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변화
이금선 권사(마포1대교구) - 절대 감사로 붙든 치유의 은혜
  • 고비마다 함께하신 하나님께 감사 어릴 때부터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지만 나는 그저 선천적으로 심장이 약한 체질이라고만 생각하며 살아왔다. 2011년 건강검진에서 심장이 비대해졌다는 소견을 받았고 담당 의사는 큰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라고 권했다. 검사 결과 폐동맥 고혈압이었다. 선천적으로 심장 판막이 닫혀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고, 바로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수술을 앞두고 마음은 불안하고 무거웠다. 그해 8월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서 열린 전국 초교파 전국여성금식기도대성회에 참석해 3박 4일 동안 금식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시간 속에서 세상적으로 살던 남편도 나와 함께 기도원을 오가며 믿음이 점점 굳건해졌다.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목사님께서 “수술할 사람이 이 자리에 와 있는데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셨다”라고 선포하셨고 그 순간 마음이 놀랍도록 평안해졌다. 나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라는 말씀을 계속 읽고 쓰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다. 말씀을 통해 큰 위로를 받았고, 교구 식구들의 중보기도 속에서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었다. 심장 판막의 결손 정도에 따라 개흉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었지만, 감사하게도 시술로 가능한 상태라는 판정을 받았다. 큰 어려움을 피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다. 할렐루야. 2015년에는 또 한 번의 큰 고비를 맞았다. 배가 끊어질 듯한 통증이 반복되어 응급실을 찾았고, 검사 결과 난소에 15㎝ 크기의 혹이 발견됐다. 결국 난소와 나팔관, 자궁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게 됐지만, 이때 역시 교구 성도들의 중보기도가 큰 힘이 됐다. 수술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셔서 회복도 빠르게 이뤄졌다. 주변 사람들은 “수술한 사람 같지 않다”, “얼굴에 생기가 넘친다”며 놀라워했다. 세상적으로 살던 남편 또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변화됐다. 남편은 2020년 전립선암 수술을 받고, 2025년 5월에는 위암 수술을 받았는데 우리 부부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다. 수술을 앞두고 나와 남편은 하루에 성경 다섯 장씩 읽으며 말씀에 의지해 온전히 하나님께 맡겼고, 하나님은 치료 과정 중에 큰 위로와 소망을 주셨다. 지금 남편은 건강을 회복해 안수집사로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신앙생활을 잘 이어가고 있다. 나는 늘 시편 23편 말씀을 묵상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나의 목자 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고난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음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항상 이영훈 목사님께서 강조하시는 ‘절대긍정 절대감사’를 마음에 새기며 날마다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갈 것이다. 정리=이미나 기자
  • 2026.01.30 / 이미나 기자

    서상진 선교사(타이중순복음교회 담임) - 예수 이름으로 우상과 귀신 몰아내
  • 대만에서 열두광주리 새벽기도의 기적 체험 나는 1991년 대만 선교사로 파송 받아 지금까지 수많은 영적 전쟁의 현장을 지나왔다. 얼마 전 선교국으로부터 전달받은 여의도순복음교회 ‘열두광주리 새벽기도회’ 소식은 선교사역의 현장에 다시금 뜨거운 불을 지폈다. 전 세계가 함께하는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대만 성도들은 한국보다 1시간 이른 새벽 4시까지 교회에 도착해야 했다. ‘성도들이 이 시간에 올 수 있을까’라는 우려도 있었으나 순종하기로 결단하고 광고했다. 놀랍게도 성령 충만을 사모하는 성도들은 그 이른 시간에도 기도의 자리를 가득 메웠다. 차가운 새벽 공기는 성도들이 쏟아내는 기도의 열기로 인해 어느새 뜨거운 부흥 현장이 됐다. 순종의 마음이 모인 곳에 이미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되고 있었다. 2026년 새해 ‘믿음의 영웅들’이라는 주제로 드려진 이번 기도회는 나에게 분명한 영적 결론을 다시금 세워주었다. 믿음의 영웅은 결코 인간의 의지나 결단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위로부터 부어지는 성령의 능력을 입을 때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대만은 겉으로 평온해 보이지만 실상은 마주(祖), 관우, 조상 숭배 등 수많은 우상과 영적 권세가 견고하게 자리 잡은 땅이다. 사람들은 두려움과 우울, 중독 속에서 고통 받으면서도 그것을 그저 ‘운명’이라 여기며 살아간다. 이 땅을 섬기며 느낀 것은 단순한 복음 선포를 넘어, 성령의 능력으로 어둠의 권세를 실제로 무너뜨리는 사역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기도회 기간 중 간절히 방언으로 부르짖을 때,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지라”라는 약속이 지금 이 땅을 향한 주님의 명령임을 확신했다(눅 24:49). 그 은혜의 증거는 곧바로 나타났다. 11일 고산 지대의 한 집사님으로부터 귀신 들린 아들을 도와달라는 긴급한 요청이 왔다. 오랜 세월 민간신앙과 영적 혼합 속에 방치되었던 아들은 통제 불능의 상태였다. 그러나 함께 방언으로 기도를 시작하자 숨겨져 있던 영적 실체가 드러나며 저항했다. 사역의 매 순간이 그랬듯 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해 담대히 명령했다. 마침내 거품을 토하며 악한 영이 떠나가는 역사가 일어났다. 대만의 그 어떤 우상보다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이 가장 높고 강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체험한 순간이었다. 이번 기도회를 통해 대만 땅의 영적 회복은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의 이름을 실제로 증거할 때 가능하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매일 새벽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역의 방향을 깨워주신 이영훈 목사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파송 후 35년이 지났지만 나의 사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새해에는 더 큰 성령의 능력을 입어 대만의 우상을 무너뜨리고, 복음을 능력으로 증거하는 믿음의 영웅으로 살아가기로 결단한다. 모든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할렐루야! 정리=김주영 기자
  • 2026.01.23 / 김주영 기자

    박일성 목사(양천대교구) - 위 점막 세포가 변하는 장상피화생 완치
  • 이영훈 목사 신유기도 중 치유의 믿음 생겨 8년 전 30대 중반의 나이에 병원에서 장상피화생 진단을 받았다. 장상피화생은 위 점막 세포가 장 조직과 유사한 세포로 대체되는 상태인데 위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위암 전 단계로 암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면서도 약이나 치료법은 없다고 했다. 또 내가 나이에 비해 빨리 걸렸다며 암의 확률이 10~20배 높다는 등 들으면 들을수록 무시무시한 설명만 이어졌다. 나는 과체중도 아니고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다. 만성위염이 있었지만 알면서도 관리를 안 해서 이렇게 되었나 자책감이 들었다. 할 수 있는 것은 식이요법 뿐인데 밀가루, 커피, 매운 음식 등을 먹지 않는 것이었다. 암은 아니지만 항상 ‘안돼’라고 제한하는 것은 번번이 사람을 위축되게 했다. 먹고 싶은 것을 못 먹는 괴로움은 감수할 수 있지만 목회 활동과 가족들의 일상생활에도 지장이 생겨 더욱 간절하게 기도했다. 약이 없으니 오히려 기도만 했다. 상황이 안 좋을수록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태도를 취하고 모든 일을 합력하여 결국에는 선을 이루실 하나님만 바라봤다. 1년 넘게 조심하고 관리하던 중 2019년 3월 6일 수요예배를 드리는데 이영훈 목사님의 설교 제목 ‘기도시간의 기적’처럼 나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목사님은 “어떠한 절망의 상황에도 예수님을 만나야 기적이 일어난다. 기도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치유해 주신다”라고 말하셨다. 그리고 그날 예화가 간경화로 세상을 떠난다고 통보받은 분이 회복된 이야기였는데 들으면서 나도 치유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들어왔다. 이영훈 목사님이 설교 후 신유기도 시간에 치유를 선포하실 때 위염과 위궤양, 위가 딴딴히 부어있는 등 위의 모든 질병을 하나님이 이 시간 치유해주셨다는 말씀이 ‘아멘’(네 맞습니다. 그렇습니다)으로 받아들여졌다. 치유됐다는 확신이 들었다. 몇 개월 후 자연스럽게 때가 되어 건강검진을 받았다. 검진 항목에 있는 대로 위내시경을 한 후 내가 이전에 받았던 검사 결과가 장상피화생이었다고 말하니 의사 선생님은 원래 없었다고 해도 될 정도로 위가 깨끗하다고 하셨다. 지금은 좋아하는 치킨을 먹고 커피도 마시면서 먹는 일과 일상에 누구보다 감사함을 느낀다. 이 일을 겪기 전에는 아픈 분들을 보면 걱정이 더 컸는데 지금은 기도하면 치유될 수 있다는 생각이 더 크다. 믿음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하나님은 내 인생을 나보다 더 잘 아시고 또 나를 배려해 주셔서 내 상황에 가장 알맞은 때에 응답해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새해에는 더 많은 분들이 하나님을 만나 회복과 행복을 체험하고 누리시기를 소망한다. 정리=복순희 기자
  • 2026.01.16 / 복순희 기자

    송영희 권사(용산대교구) - 절망에 처한 영혼에게 희망 주신 하나님께 감사
  • 나는 지난 40여 년 동안 복음을 전하며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외로움과 절망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가까이에서 보아 왔다. 최근 뉴스에서는 국민 여섯 명 중 한 명이 우울감을 겪고 있으며 하루에도 40여 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며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회복하고 삶이 변화되는 모습을 지켜볼 때마다 이 세상의 참된 희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사실을 더욱 확신하게 됐다. 4대째 장로교 집안에서 자란 나는 1980년대 초 지인의 권유로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출석하게 됐다. 당시 조용기 목사님의 성령에 대한 말씀을 통해 성령 침례를 받은 나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깊이 경험했다. 성령의 강력한 임재는 내 마음에 영혼 구원 사명에 대한 갈급함을 불일듯 일으켰고 그 이후 지금까지 한결같이 전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나는 처음 전도를 시작한 1982년 5월 20일부터 지금까지 총 211명을 교회로 인도했다. 지난해에만 134명을 전도했고, 이 가운데 74명이 교회에 정착하며 역대 가장 많은 열매를 맺었다. 이러한 결실은 매주 화요일 전도 물품을 준비하는 손길과 기도, 물질의 헌신 그리고 거리로 나아가는 교구 성도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맺어진 열매다. 전도하며 가장 의미 있고 뿌듯한 순간은 전도한 사람이 실제로 변화되는 모습을 볼 때다. 지난해 11월 전도한 한 40대 남성은 삶의 희망을 잃고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교회에 한 번만 나와 예배를 드려보라”는 권유에 교회를 찾았고, 예배 가운데 말씀을 통해 위로와 평안을 경험하며 회복됐다. 지금은 새가족 교육을 마치고 성실히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또 다른 50대 남성 역시 수 차례 복음을 전해도 완강히 거절했지만, 한 번의 예배를 통해 눈물로 결단하며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 이후 하나님의 역사는 그 가정 안으로 이어져 사촌 동생과 그의 어머니까지 교회로 인도되는 놀라운 열매로 확장됐다. 나는 2006년부터 지금까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한 주도 거르지 않고 교구 성도들과 함께 화요 전도 기도회를 이어오고 있다. 전도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나는 가정의 문제까지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을 믿고 오직 영혼 구원하는 일에 마음을 다해 매진해 왔다. 무엇보다 마음이 늘 평안했고 삶에는 기쁨이 끊이지 않았다. 세상에는 여전히 고립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하나님을 찾는 갈급한 마음은 우리 주변에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기에 전도는 지금도 계속되어야 할 교회의 사명이다. 전도는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역사이다. 우리가 기도하며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도구로 사용하시는 줄 믿는다. 정리=금지환 기자
  • 2026.01.09 / 금지환 기자

    오현경 집사(장년국) - “내 딸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거입니다”
  • 서아는 2015년 11월에 태어났다. 태어났을 때 ‘림프관종’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임신 중에는 탯줄이 목에 감겨 있어 전혀 알지 못했고 출산 후 왼쪽 목에 작은 혹이 있는 것을 보고서야 알게 됐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말에 안도하면서도 자라면서 더 커질 수 있다는 설명에 마음은 무너졌다. 2016년 이영훈 담임목사님이 희귀 난치 질환을 가진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서아가 태어난 지 70일 되던 날, 직접 기도를 받게 되었다. 목사님은 부모의 믿음으로 아이가 이미 고침을 받았다고 선포해 주셨다. ‘아멘’으로 받아들이며 계속 기도에 힘썼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아 생후 6개월이 지나자 면역력이 떨어져 감기에 걸리기 시작하면서 목의 혹이 점점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문제는 희귀병이라 국내에 약이 없었다. 미국에서 개별적으로 약을 구입해 병원으로 전달해야만 치료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여름이 되자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아이의 목을 가리고 외출을 삼갔다. 퇴근 후 모든 일과를 마치고 나면 남편과 나는 아이 곁에 무릎을 꿇고 매일 기도했다. 생후 9개월이 되었을 때 아이의 경과를 보기 위해 병원 검사를 가기 전날, 혹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믿음으로 멈추지 않았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신 순간이었다. 이후 초등학교 4학년이던 지난해까지 재발은 없었다. 할렐루야! 그러던 2025년 2월, 수영을 다녀온 서아가 다리에 고춧가루 같은 붉은 반점이 보인다고 했다. 이어 배가 아프다는 말을 했다. 검사 결과는 자반증이었고 신장 이상으로 단백뇨와 혈뇨까지 나타났다. 친정어머니가 소천하신 이듬해 벌어진 일이라 더욱 힘든 시기였다. 자반증은 하반신으로 퍼져 신학기에 학교 체육활동과 학원 일정, 사랑하던 수영 모두 내려놓아야 했다. 약이 없고 평생 신장투석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5월, 감사하게도 다시 한번 이영훈 목사님의 기도를 받았다. 검사 수치는 최고로 나빴지만 우리는 이미 나았음을 선포하며 기도했다. 교회학교 선생님들과 섬김반 학부모들, 장년국의 중보기도는 큰 위로가 되었다. 병원에 갈 때마다 많은 피를 뽑고, 매일 첫 소변을 받아 검사하며 지켜보는 시간이 상반기 동안 이어졌다. 그런데 2주 간격이던 검사가 점점 4주, 6주, 8주로 늘어났다. 더 이상 자반 증상도 올라오지 않았다. 교수님은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고 하셨다. 가을이 되었을 무렵에는 기적처럼 단번에 소변에서 단백뇨가 완전히 사라졌다. 두 번의 검사 모두 정상 수치 안에 들어 왔다. 복용하던 약도 점차 줄여갈 수 있었다. 1월 21일, 신장 초음파 검사를 앞두고 있지만 두려움보다 믿음의 고백을 드린다. 하나님께서 서아를 통해 우리 가정의 믿음을 성장시키고 계심을 느낀다. 서아는 매일 성경 큐티를 하며 하나님 안에 있음을 고백한다. 9개월 반 만에 다시 수영도 시작했다. 모든 것이 감사였다. 서아는 하나님의 증인이고 증거다. 이 모든 은혜를 기억하며 2026년 서아와 우리 가정에 행하실 하나님의 일들을 기대한다. 정리=오정선 기자
  • 2026.01.02 / 오정선 기자

    이은영 집사(은평대교구) - 치유로 응답하신 하나님께 감사 
  • 믿음으로 간구할 때 병고침 받아 한 해를 마무리하며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보면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2010년 둘째를 출산한 뒤 발바닥에 진물이 나기 시작했다. 약을 바르면 잠시 괜찮아지는 듯했지만 곧 다시 수포가 생기고 터지면서 피부가 벗겨졌다. 화상을 입은 것처럼 화끈거려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통증이 심할 때는 차라리 발 한쪽이 없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여기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왼쪽 옆구리 통증까지 5년이나 이어졌다. 의자에 앉아 있지 못할 만큼 통증은 심해지는데 병원에 가도 원인을 알 수 없었다. 하나님께 2024년 새해 열두광주리 특별새벽예배를 온전히 마치고 드린 첫 주일예배에서 이영훈 목사님이 “왼쪽 등 쪽에 통증이 있는 분은 고침을 받았습니다”라고 선포하셨다. 그 순간 내 기도가 응답받았다는 확신이 들었고, 온 마음을 다해 “아멘”을 외쳤다. 그 날 이후 5년 동안 이어지던 옆구리 통증이 점차 사라졌고 놀랍게도 발바닥의 수포와 진물까지 함께 사라지며 피부가 정상으로 회복됐다. 이 은혜로 오랫동안 교회에 나오지 않던 남편도 “할렐루야”를 외쳤다. 치유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며 몸의 치유를 넘어 가정까지 회복시키시는 분임을 확신하게 됐다. 기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5년경에는 생리량이 점점 많아지며 빈혈 증상이 심해졌다. 병원 검진 결과 체내 철분 수치가 크게 낮아졌고, 상태가 더 악화되면 심장에까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결국 2024년 7월 자궁선근증 시술을 받게 됐다. 시술 직후에는 호전되는 듯했지만 3개월이 지나면서 생리 주기와 상관없는 부정출혈이 시작됐고 이 증상은 6개월 가까이 이어졌다. 불안한 마음으로 다시 병원을 찾으려던 그 무렵, 아프리카선교회 신유축복성회가 여의도순복음포항교회 최수일 목사님을 강사로 개최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마침 여의도순복음포항교회 단기선교를 앞두고 기도로 준비하던 중이었기에 여의도에서 열리는 성회 소식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예배에 가면 나을 수 있겠다”는 기대는 곧 “나는 이미 나았다”는 믿음으로 바뀌었다. 혈루증 여인을 고치신 예수님께서 나에게도 치유의 은혜를 주시길 간구하며 예배에 참석했다. 집회 첫날, 예배 전까지 있던 출혈이 예배 후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다음 날 소량의 출혈이 있었지만 낙심하지 않고 둘째 날 성회에도 참석해 기도했고, 안수기도를 받는 순간 치유됐다는 확신이 마음에 임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부정출혈은 완전히 멈췄고 몸은 정상으로 회복됐다. 이번 경험을 통해 주님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며, 우리의 작은 기도에도 응답하신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실 크고 놀라운 은혜를 소망 가운데 기다리며, 평생 좋으신 하나님만 섬기고 높이는 삶을 살고 싶다. 정리=이미나 기자
  • 2025.12.26 / 이미나 기자

    정덕한 집사(관악대교구) - 새 생명 주신 하나님을 찬양
  • 나는 원래 타종교 신자였다. 자식을 일찍 떠나보낸 어머니는 나마저 잃을까 두려워 나를 타종교에 종속시키셨고 매일같이 무당에게 데리고 다니셨다. 6·25 전쟁 통에 아버지는 행적을 알 수 없게 되었고 어머니마저 일찍 세상을 떠나신 뒤 나는 전쟁의 피폐함과 극심한 궁핍을 홀로 견디며 오직 나 자신만을 믿고 살아왔다. 6촌 형님의 권유로 제과회사 센터에서 일을 도우며 영업과 인력 관리를 맡게 되었지만, 바쁜 일상 속에 끼니를 거르는 날이 잦았고 매일같이 술을 마셔야 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그렇게 2년쯤 지났을 무렵 온몸이 아파 병원을 찾았더니 십이지장이 지나치게 얇아져 자칫하면 구멍이 날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심신의 안정을 위해 쉬어야 한다고 했고 나는 그때 ‘종교가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무렵 교회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찾았다. 대성전에 들어서는 순간 설명하기 어려운 평안함이 마음에 가득 찼다. 구역장들이 찾아와 함께 기도해 주고 따뜻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나와 아내는 예수님을 잘 알지 못했지만 그 사랑에 이끌려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된 뒤 지인의 소개로 건설회사에서 관리 반장으로 일하게 되었는데, 또다시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현장에서 아찔한 순간이 잦았고 실제로 두 차례나 쓰러졌다. 그리고 세 번째로 쓰러진 뒤, 2023년 5월 10일 오전에 입원해 심장 대동맥 수술을 받게 됐지만 망상과 의식 소실을 반복하며 몸을 묶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위중했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여러 번 내가 죽음의 길로 갈 때마다 하나님이 나를 놓지 않으셨다. 나는 계속해서 이렇게 기도했다. “죄 많은 죄인을 살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를 지켜주세요. 도와주세요.” 정신을 차리고 나서 의사로부터 심한 망상 증세가 있었고 생명을 잃을 뻔한 매우 위급한 상황이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여전히 나 자신을 의지하며 살아왔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언제나 나를 지켜주고 계셨다는 사실을 말이다. 또한 나를 위해 기도해 준 아내와 교구 식구들의 중보가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도 알게 됐다. 건설 현장에서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길 때도, 수술 후 망상 속에서 생명을 건져 주신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다. 새 생명을 얻은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2년째 매일 아침 성경 말씀을 읽고 필사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수많은 고난과 위기를 지나서야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깨닫게 되었고 살려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게 됐다. 많은 분들이 나보다 더 일찍 더 깊이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알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정리=김주영 기자
  • 2025.12.19 / 김주영 기자

    김무옥 집사(양천대교구) - 뇌출혈 있었지만 장애 없이 일상 극복
  • 수술 당일 의식 회복 후 빠르게 좋아져 30여 년 해외 근무하며 하나님의 기적 체험 나는 8월 4일 뇌출혈로 긴급수술을 했다. 아내 김정숙 권사를 비롯해 사랑하는 네딸과 가족들, 교구장님과 교구 성도들 모두가 중보기도를 했다. 수술 당일 의식이 회복됐고 이튿날부터 중환자실에서 스스로 식사가 가능했다. 나는 쓰러지기 전 열린 초교파여성금식성회에 참석해 아내와 함께 3일 금식기도를 하는데 몸이 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금식을 해서 그런가 했는데 3주 전에 나무를 자르다 사다리에서 떨어져 머리를 부딪힌 후부터 출혈이 있었던 것이다. 새벽기도에 다녀온 아내가 쓰러진 나를 발견하고 하나님께 원하는 대학병원에 갈 수 있도록, 또 좋은 의사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기도한 대로 일사천리로 병원에서 조치가 이뤄졌다. 장애나 큰 후유증 없이 일상생활이 가능할 만큼 회복이 빨랐다. 퇴원을 한 8월 15일 광복절을 나는 다시 태어난 날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한다. 금요철야예배에 참석한 성도들이 나를 위해 특별중보기도해주신 것도 감사하다. 이번 일을 겪으며 나의 일생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나는 1980년대 한국해외개발공사 시절 입사해 코이카(KOICA) 창립멤버로 아프리카 등 여러 국가에서 30여 년을 근무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교통사고에서 살아났고, 몽골에서 낙마사고를 극복했다. 또한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재건 사업 등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나는 유교사상이 강한 집안에서 불교신자인 어머님 슬하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결혼 당시 아내도 종교가 없었는데 어느 날인가부터 나 몰래 교회를 다니는 것을 알게 됐다. 아이들까지 데리고 다니는 것을 보며 절대 교회에 다니지 말라고 엄포를 놓고 아내를 말렸다. 하지만 사기로 인해 집을 잃을뻔한 시련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한 아내는 결코 신앙을 놓치 않았다. 엄마와 함께 딸들도 아빠가 교회 가기를 평생 소원하며 고사리 같은 손을 모아 기도했다. 1990년대 말 추운 몽골에서 근무를 할 때였다. 영하 40℃ 날씨에 꼭 예배를 드려야 한다면서 아내와 딸들이 걸어서라도 가겠다며 길을 나섰다. 차마 어쩔 수가 없어 내가 운전을 해서 교회에 데려다줬다. 큰아이는 아빠 손잡고 교회 가는 게 소원이라고 했지만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아빠는 예배 마치면 돌아오겠다고 했던 그날 왠지 교회 안에 들어가 뒷자리에 앉았다. 이후 한국에 와서 아내를 따라 나도 교회에 가고 신앙생활을 하게 됐는데 그날이 많이 생각난다. 내가 예수님을 믿지 않던 그 순간에도 아내는 끊임없이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나를 이토록 사랑해주는 아내와 딸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나의 몸과 영혼을 잘 돌보며 살아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말씀 묵상을 매일 하면서 올해의 감사 제목을 작성해 보았다. 예수님은 언제나 나를 지켜 주시는 분이시다. 다른 분들도 속히 예수님을 영접하고 평안함을 누리며 살아가시길 바란다. 정리=복순희 기자
  • 2025.12.12 / 복순희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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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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