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
2023.09.10
/ 고린도후서 7장 8~10절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린도후서 7장 8~10절)
이 세상에 근심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일생을 사는 동안 크고 작은 근심, 걱정들이 우리를 둘러쌉니다. 근데 근심을 사서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냥 입만 열면 근심하고 걱정하고 그것이 원망과 불평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짚신 장수, 우산 장수 두 아들을 둔 어머니 얘기를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큰아들은 나가서 짚신을 팔고 둘째 아들은 나가서 우산을 파는데 날이 좋으면 “아이고 우산 장수 우리 아들 우산 못 팔겠네.” 걱정하고 날이 비가 오거나 날이 안 좋으면 “아이고 우리 짚신 장수 우리 아들 어떡하나.” 그냥 매일 같이 근심합니다. 날이 좋으면 좋아서 근심하고 날이 나쁘면 나빠서 근심합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분이 얘기합니다. “어머니 생각을 바꾸세요. 날이 좋으면 큰아들이 짚신을 많이 파니 좋고, 날이 비 오고 궂으면 둘째 아들이 우산을 많이 팔아서 좋으니 비가와도 좋고 날이 개어도 좋고 다 좋은 게 아닙니까? 늘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걱정하지 말고 기뻐하며 사세요.” 그래서 그날 이후로 생각을 바꾸고 다시는 근심 걱정하지 아니하고 날마다 기뻐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다 알아도 안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문제는 내 자신이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른 것입니다. 염려, 근심, 걱정은 백해무익합니다. 염려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근심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가 지금 문제가 생겼는데 근심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지금 몸이 아파 누웠는데. 염려한다고 해서 몸이 갑자기 좋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놓고 염려 근심 걱정한다고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마음을 바꿔야 먹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자세로 살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세계적인 문호 셰익스피어는 이와 같이 말을 했습니다.
“그대의 마음을 웃음과 기쁨으로 감싸라. 그러면 천 가지의 해로움을 막아주고 생명을 연장시켜 줄 것이다.”
염려하고 근심, 걱정하는 그 시간에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고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 이와 같이 권면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사도 바울은 염려할 시간에 근심할 시간에 걱정할 시간에 기도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라고 권면합니다. 성령님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염려할 시간에 기도하라. 걱정할 시간에 감사하고 찬양하라. 그러면 주님이 주신 평안함이 그 마음 가운데 넘쳐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빌립보서 4장 7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할렐루야! 여러분, 마음에 이 시간 주님이 주시는 평안함이 넘쳐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의 한 부분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이 제2차 선교 여행 때 1년 6개월 동안 머물면서 세운 교회입니다. 고린도는 그리스 남부 아가야 지방의 수도로 동서무역의 요충지로서 상업이 발달되고 사람들이 풍요로운 삶을 살았던 도시입니다. 그러나 비너스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의 도시요, 도덕적으로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이곳에서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의 반대와 핍박을 받으면서도 눈물로 교회를 세워 교회가 크게 부흥하고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견고히 세운 다음 에베소로 또 선교지를 옮겨서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우는 일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흥하던 교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교회 내에 ‘끼리끼리’ 파벌이 생겨난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예수님을 머리로 한 한몸인 것입니다. 절대로 교회 내에서 당을 지어 갈등과 대립이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우리나라의 정치하는 사람들이 아주 잘못된 것을 갖고 들어왔어요. 지방색을 갖고 와서 표를 얻으려고 싸움을 붙여놓은 것입니다. 태어나 보니까 서울이고 태어나 보니까 천안이고 태어나 보니까 광주고 태어나 보니까 부산인데 그게 무슨 상관이 있어서 우리 영남은 영남, 호남은 호남 이렇게 선거할 때마다 싸움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주님 안에서 하나인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는 지역감정도 없고 주님 안에서는 신분 차이도 없고 배웠으나 못 배웠으나 많이 가졌으나 못 가졌으나 어디서 태어났거나 우리는 다 한 형제와 자매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 내에서 파벌이 생겨났어요. 아볼로파, 게바파 막 이렇게 파들을 만들어서 서로 대립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고린도 교회에 도덕적으로 심각한 문제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그들을 책망하면서 보낸 편지가 고린도전서, 후서입니다. 첫 번째 보낸 편지가 전서고 두 번째 보낸 편지가 후서입니다.
1. 사망에 이르게 하는 세상 근심
오늘 본문에 보니까 두 가지 근심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 근심의 첫 번째 것은 세상 사망에 이르게 하는 세상 근심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7장 10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세상의 염려 근심 걱정은 우리를 병들게 합니다.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올 때 우리가 염려한다고 해서 절대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문제가 다가왔을 때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 17장 22절은 말씀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을 지키고 주님 앞에서 평안함을 가져야 합니다. 다윗이 고난 중에 너무나 괴롭고 힘들어서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시편 22편 14~15절입니다.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누구나 염려 근심 걱정으로 고난의 밤을 지냅니다. 그러나 염려할 시간에 근심할 시간에 걱정할 시간에 모든 문제를 주님 앞에 내려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염려 근심 걱정을 내려놓으라고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6장 25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염려 근심 걱정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32절입니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염려 근심 걱정은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고 나서 우리가 변화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축복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이제는 염려 근심 걱정이 있을 때 주님께 다 내려놓고 주님 앞에 기도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며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때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가 하나의 제국이었는데 그때 실존주의 소설가인 유대계 프란츠 카프카는1915년 『변신』이라고 하는 아주 유명한 소설을 썼습니다.
이 소설은 인간의 실존에 대해서 기록한 것인데, 주인공인 그레고리가 잠을 자고 일어나서 깨보니까 자기가 거대하고 흉측한 벌레로 바뀌어져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 깨었는데 자기가 거대한 벌레로 변해 있어서 이제 어찌할지 모르고 있는데 가족들이 방문을 열어보니까 자기 아들은 사라지고 거대한 벌레가 거기 있어요.
보니까 자기 아들이 밤새 벌레로 바뀐 거예요. 그래서 문을 닫아두고 못 나오게 하고 먹을 것을 주고 그때로부터 온 집안이 근심에 가득 쌓이게 됐습니다. 이 아들이 나가서 유일하게 외판 사원을 하면서 돈을 벌어 와서 집안의 생계를 유지했는데, 아버지는 일하지 않고 그냥 집에서 놀고 있었기에 갑자기 생활이 어려워졌습니다.
오빠를 사랑하던 누이동생도 오빠가 이렇게 된 모습을 보고 너무나 근심하고 걱정해서 그 마음이 눌려서 어떻게 할 바를 몰랐습니다. 온 집안의 근심거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벌레가 돼 그 방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먹을 것을 던져주면 먹는 그러한 불쌍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너무 화가 나서 그냥 화가 나는 걸 참지 못해서 손에 들고 있던 사과를 내던졌는데 그것이 아들의 등에 꽂혀버렸어요. 그 안에서 염증이 생기고 곪으면서 한 달 내내 앓다가 죽었습니다. 죽고 나니깐 흉측한 벌레로, 그가 죽은 시체로 되어 누워 있는데 가사도우미 할머니가 왔다가 그걸 보고 쓰레기 더미에 같이 내다 버리는 것이 소설의 끝입니다.
이것은 절망 가운데 살다가 흉측한 괴물처럼 되어서 병들어 죽어가는 우리 인간의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사는 사람은 그렇게 결국 흉측한 벌레처럼 되어서 절망에 쌓여서 병들어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벌레가 되어서 절망 속에 죽어간 것처럼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근심 걱정이 가득하면 그것이 우리의 마음에 병을 갖고 오고 그것이 우리를 죽음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인간의 모습은 절망 그 자체인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주님 안에서 꿈과 희망을 가지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 어디에서도 꿈과 희망을 찾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근심과 걱정 속에 살다가 흉측한 벌레처럼 변화되어서 질병 속에 죽어갈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입니다.
이와 같은 절망 가운데 누가 우리를 건져낼 수가 있습니까? 우리를 이 죄와 사망의 몸에서 건져낼 자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탄식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4).
그렇습니다. 절망에서 우리를 건져낼 그 누구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실 분은 그 누구도 없고 오직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죄와 절망 가운에서 건져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절망에 처한 우리에게 지금 손을 내밀어 말씀하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세상의 그 어떤 종교 지도자도 어떤 철학자도 이와 같은 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모두가 문제를 갖고 와서 문제 속에 갇혀 있다가 문제 속에 죽어갔는데 예수님만이 답을 주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만이 우리 마음에 참된 평안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염려 근심 걱정을 해결해 줄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우리 삶에 예수님 한 분만으로 기뻐하고 감사하고 만족하며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오늘 말씀 보니까 둘째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고린도후서 7장 9절입니다.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을 때 거룩한 근심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은 양심이 마비가 되어서 죄를 지으면서도 죄에 대한 그러한 뉘우침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양심을 갖고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잘못된 삶을 살 때 근심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근심은 우리를 회개로 이끌어갑니다. 다윗이 잘못했을 때 하나님 앞에 거룩한 근심을 하고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시편 38편 17~18절입니다.
“내가 넘어지게 되었고 나의 근심이 항상 내 앞에 있사오니 내 죄악을 아뢰고 내 죄를 슬퍼함이니이다.”
사람은 누구나 때때로 실수할 수 있고 잘못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즉시 우리가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거룩한 근심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여 나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잘못했나이다.” 주님 앞에 나와 회개하고 엎드려 주님 앞에 주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언제나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생각을 할 때 잘못된 말을 할 때 잘못된 행동을 할 때 회개하고 깨닫고 돌이켜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잘못된 일을 할 때 마음에 거룩한 근심이 생겨나서 주님 앞에 회개하러 나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시편 34편 18절입니다.
“야훼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7장 10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하나님은 긍휼이 무한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늘 긍휼히 보십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회개하고 나아올 때 우리 하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불도 끄지 아니하시며 사랑으로 돌보시고 붙들어 주시는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사야 42장 3절은 말씀합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시편 147편 3절입니다.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할렐루야! 주님이 우리의 고통과 괴로움을 아시고 우리를 불쌍히 보시고 우리의 상처를 치료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와 어려움 가운데 주님이 함께해 주셔서 절망에서 우리를 건져주시고 고통 가운데에서 우리를 자유케 해 주시고 주님의 은혜와 평안함이 넘쳐나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한없는 위로하심을 우리에게 넘치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위로하심
성경은 하나님의 위로하심에 대하여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우리를 회개와 구원에 이르게 하고 큰 위로함을 가져다줍니다. 거룩한 근심은 우리를 영광의 세계로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7절입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잠시 내가 고통을 당하지만, 잠시 내가 어려움을 당하지만, 잠시 내가 문제 가운데 있지만 장차 우리에게 다가올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100주년교회를 담임하시고 30년 목회를 정리하신 이재철 목사님의 책을 최근에 읽으면서 여러 가지로 느끼는 것이 많았습니다. 목사님이 설교하신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주님 일을 할 때 참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가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30년 동안 목회를 하면서 수많은 도전이 있었고 수많은 칼(공격과 비난)을 맞았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목회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목사님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매일 같이 이렇게 기도합니다. 바른 것을 분별하는 지혜와 바른 것을 실천하는 용기와 바른 것을 포기하지 않는 인내와 바르게 더불어 살아가는 은혜를 주십시오.”
할렐루야. 하나님의 붙드심과 위로하심 때문에 이재철 목사님은 30년 동안 목회를 성공적으로 잘하시고 그 사역을 마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우리 일생 다 가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붙드시고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어떠한 환난이 다가오고 문제가 다가와도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면 주님이 우리를 붙드시고 위로하시고 놀라운 은혜로 함께해 주십니다. 그래서 사랑의 주님이 이 세상에서 주지 못하는, 그 누구도 우리에게 가져다주지 못하는 참된 위로와 평안함을 우리에게 넘치게 부어주십니다.
고린도후서 1장 3~5절 입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모든 슬픔과 고통과 괴로움을 아시고 주님이 옆에 오셔서 우리를 붙드시고 도우시고 함께하시고 우리를 은혜의 자리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처를 어루만져주시고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것입니다. 절망의 자리에 슬픔의 자리에 아픔의 자리에 병상에 누워 있는 자리에 주님이 오셔서 우리를 어루만지시고 ‘내가 너와 함께 한다. 힘내라.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주님이 위로해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으로 고통 가운데 있던 한 장애인이 주님의 은혜 가운데 이제는 입으로 꿈을 그리는 미술 작가가 되었는데 그분의 이름이 임경식입니다. 손이 아닌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구필화가 임경식 작가는 19살 때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서 사고 당시 네 번째 목뼈가 부러지면서 신경이 끊어져서 목 아래로는 움직일 수 없는 지체장애인이 됐습니다. 처음에는 병원에 실려 갔을 때 ‘곧 퇴원하겠지’ 했는데 목에 호흡기를 끼고 숨을 겨우 쉬며 중환자실에 오랜 기간 누워있자 희망이 변해 절망이 됐습니다.
몸이 불편하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으니까 온갖 짜증과 불평은 가족들에게 쏟아놓았습니다. 심지어는 자기에게 음식을 먹여준 어머니에게도 “엄마, 나 더 이상 이렇게 살기 싫어. 나 좀 죽여줘”라고 말하며 엄마의 마음에 못을 박았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모든 가족이 이 아들을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어머니는 뇌졸중으로 몸의 한쪽에 마비가 와서 거동이 불편합니다. 15분이면 갈 수 있는 새벽예배를 갈 수 있는 교회를 50여 분 걸려서 겨우겨우 걸어가셔서 매일 같이 새벽기도를 하시면서 아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합니다. ‘우리 아들이 예수 믿고 변화되어서 이 절망에서 일어날 수 있게 하여주옵소서. 이 모든 어려움을 이길 수 있게 하여주옵소서.’ 눈물로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루에 아침 9시, 오후 3시, 저녁 9시 3번 시간을 정해놓고 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그러자 그 아들의 마음이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무의미하게 이렇게 무기력하게 살면 안 되겠구나. 자기 주변에 중증 장애인들이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장애를 딛고 일어나서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무엇인가 해야 되겠다’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목밖에 없으니까 입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뭔가 찾다가 사고 난 지 13년 만에 입으로 그림을 그리기로 했습니다.
유튜브를 스승 삼고 하루에 7~8시간씩 입술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립니다. 1년 후에 작품 한 점을 전시해 낸 것을 계기로 해서 현재는 한국구족화과협회 회원으로 각종 미술대회에서 입상하고 개인전까지 여는 화가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한번 집에 가서 펜 물고 한번 해보세요. 잘 안 돼요. 그런데 그는 하루에 7~8시간씩 입에 물고 그리고 또 그리고 또 그려서 아름다운 작품을 많이 그리는 화가가 되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함께하시니까 저렇게 훌륭한 화가가 됐습니다.
임 작가님의 대표작은 「꿈을 꾸다」 시리즈입니다. 꿈을 꾸다. 어항 속 금붕어와 거북이가 어항을 벗어나 하늘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그러한 모습을 그리면서 느려도 조금씩 꿈을 향해 나아가는 자신의 의지를 표현했습니다. ‘언젠가 나도 저 하늘을 날아가는 그런 모습처럼 이 모든 것에서 자유함을 받겠다’고 하는 꿈을 가지고 그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CBS 세상을 바꾸는 15분 강연에서 이렇게 자신의 삶을 소개합니다.
“해줄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으셨다던 어머니의 기도가 저의 마음을 열게 해 주었고, 저를 새로운 삶으로 나오게 이끌어 주었습니다. 살다 보면 세상과 단절되어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살아있지만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인생들도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죽어도 되는 삶은 없습니다. 죽어야 하는 삶도 없고요. 제가 그림을 하기 전까지 13년 동안 세상과 단절하여 꿈도 미래도 소망도 없이 어두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하늘을 나는 금붕어처럼 새로운 삶은 반드시 옵니다.”
할렐루야! 모든 염려 근심 걱정을 다 내려놓고 거룩한 꿈을 가지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세상 근심은 근심을 낳고 걱정은 걱정을 낳습니다. 그러나 염려 근심 걱정 어떤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와도 주님 앞에 다 내려놓고 절망의 때에 여러분과 동행하며 여러분과 함께하시는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절망은 우리 삶에서 끝이 아닙니다.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하나의 디딤돌에 불과한 것입니다. 여러분, 절망의 때에 포기하지 마십시오. 절망의 때에 옆에 와 계신 주님을 꼭 붙잡고 희망의 발걸음을 옮겨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일곱 귀신이 들렸다가 사람들에게 버림받아서 완전히 폐인으로 살던 막달라 마리아라는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서 귀신이 쫓겨나가고 그다음 새사람이 되어서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그에게 큰 충격과 고통이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묻힌 무덤가에 가보니까 무덤이 열려있고 시체가 없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어디에 계신가 했을 그때 예수님이 그를 찾아오셔서 “마리아야”하고 부르셔서 예수님을 만난 그 이야기가 이 찬송에 있습니다. 찬송을 함께 부르면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찬송가 442장 (통 499) : 저 장미꽃 위에 이슬>
1절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 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 음성 분명하다
후렴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2절 그 청아한 주의 음성
우는 새도 잠잠케 한다
내게 들리던 주의 음성이
늘 귀에 쟁쟁하다
3절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이 세상에 근심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일생을 사는 동안 크고 작은 근심, 걱정들이 우리를 둘러쌉니다. 근데 근심을 사서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냥 입만 열면 근심하고 걱정하고 그것이 원망과 불평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짚신 장수, 우산 장수 두 아들을 둔 어머니 얘기를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큰아들은 나가서 짚신을 팔고 둘째 아들은 나가서 우산을 파는데 날이 좋으면 “아이고 우산 장수 우리 아들 우산 못 팔겠네.” 걱정하고 날이 비가 오거나 날이 안 좋으면 “아이고 우리 짚신 장수 우리 아들 어떡하나.” 그냥 매일 같이 근심합니다. 날이 좋으면 좋아서 근심하고 날이 나쁘면 나빠서 근심합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분이 얘기합니다. “어머니 생각을 바꾸세요. 날이 좋으면 큰아들이 짚신을 많이 파니 좋고, 날이 비 오고 궂으면 둘째 아들이 우산을 많이 팔아서 좋으니 비가와도 좋고 날이 개어도 좋고 다 좋은 게 아닙니까? 늘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걱정하지 말고 기뻐하며 사세요.” 그래서 그날 이후로 생각을 바꾸고 다시는 근심 걱정하지 아니하고 날마다 기뻐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다 알아도 안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문제는 내 자신이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른 것입니다. 염려, 근심, 걱정은 백해무익합니다. 염려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근심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가 지금 문제가 생겼는데 근심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지금 몸이 아파 누웠는데. 염려한다고 해서 몸이 갑자기 좋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놓고 염려 근심 걱정한다고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마음을 바꿔야 먹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자세로 살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세계적인 문호 셰익스피어는 이와 같이 말을 했습니다.
“그대의 마음을 웃음과 기쁨으로 감싸라. 그러면 천 가지의 해로움을 막아주고 생명을 연장시켜 줄 것이다.”
염려하고 근심, 걱정하는 그 시간에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고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 이와 같이 권면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사도 바울은 염려할 시간에 근심할 시간에 걱정할 시간에 기도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라고 권면합니다. 성령님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염려할 시간에 기도하라. 걱정할 시간에 감사하고 찬양하라. 그러면 주님이 주신 평안함이 그 마음 가운데 넘쳐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빌립보서 4장 7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할렐루야! 여러분, 마음에 이 시간 주님이 주시는 평안함이 넘쳐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의 한 부분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이 제2차 선교 여행 때 1년 6개월 동안 머물면서 세운 교회입니다. 고린도는 그리스 남부 아가야 지방의 수도로 동서무역의 요충지로서 상업이 발달되고 사람들이 풍요로운 삶을 살았던 도시입니다. 그러나 비너스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의 도시요, 도덕적으로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이곳에서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의 반대와 핍박을 받으면서도 눈물로 교회를 세워 교회가 크게 부흥하고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견고히 세운 다음 에베소로 또 선교지를 옮겨서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우는 일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흥하던 교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교회 내에 ‘끼리끼리’ 파벌이 생겨난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예수님을 머리로 한 한몸인 것입니다. 절대로 교회 내에서 당을 지어 갈등과 대립이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우리나라의 정치하는 사람들이 아주 잘못된 것을 갖고 들어왔어요. 지방색을 갖고 와서 표를 얻으려고 싸움을 붙여놓은 것입니다. 태어나 보니까 서울이고 태어나 보니까 천안이고 태어나 보니까 광주고 태어나 보니까 부산인데 그게 무슨 상관이 있어서 우리 영남은 영남, 호남은 호남 이렇게 선거할 때마다 싸움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주님 안에서 하나인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는 지역감정도 없고 주님 안에서는 신분 차이도 없고 배웠으나 못 배웠으나 많이 가졌으나 못 가졌으나 어디서 태어났거나 우리는 다 한 형제와 자매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 내에서 파벌이 생겨났어요. 아볼로파, 게바파 막 이렇게 파들을 만들어서 서로 대립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고린도 교회에 도덕적으로 심각한 문제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그들을 책망하면서 보낸 편지가 고린도전서, 후서입니다. 첫 번째 보낸 편지가 전서고 두 번째 보낸 편지가 후서입니다.
1. 사망에 이르게 하는 세상 근심
오늘 본문에 보니까 두 가지 근심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 근심의 첫 번째 것은 세상 사망에 이르게 하는 세상 근심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7장 10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세상의 염려 근심 걱정은 우리를 병들게 합니다.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올 때 우리가 염려한다고 해서 절대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문제가 다가왔을 때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 17장 22절은 말씀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을 지키고 주님 앞에서 평안함을 가져야 합니다. 다윗이 고난 중에 너무나 괴롭고 힘들어서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시편 22편 14~15절입니다.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누구나 염려 근심 걱정으로 고난의 밤을 지냅니다. 그러나 염려할 시간에 근심할 시간에 걱정할 시간에 모든 문제를 주님 앞에 내려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염려 근심 걱정을 내려놓으라고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6장 25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염려 근심 걱정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32절입니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염려 근심 걱정은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고 나서 우리가 변화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축복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이제는 염려 근심 걱정이 있을 때 주님께 다 내려놓고 주님 앞에 기도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며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때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가 하나의 제국이었는데 그때 실존주의 소설가인 유대계 프란츠 카프카는1915년 『변신』이라고 하는 아주 유명한 소설을 썼습니다.
이 소설은 인간의 실존에 대해서 기록한 것인데, 주인공인 그레고리가 잠을 자고 일어나서 깨보니까 자기가 거대하고 흉측한 벌레로 바뀌어져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 깨었는데 자기가 거대한 벌레로 변해 있어서 이제 어찌할지 모르고 있는데 가족들이 방문을 열어보니까 자기 아들은 사라지고 거대한 벌레가 거기 있어요.
보니까 자기 아들이 밤새 벌레로 바뀐 거예요. 그래서 문을 닫아두고 못 나오게 하고 먹을 것을 주고 그때로부터 온 집안이 근심에 가득 쌓이게 됐습니다. 이 아들이 나가서 유일하게 외판 사원을 하면서 돈을 벌어 와서 집안의 생계를 유지했는데, 아버지는 일하지 않고 그냥 집에서 놀고 있었기에 갑자기 생활이 어려워졌습니다.
오빠를 사랑하던 누이동생도 오빠가 이렇게 된 모습을 보고 너무나 근심하고 걱정해서 그 마음이 눌려서 어떻게 할 바를 몰랐습니다. 온 집안의 근심거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벌레가 돼 그 방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먹을 것을 던져주면 먹는 그러한 불쌍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너무 화가 나서 그냥 화가 나는 걸 참지 못해서 손에 들고 있던 사과를 내던졌는데 그것이 아들의 등에 꽂혀버렸어요. 그 안에서 염증이 생기고 곪으면서 한 달 내내 앓다가 죽었습니다. 죽고 나니깐 흉측한 벌레로, 그가 죽은 시체로 되어 누워 있는데 가사도우미 할머니가 왔다가 그걸 보고 쓰레기 더미에 같이 내다 버리는 것이 소설의 끝입니다.
이것은 절망 가운데 살다가 흉측한 괴물처럼 되어서 병들어 죽어가는 우리 인간의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사는 사람은 그렇게 결국 흉측한 벌레처럼 되어서 절망에 쌓여서 병들어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벌레가 되어서 절망 속에 죽어간 것처럼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근심 걱정이 가득하면 그것이 우리의 마음에 병을 갖고 오고 그것이 우리를 죽음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인간의 모습은 절망 그 자체인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주님 안에서 꿈과 희망을 가지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 어디에서도 꿈과 희망을 찾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근심과 걱정 속에 살다가 흉측한 벌레처럼 변화되어서 질병 속에 죽어갈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입니다.
이와 같은 절망 가운데 누가 우리를 건져낼 수가 있습니까? 우리를 이 죄와 사망의 몸에서 건져낼 자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탄식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4).
그렇습니다. 절망에서 우리를 건져낼 그 누구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실 분은 그 누구도 없고 오직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죄와 절망 가운에서 건져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절망에 처한 우리에게 지금 손을 내밀어 말씀하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세상의 그 어떤 종교 지도자도 어떤 철학자도 이와 같은 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모두가 문제를 갖고 와서 문제 속에 갇혀 있다가 문제 속에 죽어갔는데 예수님만이 답을 주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만이 우리 마음에 참된 평안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염려 근심 걱정을 해결해 줄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우리 삶에 예수님 한 분만으로 기뻐하고 감사하고 만족하며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오늘 말씀 보니까 둘째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고린도후서 7장 9절입니다.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을 때 거룩한 근심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은 양심이 마비가 되어서 죄를 지으면서도 죄에 대한 그러한 뉘우침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양심을 갖고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잘못된 삶을 살 때 근심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근심은 우리를 회개로 이끌어갑니다. 다윗이 잘못했을 때 하나님 앞에 거룩한 근심을 하고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시편 38편 17~18절입니다.
“내가 넘어지게 되었고 나의 근심이 항상 내 앞에 있사오니 내 죄악을 아뢰고 내 죄를 슬퍼함이니이다.”
사람은 누구나 때때로 실수할 수 있고 잘못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즉시 우리가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거룩한 근심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여 나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잘못했나이다.” 주님 앞에 나와 회개하고 엎드려 주님 앞에 주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언제나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생각을 할 때 잘못된 말을 할 때 잘못된 행동을 할 때 회개하고 깨닫고 돌이켜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잘못된 일을 할 때 마음에 거룩한 근심이 생겨나서 주님 앞에 회개하러 나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시편 34편 18절입니다.
“야훼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7장 10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하나님은 긍휼이 무한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늘 긍휼히 보십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회개하고 나아올 때 우리 하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불도 끄지 아니하시며 사랑으로 돌보시고 붙들어 주시는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사야 42장 3절은 말씀합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시편 147편 3절입니다.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할렐루야! 주님이 우리의 고통과 괴로움을 아시고 우리를 불쌍히 보시고 우리의 상처를 치료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와 어려움 가운데 주님이 함께해 주셔서 절망에서 우리를 건져주시고 고통 가운데에서 우리를 자유케 해 주시고 주님의 은혜와 평안함이 넘쳐나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한없는 위로하심을 우리에게 넘치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위로하심
성경은 하나님의 위로하심에 대하여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우리를 회개와 구원에 이르게 하고 큰 위로함을 가져다줍니다. 거룩한 근심은 우리를 영광의 세계로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7절입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잠시 내가 고통을 당하지만, 잠시 내가 어려움을 당하지만, 잠시 내가 문제 가운데 있지만 장차 우리에게 다가올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100주년교회를 담임하시고 30년 목회를 정리하신 이재철 목사님의 책을 최근에 읽으면서 여러 가지로 느끼는 것이 많았습니다. 목사님이 설교하신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주님 일을 할 때 참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가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30년 동안 목회를 하면서 수많은 도전이 있었고 수많은 칼(공격과 비난)을 맞았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목회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목사님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매일 같이 이렇게 기도합니다. 바른 것을 분별하는 지혜와 바른 것을 실천하는 용기와 바른 것을 포기하지 않는 인내와 바르게 더불어 살아가는 은혜를 주십시오.”
할렐루야. 하나님의 붙드심과 위로하심 때문에 이재철 목사님은 30년 동안 목회를 성공적으로 잘하시고 그 사역을 마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우리 일생 다 가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붙드시고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어떠한 환난이 다가오고 문제가 다가와도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면 주님이 우리를 붙드시고 위로하시고 놀라운 은혜로 함께해 주십니다. 그래서 사랑의 주님이 이 세상에서 주지 못하는, 그 누구도 우리에게 가져다주지 못하는 참된 위로와 평안함을 우리에게 넘치게 부어주십니다.
고린도후서 1장 3~5절 입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모든 슬픔과 고통과 괴로움을 아시고 주님이 옆에 오셔서 우리를 붙드시고 도우시고 함께하시고 우리를 은혜의 자리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처를 어루만져주시고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것입니다. 절망의 자리에 슬픔의 자리에 아픔의 자리에 병상에 누워 있는 자리에 주님이 오셔서 우리를 어루만지시고 ‘내가 너와 함께 한다. 힘내라.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주님이 위로해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으로 고통 가운데 있던 한 장애인이 주님의 은혜 가운데 이제는 입으로 꿈을 그리는 미술 작가가 되었는데 그분의 이름이 임경식입니다. 손이 아닌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구필화가 임경식 작가는 19살 때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서 사고 당시 네 번째 목뼈가 부러지면서 신경이 끊어져서 목 아래로는 움직일 수 없는 지체장애인이 됐습니다. 처음에는 병원에 실려 갔을 때 ‘곧 퇴원하겠지’ 했는데 목에 호흡기를 끼고 숨을 겨우 쉬며 중환자실에 오랜 기간 누워있자 희망이 변해 절망이 됐습니다.
몸이 불편하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으니까 온갖 짜증과 불평은 가족들에게 쏟아놓았습니다. 심지어는 자기에게 음식을 먹여준 어머니에게도 “엄마, 나 더 이상 이렇게 살기 싫어. 나 좀 죽여줘”라고 말하며 엄마의 마음에 못을 박았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모든 가족이 이 아들을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어머니는 뇌졸중으로 몸의 한쪽에 마비가 와서 거동이 불편합니다. 15분이면 갈 수 있는 새벽예배를 갈 수 있는 교회를 50여 분 걸려서 겨우겨우 걸어가셔서 매일 같이 새벽기도를 하시면서 아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합니다. ‘우리 아들이 예수 믿고 변화되어서 이 절망에서 일어날 수 있게 하여주옵소서. 이 모든 어려움을 이길 수 있게 하여주옵소서.’ 눈물로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루에 아침 9시, 오후 3시, 저녁 9시 3번 시간을 정해놓고 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그러자 그 아들의 마음이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무의미하게 이렇게 무기력하게 살면 안 되겠구나. 자기 주변에 중증 장애인들이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장애를 딛고 일어나서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무엇인가 해야 되겠다’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목밖에 없으니까 입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뭔가 찾다가 사고 난 지 13년 만에 입으로 그림을 그리기로 했습니다.
유튜브를 스승 삼고 하루에 7~8시간씩 입술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립니다. 1년 후에 작품 한 점을 전시해 낸 것을 계기로 해서 현재는 한국구족화과협회 회원으로 각종 미술대회에서 입상하고 개인전까지 여는 화가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한번 집에 가서 펜 물고 한번 해보세요. 잘 안 돼요. 그런데 그는 하루에 7~8시간씩 입에 물고 그리고 또 그리고 또 그려서 아름다운 작품을 많이 그리는 화가가 되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함께하시니까 저렇게 훌륭한 화가가 됐습니다.
임 작가님의 대표작은 「꿈을 꾸다」 시리즈입니다. 꿈을 꾸다. 어항 속 금붕어와 거북이가 어항을 벗어나 하늘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그러한 모습을 그리면서 느려도 조금씩 꿈을 향해 나아가는 자신의 의지를 표현했습니다. ‘언젠가 나도 저 하늘을 날아가는 그런 모습처럼 이 모든 것에서 자유함을 받겠다’고 하는 꿈을 가지고 그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CBS 세상을 바꾸는 15분 강연에서 이렇게 자신의 삶을 소개합니다.
“해줄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으셨다던 어머니의 기도가 저의 마음을 열게 해 주었고, 저를 새로운 삶으로 나오게 이끌어 주었습니다. 살다 보면 세상과 단절되어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살아있지만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인생들도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죽어도 되는 삶은 없습니다. 죽어야 하는 삶도 없고요. 제가 그림을 하기 전까지 13년 동안 세상과 단절하여 꿈도 미래도 소망도 없이 어두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하늘을 나는 금붕어처럼 새로운 삶은 반드시 옵니다.”
할렐루야! 모든 염려 근심 걱정을 다 내려놓고 거룩한 꿈을 가지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세상 근심은 근심을 낳고 걱정은 걱정을 낳습니다. 그러나 염려 근심 걱정 어떤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와도 주님 앞에 다 내려놓고 절망의 때에 여러분과 동행하며 여러분과 함께하시는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절망은 우리 삶에서 끝이 아닙니다.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하나의 디딤돌에 불과한 것입니다. 여러분, 절망의 때에 포기하지 마십시오. 절망의 때에 옆에 와 계신 주님을 꼭 붙잡고 희망의 발걸음을 옮겨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일곱 귀신이 들렸다가 사람들에게 버림받아서 완전히 폐인으로 살던 막달라 마리아라는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서 귀신이 쫓겨나가고 그다음 새사람이 되어서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그에게 큰 충격과 고통이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묻힌 무덤가에 가보니까 무덤이 열려있고 시체가 없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어디에 계신가 했을 그때 예수님이 그를 찾아오셔서 “마리아야”하고 부르셔서 예수님을 만난 그 이야기가 이 찬송에 있습니다. 찬송을 함께 부르면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찬송가 442장 (통 499) : 저 장미꽃 위에 이슬>
1절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 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 음성 분명하다
후렴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2절 그 청아한 주의 음성
우는 새도 잠잠케 한다
내게 들리던 주의 음성이
늘 귀에 쟁쟁하다
3절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순복음가족신문
지면보기
행복으로의 초대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