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기사
2024년 설 가정 예배
  • 하나님을 찾으라 새해가 밝았습니다. 낙엽이 지면 새잎이 돋아나듯이, 힘들고 어려웠던 지난 시간은 새롭고 희망이 넘치는 2024년이 되기 위한 과정입니다. 오늘 나눌 말씀인 학개 1장 2~8절을 보면 포로 귀환 이후에도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유다 백성들의 상황과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가족들이 함께 모인 새해 첫날, 유다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교훈은 무엇일까요? 1. 많은 문제를 만난 유다 백성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유다 백성 중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예루살렘으로 귀환했습니다. 이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이스라엘의 영광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이후의 삶은 이들의 기대만큼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먼저 내부적인 문제로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농사를 열심히 지어도 흉작을 거듭했고 그들의 삶은 더 피폐해졌습니다. 그리고 밖으로는 대적들의 훼방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는 것을 시기한 주변 민족들이 유다 백성들을 모함하고, 바사의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성전 재건을 중단시키도록 했습니다. 이처럼 계속되는 어려움을 겪고 있던 유다 백성들은 성전 건축을 후일로 미루고, 일단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학 1:2). 그들은 땅을 개간하고 씨를 뿌리고 더 많은 농작물을 수확하고자 애를 썼습니다. 즉, 유다 백성들은 삶의 필요를 채우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었던 것입니다. 2. 유다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 유다 백성들은 안팎에서 밀려오는 삶의 어려움들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으나, 안타깝게도 문제들이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악화되었습니다. 이에 학개 1장 6절은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이어지자 유다 백성들은 낙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학개 선지자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만군의 야훼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야훼가 말하였느니라”(학 1:7~8).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에게 생활의 문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잠시 내려놓고, 우선은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삶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성전을 사모하고,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힘쓰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삶의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3. 우리의 본분은 하나님을 찾는 것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참담’하단 말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매우 어렵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외교 어느 곳에서도 희망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유다 백성들처럼 당장 눈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할까요? 가족을 지키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부지런히 일하는 것은 분명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 우리가 행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예배하기를 사모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는 때에 우리가 가져야 할 바람직한 삶의 자세입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본분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의 본분이자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찾을 때 세상은 참된 희망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삶의 모든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것입니다. 2024년,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힘쓰기로 다짐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국제신학연구원 제공>
  • 2024.02.0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신년 인터뷰] 부목사·장로회장
  • <윤광현 부목사(교무)> ‘오직 은혜로’ 살아가는 한 해 되길 ▶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 ‘오직 은혜로’입니다. 우리에게 은혜는 무엇이고 성도들이 매일 은혜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직 은혜로’는 종교개혁가들이 주장한 원칙으로서 신앙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강한 의미가 있습니다. 신앙의 기본이 되는 것은 말씀, 기도, 찬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2024년이 나라와 민족, 교회와 담임목사님을 위한 중보 기도에 동참하는 한 해가 된다면 ‘오직 은혜로’ 살아가는 데에 큰 보탬이 될 것입니다. ▶ 온 교회가 장년층 부흥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새해에 3040세대 부흥과 장년들의 정착을 위해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요? 지난해는 장년국과 대교구 3040이 연합하는 많은 기회를 가지며 3040세대 부흥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한 해였습니다. 새해에는 지난해의 시도들을 재점검하여 보완하고 건강한 가정 세우기와 출산 장려, 자녀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와 모임에 대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 보고자 합니다. ▶ 지난해 목사안수식에서 안수 받은 목사 중 47명이 여성이었습니다. 여성 목사가 한 번에 이렇게 배출된 것은 국내교회 사상 처음입니다. 올해에도 이런 파격적 행보가 있을까요? 1960년대 이후 우리 교회 부흥을 이루었던 빨간 가방 구역장들의 절대 다수는 여성 지·구역장들이었고 우리 교회는 여성들의 훌륭한 리더십을 체험했습니다. 이번 목사안수식 이후 교구와 기관에서 대교구장 직임을 맡게 된 여성 목회자들이 생겨났으며, 앞으로 여성 목회자들이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가 확대되기를 기대합니다. ▶ 성도들의 신앙 성장과 연합을 위해 2024년에 우리 교회에 새로운 부흥을 위한 프로젝트로 어떤 것들이 있나요? 새해에도 2~3인이 1구역을 유지하다가 1명이 전도되면 2개의 구역으로 분할하는 구역 배가 시스템이 계속됩니다. 또한 교회 부흥의 주역인 제직과 교역자들의 말씀과 기도 훈련에 중점을 두고 교구장과 교구협의회 임원, 지·구역장들이 역동적인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만남과 교육의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아울러 기도처를 통해 지역 사회 교류와 다음 세대를 위한 방과 후 학교 운영 등의 프로그램을 구체화하는 한 해가 되고자 합니다. ▶ 성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성도님들께서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주님의 지상 명령(행 1:8)에 따라 전도에 힘쓰시고 교회와 담임목사님 그리고 교역자를 위한 중보 기도에 최선을 다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김호성 부목사(목회)> 모이기에 힘써 부흥의 파도에 올라타자 ▶ 2024년 새해 다가오는 부흥의 파도를 타기 위해 목회 신학적인 분야에서는 어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가요? 우리 교회 성도들이 이 부흥의 파도를 타기 위해서 영적 부흥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말씀 교육과 영성 훈련 그리고 기도회, 성령대망회, 부흥회 등을 이전보다 더욱 강력하고 뜨겁게 실시해 나갈 예정입니다. ▶ 최근 동성애 마약 등 이른바 ‘중독’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중독으로부터 신앙을 지키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중독은 영적으로 보면 흑암의 세력의 포로가 되어 노예 상태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완전히 해방 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기도와 간구를 통해 중독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성령 충만을 받아 중독에 다시 빠지는 것을 원천봉쇄해야 합니다. ▶ 최근 교회는 모이는 공동체로서 교회와 흩어져서 각자의 자리에서 신앙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신학적으로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요? 성경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27)고 말하고 있으며 “모이기에 힘쓰라”(히 10:25)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도 열두 지파가 하나로 뭉쳤고, 신약의 제자들도 열두 명이 예수님을 섬겼으며,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교회들도 하루에 삼천 명, 오천 명씩 모여들어서 함께 사도의 가르침과 서로 교제, 떡을 떼고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행 2:42). 결론적으로 성도들은 모두 교회로 모여야 합니다. ▶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신학적 정립된 사실이나 신앙적인 질문을 한다고 하는데요. 이를 올바르게 이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공 지능(AI) 플랫폼들은 인간이 입력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해 줍니다. 이에 인간의 이성과 경험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영역에 속한 영적, 신앙적 문제의 답을 주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근본적인 신앙적 문제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딤후 3:16~17)을 통해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 최근 언론에서 전쟁과 기근 등 말세의 증상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어떠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할까요? 과거에 시한부 종말론자들로 인해 한국 교회와 사회에 각종 폐해와 악영향을 끼쳐 현재 성경적인 종말신앙마저 약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눅 21:31)고 말씀하시면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눅 21:36)고 경고하신 것처럼 우리 성도님들은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는 살아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고영용 부목사(개척)> 교회 개척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 는 예수님 지상명령 ▶ 이영훈 목사님은 교회 창립 70주년을 향한 발걸음에 있어 향후 5년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개척 담당 부목사님으로서 우리 교회 부흥을 위한 비전을 말씀해 주십시오. 2024년 우리 교회 리드 키워드는 ‘부흥’입니다. 2033년은 예수님 고난과 부활, 승천의 20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세계 기독교는 지금 뜨겁게 부흥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세계 최대 교회이지만 안주하지 않고 부흥의 대열에 합류하여 주님 다시 오심을 예비해야 할 것입니다. ▶ 우리 교회는 2023년 12월 말 기준으로 535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교회 개척 사역과 관련해 개척국에서 2024년 진행될 계획들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교회 개척이라 하면 대부분 척박한 땅에 홀로 남겨진 어려운 상황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교회 개척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입니다. 교회개척국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우리 교회는 교회 개척을 꿈꾸는 목회자에게 교회 개척 지원금으로 일정 금액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2024년에는 교회 개척을 준비하는 목회자에서부터 교회를 개척해 사역하고 있는 목회자에게까지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 중입니다. 부동산, 세금, 교회 등록 같은 교회 개척의 첫걸음부터 새가족 정착, 교회 성장 비결 같은 실질적인 세미나를 통해 535개의 교회가 모두 부흥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 우리 교회에서는 수도권 중심 거점교회 설립과 기도처 활용방안에 대한 얘기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어떤 계획들이 있을까요? 현재 기도처는 예배 외에 다른 선교 활동들을 하기에는 공간적인 제약이 있습니다. 가장 적합한 지역에 10곳 정도의 기도처를 선정해 지성전으로 승격하고, 중형교회 규모로 확장해 주일 뿐 아니라 일주일을 예배와 교제, 배움의 장소로 마련하고자 하는 계획이 있습니다. 이번에 부흥하여 교회를 건축한 여의도순복음동부교회가 그 경우입니다. 앞으로도 크게 부흥하는 기도처는 활용성을 높이기 위해 독립지교회로 승격하며, 인구밀도가 높아 지역적인 교회가 필요한 곳은 거점 교회를 설립하여 일주일을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교회로 만들어 갈 계획입니다. ▶ 인공지능시대를 맞아 교회 개척에 대한 통찰력과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인공지능시대에 많게는 3억 개의 정규직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합니다. 인공지능의 개발은 생활의 편리함을 주며, 우리 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영혼을 사랑하고 믿음을 성장시키는 목회는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인 교회 개척 또한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 개척에 도움을 줄 수는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목사님들이 말씀과 기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교회 운영에 필요한 성도 및 헌금, 재정 관리를 돕는 효율적인 시스템을 위해 고민 중에 있습니다. 2024년 한해도 이 모든 일에 성도님들의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안정복 장로회장> “절대긍정 절대감사로 섬기는 장로회가 되겠습니다” ▶ 새해가 밝았습니다. 장로회는 올해 어떤 기대를 가지고 한해를 시작하시나요? 지난해는 여러 어려움과 도전의 순간들이 있었지만 장로님들을 비롯한 성도님들의 기도와 헌신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올 한 해 장로회는 전 세계 오순절교회의 부흥운동을 이끌고 계시는 이영훈 담임목사님과 함께 우리 교회가 부흥의 파도를 타고 힘차게 나아가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 장로회 사역은 어떤 기준과 방향성을 갖고 진행될 것인지 궁금합니다. 우리 교회의 사역이 큰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장로회에서 중점을 두는 것이 있으신가요? 부흥의 파도를 타기 위해서 장로회를 중심으로 분과위원장들이 하나가 되어, 교회 내 부흥의 저해가 되는 문제들을 해소할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침체 된 영적 회복을 위해 더욱 기도하고 복음 전파에 힘쓰며 “위기를 두려워 말라. 하나님은 위기 속에서 일하신다”는 말씀과 같이 위기 가운데 부흥할 것을 기대합니다. ▶ 교회 성도와 제직들이 새해 교회 부흥을 위해 어떤 마음가짐으로 준비해야 할까요? 전 성도와 제직들이 사랑과 섬김으로 한마음 한 뜻이 될 때 교회가 크게 부흥할 것입니다. 장로들이 먼저 겸손과 헌신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잘 섬기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삶으로 보여주신 사랑과 나눔 정신을 본받아 주위에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고 섬기는데 앞장서야 합니다. 우리가 속한 곳이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 세상에 빛과 소망을 전하길 바랍니다. 2024년 우리 교회 전도목표 5만명을 위해 장로회를 비롯하여 교회 각 기관이 하나가 되어 절대긍정 절대감사로 부흥의 주역이 되길 소망합니다. ▶ 교회의 변화와 발전을 위한 장로회의 새해 계획이 궁금합니다. 장로회는 각 분과 및 특별위원회의 소통과 화합을 강화해 교회 안에 하나 됨을 이루고자 합니다. 또한 선교와 구제에 힘쓰는 이영훈 담임목사님의 사역을 적극 지원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 교회의 미래이자 다음 세대 부흥에 집중해 교회학교, 청·장년, 3450세대 부흥에 앞장서겠습니다. 워크숍 등 교회 발전을 위한 방향을 적극 실행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또한 성도들이 더욱 모이기에 힘쓰고 말씀과 기도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도록, 세상 속에서 복음의 증인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더욱 섬기겠습니다. ▶ 장로회장님의 새해 소망은 무엇인지요? 우리 교회 성도들이 성령으로 충만하고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 장로회는 아론과 훌의 역할을 다하여 부흥의 주역이 되고자 합니다. 우리 교회 7대 기관이 협력하고 하나되어 하나님께서 주신 선교와 섬김의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절대긍정 절대감사로 청지기의 사명을 감당하는 장로회가 되겠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돼 교회 부흥을 위해 힘차게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정리=오정선·이미나·금지환 기자 / 사진=김용두 기자
  • 2024.01.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이영훈 담임목사 신년 특별대담] 부흥의 시대! 5만명 전도 위해 전성도 총력 다할 것
  • 1. 희망찬 새해가 밝았습니다. 특히 올해는 교회창립 66주년입니다. 목사님께서 올 한 해 어떠한 비전으로 우리 교회를 이끌어 가실지 궁금합니다.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희망찬 새해가 밝았습니다. 우리 교회는 부흥을 꿈꾸며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부흥의 물결에 동참해 힘차게 달려왔습니다. 지난해에는 ‘10년 내 100만 성도 달성’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전도 청백전을 활발하게 진행해 1만6000여 명의 새가족이 등록했고, 8500명이 정착해 구역이 배가되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2024년에도 복음전파와 전도는 계속될 것입니다.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라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에 따라 전 성도가 한마음과 한뜻으로 가는 곳마다 강력하게 복음을 전하여 부흥을 이루고 주변에 있는 가난하고 소외되는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해 갈수록 어두워지는 세상을 복음의 빛으로 밝히는 사명을 감당할 것입니다. 절대 긍정의 믿음과 성령 충만으로 무장하여 위대한 부흥을 함께 이루어가길 소망합니다. 2. 올해 교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예상됩니다. 70주년을 바라보며 제직들에게 ‘생각의 전환’을 강조하셨는데, 특히 중점을 두는 방향이 있으신지요? 저는 교회창립 70주년을 바라보며 부흥을 위해 체제를 개혁하고, 새로운 틀에 맞추어 ‘절대긍정 절대감사’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위대한 부흥의 물결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의식의 변화, 즉 생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구태의연한 자세, 방관하는 태도로는 절대 부흥의 역사를 이루어 갈 수 없습니다. 교회는 반드시 부흥한다는 절대긍정의 생각으로 무장해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야 합니다. 특히 올해는 교회 내 여성의 역할에 대한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말세에 남종과 여종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행 2:18). 과거를 돌아보면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세계 최대 교회가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여성들의 눈물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해 5월에 47명의 여성 목사를 배출한 데 이어 올해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최초로 여성 장로를 배출할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시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요직에 배치해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해 위대한 부흥을 향해 달려 나갈 것입니다. 3. 새해가 밝았지만 여전히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평화가 절실한 이때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전쟁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피해와 상처를 남깁니다. 우리도 70여 년 전 전쟁을 경험했고, 지금도 전쟁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형태의 전쟁도 반대하며 전 세계가 연합해 평화의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전쟁의 상처와 갈등을 치유하고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용서와 화해로 나아가는 길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께 전쟁이 종식되고 진정한 평화가 오게 해달라고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평화를 위해 부르짖어 기도할 때 세계 평화를 가로막는 모든 벽이 무너져 내리고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예수님 안에서 복음으로 하나 되어 평화의 노래를 부르는 날이 다가올 것입니다. 4. 저출생 등 사회 문제를 비롯해 젊은이들이 사회 진출부터 현실의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젊은 성도들이 어려운 시기를 해쳐나갈 수 있도록 조언 부탁드립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젊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아이를 낳아서 키울 환경이 안 되는데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합니다. 저출생 문제는 젊은 사람들만이 떠안아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 전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젊은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2012년부터 지금까지 약 50억원에 이르는 출산장려금을 지급했으며 올해부터는 첫째 200만원, 둘째 300만원, 셋째 500만원, 넷째부터는 1000만원을 지급할 예정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 아이들 양육을 맡고 있는 성도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실제적인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요즘 아이 돌봄 인력을 중개하는 ‘육아 스타트업’과 같은 사업은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도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손자 손녀를 돌보고 있는 장년 세대들을 위해 교회 내 도서실 등을 활용한 ‘아이 돌봄 시스템’ 등과 같은 사역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5. 목사님께서는 선교적 교회를 선포하시면서 전 성도가 전도특공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어떻게 전도해야 할까요? 우리가 전도를 잘하기 위해서는 먼저 영혼 구원을 향한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전도 대상자를 태신자 카드에 기도 제목과 함께 작성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의 영혼 구원을 위해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말로만 복음을 전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목회할 때 새가족이 처음 출석한 후 여섯 번 정도 안부나 인사 등의 연락을 받으면 계속해서 교회에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은 적이 있습니다. 선교적 교회는 전 교인이 모든 영역에서 선교사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전도를 잘하기 위한 특별한 왕도는 없습니다. 교인들 모두가 전도의 사명을 철저히 깨닫고, 새생명을 얻게 하는 일에 최고의 관심을 둘 때 교회는 부흥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열정적인 복음 전도자들로 변화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복음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분의 능력을 힘입을 때 비로소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가 전도특공대가 되어 하나님의 놀라운 부흥의 주역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6. 다음 세대 부흥을 위해 올해는 어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가요? ‘앞으로 세상은 AI를 쓰는 자와 못 쓰는 자로 갈릴 수 있다’라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AI 기술은 우리 생활 속에 빠르게 스며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지켜보며 저는 교회에서도 AI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세대는 온라인 매체, 비대면 프로그램 등에 익숙한 세대입니다. 우리 교회는 AI 기술을 사역에 적극 활용하되 과학기술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을 펼쳐가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교회는 다음 세대에게 인생의 해답이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음을 깨닫게 하고, 그들이 하나님 안에서 꿈과 희망을 품고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는 데 주력할 것입니다. 또한 교회 공동체 안에서 멘토링 시스템을 운영해 청년들에게 비전을 심어주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격려할 것입니다. 교회학교에서는 학부모와 교육 전문가와 교회 간의 온·오프라인을 망라하는 소통 통로를 만들어서 모두가 함께 한아이를 양육하고 돌보는 시스템을 마련할 예정입니다. 이러한 모든 계획이 목표하는 바는 한 가지입니다. ‘내 아이를 꼭 보내고 싶은 교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미래는 다음 세대의 부흥에 달려있습니다. 7. 250만 다문화 시대에 이르렀습니다. 다문화 시대에 우리 성도들이 갖춰야 할 자세와 사명은 무엇일까요? 저는 20여 년 전부터 국내 거주 다문화 가족과 외국인들이 급격히 증가할 것을 예상하고 이들을 잘 돌봐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250만 다문화 가족과 외국인들을 동반자로 여기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들을 품고 한국문화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나아가 한국에 있는 다문화 가족과 외국인들을 잘 교육한다면 한국어와 모국어 2개 언어를 구사하는 국제 인재로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들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잘 훈련되면 언젠가 자국으로 돌아가게 될 때 그들이 자신들의 나라를 복음화하는 선교사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꿈과 신념을 가지고 우리 교회가 진행하고 있는 일 중 하나가 글로벌엘림재단의 사역입니다. 글로벌엘림재단은 이주노동자, 국제결혼가정, 유학생 등 다문화인들을 초청하여 그들에게 한국의 문화와 함께 복음도 전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현지인 지도자를 세우는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선교하는 마음으로 이러한 사역에 관심을 기울이고 적극 동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8. 목사님께서는 향후 10년 안에 10배의 부흥이 다가올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새해를 맞는 성도들에게 당부 말씀 부탁드립니다. 부흥의 역사가 다시금 우리 교회 가운데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위해 2024년을 부흥의 원년으로 삼고 향후 10년간 매년 5만명 전도 목표를 향해 교역자와 제직, 모든 성도가 한마음으로 총력을 다해야 합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올 한 해 여러분 모두가 부흥의 파도에 올라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진행·김민철 목사 / 정리·복순희 / 사진·김용두 기자
  • 2024.01.05 / 복순희 기자

    Hello, Israel
    이스라엘의 유월절 풍경 … 자유와 구원을 선포하다!
  • 올해 유월절은 예년에 비해서 한 달이 늦은 4월에 찾아왔다. 올해 유월절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필자는 정규 신학교를 나와서 교회에서 말씀을 가르치며 목사로 사역해 왔다. 이스라엘을 오기 전까지는 아무런 저항이 없이 기존의 신학과 교육 안에서 가르치는 것과 배워왔던 것들이 크게 부딪치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부르심 가운데 이스라엘에 오게 되면서 많은 생각들이 부딪히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절기에 관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지금도 성경적 절기들을 지켜온다. 우리가 추석을 지키고 교회에서 부활절, 추수감사절, 성탄절을 지키듯 이들은 유월절, 오순절, 나팔절, 대속죄일 그리고 초막절을 지켜오고 있다. 우리는 기독교 안에서 이런 절기들을 유대교의 절기라면서 지킬 필요가 없다고 가르쳐 왔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런 절기들은 유대교의 절기라기보다는 성경 안에서 하나님이 가르친 하나님의 절기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키라고 가르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에도 없는 부활절, 추수감사절 그리고 성탄절을 크게 의미를 두면서 꾸준히 열성적으로 지켜왔다. 이번 유월절을 준비하면서 더 많은 생각들이 교차해 갔다. 우리는 성경의 절기들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잣대를 대고 비판하고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유월절은 의미가 큰 절기이다. 성경적으로 그리고 신학적 관점에서도 유월절을 대하면서 하나님의 구속하심과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연관 지어서 설명한다. 그런 이해 속에서 유월절은 그리스도의 속죄하심과 구원하심이 선명하게 나타나는 절기인 것이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하나님은 애굽을 아홉 가지 재앙으로 심판하신 이후 마지막 재앙인 장자의 죽음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내시려고 하였다. 하나님은 명확하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엇을 해야 그 죽음의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설명해 주셨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문지방과 기둥에 바른 집들이 죽음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유월, 즉 지나갔다는 의미로서 영어로 패스오버(Passover) 히브리어로는 ‘페싸흐’라고 불리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집은 무조건 죽음이 넘어갔다는 대목이다.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누구든지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집은 죽음이 넘어간 것이다. 이집트 백성들도 하나님의 명령대로 어린 양의 피를 바르거나 혹은 이집트인과 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친구들의 집에 어린 양의 피를 발라 주었다면 그 집들은 모두 구원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은 특정한 이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 아니라 구원의 약속을 받은 모든 이들에게 동일하게 임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풀려난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만이 아니다. 이는 자유를 향한 하나님의 선포이며 구원의 선포이다. 또한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누구나 그 언약을 믿고 그 약속의 상징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구원이 임한다는 선포이다. 이 선포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가히 충격적이며 강력한 것이다. 자칫 기독교 우월주의에 빠질 수 있는 우리의 구원이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것이며 믿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생명의 선포이자 자유의 선포라는 것이다. 유월절을 기억하고 지키는 것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유익한 일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이 유월절 어린 양과 같은 피 흘림을 통해 구원을 이루실 하나님의 계획임을 알게 하는 절기인 만큼 이를 지키면서 누리게 될 은혜는 더욱 풍성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이 이 절기를 계속해서 지켜 나갈 수 있도록 이들을 인도하고 계신다. 우리는 이번 절기를 이 지역에 공부하러 온 유학생들과 함께 나누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었지만 이스라엘에 공부하러 왔기에 유대교식 절기를 지내보고자 모였다. 유월절 메시지를 듣게 되고 절기의 의미를 되새기고 나자 그들의 표정에는 더욱 커다란 은혜가 남아있었다. 하나님의 구원이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과 속죄함으로 나타나기까지 하나님은 이 절기를 통해서 기억하게 하시며 가르치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올해 유월절은 더욱 이런 메시지가 필요하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인해서 아직까지 갇혀 있는 이들이 자유함을 얻고 죽어간 이들과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어린 양의 속죄함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 유월절 저녁을 보내면서 함께 기도해 본다. 김요셉 목사
  • 2024.04.26 / 김용두 기자

    라마단을 대하는 태도: 이스라엘의 공존과 화합을 향한 노력
  • 이 시기가 되면 이스라엘은 무척이나 긴장하게 된다. 이 시기에 두 개의 절기가 서로 만나게 된다.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절기인 부림절(Purim)과 한 달 동안 금식이 계속되는 이슬람의 절기인 라마단이다. 라마단은 이슬람의 절기로서 30일간 해가 떠 있는 동안은 금식을 하고 해가 지고 나면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음식을 먹으면서 하루 동안 주어진 알라의 은혜와 기쁨을 나누는 시간이다. 그리고 30일이 지나면 한 달 동안의 금식의 고행을 지킨 것을 기념하면서 성대한 잔치를 벌이고 먹고 마시는 축제를 즐기게 된다. 모두가 알다시피 예루살렘에는 황금돔 사원(Dome of Rock)이라는 이슬람의 성지가 있다. 매년마다 라마단 기간동안 무슬림들은 이 사원이 있는 예루살렘 성전 산의 알아크사 사원과 그 앞 광장에 모여서 기도회를 하게 된다. 금식 기간동안 기도를 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서 팔레스타인 무슬림들과 인근 요르단에서도 수많은 무슬림들이 성지순례를 오게 된다. 가뜩이나 서로의 관계가 좋지 않고 현재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와의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예루살렘은 더욱 긴장감이 올라가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갈등은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왔다. 그러나 이 갈등 속에서도 이스라엘은 무슬림들을 존중하면서 라마단을 지키게 하는 데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수많은 무장한 경찰들과 병력들이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예루살렘 구 시가지를 철통같이 보안하고 테러에 대비하고 있다. 누군가를 억압하기 위함이 아니라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갈등보다는 화합과 공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은 문화적인 다양성과 종교적 다양성을 존중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비롯한 다양한 종교적 그룹들이 공존하는 나라로서, 각 종교 그룹의 신념과 문화를 존중하고 지지한다. 이스라엘은 다양한 종교적 축제와 의식을 존중하고 지원함으로써 문화적 구분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라마단 기간, 이스라엘은 무슬림들의 신념과 전통을 존중하면서 라마단을 지키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스라엘의 도시들은 라마단을 축하하는 이벤트를 개최하고, 무슬림들이 금식을 지키고 기도를 드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또한, 이스라엘 정부는 라마단 기간 동안 무슬림들의 식사를 지원하고 그들의 종교적인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노력한다. 항간에 괴담처럼 떠도는 이스라엘이 무슬림들을 핍박하고 있으며 분리시켜 제한한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누구나 원하면 자신들의 종교를 섬길 수 있는 곳이 이스라엘이다. 하지만 라마단 기간만 되면 무슬림들과 유대인들 간의 갈등과 폭력은 여느 때보다 더 심하다. 구시가지의 다메섹문(다마스커스 게이트-아랍구역)에서는 팔레스타인 청년이 이스라엘 경찰을 향해서 칼을 휘둘러 죽이거나 다치게 하고 이스라엘 군인은 그런 테러범을 사살한 뉴스가 보도가 된다. 가장 거룩한 절기이며 금식의 절기에 누군가의 생명을 해치려 하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알라를 섬기는 이들에게 금식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오랜 시간 뒤틀린 시각과 정서는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야 함에도 이 절기만 되면 다들 극도로 흥분하여 공격하려는 경향으로 나타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스라엘은 갈등과 대립보다는 화합과 공존을 위해 나아가려 하고 있다.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며,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갈등을 해소하고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증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슬람은 스스로를 평화의 종교라고 말한다. 그러나 라마단 기간 동안 이들이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을 향하여 쏟아내는 말과 행동은 결코 평화와는 멀기만 하다. 시편의 기자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하였도다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시120:67). 라마단 기간동안 하나님을 갈망하는 이들에게 주님이 직접 찾아와 주셔서 참 평안을 얻게 하고 화평을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에게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갈등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노력과 무슬림들을 포함한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는 태도는 지역의 평화와 공존을 위한 중요한 발걸음임을 보여줍니다. 함께 노력하여 갈등을 극복하고, 모든 이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세상을 만들기를 희망합니다. 김요셉 목사
  • 2024.03.27 / 김용두 기자

    이스라엘 독립의 아버지, 네게브에 소망을 가진 벤구리온
  • 전 세계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오는 비행기는 모두 텔아비브 국제 공항에 착륙한다. 수많은 순례객과 방문객이 들어오는 관문이 바로 텔아비브 인근에 위치한 벤구리온 국제공항이다. 공항을 나서는 문 앞에 장식된 벤구리온의 흉상이 모두를 반겨준다. 벤구리온을 지역 이름이나 공항의 이름으로 아는 이들이 많다. 혹은 벤구리온이 이스라엘의 초대 수상인 것을 아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정작 벤구리온이 누구인가를 물어보면 그 이상을 아는 이들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유명하지만 그리 유명하지 않은 인물 중 하나가 벤구리온인다. 이스라엘의 유명 인사들 중에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아는 인물이 별로 없다. 근대 이스라엘 역사를 공부하는 이들 중에서도 초대 수상이었던 벤구리온에 대한 이야기를 아는 이들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근대 이스라엘 역사를 말함에 있어서 벤구리온은 너무나도 중요한 인물이다. 다비드 벤구리온은 이스라엘 초대 수상이자 ‘쥬이시 에이전시(Jewish Agency, 유대인들의 이민과 삶을 돕던 민간기관)’의 수장이었던 인물이다. 우리가 사진으로 보게 되는 벤구리온의 얼굴은 양쪽으로 머리가 삐죽 솟아있는 고집스런 얼굴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이스라엘에 대해서 예언자적인 비전과 열정을 가진 사람인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대부분이 아는 것이 그가 초대 수상이며 제1차 중동 전쟁, 이스라엘의 독립전쟁을 이끌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이 아마도 전부일 것이다. 벤구리온의 일생은 뜨거운 열정의 인생이었다. 1886년 10월 16일 폴란드에서 출생한 그는 15세의 어린 나이에 테오도르 헤르츨의 『유대국가론』을 읽고 그의 강연을 들으면서 시온주의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자랐다. 아직 오토만 제국 시절이었던 1906년 그의 나이 20살에 이스라엘로 넘어와 그곳에 시온주의 청년단을 결성하여 정착촌을 만들고 신문을 발행하면서 그의 젊음을 시온주의에 바치게 되었다. 그 후 영국령 팔레스타인으로 넘어오게 되면서 그의 본명인 벤 그룬을 히브리식 이름인 벤 구리온으로 개명하고 히브리어로된 신문과 글들을 발행하였다. 그 시절이 그의 제일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기였다. 하지만 유대인의 부흥과 발전을 위해서 온 몸을 다 바쳤다. 이후 1914년부터 1948년 독립 이전까지 그는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유대국가의 필요성을 알리면서 살게 된다. 그는 수많은 사건들과 유럽의 반유대주의를 목격하면서 유대인들에게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국가가 필요함을 깨닫게 되고 수많은 반대와 비난 속에서도 국가 설립을 위한 일들을 끊임없이 해왔다. 그에게 있어서 유대국가의 설립은 그의 스승과도 같은 테오도르 헤르츨의 유산이며 그의 삶의 목표였던 것이다. 그의 꿈은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리는 그 땅에 유대인들의 국가를 세우는 것이며 그 국가는 모두가 안전하고 공평하고 평등하게 사는 것이었다. 그의 국가론에는 차별과 차등이 없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독립 선언서에는 유대인과 아랍인, 베두인 모두가 평등하게 살아갈 것을 언급하고 유대교와 이슬람, 기독교 모두가 존중 받는 국가를 세우는 것이 목적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스라엘 독립의 아버지인 벤구리온은 특히나 네게브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말년의 3년 반을 살았던 네게브 스데보케르 키부츠에는 그의 생가가 박물관으로 남아있다. 작은 집을 개조하여 살았던 그의 집무실 책상과 책장에는 수많은 서적이 빼곡하게 남아있다. 그의 삶 속에서 네게브는 이스라엘의 소망이었고 미래였다. 어렵게 얻은 땅이었지만 그 절반이상이 경작할 수 없는 불모지였다. 하지만 벤구리온은 그런 네게브의 광야가 푸르러지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고 이곳이야 말로 이스라엘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이야기 속에서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에 대한 열망은 남달랐다. 그는 이스라엘의 미래를 위해서 네게브가 발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를 위해서 그는 이미 1950년도에 태양열발전과 농업진흥을 위한 기술개발 그리고 더 나아가 네게브에 수많은 도시를 세워야 하는 비전을 내보이기도 했다. 벤구리온은 가장 무신론적인 모습으로 살아갔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평생을 이끌어 갔던 것은 성경의 롤 모델인 모세였고 신명기의 말씀이었다. 그는 종교적 인물이 아니었지만 신의 모습을 갈망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평생을 유대인의 안전과 발전을 위해서 힘써온 인물이었다. 그의 수많은 말들 중에 하나만 인용하며 그를 기억하고자 한다. “용기는…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하는 방법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방법에 대한 지식입니다.” “이스라엘에서 현실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적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도 벤구리온처럼 기적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용기를 가졌으면 한다. 김요셉 목사
  • 2024.02.23 / 김용두 기자

    평신도를 위한 오순절 조직신학
    VII. 죄론(Hamartiology) - 1
  • 죄의 근본적 정의는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것
    인간은 죄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로마서 3장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고 선언하고 있는데, ‘모든’에 해당하는 헬라어 판테스는 인류 전체를 포괄적으로 일컫는 단어이다. 우리 나라 말은 ‘죄’, 영어는 ‘sin’이라는 단어로 죄에 대해 포괄적인 의미로 지칭하고 있으나 성경은 ‘죄’에 해당하는 단어를여러 가지로 쓰고 있다. 구약성경은 8가지 다른 단어와 신약은 12가지의 다른 단어가 ‘죄’라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이 여러 단어 중에 헬라어 ‘하마르티아’가 죄론 (Hamartiology)의 어원이 되었다. ‘하마르티아’의 뜻은 ‘과녁에서 벗어나다’는 의미이다. ‘하마르티아’가 의미하듯 죄에 대한 근본적인 정의는 살인과 도둑질과 같은 범법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것을 말한다. 최초 인류 아담과 하와의 타락에서 볼 수 있듯이 죄의 본질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불순종이다. 불순종은 단지 하나님의 공의와 율법을 거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며 인간의 한계성을 넘어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려는 행위로 나타났다(창 3장). 또한 하나님의 보좌를 침범하는 행위와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것을 의미 한다(사 14:13). 바울은 죄를 하나님의 ‘원수’(롬 5:10, 골 1:21)라고 했으며 그것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미워하는 자’(롬 1:30)라고 했다. 1. 죄의 기원 (The Origin of Sin) 죄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죄가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했거나 진정한 행복을 선사한 적은 한 순간도 없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 사역 가운데서 천사의 창조와 죄의 창조는 찾아 볼 수 없다. 모든 것이 다 보시기에 좋았고 악한 것은 없었다. 그럼 죄는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 죄론에서 다루는 명제들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은 죄의 조성자로 간주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사실 때문에 죄 또한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고 할 수는 없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동산 가운데 두셨다고 해서 인간의 타락을 유도했다고 할 수도 없다. 하나님은 결단코 악을 행하지 않으시며, 전능자는 결코 불의를 행치 않으신다(욥 34:10).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그의 안에는 불의가 전혀 없다(신 32:4; 시 92:16).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기능은 강요가 아닌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을 위함이다. 인간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는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는 것은 순종의 표현이며 과녁에서 벗어나지 않은 삶을 이어가기 위한 결단이다. 2) 죄는 천사의 세계에서 시작되었다 인간의 타락을 말씀하고 있는 창세기 3장을 보면 인간이 죄를 짓기 이전에 이미 ‘뱀’으로 형상화 된 사탄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창 3:1). 이것은 죄가 인간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사야 14장 12~14절에 계명성으로 대변되는 천사의 타락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이 계명성을 영어 성경 KJV은 루시퍼(Lucifer)라고 번역을 했다. 사탄이 인간의 타락 이전에 이미 존재했으며 이들로부터 죄가 인간에게 들어 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것이 죄에 대해 인간의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3) 죄는 인간의 고의적인 행위로 말미암은 것(롬 5:12, 18, 19) 죄는 외부로부터 온 유혹과 그 유혹에 대한 인간의 적극적인 반응에서 시작되었다. 성경은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약 1:14)라고 말씀하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을 만큼 선하게 창조되었으나 선한 자유를 잘못 사용함으로서 죄가 인간에게 들어 왔다. 인간은 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면 안 된다. 4) 죄의 이해 (1) 교부 시대의 죄의 이해 동방 교부들은 죄를 포괄적이고 피상적인 것으로 이해했다. 이에 반해 서방 교부들은 죄의 문제를 윤리적인 것으로 심화했다. 그래서 교황을 비롯한 가톨릭의 성인들은 아무 죄(윤리적인 죄)를 짓지 않았다고 주장하게 되었다(아타나시우스). 서방 신학의 아버지인 터툴리안에 의해 처음으로 원죄론이 대두되었으며,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은 타락 전에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었지만, 타락 후에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2) 중세시대 토마스 아퀴나스는 죄의 종류를 ‘용서할 수 있는 죄’, ‘죽을 죄’, ‘하나님과 자기 자신과 이웃에게 범하는 죄’, ‘원죄 또는 유전 죄’, ‘행위 죄’, ‘원래적인 의의 결핍’, ‘질료’, ‘탐욕’ 등으로 나누어서 설명하려고 했다. 루터는 죄를 철저히 인격적으로 이해했다. 루터는 죄를 감각적, 육체적 영역뿐 아니라 인간의 영혼 안까지 도달한다고 생각했다. 멜란히톤은 죄를 ‘원래적인 의의 결핍’과 ‘탐욕’으로 이해했다. 칸트는 죄를 ‘인간의 본성 안에 있는 철저한 악’이라고 선언했다. 이상윤 목사(홍콩순복음교회 담임)
  • 2023.10.0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Ⅵ. 인간론(The Doctrine of Humanity) - 3
  • 인간은 하나님의 실존이 투영돼 창조된 존재
    4. 하나님의 형상 (The Image of God, Imago Dei) 많은 기독교인들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았다는 말에 익숙해 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첼렘)과 ‘모양’(떼무트)대로 창조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창 1:26). 히브리어로 형상은 ‘첼렘’이다. 그 뜻은 ‘그늘지다’라는 동사에서 유래한 ‘그림자’(시 39:7)라는 뜻이며 ‘모양’은 ‘떼무트’인데 ‘닮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며 이 두 단어가 어떻게 구별되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두 단어가 주는 의미처럼 인간은 하나님을 반영하는 존재이며 하나님의 실존이 그림자처럼 투영되어 인간이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천지창조를 통해서 볼 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은 다른 피조물에게는 허락되지 않았으며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성임이 분명하다. 여기서 두 가지의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지에 관한 의문이다. 둘째는 타락한 이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1) 하나님의 형상은 무엇인가? (1) 형상(Image)과 모양(Appearance)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 둘은 동일시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두 단어가 동일한 의미라며 창세기 1장 26절에서 굳이 이 단어를 구별해서 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에 관해 가톨릭과 개신교는 서로 다른 이해를 하고 있다. 가톨릭은 전통적으로 하나님의 형상(image)과 하나님의 모양(appearance)을 일반화하지 않고 구별해서 이해해왔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속성(attributes)과 성품(character)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모양은 외형적인 모습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만약 하나님의 형상이나 모양을 하나님의 외형적인 모습으로 이해하면, 인간의 외형적인 모습과 같이 하나님도 눈이 두 개, 팔이 두 개, 손가락과 발가락이 있는 인간의 모습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은 모양과 틀에 갇혀 있을 수 없는 영이시라고 말씀하고 있다(요 4:24).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외모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말은 분명히 아니다. 반론의 여지가 없이 인간은 하나님의 속성을 가진 피조물로 창조되었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2) 광의적 하나님의 형상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이 서로 다르다는 것에 동의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의 범위와 의미에 대해서는 이견을 나타내고 있다. 개신교 내에서도 루터파와 개혁주의 뿐만 아니라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존재한다. 루터파는 제한된 의미로 하나님의 형상을 이해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형상을 영적인 요소로 제한시키고 있다. 그 결과 타락 이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잃어 버렸다고 생각한다. 칼빈도 인간의 타락을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잃어버린 전적인 타락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후기 개혁주의자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광의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광의적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어 주신 하나님의 형상이 영적인 영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사회적 성품, 지성, 인격, 윤리와 가치, 도덕적 성품까지 확대된 것을 말한다.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와 에밀 브루너(Emil Brunner, 1889~1966)와 같은 신정통주의자들은 인간이 하나님과 맺고 있는 관계성 혹은 인간이 인간 사이에 맺고 있는 인격적 관계성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2) 타락한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 있는가? 하나님의 형상을 거룩하고 영적인 것으로 제한한다면, 타락한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은 남아 있지 않다. 인간의 타락은 영적인 죽음을 의미하며,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과 그의 임재로부터 추방당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을 광의적으로 해석한다면 바울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타락 이후에도 인간 속에 남아 있게 된다(롬 1:19). 에덴동산에서와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이 세상에 살면서 제한된 범위 내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고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는 것(창 4:1~4)은 하나님의 형상이 타락 이후에도 인간에게 남아 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요소가 된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74)는 바울이 말한 ‘하나님을 알만한 인간의 지성’을 인간에게 남겨진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해했다. 하나님을 알고 예배하고 그에게 순종하는 지혜가 인간에게 남아 있기에 하나님을 알 수 있으며 그리스도를 통한 은총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이 온전히 회복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하나님을 반영하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타락 이전 하나님의 권한을 위임받아 피조물을 다스리는 권한이 인간에게 주어졌다. 그러나 타락 이후 하나님의 형상을 상당부분 잃어 버렸고,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이것을 회복할 수 없다.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유일한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상윤 목사(홍콩순복음교회 담임)
  • 2023.06.3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VI. 인간론(The Doctrine of Humanity) - 2
  • 영적인 상태와 직결되는 인간의 다섯가지 상태
    3. 인간의 상태 II 조직신학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인간에 대한 이해이다. 조직신학의 인간 이해는 사회, 문화, 정치, 경제적 환경보다는 인간의 영적인 상태와 직결된다. 특별히 인간의 상태에 대한 이해는 창조와 타락,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최후의 심판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인간의 상태는 다섯 가지로 이해 될 수 있다. 1) 타락 이전의 무죄 상태(Status Integritatis) 무죄의 상태에 있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었으며 언제든 하나님의 임재에 참여 할 수 있었다.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죽음의 공포, 질병, 고통, 슬픔, 불의 등 인간을 괴롭히는 모든 요소에서 벗어나 있었다. 타락 이전의 무죄 상태에 있는 인간은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간의 삶 속에 죄가 유입됐으며 인간은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2) 타락으로 인한 부패의 상태(status corruptionis) 완전한 선을 추구할 수 있었던 인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부패의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에덴동산에서 누렸던 권리는 모두 박탈되었고 죄를 안 지을 수 있는 힘을 잃어버렸다. 인간의 거룩성은 사라졌고 하나님의 거룩 앞에 설 수 없게 되었다. 에덴동산의 풍요, 평화, 자유, 기쁨은 사라지고, 땀을 흘려야 먹고 해산의 수고와 고통을 짊어져야 했다.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되었다(창 3:16~18). 만물에 대한 통치권을 잃었으며 하나님의 임재 밖으로 버려졌다. 목숨은 붙어 있었으나 이미 사망 선고가 내려진 상태였고 영혼은 부패했으며 죄와 사망의 노예가 되었다. 죄의 욕망에 따라 살며 결국에는 죄 가운데 죽어갈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마음의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고(창 6:5)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육신은 흙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는 유한한 존재가 되었다. 3) 그리스도로 인한 선사된 은총의 상태(status gratiae) 칼빈(John Calvin)이 말한 ‘전적인 타락’에 놓인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선물, 즉 은총(카리스)만이 필요하다. 성경은 그 어느 곳에도 다른 길이 없다고 말한다(요 14:6).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어떤 사람도 어떤 이름도 주신 적이 없다고 단언한다(행 4:12).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세주로 영접하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으면 우리의 영혼은 거듭나고 중생한다(롬 10:9). 이 거듭남과 중생의 결과로 인간은 새로운 피조물, 그리스도의 신부, 성령의 전, 하나님의 자녀라는 은총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진리를 소유함으로써 자유를 누리게 된다(요 8:32). 영원한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졌으며 사망의 종이나 지배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법 아래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무죄 상태에 있던 아담과 달리 죄의 속성이 여전히 잔존해 있어서 끊임없이 죄의 유혹과 육체의 소욕과 싸워야 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2~24)라고 절규하는 바울의 모습은 이런 인간의 상태를 잘 묘사해 주고 있다. 4) 구원을 받는 자들의 죽음 후 영광의 상태(status gloriae) 육체의 죽음은 존재의 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은 죽음을 통해 늙고 병든 육체를 벗고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는 전환점을 맞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고전 15:20), 우리 또한 부활의 기쁨과 함께 신령한 옷을 입고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영광스런 상태가 된다. 이것이 구원 받는 자들의 죽음 후 영광의 상태이다. 아담과 하와가 잃어 버렸던 무죄의 상태를 회복하며 더 이상 죄와 사망, 질병과 고통에 지배되지 않는다.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절대적 자유를 누리며 하나님의 임재와 거룩함에 거리낌이 참여할 수 있다, 모든 희미하고 불분명했던 것들이 얼굴을 맞대고 보는 것과 같이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며(고전 13:12), 상함과 행함이 없는 완벽한 평화를 맛보게 될 것이다. 5) 저주를 받은 자들의 죽음 후 저주 상태(status damnationis) 죽음 후 인간의 상태는 믿는 자들에게만 적용되지 않는다. 믿는 자들에게 주어질 영광의 상태와 정반대되는 인간의 상태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이 죽음 후 놓이게 될 저주의 상태이다.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는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 기록된 글귀처럼 더 이상 어떤 소망도 존재하지 않는다. 선함을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사랑은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심판의 고통만이 영원히 지속되며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나(마 25:30), 돌이킬 수 있는 방법과 기회는 사라진 상태이다.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는 기대할 수 없고 사탄과 죽음의 권세로 다스려지는 처참한 인간의 상태이다. 이상윤 목사(홍콩순복음교회 담임)
  • 2023.03.03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생명과학 이야기
    고난을 통해 결실하는 대추나무
  • 봄에는 모든 나무가 새순을 내고 경쟁하듯 꽃을 피운다. 그러나 이렇듯 바쁜 계절에 지각하는 나무가 있다. 새순을 내는 일이 너무 늦어서 앙상한 가지들을 볼 때 지난 겨울 추위에 죽은 나무는 아닐까 의구심이 생길 정도다. 우리나라 과실나무는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늦어도 4월이면 대부분 꽃이 피고 늦어도 5월 초순이면 그해 꽃들은 피고 진다. 그러나 대추나무는 새순도 늦지만 초여름이 시작되는 5~6월이 되어야 꽃이 핀다. 봄을 놓친 어느 나무들보다도 한참 지각한 모습이다. 대추나무 잎과 꽃은 다른 과실나무와 비교해서 작을 뿐더러 꽃의 경우는 존재감이 없다. 봄에 피는 꽃은 대부분 밝고 화려한데 비해서 대추나무 꽃은 작을 뿐더러 연두색이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언제 피었는지 모르게 지나치게 된다. ‘대추나무 사랑걸렸네’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있을 만큼 대추나무는 집터 가까운 곳이나 정원수로 심기 때문에 우리생활과 친숙하다. 그러므로 대추는 과거부터 관혼상제에서 빠지지 않았고 한약재와 식품 관련 재료로 사용됐다. 특히 결혼식 폐백용으로 신부의 치마폭에 던져주며 대추는 자손이 반듯하게 자라서 대를 이어 번성하라는 다산(多産)과 풍요를 바라는 어른들의 마음일 것이다. 이렇듯 대추나무는 한번 맺힌 열매는 비바람에도 여간해서 떨어지지 않으며 봄에는 지각했으나 추수할 때 다른 나무의 열매 수확 시기와 늦지 않게 풍성히 열린다. 단오 오후에 행하는 풍속의 하나로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를 하는데 이는 대추가 열매를 많이 맺도록 Y자형 나뭇가지에 큰 돌을 올려놓거나 망치나 도끼로 몇 번 충격을 주는 풍습이다. 필자가 생각할 때 잎만 무성하고 결실이 적을 때 일종의 충격요법과 같다. 일부 유실수(有實樹)는 고난이나 적잖은 충격을 받으면 생명의 위기를 느끼고 본능적으로 씨를 많이 맺어 종족보존을 위한 일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현재 선진국가의 저출산 문제는 다양한 사회적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과거의 절대적 빈곤과 고단한 환경에서 다출산 시대를 살아온 때보다 더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는 세대의 특별한 심리현상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오류일까. 한편 대추나무는 가시가 날카로워 찔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가시면류관의 나뭇가지는 대추나무(Christ thorn jujube)로 알려졌다.(막 15:17) 현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으며 학명은 예수가시대추나무(Ziziphus spina-christi)로 그 이름이 오늘까지 전승되고 있다. 윤철종 목사(또오고싶은교회, 이학박사)
  • 2024.04.26 / 이미나 기자

    국내에서 2등 반려동물, 고양이
  • 우리나라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는 4명 중에 한 명으로 그 종류와 품종이 다양하며 관련 가구 수와 개인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다. 2023년 기준 반려동물을 양육하는 국내 인구가 28.2%로 농림축산식품부가 조사를 시작한 이후 가장 높게 나타났다. 국내 반려동물을 보면 전세계에서 들어온 종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재래종보다 더 많아졌다(사진). 통계에 따르면 가장 많이 기르는 반려동물은 개가 75.6%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27.7%로 고양이다. 고양이는 분류상 고양잇과(Family)로 알려진 37종이 있다. 그 아래에 두 종류의 아과(亞科)로 나누는데 표범아과(Pantherinae)와 고양이아과(Felinae)로 나눈다. 이들의 공통점은 타고난 사냥꾼이다. 예민한 후각과 청각은 작은 움직임도 포착하고 이에 신속하게 반응할 수 있다. 사냥과 활동하기는 밤이 더 좋은 동물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눈은 상대를 명확하게 볼 수 있도록 동공이 최대로 확대되면 눈빛은 총명해 보이기까지 한다. 어디 그뿐인가. 고양이는 육식동물의 특징인 입에는 날카롭고 갈고리 형태의 긴 송곳니를 가지고 있어 상대의 목을 물어 제압할뿐더러 작은 먹이는 재빠르게 낚아채기도 한다. 포획한 먹이의 생살을 찢고 뼈까지 부술 수 있는 치아와 강인한 근육으로 무장한 턱이 있다. 사냥할 때 발바닥은 부드러운 고무패드 같아서 걸을 때 소리가 나지 않게 접근한다. 기회를 보아 감춘 C자형 발톱을 순간 꺼내서 움켜주는 힘은 순간 천적의 피부를 뚫고 살을 파고든다. 온몸의 관절과 근육은 매우 유연하여 자신의 몸보다 몇 배 높게 점프할 수 있다. 자세를 웅크리고 있다가 낮게 날아가는 작은 새들도 사냥의 대상이 된다. 어떠한 낙차에서도 날샌 몸 돌림으로 중심을 잡고 착지하는 모습은 능숙한 기계체조 선수급이다. 이미 잘 아는 바와 같이 쥐 같은 작은 설치류가 천적으로 먹잇감이 된다. 상대가 되지 않는 적수(敵手)를 ‘고양이 앞에 쥐’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고양이는 과거의 험하고 무한경쟁 생존인 야생환경에서 지내기보다 사람이 사는 가정같은 공유공간에서 어릴 때부터 부양되고 양육되어 야성이 점차 사라지고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고양이는 도도하면서 특유의 귀여움과 재롱이 어린이와 어른들의 사랑받는 친구로서 반려동물이 되었다. 친해지는 만큼 정이 든다. 최근 반려동물에 대한 관리에서 청소, 목욕, 식이 건강 등 장기간 여행할 때 맡기는 반려동물 호텔도 있어서 관련 산업이 요즘 각광 받는 업종이다. 한편 동물복지에 대해서 물리적 학대는 물론이고 양육조건이 열악한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인식도 높아지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확장해 보면 일상에서 현대인들 중에 무기력하고 고립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반려동물이 도움이 될 수 있다(사11장). 윤철종 목사(또오고싶은교회, 이학박사)
  • 2024.04.09 / 이미나 기자

    사슴뿔과 닮은 사슴벌레
  • 사슴벌레는 일명 집게벌레로 알려졌으며 검고 단단한 외피를 전신에 갑옷처럼 두른 모습을 하며 사슴의 뿔처럼 생긴 집게로 무장하고 있다. 본능적으로 천적이 나타나면 위협적으로 머리를 치켜들고 뿔을 세운다. 그리고 경쟁자인 수컷이 나타나면 긴 집게로 밀치거나 잡아서 낚아채 던지기도 한다. 필자는 어린 시절 동네 인근에 참나무 숲에서 나무 밑동이나 썩은 곳에서 특유의 향이 나는 수액(樹液)이 흘러나올 때 냄새를 맡고 찾아온 말벌과 개미, 점박이꽃무지, 각종 풍뎅이들을 봤다. 이 곳에서 사슴벌레를 종종 발견했는데 몇 년 전에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고군산 말도(末島)에서 발견한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에 14~16종의 사슴벌레가 있는데 일부 종은 그 개체수가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요즘 곤충농장에서 인공 번식하는 기술이 생기면서부터 암수 한 쌍이 약 4~5만원으로 인터넷에서 거래되고 있다. 사슴뿔 모양의 커다란 집게로 위압감을 주며 사납게 생긴 탓에 육식성 곤충으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사슴벌레는 생긴 것과 다르게 비교적 온순하고 야행성이며 행동이 굼뜨다. 사슴벌레는 어린이들이 좋아하고 어른 중에도 취미로 실내에서 키우는 동호인들도 많이 있다. 특별히 큰 것은 고가에 거래되는데 1999년 일본에서 8㎝ 길이의 사슴벌레가 우리나라 돈 약 1억원이 넘는 가격에 매매되기도 했다. 그 이후 국내에서도 애완용 곤충산업이 크게 성장했는데 사슴벌레를 인공사육하는 기술과 좋은 사료가 개발되면서 작은 공간에서 여러 마리를 쉽게 키울 수 있게 돼 애완용으로 인기 있는 곤충이 됐다. 사슴벌레를 집에서 키우기 위해서는 발효된 참나무 톱밥을 구매해서 보금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러면 알에서 부화해서 애벌레로 성장한 후 성충이 되는 전체 과정을 관찰할 수 있다. 먹다 남은 과일 젤리나 주스도 잘 먹는다. 특별히 사슴벌레의 수컷 머리에 집게인 사슴뿔 모양의 크기는 유전적이기 보다 후천적으로 성장하기 때문에 환경이나 영양 상태에 따라서 크기가 달라진다. 사슴벌레의 특징은 암컷의 뿔이 작다는 것이다. 암컷은 수컷의 사슴뿔의 집게처럼 크지 않고 몸집이 작아서 같은 종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사진) 언뜻 보면 수컷이 어미 같고 암컷이 새끼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생태계를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종류마다 암수의 크기가 다르고 모양이 다르다.(계 4:11) 이렇듯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사람으로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고 창조 지혜를 사람이 다 알 수 없다.(시 104:24) 윤철종 목사(이학박사, 또오고싶은교회)
  • 2024.02.23 / 이미나 기자

    성경 Think! 인생 Thank!
    진로를 디자인해라 ... 의대 열풍 속에서도 마이 웨이
  • 평생직장 사라져, 평생학습해야** **단순한 밥벌이가 아닌 그 일로 부르셨다
    “초등학생 꿈까지 접수한 의대열풍”, “초등학생 4명 중 1명 의대 입시 준비”, “대치동 학원가에 초등학생 대상 의대 진학 준비반 유행”. 일간지 헤드라인 제목들이다. 비수도권 의대의 지역인재전형 선발 비율을 60%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해 ‘지방 유학’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직장을 다니거나 대학을 졸업한 뒤 의대에 입학하는 25세 이상 ‘늦깎이 의대생’ 또한 늘어나고 있다. 이런 내용의 기사를 접하다 보면 우리 아이도 뛰어들어야 하는 건 아닌지, 다시 제 2의 인생을 설계해야 되는 건 아닌지 불안과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시대마다 직업 열풍 있어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발표한 ‘2023년 초·중등 진로교육 현황조사’ 결과를 보면, 의사를 꿈꾸는 초등학생 비율이 지난해 4위에서 올해 2위(7.1%)로 올랐다. 고교에서도 7위에서 5위(3.1%)로 두 계단 높아졌다. 지난해 서울대에서 341명이 자퇴했고, 자퇴생 대부분이 의대 진학을 준비한다고 했다. 의대를 가장 많이 보내는 학교가 서울대 공대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니 의대열풍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지난 2016년에는 공무원시험 열풍이 불어 전공불문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공무원이 되는 일이 하버드대에 입학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왜 이런 열풍들이 시대마다 부는 걸까? 사람들은 미래가 불확실하고 경제가 불안할수록 안정된 직업을 찾게 되어 있다. 대기업보다 연봉이 높고 직업 안정성이 보장되는 직업으로 현재 의사가 최고인 셈이다. 영원한 직업은 없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임용 후 5년 미만 공무원들 중 퇴직자는 1만 3566명으로 2019년 6500명에 비해 갑절 이상 늘어났다. 한때 각광받던 직업인데 사람들은 왜 그만두는 것일까? 미래를 책임져줄 것 같은 직업을 좇아 어렵게 입사했지만, 생각보다 직무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낮은 보수, 잦은 민원으로 퇴사했다. 시간이 지나니 사회에서 말하는 인기 직업이 바뀌었다. 이 세상에 영원한 직업은 없다. 오늘 인정받는 직업일수록 10년 후에는 그렇지 못할 확률이 더 높다. 빠르게 변화하는 미래, 점점 더 모호해지는 일의 경계 그리고 다양한 직업의 등장은 이를 뒷받침해 준다. 기대수명이 증가하면서 일자리에서 은퇴하더라고 꽤 많은 시간을 살아야 한다. 인생 후반부를 살아내기 위해 재취업이나 창업을 해야 한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끊임없이 인생을 설계하고 계속해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진로 선택 일반적으로 진로 선택을 하는 데 있어서 성격, 적성, 직업가치관 검사를 해보는 게 좋다. 워크넷(www.work.go.kr)에 들어가면 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20여 종의 심리검사를 해볼 수 있다. 검사 후 결과를 통해 객관적으로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탐색할 수 있다. 직업을 갖더라도 꾸준한 자기계발이 필요하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서는 국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퇴근 후 학습 한 잔 어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직장인들을 위해 지하철 근처에 학습관을 열어주고, K-MOOC(한국형온라인공개강좌)를 통해 대학, 기업 등의 우수강좌를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게 열어줬다. <평생학습계좌제>라는 제도는 다양한 학습 경험을 계좌에 누적, 관리하고 학력, 자격으로 인정하거나 고용정보로 활용케 했다. 이를 통해 다가올 미래를 대비할 수도 있고, 새로운 직업의 세계에 대해 알 수 있다. 그분이 맡겨주신 일 부모로서, 한 개인으로서 시대의 흐름을 읽고,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고 진로를 디자인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고전 7:17) 하나님이 사람마다 부르신 목적이 있다. 독일어로 직업은 Beruf(베루프)로 Berufen(베루펜)이라는 동사 ‘부르다’에서 왔다. 누가 부르는가 하면 하나님이 부른다는 뜻이다. 기독교인에게 있어 일은 생활의 필요를 채우는 단순한 밥벌이가 아니라 그 일로 부르셨다는 의미가 있다. 세상에서 말하는 직업을 좇아 우왕좌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훗날에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할 수 있게. “숲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다고 /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중에서). Think! Thank! Q1. 당신은 어떤 직업을 갖길 원하시나요? Q2. 그 직업이 평생토록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Q3. 그 직업으로 부르신 분은 누구실까요? 김선희 교수(교육학 박사)
  • 2024.04.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회복탄력성 … 역경을 극복하는 힘
  • ‘때문에’가 아닌 ‘덕분에’로
    온갖 역경과 어려움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 “매일 게임만 하던 아이인데 학교생활을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아들을 걱정하는 A집사. “지난번 회사에서 딸이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했어요. 이번 직장에서도 같은 일이 생길까 봐 두려워요.” 어렵게 딸을 재취업 시킨 B권사. “건강검진에서 모든 게 경계성으로 나왔어요. 운동을 시작한다는데 며칠이나 할지 모르겠어요.” 남편의 건강을 염려하는 D권사. 차라리 자신들이 해버리면 간단한데 상대방을 지켜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눈치가 있어야 어떠한 상황에서 일이 벌어졌을 때 알아서 ‘딱’ 해주면 좋을 텐데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사람이 ‘눈치’라는 게 있어서 그 상황을 판단하고 적절하게 행동하면 좋으련만 뒤로 나자빠지거나 포기하기 일쑤다. ‘눈치’는 눈으로 잰 자의 길이를 뜻하며 눈치껏 가늠해 보는 것을 말한다. 눈치를 영어로 ‘sense’(센스) ‘wit’(위트)라고 하는데 일의 정황이나 남의 마음 등을 상황으로부터 미루어 알아내는 힘이다. 결국 주변의 상황을 스스로 파악하고, 적절한 행동을 하는 능력으로 눈치는 의사소통에 있어 중요하다. 가정에서 나 편한대로 생활하다가 학교라는 단체생활을 하게 되면서 어려움이 생긴다. 남들이 다 할 때 안 하고 싶어 딴지를 걸기도 하고, 받아쓰기라는 시험을 치르면서 공부가 싫어진다. 친구들과 다툼을 하게 되면서 억울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여기에서 ‘눈치’를 발휘해 상황을 판단하고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잘 할 순 없지만, 찬찬히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면 된다. 이것이 회복탄력성이다. 회복탄력성은 역경을 극복하는 힘으로 자신에게 닥치는 온갖 역경과 어려움을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힘이다. ‘때문에’ VS ‘덕분에’ 회복탄력성 훈련 전문가 모울란 박사는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일이 전복되거나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라고 말한다. 또한 “어떤 어려움도 그들의 자존감을 파괴하지 못하며 그들은 그러한 경험을 배움의 기회로 삼는다”라고 이야기한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어릴 적 지독한 가난에 시달려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었다. 건강도 좋지 않아 잔병을 달고 살았다. 이러한 환경에서도 그는 마쓰시타 그룹을 만들어 엄청난 부를 이뤘고 96세까지 장수하며 가난 배움 건강 모두를 이뤄낸 사람으로 기억됐다.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로 자신이 바꿀 수 없는 현실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상대방과 환경을 탓하는 ‘때문에’가 아닌 ‘덕분에’를 통해 성공한 삶을 살 수 있다. 어감에서도 차이가 난다. 가난한 환경 속에 태어났기 때문에 세상살이가 피곤해졌다. 가난해서 학교를 다니지 못했기 때문에 삶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반대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덕분에’ 어릴 때부터 여러 가지 힘든 일을 하며 세상살이에 필요한 경험을 쌓았다. 학교를 제대로 마치지 못했던 ‘덕분에’ 만나는 모든 사람을 선생이라 생각해 묻고 배웠다. 허약한 아이였던 ‘덕분에’ 꾸준히 운동해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야훼께서 붙드신 인생 “야훼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야훼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시 37:23~25).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고 계신다니 이보다 안전한 말씀이 있을까? 새로운 시작을 하는 자녀, 배우자, 이웃을 다른 시선으로 보는 것이다. 언제 커서 자기만 한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아들, 회사에서 일할 때 동료에게 상처받지 않으려고 눈치를 발휘하는 딸,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이제야 건강을 돌보게 된 남편. 야훼의 눈으로 보니 안쓰럽고 장하고 고마운 존재들이다. 혼자 고군분투 하는 것이 아닌 야훼께서 함께하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도 믿어주고 격려해 주고 기도로 응원해 주자. 상대방이 문제를 만날 때마다 놀라지 말고 뒤로 물러서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도록! 3월 출발은 그렇게 해보자. Think! Thank! Q1. 당신의 눈이 머무는 사건은 무엇인가요? Q2. 그 사건을 ‘때문에’와 ‘덕분에’로 나누어 서술해 보세요. 예) 편식하는 아들 때문에 → 편식하는 아들 덕분에 김선희 교수(교육학 박사)
  • 2024.03.0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굿모닝 인생 … 주님이 공급하신다
  • 걱정과 두려움으로 잠 못 이뤄 주의 자녀들이 자는 동안에도 공급해 주셔 직장에 출근해 사람들과 마주치게 되면 “굿모닝!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한다. 이 인사를 하고 나면 자신은 물론 상대방도 기분이 좋아진다. ‘굿모닝’ 안에는 “지난밤 아무 탈 없이 지내고 이렇게 나왔어요, 오늘 하루도 잘 살아볼게요”라는 비장함이 묻어있다. 오늘 당신은 굿모닝인가? 잠 못 드는 사람들 “2024년 2월 4일 수면 데이터 취침시간 7시간 31분, 수면시간 4시간” 취침시간은 자려고 누워 있는 시간, 수면시간은 실제 잠든 시간을 가리킨다. 건강한 삶을 위해 수면을 체크하라는 스마트워치는 수면단계를 비수면시간, REM 수면시간, 코어시간, 깊은수면시간으로 나누어 퍼센트를 알려준다. 비수면시간은 자다 깬 시간을 말하는데 자다 깨서 화장실을 가거나 핸드폰을 만진 시간, 아니면 옆 사람의 움직임 등으로 잠깐 깬 시간까지를 말한다. 이 중 깊은 수면은 신체 조직이 회복되고 필수 호르몬이 분비되는 중요한 시간이다. 오래 누워 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단잠을 잤느냐가 중요하다. 인생의 3분의 1은 ‘잠’으로 이루어져 있다. ‘잠’은 사람의 몸에서 아주 놀라운 역할을 한다. ‘잠’을 통해 신체는 휴식을 취하고 기억, 호르몬, 면역 체계 등의 중요한 기능을 유지하게 된다. ‘잠’을 통해 뇌의 학습 능력이 향상되고 신체가 감염에 저항하며 심장이 휴식을 취하고 혈압도 낮아진다. 미국 소설가 로버트 앤슨 하이라인은 “행복은 충분한 수면으로 이루어져 있다”라고 말한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수면부족 국가로 하루 평균 수면시간 7시간 41분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꼴찌이다(2023.10.27.헬스조선). 주님을 의지할수록 단잠 왜 이렇게 우리나라는 수면이 부족할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수면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요인은 ‘스트레스’(51%)로 알려졌다. 사람과의 원활하지 않은 관계, 과거의 실패, 끝없는 경쟁 사회에 내몰림,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걱정이 쌓여 잠 못 이루고 있다. 어니 젤린스키는 『모르고 사는 즐거움』에서 “우리가 하는 걱정의 40퍼센트는 현실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으며, 걱정의 30퍼센트는 이미 일어난 일, 걱정의 22퍼센트는 사소한 것이며 걱정의 4퍼센트는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겨우 4퍼센트만이 우리가 바꿀 수 있다”라고 말한다. 결국 우리가 하는 걱정의 96퍼센트는 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걱정이다. 믿는 자인 우리도 답답한 건 매한가지이다. 기도를 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도 바로 해결되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 스스로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들이 있음을 알게 되면서 앞으로의 삶이 염려되고 자신감이 떨어진다.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음을 깨닫게 되면 그렇게 힘을 빼려고 해도 안 되던 그 힘이 그냥 없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 수 있음을 알게 되면 잠을 잘 수 있다. “야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야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야훼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 127:1~2). 망각곡선 … 기억나지 않아 헤르만 에빙하우스는 사람의 기억에 대한 연구를 통해 ‘망각곡선’이라는 이론을 남겼다. 한 달만 지나도 기억한 내용의 80퍼센트는 잊어버린다는 사실이다. 세상 다 산 것처럼 현재 고민하고 괴로워하지만 1년 뒤에는 무슨 고민을 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니 매일 잠 못 이루며 염려하고 고민하는 문제들을 줄이려면 다음과 같이 해보는 것도 좋겠다. 『데일 카네기 자기관리론』에 따르면 ① 내가 걱정하는 문제를 정확하게 써 본다. ②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써 본다. ③ 무엇을 할지 결정한다. ④ 결정한 대로 즉시 실행한다. 써보고 나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정리하면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며 그들이 자는 동안에도 공급해 주신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목숨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주어진 날들에 감사하며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들이 옳다고 고백하는 일이다. 그렇게 살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샬롬’이 있다(빌 4:7). 개운하게 일어나서 “굿모닝,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하자. Think! Thank! Q1. 당신의 잠을 방해하는 걱정과 두려움은 무엇인가요? Q2. 이 중에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요? Q3. 다음의 말씀을 암송하세요. “야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야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야훼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 127:1~2). 김선희 교수(교육학 박사)
  • 2024.02.0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고전(古典)에서 길을 찾다
    앤드류 머레이 『완전한 순종』
  • 지식과 교훈보다는 구원의 은혜로 읽는 책
    영국 저널리스트 에드 콘웨이의 책 『물질의 세계』에 보면 모래 없이 반도체나 스마트폰은 존재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모래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과 순종을 통해 삶을 이끌어 가신다. 완전한 순종은 어떤 차원일까. 오래 끓여낸 곰탕처럼 요한복음 15장에서 『완전한 순종』을 한 그릇 내놓는 앤드류 머레이를 만나보자. 99%의 순종은 불순종이다. 머레이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들어 순종을 설명한다. 가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가지인 우리는 포도나무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해야 한다. 우리가 자신의 뜻대로 살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복을 구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성령께 복종함’이라는 소단원에서 머레이는 그 원리를 더욱 부각시킨다. 해답은 간단명료하다. 기차의 선로가 바뀌었을 때는 원래 지점으로 다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갈라디안 교인들이 온갖 종교적인 노력을 기울였던 데서 돌이키고, 자기 능력으로 일하여 자신들을 위해 추구하여 나갔던 데서 돌아서 겸손히 성령님께 굴복하는 것이다. 우리 개인에게도 이 외에는 길이 없다고 전동드릴로 못박듯 저자는 강조한다. 베드로와 바울을 예로 든다. 자기 뜻대로 하며 자기를 사랑하던 베드로가 어떻게 해서 오순절의 사도가 되었고 서신서의 저자가 될 수 있었나? 먼저 순종하신 주님의 모습에 통곡했던 베드로에게 오순절 성령이 임하자 성령 충만한 자로 변화되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 4:14)고 말하는 베드로의 변화는 명확하다. 바울이 아시아로 들어가려는 길이 막히고 유럽으로 가도록 인도를 받은 일은 성령께서 그의 인도자로 앞서가셨기 때문이다. 에릭 리들이 파리 올림픽에서 보여준 순종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그 후 그가 중국선교사로 일평생 섬길 수 있었던 것도 성령님께 완전히 사로잡혔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머레이는 ‘종교적인 육신’(religious flesh)을 경계한다. 나의 의지, 노력이 나의 종교생활에서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머레이의 당부는 세이공청(洗耳恭聽)해야 한다. “만일 하나님의 자녀가 어떤 진리들을 좀 더 분명하게 알기 위해 이 책을 읽거나,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훈을 얻기 위해서 이 책을 읽는다면 그는 틀림없이 실망할 것입니다. 그는 죄인으로서 죄에서 구원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야 합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복을 받을 것입니다.” 임 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군산교회 담임)
  • 2024.04.12 / 이미나 기자

    디트리히 본회퍼 『나를 따르라』
  • 예수님 따를 때 절망은 희망으로
    증평군과 담양군이 ‘나를 따르라’ 외치고 있다. ‘1.07과 1.13’ 전남 증평군과 담양군의 합계출산율이다. 언론의 표현대로 껑충 뛰어올랐다. 절망의 반대편엔 늘 희망이 존재한다. 근거 있는 희망과 포기하지 않는 인내가 필요한 요즘이다. 1980년대 후반 어느 개그 프로에서 유행하기도 했던 ‘나를 따르라’는 희망이 없던 미국 독립전쟁 당시 조지 워싱턴이 외쳤던 구호이기도 하다. 1937년 어렵고 힘든 시기에 디트리히 본회퍼는 『나를 따르라』는 책을 썼다. 본회퍼의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옥중서신』이지만, 그의 영성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이 책이다. 『나를 따르라』의 첫 부분은 기독교의 ‘너무나 흔한’ 값싼 은혜와 ‘너무나 드문’ 값비싼 은혜 사이의 차이점에 관해 이야기한다. 값싼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은혜로 만족하는 것이다. 은혜가 값비싼 까닭은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멍에를 씌우기 때문이고 그것이 은혜인 것은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본회퍼는 제자로서의 헌신을 통해 고난 가운데 처한다면 그것이 예수님을 위한 길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본인 스스로가 나치 정권에 항거했기에 그 말은 진정성 있는 토닥거림으로 다가온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따르기’는 스스로 택한 이상적인 길이다. 스스로 택한 순교자의 길일 수는 있어도 약속된 길은 아니다. 따른다는 것에는 단호한 조치가 따른다. 예수님의 뒤를 바짝 따르기 위해 세리는 세관을 떠나고, 베드로도 그물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따르는 자는 믿음을 가질 수 없게 하는 자신의 상황에서 벗어나 믿음을 가장 잘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상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산상수훈에 할애되어 있다. 진정으로 복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한다. 십자가 아래에 위치할 때 우리는 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온유, 겸손, 가난, 순결 그리고 핍박을 하나님께 바칠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4000권의 책을 읽고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고 부유한 사람 200명을 만났다는 보도 섀퍼의 『이기는 습관』에 이런 말이 있다. “엄청나게 시도하라. 성공하는 사람은 평범한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실행에 옮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실패하는 이유는, 실패를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회퍼는 ‘폭력의 시대를 거스른 행동하는 영성’의 소유자였고 실천자였다. ‘국가 소멸’이라는 전대미문의 절벽 앞에 절대긍정과 절대감사로 행동해야 한다. 금모으기 운동으로 전국민이 단합했고, 코로나 팬데믹의 절망도 능히 견뎌냈던 우리 아닌가. 임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군산교회 담임)
  • 2024.03.07 / 이미나 기자

    존 스토트 '기독교의 기본 진리'
  • 교회출석을 꺼려하는 이들에게 권하는 책
    강한 설득력, 명쾌한 답변 그리고 통쾌함 고리타분한 고전보다 빠른 세상에 눈과 손이 간다. 뉴질랜드에 가면 목에 태양열로 작동하는 스마트워치를 차고 있는 소를 볼 수 있고, 음식으로 음식을 포장하는 친환경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편리함 이면에는 어려움도 있다. 엄마도 엄마가 필요한 세상이고 이전에 없던 아빠의 역할들도 강조되는 때다. 불경기, 고물가, 극한기후, 심지어 AI와도 경쟁해야 하는 이때에 거장 존 스토트의 책 한 권이 단비가 될 수 있을까. 몇 년 전 추천한 C.S.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가 교회 안팎에서 영끌에 지쳐있는 청년들을 위한 책이라면, 존 스토트의 ‘기독교의 기본진리’는 제도적인 교회는 꺼려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찬성하는 청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쉽게 말해 가나안 성도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이다. 릭 워렌 목사는 “세계 모든 사람이 읽어야 마땅할 몇 권의 랜드마크가 되는 책이 있다. 이 책이 그 드문 몇 권의 책 가운데 하나다”라고 강력하게 추천한다. 이 책은 예리하고 똑똑하다. 날 선 검처럼 읽는 독자의 세계관을 뒤흔든다. 얼핏 전도지처럼 보인다. 머리말부터 전도에 적극적이다. ‘올바른 접근’이라는 첫 단원을 통해 복음에 불신을 가진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곧바로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직접적이고 빠른 복음 제시하며 편집의 반전을 극대화했다. 일반적인 신앙 서적이 신론과 인간론, 그리고 예수님을 소개하는 기독론으로 전개되는 데 비해, 본서는 핵심을 먼저 제시한다. 먼저 믿은 성도들에게는 명검을 꼬옥 쥐어주는 느낌이다. 기독교 복음의 기본 진리를 친절하게 정리해 주며 믿지 않는 사회 각층의 리더들에게도 명확한 대답을 해준다. 의심 많은 회의주의자와 다른 종교 아래서 성장한 분들이 읽으면 막힌 곳을 뚫어주는 사이다 맛이다. 예리한 논리로 설득하고 명쾌한 답변으로 가슴을 시원하게 만든다. 오직 이 책에는 예수님 이야기와 결단해야 할 인간에 대한 촉구만 나온다. 강력한 설득력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거부할 수 없는 전도책, 놓칠 수 없는 놀라운 고전이다. 전도자였던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성직자”라고 평가했던 존 스토트의 대표작이다. 요즘 세대는 가성비보다 가치관을 증명할 수 있는 환경과 윤리적 옳음을 중시한다. 혹시 공동체가 그 목마름을 채워주지 못했다면 이 책 한 권, 교회로 돌아오게 하는 가을 전어다. 임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군산교회 담임)
  • 2024.02.07 / 이미나 기자

    고민 Tick, 상담 Talk
    청년기의 기독교 진로코칭 상담
  • ▶ 고민 Tick 저는 정말 어렵게 신학교에 다니게 되었지만 앞으로 잘 해낼 수 있을지 고민이 많습니다. ▶ 상담 Talk 왕따와 부적응 문제로 청소년 상담을 받고 잘 회복되어 대학을 무사히 졸업한 한 청년의 신청으로 기독교 코칭 상담을 진행했다. 청년은 어린 시절부터 섬기던 교회 상황이 어려워지자 솔선수범해 목사님과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을 도왔다. 목사님과 교인들은 청년에게 신학교에 입학해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함께 도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지속적으로 제안했다. 하지만 청년은 사역자의 길이 부담되고 자신이 없었다. 기도도 해 보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묵묵부답이셨다. 청년의 부모님께서는 자녀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역자의 길을 가주었으면 하는 서원을 하셨다. 그러나 부모님의 서원이 곧 본인의 서원은 아니라고 청년은 강하게 부인했다. 청년은 교회 공동체에 갈등이 있을 때마다 교회 중직자인 부모님이 많이 힘들어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저렇게 힘든 길인데 부모님은 왜 나한테 사역자의 길을 가라고 하시지?”라는 질문 때문에 계속 마음이 힘들었다고 한다. 필자는 청년에게 그 부분에 대하여 부모님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했다. 청년은 사역자 이야기만 나오면 어색해지기 때문에 한 번도 진지하게 부모님과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필자는 청년에게 사역자 비전에 대하여 부모님과 진지하게 대화해 볼 것을 제안한 후 다음 상담 시간에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청년은 유치부 시절 부모님께 “저는 교회에서 매일 살고 싶어요! 전도사님, 목사님이 제일 멋있어서 꼭 나중에 목회자가 될 거예요!”라면서 매주 목청껏 외쳤다는 것이다. 그런데 청년은 부모님께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유치부에서의 기억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가만히 기억을 되짚어보니 본인이 그런 말을 하였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럼 왜 청년은 유치부 시절 기억을 까맣게 잊어버렸을까? 청년은 교회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었기에 유치부 때 행복했던 기억마저도 무의식 깊은 곳에 묻어놓고 주일학교 전체 생활이 불행했던 것으로 왜곡되게 단정 지었던 것이다. 다행히 청년부에서는 좋은 사역자와 담당 장로님을 만나 교회 공동체에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청년은 어린 시절 여름성경학교와 크리스마스 전야제 등에서 행복하게 미소 짓는 본인의 사진들을 찾아 부모님과 추억을 나누고 다시 가정예배를 회복했다. 청년은 유치부까지는 부모님과 가정예배를 드렸으나 본인이 초등부와 중고등부 때 교회 나가는 것이 어려워지자 가정예배 드리기도 거부한 것이다. 부모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후 청년의 마음에는 평안이 찾아왔다. 부모님의 서원도 부담으로만 느껴졌다가 본인을 가장 사랑하는 분들의 기도로 느껴졌다. 애너 마리아 리주토(Ana-Maria Rizzuto)는 『살아있는 신의 탄생』이라는 저서에서 개인이 생의 초기에 맺은 인간관계들을 토대로 하나님 이미지를 채색하고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를 맺을지 결정한다고 했다. 자녀는 부모의 시선과 얼굴을 자신의 마음을 비추어주는 거울로서 경험하면서 자신의 신 표상을 경험하는 매개물로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청년은 상담 과정을 통해 부모님과의 진심 어린 대화를 시작했다. 그 후로는 그를 사역자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말씀과 기도, 찬양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 후 용기를 내어 시험을 준비하고 신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여전히 청년은 초중고 시절 겪은 교우관계의 어려움이 트라우마가 되어 신학교에서도 다시 반복될까하는 두려움이 남아있었다. 기독교 코칭 상담의 방법으로 청년에게 어떤 부분이 가장 두려운지 물어보았을 때 청년은 수업 시간에 앞에 나가서 발표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고백했다. 그 두려움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물어보았을 때 학창 시절 앞에 나가면 몸이 얼어버리는 것 같았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상담 과정 가운데 청년은 대표기도, 설교, 발표를 하기 전 속으로 잠깐 기도한 후 일어서서 직접 청중 앞에서 하는 것처럼 연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청년은 연습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 본인과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경험하며 용사가 된 듯 마음에 용기가 가득 찼다고 했다. 상담 종결 후 신학교에 입학하여 개강을 맞이한 청년은 새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고 좋은 교수님들과 학우들도 많이 만났다는 반갑고 감사한 문자를 보내왔다. 이제 앞으로 조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하면 마귀가 ‘간계’를 행사한다는 것이다. ‘간계’는 ‘간사함’, ‘꾀’, ‘모략’이라는 의미이다. 마귀의 ‘간계’를 대적하고 하늘의 악한 영들과 담대히 싸우기 위해서는 말씀과 기도로 그리스도를 입고(갈 3:27), 하나님의 갑옷(사 59:17)을 입어야 한다. 지금처럼 악한 날에는 모든 가족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만 우리 모두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엡 6:11). 박은정 교수(목회상담학)
  • 2024.04.1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하나님 영광을 위해 너의 꿈을 마음껏 펼쳐봐
  • ▶고민 Tick 저는 부모님의 기도를 받으며 청년이 되기까지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하지만 대학입시에도 실패했고 지금은 취업에서도 실패하고 있습니다. 이제 교회 청년부에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서 교회에 가기 싫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상담 Talk 필자가 청년들과 그들 부모와의 상담 현장에서 주로 듣는 호소 문제는 학교와 사회에서 겪는 실패가 교회 공동체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아 교회를 못 가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신앙 떠돌이 청년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보듬을 수 있는 청년공동체의 필요성은 교회 내에 너무도 절실하다. 이 절실함은 필자를 올해부터 청년부를 섬겨달라는 출석교회 목사님의 제안에 순종하도록 이끌었다. 현재 100명에 가까운 상담심리학과 석사, 박사, 논문 학기 학생들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개척교회를 섬기는 심정인데 교회 청년부 사역자까지 맡게 되었다고 하니 가족, 동료, 제자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학교와 세상에서 몸과 마음, 영혼이 지쳐 있는 청년들과 송구영신 예배 전에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의 만남은 참으로 놀라웠다. 아동 청소년 때부터 함께 교회를 다녔던 청년끼리도 서로 부모가 교회에 다니고 계신지, 형제 자매는 있는지, 서로의 꿈은 무엇인지조차 대화해 본 경험이 희박했던 것이다. 필자가 신앙 집단상담의 리더가 되어 청년들이 각자 자신을 소개하고, 어떻게 교회에 나오게 되었는지, 가족들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본인은 어떤 비전을 바라보며 노력하고 기도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나누고 함께 기도하니 2시간이 10분보다 짧게 느껴졌다고 청년들은 입을 모았다. 그중에는 비신앙인 가족들과는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교회 청년공동체 안에서 처음으로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진심으로 좋았다는 외톨이 신앙인들도 여럿 있었다. 대학 합격 결과를 초조히 기다리던 새내기 외톨이 신앙인 청년은 필자에게 교회에 엄마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교회공동체 내 젊은이들을 위한 진솔한 대화의 장은 교회를 떠나가고 있는 청년들을 사역자와 어른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환대(歡待)해 주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1월 29일부터 2월 3일까지 필자는 단기 선교 담당 장로님과 함께 청소년, 청년들과 몸 찬양단 집사님, 권사님들을 인솔하여 라오스 오지 선교를 다녀왔다. 선교 기간 동안 청년들은 자신들의 빛나는 은사와 소망들을 발견하는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화장실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고산지대를 가기 위해 덜컹거리는 트럭 뒤에 한 시간 반 동안 타고 올라갔을 때, 청소년과 청년들이 트럭 짐칸에서 불평불만을 할 것이라는 어른들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산골 학교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며 웃고 뛰노는 청소년들의 모습은 천사와 같았다. 수개월 간 문화예술공연과 복음 드라마를 준비할 때는 과연 공산주의이며 불교 국가인 라오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얼마나 우리 공연에 공감해 줄 것인가에 대한 불안이 청년들을 힘들게 했었다. 그러나 언어는 다르지만 주님의 사랑을 온몸으로 전달하려는 청년들의 영혼은 뜨거웠고,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오지 선교에서의 경험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청년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도록 도와주는 기회가 되었다. 청년들은 교회 공동체의 동생들과 어른들 사이에서 어떻게 봉사하고 중심을 잡아야 하는지를 자연스럽게 깨닫는 최고의 경험이 되었다고 앞다투어 간증하였다. 필자는 단기 선교팀에게 선교 경험에서 깨달은 바를 매일 저녁 말씀에 적용해보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단기 선교팀이 라오스로 파송된 것은 빌립보 교회가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 사도를 돕기 위해 보낸 에바브로디도의 사역에 비유된다는 말씀을 전하였다. 청소년, 청년, 어른들 각자는 본인이 맡은 사역이 어떻게 선교사님을 도울 수 있었는지 이야기하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과정 중에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강한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음을 고백하였다. 선교 중간 숙소에서 잠깐 쉬는 동안에도 미래를 위한 자격증 시험공부를 쉬지 않는 청년, 다리가 불편한 권사님의 짐을 들어드리고 자리를 양보하는 청년, 무더위에 봉사하는 장로님께 먼저 시원한 물을 건네드리는 청년, 음식 때문에 힘들어하는 청소년 동생이 조금이라도 음식을 먹도록 돕는 청년, 옷과 생필품을 모두 라오스인들에게 나눠 준 청년들…. 이들은 다시 교회공동체의 일상으로 돌아온 후에 더 이상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복음을 전하고자 교육부서에서 열심히 봉사하기 시작했다. 또한 금요 철야 예배와 찬양예배에도 참석하여 선교지에서 느꼈던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경험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귀한 모습을 보였다. 우리가 청년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아도 어여쁜데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어여쁘실까. 세상에서 실패를 경험한 청년들에게 교회도 실패감을 안겨주는 곳이 되면 안 될 것이다. 오히려 교회가 청년들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영적인 성공 경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청년들이 교회에서 각자의 은사를 발견하고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꿈을 마음껏 펼쳐볼 수 있다면 세상에 나가서도 마음껏 날개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박은정 교수(목회상담학)
  • 2024.02.1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ADHD 심리 검사와 치료, 더불어 적절한 부모 코칭 필요
  • ▶고민 Tick 자녀가 ADHD 진단을 받았습니다. 신앙 안에서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 ▶상담 Talk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 천재 화가이며 과학자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의 공통점은 모두 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진단을 받은 이들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20여 년 전 처음 놀이치료사로 ADHD 진단을 받은 내담자를 만날 때는 대부분 아동들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전 연령대의 ADHD 내담자들이 정신과와 상담센터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환경 호르몬, 스마트 기기 과사용 등도 원인이 될 수 있지만 ADHD의 명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ADHD로 진단받은 환자 수가 2018년에는 5만9275명, 2019년에는 7만1362명, 2020년에는 7만9958명, 2021년에는 9만9788명, 2022년에는 13만9696명으로 늘어났다. 특히 지난해는 전년 대비 1년 만에 40.4%가 증가하는 엄청난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학교 상담 선생님들을 사례지도 해보면 한 반에 1~2명의 아이들은 주의력 산만이나 과잉 행동의 경향성을 보인다고 한다. 필자에게 현재 박사논문 지도를 받고 있는 한 초등학교 선생님도 ADHD 아동들의 문제 때문에 담임으로서의 역량 부족을 느끼며 우울감을 호소하는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선생님들이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자녀의 ADHD 경향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부모들의 인식이다. ADHD 진단을 받고도 집에서는 큰 어려움이 없다며 상담 등을 거부하는 부모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ADHD 아동의 특징 중 하나인 집에 있을 때 본인이 관심 있는 특정 영역에서는 집중이 잘 됨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자기 자녀가 ADHD일리가 없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ADHD 아동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공동체 안에 있을 때 문제행동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학교에서 줄을 안서고, 선생님께 끊임없이 말대답을 하며,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계속 건드리는 모습 등을 촬영해서 보여주지 않는 한 인정을 하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들은 교회 학교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필자가 교회 교사 교육에 가면 많은 교사들이 아동들의 산만함, 공격성이 심각하게 걱정된다고 보고한다. 필자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한다. ADHD는 5세 이하 아동에게는 진단되지 않지만, 유치부부터는 일반 아이들보다 찬양, 설교, 분반 시간 집중력이 현저히 짧거나 과잉 행동을 지속적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눈에 띈다면, 그 부모들에게 예배 시간에 조용히 와서 관찰하도록 권유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왜냐하면 ADHD 아동들이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공격적인 언어나 행동을 하는 모습이 지속적으로 발견된다면 이러한 경향성은 권위자에게 지속적으로 반항하는 ‘적대적 반항장애’나 규칙과 윤리 위배, 반려동물을 학대하는 행동으로 발전되는 ‘품행장애’, 성인이 된다면 ‘반사회성 성격장애’로도 발전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문가들이 경고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 사역자들이나 교사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전심으로 기도하면서 문제 행동 아이들의 부모에게 전반적인 심리검사 또는 심리치료를 권유해보라고 하는 것이다. 자녀에게 꼭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몸의 면역을 위해 비타민을 먹고 조기진단과 예방을 위해 종합검진을 받는 것처럼 심리 내적 상태와 사회성 정도를 측정해보고 자녀 개인 별로 적절한 부모 양육 태도에 대한 부모 코칭이 꼭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과 자녀들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 그러나 우리는 에덴동산으로부터 이탈된 후로는 환경과 인간 모두로부터 부정적인 영향을 계속 받아왔기 때문에 신체적, 심리적인 문제들이 계속 발생 되고 있다. ADHD 아이들은 뇌에서 생각하거나 올바른 판단 조절에 관계되는 전두엽 발달이 보통 아이들보다 2~3년 늦게 발달한다. 따라서 부모들은 자녀가 ADHD로 진단 받았다면 동년배들보다 집중력과 행동 조절이 2~3년 어릴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 눈을 마주치고 일관성 있는 약속과 가족 규칙들이 지켜지도록 최선을 다하며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교탁 앞에 아이가 앉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기를 부탁드려야 한다. 이러한 지도는 교회 학교에서도 이어져야 한다. 크리스천 방송인 박소현 씨는 한 기독교 방송에서 평생 해 온 발레를 대학생 때 부상으로 못하게 되자 큰 절망에 빠졌다고 하였다. 그러나 다행히 신앙 안에서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기회였던 리포터를 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그녀는 주의력이 산만해 성인 ADHD 진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방송 프로그램을 23년째 진행 중이다. 그녀는 이를 전적인 하나님 은혜라고 고백한다. 현재 ADHD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크리스천 가정들도 분명히 최고의 치유자이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반계시 치료기법들과 특별계시인 말씀과 기도로 우리와 자녀들을 온전히 고쳐주실 것임을 믿고 함께 행동하며 기도해야 할 것이다. 박은정 교수(목회상담학)
  • 2024.01.1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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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출현은 새로운 문명 시대를 열어왔습니다. 학자들은 ‘말’의 발명으로 수렵, 채집 생활이 시작된 1단계, ‘글’의 발명으로 농경사회가 형성된 2단계, ‘인쇄’의 발명으로 산업사회가 본격화된 3단계, 컴퓨터와 결합한 ‘텔레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등장으로 정보사회가 펼쳐진 4단계로 역사 발전과정을 설명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챗GPT’ 등 인공지능, 블록체인, 가상현실과 같은 디지털 범용 기술들이 새로운 4차 산업시대에 선도적 역할을 담당해 나가리라 예측됩니다. 되돌아보면 인터넷, 휴대폰 등 뉴 미디어의 확산은 커뮤니케이션 활동에 획기적 변혁을 초래했습니다. 우선 인터넷은 탁월한 개방성으로 공간의 제한을 무력화시키고 명실상부한 ‘지구촌 공동체’를 실현해 냈습니다. 또한 개인 미디어와 매스 미디어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함으로써 ‘공공영역’과 ‘사적영역’의 구분을 일시에 무너뜨렸습니다. 이 결과 많은 사람들은 IT기술과 접목된 뉴미디어의 등장이 ‘표현의 자유’에 있어 무한한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바람은 상당 부분 실현됐습니다. 하지만 이면에서는 간과할 수 없는 부작용 또한 생겨났습니다. ‘가짜뉴스’는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실제로 현대사회에서 미디어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막강합니다. ‘교과서’며 ‘재판관’이고 ‘세상을 향한 창’입니다. 실제로 영유아들은 부모나 교사보다 TV나 유튜브를 통해 먼저 세상을 배워 나갑니다. 선과 악, 정의와 불의가 언론의 잣대에 의해 규정됩니다. 또한 개인들은 미디어가 설정해 놓은 프리즘을 통해 외부 환경을 파악하고 사회 현안을 해석합니다. 한 마디로 ‘가짜뉴스’란 ‘뉴스의 형태를 띠지만 실체는 사실이 아닌 거짓된 뉴스’(fake news)를 의미합니다. 이는 언론 매체에 대한 사회 일반의 기본적 신뢰를 숙주로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진실을 조작해 이익을 챙기려는 불순한 시도입니다. 이런 행태는 근래 SNS상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터넷의 기술적 특성으로 인해 뉴스를 취사선택하는 ‘게이트 키핑’(gate keeping)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편집 통제권’(editorial control) 없이 ‘이용자 통제권’(user control)만 존재함을 악용해 가짜뉴스 제작 배포, 마녀사냥식 신상 털기, 테러 수준의 명예훼손 등이 거침없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가짜뉴스를 정치적 선동의 수단으로 삼기도 하고, 가공된 뉴스를 활용해 주식시장을 흔들려 한 사례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유튜브 등 개인 미디어의 경우는 ‘조회’와 ‘구독자’ 수가 수익과 직결되는 구조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반인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선정적 내용으로 꾸며진 괴담 수준의 가짜뉴스가 경쟁적으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강하고 자극적인 발언을 할수록 보상이 올라 간다”는 것은 이미 통설이 됐고, “유명해진다면 무엇이라도 하겠다”는 노이즈 마케팅이 일반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정착되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가짜뉴스가 지닌 신속한 전파력입니다. 미국 MIT 공대 연구진에 따르면 자극적인 가짜뉴스는 일반적 뉴스에 비해 전파 속도가 평균 6배 빠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의표를 찌르는 폭로성 뉴스, 험담과 막말이 섞인 특정인에 대한 인신공격에 더욱 솔깃해하는 인간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언론 자유를 신장시킬 것이라고 기대했던 디지털 공간에서 이처럼 민주 질서를 위협하는 행태들이 거리낌 없이 자행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개탄스럽습니다. 지금이라도 윤리와 규범을 바로 세우고 사용자들의 책임 의식을 거듭 깨우쳐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밀려오는 정보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변별력’을 길러나가는 일입니다.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교육을 통해 초등학교 때부터 각종 매체가 전달하는 내용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는 힘을 키워나가는 것도 효과적 방안이 될 것입니다. 특히 크리스천들에게는 이 같은 여과 능력의 함양이 더욱 절실히 필요합니다. 성경은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벧전 5:8~9). 온라인을 이용해 범람하는 온갖 반기독교적 정보에 올바르게 대처하기 위해 예리한 통찰력과 분별력을 갖춰 나가야 할 것입니다. 필자는 오늘 이 지면을 빌려 혼탁한 미디어 환경 속에서도 의연히 기독 언론의 정도를 걷고 계신 <순복음가족신문>에 새삼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이 신문은 저희가 온 마음 바쳐 사랑하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정체성을 지키는 보루이며, 곳곳에 고귀한 땀과 눈물이 배어있는 생생한 ‘교회행전’입니다. 지난 2년 이 귀중한 신문에 부족한 제가 신앙 시사칼럼을 게재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외람되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 올리며, 한결같이 따뜻한 격려를 보내주신 신문사 여러분과 졸문을 읽어 주시고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영광과 찬송을 주님께! 할렐루야! 김성동 장로(전 국회의원)
  • 2023.02.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한글, 빛나는 우리의 보물
  • 한국어 학습자가 폭발적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10일 코리아헤럴드가 교육부 자료를 입수해 보도한 바에 의하면 지난해 말 현재 한국어를 외국어 선택 과목으로 채택한 곳은 세계 42개국 1806개 초 중학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3년 만에 40%가 급증한 수치입니다. 온라인상에서의 한국어 열기 또한 뜨겁습니다. 5억 명 회원을 둔 글로벌 외국어 학습 서비스 ‘듀오링고’는 최근 ‘2022년 듀오링고 언어 리포트’를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한국어 학습자는 1070만 명으로 전년 대비 29%가 증가, 수강자 수가 많은 언어 순위 5위에 올랐습니다. 이처럼 한국어에 대한 관심과 향학열이 높아진 데는 물론 ‘한류 열풍’이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한글’ 자체가 지닌 문자로서의 탁월성과 매력입니다. 실제로 한글은 여러 ‘소리글자’ 가운데서도 가장 발달한 ‘음소문자’입니다. 열 자의 모음, 열 네 자의 자음, 27종의 받침을 활용해 수천 개의 말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같은 음소문자로서 세계 공용어화 되어 있는 영어와 견주어도 효율성이 월등합니다. 영어는 인쇄체와 필기체가 다르며, 대문자와 소문자가 구분되고, 꼭 글자대로 읽혀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발음기관과 발음 작용을 본떠 만들어진 한글의 과학성은 정보화 시대의 진전에 따라 더욱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휴대전화의 자판을 보면 하늘을 뜻하는 ‘·’, 땅을 뜻하는 ‘ㅡ’, 사람을 뜻하는 ‘ㅣ’ 석자로 수십 가지의 모음을 다 적을 수 있습니다. 자음은 동일한 자판을 한 번씩 누를 때마다 예삿소리(ㄱ)→거센소리(ㅋ)→된소리(ㄲ) 순으로 변환돼 간단한 조작으로 모든 글자를 쉽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뛰어난 한글의 편이성이 우리의 높은 휴대전화 보급률과 선도적 기술축적을 가능케 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아울러 한글은 ‘배우기 쉽다’는 특장을 지니고 있습니다. 문자를 만든 원리와 사용법을 정연하게 설명한 『훈민정음해례본』의 서두에서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의 동기를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즉 “나라의 말이 공용되는 한자와 통하지 않아 백성들이 제 뜻을 능히 표현하지 못하는 실정임을 긍휼히 여겨 쉽게 익혀 편하게 쓸 수 있는 스물여덟 자를 새로 만든다”는 내용입니다. 이 점을 당시 예조판서 정인지는 보다 실감 있게 설명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다….” 한글은 이런 세종대왕의 애민정신과 자주적 실용주의가 투영돼 구성원리가 간명하고 배우기 쉽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가 주목하는 ‘문맹 퇴치 신화’를 이룩한 배경도 여기에 있습니다. 특히 ‘습득의 용이성’이라는 한글의 장점은 복음 전파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한글로 번역된 『성경』은 전도의 사명으로 무장한 기독교인들에 의해 지역, 신분, 성별의 구별 없이 두루 보급되고 읽혀졌습니다. 그들은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한글을 가르쳐가며 전도했고, 신앙을 가지려는 사람들은 성경을 읽기 위해 한글을 배웠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학자들은 “한글이 진정한 우리 언어로 빠르게 자리 잡는 데 성경이 큰 역할을 했다”고 강조합니다. 국민일보 우성규 기자의 언급대로 “한글 성경과 찬송가의 보급으로 한반도는 문맹에서 벗어났고, 이를 통해 전해진 복음의 메시지는 한국교회 예배와 신앙생활의 중심이 됐던 것”입니다. 이처럼 소중한 한글임에도 근래 우리 사회의 한글 홀대는 선을 한참 넘어섰습니다. 온갖 은어, 비어, 속어, 정체불명의 약어와 합성어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은 물론 공공 방송에서조차 한글 규범 파괴가 거리낌 없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분단 78년의 세월이 초래한 남북한 간의 언어 이질화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민족의 명절인 ‘설’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남북이 함께 기념하는 절기가 점차 사라지는 추세에서 ‘설날’은 지금까지 우리 겨레가 공유하는 몇 안 되는 명일(名日)입니다. 궁극적인 ‘남북통일’은 단순한 ‘제도적 통일’을 넘어 ‘사람 간의 통합’에까지 이르러야 완성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세시풍속의 존속과 공유는 통일 여정에서 의미 있는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언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말과 글은 다름 아닌 생각과 정신의 반영입니다. 따라서 동일한 말과 글을 사용한다는 사실은 민족공동체로서 기본적 공감대의 토대가 이미 마련돼 있음을 뜻합니다. 그렇기에 이 기반이 더이상 허물어지지 않도록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남북한 언어 이질화의 방지 대책이 시급히 강구돼야만 할 것입니다. 두말할 나위 없이 한글은 빛나는 우리의 문화 자산입니다. 겨레의 보물인 우리말, 우리글을 바로 지키고 가꾸어 나가기 위해 온 국민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크리스천들은 성경을 사랑하는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과의 귀중한 소통 매체인 한글에 대해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합니다. 한 나라의 언어가 역사와 문화의 창고를 여는 관건이듯이 성도들에게 한글은 은혜의 보고인 성경을 여는 소중한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김성동 장로(전 국회의원)
  • 2023.01.13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카타르의 낭보
  • 2002년 한·일 월드컵은 한국 사회를 그 이전과 이후로 구분 짓는 의미 있는 분수령이 됐습니다. 사실 한국 축구대표팀은 1954년 제5회 스위스대회에 첫 출전한 이래 다섯 번이나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음에도 단 1승을 거두지 못하고 있던 형편이었습니다. 하지만 6월 4일 첫 경기에서 폴란드를 2대 0으로 꺾은 후 강호 포르투갈, 이탈리아, 우승 후보 스페인까지 연달아 격파하며 4강에 오르는 대이변을 연출했습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이 기간 모두에게 축구는 ‘그냥 축구’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팀의 경기를 매개로 빨간색 티셔츠를 입은 수백만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광장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함께 춤추고 함께 함성을 질렀습니다. 세계적 명물로 자리 잡은 자생적 ‘길거리 응원’의 시작이었습니다. 한국 축구의 4강 신화에 세계가 놀랐지만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우리 스스로였습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자신감, 동시대를 살아가는 국민적 유대감을 새롭게 발견하는 기회가 됐습니다. 이 열기는 IMF 경제위기 극복, 폭발적인 참여민주주의 확대, 창발적인 한류 문화 확산으로 이어지며 우리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2022년, 제22회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은 또 한 번의 기적을 일구어냈습니다. 통계전문가들의 ‘16강 진출 가능성 9%’의 예측을 여지없이 깨뜨린 이 반전 드라마는 투철한 ‘원팀 정신’으로부터 비롯됐습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을 위시한 코치진과 27명의 선수들이 똘똘 뭉쳤습니다. 그 결과 경기장을 종횡무진 누비는 한국형 ‘빌드업 축구’가 가능했고, 어떤 팀과 맞붙어도 밀리지 않는 강인한 뚝심이 발휘될 수 있었습니다. 구성원들 간의 신뢰 역시 돋보였습니다. 특히 주장 손흥민 선수의 리더십은 발군이었습니다. 그는 월드컵을 3주 앞두고 소속팀 경기에서 당한 안와골절로 안면 보호대를 착용한 채 전 경기를 소화했습니다. “불편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3년간 마스크를 쓰고 계신 국민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고 의연히 대답했습니다. 개막 전 “단 1%의 가능성이 있어도 앞만 보고 달려가겠다”며 부상 투혼을 예고했던 그는 약속대로 “몸이 부서지도록” 뛰었습니다. 실제로 H조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벼랑 끝에 몰렸던 한국팀은 후반 추가시간 손흥민-황희찬으로 연결된 극적인 역전 골로 포르투갈에 2대 1 승리를 거두며 16강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16강전 진출이 확정된 직후 권경원, 조규성 선수는 관중에게서 건네받은 태극기를 펼쳐 들었습니다. 그 안에는 눈길을 사로잡는 뚜렷한 한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본래 프로게이머 김혁규 선수가 7수 끝에 세계 대회를 제패하며 했던 이 말은 다시 새롭게 부각되며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우선 대회 내내 보여준 대표팀의 모습이 압축된 표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흔들리는 이 세대에게 던지는 속 깊은 응원의 뜻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정 우리 팀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선제골을 허용하고도 위축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불퇴전의 투혼으로 국민들의 가슴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기간 특별히 우리 팀의 경기가 열렸던 13일간 축구 덕택에 대한민국은 모처럼 하나가 됐습니다.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도전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모두에게 커다란 감동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대표팀의 선전은 코로나 블루, 경제 한파, 잦은 사회적 갈등으로 침체돼 있던 한국 사회에 심기일전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어느덧 한 해의 끝자락에 섰습니다. 또 한 번의 ‘송구영신’의 시간을 맞으며 영혼과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을 때입니다. 성경은 신앙생활을 경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 9:24). 우리 선수들이 월드컵 스타디움을 뛰고 달렸듯 성도들도 인생의 경기장을 달음박질하고 있습니다.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경주자처럼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저마다의 목표를 향해 인생행로를 달려가고 있습니다. 한없이 감사한 것은 이 신앙 노정에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해 주신다는 점입니다. 더욱이 주님께서는 저희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한 스타플레이어로 여겨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습 3:17)는 말씀대로 열렬한 서포터가 돼 뜨겁게 응원해 주십니다. 독자 여러분! 다사다난했던 지난 한 해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신발 끈을 고쳐 매고 힘을 내십시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스타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영원한 팬이 되어주십니다. 다가오는 2023년 새해, 예수님 안에서 항상 승리하시길 기도드립니다. 김성동 장로(전 국회의원)
  • 2022.12.1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새책소개
    2024년 『감사QT365』 하루 한 장으로 하나님과 동행
  • 매일 통독, 말씀 묵상, 말씀 필사, 감사 쓰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절대긍정, 절대감사하는 새해를 계획했다면 『감사QT365』 2024년 판을 추천한다. 이번에 발간된 『감사QT365』는 감사와 QT, 필사가 어우러져 일 년 동안 매일의 삶을 말씀으로 채우고 영적 성장에 힘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특히 이 책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돕기 위해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집필됐다. 본문을 예화 중심이 아닌 말씀 중심으로 편성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은혜로운 예화를 선별해 요약했다. 더불어 성경 말씀을 필사할 수 있는 지면과 말씀 묵상의 적용을 돕기 위한 질문을 추가했다. 또한 매달 시작점에 월별 계획표(monthly plan)를 수록해 매일 성경통독 진도를 표시할 수 있도록 했다. 이영훈 목사의 감사 목회 철학이 체험적으로 녹아 있는 365편의 묵상의 글과 은혜로운 예화들을 매일 읽고 ‘나의 감사’란에 주님께 감사할 제목들을 적어 나가다 보면 저절로 감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이영훈 목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묵상한 말씀대로 살아가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2023.12.15 / 복순희 기자

    『성경과 기독교 진실성 파헤치기』(제1권: 구약시대) (제2권:신약시대)
  •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이며 그의 죽음과 부활로 탄생한 기독교가 우주 만사의 정답이 된다. 혼란한 시대를 사는 인생들에게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다.” 이기창 공로장로(반석대교구)가 『성경과 기독교 진실성 파헤치기』(제1권: 구약시대) (제2권:신약시대)를 펴냈다. 저자는 이 두 권의 책을 통해 기독교의 교리와 성경기록은 합리적이며 과학과도 합치하며 오히려 과학을 초월하고 있음을 깊이 있게 분석해 성경과 기독교의 진리성을 논증했다. 이 책은 신, 구약 성경 전체의 핵심 내용을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관통하면서 심도 깊게 해설하고, 기독교 교리와 신앙, 신학적 논리와 이론 및 사상, 우주의 창조로부터 역사, 종말 및 미래 발생할 일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세계관을 다루고 있다. 과학자인 저자는 과학과 철학의 논리로 신의 존재로부터 우주 만물 전체를 물질우주와 정신우주로 균형있게 조망하면서 과학-철학-신학을 통섭해 교집합의 우주론을 밝혀낸다. 이런 방식으로 저자는 인류의 궁극적이고 영원한 질문인 우주, 물질, 영혼, 생명, 죽음, 사후생, 세상종말 등 빅퀘스천 규명을 추구해 나간다. 응용과학인 전자통신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공과대학 정교수를 역임한 이기창 공로장로는 교수 은퇴 후 10년간 물리학, 철학, 신학, 역사 등 인문학 연구에 몰두해 이 책을 만들었다. 그는 현대물리학에서 발견한 빅뱅 우주론과 부합하는 종교를 엄밀히 분석, 조사해 성경에 기반한 기독교만이 현대과학과 부합하는 유일한 종교로서 진실성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책을 읽다보면 기독교가 공학, 물리학 등의 과학과 철학에 합치하는 유일한 종교이며 따라서 성경과 기독교는 ‘우주적 진리’라는 결론을 깨닫게 된다. 어디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몰라 방황하는 현대인에게 추천하는 필수 교양 인문서적이다.
  • 2023.04.07 / 이미나 기자

    성공에 이르는 12가지 지혜
  • - 이영훈 목사 지음 / 교회성장연구소 - 크리스천의 삶을 성공으로 이끄는 12가지 비결 이영훈 목사 “믿음으로 꿈꾸는 자는 반드시 해낼 수 있다” 이영훈 담임목사는 성공에 대해 “정성을 다해 원하는 목표를 이루어 낸 것이 바로 성공”이라고 말하고 있다. 더불어 “성공은 이루고자 하는 꿈과 목표를 가진 자, 그 꿈과 목표를 향해 올바른 방법을 가지고 성실하게 노력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인생의 열매”라고 전한다. 이영훈 목사는 2023년을 맞이하면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주 안에서 품은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하는 지 깨달은 바를 나누고 싶은 바람을 품었다. 그 바람은 신년 축복 열두 광주리 새벽기도회를 통해 ‘성공에 이르는 12가지 지혜’ 주제의 설교로 이어졌고 이 책은 이를 토대로 집필됐다. 혼란의 시대, 격변하는 세태 속에 모든 사람들은 예측할 수 없는 불안으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때에 가정과 일터, 교회 등 삶의 영역에서 믿음을 지키고 성공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크리스천들에게 이 책은 온전한 믿음과 인생의 성공 비결을 알려주는 안내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주 안에서 품은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성공의 지혜를 12개의 주제로 다룬다. “꿈꾸는 자가 되라, 위로부터 임하는 능력을 소유하라, 절대긍정의 믿음을 소유하라, 장애물을 뛰어넘어라,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건히 서라, 분명한 자화상을 가져라, 기도의 사람이 되라, 시간의 관리자가 되라, 자기를 계발하라, 삶의 자세를 바꿔라, 사명에 붙들려 살라, 존경받는 리더가 되라.” 이영훈 목사는 무엇보다 말씀 위에 굳건히 서서 믿음으로 꿈꾸는 자는 반드시 해낼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책에는 12가지 성공의 지혜와 방법을 체크 리스트와 함께 제시해 인생에서 회복해야 할 것을 찾아 바로잡도록 하며,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더 나은 미래로 도약할 수 있는 성공 다이어리도 적어보도록 구성됐다. 세상을 살아갈 용기와 삶의 터닝 포인트가 필요하다면 이 책을 따라 삶을 관조하고 재정비해보면 어떨까? 단호하지만 진정 어린 저자의 조언은 삶의 무게에 지친 그리스도인들에게 생각 전환의 기회를 만들어줄 것이다.
  • 2023.03.17 / 복순희 기자

    문화계 소식
    [영화 소개] 천성가는 밝은 길이
  • 사형수들의 아버지로 불렸던 박효진 장로의 간증을 토대로 제작한 ‘천성가는 밝은 길이’ 영화가 지난 4월 유튜브에 올라 큰 감동을 주고 있다. 박 장로는 전직 교도관 출신으로 사형수들에게 복음을 전한 전도자다. 그의 간증은 사형장에서 마지막을 맞이하는 사형수들의 처절한 영적 사투를 통해 복음의 진리와 영적전쟁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 이번 영화가 성도들의 신앙생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수많은 기독교 영화를 제작한 홍의봉 감독이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 박효진 장로 역은 이경영 배우가 맡아 열연했고, 신인 김양균과 유라성도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였다. 임동진(목사), 한인수 장로, 정욱, 정선일 등의 중견 배우들도 특별 출연했다. 영화는 유튜브에서 제목 검색을 통해 볼 수 있다.
  • 2023.06.09 / 김주영 기자

    기독교 복음 영화 <기적을 믿는 소녀> 7월 5일 국내 개봉  
  • 전미 박스오피스 4주간 연속 TOP 10 하나님의 사랑과 진정한 믿음으로 감동 전해 하나님의 치유 능력과 사랑을 경험케 하며 대한민국에 진정한 믿음에 대한 경종을 울릴 기독교 영화 <기적을 믿는 소녀>가 오는 7월 5일 국내에 개봉한다. 전미 4주 연속 박스오피스 10위권 안에 들며 놀라운 흥행을 기록해 그 해 최고의 종교 영화로 떠올랐다. <기적을 믿는 소녀>는 기도로 믿음을 증명하는 어린 소녀를 통해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한 성도들이 믿음의 불꽃을 키워가는 엔터테이닝 복음 영화다. 가족과 함께 호수에 놀러 간 평범한 어린 소녀가 하나님의 놀라운 임재를 경험케 하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죽은 새와 강아지의 부활, 그리고 하반신 마비를 가진 친구가 다시 걷게 되는 등 하나님의 치유 능력을 목격한 믿음의 소녀를 통해 점차 변화해 가는 주변 인물들의 모습은 강렬한 울림과 함께 감동을 전한다. 겨자씨만큼 작은 믿음이 사람들의 삶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메시지뿐만 아니라 보는 내내 미소를 짓게 하는 스토리와 힐링을 선사하는 완벽한 케미스트리 등을 통해 종교인을 넘어서 일반관객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관람 후에는 “하나님을 믿고 간절히 기도하세요, 하나님은 듣고 계세요”라는 대사와 깊은 감동이 가슴에 남게 된다. 특히 <위대한 쇼맨> 오스틴 존슨부터 제68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미라 소르비노, 피터 코요테, 케빈 소르보까지 믿고 보는 최고의 배우들이 총출동해 막강 캐스팅으로 극의 완성도를 높여 이목을 집중시킨다. 한편, GOODTV 기독교복음방송(대표이사 김명전)에서는 개봉 전부터 <기적을 믿는 소녀> 교회 상영을 진행해 한국교회와 성도들로부터 눈물을 흘리며 회심하는 많은 기적의 역사를 체험했다고 밝혔다.
  • 2023.05.25 / 이미나 기자

    스마트폰 생활백서-저절로 성경일독
  • “스마트폰 켤 때마다 성경구절이 보여요!” 잠금화면 활용한 성경 묵상 앱 말씀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크리스천에게 매순간 단비와 같은 성경 말씀을 전달해 주는 앱이 있다. 바로 ‘저절로 성경일독’이다. 저절로 성경일독 앱은 스마트폰 화면을 켤 때마다 성경구절이 나타난다. 화면 중앙에는 성경 구절이, 하단에는 다음 구절로 넘어가는 화살표 기호와 북마크, 공유하기, 잠금해제 버튼이 있다. 화면에 나오는 성경 구절은 화면이 꺼졌다 다시 켜지면 다음 절로 넘어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부담 없이 성경을 일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앱에서는 말씀 공유 기능이 가장 눈에 띈다. 묵상하고 있는 말씀에 은혜를 받았다면 그 자리에서 말씀 카드를 만들어 SNS로 즉시 공유할 수 있다. 이는 모바일 전도 도구로도 활용이 가능해 전도 대상자에게 유용하다. 성경은 개역개정, 개역한글, 현대어성경, 새번역과 영어 성경인 KJV, NIV, NLT 버전을 제공하고 있는데 한글과 영어 두가지 성경을 동시에 볼 수 있는 특징도 있다. 참고로 개역개정, 개역한글, KJV 성경은 오디오도 함께 제공된다. 저절로 성경일독 앱은 안드로이드기반(삼성 및 LG) 스마트폰에서 제공하는 구글 Play스토어에서만 서비스가 제공된다. 앱을 실행하면 광고가 나타나지만 조금의 불편을 감수하면 말씀을 묵상하고 공유하는데 지장이 없다. 또한 결제해야 이용할 수 있는 ‘읽기모드’는 우리 교회 앱 성경과 동일한 기능이므로 오랜 시간 성경을 읽을 때는 교회 앱을 활용할 것을 추천한다.
  • 2022.07.29 / 금지환 기자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31. 후안무치(厚顔無恥) 시므이의 죽음②
  •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류와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록된 역사책이다. 성경 한 구절은 한 개의 구절 이상의 의미와 역사·정치·문화·사회적 배경을 함축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과 구절들을 넓은 시야로 혹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세하게 접근함으로써 성경 전체를 조금 더 잘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순복음가족신문은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기록한 성경구절의 행간을 풀어 성도들이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솔로몬에 의해 죄의 대가를 받게 된 시므이 "왕이 사람을 보내어 시므이를 불러서 이르되 너는 예루살렘에서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거기서 살고 어디든지 나가지 말라 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나가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니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가리라"(왕상 2:36~37) 3. 솔로몬의 숙청 작업과 시므이의 죽음 솔로몬은 왕이 된 후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한다. 숙청의 이유, 방법, 숙청당한 인물들만 보면 공포정치를 휘둘렀던 절대군주 못지않다. 숙청의 대상은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였던 대제사장 아비아달, 다윗을 섬기며 충성을 다했던 군대사령관 요압, 그리고 자신의 형이자 왕자였던 아도니야까지 잠재적으로 자신의 왕권을 위협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다윗을 조롱했던 시므이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1) 아도니야 아도니야는 다윗의 네 번째 아들이었다. 다윗의 첫째 아들은 암논이었고, 둘째는 갈멜 여인 아비가일이 낳은 다니엘, 셋째는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가 낳은 압살롬, 넷째는 학깃이 낳은 아도니야였다. 솔로몬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로서 열 번째쯤 된다(대상 3:1~5). 그런데 첫째 아들 암논은 압살롬의 누이였던 다말을 강간한 사건 때문에 압살롬에게 죽임 당했고, 압살롬은 반란 후 죽임을 당했다. 다윗의 첫째와 셋째 아들이 죽은 것이다. 둘째 아들 다니엘은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윗의 둘째 아들이었다는 기록 외에는 성경에서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 일찍 죽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넷째 아들 아도니야가 다윗의 허락도 없이 스스로 왕이 되었음을 선포한다(왕상 1:5~11). 이때 다윗의 군대 사령관이었던 요압과 대제사장이었던 아비아달이 아도니야의 편에 섰다(왕하 1:7). 하지만 아도니야의 시도는 일일천하에 그쳤다. 솔로몬은 왕이 된 후, 제단 뿔을 잡고 목숨을 구걸하는 아도니야(왕상 1:51)를 살려주며 한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그것은 경거망동(輕擧妄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왕상 1:52). 하지만 아도니야는 다윗의 침실에서 수종을 들었던 수넴 여인 아비삭을 자신의 아내로 삼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솔로몬은 이것을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아도니야를 처형해 버렸다(왕상 2:13~25). 2) 아비아달 아비아달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10번째 대제사장이었다.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해 기약이 없는 망명길에 올라야만 했다. 이스라엘 땅에 많은 도시와 지역이 있었지만 다윗이 선택한 첫 장소는 대제사장이 있던 놉이었다(삼상 21:1). 심신이 지쳐있던 다윗은 아히멜렉의 도움으로 음식을 먹고 그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였던 골리앗의 칼을 얻었다(삼상 21:4~10). 사울은 아히멜렉이 다윗을 도와줬다는 것을 문제 삼아 도엑을 시켜 아히멜렉과 놉의 제사장 85명을 한 날에 살육했다(삼상 22:18). 이때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였던 아비아달만이 목숨을 건져 도망쳐 나올 수 있었다. 아비아달은 지체 없이 한걸음에 그일라에 있던 다윗에게로 향했다. 아비아달이 제사장의 영적인 권위를 상징하는 에봇을 가지고 도망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삼상 23:6). 아울러 우림과 둠밈을 대제사장의 에봇 흉패 안에 보관하라고 되어 있기에 우림과 둠밈까지 가지고 온 것으로 볼 수 있다(출 28:30). 다윗은 이렇게 사선을 넘어 온 아비아달을 대제사장으로 삼았다. 그러나 솔로몬은 왕위에 오른 직후 아비아달이 아도니야의 편에 섰던 것 때문에 아비아달을 제사장 직분에서 파면시키고 그의 고향으로 내쫓아 버렸다(왕상 2:27). 3) 요압 요압이라는 이름의 뜻은 ‘야훼는 아버지이다’와 ‘야훼는 하나님이시다’는 뜻이다. 요압은 다윗과 함께 오랜 세월 전쟁터를 누볐던 군대 장관이다. 사울이 죽은 후 그의 아들 이스보셋이 왕이 되었고, 헤브론에서 이미 왕이 되어 있던 다윗은 피할 수 없는 전쟁을 하게 되었다. 기브온 전투는 다윗이 사울의 남아있던 세력과 벌인 최초의 전투이다. 이때 이스보셋의 장군인 아브넬과 다윗의 군대를 이끌던 요압이 맞붙게 되었다. 기브온 전투는 요압의 승리로 끝났지만, 요압의 동생 아사헬은 아브넬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다. 요압은 이것에 대한 앙심을 품고 있었다. 한편 아브넬은 사울의 자손들과 다윗이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종식하고 통일왕국을 탄생시키려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헤브론에 있던 다윗을 찾아와 평화의 조약을 맺고 통일왕국의 꿈을 향한 큰 걸음을 뗐다(삼하 3:8~21). 뒤늦게 이것을 알게 된 요압은 아브넬을 쫓아가 다시 헤브론으로 유인해 왔다. 그리고 그에게 조용히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속여 무방비 상태에 있던 아브넬을 살해했다(삼하 3:27). 성경 여러 곳에서 정치적 야망을 숨기지 못했던 요압이 평화적인 통일이 이루어진 후 모든 공이 아브넬에게 돌아갈 것을 걱정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통일이 이루어진 후 자신의 입지가 약해질 것에 대한 염려와 전쟁 중에 죽은 동생의 원한을 한 번에 갚고자 벌인 일이었다. 다윗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모든 백성에게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띠고 큰 용사였던 아브넬이 죽은 것을 애도하도록 했다(삼하 3:31). 다윗은 아브넬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요압에게 묻지 않았고 어떤 벌도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솔로몬은 달랐다. 표면적인 이유는 요압이 죄 없는 아브넬과 유다 군사령관이었던 예델의 아들 아마사를 죽인 것 때문이었지만(왕상 2:31), 실상은 요압이 아도니야의 편에 섰던 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4) 시므이 솔로몬의 서슬이 퍼런 칼날은 그의 왕권을 위협할 현재와 미래의 잠재적 세력을 제거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선대왕이었던 다윗이 살려 준 시므이를 향한 솔로몬의 마지막 경고이다. 솔로몬은 시므이의 목숨을 살려 주는 대신 절대 예루살렘을 벗어나지 말라고 경고했다(왕상 2:36~37). 왜 솔로몬은 베냐민 자손이고 바후림에서 터를 잡고 있던 시므이를 굳이 예루살렘 성에 붙잡아 두고 절대 떠나지 말라고 했을까? 사울의 친족이었던 시므이가 예루살렘을 벗어나 어떤 정치적인 행위나 세력을 확장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과 다윗을 조롱했던 시므이에 대한 마지막 경고였을 것이다. 그러나 시므이는 이것을 너무나 쉽게 생각했다. 자신의 노예 두 명이 도망을 가자 솔로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을 벗어났다(왕상 2:39~40). 솔로몬은 브나야에게 명령을 내려 시므이를 단숨에 처형했다(왕상 2:45).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초라한 모습으로 피난길에 올랐을 때 그를 따라가며 조롱하고 멸시하고 저주를 퍼붓던 시므이였다. 하지만 압살롬에 의한 왕자의 난이 실패로 끝나고 다윗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선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바싹 엎드려 비굴한 모습을 보였던 사람이었다. 다윗의 아량과 은혜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시므이는 솔로몬에 의해 그의 죄에 대한 대가를 받게 되었다. 이상윤 목사(홍콩순복음교회 담임)
  • 2021.08.01 / 이상윤 목사 기자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30.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시므이의 죽음①
  •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류와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록된 역사책이다. 성경 한 구절은 한 개의 구절 이상의 의미와 역사·정치·문화·사회적 배경을 함축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과 구절들을 넓은 시야로 혹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세하게 접근함으로써 성경 전체를 조금 더 잘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순복음가족신문은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기록한 성경구절의 행간을 풀어 성도들이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시므이의 저주를 하나님의 책망으로 겸허히 받아들인 다윗 "왕의 가족을 건너가게 하며 왕이 좋게 여기는 대로 쓰게 하려 하여 나룻배로 건너가니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할 때에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왕 앞에 엎드려 왕께 아뢰되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삼하 19:18~19) 사무엘하 15장과 19장은 후안무치한 시므이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사무엘하 15장 30절은 다윗의 인생 중 가장 비참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왕이었지만 그의 몰골 어디에도 왕의 위엄과 기품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때 다윗은 머리는 산발하고 신발도 신지 못한 채 초라한 모습으로 감람산 고개를 넘고 있었다. 다윗은 천 년의 시간이 지나 사람들이 예수님을 맞으며 호산나를 외치던 길을 역방향으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눈물로 걸어가고 있었다. 이방 나라의 왕이나 군사들에게 쫓긴 것도 아니다. 자신의 아들에게 잡혀 죽지 않기 위해 도망가는 신세였다. 압살롬은 아버지인 다윗이 예루살렘에 남겨놓은 10명의 후궁들과 공개적으로 성적인 관계를 맺었다. 다윗은 왕의 권위뿐만 아니라 친부로서의 자존감도 철저히 묵살되었다. 더 낮아질 수도 초라해질 수도 없는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다. 사실 압살롬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다윗의 셋째 아들이었던 압살롬은 가만히 있기만 해도 다윗을 이어 왕이 될 수 있었다. 다윗의 장남이었던 암논은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강간한 사건 때문에 이미 죽임을 당해 세상에 없었다. 다윗의 차남은 다니엘이다. 다니엘은 나발의 아내였으나(삼하 2:2) 나발이 죽은 후 다윗의 아내가 된(삼상 25:39~43) 갈멜 여인 아비가일이 낳은 아들이다(대상 3:1). 하지만 그의 이름 외에 추가적인 자료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고 압살롬이 죽은 후 다윗의 넷째 아들이었던 아도니야가 장남 행사를 한 것으로 보아(왕상 1:5~10) 다니엘은 일찍 죽었을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다윗의 장남과 차남이 죽은 상황에서 셋째 아들이었던 압살롬은 조금만 인내력을 가지고 기다렸으면 다윗의 왕위를 이어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권력에 대한 욕심에 사로잡혀 반란을 일으켰다. 심지어 아버지 다윗을 죽여서라도 왕이 되겠다는 야심을 품었다. 압살롬의 반란은 처음에는 성공을 거두는 듯했다. 헤브론에서 시작한 반란은 수도인 예루살렘 입성까지 파죽지세로 거칠 것 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1. 다윗에게 저주를 퍼붓는 시므이 다윗이 예루살렘을 버리고 바후림을 지나고 있을 때 사울의 친족이요 게라의 아들이었던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하기 시작했다(삼하 16:5). 다윗은 물론 그의 추종자들에게 돌을 던지며 먼지를 날리고 저주를 퍼부었다(삼하 16:13). 자신을 그렇게 집요하게 괴롭히고 죽이려고 했던 사울에게 관용을 베풀었던 다윗이다. 그러나 사울이 죽고 난 이후에도 사울의 남은 자손들은 끊임없이 다윗을 참소하고 그의 왕권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다윗이 마음만 먹었다면 사울의 친족을 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사울의 친족들에게 많은 특혜와 은혜를 베풀었고 사울의 친족들은 대부분 죽음을 면했다. 그들의 토지나 소유권도 빼앗지 않았다. 이런 다윗의 은혜를 받았던 사울의 자손 중의 한 사람이 시므이다. 그렇게 살아남았던 시므이가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피난길에 오르자 저주를 퍼부었다. 비록 피난길에 올랐지만 전장을 누비며 무수한 공을 세웠던 장수들이 다윗과 함께 있었고 많은 백성이 다윗을 따르고 있었다(삼하 16:6). 시므이의 저주를 듣고 있던 다윗의 군대장관 아비새가 당장 가서 시므이의 목을 베어 버리겠다고 말한다(삼하 16:9).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 극심한 모멸감에 시달렸을 다윗이다. 그래서 어딘가에 분풀이라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시므이는 더없이 좋은 화풀이 대상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시므이의 목숨을 취하지 않는다.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를 하나님의 책망으로, 또한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셔서 고난이 은혜로 바뀌는 전환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므이의 생명을 뺏지 않고 그가 퍼붓는 저주를 묵묵히 참아냈다(삼하 16:11). 2. 급변한 시므이의 태도 다윗이 가장 힘들었을 때, 조롱과 저주를 퍼부었던 시므이의 태도는 압살롬이 죽고 왕자의 난이 정리된 이후 급변한다. 압살롬이 죽자 제사장들과 신하들은 서둘러 다윗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환시키는 일을 진행한다(삼하 19:11~12). 다윗은 피난을 왔던 길을 따라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예루살렘을 빠져 나올 때 시므이가 저주를 퍼부었던 바후림에 이르렀다. 바후림은 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4㎞ 정도 떨어진 곳이라 예루살렘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시므이는 이스라엘의 왕 다윗의 귀환 행렬이 바후림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무엘하 19장 16~18절은 이때 시므이가 취한 행동을 이렇게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1) 유다 사람들과 동행(삼하 19:16) 사울의 혈육으로 베냐민 지파였던 시므이는 급히 유다 사람들과 다윗을 맞으러 나간다. 다윗의 피난 행렬을 쫓아가며 돌을 던지고 저주를 퍼부었던 시므이에게서 다윗에 대한 두려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다윗이 다시 바후림에 왔을 때 그의 태도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2) 시므이의 세력(삼하 19:17) 사무엘하 19장 17절은 사울이 죽은 후 시므이가 어떻게 세력을 키우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다윗을 맞으러 나올 때 시므이는 신변의 위협을 느꼈는지 자기의 모든 세력을 데리고 나온다. 베냐민 사람 1000명과 열다섯 명의 아들, 종으로 부리고 있던 하인 스무 명을 대동했다. 시므이는 호시탐탐 사울 왕조의 재건을 꿈꾸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 고대 근동에서 개인이 이 정도의 규모를 유지하고 운영할 이유도 없다. 3) 용서를 구하는 시므이(삼하 19:18~20) 시므이는 요단강을 건너려고 하는 다윗 앞에 엎드려 용서를 구한다. 시므이가 특별히 구하고 싶었던 것은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나오던 날에 저질렀던 패역한 일'에 대한 용서였다(삼하 19:19). 그가 다윗을 쫓아가며 했던 저주이다. 이 말을 들은 아비새는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인 다윗에게 저주를 퍼부었던 시므이를 살려 둘 수 없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당장 시므이를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삼하 19:21). 이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이유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미 한 개인이 아니라 정치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던 시므이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사울의 남은 세력들의 잠재적 위협 요소를 제거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시므이를 용서하고 그의 생명을 살려주는 아량을 베푼다(삼하 19:22~23). 다윗은 자신이 시므이를 용서하는 것으로 더는 피를 흘리지 않고 모든 것을 덮고 이 문제를 일단락 지으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시므이의 문제는 다윗이 죽은 후 솔로몬에게까지 이어진다. (다음 호에 계속) 이상윤 목사(홍콩순복음교회 담임)
  • 2021.07.04 / 이상윤 목사 기자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29. 기브온 족속과 사울 왕조의 얽히고 설킨 이야기(Ⅱ)
  •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류와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록된 역사책이다. 성경 한 구절은 한 개의 구절 이상의 의미와 역사·정치·문화·사회적 배경을 함축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과 구절들을 넓은 시야로 혹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세하게 접근함으로써 성경 전체를 조금 더 잘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순복음가족신문은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기록한 성경구절의 행간을 풀어 성도들이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하나님의 공의는 사랑과 은혜, 화해와 용서 안에서 이뤄져야 "다윗의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 기브온 사람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요 그들은 아모리 사람 중에서 남은 자라 이스라엘 족속들이 전에 그들에게 맹세하였거늘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 그들을 죽이고자 하였더라 이에 왕이 기브온 사람을 불러 그들에게 물으니라"(삼하21:1~2) 2) 기브온족의 이스라엘 편입 가나안 족속의 종교 혼합주의, 쾌락주의, 윤리적 타락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대단히 위협적이었다. 과학적인 지식이 없었던 시대에 기이한 자연적 현상들은 다신론적 맹신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유대교는 손쉬운 다신론이 아니라 믿음에 근거한 유일신 사상을 갖고 있었다. 유일신 사상은 인간의 감성이나 종교적 편의성에 의존하지 않는다. 율법에 기록된 내용과 방식대로 종교적 행위가 이루어져야 했고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룩한 삶이 요구되었다. 하지만 쾌락주의는 이런 이스라엘 백성의 삶을 아주 쉽게 유혹으로 이끌어 갔다. 그 결과 거룩한 삶은 죄 된 삶으로 쉽게 바뀌었다. 이런 위험에 노출되고 나중에는 헤어날 수 없게 될 것을 아셨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한 것은 가나안 족속과 근원적인 단절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기브온족에게 속아 조약을 체결했다. 그것도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이방 족속의 방식대로 계약을 체결했다. 조약 자체도 문제였지만 방법과 절차에도 문제가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고대 근동의 전통에 따라 기브온 사람의 음식을 취하는 방식으로 평화 조약을 맺었다(수 9:15). 서로 먹고 마시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평화의 조약이 이루어졌으나 이스라엘 백성은 기브온족에게 속고 있었다. 성경은 기브온과 체결한 계약 방식이 '그들(기브온 사신)의 양식을 취하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수 9:14). 기브온의 사신들이 갖고 온 음식은 곰팡이가 핀 일반적으로 먹을 수 없는 음식이었는데 어떻게 이것을 먹을 수 있었을까? 이것은 두 가지로 해석되고 있다. 첫째, 계약 체결을 위해 곰팡이가 난 양식의 일부를 실제로 먹었다는 것과 둘째, 그냥 양식을 취하기만 하고 먹지는 않았다는 해석이다. 지금이라면 당연히 곰팡이가 난 음식을 먹지 않았겠지만, 근동 지방의 관습을 고려할 때 계약 체결의 완성을 위해 곰팡이 피지 않은 쪽의 음식 일부를 떼어 나눠 먹었을 가능성이 크다. 음식을 먹고 안 먹고의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가나안의 모든 족속을 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기브온 족속과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수장이었던 여호수아는 기브온족을 죽이지 않고 살리겠다는 조약을 맺었고 이스라엘 지파의 족장들도 모두 동의했다(수 9:15). 그러나 그들이 저지른 엄청난 실수를 깨닫는 데는 3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계략에 넘어간 것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체결했기에(수 9:18) 다시 바꿀 수 없었다. 속임수까지 써가며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했던 기브온 사람들은 그들의 소원대로 이스라엘 민족에 동화되었고 하나님의 제단을 섬기는 영광스러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삶은 사울 왕 때 완전히 유린당하였고 기브온족 전체가 몰살당할 위기에 처하게 됐다. 2. 역사를 왜곡하는 사울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라는 영예를 안았으나 여러 번 하나님의 뜻과 어긋난 행동을 했다. 여호수아는 기브온족을 살려 하나님의 제단을 위해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자들로 삼았다(수 9:27). 이런 기브온족의 삶은 비록 이방인이었으나 하나님의 제단을 섬기며 헌신 된 삶을 살았기에 선교적인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만민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가 구약의 역사에도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정이야 어쨌든 오랜 세월 동안 이스라엘 민족에 편입돼 성전을 섬기며 살아오던 기브온족이었는데 사울왕이 갑자기 그들을 말살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다. 성경은 사울이 이런 일을 계획하고 실행한 것은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삼하 21:2). 이 사건은 기브온 족속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성경은 사울이 언제 얼마나 많은 기브온 사람을 죽였는지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사무엘하 21장 5절은 사울이 기브온족을 '학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학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칼라누'이다. 이 단어의 뜻은 '끝내다'(finish), '완성하다'(accomplish)는 의미이다. 사울이 기브온 사람 한두 명을 죽인 것이 아니라 기브온족 전체를 말살시키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고 실제로 실천에 옮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고한 기브온 사람들이 억울한 죽음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사울과 다윗의 왕권 교체와 맞물려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완전히 묻혀 버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것을 잊지 않으셨다. 다윗왕 때 3년 동안의 큰 기근이 발생했다. 다윗은 계속되는 가뭄이 무엇 때문인지 알기를 원했고, 하나님께서 사울이 흘린 기브온 사람들의 피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삼하 21:1). 3. 솔로몬의 재판에 비할 다윗의 판결 왕위에 오르기 전, 사울은 한없이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보좌에 오른 뒤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사울은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무엇이든 하려고 했다. 기브온족도 마찬가지였다. 피의 순수성을 강조하며 이방 족속에게 반감을 품고 있던 일부 백성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제단을 섬기고 있던 기브온족을 완전히 말살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뜻을 이룰 수는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다윗이 왕으로 등극했다. 그러나 다윗은 왕으로 등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바로잡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다윗은 사울왕 때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울의 때 뒤틀렸던 역사와 공의를 다윗을 통해 다시 바로 세우기를 원하셨다. 성경에 기록된 재판 중에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두 판결은 솔로몬의 판결과 다윗의 판결일 것이다. 모두가 잘 아는 것처럼, 한 아기를 두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다투던 두 여인에 대한 솔로몬의 판결(왕상3:16~28)은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판결 중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솔로몬의 판결과 같이 지혜가 번뜩이는 판결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들게 한 것이 다윗의 판결이다. 1) 피해자 중심의 판결 다윗은 먼저 기브온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결해 줬으면 좋겠냐'고 묻는다(삼하 21:3). 일방적인 행정명령이나 법 집행이 아니라 피해자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기브온 사람들은 자신들을 살육하는데 가담했던 모든 사람을 벌해 달라고 하지 않는다. 단지 자기 민족을 학살하는데 주동적인 역할을 했던 사울의 아들 7명을 내어 달라고 요구한다(삼하 21:6). 사울의 일곱 아들은 한날에 기브온 사람들에 의해 목매달려 죽었다. 그런데 여기서 기브온족의 모든 원한이 풀리고 3년 동안 기근으로 고통을 받던 땅에 비가 내린 것은 아니다. 2) 화해의 판결 비록 죄 없는 기브온 사람을 학살하는 일을 기획하고 실행했다가 그 벌로 죽은 사울의 아들들이었지만 다윗은 목이 매여 죽은 이들의 시체를 거둬들인다. 그리고 사울과 요나단의 뼈와 함께 그들의 할아버지이며 사울의 아버지인 기스의 묘에 가족장으로 합장을 한다. 이렇게 다윗이 죽은 사울의 아들들을 위해 장사 지내는 것을 마쳤을 때, 하나님께서 비로소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삼하 21:14).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는 것은 단순히 원한과 억울함을 푸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사랑과 은혜, 화해와 용서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다윗이 사울의 아들들의 시체를 거둬들여 가족묘에 장사지낸 것처럼,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긍휼함이 공의 가운데 있어야 한다. 사무엘하 21장에 기록된 기브온족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얽히고 설킨 사건은 하나님의 언약과 공의, 공의가 실현된 이후의 화해와 용서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단편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상윤 목사(홍콩순복음교회 담임)
  • 2021.06.06 / 이상윤 목사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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