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훈 목사의 문화프리즘
신천지 조심!
  • 한동안 종로거리를 걷다보면 10분마다 만나는 반갑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도를 아십니까”라고 묻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의 종교 확장을 위해 길거리 포교를 하는 그들에게 “잘모르겠는데요”라고 대답을 했다간 말꼬리를 잡힌다. ‘도’가 어려운 사람들에겐 “참 얼굴에 덕이 많아 보이십니다”로 접근하는 그들은 대순△△△사람들이다. 그들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따라갔다간 더 큰 곤혹을 치루기 십상인데 바로 신통한 도인과의 만남이다. 보자마자 대뜸 “부모님이 아프시구만!”이라고 선수를 친다. 우리네 부모님들치고 한두군데 안아프신 분들이 어디 계시겠는가 마는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이 사람 심리라 발목 잡히기 쉽다. 말대꾸 안하고 상종 안하는 것이 최선이다. 가가호호 가정방문해 포교하는 집단이 있다. 2007년 5월 8일 MBC PD수첩을 통해 그 이단성이 알려진 ‘신천지’이다. 예전의 이들이 쓰던 포교전략은 설문조사였다. “잠시만 설문조사 해주시겠어요?”라는 말에 선뜻 대문을 열어주면 철퍼덕 자리잡고 앉아 시간을 끈다. 고생하신다며 차와 과일이라도 대접할라치면 얘기는 자꾸 가족관계 등 깊이 들어간다. 일단 이들은 설문조사를 빌미삼아 그 집의 가정상태와 가족관계 등등을 면밀히 조사해 간다. 그리고 2차 방문때는 맞춤식 포교방법을 통해 끈질긴 포교를 시작한다. ‘복음방 성도 단계 향상 관리카드’(현대종교 2011년 2월호 48p)가 있을 정도로 치밀한 그들은 ‘산 옮기기 작전’을 사용해 기성교회를 송두리째 집어삼키기도 하여 한국교회에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산 옮기기란 교회에 신천지의 추수꾼들이 몰래 성도로 가장 침입해 점차 자기네 세력을 넓혀감으로 교회를 전복시키는 전술이다. 그래서 우리가 전도할 때 전도대상자로 가장해 속이기도 한다. 구역에 이러한 신천지 추수꾼들이 3∼4명만 되면 위험수위가 될 수밖에 없다. 현대종교 발간 ‘신천지와 하나님의교회의 정체’라는 자료집에서는 신천지의 포교사례를 ‘①미션스쿨 입학후 포교’ ‘②성경 해석해준다며 유인’ ‘③친인척의 포교’ ‘④성경공부와 기도응답으로 유인’ ‘⑤교회 초신자로 잠입후 포교’ ‘⑥친분관계를 이용한 포교’ ‘⑦신분속여 설문조사 후 유인’ 등의 방법을 들며 주의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 성경에서 이단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하이레티코스(hairetikos)인데 ‘바른교훈’으로부터 벗어난 ‘다른교훈’을 의미하는 말이다. 영어로 이단에 해당하는 단어는 헤러시(Heresy)와 컬트(Cult) 두 가지가 있다. ‘Heresy’는 정통에서 탈선한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자들을 일컫는 말이며, ‘Cult’는 특정지도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종교집단을 말한다. 끝이 다르다해서 한자로 ‘異端’(다를 이, 끝 단)이라 한다. 성도들은 절대 미혹되어서는 안된다. 친분관계가 없거나 평소에 안면이 없던 성도가 접근하여 과도한 친절을 베푼다면 한번쯤 뒤돌아 보아야하고, 특별히 교회밖의 어느 집회나 행사, 성경공부에 초청을 하는 사람이라면 눈여겨 보아야 한다. 임 훈 목사 push77@empal.com
  • 2011.02.0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트위터와 함께 하는 하루
  • 김 집사가 트위터를 배우기 시작한지 벌써 8개월째다. 이제 어느 정도 손에 익어서 여러모로 도움이 되고 있다. 이제 아침에 눈을 뜨면 스마트폰을 통해 성경구절을 암송하고 묵상한다. 남편과 아이들의 아침식사를 준비하면서 김 집사는 트위터에 올라온 싱가포르 콩히 목사님(@konghee)의 글을 보고 미소지었다. “6살난 딸 다이안을 위해 어떤 선물이 좋을까요?”라는 콩히 목사님의 트윗이다. 김 집사는 한 손으로 쿠쿠밥솥을 열며 오른손에 쥔 스마트폰으로 콩히 목사님에게 답변을 보냈다. 부모의 마음은 어느나라건 같구나 공감하며. 여의도에 근무하는 남편이 부스스 눈을 뜨자 김 집사는 재빨리 브리핑을 한다. 이 시간이 김집사에겐 가장 긴장되고 재밌는 시간이기도 하다. 남편은 제법 잘나가는 여행사에 근무한다. 그래서 늘 일기에 신경을 쓴다. 그런 그에게 김 집사의 모닝 기상 정보는 꽤 유용하다. 김 집사의 트위터에는 기상청(@kma_Weather)의 신속한 일기예보가 뜬다. 그리고 지난밤 세계각국 트위터 친구들이 보내온 지구촌 소식들을 발빠르게 남편에게 브리핑한다. 한때 여행사에서 근무했던 김 집사라서 남편과 코드가 잘맞는다. 남편과 아이들을 보내고 난 뒤 청와대(@BluehouseKorea)에서 발표한 국민담화가 눈에 띄었고 ‘기도해야지’라고 김 집사는 마음을 다잡는다. 김 집사는 같은 동네 사는 권사님과 통화한 후 사랑의교회(@sarangcchurch)와 여의도순복음교회(@fullgospelnews)를 통해 말씀큐티와 교회소식을 신속하게 접했다.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갖는 시간, 김 집사는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다”는 한 어머니의 안타까운 사연을 트위터를 통해 접하고 트위터 친구들에게 리트윗(재전송)해서 미아찾기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얼마전에는 트윗 친구 한 명이 가출한 자녀문제로 실의에 빠져 있는 것을 위로해 준적이 있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면 트위터를 통한 신속함이 큰 도움이 된다.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하기도 하다. 자녀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도 김 집사는 트위터를 백분 활용한다. 요즘 아이들이 관심있어 하는 분야를 쉽게 접할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김 집사는 아이돌 가수 닉쿤(@khunnie0624)과 수지(@missA_suzy)를 팔로잉했다. 대학생 아들이 좋아하는 연예인 박민영(@sweetestMy)은 “새벽부터 다시 촬영 나왔어요. 피곤해요. 졸립다. 이 피곤함까지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겠죠. 우리 모두 힘내요”하는 트윗을 보내왔다. ‘아들도 이 내용을 동시에 보고있겠지’ 하는 생각에 김 집사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소셜커머스에 대해서도 배워가고 있다. 어렵지 않다. 특히 요즘은 반값할인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 해보고 싶었고 먹어 보고 싶었으나 가격 때문에 망설였던 것들도 트위터를 통하니 가능해졌다. 남편와이셔츠와 아이들 교육 컨텐츠도 큰 출혈없이 해결할수 있어서 요즘 김 집사의 얼굴에선 여유로움이 떠나지 않는다. 임 훈 목사 twitter.com/lovelydave
  • 2010.12.31 / 임 훈 기자

    중대발표
  • 미 항공우주국(NASA)이 3일 새벽(한국기준) ‘중대발표’를 하므로 해프닝은 끝났다. 엠바고(보도유예)를 걸어놓은 상태에서 블로그 등 소셜네트워크에는 온갖 추측이 난무했었다. ‘카더라’통신들은 모두 ‘외계인 발견’을 떠들어댔는데, 그중 유명세를 탄 사람이 제이슨(www.kottke.org)이라는 파워블로거이다. 제이슨은 “토성의 최대 위성인 타이탄에서 박테리아 생명체를 발견했다는 발표가 나올수 있다”는 이야기로 인터넷을 달구었다. 국내외 블로거들이 한결같이 외계인의 존재를 힘써 외친 것은 실로 유별난 일이다. NASA의 발표후에 제이슨도 자신의 추측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했지만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NASA의 발표는 간단했다. “청산가리만큼 강한 독성을 지닌 비소(砒素)를 흡수하고 사는 박테리아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보면, 한 남자가 지하철 통로를 지나간다. 그러자 그의 얼굴을 스캔한 광고 전광판이 자동차, 남성용 향수, 맥주 광고를 내보내며 그에게 말을 건다. 지나가는 행인의 얼굴을 감지하여 그들에게 최적화하여 맞춤형 광고를 보여주는 것이다. 개인에게 초점이 맞춰지는 시대다. 웹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미디어의 영역까지 1인 미디어 시대가 되었다. 소셜미디어뿐만 아니라 ‘소셜’의 개념은 소셜마케팅 등으로 적용되기도 한다. 소셜네트워크는 “…라고 카더라”는 소문 제조의 속성이 있다. 증명되지 않은 추측들이 사실인양 일파만파로 퍼지는 매개체다. 때론 악의적인 이야기들이 재생산되고 확대되어 개인과 단체에 피해를 주기도 한다. ‘소셜…’로 시작하는 모든 서비스들은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모니터링에 거부반응을 보이지만 긍정적 발전을 위해선 서로가 모니터링 해주는 훈훈한 장치가 작동돼야 한다. 최근 세계적인 와인 생산지로 각광받고 있는 양조장이 캘리포니아에 있다. 지역 특성상 석회석이 많은 곳이라 포도나무가 물을 흡수하기 위해서 석회석을 뚫고 뿌리를 깊게 내려야 한다. 척박한 토양이 당도 높은 포도를 열매 맺는 것이다. 소셜네트워크는 이미 우리 생활 속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기에 유익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버스를 기다리며, 지하철 4호선 좌석에서, 점심식탁 위에서 누군가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면 뭔가 중대발표를 준비중인지도 모른다. 임 훈 목사(twitter.com/lovelydave)
  • 2010.12.03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스티븐 호킹 박사님께
  • 한국은 반짝추위가 지나가고 완연한 가을모드로 들어섰습니다.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된 G20행사가 닷새 앞으로 다가왔고 한국은 의장국으로서 그에 걸맞는 경제력과 IT강국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려 한창 준비중입니다. 천재적인 이론물리학자인 박사님도 한국에 관심이 많아서 두차례 방한하셨던 걸 기억합니다. 루게릭병으로 시한부인생 선고를 받으셨음에도 물리학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 가고 박사님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존경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특히 지난 4월 25일에 영국의 주요 언론들이 ‘스티븐 호킹의 우주’라는 다큐멘터리 인터뷰에서 외계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보도했습니다. 깜짝 놀랄만한 일이었습니다. 논리와 증명을 전제로 하는 물리학의 대가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상상치 못할 사건입니다. 자세한 보도에 따르면, 박사님은 “우주에 1000억개의 은하계가 존재하는 만큼 다른 별에도 외계 생명체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합리적이다”고 주장하셨다고 합니다. ‘합리적’이라 함은 ‘이론이나 이치에 합당함’을 뜻합니다. 논리적 원리나 법칙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숫자가 많다고 해서 ‘그렇다’는 단정은 근거없는 추측일뿐더러 물리학자에겐 합리적이지 못합니다. 성경에는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시 8:3)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넓고 경이로운 우주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셔서 지으셨습니다. 창세기 1장 14절부터 19절까지 보면, 해와 달과 별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나오는데, 이 모든 창조물은 이틀 후에 만드신 ‘사람’을 위한 것들입니다. 인류에게 다스리게 하시고 관리하도록 맡겨주셨습니다. 또 박사님은, 외계인과의 접촉에 대해서는 “외계인들과의 접촉은 피하는 편이 좋다”고 강조하셨고 이유에 대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처음 북미 대륙에 상륙한 이후 면역력이 약한 원주민들이 몰살당한 것과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며 “지구인에게 이로울 게 없다”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저는 또 한번 놀랐습니다. 박사님이 이미 외계인과의 접촉을 시도하신걸로 봐도 되겠습니까? 외계인과의 접촉이야기는 여러 가지 경로로 그 허무함이 드러났습니다. 조지 아담스키나 최근 개봉한 실화라고 떠벌리던 영화(포스 카인드, 2009)까지 모두 허구로 드러난 사실을 아실겁니다. 로마서 1장 28절에는 사람들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고 말씀합니다. 마음속에 내재된 욕구들이 ‘외계인’이라는 새로운 경배대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박사님의 저서인 위대한 설계(The Grand Design, 2010)에서도 ‘매트릭스(The Matrix)’를 언급을 하셨기에 저도 영화 얘기 하나 꺼내볼까 합니다. 팀버튼 감독의 ‘화성침공’이라는 영화에는 화성인을 반기는 광신도들이 등장합니다. 목숨까지도 바치는 분들이죠. 설마 그런 이야기를 하고 계신 것은 아니시라 믿습니다만, 콜럼버스가 들으면 상당히 섭섭해할 언급이셨습니다. 박사님의 놀라운 업적들에 대해 딴지를 걸고자 함은 아닙니다. 또한 우주에 대한 박사님의 열정을 폄하하려는 의도도 없습니다. 도리어 힘든 환경을 극복하며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얘쓰는 박사님의 열정에 감탄해하며 배우고 싶습니다. 사실 박사님의 최근저서인 ‘위대한 설계’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습니다만 지면상 줄일까 합니다. 건강하시고 또 뵙겠습니다. 한국은 단풍이 절정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은 언제나 놀랍고 경이롭습니다. 임 훈 목사(twitter.com/lovelydave)
  • 2010.11.0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줄리아 로버츠와 나, 차사순 할머니
  • 줄리아 로버츠는 나보다 키가 8㎝가 크고, 난 줄리아보다 20㎏ 몸무게가 더 나간다. 1990년 군 제대한 내가 복학하여 대학생활에 힘겹게 적응하고 있을 때 줄리아는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으로 전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달라도 한참 다른 그녀와 나 사이에 굳이 공통점을 찾는다면 나이가 동갑이라는 점이다. 까탈스럽게 계산하면 내가 8개월 오빠다. 20년동안 배우로서 한길을 걸어온 그녀가 올해 40번째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내놓았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 모든 것을 버리고 무작정 여행을 떠난 저널리스트 ‘리즈’(줄리아 로버츠)가 낯선 이국 땅에서 자유롭게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면서 진정한 행복을 찾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줄리아 로버츠는 이 영화에서 즐겁지 못하다. 미소가 아름답고 당당했던 귀여운 여인에서 삶에 지치고 머무르지 못하는 불안정한 여인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현실 속에서 자아를 잃어버린 자신을 위해 여행을 떠난다. 영화에 대한 불만은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크리스천 이라면 이 영화가 주는 제목에서 ‘한번쯤 볼만한 영화구나’라고 착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줄리아의 기도는 여행을 떠나기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아주 짧은 순간 나올뿐, 대부분의 시간은 인도식 요가수행으로 메꾼다. ‘먹는 것’에 열광하는 사람에게도 그다지 볼만한 레시피는 등장하지 않는다. 줄리아는 계속 먹는다. 이탈리아에서 머리통보다 큰 피자와 까르보나라 스파게티에 열광하기도 한다. ‘사랑하라’는 기독교 윤리에서 중요한 덕목인데, 줄리아는 사랑받기를 원하는 존재로만 보인다. 여행 중 만난 사람들에게서 지혜를 얻지만 결국에는 한 남자를 택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구도의 길도 포기한채 한 남자에 정착하는 그녀에게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고차원적 개념을 찾기엔 역부족이다. 14개의 근육만 쓰면 웃을수 있는데, 이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72개의 근육을 움직여 찡그리게 만든다. 반면, 기업마케팅의 일환이긴 하지만 요즘 볼만한 TV광고가 ‘차사순 할머니’이야기다. 현대기아자동차는 ‘달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는 캠페인에서 대상을 차지한 차사순(69) 할머니에게 자동차를 증정했다. 운전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960차례 면허시험을 치른 사연에 100건 이상의 댓글이 달리면서 차사순 할머니는 유명세를 치루고 있다. 네티즌들은 차사순 할머니를 보며 “도전이 무엇인지 보여준 할머니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차사순 할머니에게는 도전해야 할 분명한 목표가 있다. 목표를 향해 꿈꾸고 도전한다. 그리고 차 할머니는 ‘할 수 있다’고 입으로 시인하며 자신의 꿈을 하나씩 이루어 가고 있다. 절대긍정과 소망으로 무장한 그앞에 방황은 없다. 정체성에 대한 혼란은 없다. “내 인생에 포기란 없다”고 말하는 차사순 할머니에게서 나와 줄리아 로버츠는 한참 더 배워야 겠다. 할머니의 다음 목표는 빵만드는 기술을 배워 제빵왕이 되는 것이다. 임 훈 목사
  • 2010.10.0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제빵왕 김탁구’의 매력
  • 희한하게 야곱가문과 거성가(家)는 닮은 점이 많다. 야곱 집안의 안주인이던 레아는 르우벤, 시므온 등 6명의 자녀를 낳았고, 탁구를 끈덕지게 괴롭히는 거성가의 안주인 서인숙은 1남2녀를 자녀로 두었다. 서인숙과 자녀들이 탁구를 괴롭히듯이 요셉은 레아의 자녀들로부터 미움을 받는다. 요셉은 야곱이 특별히 사랑하던 라헬의 소생이며, 탁구는 거성 회장 구일중이 각별히 사랑하던 김미순이 친모이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스스로를 연단시켰지만 탁구의 아버지 구일중 회장은 스승 팔봉선생 밑에서 제빵 기술을 배웠다. 야곱이 사랑한 요셉은 형들의 미움과 시기로 보디발의 집에 팔려가게 되는데, 탁구 또한 가족들의 시기를 받아 원양어선에 팔려갈 뻔 하는 위기를 맞는다. 갖은 고통 가운데 요셉은 애굽의 총리까지 오르는데, 탁구도 거성그룹의 대표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탁구를 잘 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고학력에 화려한 스펙을 갖춘 것도 아닌데 탁구는 승승장구한다. 탁구는 그다지 세련되지 않다. 말하는 표현력하며 몸가짐 등이 촌스럽다. 경쟁자인 마준이(탁구의 이복동생)가 월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구가 돋보이는 것은 그의 따뜻한 마음 때문이다. 사람을 사랑하고 믿고 따르게 하는 따뜻함이 탁구에게는 있다. 요셉 또한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인물이다. 옥에 갇힌 요셉이 관원들의 꿈을 해석해 준 것은 그들에 대한 연민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팔봉빵집의 말랑말랑한 구성원 가운데 탁구는 굴러들어온 돌모양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멤버로 자리잡는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요셉이 형제들을 사랑으로 대했듯이 드라마 안에서 탁구는 사랑을 베푸는 전도사다. 김탁구는 한번 옳다고 입력된건 영원히 변치 않는 성격이다. 탁구는 그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올바르고 올곧은 신념으로 어려움과 고통을 헤쳐나가 승리의 자리에 서고 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는 우리를 구원케 하시는 진리이다. 그 진리를 입력한 우리들은 영원히 변치않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변하지 않는 순정품이어야 한다. 비정품은 또다른 고장을 불러일으킨다. 요셉은 보디발 아내의 유혹으로부터 도망갔던 순정품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김탁구는 따뜻함으로 사람을 감동시킨다. 요셉이 형들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탁구는 감성적으로 가족들을 대한다. 복수를 다짐했던 생모 미순이 감탄할 정도로. 원수를 원수로 갚지 않는다. 사랑으로 원수를 덮는다. 시인 안도현은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라고. 임 훈 목사
  • 2010.09.03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생각에 ‘예수님’을 인셉션하라!
  • 푹푹찌는 더위에 짜증난다면 영화 ‘인셉션’을 보면 된다. 머릿속이 순간 얼어붙는 경험을 수차례 할 수 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거 없다는 얘기는 옛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연출솜씨가 관객들을 제대로 놀라게 한다. 2시간 30분에 달하는 런닝타임동안 감독과 숨가쁘게 머리 싸움하며 줄다리기 하다보면 어느새 엔딩크레딧(ending credit)의 반전앞에 서게 된다. 대략의 줄거리는 이렇다. 가까운 미래. 주인공 코브는 남의 꿈속으로 칩입해 들어가 비밀을 훔칠수 있는 추출자(extractor)다. 그는 거대기업 총수 사이토의 제의를 받는다. 경쟁기업 총수인 피셔의 머릿속에 ‘기업을 해체하라’는 생각을 인셉션(inception, 도입)해달라는 것이다. 꿈속의 꿈속으로, 꿈속의 꿈속의 꿈속으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이중삼중의 추출에 능한 코브는 최고의 팀을 구성하고 결국 ‘생각심기’에 성공한다. 이 영화는 특별히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요모조모 계산해 봐도 딱히 악한 영화는 아니다. 기독교 세계관으로 이리저리 들여다봐도 흠잡을 만한 곳이 없다. 도리어 ‘생각을 심는다’는 아이디어는 반갑다. 생각의 씨앗을 심어서 그 사람을 변화시키고 목표를 이룬다는 기본 설정은 볼수록 낯설지 않고 정겹기까지 하다. 영화속 갈등요소는 주인공 코브에게 있다. 그는 아내에 대한 죄책감으로 가득차 있다. 치유받지 못한 상처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갈등을 일으킨다. 이로인해 꿈속 작전수행에서는 팀원들이 여러번 곤란을 겪는다. 코브는 아내에게 잘못된 부정적 생각을 심어놓으므로 아내를 죽음으로 몰고갔다. 코브의 인셉션은 일에는 성공이었지만 사랑하는 이에게는 뼈아픈 실패였다. 코브는 아내를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아내가 장자(莊子)의 꿈 속에 빠지게 했으며, 코브 또한 ‘꿈을 인간의 참된 의도를 알아낼 수 있는 열쇠’로 본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 역할을 해내고 있다. 또한 피셔의 꿈 속에 심은 생각도 카타르시스로 무장한 잘못된 생각이었다. 하나님은 인셉션을 시도하실까? 창세기 37장에는 요셉에게 꿈을 통해 생각을 심으신다. 솔로몬의 꿈에도 하나님은 나타나셔서 생각을 심으신다(왕상 3:5).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이 심은 생각으로 인해 꿈에서 깨어나 번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단 4:5). 조용기 목사는 ‘4차원의 영성’에서 “생각을 긍정적인 프로그램으로 바꾸라”고 권면한다. “인간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생각에는 부정적인 요소가 가득차 있다. 분노, 절망, 불안 등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어서 “생각은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가지게 된다. 예측할 수 없는 생각을 길들이고 바른 길을 가도록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다. 생각이 성경말씀에 사로잡히고 말씀을 따라 생각이 순종하기 시작할 때 생각은 열매를 맺고 3차원의 환경이 변화되는 능력으로 나타나게 된다”고 말한다.(조용기 목사 저, ‘4차원의 영성’ p85) 역시 진정한 인셉션은 성경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 임 훈 목사
  • 2010.07.3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차두리가 로봇이 아닌 이유
  • 차두리 선수 로봇설은 월드컵 16강 진출과정중 나온 최고의 이야깃거리다. 차두리의 행동을 분석하여 그가 로봇임을 증명하려는 네티즌들의 기발한 상상력은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그러나 사실 차두리 선수는 진지한 크리스천이다. 가설의 시작은, 고되고 힘든 훈련에서도 혼자 웃고 있는 차두리의 모습에서 출발한다. 땀으로 범벅이된 동료들 옆에서 차두리는 힘든 기색은 커녕 늘 웃는 얼굴이다. 사람이라면 그럴수 없다는 주장. 그러나 차범근 감독은 기도세레모니로 유명한 분이다. ‘항상 기뻐하라“(살전 5:16)는 성경말씀으로 신앙교육에 철저했기에 ‘웃는 얼굴’은 기본일 것이다. 네티즌들은 차두리의 어린시절 즉 과거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한다.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당연한 일이다. 하나님은 과거를 기억지 아니하시는 분(히 8:12)임을 잘 알고 있기에 당황스럽지 않다.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에게 귀와 눈은 장애가 되지 않으나 귀와 눈만 믿는 사람에게는 보고 듣는 것이 자세할수록 병이 된다”고 한 연암 박지원의 말처럼 다스리지 못한 마음으로 쳐다보는 것들은 자칫 스토킹이 될 수도 있다. 차두리가 볼을 잡으면 차범근 해설위원이 유난히 조용해 지는 이유를 ‘차두리를 원격조정하기 위한 것’이라 추정한다. 우리가 자신의 뜻을 펼치려 세상을 휘저을때 하나님은 조용히 지켜보신다. 조정하기위한 것이 아니라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함이다. 주님이 내 인생의 운전대를 잡아주실 때 가장 안전하다. 포도나무 가지가 줄기에 달싹 붙어있듯 우리의 신앙도 그러해야 한다(요 15:5). 차두리 등번호 11번은 콘센트 구멍으로 충전할 때 이용한다고 한다. 차두리가 다음경기를 위해 충분히 충전한다는 근거다. 충전은 성령충만이다. 술보단 성령에 취해야 한다(엡 5:18).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성령충만을 유지하지 않으면 만사가 힘들어진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중요한 일을 만날 때 충분히 기도하고 말씀으로 무장해야 한다. 차두리 로봇설 2탄에서는 등번호 11번이 22번으로 바뀐 것을 놓고 전압이 220V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기막힌 분석을 내놓고 있다. 역대하 13장에 보면 유다왕 아비야가 하나님과 다윗 사이에 맺은 언약을 강조하는 모습이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반란군 여로보암을 치시고 아비야는 더욱 강성해진다. 점점 강성해진 아비야는 아들 스물두명(22)을 낳는다(대하 13:21). 결국 22번으로 바뀐 이유는 차두리가 신앙면에서 더 강해졌다는 의미 아닐까. 아니면 OECD국가 중 저출산율 1위인 한국에 희망을 주려는 걸까. 220V만큼 억지라고해도 할말은 없다. 늘 머리를 밀고 다니거나 치아를 드러내 놓고 자주 웃는 이유가 머리(또는 치아)가 태양열 집광판이어서 그렇다는 것도 차두리 로봇설 2탄의 내용이다. 이 아이디어는 제법 그럴 듯 하다. 태양의 화가 고흐는 해바라기를 그릴때면 더욱 열정적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차두리가 이미 내적으로 성숙한 상태라면 굳이 태양열 집광판을 쓸 이유는 없다. 대머리였던 엘리야와 사도 바울의 경우 에너지를 벗겨진 머리로 받았다는 이야기는 없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삼상 16:7). 멀리서 봐도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있다. 스타일이 특별하거나 황금비율을 지녔다거나 실루엣이 남다른 경우가 있겠다. 차두리는 아무리 봐도 로봇이 아니라 매력적인 크리스천이다. 우루과이전이 끝난후 그가 흘린 눈물이 그 증거이다. 임 훈 목사
  • 2010.07.0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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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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