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Q&A
예배시간마다 함께 암송하는 ‘사도신경’이 궁금해요 ②
  •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고백했던 그 신앙을 우리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사도신경은 사도들의 전승을 기본으로 이뤄졌고 사도들이 고백한 신앙고백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도신경은 누가 만들었을까?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만든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사도들이 직접 만든 것은 아니다. 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사도들이 열흘 만에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긴 하지만 그런 사실에 대한 역사적 신빙성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교회사를 살펴보면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그릇된 성경해석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이단 사상들이 횡행했다. 사도신경은 이런 잘못된 이단 사상들에 대해 성경과 기독교의 진리를 보호하고자 했던 신실한 초기 교부들과 기독인들의 오랜 수고와 인내의 결과로 얻어진 값진 열매이다. 일반적으로 주후 100년경 사도신경의 전신인 ‘침례문답서’가 있었고 주후 2세기 말 좀 더 발전된 형태의 신조가 형성됐다. 이후에 많은 논의와 협의를 거쳐 주후 3세기 초에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사도신경의 내용과 거의 흡사한 형태의 신조(Credo)가 제정됐다. 기독교는 성경이 말하는 진리를 믿는 것을 신앙의 중심으로 여긴다. 신학이란 성경이 말하는 진리를 학문화한 것인데 매우 광범위하다. 그 광범위한 진리를 체계적으로 요약한 것이 바로 ‘사도신경’이다. 사도신경은 그릇된 진리와 이단 사상을 규정하는데 있어 저울이며 척도이다. 사도신경은 기독교 진리의 핵심이며 골격이기 때문이다. 사도신경은 성경 진리를 가장 간략하게 요약한 교리신학의 정수라 할 것이다. <다음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2.11.25

    예배 시간마다 함께 암송하는 ‘사도신경’이 궁금해요 ①
  • “사도들이 고백했던 그 신앙을 우리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바로 사도신경이다. 예수님의 승천부터 니케아 종교회의에 이르는 초기 기독교 시대(주후 30년경~325년)에는 잘못된 이단적 신앙과 사상이 전해져 그릇되게 가르치고 전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 사도신경이다. 교회는 4가지의 기본 속성을 지니고 있다. 통일성, 거룩성, 보편성, 그리고 사도성이다. ‘사도성’이란 사도들의 신앙고백을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는 말로 주님에 대한 온전한 신앙을 고백한 제자 베드로를 향해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반석’은 베드로가 고백한 신앙고백을 의미한다. 또한 에베소서 2장 20절에는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는 말씀이 있다. 이처럼 교회는 사도들이 닦아놓은 신앙고백의 초석 위에 세워진 것이다. 이러한 사도들의 신앙고백의 집합체가 바로 ‘사도신경’이다. 사도신경은 예수님의 열 두 제자와 바울처럼 복음 사역을 위해 세워져 초대교회의 초석이 된 사람을 뜻하는 헬라어 원어 ‘아포스톨로스’(Apostolos), 즉 ‘사도’라는 말과 ‘신경’이라는 말이 합쳐진 합성어이다. ‘신경’이란 말은 라틴어로 ‘크레도’(Credo)이다. 이 말은 ‘나는 믿습니다’(I believe)라는 뜻이다. ‘신조’ 또는 ‘신념’을 뜻하는 영어 단어 ‘크리드’(Creed)는 바로 이 말에서 유래했다. 그런 의미로 사도신경은 영어로 ‘Apostle Creed’라고 한다. <다음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2.10.21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란 무엇인가요? ③
  • 기독교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종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예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예배는 사전적으로 헬라어 동사 ‘프로스퀴네오’를 통해 “하나님께 존경을 나타내며 최상의 가치를 돌리다”라는 의미로 이해됐다. 또 다른 헬라어 명사 ‘라트레리아’를 통해 예배는 ‘섬김과 봉사를 실천하는 헌신적 희생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됐다. 이 두 가지 의미를 관통하는 예배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바로 ‘예배는 자기 자신을 쳐서 고집과 위선을 무너뜨리고 부서져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복종하는 것’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하나님께 바치려고 모리아 산에 오르기 전 종에게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겠다”고 말했다(창 22:5).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의 숨통을 끊기 위해 지시 받은 장소에 간 것이었다. 그것을 아브라함은 스스로 ‘예배하러 간다’고 말했다. 이런 의미로 영어에서는 예배를 ‘봉사’ ‘헌신’의 뜻을 지닌 ‘서비스’(service)로 표현한다. ‘예배자’란 일주일에 한 번 혹은 몇 번 주기적으로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일주일 내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뜻이 자기 자신의 뜻에 비춰 즐거운 것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말이다. 마치 아버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자신을 버리고 세상 모든 죄를 지고 가셨던 예수 그리스도처럼 가장 고귀한 예배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라 하루하루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김에녹 목사
  • 2022.09.23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란 무엇인가요? ②
  • 기독교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종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예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배하다’를 의미하는 헬라어 동사 ‘프로스퀴네오’와 함께 ‘예배’를 의미하는 헬라어 명사 ‘라트레리아’가 있다. 이 단어는 ‘섬기다’ ‘봉사하다’라는 헬라어 동사인 ‘라트류오’에서 유래했다. 명사 ‘라트레리아’(예배)는 우선 ‘보수나 보상을 위한 봉사'를 의미했으며 다음으로는 ‘봉사, 일, 수고, 노동과 같은 신체적 돌봄’을 의미했다. 여기서 파생돼 결국에는 제의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 ‘신들을 영화롭게 함’ 또는 ‘예배'를 의미하게 됐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는 5회 등장하는데 구약성경에서 예배로 인식됐던 ‘희생 제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롬 9:4; 히 9:1,6; 요 16:2; 롬 12:1). 이러한 의미에서 유추할 수 있는 예배의 의미는 ‘섬김과 봉사를 실천하는 헌신적 희생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12장 1절의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는 말씀을 통해 크리스천이 드려야 하는 예배는 분명히 세상과는 구별되고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내적 생활과 외적 행위가 연결돼 있음을 강조했다.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2.08.26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란 무엇인가요? ①
  • 기독교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종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예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배하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프로스퀴네오’라고 한다. 이것은 동사 ‘입 맞추다’라는 동사 ‘퀴네오’에서 유래했다. 고대 헬라인들 사이에서 이 동사는 ‘신들에게 경배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던 전문용어로서 ‘땅에 엎드리다. 부복하다. 무릎을 꿇고 경배하다’를 의미했다. 아마도 땅이나 신상에 입을 맞추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바닥에 엎드려야 했기 때문에 이런 의미를 지니게 된 것 같다. 이후에는 통치자를 신격화하는 것과 로마 황제 숭배와 관련해 사용되기도 했다. ‘프로스퀴네오’는 예배에서의 꿇어 엎드리는 외적인 행위 이외에도 경외심과 겸손을 나타내는 내적인 태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엎드려 절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인 종교적 본성의 표시이다.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는 주로 예배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예배하라”는 명령은 전능하시고 영광되신 그분을 창조자이며 심판자로 받아들이고 그 유일하신 주권을 인정하며 경배하라는 뜻이다(계 14:7). 그러므로 ‘예배하다’의 확실한 개념은 ‘존경을 나타내다’ 혹은 ‘최상의 가치를 돌리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께 존경을 나타내는 경건과 의식을 뜻하며 최상의 가치를 하나님께 돌린다는 것을 의미한다(요 4:24).<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2.07.22

    교회 예배마다 함께 암송하는 주기도문은 무엇인가요? ②
  • 주기도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올바른 기도가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려고 말씀하신 것이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6장에 보면 잘못된 기도의 몇 가지 예가 소개돼 있다. ① 남들에게 과시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수단으로 외식하는 기도 ② 이방인들과 같이 자신의 신(神)을 감동시키려고 횡설수설 무의미하게 중언부언 길게 하는 기도는 매우 잘못된 기도이고 결코 어떤 응답도 기대할 수 없다. 우리는 때로 기도의 응답이 기도자의 자격과 행실에 근거한다고 생각한다. 기도의 응답을 결정하는 것은 결코 어떤 모습과 수준이 아니다. 10분, 30분, 1시간. 분량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설득력 있게 말을 잘하거나 하나님을 감동시킬 무엇인가가 있어야 응답하시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성도들은 기도의 응답이 자신의 모습과 수준으로 결정된다고 착각한다. 이것은 기도에 대한 잘못된 이해이며 그런 기도는 잘못된 기도이다.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통해 말씀하시는 올바른 기도는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를 주신 목적과 관련된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특권, 즉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 되신다는 특권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확신이 기도의 출발점이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이 사랑이라면 응답을 주시고 거절이 사랑이라면 거절을 주신다. 응답도 거절도 결국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표현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주기도문’은 바로 거룩한 주님의 자녀인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호소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도문이다. 김에녹 목사
  • 2022.06.24

    ‘성령강림절’이란 어떤 날인가요?
  • 다가오는 6월 5일은 교회력이 정한 ‘성령강림절’이다. 성령강림절은 유대교의 3대 절기인 맥추절 혹은 오순절(五旬節, Pentecost)과 같은 날이다(레 23:9~11).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켰던 3대 절기는 유월절(무교절), 맥추절(초실절), 초막절(수장절)이다(출 23:14~16, 신 16:1~17). 이 절기들은 모두 출애굽과 연관된다. 이스라엘에서 맥추절은 초실절이라고도 하는데 한 해 추수의 처음 열매를 거두는 시기로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날’(민 28:26)이며 보리와 밀을 추수하고 지키는 감사절이다. 오순절은 5를 뜻하는 헬라어 ‘펜테’(Pente)에서 파생된 말로 ‘50번째 날’이란 뜻이며 칠칠절(출 23:14~17)에 대한 헬라식 표현이다. 누룩을 넣지 않은 무교병을 먹는 무교절(유월절) 다음 날부터 계산해 50일째 되는 날에 행해지는 감사 절기를 의미한다. 정리하면 오순절, 맥추절, 초실절, 칠칠절, 성령강림절은 명칭과 의미는 다르지만 같은 날이다. 예수님은 승천하기 전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고 명령하셨다. 제자들은 이 명령에 순종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며 기다렸다. 제자들을 포함한 120명 성도들은 예수님 부활로부터 50일째 되는 날 오순절에 임한 성령으로 충만케 돼 전도 활동을 시작했다. 이날을 ‘성령강림절’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기독교의 성립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서방교회에서는 성령강림절 철야제를 성탄절, 부활절과 같이 성대하게 지키며 침례를 함께 행했으며 이는 성령 침례의 의미를 지닌다. 성령강림절은 교회의 확장과 성장을 도모하는 날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성령님의 역사와 인도와 충만을 기도하게 된다. 교회력에서는 성령강림절 이후 강림절(성탄절 4주 전 주일, 대림절)까지의 주일들은 ‘오순절 후 주일들’로 불린다. 김에녹 목사
  • 2022.05.22

    예배드릴 때, 함께 암송하는 주기도문은 무엇인가요? ①
  • 한국교회는 공적 예배 때마다 ‘주기도문’을 함께 암송하거나 주기도문에 곡조를 붙인 ‘주기도송’을 부르게 된다. 주기도문은 한 마디로 설명하면 ‘우리 주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이다. 주기도문은 신약성경 마태복음 6장과 누가복음 11장에 기록돼 있다. 이 중에 누가복음 11장의 본문에는 주기도문이 등장하게 된 배경도 소개돼 있다. 누가복음 11장 1절에 보면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라고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한다. 예수님은 이러한 제자들의 요청을 받고 기도를 가르쳐 주셨는데 이 기도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암송하는 주기도문의 원전이다. 당시 스승이라는 이름으로 살던 사람들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자신만의 기도문을 가르쳐 주는 전통이 있었다. 그렇게 그들이 가르친 기도문에는 그들이 추구하는 사상이나 이념 철학 그리고 가르침의 핵심이 들어있는 요약문과 같은 의미가 있었다. 그 시절에는 누군가의 기도문을 들으면 그 사람이 누구의 제자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처럼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문’인 ‘주기도문’은 단순한 기도문이 아니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사역의 요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기도문은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 자신이 과연 누구이며 무엇을 믿으며 어떤 소망을 품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더불어 그리스도인의 존재 가치가 무엇이며 그리스도인의 소명이 무엇인지를 나타내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주기도문’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고백이며 신앙의 지침서이다. (다음달에 계속)
  • 2022.04.24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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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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