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방 기자의 Everyday christian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을 통해 쓰여진 책
  • 세계 각 민족 33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돼 수많은 영혼 구원 개그우먼 조혜련씨가 남편의 전도로 교회에 다니게 되었을 때 이야기입니다. 처음 교회를 다니게 되었을 때 조혜련씨는 성경을 읽는 것이 재미있고 즐거워 늘 손에 들고 다니면서 찜질방이든 커피숍이든 어디를 가든 작은 소리로 읽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면 먼저 성경 이야기부터 꺼냈습니다.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 성경을 읽지도 않지? 진짜 이해가 안돼!”라며 속으로 혀를 찼다고 합니다. 기독교를 흔히 책의 종교라고 합니다. 성경책에 하나님의 뜻이 모두 계시돼 있다고 믿고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는 정신으로 이 책을 읽고 연구하고 묵상하고 설교합니다. 기독교 외에 다른 종교는 대개 혼자 명상을 하거나 몸을 수련해 도를 깨닫기를 추구한다거나 교주의 말을 맹종하거나 율법이나 강령을 지키는 것이 바른 신앙이라고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참 역설적이게도 기독교만큼 경전을 다양하게 번역하는 종교가 없습니다. 이슬람교는 코란의 공식 번역을 금지하고 있고 유교도 사서삼경을 원문 그대로 외우고 또 외웁니다. 유독 기독교만은 히브리어 헬라어 아람어로 씌여진 성경을 다시 라틴어로 영어로 한국어와 세계 각국의 말로 번역했고 지금도 새로운 말로 옮기고 있습니다. 한국어 번역본도 얼마나 많은지 가장 권위 있는 번역본을 펴내는 성서공회에서 낸 성경만 해도 개역판 개역개정판 표준새번역판 새번역판 등 시대에 따라 말이 바뀌듯 성경도 현대어에 맞게 여러 형태로 번역했습니다. 변함없는 진리의 하나님 말씀을 현대의 언어로 번역해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노력입니다. 성경책을 읽지만 책 너머에서 책을 통해 역사하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책의 종교라면서도 문자에만 집착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자유롭게 해석하도록 마냥 풀어놓지도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도 그 답은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씌여진 책’이라는 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성경을 쓸 때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문자로 다 담기 어려운 깊은 의미까지 녹아들도록 영감을 주셨고 읽는 사람들도 성경 속에 담긴 하나님의 영감을 함께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을 질타하신 이유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이들은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살리려 하기 보다 문자적인 율법을 지키는데 집착하다가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요즘 교회 안팎에서 기독교인들을 미혹시키는 이단들은 성경을 ‘있는 그대로’ 해석한다면서 자기네가 만든 교리를 마음대로 가져다 붙입니다. 언뜻 들으면 명쾌하게 성경을 풀어주는 것처럼 느끼지만 사실은 엉터리입니다. 참된 신앙은 성경을 열심히 읽되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목회자나 좋은 신앙서적, 신학서적을 참고하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함께 성경을 공부합니다. 그래도 자신이 성경을 읽으면서 생각한 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지 조심스럽게 묻고 조심스럽게 적용하면서 겸손하게 실천합니다. 그 속에서 사랑의 열매가 맺히는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지 지켜보면서 성경 속에 담긴 참 뜻을 구합니다. 조심스러우니까 때로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성경도 잘 모르는 것 아니야?”라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신앙이 성숙해졌다는 증표일 수 있습니다. 신앙이 깊은 사람일수록 더욱더 자신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과 맞는지 조심하게 됩니다. 성경을 읽고 또 읽고 연구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동안 이 지면을 통해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님들을 뵈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으며 또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실천하다보면 또 다른 곳에서 뵙게 되리라 믿습니다. 그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끝>
  • 2019.12.15 / 김용두 기자

    얼마 남지 않은 올 한해… 예수님의 사랑으로 배려하고 이해하자
  • 사람의 마음을 열어주는 것은 논쟁이 아니라 아름다운 꽃 한송이 주일 아침, 카카오톡 친구들 단체대화방에 한 녀석이 사진을 띄웠습니다. 탐스럽게 익은 홍시, 하얀 코스모스 그리고 이름 모르는 분홍색 꽃들 사진입니다. '올해 마지막 꽃들'이라고 한마디 덧붙입니다. 예배 드리러 가는 길에 사진을 확인하고는 저도 답장을 써줍니다. "길가에 핀 가을 꽃 보고 친구들 생각해 사진 찍어 보내준 니 마음도 꽃처럼 예쁘다." 지난 두 달간 참 큰 다툼이 있었습니다. 정치적인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서로 반목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단체 대화방에선 아예 정치와 관련된 얘기는 금지어가 되기도 했습니다. 저도 뭔가 말을 하려다 관두기도 했습니다. 왠지 서로 서운해지고 조심스러워진 것 같아 조금 씁쓸했습니다. 가을바람이 선선해질 무렵 친구가 보내준 꽃 사진이 유난히 더 고마웠던 이유입니다. 꽃과 열매를 찍은 사진이 상처 난 마음에 연고를 발라주는 듯 했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꽃 산 나무 이런 사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등산길에 휴대폰을 꺼내 바위와 나무와 꽃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모습이 참 고리타분하다 생각했습니다. 예전 싸이월드 시절부터 그랬습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비싸고 화려한 음식 먹는 사진, 카페에서 음료와 빵 찍은 사진을 올리는 사람을 보면 허세를 부리는 것 같았습니다. 대신 저는 블로그나 페이스북으로 사회 현안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주장, 남들이 생각 못했던 촌철살인의 시각을 소개하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좋아요'를 많이 눌러주면 제 자신이 남들보다 조금 더 앞서가고 뛰어난 것 같은 착각에 빠졌습니다. 소셜미디어는 자유로운 공론의 장이 되어 가장 좋은 의견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모아주리라 기대했습니다.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습니다. 논쟁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깊이 생각해보기 전에 쉽게 찬성이냐 반대냐 입장부터 정했습니다. 일단 자기 입장을 정하고 나면 다른 편의 주장을 경청하기보다 성급하게 반박하고 비웃기 일쑤였습니다. 특히 정치적인 주제로 논쟁을 하면 모두 교회를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들인데도 서로 손가락질하고 비난을 퍼붓곤 했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만 서로 '좋아요''멋져요'를 누르다보니,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기는 갈수록 어려워졌습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되었지만 오히려 더 고립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어차피 논쟁을 해봐야 끼리끼리 모여서 '좋아요'를 누르는 걸로 끝날 거라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재미난 영상이나 노래, 자연을 찍은 사진를 공유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현실을 외면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을 열어주는 것은 치열한 논쟁이 아니라 아름다운 꽃 한송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는 얘기입니다. 얼마 전 한 곡의 노래를 알게 되었습니다. 노래 제목이 '진달래'였습니다. "추운 겨울에 일을 밖에서 하다보니 손발이 시리고 참으로 곤하다. 인생이 이런 거지. 산다는 것이 쉬운 일 아니야. 저기 저기 보세요. 콘크리트 틈에 진달래가 피었네. 아름다운 진달래 나를 보려 찾아왔구나. 진달래야 너는 원망도 않고 모두를 반기는구나. 너를 만나 기쁘다. 안녕, 감사해." 혹시 카카오톡, 페이스북, 유튜브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말다툼을 벌이다 멀어진 친구가 있습니까? 벌써 11월인데, 오늘은 예쁜 낙엽 사진이나 한강 풍경 사진을 보내면서 이렇게 덧붙여 보면 어떨까요. "친구야, 예쁜 걸 보니 니 생각이 난다. 속상했지? 미안해. 예수님의 사랑으로 용서해줘. 우리 꽃처럼 다시 웃자."
  • 2019.11.10 / 김용두 기자

    유튜브와 아이들
  • 휴대폰으로 유튜브 그만 보고 책 좀 읽으라고 아이에게 잔소리를 했습니다. 애 키우는 집마다 비슷한 사정일겁니다. 그거 아세요? 책이 처음 나왔을 때도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책 그만보고 일 좀 하라”고 잔소리를 했다고 합니다. 책에 담긴 옛이야기나 꾸며낸 사연이 너무 재미있어서 젊은이들이 푹 빠지는 바람에 사회문제가 됐다고 합니다.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면 늘 젊은이들은 환호하고 어른들은 걱정했나봅니다.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더 어린 아이들에게 ‘게임 조금만 하고 유튜브로 공부 하라’고 잔소리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요즘 유튜브 영상을 만드는 일을 합니다. 일 때문에라도 유튜브를 많이 봐야 합니다. “아이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이겠네요”라고 누군가 얘기한다면 “하하… 그럴까요?”라고 답합니다. 유튜브에는 1분마다 600분 분량의 영상이 올라온다고 합니다. 다 보기는 불가능하니 잘 골라야 합니다. 궁금한 주제를 담은 영상이나 재미있어 보이는 영상 한 두개를 보면 유튜브에서 척척 제가 좋아할만한 영상을 추천해줍니다. 어른도 계속 빠져서 보게 만드니 아이들이 유튜브만 들여다보는 게 이해는 됩니다. 유튜브에는 다른 영상에 비해 기독교 영상이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목사님들의 설교나 집회에서 부른 찬양, 간증이 많은데 아무래도 젊은이나 아이들이 보기엔 재미가 좀 떨어집니다. 유튜브에서는 이단도 조심해야 합니다. 기독교 분야의 인기영상으로 분류된 유튜브 채널을 찾아보면 교회에서 이단으로 규정한 곳에서 만든 영상이 많습니다. 자기들끼리 ‘좋아요’도 많이 누르고 조회수도 올려주니 교회나 기독교단체들이 만든 영상보다 더 쉽게 검색이 됩니다. 가짜 뉴스 영상도 많습니다. 진짜 뉴스보다 더 자극적이고 단순해서 진실이라고 믿기 쉽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유튜브 보지마라고 잔소리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책도 좀 읽고 밖에 나가 바람도 쐬면 좋겠는데 말이죠. (아마 요즘 아이들은 밖에 나가면 친구들끼리 모여 또 유튜브 볼 겁니다. 흑흑.) 유튜브를 못 보게 하는 건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어차피 아이들이 유튜브로 정보도 얻고 공부도 하고 설교도 듣는다면, 좋은 영상을 찾아 고를 수 있게 또 미리 유튜브 보는 시간을 정해 놓고 절제할 수 있게 가르치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제 생각에 가장 좋은 유튜브 교육은 직접 영상을 만들어보는 겁니다. 직접 영상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에게 ‘좋아요’를 받는 창작자, 요즘 말로 크리에이터(Creator)가 되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이들은 더 말할 것도 없지요. 친구들끼리 모여서 영상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가게 되겠지요? 무슨 내용을 어떻게 촬영해서 편집할까 고민하다보면 짧은 유튜브 영상 한편을 만드는 데에도 얼마나 많은 공부와 노력이 필요한지도 저절로 깨닫게 될 겁니다. 또 어떤 영상이 진심을 담아 만든 좋은 영상인지, 어떤 영상이 쉽게 인기만 끌려고 자극적으로 만든 엉터리 영상인지 분별할 수 있는 눈도 생깁니다. 영상을 만드는데 시간이 제법 많이 듭니다. 아마 한 두편 만들다보면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할테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계속 영상을 만들겠다고 하면 요즘 인기 있는 직업인 유튜버가 될 자질이 있을지 누가 압니까? 이왕이면 교회를 주제로 한 영상을 만들어보게 하면 어떨까요? 우리 교회를 소개하는 영상, 교회를 다니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재미있는지 얘기하는 영상,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인형이나 그림으로 들려주는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면 좋은 전도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요즘엔 교회를 찾는 사람들이 미리 유튜브에서 목사님 설교나 교회 소개 영상을 찾아보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리고 자녀와 함께 유튜브를 보시게 되면 제가 만들고 있는 ‘미션라이프’ 채널의 영상도 한번 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꾸벅! 김지방(국민일보 기자)
  • 2019.10.13 / 김용두 기자

    명태 알탕 그리고 명란파스타…
  • 하나님이 주신 생물 지혜롭게 다스려야 먹는 일은 우리가 웬만해선 하루도 빼놓지 않는 일입니다. 먹는 데에도 기독교적인 식사와 그렇지 않은 식사가 있을까요? 꼭 기독교적이라고 말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더 기뻐하시는 식사법은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 명태는 가장 값싼 생선의 대명사였습니다. 궤짝에 여러 마리를 집어넣어 상자 째로 팔 정도였으니까요. 이름도 다양합니다. 잡은 그대로면 생태, 얼리면 동태, 말리면 명태, 새끼는 노가리라고 불립니다. 구워 먹고 튀겨 먹고 국 끓여 먹는 건 기본입니다. 알은 명란젓, 내장은 창란젓, 아가미는 아가미젓을 만들어 먹지요. 알만 모아서 매운탕처럼 끓여내는 알탕은 가장 값싸게 생선 맛을 볼 수 있는 요리였지요. 이 명태가 귀한 몸이 되었습니다. 이미 80년대부터 동해바다에서 잡히는 양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2008년부터 사실상 명태 어획량은 0이 되었다고 합니다. 동해 바다에서 찾아보기도 힘들어서 산 채로 잡은 명태는 정부가 한 마리에 50만원을 주고 사들인다고 합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새끼까지 잡아서 구워먹고 알마저 젓을 담그고 탕을 끓여 먹으니 제대로 번식할 기회마저 없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한국인의 명태 소비량은 연간 30 만톤이 넘는다고 하니 그만큼 또 러시아나 일본 혹은 미국이나 캐나다의 바다에서 잡은 걸 수입해 와야 합니다. 지구의 70%가 바다이고 물고기들은 한 번에 수 만개의 알을 낳으니 수산자원은 말 그대로 무궁무진할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이미 명태의 사촌인 대구가 멸종 위기에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알을 품은 암컷을 산 채로 장을 담그는 걸 최고로 치는 꽃게나 알 자체가 최고급 요리로 꼽히는 철갑상어와 연어도 밥상에서 사라지게 될지 모릅니다. 창세기 1장 2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시고는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는 과연 바다의 물고기를 포함한 모든 생물들을 잘 다스리고 있는 걸까요? 선진국에선 취미로 물고기를 잡는 데에도 엄격한 제한이 있습니다. 캐나다의 경우 개인이 취미 삼아 낚시를 하려고 해도 반드시 면허를 받아야 합니다. 면허는 1년에 몇 만원에 해당하는 돈만 내면 쉽게 받을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물고기는 잡으면 안 되는지 배우게 됩니다. 크기가 손바닥보다 작은 물고기는 잡아도 놔줘야 하고 크기가 크더라도 암컷은 무조건 놔줘야 합니다. 또 하루에 한 사람이 잡을 수 있는 물고기도 딱 2마리로 제한됩니다. 물고기가 알을 낳고 수정하는 산란기에는 아예 낚시를 금지하기도 하고 지역에 따라 물고기가 많이 모이는 곳은 1년 내내 낚시를 못하게 합니다. 한마디로 취미로만 낚시를 해야 하고 물고기들이 알을 낳고 번식하는 걸 방해해선 안 된다는 거죠. 만약 이런 규제를 어기고 규정보다 조금이라도 더 큰 물고기를 잡았다가는 몇 십 만원에 해당하는 벌금을 내야 합니다. 낚시꾼이 모이는 곳마다 감독관이 있어서 아주 강력하게 처벌합니다. 낚시면허제도는 캐나다만 아니라 미국 독일 프랑스 같은 여러 선진국에서 시행되고 있습니다. 물론 바다에서 물고기가 사라지는게 낚시꾼만의 책임은 아닙니다. 갈수록 뜨거워지는 지구온난화 탓도 있고 훨씬 더 많은 물고기를 잡는 상업 어선들이 얼마나 법규정을 잘 지키는지도 따져봐야 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기독교인이라면 낚시꾼이나 어부들만 탓할 게 아니라 나부터 물고기까지도 잘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떻게 실천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알탕이나 명란파스타 주문을 줄이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요? 우리 아이들이 명태를 그림책에서 멸종 동물로 배우기 전에 말입니다. 김지방(국민일보 기자)
  • 2019.08.11 / 김용두 기자

    삶의 현장에서 믿음의 영성 드러내는 크리스천
  • 예수님과 함께 고난 이겨낼 때 우리의 신앙 더욱 굳건해져 A 목사님은 주일을 제외한 다른 날에는 남의 집에서 나무를 다듬고 잔디를 깎는 일을 합니다. A 목사님은 저와 함께 캐나다 밴쿠버의 대학원에 다니는 학생입니다. 여기서 공부하는 학생들 절반 이상이 목사님 전도사님 선교사님이십니다. 평생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일해오신 분들이지만 캐나다에 와서는 대부분 A 목사님처럼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공부도 하고 가족도 먹여 살려야 하니까요. 정원사 일을 하는 A 목사님은 "교회에서만 아니라 일터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직접 실천해보려고 노력한다"면서도 "솔직히 일을 하다보면 힘들다는 것 말고는 아무 생각도 안 난다"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평신도들이 주일에 교회 와서 봉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가운데 하는지, 얼마나 소중한지 이제야 알 것 같다"고 했습니다. A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니 두 가지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하나는 어느 목사님께서 사역하는 교회를 옮기시는 중에 잠깐 일반 직장에서 일을 했는데, 여름성경학교를 위해서 휴가를 쓰겠다고 했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고는 결국 사표를 썼다는 얘기였습니다. 이 목사님은 "내가 얼마나 세상을 몰랐는지 뒤늦게 깨닫고 펑펑 울었다"며 "그동안 교회학교 교사나 부장 장로님이 여름성경학교 봉사하는 걸 당연한 일로 생각하고 참석 못하는 사람을 질책하기도 했는데 정말 미안하고 가슴 아팠다"고 합니다. 주일만 아니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도 신앙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은 쉽게 하지만 사실 교회에 나오지 않는 평일, 더구나 직장이나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인간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성경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우선 일이나 관계에 집중하다보면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고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하더라도 그게 어떤 것인지 구체적인 답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저의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제가 아직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머니는 혼자 4명의 아들과 딸을 키우셨습니다. 어머니는 늦은 밤 집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찬송가를 부르다 자주 우셨습니다. "험한 시험 물속에서 나를 건져주시고/노한 풍파 지나도록 나를 숨겨주소서/주여 나를 돌아보사 고이 품어 주시고/험한 풍파 지나도록 나를 숨겨주소서."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매일 저녁 단칸방에서 드리던 그 예배가 주는 위로와 힘 덕분에 저희 가족이 어려운 시절을 견뎌낸 것 같습니다. 때로는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이 우리에게 오히려 유익이 될 때가 있습니다. 고난을 이겨내기 위해 예수님을 기억하고 의지한다면 고난을 거친 뒤 우리의 믿음은 더 굳건해지기 때문입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도 그리스도인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역경과 유혹에 굴복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인답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영적 체력 단련의 시작입니다. 근육을 기르려는 사람이 일주일에 하루만 운동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듯이 우리도 영적 체력을 기르려면 평일에도 직장에서도 가정이나 학교에서도 항상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제가 지난 1년 동안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에서 공부한 주제가 바로 '교회의 일만 아니라 세상에서의 일도 거룩하고 또한 거룩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악한 세상에서 교회와 기도원은 영성의 보고입니다. 그러나 도둑과 사기꾼 탈세범이 우글거리는 치열한 삶의 현장인 세상에서 기독교 영성은 더 잘 드러납니다. 아무리 좋은 설교를 많이 듣고 공부를 많이 해도 그것을 영적 근육으로 바꿀 수 있는 행함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그 영성은 거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공부를 통해 마음에 새기게 됐습니다. 김지방(국민일보 기자)
  • 2019.07.1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서로 사랑하라… 구원자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절대희망
  • 사랑과 용서만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참된 진리 저는 기자입니다. 기자라는 직업은 남의 잘못을 들춰내고 비판하는 일을 중요한 사명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기자가 되길 원했던 것도 우리 사회의 감춰진 비리를 찾아내고 바로 잡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기자로서 20년 가까이 일하면서 많은 사람을 비판했습니다. 대통령부터 장관, 국회의원, 재벌 총수, 경찰과 판사까지 수많은 사람을 향해 공개적으로 꾸짖었습니다. 제가 쓴 기사 때문에 어떤 사람은 자리에서 쫓겨나고 어떤 사람은 공천을 받지 못해 정치에서 은퇴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만 아니라 잘못된 정부 정책, 비합리적인 행태, 왜곡된 가치관도 수없이 지적하고 잘잘못을 가려보려 했습니다. 정부가 잘못을 바로 잡고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꼈습니다. 저보다 더 훌륭한 기사를 쓰고 더 많은 변화를 이룬 언론인들도 많습니다. 권력이 바뀌기도 하고, 오랜 관습이 뒤집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생각만큼 많이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좋은 의도로 시작했던 변화가 나중에는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것도 보았습니다. 더 가슴 아픈 것은 20년 전과 비교해 보면 요즘엔 오히려 서로 손가락질하고 혐오하는 모습이 더 심해진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었습니다. 기자들마저 쓰레기에 비유하며 조롱하는 장면을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소통과 상호 이해, 사회의 발전을 사명으로 삼는 저널리스트로서 깊은 좌절을 느꼈습니다. 분열하고 미워하고 대립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저는 역사가 남긴 깊은 고통을 보았습니다. 한국인이 20세기에 겪은 식민지 경험과 전쟁의 공포가 남긴 분노와 불안이 지금도 우리를 괴롭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독립과 개발과 성장을 이루면서 독재와 싸우고 민주화를 성취한 우리의 역사는 자랑스럽고 위대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마음속에는 미움과 원한이 너무 많이 쌓여 버렸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역사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이 공포와 분노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저는 저희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다른 나라의 사례가 있는지 찾아보았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제가 찾은 사례들이었습니다. 수백 년간 노예생활을 했던 흑인들, 하루에 수백 명씩 처형했던 독재정권, 부모를 죽인 원수의 손에 길러진 아이들… 그 이야기들을 따라가면서 솔직히 제 마음 한켠에선 안도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우리만이 아니었구나. 이념 갈등과 식민주의와 전쟁과 독재 속에서 서로를 죽일 만큼 미워하고 괴로워했던 것은 한국인만 겪은 일이 아니었구나.” 더욱 위로가 되었던 것은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혹독한 고통 속에서도 사랑의 빛을 잃지 않은 사람들을 만난 일이었습니다. 그 분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제 삶의 가치관도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세상을 진정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혹독한 비판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믿게 되었고, 인간의 고통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삶에서도 더 깊은 의미를 발견했습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 서로 사랑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이야말로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진리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은 때론 너무 느린 것처럼 보입니다. 잘잘못을 엄정하게 가려내고 때로는 상대를 쓰러뜨려서라도 하루 속히 세상을 변화시키는 길이 더 나은 방법이라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폭력과 비난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사랑만이 세상을 참으로 변화시킨다는 것, 그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순복음가족신문 지면을 통해서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님들과 만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끝>
  • 2019.06.0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죽기까지 우리 죄를 용서하고 구원하신 주님의 사랑
  • 참된 용서 통해 마음속 깊은 미움 떨칠 수 있어 구약성경 사무엘하 16장에는 다윗 왕이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왕위를 잃고 예루살렘에서 도망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들에게 쫓겨 나가는 초라한 다윗 앞에 시므이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시므이는 다윗에 앞서 이스라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의 먼 친척이었습니다. 그는 다윗을 자기 집안의 원수라고 여긴 듯 합니다. 다윗을 향해 돌팔매질을 하며 이렇게 욕설을 퍼붓습니다.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야훼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야훼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하는지라"(삼하 16:7~8). 똑같은 구절을 쉬운 말 성경으로 읽으면 시므이가 다윗을 얼마나 저주했는지 좀 더 생생하게 알 수 있습니다. "꺼져! 꺼져! 이 피비린내 나는 살인자야! 네가 피를 많이 흘렸으니 너는 이제 폭삭 망하게 된 거다." 시므이는 자기 집안의 어른이었던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죽은 것이 모두 다윗 때문이라고 오랫동안 원망했던 것 같습니다. 다윗이 이런 신세가 된 것은 사실 자신의 책임이 큽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탐하는 죄를 저지른 직후 왕위를 이을 왕세자로 삼았던 아들 암논이 배다른 누이 다말을 성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아버지의 잘못을 아들이 똑같이 되풀이한 셈입니다. 다말의 친오빠였던 압살롬은 2년 동안 이를 갈다가 아버지 다윗을 꾀어 암논을 죽이는 복수를 하고 아버지의 왕좌까지 빼앗는 복수를 했습니다. 다윗은 여기에 더해 자신의 처갓집이라고 할 수 있는 사울의 집안 사람 시므이에게서 저주와 욕설을 듣게 됐습니다. 다윗의 신하가 시므이를 죽이려 했지만 다윗은 만류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몸에서 태어난 아들도 나를 죽이려 하는데 하물며 사울의 집안사람이야 더 말해 무얼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저주하라고 시켰다면 어찌 막겠습니까. 오히려 내가 이런 수모를 당하는 모습을 주님이 불쌍히 보시고 좋은 일로 갚아주실지 누가 알겠습니까." 다윗이 아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왕좌를 되찾자 신하들은 "시므이를 처벌해야한다"고 건의했습니다. 다윗은 이때도 시므이를 감쌌습니다. 자신을 모욕한 시므이를 용서해주고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뉘우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다윗왕은 죽음을 앞두고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을 할 때 "꼭 명심할 것이 있다"며 이렇게 당부를 합니다. "내가 마하나임으로 피신할 때 시므이가 독한 말로 나를 저주했다. 내가 하나님께 맹세하며 그를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하긴 했지만 그에게 죄가 없지 않다. 그를 곱게 죽게 해선 안된다"(왕상 2:8~9). 결국 솔로몬은 시므이가 도망친 노예를 찾기 위해 예루살렘 밖으로 나간 일을 핑계 삼아 처형합니다(왕상 2:36~46). 다윗은 생전에 시므이를 용서한 듯 보였지만 마음 속 깊이 원한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를 처벌하지는 않았지만 죽기 직전 아들 솔로몬에게 복수를 당부하는 무서운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동안 이 지면을 통해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 주기철 목사,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 등 용서와 화해로 나아가려고 노력한 많은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용서와 화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다윗마저도 끝내 자신을 저주한 시므이를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마음 깊이 미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나의 힘으로 용서가 안 된다고 너무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겸손히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사랑의 힘을 부어주시길 기도합시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한 것처럼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소서"라고 가르쳐 주신 주님께 말입니다. 김지방(국민일보 기자)
  • 2019.05.12 / 김용두 기자

    아버지와 오빠들을 죽인 사람들까지 용서하는 믿음의 삶
  • 손양원 목사의 딸 손동희 권사의 참된 사랑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불리는 손양원 목사님 이야기는 많은 분들이 아실 겁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신사참배를 반대해 옥고를 치르셨고, 순천의 나환자시설 애양원에서 목회를 하다 1948년 혼란스러운 해방정국에서 벌어진 군사반란 사건 와중에 두 아들을 잃었는데 아들을 숨지게 한 같은 또래의 학생을 양자로 삼고 사랑을 베푼 분이십니다. 손 목사님은 결국 6.25전쟁 때 인민군에 총살당해 순교하셨습니다. 손 목사님에게는 모두 5명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그 중 장녀이면서 하루아침에 두 오빠를 잃은 동희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가장 사랑하고 따랐던 오빠를 하루아침에 공산주의자의 손에 잃은 것만 해도 커다란 충격인데 오빠를 죽인 사람을 자신의 집에 데려와 오빠라고 부르라니요. 거기다 아버지는 아들을 죽인 공산주의자들을 용서했지만 그들은 끝내 아버지까지 죽였습니다. 동희는 아버지만 아니라 하나님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과연 하나님이 계시기는 한 것일까, 의문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교회를 나가기는 했지만 예배당 장의자에 앉아만 있었을 뿐 그의 마음은 닫혀있었습니다. 2008년 무렵 제가 만난 손동희 권사는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토로했습니다. “내 가슴은 돌이 되었고 내 입술에선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만 나왔습니다. 두 오빠의 죽음이 입술의 슬픔이었다면, 아버지의 죽음은 영혼의 독이 되어 내 온몸에 퍼졌습니다.” 손 목사에게 이끌려 양자가 된 안 모 군의 인생도 평탄치 않았습니다. 그는 목사가 되기 위해 부산의 신학교에 진학했지만 사람들은 그를 손가락질 했습니다. ‘손 목사도 그가 죽였다’는 헛소문까지 있었습니다. 그는 끝내 신학교를 그만두고 교회와 인연을 끊어버렸습니다. 평생 죄책감에 시달렸던 안 군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다시 하나님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는 편도선암으로 죽음을 기다리던 1979년 동희를 찾아갔습니다. 간신히 그를 찾아간 안 군은 눈물을 쏟았습니다. “동희야. 나 지금 집으로 돌아가면 곧 하늘나라로 간다. 내 죽어서 천당에 가면 네 두 오빠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겠다.” 동희도 그 순간에는 안 군이 불쌍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를 붙잡고 함께 울었습니다. 그 것이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그는 죽기 전 아들 경선에게 “신학교에 가서 주의 종이 되거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신학생이 된 아들은 뒤늦게 아버지의 과거를 알게 됐습니다. 그 역시 아버지를 원망하며 죄책감에 시달리다 급성폐렴에 걸렸습니다. 한쪽 폐를 잘라내는 큰 수술을 받고 병실에 누워 망연자실해 있던 그에게 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해도 나는 네 아버지를 십자가의 은혜로 용서했다. 다른 사람이 너를 다 욕해도 넌 내가 십자가에서 피 값으로 산 아들이다.” 그는 다시 신학교로 돌아가 졸업하고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2004년, 그는 용기를 내어 국민일보에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했습니다. 순교자의 양아들이었던 아버지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았지만 자신이 목사가 되어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애양원 교회에서 그를 초청했습니다. 처음으로 그곳을 찾아 설교를 하기 위해 강단에 섰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과 손 목사가 겪었던 고통이 물밀 듯 그에게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10분 동안 눈물만 흘리다 내려왔습니다. 애양원의 오랜 성도들이 손 목사를 대신해 그를 말없이 끌어안았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단번에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지만 그 용서를 받아들이고 실천하는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이제는 은퇴권사가 된 동희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늘나라로 간 오빠에 대한 그리움은 지금도 남아있어요. 용서와 화해, 하루아침에 이뤄지긴 힘든 것 같아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김지방(국민일보 기자)
  • 2019.04.14 / 김용두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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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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