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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2024.07.21 / 이사야 49장 14~17절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야훼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네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 너를 헐며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이사야 49장 14~17절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타인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아이가 태어나 자라나면서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게 되고, 자라나면서 형제들에게, 친구들에게, 또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영향을 받게 됩니다. 장성해서는 한평생 살아갈 배우자를 만나서 배우자에게 영향을 받고, 직장에서는 동료와 상사로부터 영향을 받게 되고, 일생을 살아가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영향을 받으면서 자라납니다.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의 종으로부터, 또 믿음의 성도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태어나 자라나면서 좋은 부모를 만나면 좋은 영향을 받게 돼서 참으로 복되고 좋은 일인데, 만에 하나 나쁜 부모를 만나서 나쁜 영향을 받으면 그 나쁜 영향이 평생 그의 삶을 지배하기도 합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늘 술을 마시면서 어머니를 때리는 모습을 보며 자라난 아들이 ‘절대 나는 앞으로 아버지처럼 안 살겠다. 난 저런 인생 안 산다.’ 그렇게 아버지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미워했는데 결혼해서 어느 날 자기가 술에 취해서 부인을 때리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만큼 나쁜 영향은 그의 영혼 깊이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예수님이 내 마음에 주인이 되어주셔서 하나님 자녀로 신분이 바뀌게 되고, 이 같은 잘못된 옛 사람의 모습을 다 내버리는 것입니다.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 실패의 경험, 나를 상처 입혔던 것,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모든 과거의 기억이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 이전 것으로 다 지나가 버리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위대한 선언이 나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할렐루야! 

여러분,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간 것입니다. 더 이상 과거의 상처, 절망, 부정적인 모습에 사로잡혀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 이후부터 세상 사람들이 어떠한 부정적인 말을 내게 쏟아도 눈 하나 깜짝하지 말고 신경 쓰지 말고 주님만 바라보고 나가기를 바랍니다. 과거의 상처, 실패의 경험, 어두웠던 그림자들은 다 내던져버리고, 늘 약속의 말씀 붙잡고 기도하면서 마음에 기쁨과 평안함을 가지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가길 바랍니다. 

이사야 49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셔서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존귀한 종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셨다고 말씀합니다. 

이사야 49장 5절입니다. 
이제 야훼께서 말씀하시나니 그는 태에서부터 나를 그의 종으로 지으신 이시요 야곱을 그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는 이시니 이스라엘이 그에게로 모이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야훼 보시기에 영화롭게 되었으며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는 이미 영화롭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힘이 되시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이 내게 뭐라 말씀하시는지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부질없는 얘기에 귀 기울이지 말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 음성 앞에 늘 결단하고 주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우리 모두를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특별히 고난 당하는 자를 불쌍히 보시고 품에 안으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1.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성경은 고난 당한 자를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신다고 말씀합니다. 

이사야 49장 13절입니다.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야훼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고난을 당할 때 때때로 우리는 ‘나는 혼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기억하기 바랍니다. 고난은 축복의 전주곡입니다.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 자라면서 잔병치레를 합니다. 조금만 날씨가 추워지면 감기에 걸리고, 배탈도 잘 나고, 그렇게 잔병치레하면서 장성한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신앙인도 크고 작은 많은 고난을 통해서 영적으로 성숙한 거인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71절에 말씀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우리의 유익이 됩니다. 그때는 힘들고 어렵고 아프고 괴롭지만 그 고난을 이겨나가고 또 이겨나가면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또 자라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주님의 일꾼으로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고난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드는 훈련 과정입니다. 축복의 도구입니다. 교만한 나를 깨뜨려서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고난의 광야에서 주님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고난의 광야에서 주님의 긍휼하심을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절망 가운데 그냥 홀로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어머니가 갓난아이를 품고 돌보듯이 우리를 그의 품에 안으시고 돌보시는 것입니다. 

성경 이사야 49장 14절, 15절은 말씀합니다.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야훼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우리를 아시고 우리를 긍휼히 보시고 우리를 내 모습 이대로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 13절, 14절입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야훼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여기 103편 14절에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신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사소한 일에 상처받고 무너지는 우리의 모습을 아십니다. 우리가 먼지 같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주님이 아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아시고 있는 모습 그대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품으시는 사랑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축복의 하나님, 기적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2. 나를 가까이 하시는 하나님


그런데 오늘 성경 말씀 보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놓으셨대요. 가장 가까운 곳에 우리를 두시고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나를 가까이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이사야 49장 16절 말씀합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 손바닥에 새겼고, 우리의 성벽이 하나님 앞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손바닥은 언제나 펴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이 우리를 가까이하고 계시고 항상 함께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는 절대 소홀히 여김을 받거나 무시당할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손바닥에 우리를 새겨 놓았다 할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시는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을 때 예루살렘의 성벽이 다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벽이 둘러싸고 있는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가장 존귀한 자리입니다.

그런데 성벽이 무너져버렸으니까 그 성이 보호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눈에는 우리 인간이 무너진 것 같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그런 모습인데도 무너진 벽이 다시 세워져서 견고히 되어 있는 모습으로 우리를 보신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다가오는 갖가지 고난으로 질병으로 또 모함으로 여러 가지 공격으로 우리의 성벽이 다 무너진 것 같지만 하나님은 성벽을 다시 다 세워 주셔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보호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24편 8절입니다.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야훼의 이름에 있도다

시편 121편 7절, 8절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야훼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야훼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발걸음을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함께하시고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주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가 때때로 피곤해서 쓰러지고 상처받고 쓰러지고 낙심해 쓰러졌을 때 우리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할렐루야, 우리를 회복시켜 주신 하나님에 대해서 이사야 49장 17절, 18절은 말씀합니다.
네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 너를 헐며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야훼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를 장식처럼 몸에 차며 그것을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네 자녀들이 빨리 걷는다는 말은, 빠른 발걸음을 걷는다는 그 의미는 ‘네 자녀들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서두르게 될 것이다.’ 그것은 장차 그들이 포로 생활에서 돌아와서 이스라엘의 무너진 성벽을 서둘러 재건하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느헤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 대적들이 성벽 재건을 반대하고 방해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완전히 성벽이 재건되었습니다.

느헤미야 6장 15절, 16절은 설명합니다. 
성벽 역사가 오십이 일 만인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때 우상을 숭배해서 하나님 앞에 불의하고 범죄하여 잘못된 길로 감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았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하고, 남왕국 유다는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합니다. 성벽이 무너지고 모든 것이 잿더미처럼 다 사라져버렸을 때, 저들이 포로 생활에 끌려가 눈물로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서 죄를 용서해달라고 간구했을 때, 주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들이 돌아와 성벽을 재건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무너졌다고 할지라도, 어떤 일로 상처받고 지금 낙심 가운데에 처했다고 할지라도 주님 앞에 엎드려 주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부르짖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나를 불쌍히 보셔서 나를 절망에서 일으켜 주시옵소서. 제가 주님 앞에 범죄했나이다. 기도하지 아니하고 감사하지 아니하고 주의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내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나라고 하는 우상을 섬겼습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보다 내 자리를 더 사랑하고 내 인기 명예 이것이 내 삶의 모든 것인 것처럼 살았던 나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눈물로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절망의 자리에서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큰 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의 죄와 허물을 내려놓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무너진 성벽이 재건될 것입니다. 무너졌던 가정이 회복되고 사업이 회복되고 우리 삶에 무너졌던 모든 것이 다시 정상적으로 회복되어서 이전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우리 모두 주님 앞에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1988년 하계 올림픽을 개최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온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다음 우리 대한민국에 큰 축복이 다가왔습니다. 번영이 임했습니다. 그때 우리 대한민국의 크리스천 숫자가 1,200만입니다.

물질의 풍요로움이 다가온 이후로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고 세상을 가까이했습니다. 물질의 풍요에 빠져서 열정적인 기도도 사라지고 열정적인 전도도 사라지고, 옛날처럼 열심히 예배를 못 드리고 열심히 교회 봉사하던 모습도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부흥이 멈추니까 그때로부터 많은 문제가 생겨나서 나라가 뒤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정치적으로 계속 문제가 생겨나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다가오고 동성애 물결이 파도치고 저출산으로 인구가 바닥이 되어 세계 최저의 출산국이 되어서 큰 문제와 어려움에 처하게 됐습니다. 최근에는 마약마저 들어와 활개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회개하고 영적으로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영적인 제2의 부흥의 역사를 이뤄야 할 것입니다. ‘주님, 우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물질의 우상을 섬겼습니다. 풍요의 우상을 섬겼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성이 무너졌습니다. 다시 우리를 회복시켜 주옵소서!’ 눈물로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 주님께서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가정이 회복되고 직장이 회복되고 사업이 회복되고 교회가 회복되고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화되면 하나님의 큰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하나가 변화되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을 때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 청년 바보 의사’라는 별명을 가진 안수현 선생님이 계십니다. 그는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나온 신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사랑과 친절로 환자를 돌보아서 환자들로부터 존경받는 의사였습니다.

그런 그는 아무리 바빠도 주일 예배를 빠지는 일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죽을 시간도 없다고 말하는 인턴 시절에도 주일 성수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어느 순간에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한 의사 선생님이었습니다.

늘 환자를 맞을 때면 “많이 아프세요? 빨리 치료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관심과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밤이 되면 다 잠이 들었는데 자기가 치료하는 중환자들 병실로 가서 그 침대 옆에서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환자가 이 병을 이기고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면 자는 것 같은 그 환자도 그 기도 소리를 듣고 그 옆에 자고 있던 가족들도 그 기도 소리를 듣습니다. 그래서 죽음에서 일어난 어느 할머니가 안수현 선생님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이 어린 의사가 나를 살렸습니다.” 사람들에게 감사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는 평소 자기 것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병실에 누워 있는 환자들에게 가서 찬송가 테이프를 듣게 해주고,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성경을 사서 선물로 주고, 예수님을 믿다가 낙심한 사람들에게는 기독교 신앙 서적을 사서 주었습니다.

그의 가방 속에는 항상 책과 CCM 테이프들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그의 사무실 책상 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질뿐 아니라 그는 마음으로도 진정한 사랑을 표현했던 사람입니다. 어린 환자의 집에까지 가서 동화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하반신이 마비된 청년을 위해서 휠체어를 태워 같이 공연장에 가기도 했습니다. 돈이 없는 조선족 할아버지에게는 진료비를 대신 내주기도 합니다.

이처럼 병들고 소외된 사람의 진정한 친구로서 사랑으로 섬긴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환자들뿐만이 아닙니다. 동료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방사선사, 환자들 침대 정리하는 분들, 구두 닦는 아저씨, 매점 아주머니까지 사랑을 나눈 참 귀한 분이었습니다.

2000년도 의약분업 사태로 전국 의사들이 파업했을 때 그는 혼자서 병원을 지켰습니다. 사실 그는 의사로서 거의 말단 막내였기에 윗사람 말을 들어야 하는데, ‘나는 환자를 버릴 수가 없습니다.’ 며칠씩 밤을 새워가면서 홀로 병원에 나와서 밥 먹을 시간도 없이 그냥 한 끼 햄버거로 때우면서 환자를 돌봤던 참으로 귀한 분입니다.

그가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중에 사격훈련 지원을 나가서 병사들과 함께 풀밭에서 식사했고, 거기서 유행성출혈열에 걸렸습니다. 유행성출혈열이라고 하는 것은 급성으로 발열이 되고 요통, 출혈, 일시적인 신장 기능장애가 오는 아주 치명적인 병입니다.

국군통합병원으로 옮겨진 다음 병세가 악화해서 고려대안암병원으로 옮겨가 치료받던 중, 의식을 잃고 2006년 1월 5일 밤 10시 30분 33살의 꽃다운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33살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나이인데 그는 많은 사람의 눈물 속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평소에 예수님 모습대로 살고 싶었고 예수님의 흔적을 남긴 그였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 많은 사람이 그를 기억하면서 남겨진 그의 글들이 책으로 영화로 연극으로 만들어져서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고 있고, 책을 팔아서 받은 인세들은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분이 쓴 일기를 읽는 가운데 크게 감동한 부분이 있어 소개합니다.

 “이전에도 그랬듯이 하나님은 오늘의 사건 뒤에도 계십니다. 무언가를 가르쳐주고자 하십니다. 무언가를 해결하라고 하십니다. 무릎을 꿇습니다. 무의미한 싸움을 그칩니다. 현실과 그 뒤에 계신 주님을 봅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사소한 일들에 휩쓸리게 마시고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고 나아가게 하소서. 마침내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뜻을 이루게 하소서”

어제 말씀을 정리하면서 이 말씀 하나하나가 내 마음에 닿아서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이 내용이 제 마음에 너무 깊이 부딪혀 왔습니다. ‘무릎을 꿇습니다. 무의미한 싸움을 그칩니다.’ 

여러분, 누구와 다투고 있습니까? 무의미한 싸움을 그치시기를 바랍니다. ‘현실과 그 뒤에 계신 주님을 봅니다.’ 여러분, 현재 앞에 있는 문제를 보지 말고 뒤에 계신 주님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사소한 일들에 휘둘리게 마시고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고 나아가게 하소서. 마침내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뜻을 이루게 하소서.’ 여러분, 그렇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 짧게 지나가는 인생입니다. 나를 손바닥에 새겨서 바라보고 계신 주님을 바라보고 믿음의 전진을 해 나가야지. 세상의 사소한 일들에 얽매여서 다투고 싸우면서 마음에 미움과 분노를 품고 상처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되기를 바랍니다. 

변함없이 날 사랑하시고 돌봐주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우리 함께 찬송가 393장을 부르겠습니다.

<찬송가 393장(통 447장) : 오 신실하신 주>

1절  오 신실하신 주 내 아버지여
     늘 함께 계시니 두렴없네
     그 사랑 변찮고 날 지키시며
     어제나 오늘이 한결같네

후렴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날마다 자비를 베푸시며
     일용할 모든 것 내려주시니
     오 신실하신 주 나의 구주

2절  봄철과 또 여름 가을과 겨울 
     해와 달 별들도 다 주의 것
     만물이 주 영광 드러내도다
     신실한 주 사랑 나타내네

3절  내 죄를 사하여 안위하시고 
     주 친히 오셔서 인도하네
     오늘의 힘 되고 내일의 소망
     주만이 만복을 내리시네


<기도>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는데, 우리 마음은 늘 변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늘 상처받고 무너지고 아파하고 미워하고 분노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연약함을 용서해 주옵소서. 주님은 끝없이 용서하시고 끝없이 사랑하시는데 용서하지 못하고 늘 마음에 미움과 아픔을 품고 사는 우리의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다 주님 앞에 내려놓고 주님의 사랑에 감동되어 이제는 그 사랑 속에서 사랑의 사람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주님의 자녀들로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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