 편에서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구유의 낮아짐’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와 사랑의 표현이다. 하나님의 겸손과 자비가 무엇인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통로인 것이다. 동시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죄악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을 새로운 삶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행동이다. 그는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2)라는 말씀을 인용하며 “이와 같은 사실을 어느 누구도 의심할 수 없다”라고 단언한다. 또한 그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은 이제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하는 삶을 세상에서 살아내야 한다. 곧 성화와 윤리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 설교에서 레오 1세는 ‘우리’ 또는 ‘신자 여러분’과 같은 호칭을 통해 청중과의 친밀감을 높이고 윤리적 삶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청중의 적극적인 반응과 내적 변화를 촉구한다. 조지훈 목사(한세대학교 설교학 교수)
  • 2025.11.07 / 이미나 기자

    중세 시대의 설교(Ⅰ)
  •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서로마·동로마 분열 서로마 멸망한 476년, 중세 시대의 시작 기독교의 설교에서 성경으로부터 어떤 메시지를 도출해낼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설교자와 그 설교를 듣던 청중들의 삶의 자리 역시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앞으로 살펴보게 될 중세 시대 개별 설교자들에 대해 논하기 전에 그들이 활동했던 중세 시대의 특징을 살펴보려고 한다. 영국의 신학자이자 역사가이며 저술가인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강제 퇴위당하고 서로마제국이 막을 내린 476년을 중세의 시작으로 간주한다(알리스터 맥그라스, 『기독교의 역사』,p. 158).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325년 로마제국의 서부와 동부의 통제권을 장악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제국의 동쪽에 새로운 도시를 세우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해서 선택된 장소가 바로 지중해와 흑해에 걸쳐 있는 보스포루스 해협 가운데 있는 비잔티움이며 이후에 황제의 이름을 따라 ‘콘스탄티노폴리스’(‘콘스탄티누스의 도시’)이라고 불리게 됐다. 이 도시는 330년 5월 11일 봉헌되었으며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이 도시를 ‘새 로마’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새 도시 건설은 동·서로마의 탄생과 동·서교회 분열의 서막이 되고 말았다. 그 씨앗은 379년부터 395년까지 로마를 다스렸던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뿌려졌다.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공식 종교로 만드는데 중요한 조치들을 단행한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넓은 영토를 혼자 통치할 수 없다고 판단해 395년 제국을 동서로 분할하여 자신의 두 아들 아르카디우스(동로마)와 호노리우스(서로마)에게 맡겼다. 이후 동서제국은 각자 발전하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서로마제국은 476년 멸망하게 된다. 4세기 후반 훈족의 등장으로 인해 게르만족은 생존을 위해 남쪽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이동해온 게르만족은 자연스럽게 로마에 흡수됐다. 로마에 편입된 게르만족은 부족한 노예 대신 농사를 짓고 용병이 되어 로마를 위해 전쟁터에 나갔다. 그 가운데 공을 세워 출세하는 인물들이 등장했고 그중 한 사람이 바로 서로마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를 폐위시키고 이탈리아의 왕이 된 오도아케르이다. 서로마를 멸망시킨 오도아케르는 독자적인 왕국을 건설하기보다는 동로마 황제 제논에게 “콘스탄티노폴리스에 계신 폐하께서 진정한 황제”라는 서신을 보냄으로써 동로마의 그늘에 있기를 원했다. 서로마제국의 멸망은 첫째,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제국 분할이라는 정치적인 이유와 둘째, 도시 귀족의 사치와 허영으로 인한 사회적인 이유 때문이며 셋째, 오랫동안 외부의 침략자들을 막아내는 과정에서 군사력이 약화되는 군사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한편, 서로마제국이 몰락했다고 해서 교회 조직이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동로마에 있는 로마교회는 여전히 교황이 있는 명실상부한 로마 기독교의 중심지였다. 4세기 중엽부터 대교구인 로마, 콘스탄티노폴리스, 알렉산드리아, 안디옥의 주교들이 다른 곳의 주교들보다 더 우위에 있는 것으로 인정을 받게 됐다. 특히 서쪽 지역의 교회들에서는 로마 주교가 교회 내외의 문제를 중재하는 이로 인정받게 됐다. 로마 주교가 그런 권위를 인정받았던 것은 로마가 로마제국의 수도라는 정치적인 요인과 더불어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로마에서 순교했고 로마에 묻혔다는 영적인 요인도 있었다. 원래 ‘교황’이라는 말은 존경받는 기독교 주교를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로마 주교를 위한 칭호로 바뀌었다. 384년부터 399년까지 로마 주교였던 시리치오는 오직 자신과 자신의 후계자에게만 이 칭호를 사용하도록 규정했다. 이런 이유로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교황들은 여전히 로마에 남아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 중앙 행정 체계가 무너지고 정치권력의 공백 상태가 발생했을 때 이를 메운 것이 교황과 교회였다. 6세기 말이 되었을 때, 오직 교회만이 서로마 지역에서 유일한 국제 조직으로 남게 됐다. 또한 590년부터 14년 동안 교황을 지낸 그레고리오 1세 때에 선교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기독교의 세력권이 한층 확장됐다. 선교활동을 통해 교황의 영향력이 이탈리아 바깥 지역에도 미치게 됐으며 8세기에는 잉글랜드, 독일, 프랑스 등 서유럽 여러 지역이 교황의 권위 아래 복속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도 이전 시대와 같이 많은 설교자가 등장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했다. 조지훈 목사(한세대 설교학 교수)
  • 2025.10.10 / 이미나 기자

    찬가 설교의 대가 로마노스
  • 성경이나 교리 등을 시 형식으로 노래해 이영훈 목사의 설교에서도 그 흔적 발견 설교학자 다간은 방대한 분량의 책 『설교의 역사』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죽은 5세기 초부터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는 11세기까지의 시기를 설교 역사의 두 번째 기간으로 분류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이 시기는 거대한 제국 로마가 부패로 치닫고 있었고 그에 따라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고 종말 의식이 팽배해 있었다. 제국 로마의 멸망을 알리는 종소리가 저 멀리에서 들려오고 있었고 이제 온 유럽에 중세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 활동했던 사람 중의 하나가 동방교회 전통에 속해있던 로마노스(Romanos the Melodist)이다. 로마노스는 설교자라기보다는 콘타키온(Kontakion) 형식의 찬가 작곡자였다. 폴 스캇 윌슨은 설교 역사를 인물별로 정리하는 자신의 책 『그리스도 설교의 역사』에서 로마노스를 “동방교회 내의 시적인 설교자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설교자요 모든 시대에 걸쳐서 위대한 종교적인 시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있다(폴 스캇 윌슨, 『그리스도 설교의 역사』, 대한기독교서회, p 62). 로마노스를 설교자로 분류할 수 있는 이유는 콘타키온이 무엇인지를 살펴봄으로써 좀 더 분명히 알 수 있다. 콘타키온은 비잔틴교회의 교회 전례음악으로 6세기경 콘스탄티노플에서 한창 발전했다. 성경 이야기나 교리를 운문(시) 형식으로 서술하는 장문의 찬가인 콘타키온은 성도들에게 성경 이야기, 교리, 성인들의 생애 등을 감성적이고 시적인 언어로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콘타키온의 구조는 서곡에 해당하는 프로이미온(prooimion)과 여러 개의 연으로 구성된 오이코이(oikoi)로 되어있다. 프로이미온은 1절로 된 짧은 도입부분으로 전체 주제를 요약해주고 계속되는 후렴구를 제시한다. 18개에서 24개의 연으로 구성된 오이코이는 각 연이 동일한 운율과 리듬 구조를 가지고 있고 프로이미온에서 소개된 후렴구를 사용함으로써 통일성을 유지한다. 현재에도 동방교회 전통의 교회에서는 콘타키온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전의 긴 형식 대신 서곡만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 다른 설교학자들과는 달리 폴 스캇 윌슨은 강단에서 행해진 설교뿐만 아니라 순교자의 죽음이나 찬가 역시 하나의 설교로 간주한다. 그런 이유에서 윌슨은 로마노스를 한 설교자로 분류하고 있다. 윌슨에 따르면 기독교 역사 속에서 운율과 박자에 따른 설교의 전통이 있어왔다. 165년 소아시아의 줄 사르디스의 멜리토(Bishop Melito of Sardis)가 발견한 ‘수난에 관한 설교’가 그 대표적인 예이며 아우구스티누스의 라틴어 설교 역시 운율, 박자, 평행법, 대조법, 모음을 통한 협음 만들기 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운율과 박자에 근거한 설교라고 할 수 있다. 전승에 따르면 성가대원이었던 로마노스는 노래를 잘 부르지 못했다고 한다. 어느 성탄절 전야에 찬가를 불러야 했던 그는 성모 마리아에게 전심으로 기도하며 도움을 구했다. 그날 밤 꿈속에서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이 두루마리를 먹어라”라고 말했다. 잠에서 깨어난 그는 두루마리를 입에 넣어 삼켰고 다음 날부터 놀라운 음성과 즉흥적인 찬송시를 만드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로마노스는 1000개 이상의 콘타키온을 썼지만 오직 59개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로마노스가 작곡한 콘타키온은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개인적인 삶에 대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특징은 당시 예술가들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겸손한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그들의 작업이 교회에 속한 것이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작곡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윌슨은 추정한다. 둘째, 로마노스의 시적인 설교들은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보통 24개의 연으로 구성된 설교들은 행마다 하나의 해설이 곁들여졌고 어떤 경우는 각 행에 들어있는 음절의 숫자에까지도 해설이 덧붙여졌다. 셋째, 설교를 행하는 설교자는 음율과 박자에 맞추어 노래하면서 이야기를 진행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여러 등장인물을 다른 목소리로 표현해야 했다. 이렇게 여러 등장인물을 통해 성경과 교리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가르침도 전달됐다. 이렇게 진행되는 설교의 마무리 과정에서 “회중은 합창단이 그 설교의 중심 주제로 사용하는 동일한 후렴구를 최소한 25회나 반복해서 부르는 것을 들었고, 또한 그 회중도 합창단에 합세해서 따라 부르곤 했다”(『그리스도 설교의 역사』, p 65). 오늘날 로마노스가 행했던 찬가 설교는 찾기 어렵다. 그러나 그가 강조했던 감성적이고 이야기 중심의 설교 전통은 지금도 많은 설교자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 이야기 중심의 설교, 감성을 자극하는 설교는 현대 청중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게 하는 좋은 매개체가 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로마노스의 콘타키온의 마지막 부분에 회중들이 성가대와 함께 부르는 찬양을 자신의 설교에 적용하는 현대 설교자들도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는 설교 마지막 부분에 예화를 하고 이어 설교 주제에 맞는 찬송으로 설교를 마무리한다. 설교 후반부를 찬송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성도들이 지금까지 들은 설교의 내용을 되돌아보게 하고 그 내용을 따라 한 주간을 살아가도록 결단하게 한다. 로마노스의 찬가 설교의 흔적을 이영훈 목사의 설교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조지훈 목사(한세대학교 설교학 교수)
  • 2025.05.09 / 이미나 기자

    기독교 렌즈로 보는 문화
    성경의 무게(The Weight of the Bible)
  • 1562년 네덜란드 판화가 위제 알라드(Huijeh Allardt)가 새긴 한 장의 그림은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큰 울림을 준다. <성경의 무게(The Weight of the Bible)>라 불리는 이 판화는 종교개혁의 핵심 원리인 ‘오직 성경’을 가장 직관적으로 시각화한 작품이다. 그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천장에 매달린 커다란 저울이다. 그림의 중앙에 있는 이 저울은 작품 전체를 좌우로 나누는 기준이 된다. 저울에 달린 양쪽 접시 위에는 서로 다른 물건들이 놓여 있어 긴장감을 자아낸다. 왼쪽 저울 접시 위에는 화려한 것들이 가득하다. 교황의 절대 권위를 상징하는 삼중관(Tiara), 베드로의 열쇠 그리고 수 세기 동안 교회를 지탱해 온 방대한 교회법전과 전통의 기록 등이 쌓여 있다. 반면, 오른쪽 접시에는 단 한 권의 책, 성경만이 놓여 있을 뿐이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다르다. 온갖 물건들이 쌓인 접시는 가볍게 위로 솟아올라 있고, 아무런 장식이 없는 성경 쪽 접시는 바닥에 묵직하게 내려앉아 있다. 알라드는 이 극적인 대비를 통해 진리의 힘을 드러낸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무리 화려하고 거창해도 말씀이라는 실재적인 무게 앞에서는 깃털처럼 가볍다는 사실이다. 저울이 성경 쪽으로 기울자 당황한 수도사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어떤 이는 접시 위로 올라가 무게를 더하고 어떤 이는 체중을 실어 저울의 줄을 아래로 끌어당긴다. 심지어 그들 틈에는 사탄의 기만과 속임수를 상징하는 이미지까지 가세하여 저울을 조작하려 애쓴다. 이 장면은 인간의 종교적 열심이나 인위적인 노력이 진리를 이길 수 없음을 풍자한다. 성경에 담긴 진리는 노력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증명한다. 성경 주변에 서 있는 루터와 칼뱅을 비롯한 종교개혁가들을 보라. 그들은 저울을 붙들거나 조작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말씀이 지닌 본연의 무게가 승리하는 과정을 확신에 찬 눈빛으로 지켜볼 뿐이다. 종교개혁가들의 머리 위 벽면에는 둥근 초상화들이 걸려 있다. 이들은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이전에 먼저 믿음의 길을 갔던 초대교회 사도들과 교부들이다. 알라드는 이 장치를 통해 종교개혁이 결코 ‘새로운 종교’를 만드는 혁명이 아님을 나타낸다. 성경의 무게를 지지하는 이들은 교회의 가장 뿌리 깊은 선조들이었다. 종교개혁은 변질된 전통의 가벼움을 걷어내고, 사도 시대로부터 이어져 온 말씀의 묵직한 정통성을 회복하는 운동이었던 것이다. 성경 한 권이 지닌 무게 속에는 구약의 예언자들로부터 신약의 사도들 그리고 초대교회의 순교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신앙의 선배들이 고백했던 진리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위제 알라드의 저울은 오늘날 우리 각자의 삶 앞에도 놓여 있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저울 위에 수많은 가치를 올려둔다. 나의 경력, 사회적 평판, 쌓아 올린 지식, 안정적인 미래라는 이름의 무거운 짐들을 한쪽 접시에 가득 채우곤 한다. 때로는 그 무게가 너무나 대단해 보여서 그것이 내 인생을 지탱해 줄 절대적인 무게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고난의 폭풍이 불어오고 삶의 본질적인 의미를 물어야 하는 순간이 오면 그 화려했던 것들이 얼마나 가볍게 흩어지는지를 경험하게 된다. 그때 우리를 바닥에 단단히 고정해 주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말씀의 무게를 견디는 신앙이란 내 삶의 모든 판단 기준을 그 묵직한 성경 아래에 두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때로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는 불편함일 수도 있고 나의 자아를 짓누르는 거룩한 부담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무게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는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잡힌 인생을 살 수 있다. 위제 알라드가 묘사한 저울의 바늘은 지금도 변함없이 성경을 가리키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과학적 이론과 화려한 문화를 동원하여 저울의 균형을 맞추려 해도 진리의 질량은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신앙의 모습은 저울 접시 위에 더 많은 장식품을 얹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를 유혹하는 가벼운 것들로부터 눈을 돌려, 바닥에 묵직하게 닿아 있는 말씀의 무게를 온몸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그 거룩한 성경의 무게를 신뢰하며 나아갈 때 우리는 그림 속에 있는 종교 개혁가들처럼 흔들리지 않는 평온함으로 세상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 2026.04.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가짜가 진짜로 변화되는 기적
  • 비행기를 타고 밤늦게 한국에 입국하는 외국인들은 도심 곳곳에 수놓은 듯한 붉은 십자가를 보고 놀란다고 한다. 이 풍경을 본 그들은 ‘한국이 기독교 국가였나?’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기독교 역사가 오래된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밤새도록 십자가 조명을 켜두는 일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전혀 다른 현실이 펼쳐진다. 한국오픈도어선교회가 2025년에 발표한 ‘세계 기독교 박해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3년 연속으로 세계에서 기독교인을 가장 심하게 박해하는 나라로 꼽힌다. 북한에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과 같다.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 온갖 고문과 비인간적인 대우를 겪는 사람이 수만 명에 이른다. 성경 한 권을 소지하거나 짧은 기도문을 외우는 것조차 발각될 경우 잔혹한 구타와 고문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충격과 아픔을 안겨준다. 작년 말에 개봉되어 100만명이 넘게 본 영화 ≪신의 악단≫은 북한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그 과정에서 찬양이 얼마나 사람의 마음에 큰 울림과 감동을 자아내는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상상하여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북한 당국은 국제 NGO로부터 약 2억 달러(약 2750억원)의 지원금을 지원받기 위해 ‘가짜 찬양단’을 조직했다. 사실 영화 속 가짜 찬양 단원들은 이미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이 발각되면 목숨이 위험하기에 그들은 철저히 신앙을 숨기고 당의 지시와 감시 아래 찬양을 연습한다. 그러던 중 그들을 감시하던 북한 고위 간부들조차 직접 찬양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놀랍게도 치밀하게 연출된 예배 속에서 당의 지시에 따라 찬양을 부를 때 그들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가 일상에서 즐겨 부르는 「은혜」, 「광야를 지나며」, 「주 예수 나의 산 소망」과 같은 찬양이 그들의 억눌렸던 마음을 어루만지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는 바로 이 ‘가짜’의 연기가 ‘진짜’의 고백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특히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은혜였다’라는 찬양을 부를 때 매 순간이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던 그들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다.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도 당연한 권리조차 누리지 못했던 그들에게 ‘은혜’라는 단어는 생소하면서도 강렬한 빛으로 다가왔다. 이처럼 찬양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다. 삶 속에서 느끼는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담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곡조 있는 기도’이다. 곡조 있는 기도가 선율을 타고 울려 퍼지자 북한의 주체사상으로 세뇌되었던 그들의 완고한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다. 이후 사방이 흰 눈으로 뒤덮인 혹한의 추위 속에서도 단원들이 한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전율에 가까운 은혜를 선사한다. 그 순간의 찬양은 더 이상 외화를 벌기 위한 수단이나 연기가 아니었다. 발각되는 즉시 사형을 당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그들이 온 마음을 다해 찬양했던 이유는 죽음조차 빼앗아갈 수 없는 참된 평안과 자유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영화의 모든 장면 중 가장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장면은 북한 고위 간부가 찬송가 272장(통 330장)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를 부르는 대목이다. 이 찬양은 억압과 굶주림이라는 고난의 현실을 넘어 영혼의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갈망하는 그들의 처절하고 소망 찬 고백이었다. 이 간절한 고백은 북한의 비극적인 실상을 드러내는 동시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우리 역시 삶 속에서 ‘고통의 멍에’를 메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고통스러운 질병의 멍에를, 누군가는 무거운 물질의 멍에를, 또 누군가는 무너진 관계의 멍에를 메고 신음한다. 그러나 영화 ≪신의 악단≫이 증명하듯, 찬양은 우리의 마음과 괴로운 현실을 변화시키는 능력이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기 위한 가짜 찬양도 영혼을 살리는 능력이 되었는데, 하물며 전심을 다해 올려드리는 우리의 찬양에 하나님이 어찌 역사하지 않으시겠는가. 찬양은 모든 결박을 푸는 열쇠이자, 가장 깊은 절망도 소망으로 바꾸는 하나님의 강력한 무기다. 영화 속 인물들이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누렸던 그 참된 평안이 오늘 우리의 찬양 가운데서도 동일하게 임하길 소망한다. 우리의 목소리가 하모니를 이루며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찬양할 때 우리를 얽매던 모든 멍에가 벗겨지고 주님이 주시는 평강과 희락이 강물처럼 넘칠 것이다. 오늘도 그 찬양의 능력을 힘입어,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전심으로 주를 높이는 거룩한 예배자가 되길 소망한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6.03.20 / 김용두 기자

    기억하려면 기록해야 한다
  •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잡지 중 하나인 <타임>은 매년 ‘올해의 인물’을 선정한다. 특이하게도 2025년에는 특정 개인이 아닌 AI 시대를 설계한 IT 공학자 8명을 선정했다. 이 명단에는 일론 머스크, 마크 저커버그, 젠슨 황 등 우리 시대의 거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인류의 미래를 바꾼 이들의 공통점은 ‘데이터’, 즉 방대한 기록의 힘을 활용했다는 점이다. 시간을 거슬러 1999년,밀레니엄을 앞두고 의미 있는 작업이 있었다. 보우버스 부부와 고트리브 부부는 수년 동안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지난 1000년간 가장 위대한 인물 1000명을 선정한 『1000년, 1000명(1,000 Years, 1,000 People: Ranking the Men and Women Who Shaped the Millennium)』을 출간했다. 당시 <타임>에서도 지난 1000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을 선정하여 발표했는데 두 조사에서 1위로 선정된 인물은 동일했다. 그 인물은 바로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이다. 그는 세상을 놀라게 한 위대한 사상가나 정치인이 아니라 세공업자이자 인쇄업자였다. 그러나 그가 발명한 금속 활판인쇄기는 인류 역사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이전까지 기록물은 일일이 손으로 베껴 쓰거나 목판으로 찍어내야 해서 시간과 인력의 소모가 크고 품질 또한 낮았다. 하지만 활판인쇄기가 발명되자 대량 인쇄가 가능해져 지식의 전파 속도가 폭발적으로 빨라졌다. 인쇄술의 발전은 복음 전파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의 ‘95개 조 반박문’이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할 수 있었던 것도, 라틴어 성경이 독일어로 번역되어 일반 대중의 손에 들려질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인쇄술 덕분이었다. 기록되었기에 인쇄할 수 있었고, 인쇄할 수 있었기에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이다. 기록은 역사적 사건과 개인의 경험을 보존하여 미래로 전달하는 핵심 동력이다. 기록은 문화의 토대가 되고 문화를 기록하는 과정은 공동체의 유대감 형성과 지식을 공유하는 역할을 한다. 즉, 기록과 문화는 ‘바늘과 실’, ‘불과 연기’, ‘수레와 바퀴’ 같이 뗄 수 없는 관계라 할 수 있다. 천재라고 불린 인물 301명의 일상을 조사한 결과도 흥미롭다. 아인슈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에이브러햄 링컨, 토마스 에디슨, 벤저민 프랭클린 등의 삶을 연구한 미국의 심리학자인 캐서린 콕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격과 특성은 모두 다르지만, 이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종이에 기록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기록은 기독교 신앙과 문화를 전승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도 바울은 신약성경 중 13개의 서신을 기록하여 당시 교회들을 믿음 위에 굳게 세웠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 『하나님의 도성』 등 100여 권의 저서와 설교, 편지 등을 남겨 중세 신학의 토대를 마련했다. 존 번연이 감옥에서 쓴 『천로역정』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고전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예로부터 기록을 중요하게 여겼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훈민정음 해례본』, 『동의보감』 등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을 20건 이상 보유한 것이 그 증거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 국가기록원을 통해 국가의 주요 기록물을 체계적으로 보존하며 그 정신을 면면히 이어가고 있다. 조선 최고의 실학자 정약용은 “기록하기를 좋아하라. 쉬지 말고 기록해라. 생각이 떠오르면 수시로 기록하라. 기억은 흐려지고 생각은 사라진다. 머리를 믿지 말고 손을 믿어라”라고 강조하며 500여 권의 책을 남겼다. 이순신 장군 역시 7년간 『난중일기』를 쓰며 생각을 정리하고 치밀한 승리의 전략을 세웠다. 기록은 단순히 과거를 담아두는 창고가 아니라, 현재의 나를 세우고 미래를 설계하는 설계도이다. 기록되지 않은 경험은 단편적인 기억으로 흩어지지만, 기록된 경험은 성찰의 도구가 되어 지혜로 응축된다. 우리가 매일의 삶을 기록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잊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다. 기록하는 행위를 통해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힘을 얻기 위함이다. 결국 기록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경영하며,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삶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도 기록을 통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기록된 성경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하고 생명을 얻게 한다(요 20:31).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아 알게 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기록된 그 말씀이 오늘 하루를 살아갈 힘을 주며 우리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롭고 바른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시고 지금도 함께하시는 주님의 은혜는 너무나도 많다. 이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으려면 기록해야 한다. 특히 올해는 『감사QT 365』를 통해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감사를 적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2026년 새해에는 감사와 기도, 응답과 찬양의 기록을 남겨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기억하는 모두가 되길 소망한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6.01.1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선교 뉴스
    제52회 순복음세계선교대회 사전 간담회 개최
  • 제52회 순복음세계선교대회를 앞두고 사전 간담회가 15일 여의도 LG트윈빌딩 키사라에서 열렸다. 이번 선교대회의 주제는 ‘선교, 오직 십자가의 능력으로’(갈 6:14)이다. 간담회는 선교국 담당 정용훈 목사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선교위원장 안경회 장로가 기도했다. 이날 자리에는 이영훈 담임목사를 비롯해 엄태욱·김윤수·김영석 부목사와 김용준·김경문 목사 등 20개 교회 담임목사, 선교위원회 위원이 참석했다. 정용훈 목사는 제52회 순복음세계선교대회의 개요와 준비 현황을 보고했다. 행사는 5월 27일부터 29일까지 여의도 대성전과 경기 파주 영산수련원에서 진행되며 대회와 수련회, 성령대망회가 함께 열린다. 강사로는 이영훈 목사를 비롯해 박성민·류영모 목사 등이 나선다. 참석 대상은 교민 및 원주민 선교사로 약 650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영훈 목사는 간담회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정체성은 선교”라며 조용기 목사의 선교 정신을 강조했다. 이어 “20개 제자 교회가 함께 선교와 교회 개척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며 협력을 당부했다.
  • 2026.04.17 / 오정선 기자

    ‘선교사 1분 감사기도 365’로 선교에 동참해 보세요
  • 단 1분이 당신의 하루를 그리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4월 1일부터 선교국이 특별한 기도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선교사 1분 감사기도 365’. 바쁜 일상 속에서도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획된 이번 콘텐츠는 1분 동안 선교사가 직접 전하는 기도 영상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특징은 ‘감사’에 있다. 그동안 선교 기도가 문제 해결과 필요 중심이었다면, 이번에는 선교지에서 실제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데 초점을 맞췄다. 짧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기도는 자연스럽게 성도들을 선교지, 선교사와 연결시키고 기도를 통한 동역의 길로 이끈다. 영상은 유튜브(여의도순복음교회 선교국)와 인스타그램(wmdept2026)을 통해 매주 2회 공개되며, 세계 각지에서 사역 중인 선교사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낸다. 일본 군마에서 사역 중인 김기태 선교사는 “매년 새신자들이 신앙고백과 함께 침례를 받는 것이 큰 감사”라며 “우상숭배가 만연한 일본 땅에 그리스도의 빛이 비춰 많은 영혼이 구원에 이르기를 기도한다”고 전했다. 선교사가 전하는 1분 기도 영상은 살아있는 선교 보고이자 기도의 초대장이다. 365일을 함께하다 보면 어느새 선교사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기도로 세계를 품는 변화가 시작된다. 선교국 담당 정용훈 목사는 “선교지에서 전하는 감사의 기도를 통해 더 큰 은혜가 흘러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했다”며 “많은 성도들이 참여해 선교지 중보에 동참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 2026.03.27 / 오정선 기자

    주정혁 목사 호주 선교사로 파송
  • 재단법인 순복음선교회 이사장 이영훈 목사는 15일 호주 선교사로 파송되는 주정혁 목사에게 파송장을 수여하고 선교사역을 위해 안수기도했다. 성전비서실에서 진행된 파송식에는 주 목사 가족이 참석했다. 주정혁 목사는 호주 브리즈번순복음교회 부교역자로 교민 복음화 및 제자화에 힘쓸 예정이다.
  • 2026.03.19 / 오정선 기자

    선교지 소식
    박민규 선교사(싱가포르)
  • 동남아 허브 싱가포르에 세워진 순복음교회 예배 및 문화 사역 등 ‘미션 허브’로 쓰임 받길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 여러분, 동남아시아의 허브 싱가포르에서 사역하는 박민규 목사입니다. 제가 섬기는 싱가포르순복음교회는 싱가포르에서 두 번째로 개척된 한인교회입니다. 그 시작은 1985년 네 가정의 기도모임으로부터였습니다. 담임 목회자가 없는 상태로 2년간 지속된 기도모임은 공동체를 넘어 교회로 발돋움하게 되었는데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담임교역자 파송을 의뢰하여 첫 담임목사가 부임한 이래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싱가포르는 1인당 GDP가 9만 달러에 이르는 경제 선진국입니다. 하지만 물가의 급상승으로 인한 높은 생활비 감당은 정부로부터 특별한 혜택과 지원을 받지 못하는 외국인들이 생활하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환경입니다. 한인 성도들은 코로나 이후 많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입니다. 실제 국내 유수 기업들이 싱가포르의 높은 물가와 비용에 대한 부담으로 주재원 파견을 주저하는 현실입니다. 싱가포르는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의 국가로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하나의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엄격한 규제와 법 적용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개적인 전도활동이 불가능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전체 인구의 20%가 기독교인이며 교회가 점점 성장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청소년과 청년 기독교인의 비중이 늘고 있어 기독교의 미래는 참으로 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싱가포르에는 한인들이 대략 2만5000명 정도가 살고 있으며 11개의 한인교회가 연합해 한인 복음화를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교단을 초월해 다양한 교회들이 꾸준히 연합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싱가포르순복음교회는 작지만 단단한 교회로 저력이 있는 공동체를 형성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따라 많은 것을 함께 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교회의 운영과 유지를 위한 막대한 재정도 기도하며 함께 만들어 가는 가운데 채우시고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누구나 하나님 품으로 나아와 그 안에 거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교회 공간 중 일부를 지역사회와 공유하는 일환으로 기독교 서점을 운영하려고 준비중입니다. 그래서 준비중인 서점 이름도 ‘StayinG(Stay in God의 약자)로 정했습니다. 한인들에게 좋은 글과 책, 소품들을 제공하며 관련 프로그램이나 이벤트도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믿지 않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기독교 문화에 젖어들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려는 것입니다. 동남아시아 주변 국가들에도 한국 기독교 서점이 없는 상황이라 미션허브(Mission Hub)로도 쓰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싱가포르 안에는 미얀마와 필리핀 등에서 건너온 헬퍼(도우미)나 근로자들이 많아 서점을 통해 그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면 각자의 나라로 복음을 들고 역파송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연합하는 많은 이들로 하나님의 나라가 함께 지어져 갈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저는 싱가포르순복음교회에 새로운 성도들, 특히 초신자가 많은 것이 감사합니다. 비록 교인 수는 작지만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집 같은 교회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더불어 사택을 이용해 환대(Hosting)사역도 진행 중인데 이 사역이 한국과 각지에서 방문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을 경험하는 좋은 통로 역할이 되길 기대합니다. 우리의 모든 사역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도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성도님들을 위해서 중보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6.04.03 / 오정선 기자

    안진희 선교사(인도네시아)
  • 인도네시아 메단에 심겨 열매 맺은 순복음 신앙 교회 개척, 제자 양육에 힘써 일꾼 만든 20여 년 지난해 11월 큰 수해 겪으며 선교 중요성 다시 깨달아 할렐루야! 인도네시아 북부수마트라섬에 있는 메단이라는 도시에서 선교하는 안진희 선교사입니다. 2004년 12월 1일 파송 받아서 남편 최명수 선교사와 함께 메단에 온지 벌써 21년째입니다. 처음 메단에 도착해서는 이곳이 적도 지역이다보니 날씨가 낮에 50도까지 올라가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이끌어주셔서 임마누엘순복음원주민교회를 개척해 지난해 20주년이 되었습니다. 메단 지역은 무슬림이 90%를 차지하고 있으며 기독교는 5%, 나머지는 힌두교와 불교가 분포돼 있습니다. 처음 교회를 개척할 때 우리는 매일매일 동네 구석구석에 다니면서 어린아이들과 청년, 어른들을 전도했습니다. 당시 전도한 어린이들과 성도들은 모두 가난했습니다. 이 가난을 이기려면 아이들이 공부를 하고 취직을 해서 가난을 물리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의 중학교, 고등학교 학비를 도와주기 시작해 지금도 어려운 학생들의 학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20년이 지난 지금,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장학금으로 대학교까지 졸업해 교사, 공무원이 됐고 직장도 다니고 있습니다. 학비 후원 뿐 아니라 순복음 신앙으로 말씀과 기도, 성령 충만으로 아이들을 양육할 때 이 청년들이 교회 기둥으로 열심히 봉사하며 복음의 증인들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은혜 속에서도 교회를 지을 때 무슬림의 방해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성령님을 의지해 기도했고, 그 결과 교회가 완공돼 지금까지 주님을 찬양하며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교회 사역과 더불어 우리는 유치원을 세워 20년 동안 아이들에게 성경 말씀을 가르쳐 믿음이 자라나게 했습니다. 무슬림 지역에서 복음전도자가 되도록 양육한 것입니다. 제자들과 평신도 사역자들도 순복음의 신앙으로 양육하고 있습니다. 20년 동안 꾸준히 순복음 신앙으로 제자를 양육하고 지교회를 세우고, 구역장을 세워 전도에 힘써왔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었지만 오직 성령님을 의지해 오늘날까지 왔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지난해 11월 엄청난 수해를 겪었습니다. 메단과 수마트라섬에 내린 폭우로 메단 시내 전체가 물에 잠기고 시골은 산사태가 나 많은 사람이 희생됐습니다. 다행히 우리가 사역하는 곳은 교회에 물이 들어오기 전 비가 그쳤습니다. 하지만 몇 성도들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교회에서는 12월 내내 홍수 피해 성도들에게 생활 필수품을 나눠주고 부서진 집을 수리하는데 힘을 쏟았습니다. 인명 피해가 없었다는 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번 홍수로 우리는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선교는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 20년 동안 어려운 이들을 돌보고 복음을 전했을 때 우리를 본 성도들이 이제는 어려운 일 앞에서 함께 돌보고 베풀고 나눠준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선교지에서의 20년 동안 하나님이 많은 것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은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부부는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메단 땅에 순복음의 신앙을 굳건히 세워가겠습니다. 수많은 영혼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님들이 중보기도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 2026.02.26 / 오정선 기자

    최성규 목사(홍콩)
  • 홍콩의 격변기 속에서 복음의 빛 발하는 홍콩순복음교회 예수의 증인된 삶 실천, 한마음으로 복음 전파 할렐루야! 홍콩순복음교회 담임 최성규 목사입니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공존하는 홍콩은 약 1114.6㎢의 면적에 753만명 이상의 인구가 거주하는 세계적인 경제 허브로, 오랜 기간 자유시장 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제 금융 및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세계 최고 수준의 주택 가격은 서민들에게 주거 불안정을 안겨주고 있으며, 국제적으로도 높은 수준의 소득 불평등은 극심한 빈부격차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제적 양극화는 단순한 물질적 문제를 넘어 영적 공허함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2024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홍콩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다종교 사회입니다. 무종교 또는 미응답자가 약 50%로 가장 높으며 기독교 19%, 불교 13%, 도교 13%, 이슬람교 4%, 힌두교 1%로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홍콩의 종교적 특징은 전통적인 중국 종교와 서양 종교가 혼합되어 나타나며, 많은 사람들이 여러 종교적 관습을 동시에 따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적 다원주의는 오히려 영적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홍콩순복음교회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오직 성령으로!’라는 표어 아래 세 가지 목표를 가지고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첫째, 성령의 권능으로 충만한 교회입니다. 매주 금요일 밤에 드려지는 금요성령대망회는 우리 교회 성도뿐만 아니라 타 교회 성도들도 참석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병든 자가 치유되며 눌린 자가 자유함을 얻는 성령 충만한 예배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 한 달 동안은 교회의 문제 해결을 위해 저녁 겟세마네기도회를 드렸고, 11월에도 4주간의 겟세마네기도회를 통해 기쁨으로 거둘 곡식단을 꿈꾸며 눈물의 씨앗을 뿌리고 기도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땅 끝까지 전하는 교회입니다. 땅 끝까지 주의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매월 첫째 주 성찬예배 후 유치부 아이들부터 장로님들까지 전 교인이 노방전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중국 대륙을 품고 믿음으로 복음 전파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홍콩 주재원 한 가정이 저희 교회에 오셔서 예배를 드리신 후 앞으로도 출석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함을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셋째, 예수님의 증인된 삶을 살아내는 교회입니다. 지난해 10월 8명의 성도가 침례를 받고 예수의 증인된 삶을 살기로 다짐했으며, 성도들의 마음을 담아 선교사님들의 사역을 위해 기도하고 후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어린이 도서관 ‘두드림’(DoDream)을 통해 교회에 나오지 않는 가정의 자녀들도 교회에서 편하게 책을 보고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아시아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Box of Hope’(희망박스) 행사에 전 성도가 참여해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더 나아가 교회의 꿈인 비전센터 설립을 통해 이 땅에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하며,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즐길 수 있는 교회를 꿈꾸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성도님들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합니다. 전 성도가 성령 충만으로 하나 되고, 교회의 리더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사명을 감당하도록 기도해주십시오. 출석 성도 500명의 목표가 이루어져 50개 교회를 섬기며, 비전센터 설립이 이루어져 거룩한 꿈을 꾸는 청년부와 교회학교 자녀들이 되도록, 예수님과 함께하는 희망과 소망 그리고 부흥의 2026년이 되도록 기도를 요청드립니다. 지난해 12월 이영훈 목사님을 초청해 드려진 홍콩순복음교회 축복성회를 통해 교회와 홍콩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로 가득하도록 이 땅의 복음 사역을 위해 성도님들에게 간곡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 2026.02.06 / 오정선 기자

    선교사를 위한 중보 기도
    양현근 선교사(일본)
  • - 오사카순복음교회의 살아 있는 예배를 위해 - 성령과 말씀으로 충만한 교회가 되도록 - 사랑으로 영혼과 지역을 섬기는 교회가 되도록
  • 2026.04.24 / 김용두 기자

    김열매 선교사(V국)
  • - 종려나무집 학생들이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 한국 전주로 파송된 청년이 하나님 보호하심 속에 맡은바 사명 다하도록 - 현지인 목회자와 청년 사역자가 사역을 충성되게 감당하도록
  • 2026.04.17 / 오정선 기자

    오재웅 선교사(호주)
  • - 이민 사회의 불안함에도 퍼스순복음교회 성도들이 성령 충만으로 항상 감사하고 기뻐하도록 - 투병 중에 있는 성도들의 빠른 쾌유와 건강을 위해 - 청년부, 교회학교에 좋은 부교역자가 오도록
  • 2026.04.10 / 오정선 기자

    순복음영성스케치
    기도의 종류(Ⅳ) - 중보 기도
  • 세계적인 설교자 찰스 스펄전 목사는 “위대한 일을 행하실 때마다 하나님은 먼저 기도의 사람을 세우신다”고 말했다. 그가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본인 스스로가 기도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며, 특히 그를 위해 중보하며 기도하던 무명의 기도 동역자들의 영적 지원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 역시 그의 사역에 있어 중보 기도의 능력을 인정했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만 사랑하는 기도의 사람 백 명을 원했다고 한다. 타인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기도하고 연약함과 어려움을 지탱해주고자 하는 중보 기도는 영적 지도자를 위한 중보 기도로 이어질 때 더욱 강한 능력으로 나타난다. 1. 중보의 의미와 예수 그리스도 중보(intercession)의 문자적 의미는 ‘사이에 나아가다’, ‘상치하는 양자를 화해하기 위해 행동하다’의 의미가 있으며 법정에서 의뢰인을 돕는 변호사나 법률적 행위를 대신해주는 대리인의 개념을 갖고 있다. 요한복음 1장 18절은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증거하고 있는데, 앞선 중보의 개념에 따르면 예수님이 하나님과 인간을 중보하는 최고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은 지금도 성령님을 통하여 계속되고 있으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기도할 때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도와주신다. 2. 예수님의 중보 기도와 훈련 모델 능력 있는 중보 기도자가 되고자 소원하는 사람은 단연코 최고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따라가야 한다. 그러나 한 명의 중보 기도자가 세워지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중보 기도자로서의 소원과 결심이 있어야 하며 더 나아가 훈련이 필요하다.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의 최우선 순위는 기도였는데 어떠한 때에 기도하셨는지를 알아보면 중보 기도자로 서는 훈련에 도움이 될 수 있다. (1)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침례를 받으실 때 기도하셨다(눅 3:21~22). (2) 사람들에게 인정받던 전성기 때에 많이 기도하셨다. (3) 진리에 대한 계시가 필요할 때 기도하셨다. (4) 제자들을 선택하고 훈련하실 때 기도하셨다. (5) 사랑과 용서가 필요할 때 기도하셨다. 3. 중보 기도의 올바른 태도 중보 기도자로서 훈련을 받고자 하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훈련 방법은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매일 일정한 시간을 내어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 증진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아래의 5가지 올바른 태도를 유지하기만 해도 효과적인 중보 기도자로 설 수 있다. (1) 자발적으로 중보 기도하라 억지로 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지 못한다.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가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이다. (2) 구체적으로 중보 기도하라 중언 부언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신다(마 6:7). 구체적인 기도는 응답을 통하여 능력을 체험하는 통로가 된다. (3) 올바르게 중보하며 구하라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하고 정당한 것을 구해야 한다. 응답이 올 때까지 찾고 두드리는 실행의 과정을 능동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4) 전심으로 중보하며 구하라 두 마음을 품는 것을 하나님은 싫어하신다(약 1:8). 이런저런 생각이 많으면 기도에 집중하기 어렵다. 마음이 분산되는 것을 막는 실제적인 방법은 크게 소리 내어 기도하는 것이다. (5) 쉬지 말고 중보 기도하라 기도는 호흡이요 습관이 되어야 한다. 한꺼번에 일시적으로 많은 기도를 드리는 것보다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자주 드리는 기도가 효과적이다. 4. 영적 지도자를 위한 중보 기도 중보 기도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 지도자를 위한 기도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에게 순종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지도자를 판단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을 갖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시 66:18). 그리고 아래와 같이 영적 지도자의 영성과 생활과 사역의 3가지 영역에서 중보하며 기도하면 사역에 큰 능력이 나타난다. (1) 영성을 위하여(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기도) 지도자의 위치에서 듣게 되는 비난과 겪게 되는 억울한 일들을 견디고 이길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2) 생활을 위하여(개인적인 삶을 위한 기도)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추구하며, 행복한 가정의 모범이 되고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도록 기도해야 한다. (3) 사역을 위하여(사명 감당을 위한 기도) 교회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는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 끝까지 사명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귀한 뜻을 이루어 가야 한다. 성도들은 영적 지도자의 권위에 순종하고 그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하나되게 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끝> 김현동 선임목사(교무국 기도처지원팀)
  • 2023.12.2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기도의 종류(Ⅲ) - 방언 기도
  • 올해는 우리 교회가 속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교단이 창립한 지 70년이 되는 해로서 한국의 복음화를 위한 오순절 운동을 되돌아보게 한다. 오순절 운동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의 생명력을 회복시키려는 운동으로서 성령 침례의 결과가 방언, 신유, 능력으로 나타남을 강조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교회도 성령 충만과 방언 기도를 강조해 왔고, 이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신유 사역과 사회 참여를 통하여 세계 최대의 교회로 성장했다. 오늘은 우리 교회와 교단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 부흥의 큰 원동력이 된 방언 기도에 대해 알아보고, 방언 기도를 통해 성령 충만의 영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다짐의 시간이 되기를 기도한다. 1. 방언 기도의 의미와 성경 상의 언급 방언 기도는 영적인 언어로 말하는 기도로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통을 가능하게 하며 개인 신앙 발전에 큰 유익을 주는 기도이다. 방언은 성령 침례의 외적 증거이며 성경 많은 곳에서 성령 침례의 표적으로 나타난 방언 기도의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오순절 날 제자들에게 임한 성령의 임재(행 2:1~4), 둘째는 베드로가 고넬료와 집안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을 때의 성령의 임재(행 10:44~46), 덧붙여 바울이 에베소의 제자들에게 안수할 때의 성령의 임재(행 19:5~6)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2. 현대 오순절 운동과 방언 기도 성경 상에 등장하였던 방언 기도는 20세기 초 현대 오순절 운동에서 재발견된다. 1901년에 감리교 목사 찰스 팔함(Charles F. Parham)은 그가 가르치는 신학교 학생들과 함께 성경을 철저히 연구하던 중, ‘방언이 성령 침례의 최초의 증거’임을 깨닫게 된다. 이들은 이렇게 발견한 말씀의 내용을 철저히 믿고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 침례와 방언을 체험하게 되었고 이것이 현대 오순절 운동의 시작이다. 이어 방언 기도를 강조하는 오순절 운동은 1906년 윌리엄 시무어(William J. Seymour)의 아주사 부흥으로 이어졌다. 방언과 방언 통역, 예언, 축사, 신유 등이 강력하게 나타났던 아주사 거리 집회는 무려 3년이나 지속되며 기도의 불길을 이어갔다. 3. 방언 기도의 유익 성령 침례의 최초의 증거로서 방언 기도는 다음과 같은 유익을 가져다준다. (1) 방언 기도는 성령 충만의 확신을 준다. 성경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제자들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방언)로 말하기를 시작하였다고 증거하고 있다(행 2:4). 한편 믿는 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한다고 분명히 적고 있다(막 16:17). 성령 침례를 받으면 방언이라는 표적을 통하여 분명하게 성령 충만의 증거를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방언 기도를 한다는 것은 기도하는 자에게나 듣는 자에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성령 충만의 확신을 가져다준다. (2) 방언 기도는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통을 나누는 비밀한 언어이다. 방언 기도에 대해 비교적 많은 언급을 하고 있는 고린도전서에서는 방언을 하나님과 비밀한 영적 교통을 나누는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고전 14:2)고 하면서 또한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고전 14:14)라고 증거하고 있다. 이러한 방언 기도는 하나님과 비밀의 기도이기 때문에 사탄도 알아듣지 못한다. (3) 방언 기도는 자기 신앙의 덕을 세운다. 성경은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운다(고전 14:4)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덕’을 세운다는 것의 원어적 의미는 ‘집을 지어 올라간다’는 의미가 있다. 우리는 방언 기도를 통하여 마치 집을 짓듯이 우리의 신앙을 더욱 견고히 할 수 있다. (4) 방언 기도는 마음을 부정적인 상태에서 해방시켜준다. 방언으로 기도하면 우리의 잠재 의식 속에 있는 모든 불안, 초조, 절망, 미움, 원한, 상처 입은 것을 깨끗이 청산해 준다. 마음의 공간이 방언 기도를 통하여 깨끗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부정적인 상태에서 해방되어 절대긍정의 마음으로 변화 된다. (5) 방언 기도는 연약함을 돕는 탄식의 기도이다. 성경은 성령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고 하고 있다(롬 8:26~27). 방언 기도를 통하여 탄식하듯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6) 방언은 깊고 오랜 기도를 가능하게 한다 고린도전서 14장 15절에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고 증거하고 있다.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기 위해서는 기도의 시간이 길어야 한다. 방언 기도는 기도의 언어로서 기도를 오래 할 수 있게 하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코로나19 엔데믹 선언 이후인 지금은 성도 개개인이 기도를 통해 성령 충만한 영성을 회복하고 교회 내외적으로 전례 없는 부흥을 꿈꾸어야 할 때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 교회 성령 충만과 부흥의 토대가 된 오랜 시간의 깊은 방언 기도를 회복하는 것은 교회와 성도 모두가 부흥으로 향하는 최선의 지름길을 제공해 줄 것이다. 김현동 선임목사(목회자제직훈련소)
  • 2023.11.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기도의 종류(Ⅱ): 대적 기도
  • 그리스도인들에게 악한 영들과의 영적 전쟁은 선택 사항이 아닌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과정이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영적 전쟁에 대해 무의미하게 여기거나 막연히 신비적인 것이라고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영적 전쟁은 성경 여러 곳에서 많이 언급되고 있으며 오늘날도 실제적으로 많은 이들에 의해 체험되고 있다. 이러한 영적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대적 기도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오늘은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신 권세(창 3:15)에 힘입어 선포하는 대적 기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대적 기도의 의미와 특징 대적 기도는 문자 그대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권세에 힘입어 악한 영들에게 명령하고 선포하는 기도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도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의 형식이지만 대적 기도는 악한 영들에 대한 것으로 간구가 아닌 명령과 선포의 형태를 지닌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는 권세를 주셨다(눅 10:19). 이 말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악한 영들을 대적함으로써 승리하였던 것과 같이 오늘날 우리들도 예수님이 주신 권세와 능력을 믿고 명령하며 선포함으로써 귀신을 쫓아내고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2. 성경에 나타난 대적 기도 성경은 영적 전쟁을 실제적으로 묘사하면서 대적 기도의 상대인 악한 영들과 이들을 어떻게 상대하여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1) 대적 기도의 대상 성경은 우리가 물리쳐야 할 대상에 대해 직접적으로 ‘대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라고 하거나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고 말한다. 이러한 성경의 언급을 통해 우리의 대적이 바로 ‘마귀’임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2) 대적 기도의 사례 예수님은 귀신을 꾸짖는 방법(막 9:25)과 명하여 내어 쫓는 방법(눅 8:29)을 통하여 대적 기도를 행하셨다. 바울은 이러한 예수님의 권세에 힘입어 빌립보의 귀신 들린 여종을 향하여 명하였고, 귀신은 즉시 나오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행 16:18)는 명령과 선포는 오늘날 대적 기도의 대표적인 형태로 활용되고 있다. 3. 대적 기도의 방법 대적 기도는 보이지 않는 적과의 영적 대결이므로 마치 전쟁터에서 배수의 진을 친 것과 같은 비장한 각오로 준비하고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기도해야 한다. (1) 보혈을 의지하는 기도 유월절 어린 양의 피는 예수님의 보혈에 대한 예표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음에서 보호하실 것에 대한 약속이었다(출 12:13).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친히 흘려주신 보혈의 권세를 갖고 있으므로, 보혈에 의지하는 기도는 마귀에게 대적하는 가장 큰 기초가 된다. 연약한 육신을 입고 있는 우리들은 매일 같이 마귀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데 특별히 개인의 감정과 사회적 관계 그리고 환경 가운데 보혈을 뿌리며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2) 예수 이름의 권세를 의지하는 기도 예수님이 이 땅에 성육신하시어 오신 이유는 우리의 상실한 권세를 회복해 주시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셨으나 부활하셔서 승리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히 8:1). 이러한 예수님의 권세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됨과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요 1:12). 성경은 예수님의 권세에 의지할 때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고 하였고(마 16:18), 매고 푸는 권세가 있어서 마귀들을 묶고 포로된 자들을 구원하는 권세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마 16:19). (3)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갖는 기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으나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이긴 싸움을 싸우는 중이다. 그러나 아직 대적의 수중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겼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패배 의식에 빠지고 좌절과 낙심 가운데 살아가게 된다. 우리는 대장 되신 예수님이 죽음을 정복하셨고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주셨으며, 흉악과 결박에서 놓임 받게 해주심을 굳게 믿고 마귀를 대적하며 기도해야 한다. 4. 대적 기도의 실제와 유익 대적 기도를 통하여 의심, 두려움, 교만, 불안, 낙심과 염려 등 마음의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사라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대적 기도는 육체의 치유와 믿음의 회복도 가져다준다. 우리는 각종 암, 우울증, 중풍, 고혈압, 당뇨병, 만성 피로 등 육체의 질병에 대해 꾸짖고 명령하고 선포하여 승리할 수 있고, 영적 성장과 신앙생활에 방해를 주는 악한 영들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대적하며 기도할 수 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하노니, 사람의 육체와 정신과 영혼을 괴롭히는 악한 원수 마귀야! 지금 즉시 하나님의 자녀에게서 떠나갈지어다!” 이러한 선포를 통하여도 우리는 마귀와 효과적으로 대결하고 영적 전쟁의 승리에 다가설 수 있다. 김현동 선임목사(목회자제직훈련소)
  • 2023.10.2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구속사적 성경읽기
    (19)영적 무장을 위한 3대 신앙
  •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은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로 했다면 영적 전쟁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영적 무장이다. 영적 무장이 없이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전쟁에 임하는 병사가 무장 없이 맨몸으로 나서는 법이 없듯이 영적 전쟁에서도 영적 무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 시간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영적 무장, 곧 3가지 신앙적 무장에 대해서 알아보자. 1. 창조 신앙 하나님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창조주이시다.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자 우리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신 장본인이시다. 이 세상 모든 만물 가운데 스스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아무리 과학이 하나님을 배제하고 진화론과 같은 이론으로 이 세상을 설명하려고 해도 그런 과학은 극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다음과 같은 우화가 있다. 어느 날 과학자 한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와 말했다. “우리 과학이 발전해 흙으로 사람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과학이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은 다 할 수 있다는 의미죠.” 하나님이 답하셨다. “정말 그러한가? 그렇다면 네 말대로 흙으로 사람을 만들어 보아라. 대신 네 흙으로 해라.” 이 우화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가?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생명의 근원, 우주의 근원은 밝혀낼 수 없다는 것이다. 생명의 근원, 우주의 근원은 어디 있는가?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셨다.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전 12:1~2).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다. 렇다면 창조 신앙을 가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절대 주권을 인정하며 살아야 한다. 달리 말해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창조주 되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 영광을 올려 드리며 살아야 한다. 2. 십자가 신앙 예수님의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써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받은 것이다. 그뿐 아니라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함을 얻으며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축복을 얻은 것이다. 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말했다.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 마르틴 루터는 이 말을 통해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어야 함을 천명한 것이다. 달리 말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빼놓고서는 기독교 신앙을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갈라디아서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 3:13~14). 예수님이 율법이 정한 대로 나무에 달려 죽는 저주받은 죽음을 당하심으로써 우리를 죄와 사망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아브라함의 복과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셨다. 그렇다면 십자가 신앙을 가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담대한 복음 증거자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세상 앞에 절대로 주눅 들지 않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만큼 나를 사랑하셨고 모든 저주의 굴레에서 해방하셨다. 또한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녀가 되게 하셨으니 우리가 삶의 형편과 조건, 세상의 시선에 위축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3. 부활 신앙 기독교 신앙의 위대함은 부활 신앙에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예수님의 부활은 기정사실이다. 그 증거가 무엇일까? 첫째,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다. 둘째, 부활의 목격자들이 있다. 도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 15:4~8). 특히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을 당하실 때 비겁한 도망자들이 되었던 제자들이 어떻게 다시 그 예수님을 전하다 순교자까지 될 수 있었을까?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부활이 거짓일 수 없는 이유다. 물론 이런 증거에도 부활이 거짓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셋째, 부활이 거짓이라면 그 거짓이 2000년 넘게 지속될 수 있었을까? 수없이 많은 사람이 그 거짓에 자기 목숨을 걸 수 있었겠으며 자기 인생을 헌신해 가며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을까? 부활은 사실이고 진리이다. 그렇다면 부활 신앙을 가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결단코 세상에 얽매인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안개처럼 쉽게 사라지는 인생길을 걷고 있으며 잠시 왔다가 떠날 나그네 인생을 살고 있다. 이 세상은 우리 삶의 종착지가 아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단기 선교 온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의 몸을 입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될 것이다. 바울 사도는 말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 15:19). 이 세상에 얽매여 잠시 잠깐뿐인 헛된 것을 찾다가 인생의 허망함에 무릎을 치며 후회하지 말고 부활 후 누릴 영원한 생명을 바라며 살아가자. 오정섭 목사
  • 2022.07.1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절대긍정의 믿음
  •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선교라고 정의되는 시대가 찾아왔다.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인의 복음 증거만큼이나 그리스도인의 삶이 주목받는 시대라는 뜻이다. 요즘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전하는 복음의 진정성을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에서 찾는다. 따라서 성경을 삶의 원리 원칙으로 삼는 성경적인 삶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성경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절대긍정의 믿음이다. 왜냐하면 복음의 결론은 성도의 최후 승리를 말하고 있으며 다시 오실 예수님이 성도의 최후 승리를 반드시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져야 할 절대긍정의 믿음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그 땅을 정탐 다녀온 여호수아와 갈렙의 반응에서 절대긍정의 믿음이 지녀야 할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1.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을 갖고 싶어 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각 지파에서 대표 한 사람씩을 선발해 모두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에 보낸다. 그들은 40일간 그 땅을 돌아본 후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이며 그 땅의 과일들은 극상품이라고 할 수 있고 그들이 누리는 것은 풍요롭다는 데에 일치된 의견을 내놓는다(민 13:25~27). 그러나 그 땅을 정복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의견은 긍정적인 의견 2명, 부정적인 의견 10명으로 갈린다.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은 두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이다. 갈렙은 다음과 같은 의견을 피력한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민 13:30).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을 취하고자 하는 데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땅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원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비관적인 전망과 비판적인 어조에 쉽게 동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사람은 미래를 알 수 없고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매일 마주하는 삶의 과제 앞에 불안, 염려,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고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대면하는 문제보다 훨씬 더 크신 분이시고 자녀 된 우리의 삶을 위해 좋은 것을 예비해 놓고 계신 분이시다. 로마서 8장 32절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씀한다. 2.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는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의견을 밝힐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야훼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야훼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야훼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민 14:7~9). 그러나 나머지 10명의 정탐꾼들은 육신의 눈으로 확인되는 그 땅 주민들의 어떠함에 주목했다.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32~33). 그들은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지 않았기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땅에 대해 악평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라며 자신들에 대해서도 악평했다.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이 무너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삶에 부정적이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라는 것을 믿었다. 그 땅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약속의 땅이기 때문에 분명히 차지할 수 있다고 그들은 믿었다. 하나님은 그 땅을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셨고, 모세에게 정탐꾼을 보내라고 말씀하실 때도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했기에 그 땅을 차지하는 데에 긍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성경 말씀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약속이 담긴 책이다.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온갖 좋은 약속을 붙잡는 적극적인 신앙 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한 사람은 절대긍정의 믿음을 소유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 사람들의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에 대한 기대로 가득하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실 것에 대한 거룩한 원함,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으로 충만한 절대긍정의 믿음으로 살아가자.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약속하신 가나안을 차지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오정섭 목사(국제신학연구원 신학연구소)
  • 2022.06.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구속사적인 삶 - 감사(2)
  • 대한민국 법 중에 최고 상위법은 헌법이다. 헌법 10조에 보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흔히 말하는 행복추구권이다. 그런데 행복권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국가도 행복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해 줄 따름이다. 다시 말해 행복은 어떤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정해진 조건이 있으면 국가가 일정 수준의 국민은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1. 행복의 근원, 감사 그렇다면 행복은 어디 있을까? 감사하는 마음에 있다. 감사하면 행복해진다. 감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사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감사가 저절로 되거나 쉽게 되지 않는다. 만약 감사가 저절로 되고 쉽게 되는 것이면 감사가 하나님의 뜻이니 범사에 감사하라고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감사는 우리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다. 감사가 쉬운가? 불평이 쉬운가?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한 달 동안 5층 집까지 매일 걸어가야 한다고 가정하자. 억지로라도 계단을 오를 일이 생겨 운동할 수 있게 되었으니 감사할까? 아니면 곧바로 불평할까? 감사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원망 불평이 자연스러운 우리 본성이라는 중력, 그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감사가 등산처럼 힘든 이유다. 그러나 등산도 하면 할수록 쉬워진다. 감사가 그렇다. 산 정상을 향해 오르다 보면 달라지는 것이 있다. 시야다.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감사하면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못 보던 것을 보게 된다. 감사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불평하는 일들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그 일들 외에는 제대로 못 본다. 불평하는 일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마음이 계속 불편하다. 물론 해결이 돼도 불평할 거리는 또 있다. ‘왜 이제야 해결이 되는 거지?’ 감사하는 사람은 시야가 다르다. 보이는 것이 다르다. 눈에 거슬리는 것보다 세상 아름다운 것이 훨씬 더 많다. 보이는 게 다르니 말이 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왜 그렇게 사소한 일에 집착했지?’ 하는 생각이 드니까 감사하는 사람의 말에는 여유가 있다. 타인에 대한 포용의 한도가 그만큼 크다. 원망 불평으로 마음의 용량이 늘 마이너스가 되어 가면 타인에 대한 용납의 한도가 계속 줄어든다. 감사를 결단하고 훈련하자. 감사한 다음에 기쁨이 따라오고 불평한 다음에 짜증이 따라온다. 감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우리 삶을 이끌어 가지만 불평은 사탄이 원하는 방향으로 우리 삶을 이끌어 간다. 감사의 종점은 천국이고 원망 불평의 종점은 지옥이다. 2. 그리스도인의 감사, 넘치는 감사 우리의 감사가 어떠한 감사가 되어야 하는지 바울 사도의 권면을 들어 보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6~7).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했다면 우리 삶은 예수님 안에 있다. 예수님께 우리 인생의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것이다. 여기저기 왔다 갔다, 이리저리 오락가락하지 않고 예수님 안에 콕 박혀서 사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예수님 안에서 성장하는 여정이다. 말씀대로 살면서 굳센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는 것이다. 정리하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셨으니 예수님 안에 뿌리내리고 말씀 따라 사는 믿음이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바울 사도는 믿음이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감사가 넘치게 하라고 권면한다. 누가 믿음이 강한 사람일까? 감사하는 사람이다. 내 믿음의 강도는 감사가 말해 준다. 내 믿음이 명품인지 불량품인지는 감사가 보여 준다. 감사는 명품 믿음의 보증서다. 감사가 없다면 불량품 믿음이다. 감사는 넘치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넘치는 감사다. 자기 분량 이상의 감사를 하는 것이다. 내 기준 이상의 감사, 내 판단 이상의 감사, 내 감정 이상의 감사, 내 선택 이상의 감사다. 그러려면 ‘범사에 감사, 무조건 감사’가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범사에 감사, 무조건 감사’가 가능한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예수님을 주로 영접했기 때문이다. 주는 ‘주인’을 말한다.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시니까 감사하라는 것이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했으니”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영접했으니”라고 했다. 그리스도는 직분, 예수는 이름이다. ‘그리스도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는 강조하는 바가 다르다. 그리스도가 먼저 나오면 예수님이 그리스도, 곧 구원자로서 하신 일에 강조점이 있다. 구원자 예수님이 하신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떠난 내 죄 때문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다. 나의 주님이 되셔서 천국 가는 그날까지 내 삶을 인도하시며 보호하시고, 도우시며 책임져 주신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성경이 다시 쓰이기 전까지는 변하지 않는다. 내 삶의 형편과 조건은 오락가락해도 나를 향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 주님이 나의 삶의 주인이 되셔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도록 역사해 주실 것임은 변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 삶의 형편, 조건, 기분, 감정과 상관없이 감사할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범사에 감사, 무조건 감사, 일평생 감사할 수 있다. 감사하자.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어렵고 힘들고 괴로울 때 인생이 마음대로 안 될 때 감사하자. 감사하면 사탄이 틈타지 못한다. 영적 시야가 넓어지고 안 보이던 것이 보인다. 관계가 회복되고 인생이 달라지고 행복해진다. 아니 이미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Thanksgiving’뿐만 아니라, ‘Thanks-living’하자! 오정섭 목사(국제신학연구원 신학연구소)
  • 2022.05.0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다시보는 영산 신학과 목회
    영산의 세계선교
  • 선교는 주님의 지상 명령이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복음 전도와 선교에 대한 꿈과 비전으로 충만하게 된다(행 1:8). 성령님은 영산에게 대조동 천막교회 시절부터 세계선교의 꿈을 부어주셨다. 그때부터 영산은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은빛 날개를 타고 전 세계를 다니며 선교하는 꿈’을 품었다. 그 꿈처럼 영산은 당시 해외 여권을 얻기도 쉽지 않았을 때 이미 여러 나라를 다니며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다. “전 세계는 주님의 교구입니다.” 웨슬리의 유명한 말을 떠올리게 하는 영산의 고백은 절대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세계 최대 교회를 세우고 오대양 육대주를 다니며 선교 사역을 감당했다. 그가 머물렀던 수많은 선교 현장은 성령님이 역사하는 기적의 장소였다. 영산이 세계선교를 위한 뜨거운 열정을 갖게 된 배경은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7년 5월 세계오순절총회를 마친 영산은 100일 동안 18개국, 39개 도시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던 그는 결국 스위스에서 쓰러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 침대 밑에 놓인 엽서 한 장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주님의 종으로 부름 받았으니 이 시대에 한 획을 긋는 종이 되리라”라는 글귀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적고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다. 다시는 못 일어날 만큼 쇠약해졌던 영산의 몸은 이튿날이 되자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고 기적처럼 회복되었다. 그때의 체험은 영산의 사역 가운데 세계선교를 항상 강조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영산은 유럽 선교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세계 교회성장을 위해 봉사하는 국제기관을 조직하라”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1976년 11월 4일 국제교회성장연구원(이하 CGI: Church Growth International)을 설립했다. 영산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부흥성장에 관한 노하우를 전 세계 교회와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담임하고 있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에만 집중하지 않고 전 세계 교회가 함께 부흥하는 일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다. CGI는 설립 이래 2022년 현재까지 한국을 비롯한 100여 개국 이상에서 총 600회 이상 CGI 콘퍼런스를 개최했고, 여기에 전 세계에서 연인원 120만명이 참석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세계선교와 교회 성장에 이바지한 CGI는 2022년 10월 이영훈 목사를 제2대 총재로 만장일치 추대하면서 ‘다음 세대의 부흥’을 외치며 제2기 사역에 돌입하게 되었다. 영산은 세계선교의 사역을 더욱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2000년 3월 28일 DCEM(David Cho Evangelistic Mission)을 설립했다. 이 기구를 통해 전 세계 선교지와 선교단체 간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선교 자원의 교류에 힘썼다. DCEM은 교파를 초월해 영적으로 갈급한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 그리고 복음의 사명을 심어주는 기관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감당했다. 영산은 그 목회 사역 동안에 약 600회 이상의 해외 부흥회를 인도했는데 이런 왕성한 사역은 성령님이 주시는 비전과 열정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럼 세계 기독교 역사에서 영산의 선교 사역의 의미는 무엇일까? 20세기 기독교의 가장 큰 특징은 기독교의 무게 중심이 서구권에서 비서구권으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1980년대에 들어와서 비서구권의 기독교 인구가 서구권의 기독교 인구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기독교 신학이나 선교가 서구권 교회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서구권 교회는 갈수록 쇠퇴를 거듭했고, 반대로 비서구권의 교회는 급속히 성장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역사적 맥락 속에서 영산의 세계선교 사역은 기독교 선교의 주체를 서구권 교회에서 비서구권 교회로 전환하는 데 아주 지대한 역할을 했다. 영산은 선교가 ‘순복음’의 최우선 과제임을 보여주었다. 선교하는 교회가 진정한 ‘순복음교회’(Full Gospel Church)이고 선교하는 성도가 진짜 ‘순복음성도’(Full Gospel Christian)이다. 교회가 선교를 멈추는 순간 침체와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영산 안에 넘쳤던 복음의 확신과 순복음의 영성은 많은 사람의 가슴에 희망을 불러일으켰고 나도 하나님 사명에 쓰임 받고자 하는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의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David Yonggi Cho’라는 이름은 안다”라는 말이 수많은 증인에 의해 회자된 것만 보아도 그가 가진 세계선교의 열정과 영향력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만약 누군가 “순복음 신앙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에 나아가 선교하는 삶이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계선교에 평생을 바친 영산의 삶이었고, 그의 선교 정신을 이어받은 모든 순복음 성도들의 꿈이 되어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선배의 본을 따라 인내로써 믿음의 경주를 하라고 권면하고 있다(히 12:1). 오늘날 교회가 영산으로부터 반드시 전해 받아야 하는 믿음의 영적 바통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선교의 바통’이다. 이제 영산의 뒤를 이어 우리도 성령 충만함 가운데 ‘선교 바통’을 이어받아 주님 오시는 날까지 세계선교의 꿈을 이뤄가야 할 것이다. 국제신학연구원 제공
  • 2022.11.2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영산의 신유 사역 
  • 영산에게 신유 사역은 그의 핵심적인 목회 철학 중 하나였다. 영산은 신유의 기적이 과거 예수님 시대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사역임을 확고히 믿었다.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을 받았으면 믿음으로 값없이 병 고침 받는 것도 마땅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영산이 믿었던 신유의 은사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은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포함되어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영산에게 신유 사역은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표징이자 ‘아직’, 그러나 반드시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었다. 영산은 치유의 현장에서 예수님의 임재를 보았고 하나님 나라에서의 믿는 자의 부활을 보았다. 그래서 영산은 목회 현장이나 부흥회 사역에서도 병 고침을 강조했는데, 그가 인도하는 집회에서 질병의 치료를 경험한 사람들의 간증거리는 수없이 많다. 영산이 이같이 신유를 강조하게 된 것은 어떤 특정한 치유 신학을 공부한 결과가 아니었다. 그를 ‘신유의 종’으로 만든 것은 그가 처한 삶의 현장 속에서 실제 경험했던 치유의 하나님 때문이었다. 폐결핵 3기로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을 때 주님을 만나서 완치되었던 경험이 그것이다. 또 대조동 천막교회 시절 중풍에 걸린 여인이 낫고 걷지 못했던 소년이 일어나 뛰며 듣지 못했던 사람이 듣게 되는 기적이 나타났다. 이런 경험을 통해 영산은 하나님이 오늘날에도 병든 자를 치료하신다는 사실을 체득할 수 있었다. 자신의 삶과 목회 현실에서 신유의 역사를 분명하게 체험했기에 영산은 가는 곳마다, 서는 곳마다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 영산의 신유 사역은 교회 부흥에도 크게 기여했다. 실제로 영산의 개척교회가 빈민촌 지역사회에 깊이 뿌리 내리게 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치유의 기적이었다. 그래서 영산은 신유를 하나님 나라의 가시적인 표적으로 보고 목회 사역에 열심히 적용하고 실행했다.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으로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낫게 되는 신유 사역”(막 16:18)이 복음 전파에 동반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이후에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에 대해서 회고할 때도 신유 사역의 중요성을 언급한 적이 있다. 복음에 저항적이던 사람들이 육체의 질병을 치료받고 은혜를 받아 복음의 말씀을 세상에 나아가 강력하게 전하기 때문에 교회가 크게 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교회 공동체를 신유 공동체로 보았다. 영산의 신유 사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믿음이다. 영산은 그 어느 목회자보다도 병 고침에 대한 메시지를 많이 선포했고 신유의 기적도 많이 행했지만 정작 자신이 ‘신유의 은사’를 받았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성령이 필요에 따라 자신을 통해 은사를 나타내실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산 자신이 분명히 받았다고 주장하는 은사가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믿음의 은사’였다. “내가 받은 은사를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담대한 믿음입니다. 담대함을 가지고 믿음으로 선포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성경은 표적이 여러분의 믿음보다 앞선다고 하지 않습니다. 표적이 여러분의 믿음 뒤에 따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믿음의 역사는 천막교회 시절에 나타났다. 걷지 못하던 소년이 영산을 찾아왔을 때 처음에는 그가 낫는다는 것을 믿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영산이 한 시간이 넘도록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자 뭉게구름 같은 믿음이 그의 마음으로부터 차오르기 시작했다. 영산은 그때의 기분이 마치 지구를 자기 손으로 밀면 지구가 밀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간증한 바 있다. 하나님이 주신 이러한 믿음으로 기도하고 선포할 때 영산은 그 소년을 포함한 수많은 이들의 병을 고칠 수 있었다. 영산은 오늘날 병 낫기를 간구하는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믿음의 기도를 잘 드리지 못하거나 주님의 말씀에 담긴 뜻을 잘 알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한다고 말했다. 영산에 따르면 신유의 역사는 단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회복시키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실 때까지 성령님이 살아 역사하셔서 은사를 베푸시고 병든 자들을 일으키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산은 신유가 지금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임을 분명히 믿었다. 따라서 성도는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써 신유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기에 자신의 아픈 부분에 손을 얹고 믿음으로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영산을 통한 성령의 신유 사역은 여의도순복음교회뿐 아니라 국내외 수많은 교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신유의 복음을 포함한 예수 그리스도의 전인적인 순복음을 이해하는데 큰 유익을 주었다. 앞으로도 영산의 신유 사역의 원리를 계속 연구하고 실행함으로 새로운 신유행전의 역사가 계속 나타나길 희망한다. 국제신학연구원 제공
  • 2022.10.2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문서·방송 선교의 선구자…1988년 기독교 일간지 국민일보 창간
  • 영산은 미디어의 활용이 미미하던 시절, 문서 선교와 방송 선교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닫고 사역에 적용한 선구자였다. 영산은 자신이 가진 뜨거운 선교적 영성을 담아내어 빠르게 전파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 놀라운 교회 성장을 이루었다. 순복음의 신앙이 한국과 세계에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의 그 어떤 교회보다 멀티미디어를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문서 전도』의 저자 조지 버워는 “기독교 문서는 인쇄된 선교사”라고 말한 바 있다. 문서 선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보게 하는 말이다. 영산은 누구보다도 문서 선교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사역에 적용하였다. 1964년 당시 순복음교회 성도들에게 교회와 관련된 각종 소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순복음지』를 발간했다. 이것이 점점 발전하여 1978년에 이르러서는 영산의 설교와 칼럼, 성도들의 신앙 간증과 구역 성경 공부 및 교회 소식을 담은 『순복음뉴우스』가 되었다. 이후 『순복음가족신문』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오늘날까지 문서 선교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다. 영산은 또한 순복음교회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한국교회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월간 잡지 『신앙계』를 창간함으로 문서 선교의 폭을 확장했다. 『신앙계』는 기독교의 대중지,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위한 교양지, 불신자들을 위한 전도지, 교회를 하나로 묶는 기독교 잡지로서 자리매김했다. 해방 이후 대중적인 기독교 잡지로는 『신앙계』를 능가하는 잡지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신앙계』가 말씀에 기초한 성령운동의 건전한 보급과 한국교회 평신도들의 신앙 성장에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서울신학대학교 명예교수인 박명수 박사는 “『신앙계』야말로 오순절 신앙을 한국교회에 널리 전파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영산의 문서 선교의 열정은 『순복음가족신문』과 『신앙계』의 성공으로 끝나지 않았다. 1987년 한 이단 종교 단체가 일간 신문을 발간하려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영산은 만약 그 단체에서 신문을 발간하게 된다면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이 자명하다고 판단했다. 이를 두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가운데 기독교 일간지 창간에 대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1988년 세계 최초의 기독교계 일간지 『국민일보』가 창간되었다. 정부와 사회에 기독교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언론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영산은 신문사를 설립하는 과정 가운데 막대한 재정적 부담과 근거 없는 비난의 목소리로 큰 고통을 받았지만, 믿음의 확신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나갔다. 복음 실은 일간지 『국민일보』는 매일 하나님의 복음을 한국 땅에 전파하는 발 없는 전도사로서 한국 기독교의 성장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기독교 정신으로 발간된 최초의 기독교 일간지로서 한국 교계의 대사회적인 발언의 장으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나아가 기독교 문화의 채널로써 한국 사회에 기독교 세계관을 전파하는 사명도 이뤄가고 있다. 영산의 『국민일보』 창간은 대한민국 1200만 기독교인을 대변하는 신문으로서 한국 기독교 역사 가운데 매스컴 선교의 새 장을 열었다는 데 큰 의의를 가진다. 영산은 문서 선교뿐 아니라 방송 선교를 통해서도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당시 영산은 복음 전도의 방법을 새로운 형태로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도 방송 선교의 파급력과 중요성을 일찍 깨달았던 영산은 1966년 라디오 설교와 1979년 컬러TV 방송을 송출했다. 영산의 라디오 설교 방송은 1979년, 1980년 연속, 전국 청취자 애청 프로그램 조사 결과 청취율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청취자가 많았다. 이처럼 한국교회 방송 선교의 선구자는 단연 영산이었다. 당시 흑백 TV에 익숙했던 공중파 제작자들이 방송 장비와 시스템을 구경하기 위해 여의도순복음교회에 견학을 올 정도였다. 방송 선교는 교단의 장벽을 뛰어넘는 데 중요한 매체가 되었을 뿐 아니라 기독교의 울타리를 넘어 일반인들에게 오순절 신앙을 전하는 통로가 되었다. 영산의 방송 선교를 통해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이 설교 말씀을 듣고 구원받는 역사가 나타났다. 또 위성과 인터넷을 활용한 예배와 설교 실황은 각 지성전 및 지교회 설립과 더불어 교세 확장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영산의 방송 선교는 국내를 넘어 전 세계에 이르기까지 사상과 국경을 초월하여 복음이 전파되었다. 1982년에는 미국 TV 프로그램 제작 회사인 KCWC사의 특별 기획으로 주일 예배 실황이 미국, 캐나다,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이스라엘, 홍콩, 필리핀, 남아공 등 25개국에 동시 위성 중계되기도 했다. 이처럼 영산의 성령 충만의 복음은 21세기 정보화 시대와 함께 전 세계에 발 빠르게 퍼져나갔다. 영산은 커뮤니케이션의 대가였다. 설교뿐 아니라 설교를 전달하는 매체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아무리 훌륭한 설교라도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면 세계적인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을 것이다. 영산의 설교와 성령 충만의 영성은 멀티미디어 사역 시스템을 통하여 세계 곳곳에까지 전파될 수 있었고 이러한 사역이 세계 교회에 끼친 영향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복음의 메시지는 불변해도 그것을 전달하는 방법은 시대에 맞게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영산의 멀티미디어 사역이 우리에게 남겨준 값진 유훈이다. 국제신학연구원 제공
  • 2022.09.23 / 김용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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