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기사
[크리스찬메모리얼파크 창립 20주년] 국내 최대 추모공원
  • 환경과 사회 책임지는 ESG경영 실천
    재단법인 크리스찬메모리얼파크가 올해로 창립 제20주년을 맞이했다.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을 통해 크리스찬메모리얼파크는 자연의 숨결이 머무는 곳,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한 안식처, 기독교 장묘 문화의 산실로서 자리매김했다. 자연 속에 친환경적인 장묘문화를 추구하는 크리스찬메모리얼파크는 현재 2만 3000여 평의 부지 위에 옥내 봉안동 10개동과 옥외 봉안단 3개소, 유택관 등을 갖춰 국내 최대 규모의 추모공원으로 성장했다. 2016년 준공한 3층 규모의 승리관은 추모공원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1만 5000여 개 규모의 봉안당과 휴게실, 옥상 정원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가족과 문중을 위한 다양한 모양의 독립형 봉안묘, 가족 문중단, 산골 방식의 친환경적 장례 의례 장소인 유택관과 추모 외벽, 햇살 좋은 탁트인 공간을 활용한 야외 봉안당 등이 있어 다른 추모관과는 차별화된 쾌적한 공간을 마련했다. 크리스찬메모리얼파크는 봉안시설 이외에도 추모 방문객과 유족은 물론 지역 주민도 이용할 수 있는 둘레길과 루아 정원, 어울림 광장, 북카페, 기도실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야외분수대와 에덴못 체험형 조형물 『빛이 된 십자가』 등을 설치했다. 환경과 사회적 책임을 지는 ESG경영을 실천하는 크리스찬메모리얼파크는 매년 사회적 취약계층과 어려운 단체 및 시설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경영의 성과로 2019년부터 6년 연속 국가 브랜드 사회공헌 부문 대상을 수상해 왔다. 크리스찬메모리얼파크는 2839평의 대지 위에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의 5만 7000기의 봉안단을 신축해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할 예정이다.
  • 2024.06.28 / 복순희 기자

    [선교대회 50주년 특집] 앞으로의 사역을 기대하며 - 서정완 선교사(미국)
  • 선교지는 하늘을 움직이는 기도가 필요한 곳
    2012년 미국 하와이 오아후 섬 하와이순복음교회(전신, 오아후순복음교회) 부교역자를 시작으로 2020년부터 마우이 섬으로 임지를 이동해 마우이순복음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선교사로 처음 부름받고 임시 숙소에서 보낸 첫날 밤 이렇게 기도했다. “여기가 제 집입니다. 돌아갈 생각 말고, 다른 마음 품지 말고, 오직 주만 바라보게 하옵소서. 저보다 앞서가시며 호위하시는 주님, 주어진 곳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첫날의 기도는 사역에 있어 위로와 힘이 됐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고, 이리저리 깨지고 부서지면서 하나님께 충성하고 사람을 사랑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을 기도로 싸워야 했다. 마우이로 오기 전 교회 주차장 공사가 답보 상태였다. 2021년 담낭암 말기 상태로 교회에 나오신 성도님의 헌신으로 몇 년이나 정체되었던 일이 몇 개월 만에 해결되는 일이 있었다. 자신의 몸도 성치 않으면서 예배와 교회 일이 먼저였던 그분은 그렇게 불같은 1년의 시간을 보낸 후 천국에 가셨다. 그 사이 마우이로 신혼여행 온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이 익사 사고를 당했다. ‘무슨 말로 위로해야 하나?’ 막막했는데 우리 부부는 홀로 된 새신부의 옆자리를 지키며 천국의 소망을 전했다. 지상 천국 같은 섬에서 먼저 천국으로 간 이들을 보며 ‘생전 영혼 구원, 사후 천국 입성’을 깊이 생각하게 됐다. 우리의 삶이 예수로 시작해서 예수로 끝날 수 있다는 것을 전하며 순복음의 신앙을 나누는 것은 참으로 귀했다. 작년 8월 마우이는 미국 역사상 100년 만에 대형 산불이 일어났다. 삽시간에 여의도 면적 3배의 땅이 거짓말 같이 사라졌다. 교회는 음식을 만들어 나누고 구호품을 전했다. 교회가 지역 사회 속으로 들어가 생명력을 나누고자 했을 때 각처에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하나님이 하시고, 우리는 따른다’는 말씀이 각인되는 사역이었다. 그러면서 앞으로의 사역에 두 가지를 기대하게 됐다. 첫째, ‘세속화되지 않는, 세상 속의 교회가 되자.’ 지역 사회의 공익에 앞장서고, 교민 사회의 복음화를 꿈꾸기 시작했다. 둘째, ‘협동하는 교회가 되자.’ 각처에서 도움을 받은 대로 각처로 흘려보내는 교회를 꿈꾼다. 선교지는 하늘을 움직이는 기도가 필요하다. 순복음의 성령 충만한 기도로 선교 사역의 역사를 이뤘다면 앞으로의 사역에도 기도는 반드시 필요하다. 선교지마다 승리의 길이 열리도록 기도하는 순복음의 성도들이 되어주시길 부탁드린다.
  • 2024.05.24 / 오정선 기자

    [선교대회 50주년 특집] 지난 사역을 돌아보며 - 구현서 선교사(캄보디아)
  • 22년간 현지서 교회 건축과 제자 양육, 모든 것이 하나님 은혜
    신학을 공부하고 선교지를 위해 기도하던 중 2003년 8월 16일 캄보디아로 파송 받았다. 2년의 인턴과정을 보내며 언어를 먼저 공부했다. ‘선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생각하던 중 최자실 목사님이 철야예배 때마다 “어린이 율동과 말씀 선포, 기도로 세계를 교구 삼아 헌신하는 선교사를 파송케 해달라”며 기도하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어린이 사역부터 하자, 도시 프놈펜으로 구직 온 근로자들을 전도하자’는 전도전략을 세우고 한국어 교육을 내세워 집을 임대했고 오전은 유치원 아이들과 공단 주변 근로자들의 자녀들을 모아 제자들이 캄어 교육을, 오후에는 영어 수업을 했다. 나는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저녁마다 한국어 교육을 가르치자 마을에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일 년이 지날 무렵 인도차이나 선교팀들이 방문했다. 한 권사님이 성전부지 후원금을, 양월선 전도사님이 후원해주셔 사역 1년 반 만에 껌뿡스프 지역에 쫑록순복음교회를 건축하게 됐다. 처음 참석한 선교대회 때 성전 건축에 대해 보고하자 후원이 들어왔고 제2성전인 껌므리응순복음교회를 건축하게 됐다. 한 해에 쫑록순복음교회와 껌므리응순복음교회 성전 건축 그리고 덩까오교회 임대까지 세 교회가 세워지면서 교회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부흥 됐다. 아내 백현옥 선교사와 소수민족 사역도 시작해 캄보디아 28개 소수민족 중 북동쪽 라타나끼리 찌라이 소수민족, 프넝 소수민족, 라오 소수민족에게 복음을 전하게 됐다. 그러면서 후원자가 나타나면서 뜨봉크멈순복음교회까지 4개 교회가 세워졌다. 코로나 기간 락다운과 선교금지령 등으로 어려움이 컸으나 코로나 이후 교회가 점차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여제자 1명이 7개 교회 개척을, 또 다른 여제자들이 2개 교회를 개척했다. 사역의 해법은 ‘기도’였다. 제자들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로 사역했다. 선교대회 50주년을 맞이해 지난 22년의 사역을 돌아보았다. 많은 영혼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선교사가 모든 것을 잘하는 팔방미인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순복음에서 배운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4차원의 영성, 오순절의 영성’은 사역에 있어 축복의 통로가 됐다. 성도님들의 중보기도와 후원, 아낌없는 사랑으로 선교지가 열매를 거두게 됐다. 그 사랑에 힘입어 남은 사역에 더욱 최선을 다할 것이다.
  • 2024.05.24 / 오정선 기자

    Hello, Israel
    이스라엘 건국 76주년을 맞이하면서-삶의 여유가 아닌 생존의 싸움
  • 1948년 5월 15일 이스라엘 국가의 설립이 선포되었다. 당시 뉴욕타임즈의 1면에는 “시오니스트들이 새로운 이스라엘 국가를 선포하다”라고 대서특필 됐다. 당시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이스라엘 국가를 인정하였다는 기사와 함께 텔아비브가 폭격을 당하고 이집트가 침공을 명했다고 쓰여있다. 이스라엘은 올해 2024년에 건국 76주년을 맞이했다.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낸 이스라엘은 현재 너무나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10월 7일 가자지구를 점령한 하마스의 무차별 공격과 침입으로 인해서 21개의 가자 인근 키부츠와 마을이 공격을 당했다. 7000명 이상이 죽었고 아직까지 인질 130명이 가자지구에 붙잡혀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하마스의 공격에 대응하여 보복공격을 감행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북부와 중부를 점령해 나갔고 200만명의 팔레스타인 피난민들은 전쟁을 피해서 가자 남쪽으로 피신했다. 이를 계기로 북쪽 레바논 접경 지역을 점령하고 있는 테러단체인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을 향해 하마스를 돕는 공격을 감행하였다. 이스라엘 북부는 헤즈볼라의 미사일 폭격으로 인해서 20만명의 피난민이 마을과 도시를 버리고 남으로 피난을 가야 했다. 이스라엘 국가가 전란에 휩싸이고 새로운 중동전쟁이 시작될 것만 같았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250여 일이 지나는 시점에서 위협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스라엘 국가는 현재 여러 측면에서 위협과 비난을 마주하고 있다. 작년 이스라엘의 보복공격이 감행된 이후부터 서서히 일어난 반유대주의와 반이스라엘 운동은 본격적으로 미국과 유럽 등지의 대학가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너무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세계에서 제일가는 학문을 자랑하는 미국의 대학가에서 역사적 근거가 없는 외침과 일방적인 비난이 이스라엘을 향해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번 사태의 원흉이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이라고 비난을 쏟아내면서 미국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발언을 하기도 한다. 국가가 설립된 이후 지난 76년 동안 이스라엘은 한번도 평화롭게 지내온 적이 없었다. 잠시의 평안이 존재는 했지만 계속적으로 위협과 도발 속에서 살아온 것이 이 국가의 역사이다. 건국 이래 4번의 커다란 중동전쟁이 있었고, 2차례의 팔레스타인 인티파다(민중항쟁)가 있었다. 이스라엘 국가 설립 이후 유대인들은 안전하고 인정받는 삶을 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꿈꾸면서 이룩하고 살아왔다. 76년 동안의 노력으로 이스라엘은 전쟁의 여파 속에서도 다시금 일어나 지금의 놀라운 모습들을 만들어 왔다. 열심히 노력하고 이루어 낸 것들 속에는 자신들만의 삶이 아닌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노력들도 담겨 있었다. 누군가가 주장하는 것처럼 유대인들만의 국가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아랍인도, 베두인도, 소수민족들도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유대국가를 만들어 가는 것이 테오도르 헤르쩰과 다비드 벤구리온의 꿈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꿈이 위협을 받고 있다. 삶을 누리는 것보다 삶을 생존해 가는 것,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유대인들의 생존의 싸움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대학가에서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부르짖는 그들의 외침 속에서는 유대인들의 홀로코스트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전을 외치고 전쟁을 그만두라는 외침 속에서는 이 전쟁의 시작인 하마스라는 테러단체에 대한 고발과 비판은 없다. 학살을 멈추라는 외침은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의 손에 무차별 학살을 당한 유대인 민간인들과 어린 아이들의 피는 무시하고 있다. 전쟁의 피해자는 팔레스타인만이 아니라 유대인들도 포함되어 있으나 엄격한 이들의 잣대에는 유대인들은 학살자이고 전쟁과 피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표현되고 있다. 생존의 싸움을 살아가는 유대인들은 이런 비난과 매도 속에서 꾸준히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하루하루 잡혀간 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도하면서 오늘의 삶에서 나의 가족들이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다. 휴전을 요구하면서 여전히 민간인 지역을 향해서 미사일을 쏘아 올리는 하마스에 대응하면서 이스라엘은 묵묵히 생존해 가고 있다. 누군가는 이 싸움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영토싸움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이 싸움은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생존의 싸움이다. 하마스와 이란은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의 존재를 말살하기를 원하고 있고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생존을 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가운데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이스라엘에게 있기를 기도해야 한다. 폭력으로 누군가를 해쳐서 얻으려는 자들을 잠재우고 자비와 긍휼로 이 땅을 돌볼 수 있는 지혜와 마음을 이스라엘이 가질 수 있도록 그리스도인들이 중보해야 할 것이다. 김요셉 목사
  • 2024.05.24 / 김용두 기자

    이스라엘의 유월절 풍경 … 자유와 구원을 선포하다!
  • 올해 유월절은 예년에 비해서 한 달이 늦은 4월에 찾아왔다. 올해 유월절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필자는 정규 신학교를 나와서 교회에서 말씀을 가르치며 목사로 사역해 왔다. 이스라엘을 오기 전까지는 아무런 저항이 없이 기존의 신학과 교육 안에서 가르치는 것과 배워왔던 것들이 크게 부딪치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부르심 가운데 이스라엘에 오게 되면서 많은 생각들이 부딪히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절기에 관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지금도 성경적 절기들을 지켜온다. 우리가 추석을 지키고 교회에서 부활절, 추수감사절, 성탄절을 지키듯 이들은 유월절, 오순절, 나팔절, 대속죄일 그리고 초막절을 지켜오고 있다. 우리는 기독교 안에서 이런 절기들을 유대교의 절기라면서 지킬 필요가 없다고 가르쳐 왔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런 절기들은 유대교의 절기라기보다는 성경 안에서 하나님이 가르친 하나님의 절기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키라고 가르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에도 없는 부활절, 추수감사절 그리고 성탄절을 크게 의미를 두면서 꾸준히 열성적으로 지켜왔다. 이번 유월절을 준비하면서 더 많은 생각들이 교차해 갔다. 우리는 성경의 절기들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잣대를 대고 비판하고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유월절은 의미가 큰 절기이다. 성경적으로 그리고 신학적 관점에서도 유월절을 대하면서 하나님의 구속하심과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연관 지어서 설명한다. 그런 이해 속에서 유월절은 그리스도의 속죄하심과 구원하심이 선명하게 나타나는 절기인 것이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하나님은 애굽을 아홉 가지 재앙으로 심판하신 이후 마지막 재앙인 장자의 죽음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내시려고 하였다. 하나님은 명확하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엇을 해야 그 죽음의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설명해 주셨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문지방과 기둥에 바른 집들이 죽음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유월, 즉 지나갔다는 의미로서 영어로 패스오버(Passover) 히브리어로는 ‘페싸흐’라고 불리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집은 무조건 죽음이 넘어갔다는 대목이다.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누구든지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집은 죽음이 넘어간 것이다. 이집트 백성들도 하나님의 명령대로 어린 양의 피를 바르거나 혹은 이집트인과 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친구들의 집에 어린 양의 피를 발라 주었다면 그 집들은 모두 구원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은 특정한 이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 아니라 구원의 약속을 받은 모든 이들에게 동일하게 임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풀려난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만이 아니다. 이는 자유를 향한 하나님의 선포이며 구원의 선포이다. 또한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누구나 그 언약을 믿고 그 약속의 상징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구원이 임한다는 선포이다. 이 선포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가히 충격적이며 강력한 것이다. 자칫 기독교 우월주의에 빠질 수 있는 우리의 구원이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것이며 믿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생명의 선포이자 자유의 선포라는 것이다. 유월절을 기억하고 지키는 것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유익한 일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이 유월절 어린 양과 같은 피 흘림을 통해 구원을 이루실 하나님의 계획임을 알게 하는 절기인 만큼 이를 지키면서 누리게 될 은혜는 더욱 풍성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이 이 절기를 계속해서 지켜 나갈 수 있도록 이들을 인도하고 계신다. 우리는 이번 절기를 이 지역에 공부하러 온 유학생들과 함께 나누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었지만 이스라엘에 공부하러 왔기에 유대교식 절기를 지내보고자 모였다. 유월절 메시지를 듣게 되고 절기의 의미를 되새기고 나자 그들의 표정에는 더욱 커다란 은혜가 남아있었다. 하나님의 구원이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과 속죄함으로 나타나기까지 하나님은 이 절기를 통해서 기억하게 하시며 가르치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올해 유월절은 더욱 이런 메시지가 필요하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인해서 아직까지 갇혀 있는 이들이 자유함을 얻고 죽어간 이들과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어린 양의 속죄함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 유월절 저녁을 보내면서 함께 기도해 본다. 김요셉 목사
  • 2024.04.26 / 김용두 기자

    라마단을 대하는 태도: 이스라엘의 공존과 화합을 향한 노력
  • 이 시기가 되면 이스라엘은 무척이나 긴장하게 된다. 이 시기에 두 개의 절기가 서로 만나게 된다.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절기인 부림절(Purim)과 한 달 동안 금식이 계속되는 이슬람의 절기인 라마단이다. 라마단은 이슬람의 절기로서 30일간 해가 떠 있는 동안은 금식을 하고 해가 지고 나면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음식을 먹으면서 하루 동안 주어진 알라의 은혜와 기쁨을 나누는 시간이다. 그리고 30일이 지나면 한 달 동안의 금식의 고행을 지킨 것을 기념하면서 성대한 잔치를 벌이고 먹고 마시는 축제를 즐기게 된다. 모두가 알다시피 예루살렘에는 황금돔 사원(Dome of Rock)이라는 이슬람의 성지가 있다. 매년마다 라마단 기간동안 무슬림들은 이 사원이 있는 예루살렘 성전 산의 알아크사 사원과 그 앞 광장에 모여서 기도회를 하게 된다. 금식 기간동안 기도를 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서 팔레스타인 무슬림들과 인근 요르단에서도 수많은 무슬림들이 성지순례를 오게 된다. 가뜩이나 서로의 관계가 좋지 않고 현재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와의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예루살렘은 더욱 긴장감이 올라가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갈등은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왔다. 그러나 이 갈등 속에서도 이스라엘은 무슬림들을 존중하면서 라마단을 지키게 하는 데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수많은 무장한 경찰들과 병력들이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예루살렘 구 시가지를 철통같이 보안하고 테러에 대비하고 있다. 누군가를 억압하기 위함이 아니라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갈등보다는 화합과 공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은 문화적인 다양성과 종교적 다양성을 존중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비롯한 다양한 종교적 그룹들이 공존하는 나라로서, 각 종교 그룹의 신념과 문화를 존중하고 지지한다. 이스라엘은 다양한 종교적 축제와 의식을 존중하고 지원함으로써 문화적 구분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라마단 기간, 이스라엘은 무슬림들의 신념과 전통을 존중하면서 라마단을 지키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스라엘의 도시들은 라마단을 축하하는 이벤트를 개최하고, 무슬림들이 금식을 지키고 기도를 드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또한, 이스라엘 정부는 라마단 기간 동안 무슬림들의 식사를 지원하고 그들의 종교적인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노력한다. 항간에 괴담처럼 떠도는 이스라엘이 무슬림들을 핍박하고 있으며 분리시켜 제한한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누구나 원하면 자신들의 종교를 섬길 수 있는 곳이 이스라엘이다. 하지만 라마단 기간만 되면 무슬림들과 유대인들 간의 갈등과 폭력은 여느 때보다 더 심하다. 구시가지의 다메섹문(다마스커스 게이트-아랍구역)에서는 팔레스타인 청년이 이스라엘 경찰을 향해서 칼을 휘둘러 죽이거나 다치게 하고 이스라엘 군인은 그런 테러범을 사살한 뉴스가 보도가 된다. 가장 거룩한 절기이며 금식의 절기에 누군가의 생명을 해치려 하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알라를 섬기는 이들에게 금식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오랜 시간 뒤틀린 시각과 정서는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야 함에도 이 절기만 되면 다들 극도로 흥분하여 공격하려는 경향으로 나타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스라엘은 갈등과 대립보다는 화합과 공존을 위해 나아가려 하고 있다.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며,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갈등을 해소하고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증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슬람은 스스로를 평화의 종교라고 말한다. 그러나 라마단 기간 동안 이들이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을 향하여 쏟아내는 말과 행동은 결코 평화와는 멀기만 하다. 시편의 기자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하였도다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시120:67). 라마단 기간동안 하나님을 갈망하는 이들에게 주님이 직접 찾아와 주셔서 참 평안을 얻게 하고 화평을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에게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갈등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노력과 무슬림들을 포함한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는 태도는 지역의 평화와 공존을 위한 중요한 발걸음임을 보여줍니다. 함께 노력하여 갈등을 극복하고, 모든 이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세상을 만들기를 희망합니다. 김요셉 목사
  • 2024.03.27 / 김용두 기자

    평신도를 위한 오순절 조직신학
    VII. 죄론(Hamartiology) - 3 
  • 성경은 죄와 인간의 필연적 관계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로마서 3장 23절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말씀한다. 이것은 아무도 죄를 피할 수 없다는 선언이다. 더 나아가 죄의 삯(wage, 급여, 보수)은 사망이라고 단언하고 있다(롬 6:23). 인간의 수고와 이마의 땀으로 얻게 되는 급여는 ‘사망’이라는 비극적인 선고이다. 한글성경에서는 복수와 단수를 구별하지 않고 ‘삯’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헬라어 원본에서는 복수형을 써서 ‘옵소니아’, 즉 ‘급여들’, ‘보수들’이라고 복수형을 쓰고 있다. 죄에 대한 형벌이 죄의 종류와 가지 수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부과될 것임을 말씀한 것이다. 4) 죄에 대한 형벌 칼빈(John Calvin)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내리신 죄에 대한 형벌을 영혼과 육체의 분리로 이해했다. 그는 인간의 창조를 세 단계로 이해했다. 첫째, 인간은 땅의 먼지(KJV, dust)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이다. 둘째, 먼지로 지음을 받은 육체에 네페쉬(혼, 생명)를 가지게 되었으며, 셋째, 하나님의 형상이 주어졌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영혼과 육체, 하나님의 형상의 결합이 분리되는 죽음 맞게 되었다. 이것은 곧 영적인 죽음, 삶의 고통, 육체적인 죽음, 영원한 죽음을 낳게 된다. (1) 영적인 죽음 죄는 인간과 하나님을 분리시킨다. 하나님의 거룩성은 죄를 허용할 수 없다. 하나님의 거룩성으로 인해 죄를 품은 인간은 그의 임재 가운데 공존할 수 없었다. 그 결과가 에덴동산으로부터 추방이었다. 죄로 인해 인간의 영혼은 생명력을 상실했으며 더 이상 스스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 영적인 죽음으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 밖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으며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인”상태가 되었다(창 6:5). 이것이 죄의 형벌로서의 영적인 죽음이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할 뿐 죄를 깨끗하게 할 수는 없다(롬 3:20; 7:7). 이런 영적인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행위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2) 삶의 고통 타락 이후 고통은 인간 삶의 일부가 되었다. 인간의 삶은 쉽게 무너지고 각종 질병의 포로가 되었으며 불안과 고통을 늘 겪게 되었다. 풍족했던 에덴동산의 삶은 사라졌고 여자에게는 해산의 고통이 더해 졌으며 인간은 땀을 흘려야 먹을 수 있게 되었다(창 3:16, 19). 창조 이후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하나님의 복은(창 1:28) 인간의 타락 이후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타락 이후의 하나님의 뜻은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인간의 삶 곳곳에 돋아나는 것이었다(창 3:18). (3) 육체적인 죽음 히브리서 9장 27절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근거로 최초 인간 아담이 죽음을 전제로 한 유한한 존재로서 창조되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실 때 죽음을 전제로 창조하셨다는 근거는 창조역사 속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주후 418년, 카르타고 종교회의에서 첫 사람 아담이 죽을 밖에 없는 존재로 창조되었으므로, 아담이 죄를 지었든 안 지었든 상관없이 아담이 죽은 것은 죄의 삯이 아니라 자연의 필연성 때문이라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육체적인 죽음, 즉 흙으로 창조된 인간이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형벌은 인간이 죄를 지은 후에 언급되었다(창 3:19). 육체적인 죽음은 영적인 죽음과 함께 불순종한 인간에게 주어진 형벌인 것이다. 이 육체적인 죽음에서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4) 영원한 죽음 유물론자들은 죽음을 존재의 소멸로 이해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유물론적 사관으로 죽음을 이해하는 것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원한 죽음은 삶의 종결, 혹은 죽음의 완결을 의미하지 않는다. 영원한 죽음은 벗어 날 수 없는 고통의 끊임없는 연속성을 말한다. 단테(Dante Alighieri)의 『신곡』(神曲, La Divina Commedia) 지옥편에 보면 지옥문에 쓰여 있는 글귀가 있다.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마치 이 표현처럼, 영원한 죽음은 어떤 희망도 품을 수 없는, 즉 죽음의 소망조차 품을 수 없는 고통의 연속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요 11:26). 이 말씀은 육체가 죽지 않는다는 말씀은 아니다. 믿는 자에게 죽음은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통로이며 육체의 죽음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경험할 것에 대한 약속이다. 죄는 형벌을 동반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의 형벌은 영생의 기쁨과 환희로 바뀌게 될 것이다. 이상윤 목사(순복음홍콩신학교 학장)
  • 2024.07.0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VII. 죄론(Hamartiology) - 2
  • 현대의 논쟁
    타락한 이후 인간은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동양에서는 순자(荀子)가 주장한 인간의 본성은 악(惡)하다는 성악설(性惡說)과 맹자(孟子)가 주장한 것으로 알려진 인간은 선하게 태어난다는 성선설(性善說)이 팽배하게 대립하고 있다. 성경은 이 두 학설 중 성선설에 가깝다. 전도서 7장 29절은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힛솨본’인데 영어 성경(NKJV)은 ‘계략, 음모’(scheme)로 번역했다. 즉, 하나님께서 사람을 선하게 창조하셨으나 죄가 인간에게 들어온 이후 수많은 악한 꾀를 내는 존재가 됐다는 의미이다. 죄론에 대한 현대적 논쟁은 죄의 본질과 인식, 죄의 본편성과 전가성 그리고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원죄론에 대한 논쟁과 죄성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1) 죄의 본질 죄는 단지 인간이 행하는 그 무엇일 뿐만 아니라 죄가 인간 안에서 행하는 그 무엇이기도 하다. 죄는 단지 인간으로부터 오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 너머로 오기도 한다. 이전에 살펴본 것처럼 아담과 하와의 근원적 죄는 인간 내면에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사탄이라는 외부적 유혹에서부터 시작됐다. 인간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행동을 함으로서 죄에 빠졌다. 죄에 대한 웨스트민스터의 대요리문답은 ‘죄란 하나님께서 이성적인 피조물에게 삶의 기준으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일치의 결여 또는 위반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2) 죄의 인식 죄는 인간이 하나님을 거부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과의 실존적 일치성을 상실하게 되었으며 하나님과 동떨어진 자신의 세계와 자기 자신을 목표점으로 지향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없는 곳에 살며 어떻게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을까? 자신도 철저하게 부패한 인간이 죄 가운데 살면서 어떻게 죄를 인식 할 수 있을까? 선은 악이 있을 때 선으로 인식할 수 있으며, 반대로 악은 선이 있을 때 악을 인식 할 수 있다. 이 질문에 대해 칼 바르트(Karl Barth)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죄인이 죄를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죄를 인간을 감금하는 ‘감옥’으로 생각했다. 이 감옥은 안에서 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밖에서만 열 수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만 그 열쇠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가 없다면 죄를 인식할 수도 없고 죄에서 나올 수도 없다는 말이다. 3) 죄성(the nature of sin) 인간은 죄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죄의 속성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은 내면 깊숙한 곳에 간직하고 있는 죄성으로 말미암아 기회가 주어지면 죄를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 죄의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은 것은 환경과 조건이 형성되지 않았을 뿐이다. 신약성경은 죄(Sin)와 죄들(sins)을 구별 짓고 있는데, 보통 전자는 죄의 본성을 말하고 후자는 죄성의 결과 및 표현들을 의미한다. 죄의 속성을 갖고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히브리서 4장 15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시나 죄는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죄성을 갖고 태어나지 않았기에 죄를 지을 수 없는 것이다. (1) 죄의 보편성 성경은 모든 인류가 죄인이라고 선언한다(왕상 8:46; 시 143:2; 잠 20:9; 전 7:20; 롬 3:10~12; 롬 3:23; 요일 1:8). 죄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는 결코 피할 수 없는 보편적 욕구라고 할 수도 있다. 로마서 3장 23절은 예외가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과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죄에 무방비로 노출된 피조 세계의 보편적이고 전 우주적인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 가셨다(롬 5:19). (2) 죄의 전가성(the imputation of sin) 구약시대의 제사를 보면 죄인은 제사장에게 번제물을 가져가야 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번제물에게 전가하기 위해 제물의 머리에 안수해야 했다(레 1:4). 이 행위를 통해 죄인의 죄가 희생 제물에게 전가 되었다. 번제물은 죄인의 죄를 위해 희생되었고 죄인은 죄로부터 놓임을 받았다. 죄는 이런 전가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죄의 전가성은 제물에게로 국한된다는 점이다. 나이든 부모가 자식의 죄를 대신해서 처벌을 받겠다고 아무리 하소연을 해도 법정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듯이 성경에서 죄는 사람을 포함한 어떤 것에도 전가되지 않으며 오직 제물에게만 전가된다. 죄의 전가에 대한 제한적 적용은 구약과 신약에서 동일하게 볼 수 있는데 구약에서는 오직 희생제물에게만 적용되며,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은 대상이 될 수 없다. 이상윤 목사(순복음홍콩신학교 학장)
  • 2024.05.03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VII. 죄론(Hamartiology) - 1
  • 죄의 근본적 정의는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것
    인간은 죄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로마서 3장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고 선언하고 있는데, ‘모든’에 해당하는 헬라어 판테스는 인류 전체를 포괄적으로 일컫는 단어이다. 우리 나라 말은 ‘죄’, 영어는 ‘sin’이라는 단어로 죄에 대해 포괄적인 의미로 지칭하고 있으나 성경은 ‘죄’에 해당하는 단어를여러 가지로 쓰고 있다. 구약성경은 8가지 다른 단어와 신약은 12가지의 다른 단어가 ‘죄’라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이 여러 단어 중에 헬라어 ‘하마르티아’가 죄론 (Hamartiology)의 어원이 되었다. ‘하마르티아’의 뜻은 ‘과녁에서 벗어나다’는 의미이다. ‘하마르티아’가 의미하듯 죄에 대한 근본적인 정의는 살인과 도둑질과 같은 범법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것을 말한다. 최초 인류 아담과 하와의 타락에서 볼 수 있듯이 죄의 본질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불순종이다. 불순종은 단지 하나님의 공의와 율법을 거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며 인간의 한계성을 넘어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려는 행위로 나타났다(창 3장). 또한 하나님의 보좌를 침범하는 행위와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것을 의미 한다(사 14:13). 바울은 죄를 하나님의 ‘원수’(롬 5:10, 골 1:21)라고 했으며 그것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미워하는 자’(롬 1:30)라고 했다. 1. 죄의 기원 (The Origin of Sin) 죄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죄가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했거나 진정한 행복을 선사한 적은 한 순간도 없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 사역 가운데서 천사의 창조와 죄의 창조는 찾아 볼 수 없다. 모든 것이 다 보시기에 좋았고 악한 것은 없었다. 그럼 죄는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 죄론에서 다루는 명제들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은 죄의 조성자로 간주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사실 때문에 죄 또한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고 할 수는 없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동산 가운데 두셨다고 해서 인간의 타락을 유도했다고 할 수도 없다. 하나님은 결단코 악을 행하지 않으시며, 전능자는 결코 불의를 행치 않으신다(욥 34:10).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그의 안에는 불의가 전혀 없다(신 32:4; 시 92:16).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기능은 강요가 아닌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을 위함이다. 인간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는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는 것은 순종의 표현이며 과녁에서 벗어나지 않은 삶을 이어가기 위한 결단이다. 2) 죄는 천사의 세계에서 시작되었다 인간의 타락을 말씀하고 있는 창세기 3장을 보면 인간이 죄를 짓기 이전에 이미 ‘뱀’으로 형상화 된 사탄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창 3:1). 이것은 죄가 인간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사야 14장 12~14절에 계명성으로 대변되는 천사의 타락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이 계명성을 영어 성경 KJV은 루시퍼(Lucifer)라고 번역을 했다. 사탄이 인간의 타락 이전에 이미 존재했으며 이들로부터 죄가 인간에게 들어 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것이 죄에 대해 인간의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3) 죄는 인간의 고의적인 행위로 말미암은 것(롬 5:12, 18, 19) 죄는 외부로부터 온 유혹과 그 유혹에 대한 인간의 적극적인 반응에서 시작되었다. 성경은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약 1:14)라고 말씀하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을 만큼 선하게 창조되었으나 선한 자유를 잘못 사용함으로서 죄가 인간에게 들어 왔다. 인간은 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면 안 된다. 4) 죄의 이해 (1) 교부 시대의 죄의 이해 동방 교부들은 죄를 포괄적이고 피상적인 것으로 이해했다. 이에 반해 서방 교부들은 죄의 문제를 윤리적인 것으로 심화했다. 그래서 교황을 비롯한 가톨릭의 성인들은 아무 죄(윤리적인 죄)를 짓지 않았다고 주장하게 되었다(아타나시우스). 서방 신학의 아버지인 터툴리안에 의해 처음으로 원죄론이 대두되었으며,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은 타락 전에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었지만, 타락 후에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2) 중세시대 토마스 아퀴나스는 죄의 종류를 ‘용서할 수 있는 죄’, ‘죽을 죄’, ‘하나님과 자기 자신과 이웃에게 범하는 죄’, ‘원죄 또는 유전 죄’, ‘행위 죄’, ‘원래적인 의의 결핍’, ‘질료’, ‘탐욕’ 등으로 나누어서 설명하려고 했다. 루터는 죄를 철저히 인격적으로 이해했다. 루터는 죄를 감각적, 육체적 영역뿐 아니라 인간의 영혼 안까지 도달한다고 생각했다. 멜란히톤은 죄를 ‘원래적인 의의 결핍’과 ‘탐욕’으로 이해했다. 칸트는 죄를 ‘인간의 본성 안에 있는 철저한 악’이라고 선언했다. 이상윤 목사(홍콩순복음교회 담임)
  • 2023.10.0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생명과학 이야기
    몸 값하는 호박벌의 능력
  • 전 세계에서 “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자연생태계에서 벌의 개체 수가 급감하고 있다는 경고이다. 빈 벌통을 바라보는 양봉가의 시름이 깊어져 갈 때 농작물 수확량도 감소하므로 농가의 시름도 깊어진다. 이와 같은 자연재해는 심각한 식량난을 예고한다. 원인으로 기후변화와 농약 및 환경오염, 바이러스 혹은 세균감염, 진드기의 일종인 응애(mites) 외에도 여러 가지 알 수 없는 요인이 있다. 특별히 벌은 유익한 곤충으로 그 위치가 남다른 면에서 더욱 그렇다. 벌이 사라지면 꽃을 피워 충매(蟲媒)로 결실하는 농작물의 수확량이 절대 감소한다. 벌이 없으면 열매를 맺기 어려운 작물이 생각보다 많은 이유이다. 충매화(蟲媒花)는 향기로 곤충을 초대하고 답례품으로 꿀을 만들어 놓는다. 이때 초대받은 벌의 꿀을 빨기 위한 몸놀림은 꽃가루를 묻혀줘 열매가 잘 결실하도록 한다. 각각이 필요에 따라 행하는 일인데 결국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공생관계로 상생의 순기능이 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만일 벌이 사라진다면 이들에게 큰 충격일 수밖에 없다. 꽃을 피워 향기를 뿜어내고 달콤한 꿀을 준비해도 벌이 없다면 결실할 기회가 없어진다. 화분을 매개하는 여러 종류의 벌 중에서 호박벌(뒤영벌)이 여러 면에서 탁월하다(사진). 농가에서 인기 높은 호박벌이 꿀벌보다 나은 예가 다음과 같이 있다. 첫째, 날씨가 흐리거나 약간의 비가 오는 습한 날씨에는 꿀벌은 활동하지 않으나 호박벌은 궂은 날씨에도 영향을 덜 받고 주어진 미션을 수행한다. 둘째, 기온이 7℃ 이하로 떨어지면 꿀벌은 활동을 멈추는데 호박벌은 5℃ 이하가 되면 가슴에 있는 강한 근육을 진동시켜 체온을 올려 추운 날씨에도 견딘다. 셋째, 향기이나 꿀이 없거나 있어도 적은 토마토, 가지, 피망 등 꽃을 가리지 않는다. 넷째, 꿀벌은 위협을 받으면 그 대상을 집단으로 공격을 하지만 호박벌은 보기보다 순하고 안전하다. 다섯째, 호박벌은 긴 털이 체표를 덮고 있을뿐더러 세찬 날갯짓으로 꽃가루를 털고 날려 수분율이 높다. 여섯째, 꿀벌은 비교적 한 꽃에 머무는 시간이 길고 잠깐이라도 날개를 접으나 호박벌은 짧게 머물고 분주하게 옮겨 다니므로 같은 시간에 10배 이상 많은 꽃을 찾아다닌다. 일곱째, 꿀벌은 활동반경이 집에서 약 2㎞인데 비하여 호박벌은 약 500m로 화훼나 농작물 비닐하우스에 방사하면 멀리 날아가지 않는다. 한편 우리에게 알려진 ‘트랜스포머’ 영화 시리즈 속에서 멋진 역할을 하는 ‘범블비(Bumblebee)’의 애칭은 ‘호박벌’ 이름에서 인용했다. 요즘 반려곤충으로 호박벌을 키우는 일부 동호인도 있다. 호박벌은 큰 몸통에 비해 날개가 왜소해서 날 수 없을 것 같아도 가슴 근육의 힘으로 빠른 날갯짓을 하며 이를 극복한다. 성도가 믿음의 영적 근육이 강하면 능히 못 할 일이 없다. 현대를 살아가는 신앙공동체가 각자 주어진 믿음의 역량을 잘 활용한다면 분명 아름다운 결실이 있다(엡4:11~13). 윤철종 목사(또오고싶은교회, 이학박사)
  • 2024.05.24 / 이미나 기자

    고난을 통해 결실하는 대추나무
  • 봄에는 모든 나무가 새순을 내고 경쟁하듯 꽃을 피운다. 그러나 이렇듯 바쁜 계절에 지각하는 나무가 있다. 새순을 내는 일이 너무 늦어서 앙상한 가지들을 볼 때 지난 겨울 추위에 죽은 나무는 아닐까 의구심이 생길 정도다. 우리나라 과실나무는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늦어도 4월이면 대부분 꽃이 피고 늦어도 5월 초순이면 그해 꽃들은 피고 진다. 그러나 대추나무는 새순도 늦지만 초여름이 시작되는 5~6월이 되어야 꽃이 핀다. 봄을 놓친 어느 나무들보다도 한참 지각한 모습이다. 대추나무 잎과 꽃은 다른 과실나무와 비교해서 작을 뿐더러 꽃의 경우는 존재감이 없다. 봄에 피는 꽃은 대부분 밝고 화려한데 비해서 대추나무 꽃은 작을 뿐더러 연두색이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언제 피었는지 모르게 지나치게 된다. ‘대추나무 사랑걸렸네’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있을 만큼 대추나무는 집터 가까운 곳이나 정원수로 심기 때문에 우리생활과 친숙하다. 그러므로 대추는 과거부터 관혼상제에서 빠지지 않았고 한약재와 식품 관련 재료로 사용됐다. 특히 결혼식 폐백용으로 신부의 치마폭에 던져주며 대추는 자손이 반듯하게 자라서 대를 이어 번성하라는 다산(多産)과 풍요를 바라는 어른들의 마음일 것이다. 이렇듯 대추나무는 한번 맺힌 열매는 비바람에도 여간해서 떨어지지 않으며 봄에는 지각했으나 추수할 때 다른 나무의 열매 수확 시기와 늦지 않게 풍성히 열린다. 단오 오후에 행하는 풍속의 하나로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를 하는데 이는 대추가 열매를 많이 맺도록 Y자형 나뭇가지에 큰 돌을 올려놓거나 망치나 도끼로 몇 번 충격을 주는 풍습이다. 필자가 생각할 때 잎만 무성하고 결실이 적을 때 일종의 충격요법과 같다. 일부 유실수(有實樹)는 고난이나 적잖은 충격을 받으면 생명의 위기를 느끼고 본능적으로 씨를 많이 맺어 종족보존을 위한 일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현재 선진국가의 저출산 문제는 다양한 사회적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과거의 절대적 빈곤과 고단한 환경에서 다출산 시대를 살아온 때보다 더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는 세대의 특별한 심리현상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오류일까. 한편 대추나무는 가시가 날카로워 찔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가시면류관의 나뭇가지는 대추나무(Christ thorn jujube)로 알려졌다.(막 15:17) 현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으며 학명은 예수가시대추나무(Ziziphus spina-christi)로 그 이름이 오늘까지 전승되고 있다. 윤철종 목사(또오고싶은교회, 이학박사)
  • 2024.04.26 / 이미나 기자

    국내에서 2등 반려동물, 고양이
  • 우리나라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는 4명 중에 한 명으로 그 종류와 품종이 다양하며 관련 가구 수와 개인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다. 2023년 기준 반려동물을 양육하는 국내 인구가 28.2%로 농림축산식품부가 조사를 시작한 이후 가장 높게 나타났다. 국내 반려동물을 보면 전세계에서 들어온 종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재래종보다 더 많아졌다(사진). 통계에 따르면 가장 많이 기르는 반려동물은 개가 75.6%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27.7%로 고양이다. 고양이는 분류상 고양잇과(Family)로 알려진 37종이 있다. 그 아래에 두 종류의 아과(亞科)로 나누는데 표범아과(Pantherinae)와 고양이아과(Felinae)로 나눈다. 이들의 공통점은 타고난 사냥꾼이다. 예민한 후각과 청각은 작은 움직임도 포착하고 이에 신속하게 반응할 수 있다. 사냥과 활동하기는 밤이 더 좋은 동물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눈은 상대를 명확하게 볼 수 있도록 동공이 최대로 확대되면 눈빛은 총명해 보이기까지 한다. 어디 그뿐인가. 고양이는 육식동물의 특징인 입에는 날카롭고 갈고리 형태의 긴 송곳니를 가지고 있어 상대의 목을 물어 제압할뿐더러 작은 먹이는 재빠르게 낚아채기도 한다. 포획한 먹이의 생살을 찢고 뼈까지 부술 수 있는 치아와 강인한 근육으로 무장한 턱이 있다. 사냥할 때 발바닥은 부드러운 고무패드 같아서 걸을 때 소리가 나지 않게 접근한다. 기회를 보아 감춘 C자형 발톱을 순간 꺼내서 움켜주는 힘은 순간 천적의 피부를 뚫고 살을 파고든다. 온몸의 관절과 근육은 매우 유연하여 자신의 몸보다 몇 배 높게 점프할 수 있다. 자세를 웅크리고 있다가 낮게 날아가는 작은 새들도 사냥의 대상이 된다. 어떠한 낙차에서도 날샌 몸 돌림으로 중심을 잡고 착지하는 모습은 능숙한 기계체조 선수급이다. 이미 잘 아는 바와 같이 쥐 같은 작은 설치류가 천적으로 먹잇감이 된다. 상대가 되지 않는 적수(敵手)를 ‘고양이 앞에 쥐’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고양이는 과거의 험하고 무한경쟁 생존인 야생환경에서 지내기보다 사람이 사는 가정같은 공유공간에서 어릴 때부터 부양되고 양육되어 야성이 점차 사라지고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고양이는 도도하면서 특유의 귀여움과 재롱이 어린이와 어른들의 사랑받는 친구로서 반려동물이 되었다. 친해지는 만큼 정이 든다. 최근 반려동물에 대한 관리에서 청소, 목욕, 식이 건강 등 장기간 여행할 때 맡기는 반려동물 호텔도 있어서 관련 산업이 요즘 각광 받는 업종이다. 한편 동물복지에 대해서 물리적 학대는 물론이고 양육조건이 열악한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인식도 높아지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확장해 보면 일상에서 현대인들 중에 무기력하고 고립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반려동물이 도움이 될 수 있다(사11장). 윤철종 목사(또오고싶은교회, 이학박사)
  • 2024.04.09 / 이미나 기자

    성경 Think! 인생 Thank!
    프레임 …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 
  • 우물 안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나려면 예수님의 마음 품어야 한 분야에서 30년 이상 일했다는 건 자신의 일에 성실하게 임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 분야를 오래 파고든 만큼 사고가 유연하지 않다는 걸 말한다. 같은 사실을 놓고도 서로의 지식이 다르고, 같은 사건을 보고도 서로 보는 각도가 가지각색이니 충돌이 발생한다. 우물 안 개구리 우물 안에서만 사는 개구리가 있다. 그 개구리는 하늘의 넓이와 바다의 깊이를 우물만큼의 넓이와 깊이로만 이해한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이 말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존재가 상식적인 문제나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일 때 쓰인다. 이 속담은 장자에 나오는 “정와불가이어해(井蛙不可以語海)”에서 기원한다. 황하의 하백(河伯)이 자신이 다스리는 황하가 물이 불어 끝없이 펼쳐진 것을 보고 매우 흡족했다. 그런데 바다를 보고는 경악했다. 자신이 가장 크다고 생각했던 것이 무너진 것이다. 이를 보고 바다를 지키는 약(若)이 하백에게 세 가지 충고를 한다. 첫째, 우물 속에 있는 개구리에게는 바다에 대해 설명할 수가 없다. 그 개구리는 우물이라는 공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둘째, 한여름에만 사는 여름 곤충에게는 얼음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없다. 그 곤충은 자신이 사는 여름이라는 시간만 고집하기 때문이다. 셋째, 편협한 지식인에게는 진정한 도의 세계를 설명해 줄 수 없다. 그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가르침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색안경 끼고 봐 오랫동안 자신의 공간에 갇혀 있던 사람은 다른 공간에 대해 알지 못한다. 자신이 겪은 것으로만 일을 처리하거나 아는 것으로만 판단한다. 상대방의 지식과 행동이 자신과 다르면 그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틀렸다고 말한다. 이처럼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어떤 문제를 바라보는 틀을 프레임이라고 한다. 『지혜로운 사람의 11가지 프레임』의 저자 최인철 교수는 프레임을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이라고 정의한다. 건물 어느 곳에 창을 내더라도 그 창만큼의 세상을 보게 되듯이, 우리도 마음의 창을 통해 보게 되는 세상만을 볼 뿐이다. <더짠내투어>라는 프로그램에서 개그맨 이용진이 파란색 접시에 초록 야채들이 담긴 음식을 보고 “왜 이렇게 음식이 전체적으로 노랗지?”라고 말한다. 가수 광희가 “형이 노란 안경 끼고 있어요”라고 말하자 본인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광희가 “여지껏 색안경 끼고 봤네”라고 외친다. 저마다 자신만의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해석보고 바라본다. 우물 안에서 나와야 자신이 살아온 경험, 믿고 있는 신념, 공간적 제약들을 벗어나긴 쉽지 않다. 어떻게 해야 우물 안에 살고 있는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우선 우물 안에서 나와야 한다. 의식적으로 낯선 곳에 자신을 던져보는 것이다. 휴가와 방학을 이용해 국내든 국외든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다. 여행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얼마나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사색할 수 있게 되고, 낯선 긴장감을 통해 뭔가에 도전하게 된다. 책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방법도 있다. 책을 읽는다는 건 단순히 지식의 습득만이 아니라 사색과 사유를 통해 심성을 기른다. 책 읽는 걸 싫어한다면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다. 무언가를 배우는 것도 괜찮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 소통하다 보면 다양한 경험을 체험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자신만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반화시키려는 아집과 고집을 버리고 지식을 재구성할 수 있다. 예수님의 마음 품어야 노란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면 노랗게 보이듯 구속의 은혜를 받은 우리는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겔 11:19).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우리의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신다. 부드러운 마음은 모든 관계에서 상대방을 아프지 않게 하며 자신 역시 무너지지 않게 한다. 모든 열등의식에서 벗어나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그의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해 주며 따뜻함을 준다. 성경에는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3~5)라고 말씀한다. “상대방이 우물 밖 하늘을 볼 때 우물 크기만큼 본다고 답답해하지. 너도 마찬가지구나. 위에서 우물을 내려다보는데 결국 우물 안 크기만큼만 보는구나.” Think! Thank! Q1. 당신이나 상대방의 모습을 보고 우물 안 개구리라고 느끼신 적이 있나요? Q2. 당신은 우물 안에서 나와 무엇을 해보고 싶은가요? Q3. 성령께 부드러운 마음을 달라고 기도문을 적어보세요. 김선희 교수(교육학 박사)
  • 2024.07.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진로를 디자인해라 ... 의대 열풍 속에서도 마이 웨이
  • 평생직장 사라져, 평생학습해야** **단순한 밥벌이가 아닌 그 일로 부르셨다
    “초등학생 꿈까지 접수한 의대열풍”, “초등학생 4명 중 1명 의대 입시 준비”, “대치동 학원가에 초등학생 대상 의대 진학 준비반 유행”. 일간지 헤드라인 제목들이다. 비수도권 의대의 지역인재전형 선발 비율을 60%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해 ‘지방 유학’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직장을 다니거나 대학을 졸업한 뒤 의대에 입학하는 25세 이상 ‘늦깎이 의대생’ 또한 늘어나고 있다. 이런 내용의 기사를 접하다 보면 우리 아이도 뛰어들어야 하는 건 아닌지, 다시 제 2의 인생을 설계해야 되는 건 아닌지 불안과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시대마다 직업 열풍 있어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발표한 ‘2023년 초·중등 진로교육 현황조사’ 결과를 보면, 의사를 꿈꾸는 초등학생 비율이 지난해 4위에서 올해 2위(7.1%)로 올랐다. 고교에서도 7위에서 5위(3.1%)로 두 계단 높아졌다. 지난해 서울대에서 341명이 자퇴했고, 자퇴생 대부분이 의대 진학을 준비한다고 했다. 의대를 가장 많이 보내는 학교가 서울대 공대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니 의대열풍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지난 2016년에는 공무원시험 열풍이 불어 전공불문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공무원이 되는 일이 하버드대에 입학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왜 이런 열풍들이 시대마다 부는 걸까? 사람들은 미래가 불확실하고 경제가 불안할수록 안정된 직업을 찾게 되어 있다. 대기업보다 연봉이 높고 직업 안정성이 보장되는 직업으로 현재 의사가 최고인 셈이다. 영원한 직업은 없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임용 후 5년 미만 공무원들 중 퇴직자는 1만 3566명으로 2019년 6500명에 비해 갑절 이상 늘어났다. 한때 각광받던 직업인데 사람들은 왜 그만두는 것일까? 미래를 책임져줄 것 같은 직업을 좇아 어렵게 입사했지만, 생각보다 직무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낮은 보수, 잦은 민원으로 퇴사했다. 시간이 지나니 사회에서 말하는 인기 직업이 바뀌었다. 이 세상에 영원한 직업은 없다. 오늘 인정받는 직업일수록 10년 후에는 그렇지 못할 확률이 더 높다. 빠르게 변화하는 미래, 점점 더 모호해지는 일의 경계 그리고 다양한 직업의 등장은 이를 뒷받침해 준다. 기대수명이 증가하면서 일자리에서 은퇴하더라고 꽤 많은 시간을 살아야 한다. 인생 후반부를 살아내기 위해 재취업이나 창업을 해야 한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끊임없이 인생을 설계하고 계속해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진로 선택 일반적으로 진로 선택을 하는 데 있어서 성격, 적성, 직업가치관 검사를 해보는 게 좋다. 워크넷(www.work.go.kr)에 들어가면 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20여 종의 심리검사를 해볼 수 있다. 검사 후 결과를 통해 객관적으로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탐색할 수 있다. 직업을 갖더라도 꾸준한 자기계발이 필요하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서는 국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퇴근 후 학습 한 잔 어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직장인들을 위해 지하철 근처에 학습관을 열어주고, K-MOOC(한국형온라인공개강좌)를 통해 대학, 기업 등의 우수강좌를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게 열어줬다. <평생학습계좌제>라는 제도는 다양한 학습 경험을 계좌에 누적, 관리하고 학력, 자격으로 인정하거나 고용정보로 활용케 했다. 이를 통해 다가올 미래를 대비할 수도 있고, 새로운 직업의 세계에 대해 알 수 있다. 그분이 맡겨주신 일 부모로서, 한 개인으로서 시대의 흐름을 읽고,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고 진로를 디자인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고전 7:17) 하나님이 사람마다 부르신 목적이 있다. 독일어로 직업은 Beruf(베루프)로 Berufen(베루펜)이라는 동사 ‘부르다’에서 왔다. 누가 부르는가 하면 하나님이 부른다는 뜻이다. 기독교인에게 있어 일은 생활의 필요를 채우는 단순한 밥벌이가 아니라 그 일로 부르셨다는 의미가 있다. 세상에서 말하는 직업을 좇아 우왕좌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훗날에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할 수 있게. “숲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다고 /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중에서). Think! Thank! Q1. 당신은 어떤 직업을 갖길 원하시나요? Q2. 그 직업이 평생토록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Q3. 그 직업으로 부르신 분은 누구실까요? 김선희 교수(교육학 박사)
  • 2024.04.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회복탄력성 … 역경을 극복하는 힘
  • ‘때문에’가 아닌 ‘덕분에’로
    온갖 역경과 어려움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 “매일 게임만 하던 아이인데 학교생활을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아들을 걱정하는 A집사. “지난번 회사에서 딸이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했어요. 이번 직장에서도 같은 일이 생길까 봐 두려워요.” 어렵게 딸을 재취업 시킨 B권사. “건강검진에서 모든 게 경계성으로 나왔어요. 운동을 시작한다는데 며칠이나 할지 모르겠어요.” 남편의 건강을 염려하는 D권사. 차라리 자신들이 해버리면 간단한데 상대방을 지켜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눈치가 있어야 어떠한 상황에서 일이 벌어졌을 때 알아서 ‘딱’ 해주면 좋을 텐데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사람이 ‘눈치’라는 게 있어서 그 상황을 판단하고 적절하게 행동하면 좋으련만 뒤로 나자빠지거나 포기하기 일쑤다. ‘눈치’는 눈으로 잰 자의 길이를 뜻하며 눈치껏 가늠해 보는 것을 말한다. 눈치를 영어로 ‘sense’(센스) ‘wit’(위트)라고 하는데 일의 정황이나 남의 마음 등을 상황으로부터 미루어 알아내는 힘이다. 결국 주변의 상황을 스스로 파악하고, 적절한 행동을 하는 능력으로 눈치는 의사소통에 있어 중요하다. 가정에서 나 편한대로 생활하다가 학교라는 단체생활을 하게 되면서 어려움이 생긴다. 남들이 다 할 때 안 하고 싶어 딴지를 걸기도 하고, 받아쓰기라는 시험을 치르면서 공부가 싫어진다. 친구들과 다툼을 하게 되면서 억울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여기에서 ‘눈치’를 발휘해 상황을 판단하고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잘 할 순 없지만, 찬찬히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면 된다. 이것이 회복탄력성이다. 회복탄력성은 역경을 극복하는 힘으로 자신에게 닥치는 온갖 역경과 어려움을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힘이다. ‘때문에’ VS ‘덕분에’ 회복탄력성 훈련 전문가 모울란 박사는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일이 전복되거나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라고 말한다. 또한 “어떤 어려움도 그들의 자존감을 파괴하지 못하며 그들은 그러한 경험을 배움의 기회로 삼는다”라고 이야기한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어릴 적 지독한 가난에 시달려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었다. 건강도 좋지 않아 잔병을 달고 살았다. 이러한 환경에서도 그는 마쓰시타 그룹을 만들어 엄청난 부를 이뤘고 96세까지 장수하며 가난 배움 건강 모두를 이뤄낸 사람으로 기억됐다.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로 자신이 바꿀 수 없는 현실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상대방과 환경을 탓하는 ‘때문에’가 아닌 ‘덕분에’를 통해 성공한 삶을 살 수 있다. 어감에서도 차이가 난다. 가난한 환경 속에 태어났기 때문에 세상살이가 피곤해졌다. 가난해서 학교를 다니지 못했기 때문에 삶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반대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덕분에’ 어릴 때부터 여러 가지 힘든 일을 하며 세상살이에 필요한 경험을 쌓았다. 학교를 제대로 마치지 못했던 ‘덕분에’ 만나는 모든 사람을 선생이라 생각해 묻고 배웠다. 허약한 아이였던 ‘덕분에’ 꾸준히 운동해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야훼께서 붙드신 인생 “야훼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야훼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시 37:23~25).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고 계신다니 이보다 안전한 말씀이 있을까? 새로운 시작을 하는 자녀, 배우자, 이웃을 다른 시선으로 보는 것이다. 언제 커서 자기만 한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아들, 회사에서 일할 때 동료에게 상처받지 않으려고 눈치를 발휘하는 딸,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이제야 건강을 돌보게 된 남편. 야훼의 눈으로 보니 안쓰럽고 장하고 고마운 존재들이다. 혼자 고군분투 하는 것이 아닌 야훼께서 함께하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도 믿어주고 격려해 주고 기도로 응원해 주자. 상대방이 문제를 만날 때마다 놀라지 말고 뒤로 물러서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도록! 3월 출발은 그렇게 해보자. Think! Thank! Q1. 당신의 눈이 머무는 사건은 무엇인가요? Q2. 그 사건을 ‘때문에’와 ‘덕분에’로 나누어 서술해 보세요. 예) 편식하는 아들 때문에 → 편식하는 아들 덕분에 김선희 교수(교육학 박사)
  • 2024.03.0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고전(古典)에서 길을 찾다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성장』 고든 맥도날드
  • 쫓겨 다니는 사람인가 부름 받은 사람인가
    정원을 가꾸다보면 손이 많이 가는 튤립이 있는가 하면 구석 어디에선가 꿋꿋하게 존재감을 잃지 않는 국화도 있다. 우리의 서재에도 깊숙이 먼지 가득한 책, 평소에 손이 잘 안가지만 꼭 읽어야 하는 책들이 있다. 닐 앤더슨의 ‘내가 누구인지 이제 알았습니다’와 고든 맥도날드의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성장’. 두 책 모두 마음치유(Inner Healing) 입문자에게 필독서이다. 저자는 책 앞부분에서 중요한 질문을 한다. 우리는 무엇엔가 늘 쫓겨 다니는 사람(driven people)인가? 아니면 주님의 은혜로운 부르심을 받아들이는 부름 받은 사람(called people)인가? 전자는 우리의 내면을 무질서하게 만들고 힘들게 한다. 고든은 자신의 탈진 경험을 언급하면서 그날을 ‘벽에 부딪힌 날’이라고 지칭한다. 타고난 재능으로 빠른 출발을 했고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지만 내면은 무너져 내려 웅덩이에 빠진 상태였다. 탈진 상태에서 저자는 의도적(intentionality)으로 내면세계의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권고한다. 함몰 웅덩이 증후군, 내면세계의 조종실에 이상이 생기면 나타나는 탈진, 신경쇠약, 분노의 폭발 등 쫓겨 다니는 자가 드러내는 경향은 다양하다. 쫓겨 다니는 사람은 오직 무엇인가를 성취했을 때만 만족감을 느낀다. 그것은 일시적이다. 또한 통제되지 않는 강한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분노는 보너스이다. 성경에는 사울의 분노가 폭발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는데 그는 난폭한 행동을 하고 나서 곧 비통한 자기 연민에 빠지곤 했다. 그는 애초부터 쫓겨 다니는 사람이었고, 단 한번도 내면세계의 질서를 가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면세계의 질서를 잡아가면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덕목이 영적성장이다. 저자 고든은 하나님의 음성 듣기, 사색과 묵상 그리고 중보기도를 강조한다. 영적성장은 외부로의 뛰쳐나감이다. 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에서 이것을 ‘내면으로부터 외부로 향하는 접근’(inside-out approach)라고 부른다. 바울은 쫓겨다니던 사람이었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을 때 내면세계의 극적 해방감을 맛보았다. 쫓겨다니는 사람이 부름 받은 사람으로 변화된 것이다. 바울은 결코 영적성장을 놓치지 않았다. 이 책은 부름 받은 사람으로서 갖추어져 가야하는 덕목들을 우리에게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반면에 다시 한번 엄격하게 묻는다. 여전히 쫓겨다니는 삶을 자기변명으로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지. 임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군산교회 담임)
  • 2024.07.12 / 이미나 기자

    『허드슨 테일러의 생애』 하워드 테일러
  • 기도 하나만으로 하나님 통해 사람을 움직인다
    중국내륙선교사로 평생 헌신했던 허드슨 테일러. 이 책은 그의 아들 하워드 테일러가 아버지에 대해 쓴 선교 필독서이다. 선교사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신앙생활의 풍요로움을 주는 고전중의 고전 『허드슨 테일러의 생애』를 만나보자. 이 책의 두 가지 키워드는 ‘고난을 통한 믿음의 성장’과 ‘기도를 통한 역사’이다. 허드슨 테일러의 중국 선교 준비 과정은 어려움 자체였다. 환경적인 불편함과 경제적인 궁핍이 그의 출발을 가로막았다. 의학생이던 그는 매일 병원에서 집까지 13㎞를 걸어 다녀야 했고 수개월 동안 흑빵과 사과를 주식으로 먹어야했다. 모든 공급원이 차단되고 극한 외로움에 처하면서 그는 한 가지 원리에 매달렸다. “기도 하나만으로 하나님을 통해 사람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아무런 연고도 없던 중국 내륙 선교를 위한 비법을 그는 고난을 통해 습득했던 것이다. 허드슨 테일러의 비범함은 책 곳곳에서 나타난다. 그는 최고를 지향하는 신앙을 가지고 살았다. 순간순간 하나님을 의식하며 믿음을 키워나갔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없다면 태양 없이 사는 것과 같고 주시는 능력을 거부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절대적으로 그리스도의 무한한 풍부함을 의지했다. 그런 그가 믿음의 진보를 이루기 위해서 수많은 고통의 순간과 고난의 시간을 지나야 했음이 구절구절마다 책 깊이 스며져 있다. 선교의 지치지 않는 힘은 그렇게 준비됐다. 그가 이것을 어떻게 실천했는지를 책은 담담히 증언하고 있다. 우리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지난 팬데믹은 우리를 고민하게 했다.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했고 패러다임의 전환을 받아드렸다. 교회들도 프로그램과 이벤트에서 전인적 돌봄과 훈련으로 변화를 모색했다. ‘다시 선교적 교회’개념으로 지역사회를 품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시도 또한 매우 긍정적이다. 이 시점에서 기도의 사람 이 엠 바운즈(E.M.Bounds)의 책 추천사는 그래서 값지다. “교회는 더 나은 방법을 구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더 나은 사람을 구하신다”. 생육조건에 맞춰 키우려면 손이 많이 가는 게 튤립이다. 이 책은 아름답게 피는 과정을 적절하게 제시하고 있다. 임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군산교회 담임)
  • 2024.05.09 / 이미나 기자

    앤드류 머레이 『완전한 순종』
  • 지식과 교훈보다는 구원의 은혜로 읽는 책
    영국 저널리스트 에드 콘웨이의 책 『물질의 세계』에 보면 모래 없이 반도체나 스마트폰은 존재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모래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과 순종을 통해 삶을 이끌어 가신다. 완전한 순종은 어떤 차원일까. 오래 끓여낸 곰탕처럼 요한복음 15장에서 『완전한 순종』을 한 그릇 내놓는 앤드류 머레이를 만나보자. 99%의 순종은 불순종이다. 머레이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들어 순종을 설명한다. 가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가지인 우리는 포도나무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해야 한다. 우리가 자신의 뜻대로 살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복을 구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성령께 복종함’이라는 소단원에서 머레이는 그 원리를 더욱 부각시킨다. 해답은 간단명료하다. 기차의 선로가 바뀌었을 때는 원래 지점으로 다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갈라디안 교인들이 온갖 종교적인 노력을 기울였던 데서 돌이키고, 자기 능력으로 일하여 자신들을 위해 추구하여 나갔던 데서 돌아서 겸손히 성령님께 굴복하는 것이다. 우리 개인에게도 이 외에는 길이 없다고 전동드릴로 못박듯 저자는 강조한다. 베드로와 바울을 예로 든다. 자기 뜻대로 하며 자기를 사랑하던 베드로가 어떻게 해서 오순절의 사도가 되었고 서신서의 저자가 될 수 있었나? 먼저 순종하신 주님의 모습에 통곡했던 베드로에게 오순절 성령이 임하자 성령 충만한 자로 변화되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 4:14)고 말하는 베드로의 변화는 명확하다. 바울이 아시아로 들어가려는 길이 막히고 유럽으로 가도록 인도를 받은 일은 성령께서 그의 인도자로 앞서가셨기 때문이다. 에릭 리들이 파리 올림픽에서 보여준 순종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그 후 그가 중국선교사로 일평생 섬길 수 있었던 것도 성령님께 완전히 사로잡혔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머레이는 ‘종교적인 육신’(religious flesh)을 경계한다. 나의 의지, 노력이 나의 종교생활에서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머레이의 당부는 세이공청(洗耳恭聽)해야 한다. “만일 하나님의 자녀가 어떤 진리들을 좀 더 분명하게 알기 위해 이 책을 읽거나,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훈을 얻기 위해서 이 책을 읽는다면 그는 틀림없이 실망할 것입니다. 그는 죄인으로서 죄에서 구원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야 합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복을 받을 것입니다.” 임 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군산교회 담임)
  • 2024.04.12 / 이미나 기자

    고민 Tick, 상담 Talk
    원망하는 마음과 우울의 처방전은 ‘시편 23편’
  • 치유와 회복의 역사 일어나
    ▶ 고민 Tick 저는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일찍 돌아가셨지만 삶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를 너무 일찍 데려가신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우울해지는 마음에서는 아직까지 자유롭지 못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 원망과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 상담 Talk 스위스의 의사이자 기독교 상담사였던 폴 투르니에(Paul Tournier, 1898~1986)는 그를 찾아오는 노이로제 환자들과 우울증 환자들에게 시편 23편을 하루에 6번 읽으라고 처방한 것으로 유명하다. 투르니에는 환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면서 약을 먹는 것처럼 시편 23편을 읽게 했다. “시편을 하루에 아침 2번, 점심 2번, 저녁 2번씩 6번 읽으십시오. 이 처방대로 하여야 당신의 병이 나을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가장 먼저 시편 23편을 읽어야 합니다. 읽을 때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침부터 마지막 잠자리 들기 전까지 최소 6번을 읽어야 합니다. 분주하다고 너무 빨리 생각 없이 읽으면 안 됩니다.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을 본인에게 적용하고 음미하면서 의미를 최대한 머리와 마음속에 새겨야 합니다. 이렇게 일주일만 지속하면 당신의 증상은 분명히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투르니에의 처방대로 순종한 환자들에게서는 마음의 병이 떠나가기 시작했다. 투르니에는 스위스의 의사이자 기독교 상담사이며 작가였다. 그가 시편 23편을 처방한 것과 같은 기독교 상담사로서 이룩한 그의 업적 때문에 그는 세계적으로도 명성을 얻었다. 투르니에의 연구와 임상은 기존의 일상적인 환자 돌봄에서 더 나아가 영적 및 사회심리적인 관점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타내는데 매우 중요한 사례가 되었다. 그리하여 투르니에는 20세기에 가장 유명한 기독교인 의사로도 알려져 있다. 투르니에는 목사님인 아버지 루이스 투르니에와 어머니 엘리자베스 오르먼드 사이에서 태어났다. 투르니에의 아버지는 세인트 피터 교회당의 존경받는 목회자였으나 투르니에가 태어난 지 100일이 되기 전인 3개월 때, 투르니에가 6살 때는 어머니가 유방암으로 42세 이른 나이에 소천했다. 6세에 고아가 된 투르니에와 10살 누나는 함께 그의 삼촌과 숙모에게 양육을 받았다. 부모님 모두를 아동기 전에 잃게 되는 인생 중 가장 큰 상실과 고통의 경험은 그에게 삶에 대해 늘 깊이 묵상하도록 만들었다. 부모를 모두 잃은 사춘기의 투르니에는 외롭고 수줍음이 많은 소년이었다. 그는 수학과 헬라어에 뛰어난 자기의 지적인 면들 뒤로 숨어서 자신의 불안 증상을 숨기면서 청소년기를 보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삼촌, 숙모, 누나의 돌봄 가운데 잘 성장하였고 말씀 묵상과 기도 가운데 하나님 앞에 자신의 상실을 애도하고 불안 감정을 내어놓은 체험을 바탕으로 크리스천 의사이며 기독교 상담가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이후 성숙해진 투르니에는 1923년 제네바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고 스위스 학생 운동 회장 역할도 하였으며 적십자 대표가 되어 비엔나에 있는 러시아 포로들의 본국 송환을 돌보기도 하였다. 투르니에는 말씀 중심의 개혁 신앙에 관하여서도 깊이 연구하였기에 세계교회협의회에서도 활동하였으며, 본인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경험을 토대로 기독교 상담의 획기적인 관점을 제시하였다. 부모님 두 분을 영유아기에 잃고 상실과 허무감으로 인생을 허비하며 우울과 불안장애에 사로잡혔을 수도 있었을 그가 자신에게 적용하여 치유 받은 말씀이 시편 23편이었을 것이다. 다윗이 시편 23편을 쓸 때는 셋째 아들 압살롬이 자신을 배신하고 쿠데타를 일으켜 쫓기는 신세였다. 그러나 다윗은 아들을 원망하지 않고 절망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부르며 시편 23편을 쓴다. 투르니에도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일찍 데려가신 하나님을 원망하고 절망하기보다는 야훼께서 자신의 목자이시기에 부족함이 없음을 고백하는 삶이었다. 그는 평생에 야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그를 따르며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직접적인 체험을 환자들에게 나누었을 때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원망과 우울이 찾아올 때 시편 23편을 투르니에의 처방처럼 잠에서 깨자마자, 아침, 점심, 저녁, 자기 전에 깊이 묵상하며 자신의 노래로 부를 수 있다면 절대로 마음과 영혼의 병이 찾아올 수 없는 백신을 맞는 것과 같을 것이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 23:1~6). 박은정 교수(목회상담학)
  • 2024.07.1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부모의 욕심 내려놓으면 하나님의 자녀 양육 시작된다
  • 청소년 자녀의 신앙 발달 또래 예배에서 성장
    ▶ 고민 Tick 저는 부모님께서 신앙생활을 반대하셔서 혼자 주일학교 때부터 청년부까지 교회 어른들의 지지와 격려를 받으며 자란 후 청년부에서 만난 자매와 결혼을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청소년이 된 자녀를 양육하는데 있어 아내와 신앙 교육 가치관의 갈등을 심하게 겪고 있습니다. 아내는 본인이 청소년기에 교회에서 봉사를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원하는 대학에 진학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내는 자녀들이 교회 학생회 임원을 맡는 것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아내와 달리 저의 경우에는 오히려 교회에서 학생회 임원을 하며 자존감이 높아져서 학교 발표 수업 등에서 좋은 성적을 얻어서 대학 진학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녀들이 교회 학생회 임원으로 봉사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하고 있습니다. 아내와 저의 신앙 교육 가치관이 이렇게 다르기에 자녀들은 더 혼란을 겪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상담 Talk 먼저 두 분은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본인들에게 맡기신 독립적인 존재들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본인들의 청소년기를 대변하는 존재들로 잘못 인식하시는 것 같습니다. 청소년기 자녀들은 이제 부모의 가치관으로부터 영향을 받기보다는 또래집단이나 공동체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으며 가족 외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에 예민한 시기입니다. 이는 심리사회발달단계 연구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에릭 에릭슨(Erik Erikson, 1902~1994)이 강조한 청소년기의 주요 발달 특징입니다. 에릭슨은 본인의 이론을 심리 사회적(Psycho Social) 발달이론이라고 명명하고 심리 요인과 사회 문화적 요인이 개인의 심리 문화적 발달에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보고합니다. 개인은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아의 형성(formation of self) 과정에 있으며 자아는 물리적, 심리적, 사회문화적 요소들이 상호관계를 갖게 됩니다. 즉 자녀들의 발달은 그들이 속한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영유 아동기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대상들은 부모이며 가정입니다. 영유 아동에게는 교회교육과 함께 가정에서 부모의 신앙생활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습니다. 하지만 청소년기 자녀들의 경우에는 전혀 다릅니다. 에릭슨은 12~20세를 청소년기로 규정하고 이 시기에는 자아정체성과 역할혼돈 사이에서 힘들어하는 것이 정상적인 발달 특성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청소년들은 이전 발달 단계인 아동기까지 주로 부모의 가치관에 맞춰서 양육되었지만 청소년기부터는 동료집단과 외부집단의 가치관에 의해 결정하고 행동합니다. 에릭슨은 특히 청소년기에 갖추어져야 할 덕목으로 ‘충실’과 ‘충성’을 손꼽았습니다. 청소년들은 교회 학생부에서 친구들과 함께 말씀을 듣고 찬양, 기도하면서 학업, 부모, 친구관계에서의 어려움에 대하여 충분히 공유할 수 있을 때에 더욱 충실하고 단단한 신앙인으로서의 우정을 쌓게 됩니다. 이러한 신앙발달단계는 하나님을 향한 개인 신앙의 충성심으로 연결되며 이때야말로 평생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토대가 세워지는 너무도 중요한 시기입니다. 에릭슨은 각 발달 단계에는 위기(Crisis)가 있는데 청소년기는 호르몬의 변화로 겪는 생리적인 성숙의 속도와 가정, 학교, 교회에서의 요구 때문에 겪게 되는 위기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따라서 개인의 성격이 결정된다고 보았습니다. 청소년기부터는 또래들과 함께 경험하는 교회 교육에서 본인의 신앙과 인격 발달의 토대가 형성됩니다. 그런데 영유 아동부까지는 주일학교에 잘 다니다가 청소년기부터 학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자녀가 학생회에 나가지 않는 것을 부모가 허용한다는 것은, 이후 자녀의 신앙이 자기 자신의 신앙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단계를 포기하도록 버려두는 영적인 방치입니다. 종교 발달학자로 저명한 로널드 골드만(Ronald Goldman)도 청소년 시기에 들어서면 진리의 의미 탐구가 가능하며 종교의 추상적 개념에 대한 이해가 가능한 시기이기 때문에 절대로 신앙생활로부터 멀어지면 안 된다는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골드만은 청소년들이 교회를 ‘믿는 자의 친교’라는 공동체로 받아들이며 공동 예배를 교회의 주요 기능으로 받아들이는 시기이므로 공동체 의식과 소속감을 부여하는 것이 이후의 인간관계 경험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고민하는 자녀에게 가장 큰 선물은 신앙의 유산을 통해 평안을 누리며 세상을 이기도록 기도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박은정 교수(목회상담학)
  • 2024.05.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청년기의 기독교 진로코칭 상담
  • ▶ 고민 Tick 저는 정말 어렵게 신학교에 다니게 되었지만 앞으로 잘 해낼 수 있을지 고민이 많습니다. ▶ 상담 Talk 왕따와 부적응 문제로 청소년 상담을 받고 잘 회복되어 대학을 무사히 졸업한 한 청년의 신청으로 기독교 코칭 상담을 진행했다. 청년은 어린 시절부터 섬기던 교회 상황이 어려워지자 솔선수범해 목사님과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을 도왔다. 목사님과 교인들은 청년에게 신학교에 입학해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함께 도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지속적으로 제안했다. 하지만 청년은 사역자의 길이 부담되고 자신이 없었다. 기도도 해 보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묵묵부답이셨다. 청년의 부모님께서는 자녀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역자의 길을 가주었으면 하는 서원을 하셨다. 그러나 부모님의 서원이 곧 본인의 서원은 아니라고 청년은 강하게 부인했다. 청년은 교회 공동체에 갈등이 있을 때마다 교회 중직자인 부모님이 많이 힘들어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저렇게 힘든 길인데 부모님은 왜 나한테 사역자의 길을 가라고 하시지?”라는 질문 때문에 계속 마음이 힘들었다고 한다. 필자는 청년에게 그 부분에 대하여 부모님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했다. 청년은 사역자 이야기만 나오면 어색해지기 때문에 한 번도 진지하게 부모님과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필자는 청년에게 사역자 비전에 대하여 부모님과 진지하게 대화해 볼 것을 제안한 후 다음 상담 시간에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청년은 유치부 시절 부모님께 “저는 교회에서 매일 살고 싶어요! 전도사님, 목사님이 제일 멋있어서 꼭 나중에 목회자가 될 거예요!”라면서 매주 목청껏 외쳤다는 것이다. 그런데 청년은 부모님께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유치부에서의 기억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가만히 기억을 되짚어보니 본인이 그런 말을 하였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럼 왜 청년은 유치부 시절 기억을 까맣게 잊어버렸을까? 청년은 교회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었기에 유치부 때 행복했던 기억마저도 무의식 깊은 곳에 묻어놓고 주일학교 전체 생활이 불행했던 것으로 왜곡되게 단정 지었던 것이다. 다행히 청년부에서는 좋은 사역자와 담당 장로님을 만나 교회 공동체에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청년은 어린 시절 여름성경학교와 크리스마스 전야제 등에서 행복하게 미소 짓는 본인의 사진들을 찾아 부모님과 추억을 나누고 다시 가정예배를 회복했다. 청년은 유치부까지는 부모님과 가정예배를 드렸으나 본인이 초등부와 중고등부 때 교회 나가는 것이 어려워지자 가정예배 드리기도 거부한 것이다. 부모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후 청년의 마음에는 평안이 찾아왔다. 부모님의 서원도 부담으로만 느껴졌다가 본인을 가장 사랑하는 분들의 기도로 느껴졌다. 애너 마리아 리주토(Ana-Maria Rizzuto)는 『살아있는 신의 탄생』이라는 저서에서 개인이 생의 초기에 맺은 인간관계들을 토대로 하나님 이미지를 채색하고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를 맺을지 결정한다고 했다. 자녀는 부모의 시선과 얼굴을 자신의 마음을 비추어주는 거울로서 경험하면서 자신의 신 표상을 경험하는 매개물로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청년은 상담 과정을 통해 부모님과의 진심 어린 대화를 시작했다. 그 후로는 그를 사역자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말씀과 기도, 찬양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 후 용기를 내어 시험을 준비하고 신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여전히 청년은 초중고 시절 겪은 교우관계의 어려움이 트라우마가 되어 신학교에서도 다시 반복될까하는 두려움이 남아있었다. 기독교 코칭 상담의 방법으로 청년에게 어떤 부분이 가장 두려운지 물어보았을 때 청년은 수업 시간에 앞에 나가서 발표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고백했다. 그 두려움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물어보았을 때 학창 시절 앞에 나가면 몸이 얼어버리는 것 같았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상담 과정 가운데 청년은 대표기도, 설교, 발표를 하기 전 속으로 잠깐 기도한 후 일어서서 직접 청중 앞에서 하는 것처럼 연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청년은 연습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 본인과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경험하며 용사가 된 듯 마음에 용기가 가득 찼다고 했다. 상담 종결 후 신학교에 입학하여 개강을 맞이한 청년은 새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고 좋은 교수님들과 학우들도 많이 만났다는 반갑고 감사한 문자를 보내왔다. 이제 앞으로 조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하면 마귀가 ‘간계’를 행사한다는 것이다. ‘간계’는 ‘간사함’, ‘꾀’, ‘모략’이라는 의미이다. 마귀의 ‘간계’를 대적하고 하늘의 악한 영들과 담대히 싸우기 위해서는 말씀과 기도로 그리스도를 입고(갈 3:27), 하나님의 갑옷(사 59:17)을 입어야 한다. 지금처럼 악한 날에는 모든 가족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만 우리 모두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엡 6:11). 박은정 교수(목회상담학)
  • 2024.04.1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신앙으로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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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출현은 새로운 문명 시대를 열어왔습니다. 학자들은 ‘말’의 발명으로 수렵, 채집 생활이 시작된 1단계, ‘글’의 발명으로 농경사회가 형성된 2단계, ‘인쇄’의 발명으로 산업사회가 본격화된 3단계, 컴퓨터와 결합한 ‘텔레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등장으로 정보사회가 펼쳐진 4단계로 역사 발전과정을 설명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챗GPT’ 등 인공지능, 블록체인, 가상현실과 같은 디지털 범용 기술들이 새로운 4차 산업시대에 선도적 역할을 담당해 나가리라 예측됩니다. 되돌아보면 인터넷, 휴대폰 등 뉴 미디어의 확산은 커뮤니케이션 활동에 획기적 변혁을 초래했습니다. 우선 인터넷은 탁월한 개방성으로 공간의 제한을 무력화시키고 명실상부한 ‘지구촌 공동체’를 실현해 냈습니다. 또한 개인 미디어와 매스 미디어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함으로써 ‘공공영역’과 ‘사적영역’의 구분을 일시에 무너뜨렸습니다. 이 결과 많은 사람들은 IT기술과 접목된 뉴미디어의 등장이 ‘표현의 자유’에 있어 무한한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바람은 상당 부분 실현됐습니다. 하지만 이면에서는 간과할 수 없는 부작용 또한 생겨났습니다. ‘가짜뉴스’는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실제로 현대사회에서 미디어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막강합니다. ‘교과서’며 ‘재판관’이고 ‘세상을 향한 창’입니다. 실제로 영유아들은 부모나 교사보다 TV나 유튜브를 통해 먼저 세상을 배워 나갑니다. 선과 악, 정의와 불의가 언론의 잣대에 의해 규정됩니다. 또한 개인들은 미디어가 설정해 놓은 프리즘을 통해 외부 환경을 파악하고 사회 현안을 해석합니다. 한 마디로 ‘가짜뉴스’란 ‘뉴스의 형태를 띠지만 실체는 사실이 아닌 거짓된 뉴스’(fake news)를 의미합니다. 이는 언론 매체에 대한 사회 일반의 기본적 신뢰를 숙주로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진실을 조작해 이익을 챙기려는 불순한 시도입니다. 이런 행태는 근래 SNS상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터넷의 기술적 특성으로 인해 뉴스를 취사선택하는 ‘게이트 키핑’(gate keeping)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편집 통제권’(editorial control) 없이 ‘이용자 통제권’(user control)만 존재함을 악용해 가짜뉴스 제작 배포, 마녀사냥식 신상 털기, 테러 수준의 명예훼손 등이 거침없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가짜뉴스를 정치적 선동의 수단으로 삼기도 하고, 가공된 뉴스를 활용해 주식시장을 흔들려 한 사례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유튜브 등 개인 미디어의 경우는 ‘조회’와 ‘구독자’ 수가 수익과 직결되는 구조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반인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선정적 내용으로 꾸며진 괴담 수준의 가짜뉴스가 경쟁적으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강하고 자극적인 발언을 할수록 보상이 올라 간다”는 것은 이미 통설이 됐고, “유명해진다면 무엇이라도 하겠다”는 노이즈 마케팅이 일반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정착되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가짜뉴스가 지닌 신속한 전파력입니다. 미국 MIT 공대 연구진에 따르면 자극적인 가짜뉴스는 일반적 뉴스에 비해 전파 속도가 평균 6배 빠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의표를 찌르는 폭로성 뉴스, 험담과 막말이 섞인 특정인에 대한 인신공격에 더욱 솔깃해하는 인간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언론 자유를 신장시킬 것이라고 기대했던 디지털 공간에서 이처럼 민주 질서를 위협하는 행태들이 거리낌 없이 자행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개탄스럽습니다. 지금이라도 윤리와 규범을 바로 세우고 사용자들의 책임 의식을 거듭 깨우쳐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밀려오는 정보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변별력’을 길러나가는 일입니다.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교육을 통해 초등학교 때부터 각종 매체가 전달하는 내용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는 힘을 키워나가는 것도 효과적 방안이 될 것입니다. 특히 크리스천들에게는 이 같은 여과 능력의 함양이 더욱 절실히 필요합니다. 성경은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벧전 5:8~9). 온라인을 이용해 범람하는 온갖 반기독교적 정보에 올바르게 대처하기 위해 예리한 통찰력과 분별력을 갖춰 나가야 할 것입니다. 필자는 오늘 이 지면을 빌려 혼탁한 미디어 환경 속에서도 의연히 기독 언론의 정도를 걷고 계신 <순복음가족신문>에 새삼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이 신문은 저희가 온 마음 바쳐 사랑하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정체성을 지키는 보루이며, 곳곳에 고귀한 땀과 눈물이 배어있는 생생한 ‘교회행전’입니다. 지난 2년 이 귀중한 신문에 부족한 제가 신앙 시사칼럼을 게재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외람되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 올리며, 한결같이 따뜻한 격려를 보내주신 신문사 여러분과 졸문을 읽어 주시고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영광과 찬송을 주님께! 할렐루야! 김성동 장로(전 국회의원)
  • 2023.02.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한글, 빛나는 우리의 보물
  • 한국어 학습자가 폭발적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10일 코리아헤럴드가 교육부 자료를 입수해 보도한 바에 의하면 지난해 말 현재 한국어를 외국어 선택 과목으로 채택한 곳은 세계 42개국 1806개 초 중학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3년 만에 40%가 급증한 수치입니다. 온라인상에서의 한국어 열기 또한 뜨겁습니다. 5억 명 회원을 둔 글로벌 외국어 학습 서비스 ‘듀오링고’는 최근 ‘2022년 듀오링고 언어 리포트’를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한국어 학습자는 1070만 명으로 전년 대비 29%가 증가, 수강자 수가 많은 언어 순위 5위에 올랐습니다. 이처럼 한국어에 대한 관심과 향학열이 높아진 데는 물론 ‘한류 열풍’이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한글’ 자체가 지닌 문자로서의 탁월성과 매력입니다. 실제로 한글은 여러 ‘소리글자’ 가운데서도 가장 발달한 ‘음소문자’입니다. 열 자의 모음, 열 네 자의 자음, 27종의 받침을 활용해 수천 개의 말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같은 음소문자로서 세계 공용어화 되어 있는 영어와 견주어도 효율성이 월등합니다. 영어는 인쇄체와 필기체가 다르며, 대문자와 소문자가 구분되고, 꼭 글자대로 읽혀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발음기관과 발음 작용을 본떠 만들어진 한글의 과학성은 정보화 시대의 진전에 따라 더욱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휴대전화의 자판을 보면 하늘을 뜻하는 ‘·’, 땅을 뜻하는 ‘ㅡ’, 사람을 뜻하는 ‘ㅣ’ 석자로 수십 가지의 모음을 다 적을 수 있습니다. 자음은 동일한 자판을 한 번씩 누를 때마다 예삿소리(ㄱ)→거센소리(ㅋ)→된소리(ㄲ) 순으로 변환돼 간단한 조작으로 모든 글자를 쉽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뛰어난 한글의 편이성이 우리의 높은 휴대전화 보급률과 선도적 기술축적을 가능케 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아울러 한글은 ‘배우기 쉽다’는 특장을 지니고 있습니다. 문자를 만든 원리와 사용법을 정연하게 설명한 『훈민정음해례본』의 서두에서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의 동기를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즉 “나라의 말이 공용되는 한자와 통하지 않아 백성들이 제 뜻을 능히 표현하지 못하는 실정임을 긍휼히 여겨 쉽게 익혀 편하게 쓸 수 있는 스물여덟 자를 새로 만든다”는 내용입니다. 이 점을 당시 예조판서 정인지는 보다 실감 있게 설명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다….” 한글은 이런 세종대왕의 애민정신과 자주적 실용주의가 투영돼 구성원리가 간명하고 배우기 쉽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가 주목하는 ‘문맹 퇴치 신화’를 이룩한 배경도 여기에 있습니다. 특히 ‘습득의 용이성’이라는 한글의 장점은 복음 전파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한글로 번역된 『성경』은 전도의 사명으로 무장한 기독교인들에 의해 지역, 신분, 성별의 구별 없이 두루 보급되고 읽혀졌습니다. 그들은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한글을 가르쳐가며 전도했고, 신앙을 가지려는 사람들은 성경을 읽기 위해 한글을 배웠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학자들은 “한글이 진정한 우리 언어로 빠르게 자리 잡는 데 성경이 큰 역할을 했다”고 강조합니다. 국민일보 우성규 기자의 언급대로 “한글 성경과 찬송가의 보급으로 한반도는 문맹에서 벗어났고, 이를 통해 전해진 복음의 메시지는 한국교회 예배와 신앙생활의 중심이 됐던 것”입니다. 이처럼 소중한 한글임에도 근래 우리 사회의 한글 홀대는 선을 한참 넘어섰습니다. 온갖 은어, 비어, 속어, 정체불명의 약어와 합성어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은 물론 공공 방송에서조차 한글 규범 파괴가 거리낌 없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분단 78년의 세월이 초래한 남북한 간의 언어 이질화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민족의 명절인 ‘설’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남북이 함께 기념하는 절기가 점차 사라지는 추세에서 ‘설날’은 지금까지 우리 겨레가 공유하는 몇 안 되는 명일(名日)입니다. 궁극적인 ‘남북통일’은 단순한 ‘제도적 통일’을 넘어 ‘사람 간의 통합’에까지 이르러야 완성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세시풍속의 존속과 공유는 통일 여정에서 의미 있는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언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말과 글은 다름 아닌 생각과 정신의 반영입니다. 따라서 동일한 말과 글을 사용한다는 사실은 민족공동체로서 기본적 공감대의 토대가 이미 마련돼 있음을 뜻합니다. 그렇기에 이 기반이 더이상 허물어지지 않도록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남북한 언어 이질화의 방지 대책이 시급히 강구돼야만 할 것입니다. 두말할 나위 없이 한글은 빛나는 우리의 문화 자산입니다. 겨레의 보물인 우리말, 우리글을 바로 지키고 가꾸어 나가기 위해 온 국민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크리스천들은 성경을 사랑하는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과의 귀중한 소통 매체인 한글에 대해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합니다. 한 나라의 언어가 역사와 문화의 창고를 여는 관건이듯이 성도들에게 한글은 은혜의 보고인 성경을 여는 소중한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김성동 장로(전 국회의원)
  • 2023.01.13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카타르의 낭보
  • 2002년 한·일 월드컵은 한국 사회를 그 이전과 이후로 구분 짓는 의미 있는 분수령이 됐습니다. 사실 한국 축구대표팀은 1954년 제5회 스위스대회에 첫 출전한 이래 다섯 번이나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음에도 단 1승을 거두지 못하고 있던 형편이었습니다. 하지만 6월 4일 첫 경기에서 폴란드를 2대 0으로 꺾은 후 강호 포르투갈, 이탈리아, 우승 후보 스페인까지 연달아 격파하며 4강에 오르는 대이변을 연출했습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이 기간 모두에게 축구는 ‘그냥 축구’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팀의 경기를 매개로 빨간색 티셔츠를 입은 수백만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광장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함께 춤추고 함께 함성을 질렀습니다. 세계적 명물로 자리 잡은 자생적 ‘길거리 응원’의 시작이었습니다. 한국 축구의 4강 신화에 세계가 놀랐지만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우리 스스로였습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자신감, 동시대를 살아가는 국민적 유대감을 새롭게 발견하는 기회가 됐습니다. 이 열기는 IMF 경제위기 극복, 폭발적인 참여민주주의 확대, 창발적인 한류 문화 확산으로 이어지며 우리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2022년, 제22회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은 또 한 번의 기적을 일구어냈습니다. 통계전문가들의 ‘16강 진출 가능성 9%’의 예측을 여지없이 깨뜨린 이 반전 드라마는 투철한 ‘원팀 정신’으로부터 비롯됐습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을 위시한 코치진과 27명의 선수들이 똘똘 뭉쳤습니다. 그 결과 경기장을 종횡무진 누비는 한국형 ‘빌드업 축구’가 가능했고, 어떤 팀과 맞붙어도 밀리지 않는 강인한 뚝심이 발휘될 수 있었습니다. 구성원들 간의 신뢰 역시 돋보였습니다. 특히 주장 손흥민 선수의 리더십은 발군이었습니다. 그는 월드컵을 3주 앞두고 소속팀 경기에서 당한 안와골절로 안면 보호대를 착용한 채 전 경기를 소화했습니다. “불편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3년간 마스크를 쓰고 계신 국민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고 의연히 대답했습니다. 개막 전 “단 1%의 가능성이 있어도 앞만 보고 달려가겠다”며 부상 투혼을 예고했던 그는 약속대로 “몸이 부서지도록” 뛰었습니다. 실제로 H조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벼랑 끝에 몰렸던 한국팀은 후반 추가시간 손흥민-황희찬으로 연결된 극적인 역전 골로 포르투갈에 2대 1 승리를 거두며 16강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16강전 진출이 확정된 직후 권경원, 조규성 선수는 관중에게서 건네받은 태극기를 펼쳐 들었습니다. 그 안에는 눈길을 사로잡는 뚜렷한 한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본래 프로게이머 김혁규 선수가 7수 끝에 세계 대회를 제패하며 했던 이 말은 다시 새롭게 부각되며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우선 대회 내내 보여준 대표팀의 모습이 압축된 표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흔들리는 이 세대에게 던지는 속 깊은 응원의 뜻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정 우리 팀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선제골을 허용하고도 위축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불퇴전의 투혼으로 국민들의 가슴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기간 특별히 우리 팀의 경기가 열렸던 13일간 축구 덕택에 대한민국은 모처럼 하나가 됐습니다.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도전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모두에게 커다란 감동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대표팀의 선전은 코로나 블루, 경제 한파, 잦은 사회적 갈등으로 침체돼 있던 한국 사회에 심기일전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어느덧 한 해의 끝자락에 섰습니다. 또 한 번의 ‘송구영신’의 시간을 맞으며 영혼과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을 때입니다. 성경은 신앙생활을 경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 9:24). 우리 선수들이 월드컵 스타디움을 뛰고 달렸듯 성도들도 인생의 경기장을 달음박질하고 있습니다.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경주자처럼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저마다의 목표를 향해 인생행로를 달려가고 있습니다. 한없이 감사한 것은 이 신앙 노정에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해 주신다는 점입니다. 더욱이 주님께서는 저희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한 스타플레이어로 여겨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습 3:17)는 말씀대로 열렬한 서포터가 돼 뜨겁게 응원해 주십니다. 독자 여러분! 다사다난했던 지난 한 해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신발 끈을 고쳐 매고 힘을 내십시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스타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영원한 팬이 되어주십니다. 다가오는 2023년 새해, 예수님 안에서 항상 승리하시길 기도드립니다. 김성동 장로(전 국회의원)
  • 2022.12.1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새책소개
    2024년 『감사QT365』 하루 한 장으로 하나님과 동행
  • 매일 통독, 말씀 묵상, 말씀 필사, 감사 쓰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절대긍정, 절대감사하는 새해를 계획했다면 『감사QT365』 2024년 판을 추천한다. 이번에 발간된 『감사QT365』는 감사와 QT, 필사가 어우러져 일 년 동안 매일의 삶을 말씀으로 채우고 영적 성장에 힘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특히 이 책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돕기 위해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집필됐다. 본문을 예화 중심이 아닌 말씀 중심으로 편성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은혜로운 예화를 선별해 요약했다. 더불어 성경 말씀을 필사할 수 있는 지면과 말씀 묵상의 적용을 돕기 위한 질문을 추가했다. 또한 매달 시작점에 월별 계획표(monthly plan)를 수록해 매일 성경통독 진도를 표시할 수 있도록 했다. 이영훈 목사의 감사 목회 철학이 체험적으로 녹아 있는 365편의 묵상의 글과 은혜로운 예화들을 매일 읽고 ‘나의 감사’란에 주님께 감사할 제목들을 적어 나가다 보면 저절로 감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이영훈 목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묵상한 말씀대로 살아가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2023.12.15 / 복순희 기자

    『성경과 기독교 진실성 파헤치기』(제1권: 구약시대) (제2권:신약시대)
  •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이며 그의 죽음과 부활로 탄생한 기독교가 우주 만사의 정답이 된다. 혼란한 시대를 사는 인생들에게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다.” 이기창 공로장로(반석대교구)가 『성경과 기독교 진실성 파헤치기』(제1권: 구약시대) (제2권:신약시대)를 펴냈다. 저자는 이 두 권의 책을 통해 기독교의 교리와 성경기록은 합리적이며 과학과도 합치하며 오히려 과학을 초월하고 있음을 깊이 있게 분석해 성경과 기독교의 진리성을 논증했다. 이 책은 신, 구약 성경 전체의 핵심 내용을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관통하면서 심도 깊게 해설하고, 기독교 교리와 신앙, 신학적 논리와 이론 및 사상, 우주의 창조로부터 역사, 종말 및 미래 발생할 일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세계관을 다루고 있다. 과학자인 저자는 과학과 철학의 논리로 신의 존재로부터 우주 만물 전체를 물질우주와 정신우주로 균형있게 조망하면서 과학-철학-신학을 통섭해 교집합의 우주론을 밝혀낸다. 이런 방식으로 저자는 인류의 궁극적이고 영원한 질문인 우주, 물질, 영혼, 생명, 죽음, 사후생, 세상종말 등 빅퀘스천 규명을 추구해 나간다. 응용과학인 전자통신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공과대학 정교수를 역임한 이기창 공로장로는 교수 은퇴 후 10년간 물리학, 철학, 신학, 역사 등 인문학 연구에 몰두해 이 책을 만들었다. 그는 현대물리학에서 발견한 빅뱅 우주론과 부합하는 종교를 엄밀히 분석, 조사해 성경에 기반한 기독교만이 현대과학과 부합하는 유일한 종교로서 진실성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책을 읽다보면 기독교가 공학, 물리학 등의 과학과 철학에 합치하는 유일한 종교이며 따라서 성경과 기독교는 ‘우주적 진리’라는 결론을 깨닫게 된다. 어디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몰라 방황하는 현대인에게 추천하는 필수 교양 인문서적이다.
  • 2023.04.07 / 이미나 기자

    성공에 이르는 12가지 지혜
  • - 이영훈 목사 지음 / 교회성장연구소 - 크리스천의 삶을 성공으로 이끄는 12가지 비결 이영훈 목사 “믿음으로 꿈꾸는 자는 반드시 해낼 수 있다” 이영훈 담임목사는 성공에 대해 “정성을 다해 원하는 목표를 이루어 낸 것이 바로 성공”이라고 말하고 있다. 더불어 “성공은 이루고자 하는 꿈과 목표를 가진 자, 그 꿈과 목표를 향해 올바른 방법을 가지고 성실하게 노력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인생의 열매”라고 전한다. 이영훈 목사는 2023년을 맞이하면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주 안에서 품은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하는 지 깨달은 바를 나누고 싶은 바람을 품었다. 그 바람은 신년 축복 열두 광주리 새벽기도회를 통해 ‘성공에 이르는 12가지 지혜’ 주제의 설교로 이어졌고 이 책은 이를 토대로 집필됐다. 혼란의 시대, 격변하는 세태 속에 모든 사람들은 예측할 수 없는 불안으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때에 가정과 일터, 교회 등 삶의 영역에서 믿음을 지키고 성공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크리스천들에게 이 책은 온전한 믿음과 인생의 성공 비결을 알려주는 안내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주 안에서 품은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성공의 지혜를 12개의 주제로 다룬다. “꿈꾸는 자가 되라, 위로부터 임하는 능력을 소유하라, 절대긍정의 믿음을 소유하라, 장애물을 뛰어넘어라,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건히 서라, 분명한 자화상을 가져라, 기도의 사람이 되라, 시간의 관리자가 되라, 자기를 계발하라, 삶의 자세를 바꿔라, 사명에 붙들려 살라, 존경받는 리더가 되라.” 이영훈 목사는 무엇보다 말씀 위에 굳건히 서서 믿음으로 꿈꾸는 자는 반드시 해낼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책에는 12가지 성공의 지혜와 방법을 체크 리스트와 함께 제시해 인생에서 회복해야 할 것을 찾아 바로잡도록 하며,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더 나은 미래로 도약할 수 있는 성공 다이어리도 적어보도록 구성됐다. 세상을 살아갈 용기와 삶의 터닝 포인트가 필요하다면 이 책을 따라 삶을 관조하고 재정비해보면 어떨까? 단호하지만 진정 어린 저자의 조언은 삶의 무게에 지친 그리스도인들에게 생각 전환의 기회를 만들어줄 것이다.
  • 2023.03.17 / 복순희 기자

    문화계 소식
    [영화 소개] 천성가는 밝은 길이
  • 사형수들의 아버지로 불렸던 박효진 장로의 간증을 토대로 제작한 ‘천성가는 밝은 길이’ 영화가 지난 4월 유튜브에 올라 큰 감동을 주고 있다. 박 장로는 전직 교도관 출신으로 사형수들에게 복음을 전한 전도자다. 그의 간증은 사형장에서 마지막을 맞이하는 사형수들의 처절한 영적 사투를 통해 복음의 진리와 영적전쟁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 이번 영화가 성도들의 신앙생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수많은 기독교 영화를 제작한 홍의봉 감독이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 박효진 장로 역은 이경영 배우가 맡아 열연했고, 신인 김양균과 유라성도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였다. 임동진(목사), 한인수 장로, 정욱, 정선일 등의 중견 배우들도 특별 출연했다. 영화는 유튜브에서 제목 검색을 통해 볼 수 있다.
  • 2023.06.09 / 김주영 기자

    기독교 복음 영화 <기적을 믿는 소녀> 7월 5일 국내 개봉  
  • 전미 박스오피스 4주간 연속 TOP 10 하나님의 사랑과 진정한 믿음으로 감동 전해 하나님의 치유 능력과 사랑을 경험케 하며 대한민국에 진정한 믿음에 대한 경종을 울릴 기독교 영화 <기적을 믿는 소녀>가 오는 7월 5일 국내에 개봉한다. 전미 4주 연속 박스오피스 10위권 안에 들며 놀라운 흥행을 기록해 그 해 최고의 종교 영화로 떠올랐다. <기적을 믿는 소녀>는 기도로 믿음을 증명하는 어린 소녀를 통해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한 성도들이 믿음의 불꽃을 키워가는 엔터테이닝 복음 영화다. 가족과 함께 호수에 놀러 간 평범한 어린 소녀가 하나님의 놀라운 임재를 경험케 하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죽은 새와 강아지의 부활, 그리고 하반신 마비를 가진 친구가 다시 걷게 되는 등 하나님의 치유 능력을 목격한 믿음의 소녀를 통해 점차 변화해 가는 주변 인물들의 모습은 강렬한 울림과 함께 감동을 전한다. 겨자씨만큼 작은 믿음이 사람들의 삶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메시지뿐만 아니라 보는 내내 미소를 짓게 하는 스토리와 힐링을 선사하는 완벽한 케미스트리 등을 통해 종교인을 넘어서 일반관객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관람 후에는 “하나님을 믿고 간절히 기도하세요, 하나님은 듣고 계세요”라는 대사와 깊은 감동이 가슴에 남게 된다. 특히 <위대한 쇼맨> 오스틴 존슨부터 제68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미라 소르비노, 피터 코요테, 케빈 소르보까지 믿고 보는 최고의 배우들이 총출동해 막강 캐스팅으로 극의 완성도를 높여 이목을 집중시킨다. 한편, GOODTV 기독교복음방송(대표이사 김명전)에서는 개봉 전부터 <기적을 믿는 소녀> 교회 상영을 진행해 한국교회와 성도들로부터 눈물을 흘리며 회심하는 많은 기적의 역사를 체험했다고 밝혔다.
  • 2023.05.25 / 이미나 기자

    스마트폰 생활백서-저절로 성경일독
  • “스마트폰 켤 때마다 성경구절이 보여요!” 잠금화면 활용한 성경 묵상 앱 말씀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크리스천에게 매순간 단비와 같은 성경 말씀을 전달해 주는 앱이 있다. 바로 ‘저절로 성경일독’이다. 저절로 성경일독 앱은 스마트폰 화면을 켤 때마다 성경구절이 나타난다. 화면 중앙에는 성경 구절이, 하단에는 다음 구절로 넘어가는 화살표 기호와 북마크, 공유하기, 잠금해제 버튼이 있다. 화면에 나오는 성경 구절은 화면이 꺼졌다 다시 켜지면 다음 절로 넘어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부담 없이 성경을 일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앱에서는 말씀 공유 기능이 가장 눈에 띈다. 묵상하고 있는 말씀에 은혜를 받았다면 그 자리에서 말씀 카드를 만들어 SNS로 즉시 공유할 수 있다. 이는 모바일 전도 도구로도 활용이 가능해 전도 대상자에게 유용하다. 성경은 개역개정, 개역한글, 현대어성경, 새번역과 영어 성경인 KJV, NIV, NLT 버전을 제공하고 있는데 한글과 영어 두가지 성경을 동시에 볼 수 있는 특징도 있다. 참고로 개역개정, 개역한글, KJV 성경은 오디오도 함께 제공된다. 저절로 성경일독 앱은 안드로이드기반(삼성 및 LG) 스마트폰에서 제공하는 구글 Play스토어에서만 서비스가 제공된다. 앱을 실행하면 광고가 나타나지만 조금의 불편을 감수하면 말씀을 묵상하고 공유하는데 지장이 없다. 또한 결제해야 이용할 수 있는 ‘읽기모드’는 우리 교회 앱 성경과 동일한 기능이므로 오랜 시간 성경을 읽을 때는 교회 앱을 활용할 것을 추천한다.
  • 2022.07.29 / 금지환 기자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31. 후안무치(厚顔無恥) 시므이의 죽음②
  •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류와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록된 역사책이다. 성경 한 구절은 한 개의 구절 이상의 의미와 역사·정치·문화·사회적 배경을 함축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과 구절들을 넓은 시야로 혹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세하게 접근함으로써 성경 전체를 조금 더 잘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순복음가족신문은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기록한 성경구절의 행간을 풀어 성도들이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솔로몬에 의해 죄의 대가를 받게 된 시므이 "왕이 사람을 보내어 시므이를 불러서 이르되 너는 예루살렘에서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거기서 살고 어디든지 나가지 말라 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나가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니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가리라"(왕상 2:36~37) 3. 솔로몬의 숙청 작업과 시므이의 죽음 솔로몬은 왕이 된 후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한다. 숙청의 이유, 방법, 숙청당한 인물들만 보면 공포정치를 휘둘렀던 절대군주 못지않다. 숙청의 대상은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였던 대제사장 아비아달, 다윗을 섬기며 충성을 다했던 군대사령관 요압, 그리고 자신의 형이자 왕자였던 아도니야까지 잠재적으로 자신의 왕권을 위협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다윗을 조롱했던 시므이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1) 아도니야 아도니야는 다윗의 네 번째 아들이었다. 다윗의 첫째 아들은 암논이었고, 둘째는 갈멜 여인 아비가일이 낳은 다니엘, 셋째는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가 낳은 압살롬, 넷째는 학깃이 낳은 아도니야였다. 솔로몬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로서 열 번째쯤 된다(대상 3:1~5). 그런데 첫째 아들 암논은 압살롬의 누이였던 다말을 강간한 사건 때문에 압살롬에게 죽임 당했고, 압살롬은 반란 후 죽임을 당했다. 다윗의 첫째와 셋째 아들이 죽은 것이다. 둘째 아들 다니엘은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윗의 둘째 아들이었다는 기록 외에는 성경에서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 일찍 죽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넷째 아들 아도니야가 다윗의 허락도 없이 스스로 왕이 되었음을 선포한다(왕상 1:5~11). 이때 다윗의 군대 사령관이었던 요압과 대제사장이었던 아비아달이 아도니야의 편에 섰다(왕하 1:7). 하지만 아도니야의 시도는 일일천하에 그쳤다. 솔로몬은 왕이 된 후, 제단 뿔을 잡고 목숨을 구걸하는 아도니야(왕상 1:51)를 살려주며 한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그것은 경거망동(輕擧妄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왕상 1:52). 하지만 아도니야는 다윗의 침실에서 수종을 들었던 수넴 여인 아비삭을 자신의 아내로 삼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솔로몬은 이것을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아도니야를 처형해 버렸다(왕상 2:13~25). 2) 아비아달 아비아달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10번째 대제사장이었다.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해 기약이 없는 망명길에 올라야만 했다. 이스라엘 땅에 많은 도시와 지역이 있었지만 다윗이 선택한 첫 장소는 대제사장이 있던 놉이었다(삼상 21:1). 심신이 지쳐있던 다윗은 아히멜렉의 도움으로 음식을 먹고 그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였던 골리앗의 칼을 얻었다(삼상 21:4~10). 사울은 아히멜렉이 다윗을 도와줬다는 것을 문제 삼아 도엑을 시켜 아히멜렉과 놉의 제사장 85명을 한 날에 살육했다(삼상 22:18). 이때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였던 아비아달만이 목숨을 건져 도망쳐 나올 수 있었다. 아비아달은 지체 없이 한걸음에 그일라에 있던 다윗에게로 향했다. 아비아달이 제사장의 영적인 권위를 상징하는 에봇을 가지고 도망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삼상 23:6). 아울러 우림과 둠밈을 대제사장의 에봇 흉패 안에 보관하라고 되어 있기에 우림과 둠밈까지 가지고 온 것으로 볼 수 있다(출 28:30). 다윗은 이렇게 사선을 넘어 온 아비아달을 대제사장으로 삼았다. 그러나 솔로몬은 왕위에 오른 직후 아비아달이 아도니야의 편에 섰던 것 때문에 아비아달을 제사장 직분에서 파면시키고 그의 고향으로 내쫓아 버렸다(왕상 2:27). 3) 요압 요압이라는 이름의 뜻은 ‘야훼는 아버지이다’와 ‘야훼는 하나님이시다’는 뜻이다. 요압은 다윗과 함께 오랜 세월 전쟁터를 누볐던 군대 장관이다. 사울이 죽은 후 그의 아들 이스보셋이 왕이 되었고, 헤브론에서 이미 왕이 되어 있던 다윗은 피할 수 없는 전쟁을 하게 되었다. 기브온 전투는 다윗이 사울의 남아있던 세력과 벌인 최초의 전투이다. 이때 이스보셋의 장군인 아브넬과 다윗의 군대를 이끌던 요압이 맞붙게 되었다. 기브온 전투는 요압의 승리로 끝났지만, 요압의 동생 아사헬은 아브넬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다. 요압은 이것에 대한 앙심을 품고 있었다. 한편 아브넬은 사울의 자손들과 다윗이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종식하고 통일왕국을 탄생시키려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헤브론에 있던 다윗을 찾아와 평화의 조약을 맺고 통일왕국의 꿈을 향한 큰 걸음을 뗐다(삼하 3:8~21). 뒤늦게 이것을 알게 된 요압은 아브넬을 쫓아가 다시 헤브론으로 유인해 왔다. 그리고 그에게 조용히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속여 무방비 상태에 있던 아브넬을 살해했다(삼하 3:27). 성경 여러 곳에서 정치적 야망을 숨기지 못했던 요압이 평화적인 통일이 이루어진 후 모든 공이 아브넬에게 돌아갈 것을 걱정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통일이 이루어진 후 자신의 입지가 약해질 것에 대한 염려와 전쟁 중에 죽은 동생의 원한을 한 번에 갚고자 벌인 일이었다. 다윗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모든 백성에게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띠고 큰 용사였던 아브넬이 죽은 것을 애도하도록 했다(삼하 3:31). 다윗은 아브넬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요압에게 묻지 않았고 어떤 벌도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솔로몬은 달랐다. 표면적인 이유는 요압이 죄 없는 아브넬과 유다 군사령관이었던 예델의 아들 아마사를 죽인 것 때문이었지만(왕상 2:31), 실상은 요압이 아도니야의 편에 섰던 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4) 시므이 솔로몬의 서슬이 퍼런 칼날은 그의 왕권을 위협할 현재와 미래의 잠재적 세력을 제거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선대왕이었던 다윗이 살려 준 시므이를 향한 솔로몬의 마지막 경고이다. 솔로몬은 시므이의 목숨을 살려 주는 대신 절대 예루살렘을 벗어나지 말라고 경고했다(왕상 2:36~37). 왜 솔로몬은 베냐민 자손이고 바후림에서 터를 잡고 있던 시므이를 굳이 예루살렘 성에 붙잡아 두고 절대 떠나지 말라고 했을까? 사울의 친족이었던 시므이가 예루살렘을 벗어나 어떤 정치적인 행위나 세력을 확장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과 다윗을 조롱했던 시므이에 대한 마지막 경고였을 것이다. 그러나 시므이는 이것을 너무나 쉽게 생각했다. 자신의 노예 두 명이 도망을 가자 솔로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을 벗어났다(왕상 2:39~40). 솔로몬은 브나야에게 명령을 내려 시므이를 단숨에 처형했다(왕상 2:45).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초라한 모습으로 피난길에 올랐을 때 그를 따라가며 조롱하고 멸시하고 저주를 퍼붓던 시므이였다. 하지만 압살롬에 의한 왕자의 난이 실패로 끝나고 다윗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선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바싹 엎드려 비굴한 모습을 보였던 사람이었다. 다윗의 아량과 은혜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시므이는 솔로몬에 의해 그의 죄에 대한 대가를 받게 되었다. 이상윤 목사(홍콩순복음교회 담임)
  • 2021.08.01 / 이상윤 목사 기자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30.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시므이의 죽음①
  •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류와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록된 역사책이다. 성경 한 구절은 한 개의 구절 이상의 의미와 역사·정치·문화·사회적 배경을 함축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과 구절들을 넓은 시야로 혹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세하게 접근함으로써 성경 전체를 조금 더 잘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순복음가족신문은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기록한 성경구절의 행간을 풀어 성도들이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시므이의 저주를 하나님의 책망으로 겸허히 받아들인 다윗 "왕의 가족을 건너가게 하며 왕이 좋게 여기는 대로 쓰게 하려 하여 나룻배로 건너가니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할 때에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왕 앞에 엎드려 왕께 아뢰되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삼하 19:18~19) 사무엘하 15장과 19장은 후안무치한 시므이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사무엘하 15장 30절은 다윗의 인생 중 가장 비참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왕이었지만 그의 몰골 어디에도 왕의 위엄과 기품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때 다윗은 머리는 산발하고 신발도 신지 못한 채 초라한 모습으로 감람산 고개를 넘고 있었다. 다윗은 천 년의 시간이 지나 사람들이 예수님을 맞으며 호산나를 외치던 길을 역방향으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눈물로 걸어가고 있었다. 이방 나라의 왕이나 군사들에게 쫓긴 것도 아니다. 자신의 아들에게 잡혀 죽지 않기 위해 도망가는 신세였다. 압살롬은 아버지인 다윗이 예루살렘에 남겨놓은 10명의 후궁들과 공개적으로 성적인 관계를 맺었다. 다윗은 왕의 권위뿐만 아니라 친부로서의 자존감도 철저히 묵살되었다. 더 낮아질 수도 초라해질 수도 없는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다. 사실 압살롬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다윗의 셋째 아들이었던 압살롬은 가만히 있기만 해도 다윗을 이어 왕이 될 수 있었다. 다윗의 장남이었던 암논은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강간한 사건 때문에 이미 죽임을 당해 세상에 없었다. 다윗의 차남은 다니엘이다. 다니엘은 나발의 아내였으나(삼하 2:2) 나발이 죽은 후 다윗의 아내가 된(삼상 25:39~43) 갈멜 여인 아비가일이 낳은 아들이다(대상 3:1). 하지만 그의 이름 외에 추가적인 자료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고 압살롬이 죽은 후 다윗의 넷째 아들이었던 아도니야가 장남 행사를 한 것으로 보아(왕상 1:5~10) 다니엘은 일찍 죽었을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다윗의 장남과 차남이 죽은 상황에서 셋째 아들이었던 압살롬은 조금만 인내력을 가지고 기다렸으면 다윗의 왕위를 이어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권력에 대한 욕심에 사로잡혀 반란을 일으켰다. 심지어 아버지 다윗을 죽여서라도 왕이 되겠다는 야심을 품었다. 압살롬의 반란은 처음에는 성공을 거두는 듯했다. 헤브론에서 시작한 반란은 수도인 예루살렘 입성까지 파죽지세로 거칠 것 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1. 다윗에게 저주를 퍼붓는 시므이 다윗이 예루살렘을 버리고 바후림을 지나고 있을 때 사울의 친족이요 게라의 아들이었던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하기 시작했다(삼하 16:5). 다윗은 물론 그의 추종자들에게 돌을 던지며 먼지를 날리고 저주를 퍼부었다(삼하 16:13). 자신을 그렇게 집요하게 괴롭히고 죽이려고 했던 사울에게 관용을 베풀었던 다윗이다. 그러나 사울이 죽고 난 이후에도 사울의 남은 자손들은 끊임없이 다윗을 참소하고 그의 왕권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다윗이 마음만 먹었다면 사울의 친족을 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사울의 친족들에게 많은 특혜와 은혜를 베풀었고 사울의 친족들은 대부분 죽음을 면했다. 그들의 토지나 소유권도 빼앗지 않았다. 이런 다윗의 은혜를 받았던 사울의 자손 중의 한 사람이 시므이다. 그렇게 살아남았던 시므이가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피난길에 오르자 저주를 퍼부었다. 비록 피난길에 올랐지만 전장을 누비며 무수한 공을 세웠던 장수들이 다윗과 함께 있었고 많은 백성이 다윗을 따르고 있었다(삼하 16:6). 시므이의 저주를 듣고 있던 다윗의 군대장관 아비새가 당장 가서 시므이의 목을 베어 버리겠다고 말한다(삼하 16:9).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 극심한 모멸감에 시달렸을 다윗이다. 그래서 어딘가에 분풀이라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시므이는 더없이 좋은 화풀이 대상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시므이의 목숨을 취하지 않는다.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를 하나님의 책망으로, 또한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셔서 고난이 은혜로 바뀌는 전환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므이의 생명을 뺏지 않고 그가 퍼붓는 저주를 묵묵히 참아냈다(삼하 16:11). 2. 급변한 시므이의 태도 다윗이 가장 힘들었을 때, 조롱과 저주를 퍼부었던 시므이의 태도는 압살롬이 죽고 왕자의 난이 정리된 이후 급변한다. 압살롬이 죽자 제사장들과 신하들은 서둘러 다윗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환시키는 일을 진행한다(삼하 19:11~12). 다윗은 피난을 왔던 길을 따라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예루살렘을 빠져 나올 때 시므이가 저주를 퍼부었던 바후림에 이르렀다. 바후림은 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4㎞ 정도 떨어진 곳이라 예루살렘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시므이는 이스라엘의 왕 다윗의 귀환 행렬이 바후림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무엘하 19장 16~18절은 이때 시므이가 취한 행동을 이렇게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1) 유다 사람들과 동행(삼하 19:16) 사울의 혈육으로 베냐민 지파였던 시므이는 급히 유다 사람들과 다윗을 맞으러 나간다. 다윗의 피난 행렬을 쫓아가며 돌을 던지고 저주를 퍼부었던 시므이에게서 다윗에 대한 두려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다윗이 다시 바후림에 왔을 때 그의 태도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2) 시므이의 세력(삼하 19:17) 사무엘하 19장 17절은 사울이 죽은 후 시므이가 어떻게 세력을 키우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다윗을 맞으러 나올 때 시므이는 신변의 위협을 느꼈는지 자기의 모든 세력을 데리고 나온다. 베냐민 사람 1000명과 열다섯 명의 아들, 종으로 부리고 있던 하인 스무 명을 대동했다. 시므이는 호시탐탐 사울 왕조의 재건을 꿈꾸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 고대 근동에서 개인이 이 정도의 규모를 유지하고 운영할 이유도 없다. 3) 용서를 구하는 시므이(삼하 19:18~20) 시므이는 요단강을 건너려고 하는 다윗 앞에 엎드려 용서를 구한다. 시므이가 특별히 구하고 싶었던 것은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나오던 날에 저질렀던 패역한 일'에 대한 용서였다(삼하 19:19). 그가 다윗을 쫓아가며 했던 저주이다. 이 말을 들은 아비새는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인 다윗에게 저주를 퍼부었던 시므이를 살려 둘 수 없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당장 시므이를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삼하 19:21). 이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이유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미 한 개인이 아니라 정치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던 시므이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사울의 남은 세력들의 잠재적 위협 요소를 제거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시므이를 용서하고 그의 생명을 살려주는 아량을 베푼다(삼하 19:22~23). 다윗은 자신이 시므이를 용서하는 것으로 더는 피를 흘리지 않고 모든 것을 덮고 이 문제를 일단락 지으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시므이의 문제는 다윗이 죽은 후 솔로몬에게까지 이어진다. (다음 호에 계속) 이상윤 목사(홍콩순복음교회 담임)
  • 2021.07.04 / 이상윤 목사 기자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29. 기브온 족속과 사울 왕조의 얽히고 설킨 이야기(Ⅱ)
  •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류와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록된 역사책이다. 성경 한 구절은 한 개의 구절 이상의 의미와 역사·정치·문화·사회적 배경을 함축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과 구절들을 넓은 시야로 혹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세하게 접근함으로써 성경 전체를 조금 더 잘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순복음가족신문은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기록한 성경구절의 행간을 풀어 성도들이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하나님의 공의는 사랑과 은혜, 화해와 용서 안에서 이뤄져야 "다윗의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 기브온 사람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요 그들은 아모리 사람 중에서 남은 자라 이스라엘 족속들이 전에 그들에게 맹세하였거늘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 그들을 죽이고자 하였더라 이에 왕이 기브온 사람을 불러 그들에게 물으니라"(삼하21:1~2) 2) 기브온족의 이스라엘 편입 가나안 족속의 종교 혼합주의, 쾌락주의, 윤리적 타락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대단히 위협적이었다. 과학적인 지식이 없었던 시대에 기이한 자연적 현상들은 다신론적 맹신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유대교는 손쉬운 다신론이 아니라 믿음에 근거한 유일신 사상을 갖고 있었다. 유일신 사상은 인간의 감성이나 종교적 편의성에 의존하지 않는다. 율법에 기록된 내용과 방식대로 종교적 행위가 이루어져야 했고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룩한 삶이 요구되었다. 하지만 쾌락주의는 이런 이스라엘 백성의 삶을 아주 쉽게 유혹으로 이끌어 갔다. 그 결과 거룩한 삶은 죄 된 삶으로 쉽게 바뀌었다. 이런 위험에 노출되고 나중에는 헤어날 수 없게 될 것을 아셨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한 것은 가나안 족속과 근원적인 단절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기브온족에게 속아 조약을 체결했다. 그것도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이방 족속의 방식대로 계약을 체결했다. 조약 자체도 문제였지만 방법과 절차에도 문제가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고대 근동의 전통에 따라 기브온 사람의 음식을 취하는 방식으로 평화 조약을 맺었다(수 9:15). 서로 먹고 마시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평화의 조약이 이루어졌으나 이스라엘 백성은 기브온족에게 속고 있었다. 성경은 기브온과 체결한 계약 방식이 '그들(기브온 사신)의 양식을 취하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수 9:14). 기브온의 사신들이 갖고 온 음식은 곰팡이가 핀 일반적으로 먹을 수 없는 음식이었는데 어떻게 이것을 먹을 수 있었을까? 이것은 두 가지로 해석되고 있다. 첫째, 계약 체결을 위해 곰팡이가 난 양식의 일부를 실제로 먹었다는 것과 둘째, 그냥 양식을 취하기만 하고 먹지는 않았다는 해석이다. 지금이라면 당연히 곰팡이가 난 음식을 먹지 않았겠지만, 근동 지방의 관습을 고려할 때 계약 체결의 완성을 위해 곰팡이 피지 않은 쪽의 음식 일부를 떼어 나눠 먹었을 가능성이 크다. 음식을 먹고 안 먹고의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가나안의 모든 족속을 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기브온 족속과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수장이었던 여호수아는 기브온족을 죽이지 않고 살리겠다는 조약을 맺었고 이스라엘 지파의 족장들도 모두 동의했다(수 9:15). 그러나 그들이 저지른 엄청난 실수를 깨닫는 데는 3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계략에 넘어간 것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체결했기에(수 9:18) 다시 바꿀 수 없었다. 속임수까지 써가며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했던 기브온 사람들은 그들의 소원대로 이스라엘 민족에 동화되었고 하나님의 제단을 섬기는 영광스러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삶은 사울 왕 때 완전히 유린당하였고 기브온족 전체가 몰살당할 위기에 처하게 됐다. 2. 역사를 왜곡하는 사울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라는 영예를 안았으나 여러 번 하나님의 뜻과 어긋난 행동을 했다. 여호수아는 기브온족을 살려 하나님의 제단을 위해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자들로 삼았다(수 9:27). 이런 기브온족의 삶은 비록 이방인이었으나 하나님의 제단을 섬기며 헌신 된 삶을 살았기에 선교적인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만민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가 구약의 역사에도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정이야 어쨌든 오랜 세월 동안 이스라엘 민족에 편입돼 성전을 섬기며 살아오던 기브온족이었는데 사울왕이 갑자기 그들을 말살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다. 성경은 사울이 이런 일을 계획하고 실행한 것은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삼하 21:2). 이 사건은 기브온 족속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성경은 사울이 언제 얼마나 많은 기브온 사람을 죽였는지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사무엘하 21장 5절은 사울이 기브온족을 '학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학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칼라누'이다. 이 단어의 뜻은 '끝내다'(finish), '완성하다'(accomplish)는 의미이다. 사울이 기브온 사람 한두 명을 죽인 것이 아니라 기브온족 전체를 말살시키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고 실제로 실천에 옮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고한 기브온 사람들이 억울한 죽음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사울과 다윗의 왕권 교체와 맞물려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완전히 묻혀 버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것을 잊지 않으셨다. 다윗왕 때 3년 동안의 큰 기근이 발생했다. 다윗은 계속되는 가뭄이 무엇 때문인지 알기를 원했고, 하나님께서 사울이 흘린 기브온 사람들의 피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삼하 21:1). 3. 솔로몬의 재판에 비할 다윗의 판결 왕위에 오르기 전, 사울은 한없이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보좌에 오른 뒤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사울은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무엇이든 하려고 했다. 기브온족도 마찬가지였다. 피의 순수성을 강조하며 이방 족속에게 반감을 품고 있던 일부 백성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제단을 섬기고 있던 기브온족을 완전히 말살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뜻을 이룰 수는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다윗이 왕으로 등극했다. 그러나 다윗은 왕으로 등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바로잡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다윗은 사울왕 때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울의 때 뒤틀렸던 역사와 공의를 다윗을 통해 다시 바로 세우기를 원하셨다. 성경에 기록된 재판 중에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두 판결은 솔로몬의 판결과 다윗의 판결일 것이다. 모두가 잘 아는 것처럼, 한 아기를 두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다투던 두 여인에 대한 솔로몬의 판결(왕상3:16~28)은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판결 중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솔로몬의 판결과 같이 지혜가 번뜩이는 판결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들게 한 것이 다윗의 판결이다. 1) 피해자 중심의 판결 다윗은 먼저 기브온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결해 줬으면 좋겠냐'고 묻는다(삼하 21:3). 일방적인 행정명령이나 법 집행이 아니라 피해자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기브온 사람들은 자신들을 살육하는데 가담했던 모든 사람을 벌해 달라고 하지 않는다. 단지 자기 민족을 학살하는데 주동적인 역할을 했던 사울의 아들 7명을 내어 달라고 요구한다(삼하 21:6). 사울의 일곱 아들은 한날에 기브온 사람들에 의해 목매달려 죽었다. 그런데 여기서 기브온족의 모든 원한이 풀리고 3년 동안 기근으로 고통을 받던 땅에 비가 내린 것은 아니다. 2) 화해의 판결 비록 죄 없는 기브온 사람을 학살하는 일을 기획하고 실행했다가 그 벌로 죽은 사울의 아들들이었지만 다윗은 목이 매여 죽은 이들의 시체를 거둬들인다. 그리고 사울과 요나단의 뼈와 함께 그들의 할아버지이며 사울의 아버지인 기스의 묘에 가족장으로 합장을 한다. 이렇게 다윗이 죽은 사울의 아들들을 위해 장사 지내는 것을 마쳤을 때, 하나님께서 비로소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삼하 21:14).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는 것은 단순히 원한과 억울함을 푸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사랑과 은혜, 화해와 용서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다윗이 사울의 아들들의 시체를 거둬들여 가족묘에 장사지낸 것처럼,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긍휼함이 공의 가운데 있어야 한다. 사무엘하 21장에 기록된 기브온족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얽히고 설킨 사건은 하나님의 언약과 공의, 공의가 실현된 이후의 화해와 용서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단편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상윤 목사(홍콩순복음교회 담임)
  • 2021.06.06 / 이상윤 목사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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