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변화
박혜영 권사(여의도순복음청라교회) - 턱 골수염 치료해 주신 하나님께 영광
  • 나는 최근 말씀과 기도로 치유 받는 기적을 체험했다. 2년 전 임플란트 시술을 받은 뒤 계속해서 통증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통증은 날로 심해졌고 이듬해 다시 병원을 찾았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던 중 인천의 한 대학병원에서 턱 일부가 괴사돼 골수염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들었다. 밤마다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은 심했고 몸과 마음은 지쳐갔다. 그렇게 밤잠을 설치던 어느 날이었다. 새벽 2시쯤 잠에서 깬 나는 어느새 말씀을 읊조리고 있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무의식중에 읽게 된 말씀이었지만 그 말씀은 내 마음 깊은 곳에 평안과 위로로 임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 나를 붙들고 계신다고 믿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고쳐주실 것을 믿음으로 선포하며 기도했다. 자녀들은 서울의 큰 대학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받아보자고 권유했다. 나는 마지못해 병원을 찾았고 검사 결과 임플란트와 턱뼈 일부를 제거해야 한다는 소견을 들었다. 당장 수술 날짜를 잡아야 한다는 말에 마음이 무너졌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있었기에 수술만은 피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결국 10월로 수술 날짜를 예약하고 나는 더욱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이전에 다니던 병원에서 다시 검진을 받던 중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골수염 진행이 멈춰 수술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견을 들은 것이다. 할렐루야! 나는 그 길로 예정되어 있던 수술을 취소했다. 이후 기적처럼 통증이 사라졌다. 나를 치료해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린다. 돌아보면 하나님의 일하심은 이번 일에만 머물지 않았다. 2005년경 운송업을 하던 남편이 교통사고를 겪으며 가정 형편이 크게 어려워진 적이 있었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압박 속에서 나는 심한 두통과 어지럼증에 시달렸고 정신과를 다닐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을 때 나는 교회로 향했다. 예배를 사모하며 하나님께 붙들릴 때 성령으로 충만해졌고,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절망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변화된 나의 모습은 남편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남편도 하나님을 믿게 됐고, 우리 가정은 신앙 안에서 하나가 되어 갔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신다. 상황은 막막해 보여도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 말씀을 붙들고 기도할 때 주님은 우리에게 위로와 평강을 주시고 다시 일어설 힘을 허락하신다. 나의 삶을 치료하시고 우리 가정을 붙들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린다. 정리=금지환 기자
  • 2026.07.17 / 금지환 기자

    김현웅 집사(용산대교구) - 사업 실패, 질병 모두 하나님께 맡기세요
  • 기도하고 나아갈 때 새로운 힘 주셔 참된 평안과 기쁨 주님 안에 있어 불교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나는 책임감이 강한 성격으로 고등학교, 대학교 때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사찰의 학생회 총무와 회장을 도맡아 했다. 그러던 내가 20대 후반에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다. 아내의 눈물 어린 기도 덕분에 나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다니면서 예수님을 알게 되고 구원을 얻게 됐다. 교구에 속해 신앙 생활하며 남선교회 봉사를 한 지 벌써 30여 년이 흘렀다. 젊은 시절 나는 우유 대리점과 도매업 등을 여럿 했는데 보증 선 것이 잘못되어 사업이 망했다. 그로 인해 몇 년간 고생했지만 나는 실수를 되짚어 보면서 나를 재정비했다. 사업을 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사업이 잘못되면 재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겸허히 현실을 받아들였다. 과거는 과거에 두고 가족을 위해 배달일부터 무엇이든 기회 닿는 대로 일을 했다. 매 주일 교회 봉사와 예배로 하나님께 나아가면 힘이 났다. 5년 만에 재기에 성공하고 집도 마련했다. 가장 감사한 것은 자녀를 위한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 것이다. 일반 대학교를 졸업한 뒤 회사를 다니던 딸은 간호대에 편입을 해서 다시 대학생이 됐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공부를 한다니 부모로서 걱정이 됐지만 딸의 확고한 목표를 듣고 딸을 응원해주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위가 많이 아프다고 했다. 계속되는 통증에 병원에서 진찰을 받아보니 위암이 의심된다며 더 자세한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검사를 받는 중에도 딸은 고통을 호소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 기도만 했다. 당시에는 그게 서원기도인지도 몰랐다. 딸만 고쳐주신다면 내가 세상의 것을 모두 다 끊겠다고 기도했다. 처음으로 끊어진 것이 담배였다. 하루에 두갑 씩 피던 담배가 딱 끊겼다. 교회에서 금연했다는 이들의 간증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 줄 알았다. 이전에 내 의지를 갖고 끊으려 했을 때는 3일을 참은 끝에 결국 담배에 손이 갔는데 하나님이 끊게 해주신 날부터 완전히 담배 중독에서 놓여났다. 사업상 술자리 모임도 많았는데 술도 싫어졌다. 사람들이 아무리 권해도 딱 거절을 하고 나니 모임과 만남이 정리가 됐다. 이런 일이 있은 후 검사 결과를 들으러 딸이 진료를 받으러 갔다. 결과는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으로 나왔다. 응답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기쁨과 동시에 내가 다시 술과 담배를 입에 대면 아이가 다시 아플 것 같다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 생겼다.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남선교회 활동도 기쁨으로 하고 있다. 현재 딸은 대학병원에서 근무하고, 아들은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 딸과 사위, 아들과 며느리는 손자 손녀들 모두 순복음의 뜰 안에서 양육하며 믿음의 가정을 이뤘다. 진정한 평안을 누리고 싶은 분이 있다면 하나님께 속히 돌아오시길 바란다. 정리=복순희 기자
  • 2026.07.10 / 복순희 기자

    박진경 권사(양천대교구) - 급성 폐렴에서 죽을 고비 넘기고 살아나
  •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나는 평생 건강하게 살아왔다. 평소에는 혈압약만 처방받을 정도였기에 큰 병이 내게 찾아올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2025년 9월, 사업과 교회 활동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던 중 감기와 어지럼증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 병원에서 이석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귀가했지만 그날 밤 갑자기 숨이 막혀 “나 숨을 못 쉬겠어. 죽을 것 같아”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의식을 잃었다. 아들의 신고로 119 구급대가 바로 출동했지만 나를 받아줄 병원을 찾지 못해 여러 병원을 전전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한 젊은 의사의 신속한 판단으로 대학병원 응급실에 이송될 수 있었다. 나는 그 모든 과정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신 은혜라고 믿는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내 상태는 급성 폐렴과 호흡부전으로 매우 위중했다. 의료진은 가족들에게 “장례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을 수 없이 했고, 사용할 수 있는 치료를 모두 시행했지만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들은 가족들과 교회 목사님들, 선교회와 양천대교구 10교구 목사님, 권사님, 집사님들 그리고 호주에 있는 딸과 사위까지 한마음으로 나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치료를 시도한 후 기적처럼 자가호흡을 시작했고 의식을 되찾았다. 의료진조차 “기적”이라고 말할 만큼 놀랍게 회복됐다. 중환자실에서 약 20일을 보냈지만 그 기간의 기억은 거의 없다. 희미하게 남아 있는 것은 “교회에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매일 찾아온 가족들은 “조금만 참으면 다시 교회에 갈 수 있다”며 나를 격려했고, 그 말은 내게 큰 힘이 됐다. 일반병실로 옮긴 뒤에도 긴 회복의 시간이 이어졌다. 기관 삽관으로 인해 한동안 말을 할 수 없었고, 콧줄로 영양을 공급받으며 지냈다. 하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던 중 다시 목소리를 되찾았고, 여러 차례의 연하검사 끝에 콧줄도 제거할 수 있었다. 오랜 병상 생활로 체중은 44㎏까지 줄었고 걷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러나 재활치료를 받으며 “하나님, 저도 다시 걷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고, 조금씩 일어나 걷게 되었으며 마침내 혼자 생활할 수 있을 만큼 회복됐다. 약 3개월간의 병원 생활 끝에 퇴원할 수 있었는데 입원부터 퇴원까지 하나님께서는 좋은 의료진과 많은 기도의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며 필요한 모든 도움을 허락해 주셨다. 가족들은 한결같이 내 곁을 지켜 주었고, 교회에 다시 갈 수 있도록 세심하게 돌봐 주었다. 이번 일을 통해 나는 건강도, 생명도, 하루하루의 삶도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의학적으로는 살아날 가능성이 없었던 나를 하나님께서 살려 주셨고, 다시 살아갈 시간을 허락해 주셨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생명을 다시 주신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앞으로 남은 삶 동안 더욱 교회를 사랑하고 목사님과 선교사님들을 섬기며, 받은 은혜를 나누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나는 고백한다. “제가 살아 있는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정리=오정선 기자
  • 2026.07.03 / 오정선 기자

    배선근 집사(여의도순복음분당교회) - 딸의 생명 지키시고 회복시키신 하나님
  • 수많은 성도의 기도로 기적 일어나 지난 5월 9일 둘째 딸 예진이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학원에서 “피곤하다”며 잠시 쉬겠다고 한 뒤 친구에게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의식은 돌아왔지만 곧바로 분당서울대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모든 과정 속에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하심이 있었다. 당시 예진이는 의식을 회복해 대화도 가능했지만 왠지 모르게 응급실로 가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평소 같으면 환자로 붐비는 응급실이 그날은 놀라울 정도로 한산했고 더욱 감사했던 것은 소아신경외과 교수가 직접 당직을 서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검사 결과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예진이는 희귀 질환으로 인한 뇌경색 증상을 겪고 있었다. 의료진은 초기 72시간이 매우 중요하며 상태가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갑작스러운 진단에 가족 모두 큰 충격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예진이를 지켜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붙들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주일예배에서 교회가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황선욱 목사님께서 예배 시간에 예진이의 상황을 알리며 중보기도를 요청하셨고 자리에 있던 분당교회 성도들은 물론 각 기관과 부서, 교구 식구들까지 한마음으로 기도해 주었다. 어린아이들부터 청년, 장년 성도들까지 예진이의 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큰 위로를 받았다. 입원 초기 예진이는 왼쪽 얼굴과 팔다리에 마비 증상이 있었다. 얼굴 한쪽이 움직이지 않았고 팔과 다리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부모로서 가장 마음 아팠던 것은 어린 딸이 평생 후유증을 안고 살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상보다 더 크고 놀랍게 역사하셨다. 나중에 의료진이 남긴 소견서를 보니 혈관이 재개통됐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었는데 그 시기가 중보기도가 시작된 다음날이었다. 그 이후 예진이의 상태는 눈에 띄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팔다리에 힘이 돌아왔고 얼굴 마비도 하루가 다르게 회복됐다. 지금 예진이를 보는 사람들은 얼굴 마비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믿지 못한다. 의료진도 회복 속도가 매우 빠르다고 놀라워했다. 이번 일을 겪으며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중보기도의 능력이다. 수많은 성도가 한마음으로 드리는 기도가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 직접 경험했다. 또한 응급실로 향했던 결정, 신속한 진단과 치료, 적절한 의료진과의 만남까지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예진이 역시 이번 일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했다. 자신을 위해 많은 성도가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고, 가족 모두가 신앙적으로 더욱 성숙해지는 계기가 됐다. 딸을 살려주시고 건강을 회복시켜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린다. 또한 함께 울며 기도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앞으로 우리 가족도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다른 이들을 위해 더욱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정리=김주영 기자
  • 2026.06.26 / 김주영 기자

    유인순 권사(은평대교구) - 나를 고치신 하나님께 감사
  • 시어머니와 7남매 온 가족 구원 주님의 은혜에 날마다 감사 1981년 내 삶은 깊은 어둠 가운데 있었다. 결혼한 지 7년쯤 지났을 무렵 이유 없이 머리가 아팠다. 원인 모를 정신적인 고통이 찾아왔고 병원을 다녀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밤에 뛰쳐나가는 등 이상한 행동을 했지만 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밥도 못먹고 잠을 못자는 날이 많아지면서 몸도 마음도 피폐해졌다. 7남매의 맏며느리로 시집와 대가족을 돌보며 살아왔는데 3살, 7살 어린 아이들을 두고 갑자기 내가 아프게 되니 온 가족의 근심도 커졌다. 그 때 지인이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을 가보라고 권했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기도원에 올라가 1주일 금식기도를 작정했다. 금식기도 3일째 되던 날이었다. 남편 이남용 안수집사가 환상 가운데 하나님께서 나를 고쳐주신다는 확신을 받았다. 그 순간부터 내 마음에 설명할 수 없는 평안이 임하기 시작했다. 눌려 있던 마음이 풀어지고 어둠 같던 삶에 빛이 비춰졌다. 기도를 마치고 내려올 때는 완전히 새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하나님께서 나를 살려주시고 다시 일으켜 세워주셨다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그 은혜는 나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온 가족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다. 기도원에서 내려온 뒤 고침 받은 나를 본 사람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게 됐다. 시어머니와 7남매 시댁 식구들이 예수님을 믿게 됐고 동네 사람들까지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종갓집이어서 매년 13번의 제사를 지냈는데 시어머니가 교회에 다니면서 제사도 없어졌다. 기적을 체험한 후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나는 하나님께 받은 사랑과 은혜를 붙들고 살아가기 시작했다. 예배드리러 교회 가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지금도 주일예배는 물론 특별새벽기도회, 수요예배, 금요성령대망회 등 모든 예배에 참여하며 은혜 받고 있다. 내 삶을 붙들어준 말씀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이다. 나는 이 말씀을 붙들고 힘들 때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으로 다시 일어섰다. 또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야훼에게서로다”(시 121:2) 이 말씀을 아침저녁으로 묵상했다. 하나님 말씀은 내 삶의 힘이었고 위로였고 소망이었다. 내 인생을 돌아보면 결혼 후 51년간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온 것, 올해 98세가 되신 시어머니가 건강하신 것, 교회에서 18년 동안 지역장으로 헌신하며 성도들을 섬긴 것 등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시댁 식구들을 전도해 예수님을 전한 것도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붙드시고 끝까지 사랑으로 섬길 수 있도록 도와주셨기에 가능했다. 올해는 감사하게도 영산효행상 효부상도 받게 됐다. 하나님께서는 무너진 나를 살려주셨고 우리 가정을 믿음의 가정으로 세워주셨다. 앞으로 남은 삶도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고 싶다. 사랑으로 가족을 섬기고 감사로 이웃을 품으며 끝까지 믿음의 본을 보여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 정리=이미나 기자
  • 2026.06.19 / 이미나 기자

    강순자 집사(양천대교구) - 감사하며 역전의 하나님 체험해
  • 남편에 대한 100가지 감사 쓰며 삶 변화 나는 20대 초반 회사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이듬해 아들을 낳고 5년 후 딸을 낳았다. 아이들 키우면서 살림하고 시어머니 모시고 남편 챙기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어머니께서 혼자 조용히 교회에 다니신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남편은 어릴 적 신앙을 잊었고 어머니가 교회 다니는 것도 싫어해서 조용히 신앙생활을 하셨던 것이다. 남편의 믿음직하면서도 현명하고 냉철한 모습이 매력적이었는데, 결혼 후 매력을 느꼈던 그 차가움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내게 상처를 입혔다. 남편이 버럭 할 때마다 심장이 쿵쿵거리고 벌벌 떨렸다. 30대 중반이 된 나는 학습지 교사로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언덕 지형의 동네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몸이 많이 힘들어 치질이 생겼는데 수술을 했음에도 재발이 됐다. 친척 모임 중 사정을 아신 육촌 형님이 “자네도 예수 믿어야겠네”라고 하신 말씀이 마음에 남아 형님을 찾아갔다. 형님네는 문이 잠겨있어 아래층에 사는 형님의 친구를 만났는데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다니는 분이셔서 나는 교회로 인도됐다. 교회를 다니면서 재수술을 받았지만 또 재발이 됐다. 나중에는 수술을 해도 재발 될 것 같고 절망만 마음에 가득했다. 남편은 돈 버는 것도 아닌데 쓸 데 없는 짓 한다며 교회 다니는 것을 방해했다. 또 한 가지는 제사를 없애려는데 이상하게 명절 때만 되면 몸이 심하게 아팠다. ‘이것은 마귀가 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기도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예배 중 신유기도 시간에 지금은 아파도 하나님이 반드시 고쳐주실 것이라는 소망이 생기고 마음이 단단해졌다. 마지막 수술 후에는 재발 없이 건강을 회복했다. 이 과정 속에서 남편도 자연스럽게 예배에 참여하고 신앙을 갖게 됐다. 하지만 차가운 성격은 쉽게 달라지지 않았다. 2010년 나는 이영훈 목사님의 절대 긍정 절대 감사하라는 말씀을 실천해 보기로 했다. 남편에게 감사한 것 100가지를 쓰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잘 써지다가 30개쯤 되니 고비가 왔다. 마음을 다잡고 감사의 안경을 쓰고 보니 감사한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50개가 넘으니 너무 감사해서 눈물을 흘리며 썼다. 100개 감사를 다 쓰고 나니 내 안에는 평안함이 가득하고 어느 날부터인가 남편이 달라졌다. 나의 수고를 인정해 주고 나를 배려해 줬다. 이게 정말 된다니 하나님은 반전의 하나님, 역전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하나님께 감사해서 여선교회 성찬실에서도 봉사하고 내가 즐거우려고 공부를 하다 유아숲지도사도 취득하게 됐다. 교회에서 우쿨렐레를 배워 내가 사는 지역에서 재능기부활동도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 안에서 감사하면서 인생 역전의 기회를 누리기를 바란다. 정리=복순희 기자
  • 2026.06.12 / 복순희 기자

    박성근 안수집사, 김성례 권사(금천대교구) - 헌혈로 얻은 생명, 감사로 이어져
  • 십이지장 절제 수술 후 봉사의 삶 살아 나는 평생 기계 설계 분야에서 일해왔다. 책임이 큰 업무를 맡아 1년 365일 가운데 360일을 일했다고 할 만큼 쉼 없이 달려왔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였고 결국 십이지장궤양을 앓게 됐다. 처음에는 약을 먹으며 버텨왔지만 증상은 점점 악화됐다. 출장 중 쓰러지고 출근길 버스에서 의식을 잃기도 했지만 몸이 보내는 신호를 외면한 채 일에만 매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대량 출혈이 발생했고 급히 119 구급차로 병원에 이송됐다. 결국 2005년 십이지장과 위 일부를 절제하는 대수술을 받게 됐다. 출혈이 너무 심해 당시 12팩의 수혈을 받아야 했다. 아내는 수술실 앞을 지키며 간절히 기도했고 고등학생이던 큰딸과 중학생이던 작은딸은 아버지를 살리고 싶은 마음에 학교 친구들에게 헌혈증서를 부탁했다. 친구들은 기꺼이 헌혈증서를 모아 전달해 주었고 그 사랑은 우리 가족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됐다. 이름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의 헌혈과 사랑 덕분에 나는 새 생명을 얻게 됐다. 퇴원 후에는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 하는 생각과 수혈로 인한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한동안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봉사의 자리로 이끄셨다. 아내의 권유로 순복음실업인선교연합회와 교회 행사에서 봉사하며 조금씩 상처와 아픔을 내려놓게 됐다. 무엇보다 생명의 위기 속에서 받은 수혈은 내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헌혈 덕분에 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다는 사실이 큰 감사로 다가왔고 그 사랑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고 싶었다. 건강을 회복한 뒤에는 기회가 될 때마다 헌혈에 참여했다. 해외 출장이 많아 헌혈이 제한되는 기간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10차례 헌혈을 이어오고 있다.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중요한 교훈을 주셨다. 내 힘으로 감당하려 할 때보다 하나님께 맡길 때 참된 평안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은혜로 절제했던 위도 회복돼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식사에 큰 불편 없이 생활하고 있다. 이후에도 일을 계속하며 69세가 되던 2년 전 은퇴했다. 현재는 안수집사회에서 봉사하며 감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두 딸과 사위들, 손주들까지 모두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신앙생활하며 봉사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셨음을 날마다 경험하고 있다. 나는 생명을 살리는 헌혈을 통해 받은 사랑을 조금이나마 나누며 살아가고 싶다.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자리에서 감사와 섬김의 삶을 살아가며 생명을 나누는 일에도 힘쓰고자 한다. 죽음의 문턱에서 나를 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이름 모를 헌혈자들의 사랑을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정리=김주영 기자
  • 2026.06.05 / 김주영 기자

    조민영 성도(통일대교구) - 여의도순복음교회 통해 심장병 수술 받고 살아나
  • 나는 불신자 가정의 2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었지만 1000만원이 넘는 수술비를 감당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세 살 때 숨이 멎어 무덤까지 준비했을 정도로, 어린 시절은 늘 생사의 갈림길 위에 있었다. 그러던 중 1984년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심장병 어린이 수술 지원 사역을 통해 13세에 세종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새 생명을 얻은 후 조용기 목사님도 만나 안수기도 받았다.(사진)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온 후 교회를 다닐 환경이 아니었고 나를 교회로 인도해 줄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살아가던 내 인생에 또 한 번의 큰 사건이 찾아왔다. 첫째 아이가 교통사고로 생사의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두개골 골절과 뇌출혈로 중환자실에 들어간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아이가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과 성도님들이 간절히 중보기도를 해주셨다. 그 일을 계기로 다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놀랍게도 아이는 회복됐다. 그러나 또다시 하나님을 떠난 채 세상과 벗하며 살았다. 2020년 1월, 한 탈북민 목사님과의 만남을 통해 내 신앙은 결정적으로 변했다. 타 교회의 한반도 선교부에서 약 1년 동안 탈북민들을 섬기면서 북한의 현실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다. 탈북 후 치열하게 살면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탈북민들의 삶은 내게 큰 도전이 됐고 ‘먼저 온 통일 세대’인 탈북민들을 위해 한국교회가 무엇을 해야 할지 깊이 생각했다. 2022년 탈북민 목사님이 보내주신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그동안 잊고 살았던 어린 시절 나를 살려주신 그 은혜가 한순간에 깨달아졌다. 수많은 심장병 어린이들 가운데 여의도순복음교회를 통해 나를 살리신 것이 하나님의 계획임을 깨닫고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2022년 신학교에 입학해 탈북민들을 향한 마음과 복음통일의 비전을 갖게 됐고, 그 해 11월 여의도순복음교회 통일연합종교포럼, 통일대교구에 등록했다. 이전의 나는 그저 ‘살아가는 사람’이었다면, 이제는 ‘사명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으로 변화 됐다. 복음은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능력’이다. 나를 살린 것도 의학만이 아니라 기도와 복음의 능력이었다. 그렇기에 복음은 반드시 전해져야 한다. 특히 북한 땅에는 더욱 그렇다. 복음으로 하나 되는 ‘복음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다. 앞으로 평양 심장병원이 완공된다면 그곳에서 심장병 어린이들을 섬기며 내게 주신 생명을 다시 흘려보내는 삶을 살고 싶다. 앞으로도 주님과의 만남 속에서 변화되는 삶을 살아가며 복음과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소망한다. 정리=오정선 기자
  • 2026.05.29 / 오정선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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