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말라
2023.10.01
/ 누가복음 7:11~16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누가복음 7:11~16)
누가복음 7장 11절~16절을 본문으로 하여서 “울지 말라” 이와 같은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사람의 일생은 울음으로 시작해서 울음으로 끝납니다. 아이가 “응아~” 하고 태어나서 성장하고 마지막 임종이 다가오면 가족의 울음 속에서 생을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가 자랄 때 보면 자주 웁니다. 배고파서 울고 아파서 울고 기저귀에 응가했다고 웁니다. 울음은 항상 우리 주변에 있는 것 같습니다. 너무나 마음이 고통스럽고 괴로워서 울기도 하고 슬퍼서 울기도 하고 너무나 기뻐서 감격해서 울기도 하고 이렇게 우리가 운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LA신성감리교회 천영주 원로목사님의 형님이 장로님인데 대구에서 보육원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천 목사님이 형님 댁에 방문했을 때입니다. 작은아버지가 오니까 애들이 와서 아버지에게 때를 씁니다. 작은아버지에게 뭐를 사달라고 하고 그러니까 형님이 애들을 야단치면서 ‘저리 나가 있어라.’라고 하니까 애들이 막 웁니다. 그래서 천 목사님이 조카들이 우니까 놀래서 ‘울지마, 울지마.’ 그러니까 형님이 말씀하기를 ‘울게 둬. 고아들은 울지 않아.’라고 했습니다. 형님이 보육원에서 많은 고아를 기르는데 이 아이들은 넘어졌다가도 주위를 둘러보고 일어나서 울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울어도 봐줄 사람이 없으니까. 그래서 보육원의 아이들은 울지 않는다는 겁니다. 제 마음 속에 그 이야기가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가 있는 아이는 조금만 아파도 울고 자기가 떼쓸 때 울고 울음이 무기입니다. 요즘은 애들이 왕이라 ‘오~’하고 달래주니깐 무조건 울고 보는 거예요. 그런데 고아들은 울어도 봐줄 사람이 없고 달래줄 사람이 없으니깐 울지 않고 참는 것입니다.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것도 큰 축복입니다.
예수님이 나인성에 갔을 때의 이야기가 오늘의 본문 말씀입니다.
나인성은 갈릴리 호수 아래에 있는 작은 도시인데 예수님을 따라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했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성문 가까이 이르렀을 때 한 긴 장례 행렬과 맞닥뜨립니다.
누가복음 7장 12절입니다.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여기 희망을 잃은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1.희망을 잃은 여인
이 여인은 일찍이 남편을 잃고 홀로 된 과부였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남겨준 아들 하나를 금이야 옥이야 키우면서 유일한 삶의 기쁨과 낙으로 삼고 살았는데 아이가 자라 청년이 되어서 이제는 아들을 기대서 살만한 즈음 되었는데 청년이 된 아이가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성경에 어떤 일로 그 청년이 죽었는지 기록하지 않습니다. 병으로 죽었는지, 사고로 죽었는지. 하여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덜컥 죽은 것입니다. 이제는 아들이 잘 자라서 청년이 되어서 아들만 바라보면 기분이 흐뭇하고 ‘이제 됐다.’ 하는 그때 사랑하는 독자가 죽었으니 얼마나 그 마음이 충격이고 슬픔이고 고통이겠습니까. 동네에서 이 과부 아주머니가 아들 하나 의지하고 사는 것을 아는데 그 아들이 죽은 것을 알고 너무나 불쌍해서 수많은 사람이 장례 행렬을 따라 나왔습니다.
나인성의 ‘나인’이란 말의 원래 뜻은 ‘기쁨’입니다.
기쁨의 성에서 과부 여인이 기쁨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늘이 무너져 버리는 것 같은 절망이 그녀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모든 희망도 삶의 목적도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녀가 지닌 마음의 고통은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위로해줄 수 없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었는데 누가 와서 무슨 말을 해도 위로가 되겠습니까.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누구나 죽음을 맞닥뜨리게 되는데, 죽음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예고 없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바라볼 때 죽음은 절망 그 자체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어버린 그 여인의 마음은 이미 무덤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마음속 절망의 깊음은 무덤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시편 88편 기자는 절망 속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시편 88편 4~7절에
나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이 인정되고 힘없는 용사와 같으며 죽은 자 중에 던져진 바 되었으며 죽임을 당하여 무덤에 누운 자 같으니이다 주께서 그들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시니 그들은 주의 손에서 끊어진 자니이다 주께서 나를 깊은 웅덩이와 어둡고 음침한 곳에 두셨사오며 주의 노가 나를 심히 누르시고 주의 모든 파도가 나를 괴롭게 하셨나이다
한평생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이런 절망의 때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날 때 그 슬픔을 우리가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모든 노력으로 일궈놓은 사업이 하루아침에 무너졌을 때 그 절망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평생 감기도 앓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다가 병원에 가서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 가보니까 왜 이렇게 늦게 오셨냐고 ‘당신은 지금 간암 말기입니다. 6개월 이상 못살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자리에서 무너지는 것입니다.
절망의 순간이 다가올 때 우리는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은 어떤 문제가 다가오고 절망이 다가왔다고 할지라도 포기하고 무너지면 안 됩니다. 절망 중에 어려움 중에 문제를 만났을 때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고 부르짖어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88편 9절에 이와 같이 기도합니다.
곤란으로 말미암아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야훼여 내가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
절망 중에 유일한 희망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주를 바라보고 두 손을 들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 나를 불쌍히 보시옵소서. 나를 이 절망에서 건져 주시옵소서. 나를 문제 가운데서 놓여나게 하여주시옵소서. 주님 앞에 부르짖고 또 부르짖어야 할 것입니다.
2.절망에 처한 자를 찾아오신 예수님
그런데 참으로 감사한 것은 절망에 처한 여인을 예수님이 찾아오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잘될 때는 우리 주변에 몰려들어서 무엇인가 나를 통해 유익을 얻으려고 하지만, 내가 안 되고 모든 것이 다 무너지고 하면 그냥 썰물처럼 싹 빠져 버리는 것이 사람들의 인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정반대로 절망에 처한 이 여인을 찾아오셨습니다. 찾아와서 그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눅 7:13)
아들의 죽음 앞에 어머니가 할 수 있는 것은 통곡밖에 없습니다. 그저 목을 놓아 우는 것입니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두고 네가 먼저 갔니.’ 울고 또 우는 것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 어떤 노력으로도 그 어떤 의학적인 방법으로도 죽은 아이를 살릴 수가 없습니다. 절대 절망에 부딪힌 것입니다. 그런데 절대 절망에 부딪힌 그 과부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본인이 예수님을 찾은 것도 아니고 누가 예수님을 모시고 온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 자리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 절망의 자리에 주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은혜는 무엇이냐. 내가 은혜를 받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는데 주님이 찾아오신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자격도 능력도 아무것도 없는 죄 덩어리였는데 웬일인지 웬 은혜인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절대 절망의 삶을 살던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 절대 희망되신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을 얻게 되고 새생명을 얻게 되고 오늘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보면 구원받을 만한 어떠한 자격도 없고 공로도 없습니다. 우리는 죄 덩어리입니다. 나 하나의 감정도 다스리지 못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성질을 내고 사람하고 다투고 싸우는 연약한 우리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를 불쌍히 보시고 사랑하여 주셔서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그 말씀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구원해주셨다고 하는 놀라운 은혜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 공로 없지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택함 받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절망 가운데 처한 우리 인생을 찾아오십니다.
고통과 괴로움 가운데 울고 있는 우리 인생을 찾아오십니다.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어려움을 당했든지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 앞에 ‘주여!’ 부르짖으면 주님은 이미 벌써 옆에 와계셔서 우리를 꼭 품에 안아주시고 “울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라. 내가 너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염려하지 말고 안심하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주님 말씀하십니다.
3. 우리를 위로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오셔서 위로해주십니다. 고통과 괴로움 가운데 울고 있는 우리를 꼭 품에 안으시고 우리를 위로해주시는 것입니다. 절망에 처해 울고 있는 과부를 주님이 불쌍히 보셨습니다. 얼마나 서럽게 울고 있었겠습니까. ‘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이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니 이제 나는 어떻게 살꼬.’ 통곡하며 울었던 것입니다.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아들 하나 믿고 살았는데 아들이 세상을 떠났으니, 그때 주님이 울고 있는 과부를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울지 말라.”
누가복음 7장 13절에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주님이 불쌍히 보시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람이 우리를 동정해도 아무런 변화가 다가오지 않지만, 주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면 그때로부터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문제 해결의 길이 열립니다. 닫혔던 문이 열립니다. 절망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문제가 떠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불쌍히 여김을 받으면 그것이 바로 응답입니다.
느헤미야 9장 31절을 말씀합니다.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을 아주 멸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도 아니하셨사오니 주는 은혜로우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불쌍히 보시면 그 순간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온 세상 사람이 다 나를 버리고 떠나도 우리 주님은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 주님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우리를 절망 가운데 건져주시고 우리 삶 가운데 주님의 평안함을 넘치게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 말씀하십니다. “울지 말라.” 우리가 슬피 울고 있을 때 절망에서 고통에서 괴로움에서 많은 상처와 고통 속에서 울고 있을 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울지 말라. 울지 말라.”
무덤가에서 울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를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5~16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지금도 절망 가운데 울고 있는 자를 주님 찾아오십니다. 과부의 눈물을 멈추게 하시고 관으로 다가가서 관의 손을 얹고 주님 말씀하십니다.
청년아 내가 내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그 순간 청년이 벌떡 일어났습니다.
7장 15절입니다.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예수님이 찾아오심으로 절망이 변하여 희망이 됐습니다. 통곡의 자리가 기쁨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감격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은혜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기적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축복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절망은 떠나가는 것입니다. 문제는 떠나가는 것입니다.
문제를 말할 때 사람을 찾아가지 말고 주님 앞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봐야 시간만 낭비되고 오히려 절망은 깊어지는 것입니다. 주님께 나오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 나오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을 붙잡고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주님 앞에 부르짖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긍휼히 보시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최수자 권사님이시라고 2020년 코로나 때 천국 가셨는데, 이 권사님 간증이 참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 마음에 깊이 여러 가지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이 권사님은 결혼한 지 1년 만에 남편이 세상을 떠납니다. 어린 아들 하나 남겨놓고 그때 나이 25살, 그래서 지방에서 무조건 살기 위해서 아들 하나 데리고 올라와서 온갖 고생을 하면서 이제 아들을 키우는데 누가 전도해서 우리 순복음교회로 오게 됐어요.
여러분 순복음교회로 전도해 오면 주님이 만나주셔서 그 무슨 운명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리고 막 교회 오는 데 막 와서 예배 시간이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통곡하며 울면서 주님의 은혜를 받고 교회 나온 다음 날부터 새벽 기도를 매일 나왔어요.
열심히 나와서 은혜를 받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외롭고 힘들고 아들 하나밖에 없는데 예수님을 만나니까 예수님이 기쁨이며 은혜와 축복이니까 매일 같이 나와서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예배라는 예배는 빠지지 않고 나와서 주일, 수요일, 금요일, 새벽 매일 와서 예배를 드리니까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전도왕이 돼서 많은 사람을 전도하고 구역장, 지역장을 역임하고 권사까지 됐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그 아들도 복을 주셔서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박사학위를 받고 안산시 공무원이 됐습니다. 모든 게 부족함이 없이 잘 되는데, 2015년 4월 16일 목요일 날 새벽에 며느리에게 전화 왔어요.
“어머니 지금 남편이 심장마비로 지금 병원에 실려갔어요.”
안산시 공무원으로 굉장히 일이 요즘 많아서 그냥 일 보따리를 집에까지 싸들고 와서 일할 정도로 일이 누적되고, 또 일을 너무 잘해서 일을 막 맡기니까 과로했는데 심장마비가 온 거에요.
그래서 급히 구급차로 병원으로 옮겼는데 골든타임을 놓쳤습니다. 일단 심장마비가 오면 4분 내로 심폐소생을 해서 심장을 뛰게 해야 피가 뇌로 돌아가서 뇌가 살아있는데 4분이 지나고 가면 산소 호흡이 안 돼서 뇌가 죽습니다. 뇌사상태가 되는 거예요. 의학적으로 코마 상태가 되어서 식물인간이 됩니다.
연간 심정지로 그 병원에 오는 사람이 약 3만 명 되는데요. 통계적으로 10만 명 중에서 50명은 그냥 심장마비로 돌연사한다고 합니다.
중환자실로 옮겨갔는데 당장 면회가 안 되니까 교회에 와서 새벽에 눈물로 기도하면서 제 사무실에 우리 아들이 지금 중환자실에 갔으니까 기도해달라고 요청이 왔습니다. 그다음 날 제가 일정이 많아서 여기저기 심방을 가고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데 계속 우리 수행 목사님 편으로 전화가 옵니다.
1시간 만에 한 번씩 계속 와서
“목사님 빨리 안산으로 와주세요. 안산으로 와주세요.
우리 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하는데 그 권사님이 평상시에 워낙 교회 일에 열심이고 전도왕이고 하니까 오후 일정 다 취소하고 안산에 내려갔습니다.
그래서 중환자실에 가보니까 완전히 식물인간이 되어 축 처져있습니다. 의사가 ‘이제 뇌가 죽어서 가망이 없습니다. 만에 하나 살아나도 온몸이 마비돼서 평생 그렇게 불구로 살지 모릅니다.’ 뭐 이런 부정적인 얘기만 하고 있는데 권사님은 믿음의 여인이었어요. 우리 아들을 기도로 살려내겠다. ‘목사님이 기도하면 우리 아들 낫습니다.’라면서 기도하는데 기도하다 제 마음도 너무 안쓰러워요. 권사님이 아들의 귀를 잡고 막 잡아당기면서 “목사님 오셨어. 기도를 들어봐, 들어봐. 들어봐!”
축 처져서 뇌가 죽은 상태니까 반응이 없어요. 그리고 제가 간절히 기도해주고 나왔는데 권사님이 막 병원 복도에서 막 기도하면서 지역장, 지구역에 성도들에게 기도 요청하고 당시 이대현 대교구장에게 기도 요청하고 또 여의도순복음안산교회 김유민 목사님에게 기도 요청을 하고 기도를 하는데 그날 저녁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아니 이 아들의 손가락이 까딱 움직인 거예요. 할렐루야.
다음 날 실눈을 떴습니다. 그래서 권사님이 너무나 감사해서 주일날 와서 예배를 드리는데 주일날 다섯 사람이나 전도해 와서 그 와중에 전도 열심히 해서 새신자랑 같이 예배를 드리는데 예배 끝나고 나니까 전화가 딱 왔는데 “아들이 눈을 떴습니다.” 할렐루야.
그 권사의 믿음이 대단해요. 전도왕 일 뿐 아니라 기도 대장입니다. 그 아들을 살려내더라고요. 그래서 아들이 월요일에 의식을 차리고, 화요일에는 찾아온 동료들을 만나기 시작하고, 한 달이 지나니까 완전히 회복돼서 제 사무실에 와서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주일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데 막 눈물의 예배를 드렸던 장면이 기억납니다. 할렐루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드님은 지금도 신앙생활 잘하고 계시는데, 우리 최수자 권사님은 천국에 먼저 가셨으니까 ‘이렇게 내려다보시면서 아이고 내 간증하시네.’하고 계실 텐데 여러분 믿음의 여인, 기도의 여인이 아들을 살려낸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을 가지면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절망에 처해서도 어떤 문제에 있어도 주님 앞에 나와 부르짖어 기도하면 주님이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시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으로 넘치게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응답으로 기적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면서 고비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사람을 찾아다니지 마십시오. 주님 앞에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도움은 일시적인 것이고 한계가 있어서 우리 삶에 완전한 답을 주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삶의 유일한 희망이 되고 모든 문제의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나갈 때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풍성히 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 앞에 주의 도우심을 간구하면서 함께 찬양합니다.
<복음성가 176장: 날마다 숨쉬는 순간 마다>
1절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내 앞에 어려운 일보네
주님 앞에 이 몸을 맡길 때
슬픔 없네 두려움 없네
주님의 그 자비로운 손길
항상 좋은 것 주시도다
사랑스레 아픔과 기쁨을 수고와 평화와 안식을
2절 날마다 주님 내 곁에 계셔
자비로 날 감싸 주시네
주님 앞에 이 몸을 맡길 때
힘 주시네 위로함 주네
어린 나를 품에 안으시사
항상 평안함 주시도다
내가 살아 숨을 쉬는 동안
살피신다 약속하셨네
3절 인생의 어려운 순간마다
주의 약속 생각해보네
내 맘 속에 믿음 잃지 않고
말씀 속에 위로를 얻네
주님의 도우심 바라보며
모든 어려움 이기도다
흘러가는 순간순간 마다
주님 약속 새겨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에게 절대 절망의 순간이 다가왔다고 할지라도 절대로 여러분 믿음의 끈을 놓지 말고 주님 꼭 붙잡고 “울지 말라, 울지 말라.” 주님 음성 듣고 다 일어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절망의 순간 고비고비마다 통곡과 눈물로 밤을 세울 때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 “울지 말라. 울지 말라.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내 딸아 울지 말라.” 우리를 위로해주는 그 위로와 그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짧은 인생길 살아가는 동안 우리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인도하여 주시고 주님의 평안함으로 넘치게 채워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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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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