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라
2024.09.29
/ 마가복음 5장 41~43절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마가복음 5장 41~43절)
타락한 우리 인간의 원래 모습, 인간의 실존은 절망입니다. 죄 가운데 태어나서 절망 가운데 살다가, 절망 가운데 죽어가는 존재입니다. 덴마크의 철학자인 쇠렌 키르케고르는 1849년에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하는 책을 썼습니다. 여기서 인간의 실존적인 절망을 얘기하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해결하려 해도 해결할 수 없는 그 원죄를 다룬 것입니다.
그 누구도 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절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절망은 우리 기독교인으로 하여금 믿음으로 신앙으로 절망을 이겨내고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축복의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절망이 끝이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절망에서 새로운 시작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절망도 고난도 우리에겐 축복인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니까 절망에 찬 한 인간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기적을 행하셨던 갈릴리 바다 북서쪽에 가버나움이라고 하는 도시가 있었는데, 이 가버나움에 있는 회당장 야이로의 이야기입니다.
회당이라는 것은 그 지역에서 모두가 예배드리는 예배 장소이고, 회당장은 그 회당의 총책임자로서 하나님께 예배를 잘 드릴 수 있도록 회당을 관리하고, 모든 것을 보살피는 지도자였습니다. 그 지역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었고, 모든 사람이 이 회당장을 귀히 여기고 그의 말씀을 잘 따랐습니다.
그런데 이 집안에 큰 문제가 다가왔습니다. 회당장 야이로가 너무도 사랑하는 외동딸이 그만 병에 걸려 시름시름 죽어가는 것입니다. 절망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존경받는 회당장의 위치에 있고, 그 지역의 지도자이고 명사라고 할지라도 자기 자식의 죽음이라는 절망 앞에서 그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 지역에서 많은 병자를 고쳤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교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이단시해서 ‘누구도 예수와 가까이 지내면 안 된다. 예수를 아는 사람은 이단과 같은 사람이니까 그를 경계하고 멀리 해야 한다.’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예수님과 가까이 지내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병들고 문제가 많은 서민들은 예수님을 따르고 존경했지만, 당시 가장 성경을 잘 안다고 하는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멀리하고 핍박했습니다.
그런데 야이로는 자기 딸을 고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위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비난을 각오하고, 예수님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마가복음 5장 22, 23절입니다.
회당장 중에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의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신분이 높은 회당장이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자기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려놓고 무릎을 꿇고 엎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내 딸을 살려주십시오.’라고 간청한 것입니다.
기도란 주님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할 때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것이지, 우리가 고개를 뻣뻣이 들고 내 신분, 내 위치, 내 자존심을 지키면서 기도하는 것은 올바른 기도의 자세와 태도가 아닌 것입니다.
주님 앞에 엎드려 주님께서 들어주심을 간구하며 눈물로 기도할 때, 주님이 우리를 불쌍히 보시고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병을 고쳐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니까 한 나병환자가 등장합니다. 나병환자는 당시 의료기술로는 치료받을 수가 없었고, 절망 가운데 죽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나병환자는 예수님이 병을 고치신다는 얘기를 듣고 나아가 엎드려 병 고쳐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마가복음 1장 40~42절입니다.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 진지라
어떤 문제를 만났든지 어떤 어려움에 처했든지 어떤 질병에 여러분이 고통을 당하고 있든지 주님 앞에 나와 엎드려 기도하길 바랍니다. 주님이 불쌍히 보시면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불쌍히 여김을 받으려고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지 말고, 주님 앞에 나와서 엎드려 기도하며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내가 이 같은 큰 문제와 어려움에 처했나이다. 내 몸이 아프고, 내 마음에 상처가 깊고, 내 삶이 문제투성이입니다. 주님 나를 불쌍히 보시고 나를 이 절망에서 건져주시옵소서.”
엎드려 눈물로 기도할 때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부르짖고, 또 부르짖고, 또 부르짖어서 기적을 체험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은 말씀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내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부르짖고 기도할 때 기적은 일어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가 와서 엎드려 딸을 고쳐 달라고 요청하니까 그 말을 듣고 그와 함께 죽어가는 그의 딸을 살리기 위해 그의 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을 모시고 가는 모습을 보고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에워싸 뒤에서 밀고 하면서 주님을 따라왔는데, 그 많은 사람 중에 열두 해를 혈루병을 앓는 한 여인이 병을 고치기 위해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았습니다. 그러자 그때 그녀의 병이 나았습니다.
여러분, 지금도 믿음으로 주님의 옷자락을 붙잡으면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믿음의 손을 뻗을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주님은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절대로 하나님은 불신앙의 사람들과 함께 일하지 않으십니다.
늘 의심하고 늘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기적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저 오직 믿음으로 나아갈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았을 때 그 즉시 병이 나았습니다. 12년 동안 그 어떤 의사도 그 어떤 약도 병을 고치지 못했는데, 믿음이 그에게 기적을 가져다준 것입니다. 그 여인이 믿음으로 옷자락을 붙잡는 순간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주님이 가다가 발을 멈추셨습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제자들이 말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밀고 뒤에서 따라오는데 누가 손을 댔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아니다. 누가 믿음으로 내 옷에 손을 댄 사람이 있다.” 그때 그 여인이 나와 엎드려 자기가 믿음으로 주님의 옷자락 손을 댄 것을 고백합니다. 그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5장 34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이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그 여인과 대화하느라 시간이 조금 지체되는 동안, 그 딸이 죽었어요. 그래서 집에서 사람들이 달려와서 말합니다. “회당장님, 따님이 죽었습니다. 예수님을 번거롭게 모시고 올 필요가 없습니다.”
마가복음 5장 35절입니다.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여러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기도할 때 더 큰 문제가 생겨날 수가 있습니다. 그때 절망하고 뒤로 물러서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할 때 응답이 더디다고 멈추면 안 됩니다. 더 큰 문제 다가왔다고 멈추면 안 됩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해서 믿음으로 모든 장애물을 걷어내고 기적을 체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포기하고 뒤로 물러서면 안 됩니다. 약속의 말씀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지 않기 때문에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큰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가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전진을 해야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딸이 죽었다는 얘기를 들으시고도 계속 회당장 야이로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그리고 회당장의 집을 향해 가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5장 36절에,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어떤 큰 문제가 앞을 가로막고 있다고 할지라도, 어떤 중한 병이 내게 찾아와서 나를 괴롭힌다고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사람들이 와서 말합니다. “딸이 이미 죽었는데 왜 선생님을 번거롭게 모시고 갑니까? 선생님을 모시고 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발걸음을 멈추지 아니하시고 계속 옮기셔서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 죽은 딸이 있는 방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그 딸을 바라보시고 손을 내밀어 그를 붙들었습니다.
예수님이 내미는 손은 치료의 손입니다. 예수님이 내미는 손은 기적의 손입니다. 예수님이 내미는 손은 생명의 손입니다. 오늘 이 시간 그 예수님의 손을 다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사람이 손을 잡으면 그것은 잠시 위로와 위안을 줄 수 있는지 몰라도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안 됩니다. 예수님 손을 잡으셔야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손을 잡으신 다음 말씀하셨습니다. “소녀야 일어나라.”
마가복음 5장 41절입니다.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주님께서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 하시는 그 순간 그 딸이 벌떡 일어나 막 걸어 다녔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마가복음 5장 42절입니다.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여러분, 예수님의 손을 붙잡고 “소녀야 일어나라” 하실 때 그 죽었던 소녀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일어났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수많은 사람이 영적으로 죽어 있습니다. 열등감에 죽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열등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늘 어두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거의 깊은 상처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죽은 자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불안의 병에 걸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늘 불안해서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정의 어려움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죽은 상태가 되는 분들도 있습니다.
꿈과 비전이 죽어 있고, 또 나태함 속에 무사안일주의로 인해서 그 영혼이 죽어 있고, 무엇보다도 부정적인 생각으로 영혼이 죽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 영혼의 죽음을 벗어나지 않는 한은 평생 절망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영적으로 죽어 있는 모든 사람이 생명의 주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소녀야 일어나라”는 그 말씀을 듣고 우리는 일어나야 됩니다. 절망의 자리에서, 고난의 자리에서, 슬픔의 자리에서, 실패의 자리에서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에 능력이 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고 생명을 더해주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25절에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오늘 어떠한 문제 가운데 왔든지 간에, 어떠한 영적인 죽음의 자리에 있든지 간에, 이 시간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일어날 때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절망이 떠나가고, 질병이 떠나가고, 문제가 떠나가고, 우리는 승리자로 당당히 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잠에서 깨어서 믿음으로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주님은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절대긍정의 믿음으로 나아갈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14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절망에 처한 자들에게 일어나라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5장을 보면 베데스다라 하는 연못가에서 절망의 자리에 38년 동안이나 누워 있던 병자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이미 온몸이 마비되어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누워 있으면서 죽음과 방불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베데스다 못물이 끓어오를 때 뛰어 들어가면 고침을 받는데, 이미 온몸이 마비되어 누워서 남이 고침 받는 장면만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이 이미 죽은 것입니다.
38년 동안 온몸이 마비되어 누워만 있으니 그에게는 절망만 깊이 쌓여 있었습니다. 꿈도 희망도 없었습니다. 근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를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여러분, 그 자리가 어떤 자리입니까? 38년 동안 누워만 있던, 절망으로 저주로 덮여 있던 그 가장 처절한 실패의 자리인 것입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여러분은 어떠한 자리에 누워 계십니까? 어떠한 실패의 자리에 누워 계십니까? 어떠한 상처의 자리에 누워 계십니까? 어떠한 문제의 자리에 누워 계십니까?
평생을 어릴 때 받았던 상처의 자리에 누워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모에게 받았던 상처, 이웃에게 받았던 상처, 상처투성이의 자리에 누워서 38년 된 병자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시간에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그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갖고 있던 모든 문제의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탐욕의 자리, 미움의 자리, 내 마음에 불평과 원망의 자리, 이 모든 자리들을 들고 일어나서 걸어가야 합니다. 입만 열면 불평하는 사람들은 오늘 이 자리에서 불평의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기를 바랍니다. 불평의 누더기 같은 자리에 누워 있지 말고 일어나 걸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 우린 달라졌습니다. 새사람이 됐습니다. 더 이상 우린 저주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더 이상 절망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우린 새로운 사람입니다. 변화된 사람입니다. 예수님 믿었을 때 우리는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새사람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마약 중독자요 마약을 매매하던 범죄자로 감옥에 갇혀 있다가 예수님을 믿고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 걷게 된 제프 핸더슨이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나는 희망이다』라고 하는 책을 썼는데요. 현재 지금 라스베이거스 최고의 호텔 벨라지오의 최초의 흑인 총주방장이 된 유능한 요리사입니다.
제프는 온갖 범죄가 난무하는 LA 사우스센트럴 지역의 가난한 흑인 동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동네 대부분의 아버지는 다 감옥에 가 있었고 어머니들은 다 마약 중독자였습니다. 본인도 2살 되기 전에 부모님이 이혼해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랍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도둑질은 그의 일상이었습니다.
10대가 되자 마약을 사고팔기 시작했습니다. 마약상이 돼서 24살에 마약 밀거래 죄로 체포되어 19년 7개월 형을 받습니다. 젊은이가 약 20년을 감옥 안에서 지내게 된 것입니다. 그가 붙잡혀 들어갈 때 이렇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내 인생은 이제 끝장났구나.”
그가 감옥에 들어가니깐 젊고 신체가 건장한 죄수라며 “너는 교도소 주방에 가서 설거지해라.”고 설거지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설거지가 보통 설거지가 아니라 1,500명분 그릇을 하루에 세 번씩 닦아야 하니 뜨거운 물에 손을 데고 손이 퉁퉁 붓고 갈라지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의 삶은 이전보다 더 깊은 절망에 빠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주방이 그의 운명을 바꿔놓았는데, 거기서 바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절망으로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할 때, 그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 꿈을 가졌습니다. 거기서 빵 굽는 요리사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유명한 요리사가 돼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설거지를 비롯해 주방에서 온갖 잡일을 하면서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성실하게 열심히 설거지한 결과 인정을 받아 10년 만에 보호 감찰로 가석방으로 풀려나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서 설거지로부터 시작해서 본격적으로 요리사 경력을 쌓기 시작했고 점점 실력도 인정받게 됐습니다.
메리어트 호텔, 리츠 칼턴호텔, 벨 에어 호텔, 레르미타주 호텔 등의 주방을 거쳐 2001년도에 라스베이거스의 시저스 팰리스 호텔의 최초로 흑인 주방장으로 발표된 데 이어서, 2001년도에는 미국 테이스팅 협회 선정 최고의 요리사 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적으로 유명한 벨라지오 호텔 최초로 흑인 총주방장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는 인종차별과 전과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뜨리고 흑인 청소년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희망 전도사로서 일하고 있는데, 그는 자기가 감옥에 있을 때 전해 들었던 메시지를 그들에게 전해줍니다.
흑인들은 자기가 범죄자가 된 것이 사회의 잘못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총을 겨누며 죄를 지으라고 강요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선택을 한 사람은 결국 여러분 자신입니다. 자기를 희생양이라 생각하지 말고 ‘나는 희망이다.’라고 생각을 바꾸십시오.
그는 절망에 처한 청소년들에게, 범죄를 저질러서 감옥에 있는 청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도 이렇게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감옥에 있을 때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아니하고, 감옥에서 예수님을 만난 다음 자기 잘못을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하나님이 그를 높이셨습니다. 그의 책에 보면 이런 간증이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크리스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나의 성공은 모두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입니다.
제가 이분의 글에서 감동한 것은 그가 ‘내가 성공하게 된 것, 내가 요리를 잘하게 된 것, 내가 오늘 여기까지 오게 된 것 모두 다 하나님이 하셨다. 다 하나님이 하셔서 내가 오늘 여기 있게 된 것이다.’라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큰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언가가 잘 되면 ‘내가 잘나서’ 이렇게 우쭐대는 것이 사람의 모습입니다. 사업이 잘돼서 번창하면 ‘내가 역시 사업 수완이 있지.’, 공부를 잘하면 ‘내가 역시 머리가 좋아.’ 자기 자랑을 합니다.
그러나 이 흑인 주방장은 자기 자랑하지 않고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든 간에 우리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주님 앞에 나가면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여러분, 우리의 죄를 주님 앞에 다 회개하고 믿음으로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60장 1절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야훼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여러분, 절망의 자리에서 오늘 일어나기 바랍니다. 저주의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문제의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죽음의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오직 주님의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감사와 찬양을 돌리며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함께 찬송가 438장을 부르면서 말씀 마무리합니다.
<찬송가 438장(통 495): 내 영혼이 은총 입어>
1절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후렴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2절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속에 이뤄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
3절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죄와 절망에서 건져주시고 예수님 믿고 새사람 되게 해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어떤 문제가 다가와도 절망의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고 일어나서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타락한 우리 인간의 원래 모습, 인간의 실존은 절망입니다. 죄 가운데 태어나서 절망 가운데 살다가, 절망 가운데 죽어가는 존재입니다. 덴마크의 철학자인 쇠렌 키르케고르는 1849년에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하는 책을 썼습니다. 여기서 인간의 실존적인 절망을 얘기하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해결하려 해도 해결할 수 없는 그 원죄를 다룬 것입니다.
그 누구도 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절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절망은 우리 기독교인으로 하여금 믿음으로 신앙으로 절망을 이겨내고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축복의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절망이 끝이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절망에서 새로운 시작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절망도 고난도 우리에겐 축복인 것입니다.
1. 절망에 처한 인간
오늘 성경에 보니까 절망에 찬 한 인간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기적을 행하셨던 갈릴리 바다 북서쪽에 가버나움이라고 하는 도시가 있었는데, 이 가버나움에 있는 회당장 야이로의 이야기입니다.
회당이라는 것은 그 지역에서 모두가 예배드리는 예배 장소이고, 회당장은 그 회당의 총책임자로서 하나님께 예배를 잘 드릴 수 있도록 회당을 관리하고, 모든 것을 보살피는 지도자였습니다. 그 지역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었고, 모든 사람이 이 회당장을 귀히 여기고 그의 말씀을 잘 따랐습니다.
그런데 이 집안에 큰 문제가 다가왔습니다. 회당장 야이로가 너무도 사랑하는 외동딸이 그만 병에 걸려 시름시름 죽어가는 것입니다. 절망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존경받는 회당장의 위치에 있고, 그 지역의 지도자이고 명사라고 할지라도 자기 자식의 죽음이라는 절망 앞에서 그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 지역에서 많은 병자를 고쳤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교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이단시해서 ‘누구도 예수와 가까이 지내면 안 된다. 예수를 아는 사람은 이단과 같은 사람이니까 그를 경계하고 멀리 해야 한다.’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예수님과 가까이 지내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병들고 문제가 많은 서민들은 예수님을 따르고 존경했지만, 당시 가장 성경을 잘 안다고 하는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멀리하고 핍박했습니다.
그런데 야이로는 자기 딸을 고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위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비난을 각오하고, 예수님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마가복음 5장 22, 23절입니다.
회당장 중에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의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신분이 높은 회당장이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자기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려놓고 무릎을 꿇고 엎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내 딸을 살려주십시오.’라고 간청한 것입니다.
기도란 주님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할 때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것이지, 우리가 고개를 뻣뻣이 들고 내 신분, 내 위치, 내 자존심을 지키면서 기도하는 것은 올바른 기도의 자세와 태도가 아닌 것입니다.
주님 앞에 엎드려 주님께서 들어주심을 간구하며 눈물로 기도할 때, 주님이 우리를 불쌍히 보시고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병을 고쳐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니까 한 나병환자가 등장합니다. 나병환자는 당시 의료기술로는 치료받을 수가 없었고, 절망 가운데 죽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나병환자는 예수님이 병을 고치신다는 얘기를 듣고 나아가 엎드려 병 고쳐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마가복음 1장 40~42절입니다.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 진지라
어떤 문제를 만났든지 어떤 어려움에 처했든지 어떤 질병에 여러분이 고통을 당하고 있든지 주님 앞에 나와 엎드려 기도하길 바랍니다. 주님이 불쌍히 보시면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불쌍히 여김을 받으려고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지 말고, 주님 앞에 나와서 엎드려 기도하며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내가 이 같은 큰 문제와 어려움에 처했나이다. 내 몸이 아프고, 내 마음에 상처가 깊고, 내 삶이 문제투성이입니다. 주님 나를 불쌍히 보시고 나를 이 절망에서 건져주시옵소서.”
엎드려 눈물로 기도할 때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부르짖고, 또 부르짖고, 또 부르짖어서 기적을 체험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은 말씀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내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부르짖고 기도할 때 기적은 일어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가 와서 엎드려 딸을 고쳐 달라고 요청하니까 그 말을 듣고 그와 함께 죽어가는 그의 딸을 살리기 위해 그의 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을 모시고 가는 모습을 보고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에워싸 뒤에서 밀고 하면서 주님을 따라왔는데, 그 많은 사람 중에 열두 해를 혈루병을 앓는 한 여인이 병을 고치기 위해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았습니다. 그러자 그때 그녀의 병이 나았습니다.
여러분, 지금도 믿음으로 주님의 옷자락을 붙잡으면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믿음의 손을 뻗을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주님은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절대로 하나님은 불신앙의 사람들과 함께 일하지 않으십니다.
늘 의심하고 늘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기적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저 오직 믿음으로 나아갈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았을 때 그 즉시 병이 나았습니다. 12년 동안 그 어떤 의사도 그 어떤 약도 병을 고치지 못했는데, 믿음이 그에게 기적을 가져다준 것입니다. 그 여인이 믿음으로 옷자락을 붙잡는 순간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주님이 가다가 발을 멈추셨습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제자들이 말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밀고 뒤에서 따라오는데 누가 손을 댔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아니다. 누가 믿음으로 내 옷에 손을 댄 사람이 있다.” 그때 그 여인이 나와 엎드려 자기가 믿음으로 주님의 옷자락 손을 댄 것을 고백합니다. 그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5장 34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이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그 여인과 대화하느라 시간이 조금 지체되는 동안, 그 딸이 죽었어요. 그래서 집에서 사람들이 달려와서 말합니다. “회당장님, 따님이 죽었습니다. 예수님을 번거롭게 모시고 올 필요가 없습니다.”
마가복음 5장 35절입니다.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여러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기도할 때 더 큰 문제가 생겨날 수가 있습니다. 그때 절망하고 뒤로 물러서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할 때 응답이 더디다고 멈추면 안 됩니다. 더 큰 문제 다가왔다고 멈추면 안 됩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해서 믿음으로 모든 장애물을 걷어내고 기적을 체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포기하고 뒤로 물러서면 안 됩니다. 약속의 말씀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지 않기 때문에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큰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가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믿음의 전진
우리는 믿음의 전진을 해야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딸이 죽었다는 얘기를 들으시고도 계속 회당장 야이로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그리고 회당장의 집을 향해 가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5장 36절에,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어떤 큰 문제가 앞을 가로막고 있다고 할지라도, 어떤 중한 병이 내게 찾아와서 나를 괴롭힌다고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사람들이 와서 말합니다. “딸이 이미 죽었는데 왜 선생님을 번거롭게 모시고 갑니까? 선생님을 모시고 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발걸음을 멈추지 아니하시고 계속 옮기셔서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 죽은 딸이 있는 방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그 딸을 바라보시고 손을 내밀어 그를 붙들었습니다.
예수님이 내미는 손은 치료의 손입니다. 예수님이 내미는 손은 기적의 손입니다. 예수님이 내미는 손은 생명의 손입니다. 오늘 이 시간 그 예수님의 손을 다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사람이 손을 잡으면 그것은 잠시 위로와 위안을 줄 수 있는지 몰라도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안 됩니다. 예수님 손을 잡으셔야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손을 잡으신 다음 말씀하셨습니다. “소녀야 일어나라.”
마가복음 5장 41절입니다.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주님께서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 하시는 그 순간 그 딸이 벌떡 일어나 막 걸어 다녔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마가복음 5장 42절입니다.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여러분, 예수님의 손을 붙잡고 “소녀야 일어나라” 하실 때 그 죽었던 소녀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일어났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수많은 사람이 영적으로 죽어 있습니다. 열등감에 죽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열등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늘 어두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거의 깊은 상처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죽은 자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불안의 병에 걸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늘 불안해서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정의 어려움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죽은 상태가 되는 분들도 있습니다.
꿈과 비전이 죽어 있고, 또 나태함 속에 무사안일주의로 인해서 그 영혼이 죽어 있고, 무엇보다도 부정적인 생각으로 영혼이 죽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 영혼의 죽음을 벗어나지 않는 한은 평생 절망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영적으로 죽어 있는 모든 사람이 생명의 주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소녀야 일어나라”는 그 말씀을 듣고 우리는 일어나야 됩니다. 절망의 자리에서, 고난의 자리에서, 슬픔의 자리에서, 실패의 자리에서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에 능력이 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고 생명을 더해주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25절에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오늘 어떠한 문제 가운데 왔든지 간에, 어떠한 영적인 죽음의 자리에 있든지 간에, 이 시간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일어날 때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절망이 떠나가고, 질병이 떠나가고, 문제가 떠나가고, 우리는 승리자로 당당히 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잠에서 깨어서 믿음으로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주님은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절대긍정의 믿음으로 나아갈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14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절망에 처한 자들에게 일어나라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5장을 보면 베데스다라 하는 연못가에서 절망의 자리에 38년 동안이나 누워 있던 병자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이미 온몸이 마비되어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누워 있으면서 죽음과 방불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베데스다 못물이 끓어오를 때 뛰어 들어가면 고침을 받는데, 이미 온몸이 마비되어 누워서 남이 고침 받는 장면만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이 이미 죽은 것입니다.
38년 동안 온몸이 마비되어 누워만 있으니 그에게는 절망만 깊이 쌓여 있었습니다. 꿈도 희망도 없었습니다. 근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를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여러분, 그 자리가 어떤 자리입니까? 38년 동안 누워만 있던, 절망으로 저주로 덮여 있던 그 가장 처절한 실패의 자리인 것입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여러분은 어떠한 자리에 누워 계십니까? 어떠한 실패의 자리에 누워 계십니까? 어떠한 상처의 자리에 누워 계십니까? 어떠한 문제의 자리에 누워 계십니까?
평생을 어릴 때 받았던 상처의 자리에 누워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모에게 받았던 상처, 이웃에게 받았던 상처, 상처투성이의 자리에 누워서 38년 된 병자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시간에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그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갖고 있던 모든 문제의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탐욕의 자리, 미움의 자리, 내 마음에 불평과 원망의 자리, 이 모든 자리들을 들고 일어나서 걸어가야 합니다. 입만 열면 불평하는 사람들은 오늘 이 자리에서 불평의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기를 바랍니다. 불평의 누더기 같은 자리에 누워 있지 말고 일어나 걸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 우린 달라졌습니다. 새사람이 됐습니다. 더 이상 우린 저주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더 이상 절망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우린 새로운 사람입니다. 변화된 사람입니다. 예수님 믿었을 때 우리는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새사람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마약 중독자요 마약을 매매하던 범죄자로 감옥에 갇혀 있다가 예수님을 믿고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 걷게 된 제프 핸더슨이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나는 희망이다』라고 하는 책을 썼는데요. 현재 지금 라스베이거스 최고의 호텔 벨라지오의 최초의 흑인 총주방장이 된 유능한 요리사입니다.
제프는 온갖 범죄가 난무하는 LA 사우스센트럴 지역의 가난한 흑인 동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동네 대부분의 아버지는 다 감옥에 가 있었고 어머니들은 다 마약 중독자였습니다. 본인도 2살 되기 전에 부모님이 이혼해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랍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도둑질은 그의 일상이었습니다.
10대가 되자 마약을 사고팔기 시작했습니다. 마약상이 돼서 24살에 마약 밀거래 죄로 체포되어 19년 7개월 형을 받습니다. 젊은이가 약 20년을 감옥 안에서 지내게 된 것입니다. 그가 붙잡혀 들어갈 때 이렇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내 인생은 이제 끝장났구나.”
그가 감옥에 들어가니깐 젊고 신체가 건장한 죄수라며 “너는 교도소 주방에 가서 설거지해라.”고 설거지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설거지가 보통 설거지가 아니라 1,500명분 그릇을 하루에 세 번씩 닦아야 하니 뜨거운 물에 손을 데고 손이 퉁퉁 붓고 갈라지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의 삶은 이전보다 더 깊은 절망에 빠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주방이 그의 운명을 바꿔놓았는데, 거기서 바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절망으로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할 때, 그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 꿈을 가졌습니다. 거기서 빵 굽는 요리사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유명한 요리사가 돼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설거지를 비롯해 주방에서 온갖 잡일을 하면서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성실하게 열심히 설거지한 결과 인정을 받아 10년 만에 보호 감찰로 가석방으로 풀려나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서 설거지로부터 시작해서 본격적으로 요리사 경력을 쌓기 시작했고 점점 실력도 인정받게 됐습니다.
메리어트 호텔, 리츠 칼턴호텔, 벨 에어 호텔, 레르미타주 호텔 등의 주방을 거쳐 2001년도에 라스베이거스의 시저스 팰리스 호텔의 최초로 흑인 주방장으로 발표된 데 이어서, 2001년도에는 미국 테이스팅 협회 선정 최고의 요리사 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적으로 유명한 벨라지오 호텔 최초로 흑인 총주방장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는 인종차별과 전과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뜨리고 흑인 청소년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희망 전도사로서 일하고 있는데, 그는 자기가 감옥에 있을 때 전해 들었던 메시지를 그들에게 전해줍니다.
흑인들은 자기가 범죄자가 된 것이 사회의 잘못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총을 겨누며 죄를 지으라고 강요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선택을 한 사람은 결국 여러분 자신입니다. 자기를 희생양이라 생각하지 말고 ‘나는 희망이다.’라고 생각을 바꾸십시오.
그는 절망에 처한 청소년들에게, 범죄를 저질러서 감옥에 있는 청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도 이렇게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감옥에 있을 때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아니하고, 감옥에서 예수님을 만난 다음 자기 잘못을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하나님이 그를 높이셨습니다. 그의 책에 보면 이런 간증이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크리스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나의 성공은 모두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입니다.
제가 이분의 글에서 감동한 것은 그가 ‘내가 성공하게 된 것, 내가 요리를 잘하게 된 것, 내가 오늘 여기까지 오게 된 것 모두 다 하나님이 하셨다. 다 하나님이 하셔서 내가 오늘 여기 있게 된 것이다.’라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큰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언가가 잘 되면 ‘내가 잘나서’ 이렇게 우쭐대는 것이 사람의 모습입니다. 사업이 잘돼서 번창하면 ‘내가 역시 사업 수완이 있지.’, 공부를 잘하면 ‘내가 역시 머리가 좋아.’ 자기 자랑을 합니다.
그러나 이 흑인 주방장은 자기 자랑하지 않고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든 간에 우리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주님 앞에 나가면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여러분, 우리의 죄를 주님 앞에 다 회개하고 믿음으로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60장 1절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야훼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여러분, 절망의 자리에서 오늘 일어나기 바랍니다. 저주의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문제의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죽음의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오직 주님의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감사와 찬양을 돌리며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함께 찬송가 438장을 부르면서 말씀 마무리합니다.
<찬송가 438장(통 495): 내 영혼이 은총 입어>
1절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후렴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2절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속에 이뤄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
3절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죄와 절망에서 건져주시고 예수님 믿고 새사람 되게 해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어떤 문제가 다가와도 절망의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고 일어나서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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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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