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변화
타나베 마사히토 안수집사(순복음가와고에교회) - 야훼 라파, 치유의 하나님께 영광 
  • 폐암과 전립선암에서 치유 받아 기도할 때 기적 체험, 주님께 감사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던 나는 결혼 후 교회에 다니면서 야훼 라파, 치유의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를 경험했다. 아내가 유산 후 어렵게 아이를 가졌는데 6개월 만에 1㎏ 미숙아로 아들을 출산했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울지 않고 심장이 멈춰버렸지만 나와 아내는 “이 아이를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간절히 기도하며 서원했고 기적적으로 다시 숨을 쉬게 됐다. 3개월 동안 인큐베이터에서 치료받으며 살아난 아들 야베스는 건강히 자라 지금 목회자가 됐다. 순복음동경교회를 다녔던 우리 가족은 1990년대 조용기 목사님이 인도하신 지저스 페스티벌 성회에 참석해 수많은 사람들이 치유받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17년간 교회 사무국장으로 섬기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02년 이영훈 목사님이 계실 때 순복음동경교회 성전 구입이 이루어진 일이다. 교회 전 성도가 1년간 매일 기도해 성전 구입의 기적이 일어났고 성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3억엔의 리모델링 비용까지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다. 내가 58세에 동경교회 신학교에 입학해 수석 졸업한 것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축복이었다. 2021년 아들 타나베 야베스 목사가 순복음가와고에교회로 부임하게 됐다. 그 무렵 나에게 폐암이 발견됐다. 2021년 7월 정기 건강검진에서 흉부 엑스레이에 이상 소견이 나타났다. 담당 의사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했지만 기도 중에 “큰 병원으로 가라”는 분명한 응답을 받았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일본 최대의 암센터에서 정밀검사를 받고 작은 암이 발견돼 2021년 10월 우측 폐 상부 절반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만약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지 않았다면 더 늦게 발견되어 위험했을 것이다. 또한 7년 전부터 전립선 비대증과 경구항암제로 전립선암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괜찮았던 전립선특이항원(PSA) 수치가 지난해 4월 혈액검사에서 정상 수치인 범위(0~4ng/mL)를 크게 벗어나 11.5까지 올라갔고 전립선암이 악화되는 상황이 됐다. 9월에는 우측 폐에 물이 고여 10m만 걸어도 심한 호흡곤란을 겪을 정도였다. 대형 병원에서 검사와 관찰을 계속했지만 원인을 찾지 못해 당혹스러웠다. 전립선암 치료를 받던 동네 병원 호흡기내과에서 다시 검사하니 폐렴과 폐수종이 발견됐고 바로 등에 주사침을 삽입해 500㏄의 물을 제거하는 시술을 받았다. 알고 보니 폐질환의 원인이 전립선 항암제의 부작용이었다. 폐수종 치료를 마친 뒤 암이 재발한 것이 확인돼 곧바로 항암 요법을 시작했고, 두 달 후 암세포가 사라졌다. 지금은 흔적만 있는 상태이다. 폐를 치료하는 동안 전립선암 경구항암제는 중단했었는데 11.5까지 올랐던 전립선 PSA 수치도 0.017까지 떨어져 암의 위험이 완전히 사라지는 기적을 체험했다. 의료진도 설명하기 어려운 치유의 역사가 계속해서 일어났고, 교회 성도들의 중보기도가 얼마나 큰 능력이 있는지 몸소 체험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린다. 정리=이미나 기자
  • 2025.09.12 / 이미나 기자

    박희자 권사(영등포대교구) - 최고의 전도는 복음을 삶으로 드러내는 것
  • 8남매와 손주들까지 모두 교회 나와 봉사 나는 1981년 이웃 권사님의 전도로 처음 교회에 나와 성령의 임재를 체험했고 그때부터 오직 주님만 의지하며 살기로 마음을 정했다. 남편은 1995년에 장로로 장립을 받았다. 나부터 믿음으로 잘 살아야 복음의 영향력이 있다는 생각으로 남편을 존중하고 사랑으로 섬겼더니 남편의 마음이 변화되어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이후 우리는 함께 교구 사역에 헌신하며 자녀들도 믿음 안에서 잘 자라날 수 있었다. 2021년 남편은 천국에 갔지만 하나님께 순종하며 사랑을 실천했던 남편의 삶이 가족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나는 8남매 중 장녀로서 가족들에게 한 번도 믿음을 강요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은혜로 한 가정 한 가정 믿음 위에 세워 주셔서 가족 모두가 구원받는 기적을 허락하셨다. 가족들은 우리 교회 곳곳에서 봉사하며 귀하게 쓰임 받고 있다. 특히 유교 사상이 강하셨던 아버지가 90세 되던 해 증손주들의 기도를 통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하시다가 천국가신 것은 놀라운 은혜였다. 여름이면 삼척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찾아가 30명이 넘는 대가족이 그곳 교회에서 봉사를 하는데 그 모습은 단기선교 현장을 방불케 하며 교회와 목사님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식구가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물론 내 삶에도 어려움은 있었다. 남편의 사업 실패, 딸의 난소 혹 진단 등 힘든 순간들이 찾아왔지만 나는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갔다. 말씀에 비추어 살았기에 고난은 오히려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는 기회가 됐다. 특히 딸이 고등학생 시절 난소에 혹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100일 동안 기도한 끝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기적을 체험했다. 지금 딸은 결혼하여 두 자녀의 엄마가 되었고 유학 경험이 없음에도 국립대 교수로 세워지는 은혜를 입었다. 나는 1990년대 쁄라찬양대에서 14년간 봉사하며 조용기 목사님의 해외 성회에도 함께했다. 지금은 권사찬양대에서 봉사하며 늘 찬양 가운데 은혜를 누리고 있다. 조용기 목사님의 첫 몽골 성회에 이어 21년 만에 이영훈 담임목사님의 몽골 성회에 참석했을 때, 성도들이 믿음 안에 단단히 세워진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곳에서 찬양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며 가슴 벅찬 은혜를 누렸다. 찬양으로 봉사하며 주님께 영광 돌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나는 선교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최근에는 아프리카 가나에 교회를 세우는 일에 작은 정성을 보탰다. 이 일을 통해 좋으신 하나님이 널리 전파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앞으로도 내 남은 생애가 복음의 통로로 쓰임받기를 기도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정리=김주영 기자
  • 2025.09.05 / 김주영 기자

    정재관 집사(서대문대교구) - 신경 손상 영구장애 위험 기도로 극복
  • 지난 3월 25일 횡단보도를 빨리 건너기 위해 서두르던 중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 가던 중이었기 때문에 넘어질 때 자세가 좋지 않았다. 쓰러지면서 다친 오른쪽 어깨에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일단 가려던 병원으로 갔더니 엑스레이 촬영 후 오른쪽 어깨가 탈구되어 응급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재활의학과 의사의 말을 듣고 급하게 수술이 가능한 큰 병원으로 옮겼다. 병원에서 마취를 하고 어깨를 맞췄다. 하지만 넘어지면서 신경이 손상되어 오른쪽 팔에 힘이 빠지고 손끝까지 마비가 돼 손가락을 펼 수가 없었다. 병원에서는 이 이상의 치료는 해줄 게 없다며 진통제만 처방해 줄 뿐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보조기구를 하고 아내와 함께 틈나는 대로 새벽기도회에 나가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교구에도 중보기도를 요청했다. 토요일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회에 참석하면 서대문대교구장님과 교구장님이 따뜻한 위로와 사랑으로 기도해 주셨다. 당시 나는 30분이면 된다는 신경근전도검사를 1시간 반 넘게 받았지만 전기 자극을 아무리 줘도 나타나는 게 없었다. 의사는 다시 신경이 돌아오려면 인내를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속히 치유해 주실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기도했다. 자꾸 오그라지는 손가락을 하나하나 당기고 멍이 들 정도로 왼손으로 열심히 주물렀다. 보름 후부터 아주 미세하게 회복되는 느낌이 들더니 점점 나아져 45일 정도 됐을 때 손이 펴졌고 지금은 예전처럼 정상 생활이 가능하다. 이후 맨 처음에 나의 상태를 확인했던 의사를 만났는데 나를 보자마자 손을 들어보라며 확인한 후 영구장애가 될 거라고 예상했는데 정상으로 돌아온 것에 놀라워했다. 나는 손가락을 당기면서 기도했더니 이렇게 좋아졌다고 말씀을 드렸다. 의사는 그렇게 해서 좋아질거면 안 나을 환자가 하나도 없을 거라며 기적이라고 말했다. 나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났지만 오랜 세월 주일 예배만 참석하는 선데이 크리스천이었다. 이번에 하나님의 치료하심을 경험하고 성경 말씀을 매일 읽기 시작했다. 어머니께서 생전에 눈 밝을 때 성경 많이 읽으라고 하셨던 말씀을 이제야 깨닫는다. 예전에는 아내 방현숙 권사가 금요성령대망회에 같이 가서 기도하자고 했을 땐 기도 시간이 너무 길고 5분만 기도해도 더 기도할 게 없어 금요성령대망회에 참석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금요성령대망회 통성기도 시간이 너무나 짧고 빨리 지나간다. 평생 나를 위해 기도하신 아버지 정성한 원로장로님의 사랑도 깊이 느끼고 있다. 앞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며 주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 되길 소망한다. 정리=복순희 기자
  • 2025.08.29 / 복순희 기자

    이경희 집사(마포1대교구) - 고난 속에서 피어난 믿음의 회복과 축복의 기적
  • 결혼 후 첫 딸을 낳았지만 남편이 불교 집안의 장남이자 장손이라는 이유로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부담이 나에게 있었다. 그러나 네 번의 유산으로 내 몸과 마음은 지쳐갔고 나는 깊은 상처를 안게 됐다. 결혼 후 나를 따라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남편은 “외동딸 하나면 충분하다”며 상처받은 내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그렇게 믿음 안에서 정성껏 키운 딸이 장성해 결혼을 하고 자녀를 잉태하게 되었다. 감사한 마음도 잠시, 딸이 고혈압으로 고위험 산모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처음엔 단순한 호르몬 변화로 생각했지만 개인병원 의사는 대학병원을 권하며 소견서를 써줬다. 딸은 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로 옮긴 후 임신 34주 차인 지난 6월 22일 혈압 상승으로 고위험 분만실에 입원하게 되었다. 입원 수속을 밟으며 너무나 불안했던 그 순간, 지난해 12월 31일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서 드렸던 송구영신 예배가 떠올랐다. 그 자리에서 딸과 내가 똑같이 받았던 말씀 카드가 가슴 깊이 떠올랐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그 말씀에 힘입어 마포1대교구 8교구장 문명철 목사님께 중보기도를 부탁드렸고 교구 식구들이 딸과 태중의 아이를 위해 기도해주셨다. 기도는 놀라운 기적을 일으켰다. 다음 날 회진을 온 의사는 “이런 혈압 변화는 기적”이라며 상태가 안정되어 퇴원 후 출산 예정일에 분만해도 될 것 같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또 다른 감사는 딸과 사위의 신앙 회복이었다. 어릴 적 교회에서 찬양과 합주로 봉사했던 딸은 성장하면서 점점 신앙에서 멀어졌고, 믿음이 없는 사위와 결혼한 후로는 예배도 소홀했다. 남편과 나는 그들을 위해 오랫동안 기도해왔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딸과 사위가 기도의 능력과 공동체의 사랑을 직접 체험하게 돼 주님께로 나아오는 기적이 일어났다. 딸은 37주까지 건강하게 태중의 아이를 품을 수 있었고,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7월 16일 수술로 건강한 아기를 출산했다. 교구의 중보기도는 출산 후까지 계속 이어졌고 우리는 손녀 한솔이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더 큰 기쁨은 새신자 교육을 마친 사위가 최근 대교구 침례 축제 때 침례를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믿음의 회복, 가정의 회복이라는 큰 축복을 허락해주셨다. 이제 우리 가족은 모두 함께 예배드리는 꿈을 이뤄가고 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우리 가정을 향한 크신 사랑임을 고백한다. 따뜻한 위로와 기도로 함께해 준 신앙 공동체에 감사드리며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린다. 정리=오정선 기자
  • 2025.08.22 / 오정선 기자

    류석례 전도사(여의도순복음청라교회) - 유방암과 남편 간암 치유해주신 하나님께 감사
  •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임을 확신한다. 나는 신앙생활하며 참 많은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새벽 예배를 사모하며 기도하는 삶을 살아왔다. 올해도 야고보서 2장 22절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는 말씀을 품고 기도하던 중, 또 한 번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다. 지난 4월 남편이 기도 중에 왼쪽 가슴 통증을 호소해 병원을 찾았다. 검사결과 갈비뼈에 이상이 있다는 소견이 나왔고 정밀검사 끝에 다발 골수종이라는 혈액 골수암을 진단받았다. 암수치가 높아 항암치료를 시작해야한다고 했지만 치료로 인한 수치 변화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갑작스런 진단에 우리 부부는 당황스러웠지만 곧장 담임 목사님과 성도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40일 동안 작정 중보기도를 했다. 그리고 6월부터 항암치료를 시작했는데 남편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수치가 급격하게 내려가 0에 가깝게 떨어진 것이다. 지금까지 총 3번의 검사와 4번의 항암치료를 했는데 담당 의사조차 회복속도에 놀라며 남은 치료는 강도를 낮춰 진행하자고 했다. 우리 부부는 지금도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치료해 주실 것을 믿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혼자 거동하기 힘들었던 남편은 이제 병원도 혼자 다니고 운동도 다니며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이 모든 영광 야훼 라파, 치료의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할렐루야! 젊어서부터 몸이 허약했던 남편은 5년 전 간암을 진단받았다. 나는 문제가 생길 때면 3일 동안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서 금식 기도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놀라운 방법으로 응답해주셨다. 당시에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고 하나님의 은혜로 완치됐다. 하나님이 이번에도 믿음으로 기도할 때 골수암 수치가 정상범위로 내려오게 하신 줄 믿는다. 2007년 나 또한 유방암 진단을 받고 기도에 힘써 16번의 항암치료 끝에 완치되는 기적을 체험했다. 나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로마서 8장 28절 말씀을 받고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길 다짐하며 기도했다. 이 밖에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신 수많은 문제와 기도 응답의 역사가 내 삶에 가득하다. 늘 기도 응답의 은혜와 기쁨이 내 마음 가운데 있기에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오히려 기대하는 마음으로 나아갔다. 나는 2017년부터 여의도순복음청라교회를 섬기고 있다. 새가족에게 하나님께서 내 삶과 우리 가족에게 행하신 놀라운 기적을 나누며 이들이 신앙 안에서 잘 자라도록 양육하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자 응답이다. 기도할 때 성령님이 역사하신다. 모든 사람이 우리의 형편을 아시는 하나님께 간구해 응답받는 기적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고 누리게 되길 소망한다. 정리=금지환 기자
  • 2025.08.15 / 금지환 기자

    성미숙 권사(은평대교구) - 기도는 응답되고, 말씀은 삶을 바꾼다
  • 보혈 찬송, 기도로 동생 조울증 치유 성경 5독하며 은혜 충만 올해 3독 목표 나는 지난해 은평대교구에서 실시한 ‘성경 낭독 레이스’에 참여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깊이 체험했다. 이 프로그램은 성경을 읽으며 녹음하는 통독 프로젝트였다. 손주를 돌보느라 시간이 부족했던 나는 처음엔 망설였다. 그러나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한 구절씩 읽고 녹음하다 보니 은혜를 깊이 경험하게 됐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성경을 읽은 결과 1년에 한 번도 완독하지 못했던 성경을 3개월 만에 완독했다. 이후 2독은 80일, 3독은 70일, 4독은 46일, 5독은 45일 만에 마쳤다. 자다가도 일어나 성경 읽고 밥을 먹으면서도 설거지를 하면서도 성경을 읽었다. 때로는 길을 걷다 멈춰 서서 성경을 읽은 적도 있었다. 말씀을 읽으면서 나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느꼈다. 그 말씀은 내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었다. 올해는 3독을 목표로 세우고 필사도 함께 하고 있다. 나는 37년간 구역장과 지역장으로 섬기며 교구 식구들의 기도 제목을 위해 늘 중보기도를 해왔다. 수요예배, 금요성령대망회, 새벽예배 등 공예배의 자리에 참석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크신 은혜를 부어주셨다. 특히 내 막내 동생의 치유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깊이 느끼게 됐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온 동생은 어머니가 치매를 앓고 돌아가시면서 조울증을 앓게 됐다. 정신적으로 크게 무너진 동생은 신앙을 멀리하고 컴퓨터 게임만 하며 지냈다. 횡설수설하며 차에서 뛰어내리려고 하고 환청에 시달렸다.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나는 눈물로 기도하며 하나님께 매달렸다. 나는 동생에게 주일예배, 수요예배 등 예배 영상을 보내주며 예배를 드리게 했다. 동생은 특히 이영훈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많은 은혜를 받았다. 나는 매일 보혈 찬송을 부르며 동생을 위해 기도했다. 동생에게도 보혈 찬양을 틀어놓고 찬송하며 기도하라고 알려주었다. 감사하게도 동생은 내 말에 순종해 보혈 찬송을 듣고 따라 부르며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5년간 앓았던 조울증은 3년 전 깨끗이 치유됐다. 성령을 체험한 동생은 이제 매일 40분씩 기도하며 나를 위해 중보기도해주는 기도의 동역자가 됐다. 남편 역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했다. 남편은 건축 일을 하는데 일을 할 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고 있다. 어느 날 고속도로 야간 작업의 차량 안내를 하던 중이었다. 안전 고깔이 잘못된 위치에 놓여 있던 것을 모르고 남편은 경광봉으로 차량을 유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빠르게 달려오던 덤프트럭과 승용차가 멈추지 못하고 그대로 돌진했다. 남편이 서 있던 쪽으로 차량이 향했지만 순간적으로 피하면서 사고를 면할 수 있었다. 두 차량은 폐차될 정도로 크게 파손됐지만 인명 피해는 없었다. 이외에도 남편은 두 번의 큰 사고를 더 경험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셨다. 하나님은 늘 우리의 힘이 되시고 보호해주시는 분이심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하나님은 고난 속에서 나와 함께하셨고 회복의 길로 인도하셨다. 나는 앞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감사하며 기도로 살아갈 것이다. 정리=이미나 기자
  • 2025.08.08 / 이미나 기자

    강순자 권사(마포1대교구) - 가정예배 드릴 때 회복의 은혜 나타나
  • 남편 하반신 마비 올 위험 넘기고 건강 되찾아 2019년 11월 2일 남편 김공열 원로2장로가 오전 11시쯤 은행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날이 쌀쌀해 가지 말라고 만류했지만 남편은 꼭 다녀와야 한다며 외출했다. 그런데 집을 나간 지 20분쯤 지나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편이 길에서 넘어져 대학병원에 있다는 소식이었다. 처음엔 단순히 넘어진 줄만 알고 크게 걱정하지 않았는데 막상 병원에 도착해 남편의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길을 지나던 사람의 신고로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온 남편은 휠체어에 앉아 몸을 움직이지 못한 채 고정되어 있었다. 기억도 흐릿해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고 말조차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다. 얼굴에 묻은 피를 닦고 병원복으로 갈아입은 뒤 남편은 검사를 받으러 들어갔다. 나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간절히 기도했고 자녀들에게도 연락해 함께 기도해 달라고 전했다. 검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하반신 마비가 올 수 있다는 소견이었다. 눈앞이 아득해졌다. 자녀들이 병원으로 찾아왔지만 코로나로 인해 병실에는 한 번에 한 명밖에 들어갈 수 없어 작은아들과 교대하며 나는 큰딸, 큰아들과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자녀들과 함께 곧장 가정예배를 드렸다. 우리 가정은 1974년 큰딸이 초등학생이던 때부터 지금까지 가정예배를 쉬지 않고 드려왔다. 내가 ‘20일 작정 가정예배’를 제안했을 때 남편은 “작정할 것 없이 천국 가는 날까지 가정예배를 드리자”고 했다. 그 말이 우리 가정의 신앙을 지키는 든든한 기둥이 됐다. 남편은 내게 귀한 믿음의 동반자다. 특히 큰아들이 군 복무 중이던 시절, 면회 때 아들을 꼭 안고 기도해 주던 남편의 모습은 지금도 내 마음에 깊이 남아 있다. 자녀들을 믿음으로 키우는 일에 남편은 언제나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장성한 자녀들은 모두 믿음 안에서 잘 자라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나는 늘 가정예배와 새벽 예배가 끊어지지 않도록 하나님께 가족의 건강을 구하며 기도해왔다. 다음날 큰아들이 연락을 해왔다. 남편이 의식을 되찾아 병원에서 상황을 또렷이 설명하며 대화를 나누었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신경외과 검사 결과상 분명 수술이 필요한데 손과 발의 움직임이 정상적이고 건강 상태도 좋아 의사들조차 신기해하며 신앙에 대해 묻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남편은 수술하지 않고 3일 만에 퇴원했고, 3주가 지나자 완전히 회복됐다. 할렐루야! 이후 남편은 원로2장로회 회장으로 2년간 주님을 섬기는 귀한 사역도 감당할 수 있었다. 남편의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다시금 가정예배의 소중함과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깨닫게 하심에 감사드린다. “야훼의 지으심을 받고 그가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야훼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라”(시 103:22)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천국 가는 날까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정리=김주영 기자
  • 2025.08.01 / 김주영 기자

    조화자 권사(종로중구대교구) -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 응답하시는 주님 모두에게 전하고 싶어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를 도와 가족 생계를 책임지고 동생 넷을 돌보느라 결혼이 늦었다. 우리 교회 결혼상담소에서 만난 남편과 믿음의 가정을 이룰 것을 서약하며 1989년 결혼을 했다. 당시에는 서른셋이라는 늦은 나이의 결혼인 데다 아이를 고대하는 시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부담이 컸다. 하나님께만 온전히 매달리기 위해 100일 작정기도, 금식기도도 했다. 서른다섯에 드디어 딸을 낳았다. 소중한 아이가 태중에 있을 때 매일 아이를 위해 기도하면서 배에 손을 얹고 아이가 그림을 잘 그리고, 글을 잘 쓰고, 영어도 잘하고, 수학도 잘하게 해달라고 꿈을 하나님께 말했다. 딸이 태어난 뒤 국민일보를 통해 복음이 세상에 전파되기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신문 2부를 신청하면서 “하나님 아버지, 딸이 대학교에 가면 4년 전액 장학금을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어렸을 때부터 매사에 최선을 다했던 딸은 의대에 진학했고 아홉 번의 장학금을 받았다. 나는 딸이 시험을 치를 때마다 교구 식구들에게 시험시간과 과목을 적어드리며 중보기도를 요청했다. 한번은 등록금이 90만원 정도가 부족해 간절히 기도를 했다. 마감일이 임박했는데 권사님 한 분이 전화를 주시며 집 앞으로 오라고 하셨다. 무슨 일인가 하여 그분 댁으로 갔다. 권사님은 대문 앞에서 봉투를 주시면서 “딸 공부시키느라 힘들지”라고 하셨다. 봉투에는 100만원이 들어있었다. 너무나 큰 사랑이었다. 지금 대학병원에서 소화기외과 조교수로 근무 중인 딸은 정형외과 의사인 사위와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의사로서 사명을 다하고 있다. 하나님은 응답하시는 분이다. 우리 집은 지은지 60년 된 한옥인데 어느 날 화장실 지붕에서 비가 줄줄 새는데 당장 돈이 없었다. “하나님 어떻게 하지요. 비가 새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다음에 비가 오는데 지붕에서 비가 더 이상 새지 않았다. 또 한번은 생활비가 없어서 걱정을 잠시 하면서 “하나님 남편과 함께 일할 데 없어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며칠이 지나 함께 일할 곳을 주셨다. 청소 일이었다.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하나님께 감사 또 감사했다. 나는 20년 째 매일 새벽 집 근처에 있는 우리 교회 기도처의 문을 열고 있다. 항상 나라와 민족을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해, 성도들을 위한 중보기도의 끈을 놓지 않았다. 앞으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면서 참 좋으신 하나님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며 살고 싶다. 정리=복순희 기자
  • 2025.07.25 / 오정선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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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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