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오신 예수님(Ⅳ)
2024.12.22
/ 이사야 11장 3~6절, 9절
“그가 야훼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야훼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이사야 11장 3~6절, 9절)
성탄절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희생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우리가 어떻게 맞이해야 합니까? 온 세상이 인간의 탐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그것은 탐욕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남의 땅을 빼앗아서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탐욕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수년간의 전쟁으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헤즈볼라와의 전쟁도 그러합니다. 지금 한국은 탄핵 정국으로 인해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외교적으로 신뢰도는 땅바닥으로 떨어져 있고, 지금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어디를 봐도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사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예수님만이 모든 문제의 해답이 되시고, 우리의 희망이 되시기에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모든 문제 해결의 답입니다. 예수님만이 온 인류의 희망이 되시고, 이 어지러운 세상에 참된 평화의 왕으로 오셔서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걷어내 주시고 우리의 삶 가운데 주님의 사랑과 평화가 넘쳐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 천군 천사가 노래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 2:14).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또 동시에 공의의 심판자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사야 9장 7절은 말씀합니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야훼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먼저 주님은 오셔서 이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십니다.
1) 야훼를 경외함을 기뻐하심
공의로 심판하는 예수님의 사역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을 기뻐하신 우리 주님이십니다.
이사야 11장 3절에 “그가 야훼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모습은 하나님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잘못된 죄에 대해서는 심판하시고 우리가 회개할 때 우리를 용서하시고 사랑으로 품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공의와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섬길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마음에 임합니다.
죠지 뮐러 목사님(George Müller, 1805-1898)은 영국에서 10,000명이 넘는 고아를 평생 돌보신 아주 귀한 목사님이십니다.
목사님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일기장이 나오는데, 일기장을 펼쳐보니까 ‘오늘은 내가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응답해주셨다, 이렇게 응답해주셨다, 이렇게 응답해주셨다.’ 그 응답 받은 내용들이 쭉 적혀져 있어서 그 내용의 숫자를 헤아려 보니까, 평생 약 5만 번의 기도가 응답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0,000명이 넘는 고아를 돌보면서 단 한 번도 어디 가서 도와달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엎드려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채워주시고, 또 채워주시고, 또 채워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우리는 문제를 만날 때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사람을 찾아가는데, 우리 예수님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와서 죠지 뮐러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그 많은 고아를 어떻게 돌볼 수 있었습니까?” 목사님은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봉사를 시작하게 된 그 날은 바로 내가 죽었던 날입니다. 나의 의견과 선택과 취미와 내 뜻도 죽고, 세상과 세상의 칭찬과 비난, 그리고 내 형제와 친구들의 칭찬과 비난에도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후로 나는, 오직 하나님께만 인정받도록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 왔습니다."
사람들이 내게 뭐라 그런다고 일희일비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실까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이기에, 누가 한 마디만 뭐라 그래도 그 마음에 상처를 받고 낙심할 때가 많습니다.
이 시간 이후로 우리가 굳게 결심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난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겠다.’ 주님이 내게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주님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이고 그 음성 앞에 ‘아멘!’ 하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심
예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서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이사야 11장 4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이 사람들을 외모로 판단하지 아니하시고, 공의로 사람을 판단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외모를 보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대단히 죄송하게도 고급 백화점 앞에 호텔 앞에 요즘은 그 차가 없는데, 옛날에 티코라는 차가 있어요, 티코. 조그마한 차가 있는데 그 차를 몰고 고급 백화정 등을 가면 저리 가라고 내쫓으면서 벤츠 같은 고급차가 오면 다가가서 90도로 절하면서 문을 열어 줍니다. 그게 사람입니다.
차를 보고 사람을 평가합니다. 그 안에 누가 탔는지도 모르고. 그러나 예수님은 한 번도 우리 하나님처럼 외모를 보고 판단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무엘상 16절 7절 이하에 이와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야훼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늘 겉으로는 사람들 앞에서 거룩한 척하고 부족함이 없는,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칭찬받는 모습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모습만 보여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큰 소리로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가 하나님 말씀을 잘 지키고 일주일에 이틀씩 금식도 하고, 내가 하나님 앞에 십일조도 제대로 하고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습니다.” 기도는 골방에서 조용히 해야 되는데 다 들으라고 큰 소리로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속은 탐욕과 교만으로 썩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의 그런 이중적인 모습에 대해서 책망하시는 말씀이 마태복음 23장 25절로 26절에 나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예수님은 이중인격자인 저들을 책망하시고 오히려 그들이 무시하고 사람 취급하지 않는 세리, 당시 세관원들을 저들이 무시했던 것은 로마 제국에 충성하면서 동족들의 세금을 많이 거두어들였기 때문에 사람 취급을 안 했습니다. 세리, 죄인들, 창녀, 이 세상 사람들이 상종하지 않는 그들을 가까이하시고 사랑으로 품으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제자를 뽑을 때도 배경이 좋고 무언가 권력 가진 사람들의 집안에서 뽑은 것이 아니라 어부와 같이 평범하고 사람들에게 주목받지 못한 사람들을 뽑으셨는데, 그것은 그들을 외모가 아닌 그들의 마음을 보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주님 앞에 인정받는 온유와 겸손으로 무장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예수님은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당시 유다 사람들은 로마 제국의 압제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줄 국민적인 영웅, 마치 용맹한 장군 같은 그러한 메시아가 오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로마 제국을 멸하고 심판하고 위대한 유다 나라를 세울 그런 왕 같은 메시아를 원했는데, 예수님은 그런 메시아로 오신 것이 아니라, 공의의 재판관으로, 그리고 겸손과 온유의 종으로, 섬김의 종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셔서 이 온 세상의 이 어두움을 걷어내 주시고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로 이 세상에 참된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유다 나라가 계속 앗수르나 바벨론으로부터 침략을 받고 나라가 무너지게 된 것은, 그들 마음속에는 탐심과 우상숭배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공의로운 모습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마음은 썩어져 있었기 때문에 많은 심판을 받게 되고 결국은 그로 인해서 저들이 멸망 당하는 일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불의를 벗어버리고 주 앞에 의로운 삶을 살도록 이 땅에 공의의 심판자로 오신 것이요, 그리고 이와 같은 모든 땅의 갈등과 대립, 고통이 사라지고 참된 평화가 오도록 평화의 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주님이 전하시는 말씀을 통하여서, 입의 막대기와 입술의 기운으로 즉 능력의 말씀으로 세상을 다스리시고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의를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의의 재판장으로 오셨기 때문에 주님이 계신 곳에 불의가 사라지고 이 땅의 모든 탐욕과 거짓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 살던 우리들이 주님 앞에 나와서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 우리의 마음에 있는 탐심과 교만을 내려놓사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기도할 때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를 덮어주시고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새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공의를 행하시고 겸손과 온유로 우리를 사랑으로 돌보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72편 2절입니다.
“그가 주의 백성을 공의로 재판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정의로 재판하리니”
여러분, 이 세상에 악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를 고통 가운데 몰아넣는 그런 악한 사람들이 있는데, 성경은 말합니다. 그들의 결국은 시편 1편의 결론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야훼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 1:6).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여러분, 악인들의 길은 망할 것입니다.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의의 회복입니다. 죄 가운데 절망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를 예수님의 보혈로 덮어서 변화시켜서 의롭게 변화 받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 그 놀라운 역사가 바로 구원의 역사인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랑의 실천자로,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로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주님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미가 6장 8절은 말씀합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야훼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우리가 의롭게 그리고 우리가 주의 사랑을 실천하며 겸손하게 주님과 동행하게 될 때 평화의 왕이 되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넘치는 평안으로 채워주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참 평화를 가져오셨습니다. 이사야 11장 9절은 말씀합니다.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야훼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예수님이 공의로 통치하는 그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인데,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한마디로 말하면 평화, 샬롬입니다. 샬롬.
여러분, 미움과 다툼이 있는 곳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그건 세상 나라입니다. 진정한 샬롬, 진정한 평화의 나라는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같이 뒹굴며 문제없이 사는 사회를 말합니다.
배웠다고 못 배운 사람 무시하고 깔보는 것이 아닙니다. 배우나 못 배우나 우리는 다 같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함께 어울려 잘 살고, 많이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그러한 나라가 그러한 사회가 하나님이 임하시는 나라요 하나님이 임하시는 사회인 것입니다.
흑인과 백인이 피부의 색깔 상관없이 같이 어울려 지내는 나라, 그리고 다문화 가족들이 함께 어울려서 다 같이 한솥밥을 먹으며 형제자매처럼 지내는 나라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샬롬인 것입니다.
미움, 다툼, 살상, 전쟁은 죄의 산물입니다. 마귀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 인간 사회에 들어와서 어떻게 하든지 서로 싸우게 하고 갈등을 일으키게 하고 미움을 집어넣어서 서로가 물고 뜯고 원망하면서 고통 속에 살아가게 만듭니다.
신문을 보면 모든 뉴스가 이와 같은 죄로 얼룩진 뉴스뿐입니다. 연애도 잘 해야하는 것이요. 못된 남자를 만나면 보니까, 여자 친구가 ‘당신, 성격이 너무 나빠서 못 만나겠다.’라고 하니까 칼 들고 찾아가서 여자 친구와 그 가족을 다 죽여 버렸어요.
한때 사네 죽네 하면서 사랑한다고 하던 친구가 그리 와서 칼 들고 난동을 피우고. 그러니까 사람 잘 사귀라고요, 괜히 아무나 사귀지 말고. 예수님 잘 믿고 성품 좋은 사람 사귀면 되는 거예요. 예수님 안 믿고 성격 못된 사람 만나면 평생 고통 속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쨌건 이 세상 사람들의 속사람까지 알 수 없으니까 나중에 어떻게 그 사람이 변할 줄 모릅니다. 믿었던 친구들이 배신하고 뒤돌아서고, 서로 속이고 속는 사회입니다. 웃으며 달려와서 나중에 뒤에서 비수를 꽂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 하신 말씀이 있어요. ‘이 목사, 사람을 볼 때는 3년을 보고 사귀어.’
저는 늘 그 생각을 합니다. 3년을 알고 나서 그 사람과 대화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사람이 좋아서 만나자마자 속 이야기를 다 해 버리는데, 그것이 나중에 비수로 돌아와서 나를 힘들고 어렵게 할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예수님 믿는 사람들끼리 정말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들의 모임이 되어서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야지 이와 같은 죄의 모습으로 살면 안 됩니다. 물고 뜯고 싸우고 역사하는 것은 마귀의 역사입니다.
지금 이 나라를 보십시오.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입니다. 전 세계 한 나라가 둘로 나누어진 나라는 우리 대한민국밖에 없습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쳐다보지 마시고...
우리가 79년 동안 반만년 역사 가운데 이렇게 나눠진 적은 처음입니다. 우리가 원해서 나눠진 것이 아닙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냉전 시대가 와서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충돌하면서, 그 갈라진 모습, 나눠진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입니다.
우리 온 나라가 해방되었을 때 우리나라가 다 같이 해방되는지 알았지, 우리도 모르게 미국하고 소련이 허리를 잘라놓을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스탈린하고 아이젠하워가 우리 뜻과 상관없이 이 나라를 반 나눠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조그만 땅덩어리가 반으로 나눠진 것도 너무나 안타깝고, 저 북한이 공산 정권에서 호시탐탐 핵무기를 개발하고 우리를 치려고 하는데, 남한은 이 조그만 나라가 그저 물고 뜯고 싸우고, 아이고, 정말. 문제가 많아요. 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
이 땅에 편 가르기 싸움이 없어져야 됩니다. 진보 보수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지역감정이 사라져야 합니다. 정치권이 회개해야 합니다.
이번 탄핵정국을 지나가면서 우리 대한민국이 거듭나야 됩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1,200만 크리스천이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기도해서 우리 대국민 대통합을 이루고 위대한 대한민국을 건설해 나갈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평화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가 되셨기 때문에, 이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이 평화의 왕국을 건설하면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일이 없습니다. 미움, 다툼, 시기, 질투 이것은 마귀의 도구입니다.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가르친 말씀, 다락방에서 전하신 말씀 가운데, 요한복음 13장 34절, 35절에 이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렇게 용서를 주님이 강조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14절입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여러분,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가는 주님의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내 마음속에 아직 미움이 있습니다. 내 마음에 상처가 있습니다. 내 마음에 분노가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고 미움, 분노, 섭섭하고 상처받은 거 다 내려놓고,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겠습니다.
여러분, 용서는 일방적인 것입니다. 저 사람이 나에게 와서 용서를 빌어야 용서하는 건 제대로 된 용서가 아니고. 물론 그렇게 되면 더 좋겠지만, 예수님이 우리한테 ‘너 먼저 나한테 잘못했다 그래라 그럼 용서해 주겠다.’라고 하신 적이 없어요.
그냥 십자가에 달려서 우리를 위해 먼저 죽어 주셨어요. 예수님이 우리를 다 먼저 용서하셨어요. 그 사랑에 힘입어, 그 용서에 힘입어서 우리가 용서하는 겁니다.
일방적인 용서에요. 여러분, 누가 여러분을 상처 주고 괴롭히는 사람이 있으면 지금 다 용서해 주세요. 그 사람이 알든 모르든 상관없어요. 주님과 나와의 관계이니까, 내 마음속의 미움을 풀어놓으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에 있는 아픔을 풀어놓으시기 바랍니다. 용서하고 또 용서하고 또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넘쳐나게 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과 용서로 온 세계를 감동시킨 판티 킴푹(Phan Thị Kim Phúc)여사 이야기를 소개하기 원합니다.
이 판티 킴푹이라는 여성은 1963년도에 베트남에서 태어났는데, 베트남전이 한참이던 1972년 6월 8일 네이팜탄이 떨어졌을 때, 그 동네 한 사원의 탑 안에서 한쪽에 숨었다가 온 동네가 불이 나니까 몸에 불이 붙어서 뛰쳐나오게 되었습니다.
이 네이팜탄은 한번 떨어져 폭탄이 터지면 3,000도 뜨거운 열로 주변을 타 태워버리는데 이 아이가 온몸이 타니까 옷을 벗고 뛰어나왔는데, 이것을 한 기자가 봤습니다.
닉 우트라고 하는 종군기자가 이 아이의 사진을 딱 찍어서 올려서, 이분은 그다음 해에 퓰리처상을 받게 되었는데, 사진 찍고 난 다음 가지고 있던 물을 들이 붓고 그 아이를 병원으로 옮겨서 치료받게 했는데, 전신 30퍼센트가 3도 화상을 입고 14개월 동안 17번의 수술을 계속 받고 또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종군 기자에게 찍힌 이 사진 한 장, 여자아이가 벌거벗고 뛰는 이 사진 한 장이 미국 신문에 실려서 미국 사람들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이제 전쟁을 끝내자!’ 이 사진 한 장이 8년 동안 계속되던 전쟁을 멈추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1973년 8월 파리에서 평화협정을 맺고 미군이 철수합니다.
이 사진 한 장이 미국의 역사를 바꿔놓고 베트남의 역사를 바꿔 놓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네이팜탄 소녀라고 벌거벗은 몸으로 자기 온 세계에 알려진 것에 대해서 굉장히 수치스럽고, 그리고 이 사진에 나온 것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본인이 도서관에 들어가서 책을 살펴보다가 성경을 읽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을 만나서 용서하는 마음을 배우게 되었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온몸에 화상을 입었지만, 얼굴과 손, 발이 화상을 입지 않은 것에 감사했습니다.
물론 몸 대부분이 다 탔지만, 타지 않은 얼굴이 있는 것에서 감사했습니다. 퓰리처상 그 사진이 자기 마음을 불편하게 했지만, 이 사진 때문에 전쟁이 끝나게 된 것에 감사했습니다.
베트남에 있는 한 의과대학에 들어가서 의사가 되려고 공부하는데, 이 공산정부가 이 아이를 불러내서 계속 반미 선전을 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베트남에서 살 수 없음을 알고 1986년에 당국의 허가를 받아서 쿠바에 유학을 갔다가 그곳에서 결혼하고 캐나다로 건너갑니다.
캐나다로 건너가서 캐나다 시민권을 얻게 되고, 1997년에는 ‘킴 푹 재단’을 만들어서 전쟁의 피해를 입은 청소년들을 돌보는 그러한 의료구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 킴 푹 여사가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1996년 11월 11일 미국에 재향군인회 행사의 날에 갔다가, 자기가 있는 마을에 폭탄을 떨어뜨린 조종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조종사의 이름은 존 플러머(John Plummer)라고 하는 사람인데, 이 존 플러머라고 하는 사람이 이 폭탄을 떨어트리고 난 후 신문에 난 기사를 봤어요. 사진을 보면서 ‘내가 떨어뜨린 폭탄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당했구나.’ 너무너무 괴로워서 밤마다 술이 없으면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술 중독자가 되고 그러다 보니까 부인하고도 헤어지고 정말 절망적인 삶을 살게 되었는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이분도 그 절망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재향군인의 날 이 여인이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킴 푹 여사에게 와서 사과합니다.
“내가 그 조종사입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계속 미안하다고 그랬습니다. 그러자 킴 푹 여사는,
“괜찮아요. 괜찮아요. 용서합니다. 용서합니다.”(It’s all right, It’s all right, I forgive, I forgive.)
얼마나 감동스러운 장면인지 모릅니다. 이 만남에서 존 플러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어떻게 2분 동안의 짧은 대화가 지난 24년 동안의 악몽을 깨끗이 지워버릴 수 있었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내가 받은 용서는 내가 무엇을 했기 때문에 받은 것이 아니라, 그저 그것은 선물이었습니다. 그저 신비로울 따름입니다.”
놀라운 것은 존 플러머가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어 버지니아에 있는 베다니 연합감리교회의 담임목사님으로 귀하게 사역하시고, 지금은 이제 86세로 후임 목사님이 사역을 이어받아 하고 계시는데, 교회를 섬기면서 늘 십자가의 사랑과 용서에 대해서 설교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전쟁의 폭탄을 떨어트렸던 가해자에서 이제는 용서받은 의인이 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목사가 되어 하나님의 귀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이분 자료를 찾느라고 온 미국 사이트에 들어가서 재향군인회 사이트까지 다 뒤지고 미국 감리교 사이트까지 다 뒤져서 저 사진 찾아냈어요. 이분이 이렇게 변화됐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랑과 용서 가운데 이렇게 위대한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킴 푹이라고 하는 어린 9살짜리 여자아이가 폭탄에 맞아 온몸이 불탔다가도 이렇게 변화되어서 이제는 평화운동가로 우리 아동들 사역자로 가는 곳마다 귀한 일을 감당하고 있고, 2019년에는 한국에 왔었어요. DMZ 기조연설자로 한국에 방문했을 때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용서가 쉽지 않을텐데, 어떻게 진정한 평화의 마음을 찾았나요?”
대답합니다.
“저는 많은 싸움을 했습니다. 육체적인 고통을 견뎌내야 했고, 증오가 있었고, 화가 있었고, 쓰라림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감사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1982년 베트남에서 성탄절에 크리스천이 되기로 결정했었고, 예수님을 믿고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면서도 용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계속 앞으로 나아갔을 때 내가 그 역사를 바꿀 수는 없지만, 사랑으로 평화를 위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할렐루야.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지금의 나는 용서의 마음을 갖고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과거는 바꿀 수 없습니다. 누가 나를 상처 입히고 나를 고통 주는 과거는 과거입니다. 과거는 잊어버리고 사랑과 용서의 마음을 품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많은 절망에 처한 사람들이 사랑과 용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이 킴 푹 여사처럼 우리도 이제는 사랑과 용서, 평화의 메시지를 온 세상에 전하는 평화의 사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참된 평화가 우리 마음 가운데 임하기 위해서 찬송가 112장을 함께 찬송하겠습니다.
<찬송가 112장(통 112) : 그 맑고 환한 밤중에>
1절 그 맑고 환한 밤 중에 뭇 천사 내려와
그 손에 비파 들고서 다 찬송하기를
평강의 왕이 오시니 다 평안하여라
그 소란하던 세상이 다 고요하도다
2절 뭇 천사 날개 펴고서 이 땅에 내려와
그 때에 부른 노래가 또 다시 들리니
이 슬픔 많은 세상에 큰 위로 넘치고
온 세상 기뻐 뛰놀며 다 찬송하도다
3절 이 괴롬 많은 세상에 짐 지고 가는 자
그 험산 준령 넘느라 온 몸이 곤하나
이 죄악 세상 살 동안 새 소망 가지고
저 천사 기쁜 찬송을 들으며 쉬어라
4절 옛 선지 예언 응하여 베들레헴 성에
주 예수 탄생하시니 온 세상 구주라
저 천사 기쁜 노래를 또 다시 부르니
온 세상 사는 사람들 다 화답하도다
여러분 지금이야말로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가 필요한 때입니다. 예수님이 가져오신 평화가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에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가 강물처럼 넘쳐나도록, 그래서 참된 평화의 나라가 되어서 국민 대통합을 이루고 위대한 대한민국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여러분 모두가 한 마음 되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이 나라를 바꿀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 평화의 주역으로 부름을 받았으므로 맡긴 사명 잘 감당해서 주님의 큰 은혜와 사랑을 누리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한 번뿐인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은혜를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 모두 평화의 사도가 되어서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를 온 세상에 널리 전하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성탄절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희생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우리가 어떻게 맞이해야 합니까? 온 세상이 인간의 탐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그것은 탐욕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남의 땅을 빼앗아서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탐욕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수년간의 전쟁으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헤즈볼라와의 전쟁도 그러합니다. 지금 한국은 탄핵 정국으로 인해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외교적으로 신뢰도는 땅바닥으로 떨어져 있고, 지금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어디를 봐도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사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예수님만이 모든 문제의 해답이 되시고, 우리의 희망이 되시기에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모든 문제 해결의 답입니다. 예수님만이 온 인류의 희망이 되시고, 이 어지러운 세상에 참된 평화의 왕으로 오셔서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걷어내 주시고 우리의 삶 가운데 주님의 사랑과 평화가 넘쳐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 천군 천사가 노래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 2:14).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또 동시에 공의의 심판자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사야 9장 7절은 말씀합니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야훼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먼저 주님은 오셔서 이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십니다.
1. 공의로 심판하시는 예수님
1) 야훼를 경외함을 기뻐하심
공의로 심판하는 예수님의 사역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을 기뻐하신 우리 주님이십니다.
이사야 11장 3절에 “그가 야훼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모습은 하나님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잘못된 죄에 대해서는 심판하시고 우리가 회개할 때 우리를 용서하시고 사랑으로 품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공의와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섬길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마음에 임합니다.
죠지 뮐러 목사님(George Müller, 1805-1898)은 영국에서 10,000명이 넘는 고아를 평생 돌보신 아주 귀한 목사님이십니다.
목사님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일기장이 나오는데, 일기장을 펼쳐보니까 ‘오늘은 내가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응답해주셨다, 이렇게 응답해주셨다, 이렇게 응답해주셨다.’ 그 응답 받은 내용들이 쭉 적혀져 있어서 그 내용의 숫자를 헤아려 보니까, 평생 약 5만 번의 기도가 응답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0,000명이 넘는 고아를 돌보면서 단 한 번도 어디 가서 도와달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엎드려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채워주시고, 또 채워주시고, 또 채워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우리는 문제를 만날 때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사람을 찾아가는데, 우리 예수님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와서 죠지 뮐러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그 많은 고아를 어떻게 돌볼 수 있었습니까?” 목사님은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봉사를 시작하게 된 그 날은 바로 내가 죽었던 날입니다. 나의 의견과 선택과 취미와 내 뜻도 죽고, 세상과 세상의 칭찬과 비난, 그리고 내 형제와 친구들의 칭찬과 비난에도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후로 나는, 오직 하나님께만 인정받도록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 왔습니다."
사람들이 내게 뭐라 그런다고 일희일비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실까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이기에, 누가 한 마디만 뭐라 그래도 그 마음에 상처를 받고 낙심할 때가 많습니다.
이 시간 이후로 우리가 굳게 결심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난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겠다.’ 주님이 내게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주님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이고 그 음성 앞에 ‘아멘!’ 하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심
예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서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이사야 11장 4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이 사람들을 외모로 판단하지 아니하시고, 공의로 사람을 판단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외모를 보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대단히 죄송하게도 고급 백화점 앞에 호텔 앞에 요즘은 그 차가 없는데, 옛날에 티코라는 차가 있어요, 티코. 조그마한 차가 있는데 그 차를 몰고 고급 백화정 등을 가면 저리 가라고 내쫓으면서 벤츠 같은 고급차가 오면 다가가서 90도로 절하면서 문을 열어 줍니다. 그게 사람입니다.
차를 보고 사람을 평가합니다. 그 안에 누가 탔는지도 모르고. 그러나 예수님은 한 번도 우리 하나님처럼 외모를 보고 판단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무엘상 16절 7절 이하에 이와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야훼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늘 겉으로는 사람들 앞에서 거룩한 척하고 부족함이 없는,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칭찬받는 모습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모습만 보여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큰 소리로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가 하나님 말씀을 잘 지키고 일주일에 이틀씩 금식도 하고, 내가 하나님 앞에 십일조도 제대로 하고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습니다.” 기도는 골방에서 조용히 해야 되는데 다 들으라고 큰 소리로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속은 탐욕과 교만으로 썩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의 그런 이중적인 모습에 대해서 책망하시는 말씀이 마태복음 23장 25절로 26절에 나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예수님은 이중인격자인 저들을 책망하시고 오히려 그들이 무시하고 사람 취급하지 않는 세리, 당시 세관원들을 저들이 무시했던 것은 로마 제국에 충성하면서 동족들의 세금을 많이 거두어들였기 때문에 사람 취급을 안 했습니다. 세리, 죄인들, 창녀, 이 세상 사람들이 상종하지 않는 그들을 가까이하시고 사랑으로 품으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제자를 뽑을 때도 배경이 좋고 무언가 권력 가진 사람들의 집안에서 뽑은 것이 아니라 어부와 같이 평범하고 사람들에게 주목받지 못한 사람들을 뽑으셨는데, 그것은 그들을 외모가 아닌 그들의 마음을 보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주님 앞에 인정받는 온유와 겸손으로 무장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예수님은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당시 유다 사람들은 로마 제국의 압제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줄 국민적인 영웅, 마치 용맹한 장군 같은 그러한 메시아가 오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로마 제국을 멸하고 심판하고 위대한 유다 나라를 세울 그런 왕 같은 메시아를 원했는데, 예수님은 그런 메시아로 오신 것이 아니라, 공의의 재판관으로, 그리고 겸손과 온유의 종으로, 섬김의 종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셔서 이 온 세상의 이 어두움을 걷어내 주시고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로 이 세상에 참된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유다 나라가 계속 앗수르나 바벨론으로부터 침략을 받고 나라가 무너지게 된 것은, 그들 마음속에는 탐심과 우상숭배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공의로운 모습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마음은 썩어져 있었기 때문에 많은 심판을 받게 되고 결국은 그로 인해서 저들이 멸망 당하는 일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불의를 벗어버리고 주 앞에 의로운 삶을 살도록 이 땅에 공의의 심판자로 오신 것이요, 그리고 이와 같은 모든 땅의 갈등과 대립, 고통이 사라지고 참된 평화가 오도록 평화의 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주님이 전하시는 말씀을 통하여서, 입의 막대기와 입술의 기운으로 즉 능력의 말씀으로 세상을 다스리시고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의를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의의 재판장으로 오셨기 때문에 주님이 계신 곳에 불의가 사라지고 이 땅의 모든 탐욕과 거짓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 살던 우리들이 주님 앞에 나와서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 우리의 마음에 있는 탐심과 교만을 내려놓사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기도할 때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를 덮어주시고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새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공의를 행하시고 겸손과 온유로 우리를 사랑으로 돌보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72편 2절입니다.
“그가 주의 백성을 공의로 재판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정의로 재판하리니”
여러분, 이 세상에 악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를 고통 가운데 몰아넣는 그런 악한 사람들이 있는데, 성경은 말합니다. 그들의 결국은 시편 1편의 결론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야훼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 1:6).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여러분, 악인들의 길은 망할 것입니다.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의의 회복입니다. 죄 가운데 절망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를 예수님의 보혈로 덮어서 변화시켜서 의롭게 변화 받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 그 놀라운 역사가 바로 구원의 역사인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랑의 실천자로,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로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주님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미가 6장 8절은 말씀합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야훼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우리가 의롭게 그리고 우리가 주의 사랑을 실천하며 겸손하게 주님과 동행하게 될 때 평화의 왕이 되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넘치는 평안으로 채워주십니다.
2. 참 평화를 가져오신 예수님
예수님이 이 땅에 참 평화를 가져오셨습니다. 이사야 11장 9절은 말씀합니다.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야훼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예수님이 공의로 통치하는 그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인데,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한마디로 말하면 평화, 샬롬입니다. 샬롬.
여러분, 미움과 다툼이 있는 곳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그건 세상 나라입니다. 진정한 샬롬, 진정한 평화의 나라는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같이 뒹굴며 문제없이 사는 사회를 말합니다.
배웠다고 못 배운 사람 무시하고 깔보는 것이 아닙니다. 배우나 못 배우나 우리는 다 같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함께 어울려 잘 살고, 많이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그러한 나라가 그러한 사회가 하나님이 임하시는 나라요 하나님이 임하시는 사회인 것입니다.
흑인과 백인이 피부의 색깔 상관없이 같이 어울려 지내는 나라, 그리고 다문화 가족들이 함께 어울려서 다 같이 한솥밥을 먹으며 형제자매처럼 지내는 나라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샬롬인 것입니다.
미움, 다툼, 살상, 전쟁은 죄의 산물입니다. 마귀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 인간 사회에 들어와서 어떻게 하든지 서로 싸우게 하고 갈등을 일으키게 하고 미움을 집어넣어서 서로가 물고 뜯고 원망하면서 고통 속에 살아가게 만듭니다.
신문을 보면 모든 뉴스가 이와 같은 죄로 얼룩진 뉴스뿐입니다. 연애도 잘 해야하는 것이요. 못된 남자를 만나면 보니까, 여자 친구가 ‘당신, 성격이 너무 나빠서 못 만나겠다.’라고 하니까 칼 들고 찾아가서 여자 친구와 그 가족을 다 죽여 버렸어요.
한때 사네 죽네 하면서 사랑한다고 하던 친구가 그리 와서 칼 들고 난동을 피우고. 그러니까 사람 잘 사귀라고요, 괜히 아무나 사귀지 말고. 예수님 잘 믿고 성품 좋은 사람 사귀면 되는 거예요. 예수님 안 믿고 성격 못된 사람 만나면 평생 고통 속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쨌건 이 세상 사람들의 속사람까지 알 수 없으니까 나중에 어떻게 그 사람이 변할 줄 모릅니다. 믿었던 친구들이 배신하고 뒤돌아서고, 서로 속이고 속는 사회입니다. 웃으며 달려와서 나중에 뒤에서 비수를 꽂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 하신 말씀이 있어요. ‘이 목사, 사람을 볼 때는 3년을 보고 사귀어.’
저는 늘 그 생각을 합니다. 3년을 알고 나서 그 사람과 대화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사람이 좋아서 만나자마자 속 이야기를 다 해 버리는데, 그것이 나중에 비수로 돌아와서 나를 힘들고 어렵게 할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예수님 믿는 사람들끼리 정말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들의 모임이 되어서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야지 이와 같은 죄의 모습으로 살면 안 됩니다. 물고 뜯고 싸우고 역사하는 것은 마귀의 역사입니다.
지금 이 나라를 보십시오.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입니다. 전 세계 한 나라가 둘로 나누어진 나라는 우리 대한민국밖에 없습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쳐다보지 마시고...
우리가 79년 동안 반만년 역사 가운데 이렇게 나눠진 적은 처음입니다. 우리가 원해서 나눠진 것이 아닙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냉전 시대가 와서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충돌하면서, 그 갈라진 모습, 나눠진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입니다.
우리 온 나라가 해방되었을 때 우리나라가 다 같이 해방되는지 알았지, 우리도 모르게 미국하고 소련이 허리를 잘라놓을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스탈린하고 아이젠하워가 우리 뜻과 상관없이 이 나라를 반 나눠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조그만 땅덩어리가 반으로 나눠진 것도 너무나 안타깝고, 저 북한이 공산 정권에서 호시탐탐 핵무기를 개발하고 우리를 치려고 하는데, 남한은 이 조그만 나라가 그저 물고 뜯고 싸우고, 아이고, 정말. 문제가 많아요. 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
이 땅에 편 가르기 싸움이 없어져야 됩니다. 진보 보수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지역감정이 사라져야 합니다. 정치권이 회개해야 합니다.
이번 탄핵정국을 지나가면서 우리 대한민국이 거듭나야 됩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1,200만 크리스천이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기도해서 우리 대국민 대통합을 이루고 위대한 대한민국을 건설해 나갈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평화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가 되셨기 때문에, 이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이 평화의 왕국을 건설하면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일이 없습니다. 미움, 다툼, 시기, 질투 이것은 마귀의 도구입니다.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가르친 말씀, 다락방에서 전하신 말씀 가운데, 요한복음 13장 34절, 35절에 이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렇게 용서를 주님이 강조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14절입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여러분,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가는 주님의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내 마음속에 아직 미움이 있습니다. 내 마음에 상처가 있습니다. 내 마음에 분노가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고 미움, 분노, 섭섭하고 상처받은 거 다 내려놓고,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겠습니다.
여러분, 용서는 일방적인 것입니다. 저 사람이 나에게 와서 용서를 빌어야 용서하는 건 제대로 된 용서가 아니고. 물론 그렇게 되면 더 좋겠지만, 예수님이 우리한테 ‘너 먼저 나한테 잘못했다 그래라 그럼 용서해 주겠다.’라고 하신 적이 없어요.
그냥 십자가에 달려서 우리를 위해 먼저 죽어 주셨어요. 예수님이 우리를 다 먼저 용서하셨어요. 그 사랑에 힘입어, 그 용서에 힘입어서 우리가 용서하는 겁니다.
일방적인 용서에요. 여러분, 누가 여러분을 상처 주고 괴롭히는 사람이 있으면 지금 다 용서해 주세요. 그 사람이 알든 모르든 상관없어요. 주님과 나와의 관계이니까, 내 마음속의 미움을 풀어놓으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에 있는 아픔을 풀어놓으시기 바랍니다. 용서하고 또 용서하고 또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넘쳐나게 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과 용서로 온 세계를 감동시킨 판티 킴푹(Phan Thị Kim Phúc)여사 이야기를 소개하기 원합니다.
이 판티 킴푹이라는 여성은 1963년도에 베트남에서 태어났는데, 베트남전이 한참이던 1972년 6월 8일 네이팜탄이 떨어졌을 때, 그 동네 한 사원의 탑 안에서 한쪽에 숨었다가 온 동네가 불이 나니까 몸에 불이 붙어서 뛰쳐나오게 되었습니다.
이 네이팜탄은 한번 떨어져 폭탄이 터지면 3,000도 뜨거운 열로 주변을 타 태워버리는데 이 아이가 온몸이 타니까 옷을 벗고 뛰어나왔는데, 이것을 한 기자가 봤습니다.
닉 우트라고 하는 종군기자가 이 아이의 사진을 딱 찍어서 올려서, 이분은 그다음 해에 퓰리처상을 받게 되었는데, 사진 찍고 난 다음 가지고 있던 물을 들이 붓고 그 아이를 병원으로 옮겨서 치료받게 했는데, 전신 30퍼센트가 3도 화상을 입고 14개월 동안 17번의 수술을 계속 받고 또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종군 기자에게 찍힌 이 사진 한 장, 여자아이가 벌거벗고 뛰는 이 사진 한 장이 미국 신문에 실려서 미국 사람들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이제 전쟁을 끝내자!’ 이 사진 한 장이 8년 동안 계속되던 전쟁을 멈추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1973년 8월 파리에서 평화협정을 맺고 미군이 철수합니다.
이 사진 한 장이 미국의 역사를 바꿔놓고 베트남의 역사를 바꿔 놓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네이팜탄 소녀라고 벌거벗은 몸으로 자기 온 세계에 알려진 것에 대해서 굉장히 수치스럽고, 그리고 이 사진에 나온 것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본인이 도서관에 들어가서 책을 살펴보다가 성경을 읽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을 만나서 용서하는 마음을 배우게 되었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온몸에 화상을 입었지만, 얼굴과 손, 발이 화상을 입지 않은 것에 감사했습니다.
물론 몸 대부분이 다 탔지만, 타지 않은 얼굴이 있는 것에서 감사했습니다. 퓰리처상 그 사진이 자기 마음을 불편하게 했지만, 이 사진 때문에 전쟁이 끝나게 된 것에 감사했습니다.
베트남에 있는 한 의과대학에 들어가서 의사가 되려고 공부하는데, 이 공산정부가 이 아이를 불러내서 계속 반미 선전을 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베트남에서 살 수 없음을 알고 1986년에 당국의 허가를 받아서 쿠바에 유학을 갔다가 그곳에서 결혼하고 캐나다로 건너갑니다.
캐나다로 건너가서 캐나다 시민권을 얻게 되고, 1997년에는 ‘킴 푹 재단’을 만들어서 전쟁의 피해를 입은 청소년들을 돌보는 그러한 의료구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 킴 푹 여사가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1996년 11월 11일 미국에 재향군인회 행사의 날에 갔다가, 자기가 있는 마을에 폭탄을 떨어뜨린 조종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조종사의 이름은 존 플러머(John Plummer)라고 하는 사람인데, 이 존 플러머라고 하는 사람이 이 폭탄을 떨어트리고 난 후 신문에 난 기사를 봤어요. 사진을 보면서 ‘내가 떨어뜨린 폭탄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당했구나.’ 너무너무 괴로워서 밤마다 술이 없으면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술 중독자가 되고 그러다 보니까 부인하고도 헤어지고 정말 절망적인 삶을 살게 되었는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이분도 그 절망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재향군인의 날 이 여인이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킴 푹 여사에게 와서 사과합니다.
“내가 그 조종사입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계속 미안하다고 그랬습니다. 그러자 킴 푹 여사는,
“괜찮아요. 괜찮아요. 용서합니다. 용서합니다.”(It’s all right, It’s all right, I forgive, I forgive.)
얼마나 감동스러운 장면인지 모릅니다. 이 만남에서 존 플러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어떻게 2분 동안의 짧은 대화가 지난 24년 동안의 악몽을 깨끗이 지워버릴 수 있었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내가 받은 용서는 내가 무엇을 했기 때문에 받은 것이 아니라, 그저 그것은 선물이었습니다. 그저 신비로울 따름입니다.”
놀라운 것은 존 플러머가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어 버지니아에 있는 베다니 연합감리교회의 담임목사님으로 귀하게 사역하시고, 지금은 이제 86세로 후임 목사님이 사역을 이어받아 하고 계시는데, 교회를 섬기면서 늘 십자가의 사랑과 용서에 대해서 설교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전쟁의 폭탄을 떨어트렸던 가해자에서 이제는 용서받은 의인이 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목사가 되어 하나님의 귀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이분 자료를 찾느라고 온 미국 사이트에 들어가서 재향군인회 사이트까지 다 뒤지고 미국 감리교 사이트까지 다 뒤져서 저 사진 찾아냈어요. 이분이 이렇게 변화됐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랑과 용서 가운데 이렇게 위대한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킴 푹이라고 하는 어린 9살짜리 여자아이가 폭탄에 맞아 온몸이 불탔다가도 이렇게 변화되어서 이제는 평화운동가로 우리 아동들 사역자로 가는 곳마다 귀한 일을 감당하고 있고, 2019년에는 한국에 왔었어요. DMZ 기조연설자로 한국에 방문했을 때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용서가 쉽지 않을텐데, 어떻게 진정한 평화의 마음을 찾았나요?”
대답합니다.
“저는 많은 싸움을 했습니다. 육체적인 고통을 견뎌내야 했고, 증오가 있었고, 화가 있었고, 쓰라림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감사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1982년 베트남에서 성탄절에 크리스천이 되기로 결정했었고, 예수님을 믿고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면서도 용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계속 앞으로 나아갔을 때 내가 그 역사를 바꿀 수는 없지만, 사랑으로 평화를 위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할렐루야.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지금의 나는 용서의 마음을 갖고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과거는 바꿀 수 없습니다. 누가 나를 상처 입히고 나를 고통 주는 과거는 과거입니다. 과거는 잊어버리고 사랑과 용서의 마음을 품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많은 절망에 처한 사람들이 사랑과 용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이 킴 푹 여사처럼 우리도 이제는 사랑과 용서, 평화의 메시지를 온 세상에 전하는 평화의 사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참된 평화가 우리 마음 가운데 임하기 위해서 찬송가 112장을 함께 찬송하겠습니다.
<찬송가 112장(통 112) : 그 맑고 환한 밤중에>
1절 그 맑고 환한 밤 중에 뭇 천사 내려와
그 손에 비파 들고서 다 찬송하기를
평강의 왕이 오시니 다 평안하여라
그 소란하던 세상이 다 고요하도다
2절 뭇 천사 날개 펴고서 이 땅에 내려와
그 때에 부른 노래가 또 다시 들리니
이 슬픔 많은 세상에 큰 위로 넘치고
온 세상 기뻐 뛰놀며 다 찬송하도다
3절 이 괴롬 많은 세상에 짐 지고 가는 자
그 험산 준령 넘느라 온 몸이 곤하나
이 죄악 세상 살 동안 새 소망 가지고
저 천사 기쁜 찬송을 들으며 쉬어라
4절 옛 선지 예언 응하여 베들레헴 성에
주 예수 탄생하시니 온 세상 구주라
저 천사 기쁜 노래를 또 다시 부르니
온 세상 사는 사람들 다 화답하도다
여러분 지금이야말로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가 필요한 때입니다. 예수님이 가져오신 평화가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에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가 강물처럼 넘쳐나도록, 그래서 참된 평화의 나라가 되어서 국민 대통합을 이루고 위대한 대한민국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여러분 모두가 한 마음 되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이 나라를 바꿀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 평화의 주역으로 부름을 받았으므로 맡긴 사명 잘 감당해서 주님의 큰 은혜와 사랑을 누리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한 번뿐인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은혜를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 모두 평화의 사도가 되어서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를 온 세상에 널리 전하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지면보기
행복으로의 초대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