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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2024.06.09 / 누가복음 11장 13절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누가복음 11장 13절)


사람은 누구나 일생을 살아가면서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때 일어난 일이 그의 일생을 좌우합니다. 세계적인 석학 이어령 박사는 미국에서 변호사로, 검사로, 나중에는 목사로 하나님 앞에 헌신한 딸 이민아 목사가 위암으로 죽어갈 때 그리고 그 딸이 자기에게 구세주 예수님을 전할 때, 그가 예수를 믿게 되고 침례를 받고 주님을 위해 살기로 결심한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딸의 죽음이 세계적인 석학 이어령 박사를 주님께로 인도한 것입니다. 그것이 그의 삶의 전환점이 되어서 그를 따랐던 수많은 학자가 놀랐습니다. ‘이어령 박사를 변화시킨 예수가 누군가?’ 특별히 일본의 많은 교수, 석학들이 이어령 교수님을 따랐는데, 그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다시 새롭게 보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그 삶의 전환점에 놀라운 일이 일생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후 기독교 역사상 가장 귀하게 크게 쓰임 받은 분이 사도 바울입니다. 신약 성경 27권 가운데 13권을 그분이 썼습니다. 

히브리서도 사도 바울의 영향 아래에 쓰인 책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쓴 책과 그의 영향 아래 쓰인 히브리서를 합하면 27권 중에서 14권이나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복음 증거자입니다. 온 아시아 지역, 지금 말하면 터키 지역에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웠고, 온 유럽 지역에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워서 유럽을 복음화한 하나님의 사도입니다. 

그의 이름이 히브리 이름으로는 사울이고, 당시 로마 사회에서 쓴 헬라의 이름은 바울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그가 전반기에는 사울이라고 하는 이름을 썼고, 후반기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바울이라는 이름을 썼습니다.

그는 한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단이라고 생각해서 교회를 무너뜨리고 예수 믿는 사람을 붙잡는 데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 그는 증인으로 현장에 있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가 대제사장으로부터 공문을 받아서 다메섹에 있는 예수 믿는 사람을 붙잡으러 가다가 빛 가운데 오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것이 그의 삶의 전환점,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사도행전 9장 3절입니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그는 거기서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우리가 일생을 사는 동안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됩니다. 

사도행전 9장 4절에,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그때 사울이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날 이후 그의 일생이 바뀌어졌습니다. 그는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던 핍박자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예수님의 충성된 일꾼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그는 바로 회당에 가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인 것을 증거했습니다. 

사도행전 9장 20절입니다.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여러분, 예수님을 만나서 여러분의 일생에 놀라운 변화와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 없이 사는 인생은 허무한 인생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걸 다 가졌다고 해도 그 마음에 공허함을 메울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예수님만이, 예수님만이 여러분의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여러분의 삶에 공허가 주님의 사랑과 기쁨으로 변화되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임하게 되는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11장 13절은 한국교회 놀라운 부흥의 시작이었던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을 가능하게 한 1903년 원산부흥운동의 주역인 하디 선교사님이 받은 말씀이고, 그 말씀을 통해서 한국의 큰 부흥이 다가온 축복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에 대해서 가르치며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1장 3절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1. 악한 인간의 모습


예수님 먼저 악한 우리 인간들의 모습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우리의 근본이 죄인입니다. 악한 자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죄 가운데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 죽어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모습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생각하는 모든 것이 악하고 늘 죄 가운데 살았기 때문에 그들을 노아 시대의 홍수로 심판하셨습니다. 

창세기 6장 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야훼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그래서 홍수로 모든 사람을 심판하셨는데 노아의 가족만 살아남았고 그 후에 다시 사람이 많아지고 번창하니까, 또 그들이 죄에 빠져서 죄를 밥 먹듯이 지으면서 죄악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한없이 교만해서 ‘우리 하나님처럼 높아지고 우리끼리 힘을 모으자.’ 그래서 쌓은 것이 바벨탑입니다. 

창세기 11장 4절입니다.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이렇게 아담으로부터 모든 인류가 죄성을 갖고 태어나 평생 죄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평생 내 속에 있는 죄의 모습과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탄식하는 장면이 로마서 7장에 나옵니다. 15절에,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7절에,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사도 바울이 외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이 죄성을 벗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죄를 이기는 방법은 내가 죽는 길밖에 없습니다. 갑자기 죽으라고 그러니까 눈이 커지시는데, 영적으로 우리 옛사람이 죽어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자기밖에 모르는 고집과 교만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아야 되는 것입니다. 옛사람을 못 박고 다시 주님의 은혜로 새 사람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옛사람에게 붙잡혀 살지 말고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날마다 주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께 구하기 위해 나아가는 자


우리는 하나님께 날마다 우리의 소원을 구하기 위해서 주님 앞에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누가복음 11장 3절은 이어서 말씀합니다.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구하는 자가 되어야 됩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밤낮 부모님에게 뭘 달라고 울고 떼를 쓰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 믿고 난 다음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될 것입니다.

‘주님 나를 도와주옵소서,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주님께 간구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고 난 다음 사도 베드로가 나와서 설교할 때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슴에 찔려서 물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37절에,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그때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우리 모두 죄와 허물투성이인 인간입니다. 죄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죄를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다윗이 범죄하고 난 다음 눈물의 기도합니다. 통렬히 자복하며 회개의 기도를 합니다. 

그는 시편 51편 9절로 11절에,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만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다윗이 죄를 짓고 난 다음 제일 두려웠던 것이 ‘주의 성령이 떠나가시면 어떡하나?’ 자신이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알기에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 것입니다. ‘주의 성령을 내게서 떠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날마다 주님 앞에 우리의 모든 죄를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회개는 철저히 돌아서는 것입니다. 돌이키는 것입니다. 잘못된 길로 가던 발걸음을 돌이키시기를 바랍니다.

늘 문제 속에 갇혀 있던 모습을 돌이키시기를 바랍니다. 애통한 마음을 가지고 회개하고 엎드려 주의 도우심을 간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에스라가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 죄에서 고백합니다. 

에스라 9장 5절로 6절에,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채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야훼를 향하여 손을 들고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그는 고백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가 너무나 많아 그 죄가 정수리로 넘치고 우리의 허물이 하늘에 비친다고 그는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의 회개와 고백이 우리의 마음속에 죄 사함과 정결한 마음, 기쁨과 평안, 자유함을 넘치게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를 악의 노예로 만들고 우리의 삶을 오염시키고 파멸로 이끌어갑니다. 죄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늘 어두운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고 마음의 기쁨과 평안함을 빼앗아 갑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길 바랍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에 이 죄가 가려졌다고 이사야 59장 1절로 2절에 말씀합니다.
야훼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죄의 문제를 해결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으로 죄 사함을 받고 자유함을 받아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하실 때 우리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가 다 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진정한 참회로 주님 앞에 나와 엎드릴 때 우리는 죄 사함을 받게 되고 죄책감에서 놓여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회개한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주님이 주님의 등 뒤에 던지신 것입니다. 주님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38장 17절입니다.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요, 용서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참된 자유함을 얻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자꾸 어두운 과거를 들춰내는 것은 마귀의 역사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한 번 회개한 죄에 대해서는 다시 기억하지 않으시는데, 마귀는 자꾸 너의 과거에 이와 같은 죄를 지었다. 이와 같은 죄를 지었다. 과거를 들춰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점치는 사람한테 가면 늘 과거에 어두운 것만 끄집어내어 말합니다. ‘너희 고모가 그 어느 때 물에 빠져 죽었지.’ 뭐 이런 얘기 한다고요. 사람 마음에 두려움을 줘서 그 사람들의 돈을 갈취하는데 여러분, 이러한 어두운 세력에 현혹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죄는 마음에 죄책감을 갖다주고 마음을 어둡게 만들고 염려하게 만들고 근심하게 만듭니다.

예수님 안에서 자유함을 받길 바랍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면 모든 흑암의 결박이 풀어져 버리고 주님의 은혜와 기쁨이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시는 국민대학교 중문학과 교수님이 계셨는데, 이분은 성격도 조용하고 소심하고 내성적인 분입니다. 부인이 계속 전도해서 교회를 나왔습니다.

 그 분이 조용기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매주 주일이면 예배의 자리에 와서 은혜받고 기쁘고 좋았는데 돌아나가는 순간부터 마음속에서 ‘너 그때 무슨 죄 지었지, 무슨 죄 지었지’라며 과거의 죄를 자꾸 마귀가 들춰냅니다. 

이분이 소심해서 과거에 자기가 방탕하게 삶을 살았던 것,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삶을 살았던 것, 그것 때문에 일주일 내내 마음이 편치가 않았습니다. 주일날 오면 얼굴이 활짝 펴지고 일주일 뒤에 또 어두워지고, 늘 어두운 그림자를 지닌채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예수 믿는 것이 너무 고통이었어요. 늘 너는 죄인이야. 너는 죄인이야. 너 그때 그런 죄지었지. 그런 죄지었지. 그러니까 이분이 성격이 소심해서 꼭 붙잡혔습니다. 그 죄를 벗어버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붙잡혀서 자유함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 로고스 교수선교회라고 교수님들 모임이 있는데 매년 여름이면 기도원에 올라가서 수련회를 합니다. 그때 제가 가서 말씀을 전할 때 “우리 하나님 앞에 회개한 자는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회개한 자는 단번에 영원히 사함을 받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때 이분이 자기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았어요. 그날 끝나고 통성기도를 하는데, 막 데굴데굴 구르면서 눈물, 콧물 흘리면서 얼마나 통곡하시는지, 그날 이후로 그는 완전히 과거의 죄에서 자유함을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그 교수님이 절 찾아와서 “목사님, 이제 더 이상 이제 과거에 붙잡혀서 살지 않습니다. 이제 저는 마음이 후련하고 평안합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어떠한 과거의 상처, 실패, 괴로움 또한 과거에 잘못한 것에 붙잡혀 있습니까? 이 시간 주님의 십자가 앞에 다 내려놓으시고 평안함을 가지고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3.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라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은 다음에 우리에게 성령 충만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성령의 은혜를 체험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1장 13절에,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지 않겠느냐” 오늘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예수를 믿을 때 우리 마음에 예수님의 영, 성령이 와 계십니다. 우리에게 회개의 영을 부으시고 성령의 은혜로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오순절에 나가서 선포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주님께 간구한 자에게 갈급한 심령에 생수가 나듯 영혼의 생수인 성령이 흘러넘쳐 나게 만들어 주십니다. 주님께서 선포하십니다. 

요한복음 7장 38절, 39절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1903년 원산에서 선교사님들이 함께 모여서 선교사님들을 위한 기도회를 가질 때 하디 선교사에게 말씀을 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선교사님에게 주어진 주제는 기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도에 대한 말씀을 읽는데 누가복음 11장 13절을 읽다가 성령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이 말씀을 읽는 가운데 본인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교만했는지 자신의 교만이 보였습니다.

 우월감, 인종차별, 또 엘리트 의식. 캐나다 명문 토론토 의과대학을 나온, 학문적으로나 또 실력으로나 아주 잘 나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에 와서 볼 때 ‘배우지도 못한 사람들, 내가 너희들 도와주러 왔다, 내가 너희를 병 고쳐주러 왔다.’ 그런 마음을 갖고 선교를 하니까 선교의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생각해보니 몇 년 동안 병 고침 받은 사람은 많은데 예수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어요. 그 모든 원인이 자기에게 있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자기 잘못을 모든 선교사님 앞에서 고백했습니다. 

“내가 교만했습니다. 내가 이 같은 잘못된 모습으로 섬기기 때문에 선교의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 말에 모든 선교사가 마음이 찔려 가슴을 치며 통회자복하고, 그래서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서 원산 일대 나아가 온 북한 지역을 변화시키고, 1906년 그가 평양에 가서 이 말씀을 전할 때 온 평양이 뒤집어졌습니다.
 그리고 일어난 것이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여러분, 성령의 은혜가 임하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를 바랍니다.

중세 성자로 불렸던 성 어거스틴은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서 부족함이 없이 자랐습니다. 17살 때 집안에서 유학을 보냅니다. 카르타고로 유학을 보내는데 카르타고 가서 혼자 있다 보니깐 이단에 빠졌어요.

 마니교라고 하는 이단에 빠져서 그가 기독교 신앙과는 전혀 다른 길로 갔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무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가서 편하게 그냥 방탕한 삶을 살다가 이방 여인과 만나서 동거하면서 아이까지 낳았습니다.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기도하는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날마다 아들이 집을 나간 그날부터 눈물로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남편은 귀족이지만 신앙이 없었고 늘 술을 좋아하고 자기 출세에만 관심을 가졌던 불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가정에서 아들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만들기 위해서 날마다 눈물로 기도합니다. 그런데 들려오는 소식은 ‘아들이 지금 이단에 빠졌습니다. 아들이 지금 방탕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라는 부정적인 소식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모니카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기도의 어머니 되길 바랍니다. 모니카는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좋으신 하나님께서 모니카의 기도를 들으셔서 13년 만에 어거스틴이 방탕하던 삶을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A.D. 384년에 그가 만 30살이 되었을 때 밀란, 지금 밀라노로 돌아옵니다. 돌아와서 그 지역에서 가장 존경받는 주의 종이었던 암브로우스의 설교를 날마다 들으면서 그가 변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밀라노의 한 정원에서 그는 그의 삶이 변화되는 극적인 체험을 합니다. 그의 고백록에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나는 여전히 죄의 노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비참함 가운데 계속 부르짖었다. ... ‘왜 나의 추한 죄들을 끝나게 하지 않으십니까?’ 나는 이렇게 자문했고 마음 속에 가장 쓰라린 슬픔을 품고 줄곧 울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가까운 집에서 나는 어린아이의 노랫소리를 들었다 ... ‘들고 읽어라, 들고 읽어라.’”

라틴어로 ‘톨레 레게, 톨레 레게’ 그런 말이 들려왔어요. 그래서 그것을 주님이 주신 음성이라고 생각해서 성경책을 탁 펼쳤는데, 로마서 13장 13절, 14절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그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는 완전히 그 순간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나는 더 읽을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문장의 끝에 이르자 그 말씀은 눈 깜짝할 사이에 나의 마음 안에 넘쳐 들어오는 신앙의 빛이 되었고, 의심의 모든 어둠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날 그의 방황이 완전히 끝나서 그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제 주님을 위해 살기로 헌신하고, 그가 서른세 살 부활절에 세례를 받고 난 다음 주의 종의 길을 가서 그가 아프리카 히포라는 곳에 가서 평생을 지내며 76세로 천국 갈 때까지 많은 신학적인 저서를 냈습니다.

 「하나님의 도성」이라고 하는 책은 중세에서 가장 귀한 신학적인 서적이 되었고, 그에 남겨진 모든 업적이 많은 제자에 의해서 계속 계승되고 중세 신학을 견고히 한 위대한 종이 되었습니다. 

그는 한때 방탕하고 버림받았던 그런 인생을 살았지만, 그가 돌이킴으로 말미암아 그가 죽고 난 다음 그의 이름 앞에 세인트, 성자라고 하는 이름을 붙여서 그는 성 어거스틴으로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회심은 하나님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주 앞에 돌이키게 되길 바랍니다. 기도의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승리의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돌이켜 하나님 앞에 붙잡혀서 위대하게 아름답게 남은 인생동안 쓰임 받는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모아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찬송가 279장을 함께 하겠습니다.

<찬송가 279장 (통 337): 인애하신 구세주여> 

1절
고생과 수고가 다 지난 후 
광명한 천국에 편히 쉴 때
주님을 모시고 나 살리니 
영원히 빛나는 영광일세

후렴  
영광일세 영광일세 
내가 누릴 영광일세
은혜로 주 얼굴 뵈옵나니 
지극한 영광 내 영광일세


<기도>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죄인 오라 하실 때 날 부르소서, 주님. 주님 뜻을 알지 못한 모든 죄를 회개합니다. 이제 남은 생,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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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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