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실 교수의 행복한 가정만들기
아이들의 뇌를 이해하자!
  •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고자 하는 마음은 모든 부모님들의 바람이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은 성공적인 방법을 몰라 힘들어 한다. 부모가 되기 전에 아이들의 뇌에 대한 공부나 자녀 교육에 대한 지식을 습득한다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고 아이들을 성공적으로 키울 수 있다. 엄마 뱃속부터 약 7살 경까지 열려있는 아이들의 우뇌는, 많은 정보를 입력할 수 있는 대용량의 뇌이다. 우뇌는 모든 사물을 이미지로 찍는 역할을 하는데, 행복한 부모님의 모습이 찍히면 아이들은 저절로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라난다. 그러나 싸움을 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찍히면 아기들의 뇌는 불안한 호르몬을 저축하여 자라면서 자신감이 없고 우울한 성격을 갖게 돼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공부하는데 큰 지장이 생긴다. 아이들의 우뇌에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만약 식사를 하면서 부모가 남의 흉을 본다든지 자녀를 향해 잔소리를 하게 되면, 이는 자식들에게 음식과 함께 독을 먹이는 일이다. 남을 자주 험담하는 부모를 둔 아이들은 신앙심이 약해질 뿐 아니라 자신의 부모에게도 효도심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우뇌 속에는 창조력을 키울 수 있는 기능이 있다. 이를 본능적으로 발달시키기 위해 아기들은 무엇이나 눈에 보는 대로 만지고 입에 넣어 탐험해 본다. 이때 부모들이 안전하게 모든 것들을 탐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아이는 창조적인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다. 그러므로 만 3살 미만의 아이에게 “안돼! 하지마! 그만둬!”같은 부정적인 말은 금물이다. 아이들의 우뇌 속에는 명화를 이해 할 수 있는 기능도 있다. 유명한 화가들의 명작으로 아이들은 감정지수 (EQ)를 키울 수 있다. 또한 음악적 기능의 뇌도 들어있어, 어린 시절에 유행가 대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바흐, 모차르트, 하이든, 쇼팽 등의 음악을 들려준다면 아이의 뇌는 발달될 수 있다. 아이들이 하루 2시간 정도 명곡을 듣게 되면 언어적인 자극과 수학적인 자극에도 큰 도움이 돼 좌뇌에도 엄청난 영향을 준다. 자기 분야에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비결은 어려서부터 부모들로부터 인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우뇌를 충분히 발달시켰다는 것이다. 우리도 늦지 않았다. 시간을 만들어서 아이들과 놀면서 우뇌를 발달시켜준다면 아이는 틀림없이 행복하고 성공적인 자녀로 자라나게 될 것이다. 김영실 교수(총신대 사회교육원)
  • 2008.11.2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인생의 시작은 어머니 손에서
  • 인생은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느냐 보다는, 어느 가정에서 태어나, 어떤 부모 손에서 길러지느냐에 그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게 된다. 하나님은 위대한 능력의 신이시고 우리 아기의 생명을 만들어주신 놀라운 분이시지만, 아기 눈앞에 직접 나타나셔서 아기를 입히고 먹이고 씻기는 일은 안하시며, 이런 일들을 엄마를 통해 이루게 하신다. 그래서 성 어거스틴과 마틴 루터는 자신의 어머니가 가까이 오시면, “성령님이 오신다!”며 일어나 맞이했다고 전해진다. 자녀들은 엄마의 두 손에 의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도 있고, 그 인생이 괴롭게 망가질 수도 있기에, 부지런한 엄마의 정성으로만 아기는 깨끗한 음식 먹게 되고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간직할 수 있지만, 게으른 엄마를 둔 아이들은 건강하게 자랄 수가 없기 때문이며, 자녀들은 다정하고 부지런한 엄마가 옆에 있기를 원한다. 현명한 엄마는 아이를 울리지 않는다. 엄마가 아이를 울리면서 키우면, 그는 커서 이웃과 민족을 울리는 사람으로 자라기 십상이지만, 엄마가 자녀를 행복하게 웃으면서 키우면 아이는 자라나 틀림없이 모든 사람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 된다. 성경은 우리의 인생길이 “쏜살같이 빠르게 지나간다!”고 말씀하고 있다. 자녀를 양육하는 이 시간을 힘든 시간이라고 짜증내지 말고, 자녀들과 함께 지내는 이 시간 시간을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즐겁게 보내자. 현대 엄마들도 일이 많아져서 여러 가지로 정말 바쁘게 지내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아무리 바쁘더라도 자녀들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에는, 엄마는 집에 먼저 와 아이들을 반겨 주어야 한다. “엄마!”하고 문을 열고 들어올 때, 집안이 설렁하고 엄마가 없다면 아이들의 마음은 허전하고 뇌 속에는 불안한 호르몬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장차 큰 인물로 자라나기 힘들다.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한 끔찍한 범죄가 일어날 때, 피해자 아이들의 엄마는 대부분 집에 없는 바쁜 엄마들이었다. 또한 자녀들에게 뜻 없이 함부로 하는 말들이 상처가 되어 가슴속에서 자라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네가 이러면 엄마가 도망가 버릴꺼야!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이런 말들은 자녀들의 성장에 큰 상처만을 주며 아무도 신뢰하지 못하는 아이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우리가 조금만 더 심중히 생각하면서 자녀를 양육한다면 하나님도 우리 자녀도 무척 기뻐할 것이다. 요즘 뉴스를 보면 정말 무서운 사건들이 종종 일어나는 것을 보는데, 그 상대가 어린아이들 이라는 것을 알고 온 국민이 경악을 한다. 여기서 우리들은 깊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범죄를 당하는 그 시간에 그들의 엄마들은 집에서 자녀들을 기다리고 있었는가?’ 집에 가봐야 엄마도 없는데... 아이들은 남은 시간을 길에서 보내다가 무서운 일을 당하게 된 것이다. 학원으로 보내는 시간에, 집에서 자녀들과 엄마 아빠가 함께 같이 공부하고, 함께 가정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자녀를 행복하게 해준다면 자녀들은 틀림없이 공부도 잘하고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날 줄 믿는다.
  • 2008.10.24 / 정승환 기자

    동방 예의지국 다시 세워야 할 때
  • 추석 명절에 어른들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는 풍습이 있는 우리나라는, 50년 전만 해도 효자, 효부가 많았던 ‘동방의 예의지국’이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시시때때로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일이 일어난다. 왜 그럴까? 그 해답을 찾아보자.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십계명 속에 있지만, ‘네 자식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십계명에 넣지 않으신 이유는, 동물도 그러하니 사람이면 당연히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부모를 공경하려는 마음은 ‘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면’ 좀 힘든 일이다. 그래서 구약성경(신명기 27:16) 에는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자식들에게 돌아갈 저주의 말씀이 적혀있다.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오늘날은 왜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시대가 되었을까? 옛날에는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어린 자녀들을 무릎에 앉혀놓고, 그들의 사상이나 신념, 신앙이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의 정신을 직접 가르치던 시대였으며, ‘세대차이’라는 단어조차 없었다. 할아버지의 생각을 아버지가 배웠고, 그 아버지가 또 자기의 아들들에게 그 사상을 전수했기 때문에, 공자 왈 맹자 왈 하던 양반 집안에선 서로간의 생각과 철학이 같은 부모와 자식들이 한 지붕에서 큰 탈 없이 살았다. 더구나 당시에는 음식점이 없었기에 온 집안 식구들이 먹는 음식도 같았었다. 음식이 같고, 서로 생각하는 것이 같으니, 부자지간에 생각의 차이는 벌어지지 않았으며, 따라서 부모를 끔찍이 사랑하는 효자 효녀들도 많이 나올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읽을 수 있는데, 이는 밖의 일로 바쁘기만 한 부모님들로부터 자녀들이 신앙교육과 사상교육을 직접 받지 못하기 때문이며, 또한 부모와 자녀들이 한상에서 음식을 먹지 않고 먹는 음식 종류조차 달라졌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은 왜 이래?” 라며 우리는 한탄만 하고 있을 수 없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나도 할 수 있다! 해 보자! 하면 된다!”라는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나라를 사랑하고 효도를 잘하는 자식을 갖길 원하는 할아버지들과 부모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자녀들에게 사상을 전수해야만 한다. 또한 외식을 줄이고 저녁 식탁을 함께 나누며 다시 동방의 예의지국을 만들어야 한다. 유대인들은 저녁식탁을 차려놓고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에게 들려주고 음식을 위한 감사 기도를 드린다. 그 후, 음식을 장만한 아내와 엄마를 향한 격려와 칭찬의 노래를 불러준다. 그러한 찬미를 받은 어머니는 더욱 가족들을 위해 온 몽이 희생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며 평생 사랑으로 봉사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2,000년을 다른 민족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유대인들의 어머니들은, 가정을 성전처럼 여기며 목숨을 다해 남편과 자녀들을 보호하며 가정을 지켜온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움직이는 힘과 능력’이 있다. 자녀들의 가슴속에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하며, 부모의 사상과 신앙을 물려주므로 다시 이 땅에 예수님을 모신 우리의 가정, 동방의 예의지국을 세워나가자.
  • 2008.09.26 / 정승환 기자

    “역사 공부는 엄마 아빠 무릎에서 시작해야”
  • 두 주 후면 8·15 해방 기념을 위한 여러가지 행사가 진행될 것이다. 우리나라 5천년 역사를 돌아다보면, 행복했던 순간보다는 힘들고 어려웠던 세월이 더 많았음을 잘 알고 있다. 이렇게 하나님을 자유롭게 섬기며 외부 침입의 걱정 없이 배부르게 살아온 날들은 해방 후 60년뿐이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우리의 가정과 나라를 더욱 아름답게 이끌고 나갈지, 유대인의 가정을 드려다 보면서 우리도 고민해보자. 역사상 믿어지지 않는 하나의 사건은, 이스라엘이 2천년 만에 독립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1948년 이스라엘 독립 후 곧 아랍 국가와의 전쟁이 일어났다. 그때 미국 유대인 대학생들은 자기 나라가 위험에 처함을 알고 짐을 꾸려 이스라엘을 향해 떠났다. 그때 교수들은 “너희들이 군인도 아닌데, 전쟁을 하러 간다고 무슨 큰 보탬이 되겠느냐? 그냥 남아서 공부나 계속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중에 나의 자녀들이 ‘엄마, 아빠는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어요?’ 라고 묻는다면 ‘응, 나는 미국에서 편히 공부하고 있었단다’라고 대답할 수 없습니다. 나도 민족과 함께 나라를 위해 고난당하러 갑니다” 많은 사람들의 상상과는 달리 전쟁은 유대인의 승리로 돌아갔다. 유대인들이 아랍 군대를 이긴 이유는 바로 어린 목동다윗과 거인 골리앗의 싸움을 연상케 하는 정신적인 싸움의 결과였다. 유대인들의 역사책의 첫 장엔 “우리는 애굽의 종이었다!”로 시작한다. 종이었음을 항상 상기하고 잊지 않도록 교육해야 또 다시 종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유대 아기들은 만 3세가 되면 엄마, 아빠,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무릎에 앉아 역사와 성경을 공부하기 위해 히브리어를 배운다. 그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그리고 세계 공통어인 영어를 배우기 때문에 그들의 자녀들은 어려서부터 기본적으로 4∼5가지의 언어를 익힌다. 그들은 ‘적을 알아야 이길 수 있다’는 진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슬픈 역사를 자녀들에게 얼마만큼 가르치고 있는가? 학교에서 혹은 TV를 통해 가르치는 것을 전부로 보고 있는 것인 아닌가? 부모의 입으로 우리의 슬픈 역사를 가르치며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라!’고 말해주어야 우리나라도 든든히 설 수 있다. 만약 우리의 자녀들이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우리는 언제 또 다시 곤경에 처할지 모른다. 나라를 잃으면 우리의 가정도 여지없이 무너진다는 것을 조상들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뼈저리게 알고 있다. 따라서 이 나라의 독립을 주신 하나님께 온 마음다해 감사하며, 게으름에서 깨어나 자녀들에게 성경말씀과 더불어 민족정신을 심어주어야만 한다. 김영실 교수(총신대 사회교육원)
  • 2008.07.23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가정안에서 세대 차이를 없애자!
  • 어느 한 과학 보고서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뇌를 갖고 태어나는 민족은 유대인이 아니고 바로 한국 사람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유대인은 조상 대대로 뜨거운 사막인 중동지방에서 살지만, 우리 한국 사람들은 하나님이 만드신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이 아름다운 땅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슬픈 현실은 우리가 이 뛰어난 뇌를 가지고 세계를 주름잡는 민족이 되지도 못하고, 자녀와의 세대차이는 현저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유대인의 성공적인 자녀교육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 부모와 자녀 사이엔 ‘세대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왜 우리 자녀들은 부모와 사이가 벌어지는 것일까? 유대인들의 교육을 잘 살펴보자. 첫째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적 순결’이고, 둘째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케 하는 역사 교육으로 이루어지는 민족을 향한 ‘민족의 순결’이고, 셋째는 부부 외에는 성을 나누지 않는 ‘육체적 순결’이며, 넷째는 자녀를 향한 ‘순결 교육’과 부모를 향한 ‘효도 교육’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열심과 신앙은 어느 민족도 따라갈 수 없다. 유대 아기는 만 3살이 되면서 부모의 무릎에 앉아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한다. 유대인들은 아기 때부터 성경 말씀을 매일 외우고 마음에 새기며 평생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을 친다. 신명기 6장을 보면 하나님은 율법을 ‘부지런히’ 자녀에게 가르치라고 명령하신다. 집에 있든지, 길에 행하든지, 저녁에 자리에 누워서, 또는 아침에 일어날 때도, 이 하나님의 말씀을 서로 나누라고 말씀하신다. 유대인의 영재 교육은 이렇게 부모와 밤낮 나누는 하나님 말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부모의 생각과 믿음이 자녀들과 동일할 수 밖에 없어 세대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다. 그들에 비해 우리의 자녀 교육은 어떠한가! 그냥 교회 주일학교에다만 자녀를 맡겨 놓고, 부모는 교회 일에 혹은 사업에 바빠서 저녁이 되서야 겨우 아이들의 얼굴을 보지는 않는지 반성해 보자. 교회에서 부모와 자녀가 따로 예배를 드리다 보면 부모와 아이들이 듣는 설교가 다르고, 찬송이 다르고 예배 분위기가 다르다. 같은 교회를 다니더라도 부모와 자녀 간에 생각이 달라지므로 행복한 가정을 꾸미기 위한 ‘가족을 위한 교육적인 프로그램’들이 교회 안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외국의 경우를 살펴보자. 그들은 주일 대예배만은 집안 식구가 함께 참석한다. 예배시간엔 ‘아이들 시간’ (Children’s hour)이 주보에 들어 있고, 이 시간에 목사님은 어린아이들을 강대상 앞으로 초청한다. 강대상 바닥에 아이들이 앉으면 목사님도 함께 바닥에 앉아 그들을 위한 ‘5분 설교’를 한다. 그 후 아이들은 자리로 돌아가 부모와 함께 나머지 예배를 드린다. 그리고 주일학교부터 청년부까지 우리와 같은 시스템으로 공부가 진행된다.많은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며 세대차이가 심해져가는 이 시대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자녀의 교육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할 것이다. 김영실 교수(총신대 사회교육원)
  • 2008.06.2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좋은 아빠의 역할은 무엇일까?
  • 오늘날 아빠들의 삶의 큰 목적은 가정을 위해 돈을 벌어오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경제적인 면이 충족되지 못하면 가정의 행복을 보장할 수 없기에, 이에 온 힘과 시간을 다 쏟는 것은 참으로 칭찬받을 일이다. 그러나 자녀와 아빠와의 신뢰 관계는 결코 재정적인 풍요만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다. 경제적인 면은 생활하기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갖추어져야만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즉, 먹고 자고 입는 것 등이 해결된다. 그러나 정신적인 충족은 물질적 풍요보다 더욱 가치가 높으며, 자녀들을 진정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원천이기에 아빠는 여러 면에서 프로가 되어야 하기에 이를 위해서는 바쁜 시간을 내어 자녀들과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야만 한다. 자녀와 아빠가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지면 아이들에게 어떤 이로운 점이 있을까 생각해 보자. 먼저 자녀의 성격을 원만하게 만들어 주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아빠가 자신을 사랑해주며 함께 놀아 줄 때 아이의 마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행복을 느끼게 된다. 아이들은 자신이 아빠에게 인정받는 것으로 말미암아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고 도덕성과 사회성이 풍부한 사람으로 자라나며, 다른 친구나 이웃에게도 사랑을 베풀 수 있고, 당연히 부모를 사랑하고 섬기며 모든 사람 앞에서 당당한 아이로 자라난다. 혹시 사춘기 때나 친구와의 관계에서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면, 그 어려움을 숨기거나 피하지 않고 함께 놀아주던 아빠에게 상의할 수 있는 신뢰관계가 형성된다. 혹시라도 아이가 자라면서 다른 길로 가더라도, 자신을 인정해 주고 놀아주던 아빠의 모습이 자녀의 무의식 세계에 들어 있어 아이는 분명 다시 부모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그 반대로 아빠와의 관계가 친밀하지 못하다면, 아이는 병에 쉽게 노출되고 근심과 불만으로 가득 차 세상을 이길 힘을 얻지 못하며 사회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 이는 나중에 불행한 결혼 생활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좋은 아빠가 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아무리 바쁜 삶의 여정이더라도 시간을 내어 자녀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산과 들이나 공원을 찾아 함께 배드민턴, 탁구, 자전거나 롤러스케이트 등 가벼운 운동을 함께 하면 좋다. 그도 여의치 않으면 집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이나 영화를 함께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유대인들은 ‘아빠는 보이지 않는 신의 모습’이라고 믿고 있으며, 아빠들은 신의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려 애쓰고 있다. 자녀들은 보이지 않는 신의 모습을 아빠를 통해 바라보며 행복한 가정생활을 누리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어를 주셨다. 아빠의 입으로 “너를 사랑하며 신뢰한다”는 말을 자주 들려주어야 한다. TV 어느 광고처럼 아빠가 아들에게 말은 험하게 하면서 ‘나의 희망’이라고 전화기에 이름에 적어 놓은 것은 자녀교육에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부모와 자식들과의 세대차이가 왜 생기는가? 이는 자녀들에게 아빠의 신념 혹은 인생의 목표 등에 대해 전혀 나누거나 나눌 기회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아빠의 꿈과 철학, 즉 믿고 신뢰하는 것들에 대해 자주 이야기 해주거나 성경이나 좋은 책을 읽어주면서 자녀들의 꿈을 심어 주는 것은 아빠를 의지하며 존경하게 하는 좋은 방법이다. 우리들의 아빠들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려 조금만 노력을 한다면, 틀림없이 당신은 자녀에게 존경받는 성공적인 아빠가 될 것이다. 김영실 교수(총신대 사회교육원)
  • 2008.05.23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특별한 자녀를 만들기 위한 기도
  • “빨리 일어나지 못해?오늘 또 지각하겠다! 빨리 빨리! 오늘도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말썽피우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하고 와!” 이는 예전에 흔히 우리가 부모로부터 들어왔던 이야기들이라 나의 자녀들한테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들이다.당신은 오늘 아침 자녀를 깨울 때 무슨 말로 시작했는가? “사랑의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 진호에게 새날을 주셨어요. 어서 일어나요∼”라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부드럽고 축복된 말을 자녀 귀에 들려준다면 자녀는 즐거운 아침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찬송가나 성가곡, 명곡등을 틀어 주어 아름다운 하늘의 음악 소리로 시작해야 한다. 좋은 음악은 아이의 뇌세포를 좋게 발달시키고 성격을 밝게 만들어 준다. 아이가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엄마나 아빠의 목소리로 성경말씀을 읽어주어 영양가 있는 음식과 함께 영적인 삶도 풍성하게 하자.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설 때에는 “선생님 말씀 잘 듣고,차 조심해라!”는 잔소리 대신에, 아이를 품에 안고 축복을 빌어 보자. “주여,우리 진호가 오늘도 주님을 모시고, 천군 천사와 동행하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학교 선생님들과 친구들에게도 크신 성령의 은혜를 주소서!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진호가 되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게 하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15초 정도의 짧은 기도면 자녀의 하루를 축복되게 하는데 충분하며 이 보다 더 확실히 자녀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유대인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부모로서 수십 가지의 기도를 드린다. 그 중 몇 가지를 배워보자. 아기를 목욕시키기 전에는, “아가야, 목욕해도 되겠어요? 허락해 주세요”하면서 아기에게 인격적인 허락을 구하고는 곧 기도로 연결시킨다. 아기의 머리를 감겨주면서는, “하나님, 이 아기의 머리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 차게 하옵소서” 가슴을 씻어 줄때는, “주님, 이 아이의 가슴에 나라와 민족이 들어서게 하옵소서” 또한 손과 발을 씻겨주면서는, “주여, 이 아이의 손과 발을 통해서 온 민족이 먹고 살게 하옵소서” 또한 “이 아이의 거룩한 성 기관을 통해서 거룩한 백성이 만들어지게 하옵소서. 그리고 교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엉덩이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한다. 우리의 자녀들도 아기 때부터 이런 경건한 기도 속에 자라난다면, 유대인들처럼 지혜를 갖는 뛰어난 자들이 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늘 여러분은 자녀들이 학교에 등교하려 집을 나설 때 무슨 말을 했는가? 축복은 교회 목사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대리자인 엄마와 아빠도 할 수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귀한 자녀들을 이 험한 세상에서 안전하게 지키실 것이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귀한 자녀들로 자랄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이다. 김영실 교수(총신대 사회교육원)
  • 2008.04.2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엄마의 능력
  • 이 세상에서 아기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틀림없이 엄마이다. 엄마의 역할을 잘하든지 못하든지 상관없이 아기는 엄마를 가장 사랑한다. 엄마는 혹시 아기 키우는 것이 힘들어 시시때때로 아기를 귀찮아할지 몰라도, 아기는 항상 엄마를 귀하게 생각하기에 엄마가 잠시라도 눈앞에서 보이지 않으면 금방 불안해하면서 울음을 터트린다. 그럼 이 세상에서 아기가 제일 듣기 좋아하는 노랫소리는 누구의 목소리일까? 바로 엄마의 목소리로 들려오는 자장가이다. 그래서 유대 랍비는 말하길 “엄마가 젖을 물리면서 찬송가를 불러주면, 이는 아기에게 젖과 꿀을 동시에 먹이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아기는 태중에서부터 들었던 정다운 엄마의 목소리를 세상에서 가장 좋아한다.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시고 태중의 아기를 창조하시는 능력이 뛰어나신 분이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직접 나타나지 않으시며 우리를 손수 먹이고 입히시고 직접 노래를 들려주지 않으신다. 따라서 엄마란 존재에게 아기 삶 전체를 주관하는 능력을 부여하셨다. 아이는 어쩔 수 없이 엄마의 모습을 닮아가고 엄마의 말솜씨를 그대로 배우게 된다. 그래서 엄마의 언어와 손길이 아름다우면 아기도 아름다운 성품의 사람으로 자라나게 되고, 엄마의 입술과 손이 거칠면 아기도 어쩔 수 없이 거친 사람이 되고 만다. 엄마가 아기를 웃으면서 키우면 아기는 웃는 사람으로 자라나 풍랑과 어려움이 인생길에 찾아 와도 쉽게 웃음으로 이겨내게 되지만, 엄마가 아기를 자주 울리면서 키우면 아기는 자라나서 엄마와 이웃을 울리는 사람이 되는 것을 본다. 엄마의 중요한 역할은 또 있다. 엄마가 아기에게 무엇을 먹이든지 간에 아기는 저항 없이 그 음식을 먹는다. 깨끗하고 정성이 담긴 음식을 주는 엄마는 정말 훌륭하지만 햄버거, 피자, 자장면 등을 먹이는 엄마는 자녀의 몸과 마음을 고물(Junk)로 만드는 엄마이다. 아이들은 엄마가 주면 그것이 무엇이든 먹어야하고, 귀에 들려주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들어야만 하는 약한 존재들이다. 또한 엄마가 깨끗이 아이를 씻겨준다면 아이는 몸과 마음이 다 정결하게 자랄 수 있지만, 엄마가 게을러 목욕을 자주 안 시키면 아기는 더러운 몸을 가지고 자라날 수밖에 없다. 엄마의 손길을 통해 아이들의 영혼과 육체는 함께 건강하게 자라나야만 한다. 따라서 엄마는 음식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도 끼니마다 함께 먹여야 한다. 엄마라는 직책은 자녀를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키워야 하는 직분을 가진 사람이기에, 중요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김영실 교수(총신대 사회교육원)
  • 2008.03.2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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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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