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귀한 자
2023.09.03
/ 이사야 32장 8절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이사야 32장 8절)
이사야 32장 8절 말씀을 본문으로 하여서 “존귀한 자”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삶의 목적과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꿈도 없고 분명한 삶의 방향과 목적이 없어서 게임에 빠지고, 도박에 빠지고, 술에 빠져보기도 하고, 마약에 빠져보기도 하지만 삶은 더 황폐해집니다. 요즘 젊은이들의 자살이 많은 것은 참으로 우리 한국의 문제요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자기가 얼마나 가치 있고 존귀한 자라는 것을 모르고 그렇게 방황하는 삶을 삽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그 순간 신분이 바뀝니다. 마귀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 신분이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택함 받은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분명한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아 알고 믿음으로 전진할 때, 하나님의 큰 복이 임합니다.
1. 존귀한 자
성경은 먼저 우리를 존귀한 자라고 말씀합니다. 이사야 32장 8절에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한 자입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 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얘기하는지 관심이 많습니다. 누가 나를 칭찬하면 좋아하고, 누가 나를 뭐라고 비난하면 마음에 상처받고 분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어떠한 사람인가.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존귀하게 보십니다.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우리를 택하여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 삼으신 것입니다.
성경 이사야 43장 1절은 말씀합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야훼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할렐루야! 주님이 우리를 특별히 지명해서 부른 것입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고 칭찬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고 또 그 과목이 기다려졌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명하여 불러주시고 “너는 내 것이라. 너를 내가 사랑하고 내가 너를 귀히 여긴다.” 말씀하시니 이게 얼마나 큰 기쁨이고 은혜이고 축복이고 감사할 내용입니까? 그런데 이 주님이 우리를 택하고 부르신 것이 그 어떤 순간에 결정된 것이 아니라 만세 전에 우리를 이미 예정하시고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성경 에베소서 1장 4절, 5절은 말씀합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세상이 지음 받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예정 속에 우리가 들어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를 택하기로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우리를 택하여 불러서 오늘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우리를 함부로 해치지 못하고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2절은 말씀합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그렇습니다. 어떤 환란과 시험이 다가와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우셨습니다. 존귀한 자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내가 누구인가를 분명히 알아서 하나님 안에서 가장 귀하게, 아름답게, 의미 있게, 보람 있게 하나님의 영광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에 대한 분명한 자화상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아침마다 거울을 바라보면서 말하길 바랍니다.
‘너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다. 오늘 너에게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복 주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택함 받은 가장 귀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존귀한 일을 계획함
그런데 성경은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이사야 32장 8절에.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
말씀합니다.
존귀한 자는 언제나 존귀한 일을 꿈꾸고 계획하고 그리고 믿음으로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100%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긍정의 고백을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믿음의 모든 조상이 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가졌던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부족한 것도 있었고 실수도 있고 흠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그 믿음 하나를 보고 쓰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부정적인 사람, 원망, 불평하는 사람을 택하여 쓰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사람들과 함께 지금까지도 함께 일하고 계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사람이었고, 이삭이 믿음의 사람이었고, 야곱이 믿음의 사람이었고, 요셉이 믿음의 사람이었고 모세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 안에서 거룩한 꿈을 꾸고 믿고 나아갈 때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우리 삶 가운데 이루어지게 됩니다.
믿음의 장이라 불리는 히브리서 11장 1절, 2절은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꿈꾸고 믿고 바라보고 나아갈 때 그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지금 내가 문제 가운데 있어도, 내가 어려움 가운데 있어도, 내가 질병 가운데 있어도, 내가 꿈꾸고 믿고 나에게 다가올 축복의 미래를 바라보고 나아가면 문제가 사라지고 절망이 사라지고 모든 어려움이 떠나가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이 예비하신 찬란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나의 현실에서 절망의 모습을 바라보지 말고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내 삶의 상처와 고통과 괴로움을 바라보지 말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주님만 바라보고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을 감동시켜 드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일꾼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은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직장에서는 상사를 기쁘게 하려고 노력을 하고, 집에서는 부모님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는데, 이 모든 노력보다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면 하나님이 은혜와 축복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3. 존귀한 일에 서 있음
그래서 우리는 존귀한 자라는 것을 잊지 말고 늘 존귀한 일을 계획하고 나아가 존귀한 일에 서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
존귀한 사람들은 존귀한 일을 행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왜 존재하느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존귀한 일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영향력을 온 세상에 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온 세계에 전하는 주님의 귀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그저 의미 없이, 목적 없이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통하여 세상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이,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이 넘쳐나는 그러한 주님의 일꾼들이 되어서 선한 영향을 끼칠 때, 이 어두운 세상이 밝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디 서 있느냐, 어디서 무엇을 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존귀한 일에 서리라”고 말씀했는데 하와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는 선악과 밑에 서서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바라보다가 그것을 따먹고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존귀한 자가 존귀한 일을 계획하고 존귀한 일에 서 있어야 되는데 잘못된 자리에서 그와 같은 잘못을 하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과 고모라라고 하는 잘못된 곳에 가서 있다가 그는 전 재산을 다 잃고 사위들도 잃고 부인도 잃고 그리고 간신히 두 딸과 함께 빈손으로 도망쳐 나왔던 사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삼손이 이방 여인 들릴라의 무릎에 누워 있다가 두 눈이 뽑히고 그가 맷돌을 가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 것은 잘못된 자리에 그가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다윗 왕이 전쟁 중에 늦잠 자고 일어나서 남의 집 기웃거리다가 그만 큰 범죄를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에 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항상 긴장하고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주의 말씀 가운데 우리가 머물러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복 있는 사람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시편 1편 1절에 복 있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경고가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절대 악인의 꾀(생각)
복 있는 사람은 절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합니다. 악인의 생각을 따라가지 않는 것입니다. 절대로 부정적인 생각, 남을 상처 입히고 남을 절망에 빠뜨리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나는 끝났다.” “나는 못났다.”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생각을 먼저 지켜야 합니다.
죄인의 길(삶의 방향)
그리고 죄인들의 길에 서면 안 됩니다. 죄인들의 가는 잘못된 방향을 우리가 따라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오만한 자들의 자리(행동)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으면 안 됩니다. 행동을 우리가 행동으로 옮길 때 그것이 우리 삶에 큰 문제와 어려움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자리 앉지 아니하고 시편 1편 2절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오직 야훼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언제나 주의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기뻐하여 말씀을 주야로 묵상함으로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말씀의 인도함을 따라 살아갈 때 그 삶이 형통의 삶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시편 1편 3절에 축복이 임합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우리가 복 있는 사람이 되어서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고 즐거워하며 말씀대로 살아가면 이와 같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의 형통의 복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의 삶을 사는 악인들은 어떠한 심판에 임합니까? 4절, 5절입니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악인들은 결국 모두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시편 1편은 이렇게 결론 지어 말씀합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야훼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여러분의 길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복 받는 삶으로 만들어주시지만 악인들은 결국 망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흑암의 권세들이 찾아와서 여러 가지로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믿음을 지키고 말씀대로 살아가면 결국 의인의 길은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악인의 길은 망할 것입니다.
잠시 있다 사라지는 그러한 잡초 같은 인생에서 악인들이 우리 주위에 들끓고 있지만은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다 심판받고 악인들의 길은 망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자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버려진 인생을 존귀한 인생으로 바꾼 귀한 사역을 하고 계신 이종락 목사님 계신데, 오갈 데 없는 버려진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서 우리나라 최초로 베이비 박스를 만들어서 버려진 아이를 돌보는 사역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이 사역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미국에서 드롭박스라고 하는 영화로 제작되어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감동을 주었습니다.
원래 이 이종락 목사님은 술과 담배를 달고 살던 불신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회사에 입사했는데 기독교 회사입니다. 회사에서 매주 월요일 예배를 드리는데, 월요일날 어느 목사님이 오셔서 어거스틴이 방탕한 삶을 살다가 어머니가 기도해서 회개하고 돌아와서 훌륭한 목사님이 됐다는 얘기를 듣고 그가 회개하고 깨어졌습니다. 이제 나는 술, 담배 다 버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되겠다. 매일같이 새벽 예배를 드리면서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근데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중증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게 됐습니다. 14년 동안이나 아이가 병원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예수 잘 믿으려고 그러는데 왜 내게 이런 고난을 주십니까?’ 불평이 솟구쳐 오르는데 하나님이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너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 못들었느냐?
그래서 즉시 회개하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의지하게 해서 감사합니다. 이 아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이 이제 중증 장애를 가진 아이들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2007년도에 한 어린 여학생이 조그만 박스에다가 아이를 낳아서 교회 앞에 버려두고 갔습니다. 나중에 교회로 전화가 왔는데 “제가 낳은 아기인데 교회에서 좀 보살펴주세요.” 그래서 이를 계기로 해서 이분이 한국 최초로 2009년 12월에 서울 관악구 난곡동 교회 앞에 버려진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는 베이비박스를 설치합니다. 아이를 베이비박스에 넣어두면 벨이 자동적으로 건물에 울리게 돼서 아이를 꺼냅니다.
베이비박스를 만든 후에 이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땅에 버려져 상자에 담긴 아이가 없도록 해주소서. 이 상자가 아니면 죽을 수밖에 없는 아이에게만 주님이 문을 열어주소서.’ 그래서 이 박스에 제일 처음 들어온 아이 이름을 남자 아이라서 모세라고 지었습니다. 모세가 강가에서 구원받은 것처럼 모세라고 이름 지었는데 지난 14년 동안 모두 2천 명 이상의 아이가 생명을 건졌습니다. 이 중에 10%는 10대고 57%는 20대 엄마에게서 버려졌는데 그 엄마의 90%가 결손 가정 출신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가정이 화목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자녀를 못 돌보면 이렇게 이런 문제들이 많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깨어진 가정 속에 자라나는 아이들이 상처를 받고 이렇게 아이를 낳아서 버리게 되는데 낙태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래도 애를 낳아서 맡겨놨으니까 한 생명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낙태는 살인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아이는 낳아야 합니다. 낳아서 기르지 못하면 기를 수 있는 곳에 맡기더라도 아이는 낳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이 산모들을 돌보는 사역과 미혼모를 돌보는 사역까지 같이 하다 보니까 나중에 이 미혼모들이 다시 자립하게 되면서 282명의 아이가 다시 어머니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2012년 8월부터 우리나라의 정치하는 분들이 참 문제가 많아요. 입양특례법이라는 걸 만들어가지고 출생신고를 해야만 입양할 수 있게 해 놓으니까 아이를 몰래 버리려고 하던 부모가 출생신고를 해야만 되니깐 그때부터는 아이를 낳으면 죽이든지 아니면 버리게 되는데 베이비박스에 오는 아이가 9배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 베이비박스의 얘기가 미국 LA 타임즈의 보도가 되었고 이 기사를 보고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던 학생 브라이언 아이비가 감동을 받고, 일본계 미국인 청년인데요. 드롭박스라는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50개 주, 870개 극장에서 상영되었는데 매진과 앙코르가 계속되어서 500만 이상의 관객들이 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영화의 영향으로 미국 곳곳에 베이비박스가 설치되게 되었고 공공기관에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법안을 만들기도 했고요. 미국에서 만들어졌고 또 중국에서도 베이비박스가 만들어졌고 많은 나라에 베이비박스가 만들어져서 버려지는 아이들이 이렇게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이 영화를 만든 브라이언이 이렇게 간증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진정한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목사님을 만나기 전 제게는 영화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목사님의 삶은 저의 모든 것을 바꾸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몸소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저 감성적인 광고용 멘트 같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부서지고 길 잃은 자들을 위해 직접 시궁창까지 찾아오시는 그런 사랑’입니다.!
목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버려지는 생명을 삶으로 인도하는 것이 저의 사명입니다. 주님은 ‘장애를 갖고 이 땅에서 눈물 흘리는 자들, 소외당하는 자들, 무시당하는 자들, 멸시받고 천대받은 자들’을 품어 끌어 안으셨습니다. 주님은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보셨습니다. 그 한 생명 때문에 지금까지 제가 이런 삶을 살아 왔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이 목사님은 존귀한 자로서 존귀한 자리에 서서 존귀한 일을 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존귀한 자가 되어서 우리가 존귀한 꿈과 계획을 가지고 존귀한 일을 행해나가는 하나님의 일꾼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인생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갑니다. 인생을 두 번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언제고 주님의 부르시면 우리는 주님 앞에 가야 합니다. 살아 숨쉬는 동안 우리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존귀한 자입니다. 존귀한 일을 계획하고 존귀한 일에 서 있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찬송 433장 하겠습니다.
<찬송가 433장 (통 490) :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1절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주께로 날마다 더 가까이
저 하늘나라 나 올라가
구주의 품 안에 늘 안기어
영생의 복 받기 원합니다
2절 봉헌할 물건 나 없어도
날마다 주께로 더 가까이
내 죄를 주께 다 고하니
주님의 보혈로 날 씻으사
눈보다 더 희게 하옵소서
3절 간악한 마귀 날 꾀어도
주 예수 앞으로 더 가까이
이 세상 속한 그 허영심
또 추한 생각을 다 버리니
정결한 맘 내게 늘 주소서
4절 이 세상 내가 살 동안에
주께로 날마다 더 가까이
저 뵈는 천국 나 들어가
한없는 복락을 다 얻도록
풍성한 은혜를 주옵소서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모두 만세 전에 하나님이 택하셔서 존귀한 자로 만들어 주셨는데 부끄럽게도 존귀한 자처럼 살지 못하고 여러 가지로 부족한 모습으로 살았던 것을 주님 앞에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부터는 존귀한 자답게 존귀한 일에 서게 하시고, 존귀한 일을 계획하고 존귀한 삶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주님의 일꾼들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이사야 32장 8절 말씀을 본문으로 하여서 “존귀한 자”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삶의 목적과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꿈도 없고 분명한 삶의 방향과 목적이 없어서 게임에 빠지고, 도박에 빠지고, 술에 빠져보기도 하고, 마약에 빠져보기도 하지만 삶은 더 황폐해집니다. 요즘 젊은이들의 자살이 많은 것은 참으로 우리 한국의 문제요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자기가 얼마나 가치 있고 존귀한 자라는 것을 모르고 그렇게 방황하는 삶을 삽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그 순간 신분이 바뀝니다. 마귀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 신분이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택함 받은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분명한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아 알고 믿음으로 전진할 때, 하나님의 큰 복이 임합니다.
1. 존귀한 자
성경은 먼저 우리를 존귀한 자라고 말씀합니다. 이사야 32장 8절에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한 자입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 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얘기하는지 관심이 많습니다. 누가 나를 칭찬하면 좋아하고, 누가 나를 뭐라고 비난하면 마음에 상처받고 분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어떠한 사람인가.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존귀하게 보십니다.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우리를 택하여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 삼으신 것입니다.
성경 이사야 43장 1절은 말씀합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야훼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할렐루야! 주님이 우리를 특별히 지명해서 부른 것입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고 칭찬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고 또 그 과목이 기다려졌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명하여 불러주시고 “너는 내 것이라. 너를 내가 사랑하고 내가 너를 귀히 여긴다.” 말씀하시니 이게 얼마나 큰 기쁨이고 은혜이고 축복이고 감사할 내용입니까? 그런데 이 주님이 우리를 택하고 부르신 것이 그 어떤 순간에 결정된 것이 아니라 만세 전에 우리를 이미 예정하시고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성경 에베소서 1장 4절, 5절은 말씀합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세상이 지음 받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예정 속에 우리가 들어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를 택하기로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우리를 택하여 불러서 오늘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우리를 함부로 해치지 못하고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2절은 말씀합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그렇습니다. 어떤 환란과 시험이 다가와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우셨습니다. 존귀한 자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내가 누구인가를 분명히 알아서 하나님 안에서 가장 귀하게, 아름답게, 의미 있게, 보람 있게 하나님의 영광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에 대한 분명한 자화상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아침마다 거울을 바라보면서 말하길 바랍니다.
‘너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다. 오늘 너에게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복 주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택함 받은 가장 귀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존귀한 일을 계획함
그런데 성경은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이사야 32장 8절에.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
말씀합니다.
존귀한 자는 언제나 존귀한 일을 꿈꾸고 계획하고 그리고 믿음으로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100%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긍정의 고백을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믿음의 모든 조상이 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가졌던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부족한 것도 있었고 실수도 있고 흠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그 믿음 하나를 보고 쓰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부정적인 사람, 원망, 불평하는 사람을 택하여 쓰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사람들과 함께 지금까지도 함께 일하고 계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사람이었고, 이삭이 믿음의 사람이었고, 야곱이 믿음의 사람이었고, 요셉이 믿음의 사람이었고 모세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 안에서 거룩한 꿈을 꾸고 믿고 나아갈 때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우리 삶 가운데 이루어지게 됩니다.
믿음의 장이라 불리는 히브리서 11장 1절, 2절은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꿈꾸고 믿고 바라보고 나아갈 때 그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지금 내가 문제 가운데 있어도, 내가 어려움 가운데 있어도, 내가 질병 가운데 있어도, 내가 꿈꾸고 믿고 나에게 다가올 축복의 미래를 바라보고 나아가면 문제가 사라지고 절망이 사라지고 모든 어려움이 떠나가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이 예비하신 찬란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나의 현실에서 절망의 모습을 바라보지 말고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내 삶의 상처와 고통과 괴로움을 바라보지 말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주님만 바라보고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을 감동시켜 드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일꾼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은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직장에서는 상사를 기쁘게 하려고 노력을 하고, 집에서는 부모님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는데, 이 모든 노력보다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면 하나님이 은혜와 축복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3. 존귀한 일에 서 있음
그래서 우리는 존귀한 자라는 것을 잊지 말고 늘 존귀한 일을 계획하고 나아가 존귀한 일에 서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
존귀한 사람들은 존귀한 일을 행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왜 존재하느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존귀한 일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영향력을 온 세상에 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온 세계에 전하는 주님의 귀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그저 의미 없이, 목적 없이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통하여 세상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이,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이 넘쳐나는 그러한 주님의 일꾼들이 되어서 선한 영향을 끼칠 때, 이 어두운 세상이 밝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디 서 있느냐, 어디서 무엇을 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존귀한 일에 서리라”고 말씀했는데 하와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는 선악과 밑에 서서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바라보다가 그것을 따먹고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존귀한 자가 존귀한 일을 계획하고 존귀한 일에 서 있어야 되는데 잘못된 자리에서 그와 같은 잘못을 하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과 고모라라고 하는 잘못된 곳에 가서 있다가 그는 전 재산을 다 잃고 사위들도 잃고 부인도 잃고 그리고 간신히 두 딸과 함께 빈손으로 도망쳐 나왔던 사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삼손이 이방 여인 들릴라의 무릎에 누워 있다가 두 눈이 뽑히고 그가 맷돌을 가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 것은 잘못된 자리에 그가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다윗 왕이 전쟁 중에 늦잠 자고 일어나서 남의 집 기웃거리다가 그만 큰 범죄를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에 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항상 긴장하고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주의 말씀 가운데 우리가 머물러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복 있는 사람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시편 1편 1절에 복 있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경고가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절대 악인의 꾀(생각)
복 있는 사람은 절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합니다. 악인의 생각을 따라가지 않는 것입니다. 절대로 부정적인 생각, 남을 상처 입히고 남을 절망에 빠뜨리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나는 끝났다.” “나는 못났다.”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생각을 먼저 지켜야 합니다.
죄인의 길(삶의 방향)
그리고 죄인들의 길에 서면 안 됩니다. 죄인들의 가는 잘못된 방향을 우리가 따라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오만한 자들의 자리(행동)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으면 안 됩니다. 행동을 우리가 행동으로 옮길 때 그것이 우리 삶에 큰 문제와 어려움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자리 앉지 아니하고 시편 1편 2절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오직 야훼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언제나 주의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기뻐하여 말씀을 주야로 묵상함으로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말씀의 인도함을 따라 살아갈 때 그 삶이 형통의 삶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시편 1편 3절에 축복이 임합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우리가 복 있는 사람이 되어서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고 즐거워하며 말씀대로 살아가면 이와 같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의 형통의 복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의 삶을 사는 악인들은 어떠한 심판에 임합니까? 4절, 5절입니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악인들은 결국 모두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시편 1편은 이렇게 결론 지어 말씀합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야훼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여러분의 길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복 받는 삶으로 만들어주시지만 악인들은 결국 망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흑암의 권세들이 찾아와서 여러 가지로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믿음을 지키고 말씀대로 살아가면 결국 의인의 길은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악인의 길은 망할 것입니다.
잠시 있다 사라지는 그러한 잡초 같은 인생에서 악인들이 우리 주위에 들끓고 있지만은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다 심판받고 악인들의 길은 망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자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버려진 인생을 존귀한 인생으로 바꾼 귀한 사역을 하고 계신 이종락 목사님 계신데, 오갈 데 없는 버려진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서 우리나라 최초로 베이비 박스를 만들어서 버려진 아이를 돌보는 사역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이 사역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미국에서 드롭박스라고 하는 영화로 제작되어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감동을 주었습니다.
원래 이 이종락 목사님은 술과 담배를 달고 살던 불신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회사에 입사했는데 기독교 회사입니다. 회사에서 매주 월요일 예배를 드리는데, 월요일날 어느 목사님이 오셔서 어거스틴이 방탕한 삶을 살다가 어머니가 기도해서 회개하고 돌아와서 훌륭한 목사님이 됐다는 얘기를 듣고 그가 회개하고 깨어졌습니다. 이제 나는 술, 담배 다 버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되겠다. 매일같이 새벽 예배를 드리면서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근데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중증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게 됐습니다. 14년 동안이나 아이가 병원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예수 잘 믿으려고 그러는데 왜 내게 이런 고난을 주십니까?’ 불평이 솟구쳐 오르는데 하나님이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너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 못들었느냐?
그래서 즉시 회개하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의지하게 해서 감사합니다. 이 아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이 이제 중증 장애를 가진 아이들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2007년도에 한 어린 여학생이 조그만 박스에다가 아이를 낳아서 교회 앞에 버려두고 갔습니다. 나중에 교회로 전화가 왔는데 “제가 낳은 아기인데 교회에서 좀 보살펴주세요.” 그래서 이를 계기로 해서 이분이 한국 최초로 2009년 12월에 서울 관악구 난곡동 교회 앞에 버려진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는 베이비박스를 설치합니다. 아이를 베이비박스에 넣어두면 벨이 자동적으로 건물에 울리게 돼서 아이를 꺼냅니다.
베이비박스를 만든 후에 이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땅에 버려져 상자에 담긴 아이가 없도록 해주소서. 이 상자가 아니면 죽을 수밖에 없는 아이에게만 주님이 문을 열어주소서.’ 그래서 이 박스에 제일 처음 들어온 아이 이름을 남자 아이라서 모세라고 지었습니다. 모세가 강가에서 구원받은 것처럼 모세라고 이름 지었는데 지난 14년 동안 모두 2천 명 이상의 아이가 생명을 건졌습니다. 이 중에 10%는 10대고 57%는 20대 엄마에게서 버려졌는데 그 엄마의 90%가 결손 가정 출신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가정이 화목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자녀를 못 돌보면 이렇게 이런 문제들이 많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깨어진 가정 속에 자라나는 아이들이 상처를 받고 이렇게 아이를 낳아서 버리게 되는데 낙태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래도 애를 낳아서 맡겨놨으니까 한 생명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낙태는 살인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아이는 낳아야 합니다. 낳아서 기르지 못하면 기를 수 있는 곳에 맡기더라도 아이는 낳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이 산모들을 돌보는 사역과 미혼모를 돌보는 사역까지 같이 하다 보니까 나중에 이 미혼모들이 다시 자립하게 되면서 282명의 아이가 다시 어머니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2012년 8월부터 우리나라의 정치하는 분들이 참 문제가 많아요. 입양특례법이라는 걸 만들어가지고 출생신고를 해야만 입양할 수 있게 해 놓으니까 아이를 몰래 버리려고 하던 부모가 출생신고를 해야만 되니깐 그때부터는 아이를 낳으면 죽이든지 아니면 버리게 되는데 베이비박스에 오는 아이가 9배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 베이비박스의 얘기가 미국 LA 타임즈의 보도가 되었고 이 기사를 보고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던 학생 브라이언 아이비가 감동을 받고, 일본계 미국인 청년인데요. 드롭박스라는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50개 주, 870개 극장에서 상영되었는데 매진과 앙코르가 계속되어서 500만 이상의 관객들이 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영화의 영향으로 미국 곳곳에 베이비박스가 설치되게 되었고 공공기관에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법안을 만들기도 했고요. 미국에서 만들어졌고 또 중국에서도 베이비박스가 만들어졌고 많은 나라에 베이비박스가 만들어져서 버려지는 아이들이 이렇게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이 영화를 만든 브라이언이 이렇게 간증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진정한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목사님을 만나기 전 제게는 영화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목사님의 삶은 저의 모든 것을 바꾸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몸소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저 감성적인 광고용 멘트 같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부서지고 길 잃은 자들을 위해 직접 시궁창까지 찾아오시는 그런 사랑’입니다.!
목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버려지는 생명을 삶으로 인도하는 것이 저의 사명입니다. 주님은 ‘장애를 갖고 이 땅에서 눈물 흘리는 자들, 소외당하는 자들, 무시당하는 자들, 멸시받고 천대받은 자들’을 품어 끌어 안으셨습니다. 주님은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보셨습니다. 그 한 생명 때문에 지금까지 제가 이런 삶을 살아 왔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이 목사님은 존귀한 자로서 존귀한 자리에 서서 존귀한 일을 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존귀한 자가 되어서 우리가 존귀한 꿈과 계획을 가지고 존귀한 일을 행해나가는 하나님의 일꾼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인생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갑니다. 인생을 두 번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언제고 주님의 부르시면 우리는 주님 앞에 가야 합니다. 살아 숨쉬는 동안 우리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존귀한 자입니다. 존귀한 일을 계획하고 존귀한 일에 서 있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찬송 433장 하겠습니다.
<찬송가 433장 (통 490) :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1절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주께로 날마다 더 가까이
저 하늘나라 나 올라가
구주의 품 안에 늘 안기어
영생의 복 받기 원합니다
2절 봉헌할 물건 나 없어도
날마다 주께로 더 가까이
내 죄를 주께 다 고하니
주님의 보혈로 날 씻으사
눈보다 더 희게 하옵소서
3절 간악한 마귀 날 꾀어도
주 예수 앞으로 더 가까이
이 세상 속한 그 허영심
또 추한 생각을 다 버리니
정결한 맘 내게 늘 주소서
4절 이 세상 내가 살 동안에
주께로 날마다 더 가까이
저 뵈는 천국 나 들어가
한없는 복락을 다 얻도록
풍성한 은혜를 주옵소서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모두 만세 전에 하나님이 택하셔서 존귀한 자로 만들어 주셨는데 부끄럽게도 존귀한 자처럼 살지 못하고 여러 가지로 부족한 모습으로 살았던 것을 주님 앞에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부터는 존귀한 자답게 존귀한 일에 서게 하시고, 존귀한 일을 계획하고 존귀한 삶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주님의 일꾼들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지면보기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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