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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제사
2024.11.03 / 시편 50편 14~15절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편 50편 14~15절)


크리스천의 일생은 감사의 일생이 되어야 합니다. 죄와 허물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하나님이 택하시고, 우리로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으니 우리 일생은 감사의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가 메마른 사람은 진정한 크리스천이라 할 수 없습니다. 감사는 성도의 기본자세요, 의무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악한 원수 마귀 사탄의 도구입니다. 감사는 우리를 축복과 승리의 길로 인도하고, 원망과 불평은 우리를 저주와 파멸의 길로 인도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했습니다. 노예의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힘들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일제의 탄압을 35년 동안 받았을 때도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냈는데 무려 430년이라는 긴 고난의 시간을 보냈던 것입니다. 그동안 저들은 고난 중에 부르짖고 또 부르짖고 또 부르짖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때가 되매 모세를 보내셔서 저들을 구원하셨습니다. 430년 동안 종살이하다가 풀려났으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저들이 한평생 감사해도 부족할 터인데 성경을 보면 출애굽 한 날부터 불평합니다.

430년 동안 노예 생활하다 보니까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 차서 입만 열면 불평하고 또 불평하고 또 불평합니다. 그래서 저들이 한 달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40년 동안 가지 못하고 원망과 불평하다 광야에서 돌고 또 돌고 또 돌다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다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에는 절대 긍정의 믿음을 가진 여호수아, 갈렙 그리고 광야에서 나고 자란 20세 이하의 후손들만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여러분,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믿고도 늘 불평하고 원망하고 남 탓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부정적인 삶을 살면 우리는 저주의 광야에서 돌고 또 돌고 또 돌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감사의 신앙을 회복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영국의 위대한 설교자 스펄전 목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촛불을 주신 은혜를 감사하면 별빛을 주시고, 별빛을 주신 은혜를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주신 것을 감사하면 햇빛을 주신다. 햇빛을 주신 것을 감사하면 하나님이 햇빛도 필요 없는 가장 좋은 천국으로 인도하신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밤낮으로 비춰 슬픔이 없고 기쁨만 있다.

할렐루야! 이 같은 절대 감사의 모습으로 한평생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1. 감사의 제사를 드리라


우리는 한평생 감사의 제사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14절에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여기 ‘제사’라는 말이 영어로 새크리파이스(Sacrifice) ‘희생’이라는 말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내 자신의 모든 고집과 교만과 이러한 잘못된 모습이 죽어 없어지고 내 마음의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희생의 제사가 진정한 감사의 제사인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감사드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제사를 기뻐 받으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12장 2절에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 몸을 너희 삶 자체를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산 제사가 되길 바랍니다.

하루를 살아도 바르게 살고, 하루를 살아도 의미 있게 살고,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살고, 하루를 살아도 하나님 앞에 귀하게 아름답게 위대하게 쓰임 받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가복음 12장을 보면 성전에 헌금 드리는 모습을 보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헌금함이 있는데 부자들이 와서 자랑하듯이 헌금함 앞에 가서 많은 돈을 쏟아붓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나님 앞에 많은 헌금을 드린다.’ 그렇게 어깨를 펴고 으스대며 지나갔습니다.

 근데 좀 이따가 한 불쌍한 과부가 주뼛주뼛 조심스럽게 와서 두 렙돈을 헌금함에 넣었습니다. 두 렙돈은 당시 하루 나가서 일할 때 품삯이 1데나리온인데 1데나리온의 64분의 1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루에 10만 원 번다고 하면 약 1,560원쯤 되는 돈입니다. 근데 그 두 렙돈은 과부가 갖고 있는 전 재산이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 바친 것입니다. 그 모습에 예수님이 감동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2장 43절, 44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루하루 생활이 어려운 과부였지만 하나님께 드릴 때는 가장 정성껏 마음과 뜻을 다하여 희생의 자세로 주님 앞에 다 드린 것입니다. 이 같은 희생의 제사, 최선의 제사를 주님이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제가 한 달에 한 번은 우리 교회에서 가장 어렵게 사시는 분들의 집을 심방했습니다. 몇 년 전 영등포 로터리 근처에 한 집에 벽 안에 이렇게 벽을 두르고 한 서너 평 무허가 집에 살고 있는 과부 할머님 댁에 심방을 간 적이 있습니다.

제가 들어가니까 방이 꽉 찬 것 같아요. 내놓을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상 위에  물병 하나 놓고 저를 맞이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나서 여쭈었습니다. “어떻게 생활하고 계십니까?” 여쭈었더니, “네, 제가요. 매일매일 폐지를 모으면서 살아요. 하루 나가서 열심히 폐지를 모아서 많이 모으면 한 5000원 정도 폐지 팔아서 돈을 벌어요. 한 달에 한 10만 원 정도 수입이 있습니다.” 

그다음 말이 저에게 너무나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런데요. 뭐 먹고 사는 것, 지내는 것은 교구 식구들도 도와주고 나라에서 보조금이 나와서 사는데 제가 한 달 내내 나가서 십만 원을 버는 이유는 매 주일 교회에 나가서 헌금 드리기 위함입니다.”

나가서 자기가 번 모든 돈을, 수입을 매 주일 나가서 헌금 드리려고 그렇게 아침부터 나가서 저녁까지 폐지를 모아 땀을 뻘뻘 흘리며 수고하고 계신 그 과부 할머니를 볼 때 저는 참 그 믿음이 귀하다 사랑이 귀하다 큰 감동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저희가 지금까지 심장병 어린이 무료 시술로 치료해 준 어린이가 5000명이 넘는데, 그 비용을 폐지 수집하고 헌 옷 모으기 한 것으로 수술비를 무료로 지원했는데 그날 이후로 ‘폐지 수집은 하지 마라. 그분들이 하루 종일 나와서 폐지를 모으는데 우리까지 그 폐지를 다 가져가서 교회로 갖고 오면 안 된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폐지 수집은 하지 않고 헌 옷 모으기만 합니다.

홀로 사시는 과부 할머니지만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지, “목사님, 저는 교회에 나가는 것이 유일한 기쁨이고 희망이고 축복입니다. 은혜입니다. 목사님 오신다고 그래서 며칠 동안 잠을 못 잤어요.”

여러분, 감사라는 것은 주님의 사랑에 대한 표현입니다. 여러분, 주님 사랑한다, 사랑한다 말하면서 우리가 시간도 아끼고 물질도 아낀다면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혹시 예배를 자주 빠지다 오늘 나온 분 있으면 반성해야 합니다. 한 달 내내 폐지를 모으면서 주일 예배드리는 그 시간만 손꼽아 기다리는 분이 이렇게 나와서 예배드리는데, 우리는 풍요로운 생활을 하면서도 가끔 내 개인의 일이 있다면 교회도 빠지고 그냥 나 혼자 편한 생활을 지내고 있지 않은지, 성숙한 신앙인의 감사는 이 같은 희생의 제사를 드리는 감사입니다.

 

2.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라


그리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14절에서 말씀합니다.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감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께 대한 헌신의 약속이 지켜져야 합니다.

우리가 처음 은혜를 받았을 때는 하나님 앞에 ‘내가 이렇게 살겠습니다.’ ‘나를 축복해 주시면 제가 열심히 십일조 헌금을 하겠습니다.’ 이런저런 것들을 약속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축복으로 잘 되고 나면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그저 나의 편한 삶만 만족합니다. 

여러분, 힘들고 어려울 때 주님 앞에 드렸던 기도를 잊지 않길 바랍니다. 더 열심히 주님을 섬기길 바랍니다. 더 열심히 주님 앞에 헌신하길 바랍니다.

미국 뉴욕으로 피아노 전공하는 학생이 유학을 떠났습니다. 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늦게 기숙사로 가는 길에 컴컴한 골목에서 강도와 마주쳤습니다. 강도가 아마 컴컴한 곳에 숨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목에 칼을 들이대고 가진 것을 다 내놓으라 그럽니다. 강도가 칼을 목에 들이댔을 때 ‘아이고, 나 죽겠구나.’ 이럴 때 대부분의 강도는 돈을 빼앗고 찔러 죽이고 도망을 갑니다. 자기 얼굴을 봤기 때문입니다. 칼을 목에 대는 순간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만일 나를 살려주시면 선교사가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찌르려고 한 강도가 돈만 뺏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피아노 석사 과정을 마치고 난 다음 신학교에 가서 주의 종이 돼서, 하나님과 약속한 대로 방글라데시, 가장 아시아에서 어렵게 사는 그곳에 선교사로 가셔서, 그곳에 학교를 열고 많은 학생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면서 선교활동을 훌륭하게 담당하시는 귀한 주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기뻐 받으시고 그 학교에 복을 내려주셔서 방글라데시의 소문난 학교로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결단하며 말씀을 지켜 행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지켜 행함으로 복 받은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여호수아 1장 8절은 말씀합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주님 약속하셨습니다. ‘말씀을 지켜 행하면 네가 형통하리라.’ 네가 형통하리라. 네가 형통하리라.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며 말씀을 여러분의 삶의 양식으로 삼고 말씀을 실천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큰 복을 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 살아가면서 우리가 많은 문제와 어려움을 당합니다. 문제와 어려움을 당할 때 문제를 바라보고 낙심하지 말고, 내 자신을 바라보고 절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붙잡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3. 환난 날에 감사하라


그리고 진정한 감사는 환난 중에 드리는 감사입니다. 어려울 때 드리는 감사입니다. 잘될 때 감사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사업이 잘될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좋은 학교 가고 잘될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고난 중에 어려울 때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 50편 15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환난 중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면 그 기도를 응답하여 주시고, 환난에서 건져 주시고 우리의 삶을 통하여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감사가 메마를 때 우리 삶이 더 삭막해지고 더 고통스러워지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 워싱턴에서 목회할 때 11월이 되면 한 달 내내 감사 설교를 했습니다. 어느 해 11월에 우리 찬양대로 봉사하던 조 집사님이 남편을 1년 동안 전도해서 데리고 나왔습니다. 남편은 알링턴, 워싱턴 펜타곤 옆에서 세탁소를 하는 분인데 굉장히 바빴습니다.

근데 남편이 오래전에 한 번 교회를 나왔다가 뭔가 시험에 들어서 다시는 교회를 안 나간다며 마음이 닫혀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인이 자꾸 가서 얘기합니다. “여보, 우리 교회는 그렇지 않아. 우리 교회 와서 정말 예수님 만나고 예수님 안에서 복 받은 인생을 살자.” 그렇게 권면했는데 남편은 “나는 교회 가서 사람 때문에 상처받아 교회 안 간다.” 1년 내내 설득해서 11월에 남편이 따라 나왔습니다.

그래서 11월 한 달 내내 말씀을 들었는데 12월 말이 됐을 때 대형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이분이 아들 둘이 있는데 그들을 밴 뒤에 태워 운전해 가던 중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세탁소 일이 얼마나 힘든지,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하루 종일 일하고 밤 9시 넘어 들어옵니다. 밤 9시 넘어 무슨 약속이 있어서 애들을 태우고 그리로 가는 중에 깜빡 졸았습니다.

애들이 뒤에서 장난치다가 보니까 차가 삐뚤거려요. 그래서 “아빠! 아빠!” 하는 그 순간 차가 언덕 밑으로 굴러 들어가 박살이 났습니다.

그 소식이 교장 선생님을 통해서 들려왔습니다. “목사님! 목사님! 큰 사고가 났습니다. 기도해 주세요. 그 새로운 조 집사님 가정의 차가 굴러떨어져 병원에 입원했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 잘 믿으려고 하니까 마귀가 역사해서 한 달 내내 감사 설교 듣고 나서 저런 환란을 당했으니, 그렇지 않아도 교회 안 나간다고 그랬는데 저 여편네 때문에 교회 와서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됐다고 불평할 수 있을 터인데 주님 그 마음을 붙잡아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한밤중에 전화가 왔습니다. 그런데 목소리가 아주 밝았어요. 감사하다고 전화가 왔어요. 

‘목사님, 감사합니다. 차가 다 쭈그러질 정도로 부서지는 큰 사고가 났는데 뒷자리에 탔던 아들 둘이 하나도 안 다쳤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팔 하나밖에 안 부러졌습니다. 그것도 왼팔이 부러져 오른팔로 계속 일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저는 생전에 팔 부러지고 감사하는 사람 처음 봤어요. 근데 얘기를 들어보니까 경찰이 사고 현장에 가보니까 차가 크게 박살이 나서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급히 와서 구급차도 대놓고 차를 뜯어보니 애 둘이 안전띠 매고 뒤에 있는데 머리털 하나 상한 곳 없이 그대로 생존해 있었고, 남편은 피를 흘리고 있는데 왼팔만 부러져서 병원에 와서 응급치료받고 있는데 경찰이 말했답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살려준 거라고….

그래서 너무 감사해서 저한테 감사를 전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고 나서 이분이 얼마나 열심히 교회를 나오는지 새벽에 일찍 나가서 세탁소를 열어야 하는데 새벽 예배를 드리고 나가요.

열심히 나와서 봉사하고 나중에 또 찬양대 가서 봉사하고 나중에 찬양대 대장도 되고, 교회에서 제가 뭘 시키기만 하면 “네.” “네.”밖에 안 해요.
“집사님, 새벽에 와서 마이크 조정 좀 하세요.” “네.” “집사님, 이제 때가 됐으니까 집사 직분을 받으세요.” “네.” “이번에 찬양대장 하세요.” “네.” 하고 묻습니다. “찬양대장이 뭐 하는 겁니까?” “그거는 찬양대원들 뒤에서 가끔 밥 사주는 일만 하면 되는 겁니다.” “네.” 그리고 열심히 찬양대원들 밥을 사줍니다. 

그래서 이분의 감사를 통해서 온 가족이 복을 받았어요. 애들도 다 잘 자라고 나중에 좋은 대학 다 가고 하나님께서 복 받은 인생이 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감사가 진짜 감사입니다. 어려울 때 감사하고 괴로울 때 감사하고 슬플 때 감사하고 억울할 때 감사하고 상처받았을 때 감사하고 아플 때 감사하고 그것이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잘될 때는 누구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어려울 때 감사가 진정한 감사이고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는 하나님의 축복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의 역사는 모든 문제를 감사로 풀어나간 절대 긍정의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전 한신대학교 총장 김정준 목사님 간증입니다. 목사님께서 추수 감사를 맞이해서 병원을 방문해서 설교하신 적이 있는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랜 중병으로 고생하는 병상에 있는 분들에게 매년 1번 추수감사절은 너무 멀고 부족하다’ 왜냐하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하루하루 살아있는 것이 감사의 조건이기 때문에 매일 감사를 드려야 되는 그러한 삶을 생각하면 1년에 추수감사절이 한 번 있는 것이 너무 멀기 때문에 매일이 추수감사절이 돼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물론 병원에 들어가 누워 있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몸은 아프고 여러 가지 내 모든 자유가 다 빼앗겨버리고 고통 가운데 있으니까 원망하고 불평할 거 많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이 같은 중병을 맞아서도 내게 새로운 날을 주시고 날마다 새 생명을 새 호흡을 주신 은혜를 감사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고 복 받은 삶의 모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내게 하나님께서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고 새로운 하루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지난 밤에도 수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났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또 하루 새날을 주셨습니다. 불치의 병, 중병을 가지고도 또 새날을 맞이했으니 감사합니다. 저 태양, 저 맑은 하늘, 저 산천, 오늘도 날 찾아 주신 의사와 간호사 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할렐루야! 이 같은 감사를 드려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너무나 감사가 메말랐어요. 불평은 빨리 앞서가고 내가 조금 뭔가 억울한 일 당하면 막 원망하고 불평하고 남 탓하잖아요. 감사가 메말랐기 때문에 계속해서 우리가 그런 문제에 둘러싸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병에 들어 오늘내일하면서 병원에 누워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렇게 와서 예배드리는 것 자체가 감사 아닙니까? 교회를 오고 싶어도 몸이 아파 못 오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분들은 지금 집에서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으시겠지만 어쨌건 여러분은 내가 살아있음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파 누웠을 때 더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건강할 때 할 수 없는 감사를 드릴 수 있기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어떤 영양가 있는 음식보다 더 우리에게 소중합니다. 어떤 치료와 약보다도 우리에게 더 소중한 것이 바로 감사입니다.

김정준 목사님께서 결핵으로 요양소에 3년 동안 병원에 계셨었는데 원망과 불평하는 사람치고 살아 나가는 사람 못 봤답니다. 그런데 늘 긍정적으로 찬양하고 감사하는 사람들은 다 건강이 회복되어서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감사할 때 병에서 놓여남을 받는 것입니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환난 가운데서 주님께서 우리를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15절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시편 50편 23절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환난 중에 감사가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이고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기적을 체험하는 길은 환난 중에 감사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환난에서 건져 주시고, 슬픔과 고통과 괴로움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하나님은 우리의 감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감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일생이 감사의 일생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는 결심해야 합니다. ‘주님, 지금까지 내가 감사를 못했지만, 오늘 이후로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하겠습니다.’ 하면서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감사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말 너무나 극한 절망 가운데 원망과 불평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감사하고 주님을 찬양한 벤쟈민 슈몰크 목사님의 간증으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독일에서 1618년부터 48년까지 30년 5개월 동안 종교전쟁이 있었습니다. 독일이 전쟁터가 돼서 가톨릭 연합군하고 프로테스탄트 연합군하고 30년간 전쟁을 했어요. 인류 역사 가장 참혹하고 많은 사망자를 낸 전쟁인데 무려 800만 명이 죽었어요. 

그리고 그 다음에 흑사병이라는 것이 덮쳐서 온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죽어 나갔는데, 그래서 독일 인구가 1,600만에서 600만으로 줄어듭니다. 1000만명이 줄어들었어요. 그런데 이 슈몰크 목사님은 가장 전쟁이 심했던 실레지아 지역에서 목회하셨는데 통나무 움막의 교회를 세우고 36개 마을을 돌보면서 저들을 섬기셨습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 상처 입은 양들을 가서 돌봐주었습니다.

너무 먼 길을 다니다 보니까 지금처럼 자동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교통수단이 마땅치 않아서 주로 하루 종일 걸어 다니시면서 사역하셨는데 중풍이 와서 한쪽을 못 쓰고 또 백내장에 걸려서 앞을 잘 못 봅니다. 그러면서도 온 마을을 다니면서 성도님들을 가서 위로하고 기도해 줍니다.

하루 종일 목사님이 오신다고 기다렸다가 목사님이 오시면 저들이 목사님을 붙잡고 같이 울었습니다. “우리 목사님에게 건강 주세요. 목사님이 이렇게 제대로 걷지도 못하시고 눈도 잘 못 보시는데 여기까지 오셨습니다.” 같이 울면서 교회가 크게 부흥하게 됐습니다. 

1704년 어느 날, 그날도 아침 일찍 먼 길을 갔다가 오후 내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오고 있는데 본인이 살고 있는 마을 쪽에서 연기가 많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와 보니 마을에 불이 나서 여러 집이 탄 것입니다.

어린 두 아들을 집에 두고 온 목사님이 놀라서 집으로 달려가는데 집이 잿더미가 되어 있습니다. 그 잿더미를 막 해치니깐 어린 두 아들이 꼭 껴안고 타 죽어 있었습니다. 불에 타 죽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무릎을 꿇고 눈물 흘리며 하나님 앞에 찬송을 지어드렸습니다. 그것이 찬송가 549장 ‘내 주여 뜻대로’입니다. 

그 절망 가운데 그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주님을 찬양한 우리 슈몰크 목사님을 생각하면 우리의 믿음은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주님, 오늘 이후로 우리 일생 살아가는 동안 넘치는 감사한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를 회복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찬송가 549장(통 431) : 내 주여 뜻대로> 

1절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 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2절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 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3절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그는 두 아들을 잃고도 살든지 죽든지 주님 뜻대로 하시라고 하는 귀한 찬송을 지었습니다. 나중에 작곡가 홀브룩이 베버의 마탄의 사수에서 곡을 따서 곡을 붙여서 이 곡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자기 두 아들을 잃고도 이렇게 담담한 믿음으로 주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까? 오늘 우리의 믿음을 다시 돌아보면서 남은 생 주님 앞에 넘치는 감사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떠한 절망 중에서도 주님 앞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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