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십자가 성막
⑪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떡 상
  • 성소의 첫 번째 휘장을 지나 성소로 들어가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세 개의 성물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 중에서 오른쪽을 보면 나무에 금을 씌어놓은 상(Table) 하나가 있는데, 이 상은 하나님이 제사장들을 위해 12개의 무교병(떡)을 6개씩 2줄로 가지런히 진설해 놓으신 것으로 성경은 이 거룩한 식탁을 떡 상이라고 부른다. 이 떡 상은 성경의 신비인 로고스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여기서 우리는 로고스의 실체이신 예수님이 유월절기에 먹는 무교병(떡)과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부활의 몸인 당신의 살”을 같은 선상에 두고 해석하시면서 떡 상의 떡을 “영생의 떡”이라고 재해석 하셨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요 6:51). 성경은 요한복음 1장 1∼14절을 통해 예수님을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로고스) 되어 오신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증언을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이면서 곧 영생의 떡(요 6:58)”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의 양식인 떡의(요 6:48) 개념과 합쳐지면서 로고스의 개념(말씀·육신·떡·영생)을 쉽게 이해하게 된다. 즉,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떡 상이 말하는 로고스의 개념이다. 사실 필자가 떡 상을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로고스의 신학적 개념 보다는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시작된 최초의 성찬식이 바로 이 광야의 식탁에서 유례 되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실을 통해 떡 상의 무교병(떡)이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으신 하나님의 섭리는 이 떡을 먹는 사람들을 통해 다시 한 번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구약시대에는 선택된 제사장들만이 이 거룩한 식탁에 진설된 떡을 먹는 특권을 누렸고, 신약시대에는 구원받은 성도만이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주님의 성찬에 참예하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거룩한 식탁 위에 놓인 떡(예수)을 힘입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원리를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1) 무교병의 떡 - 순전한 떡이 되신 예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도 떡 상에 진설된 떡은 누룩을 넣지 않고, 기름으로 반죽하여 만들었다. 누룩은 죄의 속성과 비슷하기(갈 5:9) 때문에 떡 상의 떡을 진설 할 때에는 누룩이 없는 순전한 떡을 올려놓아야만 했다. 이러한 개념은 신약시대에 와서 그리스도의 순전하고 진실된 말씀을 상징하는데 인용됐다.(고전 5:8) 이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 속에 있는 피의 말씀을 힘입어 죄악과 구별된 삶을 살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한다. 2) 12 개의 떡 - 떡을 나누듯이 전도와 선교에 힘쓰는 기도 떡 상엔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하는 떡 통을 6통씩 2줄로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제사장들은 성소 안에서 이 무교병(떡)만을 먹으며 교제했다. 이는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서 교제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명의 말씀을 나누는 것, 그것이 바로 전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의 씨앗이요, 기적의 종자씨”인 하나님의 말씀을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한다. 3) 기름이 든 잔 - 성령의 조명하심을 통해 깨달음을 구하는 기도 떡을 먹을 때 체하지 말라고 떡 상 위에 기름병과 기름 잔을 올려놓았고, 반드시 무교병을 기름에 찍어 먹게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철학적 사고나, 이성적 논리로 해석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성령의 조명하심과 믿음을 통해 말씀을 깨달아야 한다. 그럼으로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셔서 성경을 깨닫게 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4) 이동할 채 - 하나님의 말씀과 동행하는 신실한 기도 다른 성물과는 달리 떡 통은 떡을 진설한채로 어깨고 매고 날라야 했다. 이는 1년 365일 내내 무엇을 하던, 어디에 있던, 늘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진설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사모하고, 믿고, 실천하며, 전파함으로 주님과 함께하는 영광에 참예하게하시는 하나님께 늘 감사해야 한다. 5) 정금의 판 - 말씀은 반드시 믿음 위에 올려 져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무교병(떡)은 반드시 믿음의 영성을 상징하는 정금 판 위에 올려 져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죄성을 상징하는 나무에 올려진 체 무시되거나, 왜곡되거나,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그럼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온전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엡 4:13) 6) 365일 진설 - 늘 말씀 가운데 마음의 단을 정비하는 기도 1년 365일 내내 매 안식마다 떡 상의 떡은 새로운 떡으로 진설되어야 했다. 그리고 제사장들은 성소에서 이 떡만 먹게 하였다. 이는 안식에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말해 준다. 아무리 큐티를 많이 하고, 성경공부를 열심히 한다 할지라도 주일예배 때 선포되어지는 말씀을 받지 않는다면 이 모든 것이 무익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일예배를 통해 새로운 말씀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향해 감사해야 한다. 7) 말씀의 기도 - 레마의 말씀을 붙잡고 간구하는 기도 상 주변에 턱받이를 만들어서 떡(말씀) 부스러기가 땅에 떨어지지 않게 배를 턱받이에 대고 서서 먹어야만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떡이 사람에 의해 밟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소홀히, 무심히, 경솔하게 받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는 내게 주시는 레마의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 그럼으로 우리는 레마라는 기적의 종자씨를 날마다 마음 밭에 심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감사해야 한다. 윤광회 목사(여의도순복음분당교회)
  • 2010.11.19 / 정승환 기자

    예수님의 공생애를 말하는 덮개
  • 연합의 중요성을 말하는 널판. 성막의 울타리가 성육신하신 예수님의 몸을 상징한다면, 성소는 그리스도의 성품과 속성을 말해준다고 정의할 수 있다. 성소의 널판과 기둥을 둘러싸고 있는 금이 예수님의 신성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성소를 덮고 있는 2개의 천과 2개의 가죽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어떤 옷을 입고 오셨는가?’를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이번 회에는 성소의 덮개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이유를 설명하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생명의 주로, 만왕의 왕으로, 성결의 영으로, 속죄 양으로 오셨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 어떤 옷을 입혀드리고 있는지를 묵상하고, 앞으로 우리의 삶 가운데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나의 왕으로, 나의 의로, 나의 생명으로 모시며 살아야함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성막의 덮개를 보면, 이 땅에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겸손과 그 안에 감추어져있는 생명이라는 복음의 비밀을 깨닫게 될 것이다. 덮개는 그리스도의 신분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자 이제 덮개가 가지고 있는 영적인 의미들을 살펴봄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 가를 살펴보도록 하자. (1) 생명의 주님 - 청색은 생명을 상징하는 색이다. 성소를 덮고 있는 4개의 앙장 중 맨 아래 깔려 있는 첫 번째 앙장은 청색, 적색, 자색, 흰색으로 총 4가지 색을 사용하여 그룹이라는 천사를 수놓았는데, 이 각각의 색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을 상징하고 있다. 그 중 첫 번째 색인 청색은 생명을 상징한다. 유대인들은 하늘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 보좌에서 생명이 나온다고 믿었다. 그럼으로 우리는 이 땅에 생명의 주로 오셔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감사해야 한다. (2) 고난의 주님 - 적색은 고난을 상징하는 색이다. 첫 번째 앙장을 대표하는 두 번째 색은 적색으로 보혈을 의미한다. 성경은 제물의 생명이 되는(신 12:23) 피를 흘리지 않으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없다고 증거한다(히 9:22). 이는 십자가에서 고통 가운데 피를 흘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징한다. 그럼으로 우리는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희생 제물이 되셔서 내가 저지른 모든 죄악에 대한 형벌을 대신 받아 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감사해야 한다. (3) 만왕의 주님 - 자색은 왕권을 상징하는 색이다. 고대 사회에서는 가장 색을 내기 힘들었던 색이 바로 자색이다. 왜냐하면 물감 정도에 따라 잘못하면 적색이 되거나 청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색으로 된 옷감은 매우 귀할 수 밖에 없었고, 이러한 이유로 왕족이나 귀족들만 자색 옷을 입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뜰에서 병정들에 의해 자색 옷이 입혀진 것은 우연히 아니다. 주님은 이 땅에 만왕의 왕으로 오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만왕의 왕으로 오셔서 모세의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감사해야 한다. (4) 성결의 주님 - 백색은 성결을 상징하는 색이다. 흰색은 울타리에서 설명 하였듯이 성결을 상징하는 색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원천을 상징한다.(롬 1:4) 그럼으로 우리는 이전의 삶을 뒤로하고, 부활의 능력으로 새로운 삶과(고후 5:17) 새로운 기회를 주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감사해야 한다. (5) 죽음의 기도 - 예수님의 죽으심을 내 죽음으로 체감하는 기도. 성소를 덮고 있는 4개의 덮개 중 흰색 털로 된 두 번째 앙장은 희생 제물로 선택된 제물의 털로 만든 것으로 첫 번째 그룹 천사를 수놓아 만든 앙장 보다 한 폭(2규빗)을 더 이어 붙여서 맨 아래 첫 번째 앙장을 반 규빗 만 남기고 모두 덮어두었다. 여기서 말하는 흰색 앙장은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은 흠 없으신 예수님을 상징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이 버림받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음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감사해야 한다. (6) 보혈의 기도 - 예수님의 고난을 나의 고난으로 체감하는 기도. 성소를 덮고 있는 4개의 덮개 중 붉은 가죽으로 된 세 번째 앙장은 수양 가죽에 붉은 물을 들여 성소 전체를 덮고, 말뚝을 땅에 고정시키게 만들었다. 성소 안에서 보면 분향단 위에 펼쳐진 갈고리 사이에서 광야의 바람을 타고 강물 같이 흐르는 보혈의 강을 보게 되는데 그 덮개가 바로 이 세 번째 앙장이다. 성소의 기도가 능력이 있는 것은 바로 보혈에 우리의 기도가 무쳐져서 하나님 보좌로 올라가게 하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이사야의 고백처럼 (사 53:5)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 우리가 문제와 질병과 가난과 사망으로부터 자유함을(롬 8:2) 입게 되었음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감사해야 한다. (7) 승리의 기도 - 예수님의 섬김과 겸손을 통해 승리를 체감하는 기도. 성소를 덮고 있는 4개의 덮개 중 해달가죽으로 된 이 마지막 앙장은 성소를 완전히 덮도록 하여 땅에 고정시켜 놓았다. 수백억 상당의 가치가 나가는 성소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해달 가죽에 쌓여 있다. 이는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이 땅 위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승리를 상징한다. 왜냐하면 해달은 용맹과 승리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를 믿는 자들에게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감사해야 한다. 윤광회 목사(여의도순복음분당교회)
  • 2010.10.2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연합의 중요성을 말하는 널판
  • 이제 우리는 성막의 뜰에 있는 동편문과 번제단과 물두멍을 지나서 성소라는 하나님의 처소로 들어가게 된다. 성소는 미적인 감각이 살아있지 않은 하나의 큰 궤처럼 생겼다. 그러나 성도들은 물두멍 앞에 5m 높이로 솟아있는 금으로 둘려 쌓인 성소를 보면 그 가치를 실감했을 것이다. 이 금으로 된 궤는 동편의 문과는 달리 아무나, 누구나, 어느 때나, 들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이곳은 철저히 하나님에 의해 선별된 제사장들과 대제사장과 모세만 들어 갈 수 있었다. 비록 물두멍에 물이나 장작 같은 것은 레위 사람들이 아닌 다른 지파의 일꾼들이 옮겨 날랐지만 그 나무가 번제단 밑 둥에 들어가는 순간, 그 물이 물두멍에 부어지는 순간부터는 손을 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봉사의 원리이며, 헌금의 원리인 것이다. 만약 타오르는 나무를 꺼내겠다고 손을 데거나 담겨있는 물을 다시 가져가겠다고 손을 대었다간 하나님의 불(성령)을 건드린(훼방)죄, 하나님의 물(성령)을 건드린(훼방) 죄로 죽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이도 이스라엘 500여 년의 성막 역사 가운데 이런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어쨌든 오늘은 이 성소의 널판을 통해 성막(교회) 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로서 어떻게 연합해야 하는가를 배우게 될 것이다. (1) 소명의 영성 - 말씀 중심의 삶을 추구하는 기도. 널판의 사명은 성소가 되는 것이다. 널판은 두께가 반규빗(25cm), 폭이 1.5규빗(75cm), 높이가 10규빗(5m)으로 된 판자로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값어치가 나갔다. 그러나 아무리 귀하고 소중한 가치가 있다 할지라도 성소가 되지 않은 널판은 아무 쓸모가 없었다. 하나님은 널판을 부르셔서 성소가 되게 하셨듯이 성도를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셔서 교회(주님의 몸)의 지체가 되게 하심을 감사해야 한다. 조각목 같이 아무 쓸모없는 우리는 정금과 같은 믿음으로 귀하게 감싸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할 수 있는 존귀한 존재가 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2) 겸손의 영성 - 겸손과 관용을 통해 남을 배려하는 것을 추구하는 기도. 널판은 조각목이라는 잡목을 금으로 싸서 넘어지지 않도록 은 받침대에 세웠는데, 이때 받침대와 널판을 연결하기 위해서 못을 사용하지 않고 철(凸)과 요(凹)로 모양을 내어 서로 맞춰서 세웠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못을 박고 하나가 될 순 없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아무 쓸모 없는 조각목을 둘러싼 귀한 금처럼 서로를 향한 겸손한 마음으로 공동체가 하나 되게 하심을 감사해야 한다. (3) 순종의 영성 - 내려놓음을 통해 하나님의 선을 추구하는 기도. 제아무리 값비싼 금으로 둘려진 널판이라 할지라도 성소가 되기 위해서는 순종과 충성이 있어야 한다. 순종하지 않는 널판은 성소가 될 수 없으며, 충성하지 않는 널판은 성소로서의 사명을 감당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순종과 충성을 통해 공동체가 하나되게 하심을 바라고, 감사해야 한다. (4) 은 받침의 영성 - 은이라는 재료는 은혜의 구속을 예표한다. 널판은 조각목을 금으로 싸서 은 받침 위에 세워 놓았다. 제 아무리 값비싼 금덩어리라 할지라도 광야의 맞바람 앞에 홀로 설 순 없는 것이다. 금은 믿음을 상징한다고 배웠다. 믿음은 중요하다. 그러나 은혜는 더 중요하다. 그래서 널판은 성도가 온전히 서기 위해서는 믿음과 은혜가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를 통해 우리는 나의 나 된 것은 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된 것임을 바라고, 감사해야 한다. (5) 가름대의 영성 - 말씀과 성령으로 교제하는 것을 힘쓰는 기도. 성소는 금띠로 서로를 붙들어 주면서 세워져 있다. 광야의 매서운 바람과 덮개의 수톤의 무개를 견뎌내려면 널판은 5개의 금띠로 서로를 붙들어 주어야 한다. 금띠로 서로 결속되어 있을 때 널판은 성소로서의 사명을 감당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과 마음을 하나로 이어서 하나 되게 하심을 바라고, 감사해야 한다. (6) 관용의 영성 - 성령의 교통하심을 추구하는 기도. 널판은 총 15개의 금띠를 연결해 놓았는데, 그 중 12개의 띠로는 한 면에 4개씩 남쪽과 북쪽과 서쪽 연결하였고, 나머지 3개의 금띠로는 보이지 않게 3개의 띠로 속을 서로 연결해서 세워 놓았다. 이 보이지 않는 띠를 성령의 하나 되게 하는 띠라고 부른다. 4라는 수는 피조물의 수이며, 12라는 수는 만족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3개의 속띠는 성령을 상징한다. 이는 성령이 함께하셔서 성도가 서로 완전하게 교통하게 됨을 말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성도가 성령 안에서 서로 관용함으로 연합하게 하심을 바라고 감사해야 한다. (7) 연합의 영성 - 십자가의 터 위에 믿음을 세워가는 기도. 널판이 연합을 의미한다면,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두 개의 휘장을 걸어 놓는 9개(앞 5개, 뒤 4개)의 기둥은 복음의 진리를 상징한다. 널판이 성소가 될 수 있는 것은 믿음의 띠와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은 물론 그리스도의 은혜와 십자가의 복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십자가 복음의 중요성을 깨닫고, 복음을 중심으로 연합함으로 공동체 안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이 이루어질 것을 바라보고 감사해야 한다. 윤광회 목사(여의도순복음분당교회)
  • 2010.09.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⑧ 용서의 은혜를 말해 주는 ‘성소’
  • 금판으로 둘러 쌓여있는 성소는 1.5규빗(75cm)으로 된 널판을 남쪽으로 20개(30규빗), 북쪽으로 20개(30규빗), 서쪽에 총 8개(2개는 속으로 양쪽 끝에 겹쳐 세워놓고 겉으로 6개(10규빗)를 세움)로 총 46개의 널판을 하나로 연결시켜 놓은 것으로 총 69규빗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지성소 서쪽 벽. 양 모서리 끝에 널판 두 개를 겹쳐 놓았는데, 요세푸스에 의하면 하나의 널판 두께가 반 규빗으로 합치면 1규빗이 된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합쳐진 70이라는 숫자가 말하는 성소의 영적인 역할이다. 즉, 70규빗의 ‘70’은 ‘7’이라는 숫자와 ‘10’이라는 숫자가 곱해져서 나온 수로 ‘7’이 하나님의 섭리의 완전함을 ‘10’이 하나님의 섭리의 완성(성취)을 말하는 숫자라는 것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가 완전해지고 완성(성취)되는 곳이 바로 이 성소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하나님의 섭리가 완전해지고 성취되는 성소를 성경은 예수님이라고 단정한다는 것이다.(요 2:19∼21) 그렇다면 성소가 예수님이라면 ‘70’이라는 숫자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그 의미를 예수님은 이‘70’이라는 숫자를 용서를 상징하는 수로 쓰셨다는 데서 찾아 볼 수 있다.(마 18:21∼22) 성소는 용서의 땅이다. 그 용서가 금과 같은 믿음으로 은과 같은 은혜로 둘려 쌓여진 체 생명의 빛을 발하는 성스러운 땅인 것이다. 이처럼 성소는 하나님의 섭리가 완전해 지기 위해서 반드시 예수님의 용서가 필요하며, 하나님의 섭리가 성취되기 위해서도 반드시 예수님의 용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1. 용서의 기도 - 용서가 적용되는 기도 널판으로 된 성소의 넓이는 입구를 제외하고 남쪽과 북쪽과 서쪽의 3면을 계산하면 모서리를 포함하여 총 70 규빗의 치수가 된다. 신약에서 70은 용서를 의미한다. 마 18:21∼22에서 베드로가 얼마큼 용서해야 되는가를 물었을 때 70번씩 7번을 말씀하신 것을 통해 주님은 70을 용서의 수로 사용하셨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살아계신 성전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몸이 진정한 성소가 되기 위해서는 용서가 있어야 한다. 그럼으로 우리는 기도 할 때 죄인된 우리를 용서하신 그 은혜를 타인에게 적용하며 기도해야 한다. 2. 충만의 기도 - 성령의 충만이 임하는 기도 구약에서 70은 충만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완전한 섭리를 상징하는 7과 하나님의 섭리가 완성됨을 상징하는 10이 만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대인들을 70을 최고로 충만한 수로 여겼다.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 갈 때 데리고 간 식솔들의 수와(출 1:5), 모세가 하나님을 뵈올 때 함께 세운 장로들(출 24:1)의 수로 쓰인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주님의 몸 된 우리를 충만하게 채우시는 성령의 은혜를 믿음으로 바라보고 감사해야 한다. 3. 특권의 기도 - 선택된 자만이 누리는 특권으로 드리는 기도 오직 성소는 모세와 제사장과 대제사장만 들어가는 곳이었다. 여기서 모세는 성소에 지성소에 수시로 들어갔고,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1년에 하루 4번 성소에는 수시로, 제사장은 반차에 따라 안식일은 물론 아침, 저녁으로 향을 피우고 등불을 밝히기 위해 들어갔다. 중요한 것은 일반인들은 성소에 절대로 들어 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제들만 들어 갈 수 있었던 곳에 주님을 섬기는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임명하셔서(벧전 2:9) 주님의 몸 된 성소에서 떡을 떼고, 빛을 발하며, 기도 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해야 한다. 4. 생명의 기도 - 거듭난 자가 누리는 생명의 은총을 감사하는 기도 또한 성소는 물두멍에서 반드시 수족을 씻은 자만이 들어 갈 수 있는 곳이다. 물두멍에서 설명한 것처럼 수족을 씻는다는 것은 거듭남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용서로 영생이라는 은총을 입게 된 자답게 거듭난 기도를 드려야 한다. 거듭난 기도란 죄인에서 의인이 되어 드리는 기도, 즉, 인본주의적인 기도가 아닌 신본주의적인 기도를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관점에서 감사하며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5. 왕권의 기도 - 영적인 권세를 가지고 기도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 들어가는 곳이 성소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셔서 성소에 들어가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왕의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 갈 수 있게 되었음을 말한다. 그럼으로 우리는 왕의 위엄과 권세로 하나님께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도록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담대하게 부르짖으며 기도해야 한다. 6. 성결의 기도 - 성결함으로 드리는 기도 성소 안에는 주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 상과 성령의 은사를 상징하는 등대의 빛과 하나님의 공의를 상징하는 의로운 향이 가득하다. 나중에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어쨌든 이러한 성물들은 우리에게 성소에서 기도하는 방법에 대해 말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성소의 기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순전한 말씀을 힘입어 기도하는 곳이며, 성령의 은사를 상징하는 등불을 힘입어 간구하는 곳이며 공의를 상징하는 향단에서 불의 기도, 즉, 뜨거운 기도를 드리는 곳이다. 우리의 기도에 말씀을 통해 불을 집혀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해야 한다. 7. 고통의 기도 - 주님과의 친밀감이 있는 기도 성소의 문에 5개의 기둥이 있는데, 이는 제물의 고통을 몸소 느끼시는 예수님을 예표 한다. 번제단 앞에서 희생되는 제물의 고통을 몸소 느끼고 계시는 주님의 모습이다. 실로 주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통해 죄인된 인간이 감당해야 할 고통을 대신 감당해 주셨다. 어떠한 측면에서 기도는 노동이다. 우리는 기도 시간을 통해 세속의 잣대와 육체의 욕망을 내려놓음으로 십자가의 고통을 공감해야 한다. 그렇게 주님과 친밀해지는 은혜를 누려야 한다. 윤광회 목사(여의도순복음송파교회)
  • 2010.08.13 / 정승환 기자

    성령 충만의 은혜를 말해 주는 물두멍
  • 성소의 뜰에는 두 가지 성물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번제단이고, 다른 하나는 거듭남의 문제를 해결하는 물두멍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번제단에서 피의 제사를 드려야 하고, 그 희생의 피 제사를 드리고 난 후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어야 한다. 이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지 않으면 죽임을 당했다. 이것은 사명자들에게 부여된 엄격한 기준을 말해준다. 사실 이 물두멍은 일반 성도들을 위한 기물이 아니라 성소를 섬기는 제사장들만이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성막에서 최초로 구별된 성물”이기 때문이다(출 30:21). 이번 시간에는 물두멍이 가지고 있는 영적인 의미들을 통해 성소를 섬기는 자가 갖추어야 할 거듭남의 중요성과 성결한 삶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물두멍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성령의 사역을 상징하는 성물로 물두멍의 영성을 배우게 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듭남의 은혜를 우리의 삶에 구체적으로 깊이 있게 이해 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에 영적인 탄력을 받게 된다. (1) 침례를 주시는 성령 - 성령 침례와 충만을 사모하는 기도 물두멍의 물은 성령을 상징하는 역할을 했다. 누가복음 11장 4절에 나오는 집을 나간 귀신이 물 없는 곳을 찾아다닌다는 비유를 통해 우리는 물이 곧, 성령님을 상징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성령이 계신 곳에는 악령이 역사 할 수 없다. 양신 역사란 변화되지 못한 인격과 쓴 뿌리에 숙주하고 있는 사단이 견고한 진을 만들어 죄의 자극이 오면 발작하는 것이다. 그럼으로 영적전쟁의 승리를 위해서라도 성령침례를 통해 권능을 받아서 안으로는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고, 밖으로는 성령의 은사가 넘쳐나야 한다. 성령충만을 사모함으로 기도해야 한다. (2) 씻으시는 성령 - 성령으로 성결해 질것을 사모하는 기도 성소에 들어가는 사제들은 반드시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고 들어가야만 했다. 만약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지 않고 성소에 들어가게 되면 죽음이 뒤따랐다(출 30:21). 이러한 엄격한 기준을 세우게 된 이유는 성소는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거룩한 장소이기 때문에 죄를 상징하는 더럽고 지저분한 상태로 들어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3장 10절에 보면 목욕한 자는 발만 씻으면 된다는 주님의 말씀처럼 이미 번제단에서 죄를 다 청산하고 용서받은 의인이 되었기 때문에 물두멍에서 생활하면서 수족에 묻은 죄를 씻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먼지처럼 달라붙는 죄로부터 우리를 성결하게 하시는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며 기도해야 한다. (3) 변화시키시는 성령 - 생수를 성수로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을 사모하는 기도 일꾼들이 길어온 생수는 물두멍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성수가 된다. 그래서 물두멍에 물이 들어가는 순간부터 일꾼들은 함부로 손을 델 수 없었다. 이처럼 성령은 우리의 삶을 육적인 삶에서 영적인 삶으로, 세속에서 거룩한 삶으로, 정욕적인 삶에서 성결한 삶으로 죄인의 삶에서 용서받은 의인의 삶으로 변화시키신다. 성령을 주셔서 우리의 삶을 가난에서 부요함으로 약함에서 강함으로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기도해야 한다. (4) 선택하시는 성령 - 기름 부으심으로 선택하시는 하나님을 사모하는 기도 물두멍에 들어간 물은 반드시 성소로 들어가는 제사장들과 대제사장만 사용할 수 있었다. 이는 성소에서 일을 하는 자격을 부여 받은 선택된 자들만이 이 물두멍의 물을 사용할 수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선별하셔서 하나님의 성소로 들어가게 하신 그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고, 더욱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하는 축복을 사모하며 기도해야 한다. (5) 헌신하게 하시는 성령 - 맡은 자로서의 충성된 열정을 사모하는 기도 물두멍을 만들 때 회막에서 수종을 드는 여인들이 사용하던 놋 거울이 재료로 사용됐다. 거울은 여인들에게 있어서 자기를 치장하는데 꼭 필요한 도구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도구를 내려놓으라고 하셨다. 자신을 치장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명령에 그들은 순종했고, 결국엔 그 헌신을 통해 물두멍이라는 귀한 성물이 만들어 지게 되었다. 자기희생이 없는 거듭남이란 없다. 그러므로 놋 거울을 내려놓은 여인들처럼 주를 향한 헌신 속에서 인생의 참된 행복을 느끼게 하시는 성령의 은혜를 사모해야 한다. (6) 생명을 공급하시는 성령 - 성령으로 감동된 열정을 사모하는기도 물두멍의 물은 인생의 기갈을 채워주는 생명수, 죄악을 씻어주는 중생수, 구원을 이루는 영생수 역할을 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인생의 기갈을 풀어주고, 죄악을 씻으시며, 사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성령뿐이심으로 기억하고 날마다 사람의 목마름과 허기짐을 채워주시는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고 기도해야 한다. (7) 퍼서 쓰는 물 - 성령 침례와 충만을 사모하는 기도 성막의 성물들은 저마다 정확한 치수와 재료를 계시 받아 제작했다. 그런데 성막 뜰에 있는 물두멍은 놋으로 성소 안에 있는 등대의 재료는 금으로 계시를 받아 제작하면서 치수는 정해 놓지 않고 있음을 보게 된다. 물두멍과 등대는 모두 다 성령을 상징하는 성물로 치수를 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성령의 능력, 사랑, 생명에는 한계가 없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어 늘 기도에 힘써야 한다. 윤광회 목사(여의도순복음송파교회)
  • 2010.07.1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봉사는 성도의 사명임을 말하는 번제단 도구
  •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성결하게 했던 번제단의 기능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번제단(십자가)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성결하게 하던 도구로 이스라엘을 그 죄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영성을 가지고 있었다. 성민에게 있어서 성결은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제사장들은 성막 안에서 이스라엘의 성결을 위해 회개를 촉구했고, 선지자들은 성막 밖에서 이스라엘의 성결을 위해 회개(마 3:3)를 촉구했던 것이다. 이번 시간에는 성막의 번제단에서 사용되었던 기물들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번제단에 드려질 제사를 위해 사용되었던 기물들은 총 5가지였다. 이 5가지 도구는 번제단(교회)의 제사(예배)를 돕기 위해 선택된 기물들로 교회 안에서 봉사하는 일꾼들의 여러 가지 유형들을 말해 준다. 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이 찾으시는 5부류의 사람들이 있음을 깨닫게 되는데, 번제단의 도구가 상징하는 일꾼들의 유형과 일치한다. 그래서 오늘은 이 5가지 성물들을 통해 교회 안에서 일(봉사)하는 일꾼(봉사자)들의 여러 가지 유형들을 살펴봄으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찾으시고, 쓰시는 인생으로 살아 갈 수 있는 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화로) 예배의 불꽃을 옮기는 영성을 추구하는 기도. 참된 예배자로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하심을 감사하라. 화로는 성막이 이동 할 때 번제단에 타오르던 거룩한 불을 꺼지지 않게 하기 위해 담아 나르던 성물로써, 예배의 불꽃을 지키는 성도를 말한다. 번제단에 있어서 제물의 피와 제단의 불,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불은 번제단이 하나님의 제단이 되기 위한 필수 요소이다. 그 중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불은 가장 신비롭고, 희귀한 것으로 이 불로인해 제물의 피와 제단의 뿔이 거룩하게 구별 될 수가 있었다. 성경은 요 4:23절에서“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럼으로 우리는 영광스러운 예배로 부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일, 새벽, 철야, 구역 예배의 불꽃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한다. 2) 제물통) 영혼을 주의 제단으로 나르는 전도의 영성을 추구하는 기도. 제물통은 죄인이 회개하면서 잘라낸 제물의 살점들을 제단까지 옮기는 성물로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는 전도자를 의미한다. 성경은 사 6:8절에서“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고 말하면서 말씀을 대언 할 전도자를 찾고 계시는 하나님을 계시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진리의 말씀인 복음을 맡아 전할 복음전파자로 부르셨다. 전도는 천하보다 귀한“한 영혼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감동”될 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전도를 위해 우리의 삶에 성령의 감동을 부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3) 갈고리) 중보자로서의 기도 영성을 추구하는 기도. 갈고리는 제물이 불에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역할을 하는 성물로, 가정과 이웃, 사회와 국가를 위해 중보 하는 일꾼들을 말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겔 22:28~30절에 보면“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고로”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이 중보자를 애타게 찾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중보기도로 롯을 살렸고(창 19:29), 모세는 중보기도로 백성을 살렸으며(출 32:32~33), 사무엘은 중보기도로 나라를 지켰다.(삼상 12:23) 그럼으로 우리는 죽어가는 영혼과 멸망해 가는 세상을 향해 긍휼한 마음을 주셔서 중보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4) 부삽) 주의 몸 된 전을 섬기는 봉사의 영성을 추구하는 기도. 부삽은 나뭇재와 기름덩어리로 뒤범벅이 되어있는 지저분한 아궁이를 깨끗하게 청소하기 위해 자기 몸을 희생하는 이 성물로 하나님을 향해 헌신된 봉사자를 말한다. 성경은 고후 5:17~18절을 통해“하나님은 화목하게 할 자를 찾으시고 기뻐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럼으로 우리는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시고, 섬김을 통해 절망스러운 인생과 깨어진 가정을 회복시킬 직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5) 재통) 충성된 그리스도의 군사로서의 사명을 추구하는 기도. 재통은 기름에 번벅이 된 재 덩어리를 담아 진 밖으로 옮기는 역할을 하는 성물로 사명을 갖고 충성스러운 일하는 성도를 말한다. 딤후 2:3~4절에 보면 하나님은 군사로 다닐 자를 모집하기 위해 찾아다니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럼으로 우리는 부르심의 사명을 좇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충성스러운 일꾼이 되게 하심을 감사해야 한다. 6) 청색 포) 생명력이 넘치는 의욕에 넘치는 기도. 성물을 옮길 때 청색, 자색, 적색 포를 싸서 날랐는데, 모든 성물마다 빠지지 않고 공통적으로 들어간 포가 청색 포이다. 성경에서 청색은 생명을 상징하는 색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인색함이나 억지로가 아닌 자원하는 심령과 살아있는 열정으로 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럼으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성령의 힘으로 하나님과 이웃에게 봉사하게 하심을 감사해야 한다. 7) 목회를 중보 하는 기도) 충성된 그리스도의 군사로서의 사명을 추구하는 기도. 성막의 성물들을 보면 물두멍엔 물병을, 등대와 떡 상엔 기름병을, 향단에는 향로가 있어서 중요한 성물들의 사역을 돕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번제단의 도구도 제단에서 드려지는 제사를 돕기 위해 존재하는 부속 성물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성도들에게 나타나는 모든 은사들은 목회를 돕기 위해 부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즉, 성령께서 주관하시는 은사는 반드시 목회를 중심으로 봉사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쓰심에 감사해야 한다.
  • 2010.06.18 / 정승환 기자

    광야의 십자가 성막-4.성막의 동편문은 우리 영혼의 희망.
  • 하나님의 기적으로 애굽을 탈출한 200만 이스라엘은 시내(호렙)산 기슭에서 1년 동안을 머물면서 율법과 성막을 계시 받게 된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온 인류에게 최고의 유산을 남기게 되는데, 이 유산은 모든 나라와 민족과 백성에게 생명의 말씀과 구원으로의 문을 열어주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주었다. 성막의 문은 바로 인간에게 허락된 유일한 구원의 문이요, 천국의 문이다. 성막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의 12지파는 4면에 3개의 지파씩 진을 쳤다. 그렇다면 편의에 따라 성막 사면에 문을 하나씩 만들어서 수시로 백성들이 성막으로 편하게 들어 올 수 있게 만들면 좋을텐데 성막은 오직 한 개의 문만을 백성들에게 허락하고 있다.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구원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 이처럼 성막 문을 통해 예수님을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허락된 유일한 구원의 문이 되신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 10:9) 누구든지 이 문을 통과하면 하나님의 집(천국)으로 들어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은 성막의 문을 통해 문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영적인 가치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성막의 문을 자세히 살펴 보라. 우리를 환영하시려고 양 팔을 벌리고 계신 예수님의 큰 가슴이 보일 것이다. 성막의 문을 유심히 살펴보자. 언제나 우리를 배려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보일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가슴으로 깨달을 때 성막의 문(예수님)은 축복의 통로요, 생명의 출구이며, 구원의 문인 것을 보게 될 것이다. (1) 유일한 문 - 오직 예수님만 의지하는 기도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에 3지파씩 진을 쳤으나 문은 오직 하나만 만들어 출입하게 했다. 성경은 이러한 하나님의 의도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말씀을 통해 설명해 준다.(행 4:12) 그럼으로 우리는 죄인된 우리를 위해 유일한 구원의 문이 되어 주신 예수님을 언제나 바라보고 늘 감사해야 한다. (2) 매우 큰 문 - 하나님의 큰 사랑을 의지하는 기도 성막의 문은 20규빗(10m)이나 되는 큰 문으로 되어 있다. 하나의 큰 통천으로 된 이 문은 죄인이 직접 회개의 제물을 들고 죄사함에 대한 믿음과 은혜를 받고자하는 소망을 품고, 천으로 된 문을 출입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희생 제물이 되어 우리에게 죄사함의 길을 열어주신 예수님을 언제나 바라보고 늘 감사해야 함을 알 수 있다. (3) 동쪽 문 - 희망을 구하는 기도 동서고금을 무론하고 동쪽은 희망을 상징한다. 성막은 이 동쪽을 바라보도록 문의 위치를 정해 놓고 있다. 성막에 들어 갈 때는 어둠이 내리는 서쪽을 바라보고 들어가지만 나올 때는 희망을 향해 나오게 만들었다. 어둠이 내리는 서쪽은 문제, 슬픔, 고통, 사망을 뜻한다. 그러나 해가 뜨는 동쪽은 희망과 생명을 뜻한다. 그럼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을 늘 소망하고 기대하게 하신 주님께 감사해야 한다. (4) 턱없는 문 - 공평을 구하는 기도 문턱이 없다는 것은 편견과 가식과 차별이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대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해 준다. 모든 사람들이 누구나 언제나 들어오게 문을 만들었다는 것은 공평하신 하나님을 말해 준다. 우리 하나님은 평등의 하나님이 아닌 공평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5) 바라볼 문 - 모두가 바라보았다 성막의 문은 모두가 바라 볼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대속죄일이 되면 사람들은 새벽 닭이 울기 전에 그 문 앞에 모였고, 모두가 제물을 들고 감사함으로 그 문으로 들어갔다.(시 100:4) 예수님의 십자가를 상징하는 번제단 앞에서 죄사함의 은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으로 우리는 복음의 감동을 주신 하나님을 향해 감사해야 한다. (6) 4색의 문 - 십자가 복음으로 가득한 기도 성막의 문은 4개의 천연의 색을 사용하여 문양을 수놓아 만들었다. 이 4가지 색은 예수님의 4가지 신분을 말해 준다. 왕권을 상징하는 자색은 사망이 왕 노릇하던 나의 인생에 생명의 왕으로 오신 주님을, 고난(보혈)을 상징하는 적색은 나를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신 주님을, 성경을 상징하는 흰색은 성결의 영으로 부활하셔서 우리의 믿음을 온전케 하신 주님을, 생명을 상징하는 청색은 영원한 생명의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만왕의 왕, 고난의 주, 부활의 주, 생명의 주로 오신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한다. (7) 닫혀질 문 -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를 구하는 기도 성막은 구름기둥이 이동하면 걷어야 했다. 교회의 신랑이 되시고, 이 땅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이 오시면 이 문은 곧 닫히게 된다. 그럼으로 우리는 구원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하나님의 성소에서 예배드릴 수 있도록 은혜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윤광회 목사(여의도순복음송파교회)
  • 2010.03.2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PDF

    지면보기

  • 행복으로의 초대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