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흔적
2024.10.06
/ 갈라디아서 6장 17~18절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갈라디아서 6장 17~18절)
우리 옛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무엇인가 자기의 이름,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길 원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고 섬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남기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죄인의 괴수, 두목이라고 고백했던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에 한평생 예수님만 사랑하고 예수님만 자랑하며 살다가 예수님의 흔적을 남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먼저 기억해야 될 것은 예수님을 만난 후에 사도 바울의 유일한 자랑이 무엇이었냐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한때 교회와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핍박하는 데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을 때 증인으로 서 있었고, 그는 스데반 집사가 죽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이단의 괴수로 여겼기 때문에 이단을 따른 사람은 다 죽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사도행전 7장 58절 이하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스데반 집사가 죽은 다음 예루살렘교회에 큰 박해가 다가와서 모든 성도가 사마리아, 온 유대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습니다. 사울은 대제사장의 공문을 받아서 멀리 흩어져 있는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붙잡으러 가기 위해서 먼 곳 다메섹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지금 ‘다마스커스’인데 그곳으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사도행전 9장 1절, 2절은 이와 같이 설명합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사울은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다가 강한 빛 가운데 오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사도행전 9장 3절입니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서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사도행전 9장, 4절 5절입니다.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사울이 그날 예수님을 만난 후에 그의 일생이 완전히 바뀌어졌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그 순간이 삶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교회를 무너뜨리는 데 앞장서던 그가 예수님을 위해 목숨 바쳐 충성, 헌신하는 주님의 귀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사도 바울은 자기 모든 자랑거리를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했습니다.
립보서 3장 8절입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는 이와 같이 고백했습니다. 그는 전통 있는 가문에서 태어나 당시 최고의 학벌을 가졌고,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자라 자랑거리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다음 이 모든 자랑거리를 배설물처럼 내던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내가 자랑할 유일한 자랑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밖에 없다고 그는 만인 앞에 고백했던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자기 자신을 자랑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가진 능력을 나타내기를 원하고, 자기가 가진 재물이 많은 것을 자랑하기를 원하고, 자기의 높은 지위를 사람들에게 알리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누군가 자기를 칭찬하면 우쭐대고 스스로 자기가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말로 착각은 커트라인이 없다고 그러는데, 그렇게 남이 칭찬하면 우쭐대면서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잘난 줄 압니다.
여러분, 남이 내게 아첨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면 안 됩니다. 그것은 바로 파멸로 가는 길인 것입니다. 높아질수록 더 잘될수록 머리를 숙이고 겸손한 사람이 될 때 하나님이 위대한 지도자로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지도자는 남의 쓴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하고, 남이 아첨하는 소리를 물리칠 줄 알아야 참된 지도자입니다.
많은 지도자가 착각하는 것은 그 옆에 와서 립 서비스하는 사람들, ‘당신 때문에 이렇게 모든 것이 잘 됩니다.’ ‘당신이 와서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와 같은 칭찬을 들으면서 착각에 빠집니다.
자기가 잘못하고 있는 많은 것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자기가 하는 것이 다 잘 되는 줄만 알기에 그래서 독재자가 생겨나고 그래서 문제 있는 지도자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하나님 앞에 언제나 겸손히 머리 숙여야 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모든 영광을 우리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됩니다.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좋은 직장을 갖게 된 것도, 사업이 잘 되는 것도, 높은 위치에 올라가고, 좋은 기회를 갖게 된 것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릴 때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언제나 날 구원하신 예수님만을 자랑하고 높이며 예수님을 닮아가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예수님의 흔적을 가졌다고 말을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사도 바울은 사람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게는 예수님의 흔적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흔적이라는 말은 그리스 원어로 ‘스티그마’라고 하는데, 우리말로 쉽게 말하면 낙인입니다. 낙인. 그 당시는 노예들을 사고파는 시대였는데, 노예 시장에서 노예를 사 오면 이 노예는 나의 영원한 소유라고 하는 상징으로 불에 인두를 지져서 몸에 낙인을 찍었습니다.
그래서 영원히 그 몸에 그 낙인이 있어서 어디로 가든지 이 사람은 누구의 소유물이다. 이렇게 소유물로 인정되었습니다. 만약 노예가 도망쳤다 잡히면 그 낙인을 보고 주인에게 끌어가 돌려놓는데 대부분 죽임을 당했습니다. 또한 그 당시 장수들이 왕에게, 황제에게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서 스스로 몸에 낙인을 찍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예수의 흔적을 지녔다고 하는 말은 자신이 예수님의 종이고 예수님의 소유물이라는 것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사도 바울은 진정 예수님을 위해 죽고 예수님을 위해 사는 예수님의 낙인에 찍힌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로마서 14장 8절에 그는 고백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이후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옥에도 여러 번 갇히고 매도 수없이 맞았습니다. 굶주리고 헐벗고 많은 고난을 겪었는데, 한 번은 돌에 맞아 죽은 것과 같이 되어서 그를 끌어다 성 밖에 내쳐진 적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 몸에 상처가 얼마나 많이 남았겠습니까? 매 맞은 상처, 채찍에 맞은 상처, 몽둥이로 맞은 상처, 돌에 맞아 터지고 깨진 상처가 온몸에 남아있었을 것입니다. 이 상처가 그에게는 예수님의 흔적이었습니다.
그가 고린도후서에 이와 같은 고백합니다. 11장 23절부터 27절에,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모든 것이 그에게는 예수님의 흔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흔적이라는 것은 자기의 고집, 교만, 의지를 버리고 나를 통해서 예수님이 나타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흔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걸어가야 할 십자가의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됩니다. 때때로 세상 사람과 갈등이 생겨나기도 하고, 손해 보기도 하고, 또 힘든 일, 어려운 일도 당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저는 검사장까지 올라간 주위에 있던 분이 간증한 얘기를 들었는데, 일산지검에서 그가 일을 할 때 검찰총장이 그곳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든 검사가 모여서 그날 밤에 폭탄주를 마시는데 본인에게 잔이 왔습니다.
그때 “총장님, 죄송하지만 저는 크리스천이라 폭탄주를 받을 수 없습니다.” 하고 옆 사람에게 잔을 돌렸더니만 그 검찰총장이 갑자기 화를 내면서 “감히 상사가 주는 술을 받지 않는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곧장 지방으로 좌천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비록 먼 지방에서 검사 일을 하는 것이 더 큰 축복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따르려다 보니까 그런 고난을 겼었지만, 그런 고난마저 축복으로 바꾼 것은 그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이 폭탄주 문화는 없어져야 됩니다.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세상 어디에도 이렇게 우리나라처럼 술을 먹을 때 만취하게 먹는 나라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망 순위가 병으로 죽는 거 말고 1위가 자살이고, 2위가 음주 운전으로 사람 죽이는 겁니다. 그런데 음주 운전으로 사람 죽여도 심신미약으로 사람 죽였다고 해서 3년 징역밖에 주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3년 징역 살고 나서 또 음주 운전하고 또 사람을 죽입니다. 법을 바꿔야 합니다. 최소한 30년, 100년을 해야 음주 운전 하지 않지, 이 나라가 지금 잘못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모든 분야에서 예수님의 흔적을 남겨야 됩니다. 법조인은 법조계에서, 정치인은 정치하는 그곳에서, 학교 선생님은 학교 선생님 그 자리에서,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하는 그 자리에서 예수님의 흔적을 남겨야 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 몸에 예수님의 흔적을 갖고 있습니까?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예수님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고, 예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위해 고통당한 흔적이 있습니까? 그 흔적이 바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예수 사랑의 흔적, 낙인, 스티그마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 어떤 흔적을 갖고 살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위한 흔적을 갖고 살 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18절은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우리는 주님의 은혜가 없이는 단 하루, 1시간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그는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되는 것은 내가 잘나서 잘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내가 높아지는 것도 내가 잘해서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문제가 없이 그냥 승승장구 잘 되는 것이 내가 잘해서 잘 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될 때, 성공할 때, 박수갈채 받을 때, 높은 자리에 올라갈 때 더 낮아지고 겸손해져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시편 116편 12절에 이와 같이 시편 기자는 고백합니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야훼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저희 교회에 장로님을 1,400분 정도 모시고 있다 보니까 거의 매주 장례식이 있습니다. 장로님 본인께서 돌아가실 때도 있고, 부인 권사님 먼저 돌아가실 때도 있고, 또 젊으신 장로님은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도 있습니다. 이처럼 인생은 왔다가 때가 되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서 제가 느낀 것은 어느 분은 구십육 세까지 장수하신 분이 있고, 어떤 분은 칠십 세가 되어 넘어서 아직도 더 많이 일을 할 수 있는 데 가신 분이 있고, 올 때는 순서가 있지만 갈 때는 순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 숨 쉬는 것이 은혜입니다. 지금 내가 심장이 멈추면 우리는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심장이 뛰게 만들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하루라도 1시간이라도 더 살아서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라고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살아 숨 쉬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하면서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게 되며 생명으로 인도해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우리에게 넘치게 부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한 번뿐인 인생을 사는 데 가장 의미 있고 보람 있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예수님의 흔적을 지니고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때문에 내가 때때로 마음이 상하고 손해 본 일이 있습니까? 그 사랑의 흔적을 갖고 살아가면 그것이 하늘나라의 상급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내가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까? 내가 예수님을 위해서 내 몸, 주님께 다 바치겠다고 헌신하며,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희생하며 주님을 위해서 헌신한 흔적을 여러분은 갖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지닌 예수님의 흔적이 무엇입니까?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충현교회를 다녔는데, 충현교회 김창인 목사님께서 여러 차례 말씀하신 북한에서 목회하실 때의 간증이 하나 있습니다.
이창환 전도사님에 대한 간증인데, 이창환 전도사님은 목사님이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는 목사님의 수제자였고, 그 교회 청년으로 있다 주의 종이 된 사람인데 얼마나 열심히 교회를 섬기고 모든 것에 모범이 되는지 그의 헌신에 목사님은 늘 감동했습니다. 젊을 때 주님을 위해서 헌신할 때 하나님의 큰 상급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18살 때 그가 침례를 받게 돼서 침례 문답을 하는데 침례 문답을 하기 위해서 이 이창환 청년이 기도도 많이 하고 성경도 많이 읽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침례 문답을 하게 되는데 다른 것을 묻지 않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창환아 너 성경이 몇 번이나 읽었니?”
그러니까 창환이가 말합니다.
“아이고 목사님, 그런 것을 물으세요? 그것을 꼭 아셔야겠어요?”
“이것은 침례 주기 전에 문답하는 내용이니 대답하거라.”
“목사님, 부끄럽게 그런 것을 물으세요.”
“몇 번이나 읽었니?” “예, 지금까지 40번 읽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그 다음
“나와 목사를 바꾸자”
그것이 침례 문답 전부였습니다.
그만큼 신실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공산화되면서 더 이상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는 환경이 되니까 목사님께서 1948년 12월에 월남하시게 됐는데, 전도사가 돼서 김 목사님을 도와 사역하는 이창환 전도사를 불렀습니다.
“자네가 나보다 영적인 깊이가 있고, 말씀 잘 전하니, 자네가 내려가서 피난한 우리 교우들을 데리고 목회를 하게”
그러니까 이 전도사님이 대답을 했습니다.
“안 됩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가족도 있으시고, 우리 교우들은 목사님을 따르지 저를 따르지 않습니다. 저는 남아서 나이 많아서 피난가지 못하는 분들을 돌보겠습니다.”
며칠 동안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김창인 목사님이 져서 목사님은 가족과 여러 성도와 함께 월남하게 되셨고, 이창환 전도사님은 남아서 연로하고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모시고 목회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헤어지고 나서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김창인 목사님은 월남하셔서 충무로 고가에 충현교회를 세우시고 장로 합동 측에서 가장 큰 교회로 교회를 성장시키셨습니다. 그러면서 늘 목회하시면서 그때 우리 창환이를 나이 많은 성도님들 모시고 목회하도록 남겨놓고 온 게 늘 마음에 걸렸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그 교회는 어떻게 되었는지 늘 궁금해 하셨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김창인 목사님께서 캐나다 토론토에서 부흥회를 인도하시게 되었는데 캐나다 캘거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가 네 번이나 왔었는데 바쁜 중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김 목사님, 아무리 일정이 바쁘시더라도 하루만 여기 캘거리를 들렀다 가십시오.”
“아이고, 제가 토론토 다음 시카고에서 부흥회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일정 때문에 도저히 어렵습니다.”
“목사님, 일정을 바꿔서라도 꼭 이곳을 다녀가셔야 됩니다.”
“제게 전화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예, 저는 김 목사님이 월남하신 후 뒤에 남아서 목회하신 이창환 전도사님 마지막 순교하는 모습을 지켜본 사람입니다.”
그 말을 듣고 놀라서 김 목사님이 시카고로 갔다가 한국 가는 비행기 일정을 바꾸고 다시 캘거리로 가서 이창환 전도사님의 마지막 순교하신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김창인 목사님이 월남하신 지 얼마 안 되어서 공산군이 총을 들고 “김창인 목사 어디 갔냐, 김창인 목사 가족들 다 나오라”며 들이닥쳤습니다. 그때는 교회와 사택에 붙어 있으니까 사택을 문 열고 뒤져보니 거기 안 계셨습니다.
“김창인 목사님은 벌써 남한으로 내려가셨습니다.” “거짓말하지 말고 찾아내라.” 그래서 온 동네를 뒤지고 그랬는데 결국은 피난 가신 것을 알게 됐습니다. 화가 난 공산군들이 이창환 전도사를 끌고 갔습니다.
“이 나쁜 반동자! 김창인 목사를 몰래 월남하게 하고 남아있는 너는 반동분자 중에서 반동분자다!” 공산군들이 이창환 전도사를 경찰서로 끌고 가서 경찰서 마당에 큰 독을 갖다 놓고 발가벗겨서 그 안에 집어넣고 찬물을 부었습니다.
그때가 영하 30도라 콧물만 흘러도 콧물이 막 얼 때인데 찬물 부어서 얼려 죽였습니다. 그때 따라갔던 많은 성도가 경찰서 담 밖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 이창환 전도사님이 몸이 얼어들어 가면서 찬송을 부릅니다.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 하여도
하늘 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 헤치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빛을 보도다”
성도들이 경찰서 밖에서 통곡하며 눈물로 그 찬송을 부릅니다. 1절을 부르고 2절을 부르고 점점 목소리가 작아지더니 거기서 순교하셨습니다.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신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 성도들이 경찰서에 가서 그 독을 가져다가 독을 깨고 얼음을 깨고, 그리고 양지바른 따뜻한 곳에 이창환 전도사님을 묻어 장례를 치렀다고 합니다.
그는 진정한 예수님의 흔적을 가진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비록 짧은 인생을 마쳤지만, 결혼도 못 하고 젊은 나이로 그렇게 그는 순교했지만, 예수님을 향한 그 사랑의 열정으로 아름다운 예수님의 흔적을 남기고 돌아간 귀한 주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예수 사랑의 흔적이 여러분 삶 가운데 남아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손에 예수 사랑의 흔적이 남아있어서 이웃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사랑을 펼치는 그러한 사랑의 손이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무릎에 예수님 흔적이 남아있어서 언제나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 기도의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어떤 어려움이 다가오고 문제가 다가와도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고 더욱 의지하며 예수님의 아름다운 흔적을 남겨서, 온 세상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아름다운 세상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여러분 모두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송가 493장(통 545) 하늘 가는 밝은 길이>
2절 내가 염려하는 일이 세상에 많은 중
속에 근심 밖에 걱정 늘 시험하여도
예수 보배로운 피 모든 것을 이기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이기리로다
3절 내가 천성 바라보고 가까이 왔으니
아버지의 영광 집에 나 쉬고 싶도다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
영광 나라 계신 임금 우리 구주 예수라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한 번뿐인 인생 살아가면서 정말로 우리 삶에 예수 사랑의 흔적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여 주시고 나 자신의 유익과 만족을 위한 삶을 살아왔던 우리들의 모습이 있다면, 오늘 철저히 회개하고 여생을 예수님의 흔적을 남기는 삶이 되도록 우리의 삶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우리 옛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무엇인가 자기의 이름,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길 원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고 섬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남기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죄인의 괴수, 두목이라고 고백했던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에 한평생 예수님만 사랑하고 예수님만 자랑하며 살다가 예수님의 흔적을 남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1. 사도 바울의 유일한 자랑
우리가 오늘 먼저 기억해야 될 것은 예수님을 만난 후에 사도 바울의 유일한 자랑이 무엇이었냐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한때 교회와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핍박하는 데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을 때 증인으로 서 있었고, 그는 스데반 집사가 죽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이단의 괴수로 여겼기 때문에 이단을 따른 사람은 다 죽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사도행전 7장 58절 이하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스데반 집사가 죽은 다음 예루살렘교회에 큰 박해가 다가와서 모든 성도가 사마리아, 온 유대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습니다. 사울은 대제사장의 공문을 받아서 멀리 흩어져 있는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붙잡으러 가기 위해서 먼 곳 다메섹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지금 ‘다마스커스’인데 그곳으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사도행전 9장 1절, 2절은 이와 같이 설명합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사울은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다가 강한 빛 가운데 오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사도행전 9장 3절입니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서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사도행전 9장, 4절 5절입니다.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사울이 그날 예수님을 만난 후에 그의 일생이 완전히 바뀌어졌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그 순간이 삶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교회를 무너뜨리는 데 앞장서던 그가 예수님을 위해 목숨 바쳐 충성, 헌신하는 주님의 귀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사도 바울은 자기 모든 자랑거리를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했습니다.
립보서 3장 8절입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는 이와 같이 고백했습니다. 그는 전통 있는 가문에서 태어나 당시 최고의 학벌을 가졌고,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자라 자랑거리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다음 이 모든 자랑거리를 배설물처럼 내던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내가 자랑할 유일한 자랑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밖에 없다고 그는 만인 앞에 고백했던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자기 자신을 자랑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가진 능력을 나타내기를 원하고, 자기가 가진 재물이 많은 것을 자랑하기를 원하고, 자기의 높은 지위를 사람들에게 알리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누군가 자기를 칭찬하면 우쭐대고 스스로 자기가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말로 착각은 커트라인이 없다고 그러는데, 그렇게 남이 칭찬하면 우쭐대면서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잘난 줄 압니다.
여러분, 남이 내게 아첨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면 안 됩니다. 그것은 바로 파멸로 가는 길인 것입니다. 높아질수록 더 잘될수록 머리를 숙이고 겸손한 사람이 될 때 하나님이 위대한 지도자로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지도자는 남의 쓴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하고, 남이 아첨하는 소리를 물리칠 줄 알아야 참된 지도자입니다.
많은 지도자가 착각하는 것은 그 옆에 와서 립 서비스하는 사람들, ‘당신 때문에 이렇게 모든 것이 잘 됩니다.’ ‘당신이 와서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와 같은 칭찬을 들으면서 착각에 빠집니다.
자기가 잘못하고 있는 많은 것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자기가 하는 것이 다 잘 되는 줄만 알기에 그래서 독재자가 생겨나고 그래서 문제 있는 지도자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하나님 앞에 언제나 겸손히 머리 숙여야 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모든 영광을 우리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됩니다.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좋은 직장을 갖게 된 것도, 사업이 잘 되는 것도, 높은 위치에 올라가고, 좋은 기회를 갖게 된 것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릴 때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언제나 날 구원하신 예수님만을 자랑하고 높이며 예수님을 닮아가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사도 바울이 지닌 예수님의 흔적
사도 바울은 자기가 예수님의 흔적을 가졌다고 말을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사도 바울은 사람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게는 예수님의 흔적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흔적이라는 말은 그리스 원어로 ‘스티그마’라고 하는데, 우리말로 쉽게 말하면 낙인입니다. 낙인. 그 당시는 노예들을 사고파는 시대였는데, 노예 시장에서 노예를 사 오면 이 노예는 나의 영원한 소유라고 하는 상징으로 불에 인두를 지져서 몸에 낙인을 찍었습니다.
그래서 영원히 그 몸에 그 낙인이 있어서 어디로 가든지 이 사람은 누구의 소유물이다. 이렇게 소유물로 인정되었습니다. 만약 노예가 도망쳤다 잡히면 그 낙인을 보고 주인에게 끌어가 돌려놓는데 대부분 죽임을 당했습니다. 또한 그 당시 장수들이 왕에게, 황제에게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서 스스로 몸에 낙인을 찍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예수의 흔적을 지녔다고 하는 말은 자신이 예수님의 종이고 예수님의 소유물이라는 것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사도 바울은 진정 예수님을 위해 죽고 예수님을 위해 사는 예수님의 낙인에 찍힌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로마서 14장 8절에 그는 고백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이후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옥에도 여러 번 갇히고 매도 수없이 맞았습니다. 굶주리고 헐벗고 많은 고난을 겪었는데, 한 번은 돌에 맞아 죽은 것과 같이 되어서 그를 끌어다 성 밖에 내쳐진 적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 몸에 상처가 얼마나 많이 남았겠습니까? 매 맞은 상처, 채찍에 맞은 상처, 몽둥이로 맞은 상처, 돌에 맞아 터지고 깨진 상처가 온몸에 남아있었을 것입니다. 이 상처가 그에게는 예수님의 흔적이었습니다.
그가 고린도후서에 이와 같은 고백합니다. 11장 23절부터 27절에,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모든 것이 그에게는 예수님의 흔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흔적이라는 것은 자기의 고집, 교만, 의지를 버리고 나를 통해서 예수님이 나타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흔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걸어가야 할 십자가의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됩니다. 때때로 세상 사람과 갈등이 생겨나기도 하고, 손해 보기도 하고, 또 힘든 일, 어려운 일도 당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저는 검사장까지 올라간 주위에 있던 분이 간증한 얘기를 들었는데, 일산지검에서 그가 일을 할 때 검찰총장이 그곳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든 검사가 모여서 그날 밤에 폭탄주를 마시는데 본인에게 잔이 왔습니다.
그때 “총장님, 죄송하지만 저는 크리스천이라 폭탄주를 받을 수 없습니다.” 하고 옆 사람에게 잔을 돌렸더니만 그 검찰총장이 갑자기 화를 내면서 “감히 상사가 주는 술을 받지 않는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곧장 지방으로 좌천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비록 먼 지방에서 검사 일을 하는 것이 더 큰 축복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따르려다 보니까 그런 고난을 겼었지만, 그런 고난마저 축복으로 바꾼 것은 그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이 폭탄주 문화는 없어져야 됩니다.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세상 어디에도 이렇게 우리나라처럼 술을 먹을 때 만취하게 먹는 나라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망 순위가 병으로 죽는 거 말고 1위가 자살이고, 2위가 음주 운전으로 사람 죽이는 겁니다. 그런데 음주 운전으로 사람 죽여도 심신미약으로 사람 죽였다고 해서 3년 징역밖에 주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3년 징역 살고 나서 또 음주 운전하고 또 사람을 죽입니다. 법을 바꿔야 합니다. 최소한 30년, 100년을 해야 음주 운전 하지 않지, 이 나라가 지금 잘못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모든 분야에서 예수님의 흔적을 남겨야 됩니다. 법조인은 법조계에서, 정치인은 정치하는 그곳에서, 학교 선생님은 학교 선생님 그 자리에서,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하는 그 자리에서 예수님의 흔적을 남겨야 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 몸에 예수님의 흔적을 갖고 있습니까?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예수님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고, 예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위해 고통당한 흔적이 있습니까? 그 흔적이 바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예수 사랑의 흔적, 낙인, 스티그마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 어떤 흔적을 갖고 살고 있습니까?
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예수님을 위한 흔적을 갖고 살 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18절은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우리는 주님의 은혜가 없이는 단 하루, 1시간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그는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되는 것은 내가 잘나서 잘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내가 높아지는 것도 내가 잘해서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문제가 없이 그냥 승승장구 잘 되는 것이 내가 잘해서 잘 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될 때, 성공할 때, 박수갈채 받을 때, 높은 자리에 올라갈 때 더 낮아지고 겸손해져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시편 116편 12절에 이와 같이 시편 기자는 고백합니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야훼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저희 교회에 장로님을 1,400분 정도 모시고 있다 보니까 거의 매주 장례식이 있습니다. 장로님 본인께서 돌아가실 때도 있고, 부인 권사님 먼저 돌아가실 때도 있고, 또 젊으신 장로님은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도 있습니다. 이처럼 인생은 왔다가 때가 되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서 제가 느낀 것은 어느 분은 구십육 세까지 장수하신 분이 있고, 어떤 분은 칠십 세가 되어 넘어서 아직도 더 많이 일을 할 수 있는 데 가신 분이 있고, 올 때는 순서가 있지만 갈 때는 순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 숨 쉬는 것이 은혜입니다. 지금 내가 심장이 멈추면 우리는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심장이 뛰게 만들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하루라도 1시간이라도 더 살아서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라고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살아 숨 쉬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하면서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게 되며 생명으로 인도해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우리에게 넘치게 부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한 번뿐인 인생을 사는 데 가장 의미 있고 보람 있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예수님의 흔적을 지니고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때문에 내가 때때로 마음이 상하고 손해 본 일이 있습니까? 그 사랑의 흔적을 갖고 살아가면 그것이 하늘나라의 상급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내가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까? 내가 예수님을 위해서 내 몸, 주님께 다 바치겠다고 헌신하며,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희생하며 주님을 위해서 헌신한 흔적을 여러분은 갖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지닌 예수님의 흔적이 무엇입니까?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충현교회를 다녔는데, 충현교회 김창인 목사님께서 여러 차례 말씀하신 북한에서 목회하실 때의 간증이 하나 있습니다.
이창환 전도사님에 대한 간증인데, 이창환 전도사님은 목사님이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는 목사님의 수제자였고, 그 교회 청년으로 있다 주의 종이 된 사람인데 얼마나 열심히 교회를 섬기고 모든 것에 모범이 되는지 그의 헌신에 목사님은 늘 감동했습니다. 젊을 때 주님을 위해서 헌신할 때 하나님의 큰 상급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18살 때 그가 침례를 받게 돼서 침례 문답을 하는데 침례 문답을 하기 위해서 이 이창환 청년이 기도도 많이 하고 성경도 많이 읽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침례 문답을 하게 되는데 다른 것을 묻지 않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창환아 너 성경이 몇 번이나 읽었니?”
그러니까 창환이가 말합니다.
“아이고 목사님, 그런 것을 물으세요? 그것을 꼭 아셔야겠어요?”
“이것은 침례 주기 전에 문답하는 내용이니 대답하거라.”
“목사님, 부끄럽게 그런 것을 물으세요.”
“몇 번이나 읽었니?” “예, 지금까지 40번 읽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그 다음
“나와 목사를 바꾸자”
그것이 침례 문답 전부였습니다.
그만큼 신실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공산화되면서 더 이상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는 환경이 되니까 목사님께서 1948년 12월에 월남하시게 됐는데, 전도사가 돼서 김 목사님을 도와 사역하는 이창환 전도사를 불렀습니다.
“자네가 나보다 영적인 깊이가 있고, 말씀 잘 전하니, 자네가 내려가서 피난한 우리 교우들을 데리고 목회를 하게”
그러니까 이 전도사님이 대답을 했습니다.
“안 됩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가족도 있으시고, 우리 교우들은 목사님을 따르지 저를 따르지 않습니다. 저는 남아서 나이 많아서 피난가지 못하는 분들을 돌보겠습니다.”
며칠 동안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김창인 목사님이 져서 목사님은 가족과 여러 성도와 함께 월남하게 되셨고, 이창환 전도사님은 남아서 연로하고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모시고 목회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헤어지고 나서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김창인 목사님은 월남하셔서 충무로 고가에 충현교회를 세우시고 장로 합동 측에서 가장 큰 교회로 교회를 성장시키셨습니다. 그러면서 늘 목회하시면서 그때 우리 창환이를 나이 많은 성도님들 모시고 목회하도록 남겨놓고 온 게 늘 마음에 걸렸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그 교회는 어떻게 되었는지 늘 궁금해 하셨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김창인 목사님께서 캐나다 토론토에서 부흥회를 인도하시게 되었는데 캐나다 캘거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가 네 번이나 왔었는데 바쁜 중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김 목사님, 아무리 일정이 바쁘시더라도 하루만 여기 캘거리를 들렀다 가십시오.”
“아이고, 제가 토론토 다음 시카고에서 부흥회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일정 때문에 도저히 어렵습니다.”
“목사님, 일정을 바꿔서라도 꼭 이곳을 다녀가셔야 됩니다.”
“제게 전화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예, 저는 김 목사님이 월남하신 후 뒤에 남아서 목회하신 이창환 전도사님 마지막 순교하는 모습을 지켜본 사람입니다.”
그 말을 듣고 놀라서 김 목사님이 시카고로 갔다가 한국 가는 비행기 일정을 바꾸고 다시 캘거리로 가서 이창환 전도사님의 마지막 순교하신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김창인 목사님이 월남하신 지 얼마 안 되어서 공산군이 총을 들고 “김창인 목사 어디 갔냐, 김창인 목사 가족들 다 나오라”며 들이닥쳤습니다. 그때는 교회와 사택에 붙어 있으니까 사택을 문 열고 뒤져보니 거기 안 계셨습니다.
“김창인 목사님은 벌써 남한으로 내려가셨습니다.” “거짓말하지 말고 찾아내라.” 그래서 온 동네를 뒤지고 그랬는데 결국은 피난 가신 것을 알게 됐습니다. 화가 난 공산군들이 이창환 전도사를 끌고 갔습니다.
“이 나쁜 반동자! 김창인 목사를 몰래 월남하게 하고 남아있는 너는 반동분자 중에서 반동분자다!” 공산군들이 이창환 전도사를 경찰서로 끌고 가서 경찰서 마당에 큰 독을 갖다 놓고 발가벗겨서 그 안에 집어넣고 찬물을 부었습니다.
그때가 영하 30도라 콧물만 흘러도 콧물이 막 얼 때인데 찬물 부어서 얼려 죽였습니다. 그때 따라갔던 많은 성도가 경찰서 담 밖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 이창환 전도사님이 몸이 얼어들어 가면서 찬송을 부릅니다.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 하여도
하늘 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 헤치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빛을 보도다”
성도들이 경찰서 밖에서 통곡하며 눈물로 그 찬송을 부릅니다. 1절을 부르고 2절을 부르고 점점 목소리가 작아지더니 거기서 순교하셨습니다.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신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 성도들이 경찰서에 가서 그 독을 가져다가 독을 깨고 얼음을 깨고, 그리고 양지바른 따뜻한 곳에 이창환 전도사님을 묻어 장례를 치렀다고 합니다.
그는 진정한 예수님의 흔적을 가진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비록 짧은 인생을 마쳤지만, 결혼도 못 하고 젊은 나이로 그렇게 그는 순교했지만, 예수님을 향한 그 사랑의 열정으로 아름다운 예수님의 흔적을 남기고 돌아간 귀한 주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예수 사랑의 흔적이 여러분 삶 가운데 남아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손에 예수 사랑의 흔적이 남아있어서 이웃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사랑을 펼치는 그러한 사랑의 손이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무릎에 예수님 흔적이 남아있어서 언제나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 기도의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어떤 어려움이 다가오고 문제가 다가와도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고 더욱 의지하며 예수님의 아름다운 흔적을 남겨서, 온 세상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아름다운 세상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여러분 모두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송가 493장(통 545) 하늘 가는 밝은 길이>
2절 내가 염려하는 일이 세상에 많은 중
속에 근심 밖에 걱정 늘 시험하여도
예수 보배로운 피 모든 것을 이기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이기리로다
3절 내가 천성 바라보고 가까이 왔으니
아버지의 영광 집에 나 쉬고 싶도다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
영광 나라 계신 임금 우리 구주 예수라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한 번뿐인 인생 살아가면서 정말로 우리 삶에 예수 사랑의 흔적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여 주시고 나 자신의 유익과 만족을 위한 삶을 살아왔던 우리들의 모습이 있다면, 오늘 철저히 회개하고 여생을 예수님의 흔적을 남기는 삶이 되도록 우리의 삶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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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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