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Israel
라마단을 대하는 태도: 이스라엘의 공존과 화합을 향한 노력
  • 이 시기가 되면 이스라엘은 무척이나 긴장하게 된다. 이 시기에 두 개의 절기가 서로 만나게 된다.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절기인 부림절(Purim)과 한 달 동안 금식이 계속되는 이슬람의 절기인 라마단이다. 라마단은 이슬람의 절기로서 30일간 해가 떠 있는 동안은 금식을 하고 해가 지고 나면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음식을 먹으면서 하루 동안 주어진 알라의 은혜와 기쁨을 나누는 시간이다. 그리고 30일이 지나면 한 달 동안의 금식의 고행을 지킨 것을 기념하면서 성대한 잔치를 벌이고 먹고 마시는 축제를 즐기게 된다. 모두가 알다시피 예루살렘에는 황금돔 사원(Dome of Rock)이라는 이슬람의 성지가 있다. 매년마다 라마단 기간동안 무슬림들은 이 사원이 있는 예루살렘 성전 산의 알아크사 사원과 그 앞 광장에 모여서 기도회를 하게 된다. 금식 기간동안 기도를 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서 팔레스타인 무슬림들과 인근 요르단에서도 수많은 무슬림들이 성지순례를 오게 된다. 가뜩이나 서로의 관계가 좋지 않고 현재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와의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예루살렘은 더욱 긴장감이 올라가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갈등은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왔다. 그러나 이 갈등 속에서도 이스라엘은 무슬림들을 존중하면서 라마단을 지키게 하는 데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수많은 무장한 경찰들과 병력들이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예루살렘 구 시가지를 철통같이 보안하고 테러에 대비하고 있다. 누군가를 억압하기 위함이 아니라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갈등보다는 화합과 공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은 문화적인 다양성과 종교적 다양성을 존중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비롯한 다양한 종교적 그룹들이 공존하는 나라로서, 각 종교 그룹의 신념과 문화를 존중하고 지지한다. 이스라엘은 다양한 종교적 축제와 의식을 존중하고 지원함으로써 문화적 구분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라마단 기간, 이스라엘은 무슬림들의 신념과 전통을 존중하면서 라마단을 지키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스라엘의 도시들은 라마단을 축하하는 이벤트를 개최하고, 무슬림들이 금식을 지키고 기도를 드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또한, 이스라엘 정부는 라마단 기간 동안 무슬림들의 식사를 지원하고 그들의 종교적인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노력한다. 항간에 괴담처럼 떠도는 이스라엘이 무슬림들을 핍박하고 있으며 분리시켜 제한한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누구나 원하면 자신들의 종교를 섬길 수 있는 곳이 이스라엘이다. 하지만 라마단 기간만 되면 무슬림들과 유대인들 간의 갈등과 폭력은 여느 때보다 더 심하다. 구시가지의 다메섹문(다마스커스 게이트-아랍구역)에서는 팔레스타인 청년이 이스라엘 경찰을 향해서 칼을 휘둘러 죽이거나 다치게 하고 이스라엘 군인은 그런 테러범을 사살한 뉴스가 보도가 된다. 가장 거룩한 절기이며 금식의 절기에 누군가의 생명을 해치려 하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알라를 섬기는 이들에게 금식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오랜 시간 뒤틀린 시각과 정서는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야 함에도 이 절기만 되면 다들 극도로 흥분하여 공격하려는 경향으로 나타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스라엘은 갈등과 대립보다는 화합과 공존을 위해 나아가려 하고 있다.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며,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갈등을 해소하고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증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슬람은 스스로를 평화의 종교라고 말한다. 그러나 라마단 기간 동안 이들이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을 향하여 쏟아내는 말과 행동은 결코 평화와는 멀기만 하다. 시편의 기자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하였도다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시120:67). 라마단 기간동안 하나님을 갈망하는 이들에게 주님이 직접 찾아와 주셔서 참 평안을 얻게 하고 화평을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에게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갈등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노력과 무슬림들을 포함한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는 태도는 지역의 평화와 공존을 위한 중요한 발걸음임을 보여줍니다. 함께 노력하여 갈등을 극복하고, 모든 이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세상을 만들기를 희망합니다. 김요셉 목사
  • 2024.03.27

    이스라엘 독립의 아버지, 네게브에 소망을 가진 벤구리온
  • 전 세계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오는 비행기는 모두 텔아비브 국제 공항에 착륙한다. 수많은 순례객과 방문객이 들어오는 관문이 바로 텔아비브 인근에 위치한 벤구리온 국제공항이다. 공항을 나서는 문 앞에 장식된 벤구리온의 흉상이 모두를 반겨준다. 벤구리온을 지역 이름이나 공항의 이름으로 아는 이들이 많다. 혹은 벤구리온이 이스라엘의 초대 수상인 것을 아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정작 벤구리온이 누구인가를 물어보면 그 이상을 아는 이들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유명하지만 그리 유명하지 않은 인물 중 하나가 벤구리온인다. 이스라엘의 유명 인사들 중에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아는 인물이 별로 없다. 근대 이스라엘 역사를 공부하는 이들 중에서도 초대 수상이었던 벤구리온에 대한 이야기를 아는 이들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근대 이스라엘 역사를 말함에 있어서 벤구리온은 너무나도 중요한 인물이다. 다비드 벤구리온은 이스라엘 초대 수상이자 ‘쥬이시 에이전시(Jewish Agency, 유대인들의 이민과 삶을 돕던 민간기관)’의 수장이었던 인물이다. 우리가 사진으로 보게 되는 벤구리온의 얼굴은 양쪽으로 머리가 삐죽 솟아있는 고집스런 얼굴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이스라엘에 대해서 예언자적인 비전과 열정을 가진 사람인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대부분이 아는 것이 그가 초대 수상이며 제1차 중동 전쟁, 이스라엘의 독립전쟁을 이끌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이 아마도 전부일 것이다. 벤구리온의 일생은 뜨거운 열정의 인생이었다. 1886년 10월 16일 폴란드에서 출생한 그는 15세의 어린 나이에 테오도르 헤르츨의 『유대국가론』을 읽고 그의 강연을 들으면서 시온주의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자랐다. 아직 오토만 제국 시절이었던 1906년 그의 나이 20살에 이스라엘로 넘어와 그곳에 시온주의 청년단을 결성하여 정착촌을 만들고 신문을 발행하면서 그의 젊음을 시온주의에 바치게 되었다. 그 후 영국령 팔레스타인으로 넘어오게 되면서 그의 본명인 벤 그룬을 히브리식 이름인 벤 구리온으로 개명하고 히브리어로된 신문과 글들을 발행하였다. 그 시절이 그의 제일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기였다. 하지만 유대인의 부흥과 발전을 위해서 온 몸을 다 바쳤다. 이후 1914년부터 1948년 독립 이전까지 그는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유대국가의 필요성을 알리면서 살게 된다. 그는 수많은 사건들과 유럽의 반유대주의를 목격하면서 유대인들에게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국가가 필요함을 깨닫게 되고 수많은 반대와 비난 속에서도 국가 설립을 위한 일들을 끊임없이 해왔다. 그에게 있어서 유대국가의 설립은 그의 스승과도 같은 테오도르 헤르츨의 유산이며 그의 삶의 목표였던 것이다. 그의 꿈은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리는 그 땅에 유대인들의 국가를 세우는 것이며 그 국가는 모두가 안전하고 공평하고 평등하게 사는 것이었다. 그의 국가론에는 차별과 차등이 없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독립 선언서에는 유대인과 아랍인, 베두인 모두가 평등하게 살아갈 것을 언급하고 유대교와 이슬람, 기독교 모두가 존중 받는 국가를 세우는 것이 목적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스라엘 독립의 아버지인 벤구리온은 특히나 네게브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말년의 3년 반을 살았던 네게브 스데보케르 키부츠에는 그의 생가가 박물관으로 남아있다. 작은 집을 개조하여 살았던 그의 집무실 책상과 책장에는 수많은 서적이 빼곡하게 남아있다. 그의 삶 속에서 네게브는 이스라엘의 소망이었고 미래였다. 어렵게 얻은 땅이었지만 그 절반이상이 경작할 수 없는 불모지였다. 하지만 벤구리온은 그런 네게브의 광야가 푸르러지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고 이곳이야 말로 이스라엘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이야기 속에서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에 대한 열망은 남달랐다. 그는 이스라엘의 미래를 위해서 네게브가 발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를 위해서 그는 이미 1950년도에 태양열발전과 농업진흥을 위한 기술개발 그리고 더 나아가 네게브에 수많은 도시를 세워야 하는 비전을 내보이기도 했다. 벤구리온은 가장 무신론적인 모습으로 살아갔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평생을 이끌어 갔던 것은 성경의 롤 모델인 모세였고 신명기의 말씀이었다. 그는 종교적 인물이 아니었지만 신의 모습을 갈망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평생을 유대인의 안전과 발전을 위해서 힘써온 인물이었다. 그의 수많은 말들 중에 하나만 인용하며 그를 기억하고자 한다. “용기는…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하는 방법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방법에 대한 지식입니다.” “이스라엘에서 현실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적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도 벤구리온처럼 기적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용기를 가졌으면 한다. 김요셉 목사
  • 2024.02.23

    이스라엘의 중심, 텔아비브- 하나님을 떠난 탕자의 도시
  • 한국에서 성지순례를 떠난 비행기가 12시간 남짓의 시간을 날아서 이스라엘 영공으로 들어선다. 이스라엘을 향해서 날아오는 모든 국제선 항공편은 텔아비브 인근에 위치한 벤구리온 공항을 통해서 들어온다. 물론 일부 유럽에서 오는 노선 중에는 다른 작은 공항으로 향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항공편은 벤구리온 국제공항을 통해서 들어오게 된다. 그렇기에 텔아비브는 국제공항을 끼고 있는 이스라엘의 관문도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영화 중 ‘제로 모티베이션’이라는 영화가 있다. 군에 복무하고 있는 젊은 여성군인들의 갖가지 갈망과 갈등을 잘 그려낸 블랙 코미디 영화이다. 그 영화에 등장하는 한 여주인공이 바라는 것이 바로 텔아비브에서 군복무를 하는 것이다. 그녀는 텔아비브에 근무하면 자신이 무언가 도시여자가 된 것 같다는 표현을 한다. 그만큼 이 도시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선망을 주는 도시이다. 자유와 해방의 도시, 선진 문화와 경제적 중심의 도시 그것이 이스라엘의 텔아비브를 지칭하는 명칭들이다. 텔아비브는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선망의 도시이다. 가장 발달한 도시이며 가장 도시적인 곳이다. 뉴욕과 런던 그리고 다른 수많은 화려한 서구의 도시들과 비교하기는 그렇지만 높다란 마천루와 지중해를 끼고 있는 바닷가 그리고 이스라엘의 초기 시작과 함께 발달한 산업과 경제, 문화는 모두 텔아비브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7년 6일 전쟁을 통해서 예루살렘이 수복되기 전까지 이스라엘의 중심은 텔아비브이다.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할 때만 해도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차지하지 못했다. 이는 무려 20년이나 지나서야 얻게 된 것이다. 물론 그때도 이스라엘의 잠정적 수도는 예루살렘이라고 모두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텔아비브는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으로 현대 이스라엘 국가의 수도로서 한동안 그 역할을 했다. 지금은 모든 정치적 사회적 중심이 예루살렘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여전히 텔아비브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도시로서 그 기능을 하고 있다. 학문의 중심인 텔아비브 대학과 바르-일란 대학이 위치하고 있고 이스라엘 국립 발레단과 오케스트라를 품고 있는 문화의 중심지이다. 이스라엘은 민주주의 국가로서 국교는 없지만 공식적으로는 유대교 중심의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유대교의 율법이 사회규범으로 작용하면서 안식일에는 대중교통이 운행하지 않고 모든 상업 활동은 금요일 오후에 멈추고 안식일을 지키게 된다. 하지만 텔아비브는 오래전부터 이런 유대교적 사회 규범에서 벗어난 도시였다. 바닷가는 안식일이 되면 휴식을 하러 나오는 수많은 인파들로 붐벼 이곳에서는 수많은 카페와 음식점들이 영업을 하고 있다. 또한 수많은 클럽들과 술집들이 안식일에도 문을 열고 크고 작은 슈퍼마켓도 영업을 한다. 이스라엘의 다른 도시들과는 다른 삶을 보여주는 것이 텔아비브이다. 텔아비브는 발전된 문화와 사상 그리고 경제의 중심이 되기 이전에는 무척이나 가난한 어촌 마을이었다. 지금의 현대적인 텔아비브 도시에서 불과 10분 남쪽으로 내려오면 만나게 되는 작은 도시가 바로 우리가 성경에서 잘 알고 있는 욥바라는 도시이다. 욥바는 19세기 말까지 영국령 팔레스타인의 중심 해안 도시였다. 텔아비브는 유대인 정착인들과 가난한 어부들이 살던 촌이었다. 아랍인들은 욥바를 중심으로 상업을 이어가면서 부를 축적하고 있었으며 기반이 없던 유대인들은 북쪽으로 밀려 텔아비브라는 작은 마을을 만들어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 곳에 수많은 유대인들이 유럽에서 이주해 오고 발전시키면서 점차 경제의 중심이 텔아비브로 오게끔 만들었다. 그 당시 몇 안 되는 지중해를 통하는 항구를 개척하여 하이파와 텔아비브 그리고 욥바를 중심으로 팔레스타인의 해상 무역이 활발하게 시작됐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독립할 당시 독립선언문을 외쳤던 곳이 바로 텔아비브이고 여전히 그곳에 독립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신앙적 본질적 정체성을 나타내는 수도라면 텔아비브는 현대 이스라엘의 탄생과 경제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 도시 중 가장 다양한 인구분포도를 가진 도시가 텔아비브이다. 유대인과 아랍인 그리고 이민자들이 뒤섞여 있다. 빈부격차와 사회적 갈등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만큼 테러의 목표가 되는 도시이다. 미움과 반목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그 영향력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곳이 텔아비브이다. 현재 텔아비브는 화려하게 가장한 도시이다. 화려함과 능숙한 몸짓으로 사람들에게 많은 선망의 대상이 되고 기대를 갖게 하지만 아프고 슬픔이 가득한 곳이다. 수많은 교회와 단체들이 도시의 이곳 저곳에서 소외된 자들과 노숙자들 그리고 마약과 술로 중독된 이들을 돌보고 있다. 이스라엘의 가장 화려한 도시, 하지만 가장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도시가 바로 텔아비브이다. 김요셉 목사
  • 2024.01.26

    하누카와 성탄절, 하나님의 메시지
  • 벌써 2023년도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분쟁과 자연재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2년이 넘게 지속되고 있으며 튀르키예와 아프가니스탄을 강타한 지진은 아직까지도 복구가 되지 못하고 있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지만 이스라엘처럼 한 해의 마지막이 이토록 비극적이고 애통할 수 있을까 싶다. 지난 10월 7일 가자지구를 통치하던 팔레스타인 무장테러 단체인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향해 선포한 전쟁은 학살과 만행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가자지구를 초토화시키고 있다. 하마스를 박멸하겠다는 외침과 함께 시작한 전쟁은 하마스만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가자 모두에게 커다란 상처와 아픔 그리고 피폐함을 주고 말았다. 아직까지도 계속되는 전쟁은 240명의 인질들이 모두 풀려날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이스라엘의 선포처럼 여전히 진행 중이다. 모두가 괴로움 속에서 살고 있다. 이 전쟁 중에 두 가지 명절이 찾아왔다. 하누카라는 유대인의 절기와 성탄절이다. 모두가 기쁘고 즐거워야 할 명절이지만 올해는 조용하다. 빛의 절기인 하누카는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함이 있었다. 과거 이스라엘이 헬라 제국의 속국이 되었을 때 예루살렘 성전은 이방신의 제사로 더럽혀졌다. 이에 분연히 일어난 제사장 그룹들과 유대인들은 싸웠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을 탈환하고 이를 축하하기 위해서 수전절(하누카)이 생겨났다. 이 절기는 빛의 절기이면서 성전을 수복하고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회복된 날이다. 그래서 이날은 헌신의 절기라고도 한다. 엄밀히 말하면 성탄절은 성경에 나오는 절기는 아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성탄절을 기리는 것은 그 절기가 가지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죄사함을 통해서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를 다시금 회복시킨 것이다. 소망 없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오셔서 자신을 드러내시고 죄로 인해 무너진 영혼들을 회복시킨 날이 성탄절이다. 성탄절과 하누카, 모두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성이 회복된 절기이다. 이스라엘에서 두 절기가 올해는 너무나 조용하게 지나가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은 모두가 아파하고 있다. 하마스에게 납치된 가족들도 아파하고 전쟁 중에 전사한 군인들의 가족들도 아파한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주위의 친구와 친척들도 아파하고 괴로워 한다.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시민들도 힘들어 한다. 하마스가 모든 것을 붙들어 왔기에 그들이 의지할 곳이 아무데도 없다. 모두가 일상을 살아보려고 하지만 다들 어떻게 해야 할지 방황하고 있다. 그들의 삶이 예전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2000년 전 예수님이 태어났던 시대도 그랬다. 그리고 그 이전에도 그랬다. 언제나 아파하고 힘들어 하던 그 시기에 하나님은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하셨다. 제국을 물리치고 성전을 수복하게 하시고 하나님 그분이 직접 우리 가운데 임재하셨다. 빛으로 오셔서 세상을 밝히시고 어린 양으로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지금 이스라엘에는 소망이 필요하다. 가자에도 소망이 필요하다. 모두에게 소망이 필요하다. 이 어두운 상황 속에서 오직 하나님이 빛과 소망이 되신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속히 끝나길 기도한다. 전쟁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 하셔서 모두가 서로를 죽이기 위한 전쟁이 아닌 악을 도말하고 생명을 살리는 전투를 할 수 있도록 기도한다. 또한 수많은 군인들과 민간인들이 악한 세력들로 인해 더 이상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기도한다. 이 땅에서 더 좋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길 기도해 본다. 올 한해 이스라엘을 위해서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내년에는 반드시 더욱 아름답고 좋은 이스라엘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김요셉 목사
  • 2023.12.29

    가자는 어디인가?-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의 배경인 가자이야기
  • 가자는 성경에 등장하는 지명이다. 일명 가사 지방으로 불리는 곳이다. 가자는 원래 히브리어로 ‘아사’라고 불리며 시나이 반도 북쪽에 자리 잡은 작은 해변지역이다. 해변을 끼고 있는 비옥한 영토이며 그 당시 블레셋 다섯 족속이 다스리던 땅으로 삼손이 죽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풍성한 곡창지대를 끼고 있어서 강대한 부족국가를 이루고 있었다. 다윗 왕이 정복하지 못했던 곳으로 지금도 이스라엘 국가가 골치 아파하는 지역으로 남게 된 것이다. 이 지역을 다스리던 블레셋 족속은 헬라 제국의 알렉산더 대왕에게 멸절 당하고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 이후 제국의 통치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살게 되고 아름다운 해변지구는 지중해에서 유명한 휴양지가 된다. 사실 가자는 그 이후 수많은 제국에 속한 지역이었지만 단 한 번도 팔레스타인이라는 국가가 통치한 적은 없다.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할 당시 가자지구는 이집트의 영토였다. 이후 1967년 6일 전쟁 당시 이스라엘이 극적으로 아랍 5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얻게 된 영토가 가자지구와 시나이 반도 그리고 요르단의 서안지구였다. 하지만 유엔의 중재로 인해 서안지구와 시나이 반도는 넘겨주게 되고 가자지구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공영지로 다스리게 된다. 이후 1993년 라빈 총리와 아라파트 간의 평화조약이 맺어지면서 공식적으로 가자지구는 팔레스타인의 영토가 된다. 가자지구는 하마스가 다스리기 이전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곳이었다. 지금도 그 해변과 풍경은 지중해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곳이 하마스로 인해서 전쟁터가 되었고 끊임없는 분쟁의 장소가 되어 버렸다. 현재 가자지구에는 230만명의 팔레스타인들이 갇혀 있다. 많은 이들이 왜 이스라엘이 그렇게까지 가자를 봉쇄하고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된 곳으로 만들었는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가자지구가 2005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협정 가운데 팔레스타인의 영토로 완전히 넘어가고 2006년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선거에 하마스는 큰 승리를 얻게 된다. 이를 위험하게 본 미국과 이스라엘은 현 정부인 파타에게 손을 빌려준다. 서안지구에서 밀리게 된 하마스는 가자로 본진을 옮기고 가자지역에서 파타와의 전쟁을 승리함으로서 완전한 통치권을 갖게 된다. 가자지역은 하마스가 점령하기 전에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들이 적절하게 잘 살아오던 곳이었다. 그러나 하마스가 점령한 이후 이곳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가시가 되어버렸다. 2006년 이스라엘 정부는 가자지역 내의 21개 유대인 정착촌과 마을에 대해 강제 철수를 명령했다. 하루아침에 그들은 집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다. 하마스의 위협을 감지한 이스라엘 정부의 조치였지만 잘못된 판단이었다. 이로 인해 하마스는 이스라엘군의 견제 없이 손쉽게 가자지역 전체에 대한 통제권을 얻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이스라엘 남부에 커다란 위협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한 번의 잘못된 정치적 판단이 이스라엘을 지금까지 괴롭히는 가시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번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그런 배경에 놓여있다. 하마스는 이전에도 없을 가장 참혹하고 악랄한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유린했다. 하마스는 지난 20여 년간 반복적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혀 왔다. 그들은 때때로 미사일로 공격을 해왔고 이스라엘은 그런 공격들을 잘 막아왔다. 하마스의 공격에 대항하여 이스라엘도 꾸준히 가자지구 내의 하마스의 공격기지를 파괴해 왔지만 그로 인해서 피해를 보는 것은 일반 시민들이었다.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이스라엘이 인도적 차원에서 가자지구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가 본 상황은 사뭇 달랐다. 몇 년 전 학업을 하던 중 현지답사 학습이 있었다. 가자 인근의 군부대와 키부츠를 방문하는 시간이었는데 가자 접경 지역까지 가면서 보게 된 광경은 놀라웠다. 가자국경을 향해서 수백 대의 트럭이 줄을 서있었다. 모두 가자 내로 들어가는 물자를 실은 트럭이었다. 군과 경찰 그리고 국경 자경단이 트럭들을 조사하고 중립지대로 물자를 실어 나르는 것을 보았다.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하루에 적게는 800대에서 많게는 1,200대까지 물자를 들여온다고 한다. 모두 생필품과 식자재 그리고 건설자재들이라고 한다. 가자지구 폭격이 있고 난 후에는 더 많은 건설자재들이 들어간다고 한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가자를 폭격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공급해주는 물과 전기, 연료와 함께 들어오는 물자들을 통제한다. 그들은 중간에서 물자들을 빼돌려서 이집트나 인근 국가에 팔아넘기고 자금을 마련하여 미사일 재료를 사 모은다. 그 사이 가자 내의 시민들은 부족한 물자를 가지고 살게 된다. 그리고 그 부족함에서 오는 불만과 불평은 모두 이스라엘 탓이 된다. 이스라엘이 전기를 공급하는 시간에 제한을 두게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다. 이스라엘이 공급한 건설 자재들은 하마스가 터널을 만드는 재료로 쓰이고 무너진 집들은 그냥 내버려둔 채 자신들의 삶의 터전과 테러의 터전을 넓히는데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모든 비난은 이스라엘에게 돌리는 것이다. 그들의 거짓말이 가자 시민들의 삶만이 아니라 마음도 피폐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거짓이 가져오는 피폐함과 고통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다음 달에 계속> 김요셉 목사
  • 2023.11.24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어떻게 봐야 할까?
  • 가슴이 아프다. 공포와 경악 그리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마음의 고통이 휘몰아쳐 온다. 전쟁은 언제나 슬픈 일이다. 지난 10월 7일 이스라엘의 남부 네게브 서쪽 끝에 자리잡은 가자지구에서 미사일이 이스라엘 영토로 발사됐다. 1시간에 무려 2000발에 가까운 미사일이 이스라엘 남부와 중부를 향해서 날아왔다. 이스라엘의 미사일 방어체계인 아이언돔 시스템은 날아오는 미사일을 막기 바빴다. 많은 미사일이 이스라엘의 서남부 도시인 아쉬켈론과 아쉬돗 그리고 브엘세바 인근, 가자 인접 키부츠와 마을에 떨어졌다. 미사일이 발사된 시각 가자와 이스라엘을 나누었던 국경 철책이 하마스 무장 테러리스트의 공격으로 부서지고 인근 국경 경비 부대들은 습격을 받았다. 수많은 군인들이 죽거나 잡혀서 가자로 끌려갔다. 무너진 철책을 넘어서 1000여 명의 무장한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이 가자 인근 이스라엘 마을과 키부츠로 습격해 왔다. 마을에 들어서면서 보이는 사람들을 모두 사살하고 심지어 집집마다 습격해 들어가서 수많은 가족들과 아이들을 그 자리에서 죽이거나 인질로 끌고 갔다. 그 시간 키부츠 인근 광야에서는 음악축제가 열렸다. 전 세계에서 모인 청년들이 음악을 즐기며 축제를 즐기던 현장은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의 습격으로 아비규환이 되고 말았다. 이들은 도망가는 무고한 청년들을 향해서 총격을 가하고 로켓포를 쏘면서 거침없이 생명을 빼앗았다. 그 자리에서만 260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신문과 방송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이라고 하지만 이는 잘못된 말이다. 지금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이 아닌 가자지구를 점령하고 있는 테러단체인 하마스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현대 역사 이야기를 하면서 빼놓지 않고 거론되는 것이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이다. 이스라엘이 독립하면서 생겨난 팔레스타인 문제는 지금까지 어떤 해결책도 없이 계속 거론되어 왔다. 75년의 시간 동안 이스라엘이 얻은 것은 비난과 질타 그리고 끝없는 증오의 시선이었다. 과거 이스라엘의 독립전쟁은 팔레스타인과의 전쟁이 아니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공격해 온 것은 주변 아랍국가인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이집트, 이란이었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이 전쟁이 마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인 것처럼 바뀌었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침공한 점령국으로 탈바꿈 되었다. 이 전쟁은 하마스가 시작한 전쟁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에 대한 비난 여론만 보게 된다. 하마스가 죽인 희생자들의 이야기들은 가자지구 팔레스타인들의 비극에 대한 여론 몰이로 밀려나 버렸다. 심지어는 기독교인들 안에서도 이스라엘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헬로!이스라엘’을 읽어온 독자라면 이런 이야기들이 얼마나 뒤틀려 있는 거짓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차례 지면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역사와 팔레스타인 문제를 언급하고 설명한 적이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많은 이들이 이런 역사적 배경을 모르기에 조금은 과격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서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배경을 다루면서 이스라엘과의 변하지 않는 불편하고 어려운 관계성을 이야기해 보았으면 한다. 하마스는 1987년에 결성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이다. 팔레스타인 대부분의 정당이 무장단체이다. 그 중 하마스는 ‘이슬람 저항 운동’(혹은 이스라믹 지하드 운동)의 줄임말로서 그 단어 자체는 열정 혹은 용기를 뜻하는 아랍어이다. 뉴스를 통해서 보면 마치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위해서 싸우는 독립운동가처럼 그려지고 있다. 팔레스타인이 건재하고 그들의 독립을 위해서 우리는 이스라엘과 싸울 것이라고 한다. 과연 그 말이 맞을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하마스는 창설된 이후 지금까지 무장투쟁이라는 명목 하에 수많은 테러를 이스라엘에 저질러 왔다. 자살폭탄테러로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거나 저격 및 민간인 총격사건, 민간인 납치 살해 등을 조작해 왔으며 그 뿌리는 ISIS나 알카에다, 헤즈볼라와 같은 테러단체이다. 필자는 어떤 이들이 이 하마스라는 단체를 우리나라 독립 운동가들과 비교하는 것을 볼 때마다 화가 난다. 역사 속에서 우리 독립 운동가들은 일제를 물리치기 위해서 무고한 민간인들을 학살하거나 테러 하지는 않았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죽어도 마땅하다는 논리를 가진 하마스를 독립 운동가들과 같은 선상에 놓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하마스가 외치는 자유 독립은 허구이다. 그들은 독립을 위해서 싸운다고 하지만 그들의 배경에는 철저한 반유대주의와 유대인들에 대한 적개심이 깔려 있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이다.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의 멸절이다. 한 민족을 멸살하는 것이 목표인 이들이 외치는 독립과 종교적 핑계는 허울좋은 포장일 뿐이다. 지금도 그들은 가자의 민간인을 방패로 이스라엘과 맞서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들의 욕심과 야욕을 위해서 생명을 경시하며 거짓말을 일삼은 이들이 칭송받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들의 거짓을 간파하는 하나님의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이다. <다음달에 계속> 김요셉 목사
  • 2023.10.27

    어떻게 서쪽 벽은 성지가 되었나…통곡의 벽에 얽힌 이야기
  • 이스라엘을 방문하시는 분들이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언제 유대인들을 볼 수 있냐는 것이다. 보통 유대인이라고 하면 검은 모자에 검은 옷을 입고 서쪽 벽에서 기도하고 있는 이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들이 대표적인 유대인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대표적인 성지로서 서쪽 벽 혹은 통곡의 벽을 떠올린다. 우리가 흔히 보고 듣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유대인들은 항상 이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서쪽 벽은 예루살렘에서 가장 인상 깊고 잘 알려진 장소이다. 유대인들만 아니라 전 세계 기독교인들도 이곳을 방문한다. 이스라엘 하면 떠오는 상징이 되어버린 서쪽 벽 혹은 통곡의 벽이 어떻게 유대인들의 상징이 되었고 우리들은 그것을 대표적인 예로 듣고 알게 되었을까? 오늘은 이 서쪽 벽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짧게 나눠 보고자 한다. 현재 우리가 방문하는 예루살렘은 사실 1세기 예루살렘 성읍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실제적으로 예루살렘 성읍은 1세기 때 큰 화재와 지진으로 무너졌고, 제대로 성읍이 세워진 것은 15세기에 이르러서이다. 오스만제국의 슐레이만 황제가 꿈을 꾸는 가운데 세워진 예루살렘 성읍이 지금의 우리가 방문하는 예루살렘 올드 시티인 것이다. 그 올드 시티에서 가장 동쪽에 자리 잡고 감람산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성전산이다. 이 성전산에는 지금은 이슬람의 사원인 황금 돔 사원과 알아크사 모스크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성전산의 헤롯 성전이 세워졌던 자리의 남은 외벽 중 하나가 바로 서쪽 벽이다. 서쪽 벽의 하단은 1세기 헤롯 대왕이 세웠던 성전의 벽이 약 4~5 정도 남아있고 그 위로는 이후에 세워진 벽들이 서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서쪽 벽 지하에는 1세기 당시 헤롯 대왕이 만들었던 성전의 벽돌이 그대로 남아있으니 서쪽 벽을 방문하시는 분들은 꼭 서쪽 벽 지하에 자리한 유산박물관을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서쪽 벽은 말 그대로 성전의 서쪽 벽만이 남은 곳이다. 성지가 되려면 오히려 성전산의 뜰이나 동쪽 문이 더 성지가 되어야 할 것만 같지만 그렇지 않고 서쪽 벽만을 찾게 된 것은 이스라엘과 유대인의 역사 속에서 알게 되는 슬픈 배경이 있다. 솔로몬 성전이 완전히 파괴된 이후 다시 세워지게 된 제2성전과 그 성전을 확장시킨 헤롯 성전은 1세기 때까지 유대인들의 중심이었고 예배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A.D 70년 디도 장군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이후 유대인들에게는 더 이상의 성전은 존재하지 않았고 제사도 멈추게 되었다. 그 후 유대인들은 전 세계로 떠돌아다니는 민족이 되었고 그들의 예배 처소는 더 이상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슬람 제국을 거쳐 오스만 제국에 이르러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고 15세기 슐레이만 대제가 지금의 올드 시티(구 예루살렘)를 지은 이후 유대인들은 한시적으로 성전이 있었던 자리를 찾아올 수 있게 되었다. 그 자리가 바로 서쪽 벽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인들에게 거룩한 장소이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였다. 그 장소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들을 통곡하게 만들었고 그들이 서쪽 벽에 모여서 그 분통함과 슬픔을 기억한다고 해서 통곡의 벽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하필 서쪽 벽일까? 도대체 역사 가운데 어떤 사건이 서쪽 벽을 거룩한 곳으로 만들게 되었을까? 우리는 성전을 잠깐 떠올릴 필요가 있다. 성전은 현재 성전산의 중앙이 되는 곳에 자리 잡았다고 한다. 성전의 정문은 동쪽을 향했고 그 성전의 정문으로 향하는 것이 지금의 황금 문-흔적만 남은 문-이다. 황금문이 바라보는 곳이 바로 감람 산-올리브동산이다. 원칙적으로 그들이 더 깊은 종교적 장소를 선택하자면 성전산이나 혹은 동쪽 황금문을 선택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성전산의 출입이나 황금문으로의 접근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곳이 무슬림들이 사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허락된 곳은 서쪽 벽뿐이다. 그런데 이 서쪽 벽은 재미있게도 유대인들이 성전에서도 가장 거룩하게 여기는 곳과 연관되어 있다. 바로 지성소이다. 성전의 정문이 동쪽을 향해 있다면 성전의 가장 안쪽에 자리 잡은 지성소는 바로 서쪽 벽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다. 이것이 바로 서쪽 벽이 거룩한 장소가 된 이유이다. 서쪽 벽은 그렇게 거룩한 곳이 되었고 지금도 유대인들은 서쪽 벽에 모여 기도하면서 성전산 지하를 탐사하고 발굴하면서 더욱 성전에 관한 자료와 정보들을 모으고 있다. 유대인들의 가장 큰 소망은 성전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그들의 소망은 하나님의 얼굴을 다시 보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은혜를 얻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유대인의 왕이요 메시야이며 온 땅의 주인으로 오신 이를 보지 못하고 오늘도 서쪽 벽에 서서 그 벽을 어루만지며 잃어버린 성전을 사모하고 있다. 이미 온전한 성전 되시며 온전한 하나님 되신 그리스도를 그들도 어서 발견하기를 바라며 필자도 서쪽 벽에 손을 얹고 잠시 기도해 본다. 김요셉 목사
  • 2023.08.25

    예루살렘은 어떻게 성지가 되었나?
  •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수많은 순례객들이 빠지지 않고 방문하는 곳은 예루살렘이다. 벤구리온 공항에 도착하는 수많은 순례객들이 가장 기대하는 장소이다. 예루살렘은 누구에게도 빼놓을 수 없는 성지이다. 성경에 수없이 등장하면서 기독교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곳이며 하나님의 도성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신 장소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예루살렘은 성지가 되었을까? 예루살렘은 기독교인들에게만 성지일까? 아니면 유대교와 기독교 외에 다른 종교들도 예루살렘을 성지로서 여길까? 여기에 대한 답은 모든 종교는 아니지만 세계 3대 종교인 기독교,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의 성지가 예루살렘이다. 기독교와 유대교는 이해가 가지만 왜 이슬람은 이곳을 성지로 삼고 있을까? 세 개의 종교가 성지로 삼고 있는 예루살렘은 복잡하고 얽혀 있는 역사가 존재한다. 그 복잡한 이야기를 한번 간략하게 풀어보고자 한다. 예루살렘은 히브리어로 이르(도시)와 살렘(평화)이 합쳐진 말이다. 즉 평화의 도시라는 뜻이다. 예루살렘이 최초로 등장하는 성경 구절은 창세기 14장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높은 제사장인 멜기세덱을 만나는 장면에서 그를 살렘왕이라고 칭하고 있다. 이때 등장하는 살렘이라는 도시가 바로 예루살렘이다. 이후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사사기에 등장하는 여부스 성읍이다. 기브아 땅의 성읍 중 가장 큰 성이었다. 이 성읍은 이후에 다윗에 의해서 점령당하게 된다. 사무엘하 5장에는 다윗이 시온산성, 여부스 사람들의 성을 탈취하는 장면이 나온다. 다윗은 이 성읍을 탈취한 후에 다윗의 도시라 칭하게 되며 예루살렘으로 불리게 된다. 성경의 역사 속에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이면서 하나님의 도성으로 불린다. 다윗은 실로의 성막에 안치되어 있던 법궤를 이곳으로 옮겨 신앙의 중심으로 만들었고 솔로몬은 거대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지었다. 이로서 예루살렘은 거룩한 성읍으로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이 된다. 그러나 이 도시가 영원한 것은 아니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예루살렘은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서 점령당하고 솔로몬이 지은 성전은 파괴되었고 성읍은 폐허가 되었다. 누구도 예루살렘이 회복될 것을 기대하지 못했다. 하지만 B.C.5세기경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일부 이스라엘 백성들과 귀환하여 작게나마 성읍을 보수하였고 성전도 작게 다시 지었다. 이후 수많은 제국들이 지나쳐 가며 예루살렘을 거쳐 갔지만 로마제국 시대에 이르러 헤롯대왕을 통해서 예루살렘은 다시금 그 영광을 보이는 듯 했다. 헤롯이 지은 커다란 성전이 예배의 중심이 되고 로마의 통치로 인해서 이곳은 평화의 도시로서 되돌아 간 듯 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이후 예루살렘은 소란스러워 진다. A.D.70년 예루살렘 성은 불타게 되고 성전은 무너져 내리게 된다. 그 후 A.D.132년에 일어난 바르코크바 유대 항쟁으로 인해서 로마는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에 대한 철저한 진압에 나섰고 A.D.136년 모든 유대인들을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서 추방하게 된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이름은 ‘아일리아 카피톨리나’로 바뀌게 되면서 2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대인들의 중심지가 되지 못했다.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은 이후에 다시금 등장한다. 기독교가 로마의 중심 종교가 된 4세기 경 예루살렘에는 수많은 교회들이 세워지게 되지만 유대인들은 접근하지 못하게 된다. 7세기경 이슬람 제국의 칼리프인 아브드 알마리크는 유대인들의 성전 자리에 지금의 바위의 돔(황금돔사원)을 세우게 된다. 이 자리는 무하마드 선지자가 승천한 자리라고 한다. 14세기에 이르러 오스만 제국의 황제인 술레이만 대제는 꿈을 꾸게 되고 지금의 예루살렘 구시가지 성읍을 완성한다. 이후 이 성읍 안은 19세기 초반 유대교, 기독교, 무슬림, 아르메니안의 4개 구역으로 나뉘게 된다.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유대인들은 비로소 조금씩이나마 예루살렘으로 이주가 허락됐다.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한 이후 4번의 전쟁 가운데 제3차 중동전쟁인 6일 전쟁을 통해서 온전히 예루살렘 탈환을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로서 그리고 유대인과 기독교인 그리고 이슬람 종교의 중심으로서 굳건히 서 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모리아산으로 알려진 시온산,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슬람의 선지자 무하마드가 승천한 곳이라고 여겨지는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은 세 종교의 성지로서 지금도 굳건히 서 있다. 평화의 성읍이라는 이 성읍이 그 평화로움을 가져본 적이 얼마 없다는 것을 누구도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미디어에서는 예루살렘에서 벌어지는 시위와 테러 이야기를 한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성읍이지만 평화로움은 코로나 때만 잠깐이었던 것 같다. 감람산 자락에 올라 예루살렘을 바라보면서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이곳에서 그의 왕 되심이 선포될 때 진정한 평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김요셉 목사
  • 2023.07.21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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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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