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변화
김국영 집사(장애인대교구) - 나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사는 사람
  • 장애, 질병의 고난 속에 기도하면 응답받아
    어린 시절 내가 인식하기도 전에 부모님이 이혼을 하셔서 나는 서울 큰아버지댁에서 살았다. 7살 때 알레르기 증상 때문에 보약을 먹었는데 신경마비로 청력을 잃었다. 농아학교에 입학을 했지만 1년만 다녔다. 청각장애인으로 살아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를 안 가겠다니 고려대 영문학과 교수님이신 큰아버지께서 나에게 직접 한글을 가르쳐주셨다. 나는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사촌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19살이 되어 더 이상 신세를 질 수 없다는 생각에 강원도 영월 아버지 집으로 갔다. 하지만 새어머니와의 갈등이 심했고 결국 내가 집을 나와 셋방을 얻어 혼자 생활했다. 친어머니는 돌아가셔서 의지할 곳이 없었다. 혼자 식당 주방일을 하다가 동생과 함께 식당을 열었는데 오빠가 매일 같이 돈을 달라고 행패를 부렸다. 맞서 싸우면서도 속상한 마음을 달래려 술을 마시다 우울증과 간경화, 폐결핵에 걸렸다. 장애만으로도 힘든데 병까지 들었으니 살고 싶지 않아 자살을 여러 번 시도했지만 늘 사람들에게 발견돼 실패했다. 1990년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소주 다섯 병을 마시고 한강다리에서 차도로 뛰어들었다. 또 실패였다. 사고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영등포의 병원에 입원해 누워있으니 매주 ‘행복으로의초대’를 주고 가는 분들이 계셨다. 전도지에는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도 있고 하나님을 만나고 병이 나았다는 사람들의 간증도 있었다. 읽다 보니 눈물이 났다. 나도 새 삶을 살 수 있을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일단 퇴원만 하면 여의도순복음교회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6개월 만에 퇴원을 하고 목발을 짚고 바로 교회로 갔다. 새가족 등록을 하고 새가족교육을 받다가 성령 충만이 임했다. 사람들이 기도 하면서 ‘주여 주여’ 외치는데 내가 술만 마시면 혼자인게 괴로워서 나도 모르게 외치던 소리가 ‘주여 주여’여서 깜짝 놀랐다. 나 같은 죄인을 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성경 말씀에 의지해 술을 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술 냄새만 맡아도 속에서부터 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리고 얼굴에 가득했던 기미도 확 사라졌다. 뿐만 아니라 간경화와 폐결핵도 고침을 받았다. 겉으로 불룩했던 갑상선도 들어갔다. 한번은 식당 일을 하는데 손님이 하도 권해서 술을 한번 마셨다가 전신에 두드러기가 나서 한달 동안 고생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됐다. 하나님을 의지하니 외롭지 않고, 기도하면 삶의 문제도 다 해결됐다. 교회에서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고 함께 응답받으며 삶이 단단해졌다. 항상 평안함을 주시고 기도에 응답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좋으신 하나님만 전하며 살아가고 싶다. 정리=복순희 기자
  • 2024.05.24 / 복순희 기자

    김태선 안수집사(마포1대교구) - 고난의 때에도 우리를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
  • 중보기도의 힘으로 아내 살아나
    20년간 하던 목욕탕 사업을 화재와 코로나로 결국 접어야 했다. 충격에 일 개월간 혼수상태에 있었고 다행히 병원 치료 후 회복돼 집으로 돌아왔더니 이번에는 아내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아내가 고관절이 부러지면서 많이 다쳐 병원에서 MRI(자기공명영상)를 촬영했더니 척추 뼈가 주저앉았고 두 군데 골절이 생겨 수술을 받아야 했다. 수술을 마친 의사는 종양 검사가 필요할 것 같아 세포를 떼어내 조직 검사를 했는데, 좀 더 큰 병원에서 재검사를 받는 것이 좋겠다고 권했다. 아내를 강북삼성병원으로 옮겨 골수 검사를 진행한 결과 골다공증이 심하고 골수암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아내는 지난해 8월 수술을 받은 후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치료를 받아왔다. 몸이 약해진 아내는 약으로 인한 부작용이 생기면서 항암 치료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신장 이상으로 지난해 10월에는 투석까지 받았다. 그러던 중 올해 2월, 밤에 자다가 혼수상태가 되면서 119 구급차에 실려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조금 호전을 보여 중환자실로 이동해 45일간 입원 치료를 받았는데 그동안 고비를 세 번 정도 넘겼다. 의사는 “그날 병원에 오지 않았더라면 아내 분에게 큰일이 일어났을 것”이라며 정성껏 돌봐주셨다. 아내가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동안 나는 ‘고생만 시킨 아내가 병으로 고통 받는 것까지 볼 수 없으니 하나님 제발 도와주세요’라며 매일 매일 기도로 하루를 이겨냈다. 담당 교구장인 이석민 목사님은 매일 병원에 오다시피 하시며 기도해주셨고, 목사님들과 교구 장로님과 권사님, 지구역장님들도 아내를 위해 ‘치료의 하나님’을 불러가며 중보기도에 나섰다. 대교구 기도원 성령대망회 때도, 남성연합예배 때도 아내의 회복은 기도 제목이었다. 그 기도 덕분에 아내는 살았고 지금은 퇴원해 비록 문밖출입이 자유롭지 못하지만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며 살려주신 하나님께 매순간 감사드리고 있다. 아내 병간호로 일을 할 수 없게 된 나는 주변의 도움으로 기초생활 수급 혜택을 얻게 돼 생활비와 병원비를 지원받고 있다.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지 모른다. 또한 우리 교회에서도 어려운 이웃을 돕는 구제금 도움을 받게 돼 정말 감사했다. 나는 아내에게 “비록 모든 재산을 잃고 어려움을 당했으나 범사에 감사하자. 주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반드시 기쁨을 주실 것이다”라고 말하며 매일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다. 지면을 통해 우리를 위해 기도를 아끼지 않으신 많은 분들, 특히 우리를 교회로 인도해 주시고 지금까지 돌보시며 기도해주시는 백무의 원로장로님께 마음 깊이 감사를 드린다. 이영훈 목사님은 항상 설교 중에 “고난은 축복의 전주곡”이라고 하셨다. 나에게 닥친 고난을 원망하기 보단 우리의 믿음을 더욱 단단하게 해주실 주님을 바라보며 아내와 매일 감사의 하루를 보내겠다. 정리=오정선 기자
  • 2024.05.17 / 오정선 기자

    김진국 안수집사(영등포대교구) - 힘들고 어려운 순간마다 기도 들어주신 하나님
  • 아내 교통사고로 허리와 손목 골절, 중보기도로 치유돼
    우여곡절 많았던 인생을 굽어 살피시고 평탄하고 안정적인 은혜의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 올려 드린다. 나는 25년 전 아내와 함께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삶의 전환점을 맞았다. 교회를 다니기 전에는 해보고 싶은 것이 많아 사업을 비롯한 다양한 일에 도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계속된 좌절로 낙심에 빠졌을 때 교회에 나가 기도했고 그때마다 알 수 없는 평안함이 내게 몰려오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게 됐다.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며 신앙생활을 이어가던 중 내게 큰 고난이 찾아왔다. 2000년 즈음, 평소 자전거로 출퇴근했던 아내가 출근길에 차와 사고가 난 것이다. 아내는 사고로 허리와 손목뼈가 골절됐다. 미용사였던 아내에게 손목뼈 골절은 치명적이었다. 또 신체의 중요한 신경이 몰려있는 허리뼈 골절로 병원에서는 수술 후에도 후유증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하나님께 아내의 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영등포대교구와 내가 봉사하고 있는 전도새가족팀에도 중보기도를 요청해 함께 아내가 입원한 3개월 동안 매일 같이 기도했다. 성도들의 간절한 중보기도는 어둠의 긴 터널을 인내하고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아내는 기도에 힘입어 완치됐고 현재도 후유증 없이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 올려드린다. 돌이켜보면 삶의 모든 순간마다 하나님이 역사하셨다. 코로나 기간, 수많은 건축회사가 원자재 가격 상승과 배송 지연으로 부도를 맞아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었을 때 내가 소속된 회사는 공사를 계속 이어갈 수 있게 해주셨다. 건설 현장에서 안전설비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나는 크고 작은 인명사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데 하나님께서 늘 지켜주셔서 지금까지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일을 하고 있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이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있다. 세상만사 걱정할 것이 많다는 직장동료들의 말을 들을 때 하나님을 믿으면 마음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안과 은혜가 임한다며 내가 직접 체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전한다. 때때로 복음을 거부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담대히 복음을 전하고 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포기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면 분명 하나님께서 그 열매를 맺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다. 우리의 육신의 아버지처럼 가까이 있는 분이다. 나는 매주일 전도새가족팀에서 교회 처음 오시는 분들을 위해 사랑으로 봉사하고 있다. 교회에 나오면 삶에 활력도 생기고 감사와 기쁨이 생긴다는 것을 새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어 21년째 봉사를 하고 있다. 인생의 남은 여정 다하는 그날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정리=금지환 기자
  • 2024.05.10 / 금지환 기자

    여애연 권사(종로중구대교구) - “고난이 오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 아밀로이드증, 혈액암 이기고 새 생명 얻어
    나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많은 은혜를 체험했다. 인생을 살아가며 고난도 있었지만 고난은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는 시간이자 축복의 통로였다. 경찰 공무원이었던 남편 송원규 안수집사가 2022년 4월 코로나19 예방접종 2차를 마치고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단백뇨가 나왔다. 신장 조직검사와 전립선 검사를 받아보니 아밀로이드증이었다. 아밀로이드증은 아밀로이드라고 불리는 비정상적인 단백질이 여러 장기나 조직에 축적되어 발생하는 희귀병이다. 신장에 아밀로이드가 축적돼 단백뇨가 나오는 상황이었다. 종합병원으로 옮겨 정밀검사를 받고 아밀로이드에 대해 연구하는 신장내과 의사를 만났는데 신장내과에서는 약이 없다며 혈액암 전문 교수에게 진료를 받으라고 했다. 다시 1주일 입원해 검사를 받았고 결과는 다발성 골수종 혈액암이었다. 아밀로이드증과 혈액암 이 두 가지 병으로 인해 치료는 더 어렵고 까다로워졌다. 절대 절망의 상황에서 우리 가족은 하나님만 바라봤다. 나와 남편은 하나님께서 살아 역사하시고 우리에게 보여주실 기적을 기대하며 매일 1시간씩 기도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담당 교수도 혈액종양 연구 쪽으로 유명한 분이셨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생각에 마음이 평안했다. 하나님이 우리 보호자가 되시고 우리는 예비해놓으신 길을 가는 것임을 깨달으며 감사가 넘쳐났다. 남편의 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새벽기도를 드리며 전도에도 힘을 쏟았다. 항암치료를 시작하는 상태에서 전도까지 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새신자에게 오히려 하나님이 치료하시고 역사하시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4개월간 항암치료를 한 남편은 자가 골수 이식을 앞두고 조혈모세포를 채집하러 들어갔다. 채집 첫 날 필요한 양의 50%도 안 나왔다. 덜컥 겁이 났지만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던 중 잠이 들었는데 꿈을 꿨다. 천막에 불이 활활 붙었는데 타지는 않고 있었다. 안에 들어가 가득 쌓여있는 짐을 치우니 커다란 알 안에 조혈모세포 같은 엑기스가 가득 담겨있었다. 나는 ‘예수의 피’를 외치며 잠에서 깨어났다.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켜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이튿날 다시 조혈모세포를 채집했고 마침 무균실 이식동에 자리가 났다. 원래는 채집하고 퇴원 후 집에 있다가 무균실에 자리가 나면 이식동에 들어가야 하는데 일사천리로 이식까지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할렐루야! 10월 8일 남편은 주님의 은혜로 골수 이식까지 잘 마칠 수 있었다. 항암제를 맞아 면역기능이 다 떨어져 힘들기도 했지만 하나님이 때마다 힘을 주셔서 잘 이겨낼 수 있었다. 이식은 성공적으로 잘 됐고 1년 반이 지난 지금 체력과 면역 수치가 좋아진 것은 물론 건강을 되찾아 정상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예수님의 보혈로 새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약할 때 강함 되시고 내가 힘들 때 나의 손을 잡아주셨다. 좋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린다. 정리=이미나 기자
  • 2024.05.03 / 이미나 기자

    강지희 성도(대학청년국) - 작은 기도에도 응답 해주신 주님께 감사 
  •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올 만큼 허리가 아팠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공부에 집중해야 하는 때에 앉아있기도 힘든 내 상황이 너무 막막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모태신앙으로 자라온 나는 좋으신 하나님께서 나를 치유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2008년 5월 어머니와 함께 주일 4부 예배를 드리던 중 조용기 목사님의 말씀에 크게 은혜를 받고 고침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나는 신유기도 시간에 허리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했다. 조용기 목사님이 “하나님께서 허리가 아픈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라고 선포하셨을 때 내 기도가 응답됐다는 확신이 들어 “아멘”을 외쳤다. 평소에 눈물이 없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고 따뜻한 온기가 허리를 감쌌다. 정말 나았는지 궁금해 앉은 자리에서 왼쪽 오른쪽으로 움직여 봤는데 통증이 없었다. 이후 지금까지도 허리가 아픈 적이 없다. 나는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경험했다. 초등학생 때 외할머니댁으로 가는 길에 큰 트럭이 나를 향해 빠르게 달려와 피할 새도 없이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다. 오른쪽 귀 뒷부분을 40바늘이 넘게 꿰매야 할 만큼 큰 충돌이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또 한번은 고등학생 때 전교생에게 하나님을 믿으면 복 받는다는 사실을 전할 기회도 있었다. 미션스쿨을 다니고 있었는데 고2 때에 스승의 날 선생님께 선물을 하고 싶었던 나는 무엇을 할까 찾아보던 중 한 쇼핑몰에서 진행한 이벤트를 발견했다. 경품 1등 당첨자에게는 전교생에게 치킨 200마리, 학급에 상품권, 담임 선생님께 공기청정기를 주는 행사였다. ‘나는 전교생에게 치킨을 먹이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당첨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응모했다. 그런데 스승의 날 당일에 쇼핑몰 관계자들이 이벤트 1등으로 당첨됐다며 학교로 찾아왔다. 그날 전교생이 치킨 200마리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교목실 목사님은 “너에게는 오병이어의 달란트가 있다”며 함께 기뻐해 주셨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나를 지켜주시고 내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 지금까지 함께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 올해 신년축복 열두광주리 새벽기도회에 참여하기로 작정했다. 교회와 집, 직장이 모두 정반대에 위치해 새벽에 교회까지 오기가 힘들었다. 차가 없던 나는 새벽기도를 다닐 수 있도록 차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정말 놀랍게도 새벽기도회를 앞두고 내 차를 갖게 됐다. 기쁜 마음으로 날마다 새벽 2시 30분에 일어나 새벽기도회에 참석했다. 하루 이틀 지날수록 몸이 피곤해졌지만 완주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니 하나님께서는 새벽마다 나를 깨워주셨다. 새벽기도회 기간에 이런 과정들을 체험하며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다. 나는 금요일마다 가스펠선교회 금요성령대망회에 참석하고 있다. 지금은 가스펠선교회 새가족부에서 봉사를 하는데 내가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어 감사하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믿음의 조력자가 되고 싶다. 정리=박찬웅 기자
  • 2024.04.26 / 박찬웅 기자

    강인수 원로장로(서대문대교구) - 성령 충만 후 건강과 사업의 문제 해결 받아
  • 하나님 제1순위의 삶, 봉사로 일군 인생 후반기
    교정복지 선교로 영혼 사랑 실천, 미래세대 위해 기도 나는 37살이던 1980년 우리 교회에 왔다. 당시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술을 많이 마셨기에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회사 부장님의 사모가 솔깃한 이야기를 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 가면 하나님이 모든 병을 다 고쳐주신다고 말했다. 교회에 가니 구름떼 같은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자연스레 아내와 가족들 모두 교회를 다니게 됐다. 교회는 다녔지만 술을 쉽게 끊을 수는 없었다. 그사이 나는 사업에 대한 꿈을 품고 미국에 갔다. 맨땅에 헤딩하듯 1년간 고생하며 사업 아이템을 찾고 한국에 돌아왔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게다가 마흔이 넘자 계속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는데 간에 피가 돌지 않는 심각한 상태라고 했다. 나는 충격을 받고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으로 올라갔다. 지금도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1984년 11월 29일 김상호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다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고 외치셨다. 순간 머리에서부터 불이 내린 것처럼 뜨거웠다. 나는 회개하며 앞으로의 삶은 주님께 다 맡기고 주님을 위해서 살겠다고 약속했다. 그날부터 술을 끊고 12월 첫 주일 남선교회 봉사실을 찾아가 13년 동안 봉사를 했다. 1997년 장로 장립을 받은 해 교회학교로 발령이 났다. 첫해에는 중등 3부 학생들의 담임이 되어 7명을 가르쳤고 교회학교에서 총 11년, 이후 장애인대교구에서 5년 봉사했다. 또 교회에서 어려운 분들을 돕는 구제분과위원회에서 활동하고 교회성장선교회에서도 8년간 전도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던 중 순복음선교연합회 산하 교정복지선교회에 도움이 필요하다는 요청을 듣고 교정복지에 대한 지식은 없지만 일단 선교회로 갔다. 교정복지선교회는 서울과 수도권인 안양, 화성, 여주뿐만 아니라 천안, 홍성, 청송 등 전국에 있는 교정기관을 방문해 재소자들을 만나 함께 예배를 드리고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 한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선교회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변함없이 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겠다는 회원들의 사랑에 항상 감동받고 있다. 현장에서 재소자들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뿐이다. 이 귀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변화된 삶을 살기를 기도한다. 현장에서 특히 청소년, 청년들을 만날 때면 정말 마음이 아프다. 나는 그들에게 늦지 않았다고 예수님을 만나면 새 삶을 살 기회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을 최우선 1순위로 두고 살았더니 사업과 건강의 문제도 때에 따라 알맞게 복을 받았다. 삶의 위기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나보다 믿음이 더 좋은 아내와 잘 자라 준 자녀들도 나의 신앙생활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어 항상 감사하다. 앞으로 미래 세대에 더욱 관심을 갖고 청소년 교정과 범죄 예방을 위한 사역을 펼쳐나가고 싶다. 정리=복순희 기자
  • 2024.04.19 / 복순희 기자

    주영숙 권사(순복음성동교회) -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 작년 11월 2일 남편과 함께 충주에 있는 시부모님을 방문했다. 충주 시내에 가서 남편이 새로 출시한 스마트폰을 어머니에게 사드리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평소처럼 조심스럽게 운전한 남편은 1차선 시골길에서 3차선이 있는 넓은 길로 좌회전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10미터 앞에 운전석을 향해 달려오는 덤프트럭이 보였다. 몇 초가 지나지 않아 덤프트럭은 우리가 타고 있는 승용차와 충돌하고 우리 차를 밀고 가다 멈추었다. 나는 정신을 잠시 잃었다가 깨어났다. 남편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신음하였고, 시어머니는 살려달라고 소리치셨다. 나도 통증이 밀려오며 무엇인가 하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찌그러진 차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119 구급대가 도착했다. 구급 대원들은 구겨져 있는 차 안에서 우리 식구들을 꺼내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부상이 심각한 남편은 헬기로 원주 연세 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나와 시어머니는 충주 건대 병원으로 이송됐다. 남편은 머리뼈가 깨지면서 뇌출혈이 있었고, 귀에서 피가 나와 의사는 살 가망이 없으니 약물로 2~3시간을 버티게 해주겠다고 딸에게 말하며 가족을 불러오라고 통보했다. 나는 왼쪽 쇄골 뼈 골절과 두통이 심했지만 다른 가족에 비해 경미한 부상이었다. 시어머니는 다리와 어깨 골절, 약간의 뇌출혈이 있어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 남편과 시어머니의 목숨이 위태한 상황이었다. 나와 아들, 딸은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보고 울며 간절히 기도했다. 수술을 받은 남편은 혈압은 조금 안정됐지만 머리뼈는 닫지 못하고 나왔다. 여러 검사를 하고 다시 수술을 해야 할 상황에 있었다. 우리 가족의 교통사고 소식을 전해 들은 순복음성동교회 담임 정홍은 목사님은 11월 3일 금요 기도회에서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반드시 기적은 일어나니 우리 함께 기도하자”라고 말씀하시고 성도들과 중보기도 해주셨다. 토요일,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하나는 기적적으로 남편이 눈을 떴고, 다른 하나는 시어머니의 소천 소식이었다. 시어머니 장례 일정을 마쳤을 때 신기하게도 남편은 본인이 누구인지 인식하였고, 의사는 남편의 뇌가 빠르게 회복 중이라는 기적적인 말을 했다. 장례 후 내가 속한 성수교구는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일주일 동안 저녁기도회를 통해 나와 남편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남편은 사고 난 지 열흘 만에 일반 병실로 옮겼고, 현재 양평 국립교통재활병원에서 재활 치료 중이다. 불신자인 남편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다. 나는 우리 가족을 위로해주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남편이 치유 받았음을 믿는다. 또 시댁을 둘러싸고 있는 뿌리 깊은 우상이 떠나가고 영원히 주님만 섬기는 가정으로 거듭날 것을 믿는다. 살아계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찬양한다. 할렐루야! 정리=오정선 기자
  • 2024.04.12 / 오정선 기자

    조남현 원로장로(동작대교구) - 야훼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 간경화, 위암, 대장암 치유 받아
    평생 전도하며 구원의 기쁨 전하고파 30대 후반에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와서 지금 82세까지 건강히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으니 그 은혜가 참으로 놀랍고 감사하다. 장로전도단에서 20년을 봉사하며 매주 미자립교회를 찾아가 전도하고 있는데 이 또한 주님의 은혜다. 하나님의 사랑과 기적을 체험했으니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부터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깊이 체험했다. 39세 때 복수가 차고 얼굴이 까매져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병원에서 간경화 진단을 받았다. 수술이 어려운 상황이라 3개월 동안 입원하고 3개월을 더 통원 치료 했지만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숨이 가쁘고 눈은 노랗고 복수는 계속 차올랐다. 몇 걸음만 걸어도 힘들어 누워야 했다. 나는 믿음이 좋았던 친구의 권유를 받아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 올라가 1주일 금식을 작정했다. 성령의 능력으로 힘을 얻어 열흘을 채워 금식하고 기도원을 내려왔다. 병원에서 6개월 밖에 못산다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내게 기적이 일어났다. 복수가 빠지고 안색이 정상으로 돌아오며 치료가 불가했던 내 몸이 건강해졌다. 나는 이 사실이 너무도 놀라워 당시 병원에서 받은 약봉투를 아직까지 보관하고 있다. 기적을 체험하니 다른 사람들도 좋으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 12인승 봉고차를 사서 교구 식구들을 태워 매일 철야예배를 다녔다. 남선교회에서 봉사하며 많은 은혜를 체험했고 순복음실업인선교연합회 중국남방선교회, 중국북방선교회 봉사를 하고 미용선교회장과 동작대교구 지구장 등을 맡아 헌신했다. 장로전도단에서 전도하며 영혼 구원에 대한 사명도 갖게 됐다. 그러던 중 내게 또 한 번의 고난이 찾아왔고 하나님은 내게 또 다시 기적을 보여주셨다. 3년 전 건강검진을 받다가 위암과 대장암이 발견됐다. 79세의 나이에 큰 수술을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하지만 야훼 라파, 치료의 하나님이 함께 해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며 수술실에 들어갔다. 복강경으로 하려고 했지만 종양이 많이 퍼져 개복수술로 진행됐다. 위와 장을 20㎝씩 잘라내는 큰 수술이었다. 아내 김야례 권사는 나를 위해 눈물로 기도했다. 가족들은 물론 동작4교구 성도들과 장로전도단 장로들이 나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주었다. 내심 걱정이 됐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능치 못할 일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건강해진 내 모습을 바라보고 기도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고 영혼 구원에 더욱 힘쓰며 주님의 귀한 복음을 다시 전할 수 있도록 건강을 회복시켜달라고 간구했다. 많은 분들의 중보기도 덕분에 나는 건강하게 퇴원했고 장로전도단으로 돌아와 다시 미자립교회를 다니며 전도에 힘쓸 수 있었다. 새벽예배를 드리기 위해 아내와 집을 나설 때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우리 교회에서 예배드릴 수 있고 이웃을 위해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감격스럽다. 정리=이미나 기자
  • 2024.04.05 / 이미나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PDF

    지면보기

  • 행복으로의 초대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