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변화
유인순 권사(은평대교구) - 나를 고치신 하나님께 감사
  • 시어머니와 7남매 온 가족 구원 주님의 은혜에 날마다 감사 1981년 내 삶은 깊은 어둠 가운데 있었다. 결혼한 지 7년쯤 지났을 무렵 이유 없이 머리가 아팠다. 원인 모를 정신적인 고통이 찾아왔고 병원을 다녀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밤에 뛰쳐나가는 등 이상한 행동을 했지만 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밥도 못먹고 잠을 못자는 날이 많아지면서 몸도 마음도 피폐해졌다. 7남매의 맏며느리로 시집와 대가족을 돌보며 살아왔는데 3살, 7살 어린 아이들을 두고 갑자기 내가 아프게 되니 온 가족의 근심도 커졌다. 그 때 지인이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을 가보라고 권했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기도원에 올라가 1주일 금식기도를 작정했다. 금식기도 3일째 되던 날이었다. 남편 이남용 안수집사가 환상 가운데 하나님께서 나를 고쳐주신다는 확신을 받았다. 그 순간부터 내 마음에 설명할 수 없는 평안이 임하기 시작했다. 눌려 있던 마음이 풀어지고 어둠 같던 삶에 빛이 비춰졌다. 기도를 마치고 내려올 때는 완전히 새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하나님께서 나를 살려주시고 다시 일으켜 세워주셨다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그 은혜는 나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온 가족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다. 기도원에서 내려온 뒤 고침 받은 나를 본 사람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게 됐다. 시어머니와 7남매 시댁 식구들이 예수님을 믿게 됐고 동네 사람들까지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종갓집이어서 매년 13번의 제사를 지냈는데 시어머니가 교회에 다니면서 제사도 없어졌다. 기적을 체험한 후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나는 하나님께 받은 사랑과 은혜를 붙들고 살아가기 시작했다. 예배드리러 교회 가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지금도 주일예배는 물론 특별새벽기도회, 수요예배, 금요성령대망회 등 모든 예배에 참여하며 은혜 받고 있다. 내 삶을 붙들어준 말씀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이다. 나는 이 말씀을 붙들고 힘들 때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으로 다시 일어섰다. 또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야훼에게서로다”(시 121:2) 이 말씀을 아침저녁으로 묵상했다. 하나님 말씀은 내 삶의 힘이었고 위로였고 소망이었다. 내 인생을 돌아보면 결혼 후 51년간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온 것, 올해 98세가 되신 시어머니가 건강하신 것, 교회에서 18년 동안 지역장으로 헌신하며 성도들을 섬긴 것 등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시댁 식구들을 전도해 예수님을 전한 것도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붙드시고 끝까지 사랑으로 섬길 수 있도록 도와주셨기에 가능했다. 올해는 감사하게도 영산효행상 효부상도 받게 됐다. 하나님께서는 무너진 나를 살려주셨고 우리 가정을 믿음의 가정으로 세워주셨다. 앞으로 남은 삶도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고 싶다. 사랑으로 가족을 섬기고 감사로 이웃을 품으며 끝까지 믿음의 본을 보여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 정리=이미나 기자
  • 2026.06.19 / 이미나 기자

    강순자 집사(양천대교구) - 감사하며 역전의 하나님 체험해
  • 남편에 대한 100가지 감사 쓰며 삶 변화 나는 20대 초반 회사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이듬해 아들을 낳고 5년 후 딸을 낳았다. 아이들 키우면서 살림하고 시어머니 모시고 남편 챙기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어머니께서 혼자 조용히 교회에 다니신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남편은 어릴 적 신앙을 잊었고 어머니가 교회 다니는 것도 싫어해서 조용히 신앙생활을 하셨던 것이다. 남편의 믿음직하면서도 현명하고 냉철한 모습이 매력적이었는데, 결혼 후 매력을 느꼈던 그 차가움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내게 상처를 입혔다. 남편이 버럭 할 때마다 심장이 쿵쿵거리고 벌벌 떨렸다. 30대 중반이 된 나는 학습지 교사로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언덕 지형의 동네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몸이 많이 힘들어 치질이 생겼는데 수술을 했음에도 재발이 됐다. 친척 모임 중 사정을 아신 육촌 형님이 “자네도 예수 믿어야겠네”라고 하신 말씀이 마음에 남아 형님을 찾아갔다. 형님네는 문이 잠겨있어 아래층에 사는 형님의 친구를 만났는데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다니는 분이셔서 나는 교회로 인도됐다. 교회를 다니면서 재수술을 받았지만 또 재발이 됐다. 나중에는 수술을 해도 재발 될 것 같고 절망만 마음에 가득했다. 남편은 돈 버는 것도 아닌데 쓸 데 없는 짓 한다며 교회 다니는 것을 방해했다. 또 한 가지는 제사를 없애려는데 이상하게 명절 때만 되면 몸이 심하게 아팠다. ‘이것은 마귀가 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기도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예배 중 신유기도 시간에 지금은 아파도 하나님이 반드시 고쳐주실 것이라는 소망이 생기고 마음이 단단해졌다. 마지막 수술 후에는 재발 없이 건강을 회복했다. 이 과정 속에서 남편도 자연스럽게 예배에 참여하고 신앙을 갖게 됐다. 하지만 차가운 성격은 쉽게 달라지지 않았다. 2010년 나는 이영훈 목사님의 절대 긍정 절대 감사하라는 말씀을 실천해 보기로 했다. 남편에게 감사한 것 100가지를 쓰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잘 써지다가 30개쯤 되니 고비가 왔다. 마음을 다잡고 감사의 안경을 쓰고 보니 감사한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50개가 넘으니 너무 감사해서 눈물을 흘리며 썼다. 100개 감사를 다 쓰고 나니 내 안에는 평안함이 가득하고 어느 날부터인가 남편이 달라졌다. 나의 수고를 인정해 주고 나를 배려해 줬다. 이게 정말 된다니 하나님은 반전의 하나님, 역전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하나님께 감사해서 여선교회 성찬실에서도 봉사하고 내가 즐거우려고 공부를 하다 유아숲지도사도 취득하게 됐다. 교회에서 우쿨렐레를 배워 내가 사는 지역에서 재능기부활동도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 안에서 감사하면서 인생 역전의 기회를 누리기를 바란다. 정리=복순희 기자
  • 2026.06.12 / 복순희 기자

    박성근 안수집사, 김성례 권사(금천대교구) - 헌혈로 얻은 생명, 감사로 이어져
  • 십이지장 절제 수술 후 봉사의 삶 살아 나는 평생 기계 설계 분야에서 일해왔다. 책임이 큰 업무를 맡아 1년 365일 가운데 360일을 일했다고 할 만큼 쉼 없이 달려왔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였고 결국 십이지장궤양을 앓게 됐다. 처음에는 약을 먹으며 버텨왔지만 증상은 점점 악화됐다. 출장 중 쓰러지고 출근길 버스에서 의식을 잃기도 했지만 몸이 보내는 신호를 외면한 채 일에만 매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대량 출혈이 발생했고 급히 119 구급차로 병원에 이송됐다. 결국 2005년 십이지장과 위 일부를 절제하는 대수술을 받게 됐다. 출혈이 너무 심해 당시 12팩의 수혈을 받아야 했다. 아내는 수술실 앞을 지키며 간절히 기도했고 고등학생이던 큰딸과 중학생이던 작은딸은 아버지를 살리고 싶은 마음에 학교 친구들에게 헌혈증서를 부탁했다. 친구들은 기꺼이 헌혈증서를 모아 전달해 주었고 그 사랑은 우리 가족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됐다. 이름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의 헌혈과 사랑 덕분에 나는 새 생명을 얻게 됐다. 퇴원 후에는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 하는 생각과 수혈로 인한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한동안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봉사의 자리로 이끄셨다. 아내의 권유로 순복음실업인선교연합회와 교회 행사에서 봉사하며 조금씩 상처와 아픔을 내려놓게 됐다. 무엇보다 생명의 위기 속에서 받은 수혈은 내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헌혈 덕분에 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다는 사실이 큰 감사로 다가왔고 그 사랑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고 싶었다. 건강을 회복한 뒤에는 기회가 될 때마다 헌혈에 참여했다. 해외 출장이 많아 헌혈이 제한되는 기간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10차례 헌혈을 이어오고 있다.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중요한 교훈을 주셨다. 내 힘으로 감당하려 할 때보다 하나님께 맡길 때 참된 평안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은혜로 절제했던 위도 회복돼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식사에 큰 불편 없이 생활하고 있다. 이후에도 일을 계속하며 69세가 되던 2년 전 은퇴했다. 현재는 안수집사회에서 봉사하며 감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두 딸과 사위들, 손주들까지 모두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신앙생활하며 봉사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셨음을 날마다 경험하고 있다. 나는 생명을 살리는 헌혈을 통해 받은 사랑을 조금이나마 나누며 살아가고 싶다.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자리에서 감사와 섬김의 삶을 살아가며 생명을 나누는 일에도 힘쓰고자 한다. 죽음의 문턱에서 나를 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이름 모를 헌혈자들의 사랑을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정리=김주영 기자
  • 2026.06.05 / 김주영 기자

    조민영 성도(통일대교구) - 여의도순복음교회 통해 심장병 수술 받고 살아나
  • 나는 불신자 가정의 2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었지만 1000만원이 넘는 수술비를 감당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세 살 때 숨이 멎어 무덤까지 준비했을 정도로, 어린 시절은 늘 생사의 갈림길 위에 있었다. 그러던 중 1984년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심장병 어린이 수술 지원 사역을 통해 13세에 세종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새 생명을 얻은 후 조용기 목사님도 만나 안수기도 받았다.(사진)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온 후 교회를 다닐 환경이 아니었고 나를 교회로 인도해 줄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살아가던 내 인생에 또 한 번의 큰 사건이 찾아왔다. 첫째 아이가 교통사고로 생사의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두개골 골절과 뇌출혈로 중환자실에 들어간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아이가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과 성도님들이 간절히 중보기도를 해주셨다. 그 일을 계기로 다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놀랍게도 아이는 회복됐다. 그러나 또다시 하나님을 떠난 채 세상과 벗하며 살았다. 2020년 1월, 한 탈북민 목사님과의 만남을 통해 내 신앙은 결정적으로 변했다. 타 교회의 한반도 선교부에서 약 1년 동안 탈북민들을 섬기면서 북한의 현실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다. 탈북 후 치열하게 살면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탈북민들의 삶은 내게 큰 도전이 됐고 ‘먼저 온 통일 세대’인 탈북민들을 위해 한국교회가 무엇을 해야 할지 깊이 생각했다. 2022년 탈북민 목사님이 보내주신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그동안 잊고 살았던 어린 시절 나를 살려주신 그 은혜가 한순간에 깨달아졌다. 수많은 심장병 어린이들 가운데 여의도순복음교회를 통해 나를 살리신 것이 하나님의 계획임을 깨닫고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2022년 신학교에 입학해 탈북민들을 향한 마음과 복음통일의 비전을 갖게 됐고, 그 해 11월 여의도순복음교회 통일연합종교포럼, 통일대교구에 등록했다. 이전의 나는 그저 ‘살아가는 사람’이었다면, 이제는 ‘사명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으로 변화 됐다. 복음은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능력’이다. 나를 살린 것도 의학만이 아니라 기도와 복음의 능력이었다. 그렇기에 복음은 반드시 전해져야 한다. 특히 북한 땅에는 더욱 그렇다. 복음으로 하나 되는 ‘복음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다. 앞으로 평양 심장병원이 완공된다면 그곳에서 심장병 어린이들을 섬기며 내게 주신 생명을 다시 흘려보내는 삶을 살고 싶다. 앞으로도 주님과의 만남 속에서 변화되는 삶을 살아가며 복음과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소망한다. 정리=오정선 기자
  • 2026.05.29 / 오정선 기자

    김영숙 권사(용산대교구) - 손녀의 섬유종증 치유하신 하나님께 감사
  •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보며 기도할 때 기적 임해 내게는 유독 사랑스러운 손녀가 있다. 지금은 11세가 된 손녀를 볼 때마다 나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손녀가 세상에 태어날 때는 몰랐는데 조리원에서 왼쪽 사타구니에 동전만 한 혹이 발견됐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섬유종증 계열의 희귀질환이라고 했다. 보통 젊은 여성에게도 드물게 나타나는 희귀병으로 신생아에게는 더욱 드문 병이라고 했다. 너무 어렸던 터라 돌이 지나 6개월 동안 항암치료를 받았다. 치료를 거듭해도 왼쪽 다리는 구부려지지 않았고 결국 수술을 했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무릎부터 허벅지까지 굳은 근육을 제거해야 했고 의사는 평생 똑바로 걷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희망은 수술만 하면 될 줄 알고 믿고 기도했는데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다는 소견은 청천벽력과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기도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주일, 평소처럼 예배를 드리기 위해 3층 발코니에 앉아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도 중 손녀 딸이 1층 가운데 빨간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가는 환상을 봤다. 예배 중 신유기도 시간에 마음속으로 손녀의 연약한 다리를 붙잡고 기도했다. 그때 이영훈 목사님께서 “오늘 난치병, 불치병을 앓는 아이가 부모의 기도로 인해서 치료되고 있다”라고 선포하셨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아멘”을 큰 소리로 외쳤다. 바라봄의 법칙으로 정말 많이 기도했다. 계속해서 정상적으로 걷는 모습을 꿈꿨고 하나님이 치유해 주셨음을 선포하며 기도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고 정밀검사를 받는 중에 의사 선생님이 “다리가 왜 이래?”라고 말씀하셨다. 다리가 살짝살짝 구부러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리가 완전히 접히게 됐다. 할렐루야! 그동안 차고 있던 깁스도 풀게 된 손녀는 그날 놀이터에서 한동안 미끄럼틀을 오르내렸다. 손녀가 치유되기까지 지·구역 식구들도 함께 중보 기도했다. 지금은 초등학교 4학년으로 건강하게 잘 걸어 다니고 있다. 일반 아이들처럼 똑같이 걸어가기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기도했는데 그 기도가 정말 이루어진 것이다. 손녀딸은 우리 신앙의 산 증거이다. 나는 개인적으로도 참 많은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면역력이 현저히 낮아 감기에 한 번 걸리면 6개월 정도 앓아야 했다. 7년 전 목사님이 신유기도 시간에 “면역성이 없어서 고생 많이 하신 분, 오늘 하나님이 치유해 주셨다”고 선포기도를 해 주셨다. 그런데 이날 이후부터는 면역력이 회복되어 6개월 앓던 감기도 3일이면 낫게 됐다.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지금도 역사하신다. 남들은 모르는 고통을 겪는 부모와 자녀를 위해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유일한 구원자 되시고 진정한 치유자 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치유의 기적을 체험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정리=금지환 기자
  • 2026.05.22 / 금지환 기자

    김유경 권사(강서1대교구) - 하나님 자녀 된 삶, 가장 큰 기쁨 
  • 범사에 감사하며 주님 의지할 때 교회를 다니고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은 내 삶의 가장 큰 기쁨이자 감사한 일이다. 결혼 후 남편을 따라 미국과 홍콩, 베트남에서 생활하는 동안 수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다. 낯선 타국에서의 삶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돌아보면 언제나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고 계셨다. 첫 아이를 임신하고 7개월 무렵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초음파 검사에서 아기의 위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의사는 산모도 위험할 수 있으니 8개월에 조기 출산을 하자고 권했다. 두려움과 걱정으로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는데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출 23:26)는 말씀이 내 마음 깊은 곳에 레마로 임했다. 상황은 불안했고 현실은 두려웠지만 하나님의 약속이 내 마음을 붙들어주었다. 결국 예정일에 맞춰 아이를 출산했다. 그런데 태어난 아기는 선천성 식도폐쇄증으로 큰 수술이 꼭 필요한 상태였다. 수술을 받으려면 체중이 최소 3㎏은 되어야 했는데 놀랍게도 아이의 몸무게는 정확히 3㎏이었다. 그 순간 나는 눈물로 하나님께 감사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셨고 가장 정확한 때를 준비하고 계셨다. 하나님이 이끄신다는 것을 체험한 후 나는 하나님께 맡기는 엄마가 되기로 결심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전이면 매일 아침밥을 차려주고 식사하는 동안 성경 말씀을 읽어주었다.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보다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는 말을 더 많이 들려주고 축복기도를 해주었다. 또 어떤 상황에서도 주일만큼은 타협하지 않았다. 학교 행사와 시험 일정이 겹쳐도 선생님께 부탁해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했다. 큰딸은 고등학교 시절 크리스천 모임의 리더로 섬기게 됐고 지금은 미국의 IT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둘째 딸의 출산 또한 하나님의 은혜였다. 예정일이 지났는데도 아기가 나오지 않아 “하나님, 주일예배를 드리고 아이를 낳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정말 주일 예배를 드리고 진통을 느껴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받은 뒤 병원으로 갔고, 도착한 지 30분 만에 순산했다. 지금 둘째 딸은 홍콩에서 마취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살 가망이 없는 어린 환자를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살리시는 은혜를 경험한 딸은 하나님을 더욱 깊이 만나게 됐다. 돌아보면 나는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해준 엄마는 아니었다. 늘 교회 봉사로 바쁘게 지내다보니 아이들을 잘 돌보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말씀을 붙들고 주일을 생명처럼 지켰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을 친히 채워주셨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을 인도하셨다. 자녀를 키우는 것은 결국 부모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현재 사단법인 순복음실업인선교연합회 음악예체능선교회에서 핸드벨콰이어 단장으로 섬기고 있다. 부족한 나를 사용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날마다 감사드린다. 정리=이미나 기자
  • 2026.05.15 / 이미나 기자

    소삼영 성도(반석대교구) - 육체의 병 고쳐주신 ‘치료의 하나님’
  • 우리 가정은 2008년 8월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등록하며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생업이 어려워지면서 가족 간의 관계도 거의 무너질 위기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십일조 생활을 이어가고 말씀에 은혜를 받으면서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믿음이 우리 가정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그 과정 속에서 불안정했던 가정은 점차 안정을 찾았고 깨어질 위기였던 가족 관계도 회복되며 하나님의 평안이 임했다. 그런데 올해 1월, 남편에게 갑작스럽게 시련이 찾아왔다. 허리 통증과 다리 저림 증상이 나타났고 처음에는 단순한 증상으로 여겨 휴식을 취하면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며칠 사이 증상은 급격히 악화되었고 결국 보행장애까지 나타나 앉아 지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루아침에 일상이 무너진 그때의 절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여러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뚜렷한 치료 방법은 제시되지 않았고 약 처방만 반복될 뿐이었다. 결국 병원에서는 디스크와 협착증, 퇴행성 변화까지 겹쳐 회복이 어렵다는 진단을 내렸다. 직장까지 잃을 위기에 놓인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우리 가정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기로 결단했다. ‘야훼 라파’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온 가족이 함께 금식기도를 했다. 나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반드시 고쳐주실 것을 확신하며 감사헌금을 드리고 입술로 고백했다. 또한 절망 가운데 있는 남편에게 베드로전서 2장 24절과 시편 103편 3절 말씀을 계속 들려주며 믿음을 붙들도록 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집에 있던 남편이 내가 외출 후 돌아오자 기쁨에 넘쳐 외쳤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내 병을 고쳐주셨어!” 남편은 스스로 걸어 다니는 것은 물론, 운동까지 하고 돌아온 상태였다. 그 모습을 보며 온 가족은 하나님께 말할 수 없는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렸다. 이 일 이전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정에 치료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내가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서 작정기도를 드리던 당시 나는 협심증으로 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가슴 통증이 시작되면 어깨까지 굳어질 정도로 고통이 심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도굴에서 기도하던 중, 한 손이 나타나 내 가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환상을 체험하게 됐다. 그 이후로 협심증은 완전히 사라졌고 지금까지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큰딸은 코로나19 예방접종 이후 약 두 달간 무월경 증상을 겪었고, 이후 갑작스럽게 시작된 과다 출혈이 1년 넘게 지속됐다. 외출조차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지자 나는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렸다. 그때부터 출혈의 양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고 마침내 정상으로 회복되어 지금은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우리 가정은 하나님께서 살아 역사하시며 지금도 우리를 지키시고 치유하시는 분이심을 깊이 경험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정리=김주영 기자 <관련 성경말씀>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베드로전서 2장 24절)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시편 103편 3절)
  • 2026.05.08 / 김주영 기자

    피강진 안수집사(반석대교구) - 건강과 달란트 주신 하나님께 감사
  • 헌혈과 외국인 봉사로 나눔의 기쁨 누려 우리 세대 동년배들처럼 나도 우리나라가 전쟁의 폐허를 딛고 급성장했던 격동의 1970~1990년대 모든 것을 바쳐 열심히 일하는 젊은이였다. 국내 굴지의 건설사에서 25년간 근무를 하면서 쌓은 사회생활의 경험과 자신감으로 사업을 벌였고, 1997년 IMF 사태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승승장구하던 삶에서 쓰디쓴 실패의 맛을 보기도 했다. 수억 원의 손실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고한 정체성이 있기에 쓰러지지 않고 상황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씩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뒤돌아보면 하나님을 모르고 성실히만 살던 내 인생에 아내 정지춘 권사는 가장 큰 은인이다. 1975년 결혼하면서 아내를 따라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자연스럽게 지구역 예배를 드리고 신앙의 선배들을 따라 봉사하는 삶을 살게 됐다. 교회에서는 남선교회 외국인안내실에 소속되어 매 주일과 수요예배, 금요성령대망회 예배를 드리러 세계 각지에서 온 외국인 성도들을 안내하고 우리 교회를 소개한다. 영어를 전공하지 않았는데도 젊은 시절 회사 업무차 해외 출장을 다니며 익힌 영어와 외국인 응대가 봉사에 도움이 됐다. 올해 나는 83세이지만 지금도 매일 영어 공부를 하면서 새로운 단어를 익히고 영어를 더 잘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노력한다. 처음에는 봉사 때문에 열심히 했지만 지나 보니 내가 제일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 여러 나라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소통할 수 있어 하나님께 감사하다. 또 한 가지 의미 있는 봉사는 만 69세까지 총 126회의 헌혈을 한 것이다. 첫 헌혈의 계기는 1983년에 회사 동료들과 위문 봉사를 위해 소아암 병동을 방문했을 때였다. 나도 딸 둘을 키우는 입장에서 암으로 고생하는 아이들을 보니 마음이 정말 아팠다. 환아들이 수혈도 많이 받기 때문에 헌혈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희생하시고 피를 흘리셨으니 나도 내 피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꾸준히 헌혈을 했다. 사업에 실패했을 때도 헌혈을 멈춘 적이 없고 지금까지 100장이 넘는 헌혈증을 기부했다. 헌혈을 100회 이상했을 때는 적십자사에서 명예장도 받았다. 헌혈을 위해서 가벼운 운동과 산책으로 꾸준히 건강관리를 해온 습관이 자리 잡아 지금까지도 이 나이대에는 다 있다는 고혈압이나 당뇨, 간기능 이상 등이 하나도 없다. 헌혈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기쁨이구나라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앞으로도 하나님이 건강을 허락하시는 그날까지 내게 주신 달란트로 봉사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님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하고 싶다. 정리=복순희 기자
  • 2026.05.01 / 복순희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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