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변화
소삼영 성도(반석대교구) - 육체의 병 고쳐주신 ‘치료의 하나님’
  • 우리 가정은 2008년 8월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등록하며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생업이 어려워지면서 가족 간의 관계도 거의 무너질 위기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십일조 생활을 이어가고 말씀에 은혜를 받으면서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믿음이 우리 가정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그 과정 속에서 불안정했던 가정은 점차 안정을 찾았고 깨어질 위기였던 가족 관계도 회복되며 하나님의 평안이 임했다. 그런데 올해 1월, 남편에게 갑작스럽게 시련이 찾아왔다. 허리 통증과 다리 저림 증상이 나타났고 처음에는 단순한 증상으로 여겨 휴식을 취하면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며칠 사이 증상은 급격히 악화되었고 결국 보행장애까지 나타나 앉아 지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루아침에 일상이 무너진 그때의 절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여러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뚜렷한 치료 방법은 제시되지 않았고 약 처방만 반복될 뿐이었다. 결국 병원에서는 디스크와 협착증, 퇴행성 변화까지 겹쳐 회복이 어렵다는 진단을 내렸다. 직장까지 잃을 위기에 놓인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우리 가정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기로 결단했다. ‘야훼 라파’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온 가족이 함께 금식기도를 했다. 나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반드시 고쳐주실 것을 확신하며 감사헌금을 드리고 입술로 고백했다. 또한 절망 가운데 있는 남편에게 베드로전서 2장 24절과 시편 103편 3절 말씀을 계속 들려주며 믿음을 붙들도록 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집에 있던 남편이 내가 외출 후 돌아오자 기쁨에 넘쳐 외쳤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내 병을 고쳐주셨어!” 남편은 스스로 걸어 다니는 것은 물론, 운동까지 하고 돌아온 상태였다. 그 모습을 보며 온 가족은 하나님께 말할 수 없는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렸다. 이 일 이전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정에 치료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내가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서 작정기도를 드리던 당시 나는 협심증으로 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가슴 통증이 시작되면 어깨까지 굳어질 정도로 고통이 심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도굴에서 기도하던 중, 한 손이 나타나 내 가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환상을 체험하게 됐다. 그 이후로 협심증은 완전히 사라졌고 지금까지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큰딸은 코로나19 예방접종 이후 약 두 달간 무월경 증상을 겪었고, 이후 갑작스럽게 시작된 과다 출혈이 1년 넘게 지속됐다. 외출조차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지자 나는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렸다. 그때부터 출혈의 양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고 마침내 정상으로 회복되어 지금은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우리 가정은 하나님께서 살아 역사하시며 지금도 우리를 지키시고 치유하시는 분이심을 깊이 경험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정리=김주영 기자 <관련 성경말씀>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베드로전서 2장 24절)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시편 103편 3절)
  • 2026.05.08 / 김주영 기자

    피강진 안수집사(반석대교구) - 건강과 달란트 주신 하나님께 감사
  • 헌혈과 외국인 봉사로 나눔의 기쁨 누려 우리 세대 동년배들처럼 나도 우리나라가 전쟁의 폐허를 딛고 급성장했던 격동의 1970~1990년대 모든 것을 바쳐 열심히 일하는 젊은이였다. 국내 굴지의 건설사에서 25년간 근무를 하면서 쌓은 사회생활의 경험과 자신감으로 사업을 벌였고, 1997년 IMF 사태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승승장구하던 삶에서 쓰디쓴 실패의 맛을 보기도 했다. 수억 원의 손실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고한 정체성이 있기에 쓰러지지 않고 상황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씩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뒤돌아보면 하나님을 모르고 성실히만 살던 내 인생에 아내 정지춘 권사는 가장 큰 은인이다. 1975년 결혼하면서 아내를 따라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자연스럽게 지구역 예배를 드리고 신앙의 선배들을 따라 봉사하는 삶을 살게 됐다. 교회에서는 남선교회 외국인안내실에 소속되어 매 주일과 수요예배, 금요성령대망회 예배를 드리러 세계 각지에서 온 외국인 성도들을 안내하고 우리 교회를 소개한다. 영어를 전공하지 않았는데도 젊은 시절 회사 업무차 해외 출장을 다니며 익힌 영어와 외국인 응대가 봉사에 도움이 됐다. 올해 나는 83세이지만 지금도 매일 영어 공부를 하면서 새로운 단어를 익히고 영어를 더 잘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노력한다. 처음에는 봉사 때문에 열심히 했지만 지나 보니 내가 제일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 여러 나라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소통할 수 있어 하나님께 감사하다. 또 한 가지 의미 있는 봉사는 만 69세까지 총 126회의 헌혈을 한 것이다. 첫 헌혈의 계기는 1983년에 회사 동료들과 위문 봉사를 위해 소아암 병동을 방문했을 때였다. 나도 딸 둘을 키우는 입장에서 암으로 고생하는 아이들을 보니 마음이 정말 아팠다. 환아들이 수혈도 많이 받기 때문에 헌혈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희생하시고 피를 흘리셨으니 나도 내 피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꾸준히 헌혈을 했다. 사업에 실패했을 때도 헌혈을 멈춘 적이 없고 지금까지 100장이 넘는 헌혈증을 기부했다. 헌혈을 100회 이상했을 때는 적십자사에서 명예장도 받았다. 헌혈을 위해서 가벼운 운동과 산책으로 꾸준히 건강관리를 해온 습관이 자리 잡아 지금까지도 이 나이대에는 다 있다는 고혈압이나 당뇨, 간기능 이상 등이 하나도 없다. 헌혈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기쁨이구나라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앞으로도 하나님이 건강을 허락하시는 그날까지 내게 주신 달란트로 봉사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님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하고 싶다. 정리=복순희 기자
  • 2026.05.01 / 복순희 기자

    강상선 성도(장년국) - 심정지의 문턱에서 남편을 살려주신 하나님
  • 20년 기도의 결실로 예수님 영접 나는 두 자녀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함께 교회에 출석했다. 남편은 내가 교회 다니는 것을 반대했다. 그럼에도 나는 몰래 교회를 다니며 남편의 구원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다. 올해 2월 말 남편은 흉부 뒤 협착증으로 수술을 받게 됐다. 수술 전 검사에서는 큰 이상이 없었기에 마음을 놓고 있었지만, 수술 마무리 단계에서 갑자기 심정지가 발생했다. 협착증 수술이 잘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나는 패닉에 빠져 그저 “살려 달라”고만 기도했다. 급히 교회 장년국 열방2교구 지역장님에게 연락해 중보기도를 요청하자 담당 박재우 목사님이 한걸음에 병원으로 오셔서 진심으로 기도해주셨다. 나도 무릎 꿇고 간절히 하나님께 매달렸다. 수술은 약 4시간 동안 진행됐다. 심장으로 가는 세 개의 혈관 중 두 개가 막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만약 집에 혼자 있었거나 잠든 상태였다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수술 중에 발견된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였다. 수술 후 남편은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스스로 호흡할 수 없어 기계에 의존해야 했다. 심정지 상태가 약 2시간 지속되었기에 상태는 매우 위중했다. 마침 장년국에서 진행 중인 여리고 기도회 기간이라 나는 매일 기도회에 참석해 남편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다. 그런데 다음 날 담당 교수님께서 “아주 미미하지만 심장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9일 만에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일반병실로 옮겨오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간수치 상승, 산소포화도 저하, 폐렴 등 여러 고비가 있었고 상태가 좋아졌다 나빠지기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장년국에서 중보기도로 함께해 주셨다. 기도회 마지막 날은 오산리 기도원에서 열려 부르짖고 또 부르짖으며 하나님께 매달렸다. 나는 의식을 회복한 남편과 처음 나눈 대화를 잊을 수 없다.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남편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기도했는지 전했다. 딸의 지인들도, 유학 중인 아들도 출석하는 교회 성도들과 남편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고 알려주었다. 남편은 마침내 3월 16일 퇴원했다. 의사는 심장 기능은 아직 정상보다 낮지만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며 놀라워했다. 기적이었다. 기적은 또 있었다. 남편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들이겠다”는 영접기도를 했다. 20년 동안 남편 구원을 기도한 것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에게 교회를 핍박하던 아빠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아멘’ ‘할렐루야’를 고백했다고 알려주자 다들 놀라워했다. 남편은 더 이상 내가 교회 가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나는 눈치 보지 않고 성경을 펼칠 수 있고 찬송을 부를 수 있다. 남편이 회복되면 함께 성전에 앉아 예배드릴 것이다. 또한 시댁의 구원을 위해 함께 기도할 것이다.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다”라는 이사야서 말씀을 붙들고 기도했던 나에게 응답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할렐루야! 정리=오정선 기자
  • 2026.04.24 / 오정선 기자

    강광희 권사(여의도순복음청라교회) - 절망의 순간마다 하나님께 감사
  • 절대 긍정과 간절한 기도로 문제 응답 1983년 친구의 전도로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출석하게 된 나는 성령 침례를 받고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요식업을 통해 일터 복음화를 이루겠다는 꿈을 품게 됐다. 결혼과 동시에 우리 부부는 인천에서 작은 일식집을 운영했다. 하지만 막상 장사를 시작하니 여러 어려움이 닥쳐왔다. 그럼에도 우리 부부는 늘 하나님 안에서 ‘잘 된다. 할 수 있다. 해보자. 하면 된다’라는 절대 긍정의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이루기 위해 힘썼다. 하지만 가게 형편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직원의 급여를 마련하기 어려웠고, 당장 집에는 먹을 쌀과 김치마저 다 떨어진 상태였다. 막막한 상황 속에서 우리 부부는 오직 하나님께 매달렸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교회 구역 식구들이 갑자기 찾아와 쌀 한 가마와 김치를 한 들통 가득 담아준 것이다. 형편이 어렵다는 것을 알리지도 않았는데 구역 식구들은 하나님께서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오게 되었다고 전했다. 그때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간절히 구할 때 우리의 필요를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채워주신다는 것을 깊이 체험하게 됐다. 하나님의 이끄심은 이뿐만이 아니다. 사업장 계약 만료를 보름 앞두고도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빈손으로 떠나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였다. 모든 것이 막혀있다고 느껴졌던 그때 나와 남편은 아이들을 업고 여의도순복음교회로 철야예배를 드리러 갔다. 평소처럼 교회로 가는 전철 안에서 우연히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게 됐다. 그런데 알고 보니 얼마 전까지 일본에서 요리를 배우고 돌아와 가게 자리를 알아보던 중이었던 것이다. 우리 사정을 들은 그는 우리 가게를 인수하겠다고 했고, 그렇게 갑작스레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발걸음 속에서 하나님은 이미 응답의 길을 준비해 두셨던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때와 계획이 얼마나 정확한지 깨닫게 됐다. 삶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가장 먼저 기도의 자리로 나아간 우리 부부에게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역사하셨다. 하나님은 남편에게 다시 요식업을 통해 일터 복음화의 사명을 감당케 하셨다. 자녀들 또한 훌륭한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했다. 큰아들은 뮤지컬과를 졸업하고 최근 인천시립극단에서 활동하게 됐다. 둘째 딸은 다시 재기한 아버지의 사업에서 마케팅을 돕고 있다. 이 모든 영광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할렐루야! 나는 요즘 여의도순복음청라교회에서 다시금 기도의 불을 뜨겁게 지피고 있다. 돌이켜보면 내 삶의 모든 문제의 해답은 언제나 기도의 자리에서 시작됐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이겨낼 힘이 기도에 있음을, 기도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통로임을 세상 모든 이들이 알게 되기를 소망한다. 정리=금지환 기자
  • 2026.04.17 / 금지환 기자

    송영표 안수집사(은평성전) - 말기암 치유, 주님 은혜로 기적 체험
  •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신 하나님께 감사 인생을 살면서 고난을 겪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 역시 생활의 어려움과 믿었던 사람에게 받은 상처, 희망을 잃고 죽음을 생각했던 시간, 질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좋으신 하나님은 고난을 기쁨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바꿔 주셨다. 다른 교회에 출석하던 나는 35년 전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됐다. 20년 넘게 개인택시를 운전하며 집도 마련하고 생활이 넉넉해졌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의 배신으로 큰 좌절을 겪었다. 막막함 속에서 밤새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울부짖으며 기도하던 어느 날 하나님은 내게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 10:20)라는 말씀을 주셨다. 환경은 달라진 것이 없었지만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차올랐고 구원의 은혜만으로도 감사함이 넘쳐났다. 새벽예배 1000일을 작정했는데 순복음성동교회에서 새벽예배 버스 운전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해 10여 년간 섬기게 됐다. 이후 관광버스를 운전할 때도 주일성수를 위해 일요일은 무조건 쉬었다. 그러나 무리한 운전과 불규칙한 식사 속에 건강은 점점 무너졌다. 8년 전, 소변을 보는 것조차 어려워 병원을 찾았고 전립선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암은 대장과 뼈를 비롯해 온몸으로 전이된 상태였다. 의사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했다. 수술도, 적극적인 치료도 어려운 상황이었고 소변이 나오도록 돕는 약만 복용할 뿐이었다. 몸은 급속히 쇠약해졌다. 지역 식구들이 20명씩 집에 찾아와 나를 위해 다니엘기도회를 드렸고, 교회 성도들과 목사님들도 간절히 기도해 주셨다. 이영훈 담임목사님의 안수기도도 받았다. 많은 분들의 중보기도는 내게 큰 위로와 힘이 됐다. 소변을 보지 못하는 고통이 가장 견디기 어려웠다. 3일 동안 소변이 전혀 나오지 않자 죽음이 임박했음을 느꼈다. 2018년 10월 14일 나는 병원 응급실에 연락을 해둔 채 마지막으로 내 손으로 십일조를 드리기 위해 교회로 향했다. 관광버스를 팔고 회사 미수금까지 받아 십일조 액수가 컸다. 마지막으로 주일 1부 예배를 드리고 십일조를 내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소변이 마려웠다. 교회에서 조금 소변을 본 뒤 집에 돌아가서는 3일 만에 시원하게 소변을 볼 수 있었다. 그 순간 ‘하나님이 살려주셨구나’하는 확신이 들었다. 보름 만에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절망적이었던 암 수치가 기적적으로 크게 떨어졌다. 이후 정기 검진만 받을 정도로 회복됐고 전이됐던 암도 모두 사라졌다. 기적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남선교회에서 교통봉사를 해온 나는 10년 전부터 은평성전에서 봉사하고 있다. 하나님이 주신 건강으로 평생 주님만 바라보며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가겠다. 정리=이미나 기자
  • 2026.04.10 / 이미나 기자

    주효란 집사(반석대교구) - 개인과 가정을 회복시키는 치료의 하나님
  • 지난 3월,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서 열린 여의도순복음교회 제183기 오순절사랑훈련학교(오사랑)에 참여해 큰 은혜를 받았다. 2박 3일 동안 이어진 프로그램은 무척 신선했고, 봉사자들의 환대와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이어지는 강의는 매 순간 은혜로웠다. 특히 이 자리에서 비문증을 치유받으며 눈이 밝아지는 경험을 했다. 지난해 가을 망막에 구멍이 나 치료를 받은 후 비문증이 심해져 날파리도 아닌 올챙이 수십 마리가 앞을 가리는 듯했다. 일상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심해져 기도하던 중 오사랑 참여를 결심했다. 놀랍게도 훈련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눈앞의 이물질이 5개 미만으로 줄었고, 집에 돌아오니 남은 증상까지 싹 사라지며 깨끗하게 고침을 받았다. 정부 아이돌보미로 근무하며 나를 위한 기도보다 다른 가정을 위한 중보기도를 더 많이 해왔는데, 하나님은 치유의 역사를 통해 타인을 위해 더욱 기도하라는 마음을 주셨다. 10년 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이 일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사명감을 갖고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가정은 유치원생 아이가 “우리 엄마 아빠 교육 좀 시켜줘”라며 울던 곳이다. 부모는 남부러울 것 없는 직업을 가졌지만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 늘 다퉜다. 그 모습을 매일 목격한 아이는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고 의자를 던지는가 하면, 나에게도 폭력을 행사할 만큼 상처가 컸다. 하루는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을 거야”라고 말하는 아이를 안고 가슴에 손을 얹어 간절히 기도했다. 어린아이가 죽음을 말할 만큼 마음속 어둠이 짙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아이를 돌보고 나면 망치로 맞은 듯 기진맥진했지만 아이를 등원시킨 후 성전을 찾아가 그 가정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다. 너무 힘든 나머지 “주님… 저 가족은 도저히 못 하겠어요”라고 기도하자 “딸아, 내가 너를 저 가정에 선교사로 보냈다”는 음성이 들렸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마음을 치유해야만 아이가 회복될 수 있음을 강하게 느낀 순간이었다. 이후 이혼 위기에 놓였다는 소식을 듣고 복음을 전하고 곁에서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서 그 가정의 엄마가 아빠의 옷을 정성껏 세탁하는 모습을 보았고, 바로 다음 날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하며 가정이 회복됐다. 믿지 않는 가정에 복음을 전하고 화평케 하는 사명을 주심에 감사할 따름이다. 20년 전 부동산을 운영하던 내게 한 손님이 <행복으로의 초대>를 전하며 복음을 전했고, 개척교회 전도사님이 전해주신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을 알게 됐다. 하나님은 사업장을 통해 물질의 복도 주셨고 때로는 연단의 과정도 주셨다. 그 고난 가운데 믿음을 지킨 결과 남편은 장로로 세워졌고 나 역시 올해 권사 직분을 받을 예정이다. 내가 전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났듯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잊지 않고 가정을 세우는 일을 돕는 하나님의 귀한 도구가 되겠다. 정리=김주영 기자
  • 2026.04.03 / 김주영 기자

    이좌길 안수집사(서대문대교구) - 내가 물려줄 것은 신앙의 유산 뿐입니다
  • 죽음의 위기, 인생의 고난 헤쳐나갈 힘 주셔 나는 1967년 고생을 각오하고 경상북도 안동에서 홀로 상경했다. 그런데 아내 윤삼연 권사가 가족은 떨어져 살 수 없다면서 일주일 뒤 어린아이 둘을 안고 올라왔다. 첫날에는 친구들과 기거하던 천막에서 같이 자고 이튿날 군인 천막을 사서 가족의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이후 돈을 모아 차차 방을 늘려갔으며 연로하신 부모님도 모셨고 자녀도 두명이 더 태어났다. 지금 3남 1녀 자녀들도 모두 장성해 믿음의 가정을 꾸리고 각자 사는 지역에서 지역교회를 섬기는 것이 대견하다. 주님의 은혜임을 분명히 알고 있다. 우리는 아무 힘도 없고 약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두려울 것이 없다. 아무 데도 의지할 곳 없이 각박한 서울살이에 아내는 처음에는 절을 다니다가 어느새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다녔다. 교회를 다니면서부터는 나에게도 꼭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간절히 전도를 했다. 아내의 간곡한 부탁에 나도 1980년대부터 교회를 다니게 됐다. 우리 교회에는 사람들이 엄청 몰려들었는데 교통 봉사를 하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왕 하는 신앙생활 제대로 하겠다고 맘먹고 교회에 왔기에 바로 남선교회 교통실 봉사를 시작했다. 고통스런 겨울 추위, 찌는듯한 여름 더위가 힘들 때도 있지만 오히려 봉사자들과의 전우애는 더 끈끈해졌다. 특히 남선교회 교통실원들과 전국 구석구석 개척교회들을 찾아다니고 교통실원 중 가족상을 당한 사람이 있으면 모두가 찾아가서 운구도 하고 힘든 일을 도맡아 했다. 34년간 봉사하면서 얻은 가족과 같은 이들이 내 인생에서 최고의 복이다. 나는 은평구청 소속으로 청소 업무를 했었다. 산 주변이라 바위가 굴러와서 죽을 뻔한 적도 있고 교통사고를 당해 진짜 죽음의 문턱에 선적도 있다. 1998년 북한산에서 일을 하던 중 차량이 뒤쪽으로 와서 나를 쳤다. 심하게 다쳐 장을 1m가량 잘라내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아내는 남편을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리고, 누워있을 때 서대문대교구 성도들, 형제와 같은 교통실 봉사자 등 너무도 많은 분들이 나를 위해 중보기도 해주었다. 건강을 회복하자마자 봉사의 자리에 섰다. 또 교통실에 피아노, 강대상, 실원들이 앉아 예배드릴 수 있는 장의자도 기증 했다. 내가 자녀들에게 물려줄 것은 신앙의 유산뿐이다. 십계명을 따라 부모님을 섬겼더니 영산효행상을 비롯해 구청에서 주는 효자·효부상도 받았다. 그동안 봉사를 최우선으로 살았는데 불평불만은커녕 봉사하는 남편을 자랑스러워하고 힘을 북돋아 주는 아내에게 감사하다. 우리 부부는 시편 23편 말씀을 좋아한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모든 분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넉넉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란다. 정리=복순희 기자
  • 2026.03.27 / 복순희 기자

    박초아 집사(영등포대교구) - 만성신부전 고통 딛고 복음의 증인 삼으셔
  •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야훼시니라”(잠 16:9). 나는 동대문에서 의류 제작 사업을 하며 바쁘게 살아왔다. 그러던 중 2019년 9월 갑작스러운 구토와 설사로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는데 검사 결과 만성신부전이었다. 곧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투석을 시작하는 등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생체이식을 권유받았지만 나와 혈액형이 다른 남편은 여러 문제로 이식이 어려웠고, 기증을 자원한 셋째 언니는 당뇨 초기 판정으로 적합하지 않았다. 결국 혈액투석 환자가 되어 2년 6개월 동안 입·퇴원을 반복했다. 복막투석을 선택했으나 횡격막에 문제가 생겨 대수술을 받아야 했고, 이후 복막염으로 염증 수치가 8000까지 치솟았다. 어렵게 수술했는데 복막투석 도관을 제거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 앞에서 나는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매달렸다. 3개월의 항생제 치료 끝에 염증 수치는 기적처럼 40 이하로 떨어졌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를 살려 주신 이유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 무렵 영등포대교구 1교구 3450 지역장 직분을 맡게 됐다. 첫 모임은 성인 12명과 자녀까지 총 22명이 모였다. 연약한 몸이었지만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달라’는 기도로 공동체를 섬기기 시작했다. 예배와 말씀 나눔, 중보기도, 단기선교까지 작은 순종을 이어갔다. 코로나 시기에는 온라인으로 모이며 말씀과 감사 나눔을 멈추지 않았다. 공동체는 점점 부흥해 100명에 이르렀고, 임원과 구역장이 세워졌다. 매달 전도를 이어갔고 굿피플 후원을 시작하며 선한 영향력을 실천했다. 2024년에는 소교구 100명 달성 우수상을 받는 기쁨을 누렸다. 몸은 여전히 투석에 의존했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니 투석이 삶의 일부가 됐다. 무거운 투석액을 들고 수련회와 일본 단기선교에도 참여했다. 일본 순복음훗사교회와 우에노 홈리스 사역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며 내 약함 속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다. 그러던 중 올해 2월 4일, 마침내 나에게 기증 전화가 왔다. 세 번의 실패 끝에 받은 네 번째 전화였다. 공동체에 중보를 요청했고 다음 날 ‘수술 가능’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수술실에 들어가며 나는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믿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모든 수치가 빠르게 안정됐다. 요독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붓기가 빠지는 것을 보며 하나님의 세심한 손길을 느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믿지 않던 시댁 식구들이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셨다”고 고백하는 변화가 일어났다. 병을 통해 우리 가정에 구원의 빛이 비치기 시작한 것이다. 6년의 투병으로 내 몸에 남은 기적의 흔적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 하는 표식이다. 나는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안에 있음’을 고백한다. 남은 생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만을 자랑하는 참 제자로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정리=오정선 기자
  • 2026.03.20 / 오정선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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