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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중에 감사
2023.11.26 / (요나 2:2, 6~9)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야훼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야훼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야훼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야훼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요나 2:2, 6~9)

오늘 여러분과 함께 요나서 2장 말씀을 가지고 ‘절망 중에 감사’,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진정한 감사는 절망 중에 드리는 감사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의 감사는 절망을 뛰어넘게 하고 환란이 변하여 축복이 되게 만들어 줍니다. 오늘의 말씀은 절망에 처한 선지자 요나가 하나님께 드린 감사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선지자 요나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너는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 

니느웨는 이스라엘의 적국인 앗수르의 수도입니다. 요나는 그 마음 가운데 ‘내가 왜 적국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되는가?’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불순종하여 정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떠났습니다. 그 결과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큰 풍랑이었습니다. 막 배가 곤두박질해서 가라앉기 직전에 ‘도대체 이 풍랑이 왜 오게 되었는가?’ 요나가 원인인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들이 요나를 바다에 던지니 다시 풍랑이 잠잠해졌습니다.

그가 바다에 던져졌을 때 하나님이 보내신 큰 물고기가 덥석 요나를 삼켰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갇혀 보니 컴컴하고 악취가 나고 그 무엇 하나 보이지 않는 그 흑암 속에서 ‘이제 난 죽었구나.’ 하는 그러한 죽음의 공포가 다가왔을 것입니다. 또 물고기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덥석 삼켰는데 이것이 들어와서 이게 영 불편하니까 막 소화 시키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 절망의 상황에서 요나가 간절히 주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1.절망 중에 드리는 기도

절망 중에 드리는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그는 절망의 뱃속에서 죽음의 공포와 함께 싸우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기적이 임하는 것입니다. 

요나서 2장 2절은 말씀합니다.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야훼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이 스올이란 죽음을 의미하는데, 내가 죽음의 뱃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우리가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할 때 주님께서 우리의 음성을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우리 영혼의 호흡입니다.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절망의 때, 고난의 때, 문제를 만났을 때, 중병에 걸렸을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눈물 뿌려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 나를 이 절망에서 건져주옵소서. 나를 살려주옵소서. 

예레미야가 감옥에 갇혔을 때에 하나님 말씀이 임했습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절망의 때, 고난의 때, 문제를 만났을 때 주님께 부르짖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르짖을 때 응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기도를 하지 아니하고 내 인간의 힘으로 해결해 보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이 사람을 만나고 저 사람을 만나면 오히려 문제는 더 커지고 그 절망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의 때에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만군의 야훼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주의 도움을 간구하는 여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위대한 하나님의 나라로 쓰임 받게 된 것은, 우리 대한민국이 갖고 있는 새벽 기도의 전통입니다.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 부흥회로부터 시작된 새벽기도의 전통이 한국교회를 이와 같은 아시아 최대 기독교 국가로 만들어 놓고, 온 세계가 부러워하는 새벽기도의 전통을 가진 나라가 된 것입니다. 지금도 매일 같이 전국의 6만 교회가 새벽 4시 반, 5시, 5시 반이면 어디선가 찬송가와 함께 새벽기도가 시작됩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가 절망을 깨우고, 문제를 깨우고, 어둠을 걷어내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가운데 들어가는 것입니다. 

새벽기도는 예수님이 친히 본을 보이신 기도입니다. 예수님이 새벽 미명에 해 뜨기 전에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저녁에 한적한 곳에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또 제자를 뽑을 때는 밤을 새우며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 한평생 기도에 힘쓰며 귀한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기 전날 밤에도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셔서 통곡하며 부르짖어 기도하셨습니다.

여러분, 기도에 힘쓰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시며 기도하는 사람을 통하여 위대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십니다. 우리의 문제는 기도가 중요한 것을 알고 기도해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알면서도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 그런 분 한 분도 안 계시겠지만 저쪽 가면 몇 사람 있을 거예요. 하루 세끼 밥 먹을 때 빼놓고 기도하지 않는 분. 근데 그것도 그나마 한 끼 건너뛰면 그나마 그 기도도 안 합니다. 제가 어느 식당에 가서 보는데 옆에 나이가 좀 드신 아주머니가 식사하러 오니까 잠깐 머리를 짚었다가 식사를 하시더라고요. 기도를 하긴 해야 되겠는데 식당에서 기도하는 것이 좀 부끄럽고 또 안 하기에는 우리 하나님 앞에 죄송하고 하니까 ‘하나님.’하고 그냥 식사를 한 것 같아요. 한 2초, 1초. 여러분 그 기도 갖고는 아무런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엎드려 부르짖어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개인의 문제, 가정의 문제, 생활의 문제, 자녀의 문제, 직장의 문제, 사업의 문제, 모든 문제를 놓고 기도하고 또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2.성전을 향해 드려진 기도

요나의 기도는 절망 속에 드린 기도였고, 성전을 향해 드린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계신 성전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성전에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은 얼마나 큰 은혜요, 축복이고 특권인지 모릅니다. 

요나서 2장 4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내가 지금 하나님의 뜻을 거역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심판받아 이 물고기 뱃속에 들어와 있지만, 내가 주님의 성전을 바라보고 기도하나이다.

성전이 다 지어졌을 때 솔로몬 왕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열왕기상 8장 30절에.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주의 성전을 향하여 간절히 기도할 때 주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달라고 그는 성전 봉헌식에서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성전을 얼마나 사모했는지 몸이 쇠약할 정도로 성전을 사모했다고 말씀합니다. 
시편 84편 1절로 4절입니다. 
만군의 야훼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야훼의 궁전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야훼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복 받은 것은 그들이 성전 중심의 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나서 전 세계로 흩어져서도 그들이 가는 곳에 어디든지 제일 먼저 그들이 한 일은 회당을 짓고 회당을 중심으로 둘러 그곳에 모여서 생활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것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예배드릴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65년의 역사를 지내오는 동안에 성령 충만한 예배가 오늘 여기까지 우리를 인도한 것입니다. 불광동에서 시작한 교회가 서대문에서 1만 명 성도들이 모여서 간절히 모여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폭포같이 쏟아졌고, 여의도로 이사 와서 우리가 1만 성도에서 78만 성도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왔는지. 여러분, 주일 예배 전에 1시간 전부터 와서 대성전 들어오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예배가 끝나면 나가는 사람 들어온 사람, 밀고 당기고 정말 정신이 없었습니다. 요즘 저렇게 밀고 당기지는 않지만 어쨌건 하나님께서 그렇게 복을 주셔서 여의도교회로 사람이 몰려오고 또 몰려오고 몰려왔던 것입니다. 구름 떼 같이 몰려와서 예배를 통해서 우리가 큰 은혜를 받고 흩어져서 한국 모든 교회에 흩어져 한국교회의 큰 부흥의 역사를 이루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를 드려야 됩니다. 예배에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예배마다 은혜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구경꾼이 되지 말고 진정한 예배자가 되어서 예배마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아서 누리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배를 사모하십시오. 일찍 마음의 준비를 하고 기도하고 나와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그날 받은 은혜를 사모하고 충만한 은혜로 넘쳐나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습관적으로 예배에 늦지 말고 늘 부지런해서 예배드리는 일만은 최선을 다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통해서 홀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 은혜가 임합니다. 축복이 임합니다. 기적이 임합니다. 우리 삶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치료와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앞에 예배드리기에 힘쓰는 주님의 일꾼들이 되어야 됩니다.


3.절망 중에 드리는 감사

나아가서 우리는 요나가 절망 중에 드린 감사의 기도를 기억해야 됩니다. 요나는 그 죽음의 자리에서 절망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요나서 2장 9절입니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야훼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요나는 죽음의 자리, 절망의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에게 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감사는 성숙한 신앙인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아직 내 신앙의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녔어도 입에 원망과 불평을 달고 살면 어떠한 복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첫째도 감사요, 둘째도 감사요, 마지막도 감사입니다. 감사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미국은 기독교 정신에 의해 세워진 나라이기 때문에 그들이 기독교 신앙에 기초하여 세워진 나라에서 영향을 받아서 그들이 범사에 감사합니다. 미국 사람들이 입에 달고 다니면서 하는 말이 “Thank you.”입니다. “Thank you. Thank you. Thank you.” 

내가 가게에 가서 물건을 사는데 내가 돈 주고 사면서도 내가 “Thank you” 합니다. 물건을 파는 사람이 “Thank you” 해야 되는데 내가 “Thank you” 하고 물건을 받아옵니다. 음식점에 가서 내가 돈을 내고 음식을 먹으면서도 음식이 오면 “Thank you” 합니다. 그 “Thank you”가 습관화되어 있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거지도 수준이 높아가지고 거지에게 달러를 1불, 2불 주면 뭐라고 그러는지 아세요? “God bless you”, “하나님이 당신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아주 수준이 높아요. 우리나라 거지가 돈을 줬을 때 “하나님이 축복을 하시길 바랍니다.” 하는 거지는 한 사람도 없더라고요. 미국 사람들은 “God bless you.” 어디 가다가 기침하면 “God bless you.” 하나님이 당신 감기 빨리 고쳐주시길 바란다고 그렇게 저들이 말을 합니다. 기독교 문화에서 그들이 몸에 밴 습관이 바로 감사하고 “God bless you.”인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 안에서 범사에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할 때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축복이 임하고 기적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신 제사가 감사의 제사입니다. 
시편 50편에 이렇게 설명합니다. 14절, 15절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할렐루야! 신촌 세브란스병원 심장 병동에 가면 누가 지었는지 모르는 무명의 시가 하나 걸려 있습니다. 이 시를 묵상하면 참 그 시는 정말 깊은 신앙을 가진 분이 드린 감사의 기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끔 고독의 수렁에 내던져 주심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주님과 가까워지는 기회입니다.
일이 계획대로 안되게 틀어주심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의 교만이 반성될 수 있습니다.
아들딸이 걱정거리가 되게 하시고,
부모와 동기가 짐으로 느껴질 때도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인간된 보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는 데 힘겨웁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눈물로서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의와 허위가 득세하는 시대에 태어난 것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주님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감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감사가 기적과 축복을 창조해냅니다. 우리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감사하지 않으니까 그만큼 우리가 하나님의 복 받을 것을 못 받고 있는 것입니다. 넘치는 감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큰 복을 받아 누리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신앙이 성숙할수록 우리는 넘치는 감사의 삶을 살게 됩니다. 안 되는 것은 잘 되게 해줄 것을 믿고 감사하고, 잘 되는 것은 잘 되는 것 때문에 감사하고, 그래서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넘치는 은혜를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가 넘쳐나는 큰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요나는 죽음의 자리, 물고기 뱃속에 있어도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 감사가 그에게 기적을 가져와서 하나님께서 그 물고기를 명하여 그를 다시 토해놓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니느웨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만을 전폭적으로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을 믿고 의지하면 다가오는 것은 실망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다 자기중심의 삶을 살기 때문에 아무리 가까웠다가도 나에게 손해가 되고 피해가 되면 피하고 돌아서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연약함이고 우리의 고집이고 우리의 불순종입니다. 철저하게 깨어지고 나서 “주님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만이 나의 모든 것 되십니다. 주님이 내게 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로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큰 축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소아마비 장애를 딛고 일어난 세계적인 수학자가 된 고등과학원 김인강 교수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기 원합니다. 그는 충남 논산군 연무읍 마전리라고 하는 한 농촌 마을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집은 너무너무 가난했습니다. 그가 2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는데 치료도 받지 못해서 그만 그때 이후로 걷지 못하고 기어 다니게 됐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걷지 못하고 기어 다니는 아이를 보면 “쯧쯧쯧, 쟤는 나중에 커서 거지밖에 될 것이 없다.”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의 집이 워낙 가난했는데 부모님은 아침 일찍부터 과수원에 나가서 일을 하고 형과 누나들은 다 학교를 가면 혼자 이 아이만 집에 컴컴한 방에 누워 있습니다. 누워서 밀려오는 외로움과 고독함 속에서 그저 먼 하늘을 보고 또 땅에 병아리들이 안타깝게 모이 쪼아 먹는 것을 보면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자기 아들이 불구여도 이 아이를 학교 다니게 하고 싶어서 9살 때 업고 학교를 갔는데 “걷지 못하는 애는 받을 수 없다.”라고 하며 학교에서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너무나 인생이 고달프고 힘드니깐 밤마다 술 먹고 들어와서 폭력을 휘두릅니다. 그리고 걷지 못하고 기어 다니는 이 아이를 보면서 소리를 쳤습니다. “어찌 너 같은 것이 태어나가지고 이렇게 날 괴롭혔냐”, “저런 쓸모없는 놈 지금 갖다 버려 당장 땅에 파묻어버려!” 소리쳤습니다. 그 말이 얼마나 마음속에 큰 상처와 고통을 가져다주는지 모릅니다. 학교도 갈 수 없었죠. 그래서 집에서 형, 누나들이 공부하는 것 어깨너머로 공부하다가 본인이 ‘이제 내가 여기 있다가는 평생 기어다니면서 거지로 살 수밖에 없구나. 홀로서기를 해야 되겠다.’ 그래서 11살 때 결심을 하고 재활원에 들어갑니다. 

재활원에 들어가서 11살짜리가 큰 결단을 하게 됩니다. ‘내가 여기서 평생 못 걸으니까 휠체어를 타고 다니느냐, 아니면 걷는 훈련을 해서 서는 훈련을 해서 목발이라도 짚고 다녀야하겠느냐. 아니다. 나는 이제 일어나서 목발이라도 짚고 걸어다녀야겠다.’ 결심하고 거기 있는 분들에게 요청했습니다. “내가 일어나는 훈련을 해야 되니까 좀 도와주세요.” 그러니까 건장한 치료사 둘이 와서 다리를 갖다가 잡아 펴는데 10년 동안 기어만 다닌 그 다리를 잡아다 우두둑 하면서 막 “아이고 사람 죽네.” 얼마나 아픈지. 안 그렇겠습니까? 10년간 굳어있는 다리를 갖다 다리를 펴 가지고 잡아당기니까. 

그런데 2년 동안 계속 다리를 잡아당기고 누르고 해가지고 2년 만에 목발을 짚고 서게 되었습니다. 말처럼 쉬웠겠습니까? 11년 동안 걷지 못하다가 굳어진 다리를 펴 가지고 그것도 뭐 다른 기술이 없잖아요. 잡아당겨서 눌러서 펴는 수밖에. 결국 그는 목발을 짚고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걷게 된 그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했는지, 대전중학교, 충남고등학교 시절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열심히 공부하고 영어방송 AFKN을 늘 청취하면서 서울대 수학과에 입학을 하여 학교를 다니게 됐습니다. 그런데 학교를 다니다 비 오는 어느 날 학교 수업 마치고 늦게 나오는데 비가 쏟아지는데 목발을 짚고 가방을 메고 뭐 우산도 쓸 수 없죠. 비를 쫄딱 맞으면서 가는데 선배 누나가 와서 보더니 그걸 보고 달려와서 우산을 씌워주면서 데려다 주면서 “예수를 믿어라.” 그럽니다. ‘내가 이렇게 저주받은 인생으로 태어났는데 하나님이 내게 무슨 도움이 되고요, 예수님이 내게 도움이 되느냐’라고 반발했지만, 그 누나의 간곡한 권유에 예수님 믿고 교회를 다니게 됐습니다. 할렐루야! 대학교 1학년부터 캠퍼스 선교단의 활동을 하면서 신앙을 키워나갑니다.

 근데 대학교 3학년 때 목발을 짚고 무거운 가방을 맨 채 많이 걷다 보니까 갈비뼈와 폐가 계속 부딪히면서 폐에 구멍이 났습니다. 의사가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곧 심장마비로 죽을 수 있다고 하니까 그때 그는 어머니랑 같이 기도원에 올라갑니다. 기도원에 올라가서 엎드려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너무 몸이 아프고 힘들어서 이렇게 원망이 터져 나왔습니다.

“하나님 왜 나한테만 이렇게 가혹하신가요? 항상 아프기만 하고. 아무 쓸모없는 나 같은 자가 살아있는 게 하나님과 무슨 상관있나요? 이것으로 족합니다. 나를 데려가 주세요.”
그는 하나님 앞에 원망과 불평을 쏟아놓았습니다. 너무 힘들고 아프니까 기도가 안 나오고 원망과 불평이 쏟아져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런 기도를 하고 있는데 뒤에서 찬송 소리가 들려옵니다.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주소서.

이 찬송을 듣는 순간 그의 마음에 큰 감동이 왔습니다. 온몸이 전율하면서 그는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해 주신 은혜가 너무 감사하고 내 모습 이대로 날 받아달라고 울고 또 울고 또 울면서 그의 자아가 다 꺾이고 ‘난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 앞에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9장 20절 말씀이 그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그날 이후로 그는 완전히 변화된 삶을 살았습니다. 전폭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한 해 동안 또 폐 수술을 받고 병원에 누워 있는데,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 그 고통 가운데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 성경 읽는 법, 고통 가운데 찬양하는 법을 그가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는 고난을 당하면서 자신이 겪은 아픔을 통해 또 다른 고통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보듬는 것이 자기가 살아야 하는 이유라는 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후 서울대 전체 차석으로 졸업한 김인강 교수는 장학금을 받아 미국 유학길에 오릅니다. 미국 버클리 대학에서 박사를 받은 후에 귀국해서 카이스트와 서울대 수학과 교수를 거쳐서 현재 고등과학원 카이스(KAIS) 교수로 활동 중입니다. 할렐루야!

자기같이 미약하고 가장 낮고 천한 자를 이렇게 귀하게 사용해 주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면서 늘 빌립보서 2장 6절로 8절 말씀을 묵상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하나님과 똑같은 분이셨는데, 자신을 가장 낮은 자리에 임하셔서 낮추셔서 오늘 우리를 구원한 것처럼 이제 나도 예수님을 본받아 겸손의 삶을 살고 섬김의 삶을 살길 원합니다.’

그래서 그가 교수로 하나님 앞에 헌신하고 있는데 40년 동안 수학계의 난제였던 ‘서스턴 가설’을 처음으로 해결해서 세계 수학자 반열에 오르게 되었고 지금도 양발에 보조기를 차고 목발을 짚어야 하는, 그래서 오래 서 있기 어려운 불편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래서 항상 기도할 수 있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내게 주어진 것을 자랑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잘났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모든 것이 은혜일 뿐이다. 학교에서 입학을 거부했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자기 주도’ 학습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불리해 보이는 것을 좋은 것으로 바꿔 주신다.

할렐루야! 고난 중에 감사하십시오. 절망 중에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김인강 교수가 큰 은혜 받은 찬송. 이 찬송을 제가 찾아보니까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이 찬송은 한 200년 전에 지어진 찬송인데 스코틀랜드의 엘리자 해밀턴이라는 분이 지은 찬송입니다. 그리고 이 곡을 붙인 것은 무디 부흥사의 동역자인 그 아이라 생키라고 하는 찬양 사역자가 지은 찬송입니다. 곡을 붙여서. 아이라생키는 약 1200편의 찬송을 작곡을 했는데요.

부흥사 무디가 어느 날 한 소녀의 간증을 했습니다.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어린 소녀가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 와서 “목사님 내가 구원의 확신을 갖기 원합니다. 예수님 믿고 올바르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 그러니까 목사님이 그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주고 기도문을 보여주면서 예수를 잘 믿으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너무 가난하고 어려운 집에서 자라서 학교를 다니지 못 해가지고 글을 읽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글을 읽지 못해요. 기도할 줄도 몰라요 (Minister, I can not read, I can not pray!). 주 예수님 내 모습 이대로 받아주세요(Lord Jesus, take me as I am.)”

이 간증을 무디 부흥사께서 성회 할 때 엘리자 해밀턴이 큰 감동을 받고 이 아이의 그 간증을 토대로 해서 가사를 지어나갔습니다. 

나 주의 도움받고자 주 예수님께 빕니다
그 구원 허락하시사 날 받아주소서

이 가사에 아이라 생키가 곡을 붙여서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감동의 찬송이 된 것입니다.

<찬송가 214장 (통 349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1절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주 예수님께 빕니다
      그 구원 허락하시사
      날 받아주소서

후렴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주소서

2절  큰 죄에 빠져 영 죽을
      날 위해 피 흘렸으니
      주 형상대로 빚으사
      날 받아주소서

3절  내 힘과 결심 약하여
      늘 깨어지기 쉬우니
      주 이름으로 구원해
      날 받아주소서

4절  내 주님 서신 발 앞에
      나 꿇어 엎드렸으니
      그 크신 역사 이루게
      날 받아주소서

우리의 손을 조용히 들고

후렴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주소서


기도드립니다.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손을 들고 내 모습 이대로 나를 받아달라고 주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찬양했습니다. 주님 우리들의 기도와 찬양을 받아주시고 내 모습 이대로 우리를 받아주시고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는 그 놀라운 일들을 아름답게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감사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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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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