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변화
최연숙 집사(마포1대교구) - 선교지에서 체험한 기적, 더 깊어진 하나님의 은혜
  • 교회에서 예배만 참석했던 나는 공동체 소속을 간절히 원했지만 좀처럼 기회가 닿지 않았다. 그러던 중 마포1대교구 더드림3450을 소개받아 함께 교구 활동을 시작했는데 정말 행복했다. 이번 여름에는 처음으로 해외 단기 선교도 다녀왔다. 일본에서 3박 4일 동안 여름 성경학교, 노방전도, 율동과 게임 등 여러 사역을 더드림3450 성도들과 함께했다. 그런데 선교를 시작하면서 왼쪽 발목을 다쳤다. 당시에는 멍도 없고 겉으로 보기에도 아무 이상이 없어서 크게 다친 줄 몰랐다. 다음 날 아침기도를 마치고 교회 건물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데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이제 괜찮아졌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율동도 하고, 여름 성경학교 게임도 하고, 노방전도도 하며 정말 많이 걸어다녔다. 그렇게 모든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토요일 밤, 집에 돌아와 양말을 벗는데 깜짝 놀랐다. 왼쪽 발 전체가 심하게 붓고 멍이 들어있었고 발바닥까지 피가 몰려 파랗게 변하며 통증이 심해졌다. 주일을 지나 병원에 갔을 땐 그래도 걸어서 진료실까지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의사도 인대가 조금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막상 엑스레이를 찍고 나서는 깜짝 놀라며 “뼈가 깨졌는데 어떻게 이렇게 하고 다니셨어요?”라며 놀라워했다. 의학적으로 볼 때 선교 사역을 감행할 수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결국 골절 진단을 받고 6주 정도 치료가 필요하다는 소견이 나왔다. 하지만 놀랍게도 약 2주 후 다시 엑스레이를 찍었을 때 뼈가 잘 붙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후에는 외출할 때만 보호대를 하고, 치료도 거의 끝났다. 사실 다쳤을 당시에는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남편이 “당신이 보는 곳, 밟는 곳, 그 곳이 다 하나님의 나라가 될 거야. 그렇게 되도록 내가 기도할게”라고 해준 말이 큰 위로가 됐다.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세밀하게 우리의 삶을 돌보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교를 준비하면서 처음에는 많은 것을 계획했고, 준비한 만큼 열매가 나타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결과보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게 가르쳐 주셨다. 특히 일본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 가정을 통해 헌신과 섬김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어 큰 도전이 됐다. 앞으로 내가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정리=오정선 기자
  • 2026.10.08 / 오정선 기자

    진철용 장로(양천대교구) - 암이라는 광야에서 하나님 은혜 경험 
  • 기도와 말씀 붙들며 치유의 은혜 간증 2024년 12월 감기에 걸렸는데 한 달이 지나도록 기침이 멈추지 않아 건강검진을 받았다. 검사 결과 폐에 약 1㎝ 크기의 결절이 발견돼 큰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폐섬유결절이라고 했다. 6개월 마다 검사를 받았는데 점점 크기가 커져 1.4㎝가 되면서 암이 의심됐다. 올해 4월 다른 병원에서 처음부터 다시 검사를 받았다. 폐암 진단을 받고 절제수술 날짜를 잡아야 했다. 전신을 확인하기 위해 PET 검사를 받았는데 뜻밖에도 갑상선과 간에서도 암이 의심되는 소견이 발견됐다. 폐암을 검사하러 갔는데 갑상선과 간까지 암이 의심된다니 정말 황당했다. 갑상선에는 1.9㎝ 크기의 결절이 발견됐고 초음파와 세포조직검사를 받은 후 7월 13일로 수술날짜를 잡았다. 간은 복부 CT와 MRI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데 외래진료 일정이 자꾸 미뤄지면서 불안한 마음이 커졌다. 나는 15년 동안 B형간염을 앓았고 간경화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신유 기적을 체험했다. 1996년에 건강을 회복하고 남선교회 봉사를 시작할 때 간 조직검사를 받아보라고 했지만 당시 나는 “하나님이 고쳐주셨다”고 고백하며 검사를 받지 않았다. 남선교회 봉사실 봉사부터 장로회 예배위원장을 맡은 지금까지 30년간 예배의 자리를 섬겼는데 간에 암이 생겼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될까 두려웠다. 아내 김순옥 권사는 나를 위해 눈물로 기도했다. 나와 함께 오산리 기도원 기도굴에 올라가 회개하며 간절히 기도했고, 제50회 전국초교파여성금식기도대성회를 앞두고 진행된 다니엘기도회에서도 나의 치유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나 역시 새벽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며 교회에서 제작한 ‘치유와 승리를 위한 52주 성경 말씀’을 외우고 그 말씀을 굳게 붙들었다. 폐암 수술을 앞두고 이영훈 담임목사님께 두 차례 기도를 받았다. 간절한 기도를 받는 순간 머리부터 목뼈와 허리까지 전율이 파도처럼 흘렀고, 그 순간 하나님께서 나를 치유하셨다는 확신과 함께 큰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7월 3일 폐암 수술은 성공적으로 진행돼 1.4㎝ 크기의 폐암 덩어리를 깨끗하게 잘라냈다. 조기에 발견하게 된 것이 정말 천만다행이었다. 그런데 더욱 감사한 일이 있었다. 내가 가장 걱정했던 간은 MRI 검사를 다시 한 결과 아무 이상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갑상선도 유전자 검사까지 진행했지만 암 수치가 낮아져 수술할 필요가 없었다. 이번에 암이라는 광야를 지나며 또 다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했다. 좋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린다. 정리=이미나 기자
  • 2026.10.02 / 이미나 기자

    최미자 권사(은평대교구) - 하나님의 은혜로 40년만에 이뤄진 가족 구원
  • 1986년 결혼하면서 하나님께 가장 먼저 드린 기도는 시댁의 구원이었다. 시아버지는 마을에서 수백 년 이어져 온 산제사에 참여하던 분이었고, 시어머니 역시 “시집오면 교회에 다니면 안 된다”고 할 만큼 교회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계셨다. 결혼생활은 쉽지 않았다. 시댁의 반대와 냉대 속에서 오직 기도로 견뎠다. ‘내가 잘못하면 하나님과 교회가 욕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4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가족 구원의 소망을 놓지 않았다. 지난해 시어머니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마지막 순간 복음을 듣고 천국 소망 가운데 떠나신 어머니를 보며 하나님께 감사했다. 이후 남편은 꿈속에서 흰옷을 입은 어머니가 천국으로 들어가시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그 꿈은 가족 모두에게 큰 위로가 됐다. 놀라운 변화는 시아버지에게 찾아왔다. 평생 복음과 거리가 멀었던 시아버지가 아들과 손자의 권유로 예배 자리에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예배 시간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굳게 닫힌 마음을 열어가고 계심을 느낀다. 현재 우리 가족은 4대가 함께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다. 물론 지금도 쉽지만은 않다. 올해 아흔셋이 되신 시아버지를 위해 일주일에 두세 번 찾아가 반찬을 만들고 식사를 챙긴다. 몸도 마음도 지칠 때가 있고, 힘든 시간을 지나며 건강의 어려움도 겪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이루신 일을 떠올린다. 사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했던 변화를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모습을 보며 다시 믿음으로 일어선다.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는 내게 자녀의 복을 허락하셨다. 두 자녀는 믿음 안에서 바르게 성장했다. 아들은 고3 수험생일 때도, 군 생활 가운데도 신앙의 자리를 지켰고 찬양대에서 좋은 짝을 만나 결혼했다. 딸 역시 언제나 든든한 내 편이 되어 주고 있다. 40년은 광야와 같은 시간이었다. 수없이 울며 하나님께 왜 이런 길을 허락하셨는지 묻기도 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하나님께서는 한 번도 우리 가정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가장 완고해 보였던 시아버지를 예배의 자리로 이끄셨고, 우리 가정을 믿음 안에 세워 가고 계셨다. 나는 시아버지가 하나님을 더욱 깊이 만나 성령 안에서 온전히 변화되고, 끝까지 사랑으로 섬길 수 있는 힘을 내게 주시기를 기도한다. 사람의 눈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이루어 가신다. 40년의 광야를 지나 믿음의 가정으로 세워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린다. 정리=김주영 기자
  • 2026.09.23 / 김주영 기자

    김귀순 권사(서대문대교구) - 건강과 행복의 비결은 하나님께
  • 우리 가족은 1980년대 초 고향에서 하던 사업이 어려워져 모든 것을 정리하고 상경했다. 어려운 시절 이웃의 전도를 받고 1984년 우리 교회에 왔다. 여덟살 첫째, 다섯살 둘째, 세살인 쌍둥이 셋째와 넷째까지 자녀 네 명을 데리고 버스를 타고 다녔다. 원효대교까지만 버스가 운행해서 아이들과 걸어서 교회까지 왔지만 나들이처럼 재미있었다. 당시 우리 교구는 평일에 3일씩 각 가정을 다니며 작정예배를 드렸다. 그때 나는 코피가 매일같이 났지만 병원을 가도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 열린 작정예배 마지막 날 내 마음을 모두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기도하자 아주 작은 죄까지 세세하게 기억이 났다. 회개기도와 눈물 속에 방언이 터졌고 옆에서 전도사님이 성령이 임하셨다며 등을 두드려주셨다. ‘아! 흰 바지가 피로 물들었겠구나’ 정신이 들어 눈을 떠보니 눈물과 콧물만 가득했다. 이후부터 코피가 난 적이 없고 몸이 아프거나 문제가 생길 때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병을 고쳐주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한 번은 편두통으로 늘 머리를 남편 넥타이로 묶고 지낼 정도로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아주 독한 약을 처방받아 먹으면 후유증이 더 컸다. 어떤 병원에서는 위하수증이 두통의 원인이래서 고춧가루 등 위에 부담이 되는 것은 아예 끊고 살았다. 어느 날 유명한 한의사의 소식을 들었는데 서울에는 토요일에만 온다고 했다. 토요일에 방문하기로 하고 평소처럼 수요예배를 드렸는데 조용기 목사님께서 신유기도 시간에 두통이 나았다고 선포하셨다. 나에게 하는 말씀이라는 확신이 들어 ‘할렐루야’를 외쳤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말을 하니 그럼 당장 회를 사주겠다고 해서 오랜만에 회를 고추장에 찍어서 맛있게 먹고 왔는데 두통이 사라졌다. 남편은 나의 모습을 보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함께 교회를 다니게 됐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족에게 복을 주셔서 네 자녀들을 무탈하게 잘 키우고 해외 유학도 보낼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윤택함도 주셨다. 하나님이 너무 좋아서 친정 부모님과 형제들, 시댁 식구들 모두에게 좋으신 하나님을 전하지 않고는 못 배겼다. 양가 식구들이 구원을 받고 지금도 신앙 안에서 화목하게 지내고 있다. 얼마 전에는 서대문1교구 성도들과 일본 간사이 지방 선교여행을 다녀왔다. 선교사님들과 현지 성도들과 함께 하면서 짧은 기간이었지만 느낀 것이 많다. 나는 앞으로도 참 좋으신 하나님을 전하며 살아갈 것이다. 정리=복순희 기자
  • 2026.09.18 / 복순희 기자

    오지연 권사(마포2대교구) - “기도만이 살길입니다”
  • 살아오면서 나는 여러 번 벼랑 끝에 서는 경험을 했다. 남편을 갑작스러운 사고로 떠나보냈고, 그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희귀암 판정을 받았다. 사업의 위기도 겪었고 자녀들의 믿음을 위해 눈물로 기도해야 하는 순간도 많았다. 모든 시간을 지나오며 내 마음에 분명히 남은 고백이 있다. “기도만이 살길이다.” 매일 오전 4시 30분경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말씀을 묵상하고, 은혜를 기록해 지인들과 나눈다. 그러면 말씀이 하루 종일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분명한 은혜였다. 남편은 결혼 초 세상과 교회 사이를 오갔지만 교회에서 진행하는 아버지학교를 통해 변화됐다. 수료 후 믿음의 제사장으로 살아갔고 자녀들을 위해 매일 기도했다. 주일예배는 물론 구역예배 등 모든 예배를 사모했고 장로가 되기를 소망해 열심히 준비했다. 그러나 2019년 장로 장립을 앞두고 사업체의 공장 기계 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남편이 사고를 당한 순간에도 나는 기도했고 장례 후에도 말씀과 기도를 놓지 않았다. 무엇보다 특히 아빠를 잃은 두 딸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간절히 기도했다.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뿐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떠난 다음해 여름 나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유잉 육종암 3기 진단을 받고 수술과 14번의 항암치료, 35번의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너무 힘든 순간에는 병실에서 찬양을 틀어놓고 하나님을 붙들었다. 주변 환우들이 신기해하며 어떻게 그 독한 암을 견디느냐고 물으면 “하나님이 힘을 주셔서 기도한다”고 대답했다. 의사는 건강할 수 없는 상황에도 건강을 되찾은 건 주변에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인 것 같다고 했다. 나를 살리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셨다. 암 투병 중에는 사업장까지 옮겨야 했다. 내 힘으로는 불가능해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다. 결국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넓은 부지로 옮길 수 있었다. 세상적인 방법을 내려놓으면 하나님은 지혜도, 사람도, 새로운 길도 반드시 주신다. 나는 사업장이 선교지라고 생각한다. 유난히 더웠던 올여름 공장을 찾은 이들에게 얼음물 한 병을 건네며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예수님 믿으세요”라고 복음을 전했다. 나는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것도 믿음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루 가운데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시간을 지키려 애쓰고 있다. 힘들 때마다 하나님 앞에서 울며 기도하면 “그러니까 내가 한다”고 답을 주시는 것 같다. 내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믿기에 절대 감사의 신앙을 놓을 수 없다. 매일을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날까지 예배의 자리를 지켜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자녀를 위해, 교회와 주의 종들을 위해, 선교지를 위해 기도하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하고 천국소망을 알리는 것뿐이기에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한다. 정리=오정선 기자
  • 2026.09.11 / 오정선 기자

    이주애 집사(대학청장년국) - 두차례 소아암 치료하신 하나님께 감사
  • “아이의 암이 완치되어 건강하게 키우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2006년 결혼한 뒤 7년 동안 아이를 기다렸다. 그러던 2013년 이영훈 목사님께서 주일예배 신유기도 시간에 “아이가 없는 가정에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셨습니다”라고 선포하셨는데, 같은 말씀을 2주 연속 전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우리 가정에 주신 약속으로 마음에 품었고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사랑하는 명효를 허락해 주셨다. 명효는 건강하게 태어났고 갓난아기 때부터 참 순했다. 배가 유난히 불룩하기는 했지만 우리 부부 모두 체격이 큰 편이라 우리를 닮은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명효가 생후 123일, 5개월 차 무렵이었다. 친정 부모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명효가 배가 아픈 듯 계속 울었다. 이틀 동안 입원해 12가지 검사를 받은 결과, 간모세포종 진단을 받았다. 간에서 12㎝ 크기의 종양이 발견됐다. 갓난아이의 몸통 약 3분의 2를 차지할 만큼 큰 종양이었다. 아직 말도 하지 못하는 아기의 몸속에 그렇게 큰 암 덩어리가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나는 원래 불안감이 높고 걱정거리나 마음 아픈 일을 잘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께서 ‘명효를 반드시 고쳐주신다’는 믿음을 주시며 마음을 강하게 붙들어 주셨다. 항암치료가 막바지에 이른 2014년 2월에는 장년국(현 그레이스선교부) 성도들이 명효를 위해 합심으로 기도하고 후원금도 전달해 주셨다. 심적·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우리 부부에게 큰 힘이 됐다. 그러나 이듬해 10월 정기검진에서 명효의 폐에 병변이 발견됐다. 어린아이가 그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다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아 두 달을 내리 울었다. 그럼에도 나는 기도의 끈을 놓지 않았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정을 책임져 주시겠다’는 확신을 주셨고, 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다. 하나님께서는 명효가 20회에 가까운 항암치료를 받으며 간 절제수술과 폐 병변 제거수술도 견뎌내도록 붙들어 주셨다. 그렇게 두 번째 치료를 마친 명효는 약 10년 동안 특별한 재발 없이 건강하게 성장했다. 지금은 중등부 섬김반에서 봉사하며 하나님의 귀한 일꾼으로 쓰임받고 있다. 평소 글쓰기에도 관심이 많아 순복음가족신문 인턴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지난 8월, 정기검진에서 명효의 간에 의심 소견이 발견돼 오는 11월 초음파검사를 앞두고 있다. 지금까지 명효를 지켜주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우리 가족을 인도해 주실 것을 믿는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우리 가족이 되기를 소망한다. 정리=금지환 기자
  • 2026.09.04 / 금지환 기자

    정성운 안수집사(종로중구대교구) - 하나님 의지할 때 큰 은혜 받아
  • 교회 봉사하며 감사 넘치는 삶 살게 돼 돌아보면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 말씀을 의지해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길을 열어주셨다. 나는 35년간 한결같이 새벽기도회에 나가 기도하신 어머니 최희자 권사님의 모습을 보며 자랐다. 어머니의 기도는 내 믿음의 뿌리가 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오산리 기도원 수련회에서 성령 침례를 받으며 믿음을 키웠고, 군 제대 후에는 중등부 교사로 섬기며 국가공무원의 꿈을 키웠다. 대학원 박사과정과 시험 준비에 매진했지만 여러 차례 실패를 경험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며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합격의 기쁨을 누렸다. 결혼 후에는 논문까지 완성해 박사학위도 받을 수 있었다. 그 은혜는 아내 유성희 집사에게도 이어졌다. 피아노를 전공한 아내는 결혼 후에도 교회 곳곳에서 반주로 자신의 달란트를 나누며 섬겼다. 그러던 중 만 40세에 피아노교육을 더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대학원 진학을 준비했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기도하며 준비했고, 하나님께서는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피아노교수학전공 석사과정에 성적우수장학생으로 입학하는 길을 열어주셨다. 지금까지 장학금의 은혜 가운데 공부하며 교회 여러 곳에서 반주자로 감사히 섬기고 있다. 우리 부부가 종로중구대교구 3450에서 헌신하게 된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총무 겸 1교구 대표지역장으로, 아내는 찬양팀장으로 하나님께 받은 달란트를 나누고 있다. 2025년에는 종로중구 3450 ‘그레이스 찬양팀’을 창단해 즐겁게 찬양하고 있다. 최근 속초 단기선교를 준비하면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몸으로 경험했다. 선교를 앞두고 왼쪽 무릎이 아파 굽히기조차 어려웠지만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했다. 8월 2일 주일 2부 예배 신유기도 시간에 이영훈 담임목사님께서 “무릎 관절을 굽히는 데 불편함이 있는 분이 치유되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 무릎이 뜨거워지면서 통증이 깨끗하게 사라지는 치유를 경험했다. 덕분에 건강한 몸으로 가족과 함께 속초 단기선교를 다녀올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2024년부터 두 자녀 은찬(초6), 다은(초3)이와 함께 단기선교에 참여하고 있다. 선교를 준비할 때마다 성도들의 기도와 후원이 더해지며 해마다 큰 은혜를 경험하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 가족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나누며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믿음으로 살아갈 것이다. 정리=이미나 기자
  • 2026.08.28 / 이미나 기자

    김미자 권사(영등포대교구) - “전도는 내 삶이고 사명입니다”
  • 고관절 수술 후 건강하게 회복 돼 전도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이다. 올해 상반기에도 320명의 새가족을 교회로 인도하며 전도시상식에서 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 상보다 더 감사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전도의 열매를 맺게 하셨다는 것이다. 사실 올해 상반기는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지난 4월 5일 교회로 인도한 새가족들에게 간식을 나눠주려고 분주히 움직이다 바닥에 놓인 끈에 걸려 넘어졌다. 왼쪽 고관절이 골절돼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됐고 그날 저녁 인공고관절 수술을 받았다. 처음에는 두려웠지만 모든 과정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회복은 예상보다 빨랐고 검사에서는 관절염 전 단계였던 고관절 상태가 오히려 좋아졌다는 말을 들었다. 이영훈 담임목사님의 신유기도에 믿음으로 응답하며 화가 복으로 바뀌는 하나님의 손길을 깊이 경험했다. 올해는 몸의 아픔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2월에는 여동생을, 6월에는 오빠를 하나님 품으로 떠나보냈다. 연이어 찾아온 슬픔 속에서도 전도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전도하면서 하나님께 위로를 받았다. 새가족들이 예배 가운데 은혜받고 변화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 마음에도 새 힘이 생겼다. 특별히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귀한 동역자를 붙여주셨다는 사실이다. 내가 전도해 정착한 새가족이 또 다른 새가족을 인도했고, 내가 움직이지 못하는 동안에는 직접 새가족을 안내하며 내 손과 발이 되어주었다. 그 모습을 보며 전도는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사역임을 다시 깨달았다. 또한 남편과 자녀들이 나를 격려하며 함께 전도 사명을 감당해주어 감사하다. 특히 아들 용선이는 남선교회에서 2년째 봉사하고 있는데 전도하는 나를 응원해주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크게 다치고도 왜 쉬지 않느냐”고 묻는다. 전도는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일이기 때문이다. 물질을 아끼지 않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그들을 전도할 때 하나님이 내게도 큰 복을 주셨다. 내가 재정적으로 부족할 때도 하나님이 여러 방법으로 채워주시는걸 보면 감사와 은혜가 넘친다. 고관절이 부러지는 아픔도, 가족을 떠나보내는 슬픔도 내 사명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날까지 한 영혼이라도 더 주님께 인도하며 끝까지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하고 싶다. 정리=김주영 기자
  • 2026.08.21 / 김주영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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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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