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이야기
야훼는 너를 지켜(작사·조용기/작곡·김성혜)
  • 에벤에셀 하나님 노래 조용기 목사와 한세대 총장 김성혜 목사가 1979년에 지은 복음성가다. 우리교회가 여의도로 이전한지 5년이 지난 1979년은 교회가 안정되어 성도 10만명 돌파기념예배를 드릴 정도로 교세가 성장하고 있었다. 조 목사는 지금까지 올 수 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며, 새날과 소망과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시를 지었다. 주님만을 의지함으로 모든 풍파를 극복한다는 이 찬양은 조 목사의 신앙이 그대로 묻어 나온다. 이 곡을 작곡한 한세대 총장 김성혜 목사는 항상 자신은 작곡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작곡자라고 고백하고 있다. 김 목사는 한국에 처음으로 복음성가를 출간하여 온 한국 교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고 또한 체계화시켰으며 1970년대 이후 30 여편이 넘는 복음성가 곡들을 작곡했다. 최근에 이 곡들을 모아 ‘김성혜 창작복음성가집’을 출간하였다.
  • 2006.01.20 / 이소흔 기자

    찬송가 이야기-기대
  • 하나님의 우릴 향한 계획 (천강수 작사,곡) ‘주님 우릴 통해 계획하신 일’ 이 찬양의 클라이막스 부분의 가사이다. 크리스천이라면 한번쯤 ‘과연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어떤 계획을 세우셨을까?’라는 고민해보았을 내용이다. 이 찬양은 현재 나들목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는 천강수 전도사가 7년 전 만들었다. “8년 전 ‘기대’라는 제목을 가지고 1년동안 묵상했어요” 천강수 전도사는 당시 CCM 그룹 워킹이 결성되면서 팀교제송으로 부를 곡이 필요했다. 생각에만 존재하던 찬양이 앨범작업을 하는 동안 멤버들과 교제하면서 가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신앙적으로 제가 많이 어렸어요. 그런데 성숙한 멤버들과 함께 하면서 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이 이것이구나. 우리도 하나님께 복권당첨 같은 허황된 것이 아닌,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을 기대해야 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드디어 그의 27살 생일 아침. 생일을 의미있게 보내기 위해 작곡 작업에 임했다. 이후 이곡은 워킹 앨범에 수록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됐다. 천강수 전도사는 “편한 나눔을 위해 쓰여진 곡이어서 그런지 곡을 쓸 때도 쉽게 쓴 편이었어요.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느끼고 부르고 있어 감사합니다”라고 전했다.
  • 2005.11.04 / 복순희 기자

    큰바다 파도가 치고(악보)
  • 2005.10.2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당신을 향한 노래
  • 작사, 곡 천태혁 사랑을 전해주는 축복송 이 찬송을 듣고 있으면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천태혁 전도사가 어린시절,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셔서 떨어져 산 탓에 어머니의 보살핌과 사랑은 듬뿍받지 못했지만 대신 하나님은 그에게 더 큰 사랑과 깨달음을 주셨다. “‘당신을 향한 노래’는 어느 특정한 말씀 한 구절에서 만들어진 곡이 아니예요. 하나님은 창세기, 예레미야 등 여러 말씀들을 통해서 제가 얼마나 존귀한 자인지 사랑받을 존재인지를 알게 하셨죠” 이 찬송은 천태혁 전도사가 1993년 캐나다 벤쿠버에서 유학시절 중 작사, 작곡한 곡이다. “아내와 결혼하기 전 경제적으로 어려운 유학생인 탓에 장래 장인 어른의 환갑에 어떤 선물을 보내드릴까 고심했어요. 선물로 이 찬양을 만들어서 카드를 쓰고 녹음을 해서 보내드렸지요” 이후 천 전도사는 벤쿠버에서 여러 한인교회를 섬기면서, 또 초대 받은 가정에서 이 찬양으로 축복을 선물했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은 이 찬양은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입소문으로 세상에 퍼지게 되었다.
  • 2005.09.09 / 복순희 기자

    제목: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정성실 작사,곡)
  • 위로자 되시는 창조주 절망에 처했을 때, 아플 때, 혹은 내가 하나님을 느끼지 못할 때라도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의 은은한 멜로디가 들려오면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단번에 알 수가 있다. 이 찬양은 정성실 성도가 1996년 예배 사역에 헌신하고 임마누엘선교단에 몸담고 있을 때 지어졌다. 당시 선교단에서 반주사역을 맡고 있던 정성실 성도는 작곡은 따로 배운적이 없었지만 성경을 묵상하며 3일에 1곡씩은 작곡해나갔다. 이 찬양은 시편 121편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멜로디를 이 말씀에 붙여 만든 것이다. 2년뒤 이 찬양은 ‘꿈이 있는 자유 1집’에 수록됐다. 그러나 일부러 홍보를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정 성도는 “1년 뒤부터 지방에서부터 이 찬양이 불려지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신기했어요”라고 전한다. 예배곡으로 만든 이 찬양이축복송으로 불리는 것도 그의 의도와는 달랐지만 그것 역시 사람들이 알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로 깨달았다. 정 성도는 “저도 만든 사람이기 이 전에 저도 이 곡을 통해 말씀을 새롭게 묵상하며 하나님을 알게돼요. 다른 사람들도 이 찬양을 듣고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를 느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 2005.08.05 / 복순희 기자

    실로암(신상근)
  • 요한복음 9장의 은혜 불신자들에게 많이 알려진 찬송. 군대에서 더 많이 불려지는 찬송. 실로암은 현재 신일교회 소년부에서 사역하고 있는 신상근 전도사가 25년 전에 지은 찬송이다. “1980년 대학입학 예비고사를 끝내고 교회에서 열린 부흥회에 참석하고 하나님께 목회자로서 헌신하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하지만 부모님은 제가 경상계열이나 법대를 갈 것으로 생각을 하셨기 때문에 갈등이 생겼죠” 신 전도사는 새벽예배에 참석하면서 부모님과의 갈등 해결을 위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던 어느날 새벽예배에서 요한복음 9장의 말씀에 큰 은혜를 받게 된다. 말씀을 통해 “내가 하나님께 보냄을 받았다”라는 확신을 얻은 신 전도사가 집에 오면서 흥얼거리던 곡을 종이에 옮겨 놓은 것이 실로암이다. 19살 소년이 지은 이 찬송은 이후 어두움에 갇힌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광명을 전하기 시작했다. 장신대에 입학한 신 전도사는 선배들과 장신선교단이라는 동아리를 결성하고 이 찬송곡을 선교단가로 지정해 전국을 다니며 집회에서 이 찬송을 불렀다. 또 신 전도사가 83년에 입대를 해서 선교단 활동을 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실로암은 극동방송 ‘찬양의 꽃다발’이라는 프로그램의 오프닝송으로 채택되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 2005.07.08 / 복순희 기자

    주만 바라볼찌라
  • ‘주만 바라볼찌라’를 가만히 부르고 있으면 잔잔한 멜로디 속에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느껴진다. 이 찬송곡은 지난 20여년 동안 세대를 뛰어넘어 한국교회의 성도들 위로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작곡자이자 작사가인 박성호 집사는 젊은 시절 가장 경제적으로, 영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이 찬양을 지었다. 박 집사는 “곡을 만든 건 1985년인가 86년이었어요. 서울 상계동 달동네에서 살고 있었는데 계절은 추위가 몰아치는 겨울이었고, 폐결핵을 앓고 계시는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 경제도 책임지랴, 공부하랴 너무 힘든 시기였죠” 그러나 박 집사는 아무리 힘들어도 창문을 열면 펼쳐지는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과 임재하심을 느끼며 하루 하루를 살아갔다. “어느날 뒤돌아보니 언제나 도와달라는 기도만 했지 ‘내가 과연 하나님이 좋아하실 만한 일은 무엇을 했을까?’라는 죄송한 마음이 생겼어요. 하나님은 나의 작은 아픔도 알아주시고 치유해주시잖아요. 생각 끝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내가 주님만 바라보는 것이다’라는 깨달음으로 찬양을 지었습니다” 박 집사는 지어는 찬양을 가지고 교회 목사님께로 달려갔다. 하지만 목사님께서는 대중음악적 멜로디가 교회와는 맞지 않는다며 부르지 말 것을 권고했다. 그 시절은 교회에서 기타를 치는 것 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시기였기 때문에 박 집사는 목사님 말씀에 순종했다. 이후 영원히 묻힐뻔한 이 곡은 시간이 흐른뒤 우연한 기회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학 동창으로 알고 지내던 친구가 어느날 복음성가 써둔 것 있으면 자신이 이끄는 합창단에서 부르겠으니 달라고 요청해 왔다. 박 집사는 흔쾌히 이 곡외에도 세곡을 더해 친구에게 전해주었다. 그때부터 이 찬송곡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많은 성도들에게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 찬양은 오랫동안 작자 미상의 곡으로 알려졌었다. 왜냐하면 박성호 집사가 교회를 떠났기 때문이다. “그전 신앙은 사람을 보고 좌지우지 되는 부분도 많았어요. 사람에게 배신당한 후에 아예 교회에 발을 끊고 지냈죠” 배신감이 컸던 그는 아예 서울을 떠나 충청도로 내려갔다. 그 사이에 ‘주만 바라볼찌라’는 스스로 돌아다니며 은혜를 끼치고 있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1999년 라디오를 듣고 있는데 기독교 방송에서 제 노래가 나오는 거예요. 이렇게 많이 불리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그즈음 동네 이웃의 인도로 신앙생활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를 교회로 다시 인도한 이는 사랑의호스피스 심석균 회장. 박 집사는 심 회장을 통해 말기암 환우들을 만나면서 그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고 봉사하면서 살고 있다. “제가 하나님을 멀리했던 기간만큼 더 하나님께 헌신하며 살겠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고통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더욱 다가갈 수 있죠. 앞으로 말기 환우들을 위한 삶을 살겠습니다”
  • 2005.07.01 / 복순희 기자

    예수님이 좋은걸
  • 제목 : 예수님이 좋은걸 이광무 작사, 곡 우리 정서 속에 담은 흥겨운 찬양 이 찬송을 들으면 어깨춤이라도 덩실 덩실 추어야 할 것 같다. 우리 민요가락의 어느 한부분 같아 친근함을 더한다. 어쩐지 이 찬송을 지은 사람은 한복을 입고 국악을 하고 있을 것 같지만 찬송의 작자 이광무 전도사는 주중에는 부산 이사벨고등학교에서 음악교사로, 주일에는 믿음찬교회에서 청소년담당 전도사로 활동 중이다. 젊은 시절 대중음악을 하던 그는 유의신 목사를 만나 예수님을 영접하고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께 헌신하고자 늘노래음악전도단의 창립 멤버가 됐다. 이 전도사는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찬양으로 예수님을 전하며 30살 나이에 신학을 전공하고 36살 늦깍이 대학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갈고 닦았다. 이 찬양은 1984년 선교단 활동 차 경북 영천의 한 교회를 방문한 것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그 교회 목사님은 한센병을 앓았던 분으로 몸 이곳 저곳이 불편하고 흉한 모습도 남아 있었다. 목사님은 말씀을 전하실 때 중간 중간 “예수님이 좋은데 우짜노”를 연발했다. 그 모습을 보던 이광무 전도사는 충격을 받았다. ‘난 이렇게 건강한데도 복음을 전하다 힘이 들 때면 짜증을 내기도 하는데’라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워졌다. 집회를 마치고 오면서도 계속 “예수님이 좋은데 우짜노”는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한 그는 가사를 먼저 만들어 놓고 곡을 쓰기 시작했다. 곡을 어떻게 써야할지 고심하던 그는 토속적인 한국의 향기가 나는 곡을 쓰고자 마음 먹었다. 세시간의 작업 끝에 완성된 것이 바로 이 곡이다. 완성된 곡을 그 주에 있던 집회에서부터 선보였다. 서울에 있는 서소문교회가 그 시작이었다. 곡 분위기에 맞춰 징 등 민속악기를 치면서 부르는 찬송을 부르는데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표정이 이상했다. 당시 복음성가와 교회 음악이 모두 서양곡조 일색이었기 때문인지 사람들은 퍽 낯설어 했다. 어떤 사람들은 낯설어 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게 무슨 찬양이야? 미신 아니야?”라고 까지 했다. 청중의 반응에 그는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다. 중심이 중요하다’라는 생각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 교회에서 90세 가까이 된 원로장로님께서 일어나시더니 덩실 덩실 춤을 추시는게 아닌가? 그분의 흥겨운 모습을 보며 다른 사람들도 서서히 춤을 추며 찬양을 불렀다. 이 찬송이 널리 알려지기까지 상반된 두가지 반응은 계속됐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는 우리 정서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감사하세’ 등 국악풍의 곡들을 만들어 알리고 국악찬양곡집 「예수님이 좋은걸」을 발간했다.
  • 2005.06.02 / 복순희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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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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