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변화
박공자 권사(용산대교구) - 절대긍정의 믿음 가질 때 복 주신 하나님께 감사 
  • 기도에 힘써 문제 해결되고 3대가 구원 받아
    내 삶에 풍성한 은혜를 내려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 올려드린다. 나는 1984년 34세의 나이에 처음 교회에 나갔다.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랐던 나는 결혼 후 남편을 통해 처음 교회의 존재를 알게 됐다. 내가 남편을 따라 교회를 가게 된 것은 평소 가정에 소홀하고 불같은 성격으로 늘 화가 많았던 남편이 교회를 다니면서 환골탈태 돼 돌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남편의 달라진 모습이 너무 신기하면서 한편으로는 교회가 궁금해 남편을 따라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출석했다. 교회에 처음 나간 날, 나는 성령의 불을 받았다. 예배를 드린 후 대교구장님께 안수 기도를 받았는데 그 순간 머리 위가 뜨거웠다. 마치 뜨거운 불이 내 머리에 있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기도를 받은 후 내 마음에 알 수 없는 기쁨이 샘솟았고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면서 내 삶은 180°달라졌다. 나 살기 바빠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내가 주변 사람들을 챙기게 됐고 무엇보다 부정적인 사고가 긍정적인 사고로 완전히 바뀌었다. 이전에는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매사에 불평불만을 갖고 살았다. 그런데 예수님이 내 마음에 거한 순간부터 어떠한 어려움이 다가와도 ‘다 잘 될 거야’라는 긍정적인 사고를 갖게 된 것이다. 나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 참 많은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 집안이 물질적으로 어려울 때 기도를 통해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었고, 건강의 복도 받아 지금까지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수많은 기도의 응답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가족 구원을 위한 기도였다. 나는 내가 만난 예수님을 친정 식구들에게 먼저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전부터 절을 다녔던 어머니를 전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내가 교회를 가자고 하면 “너나 잘 듣고 너나 천국 가라”며 교회 가는 것을 극구 반대했다. 그럼에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어머니 가운데 임할 하나님을 기대하며 나에게 임한 성령의 불이 어머니에게도 임하도록 간절히 기도했다. 어머니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가 교회에 다니게 될 것을 꿈꾸고 믿고 바라보며 쉬지 않고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와 지역예배에 함께 참석했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같은 지역 권사님이 예배시간에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기도하는데 강력한 성령의 불이 임한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것을 완강하게 반대했던 어머니가 첫 예배에서 하나님을 영적으로 체험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됐다. 내 기도가 응답된 것이다. 할렐루야! 어머니를 전도한 후 우리 친정 식구 모두 복음을 받아들였다. 또한 우리 가정도 자녀, 손주 3대가 모두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 가문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믿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남은 일생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전도하는데 힘쓰며 살아가겠다. 정리=금지환 기자
  • 2022.11.25 / 금지환 기자

    니하드 하싼 목사(레바논 쿠르드교회) - 순복음의 영성 배우게 돼 하나님께 감사
  • 고난 중에 주님 만나 목회자 꿈 이뤄 소수 민족 쿠르드인 위한 난민 사역 힘써 내가 대한민국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열린 제26차 세계오순절대회에 참석한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자 기적이다. 세계 오순절 교회의 중심에 서있는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오게 된 것에 참 감사하다. 시리아 난민이자 무슬림이었던 나는 현재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쿠르드교회를 담임하며 성령운동을 펼치고 있다. 난민사역을 하며 쿠르드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나도 시리아의 소수민족인 쿠르드 출신이기에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내 마음은 그 누구보다 간절하다. 시리아에서 자라난 나는 고난이 많았다. 동생은 시리아 민병대에 강제 동원된 후 행방불명됐고 아버지는 병에 걸렸다. 나는 유럽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다 시리아 정부군에 붙잡혀 감옥에서 6개월간 수감된 적도 있다. 난민시절 오순절 교회의 선교단체를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된 후 내 인생은 달라졌다. 현지 오순절 교회에서 오순절 영성으로 제자훈련을 받았다. 3년 전 목사 안수를 받고 단독 건물에서 목회를 시작해 지금은 300가정이 모여 함께 예배드리고 있다. 페이스북, SNS로도 활발하게 소통하며 사역한다. 난민 출신 목회자로서 사역을 펼치게 된 것은 유일한데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나는 신학교 전기실 직원이었다. 창문 너머로 강의를 들으며 혼자 공부했는데 교수가 그 사실을 알고 주의 종이 되고 싶어 하는 나에게 신학을 가르쳐준 것도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2006년 잠시 이라크에 일하러 갔을 때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이라크가 어려울 때 도와줬던 것을 알게 되면서 한국 교회가 선행을 펼쳤으니 나도 기회가 되면 꼭 보답하겠다고 결심했다. 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경공부 모임에서 나온 주일헌금 중 일부를 한국교회에 드리고 싶었다. 당시 초신자였지만 한국인 선교사를 수소문해서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파송받은 김성국 선교사를 만난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우리는 10년째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2011년 시리아 내전이 시작돼서 200만명의 난민이 생겨났다. 현재도 100만명 이상이 레바논 안에 난민으로 남아있다. 난민의 90%이상이 무슬림인데 예수님을 만나고 침례 받는 사람이 수천 명이 넘었다. 내가 그랬듯 중동 선교가 10년 후 큰 열매를 맺을 것으로 기대된다. 나는 조용기 목사님의 책 『4차원의 영적 세계』 를 읽으며 여의도순복음교회와 같은 큰 부흥이 쿠르드 교회에 일어나기를 기도하고 있다. 한국에서 순복음의 영성을 배워 왔으니 우리 교회가 더 크게 부흥할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와 같이 전쟁과 난민 생활을 겪은 한국이 전 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한 나라가 된 것처럼 우리 민족도 그렇게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정리=이미나 기자
  • 2022.11.18 / 이미나 기자

    허용범 집사(구로대교구) - 감사할 때 좋은 길로 인도하는 주님을 찬양
  • 몸의 건강 주시고 삶의 축복 임해
    나는 1980년대 남양주에서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다가 전도 받아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나오게 됐다. 3년을 남양주에서부터 여의도까지 교회를 다녔지만 믿음이 연약해 신앙생활을 꾸준히 하기보다 들쑥날쑥 제멋대로였다. 그런데 그런 신앙의 고비마다 주님이 붙잡아 주셨다. 무릎이 너무 아플 때 치료해주시고, 자궁 물혹으로 심각하게 하혈할 때도 주님의 도우심으로 고침을 받았다. 또 집에 방 하나가 남아서 세를 줬는데 세입자가 모태신앙인이어서 그분의 도움으로 굳건히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다. 30년 전에는 인삼 박스를 포장하는 야간 잔업을 하고 밤 9시에 퇴근하는데 오토바이와 부딪혀 큰 사고가 났다. 앞에서 오토바이가 오는 것을 봤지만 인도로 비켜있는 나를 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운전자가 음주상태에서 벌인 일이었다. 나는 사고 후 새벽 3시 30분이 되어서야 정신이 들어 사람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바지는 다 찢어져 몸 전체가 피 멍이 들었고, 발과 늑골 두 대, 엉덩이뼈에 골절과 금이 가서 전치 10주 판정을 받고 수술해야 했다. 가해자가 합의를 제안하는데 나는 미움보다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다. 다른 보상은 필요 없고 치료비만 받길 원했는데도 그 금액이 상당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가해자가 가난해서 돈이 없다는데 하나님이 나를 고쳐주세요’라며 기도했다. 신기하게도 일주일 넘게 대변 주머니와 소변 줄을 착용하는 힘든 일을 겪는데 고통스럽지가 않았다. 하나님 은혜 가운데 뇌와 장기가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감사기도를 드렸다. 화장실을 갈 때 걸음마보조기를 해야 한다고 했지만 믿음으로 걸으라는 주님의 말씀이 자꾸 생각나서 보조기 없이 화장실로 천천히 걸어가 변기에 앉았다. 그 순간 엉덩이뼈에서 우지끈 소리가 나더니 더 이상 아프지 않는 기적을 체험했다. 병동에 있는 다른 환자들도 저 아줌마는 뭔가 있다며 나의 빠른 회복에 놀라워했다. 병원비도 예상했던 것보다 적게 나왔다. 절대적 감사만이 복 받는 지름길이라는 걸 이때 깨달았다. 나는 59세에 남편과 사별하고 여러 직장을 다니며 힘든 삶을 살았다. 그런 중에 아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줬는데 그 사람이 갚을 능력이 없다고 했다. 나는 절대 부정적인 말을 내 입 밖으로 내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별다른 재주가 없으니 병원 지하 식당의 일을 구했는데 그곳은 습도가 높아 많이 힘들었다. 하나님께 공기 좋은 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기도드렸더니 포천 실버텔에 일자리가 생겼다. 산이라서 공기도 좋고 일하기 좋은 환경이었지만 오래 일 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다. 실버텔이 경매에 곧 넘어가 노인들이 다 나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나님의 섭리란 참으로 오묘하다. 나는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됐다. 남편은 육군 장교로 예편 후 실버텔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는 내 어려운 형편을 알고도 함께 살자며 자녀들도 만나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서로 좋은 인연으로 만나 인품 좋은 남편과 감사하며 20여 년 해로하고 있다. 내가 고난 중에도 불평하지 않고 감사했더니 하나님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내 삶을 좋은 길로 인도하셨다. 고난 가운데 축복해 주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정리=김주영 기자
  • 2022.11.11 / 김주영 기자

    김정숙 권사(양천대교구)  - 고난의 순간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
  • 토지 사기 당해 잃은 집 다시 찾아
    주님 만나고 상한 심령과 건강 회복 1990년 평범한 주부였던 내가 하루아침에 토지전문사기단의 피해자가 됐다. 매매 중 계약금만 받은 상태였는데 우리집이 경매로 넘어갔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사람들이 어찌나 철저하게 해놨는지 집을 찾고자 변호사, 검사를 만나 자문을 하면 되레 나에게 포기하라고 했다. 충격이 너무 심해 몸이 망가져 밥 한술 넘길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같으면 버렸을 ‘행복으로의 초대’가 눈에 띄였다.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를 보면 말씀이 마음에 위로와 희망이 됐다. 누군가 현관 우유통에 놓고 가는 행복으로의 초대를 또 받고 싶어서 기다렸다가 읽었다. 드디어 행복으로의 초대에 적힌 전도자의 전화번호를 발견해 전화를 걸었다. 부산 순복음금정교회에 다니는 아기 엄마가 전화를 받아 만났다. 그동안 수만 장 전도지를 집집마다 넣었지만 이렇게 전화가 온 것은 처음이라며 뛸 듯이 기뻐했다. 그분과 이야기를 하니 작정예배를 드리자고 했다. 예배를 드리는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내 상황이 힘들어서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처음 교회에 간 날 설교 후 목사님께서 위가 많이 아픈 사람이 치료를 받았다고 하시기에 ‘그 사람은 참 좋겠다’ 했는데 그게 바로 나였다. 그날부터 밥을 한 공기씩 먹어도 멀쩡했다. 너무나 감사해서 나를 전도한 분과 함께 행복으로의 초대를 돌렸는데 허리도 회복됐다. 얼마 뒤 남편이 서울로 발령이 나 우리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3개월간 잠복근무를 하다시피 하면서 사기단을 한명씩 잡아 들였고 마지막으로 주범만 잡으면 되는데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시어머니가 준 부적들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안 될 거 같았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믿음으로 남편 옷에서 부적을 빼내 버렸다. 그리고 그날 밤 주범의 내연녀로부터 그가 경찰에 잡혔다는 연락을 받았다. 단숨에 경찰서로 가서 어렵게 범인을 만났지만 자기 죄를 부인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기도를 하고 찾아갔더니 밤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가 마음을 바꿔 사기를 인정했고 우여곡절 끝에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예수님을 믿은 후부터 나는 주일은 물론 수요예배, 금요철야예배, 매일 새벽예배를 다녔고 아이들을 학교 보낸 후 돌아올 때까지 집에서 혼자 찬송하며 기도했다. 매해 금식기도를 3일씩하고 매일 아침 금식하면서 기도하고 있다. 남편이 해외발령을 받아 온 가족이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에 가도 신앙생활은 계속됐다. 순복음교회가 없는 지역에서는 한인교회에 새벽예배를 만들면서 기도했다. 주님께 기도만 했는데 남편도 구원을 받아 집사가 됐고, 네 딸은 사교육 없이 모두 명문대에 진학해 지금은 공기업 직장인, 변호사, 영화 연출가로 활동 중이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앞으로도 내가 만난 좋으신 하나님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정리=복순희 기자
  • 2022.11.04 / 복순희 기자

    서희복 집사(구로대교구) - 하나님 믿을 때 영·혼·육 삼중축복 부어주셔
  • 남선교회에서 봉사한 지 벌써 23년이 지났다. 성전에서 안내하는 여성 봉사자의 모습이 참으로 귀하게 보여 ‘나도 봉사하고 싶다’는 마음에 남선교회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흰 재킷을 입고 봉사에 나설 때면 매번 “죽도록 충성하라”는 실장님의 말씀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직장을 다니면서도 주일 예배는 물론 금요성령대망회 등 모든 예배 때 빠지지 않고 헌신하는 봉사자들을 보면서 ‘나도 열심히 주님을 위해 죽도록 충성해야 겠다’는 다짐을 했다. 나는 사고로 다리를 다쳐 걷는데 다소 불편함이 있다. 매주일 새벽 경기도 동탄의 집을 나서 여의도 교회까지 오는데 2시간 40분이 걸리지만 예배드리고 봉사하는 시간만큼 기쁘고 행복한 것이 없다. 누구는 나를 보고 봉사를 그만 쉬라고 했지만 주께 받은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면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봉사를 처음 할 때만해도 나는 2000만원 전셋집에 살았다. 당시 식당을 운영했는데 제법 장사가 잘 돼 행복했다. 하지만 장사가 잘되니 건물주가 나가라고 했다. 내쫓기다시피 건물을 나와 다시 식당을 열기위해 마땅한 장소를 찾아 여기저기 다녔지만 쉽지 않았고 몇 년 뒤 나는 아파트 관리직으로 취업을 했다. 그런데 일을 하던 중 새벽에 건물 계단을 내려오다 헛짚어 구르고 말았다. 머리를 감싸 안아 다행히 큰 사고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오른쪽 다리를 다쳤다. 통증이 크지 않아 단순히 인대가 손상됐나보다 생각했다. 곧 119를 불렀지만 직장이 있던 서울에서 당시 수원 집까지 갈수 없다고 해 어쩔 수 없이 근무 교대 시간을 기다렸다 택시를 타고 집 근처 병원으로 갔다. 검사 결과 다리는 인대 손상이 아닌 골절로 상황이 심각했다. 그런데 왜 아프지 않았을까. 어쨌든 다리를 다친 지 18시간이 지나서야 병원에 입원하고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다리가 퉁퉁 부어오르긴 했지만 신기하리만큼 통증이 없었다는 건 확실히 주님의 돌보심이었다. 회복 후 나는 다른 아파트 관리직으로 들어가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청소를 하다 화단에 걸려 넘어졌다. ‘인조 잔디로 넘어져 별 일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왼쪽 무릎 전후방 인대가 끊어지는 대형 사고였다. 보름 넘게 깁스를 하고 있었는데 후유증 탓인지 결국 걷는데 불편하게 됐다. 비록 몸은 불편해졌지만 주님을 향한 열정이 식었다거나 소홀해진 것은 아니었기에 계속 봉사를 하고 싶었다. 매순간 넉넉함으로 모든 것을 채워주셨던 좋으신 하나님은 장막의 복도 주셔서 동탄에 번듯한 아파트도 장만케 해주셨다. 성경 요한삼서 1장 2절은 말씀하신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순복음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니 하나님은 나에게 삼중축복의 은혜를 더해주셨다. 주일 새벽이면 나는 또 다시 교회가 있는 여의도를 향해 집을 나선다. 내가 사랑하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다. 좋으신 하나님을 위해 나는 날마다 죽도록 충성하고, 가족 구원을 위해 열심히 기도할 것이다. 이것이 성도의 사명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리=오정선 기자
  • 2022.10.28 / 오정선 기자

    박종숙 집사(용산대교구) - 수많은 고난에서 날 건져주신 하나님
  • 일생 그리스도의 사랑 전파에 힘쓸 것
    일평생 나의 삶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나는 1980년 순복음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교회를 다니면서 가족 구원에 힘썼던 나는 어머니와 시누이를 전도하며 평범한 신앙생활을 했다. 그런데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도래하고 내 삶에 생각지 못한 고난이 찾아왔다. 당시 남편은 금융업에 종사했는데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명예퇴직을 하게 됐다. 남편의 퇴직은 곧장 생활고로 이어졌다. 나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진 남편을 대신해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낮에는 식당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자녀들을 돌봤는데 직장을 잃은 남편은 매일 술을 먹고 가정폭력을 일삼았다. 그럼에도 나는 가정의 생계를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늦은 저녁이 되면 자녀들을 모두 재우고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했다.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주일 성수를 못했을 때였다. 나는 일을 마칠 때면 저녁 늦게라도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렸는데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로와 평강을 부어주셨다. 나는 하나님께 주일을 온전히 지키며 일할 수 있는 직장을 허락해 달라고 간구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남으로 아는 지인을 만나러 갔는데 그곳에서 난생 처음 구인광고를 보게 됐다. 수많은 구인 공고 중에 딱 한 곳이 눈에 띄었는데 바로 산후 도우미를 구한다는 공고였다. 경력이 단절된 이후 처음 도전해보는 일이어서 그런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가득했다. 그렇지만 나는 조용기 목사님께서 늘 강조하셨던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라는 말씀을 붙들고 담대히 지원했다. 나는 아기를 잘 돌보는 능력이 있지는 않았지만 오직 예수님의 사랑으로 산모를 섬기고 정성으로 아기를 돌봤다. 그랬더니 회사에서 고객 만족도가 높다며 계속해서 일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나는 산후 도우미를 하면서 내면의 치유도 받았다. 남편으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가 일을 하면서 치료된 것이다. 또한 일하며 모은 돈으로 작은 주택을 구입했는데 재건축이 되면서 보상금이 나와 두 자녀들을 위한 장막도 얻는 기적을 체험했다. 할렐루야! 나는 지금도 산후 도우미로 활동하며 심리상담, 부부상담, 가족상담 자격증을 취득해 산모와 자녀들, 가족들을 위한 상담도 하고 있다. 돌아보면 모든 것이 은혜였다. 고난의 순간마다 나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기도했다. 집세를 못 낼 때도, 가스가 끊길 때도 나는 시편 23편 1절을 읊조렸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말씀은 삶이 무기력할 때 나를 더욱 담대하게 만들어주는 원동력과도 같다. 늘 나와 함께 하시고 나와 자녀들에게 복을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 올려드린다. 남은 일생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며 전도에 힘쓰며 살겠다. 정리=금지환 기자
  • 2022.10.21 / 금지환 기자

    조블린 카리노 성도(은평대교구) - “오랫동안 앓던 허리 통증 고침 받았어요”
  • 성령 충만한 교회로 이끄신 주님께 감사
    나는 2016년 한국에 왔다. 그러나 한국 생활은 외국인인 내가 혼자 살아가기에 쉽지 않았다. 이국땅에서 살아가기 위해 늘 새로운 일에 부딪혀야 했고 그만큼 피곤하고 몸과 마음이 힘들었다. 한국에 온지 2년이 지나서 “여의도순복음교회에 가면 성령의 은혜가 넘쳐나고 기적이 많이 일어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소식은 향수병과 문화 충격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내게 희망의 메시지로 다가왔다. 필리핀에서도 교회에 다녔는데 한국에 와서 신앙생활을 못해 영적인 갈급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8년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와서 첫 예배를 드리는데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가 넘쳐났다. 오랫동안 앓고 있던 허리 통증이 깨끗하게 사라지는 기적도 체험했다. 2013년부터 척추에 문제가 있어서 필리핀에서부터 카이로프랙틱 치료를 받았었다. 어릴 때부터 물을 길어 나르고 무거운 짐을 짊어져서 그런지 척추에 문제가 생겨 늘 허리가 아팠다. 특히 한국에 와서는 통증이 더 심해져서 직장도 다니기 힘든 상황이었다. 처음 교회에 가기로 한 날 허리가 참을 수 없이 아팠다. 지금까지 겪었던 고통보다 훨씬 컸다. 힘들게 교회에 왔지만 허리가 너무 아파 내일부터는 직장도 다닐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절망했다. 그 순간 하나님은 기적을 보여주셨다. 주일예배 신유기도 때 이영훈 담임목사님께서 몸에 아픈 곳에 손을 얹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나는 허리에 손을 대고 간절히 기도했고 목사님은 “허리 통증으로 고통 받는 분이 고침 받았습니다”라고 선포하셨다. 나는 너무 놀라서 “그게 저입니다. 허리가 치료 받았습니다”라고 믿음의 고백을 했다. 어깨부터 등까지 진동하는 느낌이 들었고 참을 수 없던 통증이 그 순간 사라졌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었다. 오랫동안 앓던 허리가 치유된 경험을 하며 나는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 것을 확신했다. 할렐루야!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오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나 싶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오길 정말 잘했다. 신유체험 뿐 아니라 타국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내게 믿음의 가족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은평 5교구 김혜정 지역장님을 만나면서 내 신앙은 더욱 깊어졌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외국인들을 품어주며 많은 다문화 성도들이 교회에 잘 정착하고 믿음 생활 할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돌봐주신다. 기도의 동역자들이 계시니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남편도 한국에 들어와 함께 생활하며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예쁜 딸 주나가 태어나 더욱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됐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6)는 성경 말씀처럼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주님 뜻대로 살아가기 원한다. 늘 우리를 선한 길로 이끌어주시는 좋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정리=이미나 기자
  • 2022.10.14 / 이미나 기자

    이정희 집사(구로대교구) - 하나님의 은혜로 장막 문제 해결
  • 매일 3시간씩 기도 후 남편 직장 얻어
    내가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된 건 어머니의 기도 덕분이다. 20여 년 전 첫째 아이를 임신한지 8개월이 됐을 때 갑자기 하혈을 하면서 유산의 위기에 처했다. 아이를 잃는 것은 물론 내 건강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상황에서 어머니의 기도로 무사히 출산하고 건강을 회복했고 2001년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지하방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남편은 직장을 계속 옮겼고 생활고를 겪었다. 2011년 9월에는 전셋집이 만기돼 집주인이 집을 빼달라고 했다. 전세대출을 갚고 나면 내가 가진 돈으로는 월세밖에 갈 수가 없었다. 추석 전 3일을 금식하며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다. 그리고 주일 3부 예배를 드리는데 이영훈 담임목사님이 이사야 35장 1~4절 성경 말씀으로 설교하시며 “장막의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라고 선포하셨다. 나는 ‘아멘’을 외치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후 부동산을 찾았는데 마침 언덕 집 하나가 나왔다고 했다. 암반 위에 지어진 비좁고 상태가 아주 좋지 않은 집이었다. 남편은 차라리 월세 집을 찾자고 극구 반대했지만 나는 5일 작정예배를 드리며 확신을 얻었고 내 이름으로 대출을 받아 집을 매입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이 계시면 나도 한 번 만나보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순종했다. 모든 예배와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했고 십일조는 물론 하나님이 마음에 감동을 주시면 없는 형편에도 건축헌금을 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정말로 눈동자 같이 나를 지켜주시고 내 기도에 응답하셨다. 2016년부터 작년까지 월요일마다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 기도굴에 가서 기도를 드렸는데 놀랍게도 내가 사는 집 부지가 재개발되면서 보상금을 받게 됐다. 하나님이 하시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집 밑이 암반이어서 재건축이 될 곳이 아니었는데 기적이었다. 나는 보상금을 받고 2019년 12월 16일 새로운 집으로 이사할 수 있었다. 기도한 것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꿈의 집이었다. 또 감사하게도 작년에는 남편이 새 직장을 얻었다. 남편은 “61세로 나이 많은 나를 누가 채용해주겠냐”며 절망했지만 나는 직장의 문을 열어달라고 기도처에 가서 3시간씩 간절히 기도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만족할 만한 근무환경에 직장 대표까지 크리스천인 자리를 하나님이 주셨다. 아이들도 신앙 안에서 잘 자라 첫째 딸은 연세대학교에 합격해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하고 둘째는 성실히 직장을 다니며 자신의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나는 현재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 어르신들을 돌보며 복음을 전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새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2절 가사(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이 변하여 내 노래되었네)대로 기도할 때 오늘도 부족함 없이 채워주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할렐루야! 정리=김주영 기자
  • 2022.10.07 / 김주영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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