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길을 준비하라
2023.12.03
/ 마가복음 1장 2~5절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마가복음 1장 2~5절)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마가복음 1장 2~5절을 본문으로 하여서 “주의 길을 준비하라”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예수님이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교회력에 따르면 성탄절 전 4주간을 대림절 또는 강림절로 지킵니다.
이 날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시는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기간입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 오심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침례 요한이 예수님 오시기 전에 주님의 오실 길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래서 광야에 나가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었습니다.
마가복음 1장 2~3절입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예수님 오시기 700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는 예수님 오심을 예언하면서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는 바로 침례 요한을 가리킨 것입니다. 침례 요한은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입니다. 그대로 잘 성장하면 아버지의 직분을 그냥 물려받아서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제사장의 자리에 그가 임직하게 되어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그는 그 귀한 자리, 명예, 권세, 가문, 평탄한 삶을 다 포기하고 다 내려놓고 광야로 들어가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회개를 선포했습니다. 그는 회개를 선포하며 저들에게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마가복음 1장 4절에
침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광야에 나가서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위해서 저들이 회개의 침례를 베푸는 것입니다. 침례라고 하는 말은 헬라어로 ‘메타노이아’라고 말을 하는데 삶의 방향을 180도 바꾸는 것을 말씀합니다.
※ 회개(메타노이아) : 방향을 180도 바꾸는 것
동으로 가던 사람이 서로 가는 것처럼 완전히 삶의 방향을 바꾸어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내가 잘못한 것을 뉘우치고 돌아서서 또 잘못하는 것은 그저 뉘우침이고 후회일 뿐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돌아서는 것입니다. 잘못된 모든 것을 끊어내고 정리하고 잘못된 길로 가던 것을 바른길로 가는 것이 그것이 회개입니다.
우리가 우리 삶에 이와 같은 결단이 필요합니다. 내 삶에서 내 생각이 잘못됐으면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 말이, 내 행동이 잘못됐으면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내 삶이 변화되고 하나님 앞에 내 삶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살아가도록 내 삶을 변화시키는 것, 바꾸는 것이 그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여러분 삶 가운데 진정한 회개가 임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진정한 회개가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우리에게 가져다줍니다. 우리가 주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켜 주님 앞에 주님이 인정하시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게 될 때 우리가 주님을 우리 삶 가운데 모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회개라는 것은 삶의 결단입니다. 삶의 변화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우리의 삶의 모습입니다. 침례 요한이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고집도, 교만도, 불순종도, 나의 인간적인 경험, 나의 명분, 지식도 다 내려놓아야 됩니다. 주님! 내 삶의 중심에 우리 주님이 오시옵소서. 주님이 내 삶의 주인으로 오시옵소서. 주님을 내 삶의 중심에 모셔드리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에 북한의 원산에서 큰 부흥 운동이 일어났는데 그것은 감리교 하디 선교사에 의해서 시작된 부흥 운동입니다. 캐나다 출신의 의료 선교사였던 로버트 알렉산더 하디 선교사는 캐나다의 명문인 토론토대학의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890년에 한국에 들어와서 원산과 강원도를 다니며 선교 사역을 그가 사람들에게 펼쳤는데 의사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 동안 복음을 전해도 결실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다가 한국에 와서 자기 첫째 아이, 둘째 아이가 다 풍토병으로 죽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절망만 가득하게 되었고 심지어 선교 사역에 열매도 없어 낙망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1903년에 중국에서 사역하시던 화이트 선교사님이 오셔서 “우리 선교사끼리 모여서 성경 공부와 기도회를 하자”라고 해서 선교사 기도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화이트 선교사님이 하디 선교사님에게 “우리 1시간씩 맡아서 말씀을 전해야 되는데 선교사님은 기도에 대해서 말씀을 전해주세요.” 그래서 하디 선교사가 성경을 읽으면서 기도에 대해서 말씀을 준비하다가 누가복음 11장 13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이 말씀을 읽을 때 그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성령이 임하자 그의 삶 가운데 자신의 죄가 낱낱이 보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통회자복하며 뒹굴며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님이 다 모였을 때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받은 은혜를 고백합니다.
내가 백인 문화의 우월감으로 한국 사람들을 무시하고 내가 명문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자신의 능력과 학력을 의지하고 사람들을 없이 여겼던 교만을 회개했습니다.
그가 교만을 회개하고 잘못된 모습을 회개할 때 모든 선교사가 같이 다 은혜를 받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눈물 흘리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선교사님들 앞에 회개한 것뿐만 아니라 원산의 감리교회에 나가서 일반 성도들 앞에 회개했습니다.
“제가 교만했습니다. 내가 명문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여러분들을 무시하고 여러분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눈물 흘리며 회개했을 때 막 성령이 임해갖고 온 성도가 통회자복하며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변화를 받는 놀라운 역사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3년 만에 교회가 3배로 부흥하게 되었고, 하디 선교사님은 북한 전역을 다니면서 이 회개의 메시지를 증거했습니다. 그래서 이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으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미국에 1900년 아주사 부흥이 있다고 하면, 한국에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이 있습니다. 이 대부흥운동이 온 평양을 다 뒤덮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나와서 주님 앞에 엎드려 통회자복하며 그들의 삶이 변화된 삶을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도둑질하던 사람이 도둑질하는 것을 멈추고 도둑질한 것을 가져다가 다시 주인에게 돌려주고 자기가 잘못을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온 북한 지역에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는데, 그것을 나중에 언더우드 선교사가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한국 교회의 대부흥운동, 그 출발점은 적어도 원산의 남감리교 선교사 가운데 한 사람, ‘하디의 영적 체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한 사람의 회개가 이와 같은 놀라운 부흥운동을 가져온 것입니다. 우리의 고집과 교만과 불순종을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제대로 살지 못한 것,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한 것,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 것을 철저히 회개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침례 요한은 회개의 침례를 베풀며 주님 오시기 위해서 오실 길을 바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장 3절에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바르게 하라”고 침례 요한은 외쳤습니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굽어졌던 모든 것들이 바로 펴져야 되는 것입니다. 거짓되고 교활한 마음, 교만으로 가득한 마음, 탐욕으로 가득한 마음, 위선으로 가득한 마음, 이것이 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펴져야 하는 것입니다. 삐뚤어진 마음이 바로 펴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디 있느냐? 우리 마음의 부패에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부패하니까 생각이 잘못되고 삶이 잘못되는 그런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7장 9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우리의 마음을 누가 알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불꽃과 같은 눈으로 우리의 마음을 지켜보고 계신 것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 앞에 잘못된 마음을 통회자복 해야 합니다. 마음이 굽은 사람은 매사에 부정적이고 비판적이고 모든 걸 굽어지게 보는 사람입니다.
굽어져 있기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서 무조건적으로 남을 부정적으로 보고 부정적으로 말하고 부정적으로 판단하고 그래서 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편견과 오해로 똘똘 뭉쳐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사람들을 끌어내리고 고통을 주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마음이 굽어진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누구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자기의 주장만 합니다. 자기가 옳다고만 합니다. 이런 굽어진 마음이 바로 펴져야 하는 것입니다. 굽어진 것이 바로 펴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줄 믿습니다. 굽어진 마음, 삐뚤어진 마음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려면 우리 마음이 바로 펴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정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릇이 깨끗해야 거기에 음식을 담지, 그릇에 음식 찌꺼기가 있고 곰팡이가 슬어있으면 그 그릇에 음식을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 마음이 깨끗이 비워지고 준비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철저히 깨어지고 낮아져서 바르게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어떤 사람은 회사를 경영하는데 사람들이 다 예수 믿는 사람인 것을 아는데 다른 사람보다 다른 회사보다 비교해서 월급도 적게 주고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고 너무나 힘들게 하는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말합니다. “이 사람이 믿는 예수 나는 절대 안 믿겠다.” 그러나 반면에 사장님이 독실한 크리스천인데 얼마나 사원들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그들을 사랑하는지, 한 가족처럼 지내는 분도 있습니다.
한국도자기라 하는 데는 사장님이 무차입, 그러니까 빚을 지지 않고 경영하겠다. 무감원, 들어오면 정년 될 때까지 해고하지 않겠다. 그것을 모토로 삼고 회사를 키웠는데 지금 신촌성결교회 김동수 장로님이 회장님이신데요. 이 회사에 한 번 들어오면 평생 회사를 위해 충성합니다. 본인이 싫다고 관두기 전까지 그 회사에서 그를 해고시키는 일이 없습니다. 요즘 뭐 비정규직, 정직해서 때가 되면 해고도 하고 회사가 노사가 싸우고 문을 닫고 하는 일이 생기는데 여기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온 사원이 한 가족이기 때문에 평생 동안 이 회사를 위해서 충성하고 거기 보니까 어느 한 아주머니는 평생 그 회사를 위해서 일하고 정년이 되고 난 다음 자기 딸이 또 거기 들어와서 또 대를 이어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를 통해서 사람들이 ‘야 예수를 믿으려면 저렇게 믿어야 돼.’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칭찬받는 귀한 장로님이 되신 것입니다.
마음이 바로 펴져 있으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고 칭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굽어진 삶을 살지 말고, 바르게 펴져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야곱은 한때 마음이 굽어졌던 사람입니다. 장자의 축복권을 받기 위해서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옷을 입고 들어가서 아버지가 나이가 들어 잘 보지 못하니까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대신 받았습니다.
그가 형을 피해 도망가서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도 튼튼하고 건강한 양을 자기가 가로채기 위해서 그 양들이 새끼를 밸 때는 꼭 그 양들이 있는 곳에 머물러 있게 해서 그것을 다 자기 것으로 탈취했습니다.
이렇게 교활하고 자기밖에 모르던 그 야곱이 20년 만에 돌아오다가 형이 자기를 죽이려고 군대를 들고 찾아오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가 얍복강 나루터에서 천사와 씨름하면서 깨어졌던 것입니다.
천사가 그를 쳐서 환도뼈가 부러져 평생 절며 걸을 수밖에 없는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장애인이 되어서야 그가 깨어지고 ‘하나님 나는 못합니다. 날 도와주옵소서.’ 그의 인간의 고집과 교만을 회개하고 천사를 붙잡고 ‘하나님 날 축복해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당신을 놓지 않겠습니다.’ 눈물로 기도하고 그가 거기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야곱, 사기꾼이 변하여 하나님이 인정하는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이름을 얻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굽어진 것이 바로 펴져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고집과 교만이 꺾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잘못된 마음이 꺾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바로 하나님이 인정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삶 속에 굽어진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그것을 바로 피는 그러한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이제 우리가 눈을 돌려서 우리 주위에 고통당하는 이웃을 돌아봐야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와 거주하고 있는 250만 명의 다문화 가족들이 있습니다. 또 북한에서 탈출해 온 3만 5천 명 탈북자 가족들이 있습니다. 또 홀로 아기를 낳고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 3만 5천 명이 있습니다. 또 전국 보육원 시설에서 부모 없이 외롭게 자란 고아들 18살이 되면 고아원을 나와야 되는 매년 1만 5천 명에서 2만 명 되는 젊은 우리들의 자녀들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그들을 사랑으로 돌봐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만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뭔가 주님 보시기에 주님이 기뻐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고개를 돌려서 우리 주위에 가난하고 소외되고 헐벗고 굶주리고 상처 입은 이웃을 돌봐야 하는 것입니다.
저희는 올해도 쪽방촌에 갑니다. 우리는 한국에서 가장 힘들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사는 곳입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곳의 삶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GNP가 3만 5천 달러로 세계 경제 10위까지 올라왔는데 아직도 그들은 30년 전처럼 가장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름에는 에어컨 시설이 안 돼서 그 한 평짜리 방에서 혼자 겨우 누울 수 있는 방에서 찜통 같은 데서 지내야 되고, 겨울에는 난방이 안 되어서 그냥 전기담요 하나 깔아놓고 추운 겨울을 지내야 되는 그러한 곳에 그들이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우리 주위에 가난하고 헐벗고 고통당하는 이웃을 사랑으로 돌볼 수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이것이 주님이 오실 길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모습인 줄로 믿습니다. 누가복음에는 길을 곧게 하기 위해서 골짜기가 메워지고 산들이 낮아지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3장 5절에.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여러분, 예수님을 모시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에 골짜기들이 메워져야 됩니다. 많은 사람의 마음에 상처의 깊은 골짜기가 있습니다. 자라나면서 부모에게 받은 상처가 골짜기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상처가 트라우마가 되어서 그의 삶에 기쁨이 없습니다. 그의 삶에 이 상처로 인해서 때때로 고통스러워하고 괴로워하는 그러한 모습을 우리가 자주 우리 주변에서 발견합니다.
여러분, 이 마음의 상처의 트라우마를 예수님의 사랑으로 치료받고 그 상처를 메꿔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이 그 사람들이 사람들과 부딪히고 자기의 감정을 다루지 못해서 폭발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상처는 누구나 있습니다. 부모에게 받은 상처가 누구나 있고, 학교에서 받은 친구들에게 선생님에게 받은 상처가 있습니다. 그런 상처에 사로잡혀 있으면 안 되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그 상처를 메꾸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상처를 갖고 있으면 부부 생활이 원만하지 못합니다. 그 상처를 갖고 있으면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 상처를 갖고 있으면 나와 이웃 간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합니다. 주여! 마음의 상처의 골짜기를 예수의 사랑으로 채워서 이 상처가 사라져버리게 하여주옵소서. 치료받게 하여주옵소서.
과거 실패의 상처, 배신당한 상처, 과거에 어떤 문제로 인해서 고통당한 상처를 평생 붙잡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그 상처 골짜기를 다 메꾸고 자유함을 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람들 마음 가운데 크고 작은 교만의 산들이 있습니다. 다 “나, 나, 나!” 자기 위주의 삶을 삽니다. 교만하기 때문에 남을 무시하고 남과 다툽니다. 자기주장만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모습은 첫째도 겸손이고 둘째도 겸손이고 마지막도 겸손입니다. 우리가 낮아져야 합니다. 섬겨야 합니다. 사랑해야 됩니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우리를 섬기셨는데 우리가 뭐라고 “내가, 내가!” 하면서 내 주장만 하면서 남을 무시하고 깔봅니까? 하디 선교사가 회개한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교만을 회개해야 합니다.
주여, 내가 배웠다고 해서 내가 가졌다고 해서 내가 좀 높은 위치에 있다고 해서 내가 권력층에 있다고 해서 교만했던 걸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겸손히 섬기게 하여주옵소서. 여러분 마음의 상처의 골짜기가 메꿔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마음의 교만의 산들이 낮아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마음에 평안함이 임할 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곳이 두 곳입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또 이스라엘 가자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입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저격수에서 복음 전도자가 된 타스 사다라는 분이 <용서>라고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주연이 되어서 나왔습니다. 이 영화는 16만 관객을 끌어들였던 <회복>이라는 영화 제작진이 만든 두 번째 영화인데, <용서>라고 하는 영화인데, 이스라엘과 무력 충돌이 끊이지 않는 팔레스타인 자치구 내에서 예수님을 믿고 목숨을 건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크리스천들의 처절하면서도 감동적인 그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한번 이 영화가 시간 되면 한번 여러분 영화 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거주하는 무슬림들 가운데 예수 믿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예수님 믿고 나서는 유대인들도 자기들을 공격하고 또 팔레스타인인들은 배신자라 그래서, 왜냐하면 무슬림이 예수를 믿게 되니까, 그들이 공격을 당합니다. 그래서 크리스천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죽임을 당하게 되거나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이처럼 위험한 지역에 들어가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용서>라고 하는 영화에 출연해서 자신의 삶을 간증한 타스 사다가 바로 그분 중의 한 명입니다.
그는 10살 때부터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에서 저격수로 활동했습니다. 전쟁에서뿐 아니라 이스라엘 곳곳에서 유대인들을 살해했습니다. 장갑차 위로 머리를 내민 이스라엘 병사들을 다 죽였습니다. 이스라엘을 증오하는 전형적인 팔레스타인의 투사였습니다. 거기에다가 요르단 왕세자를 암살하는 데 가담했다는 의심을 받고 테러리스트에 그의 이름이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이 가득해서 ‘민간인이든 군인이든 다 죽여야 된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기독교인도 테러의 대상이었습니다. 기독교인의 집에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총을 난사했습니다. 그는 정말 참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별명도 야자르(Jazzar), 도살자였습니다. 그러한 그가 인생의 대전환점을 맞게 된 것은 1974년 가족들의 반대로 그가 저격수 활동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이민 가게 됐던 일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아내 캐런을 만나서 결혼하여 1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레스토랑 매니저로 자리 잡았을 때 찰리 샤프라고 하는 친구가 와서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예수님을 전했을 때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기도하는데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거의 의식을 잃었는데, 한 줄기 빛이 다가왔어요. 빛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라는 말씀으로 변했어요.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예수님 제 삶에 들어오세요.”라는 말이 튀어나왔어요.
할렐루야! 이 테러리스트 살인자가 예수님 믿고 완전히 그의 삶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유대인들을 미워하고 유대인을 다 죽여야 된다고 생각했던 그 적개심이 사라지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사는 아랍 친구에게 복음을 전했다가 두들겨 맞기도 하고 또 부모에게 예수님을 믿으라는 편지를 썼다가 살해 위협을 받기도 했습니다. 편지를 보냈더니 당장 답장이 왔습니다. ‘너 미쳤구나. 즉시 이슬람교로 돌아오지 않으면, 만나는 즉시 죽여 버리겠다.’그래서 그가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니까 아버지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지금 네가 나무 십자가 쪼가리를 예배한다는 거냐! 구역질이 난다. 게다가 성부 성자 성령 세 명의 신이라니?”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나 타스는 죽음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지금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가자지구를 선교지로 택해서 그곳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곳에 들어가면 극성 무슬림들이 많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살해 대상이 되는 위험한 곳입니다. 총격전이 있는 그곳에 들어가서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합니다. 이 영화감독이 영화 제목을 <용서>라고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촬영 중에 만난 팔레스타인 크리스천들이 한결같이 자기들을 죽이고 핍박한 이스라엘 군인들과 무슬림을 용서한다고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가자 지구에 들어가서 자기들을 죽이고 있는 이스라엘 군인들도 용서하고, 또 예수님 믿는다고 자기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팔레스타인 극성 무슬림도 용서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계신 곳에 용서와 회복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계신 곳에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산들이 낮아지고 하나님의 은혜의 길이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전 세계를 다니면서 아랍인과 유대인들의 화해, 치유, 평화를 위한 사역을 전념해 오면서 1996년에는 아랍인과 유대인의 화해를 위한 ‘이스마엘에게 희망을’(Hope for Ishmael)이라고 하는 단체를 만들어서 사역을 했고, 2008년도에는 인도주의 비영리단체인 ‘소망의 씨앗’(Seed of Hope)을 설립해서 중동 단체와 개인들을 돕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나는 팔레스타인의 저격수였다』, 『마인드 오브 테러』와 같은 책을 펴내서 한때 가장 증오했던 유대인과 무슬림 모두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갈등의 원인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속에 거부하는 마음, 서로를 거부하고 거절하는 그 마음에 있다고 얘기하면서 결국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면 이 모든 문제를 해결될 것이라고 그는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중동의 문제는 예수님의 사랑 아니면 해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화해와 사랑, 용서, 평화만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UN도 어떤 정치적인 수단도 이 전쟁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용서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주의 길을 준비하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어떤 미움과 원망과 불평과 섭섭함이 있으면 다른 곳에 내려놓으시고 주님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이제 이후로는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게 하여주옵소서. 사랑과 용서의 화신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하고 또 축원합니다.
주님, 내가 죄인입니다. 날 용서하여 주옵소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인애하신 구세주여> 1절을 부르고 오늘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찬송가 279장 (통 337) : 인애하신 구세주여>
1절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가 비오니
죄인 오라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후렴 주여 주여 내가 비오니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미움과 원망, 섭섭함과 상처, 고통으로 얼룩진 저희들의 마음입니다. 고집과 교만, 불순종으로 교만의 산들이 높아져 있는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예수의 사랑으로 다 치료받게 하여주옵소서. 이 시간 이후로 미워하는 사람들을 용서하게 하여주시고, 나에게 상처 입힌 사람들을 용서하게 하여주시고, 주님이 주신 사랑과 용서의 마음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마가복음 1장 2~5절을 본문으로 하여서 “주의 길을 준비하라”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예수님이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교회력에 따르면 성탄절 전 4주간을 대림절 또는 강림절로 지킵니다.
이 날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시는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기간입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 오심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침례 요한이 예수님 오시기 전에 주님의 오실 길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래서 광야에 나가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었습니다.
마가복음 1장 2~3절입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예수님 오시기 700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는 예수님 오심을 예언하면서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는 바로 침례 요한을 가리킨 것입니다. 침례 요한은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입니다. 그대로 잘 성장하면 아버지의 직분을 그냥 물려받아서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제사장의 자리에 그가 임직하게 되어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그는 그 귀한 자리, 명예, 권세, 가문, 평탄한 삶을 다 포기하고 다 내려놓고 광야로 들어가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었습니다.
1. 회개의 침례
그는 광야에서 회개를 선포했습니다. 그는 회개를 선포하며 저들에게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마가복음 1장 4절에
침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광야에 나가서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위해서 저들이 회개의 침례를 베푸는 것입니다. 침례라고 하는 말은 헬라어로 ‘메타노이아’라고 말을 하는데 삶의 방향을 180도 바꾸는 것을 말씀합니다.
※ 회개(메타노이아) : 방향을 180도 바꾸는 것
동으로 가던 사람이 서로 가는 것처럼 완전히 삶의 방향을 바꾸어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내가 잘못한 것을 뉘우치고 돌아서서 또 잘못하는 것은 그저 뉘우침이고 후회일 뿐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돌아서는 것입니다. 잘못된 모든 것을 끊어내고 정리하고 잘못된 길로 가던 것을 바른길로 가는 것이 그것이 회개입니다.
우리가 우리 삶에 이와 같은 결단이 필요합니다. 내 삶에서 내 생각이 잘못됐으면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 말이, 내 행동이 잘못됐으면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내 삶이 변화되고 하나님 앞에 내 삶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살아가도록 내 삶을 변화시키는 것, 바꾸는 것이 그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여러분 삶 가운데 진정한 회개가 임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진정한 회개가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우리에게 가져다줍니다. 우리가 주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켜 주님 앞에 주님이 인정하시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게 될 때 우리가 주님을 우리 삶 가운데 모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회개라는 것은 삶의 결단입니다. 삶의 변화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우리의 삶의 모습입니다. 침례 요한이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고집도, 교만도, 불순종도, 나의 인간적인 경험, 나의 명분, 지식도 다 내려놓아야 됩니다. 주님! 내 삶의 중심에 우리 주님이 오시옵소서. 주님이 내 삶의 주인으로 오시옵소서. 주님을 내 삶의 중심에 모셔드리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에 북한의 원산에서 큰 부흥 운동이 일어났는데 그것은 감리교 하디 선교사에 의해서 시작된 부흥 운동입니다. 캐나다 출신의 의료 선교사였던 로버트 알렉산더 하디 선교사는 캐나다의 명문인 토론토대학의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890년에 한국에 들어와서 원산과 강원도를 다니며 선교 사역을 그가 사람들에게 펼쳤는데 의사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 동안 복음을 전해도 결실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다가 한국에 와서 자기 첫째 아이, 둘째 아이가 다 풍토병으로 죽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절망만 가득하게 되었고 심지어 선교 사역에 열매도 없어 낙망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1903년에 중국에서 사역하시던 화이트 선교사님이 오셔서 “우리 선교사끼리 모여서 성경 공부와 기도회를 하자”라고 해서 선교사 기도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화이트 선교사님이 하디 선교사님에게 “우리 1시간씩 맡아서 말씀을 전해야 되는데 선교사님은 기도에 대해서 말씀을 전해주세요.” 그래서 하디 선교사가 성경을 읽으면서 기도에 대해서 말씀을 준비하다가 누가복음 11장 13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이 말씀을 읽을 때 그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성령이 임하자 그의 삶 가운데 자신의 죄가 낱낱이 보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통회자복하며 뒹굴며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님이 다 모였을 때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받은 은혜를 고백합니다.
내가 백인 문화의 우월감으로 한국 사람들을 무시하고 내가 명문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자신의 능력과 학력을 의지하고 사람들을 없이 여겼던 교만을 회개했습니다.
그가 교만을 회개하고 잘못된 모습을 회개할 때 모든 선교사가 같이 다 은혜를 받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눈물 흘리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선교사님들 앞에 회개한 것뿐만 아니라 원산의 감리교회에 나가서 일반 성도들 앞에 회개했습니다.
“제가 교만했습니다. 내가 명문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여러분들을 무시하고 여러분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눈물 흘리며 회개했을 때 막 성령이 임해갖고 온 성도가 통회자복하며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변화를 받는 놀라운 역사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3년 만에 교회가 3배로 부흥하게 되었고, 하디 선교사님은 북한 전역을 다니면서 이 회개의 메시지를 증거했습니다. 그래서 이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으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미국에 1900년 아주사 부흥이 있다고 하면, 한국에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이 있습니다. 이 대부흥운동이 온 평양을 다 뒤덮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나와서 주님 앞에 엎드려 통회자복하며 그들의 삶이 변화된 삶을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도둑질하던 사람이 도둑질하는 것을 멈추고 도둑질한 것을 가져다가 다시 주인에게 돌려주고 자기가 잘못을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온 북한 지역에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는데, 그것을 나중에 언더우드 선교사가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한국 교회의 대부흥운동, 그 출발점은 적어도 원산의 남감리교 선교사 가운데 한 사람, ‘하디의 영적 체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한 사람의 회개가 이와 같은 놀라운 부흥운동을 가져온 것입니다. 우리의 고집과 교만과 불순종을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제대로 살지 못한 것,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한 것,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 것을 철저히 회개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2. 길을 바르게 하라
침례 요한은 회개의 침례를 베풀며 주님 오시기 위해서 오실 길을 바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장 3절에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바르게 하라”고 침례 요한은 외쳤습니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굽어졌던 모든 것들이 바로 펴져야 되는 것입니다. 거짓되고 교활한 마음, 교만으로 가득한 마음, 탐욕으로 가득한 마음, 위선으로 가득한 마음, 이것이 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펴져야 하는 것입니다. 삐뚤어진 마음이 바로 펴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디 있느냐? 우리 마음의 부패에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부패하니까 생각이 잘못되고 삶이 잘못되는 그런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7장 9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우리의 마음을 누가 알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불꽃과 같은 눈으로 우리의 마음을 지켜보고 계신 것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 앞에 잘못된 마음을 통회자복 해야 합니다. 마음이 굽은 사람은 매사에 부정적이고 비판적이고 모든 걸 굽어지게 보는 사람입니다.
굽어져 있기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서 무조건적으로 남을 부정적으로 보고 부정적으로 말하고 부정적으로 판단하고 그래서 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편견과 오해로 똘똘 뭉쳐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사람들을 끌어내리고 고통을 주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마음이 굽어진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누구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자기의 주장만 합니다. 자기가 옳다고만 합니다. 이런 굽어진 마음이 바로 펴져야 하는 것입니다. 굽어진 것이 바로 펴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줄 믿습니다. 굽어진 마음, 삐뚤어진 마음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려면 우리 마음이 바로 펴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정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릇이 깨끗해야 거기에 음식을 담지, 그릇에 음식 찌꺼기가 있고 곰팡이가 슬어있으면 그 그릇에 음식을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 마음이 깨끗이 비워지고 준비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철저히 깨어지고 낮아져서 바르게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어떤 사람은 회사를 경영하는데 사람들이 다 예수 믿는 사람인 것을 아는데 다른 사람보다 다른 회사보다 비교해서 월급도 적게 주고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고 너무나 힘들게 하는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말합니다. “이 사람이 믿는 예수 나는 절대 안 믿겠다.” 그러나 반면에 사장님이 독실한 크리스천인데 얼마나 사원들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그들을 사랑하는지, 한 가족처럼 지내는 분도 있습니다.
한국도자기라 하는 데는 사장님이 무차입, 그러니까 빚을 지지 않고 경영하겠다. 무감원, 들어오면 정년 될 때까지 해고하지 않겠다. 그것을 모토로 삼고 회사를 키웠는데 지금 신촌성결교회 김동수 장로님이 회장님이신데요. 이 회사에 한 번 들어오면 평생 회사를 위해 충성합니다. 본인이 싫다고 관두기 전까지 그 회사에서 그를 해고시키는 일이 없습니다. 요즘 뭐 비정규직, 정직해서 때가 되면 해고도 하고 회사가 노사가 싸우고 문을 닫고 하는 일이 생기는데 여기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온 사원이 한 가족이기 때문에 평생 동안 이 회사를 위해서 충성하고 거기 보니까 어느 한 아주머니는 평생 그 회사를 위해서 일하고 정년이 되고 난 다음 자기 딸이 또 거기 들어와서 또 대를 이어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를 통해서 사람들이 ‘야 예수를 믿으려면 저렇게 믿어야 돼.’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칭찬받는 귀한 장로님이 되신 것입니다.
마음이 바로 펴져 있으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고 칭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굽어진 삶을 살지 말고, 바르게 펴져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야곱은 한때 마음이 굽어졌던 사람입니다. 장자의 축복권을 받기 위해서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옷을 입고 들어가서 아버지가 나이가 들어 잘 보지 못하니까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대신 받았습니다.
그가 형을 피해 도망가서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도 튼튼하고 건강한 양을 자기가 가로채기 위해서 그 양들이 새끼를 밸 때는 꼭 그 양들이 있는 곳에 머물러 있게 해서 그것을 다 자기 것으로 탈취했습니다.
이렇게 교활하고 자기밖에 모르던 그 야곱이 20년 만에 돌아오다가 형이 자기를 죽이려고 군대를 들고 찾아오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가 얍복강 나루터에서 천사와 씨름하면서 깨어졌던 것입니다.
천사가 그를 쳐서 환도뼈가 부러져 평생 절며 걸을 수밖에 없는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장애인이 되어서야 그가 깨어지고 ‘하나님 나는 못합니다. 날 도와주옵소서.’ 그의 인간의 고집과 교만을 회개하고 천사를 붙잡고 ‘하나님 날 축복해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당신을 놓지 않겠습니다.’ 눈물로 기도하고 그가 거기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야곱, 사기꾼이 변하여 하나님이 인정하는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이름을 얻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굽어진 것이 바로 펴져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고집과 교만이 꺾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잘못된 마음이 꺾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바로 하나님이 인정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삶 속에 굽어진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그것을 바로 피는 그러한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이제 우리가 눈을 돌려서 우리 주위에 고통당하는 이웃을 돌아봐야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와 거주하고 있는 250만 명의 다문화 가족들이 있습니다. 또 북한에서 탈출해 온 3만 5천 명 탈북자 가족들이 있습니다. 또 홀로 아기를 낳고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 3만 5천 명이 있습니다. 또 전국 보육원 시설에서 부모 없이 외롭게 자란 고아들 18살이 되면 고아원을 나와야 되는 매년 1만 5천 명에서 2만 명 되는 젊은 우리들의 자녀들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그들을 사랑으로 돌봐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만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뭔가 주님 보시기에 주님이 기뻐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고개를 돌려서 우리 주위에 가난하고 소외되고 헐벗고 굶주리고 상처 입은 이웃을 돌봐야 하는 것입니다.
저희는 올해도 쪽방촌에 갑니다. 우리는 한국에서 가장 힘들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사는 곳입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곳의 삶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GNP가 3만 5천 달러로 세계 경제 10위까지 올라왔는데 아직도 그들은 30년 전처럼 가장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름에는 에어컨 시설이 안 돼서 그 한 평짜리 방에서 혼자 겨우 누울 수 있는 방에서 찜통 같은 데서 지내야 되고, 겨울에는 난방이 안 되어서 그냥 전기담요 하나 깔아놓고 추운 겨울을 지내야 되는 그러한 곳에 그들이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우리 주위에 가난하고 헐벗고 고통당하는 이웃을 사랑으로 돌볼 수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이것이 주님이 오실 길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모습인 줄로 믿습니다. 누가복음에는 길을 곧게 하기 위해서 골짜기가 메워지고 산들이 낮아지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3장 5절에.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여러분, 예수님을 모시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에 골짜기들이 메워져야 됩니다. 많은 사람의 마음에 상처의 깊은 골짜기가 있습니다. 자라나면서 부모에게 받은 상처가 골짜기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상처가 트라우마가 되어서 그의 삶에 기쁨이 없습니다. 그의 삶에 이 상처로 인해서 때때로 고통스러워하고 괴로워하는 그러한 모습을 우리가 자주 우리 주변에서 발견합니다.
여러분, 이 마음의 상처의 트라우마를 예수님의 사랑으로 치료받고 그 상처를 메꿔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이 그 사람들이 사람들과 부딪히고 자기의 감정을 다루지 못해서 폭발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상처는 누구나 있습니다. 부모에게 받은 상처가 누구나 있고, 학교에서 받은 친구들에게 선생님에게 받은 상처가 있습니다. 그런 상처에 사로잡혀 있으면 안 되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그 상처를 메꾸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상처를 갖고 있으면 부부 생활이 원만하지 못합니다. 그 상처를 갖고 있으면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 상처를 갖고 있으면 나와 이웃 간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합니다. 주여! 마음의 상처의 골짜기를 예수의 사랑으로 채워서 이 상처가 사라져버리게 하여주옵소서. 치료받게 하여주옵소서.
과거 실패의 상처, 배신당한 상처, 과거에 어떤 문제로 인해서 고통당한 상처를 평생 붙잡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그 상처 골짜기를 다 메꾸고 자유함을 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람들 마음 가운데 크고 작은 교만의 산들이 있습니다. 다 “나, 나, 나!” 자기 위주의 삶을 삽니다. 교만하기 때문에 남을 무시하고 남과 다툽니다. 자기주장만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모습은 첫째도 겸손이고 둘째도 겸손이고 마지막도 겸손입니다. 우리가 낮아져야 합니다. 섬겨야 합니다. 사랑해야 됩니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우리를 섬기셨는데 우리가 뭐라고 “내가, 내가!” 하면서 내 주장만 하면서 남을 무시하고 깔봅니까? 하디 선교사가 회개한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교만을 회개해야 합니다.
주여, 내가 배웠다고 해서 내가 가졌다고 해서 내가 좀 높은 위치에 있다고 해서 내가 권력층에 있다고 해서 교만했던 걸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겸손히 섬기게 하여주옵소서. 여러분 마음의 상처의 골짜기가 메꿔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마음의 교만의 산들이 낮아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마음에 평안함이 임할 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곳이 두 곳입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또 이스라엘 가자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입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저격수에서 복음 전도자가 된 타스 사다라는 분이 <용서>라고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주연이 되어서 나왔습니다. 이 영화는 16만 관객을 끌어들였던 <회복>이라는 영화 제작진이 만든 두 번째 영화인데, <용서>라고 하는 영화인데, 이스라엘과 무력 충돌이 끊이지 않는 팔레스타인 자치구 내에서 예수님을 믿고 목숨을 건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크리스천들의 처절하면서도 감동적인 그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한번 이 영화가 시간 되면 한번 여러분 영화 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거주하는 무슬림들 가운데 예수 믿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예수님 믿고 나서는 유대인들도 자기들을 공격하고 또 팔레스타인인들은 배신자라 그래서, 왜냐하면 무슬림이 예수를 믿게 되니까, 그들이 공격을 당합니다. 그래서 크리스천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죽임을 당하게 되거나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이처럼 위험한 지역에 들어가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용서>라고 하는 영화에 출연해서 자신의 삶을 간증한 타스 사다가 바로 그분 중의 한 명입니다.
그는 10살 때부터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에서 저격수로 활동했습니다. 전쟁에서뿐 아니라 이스라엘 곳곳에서 유대인들을 살해했습니다. 장갑차 위로 머리를 내민 이스라엘 병사들을 다 죽였습니다. 이스라엘을 증오하는 전형적인 팔레스타인의 투사였습니다. 거기에다가 요르단 왕세자를 암살하는 데 가담했다는 의심을 받고 테러리스트에 그의 이름이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이 가득해서 ‘민간인이든 군인이든 다 죽여야 된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기독교인도 테러의 대상이었습니다. 기독교인의 집에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총을 난사했습니다. 그는 정말 참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별명도 야자르(Jazzar), 도살자였습니다. 그러한 그가 인생의 대전환점을 맞게 된 것은 1974년 가족들의 반대로 그가 저격수 활동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이민 가게 됐던 일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아내 캐런을 만나서 결혼하여 1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레스토랑 매니저로 자리 잡았을 때 찰리 샤프라고 하는 친구가 와서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예수님을 전했을 때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기도하는데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거의 의식을 잃었는데, 한 줄기 빛이 다가왔어요. 빛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라는 말씀으로 변했어요.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예수님 제 삶에 들어오세요.”라는 말이 튀어나왔어요.
할렐루야! 이 테러리스트 살인자가 예수님 믿고 완전히 그의 삶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유대인들을 미워하고 유대인을 다 죽여야 된다고 생각했던 그 적개심이 사라지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사는 아랍 친구에게 복음을 전했다가 두들겨 맞기도 하고 또 부모에게 예수님을 믿으라는 편지를 썼다가 살해 위협을 받기도 했습니다. 편지를 보냈더니 당장 답장이 왔습니다. ‘너 미쳤구나. 즉시 이슬람교로 돌아오지 않으면, 만나는 즉시 죽여 버리겠다.’그래서 그가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니까 아버지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지금 네가 나무 십자가 쪼가리를 예배한다는 거냐! 구역질이 난다. 게다가 성부 성자 성령 세 명의 신이라니?”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나 타스는 죽음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지금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가자지구를 선교지로 택해서 그곳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곳에 들어가면 극성 무슬림들이 많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살해 대상이 되는 위험한 곳입니다. 총격전이 있는 그곳에 들어가서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합니다. 이 영화감독이 영화 제목을 <용서>라고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촬영 중에 만난 팔레스타인 크리스천들이 한결같이 자기들을 죽이고 핍박한 이스라엘 군인들과 무슬림을 용서한다고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가자 지구에 들어가서 자기들을 죽이고 있는 이스라엘 군인들도 용서하고, 또 예수님 믿는다고 자기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팔레스타인 극성 무슬림도 용서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계신 곳에 용서와 회복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계신 곳에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산들이 낮아지고 하나님의 은혜의 길이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전 세계를 다니면서 아랍인과 유대인들의 화해, 치유, 평화를 위한 사역을 전념해 오면서 1996년에는 아랍인과 유대인의 화해를 위한 ‘이스마엘에게 희망을’(Hope for Ishmael)이라고 하는 단체를 만들어서 사역을 했고, 2008년도에는 인도주의 비영리단체인 ‘소망의 씨앗’(Seed of Hope)을 설립해서 중동 단체와 개인들을 돕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나는 팔레스타인의 저격수였다』, 『마인드 오브 테러』와 같은 책을 펴내서 한때 가장 증오했던 유대인과 무슬림 모두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갈등의 원인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속에 거부하는 마음, 서로를 거부하고 거절하는 그 마음에 있다고 얘기하면서 결국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면 이 모든 문제를 해결될 것이라고 그는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중동의 문제는 예수님의 사랑 아니면 해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화해와 사랑, 용서, 평화만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UN도 어떤 정치적인 수단도 이 전쟁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용서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주의 길을 준비하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어떤 미움과 원망과 불평과 섭섭함이 있으면 다른 곳에 내려놓으시고 주님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이제 이후로는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게 하여주옵소서. 사랑과 용서의 화신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하고 또 축원합니다.
주님, 내가 죄인입니다. 날 용서하여 주옵소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인애하신 구세주여> 1절을 부르고 오늘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찬송가 279장 (통 337) : 인애하신 구세주여>
1절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가 비오니
죄인 오라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후렴 주여 주여 내가 비오니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미움과 원망, 섭섭함과 상처, 고통으로 얼룩진 저희들의 마음입니다. 고집과 교만, 불순종으로 교만의 산들이 높아져 있는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예수의 사랑으로 다 치료받게 하여주옵소서. 이 시간 이후로 미워하는 사람들을 용서하게 하여주시고, 나에게 상처 입힌 사람들을 용서하게 하여주시고, 주님이 주신 사랑과 용서의 마음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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