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감사
2023.11.19
/ 골로새서 1:13~14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골로새서 1장 13~14절)
골로새서 1장 13~14절 말씀을 본문으로 ‘절대 감사’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한 해 동안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 놀라운 은혜에 감사해서 주님 앞에 영광 돌리는 복된 주일입니다. 한국 대부분의 교회가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지킵니다. 이것은 미국 건국의 기초를 놓은 청교도들이 처음으로 드려진 그 추수감사절 예배로부터 그 전통이 이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1620년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102명의 청교도가 메이플라워 배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당시 신대륙인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102명을 태우고 65일 동안 험난한 항해 끝에 미국에 도착하는데, 102층으로 되어 있는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이 102명이 미국에 신앙의 자유를 찾아온 것을 기념해 지은 것입니다.
그리고 저들이 65일 항해 끝에 도착한 곳이 미국 북동부 지역 플리머스라고 매사추세츠 지역에 있는 항구도시입니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먼저 하나님 앞에 감사 예배를 드리고 그다음에 한 일이 교회를 지어 건축한 것입니다. 제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 그 교회가 굳건히 서 있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힘들고 어려운 항해 속에 이곳에 와서 교회부터 먼저 짓고, 물론 교회 성도로는 당시 100명이 건너왔으니까 좌석이 100석도 되지 않는 조그만 성전이지만, 지금도 그곳에서 예배가 드려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을 세운 기초인 것입니다. 교회부터 건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그해 겨울을 지나면서 정말 얼마나 추운지 미국 북동부 플리머스 지역은 우리나라 신의주쯤 되는 곳인데 얼마나 추운지 모릅니다. 심한 식량난과 추위, 질병으로 그해 겨울을 지나면서 그들 중 절반 가까이의 인원이 세상을 떠납니다. 나머지도 질병과 굶주림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그들은 좌절하지 아니하고 원망하지 아니하고 불평하지 아니하고 열심히 주님을 섬기고 또 열심히 일을 해서 1년이 지난 후에 첫 수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사실 농사꾼이 아닙니다. 다 영국에서 지도자급으로 있던 사람들인데 신앙의 자유를 찾아와서 처음 농사를 지으려니 모든 것이 서툴렀습니다. 그때 친절한 인디언들이 와서 그들에게 농사하는 법을 가르쳐줘가지고 수확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적은 양을 수확했지만, 먼저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또한 감사 예배에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 준 인디언들을 초청해서 함께 식사를 나누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첫 번째 추수감사절 예배가 되었는데, 그 이후 이 아름다운 감사의 전통이 미국 여러 주에 전해져서 11월 셋째, 넷째 주에 추수감사 절기를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남북 전쟁이 한참이던 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11월 넷째 목요일을 추수감사 공휴일로 제정했습니다. 미국이 지키는 공휴일 중에 가장 큰 절기가 추수감사절기인데 11월 넷째 목요일, 이날 하루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보통 수, 목, 금, 토, 일, 우리나라 추석 연휴처럼 가장 큰 절기로 추수감사절을 보냅니다.
그들이 드린 이 첫 번째 추수감사절과 또 공휴일로 정해진 때의 추수감사절은 고난 중에 드려진 감사였습니다. 여러분, 감사는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드리는 감사가 진정한 감사인 것입니다. 잘될 때는 누구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 중에 문제를 만났을 때 고통 가운데 드리는 감사는 주님이 기뻐 받으시고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부어 주십니다.
청교도들은 처음 얻은 곡식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 곡식을 가지고 이웃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감사의 전통이 미국을 비롯하여 미국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인 나라마다 지켜지고 있고 그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추수감사절, 그 귀한 절기로 보내게 된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은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감사를 드리는 날입니다. 주님 앞에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담아 물질을 드리고 우리 주님 앞에 넘치는 감사를 드리는 것이 바로 추수감사절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살다 보면 늘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감사 절기는 부족한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보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은혜를 감사하고 오늘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것을 감사하고 내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고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내 귀한 자녀와 가정을 주신 것을 감사하고 내게 좋은 직장도 주시고 건강을 주신 것을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감사보다 원망과 불평이 빠릅니다. 뭐가 없으면 ‘왜 이것도 없고 이것도 없냐. 살기 힘들어죽겠다. 못 살겠다. 문제가 많다’ 늘 없는 것을 바라보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있는 것을 바라보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내게 있는 것, 작은 것에도 넘치는 감사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믿음으로 고백해야 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넘치게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주님이 주신 이 놀라운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1.흑암의 권세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
무엇보다도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우리는 감사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은 말씀합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우리 그리스도인의 본분은 감사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죄와 절망 가운데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 죽어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이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우리를 옮겨놓으시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에 대해서 우리는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됩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무조건 우리를 택해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일방적인 은혜로 우리를 택하여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에 대해 우리는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이 구원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죄와 질병, 가난과 저주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온 인류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문이 열리게 되었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우리가 값없이 선물로 받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나아가서 죄의 결과로 다가온 가난과 저주, 질병이 십자가 사건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에서 떠나게 되었고, 하나님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은혜를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지옥으로 가던 우리의 발걸음이 이제는 천국을 향해 가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은 그날부터 하늘나라 갈 때까지 입에서 감사가 그치면 안 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편 118편 1절은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야훼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함에 대해서 우리는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서 지난 한 해 동안의 감사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함께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올 365일이 감사의 날로 바뀌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호흡이 다하는 그날까지 우리가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됐기 때문에 이 감사는 절대 감사입니다. 영원한 감사입니다. 무조건 감사입니다. 한평생 감사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감사하지 아니하면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감사하지 아니하면 오히려 불평을 통해서 내 삶에 어려움만 다가옵니다. 쉽게 불평할 수가 있습니다. 쉽게 부정적인 얘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의도적으로 물리쳐야 됩니다. “불평은 물러가라! 부정적인 생각은 떠나가라!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내가 찾아서 하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바라고 불평하는 사람은 절대로 복을 받지 못합니다. 늘 문제 가운데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없는 중에도 있는 것을 감사하면 하나님이 복 위에 복을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하세요. 무조건 감사하면 하나님이 감사를 통해 우리 삶 가운데 큰 은혜와 축복을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 힘들 때 고난 중에 감사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1982년 뉴욕 마라톤에 린다 다운이라고 하는 신체장애인 여인이 마라톤 경주에 참여했습니다. 제대로 걷지 못하기 때문에 양옆에 크러치 목발을 끼고 이 마라톤에 참여를 했는데 42.195㎞ 마라톤을 경주할 때 건강한 청년들이 약 2시간 반이면 완주하는 이 거리를 12시간이나 걸려서 이 여성은 완주했습니다. 온전치 못한 몸이기 때문에 온몸을 뒤뚱거려가면서 목발을 짓고 걷고 또 걷고 걸어서 이곳에까지 왔을 때 홈에 있던 모든 관중이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했습니다. 당시 레이건 대통령이 텔레비전으로 이 광경을 보다 감동받고 직접 전화해서 격려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때 린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에게 ‘강한 의지’와 ‘노력할 수 있는 인내’, ‘크러치를 받칠 수 있는 두 겨드랑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할렐루야! 그는 온전치 못한 육신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목발을 이렇게 짚고 갈 수 있도록 튼튼한 이 겨드랑이를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두 다리를 못 쓰는 것을 불평하지 아니하고 목발을 짚고라도 걸을 수 있는 것을 감사한 이 감사가 절대 감사인 것입니다.
여러분, 없는 것을 보면 우리는 평생 불평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나는 좋은 차가 없나. 왜 나는 좋은 집이 없나. 왜 나는 좋은 옷을 못 입나.’ 이것은 늘 상대적인 비교에 따라서 오는 불평입니다. 그러나 감사는 절대 감사입니다. 이처럼 제대로 걷지 못하고 목발을 짚고 다니는 여성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데 우리가 건강한 몸을 갖고 살면서 왜 감사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도 감사요, 둘째도 감사요, 마지막도 감사인 것입니다.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서 우리를 축복의 나라로 옮겨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됩니다.
2. 사랑의 아들 나라로 옮기신 하나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의 아들 나라로 옮겨주셨습니다. 13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 우리들의 위치가 바뀐 것입니다. 흑암의 권세 가운데 있다가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위치가 바뀌어졌습니다. 신분이 바뀌어졌습니다. 죄의 노예, 저주의 노예, 절망의 노예였는데 이제는 축복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나서 우리의 운명이 바뀌어졌습니다. 여러분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복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제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전진해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낙심하고 절망하던 때는 지나갔습니다. 이전에 예수님을 믿지 않을 때 모습을 내던져버리고 이제는 기뻐하고 감사하며 주님을 찬양하며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어려움도 만납니다. 고난도 다가옵니다. 슬픔도 다가옵니다. 그러나 그러한 때 낙심하고 주저앉지 말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고 절망 중에서도 나를 붙들어주시고 나를 인도해 주신 그 놀라운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한평생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저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일생을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가 피곤하고 지쳐 쓰러졌을 때는 하나님이 우리를 안고 가시고 우리를 업고 가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많은 고난 가운데서도 영광 가운데 다가올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 전에 마지막으로 쓴 편지 디모데후서 뒷부분에 이와 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8절입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이 소망을 가지고, 천국 소망을 가지고 그는 감옥에 갇혀서도 어떤 절망에 처해 있어도 불평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갔던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2절은 말씀합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여러분, 어려움 당할 때 문제를 만났을 때 주님 앞에 감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넉넉히 어려움을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울어 보고 웃어 보니 웃는 것이 낫다’라고 우리는 한평생 주님 앞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될 것입니다.
20세기의 저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는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기쁨은 감사의 가장 단순한 형태이다.”
그렇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그 마음에 주님이 주신 은혜로 인해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정적인 사람, 원망 불평하는 사람들이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늘 세상을 삐딱하게 보고 부정적으로 말하기 때문에 그 삶에는 감사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절대 감사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면 마음에 기쁨이 ‘퐁퐁퐁’ 솟아오르듯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절대로 뒤로 물러서지 말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주님 손 꼭 붙잡고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수능 시험에도 한 학생이 수능 시험의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했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여러분 왜 그 고귀한 생명을 스스로 포기합니까? 수능이 뭐라고? 수능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옛날에 우리 정주영 회장님은 초등학교밖에 안 나왔는데도 세계적인 현대그룹을 세웠는데, 수능 시험 좀 못 봤다 잘 봤다 해서 자기 목숨을 포기하는 게 말이 됩니까? 그 용기가 있으면 그 용기 갖고 더 열심히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나아가는 우리를 보시고 우리의 앞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께 믿음으로 맡기고 나아가면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한 번의 실패는 더 나은 승리와 축복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축복의 전주곡’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물러서지 말고, 주저앉지 말고, 주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옆에서 동행하십니다.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나아가길 바랍니다. 피곤하여 지쳐 쓰러질 때 주님이 우리를 안고 가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업고 가십니다. 마침내 우리 인생의 골인 지점에 도착했을 때 주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며 품에 안으시고 온 천사들이 환영하는 찬양 소리와 함께 우리가 천국에 입성하게 될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한평생 우리를 인도하시는 놀라운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축복의 하나님, 기적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시편 48편 14절은 말씀합니다.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할렐루야!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가 죽을 때까지 우리를 인도하시리로다. 이 끝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붙들고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는 종교개혁을 일으켜서 성공했습니다. 영국의 청교도들이 이 믿음을 가지고 그 험한 항해 길을 거쳐서 미국으로 건너와 미국을 오늘날 위대한 미국으로 탄생시킨 것입니다.
65년 전, 1958년 천막교회로부터 시작된 우리 교회가 불광동 시절을 지나서 서대문 시절을 지나 오늘 여의도 시대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우리를 끝까지 보호하시고 함께하시고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21편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날마다 입으로 고백하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편 121편 1절로 8절까지 다 같이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야훼에게서로다 야훼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야훼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야훼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야훼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야훼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모든 영광 돌립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켜주십니다. 영원토록 변치 않는 약속의 하나님의 말씀에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는 감사의 종교입니다. 감사가 빠지면 우리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첫째도 감사요, 둘째도 감사, 마지막도 감사입니다. 감사는 성숙한 신앙인들의 본질입니다. 신앙인들의 그 표본적인 모습입니다. 감사는 성령 충만의 열매입니다. 여러분, 날마다 성령으로 충만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절망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하고, 죄와 사망에서 건져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오늘 이 시간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감사가 우리의 운명을 바꿔놓는 것입니다. 전 세계인들이 예수님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가장 많이 부르는 찬송 중에 하나가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이 찬송인데 이 찬송을 지은 분은 유명한 존 뉴턴 목사님이십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아주 독실한 크리스천이었고 기도하는 어머니였기 때문에 그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서 기도를 많이 했는데 그만 7살 때 폐결핵으로 돌아가셨어요. 근데 아버지는 배의 선장입니다. 14살 때부터 그 배를 타는데 그 배가 어떤 배냐 하면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붙잡아다가 유럽 시장에 노예로 파는 그런 노예 무역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버지 밑에서 자라나면서 매우 폭력적이고 방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노예 무역선의 선장이 되었는데 얼마나 잔인했던지, 노예들 사이에서 사람을 잡아먹는 사람으로 그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키면 그 즉시 총으로 쏴서 바다에다 집어던졌습니다.
그만큼 그가 포악한 삶을 살았는데 어느 날 배에 흑인들을 싣고 돌아오는데 막 배가 풍랑으로 인해서 배가 뒤집혀지기 직전이 됐습니다. ‘여기에 내가 여기서 바다에서 그냥 빠져 죽는구나. 우리 여기 있는 모든 선원이랑 저 이제 노예로 팔려갈 저들이 다 같이 물 위에 수장당하고 마는구나’ 하는 그 순간, 어릴 때 어머니의 기도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의 자비를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놈이지만, 이렇게 간구하오니 제발 불쌍히 여겨 주세요. 그러면 이제부터 새사람이 되겠습니다!”
근데 정말로 기적적으로 그 심한 풍랑이 잠잠해지면서 폭풍을 만난 지 18일째 되는 날에 무사히 모두가 구조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노예 무역선의 모든 일을 정리하고, 리버풀에서 측량사로 일하던 중에 유명한 부흥사인 조지 휫필드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감화되어 주의 종이 됐습니다.
그가 첫 번째 한 설교가 큰 감동을 주었는데, 1764년 39살에 올니 교구의 목사가 되었고, “술 취한 자, 방탕한 자들은 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로 시작되는 그의 간증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노예 제도, 노예 매매를 반대하는 존 웨슬리의 글을 읽고 죽기까지 노예 제도 반대 운동을 일으키고, 그의 영향을 받은 영국 국회의원 윌리엄 윌버포스, 이분이 150여 차례 계속 의회에 상정하고 또 상정해서 드디어 1807년 그해에, 존 뉴턴이 죽던 해인데, 영국에서 노예 거래 금지법이 통과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영국교회는 2007년도 노예무역금지법 제정 200주년을 기념하여 참회하는 귀한 예배를 드렸고, 노예상의 후손들은 아프리카를 찾아가 감비아 사람 2만 5천 명 앞에 무릎을 꿇고 선조들의 잘못을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하는 그러한 그 귀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데 이 존 뉴턴이 큰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가 300여 편의 찬송가를 지었는데, 그의 자서전과 같은 이 곡이 바로였습니다. 54살이 되던 때 그가 이 찬송의 바탕이 되는 기도문을 지었는데, 기도문의 일부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놀라우신 은혜, 아름다운 그 음성 나 같은 몹쓸 것을 구하신 은혜로다! 나 한때 잃어버린 몸, 이제는 찾은바 되었으며, 나 눈이 멀었으나 이제는 봅니다!”
이는 역사의 굴곡점이 있을 때마다 불리어졌습니다. 노예 해방 문제로 한참 심각했던 남북전쟁 때 불리어졌고, 흑인 인권운동을 벌이던 1960년대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이 특별히 ‘나는 꿈이 있습니다’ 할 그때 이 노래가 불리어졌고, 1990년 남아공 넬슨 만델라가 석방되던 날 이 가 불리어졌고, 2001년 9월 11일 9.11 테러로 뉴욕 월드 트레이드 센터 두 센터가 무너질 그때 3000명이나 희생됐는데 이 찬송가가 울려 퍼졌습니다.
82세가 되던 12월, 그는 마지막 설교에서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기억은 이제 희미해졌지만,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는 ‘두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과거에 엄청난 죄인이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럼에도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기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모두가 죄인이었다가 구원받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이 찬송 1절 가사 끝에 원문에,
(I) was blind, but now I see
나는 맹인이었지만, 지금은 눈을 떴습니다
라고 그 찬송가 가사가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영적으로 맹인이었지마는 예수님을 믿고 영의 눈을 뜨고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믿음으로 전진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평생 복 받은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찬송가 305장 (통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1절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2절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놀라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3절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4절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 하리라
아멘!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할렐루야.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한때 우리는 영적 맹인, 죄인이었지만 예수 믿고 영의 눈이 뜨여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한평생 감사하며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골로새서 1장 13~14절 말씀을 본문으로 ‘절대 감사’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한 해 동안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 놀라운 은혜에 감사해서 주님 앞에 영광 돌리는 복된 주일입니다. 한국 대부분의 교회가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지킵니다. 이것은 미국 건국의 기초를 놓은 청교도들이 처음으로 드려진 그 추수감사절 예배로부터 그 전통이 이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1620년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102명의 청교도가 메이플라워 배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당시 신대륙인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102명을 태우고 65일 동안 험난한 항해 끝에 미국에 도착하는데, 102층으로 되어 있는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이 102명이 미국에 신앙의 자유를 찾아온 것을 기념해 지은 것입니다.
그리고 저들이 65일 항해 끝에 도착한 곳이 미국 북동부 지역 플리머스라고 매사추세츠 지역에 있는 항구도시입니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먼저 하나님 앞에 감사 예배를 드리고 그다음에 한 일이 교회를 지어 건축한 것입니다. 제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 그 교회가 굳건히 서 있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힘들고 어려운 항해 속에 이곳에 와서 교회부터 먼저 짓고, 물론 교회 성도로는 당시 100명이 건너왔으니까 좌석이 100석도 되지 않는 조그만 성전이지만, 지금도 그곳에서 예배가 드려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을 세운 기초인 것입니다. 교회부터 건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그해 겨울을 지나면서 정말 얼마나 추운지 미국 북동부 플리머스 지역은 우리나라 신의주쯤 되는 곳인데 얼마나 추운지 모릅니다. 심한 식량난과 추위, 질병으로 그해 겨울을 지나면서 그들 중 절반 가까이의 인원이 세상을 떠납니다. 나머지도 질병과 굶주림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그들은 좌절하지 아니하고 원망하지 아니하고 불평하지 아니하고 열심히 주님을 섬기고 또 열심히 일을 해서 1년이 지난 후에 첫 수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사실 농사꾼이 아닙니다. 다 영국에서 지도자급으로 있던 사람들인데 신앙의 자유를 찾아와서 처음 농사를 지으려니 모든 것이 서툴렀습니다. 그때 친절한 인디언들이 와서 그들에게 농사하는 법을 가르쳐줘가지고 수확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적은 양을 수확했지만, 먼저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또한 감사 예배에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 준 인디언들을 초청해서 함께 식사를 나누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첫 번째 추수감사절 예배가 되었는데, 그 이후 이 아름다운 감사의 전통이 미국 여러 주에 전해져서 11월 셋째, 넷째 주에 추수감사 절기를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남북 전쟁이 한참이던 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11월 넷째 목요일을 추수감사 공휴일로 제정했습니다. 미국이 지키는 공휴일 중에 가장 큰 절기가 추수감사절기인데 11월 넷째 목요일, 이날 하루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보통 수, 목, 금, 토, 일, 우리나라 추석 연휴처럼 가장 큰 절기로 추수감사절을 보냅니다.
그들이 드린 이 첫 번째 추수감사절과 또 공휴일로 정해진 때의 추수감사절은 고난 중에 드려진 감사였습니다. 여러분, 감사는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드리는 감사가 진정한 감사인 것입니다. 잘될 때는 누구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 중에 문제를 만났을 때 고통 가운데 드리는 감사는 주님이 기뻐 받으시고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부어 주십니다.
청교도들은 처음 얻은 곡식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 곡식을 가지고 이웃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감사의 전통이 미국을 비롯하여 미국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인 나라마다 지켜지고 있고 그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추수감사절, 그 귀한 절기로 보내게 된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은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감사를 드리는 날입니다. 주님 앞에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담아 물질을 드리고 우리 주님 앞에 넘치는 감사를 드리는 것이 바로 추수감사절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살다 보면 늘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감사 절기는 부족한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보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은혜를 감사하고 오늘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것을 감사하고 내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고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내 귀한 자녀와 가정을 주신 것을 감사하고 내게 좋은 직장도 주시고 건강을 주신 것을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감사보다 원망과 불평이 빠릅니다. 뭐가 없으면 ‘왜 이것도 없고 이것도 없냐. 살기 힘들어죽겠다. 못 살겠다. 문제가 많다’ 늘 없는 것을 바라보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있는 것을 바라보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내게 있는 것, 작은 것에도 넘치는 감사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믿음으로 고백해야 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넘치게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주님이 주신 이 놀라운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1.흑암의 권세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
무엇보다도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우리는 감사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은 말씀합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우리 그리스도인의 본분은 감사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죄와 절망 가운데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 죽어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이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우리를 옮겨놓으시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에 대해서 우리는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됩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무조건 우리를 택해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일방적인 은혜로 우리를 택하여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에 대해 우리는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이 구원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죄와 질병, 가난과 저주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온 인류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문이 열리게 되었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우리가 값없이 선물로 받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나아가서 죄의 결과로 다가온 가난과 저주, 질병이 십자가 사건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에서 떠나게 되었고, 하나님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은혜를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지옥으로 가던 우리의 발걸음이 이제는 천국을 향해 가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은 그날부터 하늘나라 갈 때까지 입에서 감사가 그치면 안 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편 118편 1절은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야훼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함에 대해서 우리는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서 지난 한 해 동안의 감사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함께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올 365일이 감사의 날로 바뀌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호흡이 다하는 그날까지 우리가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됐기 때문에 이 감사는 절대 감사입니다. 영원한 감사입니다. 무조건 감사입니다. 한평생 감사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감사하지 아니하면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감사하지 아니하면 오히려 불평을 통해서 내 삶에 어려움만 다가옵니다. 쉽게 불평할 수가 있습니다. 쉽게 부정적인 얘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의도적으로 물리쳐야 됩니다. “불평은 물러가라! 부정적인 생각은 떠나가라!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내가 찾아서 하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바라고 불평하는 사람은 절대로 복을 받지 못합니다. 늘 문제 가운데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없는 중에도 있는 것을 감사하면 하나님이 복 위에 복을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하세요. 무조건 감사하면 하나님이 감사를 통해 우리 삶 가운데 큰 은혜와 축복을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 힘들 때 고난 중에 감사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1982년 뉴욕 마라톤에 린다 다운이라고 하는 신체장애인 여인이 마라톤 경주에 참여했습니다. 제대로 걷지 못하기 때문에 양옆에 크러치 목발을 끼고 이 마라톤에 참여를 했는데 42.195㎞ 마라톤을 경주할 때 건강한 청년들이 약 2시간 반이면 완주하는 이 거리를 12시간이나 걸려서 이 여성은 완주했습니다. 온전치 못한 몸이기 때문에 온몸을 뒤뚱거려가면서 목발을 짓고 걷고 또 걷고 걸어서 이곳에까지 왔을 때 홈에 있던 모든 관중이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했습니다. 당시 레이건 대통령이 텔레비전으로 이 광경을 보다 감동받고 직접 전화해서 격려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때 린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에게 ‘강한 의지’와 ‘노력할 수 있는 인내’, ‘크러치를 받칠 수 있는 두 겨드랑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할렐루야! 그는 온전치 못한 육신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목발을 이렇게 짚고 갈 수 있도록 튼튼한 이 겨드랑이를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두 다리를 못 쓰는 것을 불평하지 아니하고 목발을 짚고라도 걸을 수 있는 것을 감사한 이 감사가 절대 감사인 것입니다.
여러분, 없는 것을 보면 우리는 평생 불평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나는 좋은 차가 없나. 왜 나는 좋은 집이 없나. 왜 나는 좋은 옷을 못 입나.’ 이것은 늘 상대적인 비교에 따라서 오는 불평입니다. 그러나 감사는 절대 감사입니다. 이처럼 제대로 걷지 못하고 목발을 짚고 다니는 여성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데 우리가 건강한 몸을 갖고 살면서 왜 감사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도 감사요, 둘째도 감사요, 마지막도 감사인 것입니다.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서 우리를 축복의 나라로 옮겨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됩니다.
2. 사랑의 아들 나라로 옮기신 하나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의 아들 나라로 옮겨주셨습니다. 13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 우리들의 위치가 바뀐 것입니다. 흑암의 권세 가운데 있다가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위치가 바뀌어졌습니다. 신분이 바뀌어졌습니다. 죄의 노예, 저주의 노예, 절망의 노예였는데 이제는 축복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나서 우리의 운명이 바뀌어졌습니다. 여러분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복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제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전진해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낙심하고 절망하던 때는 지나갔습니다. 이전에 예수님을 믿지 않을 때 모습을 내던져버리고 이제는 기뻐하고 감사하며 주님을 찬양하며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어려움도 만납니다. 고난도 다가옵니다. 슬픔도 다가옵니다. 그러나 그러한 때 낙심하고 주저앉지 말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고 절망 중에서도 나를 붙들어주시고 나를 인도해 주신 그 놀라운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한평생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저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일생을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가 피곤하고 지쳐 쓰러졌을 때는 하나님이 우리를 안고 가시고 우리를 업고 가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많은 고난 가운데서도 영광 가운데 다가올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 전에 마지막으로 쓴 편지 디모데후서 뒷부분에 이와 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8절입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이 소망을 가지고, 천국 소망을 가지고 그는 감옥에 갇혀서도 어떤 절망에 처해 있어도 불평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갔던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2절은 말씀합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여러분, 어려움 당할 때 문제를 만났을 때 주님 앞에 감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넉넉히 어려움을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울어 보고 웃어 보니 웃는 것이 낫다’라고 우리는 한평생 주님 앞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될 것입니다.
20세기의 저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는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기쁨은 감사의 가장 단순한 형태이다.”
그렇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그 마음에 주님이 주신 은혜로 인해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정적인 사람, 원망 불평하는 사람들이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늘 세상을 삐딱하게 보고 부정적으로 말하기 때문에 그 삶에는 감사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절대 감사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면 마음에 기쁨이 ‘퐁퐁퐁’ 솟아오르듯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절대로 뒤로 물러서지 말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주님 손 꼭 붙잡고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수능 시험에도 한 학생이 수능 시험의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했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여러분 왜 그 고귀한 생명을 스스로 포기합니까? 수능이 뭐라고? 수능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옛날에 우리 정주영 회장님은 초등학교밖에 안 나왔는데도 세계적인 현대그룹을 세웠는데, 수능 시험 좀 못 봤다 잘 봤다 해서 자기 목숨을 포기하는 게 말이 됩니까? 그 용기가 있으면 그 용기 갖고 더 열심히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나아가는 우리를 보시고 우리의 앞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께 믿음으로 맡기고 나아가면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한 번의 실패는 더 나은 승리와 축복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축복의 전주곡’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물러서지 말고, 주저앉지 말고, 주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옆에서 동행하십니다.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나아가길 바랍니다. 피곤하여 지쳐 쓰러질 때 주님이 우리를 안고 가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업고 가십니다. 마침내 우리 인생의 골인 지점에 도착했을 때 주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며 품에 안으시고 온 천사들이 환영하는 찬양 소리와 함께 우리가 천국에 입성하게 될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한평생 우리를 인도하시는 놀라운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축복의 하나님, 기적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시편 48편 14절은 말씀합니다.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할렐루야!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가 죽을 때까지 우리를 인도하시리로다. 이 끝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붙들고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는 종교개혁을 일으켜서 성공했습니다. 영국의 청교도들이 이 믿음을 가지고 그 험한 항해 길을 거쳐서 미국으로 건너와 미국을 오늘날 위대한 미국으로 탄생시킨 것입니다.
65년 전, 1958년 천막교회로부터 시작된 우리 교회가 불광동 시절을 지나서 서대문 시절을 지나 오늘 여의도 시대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우리를 끝까지 보호하시고 함께하시고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21편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날마다 입으로 고백하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편 121편 1절로 8절까지 다 같이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야훼에게서로다 야훼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야훼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야훼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야훼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야훼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모든 영광 돌립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켜주십니다. 영원토록 변치 않는 약속의 하나님의 말씀에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는 감사의 종교입니다. 감사가 빠지면 우리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첫째도 감사요, 둘째도 감사, 마지막도 감사입니다. 감사는 성숙한 신앙인들의 본질입니다. 신앙인들의 그 표본적인 모습입니다. 감사는 성령 충만의 열매입니다. 여러분, 날마다 성령으로 충만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절망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하고, 죄와 사망에서 건져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오늘 이 시간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감사가 우리의 운명을 바꿔놓는 것입니다. 전 세계인들이 예수님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가장 많이 부르는 찬송 중에 하나가
어린 시절 어머니가 아주 독실한 크리스천이었고 기도하는 어머니였기 때문에 그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서 기도를 많이 했는데 그만 7살 때 폐결핵으로 돌아가셨어요. 근데 아버지는 배의 선장입니다. 14살 때부터 그 배를 타는데 그 배가 어떤 배냐 하면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붙잡아다가 유럽 시장에 노예로 파는 그런 노예 무역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버지 밑에서 자라나면서 매우 폭력적이고 방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노예 무역선의 선장이 되었는데 얼마나 잔인했던지, 노예들 사이에서 사람을 잡아먹는 사람으로 그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키면 그 즉시 총으로 쏴서 바다에다 집어던졌습니다.
그만큼 그가 포악한 삶을 살았는데 어느 날 배에 흑인들을 싣고 돌아오는데 막 배가 풍랑으로 인해서 배가 뒤집혀지기 직전이 됐습니다. ‘여기에 내가 여기서 바다에서 그냥 빠져 죽는구나. 우리 여기 있는 모든 선원이랑 저 이제 노예로 팔려갈 저들이 다 같이 물 위에 수장당하고 마는구나’ 하는 그 순간, 어릴 때 어머니의 기도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의 자비를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놈이지만, 이렇게 간구하오니 제발 불쌍히 여겨 주세요. 그러면 이제부터 새사람이 되겠습니다!”
근데 정말로 기적적으로 그 심한 풍랑이 잠잠해지면서 폭풍을 만난 지 18일째 되는 날에 무사히 모두가 구조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노예 무역선의 모든 일을 정리하고, 리버풀에서 측량사로 일하던 중에 유명한 부흥사인 조지 휫필드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감화되어 주의 종이 됐습니다.
그가 첫 번째 한 설교가 큰 감동을 주었는데, 1764년 39살에 올니 교구의 목사가 되었고, “술 취한 자, 방탕한 자들은 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로 시작되는 그의 간증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노예 제도, 노예 매매를 반대하는 존 웨슬리의 글을 읽고 죽기까지 노예 제도 반대 운동을 일으키고, 그의 영향을 받은 영국 국회의원 윌리엄 윌버포스, 이분이 150여 차례 계속 의회에 상정하고 또 상정해서 드디어 1807년 그해에, 존 뉴턴이 죽던 해인데, 영국에서 노예 거래 금지법이 통과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영국교회는 2007년도 노예무역금지법 제정 200주년을 기념하여 참회하는 귀한 예배를 드렸고, 노예상의 후손들은 아프리카를 찾아가 감비아 사람 2만 5천 명 앞에 무릎을 꿇고 선조들의 잘못을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하는 그러한 그 귀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데 이 존 뉴턴이 큰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가 300여 편의 찬송가를 지었는데, 그의 자서전과 같은 이 곡이 바로
“놀라우신 은혜, 아름다운 그 음성 나 같은 몹쓸 것을 구하신 은혜로다! 나 한때 잃어버린 몸, 이제는 찾은바 되었으며, 나 눈이 멀었으나 이제는 봅니다!”
이
82세가 되던 12월, 그는 마지막 설교에서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기억은 이제 희미해졌지만,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는 ‘두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과거에 엄청난 죄인이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럼에도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기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모두가 죄인이었다가 구원받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이 찬송 1절 가사 끝에 원문에,
(I) was blind, but now I see
나는 맹인이었지만, 지금은 눈을 떴습니다
라고 그 찬송가 가사가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영적으로 맹인이었지마는 예수님을 믿고 영의 눈을 뜨고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믿음으로 전진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평생 복 받은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찬송가 305장 (통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1절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2절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놀라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3절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4절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 하리라
아멘!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할렐루야.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한때 우리는 영적 맹인, 죄인이었지만 예수 믿고 영의 눈이 뜨여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한평생 감사하며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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