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오순절 운동의 역사(4) - 현대 오순절 운동의 초기 지도자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현대 오순절 운동의 흐름 속에서 창립되어 오늘날과 같은 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따라서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어떤 교회이며 무엇을 중요시 하며 다른 교회와 구별되는 특징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려면 필연적으로 현대 오순절 운동에 대해 살펴봐야 할 것이다. 교회 창립 60주년을 맞아 본지는 11주에 걸쳐 ‘현대 오순절운동의 역사’에 대해 연재하고자 한다. 그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현대 오순절 운동의 이해 ②현대 오순절 운동의 역사적 배경 ③현대 오순절 운동의 신학적 핵심 ④현대 오순절 운동의 초기 지도자들 ⑤현대 오순절 운동의 확산 ⑥미국 하나님의성회의 창립 ⑦한국 초기 오순절 운동 ⑧오순절 선교사의 입국과 활동 ⑨한국 초기 오순절 교회와 지도자들 ⑩한국 오순절 교회의 위기와 극복 ⑪한국 하나님의성회의 창립.<편집자 주> 미국 기독교는 남북 전쟁 이후 영적 무기력으로 인해 심한 침체 현상을 겪게 되었다. 교회가 부유해지고 제도화됨에 따라 상대적으로 영적인 활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처럼 무기력하고 형식주의에 물든 분위기를 탈피하기 위해 일단의 신자들은 기도와 금식과 성경 공부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주님의 재림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마지막 시대에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사역에 헌신하고자 하는 교회 지도자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미국 오순절 운동이 태동하였고, 이를 주도한 초기 지도자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번 주에는 초기 미국 오순절 운동을 대표하는 찰스 팔함(Charles F. Parham), 윌리엄 시무어(William J. Seymour) 그리고 윌리엄 덜함(William H. Durham)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찰스 팔함(Charles F. Parham) 1873년 아이오와 주의 머스커틴에서 태어난 팔함은 19세가 되던 1893년에 신학교를 졸업하고 캔자스 주의 한 감리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하였다. 1898년 팔함은 캔자스 주 토페카에서 ‘벧엘 치유의 집’과 ‘벧엘성경학교’를 설립했는데, 벧엘성경학교는 성경만을 교재로 삼고, 3시간의 기도 훈련과 노방 전도 및 축호 전도 실습을 강조하는 복음적인 사역 훈련소였다. 1900년 팔함은 학기 마지막 수업에서 성령 침례의 외적 증거가 방언임을 사도행전에서 확인하고, 12월 31일 40여 명의 학생들과 성령 침례를 위해 철야기도를 하였다. 다음 날인 1901년 1월 1일 아그네스 오즈만(Agnes Ozman)이라는 여학생이 최초로 중국어 방언을 말하였고 3일 뒤 팔함과 다른 학생들도 성령의 침례와 동시에 방언을 받는 사건이 일어났다. 1903년, 팔함의 신유사역을 통해 시력을 회복한 여인 집에서 부흥 집회가 열렸다. 이 집회를 계기로 팔함은 캔자스 주 박스터 스프링스에 첫 번째 오순절 교회를 설립하였다. 또한 1905년 7월 텍사스 주 휴스턴에 ‘믿음성경학교’를 개설하여 오순절 운동의 개척자들을 양성하였다. 이때 팔함은 ‘순복음 메시지’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이후 ‘순복음’(Full Gospel)이라는 말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2. 윌리엄 시무어(William J. Seymour) 소규모의 지역적 운동을 넘어서지 못하던 미국의 오순절 운동을 국제적인 운동으로 발전시킨 사람은 팔함의 제자이자 흑인 설교자인 윌리엄 시무어이다. 시무어는 팔함이 세운 휴스턴 믿음성경학교에 1905년에 입학해 이듬해까지 칭의, 성화, 성령 침례와 방언, 신유, 재림 등의 신학을 체계적으로 배웠다. 1906년 4월 8일 시무어는 L.A.의 보니 브레 거리에 있는 한 성도의 집에서 집회를 인도하였는데, 그 가정에 모였던 7명의 사람들이 성령 침례를 받고 방언을 말하였다. 이러한 소문이 퍼져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자 아주사 거리에 있는 창고 건물로 장소를 옮겨 교파와 인종을 초월한 집회를 인도하였다. 시무어가 아주사 거리에서 집회를 인도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성령 침례를 받는 동시에 각기 다른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다. 집회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찬송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듣고 성령 충만을 체험하면서 아침 10시부터 자정까지 3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 집회는 특별히 정해진 순서나 광고 없이 즉흥적인 기도, 설교, 간증 등으로 진행되었고 여러 교파와 다양한 인종이 참여하였다. 집회의 대부분은 찬송과 간증과 기도로 이루어졌으며 방언과 방언 통역, 예언, 축사, 신유 등의 은사들이 나타났다. 이후 시무어와 동료들은 성령 사역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아주사거리선교회’를 조직하였고, 4면의 월간 소식지인 ‘사도적 믿음’(The Apostolic Faith)을 간행하여 부흥의 소식을 더욱 널리 확산시켰다. 아주사의 현대 오순절 운동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여러 나라에 영향을 미쳤다. 남미, 아시아, 유럽 등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성령 침례를 사모하며 아주사 거리로 몰려왔다. 그리고 이곳 아주사에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한 사람들은 현대 오순절 운동을 미국 여타 지역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 전파하였다. 3. 윌리엄 덜함(William H. Durham) 1873년 켄터키 주 침례교 가정 출신의 윌리엄 덜함은 1901년 시카고에서 노스에비뉴선교회를 설립하였다. 그는 1907년 3월 아주사 집회에서 성령 침례를 받고, 시카고로 돌아와 오순절 운동을 전파하는 설교가로 활동하였다. 이후 시카고에서 덜함의 사역을 통해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는데 덜함이 사도행전의 말씀을 전할 때 다리를 못 쓰던 청년이 즉시 고침 받는 신유의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덜함의 영향을 받은 사람 중에는 하나님의성회 초대 총회장을 지낸 벨(E. N. Bell)과 사중복음교회를 설립한 여성 신유 사역자 에이미 맥퍼슨(Aimee S. McPherson)도 있었다. 시카고 노스에비뉴선교회를 중심으로 전개된 덜함의 사역은 시카고를 넘어 광범위한 지역에 영향을 미쳤다. 한편 덜함은 성화에 관한 독특한 신학적 견해를 지녔는데 갈보리의 십자가는 단지 죄의 용서만이 아니라 성화의 과정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이는 중생과 구분되는 제2의 축복을 통해 성화를 받아야 한다고 한 기존의 성결 교리와는 명백하게 구분되는 것이었다. 중생 이후에 성화를 위한 별도의 은혜가 필요 없이 갈보리의 십자가가 이미 모든 것을 완성했다는 덜함의 주장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완성된 사역의 신학’이라고 불린다. 성결운동 출신의 오순절주의자들은 덜함의 주장에 반발하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의 견해를 지지하였다. 그들은 완전한 성화의 경험이 없이도 성령 침례를 받을 수 있다는 덜함의 주장을 적극 수용하였다. 덜함의 견해는 1914년 미국 하나님의성회의 출범 당시 교단 신학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현대 오순절 운동의 태동에 있어 팔함, 시무어, 덜함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들은 영적으로 침체 되어가던 미국 기독교를 새롭게 깨우며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의 영적 갈급함을 해소시켰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미국의 현대 오순절 운동이 세계 각지로 확산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국제신학교육연구원>
2018.04.01
/ 국제신학교육연구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