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이대현 목사(순복음창원교회 담임) - 날마다 환승
  •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다메섹으로 가는 중이었다. 호기롭게 수행원을 거느리고 마치 마패를 쥐고 가는 암행어사처럼 당당하게 예수 믿는 사람들을 포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압송할 심산이었다. 중동의 한 낮 뜨거운 햇빛보다 더 밝은 광채를 보고 눈이 멀고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눈이 멀었다는 것은 그가 가지고 있던 신관과 신앙, 믿음의 개념이 무용지물의 암흑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말에서 떨어졌다는 것은 내가 하는 일이 옳으며 지금 가는 길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기에 정당하고 타협 할 수 없는 진리라고 생각한 교만의 자리에서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야말로 환승을 경험한 것이다. 환승은 한자로 ‘바꿀 환(換) 올라탈 승(乘)’이다.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무지한 열심에서 절대 진리의 길로 바꾸어 탔다는 말이다. 지하철을 이용할 때 환승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가고자 하는 최종 목적지 때문에 갈아타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환승을 의미한다. 내가 믿고 추구하던 것들이 예수님과 복음 앞에서 아무것도 아님을 인정하고 내 열심과 내 의(義), 내 기준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갈아타는 것이다. 때로 앞이 안 보이는 절망과 말에서 떨어지는 충격과 아픔, 공포를 경험하기도 한다. 인간은 질병과 고난, 한계와 죽음 앞에서 환승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성경은 아픔과 고난이 유익이라고 한다. 환승할 때 곧바로 교통편이 연결되면 왠지 기분이 좋다. 반면 지구반대편에서 한국으로 오는 선교사님들의 경우 환승 공항에서 12시간 넘게 기다릴 경우 공항 근처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되는 번거로움도 있다.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서 환승역이나 공항에서 계속해서 살지는 않는다. 천국을 향한 과정일 뿐이기 때문이다. 목적지가 분명하기에 잠깐의 수고는 너끈히 감수한다. 바울은 환승경험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사도행전에만 세 번이 나온다. 9장, 22장, 26장에서 유대인과 대제사장들 아그립바 왕 앞에서 당당하게 갈아타라고 요청한다. 이 땅에서 육의 한계와 죄성을 가진 우리들에게 구원의 환승 후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환승은 일회적으로 끝나지 않는다. 진리를 거스르는 육과 혼의 본성을 깨뜨리라고 순종, 복종, 피 흘리기까지 싸워 환승하라고 요청한다. 말씀과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맡기며 천국을 향해 우선순위, 시간, 만남, 순간의 환승을 날마다 결단하고 선택해야 될 이유다.
  • 2024.07.2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안태경 목사(여의도순복음청주교회 담임) - 아무튼, 믿음
  • ‘아무튼’의 이름으로 나온 책들이 제법 많다. 아무튼 메모, 아무튼 게임, 아무튼 떡볶이, 아무튼 산, 아무튼 드럼, 아무튼 여름, 아무튼 망원동, 아무튼 피트니스, 아무튼 영양제 등등. ‘아무튼 시리즈’는 관찰과 집중에 따른 저자의 성장 일기이다. 어느 하나만 파고드는 사랑과 깊이가 감동이다. 평범한 일상에서 놀라운 세심함과 공감력이 돋보인다. ‘아무튼’은 믿음. 늘 보는 성경이고 늘 드리는 기도지만 늘 데면데면. 뭔가 더 있다 싶지만 애통함이 없으니 깊이가 없고, 믿음이 없으니 할 말도 쓸 말도 별로 없다. 귀한 보화 같은 것이 옆에, 가까이 있지만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 도움 받을 능력이 지금 여기 있어도 알지 못하고 알아도 믿지 못한다. 아무튼,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게 산다. 그래서 엄한 곳만 보다가 내게 가까이 있는 도움을 놓쳐버린다. 최악은 그런 어리석음이 꾸준히 반복된다는 점이다. 어리석은 자는 이루지 못한다. 어리석음을 피하려면 아무튼, 믿음. 일상에서 탁월함이 나타나지 않아도 꾸준한 집중과 관찰을 통해 어느 순간 변화를 만들어내는 통찰이 일어난다. 길이 솟아나고 땅과 하늘이 말하고 생각이 금빛처럼 떠오른다. 놋문을 쳐서 부수고 쇠빗장을 꺾고 그 안에 있는 보화와 재물(사 45:2, 3)을 얻게 된다. 지혜의 영이 충만하면 순종(신 34:9)한다. 믿음이 있으니 싸워도 이기고 뭘 해도 잘되고 존귀해진다. 존귀한 자는 계획도 존귀하고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사 32:8) 하신다. 아무튼, 믿음. 삶에 대한 사랑을 끌어내고 소소한 만남에서 인생의 깊이를 깨닫는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신앙의 힘을 깨닫고 신앙의 능력에 이르는 길은 무엇일까? ‘아무튼 시리즈’가 관찰, 사랑, 믿음, 그리고 집중에 있다면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열심(사 37:32)에서 그 답을 찾는다. 우리의 사랑과 행복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힘과 능력은 ‘하나님의 열심’에 달렸다. 아무튼, 믿음이다.
  • 2024.07.19 / 김용두 기자

    임지택 목사(천안순복음소망교회 담임) - 간절함을 가지고 살자
  •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야구 예능 TV프로그램 ‘최강야구’가 있다. 야신이라 불리는 80세가 넘은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팀에 유독 이 노장 감독에게 이쁨을 받으려고 프로야구에서 유명했던 은퇴한 선수들이 많은 노력을 하는 걸 보며 웃을 때가 있다. 이 팀에는 아마추어 선수들도 함께 뛰고 있는데, 이 팀에서 뛰었던 아마추어 선수들이 프로야구에 지명을 받아 최근 프로야구 선수로 맹활약을 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그 선수들이 운동하는 것을 말할 때 ‘간절야구’라는 말을 한다. 대표적인 예가 한화 이글스에서 지금 주전으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황영묵 선수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선수는 고등학교 졸업 당시 프로야구 어느 팀에도 지명을 받지 못했다. 야구를 할 수 없으니 아르바이트 배달원과 독립 야구단을 거쳐 야구 예능 프로그램인 ‘최강야구’에서 뒤늦게 실력을 인정받아 이름을 알리게 되었고 프로야구팀에 입단까지 할 수 있었다. 프로무대에서 뛰고 싶어 했던 간절함 때문이었는지 매일매일 이를 악물고 최선을 다해 기대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으니 소속 팀에서도 인정을 받고 팬들이 응원가를 만들어줄 만큼 사랑 받고 있다. 현재는 팀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활약을 하고 있다. 그런데 최강야구에서 황영묵 선수를 지도했던 김성근 감독이 말한 게 화제가 되었다. “안된다고 포기하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된다. 하지만 된다 된다 된다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사람이 방법을 찾고 성공할 수 있다.” 믿음을 가진 우리들이 깨닫는 것은 무엇일까? 세상을 대충 살아선 빛을 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연약하고 부족한 게 많은 우리들이지만 세상에서 도움 받을 생각하지 말고, 사람 의지하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하여 반드시 응답받겠다는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우리는 간절히 기도하며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럴 때 하나님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시며 누가 보아도 절망적인 상황을 희망으로 변하게 하신다. 간절함을 가지고 시합에서 매 순간 최선을 다해 꿈을 이루고 있는 야구선수처럼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사는 신앙인은 다만 응답의 시기가 좀 이르거나 늦어지는 차이가 있을 뿐 반드시 빛을 보는 날이 있음을 기억하자. 간절함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순복음의 성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것이다.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들의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사 3:10).
  • 2024.07.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평신도를 위한 사도행전 이야기
    (93) 드디어 로마에 도착한 사도 바울
  • 3차에 걸친 선교여행 후 예루살렘에 갔다가 유대인들에게 사로잡혀 죽을 위기에 처한 바울은 로마 천부장의 손길을 통해 구출 받아 로마군 진영에 갇혔다가 다시 가이사랴로 이송되었다. 그러나 그곳의 로마 총독인 벨릭스와 베스도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고자 그를 계속 감옥에 가두어 놓자 바울은 황제에게 상소해 로마로 압송 되었다. 배를 여러 번 갈아타고 로마로 갈 때 처음에는 순항하는 듯 했으나 그레데 섬 인근 해역에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보름 이상을 죽음의 공포와 굶주림 속에서 표류하다가 육지가 보여 상륙하던 중에 배가 파괴되어 배 안에 있던 276명 모두 헤엄을 치거나 부유물을 붙잡고 육지에 올라 기적적으로 구조되었다. 그 섬은 멜리데(몰타)였는데 아직 폭풍우 중이고 초겨울 날씨라 주민들이 불을 피우고 먹을 것을 주며 그들을 정성껏 영접하였다. 멜리데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인 보블리오가 바울 일행을 친절하게 영접해 사흘 동안 머물게 했는데 마침 그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고통당하고 있었다. 바울이 그에게 안수하며 기도하자 깨끗이 고침 받게 되었다. 그러자 그 섬의 많은 사람들이 바울에게 와서 병 고침을 받았다. 그들도 바울 일행을 극진히 섬기고 로마를 향해 떠날 때에는 식량을 비롯해서 필요한 물품을 배에 많이 실어주었다. 석 달 동안 멜리데 섬에 머물러 겨울을 보낸 후 ‘디오스구로’(제우스의 아들들이라는 뜻)라는 이름을 가진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 수라구사(시칠리아 섬의 시라큐스)에 들어가서 사흘을 머물고, 이탈리아 반도 남쪽에 위치한 레기온으로 가서 하루를 지냈는데 남풍이 불어와서 이틀 만에 나폴리 만에 있는 보디올에 도착했다. 그곳에 믿는 형제들이 있어서 그들의 초청으로 일주일을 함께 지낸 후 육로를 통해서 드디어 로마에 도착했다. 로마의 형제들이 바울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로마의 관문인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세 여관’이란 뜻)까지 맞으러 나왔다. 바울은 그들을 보자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담대함을 얻게 되었다. 사실 바울은 다른 어떤 곳보다 로마 방문을 원했다.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롬 1:11~15; 15:22~24 참조). 이처럼 바울은 전 세계의 중심지였던 로마에 가서 복음 전하기를 원했지만 계속되는 박해와 환난, 광풍과 각종 위험으로 인해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행 23:11)라는 주님의 음성을 굳게 믿고 앞만 보고 나간 결과 꿈에도 그리던 로마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사 55:11). 김호성 목사(목회담당 부목사 겸 영산신학연구원 학장)
  • 2024.07.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92) 유라굴로를 극복한 비결
  • 3차에 걸친 선교여행 직후 예루살렘에서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잡혀 살해되기 일보 직전에 천부장 루시아의 개입으로 로마 군인들의 영내에 구금 되었던 바울은 그를 죽이려는 흉계가 드러나 삼엄한 경호 속에 가이사랴로 이송되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총독이 벨릭스에서 베스도로 바뀔 때까지도 정당한 재판 절차 없이 계속 감옥에 잡아 두는 것을 참다못해 바울은 로마 시민으로서 가이사에게 호소함으로써 로마로 이송돼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로마까지의 호송을 위해 바울은 배를 여러 번 갈아타고 그레데 섬의 ‘미항’이라는 항구에 도착했는데, 당시 겨울이 되면 항해가 불가능해져 바울이 그의 호송 책임을 맡은 백부장에게 이를 경고했지만 아무 문제없다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어 배를 출항시켰다가 얼마지나지 않아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고 만다. 엄청난 바람 때문에 배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밀려서 표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모래톱에라도 걸리면 배가 침몰하는 큰 위험에 빠질 수 있기에 닻을 내리고 배의 무거운 짐과 기구들을 바다에 버리며 바람에 맞서 버텨 나갔다. 여러 날 동안 폭풍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구원의 여망마저 사라져 가고 말았다. 바로 그 때 바울이 배 안에 있는 276명의 사람들을 향하여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하나님께서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행 27:22)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이제는 안심하라고 불안에 떠는 사람들을 다독였다. 십사일째 되는 밤에야 비로소 배가 육지에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알고서 암초에 걸리지 않도록 배 뒤편에서 닻 네 개를 내리고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날이 새어가자 바울이 그동안 식량을 아끼느라 거의 먹지 못한 사람들에게 마음껏 음식을 먹으라고 권하며 한 명도 생명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다 배불리 먹은 후 남은 식량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했다. 날이 새자 어떤 항만에 가까운 것을 보고서 선원들이 조심스럽게 접안을 시도하며 조금씩 육지를 향해 나아갔지만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에서 좌초하고 말았다. 군인들은 죄수들이 도망할 것을 우려하여 죽이자고 건의했지만 백부장이 바울을 구하기 위해 그것을 막고, 수영할 줄 아는 사람들은 바다에 뛰어들어 상륙하도록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널조각이나 배의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여 마침내 모두 육지에 올라 구조되었다. 바울 일행이 구조된 곳은 멜리데(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섬 남쪽의 몰타) 섬이었다. 폭풍 끝이라 비가 오고 날이 찼지만 섬 주민들은 불을 피워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모아서 불에 넣었는데, 뜨거운 열기 때문에 그 속에서 독사가 나와서 바울의 손을 물었다. 섬 주민들이 그 광경을 보고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행 28:4)라고 수군대었다. 그러나 바울이 그것을 불에 떨어 버리자 아무런 해를 받지 않았다. 섬 주민들은 바울의 손이 붓거나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생각했는데 시간이 흘러도 아무렇지도 않자 그를 신으로 여기게 되었다. 유라굴로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바울을 구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다”(행 27:24)라는 확신을 주셨고, 로마 백부장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죄수들을 죽이자는 군인들의 건의를 막아주셨다(행 27:42~43).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b). 김호성 목사(목회담당 부목사 겸 영산성서연구원 학장)
  • 2024.06.0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91) 광풍 유라굴로
  •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사로잡혔다가 안전 문제로 총독 관저가 있는 가이사랴로 이송되어 2년이 넘은 세월이 지났지만 벨릭스, 베스도 총독이 그의 결백을 알면서도 유대인들을 만족시키고자 계속 구금 상태로 내버려두자 로마 시민의 권리인 ‘가이사에게 호소’하는 카드를 쓰게 된다. 이후 바울은 가이사랴에서 배를 여러 번 갈아타고 로마로 압송되는 길에 오르게 되었다. 겨울이 다가와 항해가 어려워지자 바울이 안 된다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레데 섬의 항구인 뵈닉스까지만 가서 과동하자는 의견이 많아 출항했다가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게 되었다. 폭풍이 워낙 강해 배가 밀려 바람을 맞서서 나아갈 수 없어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표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룻배(구명정)를 잡아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동여맸다. 스르디스라는 모래톱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닻을 내리고 바람에 맡긴 채 계속 밀려갔다. 이튿날에는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사흘째 날에는 배의 기구들을 바다에 던져버렸다. 이러한 큰 풍랑이 여러 날 계속되자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지게 되었다. 언제 구조될지 모르는 상황에 식량을 아끼느라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도 못한 상태였다. 그때 바울이 가운데 서서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고 희망을 선포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려주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여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바울의 신앙이 잘 나타나 있다. 14일째 되는 날 밤 아드리아 해에서 표류하다가 자정쯤에 사공들이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고 바다 깊이를 재보니 스무 길이었는데 조금 가서 다시 재니 열다섯 길이 되었다. 암초에 걸리지 않도록 고물(배 뒷부분)에서 닻 넷을 내리고 날이 새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이물(뱃머리)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고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놓았다. 바울이 이를 알고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말해서 거룻줄을 끊어서 떼어버렸다. 날이 새자 바울은 사람들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면서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라고 말하면서,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주자 사람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먹었다. 배 안의 사람들은 모두 276명이었다. 배부르게 먹은 후 남은 양식을 모두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했다. 날이 새자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보여 배를 거기에 댈 수 있는지 의논한 후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고, 키를 풀어 속도를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에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갔다. 그런데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에서 배가 모래톱에 걸려서 뱃머리는 모래톱에 처박혀 움직일 수 없게 되고 배 뒷부분은 큰 물결에 부딪쳐서 깨지고 말았다. 그러자 호송 군인들은 죄수들이 헤엄쳐서 도망할 것을 막으려고 죽이자고 했으나 백부장이 바울을 살리기 위해 그것을 막고 헤엄칠 수 있는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서 육지로 올라가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수영을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널조각이나 배 물건을 의지해서 육지로 가도록 해 배 안의 사람들이 모두 상륙하여 구조 되었다. 이렇게 해서 바울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라굴로의 광풍 속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며 나가는 바울 때문에 다른 사람들까지 구원해주신 것이다. 김호성 목사(목회 담당 부목사 겸 영산성서연구원 학장)
  • 2024.05.1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쉽게 풀어 쓴 교회사 산책
    (68) 종교개혁⑧
  • 마르틴 루터의 수도원 생활
    루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기 맘대로 수도사가 되기로 결정한 아들에게 매우 실망했다. 문학 석사가 된 자랑스런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수도원의 두꺼운 벽 안에 갇혀 인생을 허비하겠다니 얼마나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겠는가? 루터의 부모는 훗날 나머지 두 아들을 흑사병으로 잃고 나서야 루터를 향한 노기를 누그러뜨렸다. 루터는 웃음도 허락되지 않는 엄격한 규율 속에서 고요한 삶을 살게 되었다. 당시 인문학을 중시하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은 경제적으로도 제법 넉넉했지만 수도사들의 방에는 난로는커녕, 짚을 엮어 만든 침대와 담요가 전부였다. 수도사들은 끊임없이 죄에 관한 교리를 들어야 했으며, 더 나아가 매일 자신의 죄를 기억하고 고해해야 했다. 그들은 “숨 쉴 때마다 죄를 지을 수는 없지 않은가!”라며 불평하면서도 하루에 몇 시간씩 고해성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루터 역시 자신이 6시간 동안 죄를 고백한 적이 있다고 친구들에게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죄는 씻으면 씻을수록 점점 더 드러나게 된다”며 고해와 속죄 의식을 비난했다. 수도원에서 루터의 특이한 행동들은 일종의 정신질환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기록에 따르면 루터는 자신이 집례하는 첫 미사 때 바닥에 쓰러져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루터는 이 일에 관해 “미사 기도문을 낭송하면서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벌벌 떨었다”고 회고했다. 성찬대에 서서 자신이 누구에게 기도하는지 하나님에게 감히 말하고 있는 자신은 누구인지 혼란에 빠지면서 제단에서 도망치고 싶었다고 했다. 어쨌든 루터는 이 일을 계기로 ‘제2의 바울’이라는 좋은 평판까지 얻었다. 이후 루터는 차부제, 부제를 거쳐 1507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로마 가톨릭의 성직 계급은 크게 주교, 사제, 부제로 나뉘는데 부제 밑 가장 낮은 성직이 차부제이다. 이때부터 루터는 성경을 연구하는 데 모든 정성을 쏟았다. 그는 붉은색 가죽으로 덮어씌운 라틴어 성경을 들고 다니며 집착하듯 성경을 읽었는데 나중에는 성경 전문을 거의 외울 수 있을 정도였다. 1508년 가을에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으로부터 강의 의뢰를 받고 윤리 철학을 가르치게 되었다. 왕복 수일이 걸리는 거리였지만 그는 강도들이 출몰하는 위험한 산길을 지나 농가를 지나다니며 성실하게 강의를 다녔다. 수도회 내에서 지위가 높아지면서 루터는 1511년에 비텐베르크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로 전출을 가게 되었다. 이같은 신분 상승으로 루터는 그때까지 경험하지 못한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29세가 되던 그해 루터는 난생처음으로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도원 별채의 독방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루터는 훗날 “초라한 쪽방에서 나와 교황의 권세를 누리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박사학위를 받은 1512년에는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정식 교수직도 얻게 되었다. 당시 비텐베르크의 영주는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였다. 그는 비텐베르크를 명망 있는 도시로 키우고자 했고 이를 위해 1502년 ‘하얀 언덕’(=비텐베르크) 위에 대학을 세웠다. 프리드리히 3세는 근처에 있던 라이프치히 대학을 뛰어넘겠다는 각오로 많은 투자를 했다.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와 프란체스코 수도회에 요청해 어렵사리 뛰어난 3명의 학자를 새로 영입했는데 그중에 한 명이 바로 마르틴 루터였다. 루터는 새로운 환경에서 성경을 더욱 깊이 연구했고, 특히 시편과 바울 서신서를 연구하면서 그의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김형건 목사(국제신학연구원 제1부원장)
  • 2024.07.2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67) 종교개혁⑦
  • 마르틴 루터의 학업과 수도사로서의 시작
    1488년 루터는 아이스레벤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입학했다. 거기서 읽기, 쓰기, 노래, 라틴어를 배웠다. 8년의 기초과정을 마치고 1497년 봄에 루터는 막데부르크에 있는 성당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이곳에선 공동생활형제단(FVC)과 함께 생활했는데 규칙적인 하루 일과와 경건생활 그리고 개혁적인 신앙과 일반학문을 강조하는 곳이었다. 루터는 이듬해인 1498년에 이곳을 떠나야 했다. 그의 부모가 재정적인 이유로 아이제나흐에 있는 성 게오르그 신부학교로 전학을 시켰기 때문이었다. 1501년 루터는 에어푸르트 대학에 진학했다. 루터의 부모는 아들의 출세를 원했기 때문에 법학자가 되길 바랐고 루터는 그 뜻에 순종했다. 당시 에어푸르트는 독일 대학 도시 중 가장 세련된 도시 중 하나였다. 거리엔 상가가 즐비하고 사람들로 붐볐으며 여러 가지 축제로 항상 시끌벅적했지만, 이곳에서 루터는 수도원이나 다름없는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다. 루터는 대학에서 배운 과목 중 토론술, 논리학, 변증법 등에 굉장한 재능을 나타냈다. 이 시절 루터와 함께 수학했던 친구들은 루터에게 ‘철학자’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루터는 타고난 언변술로 사람들을 사로잡았으며 어떤 주제의 토론에라도 환영받는 인사가 되었다. 이때 루터는 류트라는 만돌린과 비슷한 형태의 악기를 잘 연주했는데 “음악은 영혼을 기쁘게 한다”고 할 정도로 음악을 사랑하는 청년이었다. 루터는 성실한 학생이었고 아버지의 넉넉한 지원으로 짧은 시간에 인문학 석사 시험을 통과했다. 모든 것이 잘 되어가던 것처럼 보이던 이때 루터는 끔찍한 경험을 마주해야 했다. 그는 늘 작은 단검을 가지고 다녔는데 들판을 걷던 중 넘어지면서 단검이 다리를 찔렀다. 그런데 하필 단검 끝이 부러지면서 칼날 조각이 허벅다리에 깊이 박혔고 많은 피를 흘리게 되었다. 같이 걷던 친구가 의사를 불러오기 위해 인근 마을로 달려간 사이 루터는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히며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마리아여, 나를 도와주소서!” 다행히 의사의 도움으로 곤경을 면했지만 그날 밤에 상처가 악화되면서 사경을 헤맬 수밖에 없었다. 사고가 터진 그날은 마침 부활절이었고 루터가 죽었다 살아났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죽음의 문턱에 섰던 경험 때문일까 루터는 갑자기 법학을 포기하고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 입교하여 사제가 되기 위한 길로 들어섰다. 루터의 단검 이야기는 수도회 입교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거론되는 이야기 중 하나이다. 또 다른 한 가지 이야기는 잘 알려진 스토테른하임 부근에서 번개를 만난 이야기이다. 1505년 6월 루터는 스토테른하임에서 커다란 폭우를 만났다. 번개가 내리쳤고 그로 말미암아 루터는 죽음의 공포에 휩싸였다. 그는 간절히 기도하며 “내가 수도사가 되겠습니다”라는 서원을 했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루터는 1505년 수도원을 찾아갔다. 자신은 자유로운 신분으로 미혼이며 아무런 질병도 없다고 고백한 후 정수리 머리털을 밀었다. 주변머리만 남기고 가운데 부분은 모두 삭발하는 것이 당시 수도사의 관행이었다. 루터는 이렇게 수도사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김형건 목사(국제신학연구원 부원장)
  • 2024.06.2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66) 종교개혁⑥
  • 마르틴 루터의 출생과 가정 환경
    루터는 스스로 “나는 1484년 만스펠트에서 태어났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도 전해지고 있는 그의 절친 필립 멜란히톤과의 대화 내용을 따르면 루터의 확신은 다소 의심스럽다. “루터가 말했다. 나는 이제 60세가 되었네. 그러자 멜란히톤이 대답했다. 자네는 고작 58세가 아닌가? 자네의 모친이 직접 이야기해 준 것이라네. 그러자 루터가 대답했다. 자네들이 나를 너무 어리게 생각하는군. 나는 틀림없이 60세라네. 하지만 멜란히톤은 루터의 주장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이처럼 루터가 태어난 해는 명확하지 하지만 날짜는 정확히 알려져 있다. 11월 10일 자정이 다 되어가던 시각, 독일 아이슬레벤에서 태어났다. 다음 날이 성자 마르틴의 날이었기 때문에 그 이름으로 유아침례를 받았다. 지금은 멜란히톤의 주장을 받아들여 대체로 1483년 11월 10일을 루터가 태어난 날로 여기고 있다. 루터의 아버지 한스 루더는 광부였는데 쉬지 않고 일해서 작은 광산 몇 개를 소유할 정도로 출세한 사람이었다. 루터의 어린 시절 회상을 따르면 어머니 마가레테는 알뜰한 주부였다. 그녀는 자주 숲에 나가 우울한 노래를 흥얼거리며 오븐에 쓸 땔감을 줍곤 했다. 루터가 기억하는 그 노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아무도 너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단다. 그건 우리 잘못 때문이야.”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을 엄하고 벌주기 좋아하는 분으로 여겼다. 또한 미신적인 믿음도 강했는데 귀신과 악한 영들이 광산의 갱과 땅속 무덤에서 올라와 악한 일을 일으킨다고 믿었다. 루터의 형제 한 명이 죽었을 때 루터의 어머니는 옆집 여인이 요술을 써서 자신의 아이를 죽였다고 믿었으며, 루터 역시 옆집 마녀가 동생을 독살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루터는 당시 미신이 주는 두려움보다 자신의 친부모에게 느끼는 두려움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루터의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했다. 한번은 아버지에게 너무 가혹한 벌을 받고 아버지가 너무 원망스러워 가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또 어머니에게 피가 나도록 두들겨 맞았는데 호두 한 알을 훔쳤다는 이유였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가? 루터의 어린 시절은 과연 그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훗날 루터의 부인 카타리나는 집을 개방하고 루터의 친구들과 제자들이 언제든 숙식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인지 루터의 식탁은 항상 흥미로운 토론이 벌어졌다. 여러 가지 신앙적인 질문이나 현실적인 질문들이 오갔는데 이에 대한 루터의 대답을 기록한 것이 『식탁담화』이다. 이 책은 로마가톨릭이 거의 다 태워 버렸지만 기적적으로 한 권이 보존되어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그 식탁담화가 전하는 루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세상은 술에 취한 농부 같아서 말안장 위에 간신히 앉혀놓아도 다시 반대편으로 떨어진다네. 아무도 세상을 도울 수가 없어.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따르기 마련인데 세상은 사탄을 따르기 때문이네.” 루터와 그의 지인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어린 루터는 성장하면서 어느 순간 이른바 두 번째 태어나는 경험을 했다. ‘분노의 루터’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강인한 의지, 저항하는 힘, 반항적인 자아가 만들어진 것이다. 루터는 자신이 영혼에 매인, 오랜 시간 동안 풀지 못한 매듭들과 함께 살아왔다고 고백한 바 있다. 하지만 어둡고 우울하게 보이는 그의 어린 시절의 모든 것은 그를 종교개혁의 리더로 성장시키는 요람이 되었다. 김형건 목사(국제신학연구원 부원장)
  • 2024.05.2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뿌리깊은 순복음
    (150) 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63>
  • 가장 위대한 겸손의 본보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교만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사랑은 교만하지 않다. 사랑이 있는 곳에서는 교만은 눈 녹듯이 사라지게 된다. 사도 바울은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롬 12:9)고 기록한다. 진정한 사랑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을 속이고 자신조차 속여 거짓으로 포장된 교만의 허세가 있을 수 없다. 사랑하면 겸손해지고 스스로 낮아져 더욱 진실케 된다. 사랑에는 교만이 머물 자리가 없다. 성령 충만한 하나님이 사람에게 겸손이란 단지 ‘덕’(德)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겸손이 있는 곳에 천국이 있고 거기에 진정한 자유가 있다. 교만은 스스로 감옥에 갇히는 길이며, 멸망으로 치달아 결국 패망의 지옥으로 빠뜨리는 선봉이며(잠 18:12), 하나님도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심판의 원인이요 이유가 된다. 유대인의 탈무드에는 “하나님은 자기 스스로 높은 자리에 앉은 자를 낮은 곳으로 떨어뜨리며, 스스로 겸손한 자를 높이 올린다”라고 교훈한다. 한 닭장에서 두 마리의 수탉들이 서로 피가 터지게 싸움이 일어났다. 그들은 여러 마리의 암탉을 누가 차지하느냐를 놓고 혈투에 혈투를 이어갔다. 말리는 사람도 없는 터라 그 수탉들은 날개를 퍼덕이며 날카로운 부리로 상대방을 쪼아서 서로 피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마침내 깃털이 흰색인 수탉이 상처투성이가 돼 툇마루 밑으로 슬금슬금 도망쳤다. 상대적으로 싸움에서 이긴 깃털이 검정인 수탉은 우쭐해졌다. 결국 자신의 승리를 자랑하기 위해 당당하게 벼슬을 치켜세우고 요란스럽게 날개를 퍼덕이며 울타리 위로 올라가서 목청을 높여 과시하듯 크게 울어댔다. 바로 그때였다. 높은 나무에 앉아있던 한 마리의 매가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날아올랐다. ‘앗’하는 순간 검정 수탉은 피할 틈도 없이 매에게 잡히고 말았다. 매는 검정 수탉을 발톱으로 단단히 움켜쥐고 쏜살같이 날아올랐다. 결국 툇마루 밑에서 나온 흰 수탉이 닭장 안의 암탉들을 모두 차지하게 됐다. 이처럼 교만은 가장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단지 좋은 덕을 쌓아 인격을 수양하기 위해 겸손한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교만을 버리고 겸손해야 한다. 가장 위대한 겸손의 본보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겸손히 십자가를 지심으로 가장 위대한 승리를 이루셨다. 흉악한 죄인들의 형틀인 십자가, 그 가장 낮고 천한 형벌을 스스로 감당하셨다. 겸손의 십자가로 예수님은 하나님을 대적했던 온 인류의 교만을 깨뜨리고 죄와 사망의 길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이루셨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마다 고백해야 하는 진실한 첫사랑의 고백은 “예수님, 저는 죄인입니다. 제가 지닌 것은 다 죄뿐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오니 저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옵소서, 이제 저의 평생 자랑은 주님의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라는 고백이다. 이렇게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는 결코 교만할 수 없다.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잠 29:23).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4.07.1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49) 순복음의 7대 신앙-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62>
  •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적이고 하나님의 심판 피할 수 없으며 그 끝은 멸망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교만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절대로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는다. 야고보서 4장 6절은 기록하기를 “…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한다. 여기서 ‘교만한 자’는 헬라어로 ‘휘페르 파이네스다이’이다. ‘휘페르’라는 말은 ‘위로’(up)라는 뜻이고 ‘파이네스다이’는 ‘보이다’라는 뜻이다. 해석하면 ‘남들보다 두드러져 보이려 애쓰는 자’ 혹은 ‘남들보다 자신의 머리를 위로 치켜드는 자’라는 의미를 지닌다. 스스로 남들보다 높아 보이려고 애쓰며 더 나아가 하나님처럼 되려는 마음과 행동이 바로 교만의 참모습이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물리치시고’라고 기록한다. 이는 헬라어로 ‘안티탓소’이다. 그 의미는 ‘맞서다’ 혹은 ‘대적하다’이다. 단순한 의견충돌이나 말싸움 기싸움 정도가 아니다. 이 단어는 본래 전투 용어로서 ‘~에 대해 전투를 벌이다’라는 뜻이 있다. 전쟁터나 격투기 경기장에서 아군과 적군이 서로 맞서 싸우는 형세를 의미한다. ‘네가 이기든 내가 이기든 더 심하면 네가 죽든 내가 죽든’ 서로 맞붙어 싸우는 형국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주된 대적자로 삼으시고 싸우신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적이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으며 그 끝은 멸망이다. 성령 충만한 성도가 교만을 버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윗과 솔로몬 다음으로 명성을 떨친 남유다의 웃시야 왕은 오랜 치세를 통해 군사력과 아울러 나라의 경제력도 크게 신장시켰다. 블레셋과 아라비아를 정복하였고 암몬족으로부터 조공을 받았으며 전 국토를 요새화하였고 군대를 재편성하였다(대하 26:14~15). 그는 왕으로서, 행정가로서, 군의 총사령관으로서 탁월한 수완을 발휘해 왕국 분열 이래로 유다의 국토를 가장 넓게 통치했다. 하지만 그의 능력이 곧 그의 약점이 됐다. 웃시야 왕은 교만하고 방자해져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일인 성전 제단의 분향을 자기 손으로 하고자 했다. 대제사장 아사랴와 ‘용감한’ 제사장 팔십 명이 뒤따라 들어가 웃시야 왕을 가로막았다. 그러자 웃시야는 분노를 발하였다. 그 순간 나병이 웃시야 왕의 이마에 번져 나병 환자로 여생을 보내게 되었고, 야훼의 성전에 들어갈 수 없는 몸이 되었으므로 별궁에서 홀로 나병을 앓으며 지내야 했다(대하 26:18~21). 웃시야 왕은 교만해져 방자히 행하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것이다. 사랑은 교만치 않다. 사랑이 있는 한 교만은 사라지고 녹아 없어지게 된다. 사랑에는 교만이 머물 데가 없다. 겸손이란 단순한 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겸손할 때에 천국이 있고 거기에 참된 기쁨이 있으며 진정한 자유가 있다. 교만은 스스로 감옥으로, 지옥으로 빠지는 지름길이다(잠 16:18). 성령 충만한 성도는 모든 교만을 내어쫓고 겸손히 십자가를 바라보는 신앙으로 나아가야 한다.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4.06.1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48) 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61>
  • 예수님 마음 품은 스스로 겸손하고 낮아진 삶 참된 영광과 은혜 넘쳐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교만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교만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자기 자신의 위대함과 훌륭함에 도취돼 우쭐해 있는 상태’이다. 다시 말해 스스로 과대평가한 작은 위대함과 사실 별것도 아니지만 스스로 높아져 버린 자만과 우월감에 자아도취 돼버린 상태를 자랑하고 자신을 뽐내는 것이 바로 ‘교만’의 민낯이다. 사람은 무언가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자랑하고 드러내고 싶어 한다. 더불어 남들이 그것을 인정해 주고 알아주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며, 오히려 혹시라도 그 자랑거리를 비난하거나 무시하면 죽기 살기로 싸우고 덤벼든다.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당시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부했다. 기도도 많이 하고 금식도 자주 했으며 십일조 생활도 철저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대단한 자부심과 신앙적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위선을 꿰뚫어 보신 예수님은 그들의 신앙에 대해 거짓과 위선이 넘치는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신랄하게 비판하셨으며(마 23:13~15; 23:27~28) 그들에게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고 겪하게 꾸짖으셨다(마 23:33). 스스로 철저하게 훌륭한 신앙인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께서 ‘칭찬’이 아닌 ‘책망’으로 그들을 대하자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했고,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말았다. 이처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죽인 그 마음에는 스스로 높이 평가한 자신들의 위대함과 훌륭함에 취해 뽐내고 싶어 하는 교만이 가득 차 있었다. 빌립보서 2장 3절은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고 기록한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처럼 자기 스스로를 높이는 교만의 노예가 되면 모든 일에 다툼이 일어나고 허영으로 끝나고 만다. 성령으로 충만해 참된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들은 피차 서로를 섬기며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를 높여주고 돌봐주는 사람이다(빌 2:4). 스스로 다른 사람보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 결코 교만의 덫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아름답게 창조하신 이유는 스스로 교만의 굴레에 얽매여 교만의 종노릇 하는 삶을 살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다. 성령 충만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것을 가지고, 마치 스스로 잘난 것처럼 뽐내거나 자랑하지 말고 교만이 스스로를 속이지 못하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겸손한 삶, 낮아지는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빌 2:5~8). 거기에 진정한 영광과 충만한 은혜가 있다. 낮은 자리를 찾아가야 한다. 스스로 낮아지면 하나님의 손에 의해 가장 존귀한 자로 인정받고 존귀한 자리에 앉게 될 것이다(눅 14:10~11).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4.05.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기독교 설교자 열전
    키프리아누스(Ⅰ)
  •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주교 이교도 부모에게서 태어나 늦은 나이에 개종 로마 박해 시기 교회 일치 이끌어 타스키우스 카이킬리우스 키프리아누스(Thascius Caecilius Cyprianus)는 A.D. 200년경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서 태어났다. 부유했던 그의 이교도 부모들은 그에게 법과 수사학을 가르쳤고 약 245년 기독교로 개종하기까지 그는 카르타고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개종 이후 침례를 받는 과정에서 키프리아누스는 그때까지 자신을 사로잡았던 무익하고 죄로 가득한 생활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특이한 것은 침례를 받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그가 카르타고의 주교로 선출되었고 서임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의 주교 선출에는 그의 경쟁자였던 노바투스와 그를 따르는 감독들의 적잖은 반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키프리아누스의 생애에서 있어서 매우 중요한 두 가지의 사건이 있다. 첫 번째는 로마 황제 데시우스의 박해였다. 249년 황제가 된 데시우스는 로마에 닥친 야만족의 침입, 경제적 위기, 사회적 불안이 로마 시민들이 전통적으로 섬겨오던 신을 저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신들을 다시금 잘 섬긴다면 로마의 영화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에 로마의 옛 신들을 거부하는 모든 사람을 반역자로 여겼고 멸절시키려고 했다. 250년 기독교에 대한 혹독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데시우스의 기독교 박해는 이전 박해와는 달리 기독교인들을 살해하는 대신 협박하고 고문하고 회유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기독교 신앙을 버리도록 하는 것이었다. 특히 로마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숭배한 사람들에게 증명서를 발부했는데, 이 증명서가 없는 사람은 범죄자로 취급했다. 이런 상황에서 황제의 회유에 변절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를 거부하며 투옥되고 마침내 순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박해로 인해 기독교 내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존재하게 되었다.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가 죽음을 맞이한 순교자들(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누스, 로마 감독 파비안, 안디옥 감독 바빌라스 등), 감옥에 가는 것도 불사하며 굳건히 신앙을 지킨 고백자들(Confessors) 그리고 신앙을 버린 배교자들이었다. 이 박해 과정에서 키프리아누스는 목숨을 부지했다. 그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교인들의 간청으로 피신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고 자신의 교인들을 돌보기 위해 1년 동안 은신하라는 환상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어떤 주장이 맞건 간에 그는 생명을 부지했고 여러 통의 편지를 보내 자신이 도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널리 알렸다. 자신의 주교를 잃은 로마의 감독들이 그에게 편지를 써서 유감을 표했기 때문이다. 251년 데시우스가 고트족과의 전투에서 죽자 기독교인을 향한 박해가 그쳤다. 그러나 박해가 사라진 교회의 상황은 이전보다 더욱 복잡해졌다. 앞서 언급했듯이 교회에는 박해 시기 신앙을 지킨 고백자들과 그 반대에 서있는 변절자들이 공존했기 때문이다. 신앙을 버린 변절자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교회의 최대 숙제였다.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를 했던 목회자들과 교인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놓고 갈등을 겪었던 한국교회와 같이 4세기 교회 역시 그런 갈등의 격랑 속으로 빠져들게 된 것이다. 변절자들을 절대 교회 공동체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경론자들과 그들이 회개한다면 다시 받아들여야 한다는 화해론자들이 팽팽히 대립했다. 점점 분열의 가운데로 빠져들어가는 교회를 지켜볼 수 없었던 키프리아누스는 감독회의를 소집했고 다음과 같이 결정했다. ① 로마 제국이 제시하는 제사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은 조건 없이 교회로 받아들일 것 ②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임종 시나 새로운 박해 시기에 회개의 진실성을 보일 때 교회로 받아들일 것 ③ 제사에 참석했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은 교회로 받아들이지 말 것 등이다. 그러나 252년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 황제의 박해가 일어나자 배교자들의 복원 사업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많은 배교자가 박해를 통해 자신의 신앙을 증명해보이길 원했기 때문이다. 키프리아누스의 생애에 있어 중요했던 두 번째 사건은 250년 부활절에 에티오피아에서 창궐한 흑사병이다. 이 전염병은 이듬해에 로마는 물론 그리스와 동쪽으로 시리아에까지 전파되었다. 무려 20년 동안 지속됐던 흑사병으로 인해 로마에서만 하루에 5000명의 사람이 죽었다. 이 전염병의 급속한 전파 이유는 가울을 공격했던 게르만족과 같은 이민족들이 일으킨 수많은 침략 전쟁 때문이었다. 이 전염병을 ‘키프리아누스의 흑사병’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저서 『죽음』(On Mortality)에서 이 사건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흑사병의 원인을 기독교인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반박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교회가 흑사병의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흑사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자선과 봉사를 베푸는 사랑의 장소임을 강조했다. 조지훈 목사(한세대 설교학 교수)
  • 2024.07.12 / 이미나 기자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Ⅲ)
  • 크리소스토무스의 설교 약 600편 남아 설교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 전달 사회 정의에 관심 가졌던 ‘자선의 예언자’ 다양한 수사학 기법 사용하기도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의 설교문은 약 600편이 남아있다. 이들 대부분은 안디옥에서 행한 것이며 속기사들이 기록했다고 한다. 이 설교들을 통해 그의 설교가 적어도 1시간 이상 지속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의 설교의 특징은 무엇일까? 남아있는 그의 설교를 통해 몇 가지 특징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크리소스토무스는 설교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하나님의 말씀 전달이라고 믿었다. 그는 설교자가 인간적인 찬사나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기를 기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가 청중들의 찬사를 강력히 거부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가 설교했을 때 많은 경우 청중들은 자주 박수를 쳤다고 한다. 그러나 박수갈채에 환호하는 대신 그는 박수를 치는 청중들을 강하게 질책했다. 그가 그들을 질책한 이유는 설교자가 칭찬에 대한 열망으로 설교하게 되면 청중들에게 보탬이 되는 설교가 아니라 그저 그들을 즐겁게 해주는 엔터테인먼트식 설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가 청중들이 보내는 박수갈채를 거부했던 이유는 그들이 선포된 말씀을 귀가 아니라 마음으로 듣고 삶 속에서 행하길 원했기 때문이었다. 설교란 하나님의 말씀이 성도들의 마음에 닿아 그들의 마음을 감동하고, 마침내 그들의 생활방식이 변화되는 것임을 크리소스토무스는 명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둘째, 청중의 박수와 찬사를 거부했던 크리소스토무스는 당시 안디옥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그리스문화를 반대했다. 그리스문화는 이교도적이고 세속적인 것이었다. 천국에 이르는 길에 방해만 될 뿐이었다. 그가 비기독교적인 자료 중에는 진리가 없다고 생각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셋째, 크리소스토무스의 설교 중에는 금욕주의적인 성향을 띄는 것들이 많았다. 그가 금욕주의적인 성향을 갖게 된 것은 381년 집사 안수 후 가난한 사람들과 관계를 갖게 되면서부터였다. 이런 그의 성향 때문인지 크리소스토무스는 경제적인 부와 자선의 의미를 자주 다루었고 사회 정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다. 정교회 신학자 중 한 명인 조지 플로로브스키는 크리소스토무스를 ‘자선의 예언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플로로브스키에 따르면 크리소스토무스는 인간의 번영은 가장 위험한 것이며 혹독한 핍박보다 더 잔혹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번영이야말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아픔을 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었다. 번영에 사로잡힌 인간은 부주의한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Father George Florovsky, “Saint John Chrysostom: The Prophet of Charity”, 「St. Vladimir’s Seminary Quarterly」 (1955): 37). 넷째, 크리소스토무스가 당시 세속적인 문화를 배격했다고 해서 그의 설교에서 완전히 성경 이야기만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청중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직유와 은유를 사용했다. 직유는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유사성이 있는 다른 대상에 빗대어 표현하는 수사법”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어릴 적 불렀던 동요의 가사 중에 ‘사과 같은 내 얼굴’이라는 표현이 바로 직유법이다. ‘A는 B와 같다’ 또는 ‘B 같은 A’라는 식으로 표현되며, ‘∼ 같은’, ‘∼처럼’, ‘∼ 듯이’ 등이 쓰인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비유법이다. 한편, 은유는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다른 대상에 비겨서 표현하는 것이다. 직유와는 달리 ‘A는 B이다’라고 표현하며 A를 B로 대치해버린다. “손이 얼음장이네”라는 표현은 손이 얼음장이 아니라 얼음처럼 차갑다는 의미이다. 크리소스토무스는 이런 직유와 은유를 통해 설교의 내용을 청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만들었다. 이뿐 아니라 특별한 단어나 소리의 반복, 수사학적 질문과 대답, 익살스럽거나 쾌활한 이야기 등을 사용해 청중들이 자신의 설교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크리소스토무스가 이와 같은 수사학적 기법들을 사용했던 것은 그가 어릴 적 리바니우스 문하에서 수사학을 공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수사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기독교 신앙을 위해 수사학자나 소피스트의 길이 아니라 신학자의 길을 선택했다. 다섯째, 교리문답식 설교에 있어서 크리소스토무스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 크리소스토무스의 설교 중에는 침례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교리문답적 설교들이 담겨있다. 당시 많은 설교자가 교리문답적 설교에서 주기도문, 침례에 대한 신조, 성례전의 의미에 대해 다루었다. 그러나 크리소스토무스는 그런 의식을 거행한 이후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 의식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며 더 중요한 것은 평생을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었던 것이다. 조지훈 목사(한세대학교 설교학 교수)
  • 2024.06.07 / 이미나 기자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Ⅱ)
  • 안디옥교회의 문자적 성경해석을 따라 구약성경은 오실 예수님을 예언한 것 사도행전의 저자를 누가라고 주장해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가지는 권위는 설교자 자신의 권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부터 오는 권위이다. 시드니 그레이다누스 교수는 “설교자들이 주님께로부터 말씀을 받고 그 받은 주님의 말씀을 설교할 때라야 그들의 권위가 인정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시드니 그레이다누스, 『성경 해석과 성경적 설교』, P.34). 설교자에게 가장 중요한 사역 중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잘 해석하는 것이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성경해석은 크게 두 가지 흐름을 보여왔다. 바로 알렉산드리아교회가 사용하던 알레고리적(풍유적) 해석과 안디옥교회가 사용하던 문자적 해석이다. 알레고리적 해석에 대해서는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누스의 생애와 설교 방법론을 살펴보면서 이미 설명했다. 이번 호에서는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의 설교 방법론을 다루기 전에 그가 사용했던 문자적 해석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한 것은 그의 개인적인 성향 때문이 아니라 그가 자랐던 안디옥교회의 영향 때문이었다. 안디옥교회의 지도자들은 알렉산드리아교회의 지도자들이 강조했던 알레고리적 성경해석을 거부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이 성경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성경 단어들이 가지는 의미를 밝히는 것이요, 성경에서 상식적인 의미를 찾는 것이다. 알레고리적 해석처럼 성경 본문 속에 숨어있는 의미가 아니라 성경의 문자가 가지는 직접적이고, 표면적이고, 문법적인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었다. 특히나 안디옥교회의 성경 읽기가 중요한 것은 그들이 구약성경을 신약성경의 사건들을 위한 예표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예언자들이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의식적으로 이야기”했다는 것이다(베르너 진론드, 『신학적 해석학』, P.43).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안디옥교회의 지도자들이 알레고리적이고 영적인 해석을 완전히 거부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알레고리로 구약성경을 해석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왕대일, “성서해석사에서 배우는 설교의 과제”, P.29). 결론적으로 알레고리적 해석과 문자적 해석은 서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는 성경해석법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안디옥교회가 성경 본문의 단어와 문법이 가진 중요성을 강조할 때, 알렉산드리아교회의 지도자들은 성경 본문이 가진 보다 깊은 의미를 깨닫는 것을 강조했기 때문이다(왕대일, P.29).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데 이 방법론들은 좋은 도구들이다. 안디옥에서 나고 자랐으며 신학교육을 받은 크리소스토무스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했던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문자적 성경해석을 옹호했던 그는 성경을 읽을 때 이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문법적인 의미와 역사적 의미를 선호했다. 문법적인 의미는 성경이 가지는 상식적인 의미를 찾는 것이었고 역사적 의미라는 것은 전통적으로 인정되어온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었다(폴 스콧 윌슨, 『그리스도 설교의 역사』, P.55~56). 특히 그는 성경에서 발견되는 은유적인 표현이 성경 밖에 존재하는 의미를 가리키기보다는 성경 본문의 문자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했다. 성경 본문의 문자적인 의미를 강조했던 크리소스토무스의 성경해석에는 몇 가지 특징들이 있었다. 첫째, 구약성경을 그리스도와 관련해서 이해했다. 그는 구약성경을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예언한 글’로 생각했다. 또한 구약 시대의 유대 절기를 더이상 준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진리 자체[예수 그리스도]가 와서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폴 스콧 윌슨, P.56). 둘째, 크리소스토무스는 복음서 연구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복음서 사이의 차이점을 불리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부조화들이 “모든 의심들로부터 복음서를 건져주고 오히려 [복음서] 저자들의 특징에 대해 더 명확하게 말해준다”라고 믿었다(O. C. 에드워드, 『교부들의 설교』, P.97). 또 마태복음 서두에 기록된 예수님의 계보에서 마리아 이전에 등장하는 세 여인, 즉 다말, 룻, 밧세바 등 3명만 언급된 이유를 설명하려고 했다. 셋째, 크리소스토무스는 사도행전의 저자가 누가라는 사실을 밝혀내려고 했다. 그는 사도행전의 주제가 성령의 역사라는 사실에 주목했고 그 저자가 바울의 동료였던 누가라는 사실을 주장했다. 이 밖에도 그는 바울의 편지가 회중을 위한 감사로 시작한다는 점에 주목했고, 로마서가 기록된 이후에 골로새서가 기록됐고, 다음으로 디모데후서가 기록됐다고 추론했다. 이런 크리소스토무스의 성경해석법은 “당대의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오히려 오늘날의 신약학자들과 더 유대감이 있어 보인다”(O. C. 에드워드, P.98). 조지훈 목사(한세대학교 설교학 교수)
  • 2024.04.12 / 이미나 기자

    기독교 렌즈로 보는 문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
  •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있다. 약 2000년의 기독교 역사 안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은 시대를 막론하고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어넣었으며, 이는 뛰어난 예술 작품들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오늘 다루게 될 마티아스 그뤼네발트(Matthias Grunewald, 1470~1528)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도 그중 하나이다. 그뤼네발트에 관해서는 16세기 초 독일에서 활동했다는 점 외에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그가 남긴 26점의 회화와 37점의 소묘작품은 모두 성경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특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주요 소재로 삼고 있다. 후기 고딕 양식과 북유럽 회화로부터 사실주의 기법의 영향을 받은 그뤼네발트는 강렬하고 과장된 표현방식으로 20세기 초 표현주의의 선구자 중 하나로 인정받는다. 그뤼네발트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은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이젠하임에 위치한 성 안토니오 수도원의 종교 제단화로 제작된 작품이다. 2.7m 높이와 3m 너비의 여러 패널에 그려진 이 제단화는 당시까지 전례 없는 크기였으며, 수태고지, 예수님의 탄생, 십자가, 부활의 장면 등 총 9개의 유화로 이루어져 있다. 완성되기까지 4년이 걸린 이 작품은 현재 프랑스 콜마르의 운터린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라는 제목은 이 제단화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그림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그림에서 비롯되었다. 그림 속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참혹한 모습은 르네상스 미술가들이 종교화에서 추구했던 이상적인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예수님을 성스럽고 근엄하게 표현한 기존 작품들과 달리 매우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그뤼네발트의 그림은 보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고통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쓰러지는 마리아를 부축하는 사도 요한과 심하게 몸이 휘어지면서 강렬한 슬픔을 나타내는 막달라 마리아가 기도하는 자세로 그려져 있다. 오른쪽에는 예수님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는 침례 요한이 등장하는데, 그의 얼굴 옆에는 라틴어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illum oportet crescere me autem minui)는 요한복음 3장 30절의 말씀이 적혀있다. 예수님 발아래 십자가를 짊어지고 성배에 피를 흘리고 있는 어린양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오신 예수님을 나타낸다(요 1:29). 한마디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은 요한복음의 요약판이라 부를 만하다. 짙고 어두운색으로 그려져 있는 십자가의 종렬은 거기에 매달려 있는 예수님의 핏기 없는 몸과 잘 대비된다. 예수님의 머리 상단에는 INRI라 쓰인 팻말이 붙어있는데, 이는 라틴어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의 약자로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를 의미한다. 숨이 다한듯한 예수님의 고개는 바닥을 향해 힘없이 떨구어져 있다. 십자가의 휘어진 횡렬 위에 끊어질 듯 양팔이 길게 늘어져 있는 모습은 예수님의 실재적인 무게감과 함께 죽음의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날카로운 가시면류관이 살갗을 파고들어 상처 난 머리, 미간에 깊게 잡힌 주름과 감긴 눈, 치아와 혀를 드러내며 새파랗게 질린 채 말라버린 입술은 예수님이 견뎠을 극심한 괴로움을 짐작게 한다. 이와 함께 움푹 들어간 배와 한껏 부풀어 오른 갈비뼈의 대비는 예수님이 숨 막히는 고통 속에서 온 힘을 다해 마지막 숨을 들이쉰 듯한 장면을 연출한다. 십자가의 뒤쪽까지 튀어나올 정도로 큰 대못이 박혀 뒤틀려 있는 손은 마치 예수님이 하늘을 향해 자신을 바치는 듯한 묘사를 하고 있다. 예수님의 몸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푸릇푸릇한 반점과 상처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는 당시 유행한 맥각병의 상처와 매우 유사하다. 여러 전염병이 확산했던 중세 후기에 성 안토니오 수도원 병원은 주로 맥각병 환자를 돌보았다. 맥각병은 곡물에서 발생하는 균으로 인해 피부가 손상되고 상처가 깊이 들어가 신경과 혈관을 훼손하여 죽음까지 이르게 하는 무서운 질병이었다. 당시로 보면 1500년 전에 일어난 십자가 사건인데 왜 그뤼네발트는 예수님의 몸에 맥각병으로 보이는 상처들을 그려 넣었을까? 이는 그림을 접하는 환자들이 자신들이 겪는 고통을 함께 느끼며 그 아픔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계신 예수님을 통해 위안을 얻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수도원은 환자들을 제단화 앞으로 데려가 그림을 묵상하도록 권면했고 그들은 그림 속 예수님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뤼네발트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온전한 희생과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상기시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온전히 순종하여 스스로 대속 제물이 되사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악과 허물을 대신 지셨다.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감히 가늠할 수 없는 고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겪어내심으로써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셨다. 우리는 매주 예배당에서 십자가를 마주한다. 그때마다 우리의 마음은 날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에 대한 감격으로 가득 차는가? 어쩌면 우리는 십자가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매일의 삶에서 그 가치를 깊이 묵상하는 일에 소홀해지지 않았을까. 십자가의 가치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서는 주님의 은혜에 대한 진정한 감사가 삶 속에 깊이 자리 잡기 어렵다. 오늘 그뤼네발트의 작품을 묵상하면서 십자가의 은혜가 당연하게 되어버린 삶을 돌아보고 그 의미를 다시금 발견하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의 슬픔과 고통을 짊어지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절대 긍정의 믿음과 소망을 얻기를 기도한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4.07.19 / 김용두 기자

    깊은 시선으로 바라본 세계
  • 나뭇잎 위에 화려하게 내려앉은 계절의 빛깔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햇살이 머물다 간 자리마다 단풍이 곱게 물든 그림 같은 풍경에 감탄한 적이 있는가? 프랑스의 소설가인 미셸 투르니에(Michel Tournier)의 산문집 『예찬』(Celebrations)에 보면 이런 글이 있다. “예찬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어떤 아름다운 음악가, 한 마리 우아한 말, 어떤 장엄한 풍경, 심지어 지옥처럼 웅장한 공포 앞에서 완전히 손들어 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투르니에는 우리가 자연과 인생을 바라볼 때 깊은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깊은 시선이 머무는 곳에서 무심코 지나쳐 버렸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때, 우리의 마음은 감동으로 가득 차고 우리의 입술에서는 예찬이 흘러나오게 된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How Great Thou Art)는 스웨덴 민요의 선율에 예찬시를 덧붙여 만든 찬송가이다.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솜씨에 대한 기쁨과 감사, 경탄과 경외감이 담겨있는 이 찬송가의 가사는 원래 ‘오 스토어 구드’(O Store Gud: O Great God)라는 시로서 1885년에 스웨덴의 시인이자 평신도인 칼 보버그(Carl Boberg)가 쓴 것이다. 찬송가학자 J. 어빙 에릭슨(J. Irving Erickson)에 따르면 이 시는 보버그가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뇌우와 강한 바람을 동반한 폭풍을 경험하고 뒤이어 활짝 갠 하늘의 태양과 숲의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면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자연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오묘하고도 놀라운 창조 솜씨를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겼던 그의 경험이 시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가사는 스웨덴 전통 민요와 만나서 시가 쓰인 지 3년 후인 1888년에 교회에서 처음으로 불렸다. 이후 이 찬송가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 독일어, 러시아어로 번역 및 각색되었다. 그러다 1920년대 초 영국 감리교 선교사 스튜어트 하이네(Stuart K. Hine)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고 현대식으로 새롭게 편곡되어 오늘날 우리가 애창하는 찬송가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하이네는 원가사의 핵심 줄거리를 손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내용을 추가했다. 하나는 러시아의 어느 한 마을에 있던 사람의 회심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근과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우크라이나를 떠나 영국 서머싯(Somerset)에 정착한 폴란드 난민들을 대상으로 선교 활동을 하던 중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하이네는 실향민이 된 그들이 큰 고난을 겪으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천국에서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게 된 것이다. 이 찬송가의 가사를 보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 두 절은 창조주 하나님의 놀라운 위엄을 찬양하고, 후반부 두 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다시 오심에 대한 소망을 기대한다. 하늘에 펼쳐진 수많은 별 들과 함께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뇌성은 시편 기자가 기록했듯이 하나님의 권능이 야훼의 소리(시 29:1~11)로서 위대함을 선포하고(1절), 숲의 새와 고요히 흐르는 시냇물은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시 46:4)하는 찬양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의 솜씨가 온 만물로 숨을 내쉬고 있음을 보여준다(2절). 이는 창조주의 위엄이 만물을 통해 드러나고 만물이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한다(고전 8:6).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이 땅에 행하신 일 중 가장 위대한 것이 구원의 위업인데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사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기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다(3절). 죄가 하나도 없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그를 믿는 모든 이에게 영생을 주신 일은 주 예수의 이름이 우리 가운데서 영광을 받기 위함인 것이다(요 3:16; 살후 1:12). 나아가 영원한 나라, 저 천국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그날을 기대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4절).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는 근심과 고통으로 인해 눈물의 양식을 먹으며 살아가지만, 승리의 나팔 소리와 영원한 기쁨으로 가득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해 주실 주님을 고대하며 찬송가는 마무리된다. 칼 보버그와 스튜어트 하이네가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그저 감탄하는 데서 멈추고 그 안에 숨겨진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지 못했다면 이와 같은 찬송가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깊은 시선으로 바라본 세계 속에는 지존하신 하나님이 계신다. 깊은 시선으로 바라본 세계 속에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구원이 있다. 그러니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으며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국제신학연구원>
  • 2024.06.14 / 김용두 기자

    카라바조의 <성 마태의 소명>
  • 세리 마태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순간을 화폭에 담은 화가가 있다. 바로 서양 바로크 미술의 거장이라 불리는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이다. 카라바조는 1599년 로마의 산 루이지데이 프란체시 교회의 콘타렐리 예배당에 전시할 작품을 의뢰받았다. 그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마태를 주제로 하여 <성 마태의 소명> <성 마태와 천사> <성 마태의 순교> 세 점의 유화를 그렸다. 그중에 오늘 살펴볼 <성 마태의 소명>은 카라바조의 대표작이자 바로크 미술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카라바조는 바로크 미술의 대표적인 특징인 빛과 어둠의 대조를 활용하여 성경에서 한 문장으로 기록된 마태의 소명 장면을 극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광경으로 재구성했다. 그림 속 장면은 독특한 화면 구성 방식을 통해 마치 연극무대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협소한 공간에 인물들을 모아놓고 주의를 산만하게 할 다른 요소들은 과감히 생략하여 그림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또한 어둠으로 짙게 쌓인 공간에 직선으로 강렬하게 침투하는 빛을 그려 넣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이는 카라바조가 창안해 낸 ‘테네브리즘’(Tenebrism)이라는 명암법이 적용된 것으로 인물의 내면세계와 동작을 세부적으로 묘사하고, 더욱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명암의 대비를 극대화한 표현 방법이다. 그림에서 빛은 공간 전체를 밝히지 않는다. 하지만 빛을 따라가다 보면 그림에 묘사된 인물들의 표정을 빠짐없이 읽을 수 있다. 그림을 보면 다섯 명의 사내가 테이블에 둘러앉아 돈을 세고 있다.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손을 들어 마태를 가리킨다.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과는 달리 수척한 얼굴에 남루한 옷 아래로 맨발을 드러낸 예수님과 베드로의 모습이 보인다. 예수님이 등장하는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쏟아지는 강렬한 빛이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사람들의 얼굴을 비춘다. 이때 두 명은 예수님의 등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동전을 세고 있다. 나머지 세 명은 고개를 돌려 제각기 다른 눈빛으로 입구 앞에 서 있는 예수님과 베드로를 보고 있다. 탁자에 앉은 다섯 명 중 수염을 기른 중년의 남자로 묘사된 마태는 한 손에 동전을 집은 채 예수님의 부르심에 놀란 눈빛으로 자신을 가리킨다. 예수님의 고요한 손짓은 미켈란젤로가 그린 시스티나 경당의 천장화 중 <아담의 창조>의 아담의 손과 흡사하다. 실제로 카라바조는 아담의 손에 영감을 받아 예수님의 손을 그렸다고 한다. 하나님이 손을 통해 아담에게 생명을 주는 것처럼 예수님 역시 손을 들어 새로운 소명을 부여하시는 걸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마태만이 그 부르심의 손짓에 반응한다. 탁자 주변의 인물들은 마태가 살았던 로마 제국 시대가 아니라 카라바조가 활동하던 시대에 유행하던 의상을 입고 있다. 이는 그림에 현재성과 현장감을 불어넣어 성경 속 이야기가 마치 눈앞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기 위한 화가의 의도로 보인다. 또한 예수님 옆에 있는 베드로는 탁자에 앉아 있는 인물들의 생생한 색채의 옷차림과는 달리 헝클어진 머리와 초라한 행색을 하고 있다. 베드로와 같은 위대한 인물을 성스럽고 위엄있게 표현했던 종래의 전통에서 벗어나 평범한 서민과 같이 소박한 모습으로 그린 카라바조의 시도는 당시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작품이 걸려있는 콘타렐리 예배당은 실제로 그림의 오른쪽에 창이 있어 빛이 들어오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현실의 공간과 그림의 공간이 하나인 듯한 느낌을 주어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실감이 나게 만든다. 카라바조는 작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그림 속의 빛을 연장함으로써 그림과 현실, 가상과 실제의 경계가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이 빛은 세속적인 욕심에 잠겨 있는 어둠을 밝히는 구원의 빛으로 표현된다. 그 강력한 빛 한 줄기를 직시하고 있는 마태는 동족에게 세금을 착취하여 멸시와 배척을 받던 세리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또한 다섯 명의 사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에 한 자리가 비어 있다. 이것은 그림을 보는 사람들도 예수님의 부르심에 동참하기를 바라는 화가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마태의 삶의 자리에 찾아오셔서 그를 부르신 예수님은 지금 이 그림을 보고 있는 우리에게도 찾아오셔서 우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부르신다. 우리는 그림 속에 있는 사내 중 누구와 같이 반응하는가? 그저 동전을 헤아리는 데 정신을 빼앗겨 부르심을 외면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마태와 같이 쥐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머물던 자리에서 일어나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인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 살다 보면 그 길을 가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때마다 우리를 불러주신 예수님의 은혜를 떠올려야 한다. 자격 없는 우리를 구원해주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격하며 날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한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4.05.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선교 뉴스
    이영훈 목사, 전호윤 목사 선교사 파송
  • 재단법인 순복음선교회 이사장 이영훈 목사는 14일 캐나다 토론토순복음교회 부교역자로 파송되는 전호윤 목사에게 선교사 파송장을 수여하고 안수기도했다. 성전비서실에서 진행된 파송식에서 이영훈 목사는 큰 꿈을 품고 캐나다 선교 사역을 잘 감당해줄 것을 전호윤 목사에게 당부했다. 전 목사는 그동안 서대문대교구와 서대문성전 등에서 사역에 왔다.
  • 2024.07.18 / 오정선 기자

    정규태 목사, 미국 선교사로 파송 
  • 선교사 파송식이 9일 주일 4부 예배 시간에 있었다. 재단법인 순복음선교회 이사장 이영훈 목사는 미국으로 파송되는 정규태 목사에게 파송장을 수여하고 선교 사명 감당을 위해 안수기도했다. 정규태 목사는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 주에 있는 리스빌순복음교회에서 교민 목회에 나선다. 정 목사는 순복음호스피스, 교회개척국, 마포2·구로대교구 등에서 사역했다.
  • 2024.06.14 / 오정선 기자

    베트남영산신학교-기하성 신학원간 MOU 체결
  • 베트남영산신학교와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이하 기하성) 순복음신학원간 업무협약(MOU)이 5월 27일 체결됐다. 또 30일에는 베트남영신산학교와 순복음목회연구원/ M.Div, FMD 과정)간 업무 협약이 체결돼 양 학교는 학사교류, 교과 과정 공유 등 상호 협력으로 발전을 도모하고 나아가 세계선교를 위한 전략적 관계를 맺기로 했다. 특히 순복음목회연구원과의 협약에서는 베트남영산신학교에 석사(M.Div)와 박사(FMD) 과정을 신설하고 그 과정을 이수할 경우 순복음목회연구원에서 졸업증서 및 각종 증명서를 발급해 주기로 했다. 베트남영산신학교 이상용 학장은 “이번 업무 협약은 베트남영산신학교 졸업생 및 재학생들에게 순복음의 정체성을 갖게 하며 한국 총회가 인정하는 학사와 석·박사를 받는 것은 물론 학생들로 하여금 여의도순복음교회와 한 총회에 속해 있다는 자긍심을 갖게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편 베트남영산신학교는 그동안 학사로 사용하던 장소를 사용하지 못하게 돼 현지 교회를 빌려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학사를 위해 기도 중이다.
  • 2024.06.07 / 오정선 기자

    선교지 소식
    이선미 선교사(일본)
  • “일본 일천만 구령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순복음동경교회 지성전으로 출발 2002년 순복음사카타교회로 독립해 지역 사회 섬겨 성도 가정 불단 태우고 믿음의 결단 나서 올해 1월 27일 순복음사카타교회 성도 한 명이 집 안에 있던 불단을 모두 끄집어 태우고 하나님 앞에 온전한 신앙인이 될 것을 결단하는 일이 있었다. 모든 것을 우상화 해 믿는 일본에서는 대부분 집에 카미다나(神棚)와 부츠단(불단)을 가지고 있으며 아침마다 밥을 떠 놓고 조상이 편안하게 지내기를 그리고 자신들을 안전하게 지켜주기를 빈다. 집집마다 어둠과 우상 속에서 대대로 살아온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일부 크리스천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문제로 일본으로 시집 온 한국 며느리들은 영적싸움이 시작되기도 한다. 교회에 오는 한인 성도 중에는 일본에 오지 않았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것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이들이 불단을 버린다는 것은 굉장한 신앙의 결단이라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일본은 천황을 숭배하는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천황의 생일이 휴일인데 반해 크리스마스는 휴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교회보다 가정이나 상점에서 먼저 장식을 꾸민다. 일본은 선거, 학교 운동회 그리고 수업 참관 등이 모두 주일에 행해진다. 아이들이 태어나면 ‘시치고상축제’라고 7살, 5살, 3살 아이들을 데리고 신사에 가서 아이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성장을 축하하는 축제에 참석한다. 유래는 헤이안(평안)시대에 행해졌던 의식으로 전해진다. 당시 일본의 식량사정이 나쁘고 지금처럼 의학이 발달되지 않아 아이들의 사망률이 꽤 높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상을 섬기는 일본땅에 조용기·최자실 목사님을 통해 순복음 선교가 시작됐고 현재 일본 열도에 80여 개의 교회가 탄생됐다. 선교사들은 ‘일본 일천만 구령’을 위해 기도하며 복음 전파에 열의를 다하고 있다. 그 안에 내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1980년 12월 나는 직장에서 왼쪽 팔과 다리에 화상을 입는 사고를 당했다. 2도 화상으로 집에서 치료 받고 있을 때 친구가 교회에 나가면 치료받는다고 전도했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 그러나 주일성수를 하며 신앙생활을 한 건 8년 후였다. 성경학교·대학·대학원 공부와 코이노니아선교회에 소속되어 예배와 전도, 교제 등 나누며 은혜의 시간을 누렸다. 해외여행의 자유화로 ‘월드미션’(World Mission) 프로그램이 시작되면서 나는 일본 선교 리더로 40명과 함께 10박 11일 삿포로 선교를 다녀왔다. 이를 계기로 매년 일본 단기 선교를 가게 됐고 오사카에 갔을 때 하나님께서 일본 선교사로 부르신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선교 훈련(MTC·Missionary Traning Center)과 신학 공부 과정을 동시에 밟은 후 졸업과 함께 선교사 파송을 받게 됐다. 1995년 파송받을 당시에는 종교 비자 받는 것이 어려워 순복음오사카교회 파송 임명을 받고도 비자 문제로 한국에서 기다려야 했다. 지성전이었던 ‘와까야마순복음교회’에서 첫 사역을 시작할 때는 집 구하는 게 힘들어 교회 주방에 붙은 2조 다다미(1조 크기가 너비 90㎝, 길이 180㎝) 방에서 수개월을 지냈지만 일본 선교사로 불러주신 은혜의 시간과 사명의 기억이 새롭다. 현재 사역하는 순복음사카타교회는 2000년 순복음동경교회 지성전으로 출발해 2002년 독립됐고 올해로 창립23주년을 맞이했다. 일본 야마가타 현에 위치한 사카타는 일본의 쌀 생산지로 유명한 농촌 도시다. 일본 전통 문화가 남아 있는 이곳에서 한국인 부인을 통해 그 가정이 구원 받는 일을 많이 볼 수 있다. 한 알의 밀알이 되어 가족 구원을 위해 희생과 눈물, 기도의 삶을 산 덕에 남편이 교회로 인도되고 집 안에 있던 모든 우상이 제하여졌다. 사카타에서 차로 3시간 떨어진 텐도라는 지역에 사는 다카하시 상도 불단 뒤에 몰래 십자가를 넣어두고 가족 구원을 기도해왔는데 오랜 기도 끝에 그 가정에서 불단이 사라지는 기적을 경험하게 됐다. 앞으로도 이런 기적이 일어나길 기대한다. 불단이 있던 자리는 이제 십자가가 세워져 그 가정을 밝히고 있다.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은 이처럼 일본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어 반드시 일본 일천만 구령의 날이 올 것을 믿는다. 이를 위해 성도님들의 일본 복음화를 위한 중보기도를 간절히 요청한다.
  • 2024.07.05 / 오정선 기자

    서장원 선교사(아르헨티나)
  • 아르헨티나의 희망은 오직 ‘교회’ 뿐 지난 2월 물가상승률 254.6%로 세계 최고 수치 기록 절대긍정 절대감사 신앙으로 국가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 ‘돈 크라이 포 미 아르헨티나!’ 이 노래의 주인공인 에바 페론은 1946년 아르헨티나 29대 대통령을 지냈던 후안 도밍고 페론의 두 번째 부인이다. 영부인 시절, 가난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일명 ‘데스카미사도(셔츠를 입지 못한 자)’라 불리던 가난한 노동자 및 하층민들에게 후한 복지정책을 펼쳐 국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가 33세의 젊은 나이에 자궁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큰 슬픔에 빠지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그녀를 그리워하는 많은 사람들을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후 ‘페로니즘’이라는 에바 페론을 모방한 아르헨티나식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생겨났고, 에비타(에바 페론 별명)를 그리워하는 국민들의 지지 속에 쉽게 정권을 쥐는 모습들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무조건 퍼주기(?)식의 복지정책과 피고용인 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진 노동법 때문에 국고는 점점 바닥을 드러냈고, 자국 및 해외 기업들은 국내 투자를 꺼려해 일자리가 사라지는 악순환이 몇 십 년째 반복되고 있다. 지금은 새로운 대통령이 아르헨티나의 체질을 개선하겠다고 강경책으로 개혁을 시도하고 있지만 이미 ‘페로니즘’에 익숙해진 기존의 정치인들과 기성세대들이 현 정부의 발목을 붙잡고 있어서 불안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아르헨티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연간 물가상승률은 254.6%로 세계 최고 수치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돼 국민들의 고통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암울하기만 한 아르헨티나 땅의 희망은 오로지 교회 밖에 없다. 특히 우리 아르헨티나순복음교회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위기 속에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보며 이 땅을 고쳐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6개의 현지인 지교회도 코로나 이후 급격하게 줄어드는 성도들이 다시 교회로 모일 수 있도록 방문 전도와 특별 기도회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있다. 절대긍정과 절대감사의 신앙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아르헨티나의 상황 때문에 하나님을 만난 현지인 성도들은 더욱 하나님 앞에 엎드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을 삶 속에서 간증하고 있다. 또한 지교회 중 한 곳은 출석 성도 대부분이 일용직으로 삶을 이어가는 분들이지만 자신들의 손으로 예배당을 증축하는 일에 헌신하겠다고 자원하며 나섰다. 처음 시작할 때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을 만큼 경제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건물의 윤곽이 잡혀가는 모습을 보면서 성도들과 주변 이웃들에게 좋은 증거가 되고 있다. “먼저 주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에게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피부로 경험한 성도들이 주 앞에 헌신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게 된 것이다. 아르헨티나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임재하신 야훼 하나님을 더 가까이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을 기억해 본다. 광야에서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집중할 수 있음을 깨닫고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신앙으로 주와 동행할 수 있는 아르헨티나순복음교회와 여러 지교회 성도들이 될 수 있도록 응원해 주시기를 간곡히 바란다.
  • 2024.04.05 / 오정선 기자

    최태진 목사(호주)
  • 호주의 수도 캔버라를 순복음 영성으로 불 붙이다 2002년 교회 개척, 교민들의 ‘영적 쉼터’ 역할 성령 충만과 다음 세대 부흥 위해 간구 호주의 수도인 캔버라는 정치, 행정의 중심지이며 계획도시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캔버라’라는 말은 호주의 원주민 언어로 ‘만남의 장소’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호주의 수도를 영적인 수도로 변화시킬 목표와 사명을 가지고 지난 2002년 1월에 캔버라순복음교회를 개척했고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그리고 절대긍정과 절대감사의 신앙을 통해 이곳에 순복음의 신앙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통해 예수님을 만났고 성령의 역사는 계속 진행 중입니다. 그러나 다른 지역도 크게 다르지 않았겠지만 지난 3년여 동안 코로나 여파로 예기치 못한 어려움이 교회에 있었습니다. 교회 출석의 제한으로 성도들의 신앙은 퇴보하고 생업을 위해 타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성도의 수는 급감했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회복을 고민하면서 방법보다는 본질에 충실한 것이 무엇인가를 찾다가 영성회복과 본질회복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먼저 지난 3년 동안 전 성도에게 성경 66권 말씀을 집중 교육함으로 말씀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견고히 했습니다. 또한 매일 ‘6789 집중기도’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6789 기도시간’이란 매일 아침 6시부터 7시, 저녁 8시부터 9시에 각자의 위치에서 전성도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교회를 위해, 개인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코로나 이후 성도들의 신앙 회복을 위해 모든 셀(Cell)을 재정비하고 셀리더들 재교육을 시행했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능력으로 새롭게 거듭났습니다. 마치 22년 전 이곳 캔버라 땅에 교회를 개척할 당시 모습들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11월 1일부터 한 주간 동안 두 분의 선교사를 캔버라에 초청해 영적쇄신 부흥성회를 가졌고 이를 통해서 성도들의 침체되었던 신앙이 회복을 이루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호주는 한때 기독교 국가라고 말할 정도로 하나님을 믿는 나라였지만 하나님 말씀을 버리고 동성애를 합법화하며 자신들이 옳다고 여기는 일을 자행하면서 스스로 평강하다고 말하는 중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호주에서 태어나 자라고 이곳에서 교육받는 어린이들에게 올바른 신앙교육의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어느 부서보다 미래의 주역인 주일학교 교육에 투자하고 다음세대를 살리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2024년 그 어떤 것보다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어릴 적부터 성령으로 충만해서 세상에 물들지 않고 신앙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한편 각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리더로 세움받기 위해 1월 1일부터 21일까지 매일 저녁시간에 부모님들과 함께 어린이들이 직접 참석하는 신년 다니엘 기도회를 개최했습니다. 1월 말에는 성령 충만 받기 위한 주일학교 어린이 캠프가 진행됐습니다. 또한 이국 땅 외로운 이민 생활 속에서 교민들이 기쁨을 찾는 곳이 다름 아닌 캔버라순복음교회이고 교회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기쁨을 얻게 하는 일에 기도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2024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기 위해 표어를 ‘하나님을 기쁘시게, 성도를 행복하게, 이웃을 전도하는 교회’로 정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혼육이 회복(Restore)되고, 예수님과 함께하는 신앙의 재출발(Restart)을 다짐하며, 성령님의 능력으로 영적 부흥(Revival)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온 성도가 성령 충만하고 100% 예배참석과 성경 66권 통독, 하루 1시간 이상 기도하기를 실천함으로 다시 한번 영적 부흥을 이루고자 합니다. 우리가 비록 먼 곳에 있지만 올 한 해도 선교지를 위해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들의 끊임없는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이곳 캔버라에서도 모교인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 2024.03.01 / 오정선 기자

    선교사를 위한 중보 기도
    박철희 선교사(대만)
  • - 빤치아오순복음교회 전성도 제자화를 위해 - 제자순복음교회의 신속한 자립을 위해 - 예수님의 사랑으로 매월 노숙자 섬김 활동 실천할 수 있도록 - 매주 수요일 제자훈련에 전성도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 2024.07.26 / 오정선 기자

    이피터 선교사(V국)
  • - 여름성경학교 행사를 위해 - 전 성도 성경 일독을 위해 - 고아, 조부모 가정, 빈민 가정 어린이 후원 일정과 재정을 위해 - 마약센터에 새로 들어오는 이들이 믿음으로 승리하도록 - 대학교에 많은 예수님의 제자, 차세대 리더들이 세워지도록 - 신변안전과 영육간의 강건함을 위해
  • 2024.07.19 / 오정선 기자

    김은혜 선교사(A국)
  • - 나라와 민족을 위해 중보기도 할 사명감을 가진 300명의 기도용사를 보내주시기를 - 교회 부흥과 모든 성도들의 성령 충만을 위해 - 아들의 영·혼·육이 성령 충만해 주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일꾼이 되도록
  • 2024.07.12 / 오정선 기자

    순복음영성스케치
    기도의 종류(Ⅳ) - 중보 기도
  • 세계적인 설교자 찰스 스펄전 목사는 “위대한 일을 행하실 때마다 하나님은 먼저 기도의 사람을 세우신다”고 말했다. 그가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본인 스스로가 기도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며, 특히 그를 위해 중보하며 기도하던 무명의 기도 동역자들의 영적 지원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 역시 그의 사역에 있어 중보 기도의 능력을 인정했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만 사랑하는 기도의 사람 백 명을 원했다고 한다. 타인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기도하고 연약함과 어려움을 지탱해주고자 하는 중보 기도는 영적 지도자를 위한 중보 기도로 이어질 때 더욱 강한 능력으로 나타난다. 1. 중보의 의미와 예수 그리스도 중보(intercession)의 문자적 의미는 ‘사이에 나아가다’, ‘상치하는 양자를 화해하기 위해 행동하다’의 의미가 있으며 법정에서 의뢰인을 돕는 변호사나 법률적 행위를 대신해주는 대리인의 개념을 갖고 있다. 요한복음 1장 18절은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증거하고 있는데, 앞선 중보의 개념에 따르면 예수님이 하나님과 인간을 중보하는 최고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은 지금도 성령님을 통하여 계속되고 있으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기도할 때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도와주신다. 2. 예수님의 중보 기도와 훈련 모델 능력 있는 중보 기도자가 되고자 소원하는 사람은 단연코 최고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따라가야 한다. 그러나 한 명의 중보 기도자가 세워지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중보 기도자로서의 소원과 결심이 있어야 하며 더 나아가 훈련이 필요하다.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의 최우선 순위는 기도였는데 어떠한 때에 기도하셨는지를 알아보면 중보 기도자로 서는 훈련에 도움이 될 수 있다. (1)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침례를 받으실 때 기도하셨다(눅 3:21~22). (2) 사람들에게 인정받던 전성기 때에 많이 기도하셨다. (3) 진리에 대한 계시가 필요할 때 기도하셨다. (4) 제자들을 선택하고 훈련하실 때 기도하셨다. (5) 사랑과 용서가 필요할 때 기도하셨다. 3. 중보 기도의 올바른 태도 중보 기도자로서 훈련을 받고자 하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훈련 방법은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매일 일정한 시간을 내어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 증진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아래의 5가지 올바른 태도를 유지하기만 해도 효과적인 중보 기도자로 설 수 있다. (1) 자발적으로 중보 기도하라 억지로 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지 못한다.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가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이다. (2) 구체적으로 중보 기도하라 중언 부언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신다(마 6:7). 구체적인 기도는 응답을 통하여 능력을 체험하는 통로가 된다. (3) 올바르게 중보하며 구하라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하고 정당한 것을 구해야 한다. 응답이 올 때까지 찾고 두드리는 실행의 과정을 능동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4) 전심으로 중보하며 구하라 두 마음을 품는 것을 하나님은 싫어하신다(약 1:8). 이런저런 생각이 많으면 기도에 집중하기 어렵다. 마음이 분산되는 것을 막는 실제적인 방법은 크게 소리 내어 기도하는 것이다. (5) 쉬지 말고 중보 기도하라 기도는 호흡이요 습관이 되어야 한다. 한꺼번에 일시적으로 많은 기도를 드리는 것보다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자주 드리는 기도가 효과적이다. 4. 영적 지도자를 위한 중보 기도 중보 기도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 지도자를 위한 기도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에게 순종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지도자를 판단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을 갖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시 66:18). 그리고 아래와 같이 영적 지도자의 영성과 생활과 사역의 3가지 영역에서 중보하며 기도하면 사역에 큰 능력이 나타난다. (1) 영성을 위하여(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기도) 지도자의 위치에서 듣게 되는 비난과 겪게 되는 억울한 일들을 견디고 이길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2) 생활을 위하여(개인적인 삶을 위한 기도)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추구하며, 행복한 가정의 모범이 되고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도록 기도해야 한다. (3) 사역을 위하여(사명 감당을 위한 기도) 교회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는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 끝까지 사명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귀한 뜻을 이루어 가야 한다. 성도들은 영적 지도자의 권위에 순종하고 그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하나되게 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끝> 김현동 선임목사(교무국 기도처지원팀)
  • 2023.12.2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기도의 종류(Ⅲ) - 방언 기도
  • 올해는 우리 교회가 속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교단이 창립한 지 70년이 되는 해로서 한국의 복음화를 위한 오순절 운동을 되돌아보게 한다. 오순절 운동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의 생명력을 회복시키려는 운동으로서 성령 침례의 결과가 방언, 신유, 능력으로 나타남을 강조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교회도 성령 충만과 방언 기도를 강조해 왔고, 이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신유 사역과 사회 참여를 통하여 세계 최대의 교회로 성장했다. 오늘은 우리 교회와 교단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 부흥의 큰 원동력이 된 방언 기도에 대해 알아보고, 방언 기도를 통해 성령 충만의 영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다짐의 시간이 되기를 기도한다. 1. 방언 기도의 의미와 성경 상의 언급 방언 기도는 영적인 언어로 말하는 기도로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통을 가능하게 하며 개인 신앙 발전에 큰 유익을 주는 기도이다. 방언은 성령 침례의 외적 증거이며 성경 많은 곳에서 성령 침례의 표적으로 나타난 방언 기도의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오순절 날 제자들에게 임한 성령의 임재(행 2:1~4), 둘째는 베드로가 고넬료와 집안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을 때의 성령의 임재(행 10:44~46), 덧붙여 바울이 에베소의 제자들에게 안수할 때의 성령의 임재(행 19:5~6)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2. 현대 오순절 운동과 방언 기도 성경 상에 등장하였던 방언 기도는 20세기 초 현대 오순절 운동에서 재발견된다. 1901년에 감리교 목사 찰스 팔함(Charles F. Parham)은 그가 가르치는 신학교 학생들과 함께 성경을 철저히 연구하던 중, ‘방언이 성령 침례의 최초의 증거’임을 깨닫게 된다. 이들은 이렇게 발견한 말씀의 내용을 철저히 믿고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 침례와 방언을 체험하게 되었고 이것이 현대 오순절 운동의 시작이다. 이어 방언 기도를 강조하는 오순절 운동은 1906년 윌리엄 시무어(William J. Seymour)의 아주사 부흥으로 이어졌다. 방언과 방언 통역, 예언, 축사, 신유 등이 강력하게 나타났던 아주사 거리 집회는 무려 3년이나 지속되며 기도의 불길을 이어갔다. 3. 방언 기도의 유익 성령 침례의 최초의 증거로서 방언 기도는 다음과 같은 유익을 가져다준다. (1) 방언 기도는 성령 충만의 확신을 준다. 성경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제자들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방언)로 말하기를 시작하였다고 증거하고 있다(행 2:4). 한편 믿는 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한다고 분명히 적고 있다(막 16:17). 성령 침례를 받으면 방언이라는 표적을 통하여 분명하게 성령 충만의 증거를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방언 기도를 한다는 것은 기도하는 자에게나 듣는 자에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성령 충만의 확신을 가져다준다. (2) 방언 기도는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통을 나누는 비밀한 언어이다. 방언 기도에 대해 비교적 많은 언급을 하고 있는 고린도전서에서는 방언을 하나님과 비밀한 영적 교통을 나누는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고전 14:2)고 하면서 또한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고전 14:14)라고 증거하고 있다. 이러한 방언 기도는 하나님과 비밀의 기도이기 때문에 사탄도 알아듣지 못한다. (3) 방언 기도는 자기 신앙의 덕을 세운다. 성경은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운다(고전 14:4)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덕’을 세운다는 것의 원어적 의미는 ‘집을 지어 올라간다’는 의미가 있다. 우리는 방언 기도를 통하여 마치 집을 짓듯이 우리의 신앙을 더욱 견고히 할 수 있다. (4) 방언 기도는 마음을 부정적인 상태에서 해방시켜준다. 방언으로 기도하면 우리의 잠재 의식 속에 있는 모든 불안, 초조, 절망, 미움, 원한, 상처 입은 것을 깨끗이 청산해 준다. 마음의 공간이 방언 기도를 통하여 깨끗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부정적인 상태에서 해방되어 절대긍정의 마음으로 변화 된다. (5) 방언 기도는 연약함을 돕는 탄식의 기도이다. 성경은 성령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고 하고 있다(롬 8:26~27). 방언 기도를 통하여 탄식하듯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6) 방언은 깊고 오랜 기도를 가능하게 한다 고린도전서 14장 15절에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고 증거하고 있다.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기 위해서는 기도의 시간이 길어야 한다. 방언 기도는 기도의 언어로서 기도를 오래 할 수 있게 하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코로나19 엔데믹 선언 이후인 지금은 성도 개개인이 기도를 통해 성령 충만한 영성을 회복하고 교회 내외적으로 전례 없는 부흥을 꿈꾸어야 할 때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 교회 성령 충만과 부흥의 토대가 된 오랜 시간의 깊은 방언 기도를 회복하는 것은 교회와 성도 모두가 부흥으로 향하는 최선의 지름길을 제공해 줄 것이다. 김현동 선임목사(목회자제직훈련소)
  • 2023.11.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기도의 종류(Ⅱ): 대적 기도
  • 그리스도인들에게 악한 영들과의 영적 전쟁은 선택 사항이 아닌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과정이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영적 전쟁에 대해 무의미하게 여기거나 막연히 신비적인 것이라고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영적 전쟁은 성경 여러 곳에서 많이 언급되고 있으며 오늘날도 실제적으로 많은 이들에 의해 체험되고 있다. 이러한 영적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대적 기도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오늘은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신 권세(창 3:15)에 힘입어 선포하는 대적 기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대적 기도의 의미와 특징 대적 기도는 문자 그대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권세에 힘입어 악한 영들에게 명령하고 선포하는 기도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도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의 형식이지만 대적 기도는 악한 영들에 대한 것으로 간구가 아닌 명령과 선포의 형태를 지닌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는 권세를 주셨다(눅 10:19). 이 말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악한 영들을 대적함으로써 승리하였던 것과 같이 오늘날 우리들도 예수님이 주신 권세와 능력을 믿고 명령하며 선포함으로써 귀신을 쫓아내고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2. 성경에 나타난 대적 기도 성경은 영적 전쟁을 실제적으로 묘사하면서 대적 기도의 상대인 악한 영들과 이들을 어떻게 상대하여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1) 대적 기도의 대상 성경은 우리가 물리쳐야 할 대상에 대해 직접적으로 ‘대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라고 하거나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고 말한다. 이러한 성경의 언급을 통해 우리의 대적이 바로 ‘마귀’임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2) 대적 기도의 사례 예수님은 귀신을 꾸짖는 방법(막 9:25)과 명하여 내어 쫓는 방법(눅 8:29)을 통하여 대적 기도를 행하셨다. 바울은 이러한 예수님의 권세에 힘입어 빌립보의 귀신 들린 여종을 향하여 명하였고, 귀신은 즉시 나오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행 16:18)는 명령과 선포는 오늘날 대적 기도의 대표적인 형태로 활용되고 있다. 3. 대적 기도의 방법 대적 기도는 보이지 않는 적과의 영적 대결이므로 마치 전쟁터에서 배수의 진을 친 것과 같은 비장한 각오로 준비하고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기도해야 한다. (1) 보혈을 의지하는 기도 유월절 어린 양의 피는 예수님의 보혈에 대한 예표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음에서 보호하실 것에 대한 약속이었다(출 12:13).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친히 흘려주신 보혈의 권세를 갖고 있으므로, 보혈에 의지하는 기도는 마귀에게 대적하는 가장 큰 기초가 된다. 연약한 육신을 입고 있는 우리들은 매일 같이 마귀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데 특별히 개인의 감정과 사회적 관계 그리고 환경 가운데 보혈을 뿌리며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2) 예수 이름의 권세를 의지하는 기도 예수님이 이 땅에 성육신하시어 오신 이유는 우리의 상실한 권세를 회복해 주시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셨으나 부활하셔서 승리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히 8:1). 이러한 예수님의 권세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됨과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요 1:12). 성경은 예수님의 권세에 의지할 때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고 하였고(마 16:18), 매고 푸는 권세가 있어서 마귀들을 묶고 포로된 자들을 구원하는 권세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마 16:19). (3)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갖는 기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으나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이긴 싸움을 싸우는 중이다. 그러나 아직 대적의 수중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겼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패배 의식에 빠지고 좌절과 낙심 가운데 살아가게 된다. 우리는 대장 되신 예수님이 죽음을 정복하셨고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주셨으며, 흉악과 결박에서 놓임 받게 해주심을 굳게 믿고 마귀를 대적하며 기도해야 한다. 4. 대적 기도의 실제와 유익 대적 기도를 통하여 의심, 두려움, 교만, 불안, 낙심과 염려 등 마음의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사라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대적 기도는 육체의 치유와 믿음의 회복도 가져다준다. 우리는 각종 암, 우울증, 중풍, 고혈압, 당뇨병, 만성 피로 등 육체의 질병에 대해 꾸짖고 명령하고 선포하여 승리할 수 있고, 영적 성장과 신앙생활에 방해를 주는 악한 영들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대적하며 기도할 수 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하노니, 사람의 육체와 정신과 영혼을 괴롭히는 악한 원수 마귀야! 지금 즉시 하나님의 자녀에게서 떠나갈지어다!” 이러한 선포를 통하여도 우리는 마귀와 효과적으로 대결하고 영적 전쟁의 승리에 다가설 수 있다. 김현동 선임목사(목회자제직훈련소)
  • 2023.10.2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구속사적 성경읽기
    (19)영적 무장을 위한 3대 신앙
  •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은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로 했다면 영적 전쟁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영적 무장이다. 영적 무장이 없이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전쟁에 임하는 병사가 무장 없이 맨몸으로 나서는 법이 없듯이 영적 전쟁에서도 영적 무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 시간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영적 무장, 곧 3가지 신앙적 무장에 대해서 알아보자. 1. 창조 신앙 하나님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창조주이시다.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자 우리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신 장본인이시다. 이 세상 모든 만물 가운데 스스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아무리 과학이 하나님을 배제하고 진화론과 같은 이론으로 이 세상을 설명하려고 해도 그런 과학은 극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다음과 같은 우화가 있다. 어느 날 과학자 한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와 말했다. “우리 과학이 발전해 흙으로 사람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과학이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은 다 할 수 있다는 의미죠.” 하나님이 답하셨다. “정말 그러한가? 그렇다면 네 말대로 흙으로 사람을 만들어 보아라. 대신 네 흙으로 해라.” 이 우화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가?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생명의 근원, 우주의 근원은 밝혀낼 수 없다는 것이다. 생명의 근원, 우주의 근원은 어디 있는가?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셨다.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전 12:1~2).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다. 렇다면 창조 신앙을 가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절대 주권을 인정하며 살아야 한다. 달리 말해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창조주 되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 영광을 올려 드리며 살아야 한다. 2. 십자가 신앙 예수님의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써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받은 것이다. 그뿐 아니라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함을 얻으며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축복을 얻은 것이다. 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말했다.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 마르틴 루터는 이 말을 통해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어야 함을 천명한 것이다. 달리 말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빼놓고서는 기독교 신앙을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갈라디아서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 3:13~14). 예수님이 율법이 정한 대로 나무에 달려 죽는 저주받은 죽음을 당하심으로써 우리를 죄와 사망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아브라함의 복과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셨다. 그렇다면 십자가 신앙을 가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담대한 복음 증거자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세상 앞에 절대로 주눅 들지 않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만큼 나를 사랑하셨고 모든 저주의 굴레에서 해방하셨다. 또한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녀가 되게 하셨으니 우리가 삶의 형편과 조건, 세상의 시선에 위축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3. 부활 신앙 기독교 신앙의 위대함은 부활 신앙에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예수님의 부활은 기정사실이다. 그 증거가 무엇일까? 첫째,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다. 둘째, 부활의 목격자들이 있다. 도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 15:4~8). 특히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을 당하실 때 비겁한 도망자들이 되었던 제자들이 어떻게 다시 그 예수님을 전하다 순교자까지 될 수 있었을까?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부활이 거짓일 수 없는 이유다. 물론 이런 증거에도 부활이 거짓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셋째, 부활이 거짓이라면 그 거짓이 2000년 넘게 지속될 수 있었을까? 수없이 많은 사람이 그 거짓에 자기 목숨을 걸 수 있었겠으며 자기 인생을 헌신해 가며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을까? 부활은 사실이고 진리이다. 그렇다면 부활 신앙을 가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결단코 세상에 얽매인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안개처럼 쉽게 사라지는 인생길을 걷고 있으며 잠시 왔다가 떠날 나그네 인생을 살고 있다. 이 세상은 우리 삶의 종착지가 아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단기 선교 온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의 몸을 입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될 것이다. 바울 사도는 말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 15:19). 이 세상에 얽매여 잠시 잠깐뿐인 헛된 것을 찾다가 인생의 허망함에 무릎을 치며 후회하지 말고 부활 후 누릴 영원한 생명을 바라며 살아가자. 오정섭 목사
  • 2022.07.1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절대긍정의 믿음
  •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선교라고 정의되는 시대가 찾아왔다.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인의 복음 증거만큼이나 그리스도인의 삶이 주목받는 시대라는 뜻이다. 요즘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전하는 복음의 진정성을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에서 찾는다. 따라서 성경을 삶의 원리 원칙으로 삼는 성경적인 삶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성경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절대긍정의 믿음이다. 왜냐하면 복음의 결론은 성도의 최후 승리를 말하고 있으며 다시 오실 예수님이 성도의 최후 승리를 반드시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져야 할 절대긍정의 믿음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그 땅을 정탐 다녀온 여호수아와 갈렙의 반응에서 절대긍정의 믿음이 지녀야 할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1.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을 갖고 싶어 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각 지파에서 대표 한 사람씩을 선발해 모두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에 보낸다. 그들은 40일간 그 땅을 돌아본 후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이며 그 땅의 과일들은 극상품이라고 할 수 있고 그들이 누리는 것은 풍요롭다는 데에 일치된 의견을 내놓는다(민 13:25~27). 그러나 그 땅을 정복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의견은 긍정적인 의견 2명, 부정적인 의견 10명으로 갈린다.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은 두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이다. 갈렙은 다음과 같은 의견을 피력한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민 13:30).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을 취하고자 하는 데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땅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원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비관적인 전망과 비판적인 어조에 쉽게 동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사람은 미래를 알 수 없고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매일 마주하는 삶의 과제 앞에 불안, 염려,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고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대면하는 문제보다 훨씬 더 크신 분이시고 자녀 된 우리의 삶을 위해 좋은 것을 예비해 놓고 계신 분이시다. 로마서 8장 32절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씀한다. 2.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는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의견을 밝힐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야훼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야훼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야훼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민 14:7~9). 그러나 나머지 10명의 정탐꾼들은 육신의 눈으로 확인되는 그 땅 주민들의 어떠함에 주목했다.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32~33). 그들은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지 않았기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땅에 대해 악평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라며 자신들에 대해서도 악평했다.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이 무너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삶에 부정적이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라는 것을 믿었다. 그 땅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약속의 땅이기 때문에 분명히 차지할 수 있다고 그들은 믿었다. 하나님은 그 땅을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셨고, 모세에게 정탐꾼을 보내라고 말씀하실 때도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했기에 그 땅을 차지하는 데에 긍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성경 말씀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약속이 담긴 책이다.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온갖 좋은 약속을 붙잡는 적극적인 신앙 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한 사람은 절대긍정의 믿음을 소유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 사람들의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에 대한 기대로 가득하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실 것에 대한 거룩한 원함,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으로 충만한 절대긍정의 믿음으로 살아가자.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약속하신 가나안을 차지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오정섭 목사(국제신학연구원 신학연구소)
  • 2022.06.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구속사적인 삶 - 감사(2)
  • 대한민국 법 중에 최고 상위법은 헌법이다. 헌법 10조에 보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흔히 말하는 행복추구권이다. 그런데 행복권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국가도 행복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해 줄 따름이다. 다시 말해 행복은 어떤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정해진 조건이 있으면 국가가 일정 수준의 국민은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1. 행복의 근원, 감사 그렇다면 행복은 어디 있을까? 감사하는 마음에 있다. 감사하면 행복해진다. 감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사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감사가 저절로 되거나 쉽게 되지 않는다. 만약 감사가 저절로 되고 쉽게 되는 것이면 감사가 하나님의 뜻이니 범사에 감사하라고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감사는 우리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다. 감사가 쉬운가? 불평이 쉬운가?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한 달 동안 5층 집까지 매일 걸어가야 한다고 가정하자. 억지로라도 계단을 오를 일이 생겨 운동할 수 있게 되었으니 감사할까? 아니면 곧바로 불평할까? 감사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원망 불평이 자연스러운 우리 본성이라는 중력, 그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감사가 등산처럼 힘든 이유다. 그러나 등산도 하면 할수록 쉬워진다. 감사가 그렇다. 산 정상을 향해 오르다 보면 달라지는 것이 있다. 시야다.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감사하면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못 보던 것을 보게 된다. 감사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불평하는 일들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그 일들 외에는 제대로 못 본다. 불평하는 일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마음이 계속 불편하다. 물론 해결이 돼도 불평할 거리는 또 있다. ‘왜 이제야 해결이 되는 거지?’ 감사하는 사람은 시야가 다르다. 보이는 것이 다르다. 눈에 거슬리는 것보다 세상 아름다운 것이 훨씬 더 많다. 보이는 게 다르니 말이 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왜 그렇게 사소한 일에 집착했지?’ 하는 생각이 드니까 감사하는 사람의 말에는 여유가 있다. 타인에 대한 포용의 한도가 그만큼 크다. 원망 불평으로 마음의 용량이 늘 마이너스가 되어 가면 타인에 대한 용납의 한도가 계속 줄어든다. 감사를 결단하고 훈련하자. 감사한 다음에 기쁨이 따라오고 불평한 다음에 짜증이 따라온다. 감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우리 삶을 이끌어 가지만 불평은 사탄이 원하는 방향으로 우리 삶을 이끌어 간다. 감사의 종점은 천국이고 원망 불평의 종점은 지옥이다. 2. 그리스도인의 감사, 넘치는 감사 우리의 감사가 어떠한 감사가 되어야 하는지 바울 사도의 권면을 들어 보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6~7).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했다면 우리 삶은 예수님 안에 있다. 예수님께 우리 인생의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것이다. 여기저기 왔다 갔다, 이리저리 오락가락하지 않고 예수님 안에 콕 박혀서 사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예수님 안에서 성장하는 여정이다. 말씀대로 살면서 굳센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는 것이다. 정리하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셨으니 예수님 안에 뿌리내리고 말씀 따라 사는 믿음이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바울 사도는 믿음이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감사가 넘치게 하라고 권면한다. 누가 믿음이 강한 사람일까? 감사하는 사람이다. 내 믿음의 강도는 감사가 말해 준다. 내 믿음이 명품인지 불량품인지는 감사가 보여 준다. 감사는 명품 믿음의 보증서다. 감사가 없다면 불량품 믿음이다. 감사는 넘치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넘치는 감사다. 자기 분량 이상의 감사를 하는 것이다. 내 기준 이상의 감사, 내 판단 이상의 감사, 내 감정 이상의 감사, 내 선택 이상의 감사다. 그러려면 ‘범사에 감사, 무조건 감사’가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범사에 감사, 무조건 감사’가 가능한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예수님을 주로 영접했기 때문이다. 주는 ‘주인’을 말한다.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시니까 감사하라는 것이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했으니”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영접했으니”라고 했다. 그리스도는 직분, 예수는 이름이다. ‘그리스도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는 강조하는 바가 다르다. 그리스도가 먼저 나오면 예수님이 그리스도, 곧 구원자로서 하신 일에 강조점이 있다. 구원자 예수님이 하신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떠난 내 죄 때문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다. 나의 주님이 되셔서 천국 가는 그날까지 내 삶을 인도하시며 보호하시고, 도우시며 책임져 주신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성경이 다시 쓰이기 전까지는 변하지 않는다. 내 삶의 형편과 조건은 오락가락해도 나를 향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 주님이 나의 삶의 주인이 되셔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도록 역사해 주실 것임은 변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 삶의 형편, 조건, 기분, 감정과 상관없이 감사할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범사에 감사, 무조건 감사, 일평생 감사할 수 있다. 감사하자.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어렵고 힘들고 괴로울 때 인생이 마음대로 안 될 때 감사하자. 감사하면 사탄이 틈타지 못한다. 영적 시야가 넓어지고 안 보이던 것이 보인다. 관계가 회복되고 인생이 달라지고 행복해진다. 아니 이미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Thanksgiving’뿐만 아니라, ‘Thanks-living’하자! 오정섭 목사(국제신학연구원 신학연구소)
  • 2022.05.0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다시보는 영산 신학과 목회
    영산의 세계선교
  • 선교는 주님의 지상 명령이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복음 전도와 선교에 대한 꿈과 비전으로 충만하게 된다(행 1:8). 성령님은 영산에게 대조동 천막교회 시절부터 세계선교의 꿈을 부어주셨다. 그때부터 영산은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은빛 날개를 타고 전 세계를 다니며 선교하는 꿈’을 품었다. 그 꿈처럼 영산은 당시 해외 여권을 얻기도 쉽지 않았을 때 이미 여러 나라를 다니며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다. “전 세계는 주님의 교구입니다.” 웨슬리의 유명한 말을 떠올리게 하는 영산의 고백은 절대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세계 최대 교회를 세우고 오대양 육대주를 다니며 선교 사역을 감당했다. 그가 머물렀던 수많은 선교 현장은 성령님이 역사하는 기적의 장소였다. 영산이 세계선교를 위한 뜨거운 열정을 갖게 된 배경은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7년 5월 세계오순절총회를 마친 영산은 100일 동안 18개국, 39개 도시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던 그는 결국 스위스에서 쓰러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 침대 밑에 놓인 엽서 한 장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주님의 종으로 부름 받았으니 이 시대에 한 획을 긋는 종이 되리라”라는 글귀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적고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다. 다시는 못 일어날 만큼 쇠약해졌던 영산의 몸은 이튿날이 되자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고 기적처럼 회복되었다. 그때의 체험은 영산의 사역 가운데 세계선교를 항상 강조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영산은 유럽 선교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세계 교회성장을 위해 봉사하는 국제기관을 조직하라”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1976년 11월 4일 국제교회성장연구원(이하 CGI: Church Growth International)을 설립했다. 영산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부흥성장에 관한 노하우를 전 세계 교회와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담임하고 있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에만 집중하지 않고 전 세계 교회가 함께 부흥하는 일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다. CGI는 설립 이래 2022년 현재까지 한국을 비롯한 100여 개국 이상에서 총 600회 이상 CGI 콘퍼런스를 개최했고, 여기에 전 세계에서 연인원 120만명이 참석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세계선교와 교회 성장에 이바지한 CGI는 2022년 10월 이영훈 목사를 제2대 총재로 만장일치 추대하면서 ‘다음 세대의 부흥’을 외치며 제2기 사역에 돌입하게 되었다. 영산은 세계선교의 사역을 더욱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2000년 3월 28일 DCEM(David Cho Evangelistic Mission)을 설립했다. 이 기구를 통해 전 세계 선교지와 선교단체 간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선교 자원의 교류에 힘썼다. DCEM은 교파를 초월해 영적으로 갈급한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 그리고 복음의 사명을 심어주는 기관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감당했다. 영산은 그 목회 사역 동안에 약 600회 이상의 해외 부흥회를 인도했는데 이런 왕성한 사역은 성령님이 주시는 비전과 열정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럼 세계 기독교 역사에서 영산의 선교 사역의 의미는 무엇일까? 20세기 기독교의 가장 큰 특징은 기독교의 무게 중심이 서구권에서 비서구권으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1980년대에 들어와서 비서구권의 기독교 인구가 서구권의 기독교 인구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기독교 신학이나 선교가 서구권 교회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서구권 교회는 갈수록 쇠퇴를 거듭했고, 반대로 비서구권의 교회는 급속히 성장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역사적 맥락 속에서 영산의 세계선교 사역은 기독교 선교의 주체를 서구권 교회에서 비서구권 교회로 전환하는 데 아주 지대한 역할을 했다. 영산은 선교가 ‘순복음’의 최우선 과제임을 보여주었다. 선교하는 교회가 진정한 ‘순복음교회’(Full Gospel Church)이고 선교하는 성도가 진짜 ‘순복음성도’(Full Gospel Christian)이다. 교회가 선교를 멈추는 순간 침체와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영산 안에 넘쳤던 복음의 확신과 순복음의 영성은 많은 사람의 가슴에 희망을 불러일으켰고 나도 하나님 사명에 쓰임 받고자 하는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의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David Yonggi Cho’라는 이름은 안다”라는 말이 수많은 증인에 의해 회자된 것만 보아도 그가 가진 세계선교의 열정과 영향력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만약 누군가 “순복음 신앙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에 나아가 선교하는 삶이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계선교에 평생을 바친 영산의 삶이었고, 그의 선교 정신을 이어받은 모든 순복음 성도들의 꿈이 되어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선배의 본을 따라 인내로써 믿음의 경주를 하라고 권면하고 있다(히 12:1). 오늘날 교회가 영산으로부터 반드시 전해 받아야 하는 믿음의 영적 바통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선교의 바통’이다. 이제 영산의 뒤를 이어 우리도 성령 충만함 가운데 ‘선교 바통’을 이어받아 주님 오시는 날까지 세계선교의 꿈을 이뤄가야 할 것이다. 국제신학연구원 제공
  • 2022.11.2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영산의 신유 사역 
  • 영산에게 신유 사역은 그의 핵심적인 목회 철학 중 하나였다. 영산은 신유의 기적이 과거 예수님 시대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사역임을 확고히 믿었다.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을 받았으면 믿음으로 값없이 병 고침 받는 것도 마땅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영산이 믿었던 신유의 은사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은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포함되어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영산에게 신유 사역은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표징이자 ‘아직’, 그러나 반드시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었다. 영산은 치유의 현장에서 예수님의 임재를 보았고 하나님 나라에서의 믿는 자의 부활을 보았다. 그래서 영산은 목회 현장이나 부흥회 사역에서도 병 고침을 강조했는데, 그가 인도하는 집회에서 질병의 치료를 경험한 사람들의 간증거리는 수없이 많다. 영산이 이같이 신유를 강조하게 된 것은 어떤 특정한 치유 신학을 공부한 결과가 아니었다. 그를 ‘신유의 종’으로 만든 것은 그가 처한 삶의 현장 속에서 실제 경험했던 치유의 하나님 때문이었다. 폐결핵 3기로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을 때 주님을 만나서 완치되었던 경험이 그것이다. 또 대조동 천막교회 시절 중풍에 걸린 여인이 낫고 걷지 못했던 소년이 일어나 뛰며 듣지 못했던 사람이 듣게 되는 기적이 나타났다. 이런 경험을 통해 영산은 하나님이 오늘날에도 병든 자를 치료하신다는 사실을 체득할 수 있었다. 자신의 삶과 목회 현실에서 신유의 역사를 분명하게 체험했기에 영산은 가는 곳마다, 서는 곳마다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 영산의 신유 사역은 교회 부흥에도 크게 기여했다. 실제로 영산의 개척교회가 빈민촌 지역사회에 깊이 뿌리 내리게 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치유의 기적이었다. 그래서 영산은 신유를 하나님 나라의 가시적인 표적으로 보고 목회 사역에 열심히 적용하고 실행했다.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으로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낫게 되는 신유 사역”(막 16:18)이 복음 전파에 동반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이후에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에 대해서 회고할 때도 신유 사역의 중요성을 언급한 적이 있다. 복음에 저항적이던 사람들이 육체의 질병을 치료받고 은혜를 받아 복음의 말씀을 세상에 나아가 강력하게 전하기 때문에 교회가 크게 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교회 공동체를 신유 공동체로 보았다. 영산의 신유 사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믿음이다. 영산은 그 어느 목회자보다도 병 고침에 대한 메시지를 많이 선포했고 신유의 기적도 많이 행했지만 정작 자신이 ‘신유의 은사’를 받았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성령이 필요에 따라 자신을 통해 은사를 나타내실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산 자신이 분명히 받았다고 주장하는 은사가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믿음의 은사’였다. “내가 받은 은사를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담대한 믿음입니다. 담대함을 가지고 믿음으로 선포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성경은 표적이 여러분의 믿음보다 앞선다고 하지 않습니다. 표적이 여러분의 믿음 뒤에 따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믿음의 역사는 천막교회 시절에 나타났다. 걷지 못하던 소년이 영산을 찾아왔을 때 처음에는 그가 낫는다는 것을 믿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영산이 한 시간이 넘도록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자 뭉게구름 같은 믿음이 그의 마음으로부터 차오르기 시작했다. 영산은 그때의 기분이 마치 지구를 자기 손으로 밀면 지구가 밀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간증한 바 있다. 하나님이 주신 이러한 믿음으로 기도하고 선포할 때 영산은 그 소년을 포함한 수많은 이들의 병을 고칠 수 있었다. 영산은 오늘날 병 낫기를 간구하는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믿음의 기도를 잘 드리지 못하거나 주님의 말씀에 담긴 뜻을 잘 알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한다고 말했다. 영산에 따르면 신유의 역사는 단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회복시키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실 때까지 성령님이 살아 역사하셔서 은사를 베푸시고 병든 자들을 일으키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산은 신유가 지금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임을 분명히 믿었다. 따라서 성도는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써 신유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기에 자신의 아픈 부분에 손을 얹고 믿음으로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영산을 통한 성령의 신유 사역은 여의도순복음교회뿐 아니라 국내외 수많은 교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신유의 복음을 포함한 예수 그리스도의 전인적인 순복음을 이해하는데 큰 유익을 주었다. 앞으로도 영산의 신유 사역의 원리를 계속 연구하고 실행함으로 새로운 신유행전의 역사가 계속 나타나길 희망한다. 국제신학연구원 제공
  • 2022.10.2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문서·방송 선교의 선구자…1988년 기독교 일간지 국민일보 창간
  • 영산은 미디어의 활용이 미미하던 시절, 문서 선교와 방송 선교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닫고 사역에 적용한 선구자였다. 영산은 자신이 가진 뜨거운 선교적 영성을 담아내어 빠르게 전파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 놀라운 교회 성장을 이루었다. 순복음의 신앙이 한국과 세계에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의 그 어떤 교회보다 멀티미디어를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문서 전도』의 저자 조지 버워는 “기독교 문서는 인쇄된 선교사”라고 말한 바 있다. 문서 선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보게 하는 말이다. 영산은 누구보다도 문서 선교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사역에 적용하였다. 1964년 당시 순복음교회 성도들에게 교회와 관련된 각종 소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순복음지』를 발간했다. 이것이 점점 발전하여 1978년에 이르러서는 영산의 설교와 칼럼, 성도들의 신앙 간증과 구역 성경 공부 및 교회 소식을 담은 『순복음뉴우스』가 되었다. 이후 『순복음가족신문』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오늘날까지 문서 선교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다. 영산은 또한 순복음교회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한국교회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월간 잡지 『신앙계』를 창간함으로 문서 선교의 폭을 확장했다. 『신앙계』는 기독교의 대중지,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위한 교양지, 불신자들을 위한 전도지, 교회를 하나로 묶는 기독교 잡지로서 자리매김했다. 해방 이후 대중적인 기독교 잡지로는 『신앙계』를 능가하는 잡지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신앙계』가 말씀에 기초한 성령운동의 건전한 보급과 한국교회 평신도들의 신앙 성장에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서울신학대학교 명예교수인 박명수 박사는 “『신앙계』야말로 오순절 신앙을 한국교회에 널리 전파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영산의 문서 선교의 열정은 『순복음가족신문』과 『신앙계』의 성공으로 끝나지 않았다. 1987년 한 이단 종교 단체가 일간 신문을 발간하려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영산은 만약 그 단체에서 신문을 발간하게 된다면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이 자명하다고 판단했다. 이를 두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가운데 기독교 일간지 창간에 대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1988년 세계 최초의 기독교계 일간지 『국민일보』가 창간되었다. 정부와 사회에 기독교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언론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영산은 신문사를 설립하는 과정 가운데 막대한 재정적 부담과 근거 없는 비난의 목소리로 큰 고통을 받았지만, 믿음의 확신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나갔다. 복음 실은 일간지 『국민일보』는 매일 하나님의 복음을 한국 땅에 전파하는 발 없는 전도사로서 한국 기독교의 성장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기독교 정신으로 발간된 최초의 기독교 일간지로서 한국 교계의 대사회적인 발언의 장으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나아가 기독교 문화의 채널로써 한국 사회에 기독교 세계관을 전파하는 사명도 이뤄가고 있다. 영산의 『국민일보』 창간은 대한민국 1200만 기독교인을 대변하는 신문으로서 한국 기독교 역사 가운데 매스컴 선교의 새 장을 열었다는 데 큰 의의를 가진다. 영산은 문서 선교뿐 아니라 방송 선교를 통해서도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당시 영산은 복음 전도의 방법을 새로운 형태로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도 방송 선교의 파급력과 중요성을 일찍 깨달았던 영산은 1966년 라디오 설교와 1979년 컬러TV 방송을 송출했다. 영산의 라디오 설교 방송은 1979년, 1980년 연속, 전국 청취자 애청 프로그램 조사 결과 청취율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청취자가 많았다. 이처럼 한국교회 방송 선교의 선구자는 단연 영산이었다. 당시 흑백 TV에 익숙했던 공중파 제작자들이 방송 장비와 시스템을 구경하기 위해 여의도순복음교회에 견학을 올 정도였다. 방송 선교는 교단의 장벽을 뛰어넘는 데 중요한 매체가 되었을 뿐 아니라 기독교의 울타리를 넘어 일반인들에게 오순절 신앙을 전하는 통로가 되었다. 영산의 방송 선교를 통해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이 설교 말씀을 듣고 구원받는 역사가 나타났다. 또 위성과 인터넷을 활용한 예배와 설교 실황은 각 지성전 및 지교회 설립과 더불어 교세 확장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영산의 방송 선교는 국내를 넘어 전 세계에 이르기까지 사상과 국경을 초월하여 복음이 전파되었다. 1982년에는 미국 TV 프로그램 제작 회사인 KCWC사의 특별 기획으로 주일 예배 실황이 미국, 캐나다,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이스라엘, 홍콩, 필리핀, 남아공 등 25개국에 동시 위성 중계되기도 했다. 이처럼 영산의 성령 충만의 복음은 21세기 정보화 시대와 함께 전 세계에 발 빠르게 퍼져나갔다. 영산은 커뮤니케이션의 대가였다. 설교뿐 아니라 설교를 전달하는 매체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아무리 훌륭한 설교라도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면 세계적인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을 것이다. 영산의 설교와 성령 충만의 영성은 멀티미디어 사역 시스템을 통하여 세계 곳곳에까지 전파될 수 있었고 이러한 사역이 세계 교회에 끼친 영향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복음의 메시지는 불변해도 그것을 전달하는 방법은 시대에 맞게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영산의 멀티미디어 사역이 우리에게 남겨준 값진 유훈이다. 국제신학연구원 제공
  • 2022.09.23 / 김용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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