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믿음
2023.10.29
/ 창세기 22:7~12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야훼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세기 22:7~12)
오늘 창세기 22장 7절 이하의 말씀을 가지고 “아브라함의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단 한 번뿐인 인생길을 살아가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을 갖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그 삶이 죄와 절망과 파멸의 길이요, 예수님 믿고 신앙을 갖고 사는 사람들은 그 삶이 영생과 축복과 기적의 길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출발해서 믿음으로 그 신앙의 성장이 있고 믿음을 통해서 위대한 역사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아니라 결단이고 행동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배도 잘 드리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아니하고 자기 성질만 부리고 있으면 그건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보여지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보여지는 믿음을 통해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100세 때 낳은 아들을 하나님께 번제로 바치라 하는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1.아브라함의 믿음
먼저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길 원합니다.
창세기 22장 5절입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모리아 산에 도착해서 산을 오르기 전에 종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여기서 기다리라 우리가 너에게로 돌아오리라.” 여기 보니까 아브라함이 믿음의 선언을 합니다. 지금 분명히 이삭을 번제로 들이면 이삭이 죽을 터인데 “우리가 돌아오리라.”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100세 때 주셨으니 이삭을 거둬가셔도 다시 생명을 부어주셔서 살아나게 해줄 것을 아브라함은 믿었습니다.
로마서 4장 17, 18절 말씀합니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00세 때 낳은 독자를 하나님께 드리기로 한 그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믿음인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 견고한 믿음, 하나님이 도로 가져가셔도 다시 주실 것을 믿는 그 믿음을 하나님이 보시고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3일 길을 와서 이제 산에 올라가는 데 가장 마음 아픈 질문을 아들이 이삭이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삭을 죽여서 하나님께 번제로 드려야 되는 그 마음의 슬픔과 고통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데 이삭이 묻습니다.
창세기 22장 7절에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고 기록됐듯 이삭이 궁금했습니다. 떠날 때부터 ‘왜 번제에 드릴 양을 아버지가 가져가지 않으실까? 그리고 이제 번제에 쓸 나무와 불을 갖고 올라가는데 왜 정작 드릴 번제 제물이 없는가. 혹시 내가 번제 제물로 드려지는 것이 아닌가?’ 아마 그런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아버지, 여기 나무하고 불이 있는데 번제로 드릴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그때 아브라함이 믿음의 대답을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8절).
아브라함은 아들의 말에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질문은 정말 자기에게 큰 충격적인 질문이었을 것입니다. “아버지, 바칠 제물이 어디 있습니까?” “바로 네가 바칠 제물이다.” 그렇게 답을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아브라함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실 것이다.” 할렐루야.
여러분, 믿음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준비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실수하고 넘어지고 상처받고 좌절하고 무너지는 것입니다. 믿음을 보여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보이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히브리서 11장 17~19절은 설명합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기적적으로 100세에 아들을 낳게 되었는데 이 아들을 데려가셔도 다시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요, 긍정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기간이 25년이 걸려서 75세에 그가 약속받은 것을 이루었는데 다시 또 한 20여 년이 지나서 다시 한번 또 하나님이 그를 시험하신 것입니다.
2.아브라함의 결단
여기 아브라함의 결단의 모습이 나옵니다.
창세기 22장 10절 보니까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산에 올라가서 아브라함은 “아들아 하나님이 널 바치라 그랬다. 너는 하나님을 믿고 나를 믿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이삭이 그 아버지의 눈빛을 보고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고 그 앞에 순종했습니다. “예.” 이삭이 믿음이 없으면 “아버지 정신 나가셨어요?” 하며 밀치고 뛰어 내려가도 될 나이입니다. 성서학자들이 보기를 이때 이미 이삭은 20살이 넘은 나이로 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120세가 넘었고 이삭은 20세밖에 안 됐으니깐 아버지를 밀쳐내고 ‘왜 이러세요?’ 한마디만 하고 밀쳐내도 이삭을 드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순종했습니다. 칼을 들어서 묶어서 잡으려고 할 때 하나님이 그를 막으신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을 말씀합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마음에 믿었으면 믿음으로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칼을 들어 그가 아들을 죽이려고 하자 하나님의 사자가 다급하게 그를 막았습니다.
창세기 22장 12절에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제야 인정하시고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불완전한 믿음이요, 미완성의 믿음입니다. 늘 믿음이 자라고 또 자라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처음 믿었을 때 초보적인 믿음에서 우리가 10년 지나고 20년 지나고 30년 지나고 40년이 지나고 믿음이 자라고 또 자라서 성숙한 믿음이 될 때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위대한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지금 104세의 건강한 모습으로 어딜 가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강의를 하시는 김형석 교수님 말씀에 의하면 “인생은 60세에 철이 들고 70세가 돼야 그때부터 인생의 황금기가 열려서 그 맡겨진 일을 잘할 수 있다”라고 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는 이제 황금기가 열렸습니다. 여러분,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우리 인생이 계속 미완성에서 완성을 향해 나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70세쯤 돼야 철이 들고 일을 할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을 들어보면 우리가 아직 철이 없는사람에 속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기 계신 어르신들만 빼놓고요. 여러분, 믿음은 날마다 성숙되어져야 합니다. 초보적인 신앙에서 성숙한 신앙으로 변화돼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제야 인정하실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까? 25년 동안 깨어지고 또 깨어져서 100세가 돼서 아들을 주신 다음 다시 또 20여 년 동안 또 그가 연단 받고 연단 받아서 무려 45년, 한 50년이 지나고 난 다음에야 하나님이 “이제야 너의 믿음을 내가 인정하겠다.”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하나님께로부터 “너의 신앙과 충성을 이제 알았노라” 인정받는 모두가 되기를 주님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로마 백부장이 자기 하인이 병들었을 때 예수님을 찾아와 “말씀만 해주시옵소서. 제 부하들도 말 한마디면 다 순종하는데 당신 하나님의 사람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니 말씀 한마디만 하시면 우리 하인이 낫겠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네 믿음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백부장이 믿음으로 그 말씀을 듣고 밖으로 나갈 때 그 순간 하인이 고침 받아 건강하게 된 것입니다. 백부장의 믿음을 보고 예수님이 감동을 받고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마 8:10).
여러분, 이와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주님을 감동시키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주님을 감동시키는 믿음의 사람이 될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절망이 떠나가고 질병이 고침받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내 앞에는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있고 여러 가지 나를 괴롭히는 많은 일들이 산적하게 쌓여 있지만 그것은 믿음의 눈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을 자라고 성장을 위해 주시는 시험에 불과합니다. 믿음으로 이 모든 산적한 문제들을 다 떠내려 보내고 믿음으로 승리하여 위대한 하나님 역사를 이루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순종과 헌신의 결과로 주신 축복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서 하나님 앞에서 그 믿음을 보였을 때 하나님이 급히 막으시고 난 다음 그에게 하나님이 순종의 결과로 놀라운 축복을 허락해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야훼 이레의 축복입니다.
창세기 22장 13~14절은 설명합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야훼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야훼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하나님은 우리의 일생 필요한 것을 다 이미 예비해 놓고 계십니다. 우리의 믿음과 순종을 보시고 예비하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야훼 이레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이미 택함받은 그 순간에 하나님이 예정해놓고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어서 그것을 선물로 받지 못하고 아직 그 축복이 내게 이루어지지 않은 것뿐이지, 이미 예수님을 믿을 때 여러분 마음의 꿈과 소원과 모든 계획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야훼 이레로 예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위해서 미리 준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이 아직 무엇도 하기 전에 여러분의 마음속에 가진 꿈을 보시고 그 꿈이 이루어질 것을 예비해 놓고 계시는데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려고 해서 도전하고 또 도전하고 믿음이 성장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감동을 드릴 때가 되면 그 야훼 이레의 축복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자녀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업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때가 있습니다. 그냥 예수님 믿자마자 다 이것저것 그냥 주시면 우리가 어리석어서 내가 잘난 줄 알고 그 선물을 갖고 딴 길로 가버리고 맙니다. 여러분, 그래서 자꾸 시험이 있는 것입니다. 연단이 있는 것입니다. 자꾸 내가 깨어지고 또 깨어지면서 우리 믿음이 성장해서 예비된 축복을 받고 또 받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 믿고 갑자기 사업이 잘되니깐 교회도 안 나오고 사업하다가 나중에 더 큰 낭패를 당하는 분들도 보았고 또 예수님 믿고 복 받고 좀 잘 되다 보니까 주일성수를 하지 않고 나가서 골프를 치다가 사고 나서 큰 문제를 만난 분도 보았고 여러분 믿음은 평생 동안 훈련 과정이고 연단 과정이고 성장하는 과정입니다. ‘다 됐다’ 할 때가 없습니다. 우리가 ‘다 됐다’ 할 때는 하나님께 부름을 받을 그때입니다. 그때까지 우리가 믿음으로 전진하고 또 전진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준비하신 그 놀라운 축복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야훼 이레의 축복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병든 자를 위해서 이미 건강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사업이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사업이 잘되는 축복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분량이 차면 사업의 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분량이 차면 건강을 회복시켜주실 것입니다. 마음의 갈등과 번민이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이미 위로와 평화를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피곤하고 지친 심령에 새로운 힘을 얻는 그런 은혜를 이미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내가, 내가’ 하면서 내가 해결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이 사람 찾아다니고 저 사람 찾아다니다 보니깐 상처가 더 깊어지고 내가 더 문제에 갇혀서 그냥 가라앉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데 여러분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가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하십니다. 야훼 이레의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서 이미 다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 가정, 생활, 자녀, 범사에 야훼 이레의 축복으로 이미 다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믿음으로 우리가 쟁취하면 됩니다. 믿음으로 그것을 붙잡을 때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에게 쏟아져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어리석어서, 아직 미완성 작품이라서 아직 신앙에 부족한 점이 많아서 자꾸 실수하고 자꾸 넘어지는데 이제 우리가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야 됩니다. 아브라함도 그랬습니다. 아브라함도 몇 번이나 자기 부인을 부인이 아니라고 누이라 그래서 팔아넘기고 참 못된 짓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그때마다 보호해주시고 구원해 주셔서 25년 동안 지나면서 믿음이 성숙해져서 이삭을 주신 다음, 그다음에 또 한 20여 년 지난 다음 마지막 관문인 아들을 바치는 그러한 결단을 통해서 그의 믿음이 인정받게 되고 “이제야 네가 나에게 인정받게 되었다”말씀을 듣게 된 것입니다. 야훼 이레의 복을 받을지어다. 할렐루야.
여기 예비하신 야훼 이레의 축복을 창세기 22장 16~18절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이르시되 야훼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할렐루야.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얼마나 많은 복을 받았는지 이삭을 바치는 결단을 통해서 믿음의 조상이 되는 복, 영적 후손의 축복, 영적 아브라함 자손들이 모든 면에서 승리하는 복, 아브라함의 가계에서 인류의 메시야가 오는 메시야의 축복을 다 함께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아브라함의 복을 다 받게 되길 바랍니다. 앞길이 캄캄하고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있고 몸에 질병이 있어서 고통당하고 있습니까? 그때 믿음을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여러분 이삭을 바치는 결단으로 주님 앞에 나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말씀을 붙잡고 내 생각과 내 모든 것으로 이해할 수 없어도 ‘그저 믿고 믿습니다’ 하고 결단하고 나가는 것이 믿음이고, 그때 기적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때 야훼 이레의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예비 되어있는 것을 우리가 보지 못할 뿐이지 우리는 믿음으로 그걸 쟁취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에 구름이 끼면 하늘 위에 뭐가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구름을 뚫고 올라가 보면 그 위에 밝은 태양이 비치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때때로 환난, 시험의 먹구름이 끼어서 우리의 준비된 축복을 바라보지 못하지만 우리가 믿음의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르면 바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야훼 이레 축복의 태양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야훼 이레의 축복을 받게 되길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여러분, 순종해야 됩니다. 깨어져야 됩니다. 낮아져야 됩니다. 가장 소중한 것이라도 하나님이 내놓으라 하면 내어놓을 수 있는 그 믿음을 보일 때 하나님이 하늘의 문을 여사 쌓을 곳이 없을 정도로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야훼 이레의 복을 받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로마 가톨릭은 레오 1세 이래로 천년 동안 온 유럽과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가톨릭이 타락을 했습니다. 기본적인 진리를 많이 왜곡시켰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한 하나님의 말씀을 희석해서 믿음에 행위가 더해져야 한다는 논리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가톨릭이 가는 곳마다 병원도 세우고 학교도 세워 행위로 열매를 맺은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기독교 진리를 흔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에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켜서 완전히 가톨릭을 갈아엎었습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바로 개신교입니다. 우리가 그 개신교의 전통 따라 세워진 교단입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한 이후로 루터교회가 생겨나고 장로교회가 생겨나고 감리교회가 생겨나고 성결교회가 생겨나고 20세기에 들어와서 우리 오순절 순복음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르틴 루터는 1483년 11월 10일 독일의 광산지대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 한스 루터는 원래 농장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서 사업 수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광산업에 손을 대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래서 삶의 여유가 생기게 되니까 아들을 법률가로 만들어 판사를 시키려고 대학을 보냅니다. 1501년에 에르푸르트대학으로 아들을 유학 보냅니다.
근데 대학에 가서 마르틴 루터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독교 신앙의 뿌리를 깊이 두고 자랐던 그가 가서 성경을 틈틈이 읽게 되고 많은 신학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당시까지 중세교회에서는 성경을 일반 사람들이 못 읽었습니다. 성경을 우리가 지금 우리말 성경으로 읽게 된 것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입니다. 종교개혁 중에 가장 큰 공헌은, 그때까지만 해도 라틴어로 쓴 성경만을 신부가 읽고 신부가 그 설교를 할 때도 라틴말로 했기 때문에 아무도 못 알아들었습니다. 그냥 앉아있다만 나옵니다. 그래서 가톨릭은 예식적인 종교였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성경을 여러 가지로 해석하는 책들을 보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법률 공부가 맞지 않고 주의 종이 되어야 되겠다’ 결심했습니다. 아버지에게 와서 “아버지, 저 법률 공부하지 않고 신학을 공부해서 수도사가 되겠습니다” 라고 말하자 아버지가 노발대발합니다. “내가 너를 그렇게 하려고 유학 보낸 것 같으냐”라고 아버지의 꾸지람을 듣고 그냥 돌아와서 루터는 낙심하고 이제 다시 법률 공부를 하려고 친구와 같이 어느 날 들판을 가는데 막 비가 막 쏟아졌습니다.
비가 쏟아지니까 그 비를 피하려고 옆에 있던 친구가 자기보다 한 걸음 앞서 큰 나무 밑으로 뛰어 들어간 순간 벼락이 내려가고 자기 보는 눈앞에서 친구가 즉사했어요. 거기서 마르틴 루터가 무릎을 꿇고 “하나님 제가 하나님 앞에 서원해서 이제는 주의 종이 되겠습니다” 결심합니다. 그래서 1507년에 사제 서품을 받고 그가 그 대학에서 박사를 받은 다음 비텐베르크대학 성서학 교수가 됐습니다. 여기서 시편, 로마서, 갈라디아서를 강의하는 동안에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이 믿음이지, 어떠한 고행을 통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 개인의 힘으로 의를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의 능력으로 구원받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된다는 것을 그가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로마에 가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로마에 성 베드로 성당이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대성당이 있는데, 이 대성당을 이제 증축하고 완공하기 위해서 많은 돈이 필요한데 로마 교황 레오 10세가 이 성 베드로 성당을 완공하기 위해서 돈이 많이 필요하니깐 테첼이라고 하는 수도승에게 “네가 나가서 모금을 좀 해와라”라고 말했습니다.
테첼이 아주 말을 얼마나 잘하는지 “여러분, 돈을 내기만 하면 여러분의 죄가 다 사함받습니다”라며 가톨릭에 ‘면죄부’라는 것이 있는데 죄 사함을 이제 신부가 죄를 사해주고 죄 사했다고 하는 증서가 있으니 돈만 내면 그 증서를 가지고 죄 사함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다음 더한 말이 “지금 연옥에 가 있는 당신의 부모들을 위해 헌금을 하면 그들이 거기서 펄쩍 뛰어서 천국으로 갑니다.” 가톨릭이 굉장히 지성적인 종교가 돼서, 우리는 천국과 지옥밖에 없는데 이 세상 사는 동안에 착하게 살았다면 지옥 가기에는 아깝고 천국 가기는 모자란 사람들을 연옥이라는 데 다 집어넣어 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살 때 자녀들이 좋은 일을 많이 해서 연옥의 사람을 자꾸 떠밀어 올려 천국에 보낸다고 그러는데 테첼은 면제부를 사면 단번에 껑충 뛰어올라간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돈이 지폐가 아니라 다 동전이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이 통에다 은화를 와르르 쏟아놓으면 땡땡 돈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연옥에 있는 영혼들이 퐁퐁 뛰어서 올라갑니다.”이처럼 얼마나 연설을 잘하는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서 돈을 막 쏟아부었어요.
그렇잖아요. 돈 쏟아부으면 예수님 안 믿고 죽은 아버지가 천국 간다는데 그거 안 할 사람이 어디 있어요. 돈 쏟아부으면 자기 지은 죄 다 용서해 준다는 것을 보고 마르틴 루터는 일개 수도사에 불과하지만 ‘이건 아니다’ 생각하며 로마 가톨릭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당시 로마 교황은 얼마나 막강한 권력을 가졌는지 나라의 왕도 마음대로 바꿨어요. 그럼에도 그가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95 개조의 항목을 써서 붙였습니다.
지금 면죄부 팔고 있는 이런 것들이 잘못된 것이다. 돈으로 믿음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항목을 조목조목 썼습니다. 95개 항목 중에 14가지 이상이 면죄부를 팔고 돈으로 믿음의 행위를 사는 것에 대해서 낱낱이 비판합니다. 그래서 발칵 뒤집히면서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이를 계기로 유럽 각 지역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됐습니다. 프랑스에서 칼뱅이, 스위스에서 츠빙글리가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구호 아래 종교개혁으로 온 유럽이 변화되었습니다.
루터는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동등하게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부름을 받았다’라며 사람의 의식을 평등화하고 사람이 열심히 나가서 일을 해서 이 땅에 번영을 이룰 수 있다고 역설했습니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의 기초를 만들어놓은 것이 칼뱅의 신학이고, 또 참된 민주주의를 가진 것이 바로 이 종교개혁의 열매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영향을 미쳐서 온 유럽이 변화되니까 왕도 마음에 안 들면 바꾸는 로마 교황의 권세로 루터를 파면합니다. 그래서 루터는 죽음의 위험을 피해 2년 동안 성에 숨어서 지내게 됩니다. 그가 그렇게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는 것이 이제는 본인의 목숨이 위태로우니까 이제 모든 걸 포기하고 "이제 모든 것이 다 끝났어"하고 지쳐서 누워 있었습니다.
어느 날 초췌한 모습으로 집에 들어갔는데 부인이 상복을 입고 있어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아니 누가 죽었소?” 물으니까 아내가 대답을 합니다. “예수님이 죽었습니다.”
충격을 받고 루터가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하니까 아내가 말하기를 “그러지 않고 어떻게 당신이 좌절할 수 있나요? 예수님이 살아계신다면 당신이 이렇게 좌절하고 절망할 이유가 있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부인의 믿음이 더 좋았던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루터는 정신 차려서 다시 일어나서 종교개혁을 위해 라틴말로 돼 있던 성경을 독일말로 번역해서 출판하고 보급했습니다.
그 독일어 성경이 오늘 독일어의 표준말이 됐고 독일어 성경이 번역된 것을 계기로 각 나라말로 성경 번역이 되고 우리나라도 성경이 만주에서 로스 선교사에 의해서, 일본에서 이수정 선교사에 의해서 번역돼서 우리 손에 들리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가 종교개혁 때 부르짖던 말씀이 로마서 1장 17절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따라하십시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여러분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주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전진 또 전진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절대로 멈춰 서지 마십시오. 믿음으로 전진해서 어제보다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그런 복 받은 인생을 살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더 자라고 또 자라서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 야훼 이레의 축복을 받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복음성가 가운데 매일 발걸음마다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다는 찬송이 있습니다. 이 찬송을 부르면서 하나님 주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여서 우리 주님이 가장 기뻐지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주님 역사하시고 함께해 주옵소서. 믿음으로 고백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복음성가 : 내 인생 여정 끝내어>
1절 내 인생 여정 끝내어 강 건너 언덕 이를 때
하늘 문 향해 말하리 예수 인도하셨네
후렴 매일 발걸음마다 예수 인도하셨네
나의 무거운 죄짐을 모두 벗고 하는 말 예수 인도하셨네
2절 이 가시밭길 인생을 허덕이면서 갈 때에
시험과 환난 많으나 예수 인도하셨네
3절 내 밟은 발걸음마다 주 예수 보살피시사
승리의 개가 부르며 주를 찬송하리라
우리 일생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다 같이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오늘 창세기 22장 7절 이하의 말씀을 가지고 “아브라함의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단 한 번뿐인 인생길을 살아가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을 갖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그 삶이 죄와 절망과 파멸의 길이요, 예수님 믿고 신앙을 갖고 사는 사람들은 그 삶이 영생과 축복과 기적의 길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출발해서 믿음으로 그 신앙의 성장이 있고 믿음을 통해서 위대한 역사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아니라 결단이고 행동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배도 잘 드리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아니하고 자기 성질만 부리고 있으면 그건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보여지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보여지는 믿음을 통해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100세 때 낳은 아들을 하나님께 번제로 바치라 하는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1.아브라함의 믿음
먼저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길 원합니다.
창세기 22장 5절입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모리아 산에 도착해서 산을 오르기 전에 종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여기서 기다리라 우리가 너에게로 돌아오리라.” 여기 보니까 아브라함이 믿음의 선언을 합니다. 지금 분명히 이삭을 번제로 들이면 이삭이 죽을 터인데 “우리가 돌아오리라.”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100세 때 주셨으니 이삭을 거둬가셔도 다시 생명을 부어주셔서 살아나게 해줄 것을 아브라함은 믿었습니다.
로마서 4장 17, 18절 말씀합니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00세 때 낳은 독자를 하나님께 드리기로 한 그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믿음인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 견고한 믿음, 하나님이 도로 가져가셔도 다시 주실 것을 믿는 그 믿음을 하나님이 보시고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3일 길을 와서 이제 산에 올라가는 데 가장 마음 아픈 질문을 아들이 이삭이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삭을 죽여서 하나님께 번제로 드려야 되는 그 마음의 슬픔과 고통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데 이삭이 묻습니다.
창세기 22장 7절에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고 기록됐듯 이삭이 궁금했습니다. 떠날 때부터 ‘왜 번제에 드릴 양을 아버지가 가져가지 않으실까? 그리고 이제 번제에 쓸 나무와 불을 갖고 올라가는데 왜 정작 드릴 번제 제물이 없는가. 혹시 내가 번제 제물로 드려지는 것이 아닌가?’ 아마 그런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아버지, 여기 나무하고 불이 있는데 번제로 드릴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그때 아브라함이 믿음의 대답을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8절).
아브라함은 아들의 말에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질문은 정말 자기에게 큰 충격적인 질문이었을 것입니다. “아버지, 바칠 제물이 어디 있습니까?” “바로 네가 바칠 제물이다.” 그렇게 답을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아브라함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실 것이다.” 할렐루야.
여러분, 믿음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준비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실수하고 넘어지고 상처받고 좌절하고 무너지는 것입니다. 믿음을 보여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보이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히브리서 11장 17~19절은 설명합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기적적으로 100세에 아들을 낳게 되었는데 이 아들을 데려가셔도 다시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요, 긍정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기간이 25년이 걸려서 75세에 그가 약속받은 것을 이루었는데 다시 또 한 20여 년이 지나서 다시 한번 또 하나님이 그를 시험하신 것입니다.
2.아브라함의 결단
여기 아브라함의 결단의 모습이 나옵니다.
창세기 22장 10절 보니까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산에 올라가서 아브라함은 “아들아 하나님이 널 바치라 그랬다. 너는 하나님을 믿고 나를 믿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이삭이 그 아버지의 눈빛을 보고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고 그 앞에 순종했습니다. “예.” 이삭이 믿음이 없으면 “아버지 정신 나가셨어요?” 하며 밀치고 뛰어 내려가도 될 나이입니다. 성서학자들이 보기를 이때 이미 이삭은 20살이 넘은 나이로 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120세가 넘었고 이삭은 20세밖에 안 됐으니깐 아버지를 밀쳐내고 ‘왜 이러세요?’ 한마디만 하고 밀쳐내도 이삭을 드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순종했습니다. 칼을 들어서 묶어서 잡으려고 할 때 하나님이 그를 막으신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을 말씀합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마음에 믿었으면 믿음으로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칼을 들어 그가 아들을 죽이려고 하자 하나님의 사자가 다급하게 그를 막았습니다.
창세기 22장 12절에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제야 인정하시고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불완전한 믿음이요, 미완성의 믿음입니다. 늘 믿음이 자라고 또 자라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처음 믿었을 때 초보적인 믿음에서 우리가 10년 지나고 20년 지나고 30년 지나고 40년이 지나고 믿음이 자라고 또 자라서 성숙한 믿음이 될 때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위대한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지금 104세의 건강한 모습으로 어딜 가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강의를 하시는 김형석 교수님 말씀에 의하면 “인생은 60세에 철이 들고 70세가 돼야 그때부터 인생의 황금기가 열려서 그 맡겨진 일을 잘할 수 있다”라고 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는 이제 황금기가 열렸습니다. 여러분,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우리 인생이 계속 미완성에서 완성을 향해 나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70세쯤 돼야 철이 들고 일을 할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을 들어보면 우리가 아직 철이 없는사람에 속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기 계신 어르신들만 빼놓고요. 여러분, 믿음은 날마다 성숙되어져야 합니다. 초보적인 신앙에서 성숙한 신앙으로 변화돼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제야 인정하실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까? 25년 동안 깨어지고 또 깨어져서 100세가 돼서 아들을 주신 다음 다시 또 20여 년 동안 또 그가 연단 받고 연단 받아서 무려 45년, 한 50년이 지나고 난 다음에야 하나님이 “이제야 너의 믿음을 내가 인정하겠다.”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하나님께로부터 “너의 신앙과 충성을 이제 알았노라” 인정받는 모두가 되기를 주님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로마 백부장이 자기 하인이 병들었을 때 예수님을 찾아와 “말씀만 해주시옵소서. 제 부하들도 말 한마디면 다 순종하는데 당신 하나님의 사람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니 말씀 한마디만 하시면 우리 하인이 낫겠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네 믿음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백부장이 믿음으로 그 말씀을 듣고 밖으로 나갈 때 그 순간 하인이 고침 받아 건강하게 된 것입니다. 백부장의 믿음을 보고 예수님이 감동을 받고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마 8:10).
여러분, 이와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주님을 감동시키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주님을 감동시키는 믿음의 사람이 될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절망이 떠나가고 질병이 고침받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내 앞에는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있고 여러 가지 나를 괴롭히는 많은 일들이 산적하게 쌓여 있지만 그것은 믿음의 눈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을 자라고 성장을 위해 주시는 시험에 불과합니다. 믿음으로 이 모든 산적한 문제들을 다 떠내려 보내고 믿음으로 승리하여 위대한 하나님 역사를 이루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순종과 헌신의 결과로 주신 축복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서 하나님 앞에서 그 믿음을 보였을 때 하나님이 급히 막으시고 난 다음 그에게 하나님이 순종의 결과로 놀라운 축복을 허락해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야훼 이레의 축복입니다.
창세기 22장 13~14절은 설명합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야훼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야훼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하나님은 우리의 일생 필요한 것을 다 이미 예비해 놓고 계십니다. 우리의 믿음과 순종을 보시고 예비하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야훼 이레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이미 택함받은 그 순간에 하나님이 예정해놓고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어서 그것을 선물로 받지 못하고 아직 그 축복이 내게 이루어지지 않은 것뿐이지, 이미 예수님을 믿을 때 여러분 마음의 꿈과 소원과 모든 계획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야훼 이레로 예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위해서 미리 준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이 아직 무엇도 하기 전에 여러분의 마음속에 가진 꿈을 보시고 그 꿈이 이루어질 것을 예비해 놓고 계시는데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려고 해서 도전하고 또 도전하고 믿음이 성장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감동을 드릴 때가 되면 그 야훼 이레의 축복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자녀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업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때가 있습니다. 그냥 예수님 믿자마자 다 이것저것 그냥 주시면 우리가 어리석어서 내가 잘난 줄 알고 그 선물을 갖고 딴 길로 가버리고 맙니다. 여러분, 그래서 자꾸 시험이 있는 것입니다. 연단이 있는 것입니다. 자꾸 내가 깨어지고 또 깨어지면서 우리 믿음이 성장해서 예비된 축복을 받고 또 받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 믿고 갑자기 사업이 잘되니깐 교회도 안 나오고 사업하다가 나중에 더 큰 낭패를 당하는 분들도 보았고 또 예수님 믿고 복 받고 좀 잘 되다 보니까 주일성수를 하지 않고 나가서 골프를 치다가 사고 나서 큰 문제를 만난 분도 보았고 여러분 믿음은 평생 동안 훈련 과정이고 연단 과정이고 성장하는 과정입니다. ‘다 됐다’ 할 때가 없습니다. 우리가 ‘다 됐다’ 할 때는 하나님께 부름을 받을 그때입니다. 그때까지 우리가 믿음으로 전진하고 또 전진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준비하신 그 놀라운 축복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야훼 이레의 축복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병든 자를 위해서 이미 건강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사업이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사업이 잘되는 축복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분량이 차면 사업의 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분량이 차면 건강을 회복시켜주실 것입니다. 마음의 갈등과 번민이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이미 위로와 평화를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피곤하고 지친 심령에 새로운 힘을 얻는 그런 은혜를 이미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내가, 내가’ 하면서 내가 해결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이 사람 찾아다니고 저 사람 찾아다니다 보니깐 상처가 더 깊어지고 내가 더 문제에 갇혀서 그냥 가라앉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데 여러분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가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하십니다. 야훼 이레의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서 이미 다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 가정, 생활, 자녀, 범사에 야훼 이레의 축복으로 이미 다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믿음으로 우리가 쟁취하면 됩니다. 믿음으로 그것을 붙잡을 때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에게 쏟아져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어리석어서, 아직 미완성 작품이라서 아직 신앙에 부족한 점이 많아서 자꾸 실수하고 자꾸 넘어지는데 이제 우리가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야 됩니다. 아브라함도 그랬습니다. 아브라함도 몇 번이나 자기 부인을 부인이 아니라고 누이라 그래서 팔아넘기고 참 못된 짓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그때마다 보호해주시고 구원해 주셔서 25년 동안 지나면서 믿음이 성숙해져서 이삭을 주신 다음, 그다음에 또 한 20여 년 지난 다음 마지막 관문인 아들을 바치는 그러한 결단을 통해서 그의 믿음이 인정받게 되고 “이제야 네가 나에게 인정받게 되었다”말씀을 듣게 된 것입니다. 야훼 이레의 복을 받을지어다. 할렐루야.
여기 예비하신 야훼 이레의 축복을 창세기 22장 16~18절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이르시되 야훼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할렐루야.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얼마나 많은 복을 받았는지 이삭을 바치는 결단을 통해서 믿음의 조상이 되는 복, 영적 후손의 축복, 영적 아브라함 자손들이 모든 면에서 승리하는 복, 아브라함의 가계에서 인류의 메시야가 오는 메시야의 축복을 다 함께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아브라함의 복을 다 받게 되길 바랍니다. 앞길이 캄캄하고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있고 몸에 질병이 있어서 고통당하고 있습니까? 그때 믿음을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여러분 이삭을 바치는 결단으로 주님 앞에 나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말씀을 붙잡고 내 생각과 내 모든 것으로 이해할 수 없어도 ‘그저 믿고 믿습니다’ 하고 결단하고 나가는 것이 믿음이고, 그때 기적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때 야훼 이레의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예비 되어있는 것을 우리가 보지 못할 뿐이지 우리는 믿음으로 그걸 쟁취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에 구름이 끼면 하늘 위에 뭐가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구름을 뚫고 올라가 보면 그 위에 밝은 태양이 비치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때때로 환난, 시험의 먹구름이 끼어서 우리의 준비된 축복을 바라보지 못하지만 우리가 믿음의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르면 바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야훼 이레 축복의 태양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야훼 이레의 축복을 받게 되길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여러분, 순종해야 됩니다. 깨어져야 됩니다. 낮아져야 됩니다. 가장 소중한 것이라도 하나님이 내놓으라 하면 내어놓을 수 있는 그 믿음을 보일 때 하나님이 하늘의 문을 여사 쌓을 곳이 없을 정도로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야훼 이레의 복을 받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로마 가톨릭은 레오 1세 이래로 천년 동안 온 유럽과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가톨릭이 타락을 했습니다. 기본적인 진리를 많이 왜곡시켰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한 하나님의 말씀을 희석해서 믿음에 행위가 더해져야 한다는 논리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가톨릭이 가는 곳마다 병원도 세우고 학교도 세워 행위로 열매를 맺은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기독교 진리를 흔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에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켜서 완전히 가톨릭을 갈아엎었습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바로 개신교입니다. 우리가 그 개신교의 전통 따라 세워진 교단입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한 이후로 루터교회가 생겨나고 장로교회가 생겨나고 감리교회가 생겨나고 성결교회가 생겨나고 20세기에 들어와서 우리 오순절 순복음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르틴 루터는 1483년 11월 10일 독일의 광산지대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 한스 루터는 원래 농장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서 사업 수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광산업에 손을 대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래서 삶의 여유가 생기게 되니까 아들을 법률가로 만들어 판사를 시키려고 대학을 보냅니다. 1501년에 에르푸르트대학으로 아들을 유학 보냅니다.
근데 대학에 가서 마르틴 루터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독교 신앙의 뿌리를 깊이 두고 자랐던 그가 가서 성경을 틈틈이 읽게 되고 많은 신학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당시까지 중세교회에서는 성경을 일반 사람들이 못 읽었습니다. 성경을 우리가 지금 우리말 성경으로 읽게 된 것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입니다. 종교개혁 중에 가장 큰 공헌은, 그때까지만 해도 라틴어로 쓴 성경만을 신부가 읽고 신부가 그 설교를 할 때도 라틴말로 했기 때문에 아무도 못 알아들었습니다. 그냥 앉아있다만 나옵니다. 그래서 가톨릭은 예식적인 종교였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성경을 여러 가지로 해석하는 책들을 보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법률 공부가 맞지 않고 주의 종이 되어야 되겠다’ 결심했습니다. 아버지에게 와서 “아버지, 저 법률 공부하지 않고 신학을 공부해서 수도사가 되겠습니다” 라고 말하자 아버지가 노발대발합니다. “내가 너를 그렇게 하려고 유학 보낸 것 같으냐”라고 아버지의 꾸지람을 듣고 그냥 돌아와서 루터는 낙심하고 이제 다시 법률 공부를 하려고 친구와 같이 어느 날 들판을 가는데 막 비가 막 쏟아졌습니다.
비가 쏟아지니까 그 비를 피하려고 옆에 있던 친구가 자기보다 한 걸음 앞서 큰 나무 밑으로 뛰어 들어간 순간 벼락이 내려가고 자기 보는 눈앞에서 친구가 즉사했어요. 거기서 마르틴 루터가 무릎을 꿇고 “하나님 제가 하나님 앞에 서원해서 이제는 주의 종이 되겠습니다” 결심합니다. 그래서 1507년에 사제 서품을 받고 그가 그 대학에서 박사를 받은 다음 비텐베르크대학 성서학 교수가 됐습니다. 여기서 시편, 로마서, 갈라디아서를 강의하는 동안에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이 믿음이지, 어떠한 고행을 통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 개인의 힘으로 의를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의 능력으로 구원받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된다는 것을 그가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로마에 가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로마에 성 베드로 성당이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대성당이 있는데, 이 대성당을 이제 증축하고 완공하기 위해서 많은 돈이 필요한데 로마 교황 레오 10세가 이 성 베드로 성당을 완공하기 위해서 돈이 많이 필요하니깐 테첼이라고 하는 수도승에게 “네가 나가서 모금을 좀 해와라”라고 말했습니다.
테첼이 아주 말을 얼마나 잘하는지 “여러분, 돈을 내기만 하면 여러분의 죄가 다 사함받습니다”라며 가톨릭에 ‘면죄부’라는 것이 있는데 죄 사함을 이제 신부가 죄를 사해주고 죄 사했다고 하는 증서가 있으니 돈만 내면 그 증서를 가지고 죄 사함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다음 더한 말이 “지금 연옥에 가 있는 당신의 부모들을 위해 헌금을 하면 그들이 거기서 펄쩍 뛰어서 천국으로 갑니다.” 가톨릭이 굉장히 지성적인 종교가 돼서, 우리는 천국과 지옥밖에 없는데 이 세상 사는 동안에 착하게 살았다면 지옥 가기에는 아깝고 천국 가기는 모자란 사람들을 연옥이라는 데 다 집어넣어 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살 때 자녀들이 좋은 일을 많이 해서 연옥의 사람을 자꾸 떠밀어 올려 천국에 보낸다고 그러는데 테첼은 면제부를 사면 단번에 껑충 뛰어올라간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돈이 지폐가 아니라 다 동전이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이 통에다 은화를 와르르 쏟아놓으면 땡땡 돈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연옥에 있는 영혼들이 퐁퐁 뛰어서 올라갑니다.”이처럼 얼마나 연설을 잘하는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서 돈을 막 쏟아부었어요.
그렇잖아요. 돈 쏟아부으면 예수님 안 믿고 죽은 아버지가 천국 간다는데 그거 안 할 사람이 어디 있어요. 돈 쏟아부으면 자기 지은 죄 다 용서해 준다는 것을 보고 마르틴 루터는 일개 수도사에 불과하지만 ‘이건 아니다’ 생각하며 로마 가톨릭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당시 로마 교황은 얼마나 막강한 권력을 가졌는지 나라의 왕도 마음대로 바꿨어요. 그럼에도 그가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95 개조의 항목을 써서 붙였습니다.
지금 면죄부 팔고 있는 이런 것들이 잘못된 것이다. 돈으로 믿음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항목을 조목조목 썼습니다. 95개 항목 중에 14가지 이상이 면죄부를 팔고 돈으로 믿음의 행위를 사는 것에 대해서 낱낱이 비판합니다. 그래서 발칵 뒤집히면서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이를 계기로 유럽 각 지역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됐습니다. 프랑스에서 칼뱅이, 스위스에서 츠빙글리가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구호 아래 종교개혁으로 온 유럽이 변화되었습니다.
루터는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동등하게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부름을 받았다’라며 사람의 의식을 평등화하고 사람이 열심히 나가서 일을 해서 이 땅에 번영을 이룰 수 있다고 역설했습니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의 기초를 만들어놓은 것이 칼뱅의 신학이고, 또 참된 민주주의를 가진 것이 바로 이 종교개혁의 열매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영향을 미쳐서 온 유럽이 변화되니까 왕도 마음에 안 들면 바꾸는 로마 교황의 권세로 루터를 파면합니다. 그래서 루터는 죽음의 위험을 피해 2년 동안 성에 숨어서 지내게 됩니다. 그가 그렇게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는 것이 이제는 본인의 목숨이 위태로우니까 이제 모든 걸 포기하고 "이제 모든 것이 다 끝났어"하고 지쳐서 누워 있었습니다.
어느 날 초췌한 모습으로 집에 들어갔는데 부인이 상복을 입고 있어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아니 누가 죽었소?” 물으니까 아내가 대답을 합니다. “예수님이 죽었습니다.”
충격을 받고 루터가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하니까 아내가 말하기를 “그러지 않고 어떻게 당신이 좌절할 수 있나요? 예수님이 살아계신다면 당신이 이렇게 좌절하고 절망할 이유가 있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부인의 믿음이 더 좋았던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루터는 정신 차려서 다시 일어나서 종교개혁을 위해 라틴말로 돼 있던 성경을 독일말로 번역해서 출판하고 보급했습니다.
그 독일어 성경이 오늘 독일어의 표준말이 됐고 독일어 성경이 번역된 것을 계기로 각 나라말로 성경 번역이 되고 우리나라도 성경이 만주에서 로스 선교사에 의해서, 일본에서 이수정 선교사에 의해서 번역돼서 우리 손에 들리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가 종교개혁 때 부르짖던 말씀이 로마서 1장 17절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따라하십시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여러분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주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전진 또 전진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절대로 멈춰 서지 마십시오. 믿음으로 전진해서 어제보다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그런 복 받은 인생을 살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더 자라고 또 자라서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 야훼 이레의 축복을 받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복음성가 가운데 매일 발걸음마다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다는 찬송이 있습니다. 이 찬송을 부르면서 하나님 주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여서 우리 주님이 가장 기뻐지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주님 역사하시고 함께해 주옵소서. 믿음으로 고백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복음성가 : 내 인생 여정 끝내어>
1절 내 인생 여정 끝내어 강 건너 언덕 이를 때
하늘 문 향해 말하리 예수 인도하셨네
후렴 매일 발걸음마다 예수 인도하셨네
나의 무거운 죄짐을 모두 벗고 하는 말 예수 인도하셨네
2절 이 가시밭길 인생을 허덕이면서 갈 때에
시험과 환난 많으나 예수 인도하셨네
3절 내 밟은 발걸음마다 주 예수 보살피시사
승리의 개가 부르며 주를 찬송하리라
우리 일생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다 같이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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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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