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배정호 목사(여의도순복음은평성전 담임) - 성령 안에서 드리는 감사
  • 1620년 겨울, 메이플라워호에서 내린 청교도들의 눈앞에는 신앙의 자유가 아니라 죽음뿐이었습니다. 추위와 굶주림은 그들의 환상을 무너뜨렸고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얼어붙은 대지에 누워갔습니다. 그러나 봄의 햇살이 내려 그 땅을 녹일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인디언들의 손길 속에 옥수수와 보리가 자라났고 가을의 수확은 그들의 예상을 훨씬 초월했습니다. 추수의 날 그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손이 자신들을 붙들었음을 깨달은 감격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들이 세운 감사의 제단 위에는 풍요로운 곡식이 아닌, 죽음의 계곡을 통과한 영혼들의 믿음이 제물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추수감사절의 진정한 기원입니다. 그들의 감사는 결코 풍요에서 피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결핍의 한복판에서 절망의 어둠 속에서 오직 믿음만이 이끄는 길을 걸으며 드린 감사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순절 신앙의 깊은 의미를 만나게 됩니다. 오순절 운동은 성령의 현재적 임재를 체험하고 그 능력을 고백하는 신앙입니다. 그렇기에 감사는 단순한 감정의 파동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이 우리 영혼 깊숙이 일으키는 믿음의 응답이며 현실의 폭풍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을 놓지 않는 영혼의 고백입니다. 사도 바울의 외침이 울려 퍼집니다. “성령 안에서 항상 감사하라.”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심을 믿을 때 비로소 어둠 속에서 드리는 감사의 찬양입니다. 청교도들처럼 고난의 자리에서 감사의 제단을 세우는 것이 진정한 믿음의 증거입니다. 사도행전의 오순절 마가다락방에서 성령이 임하던 그 순간은 마치 영적 추수감사절과 같았습니다. 초대교회는 복음의 열매를 거두기 시작했습니다. 언어의 장벽이 무너지고 문화의 벽이 허물어지며 수많은 영혼들이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날의 감사는 곡식의 풍성함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영혼들이 영원한 생명으로 추수되는 기적에 대한 감사였고 물질의 풍요가 아닌 하나님 나라의 끝없는 확장에 대한 감격이었습니다. 신자들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영에 속한 것을 더 풍성하게 거두며 감사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추수감사도 이러한 영적 유산 위에 서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 영혼 밭에 맺으신 믿음의 열매, 사랑의 향기, 인내의 결실들을 감사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의 약속들까지도 씨앗을 뿌린 농부가 가을 수확을 기다리듯 믿음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 드리는 감사는 현실의 가시밭과 어둠을 뚫고 피어나는 꽃과 같습니다. 그것은 절망 속에서 소망을 노래하게 하고, 죽음의 계곡 속에서도 생명의 노래를 부르게 합니다. 청교도들이 추운 겨울을 견디며 눈물 속에 씨를 뿌렸듯이 우리도 그 믿음의 전통을 이어가야 합니다. 우리도 삶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감사의 노래를 부르는 영혼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 2025.10.3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김용권 목사(여의도순복음신월교회 담임) - AI시대를 분별하라
  • 오늘날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은 교회와 목회 현장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행사, 교육 콘텐츠 제작, 행정 자동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AI는 유용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신학적 우려와 윤리적 경계가 존재한다. 지난 1월 한국기독교학회는 AI(인공지능)시대에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 문제와 부작용에 대해 교회가 청지기적 목소리를 낼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우리는 AI(인공지능)시대를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기술의 유익을 누리지만 그 본질과 영향력을 성경적 관점에서 분별해야 한다. 이제는 단순히 온라인 포털에서 검색하는 것을 넘어서 ChatGPT 서비스에게 일문일답으로 답을 얻고, 실생활에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AI 앞으로 어디까지 얼마나 발전할까? 많은 기술업계 전문가들은 AI가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범용 인공지능) 컴퓨터로 사람과 같은 또는 그 이상의 지능을 구현하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AI가 인간의 지능을 모방하고 특정 영역에서 능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지게 한다. 창세기 1장 27절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라고 선언하며, 인간은 단순한 정보 처리 기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AI는 인간의 이해를 구현할 수는 있지만 도덕적 판단, 영적 교감, 사랑의 실천은 결코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AI를 맹목적으로 신뢰하고 의존할수록 하나님의 성품 대신 AI의 가치, 계산, 통제, 생산성을 닮아갈 위험이 있다. 이는 곧 기술을 우상화하는 현대판 심각한 바알 숭배가 될 수 있다. AI가 제공하는 출처가 불분명한 정보는 교회의 진리 수호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창세기 1장 28절은 인간에게 “땅을 정복하라, 다스리라”는 청지기적 사명을 부여한다. AI는 선하거나 악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성격이 결정된다. 교회는 AI를 두려워하거나 배제하기보다 하나님 나라 확장의 도구로 지혜롭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체의 영적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윤리적 기준과 신학적 검증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기술의 유익을 누리되 그것이 인간의 본질을 침해하거나 복음의 본질을 왜곡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교회는 AI를 통해 더 넓은 선교의 문을 열 수 있지만 그 문이 진리의 길이 되도록 목회자의 분별과 성령의 인도하심이 반드시 필요하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1~22).
  • 2025.10.2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이승훈 목사(여의도순복음청주교회 담임) - 너는 복이 될지라
  •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사역하다 여의도순복음청주교회으로 내려온 지 1년이 되었습니다. 지나면서 한 번 들렀을 법도 한데 청주는 처음입니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는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떤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떠나라고 명령하시고 “너는 복이 될지라”고 축복하셨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 말씀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복입니다. 이 말씀으로 복을 받아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복이 될지라”는 어떤 의미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이 되게 하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즉 내가 하나님의 복이라는 사실입니다. 주의할 점은 축복과 기복을 분명히 구분해야 합니다. 축복을 기복으로, 기복을 축복으로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축복신앙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받는 복된 신앙입니다. 반면에 기복신앙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복만 달라고 하는 잘못된 신앙입니다. 예를 들면,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복을 주십니다. 즉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축복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반면에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으면서 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복을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기복신앙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과연 진정한 복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말에 ‘복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려대 한국어 사전에는 “행운이나 행복을 가져다주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주로 어린아이에게 많이 쓴다”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귀한 자녀가 태어나거나 지혜로운 며느리가 들어와서 가정에 화평과 재물이 있으면 복덩이가 들어왔다고 말합니다. 요셉이라는 복덩이로 인해 바로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복이 임했습니다. 무시무시한 감옥의 간수장도 요셉이 복덩이인 것을 알고 제반 사무를 맡겼습니다. 결국 요셉은 총리가 되어 이스라엘 민족뿐 아니라 애굽과 굶주리는 많은 나라에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덩이가 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복은 주위를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내 맘대로, 내 이익대로, 내 기분대로 한다면 주위를 행복하게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복인 사람은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희생해야 가정이 살고 교회가 사는 것입니다. 진정한 복은 나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내가 속한 모든 곳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섬기므로 진정한 복이 되시기 바랍니다.
  • 2025.10.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평신도를 위한 사도행전 이야기
    (108) 사도행전의 설교에 관한 가르침 ④
  • 지난 호에 이어서 사도행전에 기록된 베드로의 설교와 바울의 설교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9) 상황: 베드로의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의 발언(15:1~35) (1) 대상: “사도와 장로들”(6절) (2) 베드로의 발언(7~11절):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7a절) ①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분을 없애시려는 하나님의 섭리 - 하나님이 우리(유대인)에게와 같이 그들(이방인)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심(8절) -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않으심(9절) ② 우리도 못 메던 멍에를 이방인들에게 지우지 말자.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10절) ③ 누구든지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11절) (3) 결과: ① 베드로에 이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보고함(12절) ② 야고보의 발언(13~21절) ③ 바울과 바나바, 유다와 실라 편에 안디옥 교회에 편지를 보내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는 예루살렘 사도회의의 결론을 내림(29절) 2. 바울의 설교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사도행전의 전반부에는 베드로의 설교가 주로 나오는 반면, 이제부터 사도행전의 후반부에는 사도 바울의 설교와 발언이 주로 나오게 된다. 1) 상황: 바울의 1차 선교여행 시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안식일 회당 설교(13:14~52) (1) 대상: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방인)” (16절; 26, 43절 참조) (2) 바울의 설교(16~41절) ① 이스라엘 역사와 다윗의 씨 예수 그리스도(17~25): 베드로의 설교의 핵심은 이스라엘 조상들의 불순종과 거역이었는데, 바울 설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뿌리를 찾는데 있다. -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출애굽, 40년 광야 생활,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간”의 인도하심(17~19절) -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심(20절) - 40년간 통치한 사울 왕을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심(21~22절):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 다윗의 후손에서 구주를 세우심: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23절) - 침례 요한이 먼저 와서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며 예고함: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리라”(24~25절) 김호성 목사(여의도순복음동부교회 담임목사)
  • 2025.10.1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07) 사도행전의 설교에 관한 가르침 ③
  • 계속해서 사도행전에 기록된 베드로의 설교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6) 상황: 성령 침례의 능력을 돈으로 사려는 마술사 시몬과의 충돌(8:18~24) (1) 대상: 마술사 시몬(18~19절)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2) 베드로의 책망: ① 저주: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20절) ② 회개 권면: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22~23절) (3) 결과: 마술사 시몬이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라고 요청함(24절) 7) 상황: 백부장 고넬료 집 설교(10:24~48) (1) 대상: 고넬료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24절) (2) 베드로의 설교(34~43절) ① 베드로의 깨달음: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34b~35절) ②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화평의 복음”이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됨(36~37절) -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38절) ③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과 십자가, 부활의 증인(39~41절)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39b~41절) ④ 우리에게 하신 명령(42절): 백성에게 전도;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심; 모든 선지자도 그에 대해서 증거(42~43a절) ⑤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43절) (3) 결과: ① 성령 침례와 방언: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44~45절) ② 침례: 베드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라”(47~48절) 8) 상황: 베드로의 고넬료 집 방문을 비난하는 할례자들(유대인들) 앞에서의 변증(11:1~18) (1) 대상: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1절), 예루살렘의 “할례자들”(2절) (2) 베드로의 해명(4~17절) ① 지난 일을 차례대로 설명(4~14절) 베드로의 환상(5~10절 = 10:10~16); 가이사랴 도착(11~12절); 고넬료의 환상(13~14절) ② 베드로가 말을 시작할 때 성령이 오순절에 체험한 것과 똑같이 그들에게 임하심(15절)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라는 말씀(16절) ③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17절) (3) 결과: 청중들 공감 -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18절) 김호성 목사(여의도순복음동부교회 담임)
  • 2025.09.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06) 사도행전의 설교에 관한 가르침 ②
  • 지난 호에 이어서 사도행전에 기록된 베드로의 설교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4) 상황: 성전 미문 앞 못 걷던 자를 고친 후 공회에 잡혀가 심문 받을 때 (4:5~22) (1) 대상: 관리, 장로, 서기관; 대제사장 안나스, 가야바, 요한, 알렉산더와 대제사장의 문중(6절); “백성의 관리과 장로들”(8절); “이스라엘 백성들”(10절) (2) 베드로의 설교(4:9~12) ①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됨(9~10절) ② 구약 예언의 성취: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11절; 시 118:22 인용) ③ 유일한 구원의 길 예수: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12절) (3) 결과: ① 유대 지도자들의 반응: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이상히 여기며,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자 그들에게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경고함(13~18절) ② 베드로와 요한의 대답: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19~20절) ③ 관리들: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에 따라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줌(21절) 5) 상황: 베드로의 두 번째 투옥과 두 번째 공회 앞에서의 재판시(5:17~44) (1) 대상: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21절) 대제사장: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28절) (2) 베드로와 사도들의 설교(5:29~32) ①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29절; 4:19과 동일함) ②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높아지심: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 하나님이 살리시고 …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30~31절) ③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32절) (3) 결과: ① 공회의 반응 -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함(33절) ② 백성에게 존경 받는 바리새인 율법교사 가말리엘의 발언(34~39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38~39절) ③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자 사도들은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남(40~41절) ④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42절) 김호성 목사(여의도순복음동부교회 담임)
  • 2025.08.1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쉽게 풀어 쓴 교회사 산책
    (83) 종교개혁㉓
  • 1521년 보름스 제국의회 ④ 이튿날인 4월 19일 금요일, 제국의회 의원들을 소집한 황제는 자신의 의견을 발표했다. 그의 말은 독일어로 통역되었는데 매우 굳어진 얼굴과 강한 어조로 루터의 주장에 강하게 반대하는 결연하고도 확신에 찬 연설이었다. “단 한 명의 수도사가 1000년에 걸쳐 이어져 왔으며 지금도 존중되는 기독교에 대해 지금까지의 모든 기독교인이 착각한 것이며, 지금도 그렇다고 말하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 칼 5세는 회의에 참석한 제후들의 책임을 상기시키며 계속 말했다. “황제인 저와 고귀하고 위대한 독일 제후 여러분이 지금 이단은 물론, 이단으로 생각되거나 기독교를 변질되게 만드는 사상이 민족의 정신에 스며드는 일을 막지 못한다면 심각한 불명예일 것이며, 우리와 우리 후손에게 영원히 오명으로 남을 것이다.” 그는 추가 심문을 거부하며 결론을 내렸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그를 배척하고 그를 악명 높은 이단으로 고소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니 여러분도 이 문제에 있어서 스스로 바른 기독교인인 것을 보여주고, 나에게 약속했듯이 신중한 결정을 내려주기 바란다!” 다음 날 제국의회 의원들은 불안에 휩싸였다. 밤사이에 알 수 없는 무리가 시청과 주교좌성당, 그리고 시내의 여러 문에 농민 반란을 암시하는 벽보를 붙였기 때문이었다. “분트슈! 분트슈! 분트슈!”라고 쓰인 벽보는 농민 봉기를 상징하는 노골적인 위협이었다. 당시 농민들은 영주에 대한 봉기를 일으키며 기사들이 신는 화려한 부츠와 대비되는 투박한 끈이 묶인 신발(분트슈)을 깃발에 그려 넣곤 했기 때문이었다. 400명의 기사와 8000명의 민중이 루터를 위해 싸울 태세였다. 황제의 침실에서도 협박 편지가 발견되었다. 편지에는 “꼬마가 왕인 나라에는 고통뿐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루터를 반대했던 마인츠의 대주교, 선제후이자 제국 최고의 영주인 알브레히트는 이러한 일촉즉발의 분위기 속에서 잔뜩 겁을 먹고 황제에게 루터의 청문회를 다시 열도록 제안했다. 황제는 그럴 뜻이 없었지만 강한 권력을 지닌 대주교의 제안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사흘간 더 루터를 심문하고 철회를 유도할 것을 허락했다. 4월 24일 수요일 아침 6시부터 다시 루터의 청문회가 열렸다. 트리어의 선제후이자 대주교인 리하르트 폰 그라이펜클라우가 심리를 주재했다. 청문회 분위기는 심문이라기보다 좌담에 가까웠다. 루터는 훗날 “그렇게 부드럽고 정중하게 토론하는 분위기는 처음 경험했다”라고 고백했다. 다음 날인 25일 목요일에 계속된 청문회 역시, 조금도 타협하지 않는 루터의 완고함 때문에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났다. 결국 루터는 황제가 안전을 보증하는 3주 이내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루터는 친구인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 1세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보냈다. “이곳에선 그렇게 많은 일이 벌어지지 않았네. 이 책이 너의 책인가? 그렇습니다. 이 책들의 내용을 취소하겠는가? 아닙니다. 알겠다, 물러가라! 아, 독일인은 얼마나 눈이 먼 민족인가, 어리석게 행동하면서 저 로마인들(교황과 교황의 지지자들)이 비겁하게 우리를 조롱하고 기만하도록 놔두고 있다니!” 4월 26일 금요일 오전 9시경 루터 일행은 길을 나섰다. 황제의 안전통행증이 있었지만 루터가 돌아가는 길에 사람들에게 설교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효력이 있었다. 그러나 5월 1일 수요일에 루터는 헤르스펠트에 도착한 후 이튿날 새벽 그곳 수도원에서 설교함으로써 황제의 안전통행증은 효력을 상실했다. 다음 날 아이제나흐에서도 설교했다. 황제의 지시에 따르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표시한 셈이었다. 루터에게 있어서 성경의 진리를 전하는 일이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일보다 더욱 소중한 일이었다. 김형건 목사(영산신학연구원 학장)
  • 2025.10.2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82) 종교개혁㉒
  • 1521년 보름스 제국의회 ③ 1521년 4월 18일 오후 4시 루터는 두 번째 심문을 받기 위해 의회장에 나왔다. 그곳은 이미 심문 광경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황제는 제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으므로 루터는 사람들 앞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두 시간 정도 지난 후 루터는 심문이 진행될 장소로 안내되었다. 전날 심문 받은 공간보다 훨씬 큰 홀이었지만 이내 구경꾼들로 가득 찼다. 사람들의 열기로 홀은 더웠고 횃불이 방을 비추고 있었다. 루터는 많은 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전날과 달리 결연한 표정이었다. 트리어의 대주교인 엑켄은 첫째 날과 마찬가지로 루터에게 그의 책들을 수정하거나 철회할 것인지 물었다. 루터는 주저함 없이 답변했다. “내가 쓴 책들은 세 종류입니다. 신앙의 기본이 되는 설교들, 그리고 성경 해석들, 마지막으로 교황을 반박하는 글이자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관한 논쟁입니다. 처음 두 가지 종류의 책들은 그 내용을 철회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세 번째 책의 경우는 이를 철회할 경우 불의와 불경건을 옹호하는 꼴이 됩니다. 성경적으로나 이성적으로 자신의 명백한 오류가 드러난다면 기꺼이 저 스스로 그 책들을 불에 던지겠습니다.” 약 10분간 이어진 루터의 답변은 전부 독일어로 진행되었다. 황제는 모국어처럼 사용했던 프랑스어와 스페인어 외에도 플랑드르어(현재 벨기에), 이탈리아어 그리고 독일어를 구사할 줄 알았지만 정확한 뉘앙스를 이해할 수 없었기에 라틴어로 다시 대답할 것을 요구했다. 루터는 동일한 내용을 다시 한번 라틴어로 대답했고, 이내 제후들과 시의회원들은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대체 무슨 소리인가? 철회하겠다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철회할 수 없다는 이야기인가?” 제후들은 심문관이었던 엑켄에게 명확한 대답을 루터에게 받아내라고 지시했다. “마틴! 당신은 확실하고 분명한 신앙으로 믿어야 할 것에 관해 토론하려는 헛된 기대를 품고 있소!” 엑켄은 정색하며 루터에게 주의를 준 뒤 다시 한번 그의 주장들을 철회할 것인지, 아닌지 ‘뿔 없는 대답(non cornutum responsum, 꾸밈없는 직설적인 대답)’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루터는 더욱 분명하게, 모든 사람이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황제 폐하와 여러분들이 원하신다면 뿔도 이빨도 없는 소박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내 양심은 내가 인용한 성경 말씀들에 의해 사로잡혀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있습니다. 사실 나는 교황이나 공의회만을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주 오류를 범하고 모순된 말까지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성경의 증언과 명백한 이성적인 이유에 의해서 설득되지 않는 한 나는 아무것도 철회할 수 없고 철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양심에 반하는 행동은 안전하지 않으며 구원마저 위태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저를 도와주소서! 아멘!” 청중들 사이에 당혹감이 퍼졌다. 루터의 대답을 듣던 황제는 청문회를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루터는 의회장을 빠져나갔다. 의사당 밖에는 이미 심문 내용을 전해들은 사람들이 빼곡히 모여 있었고, 그들은 루터를 향해 환호했다. 숙소에 도착한 루터는 승리한 사람처럼 두 팔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소리쳤다. “내가 통과했다! 내가 통과했다!” 심문 과정에서 루터는 칼 5세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게 되었다. 비텐베르크라는 작은 도시의 수도사이자 신학 교수의 흔들림 없는 확신을 목격한 신성로마제국의 통치자는 그날 저녁 책상에 앉아 프랑스어로 진지하게 자신의 신앙적 입장을 써 내려간다. 김형건 목사(영산신학연구원 학장)
  • 2025.09.2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81) 종교개혁㉑
  • 1521년 보름스 제국의회 ② 비텐베르크 시는 루터를 위해 금세공 장인이 만든 마차를 제공하고 추위와 비바람을 막기 위한 지붕을 달아주었다. 비텐베르크 대학은 여행 경비로 20굴덴을 지원했으며 동료 수도사와 교수 그리고 친구들이 루터와 길을 나섰다. 루터 일행이 라이프치히와 바이마르를 지나 에어푸르트에 도착했을 때 도시 입구에는 에어푸르트 대학 총장이 기사 40명과 함께 루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엄한 행렬이 루터를 호위하며 성 안으로 안내했다. 이튿날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 대성당에 몰려든 군중 앞에 서서 설교했다. 인파의 무게로 발코니가 무너지려고 하자 사람들이 창문을 깨고 대피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루터는 거의 모든 도시에서 큰 환영을 받았으나 심적 갈등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여행 내내 스트레스로 인한 심한 복통과 변비에 시달렸으며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한편 보름스는 이미 연초부터 제국의회를 위해 1만명이 넘는 인파로 들끓고 있었다. 80명의 제후와 130명의 귀족 그리고 여러 나라의 왕이나 군주가 파견한 사절단이 모여들었고, 여기에 평의원, 성직자, 기사, 음악가, 하인, 광대들까지 몰려들었다. 인구가 7000명 남짓이던 도시는 갑작스러운 인구 폭증으로 큰 혼란에 빠졌다. 몇 달 전부터 이미 숙소가 동이 났고 의회와 총회를 열 장소와 사무국 및 법정을 마련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루터의 소환 소식은 더욱 큰 기대를 모았다. 마침내 4월 16일 오전 10시 루터의 도착을 알리는 대성당 나팔수의 신호가 울리자 사람들은 일제히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2000명가량의 인파가 몰려들어 거리는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황제의 전령 슈투름이 선두에 섰고 루터의 마차가 뒤따랐다. 루터는 요한 기사단 건물을 숙소로 배정받았으나 두 명의 작센 관료와 함께 한 방을 사용해야 했다. 그럼에도 교회 개혁의 주창자를 직접 만나고 싶어 한 헤센 지방의 귀족들, 학자들, 그리고 평의원들이 잇달아 그를 찾아왔다. 4월 17일 수요일 루터는 황제와 제국의회 앞에서 심문받기 위해 오후 4시까지 의회에 출두해야 했다. 황제의 전령과 총사령관이 루터를 데리러 왔다. 그는 자신이 속한 수도회의 수도복을 입고 정수리를 말끔하게 깎은 차림으로 회의장에 들어섰다. 작고 초라한 방 안에는 젊은 황제 칼 5세가 앉아 있었다. 제국 통치자와 교회의 반항아가 처음으로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루터에게 반감을 품고 있던 황제는 교황의 특사 알레안더를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저자가 나를 이단으로 만드는 일은 없을 걸세!” 루터는 논쟁을 기대했지만 트리어 대주교의 신하 요한 폰 데어 엑켄이 진행한 심문은 예상과 크게 달랐다. 엑켄은 루터에게 탁자에 쌓아놓은 스무 권 가량의 책들을 가리키며 그것이 루터의 저술이 맞는지 또한 그 내용을 철회할 것인지 물었다. 질문은 라틴어와 독일어로 두 차례 반복됐다. 루터는 먼저 독일어로 이어 라틴어로 자신이 그 책들을 썼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철회 여부에 관한 즉답은 하지 않았다. 대신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의 눈빛은 불안했고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확고하고 담대한 대답을 기대하던 많은 이들의 탄식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의회는 황제와 상의한 끝에 루터에게 하루의 시간을 주되 반드시 서면이 아닌 구두로 답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그렇게 루터는 자신의 숙소로 돌아갔다. 김형건 목사(영산신학연구원 학장)
  • 2025.08.2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뿌리깊은 순복음
    (165) 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78>
  • 자녀는 부모와 동등한 인격체 례함 아닌 존중으로 대해야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 교만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5). 2025년 4월 여성가족부는 ‘2024년 위기청소년 지원기관 이용자 생활실태조사’의 결과를 발표했다. 위기청소년 실태조사는 3년마다 실시하는 국가승인 통계자료로, 청소년 상담복지센터·청소년쉼터 등을 이용한 만 9세에서 18세 이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조사이다. 이 결과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가출해본 적이 있다’는 응답자는 27.7%, ‘최근 1년간 가출해봤다’는 응답자는 20.0%였다. 위기청소년은 가출의 이유에 대해 ‘가족과의 갈등(69.5%)’, ‘자유로운 생활(34.3%)’, ‘가정폭력(26.3%)’ 등을 꼽았다. 특히 가족과의 갈등과 가정폭력의 주 상대자는 다름 아닌 부모였다. 일반적으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 ‘무례하다’라고 하는 말은 주로 자녀들에게 붙인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함부로 대하는 것을 무례하다고 하며 이는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자녀의 무례함 못지않게 문제가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부모의 무례함이다. 사실 부모는 사랑이라는 이유로 자녀들에게 무례하게 행할 때가 너무 많다. 자녀는 애완동물이 아니며 자신의 의지와 생각, 그리고 감정을 소유한 부모와 동등한 인격체다. 인격체에게 필요한 것은 무례함과 강압이 아니라 존중과 대화이다. 안타깝게도 부모는 때때로 이런 자녀들의 인격을 무시하기가 쉽다. 자녀를 자기 소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쉽게 자녀에게 ‘내가 낳았고, 내가 모든 정성과 희생을 쏟았고, 또 내가 너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너는 내 말을 들어야 한다’고 강요한다. 문제는 이런 부모들의 사랑을 자녀들은 부당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청소년의 70%가 ‘부모를 미워한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녀들을 사랑합니까’라는 질문에 99%의 부모들은 ‘그렇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대답한 부모의 자녀들에게 ‘당신의 부모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했더니 단지 33%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부모와 자식들 사이의 이러한 66%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부모의 사랑이 자녀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그 결정적 원인은 바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녀에게 행해진 부모의 무례함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6장 4절에서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씀하며 부모들에게 교훈한다. 자녀를 노엽게 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인격이 무시당한다고 느낄 때이다. 진정한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으며 이것은 자녀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자녀를 사랑한다면 절대로 무례히 행해서는 안 된다. 무례한 사랑은 사랑을 가장한 학대이기 때문이다.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5.10.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64) 순복음의 7대 신앙-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77>
  • 익숙하고 편한 부부 관계일수록 더욱 예의를 지키고 배려해야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 교만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5).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결혼한 지 30년 이상인 부부의 이혼이 최근 10년 새 47%가량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이혼 건수는 9만1151건으로 전년에 비해 1.4% 감소했지만 결혼 기간이 30년 이상인 부부의 이혼은 1만5128건으로 334건(2.3%) 늘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무려 46.6%(4809건)나 증가한 것이다. 물론 30년 이상 부부의 이혼은 고령인구가 늘어난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하지만 이혼 부부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오랜 갈등이 자녀의 성장 및 독립과 더불어 폭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발표한 이혼 상담 이유로 여성은 남편의 폭력 등 부당대우, 장기별거, 성격차이, 경제갈등, 남편의 외도 등이 많았고 남성은 장기별거, 성격 차이 등이 주요 이유였다. 남편이 은퇴로 돈을 벌지 못하자 아내가 자신을 쓸모없는 사람 취급했다는 상담 내용도 있었다. 부부간의 사랑은 자칫 잘못하면 무례한 사랑이 되기 쉽다. 때로 부부간의 약속은 잘 안 지켜도 된다고 생각해서 다른 중요한 약속이 생기면 부부간의 약속은 항상 뒷전으로 밀린다. 또한 사랑하고 친숙해졌다는 이유로 무례한 말도 서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면서 ‘부부니까’ 이해해 주리라 믿으며 안심한다. 다른 이들에게는 신사나 숙녀처럼 예의 바르고 잘 배려하면서 가장 소중하고 아껴야 할 배우자에게는 무심하고 배려에 인색한 경우도 많다. 한 번 스쳐 지나갈 낯선 타인에게는 깍듯이 예의를 지키면서도 평생을 함께해야 할 내 아내, 내 남편에게는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은 진정 어리석고 미련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스스로 먼저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서는 부부일수록 순조로운 결혼 생활을 더 오랫동안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다시 말해 성공적인 결혼 생활에는 “고마워” 못지않게 “미안해”라는 말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남편이 “미안해”라는 말을 자주 할수록 부부의 행복도와 결혼 만족도가 높아졌다. 연구팀은 부부 사이에 “미안해”라는 말은 단순한 ‘사과’가 아니라 지혜로운 ‘투자’라고 강조했다. “미안하다”는 말은 상처 입은 사람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이며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가장 용감한 사람, 먼저 용서하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도 했다. 상대방을 무시하고 무례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안하다”고 사과하기가 힘든 것이다. 예의 없는 사랑이 서로의 관계를 힘들게 한다. 그것은 무례한 행위 그 자체보다도 상대방이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한 상처가 더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나부터 먼저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내보는 것은 어떨까? 성령 충만한 믿음의 부부들이 모두 행복하기를 소망해 본다.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5.09.1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63) 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76>
  • 참된 사랑은 그 누구에게라도 무례히 행하거나 소홀히 대하지 않아야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 교만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5). 하루는 시몬이라 불리는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자기 집에 초청했고 예수님은 그 초대에 응해 그 집에 들어가 앉으셨다. 때마침 그 동네에 살던 한 여인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왔다. 성경에는 ‘죄를 지은 한 여자’라고 기록돼 있다. 추측하기는 아마도 몸을 파는 창기였을 것이다. 그 여인은 먼저 자신의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셨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냈다. 뒤이어 그 발에 입을 맞추더니 값비싼 향유를 그 발에 부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집주인 바리새인 시몬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고 그런 죄지은 여자가 자기의 집에 들어온 것조차도 탐탁지 않았다. 그는 예수님에 대해서도 “만일 이 사람이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라고 생각하였다(눅 7:36~39). 그 순간 이미 시몬의 생각을 간파하신 예수님은 시몬이 그 여인에게 무례히 행하기 전에 먼저 이렇게 물으셨다.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그러자 시몬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많이 탕감을 받은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대답을 들으시고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시몬아, 네 판단이 옳도다.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인은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인은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하셨다(눅 7:40~50). 바리새인 시몬은 율법의 눈으로 그 여인을 판단하고 무시했다. 그에게는 율법의 기준과 잣대는 있었으나 사랑과 긍휼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는 달리 예수님은 사랑으로 그 여인을 감싸 주셨다. 예수님은 사랑으로 불쌍한 여인을 시몬의 무례함에서 건져주신 것이다. 더불어 예수님은 바리새인 시몬 앞에서 다음과 같이 그 여인을 칭찬해 주셨다.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 7:47). 예수님은 참된 사랑으로 자신을 섬겼던 그 여인을 더 큰 사랑으로 용서해 주셨다. 이처럼 사랑은 아무리 하찮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절대로 소홀히 여기지 않는다. 비록 그가 흉악한 죄인이라도 말이다. 진정한 사랑은 누구에게도 무례히 행치 않는다.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잠 21:24).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5.08.2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기독교 설교자 열전
    중세 시대의 설교(Ⅰ)
  •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서로마·동로마 분열 서로마 멸망한 476년, 중세 시대의 시작 기독교의 설교에서 성경으로부터 어떤 메시지를 도출해낼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설교자와 그 설교를 듣던 청중들의 삶의 자리 역시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앞으로 살펴보게 될 중세 시대 개별 설교자들에 대해 논하기 전에 그들이 활동했던 중세 시대의 특징을 살펴보려고 한다. 영국의 신학자이자 역사가이며 저술가인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강제 퇴위당하고 서로마제국이 막을 내린 476년을 중세의 시작으로 간주한다(알리스터 맥그라스, 『기독교의 역사』,p. 158).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325년 로마제국의 서부와 동부의 통제권을 장악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제국의 동쪽에 새로운 도시를 세우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해서 선택된 장소가 바로 지중해와 흑해에 걸쳐 있는 보스포루스 해협 가운데 있는 비잔티움이며 이후에 황제의 이름을 따라 ‘콘스탄티노폴리스’(‘콘스탄티누스의 도시’)이라고 불리게 됐다. 이 도시는 330년 5월 11일 봉헌되었으며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이 도시를 ‘새 로마’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새 도시 건설은 동·서로마의 탄생과 동·서교회 분열의 서막이 되고 말았다. 그 씨앗은 379년부터 395년까지 로마를 다스렸던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뿌려졌다.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공식 종교로 만드는데 중요한 조치들을 단행한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넓은 영토를 혼자 통치할 수 없다고 판단해 395년 제국을 동서로 분할하여 자신의 두 아들 아르카디우스(동로마)와 호노리우스(서로마)에게 맡겼다. 이후 동서제국은 각자 발전하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서로마제국은 476년 멸망하게 된다. 4세기 후반 훈족의 등장으로 인해 게르만족은 생존을 위해 남쪽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이동해온 게르만족은 자연스럽게 로마에 흡수됐다. 로마에 편입된 게르만족은 부족한 노예 대신 농사를 짓고 용병이 되어 로마를 위해 전쟁터에 나갔다. 그 가운데 공을 세워 출세하는 인물들이 등장했고 그중 한 사람이 바로 서로마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를 폐위시키고 이탈리아의 왕이 된 오도아케르이다. 서로마를 멸망시킨 오도아케르는 독자적인 왕국을 건설하기보다는 동로마 황제 제논에게 “콘스탄티노폴리스에 계신 폐하께서 진정한 황제”라는 서신을 보냄으로써 동로마의 그늘에 있기를 원했다. 서로마제국의 멸망은 첫째,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제국 분할이라는 정치적인 이유와 둘째, 도시 귀족의 사치와 허영으로 인한 사회적인 이유 때문이며 셋째, 오랫동안 외부의 침략자들을 막아내는 과정에서 군사력이 약화되는 군사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한편, 서로마제국이 몰락했다고 해서 교회 조직이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동로마에 있는 로마교회는 여전히 교황이 있는 명실상부한 로마 기독교의 중심지였다. 4세기 중엽부터 대교구인 로마, 콘스탄티노폴리스, 알렉산드리아, 안디옥의 주교들이 다른 곳의 주교들보다 더 우위에 있는 것으로 인정을 받게 됐다. 특히 서쪽 지역의 교회들에서는 로마 주교가 교회 내외의 문제를 중재하는 이로 인정받게 됐다. 로마 주교가 그런 권위를 인정받았던 것은 로마가 로마제국의 수도라는 정치적인 요인과 더불어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로마에서 순교했고 로마에 묻혔다는 영적인 요인도 있었다. 원래 ‘교황’이라는 말은 존경받는 기독교 주교를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로마 주교를 위한 칭호로 바뀌었다. 384년부터 399년까지 로마 주교였던 시리치오는 오직 자신과 자신의 후계자에게만 이 칭호를 사용하도록 규정했다. 이런 이유로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교황들은 여전히 로마에 남아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 중앙 행정 체계가 무너지고 정치권력의 공백 상태가 발생했을 때 이를 메운 것이 교황과 교회였다. 6세기 말이 되었을 때, 오직 교회만이 서로마 지역에서 유일한 국제 조직으로 남게 됐다. 또한 590년부터 14년 동안 교황을 지낸 그레고리오 1세 때에 선교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기독교의 세력권이 한층 확장됐다. 선교활동을 통해 교황의 영향력이 이탈리아 바깥 지역에도 미치게 됐으며 8세기에는 잉글랜드, 독일, 프랑스 등 서유럽 여러 지역이 교황의 권위 아래 복속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도 이전 시대와 같이 많은 설교자가 등장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했다. 조지훈 목사(한세대 설교학 교수)
  • 2025.10.10 / 이미나 기자

    찬가 설교의 대가 로마노스
  • 성경이나 교리 등을 시 형식으로 노래해 이영훈 목사의 설교에서도 그 흔적 발견 설교학자 다간은 방대한 분량의 책 『설교의 역사』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죽은 5세기 초부터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는 11세기까지의 시기를 설교 역사의 두 번째 기간으로 분류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이 시기는 거대한 제국 로마가 부패로 치닫고 있었고 그에 따라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고 종말 의식이 팽배해 있었다. 제국 로마의 멸망을 알리는 종소리가 저 멀리에서 들려오고 있었고 이제 온 유럽에 중세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 활동했던 사람 중의 하나가 동방교회 전통에 속해있던 로마노스(Romanos the Melodist)이다. 로마노스는 설교자라기보다는 콘타키온(Kontakion) 형식의 찬가 작곡자였다. 폴 스캇 윌슨은 설교 역사를 인물별로 정리하는 자신의 책 『그리스도 설교의 역사』에서 로마노스를 “동방교회 내의 시적인 설교자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설교자요 모든 시대에 걸쳐서 위대한 종교적인 시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있다(폴 스캇 윌슨, 『그리스도 설교의 역사』, 대한기독교서회, p 62). 로마노스를 설교자로 분류할 수 있는 이유는 콘타키온이 무엇인지를 살펴봄으로써 좀 더 분명히 알 수 있다. 콘타키온은 비잔틴교회의 교회 전례음악으로 6세기경 콘스탄티노플에서 한창 발전했다. 성경 이야기나 교리를 운문(시) 형식으로 서술하는 장문의 찬가인 콘타키온은 성도들에게 성경 이야기, 교리, 성인들의 생애 등을 감성적이고 시적인 언어로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콘타키온의 구조는 서곡에 해당하는 프로이미온(prooimion)과 여러 개의 연으로 구성된 오이코이(oikoi)로 되어있다. 프로이미온은 1절로 된 짧은 도입부분으로 전체 주제를 요약해주고 계속되는 후렴구를 제시한다. 18개에서 24개의 연으로 구성된 오이코이는 각 연이 동일한 운율과 리듬 구조를 가지고 있고 프로이미온에서 소개된 후렴구를 사용함으로써 통일성을 유지한다. 현재에도 동방교회 전통의 교회에서는 콘타키온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전의 긴 형식 대신 서곡만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 다른 설교학자들과는 달리 폴 스캇 윌슨은 강단에서 행해진 설교뿐만 아니라 순교자의 죽음이나 찬가 역시 하나의 설교로 간주한다. 그런 이유에서 윌슨은 로마노스를 한 설교자로 분류하고 있다. 윌슨에 따르면 기독교 역사 속에서 운율과 박자에 따른 설교의 전통이 있어왔다. 165년 소아시아의 줄 사르디스의 멜리토(Bishop Melito of Sardis)가 발견한 ‘수난에 관한 설교’가 그 대표적인 예이며 아우구스티누스의 라틴어 설교 역시 운율, 박자, 평행법, 대조법, 모음을 통한 협음 만들기 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운율과 박자에 근거한 설교라고 할 수 있다. 전승에 따르면 성가대원이었던 로마노스는 노래를 잘 부르지 못했다고 한다. 어느 성탄절 전야에 찬가를 불러야 했던 그는 성모 마리아에게 전심으로 기도하며 도움을 구했다. 그날 밤 꿈속에서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이 두루마리를 먹어라”라고 말했다. 잠에서 깨어난 그는 두루마리를 입에 넣어 삼켰고 다음 날부터 놀라운 음성과 즉흥적인 찬송시를 만드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로마노스는 1000개 이상의 콘타키온을 썼지만 오직 59개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로마노스가 작곡한 콘타키온은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개인적인 삶에 대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특징은 당시 예술가들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겸손한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그들의 작업이 교회에 속한 것이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작곡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윌슨은 추정한다. 둘째, 로마노스의 시적인 설교들은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보통 24개의 연으로 구성된 설교들은 행마다 하나의 해설이 곁들여졌고 어떤 경우는 각 행에 들어있는 음절의 숫자에까지도 해설이 덧붙여졌다. 셋째, 설교를 행하는 설교자는 음율과 박자에 맞추어 노래하면서 이야기를 진행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여러 등장인물을 다른 목소리로 표현해야 했다. 이렇게 여러 등장인물을 통해 성경과 교리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가르침도 전달됐다. 이렇게 진행되는 설교의 마무리 과정에서 “회중은 합창단이 그 설교의 중심 주제로 사용하는 동일한 후렴구를 최소한 25회나 반복해서 부르는 것을 들었고, 또한 그 회중도 합창단에 합세해서 따라 부르곤 했다”(『그리스도 설교의 역사』, p 65). 오늘날 로마노스가 행했던 찬가 설교는 찾기 어렵다. 그러나 그가 강조했던 감성적이고 이야기 중심의 설교 전통은 지금도 많은 설교자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 이야기 중심의 설교, 감성을 자극하는 설교는 현대 청중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게 하는 좋은 매개체가 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로마노스의 콘타키온의 마지막 부분에 회중들이 성가대와 함께 부르는 찬양을 자신의 설교에 적용하는 현대 설교자들도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는 설교 마지막 부분에 예화를 하고 이어 설교 주제에 맞는 찬송으로 설교를 마무리한다. 설교 후반부를 찬송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성도들이 지금까지 들은 설교의 내용을 되돌아보게 하고 그 내용을 따라 한 주간을 살아가도록 결단하게 한다. 로마노스의 찬가 설교의 흔적을 이영훈 목사의 설교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조지훈 목사(한세대학교 설교학 교수)
  • 2025.05.09 / 이미나 기자

    교회의 역사는 설교의 역사라 할 수 있어
  • 김운용 교수 『한국교회 설교 역사』, 조용기 목사 다뤄 교회는 설교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베드로의 설교로부터 초대교회가 시작됐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에드워드 다간은 “기독교의 역사는 설교의 역사”라고까지 말했다. 이번 호에서는 그와 같은 기독교회의 설교 역사를 기록한 책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에드워드 다간(Edward Dargan)이 쓴 『설교의 역사』(A History of Preaching)일 것이다. 모두 2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1905년에 출판됐으며 무려 1200여 쪽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으로 교부들로부터 종교개혁 시기까지(1권, 70~1572년), 종교개혁 말기로부터 19세기까지(2권, 1572~1900년)의 설교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은 솔로몬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모두 3권으로 출간됐다. 스웨덴의 신학자이자 교회사 교수였던 잉베 브릴리오트(Yngve T. Brilioth)가 1945년에 쓴 『간략한 설교의 역사』(A Brief History of Preaching)라는 책도 있다. 1965년 영어로 번역된 이 책은 유대의 회당에서 시작된 설교로부터 초대교회의 설교, 헬라의 설교, 아우구스티누스의 설교, 중세 설교, 루터로부터 카르프조프(Carpzov)의 설교, 에큐메니칼적인 관점에서의 설교 연구(가톨릭교회 설교, 스위스 개혁주의 설교, 프랑스 개혁주의 설교, 청교도 전통의 설교, 미국의 설교, 성공회 설교)를 다루고 있다. 최근에 나온 설교 역사에 대한 책은 O. C. 에드워드 Jr.(O. C. Edwards Jr.)가 쓴 『설교의 역사』가 있다. 2004년에 출판된 이 책은 신약의 설교와 유대의 회당 설교로부터 시작해서 기독교 설교의 기원에 대해 살핀 후에 초대교부들의 설교, 중세 교회의 설교, 13~14세기의 설교, 르네상스로부터 계몽주의까지의 설교, 근대의 설교, 현대의 설교 등을 다루고 있다. 에드워드의 책은 기독교 설교의 시작을 2세기 이후, 곧 신약성경이 집대성된 이후로 잡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에 의하면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설교는 오늘날의 설교와 차이가 있는데 그 이유는 오늘날의 설교는 성경 해석을 근거로 행해지지만 신약성경의 설교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설교를 이렇게 정의한다. “설교란 권위를 부여받은 설교자가 성경 구절에 근거한 교리에 대해 예배에 모인 기독교 청중들에게 말하는 것으로 설교자는 청중들이 자신의 설교 내용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근거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 비유적인 이야기나 다양한 수사학적인 장치들을 사용한다.” 한편 그의 주장을 반박하며 다른 입장을 제시하는 학자들도 있다.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임마누엘 칼리지의 교수였던 폴 스캇 윌슨이 그런 학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설교란 성경 해석 이전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신약성경이 집대성되기 훨씬 이전부터 복음을 증거하는 기독교 설교는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폴 스캇 윌슨에게 예수님을 비롯해 복음을 전했던 사도들과 제자들은 이미 설교를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는 사도들이 보냈던 서신들 역시 하나의 설교라고 생각한다. 그 서신들은 수신자들의 교회와 교회가 당면하고 있던 문제를 복음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대안을 제시한 사도들의 설교라는 것이다. 에드워드의 책은 『교부들의 설교』(은혜출판사, 2017)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 폴 스캇 윌슨 역시 설교 역사에 관한 책을 썼다. 이 책은 한신대에서 설교학을 가르친 김윤규 교수에 의해 『그리스도교 설교의 역사』(A Concise History of Preaching, 대한기독교서회, 2015)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 이 책의 특징은 책 제목 그대로 기독교 설교 역사를 간략하게 인물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는 점이다. 또한, 신약성경을 하나의 설교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설교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를 살펴보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우리나라의 설교학자가 쓴 설교 역사에 관한 책 중에는 정장복 교수가 쓴 『인물로 본 설교의 역사』(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라는 책이 있다. 1986년 출판된 상권은 예언자들로부터 시작해서 미국의 찰스 그랜디슨 피니까지 인물별로 살펴보고, 1990년에 출판된 하권에서는 비이처를 비롯해 20세기 미국의 설교자들을 거쳐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까지 살펴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장신대 김운용 교수가 쓴 『한국교회 설교 역사』가 있다. 904쪽이나 되는 이 책에서 김 교수는 초창기 선교사들의 설교로부터 시작해서 일제 강점기의 설교, 해방 이후부터 1970년대의 설교, 1970년대 이후 교회 성장기의 설교 등을 인물로 살펴보고 있다. 이 책의 특징은 각 시대를 대표했던 설교자들의 삶과 설교를 잘 분석해놓았다는 점이다. 우리 교회 설립자이신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를 분석해 놓은 부분이 눈에 띈다. 조지훈 목사(한세대 설교학 교수)
  • 2025.04.18 / 이미나 기자

    기독교 렌즈로 보는 문화
    그리스도의 얼굴
  • 바르셀로나에서 북쪽으로 200㎞, 피레네산맥 기슭의 작은 마을 타훌에 가면 1123년에 그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벽화를 만날 수 있다. 성 클레멘트 교회의 제단 뒤편 공간을 가득 채운 이 그리스도상은 900년의 세월을 넘어 오늘도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이 그림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형상을 만들지 않았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을 매일 기다리던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하나님은 십계명에서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명령하셨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물고기, 어린양과 같은 상징으로만 표현했다. 인격적인 얼굴을 그리려는 시도는 수백 년이 지나서야 조심스럽게 시작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얼굴을 직접 보고 싶어 했다. 마치 도마가 부활하신 주님의 못 자국을 만져보려 했듯이 그들도 예수님을 형상으로라도 만나고자 열망했다. 복음서 어디에도 예수님의 용모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교회는 시대마다 예수님의 얼굴을 그려왔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얼굴을 똑같이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은 이런 분이시다’라고 고백한 신앙의 내용이었다. 그리스도의 얼굴은 시대마다 달랐다. 초기에는 아폴로를 닮은 젊고 아름다운 청년으로 때로는 철학자의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로마 카타콤에서는 선한 목자로 비잔틴 시대에는 만유의 주로서 위엄 있게 표현되었다. 중세 서유럽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이 강조되었고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상적인 인간미가 부각되었다. 이처럼 각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필요와 이해에 맞게 그리스도를 표현했다. 특히 콘스탄틴 황제 이후 기독교가 공인되자 박해받던 교회의 상징이던 예수님은 황제의 모습처럼 왕좌에 앉아 세계를 다스리는 주로 나타났다. 이는 단순히 권력을 과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역사의 주관자이신 그리스도의 승리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려는 신앙의 표현이었다. 타훌의 그리스도상도 이러한 전통 위에 서 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거대한 아몬드형 광채 안에 앉아 계신 예수님은 심판자이면서 동시에 구원자이시다. 푸른색, 흰색, 붉은색으로 장식된 옷은 믿음과 순결, 희생을 상징한다. 이 벽화에서 예수님은 오른손을 들어 축복을 베푸시는 손짓을 하고 왼손에는 책을 들고 계신다. 그 책에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말씀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이 작품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은 독특한 긴장감을 담고 있다. 크게 뜬 눈과 정면을 향한 시선은 보는 이를 피할 수 없게 만든다. 이 그리스도상은 동방교회 성화의 초월성, 서방교회 성화의 인간성, 아프리카 교회의 흑인 그리스도,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자 그리스도라는 다양한 측면을 모두 담아낸다. 벽화의 세부적인 표현도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예수님 후광의 십자가, 알파와 오메가, 네 생물의 상징은 모두 그리스도의 신성과 구원 사역을 증언한다. 세 개와 다섯 개의 점들은 삼위일체와 창조의 신비를 암시한다. 모든 장식과 추상적 무늬는 하나의 목적을 지향한다. 그것은 성육신의 신비, 즉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완전한 사람이 되신 경이로운 사건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려는 노력이다. 오늘 우리는 어떤 그리스도의 얼굴을 그리고 있는가? 성공과 번영만을 약속하는 그리스도인지 내 편만 들어주는 그리스도인지 아니면 고난 받는 이웃 속에 함께하시는 그리스도인지 말이다. 초기 교회가 당시 문화의 옷을 입고 그리스도를 표현했듯이 우리도 오늘의 언어로 그분을 증언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분은 심판자이면서 구원자이시고, 왕이면서 종이시며 멀리 계시면서 가까이 계신다. 무엇보다 그분의 눈은 오늘도 우리를 바라보신다. 요구하기보다 베풀어주시고 정죄하기보다 용서하시며 파멸이 아닌 구원을 원하시는 사랑의 눈으로. 성전에 들어가 이 벽화를 올려다본 중세의 그리스도인들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의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 그분의 눈이 우리를 꿰뚫어 보실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시선 속에서 우리는 심판이 아닌 은혜를 정죄가 아닌 사랑을 발견하게 된다. 시대마다 다르게 그려진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셨다는 사실이다.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빛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다.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지금도 우리를 비추고 있다. 그 빛은 어둠을 밝히고, 길을 잃은 이들을 인도하며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준다.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비치는 빛이 우리를 통해 어두운 세상에 밝게 비치길 소망한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5.10.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샘물과 같은 보혈은
  • 피는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이 땅의 수많은 생물이 피를 가지고 있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보혈(寶血)’이라 불린다. ‘보혈’은 문자 그대로 ‘보배로운 피’를 의미하며 신학적으로는 ‘인류의 죄를 구속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흘리신 피’를 가리킨다. 이 보혈의 참된 의미와 능력을 깊이 깨닫고 시로 고백한 인물이 있다. 바로 18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찬송가 작사가인 윌리엄 쿠퍼(William Cowper)이다. 1731년 영국 하트퍼드셔에서 태어난 쿠퍼는 여섯 살 때 어머니를 잃는 아픔을 겪었다. 허약한 체질에 우울증까지 겹친 그는 오랜 시간 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터널을 지나야 했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으로 학교생활에도 어려움을 겪었고 간신히 학업을 마친 후 변호사가 되었지만 극심한 불안 증세로 인해 법정에 한 번도 서지 못했다. 이후 쿠퍼는 의회 서기직 면접을 준비하던 중 갈수록 커지는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공황장애를 겪었다. 마음의 병이 늘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다녔고 실패를 거듭할수록 절망은 더욱 깊어졌다. 그는 스스로를 무능하고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며 하나님조차 그런 자신을 구원하지 않으실 것이라 단정했다. 끝내 세 차례에 걸쳐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고 인생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하지만 쿠퍼는 요양원에 입원한 후 신실한 그리스도인 코튼 박사의 따뜻한 돌봄을 받으며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로마서를 묵상하다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롬 3:23~25). 이 말씀이 그의 마음 깊은 곳을 울렸다. 예수님이 보잘것없는 자신을 위해서도 보혈을 흘리셨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깨달은 것이다. 그는 구원이 자격이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임을 믿게 되었다. 그렇게 쿠퍼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고 그의 인생은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후 올니라는 작은 마을로 이주한 쿠퍼는 그곳에서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지은 존 뉴턴을 만나 그의 목회를 돕게 되었다. 뉴턴은 쿠퍼에게 든든한 친구이자 믿음의 동역자가 되어주었고 덕분에 쿠퍼는 점차 몸과 마음의 안정을 되찾으며 신앙 또한 더욱 깊어졌다. 뉴턴은 쿠퍼의 문학적 재능을 알아보고 찬송시를 쓰도록 격려했다. 쿠퍼는 펜을 들고 지난 고통의 나날과 회심의 순간을 떠올렸다. 지나온 모든 여정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음을 고백하며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 피 흘리신 예수님께 깊이 감사드렸다. 그러던 중 말씀 한 구절이 그의 마음을 두드렸다.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슥 13:1). 이 말씀에 영감을 받은 쿠퍼는 보혈의 은혜를 글로 써 내려갔다. 그렇게 나오게 된 찬송시가 오늘 우리가 부르는 새찬송가 258장 ‘샘물과 같은 보혈은’이다. 이 찬송의 영어 원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There is a fountain filled with blood drawn from Emmanuel’s veins”(임마누엘의 핏줄에서 흘러나온 피로 가득 찬 샘이 있다). 쿠퍼에게 예수님의 보혈은 생명수가 흘러나오는 샘과도 같았다. 샘이 목마른 자에게 생명을 주고 더러움을 씻어내듯 예수님의 보혈은 죄로 인해 죽은 자를 살리며 죄를 깨끗이 씻어준다. 쿠퍼는 한 줄기 빛조차 없는 암흑 속에서 자신을 건져낸 샘물 같은 보혈의 은혜를 찬양하고 또 찬양했다. 예수님의 보혈은 과거의 사건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역사하는 능력이다. 때로 우리는 아무런 소망도 보이지 않는 깊은 절망의 순간을 마주한다. 그러나 찬송가 ‘샘물과 같은 보혈은’의 가사처럼 예수님의 보혈에는 지금도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깨끗이 씻어내고 우리를 새롭게 하는 능력이 있다. 혹시 지금 어둠 가운데 있거나 영적인 목마름을 느끼고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보혈의 샘이다. 예수님의 피로 가득한 그 샘은 오늘도 우리에게 열려 있으며, 누구든지 와서 마음껏 마실 수 있다. 오늘 이 찬송의 가사를 묵상하며 마음 다해 불러보자. 나를 위해 흘리신 그 보배로운 피를 힘입어 다시 일어설 용기와 소망을 얻게 될 것이다. ‘샘물과 같은 보혈은 주님의 피로다/ 보혈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보혈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국제신학연구원>
  • 2025.08.2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반 다이크의 <성령강림>을 바라보며
  • 성령강림절이 지나고 교회력은 다시 ‘보통의 시간’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성령은 ‘보통의 시간’에도 여전히 살아 역사하신다. 이때 오래된 그림 한 점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17세기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안토니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 1599~1641)의 <성령강림>(The Descent of the Holy Spirit)이다. 반 다이크는 벨기에 안트베르펜 출신으로 16세에 이미 자신의 화실을 가질 만큼 탁월한 재능을 지닌 화가였다. 루벤스의 조수로 활동하며 종교화와 초상화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20세기 중반에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르네상스와 베네치아 화풍을 배웠다. 또한 이탈리아 화가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와 파올로 베로네세(Paolo Veronese)의 색채와 구도에서 큰 영향을 받으며 더욱 성숙한 작가로 성장했다. 이후 영국 궁정화가로 초빙되어 왕과 귀족들의 초상을 다수 그리며 기사 작위를 받았다. 그의 작품은 루벤스의 화려한 색채를 계승하면서도 섬세하고 절제된 감정 표현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다. 특히 그는 성경 인물을 이상적인 모습으로 그리기보다는 실제 인간의 감정과 몸짓을 담아내어 그림을 보는 이가 그 장면에 참여하도록 이끈다. 바로크 시대가 강조한 ‘극적인 순간’과 ‘신앙의 감각적 체험’을 탁월하게 구현해낸 그의 작품이 바로 <성령강림>이다. 이 그림은 1620년경 반 다이크가 루벤스의 화실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 날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 위에 불의 혀처럼 임한 성령강림 사건을 생생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오늘날 성령 충만을 사모하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그림 상단에는 어두운 구름이 드리워져 있다. 이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닫고 모여있던 제자들의 현실을 반영한다(요 20:19). 그러나 그 구름을 뚫고 삼각형 모양으로 빛이 내려온다. 삼각형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상징하며 그 빛 위쪽에는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그려져 있다. 이 빛은 명확한 경계 없이 아래로 퍼지며 방 안에 있는 각 사람에게 닿는다. 그림 속 인물은 총 14명이다. 열두 사도, 마리아로 보이는 한 여성 그리고 오른쪽 기둥 뒤에 얼굴이 반쯤 가려진 인물이 포함된다. 이들은 성별, 나이, 옷차림, 표정, 자세가 모두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머리 위에 성령의 불이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는 성령이 어느 특정한 사람에게 임한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함께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임하셨음을 보여준다. 가운데 푸른색 옷을 입은 마리아는 두 손을 모은 채 성령을 간절히 사모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녀 앞에 강한 바람에 밀려 넘어질 듯한 인물은 성령의 임재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강력하고 실제적인 사건임을 보여준다. 그림 오른쪽 기둥 아래에는 두 권의 책이 있다. 하나는 독서대 위에 펼쳐져 있고, 다른 하나는 바닥에 놓여 있다. 이는 오순절 날이 이르기 전에 제자들이 기도에 힘쓰며 읽었던 구약의 율법서나 시편을 상징한다(행 1:14). 반 다이크는 이를 통해 성령 충만이 말씀과 기도 위에 세워진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또한 오른편 한 사도는 기둥에 팔을 두르고 있다. 기둥은 교회를 상징하며(딤전 3:15), 이 장면은 혼란과 두려움 속에서도 진리의 기둥을 붙잡고 서 있는 성도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눈길이 머무는 곳 오른쪽 가장자리 기둥 뒤에 얼굴이 가려진 인물이 있다. 반 다이크는 그 사람을 의도적으로 가려놓았다. 그는 누구일까? 열두 사도도 아니고 동정녀 마리아도 아니다. 반 다이크는 이 인물을 통해 시대를 넘어 지금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이 자리는 바로 당신의 자리다.” 이 그림을 바라보는 구경꾼으로 머물 것이 아니라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속으로 참여하라는 부르심이다. 성령의 충만함은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회복되어야 할 현재의 역사다. 성령은 특정한 시대의 특정한 사람에게만 임하지 않는다. 성령은 오늘, 지금 여기에, 사모하는 모든 이들에게 임하신다. 반 다이크의 <성령강림>은 다시금 우리의 시선을 성령의 충만함으로 이끈다. 지금은 무엇보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절실한 때이다. 지나온 날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며 간절하게 기도하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어둠 속에서 흔들리는 대한민국과 세계 온 열방 위에 예수 그리스도 참 소망의 빛이 비치길 간절히 구하자. <국제신학연구원>
  • 2025.07.18 / 김용두 기자

    선교 뉴스
    순복음가와고에교회, 여름축복성회
  • 일본 순복음가와고에교회는 5일 여름축복성회를 개최하고 성도들과 함께 영적 성장을 도모하며 ‘일본 일천만 구령’을 위해 기도에 힘을 모았다. 성회는 순복음가와고에교회 담임 타나베 야베스 목사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천안순복음소망교회 담임 임지택 목사가 강사로 초청돼 말씀을 전했다. 임 목사는 마태복음 15장 21~28절을 본문으로 ‘그 믿음이 기적을 불렀다’라는 설교를 통해 귀신들린 딸의 치유를 간절히 구한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조명했다. 임 목사는 “믿음은 기적을 여는 열쇠”라며 “가나안 여인처럼 환경을 뛰어넘어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와 부르짖을 때 하늘 문이 열리고 응답이 임한다”고 강조했다. 성도들은 영혼 구원을 향한 헌신과 복음 전파의 확장을 위해 마음모아 기도했다.
  • 2025.08.15 / 오정선 기자

    일본 순복음사카이교회 새성전 입당
  • 일본 오사카 순복음사카이교회 성전 입당기념 감사예배가 7월 27일 개최됐다. ‘새성전, 새로운 시작’(왕상 8:27~30, 41~43)을 제목으로 설교한 순복음일본총회 양현근 간사이지방회장은 나까하다 미경 목사와 순복음사카이교회를 통해 순복음의 열정으로 ‘일천만 구령’의 역사가 일어나길 기대했다. 이날 예배에는 순복음사카이교회 성도들과 간사이지방회 목회자들, 23~24일 단기 선교를 위해 이 교회를 방문 중인 순복음예수가족교회 예가미션 선교팀, 성전 리모델링을 위해 헌신한 부산 지역 교회 성도 등이 참여해 순복음사카이교회 부흥을 중보하면서 은혜가 넘쳤다. 나까하다 미경 목사는 “노방전도 및 어린이 사역을 위해 한국에서 온 선교팀이 무더위 속에 이사까지 힘써 도왔다”고 고마워했다. 나까하다 미경 목사는 “이번에 무엇보다 큰 은혜는 구원의 열매였다. 일본에 함께 온 리모델링 팀장의 지인이 선교팀과 연합한 금요철야예배에서 감동을 받고 주님을 영접했다”며 “수많은 영혼이 주 앞에 나오는, 초대교회 부흥과 같은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새성전에서 일어나길 간절히 소망한다”고 말했다.
  • 2025.08.01 / 오정선 기자

    제51회 순복음세계선교대회 결과보고회 
  • 이영훈 목사 “150개국으로 순복음의 선교 영역 확장 생각”
    제51회 순복음세계선교대회 결과보고회가 16일 오전 CCMM빌딩 루나미엘레 컨벤션홀에서 개최됐다. 선교국 담당 김영석 목사는 ‘오직 말씀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성령으로’라는 주제로 펼쳐진 선교대회 및 선교사 수련회 관련 행사 내용, 예산 집행, 후원 내역, 총평 등을 공유하고 관계자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올해는 67개국에 파송된 673명 선교사 중 351명 선교사와 배우자, 자녀 총 635명이 본국을 방문해 선교대회 및 선교사 수련회, 자녀 캠프에 참여해 영성 회복 및 공동체 연합의 시간을 보냈다. 이영훈 담임목사는 “교회의 존재 목적은 선교이며 모든 걸 다 쏟아 부어도 전혀 아깝지가 않은 가장 가치 있고 귀한 사명이 선교”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현지에서 훈련된 제자들이 인근으로 파송돼 선교를 이어가는 시대로 150개국으로 순복음의 선교 영역을 확장해 나갈 생각”이라며 선교 비전을 제시했다. 또한 “각 지역의 신학교와 선교센터가 지역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하며, 국내에 체류 중인 다문화가족과 거주 외국인을 선교적 자산으로 삼아 훈련 및 제자화를 통해 선교 인재로 세워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말했다. 이날 모임에는 이번 선교대회를 후원한 장로회를 비롯한 교회 기관과 제자교회들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전 세계에 순복음 성령의 깃발을 꽂을 수 있도록 선교 관련기관과 교회들 간의 긴밀한 네트워크화를 다짐했다.
  • 2025.07.18 / 오정선 기자

    선교지 소식
    김명준 선교사(말레이시아)
  • 말레이시아 사역 위한 변함없는 중보가 필요합니다 마을 사역에 대한 행정기관의 제약 점점 심해져 성전 건축·제자 양성 주력, 함께할 사역자 필요 할렐루야! 말레이시아에서 사역하는 김명준 선교사입니다. 한국은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여기는 며칠 사이 유난히 더 더운 것 같습니다. 말레이시아는 평균 연령이 높아지면서 길어지는 노후에 대한 준비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최근 말레이시아 정부에서는 연금 제도를 수정하면서 2028년도까지 점진적으로 기본 저축액 한도를 높일 계획이라고 합니다. 여기도 국민의 노후 문제와 관련 정부 정책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 같습니다. 9월 말부터 휘발유 값이 내린다고 해서 내심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내국인에게만 적용되고 오히려 외국인에게는 30퍼센트 가까이 올렸습니다. 현장에서는 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여하튼 저희에게는 이래저래 무거움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샤론 교회는 성도들이 사바 지역 단기 선교를 다녀왔습니다. 성도들이 귀한 시간을 보내고 와서 감사하고, 다음에는 좀 더 많은 준비를 해서 새로운 지역을 다녀오고자 합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있는 라슬리 형제와 우니 자매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교회에서 만나 오랫동안 함께 봉사를 하면서 사랑을 키워나가 가정을 이룬 모습이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의 결과임을 믿습니다. 피카 자매는 그동안 임신 중독 증세로 입덧이 너무 심해 어려움이 많았는데 감사하게도 큰 어려움 없이 출산했습니다.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해서 너무 다행입니다. 자르니 전도사가 사임을 해서 여러 가지 절차의 어려운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데 제직들과 계속 만나 논의를 하고, 일단 라이만 전도사가 3개월간 사역을 맡아서 해주기로 했기에 당분간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자 합니다. 캄풍 마을 원주민 사역자들은 여러 상황으로 인해 신학 과정을 계절 학기 형식으로 많이 하곤 합니다. 이번 가을 학기에 수업이 많은 관계로 사역자들이 학업에 매달리고 있어 힘들지만 힘내라고 독려하고 있습니다. 아이르드낙 교회 리더인 아딘 집사가 십 수 년 신장 투석을 해오고 있습니다. 요즘은 한 주에 세 번씩 해야 한다는 얘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예전처럼 사역은 못하지만 변함없이 예배에 열심인 모습이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청년 사역의 하나로 스포츠 사역을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잠브리 전도사를 중심으로 청년 축구팀이 결성돼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샤론이나 조호바루 교회 청년들과 축구 시합을 추진해 볼까 합니다. 바뚜음빳블라스 교회 건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작은 규모여서 빨리 완공되기를 기대하지만 우기 시즌과 겹치고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 수 있기에 계속 기도와 함께 진행해 나가고자 합니다. 사역지의 행정 기관에서 외국인의 원주민 마을 방문 혹은 활동을 금한다는 방침을 발표해서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일선 경찰서에서 저희 사역지 마을에 직접 통보를 해오는 등 점점 더 사역에 제약이 늘고 있어 시름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조호바루 교회는 기존 사역을 더해 성경 나눔, 현지 목회자 초청 예배 등을 진행했습니다. 지난번 선교팀이 방문해서 많은 은혜를 받았던 물리야 교회의 사모인 야펜젤라 전도사가 강사로 말씀을 전했는데 차분하면서도 명쾌한 말씀을 통해 성도들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름이 아펜젤러 선교사님과 비슷해서인지 저에게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출산을 앞두고 있던 루이사 자매가 갑자기 얼굴에서부터 반신마비 증세가 와서 걱정됐었는데 무사히 건강한 사내아이를 출산했습니다. 산모의 마비 증세도 사라지고 아기도 건강해서 정말 감사합니다. 한국어부 학생부의 인원이 늘어나는 등 전체적으로 함께 할 사역자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재정이 여의치 않아 이래저래 고민 되고 있습니다. 지금보다는 미래를 바라보고 인적, 물적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 시기인 듯싶은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계속 하나님께 그 뜻을 구하고 있습니다. 한층 깊어져 가는 가을의 정취와 함께 하나님의 깊은 사랑의 정취를 경험하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라며 말레이시아 사역에 변함없는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공식적으로 마을 사역이 제한 된 상황을 지혜롭게 헤쳐 나갈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또 샤론 교회에서 사역할 신실한 사역자가 세워질 수 있도록, 바뚜음빳블라스 교회 건축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조호바루에서 함께 할 동역자가 올 수 있는 환경적인 상황이 열리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사모와 자녀 등 가족의 신변과 안전을 위해 기도를 요청 드립니다.
  • 2025.10.3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윤성빈 선교사(노르웨이)
  • “복음의 깃발 휘날릴 수 있도록 성령의 역사 기대” 노르웨이 유일한 한인교회 ‘예수만이 생명’ 전파 할렐루야! 노르웨이순복음교회를 맡고 있는 윤성빈 선교사입니다. ‘북쪽으로 가는 길’이라는 이름답게 국토의 절반 이상이 북극권에 속한 노르웨이는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입니다. 여름에는 백야 현상으로 잠시 낮이 길지만, 긴 겨울 동안은 낮에도 짙은 어둠이 드리우는 곳입니다. 1970년대 석유와 천연자원이 발견되면서 노르웨이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나라가 되었지만 복지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과도한 세금과 높은 인건비로 인해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비싼 나라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노르웨이는 일찍이 종교개혁의 영향을 크게 받아 약 480년 동안 루터교를 국교로 삼아왔습니다. 1907년에는 노르웨이 감리교 소속 토마스 바렛(Thomas B. Barratt) 목사가 미국 아주사에서 은혜를 받고 돌아와 북유럽에 성령운동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노르웨이는 2012년 헌법에서 기독교 국가의 지위를 삭제하였고 2016년부터는 교회에서 동성 커플의 결혼과 입양을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성경의 권위가 약화되고 교회가 점차 축소되었습니다. 이제는 국민의 약 1%만이 교회에 출석하는 신앙의 불모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노르웨이인들은 신앙보다 천연자원과 복지 시스템을 더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반면 많은 나라에서 난민들이 유입되면서 이슬람과 여러 종교들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제가 이곳에 파송될 때, 선교국으로부터 “노르웨이에는 한인교회가 단 한 곳밖에 없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국의 네 배나 되는 이 넓은 땅에 교회가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막상 현지에 와 보니 춥고 어두운 날씨, 높은 물가, 제한된 먹거리 때문에 한인들이 정착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교회를 세우려는 여러 교단 선교사들의 노력이 있었지만 정식으로 교회가 세워진 곳은 노르웨이순복음교회 한 곳뿐이었습니다. 이는 1986년 먼저 이곳에 파송된 이종욱 선교사님과 채옥병 사모님의 기도와 헌신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이종욱 선교사님은 손수 만든 김치와 한국 음식을 들고 기차로 8시간이 넘는 거리의 성도들을 30년 넘게 매달 찾아가며 구역을 세우셨습니다. 오슬로와 각 지방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이 모일 때마다 한마음으로 교회를 위해 기도했고, 그 결과 1997년 노르웨이순복음교회는 정식으로 노르웨이 정부에 등록될 수 있었습니다. 이어 2004년에는 오슬로에 성전을 매입하여 지금까지 예배와 교제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현재 노르웨이순복음교회는 한인들과 국제 가정 그리고 한국에서 온 입양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함께 사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매주 금요일과 주일에는 성전에 모여 예배와 기도를 드리고 있으며, 주중에는 먼 곳에 거주하는 성도들을 직접 찾아가는 심방 사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매년 5월에는 특별 바자회를 열어 한국 음식과 문화를 알리고, 11월에는 입양인들을 초청해 함께 음식을 나누며 위로하는 사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복지제도가 잘 갖추어진 선진국에서는 교회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말이 사라질 수 있도록 이곳 노르웨이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평생 교회에 다니지 않는 영혼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모든 관공서, 기업, 학교, 심지어 교회까지 무지개 깃발을 걸고 동성애를 지지하는 이 나라의 변화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노르웨이는 세계에서 가장 맑고 깨끗한 자연환경을 가진 나라입니다. 매년 노벨 평화상을 수여하는 평화의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다시 한번 크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온 유럽에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성도 여러분의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 2025.10.03 / 오정선 기자

    남광우 선교사(남아프리카공화국) 
  • “선교는 내가 아닌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열방선교교회 통해 선교와 미혼모 돕기 등 나서 다음 세대 깨워 아프리카 복음화 힘써 할렐루야! 아프리카 대륙 남단에 위치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사역하는 남광우 선교사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대한민국의 약 12배 크기의 나라로 저는 수도인 케이프타운 더눈(Dunoon) 지역에서 열방선교교회를 담임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 남아프리카에 처음 온 것은 IMF 외환위기가 터진 이듬해인 1998년 4월이었습니다. 결혼 후 첫 아이가 백일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참으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순복음의 정식 선교사로 파송 받은 것은 그 뒤 2008년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사역한 지도 벌써 26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그동안 여기저기에 건물들이 세워졌고 제자 교회도 3개가 됐습니다. 섬기고 있는 열방선교교회는 비록 큰 교회는 아니지만 선교하는 교회로서 동남부 아프리카 내륙에 위치한 말라위로 선교사를 파송해 두 가정이 사역 중에 있습니다. 넉넉지 않은 재정이지만 조금씩 후원을 하면서 함께 사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말라위는 아프리카의 최빈국들 중의 한 국가로서 여전히 가난합니다. 음식 재료가 거의 없으며 주식으로 옥수수를 가루로 만들어 식사를 합니다. 이곳에서 3개 초등학교(음칼란조카, 음판데, 고고)를 대상으로 급식 사역을 진행하며 3000명 아이들의 배고픔을 달래주고 있습니다. 혼자하기에는 어려운 일이나 도움의 손길들이 있어 감사합니다. 예수님을 잘 믿으면 굶어 죽는 일은 절대 없다는 것을 아이들의 기도와 간증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 굶기지 않으십니다. 세워진 현지인 목사들이 다 각자 자기의 교회를 맡아 열심히 봉사하고 섬기는 모습을 볼 때면 감사가 먼저 나옵니다. 제가 아프리카 선교지에서 사역하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선교는 내가 아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차려놓으신 밥상에 저를 초대해 주셔서 함께 사역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때문에 선교는 내 생각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생각을 가지면 됩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사역에 어려움을 겪고 떠나신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처음 사역을 시작할 때는 제 주변에 저희를 포함해 일곱 가정이 있었는데 지금은 저희 가족만 남았습니다. 자신을 내려놓고 사역할 때 점점 예수님께 가까이 가려했고 예수님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제 생각이 바뀌자 삶이 바뀌었고, 저희를 만나는 현지인들이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곳에서 저희가 두 가지 사역을 하게 하셨습니다. 첫째가 미혼모를 위한 사역입니다. 아프리카에는 미혼모가 많은데 10대 여자 아이들의 소원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들의 소원이 직장을 가진 유부남의 아이를 낳아 그 집에서 아이를 키우며 사는 것이라 합니다. 축복된 결혼 속에 자녀를 잉태하고 출산해야할 여성들이 임신으로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안타까워 아내와 저는 미혼모를 위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이들에게 올바른 성교육과 함께 잉태된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요, 결혼과 가정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2년 전 아내가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천국에 가면서 미혼모를 위한 사역은 제자 목회자의 사모들이 맡아 진행하게 됐습니다. 또 다른 사역은 다음 세대를 위한 사역입니다. 하나님은 이곳에서 소중한 보석들을 발견하게 하셨습니다. 다음 세대를 세우고 부흥시키는 일을 위해 저는 제자들과 힘써 달려갈 것입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아프리카를 위해 기도해주셨으면 합니다. 모두 보내는 선교사, 힘써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 동역해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선교 사역에 귀한 열매가 맺히길 기도합니다.
  • 2025.09.05 / 오정선 기자

    선교사를 위한 중보 기도
    이에스더 선교사(C국)
  • - M센터 교육 프로그램 통해 복음과 주님의 사랑이 잘 전해지도록 - 시리아로 돌아가는 가정과 학생들의 걸음을 인도해주시길 -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역자가 되도록 - 가족의 건강과 사명 감당을 위해
  • 2025.10.31 / 오정선 기자

    이피터 선교사(A국)
  • - 태풍 피해 및 침수로 인한 교회와 집, 학교의 복구를 위해 - 성령과 동행하는 사역이 되도록
  • 2025.10.24 / 오정선 기자

    캄보디아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 캄보디아에 체류 중인 한국인 대상 범죄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인과 선교사들의 안전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 2025.10.17 / 오정선 기자

    순복음영성스케치
    기도의 종류(Ⅳ) - 중보 기도
  • 세계적인 설교자 찰스 스펄전 목사는 “위대한 일을 행하실 때마다 하나님은 먼저 기도의 사람을 세우신다”고 말했다. 그가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본인 스스로가 기도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며, 특히 그를 위해 중보하며 기도하던 무명의 기도 동역자들의 영적 지원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 역시 그의 사역에 있어 중보 기도의 능력을 인정했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만 사랑하는 기도의 사람 백 명을 원했다고 한다. 타인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기도하고 연약함과 어려움을 지탱해주고자 하는 중보 기도는 영적 지도자를 위한 중보 기도로 이어질 때 더욱 강한 능력으로 나타난다. 1. 중보의 의미와 예수 그리스도 중보(intercession)의 문자적 의미는 ‘사이에 나아가다’, ‘상치하는 양자를 화해하기 위해 행동하다’의 의미가 있으며 법정에서 의뢰인을 돕는 변호사나 법률적 행위를 대신해주는 대리인의 개념을 갖고 있다. 요한복음 1장 18절은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증거하고 있는데, 앞선 중보의 개념에 따르면 예수님이 하나님과 인간을 중보하는 최고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은 지금도 성령님을 통하여 계속되고 있으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기도할 때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도와주신다. 2. 예수님의 중보 기도와 훈련 모델 능력 있는 중보 기도자가 되고자 소원하는 사람은 단연코 최고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따라가야 한다. 그러나 한 명의 중보 기도자가 세워지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중보 기도자로서의 소원과 결심이 있어야 하며 더 나아가 훈련이 필요하다.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의 최우선 순위는 기도였는데 어떠한 때에 기도하셨는지를 알아보면 중보 기도자로 서는 훈련에 도움이 될 수 있다. (1)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침례를 받으실 때 기도하셨다(눅 3:21~22). (2) 사람들에게 인정받던 전성기 때에 많이 기도하셨다. (3) 진리에 대한 계시가 필요할 때 기도하셨다. (4) 제자들을 선택하고 훈련하실 때 기도하셨다. (5) 사랑과 용서가 필요할 때 기도하셨다. 3. 중보 기도의 올바른 태도 중보 기도자로서 훈련을 받고자 하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훈련 방법은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매일 일정한 시간을 내어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 증진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아래의 5가지 올바른 태도를 유지하기만 해도 효과적인 중보 기도자로 설 수 있다. (1) 자발적으로 중보 기도하라 억지로 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지 못한다.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가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이다. (2) 구체적으로 중보 기도하라 중언 부언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신다(마 6:7). 구체적인 기도는 응답을 통하여 능력을 체험하는 통로가 된다. (3) 올바르게 중보하며 구하라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하고 정당한 것을 구해야 한다. 응답이 올 때까지 찾고 두드리는 실행의 과정을 능동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4) 전심으로 중보하며 구하라 두 마음을 품는 것을 하나님은 싫어하신다(약 1:8). 이런저런 생각이 많으면 기도에 집중하기 어렵다. 마음이 분산되는 것을 막는 실제적인 방법은 크게 소리 내어 기도하는 것이다. (5) 쉬지 말고 중보 기도하라 기도는 호흡이요 습관이 되어야 한다. 한꺼번에 일시적으로 많은 기도를 드리는 것보다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자주 드리는 기도가 효과적이다. 4. 영적 지도자를 위한 중보 기도 중보 기도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 지도자를 위한 기도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에게 순종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지도자를 판단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을 갖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시 66:18). 그리고 아래와 같이 영적 지도자의 영성과 생활과 사역의 3가지 영역에서 중보하며 기도하면 사역에 큰 능력이 나타난다. (1) 영성을 위하여(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기도) 지도자의 위치에서 듣게 되는 비난과 겪게 되는 억울한 일들을 견디고 이길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2) 생활을 위하여(개인적인 삶을 위한 기도)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추구하며, 행복한 가정의 모범이 되고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도록 기도해야 한다. (3) 사역을 위하여(사명 감당을 위한 기도) 교회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는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 끝까지 사명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귀한 뜻을 이루어 가야 한다. 성도들은 영적 지도자의 권위에 순종하고 그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하나되게 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끝> 김현동 선임목사(교무국 기도처지원팀)
  • 2023.12.2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기도의 종류(Ⅲ) - 방언 기도
  • 올해는 우리 교회가 속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교단이 창립한 지 70년이 되는 해로서 한국의 복음화를 위한 오순절 운동을 되돌아보게 한다. 오순절 운동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의 생명력을 회복시키려는 운동으로서 성령 침례의 결과가 방언, 신유, 능력으로 나타남을 강조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교회도 성령 충만과 방언 기도를 강조해 왔고, 이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신유 사역과 사회 참여를 통하여 세계 최대의 교회로 성장했다. 오늘은 우리 교회와 교단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 부흥의 큰 원동력이 된 방언 기도에 대해 알아보고, 방언 기도를 통해 성령 충만의 영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다짐의 시간이 되기를 기도한다. 1. 방언 기도의 의미와 성경 상의 언급 방언 기도는 영적인 언어로 말하는 기도로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통을 가능하게 하며 개인 신앙 발전에 큰 유익을 주는 기도이다. 방언은 성령 침례의 외적 증거이며 성경 많은 곳에서 성령 침례의 표적으로 나타난 방언 기도의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오순절 날 제자들에게 임한 성령의 임재(행 2:1~4), 둘째는 베드로가 고넬료와 집안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을 때의 성령의 임재(행 10:44~46), 덧붙여 바울이 에베소의 제자들에게 안수할 때의 성령의 임재(행 19:5~6)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2. 현대 오순절 운동과 방언 기도 성경 상에 등장하였던 방언 기도는 20세기 초 현대 오순절 운동에서 재발견된다. 1901년에 감리교 목사 찰스 팔함(Charles F. Parham)은 그가 가르치는 신학교 학생들과 함께 성경을 철저히 연구하던 중, ‘방언이 성령 침례의 최초의 증거’임을 깨닫게 된다. 이들은 이렇게 발견한 말씀의 내용을 철저히 믿고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 침례와 방언을 체험하게 되었고 이것이 현대 오순절 운동의 시작이다. 이어 방언 기도를 강조하는 오순절 운동은 1906년 윌리엄 시무어(William J. Seymour)의 아주사 부흥으로 이어졌다. 방언과 방언 통역, 예언, 축사, 신유 등이 강력하게 나타났던 아주사 거리 집회는 무려 3년이나 지속되며 기도의 불길을 이어갔다. 3. 방언 기도의 유익 성령 침례의 최초의 증거로서 방언 기도는 다음과 같은 유익을 가져다준다. (1) 방언 기도는 성령 충만의 확신을 준다. 성경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제자들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방언)로 말하기를 시작하였다고 증거하고 있다(행 2:4). 한편 믿는 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한다고 분명히 적고 있다(막 16:17). 성령 침례를 받으면 방언이라는 표적을 통하여 분명하게 성령 충만의 증거를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방언 기도를 한다는 것은 기도하는 자에게나 듣는 자에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성령 충만의 확신을 가져다준다. (2) 방언 기도는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통을 나누는 비밀한 언어이다. 방언 기도에 대해 비교적 많은 언급을 하고 있는 고린도전서에서는 방언을 하나님과 비밀한 영적 교통을 나누는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고전 14:2)고 하면서 또한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고전 14:14)라고 증거하고 있다. 이러한 방언 기도는 하나님과 비밀의 기도이기 때문에 사탄도 알아듣지 못한다. (3) 방언 기도는 자기 신앙의 덕을 세운다. 성경은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운다(고전 14:4)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덕’을 세운다는 것의 원어적 의미는 ‘집을 지어 올라간다’는 의미가 있다. 우리는 방언 기도를 통하여 마치 집을 짓듯이 우리의 신앙을 더욱 견고히 할 수 있다. (4) 방언 기도는 마음을 부정적인 상태에서 해방시켜준다. 방언으로 기도하면 우리의 잠재 의식 속에 있는 모든 불안, 초조, 절망, 미움, 원한, 상처 입은 것을 깨끗이 청산해 준다. 마음의 공간이 방언 기도를 통하여 깨끗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부정적인 상태에서 해방되어 절대긍정의 마음으로 변화 된다. (5) 방언 기도는 연약함을 돕는 탄식의 기도이다. 성경은 성령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고 하고 있다(롬 8:26~27). 방언 기도를 통하여 탄식하듯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6) 방언은 깊고 오랜 기도를 가능하게 한다 고린도전서 14장 15절에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고 증거하고 있다.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기 위해서는 기도의 시간이 길어야 한다. 방언 기도는 기도의 언어로서 기도를 오래 할 수 있게 하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코로나19 엔데믹 선언 이후인 지금은 성도 개개인이 기도를 통해 성령 충만한 영성을 회복하고 교회 내외적으로 전례 없는 부흥을 꿈꾸어야 할 때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 교회 성령 충만과 부흥의 토대가 된 오랜 시간의 깊은 방언 기도를 회복하는 것은 교회와 성도 모두가 부흥으로 향하는 최선의 지름길을 제공해 줄 것이다. 김현동 선임목사(목회자제직훈련소)
  • 2023.11.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기도의 종류(Ⅱ): 대적 기도
  • 그리스도인들에게 악한 영들과의 영적 전쟁은 선택 사항이 아닌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과정이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영적 전쟁에 대해 무의미하게 여기거나 막연히 신비적인 것이라고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영적 전쟁은 성경 여러 곳에서 많이 언급되고 있으며 오늘날도 실제적으로 많은 이들에 의해 체험되고 있다. 이러한 영적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대적 기도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오늘은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신 권세(창 3:15)에 힘입어 선포하는 대적 기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대적 기도의 의미와 특징 대적 기도는 문자 그대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권세에 힘입어 악한 영들에게 명령하고 선포하는 기도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도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의 형식이지만 대적 기도는 악한 영들에 대한 것으로 간구가 아닌 명령과 선포의 형태를 지닌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는 권세를 주셨다(눅 10:19). 이 말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악한 영들을 대적함으로써 승리하였던 것과 같이 오늘날 우리들도 예수님이 주신 권세와 능력을 믿고 명령하며 선포함으로써 귀신을 쫓아내고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2. 성경에 나타난 대적 기도 성경은 영적 전쟁을 실제적으로 묘사하면서 대적 기도의 상대인 악한 영들과 이들을 어떻게 상대하여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1) 대적 기도의 대상 성경은 우리가 물리쳐야 할 대상에 대해 직접적으로 ‘대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라고 하거나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고 말한다. 이러한 성경의 언급을 통해 우리의 대적이 바로 ‘마귀’임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2) 대적 기도의 사례 예수님은 귀신을 꾸짖는 방법(막 9:25)과 명하여 내어 쫓는 방법(눅 8:29)을 통하여 대적 기도를 행하셨다. 바울은 이러한 예수님의 권세에 힘입어 빌립보의 귀신 들린 여종을 향하여 명하였고, 귀신은 즉시 나오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행 16:18)는 명령과 선포는 오늘날 대적 기도의 대표적인 형태로 활용되고 있다. 3. 대적 기도의 방법 대적 기도는 보이지 않는 적과의 영적 대결이므로 마치 전쟁터에서 배수의 진을 친 것과 같은 비장한 각오로 준비하고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기도해야 한다. (1) 보혈을 의지하는 기도 유월절 어린 양의 피는 예수님의 보혈에 대한 예표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음에서 보호하실 것에 대한 약속이었다(출 12:13).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친히 흘려주신 보혈의 권세를 갖고 있으므로, 보혈에 의지하는 기도는 마귀에게 대적하는 가장 큰 기초가 된다. 연약한 육신을 입고 있는 우리들은 매일 같이 마귀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데 특별히 개인의 감정과 사회적 관계 그리고 환경 가운데 보혈을 뿌리며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2) 예수 이름의 권세를 의지하는 기도 예수님이 이 땅에 성육신하시어 오신 이유는 우리의 상실한 권세를 회복해 주시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셨으나 부활하셔서 승리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히 8:1). 이러한 예수님의 권세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됨과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요 1:12). 성경은 예수님의 권세에 의지할 때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고 하였고(마 16:18), 매고 푸는 권세가 있어서 마귀들을 묶고 포로된 자들을 구원하는 권세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마 16:19). (3)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갖는 기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으나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이긴 싸움을 싸우는 중이다. 그러나 아직 대적의 수중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겼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패배 의식에 빠지고 좌절과 낙심 가운데 살아가게 된다. 우리는 대장 되신 예수님이 죽음을 정복하셨고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주셨으며, 흉악과 결박에서 놓임 받게 해주심을 굳게 믿고 마귀를 대적하며 기도해야 한다. 4. 대적 기도의 실제와 유익 대적 기도를 통하여 의심, 두려움, 교만, 불안, 낙심과 염려 등 마음의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사라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대적 기도는 육체의 치유와 믿음의 회복도 가져다준다. 우리는 각종 암, 우울증, 중풍, 고혈압, 당뇨병, 만성 피로 등 육체의 질병에 대해 꾸짖고 명령하고 선포하여 승리할 수 있고, 영적 성장과 신앙생활에 방해를 주는 악한 영들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대적하며 기도할 수 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하노니, 사람의 육체와 정신과 영혼을 괴롭히는 악한 원수 마귀야! 지금 즉시 하나님의 자녀에게서 떠나갈지어다!” 이러한 선포를 통하여도 우리는 마귀와 효과적으로 대결하고 영적 전쟁의 승리에 다가설 수 있다. 김현동 선임목사(목회자제직훈련소)
  • 2023.10.2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구속사적 성경읽기
    (19)영적 무장을 위한 3대 신앙
  •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은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로 했다면 영적 전쟁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영적 무장이다. 영적 무장이 없이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전쟁에 임하는 병사가 무장 없이 맨몸으로 나서는 법이 없듯이 영적 전쟁에서도 영적 무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 시간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영적 무장, 곧 3가지 신앙적 무장에 대해서 알아보자. 1. 창조 신앙 하나님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창조주이시다.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자 우리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신 장본인이시다. 이 세상 모든 만물 가운데 스스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아무리 과학이 하나님을 배제하고 진화론과 같은 이론으로 이 세상을 설명하려고 해도 그런 과학은 극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다음과 같은 우화가 있다. 어느 날 과학자 한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와 말했다. “우리 과학이 발전해 흙으로 사람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과학이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은 다 할 수 있다는 의미죠.” 하나님이 답하셨다. “정말 그러한가? 그렇다면 네 말대로 흙으로 사람을 만들어 보아라. 대신 네 흙으로 해라.” 이 우화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가?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생명의 근원, 우주의 근원은 밝혀낼 수 없다는 것이다. 생명의 근원, 우주의 근원은 어디 있는가?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셨다.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전 12:1~2).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다. 렇다면 창조 신앙을 가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절대 주권을 인정하며 살아야 한다. 달리 말해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창조주 되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 영광을 올려 드리며 살아야 한다. 2. 십자가 신앙 예수님의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써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받은 것이다. 그뿐 아니라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함을 얻으며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축복을 얻은 것이다. 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말했다.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 마르틴 루터는 이 말을 통해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어야 함을 천명한 것이다. 달리 말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빼놓고서는 기독교 신앙을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갈라디아서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 3:13~14). 예수님이 율법이 정한 대로 나무에 달려 죽는 저주받은 죽음을 당하심으로써 우리를 죄와 사망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아브라함의 복과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셨다. 그렇다면 십자가 신앙을 가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담대한 복음 증거자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세상 앞에 절대로 주눅 들지 않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만큼 나를 사랑하셨고 모든 저주의 굴레에서 해방하셨다. 또한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녀가 되게 하셨으니 우리가 삶의 형편과 조건, 세상의 시선에 위축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3. 부활 신앙 기독교 신앙의 위대함은 부활 신앙에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예수님의 부활은 기정사실이다. 그 증거가 무엇일까? 첫째,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다. 둘째, 부활의 목격자들이 있다. 도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 15:4~8). 특히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을 당하실 때 비겁한 도망자들이 되었던 제자들이 어떻게 다시 그 예수님을 전하다 순교자까지 될 수 있었을까?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부활이 거짓일 수 없는 이유다. 물론 이런 증거에도 부활이 거짓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셋째, 부활이 거짓이라면 그 거짓이 2000년 넘게 지속될 수 있었을까? 수없이 많은 사람이 그 거짓에 자기 목숨을 걸 수 있었겠으며 자기 인생을 헌신해 가며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을까? 부활은 사실이고 진리이다. 그렇다면 부활 신앙을 가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결단코 세상에 얽매인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안개처럼 쉽게 사라지는 인생길을 걷고 있으며 잠시 왔다가 떠날 나그네 인생을 살고 있다. 이 세상은 우리 삶의 종착지가 아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단기 선교 온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의 몸을 입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될 것이다. 바울 사도는 말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 15:19). 이 세상에 얽매여 잠시 잠깐뿐인 헛된 것을 찾다가 인생의 허망함에 무릎을 치며 후회하지 말고 부활 후 누릴 영원한 생명을 바라며 살아가자. 오정섭 목사
  • 2022.07.1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절대긍정의 믿음
  •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선교라고 정의되는 시대가 찾아왔다.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인의 복음 증거만큼이나 그리스도인의 삶이 주목받는 시대라는 뜻이다. 요즘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전하는 복음의 진정성을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에서 찾는다. 따라서 성경을 삶의 원리 원칙으로 삼는 성경적인 삶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성경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절대긍정의 믿음이다. 왜냐하면 복음의 결론은 성도의 최후 승리를 말하고 있으며 다시 오실 예수님이 성도의 최후 승리를 반드시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져야 할 절대긍정의 믿음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그 땅을 정탐 다녀온 여호수아와 갈렙의 반응에서 절대긍정의 믿음이 지녀야 할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1.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을 갖고 싶어 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각 지파에서 대표 한 사람씩을 선발해 모두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에 보낸다. 그들은 40일간 그 땅을 돌아본 후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이며 그 땅의 과일들은 극상품이라고 할 수 있고 그들이 누리는 것은 풍요롭다는 데에 일치된 의견을 내놓는다(민 13:25~27). 그러나 그 땅을 정복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의견은 긍정적인 의견 2명, 부정적인 의견 10명으로 갈린다.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은 두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이다. 갈렙은 다음과 같은 의견을 피력한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민 13:30).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을 취하고자 하는 데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땅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원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비관적인 전망과 비판적인 어조에 쉽게 동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사람은 미래를 알 수 없고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매일 마주하는 삶의 과제 앞에 불안, 염려,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고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대면하는 문제보다 훨씬 더 크신 분이시고 자녀 된 우리의 삶을 위해 좋은 것을 예비해 놓고 계신 분이시다. 로마서 8장 32절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씀한다. 2.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는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의견을 밝힐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야훼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야훼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야훼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민 14:7~9). 그러나 나머지 10명의 정탐꾼들은 육신의 눈으로 확인되는 그 땅 주민들의 어떠함에 주목했다.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32~33). 그들은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지 않았기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땅에 대해 악평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라며 자신들에 대해서도 악평했다.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이 무너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삶에 부정적이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라는 것을 믿었다. 그 땅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약속의 땅이기 때문에 분명히 차지할 수 있다고 그들은 믿었다. 하나님은 그 땅을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셨고, 모세에게 정탐꾼을 보내라고 말씀하실 때도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했기에 그 땅을 차지하는 데에 긍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성경 말씀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약속이 담긴 책이다.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온갖 좋은 약속을 붙잡는 적극적인 신앙 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한 사람은 절대긍정의 믿음을 소유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 사람들의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에 대한 기대로 가득하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실 것에 대한 거룩한 원함,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으로 충만한 절대긍정의 믿음으로 살아가자.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약속하신 가나안을 차지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오정섭 목사(국제신학연구원 신학연구소)
  • 2022.06.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구속사적인 삶 - 감사(2)
  • 대한민국 법 중에 최고 상위법은 헌법이다. 헌법 10조에 보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흔히 말하는 행복추구권이다. 그런데 행복권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국가도 행복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해 줄 따름이다. 다시 말해 행복은 어떤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정해진 조건이 있으면 국가가 일정 수준의 국민은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1. 행복의 근원, 감사 그렇다면 행복은 어디 있을까? 감사하는 마음에 있다. 감사하면 행복해진다. 감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사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감사가 저절로 되거나 쉽게 되지 않는다. 만약 감사가 저절로 되고 쉽게 되는 것이면 감사가 하나님의 뜻이니 범사에 감사하라고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감사는 우리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다. 감사가 쉬운가? 불평이 쉬운가?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한 달 동안 5층 집까지 매일 걸어가야 한다고 가정하자. 억지로라도 계단을 오를 일이 생겨 운동할 수 있게 되었으니 감사할까? 아니면 곧바로 불평할까? 감사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원망 불평이 자연스러운 우리 본성이라는 중력, 그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감사가 등산처럼 힘든 이유다. 그러나 등산도 하면 할수록 쉬워진다. 감사가 그렇다. 산 정상을 향해 오르다 보면 달라지는 것이 있다. 시야다.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감사하면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못 보던 것을 보게 된다. 감사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불평하는 일들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그 일들 외에는 제대로 못 본다. 불평하는 일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마음이 계속 불편하다. 물론 해결이 돼도 불평할 거리는 또 있다. ‘왜 이제야 해결이 되는 거지?’ 감사하는 사람은 시야가 다르다. 보이는 것이 다르다. 눈에 거슬리는 것보다 세상 아름다운 것이 훨씬 더 많다. 보이는 게 다르니 말이 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왜 그렇게 사소한 일에 집착했지?’ 하는 생각이 드니까 감사하는 사람의 말에는 여유가 있다. 타인에 대한 포용의 한도가 그만큼 크다. 원망 불평으로 마음의 용량이 늘 마이너스가 되어 가면 타인에 대한 용납의 한도가 계속 줄어든다. 감사를 결단하고 훈련하자. 감사한 다음에 기쁨이 따라오고 불평한 다음에 짜증이 따라온다. 감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우리 삶을 이끌어 가지만 불평은 사탄이 원하는 방향으로 우리 삶을 이끌어 간다. 감사의 종점은 천국이고 원망 불평의 종점은 지옥이다. 2. 그리스도인의 감사, 넘치는 감사 우리의 감사가 어떠한 감사가 되어야 하는지 바울 사도의 권면을 들어 보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6~7).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했다면 우리 삶은 예수님 안에 있다. 예수님께 우리 인생의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것이다. 여기저기 왔다 갔다, 이리저리 오락가락하지 않고 예수님 안에 콕 박혀서 사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예수님 안에서 성장하는 여정이다. 말씀대로 살면서 굳센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는 것이다. 정리하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셨으니 예수님 안에 뿌리내리고 말씀 따라 사는 믿음이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바울 사도는 믿음이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감사가 넘치게 하라고 권면한다. 누가 믿음이 강한 사람일까? 감사하는 사람이다. 내 믿음의 강도는 감사가 말해 준다. 내 믿음이 명품인지 불량품인지는 감사가 보여 준다. 감사는 명품 믿음의 보증서다. 감사가 없다면 불량품 믿음이다. 감사는 넘치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넘치는 감사다. 자기 분량 이상의 감사를 하는 것이다. 내 기준 이상의 감사, 내 판단 이상의 감사, 내 감정 이상의 감사, 내 선택 이상의 감사다. 그러려면 ‘범사에 감사, 무조건 감사’가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범사에 감사, 무조건 감사’가 가능한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예수님을 주로 영접했기 때문이다. 주는 ‘주인’을 말한다.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시니까 감사하라는 것이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했으니”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영접했으니”라고 했다. 그리스도는 직분, 예수는 이름이다. ‘그리스도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는 강조하는 바가 다르다. 그리스도가 먼저 나오면 예수님이 그리스도, 곧 구원자로서 하신 일에 강조점이 있다. 구원자 예수님이 하신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떠난 내 죄 때문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다. 나의 주님이 되셔서 천국 가는 그날까지 내 삶을 인도하시며 보호하시고, 도우시며 책임져 주신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성경이 다시 쓰이기 전까지는 변하지 않는다. 내 삶의 형편과 조건은 오락가락해도 나를 향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 주님이 나의 삶의 주인이 되셔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도록 역사해 주실 것임은 변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 삶의 형편, 조건, 기분, 감정과 상관없이 감사할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범사에 감사, 무조건 감사, 일평생 감사할 수 있다. 감사하자.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어렵고 힘들고 괴로울 때 인생이 마음대로 안 될 때 감사하자. 감사하면 사탄이 틈타지 못한다. 영적 시야가 넓어지고 안 보이던 것이 보인다. 관계가 회복되고 인생이 달라지고 행복해진다. 아니 이미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Thanksgiving’뿐만 아니라, ‘Thanks-living’하자! 오정섭 목사(국제신학연구원 신학연구소)
  • 2022.05.0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다시보는 영산 신학과 목회
    영산의 세계선교
  • 선교는 주님의 지상 명령이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복음 전도와 선교에 대한 꿈과 비전으로 충만하게 된다(행 1:8). 성령님은 영산에게 대조동 천막교회 시절부터 세계선교의 꿈을 부어주셨다. 그때부터 영산은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은빛 날개를 타고 전 세계를 다니며 선교하는 꿈’을 품었다. 그 꿈처럼 영산은 당시 해외 여권을 얻기도 쉽지 않았을 때 이미 여러 나라를 다니며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다. “전 세계는 주님의 교구입니다.” 웨슬리의 유명한 말을 떠올리게 하는 영산의 고백은 절대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세계 최대 교회를 세우고 오대양 육대주를 다니며 선교 사역을 감당했다. 그가 머물렀던 수많은 선교 현장은 성령님이 역사하는 기적의 장소였다. 영산이 세계선교를 위한 뜨거운 열정을 갖게 된 배경은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7년 5월 세계오순절총회를 마친 영산은 100일 동안 18개국, 39개 도시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던 그는 결국 스위스에서 쓰러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 침대 밑에 놓인 엽서 한 장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주님의 종으로 부름 받았으니 이 시대에 한 획을 긋는 종이 되리라”라는 글귀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적고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다. 다시는 못 일어날 만큼 쇠약해졌던 영산의 몸은 이튿날이 되자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고 기적처럼 회복되었다. 그때의 체험은 영산의 사역 가운데 세계선교를 항상 강조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영산은 유럽 선교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세계 교회성장을 위해 봉사하는 국제기관을 조직하라”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1976년 11월 4일 국제교회성장연구원(이하 CGI: Church Growth International)을 설립했다. 영산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부흥성장에 관한 노하우를 전 세계 교회와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담임하고 있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에만 집중하지 않고 전 세계 교회가 함께 부흥하는 일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다. CGI는 설립 이래 2022년 현재까지 한국을 비롯한 100여 개국 이상에서 총 600회 이상 CGI 콘퍼런스를 개최했고, 여기에 전 세계에서 연인원 120만명이 참석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세계선교와 교회 성장에 이바지한 CGI는 2022년 10월 이영훈 목사를 제2대 총재로 만장일치 추대하면서 ‘다음 세대의 부흥’을 외치며 제2기 사역에 돌입하게 되었다. 영산은 세계선교의 사역을 더욱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2000년 3월 28일 DCEM(David Cho Evangelistic Mission)을 설립했다. 이 기구를 통해 전 세계 선교지와 선교단체 간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선교 자원의 교류에 힘썼다. DCEM은 교파를 초월해 영적으로 갈급한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 그리고 복음의 사명을 심어주는 기관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감당했다. 영산은 그 목회 사역 동안에 약 600회 이상의 해외 부흥회를 인도했는데 이런 왕성한 사역은 성령님이 주시는 비전과 열정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럼 세계 기독교 역사에서 영산의 선교 사역의 의미는 무엇일까? 20세기 기독교의 가장 큰 특징은 기독교의 무게 중심이 서구권에서 비서구권으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1980년대에 들어와서 비서구권의 기독교 인구가 서구권의 기독교 인구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기독교 신학이나 선교가 서구권 교회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서구권 교회는 갈수록 쇠퇴를 거듭했고, 반대로 비서구권의 교회는 급속히 성장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역사적 맥락 속에서 영산의 세계선교 사역은 기독교 선교의 주체를 서구권 교회에서 비서구권 교회로 전환하는 데 아주 지대한 역할을 했다. 영산은 선교가 ‘순복음’의 최우선 과제임을 보여주었다. 선교하는 교회가 진정한 ‘순복음교회’(Full Gospel Church)이고 선교하는 성도가 진짜 ‘순복음성도’(Full Gospel Christian)이다. 교회가 선교를 멈추는 순간 침체와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영산 안에 넘쳤던 복음의 확신과 순복음의 영성은 많은 사람의 가슴에 희망을 불러일으켰고 나도 하나님 사명에 쓰임 받고자 하는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의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David Yonggi Cho’라는 이름은 안다”라는 말이 수많은 증인에 의해 회자된 것만 보아도 그가 가진 세계선교의 열정과 영향력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만약 누군가 “순복음 신앙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에 나아가 선교하는 삶이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계선교에 평생을 바친 영산의 삶이었고, 그의 선교 정신을 이어받은 모든 순복음 성도들의 꿈이 되어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선배의 본을 따라 인내로써 믿음의 경주를 하라고 권면하고 있다(히 12:1). 오늘날 교회가 영산으로부터 반드시 전해 받아야 하는 믿음의 영적 바통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선교의 바통’이다. 이제 영산의 뒤를 이어 우리도 성령 충만함 가운데 ‘선교 바통’을 이어받아 주님 오시는 날까지 세계선교의 꿈을 이뤄가야 할 것이다. 국제신학연구원 제공
  • 2022.11.2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영산의 신유 사역 
  • 영산에게 신유 사역은 그의 핵심적인 목회 철학 중 하나였다. 영산은 신유의 기적이 과거 예수님 시대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사역임을 확고히 믿었다.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을 받았으면 믿음으로 값없이 병 고침 받는 것도 마땅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영산이 믿었던 신유의 은사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은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포함되어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영산에게 신유 사역은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표징이자 ‘아직’, 그러나 반드시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었다. 영산은 치유의 현장에서 예수님의 임재를 보았고 하나님 나라에서의 믿는 자의 부활을 보았다. 그래서 영산은 목회 현장이나 부흥회 사역에서도 병 고침을 강조했는데, 그가 인도하는 집회에서 질병의 치료를 경험한 사람들의 간증거리는 수없이 많다. 영산이 이같이 신유를 강조하게 된 것은 어떤 특정한 치유 신학을 공부한 결과가 아니었다. 그를 ‘신유의 종’으로 만든 것은 그가 처한 삶의 현장 속에서 실제 경험했던 치유의 하나님 때문이었다. 폐결핵 3기로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을 때 주님을 만나서 완치되었던 경험이 그것이다. 또 대조동 천막교회 시절 중풍에 걸린 여인이 낫고 걷지 못했던 소년이 일어나 뛰며 듣지 못했던 사람이 듣게 되는 기적이 나타났다. 이런 경험을 통해 영산은 하나님이 오늘날에도 병든 자를 치료하신다는 사실을 체득할 수 있었다. 자신의 삶과 목회 현실에서 신유의 역사를 분명하게 체험했기에 영산은 가는 곳마다, 서는 곳마다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 영산의 신유 사역은 교회 부흥에도 크게 기여했다. 실제로 영산의 개척교회가 빈민촌 지역사회에 깊이 뿌리 내리게 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치유의 기적이었다. 그래서 영산은 신유를 하나님 나라의 가시적인 표적으로 보고 목회 사역에 열심히 적용하고 실행했다.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으로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낫게 되는 신유 사역”(막 16:18)이 복음 전파에 동반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이후에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에 대해서 회고할 때도 신유 사역의 중요성을 언급한 적이 있다. 복음에 저항적이던 사람들이 육체의 질병을 치료받고 은혜를 받아 복음의 말씀을 세상에 나아가 강력하게 전하기 때문에 교회가 크게 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교회 공동체를 신유 공동체로 보았다. 영산의 신유 사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믿음이다. 영산은 그 어느 목회자보다도 병 고침에 대한 메시지를 많이 선포했고 신유의 기적도 많이 행했지만 정작 자신이 ‘신유의 은사’를 받았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성령이 필요에 따라 자신을 통해 은사를 나타내실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산 자신이 분명히 받았다고 주장하는 은사가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믿음의 은사’였다. “내가 받은 은사를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담대한 믿음입니다. 담대함을 가지고 믿음으로 선포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성경은 표적이 여러분의 믿음보다 앞선다고 하지 않습니다. 표적이 여러분의 믿음 뒤에 따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믿음의 역사는 천막교회 시절에 나타났다. 걷지 못하던 소년이 영산을 찾아왔을 때 처음에는 그가 낫는다는 것을 믿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영산이 한 시간이 넘도록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자 뭉게구름 같은 믿음이 그의 마음으로부터 차오르기 시작했다. 영산은 그때의 기분이 마치 지구를 자기 손으로 밀면 지구가 밀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간증한 바 있다. 하나님이 주신 이러한 믿음으로 기도하고 선포할 때 영산은 그 소년을 포함한 수많은 이들의 병을 고칠 수 있었다. 영산은 오늘날 병 낫기를 간구하는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믿음의 기도를 잘 드리지 못하거나 주님의 말씀에 담긴 뜻을 잘 알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한다고 말했다. 영산에 따르면 신유의 역사는 단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회복시키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실 때까지 성령님이 살아 역사하셔서 은사를 베푸시고 병든 자들을 일으키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산은 신유가 지금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임을 분명히 믿었다. 따라서 성도는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써 신유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기에 자신의 아픈 부분에 손을 얹고 믿음으로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영산을 통한 성령의 신유 사역은 여의도순복음교회뿐 아니라 국내외 수많은 교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신유의 복음을 포함한 예수 그리스도의 전인적인 순복음을 이해하는데 큰 유익을 주었다. 앞으로도 영산의 신유 사역의 원리를 계속 연구하고 실행함으로 새로운 신유행전의 역사가 계속 나타나길 희망한다. 국제신학연구원 제공
  • 2022.10.2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문서·방송 선교의 선구자…1988년 기독교 일간지 국민일보 창간
  • 영산은 미디어의 활용이 미미하던 시절, 문서 선교와 방송 선교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닫고 사역에 적용한 선구자였다. 영산은 자신이 가진 뜨거운 선교적 영성을 담아내어 빠르게 전파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 놀라운 교회 성장을 이루었다. 순복음의 신앙이 한국과 세계에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의 그 어떤 교회보다 멀티미디어를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문서 전도』의 저자 조지 버워는 “기독교 문서는 인쇄된 선교사”라고 말한 바 있다. 문서 선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보게 하는 말이다. 영산은 누구보다도 문서 선교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사역에 적용하였다. 1964년 당시 순복음교회 성도들에게 교회와 관련된 각종 소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순복음지』를 발간했다. 이것이 점점 발전하여 1978년에 이르러서는 영산의 설교와 칼럼, 성도들의 신앙 간증과 구역 성경 공부 및 교회 소식을 담은 『순복음뉴우스』가 되었다. 이후 『순복음가족신문』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오늘날까지 문서 선교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다. 영산은 또한 순복음교회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한국교회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월간 잡지 『신앙계』를 창간함으로 문서 선교의 폭을 확장했다. 『신앙계』는 기독교의 대중지,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위한 교양지, 불신자들을 위한 전도지, 교회를 하나로 묶는 기독교 잡지로서 자리매김했다. 해방 이후 대중적인 기독교 잡지로는 『신앙계』를 능가하는 잡지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신앙계』가 말씀에 기초한 성령운동의 건전한 보급과 한국교회 평신도들의 신앙 성장에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서울신학대학교 명예교수인 박명수 박사는 “『신앙계』야말로 오순절 신앙을 한국교회에 널리 전파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영산의 문서 선교의 열정은 『순복음가족신문』과 『신앙계』의 성공으로 끝나지 않았다. 1987년 한 이단 종교 단체가 일간 신문을 발간하려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영산은 만약 그 단체에서 신문을 발간하게 된다면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이 자명하다고 판단했다. 이를 두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가운데 기독교 일간지 창간에 대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1988년 세계 최초의 기독교계 일간지 『국민일보』가 창간되었다. 정부와 사회에 기독교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언론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영산은 신문사를 설립하는 과정 가운데 막대한 재정적 부담과 근거 없는 비난의 목소리로 큰 고통을 받았지만, 믿음의 확신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나갔다. 복음 실은 일간지 『국민일보』는 매일 하나님의 복음을 한국 땅에 전파하는 발 없는 전도사로서 한국 기독교의 성장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기독교 정신으로 발간된 최초의 기독교 일간지로서 한국 교계의 대사회적인 발언의 장으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나아가 기독교 문화의 채널로써 한국 사회에 기독교 세계관을 전파하는 사명도 이뤄가고 있다. 영산의 『국민일보』 창간은 대한민국 1200만 기독교인을 대변하는 신문으로서 한국 기독교 역사 가운데 매스컴 선교의 새 장을 열었다는 데 큰 의의를 가진다. 영산은 문서 선교뿐 아니라 방송 선교를 통해서도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당시 영산은 복음 전도의 방법을 새로운 형태로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도 방송 선교의 파급력과 중요성을 일찍 깨달았던 영산은 1966년 라디오 설교와 1979년 컬러TV 방송을 송출했다. 영산의 라디오 설교 방송은 1979년, 1980년 연속, 전국 청취자 애청 프로그램 조사 결과 청취율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청취자가 많았다. 이처럼 한국교회 방송 선교의 선구자는 단연 영산이었다. 당시 흑백 TV에 익숙했던 공중파 제작자들이 방송 장비와 시스템을 구경하기 위해 여의도순복음교회에 견학을 올 정도였다. 방송 선교는 교단의 장벽을 뛰어넘는 데 중요한 매체가 되었을 뿐 아니라 기독교의 울타리를 넘어 일반인들에게 오순절 신앙을 전하는 통로가 되었다. 영산의 방송 선교를 통해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이 설교 말씀을 듣고 구원받는 역사가 나타났다. 또 위성과 인터넷을 활용한 예배와 설교 실황은 각 지성전 및 지교회 설립과 더불어 교세 확장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영산의 방송 선교는 국내를 넘어 전 세계에 이르기까지 사상과 국경을 초월하여 복음이 전파되었다. 1982년에는 미국 TV 프로그램 제작 회사인 KCWC사의 특별 기획으로 주일 예배 실황이 미국, 캐나다,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이스라엘, 홍콩, 필리핀, 남아공 등 25개국에 동시 위성 중계되기도 했다. 이처럼 영산의 성령 충만의 복음은 21세기 정보화 시대와 함께 전 세계에 발 빠르게 퍼져나갔다. 영산은 커뮤니케이션의 대가였다. 설교뿐 아니라 설교를 전달하는 매체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아무리 훌륭한 설교라도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면 세계적인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을 것이다. 영산의 설교와 성령 충만의 영성은 멀티미디어 사역 시스템을 통하여 세계 곳곳에까지 전파될 수 있었고 이러한 사역이 세계 교회에 끼친 영향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복음의 메시지는 불변해도 그것을 전달하는 방법은 시대에 맞게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영산의 멀티미디어 사역이 우리에게 남겨준 값진 유훈이다. 국제신학연구원 제공
  • 2022.09.23 / 김용두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PDF

    지면보기

  • 행복으로의 초대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