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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넘어 희망으로
2023.06.25 / 창세기 1장 2~5절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세기 12~5
 
 
6.25 한국전쟁 73주년을 맞아서 창세기 12-5절의 말씀을 가지고 절망을 넘어 희망으로이와 같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바로 73년 전 오늘 주일날 새벽 4시에 북한군이 선제 타격작전 계획에 따라 38선 전 전선에서 남침을 개시했습니다. 이 전쟁은 3년간 이어졌습니다. 6.25 한국전쟁은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동족 간에 일어난 비극적인 전쟁이었습니다.
 
북한이 공산화가 되고 난 다음 김일성은 19493월에 소련을 방문하여 스탈린을 만나 무력 남침계획을 알립니다. 스탈린은 그때 북한에 소총 15천정, 각종 포 139, T34 탱크 87, 항공기 95대의 무기 지원을 약속하면서 아직은 전쟁을 일으킬 때가 아니라고 만류하며,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을 찾아가 협의토록 했습니다.
 
마오쩌둥은 김일성을 만나 중국인민해방국 내 조선인 2개 사단을 넘겨주었습니다. 19496월에 미군이 남한에서 철수하자 공산주의 동조 세력을 규합시켜 남한 내부 전역에서 빨치산 무장봉기를 지시하였고,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전쟁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1950625일 시작된 이 전쟁이 537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기까지 희생된 군인과 민간인, 사상자 숫자가 남한이 230, 북한이 292, UN15, 중공군 90만으로, 660만 명이었습니다. 이에 더하여서 전쟁미망인이 33만 명, 피랍인이 320만 명, 전쟁고아 10만 명, 월남한 피난민이 약 300에서 500만 명, 이산가족이 약 1천만 명에 달하였습니다. 국가 산업 생산력의 약 80%가 다 파괴되고, 건물이 초토화되었으며, 모든 재산을 다 잃고 국토가 잿더미에 뒤덮였습니다. 그 인적, 물적 피해는 천문학적인 숫자로 계산할 수가 없을 정도로 우리 대한민국이 큰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공산군 점령지에서 그 어떤 계층보다 핍박받고, 투옥되며, 고문당하고 순교한 사람들이 바로 기독교 지도자들과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350대 탱크를 앞세운 5개 사단 규모의 북한 공산군이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와 3일 만에 서울을 함락시킵니다. 그리고 3일간 쉬었다가 다시 여세를 몰아 내려와서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갑니다. 순식간에 남한 전체가 공산화되는 것 같았습니다. 6.25 한국전쟁 직후 피난 내려온 기독교인들이 부산에 모여서 민족과 교회와 개인의 죄를 회개하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어린아이부터 나이 많으신 교계 지도자들까지 통곡하며 주님을 바라보며 울부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때 한국으로부터 구원병을 요청하는 전문이 미국 트루먼 대통령에게 당도합니다. 트루먼 대통령은 잠자리에 들었다가 일어나 침실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어떻게 이 일을 결정해야 되나 고민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될 순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의 결정에 따라서 수많은 미국 청년들이 피를 흘려야 할 것이고, 그에 따라 한반도 정세가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이 같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남한이 공산치하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없다. 6.25 전쟁에 미국이 개입하는 것이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길이다. 모든 수를 써서라도 그들을 막아야 한다. 기도하는 가운데 결정하고 UN군의 도움을 얻기 위하여 긴급히 UN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했는데 거부권을 가진 소련이 참석하지 않아서 한국전쟁 파병이 결정되었습니다. 16개국이 이 전쟁에 참여하여 우리 대한민국을 지켜주었습니다. 이게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한 기도의 결과이고, 하나님의 도우심의 은혜로 6.25 한국전쟁으로 우리가 공산화되지 아니하고 이 나라를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잿더미가 된 이 폐허 속에서도 절망 가운데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모두 한마음이 되어 절망을 딛고 일어났습니다. 그 중심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195367달러였던 국민 총소득이 2021년에 34,980달러가 되어 522배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의 피해를 입은 나라 가운데에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유일하게 다른 나라에 원조를 주는 복 받은 나라가 되었고,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인데, 오늘날 이런 풍요로움 속에 살면서도 많은 사람이 눈앞에 있는 작은 문제만을 바라보고 절망을 얘기합니다. 낙심하고 탄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아침에 뉴스를 보니까 어제 초등학교 5학년짜리가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서 뛰어내려서 목숨을 끊었습니다. 너무나 학교생활이 힘들고 살기 힘들다고 삶을 포기한 것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절망을 얘기하고 절망 가운데 탄식하고 무너지지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절망을 얘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희망을 노래합니다. 인류의 절대 희망되신 예수님, 우리 구세주가 되시기 때문에 우리는 절망 가운데 희망을 노래하고 주님의 은혜로 날마다 모든 어려움을 이기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절대 절망이 변하여 절대 희망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문제가 변하여 응답과 해결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상처가 변하여 회복이 되고 우리 삶 가운데에 하나님의 은혜를 가져다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무장해서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성경을 보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다음 2절에 가서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가운데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성경 창세기 12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는데 2절에 가서 갑자기 상황이 바뀌어져서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성경학자들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섬기던 루시퍼라고 하는 천사가 교만이 들어와서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쫓겨나 공중 권세를 잡은 다음 이 모든 세계가 흑암 위에 있게 되었다고 해석합니다. 이사야 14장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1413~15절입니다.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그래서 천사가 타락해서 공중 권세를 잡음으로 말미암아 이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게 된 것입니다. 그 죄의 뿌리가 바로 교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피조물로 지음 받은 천사가, 피조물로 지음 받은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기 때문에 죄가 이 땅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죄가 인류 역사 가운데 임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사탄이 뱀에게 들어가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담과 하와를 유혹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고 유혹했습니다. 그래서 하와가 먼저 선악과를 먹고 옆에 있는 아담에게 주어서 그들이 죄 가운데 빠지게 된 것입니다.
 
모든 죄의 뿌리가 교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고 나서 철저히 깨달아야 되는 것은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주님께 영광 돌리고 주님의 뜻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흑암이 깊음 위에 있게 됨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절망이, 질병이, 저주가, 사망이 온 세상을 뒤덮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믿기 전에 우리의 마음이 흑암의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마음이 공허하고 혼돈해서 기쁨이 없고 늘 마음이 울적하고 아무것도 아닌데 상처받고 낙심하고 쉽게 무너지는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 우리가 이 절망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 삶의 유일한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우리 마음의 절망을 걷어낼 수 없습니다. 시시각각 우리에게 다가오는 많은 문제와 어려움과 고통을 우리가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실 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절망을 이기고 문제를 이기고 어려움을 이기고 질병을 이기고 주님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의 희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니까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하나님의 영은 수면에 운행하시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고 난 다음 승리하는 신앙생활의 비결은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 가운데 임할 때 흑암의 권세가 물러가는 것입니다. 염려, 근심, 걱정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자꾸 시험에 들고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무너지는 이유는 성령이 운행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수님 믿고 난 다음 반드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을 받고 또 받아야 됩니다. 우리 인간이 연약하고 무기력하기 때문에 성령충만 받지 못하면 사소한 일에 시험 들고 상처받고 무너지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 받아서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순복음교회 65년의 이 모든 역사가 바로 성령충만의 역사였습니다. 성령충만의 역사로 시작해서 65년의 역사 가운데 세계 최대의 교회를 이룰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령충만 받아서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흑암의 권세를 물리치고 반드시 주님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일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빛이 있으라

 
성경은 이어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합니다. 창세기 13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성령이 우리 마음 가운데 임할 때 내 마음에 빛이 비춰지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의 빛이 비춰지는 것입니다. 생명의 빛이 비춰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온천지를 창조할 때 말씀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빛이 있으라!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시고 난 다음 하나님 말씀하시기를 빛이 있으라.” 하신 그 순간 모든 흑암의 권세가 걷혀버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시작되고 광명의 새날이 밝게 된 것입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 빛이 임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절망과 고통과 괴로움이 임할 때 주님의 빛이 비춰지면 이 절망의 어두움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여기 이 성전에 많은 불이 켜있어서 환하지마는 불을 끄는 순간 전체가 흑암으로 뒤덮일 것입니다. 그러나 스위치만 올리면 다시 온 성전이 환해지는 것처럼 우리 마음에 주님의 빛이 비춰져서 흑암의 권세를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이 빛이 우리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14절에 보니까.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내게 뭐라 말하나 굉장히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누가 칭찬하면 막 기분이 좋고 하늘을 나는 것 같다가도 누가 뭐라고 하면 욕하면 저절로 주저앉고 맙니다.
 
요즘 SNS의 댓글 하나 때문에 살고 죽는 사람들이 있어요. 막 사람들이 칭찬하면 좋았다가 욕을 하면 그냥 혼자 낙심해서 무너져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말하는 거 한 마디에 좋아하고 기뻐하고 아침엔 좋았다가 저녁에 낙심했다가 이러한 삶을 살면 안 됩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칭찬받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내게 뭐라고 그래도 아무런 의미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하나님께 칭찬받는 주님의 일꾼이 되기를 바랍니다.
 
악한 원수 마귀는 우리가 예수님 믿고 잘 되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 믿는 사람들 상처를 입히려 합니다. 또 부흥하는 교회에 흠집을 내려고 악한 원수 마귀가 날뜁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갈 때 흑암의 권세는 멸망을 받게 되고 우리는 하나님의 큰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6절에.
무릇 의인들의 길은 야훼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으면 하나님이 흑암의 권세를 물리쳐주시고 우리를 인정하시고 우리의 삶에 큰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 가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계획을 세우고 누구를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하든지 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모습이 될 때 하나님이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이 복을 받기 위해서 빛 되신 주님이 우리 마음 가운데 오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이 땅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사람들이 처음에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요한복음 19~10절은 말씀합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우리가 예수님을 알지 못할 때 마음은 여전히 어둠 가운데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알고 믿을 때 그 마음에 생명의 빛, 구원의 빛, 은혜의 빛이 비춰져서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 되며 강건하게 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빛 되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드리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성경은 나아가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15절입니다.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사람들이 보통 하루를 말할 때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하루를 계산하는 것은 전혀 반대입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것은 무슨 의미가 있느냐? 우리 삶에 어떤 저녁이 되고 어떤 밤이 오고 어떤 고통이 괴로움이 환난이 어둠이 다가와도 우리에게는 희망의 아침이 밝아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희망이 되어 주셨습니다.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영원한 희망이 되시고 영원한 아침이 되시고 영원한 새벽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절망의 밤이 다가옵니다. 문제의 밤이 다가옵니다. 때때로 가정에 어려움이 다가오고 육신에 질병이 다가오고 사업에 문제가 있어서 무너져 내리고 이와 같은 밤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그 밤의 절망에 앉아서 넋 놓고 탄식하고 있을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밤이 깊어도 밝아오는 새벽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어떤 밤도 다가오는 새벽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새벽의 신앙을 갖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문제가 다가오고 어려움이 다가와도 우린 새벽의 신앙을 갖고 일어나고 또 일어나서 모든 어려움 이기고 반드시 승리하는 것입니다.
 
코로나 3년을 지나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까? 수많은 영세소상인이 가게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목사님, 이 가게 한 달 월세가 200만원인데 200만 원을 낼 수 있는 수입이 생기기는커녕 한 달에 100만 원도 수입 못 될 때가 많습니다. 손님이 없으니까요.” 조그마한 가게 분식점인데 손님이 없어요. 하루 종일 문을 열고 있어도 두 명 세 명 올까 말까 합니다. 코로나가 아주 심했을 때는 손님이 하나도 안 와도 매일 아침에 가서 음식을 만들 재료는 사와야 되는데 하루에 몇 십만 원씩 사다 놓고 저녁때가 돼서 그냥 그대로 모든 재료를 그냥 놔둬서 상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 날과 그런 시간을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 밤이 깊고 긴 것 같아도 이제 우리에게 희망의 새벽이 밝았습니다. 축복의 새벽이 밝았습니다. 이제 코로나가 끝났으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희망의 새벽밖에 없습니다. 축복의 새벽밖에 없습니다. 기적의 새벽밖에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잘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다시 우리는 일어나면 됩니다. 믿음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절망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을 넘치게 부어주실 것입니다. 시편 305절은 말씀합니다.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밤에는 우리가 통곡하며 아파서 울고 괴로워서 울고 슬퍼서 울고 상처받고 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새벽은 밝아오는 것입니다. “목사님 너무 오랫동안 제가 마음고생하고 너무 힘들고 괴롭습니다.” 그래도 새벽은 밝아옵니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더 이상 절망하지 마십시오. 상처에 매어있지 마십시오. 새벽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우리에게 저녁은 다가오지만 반드시 아침이 다가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문제 염려 근심 걱정을 다 주님께 맡겨야 됩니다. 시편 552절입니다.
 
네 짐을 야훼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할렐루야.
이번 선교대회 때 알래스카에서 사역하시는 윤호용 목사님께서 저한테 책을 한 권 주셨어요. 알래스카에서 하나님 나라를 꿈꾸다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해져서 눈물도 나고 또 밤에 감동도 받고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제가 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사랑하는 자기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그 간증을 다 담고 있습니다.

 
알래스카가 원래 러시아 땅입니다. 러시아는 알래스카가 얼음덩어리라고 생각해서 갖고 있어도 나라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될 거라고 생각해서 저 땅을 내놨습니다. 역사를 찾아보니까 영국에 문의하니 영국이 안 산다고 그러고, 캐나다에도 구매를 문의하니 캐나다도 안 산다고 그러고, 미국에다 팔려 했는데 미국 역시 안 산다고 그랬습니다. 그래도 미국에 사달라고 떼를 쓰고 팔아서 1867년에 720만 불에 팔았습니다. 그냥 거저 얻은 거죠. 그 땅을 샀다고 슈어드 국무장관이 얼마나 욕을 먹었는지 모릅니다. 지금 그 땅에서 뭐 석유가 나오고 온갖 천연자원이 다 나와서 황금의 땅이 되었는데 크기만 우리나라의 17배입니다.
 
미국령이 된 알래스카에 윤호용 목사님이 1989년도에 이민을 갑니다. 그는 그곳에서 사업을 잘해서 성공적인 삶을 살다가 예수님 만났습니다. 그래서 소명 받고 한국에 와서 신학 공부를 하고 한국에서 신학교를 졸업했을 때 한국에서 개척할 수 있도록 초청받았지마는 내 사명은 알래스카에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알래스카로 다시 건너가서 교회를 개척합니다.
 
미국 이민교회라는 것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모릅니다. 저도 미국에서 이민 목회를 해봤지만 참 힘들었습니다. 첫날 금요철야 할 때 3명이 나왔어요. 3. 저는 여의도 교회에서 살아가지고 숫자에 대해 관심이 없었는데 미국 가보니까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 알래스카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그 힘든 상황에서 하나님이 윤 목사님과 함께해 주셔서 5년 만에 교회를 짓고, 교인은 재적 성도 94명으로 크게 부흥했습니다. 할렐루야.
 
2012713. 13일의 금요일입니다. 그날 금요 예배로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데 그 당시 스무 살이었던 아들이 교통사고가 났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성도님과 함께 다 같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끝날 때쯤 장로님이 다가오셔서 귓속말로 얘기했습니다.
 
아들(태원)이 천국 갔대요...
사랑하는 아들과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상황이었고 그 마음에 찢기는 고통으로 울부짖어도 모자랄 상황인데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위로함과 평안함을 주셨습니다. 눈물로 기도하며 주님이 주신 평안함을 가지고 이렇게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희 아들 태원이를 주님의 품으로 인도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기쁘게 받아 주시옵소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자녀를 잃은 분 얘기를 들어보니까 그 자녀와 비슷한 아이만 봐도 눈물이 나고,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고, 이름만으로도 눈물이 나고, 그냥 몇 년 동안은 정신없이 그 죽은 아이 때문에 고통을 느낀다고 했는데 이 목사님이 예배 중에 그 사랑하는 큰아들이 교회학교에서 열심히 교사로서 봉사하고 청년부 활동 열심히 하고, 교회 일에 모든 일을 다 솔선하였던 그 아들이 세상을 떠났으니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그때 그 마음에 <이 땅에 오직 주밖에 없네> 그 찬송이 큰 위로함을 주었습니다. 저도 일본에서 사역할 때 이 찬송을 많이 불렀는데요.
 
<256: 이 땅에 오직>
이 땅에 오직 주 밖에 없네
그 무엇도 나를 채울 수 없네
주님의 평안 내 안에 있네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네
 
이 찬송을 부르며 장례 예배 때 성도님 앞에서 이와 같은 고백을 합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 태원이가 천국에 갔으니, 나는 이제 더욱 더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합니다. 훗날, 우리 태원이를 천국에서 만나려면 삯꾼 목사는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저는 이제부터 부끄럽지 않은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갈 것을 이 자리를 빌려 선포합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나서 더 열심히 주님의 일에 힘써서 2021년에는 알래스카의 주도시인 주노에 한인교회가 없어질 상황에서 교회를 세우고, 또 베델의 지역에 지교회를 세우고, 2023년에는 페어뱅크스의 지역에 세 번째 지교회를 세워서 알래스카 복음화에 큰 역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는 그의 책 뒷부분에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이 책 뒷부분의 이 고백이 내 마음에 얼마나 감동을 줬는지 모릅니다.
 
새 생명을 낳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죽어야 하는 연어처럼 나 역시 죽는 시간이 있었다.
연어는 알래스카의 대표적인 그 생선인데 많은 연어가 알래스카에 가서 알을 낳고 죽습니다.
 
감히 어찌 내가 죽을 수 있으랴. 내가 죽고 내 안의 예수님이 사시는 것, 그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결국 주님께서는 그 일을 내 안에서 이루셨다. 주님의 은혜로 나는 예수로 인해 죽고, 예수로 인해 다시 사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알래스카라는 나의 영적인 본향에서 새 생명을 낳기 위해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다. 나는 알래스카에서 예수님과 함께 사는 연어다.
 
여러분, 어떤 절망이 있어도 우리에게는 희망의 새벽이 밝아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우린 주님의 은혜로 다시 일어납니다. 어떤 슬픔이 있어도 주님이 나를 붙들어주시기 때문에 나같이 쓸모없고 부족한 자라고 할지라도 나를 너무나 사랑하시고 함께하시고 내 삶을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에. 여러분 포기하지 마십시오. 더 이상 절망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영원한 희망의 아침을 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영원한 새벽의 신앙을 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일생이 다 가도록 주님의 은혜 가운데 희망의 새벽을 품고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믿음의 고백으로 찬송가 310장을 함께 하겠습니다.
 
 
<찬송가 310(410): 아 하나님의 은혜로>
 
1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후렴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
늘 보호해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2 왜 내게 굳센 믿음과 또 복음 주셔서
내 맘이 항상 편한지 난 알 수 없도다
 
3 왜 내게 성령 주셔서 내 마음 감동해
주 예수 믿게 하는지 난 알 수 없도다
 
4 주 언제 강림하실지 혹 밤에 혹 낮에
또 주님 만날 그 곳도 난 알 수 없도다
 
한평생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희망의 새벽을 품고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겠습니다. 믿음의 결단을 하며 우리 주님 앞에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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