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변화
데이비드 서 안수집사(마우이순복음교회) - 절망 속에도 주님만 바라보면 희망 주셔
  • 내가 하나님 일하면 하나님은 날 지키신다 전도와 섬김, 구제하며 살아갈 것 모태신앙인 나는 1981년 고등학교 3학년 때 가족들과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어려움을 헤쳐나가며 가정을 이루고 사업도 크게 일궜다. 그러나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때 사업에 실패하고 이혼까지 하게 됐다. 너무 힘든 상황에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마지막으로 어머니, 형과 통화를 했다. 형의 권유로 여의도순복음교회 선교사님이 계시는 독일의 한 시골 교회 기도원에 가게 됐다. 매일 새벽 예배를 드려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던 중 잠언을 한 장씩 읽으라던 형의 말이 생각났다. 잠언 묵상 중 파노라마처럼 내 인생이 펼쳐졌다. 원래 내 이름은 마이크였는데 “하나님! 이제 다윗처럼 살겠습니다”라고 서원기도를 하고 성령을 받았다. 다시 열심히 살기 위해 용기를 내 프랑크푸르트로 가서 사업을 일으키고 당시 한국 파트너사의 이사였던 현재의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늦둥이도 낳았다. 하나님의 은혜로 한국으로 와서 내비게이션 수출업을 하며 사업이 번창했다. 그러나 사업이 바빠져 기도하지 못하고 세상일에 빠져 살던 2014년 어느 날 집을 나서는데 수갑이 채워졌다. 어리둥절했지만 나중에 보니 미국에서 사업이 실패했을 때 일 때문이었다. 내가 미국에 있었다면 소명할 수 있었을 텐데 외국에 있다 보니 지명수배가 된 것이었다. 구치소에 있으면서 하나님께만 집중했다. 그리고 외국인들에게 전도를 하고 말이 안 통해 억울한 외국인 재소자들을 도왔다. 3개월 뒤 나는 미국으로 추방됐다. 미국에서 좋은 변호사를 국선변호사로 만날 수 있었다. 그분에게 나의 사정을 토로했지만 재판을 하면 십여 년을 싸워야 한다면서 여러 가지로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었다. 법정 공방 속에 나는 1년 만에 구치소에서 나올 수 있었다. 수감되어 있으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했다. 그곳에서 전도하면서 나는 앞으로 하나님 일만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출소 후에는 교회에서 구제팀에 속해 나도 가난하지만 다른 어려운 이들을 섬겼다. 하루에 도시락을 세 개씩 가지고 다니며 우버 운전 등 서너 가지 일을 했다. 조금씩 형편이 나아져 처음에는 인쇄소 하나였던 것이 지금은 4개가 됐고 레스토랑과 부동산 개발 사업도 하는 중이다. 얼마 전 나는 미국 댈러스 성회에서 이영훈 목사님을 만나 뵐 수 있었다. 친구인 윤호용 목사(알래스카 은혜와평강순복음교회)를 통해 익히 듣고 알고 있던 목사님을 처음 뵙고 말씀을 들으면서 은혜를 받았다. 특히 부모의 기도에 대한 설교에 감명 받았는데 아버지가 생각났다. 올해 100세이신 아버지는 간경화가 심한 두 아들을 위해 늘 눈물로 기도하시고 성경을 12번이나 필사하셨다. 아버지의 기도로 나의 형님 두 분 모두 기적적으로 간을 이식받아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고 계신다. 이영훈 목사님이 바쁜 목회 일정 중에도 토요일에는 기도원에서 기도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기도에 더욱 힘쓸 것을 다짐했다. 앞으로도 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전도와 섬김, 구제를 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는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겠다. 정리=복순희 기자
  • 2023.03.24 / 복순희 기자

    이창원 집사(금천대교구) - “파더스드림에서 꿈을 갖게 됐어요”
  • 13년 봉사하며 회사 경영과 가족구원의 꿈 가져
    나는 교회에서 진행하는 파더스드림에서 큰 은혜를 받았다. 가정, 사회 그리고 교회에서 꿈을 가진 아버지가 되는 법을 배웠고 크리스천으로서 믿음이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무엇보다 그곳에서 나이와 직분을 떠나 서로를 형제로 부르며 솔선수범하는 봉사자들에게 큰 감동을 받아 나도 수료 후 13년째 봉사를 하고 있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축구 국가대표를 목표로 준비를 해왔지만 어깨와 무릎 부상으로 꿈을 펼치지 못하고 축구실업단에서 활동했다. 생계를 위해 직업을 전향해야만 했는데 운동만해오던 내가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IT/반도체 회사의 기술영업직 일을 맡게 되었는데 전문 지식을 종이에 적고 외워서 영업에 나서다보니 무시당할 때가 많았고, 영업을 하며 힘든 일도 많았다. 이렇게 어렵고 지칠 때 힘이 되어준 것은 찬양이었다. ‘아무 것도 두려워 말라’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찬양을 부르며 새 힘과 위로를 얻었다. 고난이 지나면 축복이 온다는 말씀을 믿고 한 걸음씩 나아가니 대기업을 상대로 영업을 하게 될 정도로 경력과 노하우가 생겼다. 그리고 지난해 50세가 되기 전 비전을 갖고 회사를 창업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함께 잘되는 기업문화를 가진 회사를 경영해보고 싶었고, 이 일을 통해 복음을 전하기를 소망했다. 스타트업이라서 많은 기도가 필요하지만 파더스드림 형제들이 함께 기도해주고 각자가 가진 사업 경험을 알려줘서 큰 도움을 얻고 있다. 파더스드림은 내 인생의 큰 버팀목이자 우리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통로다. 우리 집은 종갓집이어서 유교적 전통을 중시하다보니 장남인 아버지가 제사를 맡아 1년에 8번의 제사를 지냈다. 나는 어릴 적 선물을 타기 위해 교회 성경학교에 참여하고 이후 고등학교를 미션스쿨로 다니게 되었지만 그렇게 믿음이 좋지는 못했다. 그런데 파더스드림에 참여하며 신앙이 성숙해지고 변화된 내 모습에 아내(김소영 집사)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지금 중등부 교사로 봉사하고 있다. 또 가족들에게 제사를 예배로 바꾸자고 제안해 10년 전부터는 예배를 드리고 있다.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았는데 하나님이 역사하시니 모두가 고집을 꺾고 순식간에 역전됐다. 아버지는 주님을 영접하고 파더스드림을 수료했고 어머니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시며 올해 성경학교에 등록하셨다. 가족예배는 내가 인도하는데 지금은 친인척이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 아직 교회에 다니지 않는 가족들도 언젠가 주님 앞에 나오게 될 거라 믿고 있다. 꿈을 갖고 기도하고 도전하면 주님이 인도하신다. 많은 남성들이 파더스드림에서 이러한 주님의 은혜를 누리기를 소망한다. 정리=김주영 기자
  • 2023.03.17 / 김주영 기자

    한영순 권사(동작대교구) - 죽음의 위기에서 새생명 주신 하나님께 감사
  • 선교연합회 30년 봉사하며 주님만 바라봐
    유아교육을 전공해 평생 어린 아이들을 가르쳐온 나는 유치원 원장으로 퇴직을 하고 지금은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다. 어르신들은 24시간 정성껏 돌봐드려야 하기에 늘 긴장상태로 지내다보니 과로하게 됐다. 어느 날 소변을 보는게 어렵고 혈뇨가 나와 병원에 갔다. 방광염으로 1주일치 약을 복용했는데 별다른 차도가 없어서 대학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결과는 방광암 4기였다. 애써 담담한 척 했지만 몸은 이미 경련으로 떨리고 있었다. 이영훈 담임목사님께서 늘 말씀하시던 절대긍정 절대감사를 기억하며 그나마 수술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생애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뿐이었다.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이미 나에게 기적을 보여주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나는 이미 큰 기적을 체험했었다. 5년 전 신장이 기능을 못해 복막 투석을 하루에 4번씩 해야 했다. 그렇게 1년을 견디면서 한 번도 주일을 지키지 않은 적이 없다. 내가 봉사하는 순복음선교연합회 국내선교 사역도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주일에는 투석할 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아 교회 화장실에서 투석하며 봉사했다. 나는 주님의 은혜로 이식을 신청한지 1년 만에 건강한 신장을 이식받을 수 있었다. 보통 10년은 기다려야 한다는데 1년 만에 이식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기적 중의 기적이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지금 내게 또 한 번의 기적을 보여주실 것을 굳게 믿었다. 지난해 5월 방광에서 암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고 조직검사를 했다. 8번의 항암주사를 맞으면서 이젠 어느 정도 치료가 되었는가 싶었는데 방광과 주변 4개의 장기에 암세포가 깊이 있어서 자궁, 신장 등 몸에 중요한 장기를 제거하는 수술을 12월에 다시 받아야 했다. 그 간의 항암치료는 결국 큰 수술을 위한 주변 정리일 뿐이었다. 정말 비참했다. 어떻게 몸속의 장기를 4개씩이나 제거하고 평범한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까? 수술을 맡은 비뇨기과 선생님은 상당히 힘들고 어려운 수술이라고 했지만 난 담대히 외쳤다. “저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수술도 반드시 성공시켜 주실 것입니다.” 나는 순복음선교연합회에 중보기도를 요청했다. 정말 감사하게도 이영훈 목사님께 기도를 받을 수 있었다. 천군만마를 얻은 듯 마음이 평안해지고 자신감이 생겼다. 큰 용기를 얻은 나는 며칠 후 수술대에 올랐다. 8시간의 성공적인 대수술을 마치고 회복실에 와서도 십자가 보혈만을 생각하며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말씀을 붙잡고 기도했다. 나는 빠르게 회복해 이틀 만에 일반병실로 옮겨졌고 한 달 후 건강히 퇴원했다. 순복음선교연합회에서 30년간 봉사해온 나는 주님의 은혜로 새생명을 얻어 국내선교실장으로 섬기고 있다. 내가 기도하지 못할 때 나를 대신해 기도해주시는 성령님이 계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4차원의 영성으로 무장하고 성령으로 충만해 평생 주님만 바라보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좋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정리=이미나 기자
  • 2023.03.10 / 이미나 기자

    이근임 권사(은평대교구) - 주님 의지하고 말씀 순종하면 형통의 복 주셔
  • 새벽예배 드리며 병 고침 받아
    손자 위한 중보기도로 수능 만점 나는 결혼하고 서대문에 살면서 순복음교회에 나오게 됐다. 지·구역장을 맡아 교회 일에 헌신하며 즐겁게 신앙생활을 했다. 나는 새벽예배가 참 좋았다. 믿음이 깊지 않던 시절에도 새벽예배는 내 삶의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살았다. 하나님은 내가 힘들 때마다 기적을 보여주셨다. 방광염을 자주 앓고 여성 질환으로 고생했는데 주일 예배 때 조용기 목사님의 신유기도를 받고 깨끗이 낫는 기적도 체험했다. 강대상을 쳐다보는데 목사님의 신유기도가 끝나자마자 커다란 보름달 같은 불덩어리가 나한테 오더니 온 몸이 진동하듯 떨려왔다. 6년 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질병이 사라지자 나는 더욱 뜨거운 믿음을 갖게 됐다. 역류성 위염이 심해 떡 한 입 마음 편히 먹지 못했는데 그 때도 주일예배 시간에 목사님이 신유 기도를 선포해주셨고 깨끗하게 나았다. 아파트를 분양받아 추첨할 때도 가장 좋은 곳을 예비해주셨다. 인생을 돌아보면 하나님은 나의 순종을 가장 기쁘게 여기신 것 같다. 지역연합예배를 드릴 장소가 없다고 연락이 오면 청소나 음식 준비 할 시간이 부족해도 흔쾌히 우리집에서 드리기로 했다. 친구들이 산에 놀러가자고 해도 거절하고 아침에 남편 출근하고 아이들 학교가면 설거지도 미룬 채 1시간씩 기도했다. 나는 큰 손자 승준이가 고등학교 2학년일 때 입시를 위해 기도를 많이 했다. 교구장님께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물었더니 순복음선교연합회 청소년학원선교회를 추천해주셨다. 나는 청소년학원선교회에 들어가서 열심히 봉사하며 기도에 힘썼다. 공부를 잘하는 큰 손자가 서울대학교에 갈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했는데 수능 시험 점수가 낮게 나와 재수를 하게 됐다. 1년 더 힘들게 고생하는 손자를 위해 할머니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 뿐이었다.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해주셔서 승준이는 다음해 수능 시험에 만점을 받았고 서울대에 합격했다. 지금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재학 중이다. 나는 교회와 담임목사님을 위해 기도하는 ‘3000 기도용사’에 들어가 기도하고, 선교회에서 봉사하며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이영훈 담임목사님의 절대긍정 절대감사로 살아가는 것이 행복의 비결인 것 같다. 주변에 휩쓸리거나 타협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 우선으로 살면 주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확실히 체험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 안에서 승리하고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시길 바란다. 정리=이미나 기자
  • 2023.03.03 / 이미나 기자

    윤택한 집사(강서1대교구) - “자녀를 위한 기도 응답 받았어요”
  • 부부 함께 봉사하며 기도해 축복받아
    남편(이창민 집사·찬양특별교구)과는 주일 5부 임마누엘찬양대 봉사를 하면서 만나 2016년 나는 37세, 남편은 39세에 결혼을 했다. 우리 부부는 10년 이상 찬양대 봉사와 서취 봉사를 하고 있다. 서취는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그대로 글로 옮기는 일이다. 설교 모음집, 신앙서적 제작 등 문서선교 사역의 기본이 되는 역할을 감당하기 때문에 너무나 귀한 봉사다. 찬양대에서는 입으로 주님을 찬양하고 서취팀 봉사를 하며 귀로 말씀을 듣고 받아 적으니 신앙생활에 많은 도움이 된다. 우리 부부는 교회에서 함께 봉사하며 큰 축복을 받았다. 서취팀에서는 매년 신년하례식을 통해 이영훈 담임목사님이 봉사자들을 격려해주시는 자리를 갖고 있는데, 2019년 모임 자리에서 이영훈 목사님이 자녀를 주제로 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고 유일한 부부 봉사자인 우리에게 자녀를 위한 기도를 해주셨다. 우리 부부는 얼떨결에 기도를 받았는데 뜻밖의 선물을 받은 듯 너무 감사했다. 무엇보다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나서 우리 부부의 마음에 변화가 일고 소망이 생겼다. 신혼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아기에 대한 기도는 꾸준히 해왔지만 막연히 ‘하나님께서 주시겠지’라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해가 지날수록 가족을 포함한 주변 지인들이 더 많이 걱정하고 애태우며 간절히 기도해주셨고 나도 결혼 4년 차가 되니 조금씩 걱정이 됐다. 그런데 이날 목사님의 기도로 인해 막연한 기도에서 자녀를 바라보고 기대하며 드리는 간절한 기도를 시작했다. 그 다음해인 2020년에는 서취모임을 가기 전 남편이 먼저 내게 “이영훈 목사님께 다시 한번 자녀를 위한 기도를 부탁드리자”고 제안했다. 우리 부부는 모임 후에 떠나시는 목사님을 쫓아가서 기도를 받았다. 그 기도를 받고 나뿐만이 아니라 남편에게도 자녀에 대한 더욱 간절한 마음이 생겼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이 약속의 말씀으로 내게 다가왔고 믿음의 확신이 들었다. 하나님의 약속이니 당연히 주실 것을 믿고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나와 남편은 한 마음으로 그해 자녀를 위한 집중 기도를 했고 12월에 임신을 했다. 아기를 품은 열 달 동안 내 마음은 너무나 평안했다. 임신 기간에도 서취 봉사를 했는데 소란스런 마음과 주변의 소음을 물리치고 조용히 집중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말씀이 주는 평안함을 더 누릴 수 있었다. 많은 분들이 마흔 둘에 첫 아이를 출산하는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며 여러 조언과 노산에 필요한 검사를 추천해 주셨는데 오히려 그런 분들을 안심시키고 기도만 해달라고 말씀을 드렸다. 신앙 공동체의 기도를 받으며 2021년 건강한 아들을 출산했고 하나님이 요셉의 일생에 함께 하신 축복이 자녀에게 있기를 바라며 함께하다는 의미의 ‘해’를 사용해 이해준으로 이름을 지었다. 해준이는 우리 가족에게 기쁨이 되는 아이다. 자녀를 위해 오래 기도하며 축복의 그릇을 예비하는 시간을 겪은 뒤라 기쁨이 배가 됐다. 임신 기간 나는 해준이가 평생 동안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는 아이였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많이 했다. 그 기도대로 하나님의 거룩한 빛을 나타내는 아이로 자라나길 소망한다. 정리=김주영 기자
  • 2023.02.24 / 김주영 기자

    윤창열 안수집사(양천대교구) - 술 끊고 건강히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
  • 담낭 제거 후에도 후유증 없이 생활
    나는 유복한 가정에서 5대 장손으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부족함 없이 자랐다. 우리 가정은 모두 불교 신자였는데 할머니만 교회에 몰래 다니셨다. 종이가 귀했던 시절 철이 없던 나는 할머니 성경을 찢어 딱지를 접어 놀았던 기억도 있다. 항상 나를 많이 예뻐해 주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시간이 흘러 집안의 어른들도 세상을 떠나셨다. 그러던 2011년 어느 날 꿈속에서 세상을 떠난 가족들을 만났다. 할머니는 안색이 평안하시고 고운 옷을 입고 계셨다. 그런데 엄마는 남루한 옷에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도와달라는 꿈을 꿨다. 너무도 확실한 꿈을 꾸고 난 후 이전까지 절을 다녔던 내가 아내와 함께 교회를 찾아갔고 교구에 교적을 등록했다. 교회에서 봉사도 하고 하나님에 대해 알기 위해서 나와 아내, 딸과 아들 네 식구는 다 같이 성경학교에 다녔다. 내 주위의 지인들이 평소에 대한민국 사람들이 술을 다 끊어도 너는 못 끊을 거라고 장담할 정도로 술을 많이 마시고 술자리를 좋아했다. 술기운에 싸움을 벌이거나 휘말리고 집에서도 마음에 안 드는 게 보이면 소리를 질러 아내와 가족들을 힘들게 했지만 그땐 몰랐다. 한 달, 두 달 교회를 다니고 예배를 드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사람들과 만나 한잔 마시는 순간 술이 너무 싫게 느껴졌다. 집에 비싼 양주도 많았는데 쳐다보기도 싫어져 모두 다 하수구에 버렸다. 술자리에 나타나지 않자 ‘창열이가 죽을병에 걸렸다’는 소문이 나서 걱정하는 친구들의 전화가 이어졌다. 나에게 일어난 일과 예수님을 믿게 된 이야기를 하니 저절로 전도가 됐다. 한 번은 딸 친구가 교회에 왔다가 교회에서 봉사하는 내 모습을 보고 예수님을 믿기로 했다. 술을 마시느라 허비했던 시간들을 생각하니 인생의 한 토막이 없어진 것 같고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 자녀들에게 미안했다. 2020년 7월 밤이었다. 죽을 것 같이 갑자기 극심한 복통이 생겼다. 가까운 병원에서 검사를 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해서 집에 갔다. 통증이 안 없어져 다시 병원에 갔고 그제서야 병원에서는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대학병원에서 원인을 찾았다. 담낭염 때문에 담낭을 제거하는 수술을 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라 진료받기가 쉽지 않았는데 순조롭게 모든 과정이 진행돼 하나님께 감사했다. 담낭이 없음에도 내 나이 또래가 겪는 당뇨나 혈압 이상도 없고 모든 수치가 정상이다. 건강한 모습으로 주일과 수요예배, 금요성령대망회에서 예배를 돕는 남선교회 봉사를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대로 살던 내 과거를 다 용서해주신 것에 감사하고 가족을 더욱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딸은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사위를 만나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다. 아들도 하루 빨리 신앙이 좋은 배우자를 만나 믿음의 가정을 세우기를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감사드린다. 정리=복순희 기자
  • 2023.02.17 / 복순희 기자

    정옥자 집사(반석대교구) - 내 삶의 여정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IMF 때 남편이 다니던 직장에서 구조조정으로 퇴직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누군가는 돈을 벌어야 했기에 나는 식당을 시작했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병약했던 나는 우연한 기회에 전도 받고 교회를 다니게 됐는데 나를 전도하고 양육해주셨던 분이 호주로 이민을 떠나게 됐다. 한국에서의 삶이 어려우면 언제든 호주로 오라 하셨던 그분에 대한 그리움도 컸고, 계속 돈을 벌어 아이들을 가르쳐야 했기에 나는 남편에게 두 딸을 맡기고 호주로 떠났다. 호주로 나를 부르신 분은 호주 시드니순복음교회 권사님이 되셨고 그분을 따라 교회에 등록했다. 호주에서는 홈 클리닝을 시작으로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잠시 식당을 운영했던 경험이 있어 일식당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졌다. 해외에서의 고단한 삶, 더군다나 가족을 두고 외롭게 외국 생활을 해야 했던 나에게 신앙은 큰 위로였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있었기에 일할 때 힘이 생겼고 일식당에서 요리사로 활동하며 매상이 오르자 사장님도 좋은 대우를 해 주셨다. 호주에서 일 년 간 생활할 때 교회 성도들로부터 받은 사랑은 말로 표현 못할 만큼 컸다. 일본에서 일할 기회가 생겨 호주를 떠나던 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나를 아껴주신 시드니순복음교회 성도들에게 받은 사랑을 갚을 시간도 없이 떠나온 것이 늘 마음 아팠다. 일본으로 건너간 나는 또다시 요리사로 일하며 돈을 모았다. 일본에서는 순복음동경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아이들을 생각하며 버틴 7년 반의 세월, 제법 돈을 모았다고 생각했을 때 한국행을 결심했다. 그런데 일본에서의 삶을 정리할 즈음 생각지도 못한 일이 터져버렸다. 호주와 일본에서 번 돈을 한국에서 은행에 다니는 지인에게 맡겼는데 내 통장을 도용해 1억원 가까운 돈이 사라져 버렸고 찾을 수도 없게 됐다. 배신감이 이만저만 아니었고 남은 건 분노뿐이었다. 악으로 가득 차 있던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은 곳이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울면서 기도하는데 주님 얼굴만 떠올랐다. 삶이 막막했던 나에게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미국 LA에서 출산을 앞둔 교민이 한국인 베이비시터를 구한다는 정보를 우연히 듣게 되면서 나는 다시 해외로 떠났다. 출산과 육아의 경험, 딸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미안함에 아기를 정성껏 돌봤더니 의뢰인이 고마워했다. 베이비시터 일을 통해 주님은 나에게 큰 위로를 주셨다. 호주에서 생활할 때 교회 성도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나는 보답의 마음에 순복음선교연합회 오세아니아선교회에 등록해 열심히 봉사했다. 기쁨은 배가 됐고 선교회 봉사를 하면서 친구를 전도도 하고, 딸들의 신앙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게 됐다. 두 딸은 잘 성장해 엄마가 됐고, 감사하게도 큰 딸 가족은 분당에 있는 한 교회를 출석해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다. 남은 가족 구원을 위해서도 쉬지 않고 기도하며 호주 선교지를 방문해 성도들과 해후하고 싶은 소원이다. 정리=오정선 기자
  • 2023.02.10 / 오정선 기자

    이종례 권사(마포2대교구) - 난치성 면역질환 걸린 딸 주님 은혜로 치유
  • 기도하며 하나님 예배할 때 놀라운 기적 일어나
    나는 1991년 남편이 임파선암 3기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 “예수를 믿으면 죽은 사람도 살아난다는데 교회에 가봐”라는 말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회에 나오게 됐다. 어린 시절부터 타 종교에 심취해 있던 나는 남편의 치유를 위해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 올라가 열흘간 금식기도를 할 때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하며 주님을 구주로 영접했다. 남편 또한 기도원 기도굴에서 성령 충만을 체험하게 됐고 임파선암도 치유 받았다. 이 밖에도 많은 기적을 경험했지만 그 중 죽음의 위기에 놓였던 첫째 딸이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살아나게 된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2000년 초 당시 반도체 회사를 다녔던 딸이 계속된 과로로 몸에 열이 40℃까지 치솟았다. 해열제를 먹어도 열이 떨어지지 않아 병원을 갔는데 자가면역질환인 전신성 홍반성 루푸스병을 판정받았다. 병원에서는 면역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계속된 과로로 폐, 신장, 위, 간, 자궁 등 몸의 여러 장기가 심하게 손상됐고 특히 신장이 완전히 망가져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막막한 상황에서 나는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 밖에 없었다. 나는 지·구역 식구들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했고 병원 기도실에서 밤낮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퇴원을 앞두고 하나님께서 딸과 함께 기도원에 가면 좋겠다는 마음을 주셨다. 나는 딸과 함께 퇴원한 당일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서 일주일간 금식기도하며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딸의 치유를 간구했다. 일주일간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딸이 하나님께 더 많은 예배를 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딸과 함께 하루에 5~6번씩 집에서 하나님을 예배했다. 이렇게 보름 동안 쉬지않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동안에도 딸의 고통은 계속됐다. 매일같이 기침을 비롯해 땀을 물처럼 흘렸다. 그런데 100번의 예배를 마치는 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동안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부었던 몸이 회복된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병원에서 담당 의사가 모든 장기의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며 기적이라고 말했다. 할렐루야! 지금 큰 딸은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들을 돕는 재가센터를 운영하며 사회복지사로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나는 힘들 때마다 빌립보서 4장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을 암송한다. 혹시 지금 힘든 상황을 겪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교회에 나와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게 되길 소망한다. 정리=금지환 기자
  • 2023.02.03 / 금지환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PDF

    지면보기

  • 행복으로의 초대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