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받은 인생
2023.09.17
/ 창세기 1장 26~28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세기 1장 26~28절)
오늘 창세기 1장 26~28절 말씀 가지고 “복 받은 인생”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면서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살아갈 때, 내가 누구인지 나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복 받은 인생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복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보통 사람이 아니라 복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죄와 절망 가운데 살던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새사람이 되어서 옛사람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이 되어 복 받은 인생으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나는 복 받은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내 일생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시며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다.’ 이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뉴스를 보면 충격적인 소식들을 접하게 됩니다. 어제 뉴스에 한 가족이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죽었는지 그 사연을 알아보고 있지만, 아직 알려진 건 없습니다. 그러나 온 가족 다섯이 다 죽었어요.
여러분 그렇게 인생을 마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잘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행복하고 의미 있고 보람된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쁨이 넘쳐나서 그 은혜로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이 우리 일생 동안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놀라운 복을 우리에게 넘치게 부어주실 것입니다.
1.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1장 26~27절은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눈, 코, 입, 귀 이와 같은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인 영적인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영적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 모든 동물은 혼은 있지만 영이 없습니다. 그래서 동물은 죽으면 혼은 떠나가고 그 몸은 땅에 묻히고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죽는 그 순간 육신은 땅에 묻히지만 영은 영원한 천국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영원한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웬일인지 웬 은혜인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우리는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복 받은 인생으로 살다가 주님이 오라 부르시는 그때 영원한 천국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임하여서 우리가 영적인 존재로 변화되었기 때문에 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다가 주님이 부르실 때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는 삶의 목적은 첫째도 하나님의 영광이요, 둘째도 하나님의 영광이요, 마지막도 하나님의 영광인 것입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그 사업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업이 되어야 되고,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것이 되고,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또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일하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찬양하고 연주하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43장 7절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21절입니다.
이 백성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우리가 깨어나서 하루 종일 하는 일들의 과정 속에서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야 되고 주님께 감사와 찬송이 드려지는 삶이 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우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나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을 하는 것은 우리의 창조된 목적과 어긋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창조된 목적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됩니다. 미워하고 다투고 싸우고 나누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 때문에 생겨난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와 같은 모습을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남을 헐뜯고 남이 잘되는 걸 배 아파하고 그냥 나만 위해서 자기의 바벨탑을 쌓아가는 그러한 모습을 철저하게 회개하고 첫째도 하나님의 영광, 둘째도 하나님의 영광, 마지막도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 받은 인간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주셨을 뿐만 아니라 만물의 영장으로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8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시고 만물의 영장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온 우주 만물의 관리자로 우리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권세로 이 세상 만물을 다스리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물질의 노예가 되어서 살면 안 됩니다. 물질은 우리가 잘 쓰라고 다스리라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지 물질의 노예가 되어서 물질 때문에 시험에 들고, 문제가 생겨나고,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돈을 많이 가진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고 났을 때 자녀들이 그날부터 물질 때문에 마음이 갈라서고 나중에는 원수가 되기도 하는 일이 생겨나는 것을 종종 봅니다.
여러분 물질의 다스림을 받으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물질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스리라고 주신 것에 왜 우리가 노예가 되어서 삽니까? 여러분 축복을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물질을 다스리며 사시길 바랍니다. 물질을 나눠주면서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을 살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라고 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물질을 다스리고 환경을 다스리고 절망을 다스리고 문제를 다스리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스리는 권세를 우리에게 이미 주셨습니다.
창세기 1장 26절을 보니까.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여러분 다스리는 권한을 주셨는데 왜 우리가 그것들의 노예가 되어서 그걸로 인해서 시험에 들고 상처받고 살아갑니까? 여러분 다스리는 인생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물질만 다스릴 뿐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는 문제도 절망도 고통도 다스려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를 못 다스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감정을 못 다스려서 걸핏하면 화를 내고 다투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마음속에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그러한 은혜가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다 다스리라고 우리에게 다스리는 권한을 주셨는데 감정의 노예가 되고 물질의 노예가 되고 환경의 노예가 되면 우리 스스로 무너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부터는 가슴을 당당히 펴고 ‘나는 다스리는 축복을 받았다.’ 예수님이 큰 은혜와 축복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예수님은 한평생을 다스렸습니다. 죽음까지도 다스린 예수님을 우리가 구세주로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풍랑이 일어났을 때 주님 말씀하십니다. “풍랑아 잠잠하라. 바다야 잠잠하라.” 말씀 한마디에 풍랑과 바다가 잠잠해졌습니다.
예수님 앞에선 죽음도 예수님 앞에 감히 어떻게 대항하지 못했습니다. 죽음에 처한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시고 “나사로야 나오라!”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일어나라”라고 말씀으로 살리신 것입니다. 죽음도 다스리신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죽는 그 순간 영원한 세계에 살아가는 영생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죽는 순간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영생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 안에서 승리의 삶, 축복의 삶, 형통의 삶을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신명기 28장 12~13절에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야훼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야훼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야훼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할렐루야!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데 남에게 꾸어줄지언정 꾸지 아니하고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아니하며 이 세상 모든 것을 다스리며 복 받은 인생으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세워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복 받은 인생입니다. 왜 인생을 쩨쩨하게 삽니까? 왜 인생을 밤낮 시험에 들어서 낙심하며 삽니까? 왜 밤낮 돈을 꾸며 삽니까? 주님 앞에서 가슴을 펴고 “주여, 이제 우리에게 주신 이 축복을 누리며 살게 하여주옵소서. 베풀며 살게 하여주옵소서. 나누며 살게 하여주옵소서. 다스림의 축복을 주셨으니 다스림의 권세를 우리가 회복하여 일생 살아가는 동안 앞으로 다스림의 인생을 살게 하여주시옵소서.”
마음을 다스리고 물질을 다스리고 환경을 다스리고 가정을 다스리고 절망을 다스리고 질병을 다스리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
그런데 이와 같은 삶을 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면 다스림의 축복은 의미가 없습니다.
창세기 1장 31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여섯째 날 인간을 지으시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그렇게 인정받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말과 뜻과 행동이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그와 같은 삶이되길 바랍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사람들이 나에게 뭐라 그랬다고 시험에 들고 낙심하고 상처받습니다. 말 한마디에 누가 날 욕했다 그러면 막 분노에 떨며 잠을 못 잡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것이 더 중요한데 ‘하나님이 나를 보기에 심히 좋았더라.’ 그러면 문제가 다 해결된 것입니다.
사람이 날 어떻게 보든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볼 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심히 좋았더라! 할렐루야!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보는 것은 둘째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나님께 인정받으면 만사가 형통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은혜고 그것이 기쁨이고 그것이 축복이고 그것이 기적이고 그것이 우리의 삶의 생명이고 목적인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그래서 사도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권면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 보니까.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주님의 일을 하면서 사람들의 비위 맞추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 우선되었다면 난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사도바울이 고백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첫째도 하나님의 영광, 둘째도 하나님의 영광, 마지막도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그 삶을 한평생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귀히 쓰임 받고 인정받는 위대한 사도가 된 것입니다. 그가 30살 때까지는 자기를 위해 살았지만, 예수님을 만난 다음 그의 운명이 바뀌어졌습니다.
그래서 남은 그 생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마지막 네로 시대에 그가 로마 원형 경기장에서 참수형을 당해 순교했지만, 그 순교하는 그 순간까지 그 모습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그는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금 면류관을 쓰고 하나님 앞에 인정받고 칭찬받는 위대한 종으로 지금도 주님을 찬양하며 하나님 보좌 옆에 서서 지금 우리의 예배 하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을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그와 같은 인생을 살길 바랍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사람들이 나에게 뭐라고 하든 그게 뭐 중요합니까? 하나님이 나를 인정하시고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시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나의 일생을 인도하고 계시는데 여러분,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일꾼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에녹이 그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365년을 살았는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얼마나 하나님을 감동하게 해 드리는 삶을 살았던지 ‘이제 너는 이 죄악 많은 세상에 살지 말고 내가 있는 천국에 와라.’ 그래서 죽음도 보지 않고 천국에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한 번 살면 멋있게 살아야지, 왜 쩨쩨하게 밤낮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시험 들고 상처받고 분노하고 미워하고 다투며 살아갑니까? 여러분 한 번뿐인 인생입니다. 두 번 살지 않습니다. 한 번 살 때 바르게 살고 의미 있게 살고 행복하게 살고 기적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11장 5절은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그 죄악이 만연한 세상에 그가 어떻게 하나님을 감동하게 해 드렸던지 365년을 살면서 하나님을 늘 기쁘시게 해드려서 하나님이 ‘더 이상 이 죄악 많은 세상에 너 같은 의인이 죄의 때에 묻을 그러한 환경에 살 이유가 없다. 이제 올라와라. 나와 같이 지내자.’ 그래서 에녹은 365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나라에 들림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루를 살아도 하나님과 동행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주여’ 하고 일어났다가 저녁때 ‘주여, 죄송합니다.’ 이렇게 하루를 마치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닌데 에녹은 365년을 동행하며 살았어요. 여러분 에녹이 그렇게 살았으면 에녹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니까 우리도 그렇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이제 이후로는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여, 우리와 함께해 주셔서 우리도 에녹처럼 살게 하여주옵소서. 삶에 매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루하루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하나님을 감동하게 해 드리는 삶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우리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내가 일하는 그 일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런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인정받고 살고 계신 윤주홍 장로님을 소개하기를 원합니다. 평생을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의 주치의로 살아온 봉천동의 슈바이처 윤주홍 장로님. 1973년 당시 판자촌이었던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윤주홍 의원을 개원한 다음 이후에 아픈 환자들을 돌보면서 가난한 주민들을 위해서 다른 지역의 절반 정도의 진료비를 받고, 그나마 돈이 없는 사람들은 무상으로 치료해 주며 평생 가난한 자들의 친구로, 의사로 살다가 2019년 건강이 악화된 아내를 돌보기 위해서 병원 문을 닫았습니다.
하루는 새벽 왕진을 다녀오는 길에 그가 강도 2명을 만났습니다. 강도들이 칼을 내보이며 가진 거 다 내놓으라고 그랬는데 가진 것은 왕진 가방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강도 둘 중에 한 사람이 다른 강도를 툭툭 치더니 이 사람 우리 아이 고쳐준 사람이니까 손대지 말라고 그래서 아무도 다치지도 않고 돌아왔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근데 원래부터 윤주홍 원장님이 그런 의사가 아니었습니다. 의대를 졸업한 첫해에 그냥 돈 버는 재미에 빠져서 의사가 되면 가난한 이를 돌보겠다고 한 서원도 잊어버리고, 돈을 벌기 위해서 주일에도 예배를 드리지 않고 진료하며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다가 1974년 교통사고로 피투성이가 된 아이가 실려 들어와서 응급실에서 그 아이를 치료하려고 보는데 자기 딸이에요. 자기 딸이 교통사고로 피투성이가 되어 들어왔는데 그의 품에서 죽었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교통사고로 자기 품에 죽자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병원 문을 닫았습니다. ‘내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이 내 사랑하는 딸을 데려가셨으니까 난 이제 의사를 관두고 안 한다.’ 병원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그러다 이듬해 봄에 딸의 무덤을 갔다 오는데 사실 사랑하는 딸을 잃은 아빠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때 열이 펄펄 나는 어린아이를 안고 울고 있는 가난한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의사니까 그냥 지나갈 수 없어서 그 딸아이를 업고 선배가 운영하는 병원으로 달려가서 “내가 이 아이의 치료비를 부담할 테니까 아이를 좀 진료해 달라.”라고 병원에 맡깁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거기에서 이제 병원에서 치료받았는데, 이 어린 소녀가 가만히 얘기 들어보니까 자기를 업고 온 아저씨가 의사인 걸 알게 됐어요.
그 소녀가 윤 원장에게 물었습니다. “아저씨도 의사야? 그런데 의사 옷을 안 입어? 청진기도 귀에 안대네?”
그 말이 그에게는 주님의 음성으로 들려왔습니다. 그가 소녀를 위해 오랜만에 가운을 입고 청진기를 딱 대는 순간 천지를 깨우는 듯한 심장의 고동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오, 하나님! 작은 자를 돌보지 않고 세상을 따르던 저를 이제야 깨우십니까. 거기서 그는 거꾸러졌습니다. 그가 눈물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그는 당시 빈민들로 가득했던 봉천동에 병원을 다시 세웁니다.
1994년부터 관악장학회를 설립해서 돈이 없는 아이들에게, 돈이 없어 학업을 이어가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보육원과 무의촌에 나가서 무료로 진료하면서 자신의 삶을 가난한 자들에게 내어주었습니다.
일평생 봉사 나눔을 실천해 온 윤 원장님은 사회를 위해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서울시민대상, 국민의장 동백장, 청룡봉사상 등을 수상하고 모교인 고려대학교에는 의학발전기금으로 10억 원을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할렐루야! 고려대의료원은 의과대학 418호를 '윤주홍 강의실'로 명명하여 윤 원장의 뜻을 기리고 있습니다. 윤 원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그렇게 나누고 봉사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죠. 없는 사람에게는 삼분의 일도 힘든 법이에요. 그래도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무리 힘들어도 1할 중 2푼은 어려운 사람을 도우라는 거예요. 힘들 때 나누는 건 신체의 일부를 떼어내는 고통일 수 있어요.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야 해요. 그래야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법이거든요.
할렐루야! 제가 이분에 대한 자료를 여러 곳에서 찾았는데, 이분에 대해서 취재한 모든 기자가 극찬하고 있습니다. 모든 기자가 다 이분을 취재하다 감동해서 칭송했는데, 믿지 않는 기자들도 이분이 크리스천이라는 것에 대해 감동했습니다.
한 번 살면 이렇게 살아야지 왜 예수 믿는 사람이 부끄러운 삶을 삽니까? 세상에서 왜 욕을 먹으며 삽니까? ‘저 사람도 크리스천이냐?’는 말을, 왜 그런 비판을 왜 듣습니까? 여러분 한 번 살려면 이렇게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길 바랍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귀한 역사를 이뤄나가면 하나님이 한평생 살아가는 동안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만사형통케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은 짧게 지나갑니다. 그러나 짧은 인생길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위대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찬송가 384장 (통 434) :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1절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2절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어려운 일 당한 때도 족한 은혜 주시네
나는 심히 고단하고 영혼 매우 갈하나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3절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그의 사랑 어찌 큰지 말로 할 수 없도다
성령 감화 받은 영혼 하늘 나라 갈 때에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하셨네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하셨네
오늘 창세기 1장 26~28절 말씀 가지고 “복 받은 인생”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면서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살아갈 때, 내가 누구인지 나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복 받은 인생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복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보통 사람이 아니라 복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죄와 절망 가운데 살던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새사람이 되어서 옛사람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이 되어 복 받은 인생으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나는 복 받은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내 일생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시며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다.’ 이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뉴스를 보면 충격적인 소식들을 접하게 됩니다. 어제 뉴스에 한 가족이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죽었는지 그 사연을 알아보고 있지만, 아직 알려진 건 없습니다. 그러나 온 가족 다섯이 다 죽었어요.
여러분 그렇게 인생을 마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잘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행복하고 의미 있고 보람된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쁨이 넘쳐나서 그 은혜로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이 우리 일생 동안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놀라운 복을 우리에게 넘치게 부어주실 것입니다.
1.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1장 26~27절은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눈, 코, 입, 귀 이와 같은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인 영적인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영적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 모든 동물은 혼은 있지만 영이 없습니다. 그래서 동물은 죽으면 혼은 떠나가고 그 몸은 땅에 묻히고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죽는 그 순간 육신은 땅에 묻히지만 영은 영원한 천국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영원한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웬일인지 웬 은혜인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우리는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복 받은 인생으로 살다가 주님이 오라 부르시는 그때 영원한 천국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임하여서 우리가 영적인 존재로 변화되었기 때문에 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다가 주님이 부르실 때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는 삶의 목적은 첫째도 하나님의 영광이요, 둘째도 하나님의 영광이요, 마지막도 하나님의 영광인 것입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그 사업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업이 되어야 되고,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것이 되고,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또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일하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찬양하고 연주하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43장 7절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21절입니다.
이 백성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우리가 깨어나서 하루 종일 하는 일들의 과정 속에서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야 되고 주님께 감사와 찬송이 드려지는 삶이 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우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나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을 하는 것은 우리의 창조된 목적과 어긋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창조된 목적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됩니다. 미워하고 다투고 싸우고 나누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 때문에 생겨난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와 같은 모습을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남을 헐뜯고 남이 잘되는 걸 배 아파하고 그냥 나만 위해서 자기의 바벨탑을 쌓아가는 그러한 모습을 철저하게 회개하고 첫째도 하나님의 영광, 둘째도 하나님의 영광, 마지막도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 받은 인간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주셨을 뿐만 아니라 만물의 영장으로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8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시고 만물의 영장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온 우주 만물의 관리자로 우리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권세로 이 세상 만물을 다스리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물질의 노예가 되어서 살면 안 됩니다. 물질은 우리가 잘 쓰라고 다스리라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지 물질의 노예가 되어서 물질 때문에 시험에 들고, 문제가 생겨나고,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돈을 많이 가진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고 났을 때 자녀들이 그날부터 물질 때문에 마음이 갈라서고 나중에는 원수가 되기도 하는 일이 생겨나는 것을 종종 봅니다.
여러분 물질의 다스림을 받으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물질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스리라고 주신 것에 왜 우리가 노예가 되어서 삽니까? 여러분 축복을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물질을 다스리며 사시길 바랍니다. 물질을 나눠주면서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을 살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라고 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물질을 다스리고 환경을 다스리고 절망을 다스리고 문제를 다스리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스리는 권세를 우리에게 이미 주셨습니다.
창세기 1장 26절을 보니까.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여러분 다스리는 권한을 주셨는데 왜 우리가 그것들의 노예가 되어서 그걸로 인해서 시험에 들고 상처받고 살아갑니까? 여러분 다스리는 인생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물질만 다스릴 뿐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는 문제도 절망도 고통도 다스려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를 못 다스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감정을 못 다스려서 걸핏하면 화를 내고 다투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마음속에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그러한 은혜가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다 다스리라고 우리에게 다스리는 권한을 주셨는데 감정의 노예가 되고 물질의 노예가 되고 환경의 노예가 되면 우리 스스로 무너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부터는 가슴을 당당히 펴고 ‘나는 다스리는 축복을 받았다.’ 예수님이 큰 은혜와 축복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예수님은 한평생을 다스렸습니다. 죽음까지도 다스린 예수님을 우리가 구세주로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풍랑이 일어났을 때 주님 말씀하십니다. “풍랑아 잠잠하라. 바다야 잠잠하라.” 말씀 한마디에 풍랑과 바다가 잠잠해졌습니다.
예수님 앞에선 죽음도 예수님 앞에 감히 어떻게 대항하지 못했습니다. 죽음에 처한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시고 “나사로야 나오라!”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일어나라”라고 말씀으로 살리신 것입니다. 죽음도 다스리신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죽는 그 순간 영원한 세계에 살아가는 영생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죽는 순간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영생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 안에서 승리의 삶, 축복의 삶, 형통의 삶을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신명기 28장 12~13절에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야훼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야훼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야훼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할렐루야!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데 남에게 꾸어줄지언정 꾸지 아니하고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아니하며 이 세상 모든 것을 다스리며 복 받은 인생으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세워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복 받은 인생입니다. 왜 인생을 쩨쩨하게 삽니까? 왜 인생을 밤낮 시험에 들어서 낙심하며 삽니까? 왜 밤낮 돈을 꾸며 삽니까? 주님 앞에서 가슴을 펴고 “주여, 이제 우리에게 주신 이 축복을 누리며 살게 하여주옵소서. 베풀며 살게 하여주옵소서. 나누며 살게 하여주옵소서. 다스림의 축복을 주셨으니 다스림의 권세를 우리가 회복하여 일생 살아가는 동안 앞으로 다스림의 인생을 살게 하여주시옵소서.”
마음을 다스리고 물질을 다스리고 환경을 다스리고 가정을 다스리고 절망을 다스리고 질병을 다스리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
그런데 이와 같은 삶을 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면 다스림의 축복은 의미가 없습니다.
창세기 1장 31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여섯째 날 인간을 지으시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그렇게 인정받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말과 뜻과 행동이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그와 같은 삶이되길 바랍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사람들이 나에게 뭐라 그랬다고 시험에 들고 낙심하고 상처받습니다. 말 한마디에 누가 날 욕했다 그러면 막 분노에 떨며 잠을 못 잡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것이 더 중요한데 ‘하나님이 나를 보기에 심히 좋았더라.’ 그러면 문제가 다 해결된 것입니다.
사람이 날 어떻게 보든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볼 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심히 좋았더라! 할렐루야!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보는 것은 둘째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나님께 인정받으면 만사가 형통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은혜고 그것이 기쁨이고 그것이 축복이고 그것이 기적이고 그것이 우리의 삶의 생명이고 목적인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그래서 사도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권면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 보니까.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주님의 일을 하면서 사람들의 비위 맞추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 우선되었다면 난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사도바울이 고백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첫째도 하나님의 영광, 둘째도 하나님의 영광, 마지막도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그 삶을 한평생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귀히 쓰임 받고 인정받는 위대한 사도가 된 것입니다. 그가 30살 때까지는 자기를 위해 살았지만, 예수님을 만난 다음 그의 운명이 바뀌어졌습니다.
그래서 남은 그 생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마지막 네로 시대에 그가 로마 원형 경기장에서 참수형을 당해 순교했지만, 그 순교하는 그 순간까지 그 모습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그는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금 면류관을 쓰고 하나님 앞에 인정받고 칭찬받는 위대한 종으로 지금도 주님을 찬양하며 하나님 보좌 옆에 서서 지금 우리의 예배 하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을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그와 같은 인생을 살길 바랍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사람들이 나에게 뭐라고 하든 그게 뭐 중요합니까? 하나님이 나를 인정하시고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시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나의 일생을 인도하고 계시는데 여러분,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일꾼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에녹이 그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365년을 살았는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얼마나 하나님을 감동하게 해 드리는 삶을 살았던지 ‘이제 너는 이 죄악 많은 세상에 살지 말고 내가 있는 천국에 와라.’ 그래서 죽음도 보지 않고 천국에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한 번 살면 멋있게 살아야지, 왜 쩨쩨하게 밤낮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시험 들고 상처받고 분노하고 미워하고 다투며 살아갑니까? 여러분 한 번뿐인 인생입니다. 두 번 살지 않습니다. 한 번 살 때 바르게 살고 의미 있게 살고 행복하게 살고 기적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11장 5절은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그 죄악이 만연한 세상에 그가 어떻게 하나님을 감동하게 해 드렸던지 365년을 살면서 하나님을 늘 기쁘시게 해드려서 하나님이 ‘더 이상 이 죄악 많은 세상에 너 같은 의인이 죄의 때에 묻을 그러한 환경에 살 이유가 없다. 이제 올라와라. 나와 같이 지내자.’ 그래서 에녹은 365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나라에 들림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루를 살아도 하나님과 동행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주여’ 하고 일어났다가 저녁때 ‘주여, 죄송합니다.’ 이렇게 하루를 마치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닌데 에녹은 365년을 동행하며 살았어요. 여러분 에녹이 그렇게 살았으면 에녹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니까 우리도 그렇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이제 이후로는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여, 우리와 함께해 주셔서 우리도 에녹처럼 살게 하여주옵소서. 삶에 매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루하루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하나님을 감동하게 해 드리는 삶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우리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내가 일하는 그 일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런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인정받고 살고 계신 윤주홍 장로님을 소개하기를 원합니다. 평생을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의 주치의로 살아온 봉천동의 슈바이처 윤주홍 장로님. 1973년 당시 판자촌이었던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윤주홍 의원을 개원한 다음 이후에 아픈 환자들을 돌보면서 가난한 주민들을 위해서 다른 지역의 절반 정도의 진료비를 받고, 그나마 돈이 없는 사람들은 무상으로 치료해 주며 평생 가난한 자들의 친구로, 의사로 살다가 2019년 건강이 악화된 아내를 돌보기 위해서 병원 문을 닫았습니다.
하루는 새벽 왕진을 다녀오는 길에 그가 강도 2명을 만났습니다. 강도들이 칼을 내보이며 가진 거 다 내놓으라고 그랬는데 가진 것은 왕진 가방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강도 둘 중에 한 사람이 다른 강도를 툭툭 치더니 이 사람 우리 아이 고쳐준 사람이니까 손대지 말라고 그래서 아무도 다치지도 않고 돌아왔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근데 원래부터 윤주홍 원장님이 그런 의사가 아니었습니다. 의대를 졸업한 첫해에 그냥 돈 버는 재미에 빠져서 의사가 되면 가난한 이를 돌보겠다고 한 서원도 잊어버리고, 돈을 벌기 위해서 주일에도 예배를 드리지 않고 진료하며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다가 1974년 교통사고로 피투성이가 된 아이가 실려 들어와서 응급실에서 그 아이를 치료하려고 보는데 자기 딸이에요. 자기 딸이 교통사고로 피투성이가 되어 들어왔는데 그의 품에서 죽었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교통사고로 자기 품에 죽자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병원 문을 닫았습니다. ‘내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이 내 사랑하는 딸을 데려가셨으니까 난 이제 의사를 관두고 안 한다.’ 병원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그러다 이듬해 봄에 딸의 무덤을 갔다 오는데 사실 사랑하는 딸을 잃은 아빠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때 열이 펄펄 나는 어린아이를 안고 울고 있는 가난한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의사니까 그냥 지나갈 수 없어서 그 딸아이를 업고 선배가 운영하는 병원으로 달려가서 “내가 이 아이의 치료비를 부담할 테니까 아이를 좀 진료해 달라.”라고 병원에 맡깁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거기에서 이제 병원에서 치료받았는데, 이 어린 소녀가 가만히 얘기 들어보니까 자기를 업고 온 아저씨가 의사인 걸 알게 됐어요.
그 소녀가 윤 원장에게 물었습니다. “아저씨도 의사야? 그런데 의사 옷을 안 입어? 청진기도 귀에 안대네?”
그 말이 그에게는 주님의 음성으로 들려왔습니다. 그가 소녀를 위해 오랜만에 가운을 입고 청진기를 딱 대는 순간 천지를 깨우는 듯한 심장의 고동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오, 하나님! 작은 자를 돌보지 않고 세상을 따르던 저를 이제야 깨우십니까. 거기서 그는 거꾸러졌습니다. 그가 눈물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그는 당시 빈민들로 가득했던 봉천동에 병원을 다시 세웁니다.
1994년부터 관악장학회를 설립해서 돈이 없는 아이들에게, 돈이 없어 학업을 이어가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보육원과 무의촌에 나가서 무료로 진료하면서 자신의 삶을 가난한 자들에게 내어주었습니다.
일평생 봉사 나눔을 실천해 온 윤 원장님은 사회를 위해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서울시민대상, 국민의장 동백장, 청룡봉사상 등을 수상하고 모교인 고려대학교에는 의학발전기금으로 10억 원을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할렐루야! 고려대의료원은 의과대학 418호를 '윤주홍 강의실'로 명명하여 윤 원장의 뜻을 기리고 있습니다. 윤 원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그렇게 나누고 봉사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죠. 없는 사람에게는 삼분의 일도 힘든 법이에요. 그래도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무리 힘들어도 1할 중 2푼은 어려운 사람을 도우라는 거예요. 힘들 때 나누는 건 신체의 일부를 떼어내는 고통일 수 있어요.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야 해요. 그래야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법이거든요.
할렐루야! 제가 이분에 대한 자료를 여러 곳에서 찾았는데, 이분에 대해서 취재한 모든 기자가 극찬하고 있습니다. 모든 기자가 다 이분을 취재하다 감동해서 칭송했는데, 믿지 않는 기자들도 이분이 크리스천이라는 것에 대해 감동했습니다.
한 번 살면 이렇게 살아야지 왜 예수 믿는 사람이 부끄러운 삶을 삽니까? 세상에서 왜 욕을 먹으며 삽니까? ‘저 사람도 크리스천이냐?’는 말을, 왜 그런 비판을 왜 듣습니까? 여러분 한 번 살려면 이렇게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길 바랍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귀한 역사를 이뤄나가면 하나님이 한평생 살아가는 동안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만사형통케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은 짧게 지나갑니다. 그러나 짧은 인생길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위대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찬송가 384장 (통 434) :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1절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2절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어려운 일 당한 때도 족한 은혜 주시네
나는 심히 고단하고 영혼 매우 갈하나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3절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그의 사랑 어찌 큰지 말로 할 수 없도다
성령 감화 받은 영혼 하늘 나라 갈 때에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하셨네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하셨네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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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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