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변화
응웬 황 튀 정 성도(국제사역국 베트남어 예배부) - 유학 생활 가운데 찾아오신 하나님께 감사
  • 기도할 때 비자와 학비 등 체류 문제 해결 돼 나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한국에 보내셨음을 믿는다. 나는 한류열풍으로 뜨거운 베트남에서 온 유학생이다. 어릴 적부터 한국을 동경하며 한국 생활을 꿈꿔왔던 나는 2023년 한국 유학길에 올랐다. 하지만 유학 생활은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훨씬 힘들었다. 생계를 위해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는데 임금 체불과 괴롭힘 등이 나를 힘들게 했다.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나는 하루 한 끼도 제대로 챙겨 먹기 힘들었다. 고시원에서 과자나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날이 많았다. 홀로 외롭게 하루하루를 버티던 나는 어느새 어학당 학기가 마무리되면서 비자 만료로 본국으로 돌아가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던 중 베트남 유학생 커뮤니티에 글로벌엘림재단에서 개최하는 ‘베트남 홈커밍데이’ 광고를 보게 됐다. 평소 도전적이고 새로운 경험을 좋아했지만 선뜻 결정하기 어려웠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영양실조로 피부 트러블과 건강이 악화 돼 외출조차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한국에서의 마지막 시간이라 생각하며 신청했고 처음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오게 됐다. 50여 명의 유학생이 한데 모여 다양한 문화 행사와 함께 식사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먼 타국에서 온 학생들에게는 큰 격려와 힘이 됐다. 그러던 중 여의도순복음교회 베트남어 예배부를 담당하는 전도사님이 주일 예배 참석을 권유했다. 일평생 교회에 가본 적도, 예수님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지만 내게 따뜻한 관심을 보이며 다가온 전도사님의 말에 용기를 내어 주일 예배에 참석했다. 낯선 경험이었지만 예배를 드리며 알 수 없는 위로와 평안이 마음 가운데 몰려왔다. 이후 매주 예배에 참석하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게 됐다. 평일에는 성경 말씀을 읽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신앙의 기반을 다져갔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그동안 겪었던 어려움과 상처가 점차 사라지고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게 됐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말씀대로 살아갈 때, 내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체불됐던 임금을 돌려받게 됐고, 서울여자대학교에 합격하며 비자 문제도 해결된 것이다. 학비를 놓고 전도사님과 베트남어 예배부 성도들과 함께 기도했는데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장학생으로 선정되는 기적과도 같은 은혜를 체험했다. 할렐루야! 이제 나는 주일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며 지금은 셀그룹 리더 훈련에 참여하고 있다. 또한 베트남에 있는 가족들이 구원받게 되기를 소망하며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는 말씀을 붙잡고 영혼 구원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온 가족이 그리고 주변 모든 사람이 믿음 안에서 참된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게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정리=금지환 기자
  • 2025.07.11 / 금지환 기자

    윤정희 권사(영등포대교구) - 하나님 은혜로 새생명 얻어
  • 교통사고로 죽음 목전에 둔 남편 회복 지난해 7월 3일 새벽 고향을 다녀온다고 나간 남편이 횡단보도를 건너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남편은 지주막하출혈, 경막하출혈로 인해 굉장히 위중한 상태였다. 심각한 뇌손상이 왔지만 머리가 너무 부어서 수술도 못하고 붓기가 가라앉기만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의사는 살아날 가능성이 없다며 곧 돌아가실 것 같으니 장례를 준비하라고 했다. 1% 가능성으로 살아난다고 해도 식물인간으로 살 수 밖에 없다는 말에 마음이 무너졌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의사에게 최선을 다해 치료해달라고 말하고 하나님께 매달렸다. 여선교회 봉사실장이었던 나는 전국초교파여성금식기도대성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안수집사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던 남편이 의식도 없이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것을 보면서 많이 힘들었지만 여선교회와 안수집사회, 영등포대교구 성도들에게 기도를 요청하고 성회 준비에 최선을 다했다. 중보기도의 힘으로 남편의 혈압이 조금씩 올라갔다. 이영훈 담임목사님께서 남편을 위해 기도해주러 중환자실에 오셨는데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는지 모른다.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남편은 빠르게 의식을 회복했다. 부러진 다리뼈가 저절로 붙어 다리 수술을 따로 하지 않아도 돼 놀랍고도 감사했다. 여성금식기도대성회 기간에도 남편은 중환자실에 있었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봉사하며 “저는 하나님 일 할 테니 제 남편을 살려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놀랍게도 성회가 끝나고 며칠 후 남편은 눈을 떴다. 남편은 중환자실에서 한 달 만에 일반 병실에 가게 됐고 다시 재활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으면서 걸을 수도 있게 됐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난해 12월 퇴원해 올해 1월부터 교회에도 나온다. 할렐루야! 나도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한 적이 있다. 내가 2021년 10월에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의사가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큰 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받고 결과를 들으러 가는데 “강하고 담대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내 병명은 혈액암이었다. 암이라는 말을 듣고도 걱정은커녕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가 나왔다. 30년 전 하나님의 이끄심으로 구역장, 지역장으로 섬길 수 있었고 건강 주셔서 여선교회에서도 봉사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주님의 은혜였으니 말이다. 이미 암이 많이 퍼진 상태였는데 항암, 방사선 치료를 받기 전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를 먼저 시작했다. 2차 치료가 신년축복대성회 기간에 진행됐는데 2주간 특별새벽기도회를 하며 몸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검사할 때마다 암세포가 줄어들어 항암, 방사선 치료도 받지 않았다. 3년이 지나 올해 2월에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가니 암 수치가 정상이었다. 지금 나는 여선교회 문서전도실장으로 섬기고 있는데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모른다. 7월 29일부터 8월 1일까지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서 열리는 제49회 전국초교파여성금식기도대성회를 참석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역사와 기적을 보여주실지 많이 기대된다. 정리=이미나 기자
  • 2025.07.04 / 이미나 기자

    안은정 집사(장년국)-다음 세대의 믿음의 동반자 되길 원해
  • 나는 현재 교회학교 고등1,2부 교사로 봉사하고 있다. 2018년 말부터 봉사를 시작해 어느덧 6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학생들을 보면서 다음 세대가 교회의 미래임을 확실히 깨닫고 아이들을 바른 신앙인으로 지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올해 나는 순복음상담학교 제53기 초급반 수업을 들었다. 이미 대학원에서 아동심리치료 석사 과정을 마치고 기독 상담도 배워서 초급자는 아니었지만 다시 한 번 상담의 기본을 되새기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내가 처음 상담을 배우게 된 이유는 내 인생의 역경을 헤쳐 나가고 싶어서였다. 내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상담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느낀 건 결국 나부터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내 인생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내면이 치료되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스트레스로 인한 폭식증을 고치는 데만 1년이 걸렸다. 내가 문제를 인식하고 고쳐야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실패하더라도 다시 노력했고, 결국 섭식장애를 고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모든 상황을 한 발짝 떨어져서 보게 됐다. 이러한 노력은 8년 전 재혼한 이후 자녀들을 대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자녀들을 잘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교회학교 봉사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재혼 가정의 아이들이나 가정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더 깊이 바라보게 되었고 그런 아이들을 믿음의 길로 이끌고 신앙으로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학생들을 보면 가정에서 겪는 문제들, 학교에서 배우는 가치관과 교회의 가르침 사이에서 오는 괴리 등 여러 가지에 부딪히고 있는 걸 느낀다. 예민한 시기의 학생들을 돌보기 위해 같은 눈높이에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아이들이 속마음을 조금씩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상담학교 초급반 수업 중에서 ‘기독교적 성 상담’과 ‘기독교인의 우울증’을 다룬 내용이 특히 도움이 되었다. 요즘 아이들은 동성애 같은 성경적으로 분명히 안 되는 일들도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 괜찮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가치관에 대해 성경적인 기준을 제대로 세워주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기독교인들 중에는 신앙으로 우울증을 이겨보려는 마음에 약을 먹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상담할 때 무조건 믿음으로 극복하라고만 권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나는 늘 학생들에게 하나님의 곁에서 너무 멀어지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지금은 방황하더라도 그 말이 언젠가 기억나서 하나님께 완전히 돌아오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에 다림줄을 희미하게라도 갖고 있기를 권면한다. 바라기는 교회 안에 아이들이 보고 배우고 따를 수 있는 신앙의 롤모델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 역시 그런 신앙인이 되기를 소망하며 하나님이 맡기신 다음 세대를 위해 계속해서 기도하며 섬기고 싶다. 정리=김주영 기자
  • 2025.06.27 / 김주영 기자

    이상진 안수집사(순복음성동교회) - “성령님이 임하시면 능력이 나타납니다”
  • 단번에 술, 담배 끊고 봉사하는 삶 살게 돼 하나님의 사랑 전하며 작은 예수로 살고 파 나는 1999년 뉴질랜드 이민 생활을 마무리하고 귀국 후 먼저 신앙생활을 시작한 아내를 따라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다니게 됐다. 성격이 밝고 활달한 아내가 교회를 다니니 날마다 얼굴에 기쁨이 가득했다. 아내의 변화를 보며 나도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 그런데 이전에 몸담았던 종교에서는 술, 담배를 하는 것이 자유로웠는데 설교를 들으니 마음에 거리낌이 생겼다. 스스로 끊어보려 애를 써봤지만 안됐다. 교회를 다닌 지 일 년이 안 된 9월 첫째 주 금요철야예배 때 성령이 임했다. 단상에서 불이 나와 나에게 훅하고 떨어졌다. 노력해도 안 되던 술, 담배를 단번에 끊을 수 있었다.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이 임하고 이후로 내 안에 감시자가 생겼다. 사업을 할 때 사람들을 만나 술, 담배를 안 한다고 하면 모두 의아해했다. 특히 해외에서 사업할 때 어려움이 많았는데 일관된 모습을 보이니 사람들도 술, 담배를 안 하는 사람으로 인정했다. 전직 대통령이 당선 전 교회에서 교통봉사를 했었다는 이야기에 감명 받아 2007년 나도 교통봉사를 하기 위해 남선교회 회원으로 가입을 했다. 그런데 그즈음 이사를 가면서 순복음성동교회로 신앙의 터전을 옮겼다. 교회를 옮기고 나서도 봉사를 이어 갔다. 봉사를 하면 길에서 오래도록 서 있는데 교회에 오시는 어르신들과 어린아이들을 보면 항상 인사를 했다. 친분이 쌓이니 안아주고 기도해주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 어린 아이가 자라서 결혼을 하고 자녀와 함께 교회에 오는 모습이 감동이다. 올해로 18년이 됐는데 가끔 내가 해외 출장 때문에 한주라도 안 보이면 그 다음 주에 무슨 일 있었냐며 걱정해 주는 분들 때문에 더욱 힘이 난다. 나는 국제침구사로서 오래도록 건강 관련 무역 유통을 하는 사업을 해왔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지만 사람들의 건강을 관리하고 지켜주는 일이기에 보람을 느끼고 이 또한 선한 영향력을 세상에 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25년 넘게 전문 경영인을 하다 5년 전부터 내 사업을 시작했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 자연 속에 답에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기업명을 ‘엘나스(하나님의 힘)’라고 지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새벽기도로 작정 예배를 드리며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기도했다. 예전부터 약재로 유명한 침향은 베트남 정부에서 관리를 하기 때문에 수입해 들여오기가 쉽지않다. 베트남에 27년 된 식용 침향 농장과 올해 2월 우리 회사가 수입 계약을 할 수 있었다. 경쟁이 엄청 심했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받은 응답이다. 해외 여러 곳을 다니면서 선교사님들의 사역을 많이 보았다.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선교사님들을 마음껏 돕는 것이 나의 꿈이다. 또 내가 있는 곳에서 나의 가정, 나의 직장에서 작은 예수로서 살아가고 싶다. 정리=복순희 기자
  • 2025.06.20 / 복순희 기자

    정대훈 성도(양천대교구) - 하나님 주신 재능으로 섬길 수 있어 감사
  • 통일대교구 등에서 봉사하며 주 은혜 깨달아 어릴 적 나는 어머니를 따라 동네 작은 교회를 출석했다. 어머니는 여선교회 임원을 하실 정도로 교회 봉사에 헌신적이셨다. 신앙의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신 어머니를 따라 교회를 다녔기에 어린 나에게 주일은 항상 교회에 머무는 날로 기억됐다. 또 교회에서 반주 봉사를 하는 어른들을 보면서 나도 크면 반주 봉사를 하고 싶다는 꿈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됐다. 그래서 피아노를 배웠고 중학교 때 예배 반주를 시작했다. 내가 치는 피아노 반주에 맞춰 성도들이 찬양을 부를 때면 언제나 행복했고 신이 났던 게 기억난다. 나는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토대로 예고에 입학했고 이어 음대에 진학해 작곡 공부를 했다. 교회에서 반주 봉사도 계속 이어갔다. 그러다가 코로나 팬데믹이 터졌고 현장예배와 봉사가 쉽지 않게 됐다. 코로나 이후 예전 동네 교회를 함께 출석해 어머니와 친분이 두터우신 배찬식 장로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여의도순복음교회로 옮겨 신앙생활을 하고 계셨던 장로님은 나에게 여의도순복음교회 찬양대에서 봉사해 보지 않겠냐고 물으셨다. 어머니와 나는 장로님의 권유에 따르기로 결정하고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등록했다. 그리고 주일2부 베들레헴찬양대 오디션을 거쳐 봉사를 시작했다. 이어 지난해 3월부터는 지휘자님의 소개로 통일대교구에서 찬양대 반주 봉사도 하게 됐다. 나는 통일연합비전기도회에 모여 복음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탈북민 성도들을 보면서 큰 감동과 도전을 받았다. 그리고 찬양 반주를 통해 탈북민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위로가 임하길 기도했다. 또 통일 선교를 위한 교회의 선한 사역들을 알게 되면서 중보자의 마음을 가지게 됐다. 생각지 않았던 모든 일들은 다 하나님의 뜻하신 계획 같았다. 교회에서 신앙이 좋은 선배들을 만나 많은 배움을 얻게 된 것도 감사한데 활동 범위까지 넓혀지면서 나의 주일은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의 날이 됐다. 주일 새벽 5시 인천 영종도 집을 나서 교회에 도착하면 장로회 아침기도회 반주로 봉사를 시작했다. 2부 예배 찬양대 봉사와 연습이 있고, 오후 시간에는 통일대교구 기도회 반주 또는 장로회 아침기도회, 월례기도회 찬양 연습 반주로 이어졌다. 이 외에도 교육영성훈련원 파더스드림 반주 봉사 등에 헌신하며 하나님께 받은 달란트를 주를 섬기는 일에 아낌없이 사용했다. 모든 봉사는 나의 신앙이 더욱 하나님 앞에 바로 서도록 이끌었다. 더 나은 크리스천이 되기 위해 노력하게 만들었기에 ‘감사하다’는 믿음의 고백도 낳게 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은혜를 또 깨닫게 해주실지 항상 기대하게 됐다. 이제 바라기는 주중 어머니와 함께 하는 사업이 더욱 번창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길, 우리의 믿음이 더욱 성장하길 기도한다. 또 하나님 안에서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 우리 가정이 순복음 신앙의 가문으로 굳건해지길 간절히 기도드린다. 정리=오정선 기자
  • 2025.06.13 / 오정선 기자

    엄태훈 집사(동작대교구) - 사업 위기를 기회로 바꾸신 하나님께 감사
  • 고난과 역경 이겨낸 비결은 찬양과 기도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 나는 매일 아침 출근할 때 회사 입구에 새겨진 이 말씀을 묵상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모태신앙으로 자란 나는 여의도순복음교회 교회학교를 졸업하고 청년선교회(현 대학청년국)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했다.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미가엘 반주기에서 흘러나오는 찬양을 따라 부르던 기억은 어느덧 나의 신앙의 뿌리가 됐고 거리에서 기타를 매고 전도하며 찬양했던 순간들은 내 삶의 일부가 됐다. 나는 20여 년 동안 주일 3부 예배 찬양팀 싱어로 봉사하며 매 주일 강단에서 하나님을 찬양한다. 찬양할 때면 아무리 억누르려 해도 넘치는 은혜와 사랑, 위로가 밀려와 눈물을 흘리곤 한다. 이처럼 찬양은 내게 단순한 음악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첫사랑을 기억나게 하고 지친 삶을 다시 일으키는 생명의 통로와도 같다. 나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참 많은 복을 받았다. 찬양팀 봉사를 하면서 아내를 만나 믿음의 가정을 이뤘다. 또한 지금 사업하는 분야에 처음 발을 딛게 됐을 때 당시 회사에서 해외사업을 담당하며 수출입 실무 경험을 쌓았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기업을 세우는 일에 토대가 됐다. 2017년 거룩한 비전을 품고 ‘시온글로벌’이라는 무역 유통회사를 창업했다. 하지만 사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당시 영국 생활가전 회사인 ‘플랜잇’의 공식 수입사였는데 3년 만에 코로나19 위기와 영국의 브렉시트 선언, 환율 급등이라는 삼중의 위기에 처하게 됐다. 사업은 무너질 듯 위태로웠지만 나는 위기 앞에 무릎 꿇지 않고 하나님께 엎드렸다. 열두광주리·고난주간·추수감사특별새벽기도회를 비롯해 매일 새벽예배를 드렸고 이영훈 목사님의 『감사QT 365』를 활용해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면서 지혜를 구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회가 찾아왔다. 영국 본사에서 회사 인수를 제안한 것이었다. 두려움도 있었지만 기도 중에 받은 담대함으로 2021년 믿음으로 회사를 인수했다. 이후 하나님은 내게 ‘플랜잇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새 출발을 하게 하셨다. 할렐루야! 나는 사업을 시작하며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믿음의 기업을 세우겠다’는 비전을 품어왔다. 그동안 전국에 도움이 필요한 개척교회를 방문하며 북카페 설립과 생활·주방가전 제품을 후원했다. 그리고 올해 신제품을 하나님께 첫 열매로 드리라는 감동을 주셨다. 기도 가운데 교회 제직과 교역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소망하며 70대의 커피머신과 7000개 커피 캡슐을 후원하기로 했다. 사업은 여전히 고환율과 경기 침체로 어려움이 있지만 나는 매일 새벽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며 지금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다. 이 글을 보는 모든 분들이 찬양의 위대함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께 삶의 주권을 온전히 맡기고 헌신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게 되길 기도한다. 정리=금지환 기자
  • 2025.06.07 / 금지환 기자

    김용두 안수집사(영등포대교구) - 야훼 라파 치료의 하나님께 감사
  • 수술 앞두고 성대 폴립 사라져 올해 2월 초부터 갑자기 목이 아프고 소리가 나지 않았다. 허스키한 소리로 겨우 의사소통만 할 수 있는 정도였다. 감기에 걸린 줄 알고 약 먹고 쉬면 낫겠지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호전되지 않았다. 이비인후과에 갔더니 성대에 용종이 생기는 성대 폴립이라며 큰 병원에 가 수술을 하라고 했다.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니 성대 폴립이 맞았다. 의사는 30년 동안 많은 환자들을 봐왔는데 이런 경우는 수술이 불가피하다며 서둘러 수술하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한 달은 더 지켜보자고 말한 후 병원을 나섰다. 좋으신 나의 하나님, 야훼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의지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한 달이 지나 다시 만난 의사는 3월 중순에 수술을 하자고 했지만 나는 5월 16일로 수술날짜를 미루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순복음가족신문에서 24년간 기자로 활동하며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성도들의 간증을 직접 들어왔다. 조용기 목사님, 이영훈 목사님의 사역을 취재할 때마다 은혜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기적들을 봤다. 분명 하나님은 살아계셨다. 나는 치유의 은혜가 내게도 임해 고난이 유익이 될 것을 마음에 그리며 간절히 기도했다. 4월 13일 주일 2부 예배 신유기도 시간에 이영훈 담임목사님께서 “눈과 코와 입과 목의 질병은 떠나가라.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선포하셨고 나는 “아멘”을 외치며 하나님의 기적이 이미 내게 일어났음을 믿고 감사를 고백했다. 그동안 쉰 목소리가 나오고 후두 이물감도 심했는데 목소리도 조금씩 맑게 나오고 아픈 것도 나아짐을 느꼈다. 4월 셋째 주에 진행된 2025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때 금식하며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의미를 묵상했다. 이른 새벽 대성전에서 간절히 기도할 때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이 가슴 깊이 느껴졌다. ‘고난의 축복’이라는 기도회 주제처럼 내게 일어난 고난이 축복으로 변화됐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수술 전 외래진료가 예약돼있어 병원에 갔다. 이미 치료 받은 것을 의사에게 직접 확인받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내가 믿음으로 고백한 대로 의사는 “폴립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 흔적만 남아있다”며 놀라워했다. 예수님의 보혈로 치유된 것이다. 할렐루야!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중학생 때부터 매일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아동2부 교사로 10년간 봉사할 때 아내를 만나 믿음의 가정을 이뤘다. 매일 저녁마다 가족들과 성경을 읽으며 그 날의 감사한 일을 나누고 있다. 나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는 성경말씀을 참 좋아한다.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구할 것을 아뢸 때 응답해주신다는 것을 내가 체험하니 좋으신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치료자 되시고 기도에 응답해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만나길 소망한다. 정리=이미나 기자
  • 2025.05.30 / 이미나 기자

    송지영 성도(통일대교구) - 온 가족 탈북 도우신 하나님께 감사
  • 북한 복음화의 통로되길 소망 하나님의 인도로 자유의 땅에 온 가족이 안착하게 됨을 감사드린다. 1996년 북한에서는 식량 공급이 부족해 배급량이 크게 감소했다. 군대에 입대했던 둘째 오빠는 영양실조로 의가사제대 하고 결핵에 걸려 우리 집은 형편이 더 어려웠다. 그해 아버지마저 돌아가셨고 오빠는 1998년도에 행방불명이 됐다. 오빠의 소식을 들은 건 2001년이었다. 오빠는 탈북 해 대한민국에 있었고 브로커를 통해 집으로 500달러를 보내와 엄마와 여동생의 탈북을 먼저 계획했다. 하지만 엄마와 동생은 베트남 국경에서 군인들에게 잡혀 중국에 인계됐고 북송됐다. 엄마와 동생이 함경북도 온성군 보위부에서 심문 당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정말 오빠가 죽도록 미웠다. 이 소식을 들은 오빠가 2000달러를 보내줬지만 정치범은 돈으로 해결이 안 돼 돈만 가로채이고 말았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김정일이 광폭정치를 한다면서 두만강을 넘었던 사람들을 사면해줬다. 40일간 심문 당하며 몸이 상한 엄마와 동생을 데리고 나왔는데, 청년동맹원이 55세가 넘은 어머니는 용서해주겠지만 22세인 동생은 교도소로 보내 일벌백계를 하겠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동생을 데리고 탈북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두만강을 넘고 몽골 국경을 넘는 날에 둘째 오빠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빠는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장로님과 집사님들이 금식 중보기도를 할 것이니 어떤 순간에도 멈추지 말고 앞만 보고 뛰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너희를 사랑한다. 지금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동생들아 어려울 때 하나님을 부르면서 살려달라고만 해라”라고 말했다. 몽골 국경을 넘는 데 중국 모래등성이에서 지프차가 달려와서는 전조등을 비췄다. 나는 납작 엎드려 나도 모르게 “하나님 살려주세요”라며 하나님을 찾았다. 다행히 지프차가 지나가고 무사히 몽골 땅에 도착했는데 비가 내리고 너무 추워서 “하나님 나를 얼어 죽게 두지 마십시오”하고 두 번째로 하나님을 찾게 됐다. 우리는 몽골 군인들에게 발견돼 탈북민 숙소에서 3주를 보내고 2004년 9월 대한민국에 오게 됐다. 2006년 북한과 연락이 닿게 됐는데 안전부에서 어머니를 추방시켜 고향에서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한번 하나님께 살려달라는 눈물의 기도를 드리게 됐다. 간절한 기도의 힘 덕분인지 어머니의 소식을 알게 됐고 어머니의 탈북을 계획해 2008년 대한민국에 오셨다. 어머니와 상봉하고 나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진심으로 믿게 됐다. 2021년 큰 오빠에게서 연락이 왔다. 북한에서 강제 노동에 징집되자 두만강을 넘었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모두 대한민국에서 만나게 됐다. 할렐루야! 나는 현재 국방부, 통일부 등에서 프리랜서 강사로 강의를 하고 있다. 형제들도 사회에서 맡은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어머니도 78세의 연세로 건강하시니 하나님의 은혜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북한의 2500만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우리 가족을 선택해 앞서 보내셨다고 믿는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복음을 전하기에 힘쓰겠다. 정리=김주영 기자
  • 2025.05.23 / 김주영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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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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