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Israel
우리가 오해하는 이스라엘 이야기②-반유대주의…오해 속에 자라난 미움과 박해의 역사Ⅰ
  • “내가 찬양하는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악한 입과 거짓된 입을 열어 나를 치며 속이는 혀로 내게 말하며 또 미워하는 말로 나를 두르고 까닭 없이 나를 공격하였음이니이다”(시 109:1~3). 셰익스피어의 소설 ‘베니스의 상인’에는 유대인 상인이 등장한다. 샤일록이라는 상인은 아주 잔인한 고리대금업자로 돈을 빌려주는 대신 못 갚은 안토니오의 심장 옆 살을 1파운드 베어내겠다는 계약을 하게 된다. 그리고 샤일록은 지혜로운 재판관에게 혹독하게 당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는 대표적인 유대인들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반유대주의적 배경에서 나오는 이해라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까? 이스라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장 많이 언급하면서도 많은 분들이 불편해 하는 이야기가 바로 반유대주의에 대한 이야기이다. 많은 분들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혹자는 과소평가하는 것이 반유대주의에 대한 것이다. 반유대주의는 앞선 글에서 이야기한 시온주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현대 기독교 시온주의 안에서도 반유대주의는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기 때문에 우리는 한번쯤 곱씹어 봐야 하는 이야기이다. 반유대주의에 대한 이해가 조금 생기면 현대 이스라엘 사회와 국제 사회 안에서의 이스라엘에 대한 이해를 하는데 조금 도움이 될 수 있다. 반유대주의란 무엇일까? 이에 대한 정의는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홈페이지에 아주 잘 나와 있다. “반유대주의란 유대인에 대해 맹목적인 적대감을 보이는 특정 인식을 말합니다. 반유대주의는 유대인 뿐 아니라 그들의 재산과 관련된 기관, 종교 시설, 심지어는 유대인과 관계를 맺은 비유대인을 대상으로 하기도 하며, 이 증오심은 이스라엘 국가를 향해 나타나기도 합니다. 반유대주의는 유대인이 인류(HUMANITY)를 해하려는 음모를 가지고, 세계 언론과 경제를 조종하고 있다고 믿으며 그로 인해 반유대주의자들은 세계 정치, 사회적 문제의 책임이 유대인에게 있다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이런 잘못된 인식은 각종 연설이나 글, 시각적 자료와 부정적 고정관념, 직접적인 행동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출처: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반유대주의를 영어로 안티세미티즘(Anti-Semitism)이라고 하며 이는 유대인을 셈족의 대표성으로서 인정하면서 유대인들을 반대하는 흐름을 이야기하고 있다. 역사 속에서 대표적인 반유대주의적 사건은 20세기에 있었던 홀로코스트 사건이 대표적이다. 일반적으로 이와 같은 사건을 언급하면서 반유대주의에 대한 것을 이야기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불편한 시각이 있다. 그런 학살이 유대인들에게만 일어난 것이 아니며 역사적으로 지역적으로 그와 유사한 학살과 박해 그리고 차별의 역사는 존재했다고 이야기한다. 아시아인들과 아프리카인들에게 행해졌던 노예무역과 차별정책 그리고 현대 사회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인종차별주의가 바로 그런 것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반유대주의가 비단 근·현대 사회에서만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지난 2000년의 역사 가운데 민족적 박해와 미움의 형태로 존재했었다는 것이다. 혹자가 말하듯이 역사 속에서 차별과 박해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 민족에 대한 지속적인 차별과 박해는 유대민족에게만 있는 비극적인 것이다. 유대인들에 대한 차별은 예수님이 사시던 2000년 전만이 아니라 성경의 역사 속에도 계속적으로 등장했다. 반유대주의는 위의 정의에서 언급한 것처럼 유대인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만들려고 하는 배경에서 시작됐다. 성경 속에서도 히브리인들을 두려워한 애굽의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하기 위해서 어린 아이들을 죽였던 예도 있다. 반유대주의적 흐름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기독교의 인물들을 통해서도 언급됐다. 서신서들 속에서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유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있었던 갈등을 언급하고 있다. 그 안에서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비하하고 비판하는 것을 바울은 경고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더욱이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부터는 더욱 더 노골적으로 유대인들에 대한 비하와 비판 그리고 박해가 두드러지게 드러나기도 했다. 성 어거스틴은 유대인들을 돼지에 비유하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자들이라고 매도했다. 또한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르틴 루터나 칼뱅도 유대인들을 미워하거나 비판하고 매도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교회사에서는 이를 가르치지 않거나 가르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 민족에 대한 종교적 그리고 민족적 탄압은 유럽의 역사 가운데 확연히 드러나 있었다. 폴란드 바르사뱌에 가면 폴란드 유대인 역사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은 폴란드 유대인들의 역사와 함께 왜 수많은 유대인들이 폴란드에서 살게 되었는가를 밝혀주고 있다. 그 배경에는 유럽 내에 만연한 빈유대주의와 유대인 박해가 그 저변에 깔려 있었다. 우리는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이들이 역사 속에서 당한 반유대주의에 따른 고통과 박해의 시간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다음편에 계속> 김요셉 목사
  • 2023.03.17

    우리가 오해하는 이스라엘 이야기①- 시온주의의 탄생 … “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
  •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시 43:1~2). 20세기 역사 가운데 커다란 전쟁이 2번이나 있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의 열강의 구도가 탄생하였다. 그 가운데 탄생한 이스라엘 국가는 세계 역사 가운데 중요한 몇 가지 사실을 남겨두게 된다. 1948년 현대 이스라엘 건국 후 수많은 논쟁들이 계속되어 왔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이 땅과 관련된 분쟁과 또 유대인들에 대한 존재성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이 복잡한 역사를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에 대한 역사적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크게 두 가지를 이야기 할 것이다. 하나는 시온주의에 대한 이해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반유대주의이다. 시온주의는 이스라엘을 이야기하면서 많이 거론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국가의 설립이 시온주의 바탕에서 시작되었다. 시온주의는 일반적으로 유대민족주의에 대한 정치적 이념이라고 정의된다. 이것은 19세기 말에 등장하여 유대국가론을 주장한 테오도르 헤르쩰에 의해서 정립된 정치적 사상이자 이념이다. 시온주의는 시온향 혹은 시온사상이라는 유대 민족이 가진 정서적 향수라고 볼 수 있다. 2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향 땅을 떠나 떠도는 신세가 된 유대민족에게 있어서 이스라엘은 가고 싶지만 쉽게 갈 수 없는 땅이 되었다. 그 사이 역사 가운데 로마제국 시대에 유대 사마리아 땅에서 쫓겨나 온 세계로 흩어진 유대인들의 소원은 고향 땅으로 돌아가 다시금 하나님의 성전에서 예배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매년마다 각자가 사는 곳에서 유대교의 절기를 지키면서 외쳤던 구호가 “내년은 예루살렘에서!”이다. 자신들의 절기를 고향인 이스라엘에서 지키는 것이 그들의 간절한 소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에서 접한 문화와 양식을 통해서 그런 갈망들을 표현하였다. 그것이 음악이 되고 문학이 되고 시가 되고 그림이 되었다. 이런 시온향(시온을 그리워하는 향수적 표현)들이 14세기에서 18세기 유럽의 문화 속에서 드러나게 되고 그런 흐름들이 시온주의적 문학 혹은 시온주의 정서로 표현되었다. 이 당시까지 드러난 시온주의는 정치적 성향보다는 정서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8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민족주의 운동의 여파가 유대인들에게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유럽 민족주의 운동은 각각의 민족들이 고유성과 문화적 특성들을 주장하면서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의 국가들 안에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이런 민족주의 운동은 그동안 유럽 국가들 안에서 융화되어 살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오게 된다. 불과 어제까지 같이 공부하고 함께 사업을 하던 사람들을 유대인으로 분류하고 차별하기 시작한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19세기 프랑스에서 있었던 드뢰퓌스 사건이다. 프랑스의 장교였던 알프레드 드뢰퓌스가 간첩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된다. 이는 프랑스 군 전체가 외면한 사건으로 프랑스 전체가 들썩이는 스캔들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드러난 것은 유대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누명을 써도 괜찮다는 프랑스 군부와 정치인들의 생각이었다. 어차피 프랑스인이 아니기에 당연하다는 식의 결론은 그 당시 유럽의 유대인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을 취재하게 된 테오도르 헤르쩰은 이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고 난 후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는 철저한 동화주의자로서 유대인이라는 정체성과 상관없이 각자가 사는 나라에서 잘 융화되어 살면 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을 통해서 헤르쩰은 유대인들이 유럽에서 유대민족으로서의 정체성과 자립이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일명 유대국가론에 등장하는 유대민족주의가 바로 그것이며 이것이 현대 시온주의를 대표하는 것이 된 것이다. 헤르쩰은 자신의 저서인 유대국가론에서 유대민족은 어느 곳에 있든지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외면하고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피력하였다. 그렇기에 유대인들은 더욱 자신들의 유대적 정체성을 확고히해야 하며 유럽을 떠나 자신들만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국가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전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유대국가의 탄생을 꿈꾸게 된다. 이를 위해서 헤르쩰은 유럽 전역을 다니면서 그동안 흩어져 있던 다양한 시온주의 운동들을 통합하고자 노력했다. 그 가운데 그가 가장 전념했던 것은 바로 언어와 문화 그리고 종교적 바탕을 시온주의 중심으로 끌어당기는 것이었다. 결국 1897년 스위스 바젤에서 첫 시온주의 대회가 열리게 되고 시온주의는 유대민족주의로서 그 의미를 선포하게 되었다. 이런 시온주의의 배경에는 우리가 또 알아야 하는 아주 중요한 역사적 요소가 있다. 바로 반유대주의이다. <다음편에 계속>
  • 2023.02.17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며…현대 이스라엘을 생각해 보다
  • 2023년도 새해가 밝았다. 지난해는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의 공포 속에서 벗어나 조금씩 일상으로의 회복이 되어가는 시기였다. 이스라엘도 그렇다. 어떻게 보면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코로나 팬데믹을 벗어난 나라가 되기도 했다. 멈추고 비어있던 성지는 그동안 푹 쉬었다고 할 수 있다. 붐비던 예루살렘과 갈릴리는 자연 그대로 시간이라는 흐름 속에서 잠시 멈추어 있는 듯 했다. 분주하고 복잡함을 벗어나 고요함을 누리는 시간이었다. 2022년 하반기부터 이스라엘은 성지순례가 다시 시작되었고 예루살렘과 텔아비브 공항은 찾아든 여행객과 성지순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코로나에 대한 공포가 불식되는 듯한 순간들이었다.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팬데믹의 공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스라엘은 그런 것들을 잠시 비껴나간 듯 새롭게 다시금 피어나고 있다. 호텔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다시 돌아간 듯 하다고 한다. 호텔 가득 붐비는 순례객들과 여행객들 사이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가이드들과 호텔 직원들의 모습 속에는 바쁨에도 불구하고 미소들이 피어오른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문이 다시 열리고 손님들이 찾아오는 시점에서 문득 이 나라의 역사를 돌아보게 된다. 과연 이 나라는 어떻게 2000년 만에 다시금 등장할 수 있었을까? 현대 이스라엘은 과연 성경 속의 이스라엘의 연장선상의 나라인가 아니면 전혀 새로운 국가일까? 여전히 갑론을박이 진행되고 있는 이 땅에 대한 논쟁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누가 다윗이고 골리앗이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이야기는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보아야 하는가? 성지 이스라엘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일까? 성경과 이스라엘 그리고 유대인들은 어떤 이야기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가? 열방과 이스라엘은 성경과 역사 가운데 어떤 관계에 놓여 있으며 우리는 어떻게 이것을 바라볼 것인가? 많은 질문과 답들이 무수히 떠올랐다. 그 중에는 그 동안 지면을 통해서 이야기 했던 것들도 있고 아직 이야기 하지 못한 것들도 있다. 성지 이스라엘에 관한 이야기들을 조금은 나누었다. 예루살렘과 갈릴리, 나사렛과 브엘세바, 헐몬산과 광야 등의 이야기를 해 보았다. 유대인과 이스라엘의 지역들 그리고 삶에 대한 이야기들도 잠깐 했었다. 유대교적 관점과 풍습 그리고 절기에 대한 것들도 언급했었다. 이런 이야기들이 현재 이스라엘을 다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글들은 그런 것들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는 작은 틈새를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이제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면서 돌아보게 되었다. 과연 얼마나 이스라엘을 알려드렸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많은 분들이 있지만 현대 이스라엘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이들은 어떻게 이 곳에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듣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런 이야기들을 해주는 통로도 적거니와 들을 기회도 많이 없다. 순례객들은 본인들이 다녀간 장소를 기억하기도 바쁘다. 이스라엘의 역사와 그 뒤에 있는 이야기들에 집중할 시간도 없다. 이스라엘을 위해서 중보하는 이들도 이스라엘을 위한 기도제목 속에서 등장하는 지역과 사건들에 대한 배경지식이 거의 없이 그저 기도하는 것을 종종 발견한다. 그것이야말로 은혜다. 하지만 만약 여행하는 이들과 기도하는 이들이 이 땅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현실적으로 더 자세하게 알고 기도 한다면 얼마나 더 놀라운 응답이 이루어질까 생각해 본다. 필자도 이스라엘에 살면서 배우고 알아가는 과정에서 발견하게 되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있다. 그런 은혜가 없어도 우리의 구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고 그 분의 일하심을 바라보는 관점이 더 확장되고 깊어질 수 있다면 이스라엘을 알아가는 시간은 너무나도 귀한 것이 된다. 2023년도는 그런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너무 멀리까지는 아니지만 근대와 현대사를 오가면서 이스라엘의 탄생과 역사적 사건들 그리고 그 안에서 바라보게 되는 하나님의 은혜들을 돌아본다면 이후에 이 땅을 방문하게 될 때 남들은 놓쳤던 부분을 찾아보게 되고 더 깊이 있는 만남들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오늘도 광야를 걷는다. 예루살렘의 성벽을 지나쳐 간다. 텔아비브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베드로가 묵었던 가죽장인 시몬의 대문 앞을 거닐어 본다. 서쪽벽, 통곡의 벽 앞에서 기도하는 이들을 보면서 예배의 처소를 갈망하는 영혼을 보게 된다. 히스기야 터널을 지나면서 유대인들이 걸어왔던 암울한 역사를 되짚는다. 터널의 끝에서 시온산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리운 순간을 떠올린다. 무너져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터 앞 성전의 문앞 돌계단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한다. 그 너머 성전산 위에 세워진 이슬람 사원을 보면 이 땅의 황폐함을 예언하시면서 눈물 흘리신 예수님이 보인다. 그 모든 시간 속에서 여전히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오늘 이 시간 거리를 바쁘게 지나는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의 삶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역사는 과거를 비추지만 현재를 이끌어가는 견인줄이 된다. 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스라엘과 유대인들 속에서 여전히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해 나아갔으면 한다. 김요셉 목사
  • 2023.01.13

    이스라엘에는 크리스마스가 있을까?
  • 2022년도 한해가 벌써 저물어 간다. 새로운 시작을 알린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12월이 되면 기독교인들에게는 가장 성대한 절기가 있다. 바로 크리스마스이다. 우리가 믿는 신앙 안에서 경축하는 절기는 성경적이면서 유대교적인 절기들과는 사뭇 다르다고 여겨진다. 성경에서 기독교의 절기인 부활절, 추수감사절 그리고 성탄절은 찾아볼 수 없다. 그것을 기념했다는 기록도 없다. 다만 우리가 들어온 유대교적 절기인 유월절, 오순절 그리고 장막절만이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연관을 짓자면 유월절은 부활절과 연관이 있고 오순절은 성령강림절 그리고 장막절 혹은 초막절은 추수감사절과 관계성을 지니고 있다는 정도다. 성탄절은 성경의 어떤 절기와도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많은 크리스천 유대인들 중에는 성탄절을 기념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대신 이 절기와 연관된 하누카(성경의 수전절이라고 등장한다. 요 10:22)를 지킨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에는 크리스마스가 없을까? 그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국가가 세워진 이후 이 땅에 다시 정착하게 된 유대인들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서방국가에서 돌아온 이들이기에 크리스마스는 너무나 익숙한 날이다. 오히려 미국과 유럽 등에서 온 유대인들 중에는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이들이 더 많다. 물론 이들은 종교 유대인들이 아닌 일명 세속 유대인들이 대부분이기는 하다. 이스라엘은 유대교가 사회 지배적 종교이기에 기독교적 절기인 크리스마스를 더욱더 안 지킬 것 같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전 세계에서도 가장 보수적이면서도 가장 기독교적으로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국가라고 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 기독교의 절기인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전반에서는 기독교의 절기인 크리스마스를 받아들이고 축하하는 분위기다. 예루살렘의 YMCA는 매년마다 자신들의 공간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을 열고 다양한 행사와 함께 기독교인들 유대인들 그리고 심지어 무슬림들까지 모여서 즐겁게 보내고 있다. 이에 대한 불편함은 없다. 유대인들에게는 그저 그런 날로서 지나가고 무슬림들은 재밌게 보낸다. 크리스마스에 대한 불편함은 오히려 믿는 유대인들에게 있다. 그들에게 있어 크리스마스라는 날에 대한 이해와 수용은 각각 다른 의견을 지니고 있다. 이스라엘에서 크리스마스는 유대교의 절기인 하누카와 그 시기가 겹치는 일이 종종 있다. 올해 크리스마스 이브는 24일로 하누카의 여섯번째 날과 만나고 크리스마스 당일 인 25일은 일곱째 날과 만나게 된다. 서구식 개신교 신앙을 가지는 유대인들에게 있어 성탄절은 큰 축하의 절기이다. 하지만 유대교적 배경으로 신앙을 가지는 이들에게는 크리스마스는 굳이 지키지 않아도 되는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 절기로서 그들은 유대교 절기인 하누카 안에서 그리스도의 탄생의 의미를 찾는다. 그러면서 서로가 서로를 향해서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우리는 과연 성탄절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을까? 그리스도의 탄생, 임마누엘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 의미가 우리에게 온전하게 있다면 우리의 신앙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현재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도 혼돈의 시기이다. 정치적 종교적 혼돈의 시대에 살면서 필자는 성경 속에서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의 상황이 떠올랐다. 종교적 바리새인들과 정치적 사두개인들 모두 유대교인들이었다. 열심당과 세속인들 모두 정치적으로 반로마이거나 친로마의 사람들이었다. 그 가운데 고통 받고 소외당하는 민중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지금 현재의 이스라엘의 모습이었다. 예수님은 그 가운데 탄생하셨다. 그들이 자신들의 성전을 수복한 절기인 하누카를 지키며 감사할 때 하나님은 진정한 빛을 이 땅에 보내주셨다. 베들레헴의 아랍 크리스천들이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고 장식을 세우며 그들의 성탄절을 기념할 때 예수님은 말구유에서 태어나 목동들의 환호를 받았다. 모두가 메시야를 바라며 기대하고 나름대로의 구원자를 꿈꾸며 세력을 꾸릴 때 예수님은 성전에서 선생들과 하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나누셨다. 누구의 절기이고 누구의 종교인가가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스라엘에 크리스마스가 없다고 손가락질 할 때 우리에게 크리스마스가 있는지 돌아보았으면 한다.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랑으로 임하신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오늘 이스라엘에 진정한 크리스마스이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하누카가 되길 소망한다. 김요셉 목사
  • 2022.12.16

    절기를 바라보는 시야 … 광야에서 보내는 초막절
  • 이스라엘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필자가 추천하는 것은 절기 때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것이다. 절기가 되면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전통에 따라서 그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많은 것들을 준비한다. 태양력으로 10월 15일부터 일주일간 진행되는 초막절은 이스라엘의 가장 큰 명절이자 가을 절기의 마지막이다. 일명 하이 홀리데이(대명절)라고 불리는 이 시기에는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온다. 모두 초막절을 지키기 위해서 찾아오는 것이다. 초막절은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에게도 의미가 깊은 날로 이해된다. 물론 두 그룹 간의 이해는 다르기는 하다. 하지만 이 절기를 대하는 자세는 사뭇 비슷하면서도 다른 양상을 지닌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초막절은 많이 분주해진다. 가을 절기가 시작하기 전부터 시장과 상점에서는 초막절을 위한 상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특히 초막절에는 집집마다 작은 초막을 짓는 것이 전통이다. 그래서 상점들은 간이 초막부터 시작하여 초막을 짓기 위한 자재들을 쌓아 놓고 판다. 그리고 대속죄일이 끝나는 날부터 많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마당이나 베란다 혹은 집근처 공터에 초막을 짓는 것을 보게 된다. 초막의 형태가 딱히 정해진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현재 이스라엘에서 본 초막들은 재미있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사면의 벽을 이루는 형태로 직사각형 혹은 정사각형의 벽을 세우고 그 위에 조릿대 같은 발을 올리거나 종려나무 가지를 덮어서 지붕을 만든다. 그리고 그 초막에서 일주일을 살게 된다. 식탁을 차려놓고 음식을 집에서 해 나와 그 초막 안에서 먹고 마시면서 일주일을 보내는 것이 전통이다. 물론 현대의 유대인들 중에 그렇게 하는 이들은 정통 종교 유대인들 밖에는 없다. 대부분이 초막을 간이 식탁처럼 사용하거나 손님들과 분위기를 즐기는데 사용한다. 이곳 네게브에 사는 필자도 처음으로 초막을 만들었다. 물론 내 손으로 모든 것을 짓고 싶었지만 초보자가 만들기엔 아직 버거워서 상점에서 파는 초막세트를 사다가 만들었다. 그래도 기둥을 세우고 사면을 천으로 두른 뒤에 지붕에 발을 올리고 종려나무 가지로 꾸며서 그럴듯하게 초막을 만들었다. 이곳 주일학교 아이들과 함께 내부 장식도 하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 절기를 지내면서 과연 초막절이 무엇을 의미하는 가를 깊이 묵상해 보게 된다. 유대인들에게조차도 지금의 초막절은 이스라엘 민족의 명절인 것으로 그치는 것을 보게 된다. 그저 먹고 마시면서 자신들의 조상들이 만들어 놓은 명절로만 기억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초막절은 성경 레위기 23장에 다른 절기들과 함께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절기가 유대인들이 제정한 날이 아닌 야훼 하나님이 지정하신 절기라는 것이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초막절을 “야훼를 위해서 칠일동안 지킬 것”을 명하셨다(레 23:27~32). 초막절뿐만 아니라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절기는 많다. 하나님은 유월절, 초실절, 칠칠절(오순절), 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 안식일, 월삭 등 절기들을 지명하시고 지키라고 명하셨다. 초막절은 특별히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가지는 요소가 있다. 그것은 바로 종말에 대한 요소이다. 유대인들은 초막절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영원한 처소이자 그 나라를 갈망하는 기도를 한다. 유대인들에게 초막절은 지금의 모습만이 아니라 과거의 은혜와 현재의 감사 그리고 미래의 소망을 담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에게도 초막절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 땅에 오셨고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부활하셨다. 그리고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시고 하늘에 올라가셨다. 이제 다시 오실 것은 그 어느 때도 아닌 가을의 마지막 추수가 끝나고 우리를 영원한 주의 처소에 이끄실 그 날이다. 그렇기에 초막절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상징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종말의 신앙 가운데 있어서 절기를 바라보는 것은 미래만을 바라본 치우친 시야가 될 수도 있다. 위에 언급했지만 유대인들은 초막절 안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바라보려고 한다. 하나님은 초막절을 언급하시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것을 상기 시키셨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아닌 이미 구약 속에서 말씀하고 계셨던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초막절을 지키지 않는다. 하지만 절기를 지키다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그리고 말씀이 우리에게 비추는 것들이 보인다. 단순한 참조가 아닌 실질적인 우리의 삶에 여전히 남아있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바라보는 렌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우리 교회 마당에 초막을 세우고 우리 성도들과 아이들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역사하신 순간들을 이야기하면서 그 하나님이 지금 우리의 하나님 되심을 이야기 해줄 수 있다면 아마도 우리의 믿음과 삶은 휘청거리지 않고 굳건한 반석 위에 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마치 광야의 초막을 꾸미며 즐거워하던 이곳의 주일학교 아이들이 하나님의 살아있는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임을 이해했던 것처럼 말이다. 김요셉 목사
  • 2022.11.18

    반유대주의의 최전선에서 벤구리온의 유지를 이어가다
  • “시오니즘과 이스라엘학 벤구리온 연구소”
    필자가 살고 있는 네게브의 작은 마을인 미드라셋 벤구리온에는 두개의 연구소가 있다. 두 연구소 모두 벤구리온 대학 산하의 연구소로 하나는 지난번에 소개한 사막 연구소이고 다른 하나는 벤구리온 연구소이다. 네게브는 이스라엘 전체 영토에서 약 3분의1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광활한 사막지대이다. 이스라엘이 독립할 당시 초대 수상이었던 벤구리온은 유엔에서 제시한 영토 분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그 당시 세계시오니즘기구의 대부분 의원들은 분할 안에 반대했지만 벤구리온은 그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여 네게브를 포함한 이스라엘 영토 안에 찬성해 1948년에 독립할 수 있었다. 벤구리온은 이스라엘이 독립하기 이전부터 오랜 시간 동안 유대국가(현 이스라엘 국가)의 설립을 위해서 꾸준히 준비해 왔고 이를 위해 동분서주한 인물이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미래를 네게브에 두었다고 한다. 그는 독립 이전부터 이스라엘 땅을 찾아와 살면서 이 네게브의 광활한 광야를 푸르게 만든다면 이스라엘은 세상에서 가장 부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벤구리온 대학 부설 연구소인 벤구리온 연구소 ‘시오니즘과 이스라엘학’(이하 벤구리온 연구소)은 이스라엘의 초대 수상인 벤구리온 그리고 현대 이스라엘과 시오니즘에 대해서 연구하고 공부하는 곳이다. 필자도 이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많은 이해를 얻을 수 있었다. 이스라엘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경제나 전쟁의 위협이 아닌 바로 반유대주의이다. 반유대주의는 영어로 ‘안티세미티즘’이라고 한다. 이는 셈족에 대한 반발적인 흐름을 이야기하며 그 중심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 반대주의 흐름이다. 또 반유대주의는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유럽과 미국에 많이 대두되고 있는 현대 사회의 부정적인 흐름이다. 과거 역사 속에서 이 반유대주의 영향에 의해 일어난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홀로코스트이다. 나치에 의해 자행된 유럽 유대인들의 학살 배경에는 이 반유대주의가 내포되어 있다. 현재 많은 수의 아랍인들과 팔레스타인들이 이런 반유대주의 정서를 일으키고 있으며 BDS(보이콧, 투자철회 및 제재) 운동도 이런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벤구리온 연구소의 주된 목적은 벤구리온의 유산에 대한 연구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팽배해져 가는 반유대주의의 흐름을 막기 위한 연구자들을 세우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연구소는 이스라엘 독립 이전부터 지금까지의 수많은 자료들을 기록보관소에 보관하고 있으며 벤구리온과 연관된 수많은 자료들을 수집해 연구하고 후대를 위한 디지털화 작업을 하고 있다. 연구소는 이스라엘과 시오니즘에 관심을 두고 있는 많은 학생들을 유치해 그들을 통해서 더 다양한 시각으로 이스라엘과 시오니즘 그리고 벤구리온에 대한 객관적 연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 연구소에서 공부한다고 하면 시오니즘을 왜 공부하는가 하는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시오니즘에 대한 이해가 없는 이들이 보기에 다른 나라의 이념을 왜 배우는가 하는 궁금증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시오니즘은 어떻게 보면 근대 유럽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현대 이스라엘의 탄생에 있어서 이해를 가져오는 중요한 이념이다. 뿐만 아니라 현대 이스라엘을 이해함에 있어서 시오니즘은 필수불가결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연구소에는 이런 역사의 편린 속에 빛나는 이야기들을 캐내는 연구자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와 공부하고 있다. 이들은 세계 속에서 왜곡되고 와전되는 유대인들에 대한 인식과 이스라엘에 대한 이해를 바꾸려한다. 그들의 작은 노력들이 현재 많은 글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에 대한 이해를 바꾸어 나가고 있다. 벤구리온 연구소는 이스라엘 네게브 작은 마을의 한 구석에 있다. 벤구리온의 무덤을 끼고 있는 이 작은 연구소는 큰일을 해나가고 있다. 역사의 한 구석을 집요하게 파내고 한 인물을 통해서 이스라엘 그리고 유대인의 사회를 전 세계에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작은 연구소가 큰 세계를 상대로 커다란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연구와 학문이라는 필드에서 이들은 반유대주의와 싸우고 있으며 그들은 여전히 어려운 싸움을 해 나가고 있다. 이스라엘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다. 성경 속의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현대의 이스라엘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결코 작지 않다. 2000년 동안 나라 없던 백성이 다시금 나라를 얻게 되는 과정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런 흐름 속에서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학문적으로 이스라엘을 대변하는 이 학교는 작은 거인처럼 세상의 학문들과 맞서고 있다. 오늘도 학교의 도서관을 둘러보면서 반유대주의에 맞서는 이 학교와 학생들의 다짐이 더욱 공고해지기를 기도해 본다. 김요셉 목사
  • 2022.09.16

    광야에서 푸르름을 꿈꾼다- 네게브 벤구리온 대학 사막연구소
  • 필자는 현재 이스라엘에서도 남단에 위치한 네게브 사막 한가운데 살고 있다. 이스라엘 영토 중 가장 넓은 곳을 차지하는 곳이 바로 이곳 네게브 사막이다. 네게브에서 가장 큰 도시인 브엘세바는 아브라함과 관계가 깊고 그가 브엘세바 인근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야훼의 이름을 부르고 제단을 쌓은 것은 이곳에서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시작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많은 분들이 미처 알지 못하고 지나가는 사실 중 하나는 이 네게브가 성경에서 유다 지파의 영토였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지파이자 이스라엘 지파 중 사자라고 불리는 유다 지파는 가장 척박한 땅인 네게브를 얻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이 독립할 당시에도 유대인들에게는 너무나 불리한 영토분할이 있었고 그 영토 중의 절반이 네게브 광야였다. 아무것도 없는 이곳을 유대인들에게 분할한 유엔의 결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초대 수상인 벤구리온은 이 네게브에서 이스라엘의 소망을 보았다. 독립한 이후 그는 의회에서도 네게브야말로 이스라엘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네게브는 많은 의미를 지닌 곳이다. 이곳에는 벤구리온의 무덤이 있고 광야를 탐험할 수 있는 체험 학교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특별한 이유는 바로 ‘벤구리온 대학 부설 사막 연구소’(Ben-Gurion University of the Negev Jacob Blaustein Institute for Desert Research)가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스라엘에는 세계에서 순위권 안에 드는 대학이 여럿이 있다. 예루살렘의 히브리대학, 하이파의 테크니온 그리고 브엘세바의 벤구리온 대학이 그들 중 하나이다. 특히 벤구리온 대학은 많은 한국 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농업과 의학 그리고 근래는 사이버보안에 대해서 세계에서 상위권을 다투고 있다. 더 나아가 네게브 광야 한가운데 자리 잡은 이 사막연구소는 세계 유수의 학자들이 매년 모이는 국제 사막연구 세미나를 연다. 전 세계의 석학들은 지구 사막화와 함께 그 척박한 땅을 어떻게 해야 발전시키고 농지화 시킬 수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이 연구소의 가장 큰 목적은 바로 광야를 푸르게 만드는 것이다. 일 년 중 비가 오는 날이 채 한달도 안 되는 광야에서 작물을 키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다. 일 년 중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작물을 키우는 것은 이스라엘의 겨울에만 작농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연구소는 겨울만이 아니라 일 년 사계절 동안 광야에서 작농이 가능한 농법과 방법들을 연구하고 더 나은 품종과 강한 모종을 만들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이렇게 얻어진 연구는 인근 키부츠와 농장을 통해 실제적으로 활용되고 또 데이터를 얻고 있다. 농장들은 더 나은 농법을 적용할 수 있게 되고 연구소는 그 농장을 통해 계속적인 데이터를 얻는다. 최근 들어 네게브가 주력하고 있는 것은 와이너리(포도주 농장)이다. 포도를 심어서 포도주를 생산하는 것이 네게브가 새로이 추진하고 하는 특산물이다. 한 친구가 연구소에서 포도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어서 이야기를 들었다. 척박하고 물이 적은 땅에서 길러지는 포도주는 어떤 맛이 날지 궁금한 이들이 있었다. 그래서 연구소에서 실험적으로 100그루의 포도나무를 심고 나무마다 같은 토양의 조건에서 각기 다른 물의 양과 주는 시간 등을 달리 하고 비료의 분량과 내용물들에 대한 차이 또한 두어서 3년 동안 연구했다고 한다. 얻어진 포도를 분광 스펙트럼 분석을 통해 포도의 당도를 테스트한 결과 인근 농장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포도주를 생산하게 되었다. 아직까지 네게브 와인은 유명하지는 않지만 많은 애호가들 사이에서 호평받는 맛이 되고 있다. 네게브를 푸르게 만들겠다는 벤구리온의 꿈과 현대 연구자들의 꿈은 직접 네게브를 방문하고 풍경을 보는 이들에게 ‘과연 될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하지만 이 곳 네게브에 사는 이들은 겨울이 되어 비가 내리고 나면 푸르게 변하는 광야를 보고 알고 있다. 네게브가 푸르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이 광야를 푸르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그 약속을 우리는 믿고 있다. 기적으로 푸르게 만드실 것을 본다. 이곳 사막 연구소에는 수많은 크리스천 학생들이 있다. 그들 대부분은 동일하게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허락하신 축복과 약속을 바라보고 왔다. 어쩌면 자신들의 손을 통해 하나님이 이 땅을 푸르게 하실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함께 모여 우리를 통하여 일하실 하나님께서 이 연구소를 통해서도 역사하여 달라고 기도한다. 이 글을 읽고 이스라엘을 찾아오실 많은 사람들이 꼭 한 번 이 곳을 방문하여 네게브 광야의 푸르른 미래를 함께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한다. 김요셉 목사
  • 2022.08.19

    부와 명예 속에 감춰진 유대인들의 슬픈 역사
  • 세계에서 가장 권위와 명성이 있는 노벨상은 모든 이들이 꿈꾸는 상이다. 노벨상을 받는다는 것은 개인적 명예임과 동시에 국가적 명예이다. 그래서 많은 나라가 과학기술 등과 같은 분야에 천문학적 재원을 투자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1901년부터 2019년까지 9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노벨상을 받았고 그 가운데 20%가 유대인이었다. 물론 역사적으로 그들의 출신 국가들은 다양하지만 그들의 민족적 배경은 유대인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나라에서도 노벨상을 받은 유대인들의 교육법이 궁금해 탈무드나 하부르타 교육이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렇다면 왜 유대인들 가운데 이런 수많은 업적을 이룬 이들이 나올 수 있었을까? 노벨상 수상자와 같은 세계적인 유대인 과학자, 석학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슬픈 역사가 큰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모르고 있다. 유대 민족의 역사는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강대국의 침략과 그로인해 나라 없이 떠돌며 살아온 유랑의 역사다. 그들은 고대 앗수르와 바빌론에 의해 국가가 멸망한 후 제대로 국가로서 세워진 적이 없다. 아주 짧게 하스모니안 왕조가 존재하긴 했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했고 그들은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파괴 된 뒤 나라 없이 1900여 년을 떠도는 민족이 되었다. 예수님이 사역하시던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제국의 산하에서 자신들의 삶을 계속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 가운데 우리는 크게 세 부류의 사람들을 볼 수 있게 된다. 바리새인으로 불리는 율법주의자들과 사두개인이라고 불리는 정치적 종교지도자, 열심당으로 불리는 반 제국주의자들이다. 이들은 후에 크게 두 부류로 나뉘게 된다. 주후 132~135년에 있었던 바르코크바 항쟁으로 인해 유대인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땅에서 살 수 없고 쫓겨나게 된다. 유대인들의 항쟁이 지긋지긋하던 로마는 유대인들을 내어 쫓고 그 땅을 다른 민족에게 내어주고 이름도 유대 사마리아에서 팔레스틴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게 된다. 그 이름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온 세상에 흩어진 유대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약속을 부여잡고 살았고 그 가운데서 종교적 열심이 더욱 충실해지는 사람들과 더 이상 종교에 붙들린 게 아닌 살 길을 찾아 나서게 된 이들로 나뉘게 된다. 이들을 동화파와 반동화파로 불리게 된다. 동화파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땅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의 영주와 타협을 하게 되고 유대적 요소들을 포기하는 삶을 선택하게 된다. 이와 반대로 반동화파들은 자신들의 종교성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그들만의 마을을 만들어 전통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유대인들의 역사는 박해의 역사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다. 그들은 역사 속에서 매순간 박해와 학대 그리고 수탈의 대상이 되었다. 유럽 기독교의 가장 암흑기였던 시기에는 유대인들에 대한 온갖 루머와 누명이 있었다. 그들은 이교집단 혹은 마녀사냥으로 화형을 당하기도 했고 한 마을이 몰살당한 역사도 있다. 이런 역사 속에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태생을 숨길 수밖에 없었고 살아남기 위한 방법들을 모색하게 된다. 무엇이라도 탁월하게 잘하는 분야를 만들어서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중세는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그들에게는 농노가 될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가장 천한 직업이었던 백정이나 청소 같은 일이었고 그 당시 금융이라는 것이 아직 발달 되지 않았을 시기에 돈을 만지는 것은 부정하고 사악한 일로 여겼기에 유대인들에게 허락되었다. 이후 산업혁명을 거치며 재화의 가치가 올라가게 되면서 이를 다루던 유대인들은 고금리와 환전 그리고 보석을 통한 거래를 통해 그 당시 유럽 안에서 엄청난 부를 쌓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2등 시민이었고 언제든지 밀려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천금 같은 기회들이 찾아온다. 프랑스의 시민혁명 이후 공교육이 사회적으로 크게 보편화 되면서 유대인들도 공부를 할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하게 된다. 그동안 억눌려왔던 것들이 폭발하는 것처럼 유대인들은 학업 분야에서 그들이 쌓은 부와 재력 그리고 네트워크를 통해서 유수의 대학들을 지원하거나 세우게 된다. 대표적으로 하버드, 예일과 같은 아이비리그 대학과 유럽의 소르본대학, 본대학 등 많은 학교들이 있다. 이런 대학들 안에서 유대인들을 인재로 키우는데 엄청난 지원을 하고 그 결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인슈타인, 메치니코프, 에를리히 같은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이 탄생하게 됐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이들 중 누구도 유대식 교육법인 하부르타나 탈무드 교육이라는 체계를 가지고 배우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가 아는 그런 책으로 배우는 교육을 배우지는 않았다. 다만 이들은 삶 속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부모님들을 통해서 어떻게 사고하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를 배웠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만 하더라도 그를 교육한 것은 학교이지만 그에게 창의적 사고와 지혜를 갖게 한 것은 그의 어머니였다. 유대인들의 놀라운 업적과 명예는 그냥 그들의 교육법이 좋아서만은 아니었다. 그들이 살아온 뼈아픈 역사 속에서 배워온 성경적 지혜,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허락하신 것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슬픈 역사 속에서 일궈낸 명예와 부이지만 그 너머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음을 이들이 깨달았으면 한다. 김요셉 목사
  • 2022.07.22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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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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