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김정환 목사(용산성전 담당) - 한 사건 그리고 두 선택
  •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신 사건 중 단연 압권은 거라사 광인을 구원해 주신 사건이다. 군대라는 이름으로 뭉친 6000마리 귀신들이 2000마리 돼지 떼에 경쟁이라도 하듯 들어간다. 귀신의 힘이 얼마나 강했던지 돼지도 견디지 못해 죽기로 결심한다. 바다를 향해 달리다 비탈길에서는 가속도가 붙어 돼지들은 바다로 쏟아져 들어간다. 광인은 예수님을 택했다.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저 끔찍한 귀신들을 물리쳐주셨고 광인은 구원받아 정신이 온전해졌다. 그 은혜가 감사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게 해달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거절하셨다. 그가 할 일은 자신의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거라사 광인에게 자신의 가족과 돼지를 제물 삼아 거짓 신을 숭배하는 거라사인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거라사 같은 10개의 도시 데가볼리에 복음을 들고 가라고 명하셨다. 하지만 거라사 사람들은 예수님을 버렸다. 돼지 치는 자는 날벼락을 맞았다. 최하층민인 그는 본인 과실이 아님을 증명해야 했다. 돼지 주인들이 손해배상이라도 청구하면 어쩌겠는가. 그래서 모든 일의 배후에 예수가 있다고 증언한다. 돼지 주인들도 날벼락을 맞았다. 하루아침에 망했다. 돼지 팔아 아들딸 결혼시켜야 하고, 전세금도 올려줘야 하고, 무리하게 대출받아 암퇘지를 샀는데 새끼 한 마리 못 건지고 끝나버렸다. 도시 전체가 날벼락을 맞았다. 도시의 모든 경제가 마비되고 돼지 사체와 창궐할 전염병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돼지 치는 자도, 돼지 주인들도, 도시 전체도 한마음이 돼서 예수를 쫓아냈다. 그들에게는 구원받는 것보다 2000마리 돼지 떼의 가치가 더 귀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예수님이 없는 생명, 물질, 명예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오직 예수님의 구원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거라사의 ‘광인’ 아니 ‘예수님께 구원받은 자’만큼 확실한 선포자가 있을까. 예수님의 눈에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광인을 구원하는 것이 수천마리 돼지보다 귀했다. 오늘도 난 예수님을 선택한다.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막 5:20).
  • 2024.10.1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김성호 목사(교회개척국 담당) - 성공의 진정한 의미와 역할
  • 현대 사회에서 성공은 종종 물질적 성취로 평가된다. 사람들은 더 많은 돈과 높은 지위를 추구하며 살아가지만 과연 그것이 진정한 성공일까? 진정한 성공은 물질적 성취를 넘어선 더 깊고 의미 있는 삶에서 나온다. 영적 가치, 내적 평안 그리고 다른 이들을 향한 나눔과 봉사에서 비롯된다. 성경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마 6:31)고 가르치며 물질적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알려준다. 절대 긍정과 절대 감사는 성공을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바꿔 놓는다. 감사하는 태도를 가지면 성공을 외적 성취로만 평가하지 않게 된다. 오히려 삶의 모든 순간을 성장과 배움의 기회로 바라보게 된다. 실패와 어려움도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감사의 태도는 역경을 견디고 더욱 강해질 수 있도록 한다. 이런 태도는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을 이룬 사람들도 내적으로 공허함을 느낀다. 그들은 세속적인 성공이 주는 일시적인 행복이 영원한 기쁨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진정한 성공은 물질적 성취를 넘어 영적 성숙에서 나온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나누고 봉사하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기쁨을 줄 수 있다. 성경은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마 22:39)라는 가르침을 통해 나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런 사랑과 나눔의 실천은 영적으로 성장하는 데 필수적이다. 우리는 성공을 단순히 개인적 성취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우리의 성공은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성공을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도구로 삼아야 한다. 진정한 성공은 나눔과 봉사로 이어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이는 기부나 자선 활동은 물론, 매 순간 친절과 배려를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영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한 성공을 추구해야 한다. 물질적 성취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영적 가치와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진정한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라는 말씀처럼 더 큰 목적을 위해 성공을 사용하고 절대 긍정과 절대 감사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물질적 성취를 넘어서 영적으로 풍성한 성공을 추구하고 이를 통해 타인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야 한다.
  • 2024.10.0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박창호 목사(동대문성전 담당) - 자화상(自畵像)
  • 렘브란트 하르먼손 반 레인(1606~1669)은 바로크 시대의 거장, 빛의 마술사,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를 연 화가로 불린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천재적 재능을 가졌던 그는 20대에 당대 최고의 화가 반열에 올랐고 명문가의 미녀 사스키아와 혼인하며 부와 명성을 모두 얻지만 사치와 방탕한 삶 가운데 자신의 작품이 스캔들에 휘말리며 화가로서의 명성이 몰락하고 파산하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린 세 아들과 아내마저 차례대로 세상을 떠나버리고, 결국 그는 외롭고 비참하게 살다가 1669년 63세의 나이에 가난하고 쓸쓸하게 삶을 마쳤다. 렘브란트는 평생 100여 점의 자화상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는 22세 무렵 그린 최초의 자화상과 파산하여 모든 것을 잃고 난 56세 때 그린 두 작품이 있다. 젊은 시절의 자화상은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 때의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외면하며 살아왔던 노년의 얼굴이다. 젊은 시절 그가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 때의 자화상에는 희망과 아름다운 꿈을 꾸는 듯한 평온함을 엿볼 수 있지만 하나님을 떠나 자기 생각대로 살아왔던 노년의 자화상에는 희망 없는 공허한 눈빛과 암울하고 어두운 표정으로 가득하다. 사사기 기자는 사사기 시대의 특징을 한 마디로 이스라엘이 왕이 없었기에 각기 소견대로 행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삿 21:25). 오늘 이 시대는 마치 사사기 시대와 같다. 온 우주의 왕 되신 하나님을 떠나 자기 방식대로, 자기 소견대로 행하고 있음을 본다.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교회에 세우신 영적 질서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이러한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축복을 약속하셨다(신 28:1~2). 하나님을 떠났던 렘브란트는 다시 신앙으로 돌아온다. 그의 유작은 ‘돌아온 탕자’다. 탕자는 바로 렘브란트 자신이었던 것이다. 회개하고 돌아온 탕자를 안아주시는 아버지의 얼굴에서 빛이 쏟아져 나온다. 우리의 자화상은 어떤 모습인가? 끝나지 않을 것 같이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도 어느덧 조석으로 가을의 향취를 전해온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이 가을 우리 신앙도 무르익고 우리 믿음도 철이 드는 계절이 되길 소망해 본다. “사무엘이 이르되 야훼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
  • 2024.09.2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평신도를 위한 사도행전 이야기
    (96) 사도행전의 성령에 관한 가르침①
  • 부족하나마 사도행전 1장부터 28장까지의 내용 설명을 지난 호로 마무리하면서 이번 호부터는 사도행전의 주요 주제를 간략히 정리하고자 한다. 먼저 순복음 신앙인들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인 사도행전의 성령에 관한 가르침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1. 성령 침례 먼저 주요 용어를 정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성령께서 강력하게 임하셔서 지속적으로 능력 있고 열매 맺는 신앙인이 되게 하시는 현상을 ‘성령 충만’이라고 한다면 최초의 성령 충만을 ‘성령 침례’라고 한다. 따라서 성령 침례나 성령 충만은 같은 현상을 말하는데, 성령 침례는 처음으로 성령 충만을 경험했을 때를 가리키는 것이므로 일회적인 사건인 반면에 성령 충만은 성령 침례 이후의 지속적인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 된다. 1) 성령 침례에 대한 약속과 예언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셨다(1:5, 8). 또한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보고 놀라는 유대인들에게 성령 침례에 대한 요엘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된 것임을 강조했다(2:17, 18). 2) 어떻게 성령 침례를 받았는가? - 성령 침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할 때 : 120명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의 다락방에서 간절히 기도했을 때(1:13~14, 2:1~4). - 사도들이나 제자들이 안수할 때 : 빌립의 전도로 구원 받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했을 때(8:5~8, 14~17), 바울이 에베소의 열두 사람 쯤 되는 제자들에게 안수했을 때(19:1~7), 사울도 다메섹의 제자 아나니아의 안수를 통해 성령 침례를 받음(9:17). - 말씀을 들을 때 : 베드로가 고넬료 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성령 강림(10:44, 11:15). - 회개할 때 : 베드로는 오순절성령강림 설교(2:14~40)에서 회개가 성령 침례의 지름길임을 밝힘(2:38). 3) 성령 침례의 표적 사도행전은 성령께서 처음으로 임할 때(성령 침례시) 방언이 나온 것을 보도하고 있다(2:4, 10:46, 19:6). 2. 성령 충만 1) 사도행전은 성령 침례 후 지속적으로 성령 충만한 사람들을 명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베드로(4:8), 스데반(7:55), 바나바(11:24), 바울(13:9), 제자들(13:52). 사도행전의 전편인 누가복음도 침례 요한(눅 1:15), 엘리사벳(눅 1:41), 사가랴(눅 1:67), 시므온(눅 2:25~27) 그리고 예수님(눅 4:1, 14, 18)께서 성령 충만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2) 사도행전은 성령 침례를 받은 성도들이 합심해서 기도할 때 성령 충만이 반복됨을 증언하고 있다. 예를 들면 베드로와 요한이 감옥에서 석방되자 교회가 사도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드리자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게 되었다(4:24~31). 김호성 목사(목회담당 부목사 겸 영산신학연구원 학장)
  • 2024.10.1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95) 사도행전의 열린 결말
  • 드디어 사도 바울은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입성했다. 그러나 자유인으로서가 아니라 죄수로서 그나마 로마 시민이었기에 가이사에게 호소함으로써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을 미결수로서 로마에 들어갔다. 그런데 로마 당국은 그에게 호의를 베풀어 그를 지키는 군인 한 명과 따로 있도록 허락했다. 그러므로 상당한 자유가 그에게 부여되었다. 바울은 로마에 도착해서 사흘이 지난 후 로마에 거주하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중에서 지도층들을 초청해서 그들에게 자신의 사정을 설명해 나갔다. 자신은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 사람들에게 “죄수로 내준 바” 되어서 로마 사람들이 자신을 심문했는데 죽일 죄목이 없어서 석방하고자 했지만 유대인들이 반대해서 어쩔 수 없이 가이사에게 상소했다고 말했다(롬 28:17~19). 바울은 자신이 가이사에게 상소한 것은 절대로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강변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의 소망”이란 죽은 자의 부활을 말한다. 사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삽지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복음을 유대인들이 받아들이기 쉽게 설명한 것이다. 그러자 그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유대로부터 바울에 대한 어떤 편지를 받은 적도 없고, 누가 와서 그에 대해서 나쁜 소식을 전한 적도 없어서 특별히 어떤 관심은 없지만 그의 사상이 어떠한가를 듣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들도 그가 속한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바울이 속한 ‘파’란 예수님을 주로 섬기는 그리스도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날을 정해서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울이 유숙하는 집에 모여들었다. 바울은 그 유대인들에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권했다. 그런데 바울의 말을 들은 유대인들의 반응은 정반대로 엇갈렸다. 어떤 사람들은 믿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그러자 바울은 그들에게 준엄하게 선언했다.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행 28:25~28). 사도 바울은 이런 식으로 2년간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쳤다(행 28:30~31). 이것이 우리 성경에 있는 사도행전의 결말이다. 따라서 그것은 ‘열린 결말’이다. 즉 끝맺음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사도행전의 역사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김호성 목사(목회담당 부목사 겸 영산신학연구원 학장)
  • 2024.09.0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94) 사도 바울이 로마에 가다
  • 천신만고 끝에 사도 바울은 꿈에도 그리던 당시 세계 최강대국 로마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도착했다(행 28:14~16). 그러나 최정예 선교팀의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의 모습으로서가 아니라 곧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을 초라한 죄수의 신분으로 압송되어 갔다. 그는 복음을 전하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많은 고난을 당했는데 바울서신 곳곳에 이 같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b~27). 이 구절이야말로 바울의 3차에 걸친 선교여행 과정에서의 박해와 투옥, 예루살렘에서의 체포, 구금, 가이사랴 감옥으로 이송, 로마로 압송되며 겪은 유라굴로 폭풍과 파선을 생생하게 압축해서 묘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이렇게 인도하신 과정이 그가 전한 복음의 성격과 너무나도 빼닮았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하고 있고, 계속해서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라고 선포하고 있다(고후 4:7~9). 또한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라는 말씀과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9~10)라는 말씀으로 기독교 복음이 가진 역설과 그리스도인의 양면성을 잘 설명하고 있다. 바울이 전한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크고 광대하신 분이시지만 믿는 우리들은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과 같은 연약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복음을 전할 때마다 그는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던” 것이다(고전 2:3, 빌 2:12). 여기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라는 믿음의 선포가 나오게 된다. 능력의 주님이 함께하시는데 견디지 못할 고난이 없고, 넘지 못할 장벽이 없으며, 극복하지 못할 환난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어떤 모습으로 제국의 수도에 입성했느냐 하는 것은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흑암의 세력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음 전파를 방해하고 그 입을 틀어막으려 했지만 주님께서 하신 말씀, 즉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라는 약속이 성취되는 순간, 천국의 개선행진곡이 울리는 영광과 승리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김호성 목사(목회담당 부목사 겸 영산신학연구원 학장)
  • 2024.08.0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쉽게 풀어 쓴 교회사 산책
    (70) 종교개혁⑩
  • 종교개혁을 위한 루터의 각성 (1) 1512년 루터가 비텐베르크대학에서 성서학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요한 슈타우피츠의 결정적인 역할 덕분이었다. 슈타우피츠는 수도원 업무로 인해 더 이상 성서학 교수직을 맡을 수 없게 되자 루터에게 그 자리를 대신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이 시점부터 루터는 성서 주해에 집중하게 되었고, 이는 그에게 종교개혁을 위한 신학적 토대를 제공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슈타우피츠는 루터가 시련을 겪을 때마다 그를 위로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조언해 준 스승이자 친구였다. 루터는 자신이 구원의 확신을 얻으려 몸부림칠 때 슈타우피츠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며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참된 회개는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시작한다는 그의 말은 번개처럼 나를 강타했고, 장사의 화살처럼 내 영혼에 박혔다.” 또 한 번은 루터가 자신이 구원을 위해 예정된 자인지 아닌지에 대한 깊은 고뇌에 빠졌을 때 슈타우피츠는 이렇게 조언했다. “예정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면 그리스도의 상처에서 시작해 보게. 하나님에 의해 예정되고 죄인을 위해 고난을 당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가슴에 새겨야 하네. 그러면 예정으로 인한 고뇌는 사라질 것이네.” 1512년 10월 루터는 비텐베르크 아우구스티누스 엄수파 수도원의 강의실에서 첫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창세기를 가르친 후 1513년 8월부터 1515년 7월까지 시편을 강의했다. 이때 루터는 시편을 더욱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예를 들어 그는 시편 31편 1절에서 말하는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라는 구절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해 괴로워했다. 즉,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의가 어떻게 그를 구원하며 자유케 하는지 의문이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루터는 시편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을 위한 역사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시편 구절들이 갖는 이중적 의미를 구분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즉, 하나는 다윗에게 연관되는 문자적 의미이며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에게 연관되는 예언적 의미였다. 이 둘 가운데 루터는 예언적인 의미를 시편이 가진 본래적 의미로 여겼다. 다만 문자적인 의미와 예언적인 의미를 도덕적인 의미 안에서 이해할 때 그 본문 안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루터의 이러한 신학적 발전은 1515년 11월부터 1516년 9월까지 행한 로마서 강의에서 한층 발전했다. 그는 믿음이야말로 우리 안에 처음부터 내재한 원죄를 극복하고 우리 밖에 계신 그리스도(extra nos in christo), 그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를 붙들게 하는 것이었다. 오직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소망을 통해서만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의로움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찬양은 그리스도에게 돌려야 하며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의 믿음을 통해 교회 안에 임재하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루터는 로마서 1장 17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의를 인간적인 의로움과 구별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인간의 의로움은 인간의 행위를 통해 일어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는 그것으로부터 인간의 행위를 일으킨다.” 그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의는 인간이 쌓은 공적을 마지막 날에 심판하시는 그런 의로움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시는 의로움이며 오직 믿음 안에서만 인간에게 주어지는 의로움이었다. 김형건 목사(국제신학연구원 제1부원장)
  • 2024.09.2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69) 종교개혁⑨
  • 마르틴 루터의 로마 여행
    루터가 비텐베르크로 전출 가기 1년 전인 1510년 가을 그는 에얼랑엔, 뉘른베르크, 울름 그리고 알프스를 넘어 스위스의 쿠르를 지나 로마까지 이르는 길고도 험난한 여행을 해야 했다. 긴 여정과 한겨울의 날씨에 체력을 소진한 루터는 급기야 열병을 앓게 되었는데 훗날 그는 ‘그때 석류 덕분에 살아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여행의 목적은 로마에 있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수장들 그리고 가능하면 교황을 만나 청원서를 전하는 일이었다. 독일 에어푸르트 여러 지역에 있는 수도원들이 수도회 규정들을 둘러싸고 자율적으로 규정을 바꾸려 하면서 논쟁이 발생하자 수도회는 루터를 보내어 로마에 있는 교구 지도부에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청원하려 했던 것이다. 루터는 그때까지만 해도 로마가톨릭에 순종하는 충성심 가득한 종이었다. 그는 로마에 도착하자 독일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이탈리아의 수도원들을 보고 감격해하면서 바닥에 엎드려 이렇게 외쳤다. “반갑다, 성스러운 로마여! 성스러운 순교자들의 피가 뿌려진 거룩한 도시여!” 루터는 로마에서 약 4주간 머물렀지만 그가 가져온 청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알게 된 로마의 실상은 루터에게 여러 가지 실망을 안겨 주었다. 그는 셀 수 없는 미사를 되풀이 하며 그것들을 날림으로 대충 해치우는 사제들을 보고 ‘역겹다’고 생각했다. 또한 성찬대에서 거만하게 구는 경박한 신부들에 관해 한탄하며, ‘독일 사제들은 이탈리아 성직자들에 관해 크게 착각하고 있다’고 기록했다. 루터는 교황이 성찬대에서 ‘황금 같은 입술’을 열어 미사 참석자들의 영혼을 치유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이리저리 움직이는 일’ 외에 교황은 루터에게 아무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라테란 성당 앞에 있는 ‘성스러운 계단’(scala sancta)은 당시 ‘빌라도의 계단’이라고 불리웠다. 당시 사람들은 맨 무릎으로 누구든지 그 28개의 계단을 오르면 죄 사함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1545년 11월 15일 설교에서 마르틴 루터는 로마 여행 중 방문한 그 계단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바 있다. “로마에 있을 때, 나는 내 할아버지를 연옥에서 구원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빌라도의 계단을 올라가며 각 단계마다 주기도문을 외웠습니다. 그렇게 하면 할아버지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정상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것이 정말인지 누가 알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심이 깊었던 루터는 순례를 중단하지 않았다. 물론, 그때까지는 개혁과 같은 거창한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후 여행에서 돌아온 루터는 수도회 내에서 지위가 높아졌고, 비텐베르크에 있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설교자로 일하게 되었다. 1512년 비텐베르크대학에서 정식 신학 교수가 되면서 성경 강의에 집중할 수 있었는데, 종합해보면 로마 여행은 루터가 29세 되던 1513년 그의 내적인 갈등이 심해지면서 진정한 회심에 이르는 데 상당한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김형건 목사(국제신학연구원 제1부원장)
  • 2024.08.23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68) 종교개혁⑧
  • 마르틴 루터의 수도원 생활
    루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기 맘대로 수도사가 되기로 결정한 아들에게 매우 실망했다. 문학 석사가 된 자랑스런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수도원의 두꺼운 벽 안에 갇혀 인생을 허비하겠다니 얼마나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겠는가? 루터의 부모는 훗날 나머지 두 아들을 흑사병으로 잃고 나서야 루터를 향한 노기를 누그러뜨렸다. 루터는 웃음도 허락되지 않는 엄격한 규율 속에서 고요한 삶을 살게 되었다. 당시 인문학을 중시하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은 경제적으로도 제법 넉넉했지만 수도사들의 방에는 난로는커녕, 짚을 엮어 만든 침대와 담요가 전부였다. 수도사들은 끊임없이 죄에 관한 교리를 들어야 했으며, 더 나아가 매일 자신의 죄를 기억하고 고해해야 했다. 그들은 “숨 쉴 때마다 죄를 지을 수는 없지 않은가!”라며 불평하면서도 하루에 몇 시간씩 고해성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루터 역시 자신이 6시간 동안 죄를 고백한 적이 있다고 친구들에게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죄는 씻으면 씻을수록 점점 더 드러나게 된다”며 고해와 속죄 의식을 비난했다. 수도원에서 루터의 특이한 행동들은 일종의 정신질환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기록에 따르면 루터는 자신이 집례하는 첫 미사 때 바닥에 쓰러져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루터는 이 일에 관해 “미사 기도문을 낭송하면서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벌벌 떨었다”고 회고했다. 성찬대에 서서 자신이 누구에게 기도하는지 하나님에게 감히 말하고 있는 자신은 누구인지 혼란에 빠지면서 제단에서 도망치고 싶었다고 했다. 어쨌든 루터는 이 일을 계기로 ‘제2의 바울’이라는 좋은 평판까지 얻었다. 이후 루터는 차부제, 부제를 거쳐 1507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로마 가톨릭의 성직 계급은 크게 주교, 사제, 부제로 나뉘는데 부제 밑 가장 낮은 성직이 차부제이다. 이때부터 루터는 성경을 연구하는 데 모든 정성을 쏟았다. 그는 붉은색 가죽으로 덮어씌운 라틴어 성경을 들고 다니며 집착하듯 성경을 읽었는데 나중에는 성경 전문을 거의 외울 수 있을 정도였다. 1508년 가을에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으로부터 강의 의뢰를 받고 윤리 철학을 가르치게 되었다. 왕복 수일이 걸리는 거리였지만 그는 강도들이 출몰하는 위험한 산길을 지나 농가를 지나다니며 성실하게 강의를 다녔다. 수도회 내에서 지위가 높아지면서 루터는 1511년에 비텐베르크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로 전출을 가게 되었다. 이같은 신분 상승으로 루터는 그때까지 경험하지 못한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29세가 되던 그해 루터는 난생처음으로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도원 별채의 독방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루터는 훗날 “초라한 쪽방에서 나와 교황의 권세를 누리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박사학위를 받은 1512년에는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정식 교수직도 얻게 되었다. 당시 비텐베르크의 영주는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였다. 그는 비텐베르크를 명망 있는 도시로 키우고자 했고 이를 위해 1502년 ‘하얀 언덕’(=비텐베르크) 위에 대학을 세웠다. 프리드리히 3세는 근처에 있던 라이프치히 대학을 뛰어넘겠다는 각오로 많은 투자를 했다.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와 프란체스코 수도회에 요청해 어렵사리 뛰어난 3명의 학자를 새로 영입했는데 그중에 한 명이 바로 마르틴 루터였다. 루터는 새로운 환경에서 성경을 더욱 깊이 연구했고, 특히 시편과 바울 서신서를 연구하면서 그의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김형건 목사(국제신학연구원 제1부원장)
  • 2024.07.2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뿌리깊은 순복음
    (152) 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65>
  • 교만의 죄는 우상숭배의 죄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 피할 수 없어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교만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성경이 언급하는 교만은 창조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고 스스로 잘난체하며 방자하게 뽐내는 것을 말한다. 교만의 시작은 하나님과 동등해지려 했던 타락한 천사 즉, 사탄으로부터이다(사 14:12~15). 이런 사탄에게 속아 인간 스스로 그 마음에 독버섯처럼 품게 된 치명적인 악이요 실제로 저지르게 된 대표적인 죄가 교만이다. 창세기를 보면 사탄은 사람이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고 유혹했다(창 3:5). 인간이 스스로 높아져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 즉, 사탄을 닮은 마음이 바로 교만의 본질이다. 결국 인간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었고 그 마음에 치명적인 악(惡)인 교만이 자리 잡게 됐다. 교만의 죄는 우상숭배의 죄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사 2:11, 17). 이처럼 교만은 스스로 자신을 높이는 죄이므로 교만한 사람은 자기의 범죄나 실수, 오류와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님과 동등해져 하나님 앞에서도 자기의 범죄를 인정할 수 없다면 이 사람이 치료될 가능성은 없다. 미국의 기독교 윤리 신학자인 라인홀드 니이버(K.P.R. Niebuhr, 1892~1971)는 인간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교만의 형태를 네 가지로 나눴다. 첫째, 권력적 교만(Authority pride)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낮은 위치에서는 겸손하다가 지위가 높아질수록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둘째, 지적 교만(Intelligent pride)이다. 잘 모를 때는 겸손히 침묵하다가 많이 알게 되면 잘 모르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자기만 똑똑한 줄로 생각하는 것이다. 셋째, 도덕적 교만(Moral pride)이다. 스스로 도덕적으로 부족하다고 여길 때는 조용히 지내지만 조금이라도 도덕적인 우월감이 채워지면 다른 사람들의 행위를 판단하고 정죄하며 자신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넷째, 영적 교만(Spiritual pride)이다. 기도, 성경읽기, 헌신, 봉사와 같은 신앙적 행위를 스스로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신이 조금이라도 나은 점이 있으면 그걸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나고 더불어 자기보다 왠지 뒤처져 보이는 사람들을 깔보며 형편없이 무시하는 태도이다. 이러한 모든 형태의 교만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깊이 묵상하며 이를 닮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다. 이를 위해 예수님의 겸손과 온유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하늘의 영광조차 모두 버리고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만을 바라봐야 한다. 더불어 성령의 충만함으로 그 십자가를 가슴 깊게 새겨 십자가의 은혜를 깨달을 때 교만을 다스릴 수 있다. 오직 십자가의 은혜와 복음의 능력만이 교만을 다스린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깊이 낮추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기를 힘쓰는 모습이 겸손한 성도의 참모습이다. 오직 십자가의 능력 외에는 교만을 다스려 나갈 어떤 힘도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겸손한 자만이 구원을 얻고 자신을 낮추는 자를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5~6).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4.09.13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51) 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64>
  •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 고백하고 주님만 의지해 겸손히 따르는 삶 살아야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교만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교만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씀은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눅 18:9~14)의 비유이다. 예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대상은 바로 ‘바리새인들’이다. 그들은 자기 스스로 의롭게 여기고 다른 사람들을 멸시했다(눅 18:9). 이것이 교만의 주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첫째로, 교만은 극단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죄악이다. 인생들은 쉽게 착각 속에 빠져 스스로 대단한 존재처럼 여길 때가 있다. 이렇게 교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은 자기를 절대화시키고 자기주장을 절대화한다. 둘째로, 교만이란 ‘이웃’과 ‘나’ 사이에 담을 쌓는 죄악이다. 바리새인들은 따로 서서 기도했다고 했다(눅 18:11). 또한 바리새인의 기도에는 두 번씩 반복되는 단어가 있다. 바로 ‘같지 아니하다’는 말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라고 기도했다. 사실 바리새인들은 세리를 로마에 아부하며 동포들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죄인들, 상대할 가치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예수님은 세리를 멸시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우월감, 즉 뿌리 깊게 점철된 교만을 꿰뚫어 보고 계셨다. 셋째로, 교만은 하나님 앞에서도 자신을 속이라는 죄악이다. 바리새인의 이런 기도에서 강조된 단어가 하나 있다(눅 18:11). 그것은 바로 ‘나’라는 단어이다. 한글 성경에는 두 번 밖에 나오지 않는 것으로 번역돼 있지만 원문에는 구절마다 다음과 같이 ‘나’라는 단어가 여러 번 등장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나는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나는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행위와 의로움을 자랑하는 아주 교만한 고백으로 보인다. 기도의 주어는 ‘나’라는 사람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이어야 하는데, 놀랍게도 바리새인의 기도는 주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바로 ‘나’라는 자기 자신이다. 교만을 버리고 겸손한 삶을 살기 원하는 성령 충만한 하나님의 사람은 바리새인의 자리가 아니라 세리의 자리에 서야 한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가슴을 치며 하나님을 향하여 불쌍히 여겨 달라”(눅 18:13)고 간절히 고백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있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들이며, 이웃의 도움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의 비유에 이어진 말씀은 예수께서 어린 아기들에 대해 하신 말씀이다. 겸손한 사람은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다. 어린아이들은 단순하고 솔직하며 누구든 잘 믿고 의지하고 따른다. 성령 충만한 성도는 주님 앞에서 바리새인과 같지 않고, 세리와 어린아이처럼 단순하며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솔직히 고백하고 주님만을 의지하고 따라가는 겸손한 사람이다.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눅 18:16~17).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4.08.1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50) 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63>
  • 가장 위대한 겸손의 본보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교만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사랑은 교만하지 않다. 사랑이 있는 곳에서는 교만은 눈 녹듯이 사라지게 된다. 사도 바울은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롬 12:9)고 기록한다. 진정한 사랑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을 속이고 자신조차 속여 거짓으로 포장된 교만의 허세가 있을 수 없다. 사랑하면 겸손해지고 스스로 낮아져 더욱 진실케 된다. 사랑에는 교만이 머물 자리가 없다. 성령 충만한 하나님이 사람에게 겸손이란 단지 ‘덕’(德)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겸손이 있는 곳에 천국이 있고 거기에 진정한 자유가 있다. 교만은 스스로 감옥에 갇히는 길이며, 멸망으로 치달아 결국 패망의 지옥으로 빠뜨리는 선봉이며(잠 18:12), 하나님도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심판의 원인이요 이유가 된다. 유대인의 탈무드에는 “하나님은 자기 스스로 높은 자리에 앉은 자를 낮은 곳으로 떨어뜨리며, 스스로 겸손한 자를 높이 올린다”라고 교훈한다. 한 닭장에서 두 마리의 수탉들이 서로 피가 터지게 싸움이 일어났다. 그들은 여러 마리의 암탉을 누가 차지하느냐를 놓고 혈투에 혈투를 이어갔다. 말리는 사람도 없는 터라 그 수탉들은 날개를 퍼덕이며 날카로운 부리로 상대방을 쪼아서 서로 피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마침내 깃털이 흰색인 수탉이 상처투성이가 돼 툇마루 밑으로 슬금슬금 도망쳤다. 상대적으로 싸움에서 이긴 깃털이 검정인 수탉은 우쭐해졌다. 결국 자신의 승리를 자랑하기 위해 당당하게 벼슬을 치켜세우고 요란스럽게 날개를 퍼덕이며 울타리 위로 올라가서 목청을 높여 과시하듯 크게 울어댔다. 바로 그때였다. 높은 나무에 앉아있던 한 마리의 매가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날아올랐다. ‘앗’하는 순간 검정 수탉은 피할 틈도 없이 매에게 잡히고 말았다. 매는 검정 수탉을 발톱으로 단단히 움켜쥐고 쏜살같이 날아올랐다. 결국 툇마루 밑에서 나온 흰 수탉이 닭장 안의 암탉들을 모두 차지하게 됐다. 이처럼 교만은 가장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단지 좋은 덕을 쌓아 인격을 수양하기 위해 겸손한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교만을 버리고 겸손해야 한다. 가장 위대한 겸손의 본보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겸손히 십자가를 지심으로 가장 위대한 승리를 이루셨다. 흉악한 죄인들의 형틀인 십자가, 그 가장 낮고 천한 형벌을 스스로 감당하셨다. 겸손의 십자가로 예수님은 하나님을 대적했던 온 인류의 교만을 깨뜨리고 죄와 사망의 길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이루셨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마다 고백해야 하는 진실한 첫사랑의 고백은 “예수님, 저는 죄인입니다. 제가 지닌 것은 다 죄뿐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오니 저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옵소서, 이제 저의 평생 자랑은 주님의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라는 고백이다. 이렇게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는 결코 교만할 수 없다.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잠 29:23).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4.07.1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기독교 설교자 열전
    키프리아누스(Ⅱ)
  •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약 65편의 편지와 12개의 논문 남겨 교회 단일성과 교회 감독의 중요성 강조 ‘권위 있는 성경 해석’ 추구해 키프리아누스의 작품은 약 65편의 편지와 12개 정도의 논문이 남겨져있다. ‘도나투스트에게’에서는 침례를 통해 일어나는 도덕적 변화와 이를 통한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순종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데메트리우스에게’에서는 이교도들이 가지는 해악성을 고발하고 있다. 그의 작품 중에서 배교자들에게 필요한 회개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배교자들』과 참된 교회의 하나 됨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교회의 단일성』은 그가 가진 신학적 소양과 탁월함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키프리아누스를 많은 교부들로부터 두드러지게 한 것은 그가 가진 교회론과 그 교회론에 근거한 교회 감독의 위치에 대한 그의 의견 때문일 것이다. 그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말로 유명하다. 이 말은 노바티안파 - 로마교회의 장로였던 노바티안과 카르타고교회의 장로였던 노바투스를 따르던 분파 - 와의 논쟁 가운에서 탄생한 것이다. 그는 『교회의 단일성』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교회를 어머니로 모시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실 수 없다. 노아의 방주 밖에 있었던 자마다 구원받을 수 없었던 것처럼, 교회 밖에 머물러 있게 될 자 또한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그는 교회의 통일성에 대한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 예수님의 옷이 로마 군병들에 의해 훼손되거나 나누어지지 않고 온전히 보전되었다는 사실을 들기도 했다. 키프리아누스는 교회의 통일성과 단일성을 교회 감독의 직무와도 밀접하게 관련시켰다. 그는 감독이 교회 안에 있고 교회가 감독 안에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기에 만일 감독과 함께 있지 않는 자들은 교회 안에 있지 않는 것이다. “감독 없이 교회도 없다.”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키프리아누스의 교회론은 이후 로마가톨릭교회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감독직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이유이다. 당시 로마 정부의 박해로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순교하면서 교회 체계가 흔들리게 됐고 이런 상황을 틈타 평신도 중심의 신앙을 추구하려는 이단들이 발흥하게 됐다. 키프리아누스는 그런 상황을 염려하며 감독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설교자로서 키프리아누스는 성경에서 발견하는 진리를 전달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러나 진리를 전달함에 있어서는 웅장하고 장엄한 웅변조의 설교가 아니라 순수하고 담백한 설교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설교자가 전하는 순수하고 담백한 설교를 통해 청중들은 성경에 담긴 진리를 발견하고 설득되며 마침내 하나님이 주시는 확신을 품게 된다고 믿었다. 그는 도나투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설교자들이여] 교묘하면서도 유창하게 말하지 말고 진중한 말로 하십시오! 세련된 수사학을 통해 회중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억지로] 말을 치장하지 말고, 진실하고 순박한 자세로 하나님의 자비를 ‘간단명료하게’ 선포하되 청중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적절하게 전하십시오”(폴 스콧 윌슨, 『그리스도 설교의 역사』, 72). 특히 키프리아누스는 설교를 위한 성서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폴 스콧 윌슨은 그와 같은 키프리아누스의 성경 해석을 “권위 있는 성서 해석”이라고 부른다. 앞서 살펴본 대로 키프리아누스 시대에는 다양한 이단들이 발흥하며 교회를 위협하고 성도들을 현혹시켰다. 문제는 그들 역시 성경 본문을 근거로 자신들의 이단 사상을 전파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의 성경 해석이 옳으며 그와 같이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키프리아누스는 성경 해석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근거를 교회의 구전 전통에서 찾았다. 이것은 앞서 살펴본 교회와 교회 감독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키프리아누스의 모습과 맥을 닿아있다. 올바른 해석을 판단하는 기준은 교회가 사용하는 구전 전통, 곧 신앙의 규칙(the rule of faith)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그는 성경이 문자적으로 이해되지 않거나 신앙의 규칙을 통해서 분명하게 해석되지 않을 경우 알레고리적인 해석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설교를 행함에 있어서 키프리아누스는 성경 이외에 다른 교부들의 말이나 책의 내용을 인용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설교 내용을 보다 권위 있는 것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설교나 저작에서 발견되는 가장 특징 중 하나는 성경 인용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점이다. 성경을 인용할 때마다 키프리아누스는 그 부분을 명확하게 밝힘으로써 인용 자체가 하나의 ‘선포’가 되는 효과를 내게 했다. 이와 같은 설교 방법론은 오늘날 설교자들에게도 좋은 선례가 된다. 설교 가운데 인용되는 성경 구절은 단순한 인용이 아니라 그 자체로 생생한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가 된다. 성경의 말씀들 대부분은 기록되기 이전에 하나의 선포로 세상 가운데 전해졌던 것이기 때문이다. 조지훈 목사(한세대학교 설교학 교수)
  • 2024.08.08 / 이미나 기자

    키프리아누스(Ⅰ)
  •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주교 이교도 부모에게서 태어나 늦은 나이에 개종 로마 박해 시기 교회 일치 이끌어 타스키우스 카이킬리우스 키프리아누스(Thascius Caecilius Cyprianus)는 A.D. 200년경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서 태어났다. 부유했던 그의 이교도 부모들은 그에게 법과 수사학을 가르쳤고 약 245년 기독교로 개종하기까지 그는 카르타고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개종 이후 침례를 받는 과정에서 키프리아누스는 그때까지 자신을 사로잡았던 무익하고 죄로 가득한 생활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특이한 것은 침례를 받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그가 카르타고의 주교로 선출되었고 서임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의 주교 선출에는 그의 경쟁자였던 노바투스와 그를 따르는 감독들의 적잖은 반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키프리아누스의 생애에서 있어서 매우 중요한 두 가지의 사건이 있다. 첫 번째는 로마 황제 데시우스의 박해였다. 249년 황제가 된 데시우스는 로마에 닥친 야만족의 침입, 경제적 위기, 사회적 불안이 로마 시민들이 전통적으로 섬겨오던 신을 저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신들을 다시금 잘 섬긴다면 로마의 영화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에 로마의 옛 신들을 거부하는 모든 사람을 반역자로 여겼고 멸절시키려고 했다. 250년 기독교에 대한 혹독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데시우스의 기독교 박해는 이전 박해와는 달리 기독교인들을 살해하는 대신 협박하고 고문하고 회유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기독교 신앙을 버리도록 하는 것이었다. 특히 로마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숭배한 사람들에게 증명서를 발부했는데, 이 증명서가 없는 사람은 범죄자로 취급했다. 이런 상황에서 황제의 회유에 변절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를 거부하며 투옥되고 마침내 순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박해로 인해 기독교 내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존재하게 되었다.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가 죽음을 맞이한 순교자들(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누스, 로마 감독 파비안, 안디옥 감독 바빌라스 등), 감옥에 가는 것도 불사하며 굳건히 신앙을 지킨 고백자들(Confessors) 그리고 신앙을 버린 배교자들이었다. 이 박해 과정에서 키프리아누스는 목숨을 부지했다. 그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교인들의 간청으로 피신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고 자신의 교인들을 돌보기 위해 1년 동안 은신하라는 환상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어떤 주장이 맞건 간에 그는 생명을 부지했고 여러 통의 편지를 보내 자신이 도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널리 알렸다. 자신의 주교를 잃은 로마의 감독들이 그에게 편지를 써서 유감을 표했기 때문이다. 251년 데시우스가 고트족과의 전투에서 죽자 기독교인을 향한 박해가 그쳤다. 그러나 박해가 사라진 교회의 상황은 이전보다 더욱 복잡해졌다. 앞서 언급했듯이 교회에는 박해 시기 신앙을 지킨 고백자들과 그 반대에 서있는 변절자들이 공존했기 때문이다. 신앙을 버린 변절자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교회의 최대 숙제였다.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를 했던 목회자들과 교인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놓고 갈등을 겪었던 한국교회와 같이 4세기 교회 역시 그런 갈등의 격랑 속으로 빠져들게 된 것이다. 변절자들을 절대 교회 공동체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경론자들과 그들이 회개한다면 다시 받아들여야 한다는 화해론자들이 팽팽히 대립했다. 점점 분열의 가운데로 빠져들어가는 교회를 지켜볼 수 없었던 키프리아누스는 감독회의를 소집했고 다음과 같이 결정했다. ① 로마 제국이 제시하는 제사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은 조건 없이 교회로 받아들일 것 ②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임종 시나 새로운 박해 시기에 회개의 진실성을 보일 때 교회로 받아들일 것 ③ 제사에 참석했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은 교회로 받아들이지 말 것 등이다. 그러나 252년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 황제의 박해가 일어나자 배교자들의 복원 사업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많은 배교자가 박해를 통해 자신의 신앙을 증명해보이길 원했기 때문이다. 키프리아누스의 생애에 있어 중요했던 두 번째 사건은 250년 부활절에 에티오피아에서 창궐한 흑사병이다. 이 전염병은 이듬해에 로마는 물론 그리스와 동쪽으로 시리아에까지 전파되었다. 무려 20년 동안 지속됐던 흑사병으로 인해 로마에서만 하루에 5000명의 사람이 죽었다. 이 전염병의 급속한 전파 이유는 가울을 공격했던 게르만족과 같은 이민족들이 일으킨 수많은 침략 전쟁 때문이었다. 이 전염병을 ‘키프리아누스의 흑사병’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저서 『죽음』(On Mortality)에서 이 사건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흑사병의 원인을 기독교인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반박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교회가 흑사병의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흑사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자선과 봉사를 베푸는 사랑의 장소임을 강조했다. 조지훈 목사(한세대 설교학 교수)
  • 2024.07.12 / 이미나 기자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Ⅲ)
  • 크리소스토무스의 설교 약 600편 남아 설교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 전달 사회 정의에 관심 가졌던 ‘자선의 예언자’ 다양한 수사학 기법 사용하기도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의 설교문은 약 600편이 남아있다. 이들 대부분은 안디옥에서 행한 것이며 속기사들이 기록했다고 한다. 이 설교들을 통해 그의 설교가 적어도 1시간 이상 지속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의 설교의 특징은 무엇일까? 남아있는 그의 설교를 통해 몇 가지 특징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크리소스토무스는 설교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하나님의 말씀 전달이라고 믿었다. 그는 설교자가 인간적인 찬사나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기를 기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가 청중들의 찬사를 강력히 거부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가 설교했을 때 많은 경우 청중들은 자주 박수를 쳤다고 한다. 그러나 박수갈채에 환호하는 대신 그는 박수를 치는 청중들을 강하게 질책했다. 그가 그들을 질책한 이유는 설교자가 칭찬에 대한 열망으로 설교하게 되면 청중들에게 보탬이 되는 설교가 아니라 그저 그들을 즐겁게 해주는 엔터테인먼트식 설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가 청중들이 보내는 박수갈채를 거부했던 이유는 그들이 선포된 말씀을 귀가 아니라 마음으로 듣고 삶 속에서 행하길 원했기 때문이었다. 설교란 하나님의 말씀이 성도들의 마음에 닿아 그들의 마음을 감동하고, 마침내 그들의 생활방식이 변화되는 것임을 크리소스토무스는 명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둘째, 청중의 박수와 찬사를 거부했던 크리소스토무스는 당시 안디옥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그리스문화를 반대했다. 그리스문화는 이교도적이고 세속적인 것이었다. 천국에 이르는 길에 방해만 될 뿐이었다. 그가 비기독교적인 자료 중에는 진리가 없다고 생각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셋째, 크리소스토무스의 설교 중에는 금욕주의적인 성향을 띄는 것들이 많았다. 그가 금욕주의적인 성향을 갖게 된 것은 381년 집사 안수 후 가난한 사람들과 관계를 갖게 되면서부터였다. 이런 그의 성향 때문인지 크리소스토무스는 경제적인 부와 자선의 의미를 자주 다루었고 사회 정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다. 정교회 신학자 중 한 명인 조지 플로로브스키는 크리소스토무스를 ‘자선의 예언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플로로브스키에 따르면 크리소스토무스는 인간의 번영은 가장 위험한 것이며 혹독한 핍박보다 더 잔혹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번영이야말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아픔을 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었다. 번영에 사로잡힌 인간은 부주의한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Father George Florovsky, “Saint John Chrysostom: The Prophet of Charity”, 「St. Vladimir’s Seminary Quarterly」 (1955): 37). 넷째, 크리소스토무스가 당시 세속적인 문화를 배격했다고 해서 그의 설교에서 완전히 성경 이야기만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청중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직유와 은유를 사용했다. 직유는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유사성이 있는 다른 대상에 빗대어 표현하는 수사법”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어릴 적 불렀던 동요의 가사 중에 ‘사과 같은 내 얼굴’이라는 표현이 바로 직유법이다. ‘A는 B와 같다’ 또는 ‘B 같은 A’라는 식으로 표현되며, ‘∼ 같은’, ‘∼처럼’, ‘∼ 듯이’ 등이 쓰인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비유법이다. 한편, 은유는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다른 대상에 비겨서 표현하는 것이다. 직유와는 달리 ‘A는 B이다’라고 표현하며 A를 B로 대치해버린다. “손이 얼음장이네”라는 표현은 손이 얼음장이 아니라 얼음처럼 차갑다는 의미이다. 크리소스토무스는 이런 직유와 은유를 통해 설교의 내용을 청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만들었다. 이뿐 아니라 특별한 단어나 소리의 반복, 수사학적 질문과 대답, 익살스럽거나 쾌활한 이야기 등을 사용해 청중들이 자신의 설교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크리소스토무스가 이와 같은 수사학적 기법들을 사용했던 것은 그가 어릴 적 리바니우스 문하에서 수사학을 공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수사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기독교 신앙을 위해 수사학자나 소피스트의 길이 아니라 신학자의 길을 선택했다. 다섯째, 교리문답식 설교에 있어서 크리소스토무스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 크리소스토무스의 설교 중에는 침례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교리문답적 설교들이 담겨있다. 당시 많은 설교자가 교리문답적 설교에서 주기도문, 침례에 대한 신조, 성례전의 의미에 대해 다루었다. 그러나 크리소스토무스는 그런 의식을 거행한 이후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 의식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며 더 중요한 것은 평생을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었던 것이다. 조지훈 목사(한세대학교 설교학 교수)
  • 2024.06.07 / 이미나 기자

    기독교 렌즈로 보는 문화
    내 평생에 가는 길
  • ‘꽃길만 걷자’라는 유행어에는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다. 어떤 때는 꽃길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걷지만 어떤 때는 가시밭길을 걸으며 눈물을 흘린다. 갈림길이 나오면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서성인다. 막다른 길을 만나면 지나온 인생을 후회하면서 방황하기도 한다. 이렇듯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게 인생이다. 이러한 인생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찬송가 ‘내 평생에 가는 길’(It is Well with My Soul)을 작사한 호래이쇼 스패포드(Horatio Gates Spafford, 1828~1888)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는 믿음의 길을 걸으라고 말한다. 그는 부유한 변호사로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들이 계속되면서 어두운 길을 걸어야 했다. 42세가 되던 해에 급성 전염병 피부질환으로 아들을 잃고 다음 해인 1871년에 시카고에서 일어난 대화재로 전 재산을 잃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시련을 겪었다. 사랑하는 네 딸을 모두 잃게 되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당시 아들과 전 재산을 잃은 충격으로 인해 절대적인 휴식이 필요했던 그는 아내와 네 딸과 함께 유럽 여행을 가려고 했다. 하지만 갑자기 처리해야 할 급한 업무가 생겨서 아내 안나와 어린 네 딸(11살, 9살, 5살, 2살)을 유럽행 여객선 ‘빌르 드아브로’에 먼저 승선시켰다. 이때 1873년 11월 15일 313명을 태운 여객선이 뉴욕항을 떠나 파리로 향하던 중 영국 범선 ‘로크언’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아내인 안나를 포함한 87명은 구조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자신의 생명과 같이 사랑하는 네 딸은 모두 목숨을 잃었다. 뉴스를 통해 사고 소식을 접한 그는 배를 타고 사고지점에 도착해 극심한 고통과 슬픔으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하며 부르짖었다. “주님, 저는 주님을 가장 귀하게 여겼고 주님을 사랑했는데 왜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이제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은 절망 속에 탄식하며 부르짖던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다음 날 아침 선실 창가 사이로 햇살을 비추시며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달려가서 그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왕하 4:26). 그는 이 말씀 속에 ‘평안’이라는 단어가 계속 마음에 남았고 평생 느껴보지 못한 깊은 평안을 경험했다. “평안해, 내 영혼 평안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It is well. It is well with my soul. God’s will be done.) 그렇게 주님이 주신 영감으로 한 편의 시를 써 내려갔는데, 그 시가 ‘내 영혼 평안해’(It is well with my soul)이다. 이후 시카고로 돌아와 무디 목사님에게 인정을 받아 음악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는 필립 블리스에게 자신의 사연을 들려주었다. 그의 고백과 시에 감동을 받은 블리스가 바로 그 자리에서 곡을 붙여주어 탄생하게 된 찬양이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이다. 스패포드는 자신의 인생에서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도 예수님을 붙잡아 참된 평안을 경험했다. 이해할 수 없는 그 길을 ‘이해’라는 방법으로 걷지 않고, 예수님을 붙잡는 ‘믿음’으로 그 길을 걸어가기를 선택한 것이다. 참된 평안은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시어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구원의 은혜를 믿는 것(엡 2:8; 벧전 2:24)과 신실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끝까지 신뢰(시 36:5~6)하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믿고 신뢰할 때 어떤 상황에서도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우리가 어떤 길을 걷고 있든 참된 평안을 주시는 예수님을 붙잡지 않으면 그 길은 멸망의 길이 될 수밖에 없다. 설령 그 길이 휘파람이 저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꽃길이라 해도, 예수님이 없다면 그 끝에는 허무와 절망만이 있을 뿐이다. 반대로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길을 걷더라도 예수님과 함께라면 그 길이야말로 참된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 길이 될 수 있다. 스패포드가 작사한 찬송가의 1절 가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교훈을 준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어떤 길을 걷든 예수님만을 따르는 믿음의 길을 걸으며 참된 평안을 경험하자.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님이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기에 우리의 길은 어떤 상황에서도 의미 있고 축복된 길이 될 것이다. 믿음으로 지금 내 앞에 놓인 길을 걸어가며 예수님과 함께하는 여정을 계속해 나가길 소망한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4.08.1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
  •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있다. 약 2000년의 기독교 역사 안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은 시대를 막론하고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어넣었으며, 이는 뛰어난 예술 작품들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오늘 다루게 될 마티아스 그뤼네발트(Matthias Grunewald, 1470~1528)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도 그중 하나이다. 그뤼네발트에 관해서는 16세기 초 독일에서 활동했다는 점 외에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그가 남긴 26점의 회화와 37점의 소묘작품은 모두 성경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특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주요 소재로 삼고 있다. 후기 고딕 양식과 북유럽 회화로부터 사실주의 기법의 영향을 받은 그뤼네발트는 강렬하고 과장된 표현방식으로 20세기 초 표현주의의 선구자 중 하나로 인정받는다. 그뤼네발트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은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이젠하임에 위치한 성 안토니오 수도원의 종교 제단화로 제작된 작품이다. 2.7m 높이와 3m 너비의 여러 패널에 그려진 이 제단화는 당시까지 전례 없는 크기였으며, 수태고지, 예수님의 탄생, 십자가, 부활의 장면 등 총 9개의 유화로 이루어져 있다. 완성되기까지 4년이 걸린 이 작품은 현재 프랑스 콜마르의 운터린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라는 제목은 이 제단화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그림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그림에서 비롯되었다. 그림 속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참혹한 모습은 르네상스 미술가들이 종교화에서 추구했던 이상적인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예수님을 성스럽고 근엄하게 표현한 기존 작품들과 달리 매우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그뤼네발트의 그림은 보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고통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쓰러지는 마리아를 부축하는 사도 요한과 심하게 몸이 휘어지면서 강렬한 슬픔을 나타내는 막달라 마리아가 기도하는 자세로 그려져 있다. 오른쪽에는 예수님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는 침례 요한이 등장하는데, 그의 얼굴 옆에는 라틴어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illum oportet crescere me autem minui)는 요한복음 3장 30절의 말씀이 적혀있다. 예수님 발아래 십자가를 짊어지고 성배에 피를 흘리고 있는 어린양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오신 예수님을 나타낸다(요 1:29). 한마디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은 요한복음의 요약판이라 부를 만하다. 짙고 어두운색으로 그려져 있는 십자가의 종렬은 거기에 매달려 있는 예수님의 핏기 없는 몸과 잘 대비된다. 예수님의 머리 상단에는 INRI라 쓰인 팻말이 붙어있는데, 이는 라틴어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의 약자로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를 의미한다. 숨이 다한듯한 예수님의 고개는 바닥을 향해 힘없이 떨구어져 있다. 십자가의 휘어진 횡렬 위에 끊어질 듯 양팔이 길게 늘어져 있는 모습은 예수님의 실재적인 무게감과 함께 죽음의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날카로운 가시면류관이 살갗을 파고들어 상처 난 머리, 미간에 깊게 잡힌 주름과 감긴 눈, 치아와 혀를 드러내며 새파랗게 질린 채 말라버린 입술은 예수님이 견뎠을 극심한 괴로움을 짐작게 한다. 이와 함께 움푹 들어간 배와 한껏 부풀어 오른 갈비뼈의 대비는 예수님이 숨 막히는 고통 속에서 온 힘을 다해 마지막 숨을 들이쉰 듯한 장면을 연출한다. 십자가의 뒤쪽까지 튀어나올 정도로 큰 대못이 박혀 뒤틀려 있는 손은 마치 예수님이 하늘을 향해 자신을 바치는 듯한 묘사를 하고 있다. 예수님의 몸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푸릇푸릇한 반점과 상처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는 당시 유행한 맥각병의 상처와 매우 유사하다. 여러 전염병이 확산했던 중세 후기에 성 안토니오 수도원 병원은 주로 맥각병 환자를 돌보았다. 맥각병은 곡물에서 발생하는 균으로 인해 피부가 손상되고 상처가 깊이 들어가 신경과 혈관을 훼손하여 죽음까지 이르게 하는 무서운 질병이었다. 당시로 보면 1500년 전에 일어난 십자가 사건인데 왜 그뤼네발트는 예수님의 몸에 맥각병으로 보이는 상처들을 그려 넣었을까? 이는 그림을 접하는 환자들이 자신들이 겪는 고통을 함께 느끼며 그 아픔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계신 예수님을 통해 위안을 얻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수도원은 환자들을 제단화 앞으로 데려가 그림을 묵상하도록 권면했고 그들은 그림 속 예수님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뤼네발트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온전한 희생과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상기시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온전히 순종하여 스스로 대속 제물이 되사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악과 허물을 대신 지셨다.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감히 가늠할 수 없는 고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겪어내심으로써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셨다. 우리는 매주 예배당에서 십자가를 마주한다. 그때마다 우리의 마음은 날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에 대한 감격으로 가득 차는가? 어쩌면 우리는 십자가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매일의 삶에서 그 가치를 깊이 묵상하는 일에 소홀해지지 않았을까. 십자가의 가치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서는 주님의 은혜에 대한 진정한 감사가 삶 속에 깊이 자리 잡기 어렵다. 오늘 그뤼네발트의 작품을 묵상하면서 십자가의 은혜가 당연하게 되어버린 삶을 돌아보고 그 의미를 다시금 발견하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의 슬픔과 고통을 짊어지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절대 긍정의 믿음과 소망을 얻기를 기도한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4.07.19 / 김용두 기자

    깊은 시선으로 바라본 세계
  • 나뭇잎 위에 화려하게 내려앉은 계절의 빛깔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햇살이 머물다 간 자리마다 단풍이 곱게 물든 그림 같은 풍경에 감탄한 적이 있는가? 프랑스의 소설가인 미셸 투르니에(Michel Tournier)의 산문집 『예찬』(Celebrations)에 보면 이런 글이 있다. “예찬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어떤 아름다운 음악가, 한 마리 우아한 말, 어떤 장엄한 풍경, 심지어 지옥처럼 웅장한 공포 앞에서 완전히 손들어 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투르니에는 우리가 자연과 인생을 바라볼 때 깊은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깊은 시선이 머무는 곳에서 무심코 지나쳐 버렸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때, 우리의 마음은 감동으로 가득 차고 우리의 입술에서는 예찬이 흘러나오게 된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How Great Thou Art)는 스웨덴 민요의 선율에 예찬시를 덧붙여 만든 찬송가이다.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솜씨에 대한 기쁨과 감사, 경탄과 경외감이 담겨있는 이 찬송가의 가사는 원래 ‘오 스토어 구드’(O Store Gud: O Great God)라는 시로서 1885년에 스웨덴의 시인이자 평신도인 칼 보버그(Carl Boberg)가 쓴 것이다. 찬송가학자 J. 어빙 에릭슨(J. Irving Erickson)에 따르면 이 시는 보버그가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뇌우와 강한 바람을 동반한 폭풍을 경험하고 뒤이어 활짝 갠 하늘의 태양과 숲의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면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자연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오묘하고도 놀라운 창조 솜씨를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겼던 그의 경험이 시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가사는 스웨덴 전통 민요와 만나서 시가 쓰인 지 3년 후인 1888년에 교회에서 처음으로 불렸다. 이후 이 찬송가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 독일어, 러시아어로 번역 및 각색되었다. 그러다 1920년대 초 영국 감리교 선교사 스튜어트 하이네(Stuart K. Hine)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고 현대식으로 새롭게 편곡되어 오늘날 우리가 애창하는 찬송가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하이네는 원가사의 핵심 줄거리를 손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내용을 추가했다. 하나는 러시아의 어느 한 마을에 있던 사람의 회심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근과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우크라이나를 떠나 영국 서머싯(Somerset)에 정착한 폴란드 난민들을 대상으로 선교 활동을 하던 중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하이네는 실향민이 된 그들이 큰 고난을 겪으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천국에서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게 된 것이다. 이 찬송가의 가사를 보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 두 절은 창조주 하나님의 놀라운 위엄을 찬양하고, 후반부 두 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다시 오심에 대한 소망을 기대한다. 하늘에 펼쳐진 수많은 별 들과 함께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뇌성은 시편 기자가 기록했듯이 하나님의 권능이 야훼의 소리(시 29:1~11)로서 위대함을 선포하고(1절), 숲의 새와 고요히 흐르는 시냇물은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시 46:4)하는 찬양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의 솜씨가 온 만물로 숨을 내쉬고 있음을 보여준다(2절). 이는 창조주의 위엄이 만물을 통해 드러나고 만물이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한다(고전 8:6).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이 땅에 행하신 일 중 가장 위대한 것이 구원의 위업인데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사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기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다(3절). 죄가 하나도 없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그를 믿는 모든 이에게 영생을 주신 일은 주 예수의 이름이 우리 가운데서 영광을 받기 위함인 것이다(요 3:16; 살후 1:12). 나아가 영원한 나라, 저 천국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그날을 기대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4절).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는 근심과 고통으로 인해 눈물의 양식을 먹으며 살아가지만, 승리의 나팔 소리와 영원한 기쁨으로 가득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해 주실 주님을 고대하며 찬송가는 마무리된다. 칼 보버그와 스튜어트 하이네가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그저 감탄하는 데서 멈추고 그 안에 숨겨진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지 못했다면 이와 같은 찬송가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깊은 시선으로 바라본 세계 속에는 지존하신 하나님이 계신다. 깊은 시선으로 바라본 세계 속에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구원이 있다. 그러니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으며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국제신학연구원>
  • 2024.06.14 / 김용두 기자

    선교 뉴스
    베트남한인교회협의회, 베트남 태풍 피해 구제금 전달 
  • 베트남한인교회협의회장 이상용 목사(베트남순복음교회 담임)는 베트남이 30년 만에 큰 태풍으로 약 300명 가량의 사망자와 수십억 달러 규모의 피해로 고통 중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9월 27일 하노이 중앙 조국전선에 약 2억8200만동(한화 약 1522만원)을 성금으로 전달했다. 성금은 베트남한인교회협의회 소속 교회들의 헌금으로 마련됐다.
  • 2024.10.04 / 오정선 기자

    전도청백전 전도 우수자와 함께 하는 일본 성지순례
  • 일천만구령운동이 펼쳐진 일본에서 전도 사명 재다짐 전도청백전 전도 우수자와 함께하는 일본 후쿠오카 나가사키 성지순례가 22~25일 진행됐다. 주님의 지상명령인 복음 전파에 앞장선 성도들을 위한 성지순례에는 2023년 전도우수자 김현옥 권사(관악대교구), 김미자 권사(영등포대교구), 안영숙 권사(남대문성전)와 2024년 상반기 전도우수자 김정순 권사(구로대교구)가 참석했고, 성도들 정착에 힘쓴 전도새가족부에서 오랫동안 헌신해온 봉사자들도 함께했다. 윤광현 부목사(교무)와 김호성 부목사(목회)는 이들과 일정을 함께하며 격려했고 우리 교회 기관 및 지성전 담당 목사, 전도 우수자들의 교구장도 동행했다. 이번 성지순례는 전도에 헌신한 성도들을 격려하고 이들이 더욱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도록 독려하기 위해 이영훈 담임목사가 마련했다. 순례팀은 조용기 목사가 평생 일천만구령운동을 위해 헌신한 일본에서 매일 예배를 드리며 일본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고 영혼 구원에 대한 사명을 재다짐했다. 후쿠오카에서 맞은 첫날 모모치해변 앞에서 윤광현 목사는 시편 146편을 본문으로 설교했고, 다음날 김호성 목사가 시편 121편을 중심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전했다. 일본에서의 마지막 날 나가사키 힐튼호텔에서 방경현 목사는 시편 23편에 대해 설교하며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복된 삶에 대해 말했다. 지난해 534명을 전도하고 314명을 정착시킨 김현옥 권사는 “1000명을 목표로 온 힘을 다해 전도에 주력해 힘들기도 했는데 성지순례를 통해 하나님께서 큰 위로와 힘을 주셨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이영훈 목사님께 감사드린다”며 감격을 전했다. 지난해와 올해 연달아 전도 우수자 상을 받은 김미자 권사는 “권사 직분을 받으면서 전도에 목숨을 걸었다. 전도왕으로 열 번의 상을 받았는데 이렇게 해외도 나오게 되니 꿈만 같다. 하나님이 주신 상급이라 생각하고 더 열심히 복음을 전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전도에 힘쓰고 큰 열매를 맺은 성도와 새가족 정착을 위해 헌신한 봉사자들, 기도와 말씀으로 사명을 북돋워 준 교역자들까지 전도청백전을 위해 지난해부터 최선을 다해 달려온 이들은 성지순례를 통해 전도 열정을 충전하고 민족복음화와 세계 선교에 더욱 힘쓸 것을 다짐했다. 후쿠오카(일본)=글·사진 이미나 기자
  • 2024.09.27 / 이미나 기자

    홍디모데·이한나 목사 A국 선교사 파송
  • 재단법인 순복음선교회 이사장 이영훈 목사는 15일 주일 4부예배 설교 후 A국 선교사로 임명받은 홍디모데·이한나 목사 부부에게 파송장을 수여하고 앞으로의 사역과 가정을 지켜달라며 안수기도했다. 홍디모데·이한나 목사는 그동안 우리 교회 기관 및 대교구에서 사역했다.
  • 2024.09.27 / 오정선 기자

    선교지 소식
    [선교지 소식] 김기태 선교사(일본)
  • 일본 군마현,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순복음의 기적 코로나 위기 속 부흥의 불길 소도시에서 타오르다 할렐루야! 일본 군마현 마에바시시에서 순복음군마교회를 섬기고 있는 김기태 선교사입니다. 2020년 2월 코로나 팬데믹의 혼란 속에서 이영훈 담임목사님의 부름에 순종하여 이 땅에 왔습니다. 당시 우리 교회는 주일 예배 출석이 20명도 채 되지 않는 작은 공동체였습니다. 마에바시는 도쿄에서 북서쪽으로 100㎞ 떨어진 조용한 소도시입니다. 한때 한인들로 북적였지만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많은 이들이 떠나 현재는 약 1000명 미만의 한인만이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곳에서 교회가 성장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영훈 목사님이 항상 강조하신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신앙으로 이 난관을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코로나 확산으로 대면 모임이 어려워지자 ‘사랑의 희망박스’를 만들어 성도들 가정을 직접 방문하며 격려했습니다. 그리고 단 한 명의 성도를 위해 오전 9시 예배를 새로 개설해 때로는 혼자서라도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작은 실천이 성도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확산되는 팬데믹 가운데 우리는 온라인 사역에 주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매주 예배와 설교를 라이브로 중계했습니다. 이를 통해 교회를 떠났던 이들이 우리 공동체와 연결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작은 시작이 큰 변화의 불꽃이 되었습니다. 청년부와 교회학교에서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부임 당시 존재하지 않았던 청년부가 이제는 매주 10명 이상의 활기찬 젊은이들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청년들을 위한 기도회와 독서 모임을 시작했고, 이것이 교회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청년들은 이제 교회학교 교사, 찬양팀, 통역 봉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의 자녀 세 명으로 시작한 교회학교는 현재 매주 10명의 아이가 즐겁게 예배를 드립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여름성경학교의 폭발적인 성장입니다. 첫 해 8명으로 시작한 작은 모임이 올해 4회를 맞이했는데, 22명의 아이들이 참가하는 큰 행사로 발전했습니다. 이는 일본의 영적 불모지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제 주일 예배 평균 출석 인원이 두 배 이상 늘어나 매주 50명 이상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등록 교인은 70명에 이르렀습니다. 이 중 약 30%가 일본인 성도입니다. 일본인들에게 유일신 사상을 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일본의 토속 종교인 신토를 바탕으로 한 다신교적, 범신교적 종교관을 가진 일본인들에게 유일신 개념을 소개하는 것은 큰 도전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을 경험한 일본인 신자들은 놀라울 정도로 헌신적입니다. 이는 순복음의 영성이 일본 선교의 열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들을 위해 신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일본인 리더십 양성에 힘쓰고 있습니다. 이처럼 지난 5년간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하심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교육관 겸 사택을 구입할 수 있었고 교회 묘지까지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고령의 한인 성도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고 교회에 대한 헌신을 더욱 강화시켰습니다. 또한 우리는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메시지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역을 정기적으로 펼치고 있습니다. 매년 ‘한국음식 바자회’,‘아나바다 바자회’를 개최해 선교와 구제에 힘쓰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연 2회 12주 과정의 성경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청년부와 장년부를 위한 독서모임, ‘건강한 교회와 행복한 성도’라는 표어에 맞게 부쩍 늘어난 40~50대 성도들을 위한 맞춤형 영성 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하고자 합니다. 또한 일본인 성도들을 위한 특별한 선교적, 목회적 맞춤 돌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 여러분, 영적 불모지인 일본에 부흥의 불꽃이 더욱 힘차게 타오르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작은 소도시에서 시작된 순복음의 불꽃이 전 일본을 밝히는 큰 불길로 번져나가기를 소망합니다. 이영훈 목사님의 일본 선교에 대한 비전과 성도 여러분의 기도와 사랑으로 반드시 일본 복음화의 새 역사가 열릴 것을 믿습니다. 할렐루야!
  • 2024.10.04 / 오정선 기자

    장년국 말레이시아 조호바루팀, 교회학교 파워미션 피지 단기 선교팀
  • [장년국 말레이시아 조호바루팀] 말레이시아 선교 통해 귀한 경험하고 돌아왔습니다 예배 섬김과 현지인 3040과 교류, 성령의 임재 경험 2024년 장년국 말레이시아 조호바루팀이 단기 선교를 다녀온 건 7월 16일부터 22일까지 6박 7일간이다. 성인 10명과 자녀 2명 총 12명은 말레이시아에서 사역하는 김명준 선교사님의 사역지를 순회하며 예배 및 원주민 섬김 사역을 진행했다. 선교지에 도착해 제일 먼저 방문한 교회는 쿠알라룸푸르에 위치한 샤론교회였다. 이곳에서 사역 첫날 밤 3040집사님들과 함께 구역예배를 드렸다. 코로나 이후 가정예배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함께 드린 예배는 감동적이었고 구역예배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또 이곳에서 한인 및 현지인 예배 섬김과 친교 사역을 진행했다. 이튿날 우리는 원주민 사역의 본부라 할 수 있는 임마누엘교회로 이동했고 성령대망회를 함께 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차로 2~3시간 떨어져 있는 임마누엘교회는 현지인 사역자가 돌보는 곳으로 우리는 성회를 통해 성령의 임재를 경험했다. 사역 넷째 날 선교팀은 싱가포르에서 가까운 조호바루순복음교회로 사역지를 옮겼다. 현지인들의 관심을 덜 받기 위해 팀원들이 차량 3대로 나눠 이동했다. 선교팀은 이 곳에서 제일 먼저 보육원 아이들을 위한 사역에 나섰다. 국적도 알 수 없는 50명의 아이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아이들은 자신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에 한층 밝아졌다. 조호바루에서는 원주민 마을 복음 전파 사역도 병행했다. 아이들과 청년들을 초청해 친교 시간을 갖는 한편 현지인 성도들과 중보기도회를 함께 했다. 주일에는 조호바루순복음교회에서 현지인 예배와 한인 예배을 섬기며 말레이시아에 하나님의 복음이 편만히 전파되길 기도했다. 이번 말레이시아 단기 선교를 통해 우리는 이슬람이 국교인 나라에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현지인 성도들은 세상의 많은 것들을 포기하는 대신 예수님을 믿는 순수한 믿음의 열정을 가지게 된 데 누구보다 감사했다. 찬양 중 이런 가사가 있다. “난 주러 왔을 뿐인데 오히려 내가 받고 갑니다~ 전하려 왔는데 이미 이곳에 계신 예수님을 보고 갑니다~” 말레이시아에서의 사역은 오히려 큰 사랑을 받고 돌아오는 복된 경험이었다. 자신의 삶을 녹여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고 계신 김명준 선교사님과 이정연 사모님의 모습도 결코 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후원 사역을 진행할 수 있어 참으로 감사했다. 주일이면 현지인 사역자가 작은 차로 열 댓 번 성도들을 교회로 데려오고 또 데려다 주는 일을 반복했다고 한다. 승합차 구입이 오랜 기도제목이었던 선교지를 위해 선교팀은 중고 승합차 구입을 위한 금액의 70%를 후원했다. 선교 부흥에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했다. (최희정 팀장) [교회학교 파워미션 피지 단기 선교팀] 어린이 사역과 구제 활동 통해 하나님 사랑 체험 “온 마음 다해 예수님 사랑 전하고 왔어요” 교회학교 파워미션 단기 선교팀은 7월 18일부터 25일까지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피지로 선교 사역을 다녀왔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교사와 교역자 11명으로 구성된 선교팀은 피지에서 사역하고 있는 양삼규 선교사님과 함께 수도인 수바에서 원주민 마을 사역, 유치원 여름성경학교, 원주민 공부방 운영, 구제 활동을 펼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했다. 피지는 기독교 64%, 힌두교 28%, 이슬람 6%로 많은 사람이 기독교 국가로 알고 있다. 하지만 현지인만큼 인도인 비율이 높아 힌두교의 영향력이 상당하다. 또한 이단과 사이비도 세력을 넓히고 있어 실제 복음화율은 이보다 낮은 상황이다. 선교팀은 3곳의 원주민 마을(빈동호, 나누꾸, 타마부아)을 순회하며 유일한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했다. 마을에서 다음세대를 위한 여름성경학교 사역을 진행하며 학생들은 현지인 어린이들과 함께 영어 찬양과 율동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렸다. 이 밖에도 태권도 시범과 발차기 체험, 무더위를 식힐 물놀이도 함께 즐겼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으로 유명한 피지는 휴양지로도 잘 알려졌다. 하지만 이면에는 원주민 대부분이 빈곤한 삶을 살고 있다. 이들은 무허가 건물을 짓고 마을 단위로 모여 생활해 대부분 제대로 된 상수도와 배수시설이 없고 기본적인 전기조차 공급되지 않고 있다. 선교팀은 복음과 함께 이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전달하며 구제 활동에도 앞장섰다. 맨발로 돌아다니는 사람에게 신발을, 시력이 좋지 않은 원주민에게 돋보기를, 위생으로 고통받는 이웃에게 약을 전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함께 도움의 손길을 전했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선교 환경에 혹시라도 학생들이 투정을 부리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오히려 학생들은 열악한 환경에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피지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그동안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다고 고백한 학생이 선교지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이들에게 온 마음을 다해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게 된 간증이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뻐하며 사역을 이어가던 학생들의 고백은 큰 감동이었다. 학생들은 지금도 낯선 땅의 반짝이는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던 현지인들을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있다. 다시 그들과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지금보다 더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더 많은 사랑과 은혜를 나누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나님께서 피지팀을 사용하시고 영광 받으심에 감사드린다. (신일엽 팀장)
  • 2024.08.30 / 오정선 기자

    남궁록 목사(미국)
  • 미국 역사 출발지 버지니아에 세워진 순복음빛과사랑의교회 국제결혼으로 정착한 이민 1세대가 한인 주류 형성 ‘절대긍정 절대감사’신앙으로 소통·연합 이뤄내 전도와 선교 후원 힘쓰는 믿음 공동체로 성장 전 세계 정치의 중심지라면 백악관이 있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워싱턴 DC의 포토맥 강 하나를 경계로 남쪽에 위치한 주가 버지니아입니다. 버지니아 주는 1607년 영국의 국왕 제임스 1세가 식민지화를 목적으로 세운 회사에서 식민지 주민들을 보내 버지니아 제임스 강 유역에 제임스타운을 세우고 첫 번째 영국인 정착지를 설립한 곳입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이주했던 청교도 메이플라워호 보다 13년 먼저 영국에서 신대륙에 정착한 곳이 바로 버지니아입니다. 버지니아는 미국 역사의 출발지로, 윌리엄스버그와 요크타운에는 미국 초창기 역사 유적과 풍습을 유지하기 위해 유적지가 그대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또 미국 독립 전쟁과 남북 전쟁의 격전지 흔적들을 만나 볼 수 있는 한국의 경주와 같은 곳입니다. 순복음빛과사랑의교회는 미국 역사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윌리엄스버그, 요크타운과 함께 버지니아 동남부 지역 뉴포트뉴스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곳은 육·해·공군이 모두 주둔하고 있는 군사 도시이기도 합니다. 뉴포트뉴스는 40~50년 전 한국 파병 미군 장병들과 국제결혼을 통해 정착한 이민 1세대가 지역 한인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낯선 이국에서 살기 위해 밤낮없이 일해야 했고, 언어 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배우자와의 불화가 예사로웠습니다. 인종 차별에 따른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 왔기에 대부분 생존과 자기 보호에 대한 강한 의지, 집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정에 한없이 약한 여린 마음도 있습니다. 이러한 요소는 이민 교회 사역에 장점인 동시에 단점으로 나타납니다. 목회자로서 어려운 시대를 살아온 지역 한인들에 대한 존중의 마음과 이해를 통한 치유와 격려 사역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순복음빛과사랑의교회는 ‘순복음의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신앙’으로 성도들이 예수님 안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도록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에 힘써 왔습니다. 제자 훈련을 통해 말씀 안에서 긍정적인 사고와 상호간에 이해하는 마음을 훈련하며 서로를 존중히 여기는 교회로 성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선교지와 선교사들을 위한 중보기도와 함께 매달 아프리카 르완다, 케냐에 선교비와 구제비를 후원하고 있으며 구역 예배 헌금은 매달 남미 선교 지원 헌금으로 드리고 있습니다. 주일 예배 후에는 ‘길거리 보드 전도’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다”고 했습니다. 한 영혼이라도 그 길을 지나치며 보았던 보드 판에 적힌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탕자와 같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기 1년 전, 우리는 미국 교회를 빌려 예배드리던 곳에서 뜻하지 않게 나오게 됐습니다. 사택에서 10개월 동안 주일 예배를 비롯해 모든 예배를 드리던 중 하나님의 은혜로 상업용지 2500평과 건물을 구입하게 됐습니다. 건물 리모델링 후 지금의 교회를 입당하게 됐는데 우리가 빌려 쓰던 미국 교회가 코로나 기간 동안 폐쇄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곳에 남았더라면 교회 성도들이 목자 없는 양같이 흩어졌을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에 땅과 교회를 예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비록 친교실과 교육관이 아직은 없지만 언제든지 자유롭게 하나님을 예배드릴 수 있는 예배당이 있다는 사실에 성도들은 감사하며 이민 생활로 지친 모두의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으로 채워지고 이웃에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전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순복음빛과사랑의교회가 다음세대와 인터내셔널 사역이 활성화 돼 교회가 부흥하도록, 교육관과 친교실이 건축 돼 다양한 교육과 훈련이 이뤄져 주님 안에서 행복한 믿음의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순복음 성도님들에게 중보기도를 부탁드립니다.
  • 2024.08.02 / 오정선 기자

    선교사를 위한 중보 기도
    장명준 선교사(파라과이)
  • - 현지인 사역자 양성 위한 신학교 설립을 위해 - 현지 인디언 복음화를 위한 전도 집회가 계속 확장되도록 - 6개 지교회 등 현지인을 돕는 한인교회 성도들을 위해
  • 2024.10.11 / 오정선 기자

    이피터 선교사(V국)
  • - 태풍 ‘야기’로 인한 피해(물, 전기, 도로 등) 복구가 속히 이뤄지도록
  • 2024.10.04 / 오정선 기자

    긴급 선교사 중보기도-김 빛 선교사(J국)
  • 뇌종양이 발견된 김 빛 선교사(J국)가 한국으로 안전하게 이송 돼 수술이 진행될 수 있도록 중보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 2024.09.27 / 오정선 기자

    순복음영성스케치
    기도의 종류(Ⅳ) - 중보 기도
  • 세계적인 설교자 찰스 스펄전 목사는 “위대한 일을 행하실 때마다 하나님은 먼저 기도의 사람을 세우신다”고 말했다. 그가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본인 스스로가 기도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며, 특히 그를 위해 중보하며 기도하던 무명의 기도 동역자들의 영적 지원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 역시 그의 사역에 있어 중보 기도의 능력을 인정했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만 사랑하는 기도의 사람 백 명을 원했다고 한다. 타인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기도하고 연약함과 어려움을 지탱해주고자 하는 중보 기도는 영적 지도자를 위한 중보 기도로 이어질 때 더욱 강한 능력으로 나타난다. 1. 중보의 의미와 예수 그리스도 중보(intercession)의 문자적 의미는 ‘사이에 나아가다’, ‘상치하는 양자를 화해하기 위해 행동하다’의 의미가 있으며 법정에서 의뢰인을 돕는 변호사나 법률적 행위를 대신해주는 대리인의 개념을 갖고 있다. 요한복음 1장 18절은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증거하고 있는데, 앞선 중보의 개념에 따르면 예수님이 하나님과 인간을 중보하는 최고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은 지금도 성령님을 통하여 계속되고 있으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기도할 때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도와주신다. 2. 예수님의 중보 기도와 훈련 모델 능력 있는 중보 기도자가 되고자 소원하는 사람은 단연코 최고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따라가야 한다. 그러나 한 명의 중보 기도자가 세워지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중보 기도자로서의 소원과 결심이 있어야 하며 더 나아가 훈련이 필요하다.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의 최우선 순위는 기도였는데 어떠한 때에 기도하셨는지를 알아보면 중보 기도자로 서는 훈련에 도움이 될 수 있다. (1)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침례를 받으실 때 기도하셨다(눅 3:21~22). (2) 사람들에게 인정받던 전성기 때에 많이 기도하셨다. (3) 진리에 대한 계시가 필요할 때 기도하셨다. (4) 제자들을 선택하고 훈련하실 때 기도하셨다. (5) 사랑과 용서가 필요할 때 기도하셨다. 3. 중보 기도의 올바른 태도 중보 기도자로서 훈련을 받고자 하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훈련 방법은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매일 일정한 시간을 내어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 증진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아래의 5가지 올바른 태도를 유지하기만 해도 효과적인 중보 기도자로 설 수 있다. (1) 자발적으로 중보 기도하라 억지로 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지 못한다.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가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이다. (2) 구체적으로 중보 기도하라 중언 부언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신다(마 6:7). 구체적인 기도는 응답을 통하여 능력을 체험하는 통로가 된다. (3) 올바르게 중보하며 구하라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하고 정당한 것을 구해야 한다. 응답이 올 때까지 찾고 두드리는 실행의 과정을 능동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4) 전심으로 중보하며 구하라 두 마음을 품는 것을 하나님은 싫어하신다(약 1:8). 이런저런 생각이 많으면 기도에 집중하기 어렵다. 마음이 분산되는 것을 막는 실제적인 방법은 크게 소리 내어 기도하는 것이다. (5) 쉬지 말고 중보 기도하라 기도는 호흡이요 습관이 되어야 한다. 한꺼번에 일시적으로 많은 기도를 드리는 것보다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자주 드리는 기도가 효과적이다. 4. 영적 지도자를 위한 중보 기도 중보 기도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 지도자를 위한 기도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에게 순종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지도자를 판단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을 갖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시 66:18). 그리고 아래와 같이 영적 지도자의 영성과 생활과 사역의 3가지 영역에서 중보하며 기도하면 사역에 큰 능력이 나타난다. (1) 영성을 위하여(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기도) 지도자의 위치에서 듣게 되는 비난과 겪게 되는 억울한 일들을 견디고 이길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2) 생활을 위하여(개인적인 삶을 위한 기도)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추구하며, 행복한 가정의 모범이 되고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도록 기도해야 한다. (3) 사역을 위하여(사명 감당을 위한 기도) 교회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는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 끝까지 사명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귀한 뜻을 이루어 가야 한다. 성도들은 영적 지도자의 권위에 순종하고 그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하나되게 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끝> 김현동 선임목사(교무국 기도처지원팀)
  • 2023.12.2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기도의 종류(Ⅲ) - 방언 기도
  • 올해는 우리 교회가 속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교단이 창립한 지 70년이 되는 해로서 한국의 복음화를 위한 오순절 운동을 되돌아보게 한다. 오순절 운동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의 생명력을 회복시키려는 운동으로서 성령 침례의 결과가 방언, 신유, 능력으로 나타남을 강조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교회도 성령 충만과 방언 기도를 강조해 왔고, 이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신유 사역과 사회 참여를 통하여 세계 최대의 교회로 성장했다. 오늘은 우리 교회와 교단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 부흥의 큰 원동력이 된 방언 기도에 대해 알아보고, 방언 기도를 통해 성령 충만의 영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다짐의 시간이 되기를 기도한다. 1. 방언 기도의 의미와 성경 상의 언급 방언 기도는 영적인 언어로 말하는 기도로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통을 가능하게 하며 개인 신앙 발전에 큰 유익을 주는 기도이다. 방언은 성령 침례의 외적 증거이며 성경 많은 곳에서 성령 침례의 표적으로 나타난 방언 기도의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오순절 날 제자들에게 임한 성령의 임재(행 2:1~4), 둘째는 베드로가 고넬료와 집안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을 때의 성령의 임재(행 10:44~46), 덧붙여 바울이 에베소의 제자들에게 안수할 때의 성령의 임재(행 19:5~6)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2. 현대 오순절 운동과 방언 기도 성경 상에 등장하였던 방언 기도는 20세기 초 현대 오순절 운동에서 재발견된다. 1901년에 감리교 목사 찰스 팔함(Charles F. Parham)은 그가 가르치는 신학교 학생들과 함께 성경을 철저히 연구하던 중, ‘방언이 성령 침례의 최초의 증거’임을 깨닫게 된다. 이들은 이렇게 발견한 말씀의 내용을 철저히 믿고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 침례와 방언을 체험하게 되었고 이것이 현대 오순절 운동의 시작이다. 이어 방언 기도를 강조하는 오순절 운동은 1906년 윌리엄 시무어(William J. Seymour)의 아주사 부흥으로 이어졌다. 방언과 방언 통역, 예언, 축사, 신유 등이 강력하게 나타났던 아주사 거리 집회는 무려 3년이나 지속되며 기도의 불길을 이어갔다. 3. 방언 기도의 유익 성령 침례의 최초의 증거로서 방언 기도는 다음과 같은 유익을 가져다준다. (1) 방언 기도는 성령 충만의 확신을 준다. 성경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제자들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방언)로 말하기를 시작하였다고 증거하고 있다(행 2:4). 한편 믿는 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한다고 분명히 적고 있다(막 16:17). 성령 침례를 받으면 방언이라는 표적을 통하여 분명하게 성령 충만의 증거를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방언 기도를 한다는 것은 기도하는 자에게나 듣는 자에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성령 충만의 확신을 가져다준다. (2) 방언 기도는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통을 나누는 비밀한 언어이다. 방언 기도에 대해 비교적 많은 언급을 하고 있는 고린도전서에서는 방언을 하나님과 비밀한 영적 교통을 나누는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고전 14:2)고 하면서 또한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고전 14:14)라고 증거하고 있다. 이러한 방언 기도는 하나님과 비밀의 기도이기 때문에 사탄도 알아듣지 못한다. (3) 방언 기도는 자기 신앙의 덕을 세운다. 성경은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운다(고전 14:4)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덕’을 세운다는 것의 원어적 의미는 ‘집을 지어 올라간다’는 의미가 있다. 우리는 방언 기도를 통하여 마치 집을 짓듯이 우리의 신앙을 더욱 견고히 할 수 있다. (4) 방언 기도는 마음을 부정적인 상태에서 해방시켜준다. 방언으로 기도하면 우리의 잠재 의식 속에 있는 모든 불안, 초조, 절망, 미움, 원한, 상처 입은 것을 깨끗이 청산해 준다. 마음의 공간이 방언 기도를 통하여 깨끗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부정적인 상태에서 해방되어 절대긍정의 마음으로 변화 된다. (5) 방언 기도는 연약함을 돕는 탄식의 기도이다. 성경은 성령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고 하고 있다(롬 8:26~27). 방언 기도를 통하여 탄식하듯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6) 방언은 깊고 오랜 기도를 가능하게 한다 고린도전서 14장 15절에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고 증거하고 있다.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기 위해서는 기도의 시간이 길어야 한다. 방언 기도는 기도의 언어로서 기도를 오래 할 수 있게 하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코로나19 엔데믹 선언 이후인 지금은 성도 개개인이 기도를 통해 성령 충만한 영성을 회복하고 교회 내외적으로 전례 없는 부흥을 꿈꾸어야 할 때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 교회 성령 충만과 부흥의 토대가 된 오랜 시간의 깊은 방언 기도를 회복하는 것은 교회와 성도 모두가 부흥으로 향하는 최선의 지름길을 제공해 줄 것이다. 김현동 선임목사(목회자제직훈련소)
  • 2023.11.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기도의 종류(Ⅱ): 대적 기도
  • 그리스도인들에게 악한 영들과의 영적 전쟁은 선택 사항이 아닌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과정이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영적 전쟁에 대해 무의미하게 여기거나 막연히 신비적인 것이라고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영적 전쟁은 성경 여러 곳에서 많이 언급되고 있으며 오늘날도 실제적으로 많은 이들에 의해 체험되고 있다. 이러한 영적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대적 기도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오늘은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신 권세(창 3:15)에 힘입어 선포하는 대적 기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대적 기도의 의미와 특징 대적 기도는 문자 그대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권세에 힘입어 악한 영들에게 명령하고 선포하는 기도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도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의 형식이지만 대적 기도는 악한 영들에 대한 것으로 간구가 아닌 명령과 선포의 형태를 지닌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는 권세를 주셨다(눅 10:19). 이 말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악한 영들을 대적함으로써 승리하였던 것과 같이 오늘날 우리들도 예수님이 주신 권세와 능력을 믿고 명령하며 선포함으로써 귀신을 쫓아내고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2. 성경에 나타난 대적 기도 성경은 영적 전쟁을 실제적으로 묘사하면서 대적 기도의 상대인 악한 영들과 이들을 어떻게 상대하여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1) 대적 기도의 대상 성경은 우리가 물리쳐야 할 대상에 대해 직접적으로 ‘대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라고 하거나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고 말한다. 이러한 성경의 언급을 통해 우리의 대적이 바로 ‘마귀’임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2) 대적 기도의 사례 예수님은 귀신을 꾸짖는 방법(막 9:25)과 명하여 내어 쫓는 방법(눅 8:29)을 통하여 대적 기도를 행하셨다. 바울은 이러한 예수님의 권세에 힘입어 빌립보의 귀신 들린 여종을 향하여 명하였고, 귀신은 즉시 나오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행 16:18)는 명령과 선포는 오늘날 대적 기도의 대표적인 형태로 활용되고 있다. 3. 대적 기도의 방법 대적 기도는 보이지 않는 적과의 영적 대결이므로 마치 전쟁터에서 배수의 진을 친 것과 같은 비장한 각오로 준비하고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기도해야 한다. (1) 보혈을 의지하는 기도 유월절 어린 양의 피는 예수님의 보혈에 대한 예표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음에서 보호하실 것에 대한 약속이었다(출 12:13).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친히 흘려주신 보혈의 권세를 갖고 있으므로, 보혈에 의지하는 기도는 마귀에게 대적하는 가장 큰 기초가 된다. 연약한 육신을 입고 있는 우리들은 매일 같이 마귀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데 특별히 개인의 감정과 사회적 관계 그리고 환경 가운데 보혈을 뿌리며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2) 예수 이름의 권세를 의지하는 기도 예수님이 이 땅에 성육신하시어 오신 이유는 우리의 상실한 권세를 회복해 주시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셨으나 부활하셔서 승리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히 8:1). 이러한 예수님의 권세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됨과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요 1:12). 성경은 예수님의 권세에 의지할 때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고 하였고(마 16:18), 매고 푸는 권세가 있어서 마귀들을 묶고 포로된 자들을 구원하는 권세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마 16:19). (3)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갖는 기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으나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이긴 싸움을 싸우는 중이다. 그러나 아직 대적의 수중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겼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패배 의식에 빠지고 좌절과 낙심 가운데 살아가게 된다. 우리는 대장 되신 예수님이 죽음을 정복하셨고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주셨으며, 흉악과 결박에서 놓임 받게 해주심을 굳게 믿고 마귀를 대적하며 기도해야 한다. 4. 대적 기도의 실제와 유익 대적 기도를 통하여 의심, 두려움, 교만, 불안, 낙심과 염려 등 마음의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사라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대적 기도는 육체의 치유와 믿음의 회복도 가져다준다. 우리는 각종 암, 우울증, 중풍, 고혈압, 당뇨병, 만성 피로 등 육체의 질병에 대해 꾸짖고 명령하고 선포하여 승리할 수 있고, 영적 성장과 신앙생활에 방해를 주는 악한 영들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대적하며 기도할 수 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하노니, 사람의 육체와 정신과 영혼을 괴롭히는 악한 원수 마귀야! 지금 즉시 하나님의 자녀에게서 떠나갈지어다!” 이러한 선포를 통하여도 우리는 마귀와 효과적으로 대결하고 영적 전쟁의 승리에 다가설 수 있다. 김현동 선임목사(목회자제직훈련소)
  • 2023.10.2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구속사적 성경읽기
    (19)영적 무장을 위한 3대 신앙
  •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은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로 했다면 영적 전쟁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영적 무장이다. 영적 무장이 없이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전쟁에 임하는 병사가 무장 없이 맨몸으로 나서는 법이 없듯이 영적 전쟁에서도 영적 무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 시간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영적 무장, 곧 3가지 신앙적 무장에 대해서 알아보자. 1. 창조 신앙 하나님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창조주이시다.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자 우리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신 장본인이시다. 이 세상 모든 만물 가운데 스스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아무리 과학이 하나님을 배제하고 진화론과 같은 이론으로 이 세상을 설명하려고 해도 그런 과학은 극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다음과 같은 우화가 있다. 어느 날 과학자 한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와 말했다. “우리 과학이 발전해 흙으로 사람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과학이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은 다 할 수 있다는 의미죠.” 하나님이 답하셨다. “정말 그러한가? 그렇다면 네 말대로 흙으로 사람을 만들어 보아라. 대신 네 흙으로 해라.” 이 우화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가?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생명의 근원, 우주의 근원은 밝혀낼 수 없다는 것이다. 생명의 근원, 우주의 근원은 어디 있는가?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셨다.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전 12:1~2).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다. 렇다면 창조 신앙을 가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절대 주권을 인정하며 살아야 한다. 달리 말해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창조주 되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 영광을 올려 드리며 살아야 한다. 2. 십자가 신앙 예수님의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써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받은 것이다. 그뿐 아니라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함을 얻으며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축복을 얻은 것이다. 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말했다.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 마르틴 루터는 이 말을 통해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어야 함을 천명한 것이다. 달리 말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빼놓고서는 기독교 신앙을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갈라디아서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 3:13~14). 예수님이 율법이 정한 대로 나무에 달려 죽는 저주받은 죽음을 당하심으로써 우리를 죄와 사망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아브라함의 복과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셨다. 그렇다면 십자가 신앙을 가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담대한 복음 증거자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세상 앞에 절대로 주눅 들지 않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만큼 나를 사랑하셨고 모든 저주의 굴레에서 해방하셨다. 또한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녀가 되게 하셨으니 우리가 삶의 형편과 조건, 세상의 시선에 위축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3. 부활 신앙 기독교 신앙의 위대함은 부활 신앙에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예수님의 부활은 기정사실이다. 그 증거가 무엇일까? 첫째,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다. 둘째, 부활의 목격자들이 있다. 도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 15:4~8). 특히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을 당하실 때 비겁한 도망자들이 되었던 제자들이 어떻게 다시 그 예수님을 전하다 순교자까지 될 수 있었을까?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부활이 거짓일 수 없는 이유다. 물론 이런 증거에도 부활이 거짓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셋째, 부활이 거짓이라면 그 거짓이 2000년 넘게 지속될 수 있었을까? 수없이 많은 사람이 그 거짓에 자기 목숨을 걸 수 있었겠으며 자기 인생을 헌신해 가며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을까? 부활은 사실이고 진리이다. 그렇다면 부활 신앙을 가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결단코 세상에 얽매인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안개처럼 쉽게 사라지는 인생길을 걷고 있으며 잠시 왔다가 떠날 나그네 인생을 살고 있다. 이 세상은 우리 삶의 종착지가 아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단기 선교 온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의 몸을 입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될 것이다. 바울 사도는 말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 15:19). 이 세상에 얽매여 잠시 잠깐뿐인 헛된 것을 찾다가 인생의 허망함에 무릎을 치며 후회하지 말고 부활 후 누릴 영원한 생명을 바라며 살아가자. 오정섭 목사
  • 2022.07.1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절대긍정의 믿음
  •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선교라고 정의되는 시대가 찾아왔다.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인의 복음 증거만큼이나 그리스도인의 삶이 주목받는 시대라는 뜻이다. 요즘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전하는 복음의 진정성을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에서 찾는다. 따라서 성경을 삶의 원리 원칙으로 삼는 성경적인 삶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성경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절대긍정의 믿음이다. 왜냐하면 복음의 결론은 성도의 최후 승리를 말하고 있으며 다시 오실 예수님이 성도의 최후 승리를 반드시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져야 할 절대긍정의 믿음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그 땅을 정탐 다녀온 여호수아와 갈렙의 반응에서 절대긍정의 믿음이 지녀야 할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1.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을 갖고 싶어 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각 지파에서 대표 한 사람씩을 선발해 모두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에 보낸다. 그들은 40일간 그 땅을 돌아본 후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이며 그 땅의 과일들은 극상품이라고 할 수 있고 그들이 누리는 것은 풍요롭다는 데에 일치된 의견을 내놓는다(민 13:25~27). 그러나 그 땅을 정복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의견은 긍정적인 의견 2명, 부정적인 의견 10명으로 갈린다.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은 두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이다. 갈렙은 다음과 같은 의견을 피력한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민 13:30).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을 취하고자 하는 데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땅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원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비관적인 전망과 비판적인 어조에 쉽게 동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사람은 미래를 알 수 없고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매일 마주하는 삶의 과제 앞에 불안, 염려,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고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대면하는 문제보다 훨씬 더 크신 분이시고 자녀 된 우리의 삶을 위해 좋은 것을 예비해 놓고 계신 분이시다. 로마서 8장 32절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씀한다. 2.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는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의견을 밝힐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야훼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야훼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야훼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민 14:7~9). 그러나 나머지 10명의 정탐꾼들은 육신의 눈으로 확인되는 그 땅 주민들의 어떠함에 주목했다.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32~33). 그들은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지 않았기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땅에 대해 악평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라며 자신들에 대해서도 악평했다.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이 무너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삶에 부정적이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라는 것을 믿었다. 그 땅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약속의 땅이기 때문에 분명히 차지할 수 있다고 그들은 믿었다. 하나님은 그 땅을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셨고, 모세에게 정탐꾼을 보내라고 말씀하실 때도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했기에 그 땅을 차지하는 데에 긍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성경 말씀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약속이 담긴 책이다.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온갖 좋은 약속을 붙잡는 적극적인 신앙 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한 사람은 절대긍정의 믿음을 소유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 사람들의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에 대한 기대로 가득하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실 것에 대한 거룩한 원함,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으로 충만한 절대긍정의 믿음으로 살아가자.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약속하신 가나안을 차지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오정섭 목사(국제신학연구원 신학연구소)
  • 2022.06.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구속사적인 삶 - 감사(2)
  • 대한민국 법 중에 최고 상위법은 헌법이다. 헌법 10조에 보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흔히 말하는 행복추구권이다. 그런데 행복권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국가도 행복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해 줄 따름이다. 다시 말해 행복은 어떤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정해진 조건이 있으면 국가가 일정 수준의 국민은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1. 행복의 근원, 감사 그렇다면 행복은 어디 있을까? 감사하는 마음에 있다. 감사하면 행복해진다. 감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사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감사가 저절로 되거나 쉽게 되지 않는다. 만약 감사가 저절로 되고 쉽게 되는 것이면 감사가 하나님의 뜻이니 범사에 감사하라고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감사는 우리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다. 감사가 쉬운가? 불평이 쉬운가?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한 달 동안 5층 집까지 매일 걸어가야 한다고 가정하자. 억지로라도 계단을 오를 일이 생겨 운동할 수 있게 되었으니 감사할까? 아니면 곧바로 불평할까? 감사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원망 불평이 자연스러운 우리 본성이라는 중력, 그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감사가 등산처럼 힘든 이유다. 그러나 등산도 하면 할수록 쉬워진다. 감사가 그렇다. 산 정상을 향해 오르다 보면 달라지는 것이 있다. 시야다.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감사하면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못 보던 것을 보게 된다. 감사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불평하는 일들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그 일들 외에는 제대로 못 본다. 불평하는 일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마음이 계속 불편하다. 물론 해결이 돼도 불평할 거리는 또 있다. ‘왜 이제야 해결이 되는 거지?’ 감사하는 사람은 시야가 다르다. 보이는 것이 다르다. 눈에 거슬리는 것보다 세상 아름다운 것이 훨씬 더 많다. 보이는 게 다르니 말이 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왜 그렇게 사소한 일에 집착했지?’ 하는 생각이 드니까 감사하는 사람의 말에는 여유가 있다. 타인에 대한 포용의 한도가 그만큼 크다. 원망 불평으로 마음의 용량이 늘 마이너스가 되어 가면 타인에 대한 용납의 한도가 계속 줄어든다. 감사를 결단하고 훈련하자. 감사한 다음에 기쁨이 따라오고 불평한 다음에 짜증이 따라온다. 감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우리 삶을 이끌어 가지만 불평은 사탄이 원하는 방향으로 우리 삶을 이끌어 간다. 감사의 종점은 천국이고 원망 불평의 종점은 지옥이다. 2. 그리스도인의 감사, 넘치는 감사 우리의 감사가 어떠한 감사가 되어야 하는지 바울 사도의 권면을 들어 보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6~7).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했다면 우리 삶은 예수님 안에 있다. 예수님께 우리 인생의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것이다. 여기저기 왔다 갔다, 이리저리 오락가락하지 않고 예수님 안에 콕 박혀서 사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예수님 안에서 성장하는 여정이다. 말씀대로 살면서 굳센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는 것이다. 정리하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셨으니 예수님 안에 뿌리내리고 말씀 따라 사는 믿음이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바울 사도는 믿음이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감사가 넘치게 하라고 권면한다. 누가 믿음이 강한 사람일까? 감사하는 사람이다. 내 믿음의 강도는 감사가 말해 준다. 내 믿음이 명품인지 불량품인지는 감사가 보여 준다. 감사는 명품 믿음의 보증서다. 감사가 없다면 불량품 믿음이다. 감사는 넘치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넘치는 감사다. 자기 분량 이상의 감사를 하는 것이다. 내 기준 이상의 감사, 내 판단 이상의 감사, 내 감정 이상의 감사, 내 선택 이상의 감사다. 그러려면 ‘범사에 감사, 무조건 감사’가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범사에 감사, 무조건 감사’가 가능한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예수님을 주로 영접했기 때문이다. 주는 ‘주인’을 말한다.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시니까 감사하라는 것이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했으니”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영접했으니”라고 했다. 그리스도는 직분, 예수는 이름이다. ‘그리스도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는 강조하는 바가 다르다. 그리스도가 먼저 나오면 예수님이 그리스도, 곧 구원자로서 하신 일에 강조점이 있다. 구원자 예수님이 하신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떠난 내 죄 때문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다. 나의 주님이 되셔서 천국 가는 그날까지 내 삶을 인도하시며 보호하시고, 도우시며 책임져 주신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성경이 다시 쓰이기 전까지는 변하지 않는다. 내 삶의 형편과 조건은 오락가락해도 나를 향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 주님이 나의 삶의 주인이 되셔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도록 역사해 주실 것임은 변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 삶의 형편, 조건, 기분, 감정과 상관없이 감사할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범사에 감사, 무조건 감사, 일평생 감사할 수 있다. 감사하자.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어렵고 힘들고 괴로울 때 인생이 마음대로 안 될 때 감사하자. 감사하면 사탄이 틈타지 못한다. 영적 시야가 넓어지고 안 보이던 것이 보인다. 관계가 회복되고 인생이 달라지고 행복해진다. 아니 이미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Thanksgiving’뿐만 아니라, ‘Thanks-living’하자! 오정섭 목사(국제신학연구원 신학연구소)
  • 2022.05.0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다시보는 영산 신학과 목회
    영산의 세계선교
  • 선교는 주님의 지상 명령이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복음 전도와 선교에 대한 꿈과 비전으로 충만하게 된다(행 1:8). 성령님은 영산에게 대조동 천막교회 시절부터 세계선교의 꿈을 부어주셨다. 그때부터 영산은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은빛 날개를 타고 전 세계를 다니며 선교하는 꿈’을 품었다. 그 꿈처럼 영산은 당시 해외 여권을 얻기도 쉽지 않았을 때 이미 여러 나라를 다니며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다. “전 세계는 주님의 교구입니다.” 웨슬리의 유명한 말을 떠올리게 하는 영산의 고백은 절대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세계 최대 교회를 세우고 오대양 육대주를 다니며 선교 사역을 감당했다. 그가 머물렀던 수많은 선교 현장은 성령님이 역사하는 기적의 장소였다. 영산이 세계선교를 위한 뜨거운 열정을 갖게 된 배경은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7년 5월 세계오순절총회를 마친 영산은 100일 동안 18개국, 39개 도시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던 그는 결국 스위스에서 쓰러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 침대 밑에 놓인 엽서 한 장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주님의 종으로 부름 받았으니 이 시대에 한 획을 긋는 종이 되리라”라는 글귀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적고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다. 다시는 못 일어날 만큼 쇠약해졌던 영산의 몸은 이튿날이 되자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고 기적처럼 회복되었다. 그때의 체험은 영산의 사역 가운데 세계선교를 항상 강조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영산은 유럽 선교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세계 교회성장을 위해 봉사하는 국제기관을 조직하라”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1976년 11월 4일 국제교회성장연구원(이하 CGI: Church Growth International)을 설립했다. 영산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부흥성장에 관한 노하우를 전 세계 교회와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담임하고 있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에만 집중하지 않고 전 세계 교회가 함께 부흥하는 일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다. CGI는 설립 이래 2022년 현재까지 한국을 비롯한 100여 개국 이상에서 총 600회 이상 CGI 콘퍼런스를 개최했고, 여기에 전 세계에서 연인원 120만명이 참석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세계선교와 교회 성장에 이바지한 CGI는 2022년 10월 이영훈 목사를 제2대 총재로 만장일치 추대하면서 ‘다음 세대의 부흥’을 외치며 제2기 사역에 돌입하게 되었다. 영산은 세계선교의 사역을 더욱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2000년 3월 28일 DCEM(David Cho Evangelistic Mission)을 설립했다. 이 기구를 통해 전 세계 선교지와 선교단체 간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선교 자원의 교류에 힘썼다. DCEM은 교파를 초월해 영적으로 갈급한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 그리고 복음의 사명을 심어주는 기관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감당했다. 영산은 그 목회 사역 동안에 약 600회 이상의 해외 부흥회를 인도했는데 이런 왕성한 사역은 성령님이 주시는 비전과 열정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럼 세계 기독교 역사에서 영산의 선교 사역의 의미는 무엇일까? 20세기 기독교의 가장 큰 특징은 기독교의 무게 중심이 서구권에서 비서구권으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1980년대에 들어와서 비서구권의 기독교 인구가 서구권의 기독교 인구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기독교 신학이나 선교가 서구권 교회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서구권 교회는 갈수록 쇠퇴를 거듭했고, 반대로 비서구권의 교회는 급속히 성장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역사적 맥락 속에서 영산의 세계선교 사역은 기독교 선교의 주체를 서구권 교회에서 비서구권 교회로 전환하는 데 아주 지대한 역할을 했다. 영산은 선교가 ‘순복음’의 최우선 과제임을 보여주었다. 선교하는 교회가 진정한 ‘순복음교회’(Full Gospel Church)이고 선교하는 성도가 진짜 ‘순복음성도’(Full Gospel Christian)이다. 교회가 선교를 멈추는 순간 침체와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영산 안에 넘쳤던 복음의 확신과 순복음의 영성은 많은 사람의 가슴에 희망을 불러일으켰고 나도 하나님 사명에 쓰임 받고자 하는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의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David Yonggi Cho’라는 이름은 안다”라는 말이 수많은 증인에 의해 회자된 것만 보아도 그가 가진 세계선교의 열정과 영향력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만약 누군가 “순복음 신앙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에 나아가 선교하는 삶이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계선교에 평생을 바친 영산의 삶이었고, 그의 선교 정신을 이어받은 모든 순복음 성도들의 꿈이 되어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선배의 본을 따라 인내로써 믿음의 경주를 하라고 권면하고 있다(히 12:1). 오늘날 교회가 영산으로부터 반드시 전해 받아야 하는 믿음의 영적 바통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선교의 바통’이다. 이제 영산의 뒤를 이어 우리도 성령 충만함 가운데 ‘선교 바통’을 이어받아 주님 오시는 날까지 세계선교의 꿈을 이뤄가야 할 것이다. 국제신학연구원 제공
  • 2022.11.2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영산의 신유 사역 
  • 영산에게 신유 사역은 그의 핵심적인 목회 철학 중 하나였다. 영산은 신유의 기적이 과거 예수님 시대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사역임을 확고히 믿었다.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을 받았으면 믿음으로 값없이 병 고침 받는 것도 마땅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영산이 믿었던 신유의 은사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은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포함되어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영산에게 신유 사역은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표징이자 ‘아직’, 그러나 반드시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었다. 영산은 치유의 현장에서 예수님의 임재를 보았고 하나님 나라에서의 믿는 자의 부활을 보았다. 그래서 영산은 목회 현장이나 부흥회 사역에서도 병 고침을 강조했는데, 그가 인도하는 집회에서 질병의 치료를 경험한 사람들의 간증거리는 수없이 많다. 영산이 이같이 신유를 강조하게 된 것은 어떤 특정한 치유 신학을 공부한 결과가 아니었다. 그를 ‘신유의 종’으로 만든 것은 그가 처한 삶의 현장 속에서 실제 경험했던 치유의 하나님 때문이었다. 폐결핵 3기로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을 때 주님을 만나서 완치되었던 경험이 그것이다. 또 대조동 천막교회 시절 중풍에 걸린 여인이 낫고 걷지 못했던 소년이 일어나 뛰며 듣지 못했던 사람이 듣게 되는 기적이 나타났다. 이런 경험을 통해 영산은 하나님이 오늘날에도 병든 자를 치료하신다는 사실을 체득할 수 있었다. 자신의 삶과 목회 현실에서 신유의 역사를 분명하게 체험했기에 영산은 가는 곳마다, 서는 곳마다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 영산의 신유 사역은 교회 부흥에도 크게 기여했다. 실제로 영산의 개척교회가 빈민촌 지역사회에 깊이 뿌리 내리게 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치유의 기적이었다. 그래서 영산은 신유를 하나님 나라의 가시적인 표적으로 보고 목회 사역에 열심히 적용하고 실행했다.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으로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낫게 되는 신유 사역”(막 16:18)이 복음 전파에 동반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이후에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에 대해서 회고할 때도 신유 사역의 중요성을 언급한 적이 있다. 복음에 저항적이던 사람들이 육체의 질병을 치료받고 은혜를 받아 복음의 말씀을 세상에 나아가 강력하게 전하기 때문에 교회가 크게 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교회 공동체를 신유 공동체로 보았다. 영산의 신유 사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믿음이다. 영산은 그 어느 목회자보다도 병 고침에 대한 메시지를 많이 선포했고 신유의 기적도 많이 행했지만 정작 자신이 ‘신유의 은사’를 받았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성령이 필요에 따라 자신을 통해 은사를 나타내실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산 자신이 분명히 받았다고 주장하는 은사가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믿음의 은사’였다. “내가 받은 은사를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담대한 믿음입니다. 담대함을 가지고 믿음으로 선포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성경은 표적이 여러분의 믿음보다 앞선다고 하지 않습니다. 표적이 여러분의 믿음 뒤에 따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믿음의 역사는 천막교회 시절에 나타났다. 걷지 못하던 소년이 영산을 찾아왔을 때 처음에는 그가 낫는다는 것을 믿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영산이 한 시간이 넘도록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자 뭉게구름 같은 믿음이 그의 마음으로부터 차오르기 시작했다. 영산은 그때의 기분이 마치 지구를 자기 손으로 밀면 지구가 밀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간증한 바 있다. 하나님이 주신 이러한 믿음으로 기도하고 선포할 때 영산은 그 소년을 포함한 수많은 이들의 병을 고칠 수 있었다. 영산은 오늘날 병 낫기를 간구하는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믿음의 기도를 잘 드리지 못하거나 주님의 말씀에 담긴 뜻을 잘 알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한다고 말했다. 영산에 따르면 신유의 역사는 단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회복시키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실 때까지 성령님이 살아 역사하셔서 은사를 베푸시고 병든 자들을 일으키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산은 신유가 지금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임을 분명히 믿었다. 따라서 성도는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써 신유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기에 자신의 아픈 부분에 손을 얹고 믿음으로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영산을 통한 성령의 신유 사역은 여의도순복음교회뿐 아니라 국내외 수많은 교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신유의 복음을 포함한 예수 그리스도의 전인적인 순복음을 이해하는데 큰 유익을 주었다. 앞으로도 영산의 신유 사역의 원리를 계속 연구하고 실행함으로 새로운 신유행전의 역사가 계속 나타나길 희망한다. 국제신학연구원 제공
  • 2022.10.2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문서·방송 선교의 선구자…1988년 기독교 일간지 국민일보 창간
  • 영산은 미디어의 활용이 미미하던 시절, 문서 선교와 방송 선교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닫고 사역에 적용한 선구자였다. 영산은 자신이 가진 뜨거운 선교적 영성을 담아내어 빠르게 전파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 놀라운 교회 성장을 이루었다. 순복음의 신앙이 한국과 세계에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의 그 어떤 교회보다 멀티미디어를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문서 전도』의 저자 조지 버워는 “기독교 문서는 인쇄된 선교사”라고 말한 바 있다. 문서 선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보게 하는 말이다. 영산은 누구보다도 문서 선교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사역에 적용하였다. 1964년 당시 순복음교회 성도들에게 교회와 관련된 각종 소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순복음지』를 발간했다. 이것이 점점 발전하여 1978년에 이르러서는 영산의 설교와 칼럼, 성도들의 신앙 간증과 구역 성경 공부 및 교회 소식을 담은 『순복음뉴우스』가 되었다. 이후 『순복음가족신문』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오늘날까지 문서 선교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다. 영산은 또한 순복음교회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한국교회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월간 잡지 『신앙계』를 창간함으로 문서 선교의 폭을 확장했다. 『신앙계』는 기독교의 대중지,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위한 교양지, 불신자들을 위한 전도지, 교회를 하나로 묶는 기독교 잡지로서 자리매김했다. 해방 이후 대중적인 기독교 잡지로는 『신앙계』를 능가하는 잡지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신앙계』가 말씀에 기초한 성령운동의 건전한 보급과 한국교회 평신도들의 신앙 성장에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서울신학대학교 명예교수인 박명수 박사는 “『신앙계』야말로 오순절 신앙을 한국교회에 널리 전파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영산의 문서 선교의 열정은 『순복음가족신문』과 『신앙계』의 성공으로 끝나지 않았다. 1987년 한 이단 종교 단체가 일간 신문을 발간하려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영산은 만약 그 단체에서 신문을 발간하게 된다면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이 자명하다고 판단했다. 이를 두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가운데 기독교 일간지 창간에 대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1988년 세계 최초의 기독교계 일간지 『국민일보』가 창간되었다. 정부와 사회에 기독교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언론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영산은 신문사를 설립하는 과정 가운데 막대한 재정적 부담과 근거 없는 비난의 목소리로 큰 고통을 받았지만, 믿음의 확신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나갔다. 복음 실은 일간지 『국민일보』는 매일 하나님의 복음을 한국 땅에 전파하는 발 없는 전도사로서 한국 기독교의 성장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기독교 정신으로 발간된 최초의 기독교 일간지로서 한국 교계의 대사회적인 발언의 장으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나아가 기독교 문화의 채널로써 한국 사회에 기독교 세계관을 전파하는 사명도 이뤄가고 있다. 영산의 『국민일보』 창간은 대한민국 1200만 기독교인을 대변하는 신문으로서 한국 기독교 역사 가운데 매스컴 선교의 새 장을 열었다는 데 큰 의의를 가진다. 영산은 문서 선교뿐 아니라 방송 선교를 통해서도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당시 영산은 복음 전도의 방법을 새로운 형태로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도 방송 선교의 파급력과 중요성을 일찍 깨달았던 영산은 1966년 라디오 설교와 1979년 컬러TV 방송을 송출했다. 영산의 라디오 설교 방송은 1979년, 1980년 연속, 전국 청취자 애청 프로그램 조사 결과 청취율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청취자가 많았다. 이처럼 한국교회 방송 선교의 선구자는 단연 영산이었다. 당시 흑백 TV에 익숙했던 공중파 제작자들이 방송 장비와 시스템을 구경하기 위해 여의도순복음교회에 견학을 올 정도였다. 방송 선교는 교단의 장벽을 뛰어넘는 데 중요한 매체가 되었을 뿐 아니라 기독교의 울타리를 넘어 일반인들에게 오순절 신앙을 전하는 통로가 되었다. 영산의 방송 선교를 통해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이 설교 말씀을 듣고 구원받는 역사가 나타났다. 또 위성과 인터넷을 활용한 예배와 설교 실황은 각 지성전 및 지교회 설립과 더불어 교세 확장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영산의 방송 선교는 국내를 넘어 전 세계에 이르기까지 사상과 국경을 초월하여 복음이 전파되었다. 1982년에는 미국 TV 프로그램 제작 회사인 KCWC사의 특별 기획으로 주일 예배 실황이 미국, 캐나다,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이스라엘, 홍콩, 필리핀, 남아공 등 25개국에 동시 위성 중계되기도 했다. 이처럼 영산의 성령 충만의 복음은 21세기 정보화 시대와 함께 전 세계에 발 빠르게 퍼져나갔다. 영산은 커뮤니케이션의 대가였다. 설교뿐 아니라 설교를 전달하는 매체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아무리 훌륭한 설교라도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면 세계적인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을 것이다. 영산의 설교와 성령 충만의 영성은 멀티미디어 사역 시스템을 통하여 세계 곳곳에까지 전파될 수 있었고 이러한 사역이 세계 교회에 끼친 영향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복음의 메시지는 불변해도 그것을 전달하는 방법은 시대에 맞게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영산의 멀티미디어 사역이 우리에게 남겨준 값진 유훈이다. 국제신학연구원 제공
  • 2022.09.23 / 김용두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PDF

    지면보기

  • 행복으로의 초대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