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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결단
2023.10.22 / 창세기 22:1~3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야훼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창세기 22:1~3)
 

저는 오늘 창세기 221-3절의 말씀을 가지고 아브라함의 결단이와 같은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번 크게 따라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결단


우리의 일생은 한평생 선택과 결정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해야 되고 결정을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어떠한 선택을 하고 결정을 할 때 가장 올바른 선택을 하고 최선의 결정을 해서 그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해야 합니다. 잘못된 선택과 결정이 우리를 파멸로 이끌 수가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 독버섯처럼 퍼져나가는 이 마약이라 하는 것은 한 번 손을 잘못 대면 그 인생을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정신 차려야 됩니다. 매 순간순간 가장 올바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택과 결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우리 모두가 될 때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큰 복을 내려주실 줄로 믿습니다.
 

1.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
 
오늘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에 대해서 창세기 221절은 말씀합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100세 때 얻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를 시험해보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시고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 때 낳은 아들 이삭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정말 100세 때 아들을 얻었으니 얼마나 그 아들이 귀하겠습니까?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찾는 것이 아들 이삭입니다. 이삭아 어디 있느냐? 이삭이 자라나는 것을 보면서 그 마음에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이제 그 아들이 자라나면서 아버지의 유일한 희망은 아들 이삭이 잘 되는 것이었습니다. 25년 만에 100세에 얻은 아들이기 때문에 너무나 귀한 아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자나깨나 앉으나서나 이삭만 찾으니까 과연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그를 시험해보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삭을 바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하나님보다 더 앞세울 때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하는 모든 것을 주셨는데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아니하고 내게 주신 축복을 바라볼 때 문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 삶의 순서가 바뀌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633절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할렐루야. 순서가 바뀌면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선물을 주신 하나님보다 그 선물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선물을 주신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선물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선물을 더 귀하게 여길 때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님의 일을 많이 하라고 우리에게 축복을 주셨는데, 선물을 주셨는데 선물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할 때 문제가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많이 하고 선한 일을 하라고 많은 물질을 주셨는데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할 때 물질이 우상이 되어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멀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게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높은 자리를 주시고 권력의 정점에 오르게 하셨을 때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 드리라고 그러한 높은 자리에 세워주셨는데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착각하고 내가하고 내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고 내 뜻을 이루어가면 그는 결국 잘못된 길로 가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삶의 첫 번째 순서에 하나님을 두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갈 때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 생명의 분신이었습니다. 그의 전부였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말 귀한 아들이었습니다. 그 아들이 기쁨이고 그 삶의 목적이고 희망이었습니다. ? 이제 100세 때 내가 이 아들을 얻었으니 내가 더 이상 여한이 없다. 이제는 이 아들이 잘되는 것이 나의 유일한 기쁨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눈에 보이는 이삭을 너무나 사랑하니까 하나님과 이삭과의 관계에서 순서가 바뀌지 않았나 알아보길 원하셨습니다.
 
여러분 한평생 살아가는 동안 어떠한 축복을 받았더라도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축복이 하나님보다 더 앞서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신 하나님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입니다.
222절에
야훼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이 명령하십니다. “너의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에 있는 한 산에 가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가장 소중히 여기고, 가장 사랑하는 자기의 생명과도 같은 아들을 죽여서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때때로 우리에게 최상의 것을 요구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전부와 같았던 이삭을 바치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때때로 우리가 가진 가장 귀한 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 내가 가진 것, 그것을 더 사랑하고 그것을 손에 움켜쥐고 그것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 우리가 아닌지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이삭과 같은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것을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내려놓고 번제로 바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게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을 위해서 포기할 수 있을 때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큰 은혜를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성숙한 신앙은 삶의 순서를 항상 바르게 하고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며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있는 신앙이 성숙한 신앙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해야 됩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전부이십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원합니다. 내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만 나타나기 원합니다. 주님 홀로 영광 받으시옵소서.”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사업, 우리의 가지고 있는 물질, 권력, 명예, 건강, 우리의 자녀, 아내, 남편. 이 모든 것들을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사랑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보다 더 소중히 여겨질 때 그것이 바로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더 사랑하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걸림돌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주신 그 모든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지 축복을 붙잡고 살아가면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할 때 물질이 우상이 되고 하나님보다 자녀를 더 사랑할 때 자녀가 우상이 되고 하나님보다 사업을 더 사랑할 때 사업이 우상이 되고 하나님보다 세상의 권세를 더 사랑할 때 권세가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재물이 많은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내가 무슨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예수님이 그 청년을 보니까 그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그가 가진 많은 물질을 더 사랑하는 것을 주님이 보시고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이 말을 들은 청년은 자기가 재물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에 근심하면서 예수님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1922절은 설명합니다.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결코 물질을 포기할 수 없어서 결국 주님을 따르지 못하고 자기의 길로 간 것입니다.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때때로 내가 가진 것이 하나님을 섬길 때 걸림돌이 될 때는 과감하게 내려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욥은 당시 동방의 의인이었고 거부였고 모든 것을 다 가진 자였습니다. 건강했고 열 자녀가 있었고 그에게는 풍요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와서 시험합니다. “하나님, 욥이 가진 게 많아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니깐 한번 그를 시험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그를 시험했습니다. 어느 날 하루아침에 욥이 가진 모든 것이 다 날아갔습니다. 그가 가진 수많은 가축이 다 죽고, 열 자녀가 집이 무너져서 다 죽고, 그날 몸의 건강이 사라져서 온몸에 악성 피부병이 걸려서 기와 조각으로 온몸을 긁어야 되고 이 같은 모든 걸 다 잃어버린 그때에도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욥기서 122절은 말씀합니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부인이 와서 보니까 너무나 처참한 모습에 온몸이 종기가 나서 긁고 있는 남편을 보면서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시오. 이렇게 살아서 무엇합니까?” 부인이 와서 그에게 말할 때 욥은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욥은 부자였지만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욥은 자식을 사랑했지만 하나님보다 자식을 더 사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욥은 건강했지만 하나님보다 건강을 더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가진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모든 걸 다 잃어버렸어도 그 믿음을 잃지 않은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재산이 다 사라지고 열 자녀가 다 죽임을 당하고 건강이 사라지고 부인이 와서 자기를 저주하고 떠났어도 그는 믿음을 지켰습니다. ? 하나님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그 믿음을 지켜서 그 입술로 원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시련을 겪고 난 다음 하나님이 그의 믿음을 보시고 갑절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물질의 축복을 갑절로 받았습니다. 열 자녀를 잃었지만 다시 그보다 더 훌륭한 열 자녀를 또 선물로 주셨습니다. 건강도 회복시켜주셨고 그래서 하나님이 그에게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내 가장 귀한 것을 바칠 때 하나님이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축복으로 우리에게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30절은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가 가진 그 무엇보다도 내가 가진 명예, 물질, 나의 지식, 나의 부귀영화, 그 무엇보다도 우리 주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걸 우리에게 더해 주시는 축복으로 우리에게 함께해 주실 것입니다.
 
 
3. 아브라함의 결단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결단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결단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223절입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하나님의 명령을 듣자마자 그는 즉각 순종하기로 결단했습니다. 그 밤에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고 성경을 보니까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번제 드릴 곳으로 떠났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신속한 결단과 순종의 모습이었습니다.
 
여러분, 말씀을 듣고 나아갈 때 머뭇거리면 안 됩니다. 말씀을 들을 때 즉각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신다고 할 때 그 죄의 도성을 떠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롯의 두 딸과 아내가 있는데 사위들은 그 말을 코웃음을 치며 듣지 않았습니다. “무슨 우리가 이렇게 풍요로움 속에서 살고 있는데 심판이 다가오냐.”라며 사위들은 그 말을 듣지 않고 거기에 머물렀습니다. 롯의 아내는 모든 재산을 다 두고 오니까 그 재산이 아까워서 뒤를 돌아보다가 그만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지체할 때 이러한 심판이 임하는 것입니다. 불순종할 때 심판이 임하는 것입니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라고하는 명령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가 풍랑을 만나 물고기 배속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전폭적으로 순종하는 자에게 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명령을 받았을 때 그 누구하고도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명령을 받았을 때 가족과 의논했더라면 그는 절대로 이삭을 데리고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의 아내에게 여보, 여보,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데 이삭을 데리고 가서 번제로 바치래.” 그러면 아마 사라가 그랬을 것입니다. “당신 치매가 왔구만. 날 죽이고 가요. 날 죽이고 가. 절대로 못 데려갑니다.” 아마 그날 밤새 싸워서 결국 부인 때문에 이삭을 못 데리고 가는 그런 결과가 나오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마 100명이면 100명의 부인이 다 그랬을 것입니다. ‘이 영감이 나이가 들더니 치매가 와서 멀쩡한 아들을 갖다가 죽이라고 하는 그 헛소리를 듣고 저런다.’라고 그랬을 것입니다. 그래서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이른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이삭을 데리고 떠난 것입니다.
 
사울 왕은 아말렉의 모든 걸 다 멸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좋은 것을 다 남겨두었습니다. ‘이 좋은 것까지 다 멸해버리면 너무나 아깝지 않은가?’ 그래서 좋은 것들은 다 따로 보관해 두었는데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촛대를 옮기신 것입니다. 결국 그는 그의 왕권도 다윗에게 물려주게 되고 전쟁에서 비참한 죽음으로 최후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불순종의 결과는 파멸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셔도 하나님 앞에 절대 순종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머뭇거리지 말고 핑계 대지 말고 즉시 순종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참된 순종은 깊이 생각한 후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한 다음에 생각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핑계할 기회를 없애버렸습니다. 즉각 순종했습니다. 즉각적인 순종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니까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3일 길을 갑니다.
4절을 보니까.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순종은 내가 죽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죽지 않으면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칠 수가 없습니다.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한 이삭을 어떻게 바칩니까? 그런데 그 즉시 죽여서 바친다면 그나마도 즉각적으로 결단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 텐데 3일 길을 가야만 했습니다. 이미 3일 길을 갈 때 아브라함은 완전히 자신이 죽어진 것입니다. “난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이 이 모든 일을 통하여 영광 홀로 받으시옵소서.”
 
여러분 신앙생활은 내가 죽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교회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도 내가 살아 있어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가정의 모든 문제도 내가 살아있어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내가 죽으면 문제가 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죽었기 때문에 죽은 사람은 말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일생 동안 고백한 신앙고백이 갈라디아서 220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할렐루야! 이것이 사도 바울의 일생의 신앙고백입니다. 여러분,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생겨납니다.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사소한 일에 상처받고 분노합니다. 내가 살아있으니까 내가 무시당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살아있으니까 나를 갖다 사람들이 괴롭힌다고 생각합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죽었기 때문에 나를 욕해도 들리지 않고 나를 물고 뜯어도 들리지 않고 나를 끌어내려도 들리지 않습니다. ? 죽었기 때문에. 살아있으니까 분노하고 다투고 욕하고 싸우고 시비거리가 생겨나고 문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오늘 마음 판에 새기시길 바랍니다. “나는 죽었습니다. 나는 죽었습니다. 나는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십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인것입니다. ‘내가인생을 살아보면 얼마나 인생이 힘들고 어려운지 모릅니다. 내가 내 자신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합니다. 내 가정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합니다. 내 감정 하나 다스리지 못합니다. ? 나는 그렇게 죄 덩어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없이는 우리는 하루, 1시간도 살아갈 수 없음을 고백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의 고백을 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바울은 더 나아가서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부활장인 고린도전서 1531절에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나는 날마다 죽노라! 그래서 바울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한평생 쓰임 받게 된 것입니다. 살아있기 때문에 우리가 문제가 많습니다. 살아있으니까 우리가 분노합니다. 살아있으니까 상처받습니다. 살아있으니까 우리가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답답해하고 절망하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이 시간부터 죽어지길 바랍니다. 그럼 여러분의 가정이 평안할 것입니다. 여러분 부부간의 관계가 평안할 것입니다. 부모·자식 간에 평안할 것입니다. 자식이 소리 지르고 대들어도 죽었기 때문에 그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식이 변화되고 새로운 인생으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사업이 어렵습니까? 사업을 통해서 들려오는 많은 부정적인 얘기가 있습니까? 죽었다고 생각하면 부정적인 얘기가 그날부터 안 들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업을 지켜주시고 더 잘 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면 반드시 좋은 일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역설적인 신앙입니다. 죽으면 살고 살면 죽는 것입니다. 살아있기 때문에 문제가 많고, 살아있기 때문에 늘 다투고, 살아있기 때문에 갈등하고, 살아있기 때문에 상처받고, 살아있기 때문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죽은 자는 하나님이 일으켜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주셔서 주의 뜻을 이루게 하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살아있을 때보다 죽었을 때 더 많은 일을 하게 되고 더 위대한 일을 하게 되고 더 놀라운 일을 하게 되고 더 놀라운 역사를 이루는 하나님의 귀한 일꾼으로 쓰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자기의 가장 중요한 것들을 포기했지만 하나님이 위대하게 다시 그를 세워주신 에릭 리들이라고 하는 분의 간증으로 말씀을 마무리하길 원합니다. 영국의 육상 선수이자 1924년 파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에릭 리들은 1902년 중국 톈진에서 독실한 선교사 가정에서 태어납니다. 아버님이 선교사님이었습니다.
 
5살 때 부모님을 따라 영국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에든버러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은 원래부터 잘했던 달리기로 운동선수로서의 두각을 나타냅니다. 수년 동안 국내외 모든 대회를 다 휩쓸며 우승합니다. 1924년 그가 22살 때 파리 올림픽에 출전합니다. 그는 육상 100m 종목의 금메달 유망주였습니다. 그는 세계 신기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00m 예선 경기 일정이 192476일 주일 오후 330분으로 잡혀 있었습니다. 이때 그는 올림픽 예선 경기에 참여할 수 없음을 선포합니다.
 
저는 주일에는 뛸 수 없습니다. 주일에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이전까지 그를 칭찬하고 환호했던 모든 사람이 그를 비난했습니다. 조국의 명예를 버린 자, 편협하고 옹졸한 신앙인, 급기야는 웨일즈 왕자까지 그에게 친서를 보내서 100m 경주에 참여해 주라고 요청했지만, 에릭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영국 올림픽위원회가 이 사람이 금메달 후보이기 때문에 올림픽 위원회에 100m 예선 경기를 날짜를 바꿔달라고 요청했지만, 그것도 그 한 사람 때문에 바꿀 수가 없어서 무산되었습니다.
 
결국 100m 경기에 출전을 포기하게 됐는데, 에릭은 가만히 보니까 400m 경기가 주일 아닌 다른 날 열리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감독에게 찾아갔습니다. “저를 400m에 달리게 해 주십시오.” 관례상 없는 일이었고, 100m 달리는 사람이 400m 나와서 메달 딸 수 있는 것도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400m 경주에는 미국, 스위스 등에 세계 신기록을 가진 우승 후보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가 400m 경기에 나와봐야 다른 사람의 들러리밖에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간곡히 요청하니까 그 요청을 들어줘서 400m 경기에 달리도록 했습니다. 결승에 나가게 됐을 때 그를 담당하는 운동 트레이너며 안마사였던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 운동 트레이너가 메모를 전해줍니다.
사무엘상 23절이 적혀 있었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리라.
 
이 말씀을 마음에 품고 이제 400m 내가 결승전에 나갑니다. ‘내가 뛰는 것은 내가 나 혼자 뛰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뛰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발 신호가 하고 울려퍼졌을 때 달려나가는데 막 100m 달려나가듯이 막 달려나갑니다. 사람들이 다 놀랐습니다. ‘저렇게 나가다가는 100m 달려나가다 금방 지쳐서 쓰러지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계속해서 그는 멈추지 않고 200m, 300m, 400m 달려가서 마침내 세계 신기록을 세우고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100m 달리는 속도로 400m까지 계속 달릴 수가 없습니다. 저 영상에서 봤듯이 뒤에 그 사람 따라오다가 한 사람 쓰러져버리고 말았어요. 그래서 이 사람이 세계 신기록을 세우면서 결승선을 통과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이렇게 그는 간증했습니다.
 
처음 200미터는 제 힘으로 최선을 다해 뛰었고, 나머지 200미터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더 힘차게 달릴 수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올림픽 이후 에든버러 대학을 졸업할 때 그는
저는 중국으로 가서 저의 생애의 남은 부분을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 바치고자 합니다.”
선언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그는 화려한 명성을 뒤로 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중국 시골에 들어가서, 23살에 중국에 들어가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농촌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서 그의 삶을 헌신합니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중국이 외국인들을 다 억류해서 그도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는 거기서도 온몸으로 포로들을 섬겼습니다. 자신보다 남을 돌보고 섬기는 가운데 몸이 쇠약해져서 그는 1945년 세계 2차 대전 종료 6개월을 앞두고 22143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후에 크리스천이었던 휴 허드슨 감독에 의해서 <불의 전차>라고 하는 영화로 제작되었고 많은 사람에게 이 이야기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데이빗 푸트남이라 하는 이 영화의 제작자는 에릭 리들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합니다.
 
세상에서의 성공보다 하나님을 향한 의무에 더 헌신했던,
그래서 무언가 더 위대함을 나타내는 한 사람이 있다.
 
여러분의 삶이 그와 같은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매 순간순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결단하고 순종하고 헌신해서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위대한 축복의 삶, 기적의 삶, 승리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결단하면서 주님 앞에 찬양합니다.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을 바쳐 헌신하길 원합니다. 주님, 나의 삶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찬송가 461(519장) : 십자가를 질 수 있나>
1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리
저들 대답하였다
 
후렴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당신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 따라 살아 갈 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2 너는 기억하고 있나
구원 받은 강도를
저가 회개하였을 때
낙원 허락 받았다
 
3 주께 네 혼 맡기겠나
최후 승리 믿으며
걱정 근심 어둔 그늘
너를 둘러 덮을 때
 
4 이런 일 다 할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용감한 자 옛날처럼
선뜻 대답하리라
 
한평생 하나님 앞에 인정받고 쓰임 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아브라함이 100세 때 얻은 아들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드림으로 믿음의 조상으로 모든 믿는 자의 믿음의 아버지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이 될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인도하여 주시고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만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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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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