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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가까이하라
2024.08.18 / 야고보서 4장 8~12절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야고보서 4장 8~12절)



예수님께서 너희들은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음식에 소금이 없다면 맛을 낼 수가 없는 것처럼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삶의 기쁨과 행복이 넘쳐나야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빛이 없으면 어둠 가운데서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되는데, 우리는 빛이 되어서 어둠을 밝히고 인생을 바르게 살아갈 길을 제시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1.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이를 위해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과 가까이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가까이하라고 말씀합니다. 

야고보서 4장 8절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악한 사람을 가까이하면 악한 사람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선한 사람을 가까이하면 선한 사람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누구와 가까이 지내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모습이 영향을 받고 결정지어 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가까이해주시고 놀라운 축복으로 넘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한다고 하는 말은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죄를 멀리하는 것이고, 두 마음을 품지 않고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는 것을 말씀합니다.

 세상에 나가서는 세상을 사랑하고, 예배를 드릴 때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렇게 두 마음을 품으면 안 됩니다. 오직 주님께 딱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전진할 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말씀과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기도의 사람들에게 은혜를 더해주십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목적이 이끄는 삶』이란 책을 통해서 전 세계 약 3천만 권 이상씩 팔리고,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 새들백교회 릭 워렌 목사님이 계신 데, 릭 워렌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이 시편에서 그랬듯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놓으라! 그분에게 울부짖으라! 하나님을 제외한 그 누구도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줄 수 없다.

 사도 야고보는 ‘대부분의 갈등이 기도의 부족으로 생긴다’고 지적했다.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약 4:2).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눈을 돌리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기쁘게 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리고는 그들이 우리를 실망시켰다고 화를 낸다. 그때 하나님은 ‘나에게 왜 먼저 오지 않았느냐?’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이 목사님의 말씀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가기 전에 먼저 사람들에게 뭔가를 기대하고, 내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대접받기를 원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해서 섭섭하고 화를 낸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책망하실 것입니다.

 왜 나에게 오지 않고 사람을 찾아가느냐? 나에게 오라. 나에게 엎드려 기도하라.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주실 것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사람들과의 관계에 어려움이 생겼을 때, 갈등이 생겼을 때 먼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잘못된 그 원인 가운데는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한 문제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기도 생활을 소홀히 하고 하나님 앞에 나의 문제와 소원을 아뢰지 않고, 내 뜻과 내 고집대로 모든 일을 행하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게 된 나의 죄와 허물이 있다면 엎드려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9절은 말씀합니다.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하나님께 용서받을 때 우리의 연약함이 강건하여지고, 우리의 상처가 치료함을 받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애통할 때 주님의 위로하심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4절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사람에게 위로받지 말고,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받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기를 바랍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나를 이 절망에서 건져주시옵소서. 문제 가운데서 나를 건져주시옵소서. 사람과의 사이에 이 얽히고설킨 이 모든 복잡한 문제를 주님이 해결하여 주시옵소서.’

 주 앞에 엎드려 기도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주님의 은혜로 넘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2. 주 앞에서 낮추라


그런데 이와 같은 은혜를 체험하기 위해서 성경은 ‘주님 앞에서 낮춰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낮아져야 합니다. 주님 앞에서 낮아지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야고보서 4장 10절입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인간은 교만 덩어리요, 이기주의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중요시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언제나 겸손한 자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시편 147편 6절입니다. 
야훼께서 겸손한 자들은 붙드시고 악인들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57장 15절입니다.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우리가 주 앞에 통회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주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더해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높아지려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12절입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겸손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평생 우리의 숙제입니다. 어느 날 중세 성자로 불린 어거스틴에게 한 제자가 질문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겸손이니라” 그러면 “두 번째로 중요한 가르치심은 무엇입니까?” “겸손이니라” “세 번째로 중요한 가르치심은 무엇입니까?” “그것도 겸손이니라”

그만큼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겸손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태생적으로 교만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자기밖에 모릅니다. 자기가 우주의 중심이고, 모든 것을 자기에게 맞추어야 그것이 마음이 편합니다.

 신앙생활하면서도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늘 교만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어서 “내가, 내가, 내가” 이 ‘내가’ 때문에 나 자신이 붙잡혀 사는 것입니다. ‘시험에 들었다. 상처받았다.’ 그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가 인정받지 못했다. 내가 무시당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이 알아주시면 되고, 주님이 존귀하게 여겨주시면 되는 것이지. “내가, 내가” 해서 그것이 절대로 우리에게 축복이 되지 못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자기 부인이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것이 신앙의 출발점인데, 이 출발부터 우리는 잘못되었습니다. ‘내가’를 우선시하니 사람들과 자주 부딪히게 되고, 문제가 생겨나고, 갈등이 생겨나고, 어려움에 빠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 앞에 고백해야 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우리 반에 같은 학우였던 홍문종이라고 하는 친구가 있는데, 제가 1학년 6반 반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국회의원을 하다가 지금 교도소에 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교도소에 가서 기도해 드리니까 저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내가 여기 오기 전에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나 혼자 잘난 줄 알았고, 의정부에선 아버지의 대를 이어서 나오기만 하면 국회의원 되고, 뭐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는데, 여기 들어와서 보니까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처음 교도소에 입소했을 때 그의 심정은 죽고만 싶었답니다. 국회의원으로 의정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지내다가 하루아침에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모르는데 여기 들어와서 4년 넘게 언도를 받아서 정말 그 절망의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라는 은혜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입소한 후로 성경을 두 번이나 읽고, 주님의 은혜를 많이 체험해서 이제 여기서 나가면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 것을 결심했다고 간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강제적으로 낮추셨음에도 더 큰 은혜가 그에게 임한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모양일지라도 하나님 앞에 낮아지기만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높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가는데 제자들이 자리다툼을 하는 거예요. 

야고보, 요한 어머니는 와서 치맛바람을 일으켜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높아지시면 제 아들을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우리나라의 조선시대로 말하면 우의정, 좌의정 그 자리에 좀 앉혀주십시오. 

성경에 보니까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이 분개하고 길거리에서 싸웠습니다. 아니,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데 제자들은 자리다툼을 하고 있어요. 예수님의 마음이 미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저들에게 주신 가르침이 겸손입니다. 그래서 말로 100번을 해도 못 알아들으니까 당시에 하인들이 주인이 오면 무릎을 꿇고 대야를 놓고 주인 발을 씻었는데, 예수님이 직접 대야를 가져다가 놓고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아우, 왜 그러십니까.’ 그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4절, 15절입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겸손은 우리를 하나님께 귀하게 쓰시는 일꾼으로 변화시키는 축복의 도구입니다. 

잠언 18장 12절은 말씀합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였던 야고보가 성도들에게, 특별히 교회 지도자들에게 이와 같이 권면합니다. 

야고보서 4장 10절입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가 낮아져서 나아가 서로 비방하지 말고 사랑으로 하나 되라고 권면합니다. 
 

3. 서로 비방하지 말라


서로 비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야고보 선생님이 보니까 교회 내 가장 큰 문제가 뭐냐 서로 비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4장 11절에 이렇게 권면합니다.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여기서 “형제들아”에서 형제란 믿는 그리스도인을 의미합니다. 믿는 사람끼리 비난하고 판단하고 물고 뜯으면 안 된다. 왜? 재판관은 하나님이신데 너희들이 물고 뜯으면 너희들이 하나님의 위치를 대신하는 것이라고 책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레위기 19장 18절입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야훼이니라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비방하고 다투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루는 율법을 잘 알고 있는 한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 물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613개가 되는 많은 계명을 지키고 있는데,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 주님 이 대답하십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부터 40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대한민국을 망하게 하는 고질적인 병이 바로 편 가르기와 패싸움입니다. 끝없는 비방입니다. 서로 물고 뜯고 비방과 고소와 고발이 끊이지 않는 것이 대한민국을 망하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 옆에 큰 집, 국회는 회개해야 합니다. 국민을 잘 섬기라고 뽑았는데, 저렇게 서로 물고 뜯고 싸우고 있으니, 지금 경제는 곤두박질해서 너무나 민생이 힘들고 어렵고, 이 폭염에 많은 사람이 고통을 당하고 있고, 또 홍수가 나고 여러 가지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은데, 산적한 문제는 해결하지 않은 채로 서로 싸우고만 있으니 이 얼마나 큰 문제입니까?

여러분, 여자가 임신해서 36주가 되면 뱃속의 아이는 다 큰 겁니다. 36주가 되면 그냥 꺼내 놓아도 애가 살 수 있습니다. 그런 뱃속의 아이를 낙태했습니다. 그걸 영상으로 찍어서 인터넷으로 송출했습니다.

 그런데 국회에서 낙태에 관한 법을 아직 제정하지 못해서 어떻게 처벌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살인죄로 고발하긴 했습니다만, 지금 우리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으로 하나 되어 이 세상에 사람의 죄악으로 잘못되어 가는 것들을 뿌리 뽑고 하나님의 뜻대로 바꾸어야 합니다. 

주님은 믿는 사람끼리 비방하고 판단하고 싸우라고 부른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용서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이웃 사랑의 기준은 내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신앙인 대부분이 이 하나님의 명령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많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내 이웃을, 우리 형제자매를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함부로 재판장이 되어서 남을 판단하지 말고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할 분은 우리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겸손히 엎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면 가정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교회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이 사회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 35절 말씀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고 용서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아멘’하고 “말씀대로 살아야 하겠다.”라고 결심하면서도 실제로 내 앞에 그런 일이 닥쳤을 때 행하기는 어렵습니다. 누가 나를 욕하고 피해 줬을 때 용서한다는 것은 참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자기 아들을 죽인 범인들을 용서한 귀한 장로님이 계십니다. 1958년 4월 25일 금요일 밤 9시경에 펜실베이니아대학 주변 해밀턴 거리 36가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당시 26살에 유학생인 오인호 씨는 흑인 청소년 불량배들에게 살해됩니다. 

11명의 불량 청소년들이 날카로운 철사가 달린 흉기로 그의 머리를 내려치고 콜라병을 깨뜨려 온몸을 찔렀습니다. 그대로 쓰러지고 병원에 실려 갔지만 곧 숨을 거뒀습니다.

 왜 오인호 형제를 죽였느냐? 이 청소년들이 댄스파티를 가는데 입장료가 35센트인데, 35센트를 그에게 뺏기 위해서 무참하게 찔러 죽인 것입니다.

언론이 대서특필했습니다. 이 청소년들이 35센트를 뺏으려고 사람들을 죽였다는 소식이 뉴스에 나왔습니다. 35센트 때문에 사람을 죽인 범인들의 잔혹함에 대해서 사람들은 분노했습니다.

 재판에 참석했던 모든 배심원도 극형에 처할 것을 명했습니다. 또 오 형제 장례식장에 참석한 필라델피아 시장도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에 필라델피아 시장에게 편지가 왔습니다. 오 형제의 아버지인 오기병 장로님이 한국에서 보낸 편지입니다. 오기병 장로님은 자신의 집을 팔아서 영도교회를 건축할 만큼 독실한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연탄보일러를 발명해서 성공한 기업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을 죽인 범인들에게 최대한 관대한 판결을 해줄 것과 그 범인들이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 정착할 수 있도록 가족들이 모은 돈 500불을 보내기로 했다는 내용입니다. 이런 편지가 들어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슬픔을 기독교적 소망으로 승화’시켜주신 데 감사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은 이미 천국에 갔습니다. 아들을 잃어버린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픕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슬픔을 하나님께서 위로해주셨고 소망을 주셨습니다. 우리 부부는 범행한 청소년들을 용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영혼을 위해서, 또한 절망 가운데 있을 저들의 부모들의 마음을 봐서라도 무죄로 석방해주시길 탄원합니다. 적은 돈이지만 저들의 앞날에 직업교육과 사회 적응을 위한 교육에 보태 쓰도록 500달러를 동봉하오니 귀하게 쓰여지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이 장로님의 편지가 온 미국 사회에 큰 충격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당시 언론들은 “악을 선으로 갚다(To Return Good for Evil)”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했습니다.

 자기 아들을 죽인 범인들을 용서하고 또 그 범인들의 미래를 위해서 이런 기금까지 내놓은 것에 대해 모두가 놀랐습니다. 당시 한국은 6.25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돼서 매우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미국 언론들은 당시 한국의 일용직 노동자의 하루 임금이 30센트 정도였음을 감안할 때, 500달러는 4년 5개월 치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우리가 월 300만 원의 수입이 있다고 하면 1억 6천만원 정도 되는 거금을 저들을 위해 보낸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 사회가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필라델피아 시장은 그런 유가족을 위해서 시신을 한국으로 송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모든 비용을 시측에서 부담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오 장로님은 아들을 한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거절하고 미국 땅에 묻기를 원했습니다. 미국 국민이 교육적 빈곤이 청소년 범죄의 일차적 원인임을 자각하고, 청소년 교육의 책임성을 절감하기 위해서 우리 아들은 미국에 묻히는 게 좋겠다고 해서 필라델피아 시에서는 ‘오인호 기념 장학재단’을 마련해 장학금을 모았습니다.

 이 모금을 통해서 두 명의 한국 학생이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미국장로교회에서는 오인호 씨의 가정의 이야기를 35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서 3년 동안 5000여 교회에서 방영해서 162만 달러 이상의 청소년 선도 기금을 모금하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오인호 형제의 모교인 이스튼 칼리지는 그의 가족들의 숭고한 사랑을 기념하기 위해서 ‘오인호 기념 컨퍼런스 룸’을 만들고 6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의 사랑과 헌신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자기 아들을 죽인 원수들을 용서하고 사랑의 손길을 내민 오기병 장로님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가해자의 영혼을 구원하고,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길 원합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를 안 믿어서 그런 죄를 저질렀으니 예수 믿기 원한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것이 죽임을 당한 이와 죽인 자들에게 생명을 주는 일이며, 우리를 기독교적 사랑과 친교 안에서 연결하는 길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이 정도 믿음은 돼야죠. 이 믿음의 정말 백분의 일이라도 닮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무것도 아닌 걸로 물고 뜯고 싸우고 분노하고 누가 한 대 때리면 두 대 때리려고 하고 누가 욕을 하면 배로 욕을 하고 이런 부끄러운 모습은 다 내려놓고, 이제는 사랑하고 용서하고 화목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그것 때문에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서 피 흘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주님의 마지막 명령을 우린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주님의 사랑을 마음에 품고 함께 찬송가 216장을 부르겠습니다.

<찬송가 216장(통 356장) : 성자의 귀한 몸> 

1절  성자의 귀한 몸 날 위하여
     버리신 그 사랑 고마워라
     내 머리 숙여서 주님께 비는 말
     나 무엇 주님께 바치리까

3절  주님의 십자가 나도 지고
     신실한 믿음과 마음으로
     형제의 사랑과 친절한 위로를    
     뉘게나 베풀게 하옵소서

4절  만가지 은혜를 받았으니
     내 평생 슬프나 즐거우나
     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
     주님만 위하여 늘 살겠네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용서받고 또 용서받고 또 용서받고 또 용서받아 여기까지 왔는데, 절대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지금도 마음에 미움과 섭섭함, 원망, 아픔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의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다 교만해서 그렇습니다. 주님, 겸손히 낮아져서 이제는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며 살아가는 진정한 크리스천으로 거듭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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