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인 교수의 주제별 가정상담
가정, 하나님께서 주신 작은 천국
  • 적대감과 오해로 비롯된 부부간의 불화 올바른 의사전달로 긍정적인 면 바라봐야 교육과 훈련 통한 부부관계 회복도 방법 남편 K집사는 보험회사 임원으로, 아내 M집사는 홍보회사 비서실에 근무하면서 바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틈을 내어 부부끼리 좀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로 약속했다. 어느 토요일 아내는 남편에게 오후에 쇼핑을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남편은 아내와 가까워지고 싶어 따라 가겠다고 말했다. 전날 회사의 복잡한 자료를 검토하느라 지친 아내는 (“저이는 나 혼자 하도록 내버려두는 법이 없단 말이야”하고 생각하며) 남편의 말을 침범으로 해석했다. 그렇지만 남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쇼핑하는 동안 내내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남편은 기껏 따라와 주어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석하여 화가 났다. 남편이 화를 내자 아내는 더욱 입을 다물었다. 이러한 상황을 분석하면 1) 아내는 남편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고 혼자 쇼핑하고 싶었지만, 2) 남편에게 이 말을 하지 못하고, 3) 남편의 제안이 자기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잘못 해석했다. 4) 그리고 남편은 아내의 침묵이 동행을 달가워하지 않는 표시라고 잘못 해석했다. 이 부부처럼 수없이 반복되는 오해와 여기서 일어나는 상호 분노는 부부관계의 토대를 흔들리게 한다. 대부분의 부부는 결혼생활을 하면서 끊임없는 위기에 봉착한다. 한국에서는 한 해 35만 쌍이 결혼하면 이중 46퍼센트의 부부가 이혼한다.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파탄으로 끝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크리스천들도 우리들에게는 이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우려한다. 사랑과 로맨스에 젖어 있는 신혼 부부들이 성공적인 결혼보다 더 바라는 것은 없다. 적어도 결혼 초기에는 자기들의 관계가 위기를 만난 부부들과는 다르고 자기들의 깊은 사랑과 낭만이 변함없이 이어지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오래 가지 않아 부부 사이에 점증하는 문제와 갈등에 아무 준비도 해 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부부가 너무나 많다. 그들은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정확하게 깨닫지 못한 채, 점점 더 불안과 좌절과 상처가 깊어짐을 깨닫게 된다. 부부관계가 환멸과 미성숙한 커뮤니케이션과 오해로 점철될 때, 그때 가서야 결혼한 것이 큰 실수였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더구나 결혼한 지 삼 사십 년이 넘은 부부까지도 실수와 불행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이혼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파경을 맞는 부부가 이토록 많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부부를 보호해 줄 끈은 많지 않은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 무조건 사랑하고 사랑 받는 것은 확실히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경험 중 가장 풍요한 경험이다. 또 여기에다 성경에서 권면하는 친밀감, 동료애, 수용, 지지 등 이루 다 열거할 수 없는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지 않는가. 희망을 잃었을 때 위로해 주고, 실의에 빠졌을 때 힘을 북돋워 주고 좋은 일이 있을 때 함께 기뻐해 줄 사람이 곁에 있지 않는가. 게다가 하나님께서 특별한 선물로 주신 성적 만족까지 누릴 수 있지 않은가. 자녀를 기르고 가정을 일구는 만족 또한 결코 과소 평가할 수 없는 일이다. 함께 살고 있는 공동체의 기대뿐 아니라 부모와 친지들의 희망과 격려도 부부를 뭉치게 하는 외부의 힘으로 작용한다. 부부를 튼튼하게 묶어놓은 끈이 이렇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왜 부부관계가 해체되는 일이 늘어나는가. 다른 모든 조건은 다 제쳐 두더라도, 부부를 한데 묶어두는 데 왜 사랑만으로 역부족인가? 불행하게도 사기를 떨어뜨리는 환멸감, 복잡하게 얽힌 오해, 상처만 남기는 그릇된 커뮤니케이션이 부부관계를 분열시키는 원동력을 이룬다. 이러한 분열세력과 여기서 오는 원한과 분노에 사랑만 가지고는 버틸 수가 없다. 부부관계를 해체시키지 않고 사랑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는 좋은 관계를 맺는데 요구되는 다른 요인들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과의 문제에는 잘 적응해 나가면서, 부부관계를 꽃피울 기본적 이해나 기술을 터득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함께 결정을 내리고 상대방의 커뮤니케이션을 제대로 해석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부부는 각자 상대방에 대한 감정과 기대가 높고, 의존하고 싶어하고, 상대방의 행동에다 자기 마음대로 상징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행동을 잘못 해석하기가 쉽다. 부부사이에 그릇된 커뮤니케이션 때문에 갈등이 발생할 때, 이러한 어려움이 많아지고 적대감과 오해가 심해지면, 곁에서 지지해 주고 좋은 경험을 가지게 해 주고 함께 가정을 일구었던 긍정적인 면을 볼 줄 모르게 된다. 결국 자기들의 관계를 의혹의 눈초리로 보고,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매듭을 풀 기회를 닫아버린다. 이러한 그릇된 커뮤니케이션을 수정하고 커뮤니케이션을 왜곡시키는 매듭을 풀고, 상대방이 나타내는 신호를 정확하게 보고들을 수 있는 능력을 발달시킴으로써, 이러한 부부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교회는 3세대가 매주 모이는 가정사역의 전략 요충지이기도 하다. 매주 모이는 이들을 상대로 결혼예비학교, 부부대화학교, 부부사랑학교, 어머니학교, 아버지학교, 시어머니학교, 며느리학교 등을 개설하기에 교회는 축복의 장소이다. 이러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부부간 가족간의 그릇된 커뮤니케이션을 바로잡아 줄 수 있으며, 가족간 그리고 부부간의 갈등은 해소되고 가정은 하나님께서 원하는 작은 천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세대 상담학 교수
  • 2003.12.06

    사랑하는 배우자와의 사별
  • < a> ⑪ 사별 현실 받아들이고 감정을 다스려야 사회활동이나 전문가 상담도 좋아 김 집사는 50대 후반으로 6년 전부터 위암으로 고생하던 남편이 드디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오랜 고생 끝에 당한 남편과의 사별이라 쉽게 견딜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는데 그게 그렇게 말과 같이 적응 되질 않는다. 두 딸이 다 출가한 빈집에 혼자 있기가 싫고, 식욕도 떨어지고, 두통에 불면까지 겹쳐 최근 3개월 동안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평소에 산행을 자주 하므로 건강에는 다소 자신을 가지고 살아왔으나 남편을 잃고 난 후부터는 온몸이 안 아픈 데가 없었다. 병원에 가서 진단해 보았으나 뚜렷한 증세는 나타나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상실로 인한 슬픔 때문이라고 했다. 기도도 안되고, 손에 잡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무기력해진 것 같고, 사는 것 같지 않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하루 속히 팔아서 다른 집으로 이사해서 남편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다. 신앙에도 자꾸 회의가 생겨 교회에 나가는 것도 힘이 든다. 슬픔을 이겨내고 정상을 되찾기 위해서는 첫째, 상실을 현실로 받아들이도록 해야한다. 죽음을 예상했을지라도 막상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따라서 유족들은 그는 이미 사망자이며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이 필요하다. 많은 경우 죽음을 현실로 인식하기까지는 그 사건을 누차 재고하고 마음속에서 똑같은 얘기를 수차 반복한 후에야 가능하다. 둘째, 유족들은 고통, 상실감, 외로움, 공포, 분노, 죄의식, 그리고 슬픔을 경험하는데 있어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분노의 감정을 안으로 삭이기도 하고 내뱉기도 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자신의 내면 깊숙이 느끼고 알 수 있도록, 그러면서도 이러한 감정의 포로가 되지 않고 균형을 맞추어 살아갈 수 있도록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셋째, 적응과 결단의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훈련을 거듭해야 한다. 망자의 역할이 어떠했느냐에 따라 그가 없는 삶에의 적응이 조명되어야 한다.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인데 배우자의 사망 후 흔히 이것이 문제가 된다. 넷째, 망자에 대한 감정을 재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망자와 연결된 감정 에너지를 서서히 사그라지게 하는 한 방법이다.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이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이를 꺼리는 사람도 있다. 떠나간 사람의 자리를 메워 줄 사람은 다시없다고 생각하고 망설이는 이도 있다. 그러나 빈 공간을 어느 정도는 채울 수 있다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다섯째, 슬퍼할 시간을 가져야한다. 이것은 여러 갈래의 줄을 하나씩 끊는 작업이며, 천천히 조금씩 이루어진다. 가족을 잃고 슬픔을 이겨내는 기간 중 먼저 사후 3개월경이 제일 어렵다. 장례식 후 아무도 찾아주는 이가 없기에 오히려 사람들이 자기를 피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되기도 한다. 또 다른 중대한 시기는 일주기 때와 명절 때, 그리고 크리스마스 때이다. 여섯째, 무엇이 정상적인 행동인가에 민감해야 한다. 슬픔이 표현되는 정상적 행동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미치는 게 아닌가 하고 느끼게 된다. 상실로 인하여 정신질환을 앓은 적이 있거나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진단을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다. 헛것을 본다거나 정신 착란 같은 현상 그리고 망자의 생각으로 꽉 차있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곱째, 개인적으로 정서 표현이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슬픔에 대한 반응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데 이 사실이 해당 가족들에겐 이해 안 될 수 있다. 가족 중 어느 하나가 슬퍼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고, 이상한 행동을 할 경우 불편해 하고 그 자신이 어색해 한다. 여덟째, 계속적인 지원을 받아야 한다. 어려움을 당하는 때 적어도 첫 1년여 동안 계속 지원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 중 한 방법이 미망인 지지그룹에 참석하는 일이다. 배우자, 자녀, 부모를 상실한 유가족들의 각각의 모임이 가능하다. 아홉째, 자신의 방어 및 적응 스타일을 자각해야 한다. 지나친 자기 정죄, 슬픔을 금욕적으로 부정하는 것, 분주한 활동 한가운데로 몰입(예, 지나친 금식, 지나친 기도, 지나친 봉사 등)하려는 것, 여러 가지 신체적 증상을 계속 보이는 것, 지나친 음주, 반사회적 행동, 자살하려는 시도, 격렬한 분노, 사회활동으로부터 완전히 움츠러드는 것 등, 이 모든 것은 슬픔의 불건전한 반응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열째, 문제점이 발견되는 대로 전문가를 찾아가야 한다. 우선 상실과 이에 따르는 슬픔으로 인하여 정신질환의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될 때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상담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상실 자체나 또는 그로 인한 슬픔을 잘못 다루어 심각한 어려움에 빠지게 되기도 한다. 한세대 상담학 교수
  • 2003.11.01

    가정상담
  • < a> 재혼, 초혼보다 더 많은 문제와 갈등 작년 42% 이혼, 재혼의 68% 다시 이혼 친근감, 적응도, 자녀문제에 대한 어려움 L집사는 3년 전 술주정뱅이 남편과 이혼했다. 남편의 알코올 중독으로 가세는 기울고, 가정을 살려보기 위해 파출부, 생활설계사 등으로 10년을 고생하다가 혼자서 아이와 살리라 하고 이혼했다. 지금도 어려웠던 그 때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놀라곤 한다. 아버지 없이 3년째 자라고 있는 민석이는 곧 중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L집사는 생활설계사로 일하면서 구역장 직분을 맡고 있다. 그 동안 이혼모로서 아이와 살아왔으나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다. 직장과 교회 그리고 구역과 친구와 사회조직 안에서 앉고 설자리가 없는 것 같이 느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최근에는 몹시 외롭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 싫어졌다. 구역장 직분도 내놓고 싶고 지금 다니는 교회를 옮기려하고 있다. 1개월 전 잘 아는 권사님의 소개로 2년 전에 상처한 남자 집사님을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된 사내아이가 하나 있다. 술, 담배도 안하고 조용하고 조금은 우울해 보이는 마음에 끌리는 사람이다. 저쪽에서도 L집사가 마음에 든다면서 결혼하자고 말하고 있다. 그 분과 결혼하면 민석이 아버지와 살던 때보다는 훨씬 행복할 것 같은 생각이 들다가도 망설여진다. 왜냐하면 그 분은 상처했고 자신은 결혼에 실패한 경우로 처지가 다른 것 같기 때문이다. 또한 그 분의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을지, 민석이가 새아버지와 새동생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누구하고 터놓고 이야기도 못하는 것은 이혼모가 바람나서 데이트한다고 수군거릴 것 같아 용기가 나지 않는다. 작년 한해 결혼한 수의 42퍼센트가 이혼했다. 이혼율이 높아지면서 재혼 또한 예전에 비해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재혼의 68퍼센트가 다시 이혼하고 있는 실정으로 재혼의 어려움을 말해주고 있다. 재혼하시는 분들은 재혼에 앞서 재혼의 이유, 재혼에 대해 자주 갖는 비현실적인 기대감, 초혼과 재혼의 차이, 그리고 재혼한 부부들이 가정을 만드는데 필요한 과제들이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재혼의 이유 중 많은 사람들은 독신으로 사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짐으로 생각한다. 혼자서 자녀들을 돌보고 재정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빨리 재혼하기를 원한다. 어떤 분들은 이혼 후에 실패감을 느끼기에 문제가 많았던 첫 번째 결혼을 잊어버리고 이번에는 이상적인 결혼생활을 하고 싶어한다. 어떤 사람들은 부모나 교인과 같은 주요한 사람들로부터 사회적인 제재를 받고 괴로워하며 재혼을 해서 그들로부터 다시 인정 받기를 원한다. 여러 번 이혼한 사람들은 재혼할 때마다 교회를 옮기면서 그들의 재혼 사실을 비밀에 붙여서 새 교회의 교인들이 그들을 받아주기를 원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재혼함으로써 이혼이나 배우자의 질병이나 사망으로 인하여 파괴된 결혼생활의 진정성을 회복하고자 한다. 재혼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감으로 사랑과 애정이 순간적으로 형성된다는 신화, 열심히 하면 악한 계모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신화, 생부모로부터 자녀들을 떨어지게 하는 것이 계부나 계모와의 인간관계를 향상시킬 수 있다는 신화, 모든 불행한 일은 재혼했기 때문에 생긴다는 신화, 한 사람이 줄 수 있는 사랑은 제한되어 있다고 믿는 신화, 사별 후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는 것이 이혼 후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는 것 보다 훨씬 쉽다는 신화 등이 있다. 재혼에는 다음과 같은 유형이 존재한다. 자녀가 없는 부부가 이혼하거나 자녀가 없이 배우자가 사망하는 경우 남아있는 배우자는 자녀가 없는 다른 사람과 재혼할 수 있는 단순한 재혼, 남편과 이혼하거나 남편과 사별한 여자가 아이가 없는 남자와 재혼할 때, 그 가정은 아이를 데리고 재혼하는 다른 형태의 재혼보다 일반적으로 어려움이 덜하다. 남자아이들은 비록 그들의 생부와 자주 만날 때라도 계부를 갖는 것에 호의를 가질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여자아이들은 일반적으로 그들의 어머니를 가장 강하게 닮으려고 한다. 따라서 계부가 들어온 상황에서도 어머니와의 관계는 가장 중요한 관계로 지속된다. 계모가 들어오는 결혼은 자녀의 생모가 아이 없는 남자와 재혼하는 경우보다 일반적으로 훨씬 더 고통스럽다. 여자아이들은 생모를 잃어버리면 계모와 경쟁심이 생기게 되어 스트레스를 받거나 스트레스를 야기시킬 수 있다. 복합가족이란 부부가 각각 이전 결혼에서 얻은 자녀들이 있을 경우를 의미한다. 많은 경우, 어머니의 자녀들은 그녀와 동거하지만 아버지의 자녀들은 친권 아래 있지 않고 자주 그 가족에 들락날락한다. 복합가족에서는 불규칙한 시간표, 재정적 의무, 그리고 연령 차이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자주 어려움이 쌓인다. 복합가족도 새로 재혼한 부부사이에서 자녀를 가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 새 자녀는 가족의 긴장을 감소시켜준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재혼한 부부가 그들 사이에 자녀를 가지면, 가족 중에 아버지의 위치가 강화된다. 초혼에서는 부모들의 부부관계가 자신들의 결혼생활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지만, 재혼에서는 이혼으로 끝났거나 배우자 사망으로 끝났거나에 관계없이, 이전 결혼의 ‘망령’이 새 결혼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경향이 있다. 재혼부부들은 초혼부부들보다 서로 다른 은행구좌를 가지고 있고, 친근감, 적응도, 표현력, 문제 해결력, 의사소통능력, 정서적 반응도, 정서적 연관성, 그리고 자녀에 대해 긍정적 감정 등의 모든 차원에서 초혼보다 못하며, 그들은 더 많은 갈등과 문제를 나타낸다. 한세대 상담학 고병인 교수
  • 2003.10.04

    이 혼
  • < a> 부부관계의 죽음, 이혼!! 결혼은 남편과 아내 사이의 영적, 친밀한 연합 양보없는 이혼위기 이해와 사랑으로 극복해야 K양은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중소기업의 비서실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어 딴에는 꽤 사회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지금껏 살아왔다. 아는 분의 소개로 지금 남편과 중매로 결혼한 지는 3년째가 되었다. 남편은 미국에서 의학공부를 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학원에서 영어강사로 일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미국에서의 좌절 때문에 그런지 사회적응을 잘 하지 못하고 열등감이 많은 성격이다. 늘 한국사회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으로 비평을 일삼고 있다. 시댁의 가족들은 홀어머니와 2남 1녀의 가족으로, 큰아들은 미국에서 취업하여 살고있고, 누이는 결혼하여 지방에 살고있다. 신혼 초부터 홀 시어머니와 같이 살고있는 형편이다. 막내이고 마마보이인 남편과 시어머니는 밀착되어 있어서, 두 사람 사이를 며느리인 자신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질 않는다. 더군다나 시어머니가 까다로워서 자신의 능력으로는 비위를 맞추기가 힘들다. 남편은 늘 시어머니 편에 서서 자신을 공격한다. 이러한 갈등으로 부부싸움은 매일의 일과처럼 되어있다. 급기야 K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기에 이르렀고, 의도적으로 아이 갖는 것을 회피하고 있다. 성경은 분명히 결혼을 남편과 아내 사이의 영적이고 친밀한 연합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이상이다. 그러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이상적이 아닌 상태에서 살아왔다. 성경은 이 점을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신명기 24장 1-4절에서 이혼이 묵인되는 것이지 명령된 것이거나 하나님께서 승인하신 것이 아니다. 구약성경에 의하면 ‘음행’에 관계되는 경우에만 이혼이 합법적으로 허용되었다. 유감스럽게도 ‘음행’의 의미는 유대교 지도자들 사이에서 논쟁의 주제가 되었다. 그러나 현대에 있어서의 이혼은 한가지만의 원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결혼생활은 각기 다르며 여러 가지 원인과 상황들의 독특한 원가족의 경험의 결합에 의해 이혼을 하게 된다. 이혼의 원인을 제공하는 결혼생활의 몇 가지 문제들의 원인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잘못된 의사소통, 이것은 부부간의 불화를 일으키는 가장 일반적인 원인이라고 한다. 의사소통의 불일치는 보낸 내용과 받은 내용이 다를 경우에 일어난다. 둘째, 방어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태도, 배우자와 가까워진다는 것은 모험적인 일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가까워지게 되고 그들이 우리의 약점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비난받고 거절당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경우 완고함, 신뢰치 못하는 마음, 타인을 비난하고 자신을 방어하는 경향을 나타내게 되어 결혼생활에 가장 중요한 친밀감이 파괴된다. 셋째, 대인간의 긴장, 두 사람이 결혼할 때 그들은 각각 약 20년의 경험들, 학습되고 훈련된 삶의 태도를 함께 결혼생활에 가져온다. 이런 차이들은 타협과 양보를 통하여 해결되는데 어떤 때는 서로 바꾸기를 싫어할 때도 있다. 성에 대한 옳지 못한 상식, 가정생활에서의 요구되는 서로의 역할의 차이, 신앙적인 양심과 헌신의 차이, 좋아하는 교파, 자녀의 신앙교육에 대한 차이를 포함하는 가치관의 차이, 부부 서로에 대한 욕구충족의 갈등, 돈과 얽힌 경제적 갈등, 시부모 및 친척 그리고 친정으로부터의 압력, 직업적성 및 권태 등이 포함된다. 넷째, 부부 양측의 미성숙은 많은 이혼의 결정적인 기초가 된다. 다섯째, 한국의 이혼율은 42%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인 태도와 가치관의 변화가 이혼을 용이하고 보다 용납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오고 있다. 여섯째, 신체적인 학대는 이에 따르는 두려움과 정신적인 고통과 함께 이혼을 증가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혼은 매우 고통스럽다. 이혼은 한사람의 인생, 일상생활, 자존감, 안정감 등을 철저하게 파괴한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또 영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혼은 정서불안, 불합리한 결정, 대인간의 긴장 등을 초래할 수 있다. 이혼은 여기에 관계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이러한 영향은 나아가서 자녀, 부모, 다른 가족들, 동료, 친구, 이웃, 또 교인들에게까지 파급될 수 있다. 이혼한 사람은 종종 외로움과 불안을 느끼고, 사람을 사귀어야 할지 재혼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하며, 또 정체감이나 자신감에 대해 염려한다. 이혼은 당사자 뿐 아니라 그들의 자녀와 주변사람들에게까지도 영향을 주는 심각한 위기이다. 이혼이 불러일으킨 변화들은 남편과 아내, 양쪽에게 관련된 모든 이에게 실패감을 준다. 자녀들은 여러 가지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자신의 배우자와 헤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중요한 사람들과도 헤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혼의 주요한 역설은 결혼이라는 제도가 법적인 면에서 끝나 버릴 수 있지만, 아픔의 관계는 평생 계속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는 대인관계에서의 고귀한 결말이 있고 애도하는 의식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은 교인들로부터 위로와 격려와 후원을 받는다. 그러나 이혼의 경우에는 교인들로부터 후원 받지 못하며 애도하는 어떤 의식도 없다. 이혼하는 사람은 자신의 전 배우자와 법적인 소송절차를 따르는 동안 서로 계속해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배우자의 죽음에는 육체의 죽음이 있지만 이혼에서는 관계의 죽음이 있을 뿐이다. 한세대 상담학 고병인 교수
  • 2003.09.06

    중도장애
  • < a> 장애를 입은 남편에게 가족애를 전하세요! 불의의 사고, 믿음과 사랑으로 극복 위로와 힘이 되는 하나님 말씀 묵상 남편 향한 아내의 지속적 신뢰와 인내 중요 K집사의 남편은 주물공장에서 작업반장으로 일한다. 성실과 근면함이 인정되어 작업반장이 된 것이다. 지난 2월에 쌓아놓은 강철 더미가 무너져 내려 서너 사람이 그 밑에 깔려 중상을 입게 되었다. 남편은 두 다리가 부러졌고, 왼쪽다리의 인대가 끊기고, 장이 파열되고, 등에 타박상을 입어 6개월 째 입원치료를 하고 있다. 앞으로 남편이 정상적으로 걷게 될 것인지 아닌지는 두고 봐야된다는 것이 의사들의 말이다. 다행히 산재처리가 되어 입원비와 치료비 부담이 덜 하지만 앞일을 생각하면 불안하고 초조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신앙생활도 나태해지는 것을 느낀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성실하게 봉사도 잘하던 남편이 왜 이런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회의하고 있다. 이와 같이 중도장애는 때로는 원인도 알 수 없이 시력을 잃는다든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는다든가, 마비 등 예측할 수 없는 재앙으로 다가온다. 이런 경우 남편이나 K집사나 일단 자기 앞에 닥친 사고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나면 마음은 어느 정도 가라앉지만 걱정과 근심이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어떻게 변화에 대응할 것인가? 이럴 때 추측하는 미래는 비현실적인 경우가 많다. 장애를 입게 된 남편은 병원에서 퇴원한 후에도 신체적인 도움을 계속 필요로 하게 된다. 약물을 투여하거나 잔심부름도 일일이 해야 하므로 누군가가 하루 24시간 내내 환자인 남편 옆에 있어야 한다. 장애 정도에 따라서 큰 차이가 있지만 도움이 많이 필요하면 할 수록 가족이 받는 스트레스도 크다. 의료보험 처리로 간병인을 고용해 보살핀다 해도 가족이 무관심 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가족들은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 패턴을 바꾸어야 할 필요가 생기게 된다.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누가 그를 돌볼 것인가? 치료비는 어떻게 지불할 것인가? 가족 중 누가 남편을 대신해서 직장에 나가야 하는가? 남편이 불구로 있는 동안 정지 당하거나 상실한 것들을 어떻게 보상해 줄 것인가? 가족 간의 관계, 특히 부부 관계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가족들이 장애를 입은 남편에게 느끼는 감정은 어떻게 다른가? 신체장애를 입은 남편의 직업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남편은 자기 자신의 신체적인 능력 변화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등이다. 남편은 쓸모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느낌과 삶에 대한 자신감 상실, 가족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준다는 죄책감, 환자 자신이나 가족들의 생활변화, 목적 상실, 보기 흉한 상흔이나 장애로 인한 수치심, 아무도 자기를 받아주지 않는다는 배척감, 희생자가 되었다는 분노와 좌절, 정체성 변화에 따르는 위기, 가족의 죄의식과 분노, 자기 때문에 희생하는 가족이 느끼는 불안, 절망 등으로 번민하게 된다. 이것들 중 특히 장애로 인한 상실과 절망의 위기에 배우자와 가족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어떤 사람은 절망에 빠지면 실망, 자포자기, 슬픔, 무관심을 나타낸다. 이것을 통틀어 일종의 우울증이라고 한다. 절망은 곧 죽음과 공허감이다. 또 어떤 이들은 절망에 빠지면 인지력을 상실하고 만다. 자신의 삶, 직업, 가정을 바라보는 방법이 절망을 느낄 때는 변색된다. 절망은 인생이라는 그림에서 따뜻함, 역동감, 기쁨을 지워버리고 어두운 부분만을 강조하는 카메라의 필터와 같다. 절망은 자신과 자신의 삶 그리고 하나님을 왜곡시키는 필터와 같다. 남편과 같이 절망에 빠진 개개인은 말로 확신시켜 주는 것에 대해 만족할 줄 모르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말로 해주는 확신으로부터 어떠한 위안도 만족도 얻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욕구는 순수하다. 남편이 스스로 확신을 통해 안정감을 얻는데 퍽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남편 스스로 자신의 기분이 정상으로 되돌아 갈 것이라고 여러 차례 말을 하고, 그럴 것이라고 확신에 찬 말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 진정한 정서적 안정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이전에 가졌던 능력과 행복의 순간들은 현재의 우울함으로 인해 완전히 뒤덮혀 있기 때문에, 자신이 결코 행복해지거나 즐겁게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수도 있다. 재확신을 심어주는 일은 절망감에 빠진 사람들과의 상담초기에 필요하다. 재확신은 “곧 회복될 것입니다. 기운 차리세요”와 같이 마술적인 약속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고통이 언제 어떻게 풀릴지 상담자도 정확하게 모른다. 그러나 상담자와 함께 아내들은 남편과 더불어 고통 가운데서 헤어 나오려고 시도해야 한다. 남편에게 재확신을 심어주는 일은 관심과 인내와 사랑 어린 관계, 남편의 고통의 원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위로와 힘이 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조용히 묵상하도록 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하다. 여기에 도움이 되는 성경구절 몇 가지를 소개한다. 이사야 40장 28∼31절, 41장 10절, 42장 3절, 43장 1∼4절, 빌립보서 4장 4∼9절. 한세대 상담학 교수
  • 2003.08.02

    고병인교수의 주제별 가정상담 - 알코올 중독
  • < a> 국내 알코올 피해가족, 9백만 명 육박 지속적인 치료전문기관과 연계, 가족 치료 병행돼야 본인 및 가족을 파괴시키는 평생 질병, 인내심 필수 어느 집사님의 남편은 일과 돈벌이에만 열심이었던 가정환경과 아버지의 외도, 알코올 중독 밑에서 자라서 인지 결혼해서 지금까지 술로 세월을 탕진하고 있다. 한 번도 직장생활을 해본 경험이 없었다. 남편의 단주를 위해 기도도 많이 해보았고, 알코올 전문 정신과 병원에도 여섯 차례나 입원해 보았으나 그때뿐 차도가 없다. 밤 2∼3시에 술에 취한 상태로 들어와 자고 있는 두 아이(8세 남, 6세 여)를 깨워 놀자고 귀찮게 하며, 토하고 구타하고 욕설을 퍼붓다 밤을 세우는 날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때로는 인사불성이 되어 집에 들어와 깨고, 부수고, 바지에 배변하여 온 식구들에게 추태를 부리고 공포를 느끼게 한다. 아빠 때문에 상처받은 아이들을 자신만이라도 사랑으로 보살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정작 아이들의 사소한 잘못에도 때리고, 고함치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아이들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야 된다고 다짐도 해본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게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다. 아이들을 아빠와 격리시키기 위해 조기 유학도 생각해 보았다. 이혼도 생각해 보았다. 남편도 괴로워하면서 주일이면 교회에 따라나와 기도하면서 눈시울을 적시기도 한다. 그러나 저녁만 되면 여지없이 술에 취하여 행패를 부리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결혼해서 10년 동안 하루도 편안한 날 없이 오물과 깨어진 유리조각을 밟고 살아왔던 것 같다. 한국에는 3백만 명의 알코올 중독자가 존재한다. 알코올 중독은 질병이며, 또한 중독자의 배우자와 자녀들을 병들게 하는 가족의 질병이다. 알코올 중독자들 때문에 고통 당하는 가족들은 어림잡아 9백만 명쯤 된다. 이들의 습관적인 음주는 음주에 대한 조절능력을 상실하여 건강, 직업을 잃게 되고 더 나아가서 가족, 대인관계, 법적인 문제 등 중요생활 기능에 장애를 일으키는 만성적 질병이자 가족의 질병이다. 중독자의 배우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아이들에 대한 양육태도가 경직되어 자녀들에게 사랑을 전달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과보호, 지나치게 간섭하는 이중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들 배우자와 자녀들은 중독자에게 의존되어 중독자를 조정할 수 있다는 망상을 갖거나, 중독자들에게 조정을 당하는 동반의존증 환자들이 된다. 배우자와 자녀들이 중독자인 아버지의 행동과 아버지가 연출하는 역기능적인 가정의 상황과 환경에 얽혀 자기도 모르게 아버지의 역기능적인 삶에 동반의존 된다는 것이다. 남편의 알코올 중독의 원인으로는 첫째, 성격적인 요인을 생각할 수 있다. 성격적인 불안정에 의한 심한 불안, 정서적인 미숙, 권위를 수용하는데 있어서의 문제, 좌절을 견딜 수 없을 때, 거만함 뒤에 숨겨진 낮은 자존감, 고립감, 완전주의적 성향, 죄의식, 강박관념 등이 있을 때, 때로는 성격이 손상되어져 있을 때 술을 마시게 된다. 둘째, 성격·유전·체질 등으로 인해 보다 쉽게 알코올 중독자가 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특성들 그 자체가 알코올 중독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성장해온 가정과 환경, 사회도 역시 중독의 가능성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있다. 셋째, 부모가 어떻게 행동하는가 하는 것이 후에 자녀들의 행동에 종종 영향을 미친다. 부모가 지나치게 술을 마시거나 약물을 남용하게 될 때 자녀들은 절대로 이런 것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개 그들의 부모를 따라 한다. 알코올 중독자가 된 부모를 가진 40∼60%가 알코올 중독자가 된다고 한다. 넷째, 부모의 태도, 부모의 허용뿐만 아니라 부모의 거부도 알코올 사용과 남용을 자극할 수 있다. 자녀들이 술을 마시든 마시지 않든 부모들이 개의치 않는 것은 알코올의 위험과 오용에 관해서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다. 만일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무관심하거나 지나치게 징벌을 한다면 자녀들도 반항을 하게 된다. 그 다음에는 범죄, 지나친 약물 남용, 알코올 중독 등이 종종 뒤따르게 된다. 알코올 중독자의 가정은 권위주의, 성공숭배, 공공연한 거부, 또 죄의식을 주입시키거나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도덕주의를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 다섯째, 한국과 같이 술 마시는 것이 허용되거나 술에 대해 관대한 문화를 가진 나라에 중독자가 많다. 알코올 중독이란 알코올 사용이 수용되는 범주를 초과하거나 적절하지 않은 때에 음주를 하거나, 또는 과도한 음주로 인하여 개인의 건강과 사회적인 활동이 손상을 입는 경우를 말한다. 음주와의 싸움은 평생동안 지속되는 싸움이다. 왜냐하면 알코올 중독은 일생의 병이기 때문이다. 평생동안 술 충동으로 고통 당하며 이러한 고통들은 A.A.(익명의 단주모임)나 지속적인 전문치료기관(신경정신과)의 집단치료를 통해 다루어야 한다. 또한 중독자와 아울러 중독자의 가족들은 Al-Anon(중독자 가족모임)에 나가서 가족치료를 받음으로서 환자치료에 역할을 할 수 있다. 환자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가족들은 성공적인 회복의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으며 혹은 방해적 역할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세대 상담학 교수
  • 2003.07.05

    가정폭력
  • < a> 부부는 종속이 아닌 평등의 관계 오늘날 가정 폭력 위험수위를 넘긴 상태 다양한 대화 등으로 부부간 갈등 해소를 배우자 학대는 일반적으로 우연하고 가벼운 접촉이 아니라 잔인한 신체적 폭력이다. 말하자면 발로 차는 것, 때리는 것, 밀어내는 것, 목을 조르는 것, 물건을 집어던지는 것 또는 무기를 사용하는 것 등이 해당된다. 신체적 폭력의 정도는 뺨을 때리는 것에서부터 살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학대자들의 성격 특성들을 살펴보면 첫째, 폭력은 세대적으로 전수된다. 어려서 폭력과 학대를 경험한 사람들은 성인이 된 후에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자녀 학대나 배우자를 학대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 표현능력이 결핍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에 비해 대부분의 남성들은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학대자인 남편들은 자기 감정을 인식하고 조절하고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셋째, 학대하는 남성은 대부분 배우자나 친밀한 상대방에게 정서적으로 크게 의존한다. 그들이 갖는 극도의 의존성은 보호, 안전, 끊임없는 확인을 요구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자신이 의존적인 것에 대해 마음속으로 분노하고, 결과적으로 힘을 과시하고 자신의 약함을 부정하기 위해서 통제력의 일환으로 폭력을 행사한다. 넷째, 학대하는 남성들은 밖에서 자기 주장을 못하며 자존감이 낮고 우울하다. 그들의 질투, 우울, 비판에 대한 민감성 등은 낮은 자존감에서 시작된다. 다섯째, 엄격하고 지배적인 남성들인 경우가 많다. 폭력적인 남성들은 배우자의 역할과 임무에 대해 융통성이 없고 고정적인 신념을 갖는 경향이 있다. 또한 자기 가족에 관한 모든 문제를 심하게 지배하고 통제하려 든다. 그들은 모든 중요한 결정을 자신이 내리려 한다. 가정폭력을 자극하는 사회적 조건들로는 첫째, 실직, 임시 고용, 직업에 대한 심한 불만 등의 경제적 스트레스 자극은 가정 폭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경제적으로 불안정하다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한 가정의 일차적인 생계 책임자로서의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에 손상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 학대자들이 가족의 부양자로서의 능력과 역할에 위협을 받고 부권을 상실하고 있다고 느낄 때는, 자기 권위의 대안적인 표현으로 폭력에 의존하게 된다. 셋째, 사회적으로 고립될 때 심각한 폭력행위를 야기시키게 된다. 학대적인 부부들은 가족이나, 친구, 이웃 또는 교회와 같은 조직과 관계 형성이 되어 있지 않다. 자기들의 구타 문제가 타인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넷째, 가정 폭력은 사회가 너그럽게 묵과해 줄 때 일반화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이 남성의 종속된 존재로 간주되었던 역사적 전통을 보면서 살아왔다. 경찰은 가정 폭력 사건에 대해 개입을 꺼려하고, 정신건강 관련 종사자들은 폭력의 원인 제공자가 여성이라고 비난하는 이러한 문화적 태도는 폭력적 관계를 그대로 지속하도록 영향을 주고 있다. 구타당하는 여성들의 특성을 살펴보면 첫째, 구타당하는 아내들은 자존감이 낮은 경향이 있다. 아내들은 어리석고, 무가치하고, 무능하며, 악처이고, 못난 어머니라는 말로 멸시를 당하고 위협을 받는다. 결국 자기는 더 이상 좋은 아내가 될 자격이 없다고 결론 내리고, 그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포기해 버린다. 둘째, 구타당하는 아내는 비현실적인 희망을 가지고 있다. 고통을 받으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남편을 사랑하며 충성하기까지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남편에 대해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남편에게는 자기가 꼭 필요한 존재라고 믿는다. 셋째, 구타당하는 아내의 특징은 사회적으로 점차 고립된다. 흔히 매맞는 아내가 도움을 요청하게 되기까지는 가족과 친구, 교회와 같은 사회적 대인관계로부터 단절된다. 그들은 남편이 집에만 있기를 원하기 때문에 친척과 친구들과의 만남을 피한다. 넷째, 구타당하는 아내는 경제적·정서적으로 의존적 경향이 있다. 매를 맞는 아내는 남편에게 매우 의존적이다. 다섯째,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구타를 당하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결혼에 대해 전통적인 역할을 취하려 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남편을 양육하고, 그에게 복종하고, 그의 실수를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개선의 책임을 주로 아내가 지려 한다. 구타당하는 아내가 알아야 할 사항으로는 먼저 아내들의 낮은 자존감이 치료되어야 한다. 둘째, 비현실적 희망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셋째, 사회적인 고립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넷째, 정서적 의존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다섯째, 결혼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여섯째, 분노의 감정을 용서로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폭력을 가하는 남편들이 알아야 할 사항들로는 먼저 감정표현의 어려움, 정서적 의존, 질투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둘째, 자존감이 낮고 자기주장의 능력이 결핍되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셋째, 성 역할에 대해 엄격하고 지배적인 사고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넷째, 약물과 알코올 의존에서 먼저 해방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폭력을 경험했던 가족들의 목표는 그들에게 폭력이 아닌 다름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계속적인 노력, 영적인 성장과 지도, 교회의 관심과 지지가 주어진다면 폭력의 악순환은 극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된다. 폭력이 일단 중지되고 남편이 다른 적응 방법을 배우려고 노력한다면 관심을 부부상담으로 돌려 대화기법, 갈등 해결기술, 부부의 역할, 성적 적응 같은 문제들을 상담해주는 가족치료나 가족상담을 하는 전문가를 찾아 나서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다. 한세대 상담학 교수
  • 2003.05.30

    고병인 교수의 주제별 가정상담 ⑤-분노
  • < a> 죄악된 인간 심성에서 분노 시작되고 있어 표현방식에 따라 인생의 성패 좌우 분을 품어도 죄짓지 않는 성도 되길 가정이나 직장사회, 인간관계에서의 분노는 이따금 누구나 경험하는 것으로, 정확하게 정의하기는 불가능한 감정 상태이다. 그것은 가볍게 약이 오르는 정도에서 격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강도로 일어나며, 어린아이에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계속 나타난다. 그것은 숨겨져 마음에 간직되어 있거나 밖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 분노가 특히 공격, 용서치 못하는 것, 복수의 형태로 지속될 때는 파괴적일 수 있다. 그러나 분노가 우리로 하여금 불의를 시정하거나, 창조적으로 생각하도록 자극한다면 건설적일 수도 있다. 분노는 우리가 목표를 향해 나갈 때 어떤 방해물이 생기면 일어난다. 그것은 대개 우리가 의식은 할 수 있으나 때로 조용히 웃는 얼굴 뒤에 묻혀 있는 감정뿐만 아니라 생리적 반응도 포함된다. 분노란 개인의 요구가 어떠한 모습으로 방해를 받을 때 나타나는 불쾌감에 수반되는 정서로서, 분노는 미미한 짜증 혹은 곤혹감으로부터 강한 격분이나 격노까지 여러 강도를 가지는 정서상태라고 할 수 있다. 분노란 타인이나 물건에 신체적, 언어적 공격을 표출함으로써 자신이 불쾌하다는 사실을 표출하는 내적 감정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분노는 의사소통 양식의 하나로서 연속적인 다단계 구조를 가진 감정으로 짜증, 좌절감, 분노, 격분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한 개인이 분노의 감정을 느끼기까지는 선행된 어떤 사건이나 상황이 존재하며 그 사건이나 상황을 해석하는 사고 유형, 개인의 가치, 혹은 신념이 상황과 분노의 감정 사이에서 중재적 역할을 한다. 즉, 어떤 사건이나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분노의 감정이 생길 수도 있고 생기기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분노의 감정은 매우 흔할 뿐만 아니라 정상적이고 자연스럽고 피할 수 없는 감정이다. 분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못한 세계에 살기 때문에 분노의 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다. 분노를 느끼는 것은 아무 문제될 것이 없으나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고 누구에게 표현하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분노가 올바로 다루어지지 못할 경우, 그것은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들을 파괴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분노의 상태에서는 취약해지고 실수하기가 쉽다. 그러나 분노는 잘 사용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분노는 인간으로서 우리가 겪는 모든 일에 연관되어 있다. 분노는 우리의 기대와 희망, 두려움, 삶에 대한 철학적 신념 등과 함께 우리의 정신 상태에 의해서 형성이 된다. 삶의 목적과 고난의 의미에 대한 신념, 자기 자신의 중요성에 대한 견해, 책임감과 도덕적 관념 등이 모두 다 우리가 분노할 가능성을 제공하고 우리가 선택할 분노 반응의 성질을 조성한다. 시간이 지나고 반복이 되면서 분노 반응은 뿌리를 내리고 습관화된다. 그리고 분노가 의지 속에 들어 있을지라도 그것이 억제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느 정도 분노는 학습된 반응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으로 인해 화를 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TV폭력으로 인해, 이를 보는 사람들이 공격적인 행동들을 묵인하기도 하지만, 종종 이에 개입하는 경향이 늘어난다는 것은 널리 인정되고 있는 사실이다. 어떤 직업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분노의 감정에 더 민감하게 만들 수 있다. 이것은 직업이 스트레스와 실망과 좌절을 많이 안겨 주면서도 분노를 마음대로 표현할 분위기를 마련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주도권 다툼과 그룹 사이의 경쟁도 역시 직업상의 분노와 적의감을 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승진을 하고, 명령을 받고, 직업이 안정되는 것도 역시 가정에서 분노가 늘어가는 일과 관계가 있다. 경쟁심도 분노를 유발한다. 학교나 운동, 사업에서든지 아니면 단순히 자기 자신을 남들과 비교하는 태도에서든지 경쟁은 자존감에 스트레스를 준다. 또한 소음과 군중이 분노에 대한 신체적인 각성이 일어나게 한다. 이런 면에서 교통체증은 분노를 유발하는 손님이라고 할 수 있다. 신체적으로 건강에 이상이 있을 때 분노가 유발되기도 한다. 분노의 내적 요인을 살펴보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에게는 정상적인 상황이라도 위협을 느끼게 할 수 있으며 두려움과 상처와 질투심이 분노를 타고 쉽게 표면에 나타나게 된다. 또한 삶에서 외로움이나 패배감 혹은 부적합감을 느끼면서 자신의 일들이 되고, 최고가 되고,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며, 항상 자신은 중요한 존재라는 느낌을 유지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러한 상황에서 분노를 일으키게 된다. 성경이 말하는 분노의 뿌리를 살펴보면 인간의 죄성과 자기 중심적 사고가 분노를 유발한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이 자기 삶의 가장 깊은 필요들을 충족할 수 없게 되면 두려움, 빈약한 자아상, 교만 등과 결합되어 인생의 어려움과 시련에 부딪칠 때 불안감을 조성하게 된다. 이것이 쉽사리 기분을 상하게 하고 용서하기를 꺼리게 만든다. 육신의 연약함은 분노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성가신 일을 만나거나 불쾌하거나 고통을 당하거나 죽음을 대하게 될 때 사람들은 자주 분노한다. 인간의 분노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하려면 하나님의 진노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성경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는 결코 비난하지 않으나 인간의 분노에 대해서는 반복해서 경고하고 있다. 이는 이중 기준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불의에 대한 분노는 하나님과 인간 모두에게 있어 정당하고 선하다. 하나님은 지혜로우시고, 주권자이시며, 강하시고, 완전하시며 또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결코 상황을 잘못 해석하고, 판단할 때 실수하며 위협이나 해를 당한다고 느낄 때 재빨리 반응하며, 때로 복수심을 갖고 반응하는 일은 없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분노는 해로울 수도 위험할 수도 있다. 그것은 사단에게 좋을 기회를 제공해 주기 때문에 성경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한세대 상담학 교수
  • 2003.05.03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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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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