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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결산
2024.12.29 / 데살로니가전서 1장 2~4절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데살로니가전서 1장 2~4절)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함께 인사 나누겠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한 번 더 인사하겠습니다. 우리는 감사할 것 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여기 우리가 와서 예배드리는 이 자체가 은혜요 축복입니다. 세상은 절망으로 뒤덮여 있지만 예배드리는 이곳에는 주님의 은혜로 희망으로 넘쳐납니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온 인류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한 해를 보내면서 데살로니가전서 1장 2절로 4절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의 결산’ 이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번 따라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결산’

교회는 이 땅에 세우신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요 구원의 방주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이 교회의 머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평생 이 교회를 사랑하고 기쁨으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 바울이 제2차 선교여행 중에 데살로니가에 세운 교회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 복음 전파에 힘쓰는 교회, 성도 간의 사랑이 넘치는 교회, 주의 종을 위해 기도하는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는 아름다운 소문으로 온 지역을 뒤덮었습니다. 마게도냐, 아가야 온 지역에 믿음의 본이 된 교회가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7절에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데살로니가 교회가 이렇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 칭찬받는 교회, 모범적인 교회가 된 비결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 그 답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3절입니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수고하며, 소망 가운데 인내한 교회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또 사람 앞에서 인정받고 칭찬받는 크리스천이 되어야 합니다.

언젠가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서서 우리의 일생을 결산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이와 같은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 21절입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하고”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올 한 해를 뒤돌아보면서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믿음 생활을 했는지, 주님 앞에서 사랑의 열매를 많이 맺었는지, 소망 가운데 인내하며 살았는지 우리의 삶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1. 믿음의 결산


먼저 우리의 믿음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믿음의 결산을 해보기를 원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3절에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라고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의 삶을 살았느냐? 늘 우리 자신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예수를 믿은 지 얼마 안 되었지만 그들의 믿음은 행동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입으로만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고 난 다음 그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그들을 칭찬한 것입니다. 

그들의 변화된 모습에 대해서 데살로니가전서 1장 9절은 설명합니다.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의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 우상을 버린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이전에는 다 이교도들이었습니다. 우상 숭배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것이 우상을 숭배하는 것인데, 그들이 복음을 듣고 나서 그들이 섬기는 모든 우상을 과감히 내버렸습니다. 

그리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역사인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의 모습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그 어떤 모습도 다 내버리는 것입니다. 

일본에서 예수님을 믿은 성도들이 대대로 섬기던 우상단지를 내버리고 불사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대대로 불단 앞에서 빌고 기도했는데, 예수님 믿고 나서 그거를 과감히 내버린 것입니다. 

온 친척들이 와서 그와 같은 행동을 보고 야단을 치고 비판하고, “너는 이제 우리 문중의 사람이 아니다.”

그 이후로 아예 예수님 안 믿는 사람과 상종하지 않고 지내게 되는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서도 그들은 과감히 불단을 버렸습니다.

일본 후쿠오카 계신 김일 목사님 말씀에 의하면 “그 불단이 보통 비싼 게 아닙니다. 보통 비싼 거는 한국 돈으로 일억이 넘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매일 같이 아침에 가서 빌면서 그걸 섬겼는데, 예수님 믿고 나서 우상은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이고, 우상숭배는 죄라고 하는 것을 알고 난 다음 과감히 그것을 내다 버리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불을 지른 것입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결단했습니다. 믿음이 행함으로 따라지지 않으면 그 믿음은 역사하지 않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야고보서에서 이를 강력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4, 17)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야고보 사도는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배를 드리고 나가서는 밤낮 자기 성질대로 화를 내고 남과 다투고 욕하고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내지 못한다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말과 행실이 하나님 앞에 인정받고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모습이 돼야 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여러분 머리나 가슴에 있는 믿음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나는 믿음이 될 때 그것이 참 믿음입니다. 아닌 것은 아니고, 옳은 것은 옳고, 올바른 판단을 하고 그 길을 가는 것이 올바른 믿음입니다.

 그런데 적당히 세상과 타협을 하면서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으로 인해서 여러분의 변화된 모습이 이웃을 변화시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삶에 아무런 변화가 없으면 우리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비판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 때문에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는 그와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사랑의 결산


둘째로 우리는 사랑의 모습을 결산해 봐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3절에 “사랑의 수고와”라고 말씀합니다.

이 ‘수고’라는 말은 고난과 연결돼 있습니다. 정말 너무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육체가 피곤할 정도로 수고하는 것, 어떤 고난도 참고 견디는 것, 이것이 여기 성경이 말하고 있는 수고인데,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주님을 섬기는 그 일을 위해서 어떤 수고도, 고난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에는 희생과 수고가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실제로 보여주신 분이 자기 몸을 희생해서 보여주신 분이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로마서 5장 8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주님의 사랑은 자신을 희생해서 온 인류를 구원하고 구원의 문을 열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한 그와 같은 희생적 사랑, 헌신의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입으로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말을 하면서 사랑의 열매가 없다고 하면 우리는 부끄러운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그 사랑에 감격해서 우리 주위에 가난하고 헐벗고 고통당하는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얼마나 우리가 사랑으로 희생하고 섬기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올해 많은 사랑의 열매를 맺지 못한 분이 혹시 있다면 새해는 정말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그러한 사랑의 실천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랑으로 수고했습니다. 희생했습니다. 누가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그들은 병자와 굶주린 자와 나그네와 과부와 고아를 돌봤습니다. 

자기들도 살기 어려운데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아낌없이 가진 것을 내놓아서 그들을 사랑으로 섬겼습니다. 모진 박해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데 최선을 다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교회의 본이 되고 많은 사람에게 칭찬받았습니다.

일본의 유명한 정치가요 교육자인 가타오카 겐 키치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이 정치를 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때 감옥에서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변소 청소였습니다. 화장실 청소를 시키는데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성경을 보는데 요한복음 13장에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장면을 읽으면서 크게 감동했습니다. 이 세상에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십자가 달리기 전에 하신 일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일이었습니다.

 그는 결심했습니다. ‘변소 청소하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한평생 남의 발을 씻는 일을 하면서 내 삶을 헌신하겠다.’라고 결심했습니다.

그가 감옥에서 나온 후에 그가 출석하는 고오치교회에 가서 무엇을 했느냐? 당시 대부분의 일본 교회가, 우리나라도 옛날에 다 교회 들어갈 때 신발을 벗고 들어갔는데, 신발을 벗고 들어가니까 신발장을 정리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나중에 장로님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더 나아가서 일본의 8대, 9대, 10대 중의원, 의장, 우리나라로 말하면 국회의장을 세 번이나 한 그런 훌륭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국회의장이 되고 난 다음에도 절대 교만하지 않고 매 주일 교회에 와서 신발장 정리를 했습니다.

어느 날 낯선 일본 장교가 와서 예배 끝나고 나가다가 자기 신발이 안 보인다고 거기 서 있는 노인에게 호통을 쳤습니다. 내 신발 어디 갔냐고 귀한 신발인데 소리를 치니까 고개를 조아리면서 “장교님 신은 높으신 분의 것이라 잘 간수해 두느라 딴 곳에 갖다 두었습니다.”하고 얼른 잘 보관해 둔 신발을 가져와서 그 앞에 내놓았습니다. 

근데 나중에 그 장교가 알아보니까 그분이 바로 중의원 의장인 가타오카 장로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웬 영감님이 신발장 정리하는 줄 알았더니 당시 우리나라 말로 국회의장이 신발장을 정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참 그리스도인이다. 우리도 저분이 믿는 예수님을 믿어야 하겠다.’ 이렇게 복음이 증거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은 섬기는 것입니다. 주는 것입니다. 받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그건 이기주의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예수님처럼 아낌없이 주고 또 주고 섬길 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섬김의 본을 보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 너무나 한국 경제가 어렵습니다. 모두가 힘들다고 말합니다. 영세 소상인들이 문을 닫고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힘들다고 외치고 있는데, 우리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그들을 섬겨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가운데 이제 구정 때까지 우리 교회에서 온 힘을 모아서 영세 소상인들을 돕고, 또 힘들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도 우리가 돕고 탈북자들, 다문화가족들을 도와서 주님의 사랑을 저들에게 전하는 기회가 되어야겠다 결심했습니다.

할렐루야! 사랑은 수고와 헌신, 섬김입니다. 여러분이 사랑을 사랑으로 열매 맺지 못하면 우리도 상급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말은 잘하는데 행함은 약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비난하는 말 중의 하나가 예수 믿는 사람은 물에 던지면 입만 뜬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은 어디를 가더라도 참 선한 영향을 끼쳐서 본받을 만하다는 칭찬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번 우리 불우 이웃 돕기에는 전 교인이 믿음으로 참여해서 지난번 우리가 바자회에서 모았던 그 기금을 합쳐서 한 10억 정도를 영세 소상인들과 다문화가족과 탈북자들에게 우리가 나눠주고 또 장애우들을 섬기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가 풍성하게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3. 소망의 결산


나아가서 셋째로 우리는 우리의 소망을 결산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 데살로니가전서 1장 3절은 말씀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여기 ‘인내’라고 하는 말은 용감한 군인이 극한 상황에서도 꿋꿋이 버텨나가는 기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상에 젖은 이방 도시에서 외국인이 전한 복음을 듣고 따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복음 때문에 모든 걸 다 저들은 희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족과 재산, 심지어는 목숨의 위협까지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로마 황제가 기독교인을 박해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황제숭배를 하지 않는 이 기독교는 이단들이니 다 저들을 멸해야 된다.’ 그래서 네로 황제로부터 시작해서 그 박해가 10대 황제를 지나가면서 AD 60년부터 시작된 이 핍박이 313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한 250여 년 가까이 계속되었습니다.

모든 믿는 사람들이 붙잡혀 로마 원형경기장에서 불에 타 죽고 짐승의 밥이 되어 죽고, 로마 귀족들은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평민이 되어서 로마 시내에서 추방당하고, 그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으면서 그들은 믿음을 지켰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그 많은 핍박이 따랐지만, 그들은 소망 가운데 인내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우리 주님이 다시 오셔서 우리를 이 모든 문제 가운데서 건져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소망이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견뎌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그 많은 시련을 참고 견디면서 다시 우리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홀로코스트의 생존자 빅터 프랭클이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신경학자요 심리학자입니다.

 이분이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 원래 영어 원제목은 ‘Man’s Search for Meaning’이라고 하는 내용인데, 이 책을 그가 썼는데 이 책이 그가 1997년 죽을 때까지 전 세계에서 1억 권이 넘게 팔렸습니다.

 여러분, 이 책 꼭 시간 되면 보시기 바랍니다. 나치 독일의 처참한 유대 수용소에서의 관찰한 내용을 그가 글로 남긴 것입니다. 그는 이와 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그 나치 수용에서 살아남은, 건강하게 살아남아 있는 사람들은 다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고, 그중에서도 남을 격려하며 도와주는 사람들이었다. 할렐루야! 

여러분, 어떤 고난도 이길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꿈과 희망이 있는 것이고, 그리고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돕는 그러한 선한 손길을 펼칠 때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그 환란과 핍박 속에서 참고 견뎠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10절은 말씀합니다.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예수님의 재림을 바라보면서 저들은 인내했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면서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 10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할 때 참고 견뎌야 되는 것입니다. 때때로 어려움이 다가오고 문제가 다가오고 내 몸도 약해지고 고난도 다가오지만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셔서 반드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고 우리를 밝은 미래로 인도하실 것을 믿고, 참고 견디어 나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3절, 4절은 말씀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할렐루야! 여러분 마음 가운데 이와 같은 위대한 소망을 품고 나가길 바랍니다. 아무리 세상이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 마음 가운데 소망이 불타오르는 한 우리는 모든 어려움도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환경이 너무나 어렵습니다. 정치적인 혼란이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우리나라가 이 편 가르기 병에서 놓여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어려운 시기를 지나가면서 다시는 이 조그마한 나라에서 편 가르기 하는 일이 없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1,200만 크리스천이 먼저 하나가 되고, 그리고 우리 5천만 우리 모든 대한민국 국민이 하나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가 된 위대한 힘으로 남북통일도 이루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하나 되어 주의 사랑을 실천할 때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삶 가운데 나타날 것입니다. 우린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너무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지나고 나서 선교사로 부름을 받고 섬기시다가 순교하신 권영수 선교사님 소개하길 원합니다. 

1952년에 서울에서 태어나셨는데요. 너무나 집이 가난하고 어려웠습니다. 형편이 어려워서 어머니가 벽돌을 나르는 일을 하시면서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종암동 판자촌에 살았는데 참으로 감사한 것은 6살 때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아이들이 가능한 한 더 일찍 교회를 다니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일생이 은혜로 변화가 되고 복을 받게 되기 때문에 어릴 때 교회에 나올수록 더 많은 축복이 한 평생 그와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그는 중학교 2학년 15살 때 ‘내가 주의 종이 되겠다’라고 헌신합니다. 그래서 이 권 선교사님은 총신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다음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 측 선교사가 되어서 필리핀으로 파송을 받습니다. 

그는 1991년 5월 필리핀에 가서 현지 적응을 위해서 도시 근교에서 사역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어느 날 예수전도단의 소속인 원주민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선교사님 정말로 복음이 필요한 곳에 가보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래서 그 청년과 함께 떠난 곳이 필리핀 북부 산악 지역입니다.

여러분, 필리핀 북부 산악 지역은 지금도 그 공산 게릴라하고 필리핀 정부군하고 전쟁하고 있고, 또 산간 깊은 속에 벽지, 산간벽지이기 때문에 외부와 단절돼서 서로 부족들끼리 다툼과 갈등이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 가서 만난 원주민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안남미라는 흩어지는 쌀에 소금을 버무려서 애들이 먹고 화장실조차 없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정말 불행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사흘 동안 그들과 있다가 내려오는데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가 이들을 버려두고 어디를 가려느냐?”

그래서 ‘내가 이들을 위해서 헌신하겠습니다. 6개월 동안 이들과 함께 있겠습니다’라고 순종한 것이 1년, 2년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 산간벽지에서 산속에서 저들을 섬기는 것은 참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늘 부족 간에 갈등이 있었고, 정부군과 공산 게릴라와의 끊임없는 총격전 때문에 자기가 머무는 곳 근처에도 폭탄이 떨어지고 총알이 쏟아지는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저들을 섬겼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매년 2월부터 6월까지 우리나라 보릿고개라는 것처럼 거의 굶어 지냈는데 몸무게가 48킬로까지 줄어들고 굶주림으로 탈진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열심히 70여 개의 산간벽지에 있는 교회들을 섬기면서 거기에 새생명말씀 신학교를 세워서 산지족 목회자 200명을 양성하고, 2004년 6월에는 바이오에 필리핀 교육부의 정식 인가를 받은 루손동부대학을 설립합니다.

2011년에는 고등학교를 설립하고요. 그밖에도 의약품 전달, 치과 사역, 희귀 장애아 수술 등 의료활동과 고립지역 생필품 전달, 도로 공사, 환경 개선 지원 등 사회봉사 및 NGO 활동을 같이 전개해 나갔습니다.

24년째 봉사했을 때 연세대학교에서 그 공로를 인정받아 제15회 언더우드선교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부족한 사람과 하나님께서 동행하셔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필리핀에서 이름 없이 수고하고 헌신하는 선교사님들과 상의 기쁨을 같이 나누겠습니다”

그 후로도 계속 선교사역에게 매진하던 중 2020년도에 너무나 어깨에 통증이 심해 서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통증을 참고 견디다가 이제 코로나가 끝날 때쯤 한국에 들어와서 정밀 검사를 받았는데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온몸에 암이 전이돼서 수술을 받지 못할 상황이니까 항암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항암 치료가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항암 치료를 포기하고 평생의 기도 제목이 ‘선교하다 죽겠다’였는데 ‘난 이제 항암 치료 포기하고 필리핀 들어가서 선교 사역하다 죽겠다.’라며 필리핀으로 돌아가셔서 계속 선교사역을 이어 나가시다가 올해 1월 29일, 33년간 그 산지족 선교를 끝으로 주님 앞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죽기 전에 이와 같은 말씀을 남겼습니다.
 “많은 교회를 세우고 학교를 세운 선교사라고 칭찬하고 갈채를 보내지만 나는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선교사의 진정한 성공은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는지에 있지 않고 파송 받은 선교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는 데 있습니다. 최후를 맞는 그 순간까지 산지족 선교를 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수고하고 소망 가운데 인내하다가 72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천국에 가셨습니다.

여러분, 진정한 사랑은 섬김입니다. 희생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을 사랑하고 계십니까?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길 원하십니까? 오늘 한 해를 돌아보면서 정말 내가 믿음으로 일했는가? 사랑으로 수고했는가? 소망 가운데 인내했는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다가오는 새해에 정말 우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는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찬 324장(통 360) 예수 나를 오라 하네> 

1절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같이 가려네

후렴 주의 인도하심 따라 주의 인도하심 따라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같이 가려네

2절  겟세마네 동산까지 주와 함께 가려하네
     피땀 흘린 동산까지 주와 함께 함께 가려네

4절  주가 크신 은혜 내려 나를 항상 돌보시고
     크신 영광 보여 주며 나와 함께 함께 가시네

한 평생 주님과 동행하면서 믿음의 열매,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로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리고,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을 끼쳐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다 희생하고 아낌없이 주셨는데, 우리는 아직도 더 가지려고 하고 더 높아지려고 하고, 우리 주위에 고통당하는 이웃을 돌아보지 않고 부끄러운 삶을 살았던 것을 회개합니다. 믿음이 있노라고 하면서 행함이 없었던 저들의 모습을 회개합니다. 주님, 이제부터는 우리가 주님께 받은 그 사랑을 행함으로 실천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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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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