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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모실 방이 있습니까?
2022.12.25 / 누가복음 2장 1~7절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누가복음 2장 1~7절)
 
 
귀한 메시아의 할렐루야 찬양 감사드립니다. 오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하여서 이렇게 성탄절 예배에 참여하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영어로 한 번 인사 나누고 한국말로 인사 한번 나누겠습니다. “Merry Christmas.” “성탄을 축하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모든 영광 돌립니다.
 
 
오늘 깊은 성탄절을 맞이하여서 누가복음 21절로 7절 말씀을 본문으로 예수님 모실 방이 있습니까?”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 번 따라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모실 방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인류 역사 이래 최대의 기적이요 축복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온 인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와 절망을 짊어지시고 십자가 달려 돌아가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높고 높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셔서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우리 주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세 단어로 정리가 됩니다. ‘낮아지심, 섬기심, 희생하심입니다. 예수님은 낮아지셔서 가난하고 병들고 고난당한 모든 약한 사람들을 주의 사랑으로 섬기시고 십자가에서 희생하셔서 온 인류의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이러합니다. 가이사 아구스도 그러니까 로마 황제 가운데 가장 역사 가운데 최고의 황제로 불리는 시저 어거스투스 황제 재위 시절입니다. 그 어거스투스의 이름을 따라서 생겨난 이름이 August, 8월입니다. 8월이 바로 저 황제 이름을 따서 생겨난 달의 이름인데, 이 황제 시대에 그가 점령하고 있던 모든 로마 제국 산하에 있는 나라의 명을 내려서 모든 사람이 자기 고향에 가서 호적을 신고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자손 요셉도 나사렛 동네에서 그의 고향인 베들레헴에 가서 호적을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만삭이었던 마리아가 아이를 낳게 됩니다.

누가복음 24절로 6절입니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1.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


그런데 아이를 낳으려고 하는데 그곳에 여관에 있을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 당시 여관에 있을 곳이 없었다고 성경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누가복음 27절입니다.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요셉과 마리아가 아이를 해산하려고 하는데 여관에서 방을 구하지 못해서 결국 춥고 더럽고 냄새나는 마구간에서 아이를 낳아 구유에 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가장 낮고 천한 곳에 누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낮아지심, 섬김 그 자체였습니다.

빌립보서 26절로 8절은 설명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사람들은 누구나 한없이 높아지기만을 원합니다. 더 높은 자리 권력 있는 자리로 나가길 원합니다. 그러나 교만과 탐욕은 궁극적으로 사람을 파멸로 이끌어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잠언서 1618절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예수님을 본받아서 한평생 겸손의 삶 낮아짐의 삶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목자들에게 전해진 소식


그런데 이 예수님의 탄생 소식이 제일 먼저 목자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온 인류의 구세주 되신 예수님의 탄생이 당시 천한 직업으로 여김 받았던 목자들에게 제일 먼저 전해진 것입니다.

누가복음 28절로 10절은 설명합니다.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예수님의 탄생 소식이 그 헤롯이 살고 있는 왕궁에 전해진 것도 아니고 부잣집에 전해진 것도 아니고 당시 권력층에 있던 제사장,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에게 전해진 것도 아니고 가장 평범한 사람,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지 않는 천한 직업이었던 그러나 그 자리에서도 성실한 삶을 살고 있는 목자들에게 전해졌던 것입니다. 그들은 남이 알아주지 않는 직업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다 곤히 잠을 자고 있는데 맡겨진 양 떼를 지키기 위해서 밤을 새워가며 그 들에서 떨면서 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28절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편하게 자기 집에서 잠도 자지 아니하고 양 떼를 지키기 위해서 밖에 나와서 밤을 새우며 짐승들로부터 양 떼를 지키고 있던 목자들에게 예수님의 탄생 소식이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목자처럼 우리의 심령이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있을 때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8절은 말씀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절대로 우리의 영이 잠들면 안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3차 선교여행 때 드로아에 가서 말씀 전할 때 말씀이 길어지게 되니까 그 3층에서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졸다가 떨어져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성경에 훌륭하고 아름다운 업적을 남겨서 이름이 적힌 게 아니라 졸다 떨어져 즉사하였더라.

사도행전 209절은 설명합니다.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사도 바울이 내려가서 그를 살렸습니다마는 우리도 어떤 이유로든지 유두고처럼 졸거나 잠이 들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잠을 자는 것은 우리를 파멸로 이끌어 갑니다. 영적인 잠을 자면 생각이 부정적이게 되고 영적인 잠을 자게 되면 기쁨과 감사가 사라지고 교회를 다녀도 그저 구경꾼으로 왔다 갔다 하고 어두운 면만 보고 원망과 불평을 말하는 그러한 모습으로 삶이 바뀌어지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늘 깨어있어야 됩니다. 목자처럼 깨어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맡은 일에 성실함을 다하여 그 일을 완수할 때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깨어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로 깨어있고 찬양으로 깨어있고 말씀으로 깨어있고 감사로 깨어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3. 우리의 결심

이 목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결심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성탄절을 맞이해서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될 것인가.

1. 내 삶의 중심에 예수님을 모셔야 한다.

아무리 바쁘고 할 일이 많더라도 예수님을 거절하고 마구간으로 몰아냈던 그 당시의 사람들처럼 살면 절대 안 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어떤 상황에도 내 삶의 중심에 예수님을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내 삶의 첫 번째 순서에 예수님을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바쁘다고 사람들이 높아졌다고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많은 일이 앞에 놓였다고 해서 예수를 처음 믿었을 때 받았던 그 은혜의 감격을 잃어버리고 첫사랑을 잃어버리고 예수님을 뒷전에 두고 그저 일에 취하여 삽니다.

내 삶의 중심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고 내가 자리를 잡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 내 마음의 중심에 오셔서 나를 다스려 주시고 내가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내가 이 세상에 나가서 잘 돼도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라는 걸 잊지 않게 하여 주시고 늘 예수님 중심으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이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일평생 예수님 제일주의의 삶을 살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 되어야 한다.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이와 같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누가복음 210절로 11절입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천사가 목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한 것 같이 이제 우리도 이 기쁜 소식을 만방에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절망에 처한 사람들에게 문제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슬픔에 처한 사람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고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는 사실을 전해야 됩니다. 구원을 선물로 받게 되고 그 결과 우리는 영생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길이 되시고 진리가 되시고 생명이 되신다는 사실을 널리 전해야 됩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함으로 말미암아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3. 사랑의 실천자가 되어야 한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실천입니다. 절망에 처한 많은 사람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해야 되는 것입니다. 고난당한 이웃을 우리가 돌봐야 됩니다. 우리 주변에 고개를 돌려만 보면 우리가 돌봐야 될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독거노인, 소년 소녀 가장, 몸에 장애를 가지고 있는 장애우들, 35천 탈북민, 미혼모 가정, 35200만 다문화 가족, 또 병 중에 병원에 누워있고 늘 약을 먹고 아픈 몸으로 살아야 되는 그러한 고난에 처한 이웃들을 우리가 돌봐야 되는 것입니다.

매년 쪽방촌을 가면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우리 한국이 10대 경제 대국이라고 하는데 아직도 이곳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한 평짜리 방에 약 서울역 뒤에 힐튼 호텔 옆에 400세대가 살고 있는데 한 달 월세가 25만 원이라고 그럽니다. 이곳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 여러 경로를 통해서 얘기했지만 아직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추운 겨울에 이제 전기장판 하나 깔고 지냅니다. 가서 성도님들 기도해 드리니까 날이 추워지면 웃풍이 너무 세서 바닥은 따뜻하고 얼굴은 차갑게 업니다. 이런 환경이 개선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경제 10대 대국 아닙니까? 지금 2022년입니다. 바뀌어야됩니다. 2024, 25년쯤에는 새로 빌딩을 지어서 옮긴다고 하는데 속히 그런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우리의 이웃입니다. 우리가 돌봐야 될 우리 형제고 자매인 것입니다. 예수 믿고 축복받은 우리들이 나 혼자 되었다.’ 나 혼자의 삶에 만족하면 안 됩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우리에게 축복을 주신 것은 우리에게 등 따숩고 배부르게 우리의 삶의 풍요로움을 주신 것은 우리 주위에 고난 당하는 이웃을 돌보라고 그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서 그들을 사랑으로 섬기고 그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주님의 귀한 자녀들이 다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복음 전파의 사명,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사명을 완성함에 있어서 생명조차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그는 고백합니다.

사도행전 2024절입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여러분에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정말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어제 매우 추웠습니다. 어저께 청량리 밥퍼 현장에 가보니깐 영하 10도가 되는데 밖에서 성탄 축하 거리 예배 35주년 해서 한 1,500명이 모였는데 그 안에 밥퍼 건물 안에는 자리가 없어서 1,000명 밖에 못 들어오고 500명이 밖으로 줄을 쭉 줄을 섰더라고요.

그런데 거기 밥퍼에 건물을 지었는데 건물을 증축한 것이 불법이라고 또 건물을 허물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추운 겨울에 저들이 따뜻하게 밥 한 끼 먹는 그것도 지금 폐쇄가 되어야 되는 그런 어려움이 있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가서 말씀을 전하고 저들에게 가지고 온 것들을 나눠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왔는데 우리 주변에 고개만 돌려보면 그런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이 주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후로 주님, 내가 주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내가 받은 은혜를 베풀고 나누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고난당한 이웃을 돌보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나 혼자 축복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우리 주위에 고난당한 고난이 나의 고난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을 사랑으로 돌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탄절이 되면 늘 기억되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 중서부 어느 작은 마을에 9살 난 월래스라고 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나이로는 4학년 되는 나이인데 지적 능력이 떨어져서 2학년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지적 장애가 있어가지고 몸은 크고 그런데 수준은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과 다니면서 그들과 어울려야 될 그러한 지적 수준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지적 장애는 그 정도 수준으로 초등학교 2학년 수준으로 아마 평생 살겠죠.

그런데 성탄절이 되어서 교회학교에서 이제 성탄절 연극을 하는데 다 역을 맡깁니다. 요셉 역을 맡기고 마리아 역을 맡기고 목자 역을 맡기고 동방 박사 역을 맡기고, 다 맡기는데 이 월래스를 맡길 역이 없습니다. 맡길 배역이 마땅한 게 없습니다. 말이 어눌하고 또 지적 능력이 떨어져서 기록을 찾아보니까 여 선생님이 고민하다가 맡겨진 역이 이 여관 주인 역입니다. 가만히 서 있다가 방 없어요.” 이 딱 한 마디만 하면 됩니다. 연습을 시키고 또 시키고 또 시켜가지고 연습할 때 이 월래스가 곧잘 했습니다. 그냥 요셉과 마리아가 와서 우리 아이가 태어나야 하는데 방을 달라고 그러면 가만히 듣고 있다가 없어요.” 그러면 끝나니까요.

그래서 성탄절이 되어서 온 저녁에 교인과 동네 사람이 다 모였습니다. 이제 순서대로 착착착착 연극이 진행되어 가는데 이 선생님은 월래스 순서만 지나면 모든 것이 잘 끝나니까 조바심을 갖고 뒤에서 서성거리면서 무대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드디어 분장한 요셉과 마리아가 와서 문을 두드립니다. 문두들기면서 월래스가 문을 여니까 간절히 호소합니다. “지금 내 아내가 만삭이라서 아이를 낳아야 되는데 방이 필요합니다. 이 추운데 갈 데도 없고 방을 주세요. 방을 주세요.”

원래 연극할 때는 없어요.” 하던 아이가 가만히 서 있습니다. 꼼짝 않고 가만히 서있어요. 그래서 선생님 뒤에서 방 없어요. 방 없어요. 방 없어요.” 저 뒤에서 불러주는데도 그러다가 갑자기 정신 차려서
빈 방 없어요!

그러니까 요셉과 마리아가 고개를 푹 숙이고 뒤로 돌아가는데 그 모습을 월래스가 보더니 눈물이 글썽글썽거리더니 소리를 지릅니다.
요셉, 가지 마세요, 마리아를 데려오세요. 내 방을 쓰세요.

연극은 엉망이 되었지만, 그 연극을 지켜본 모든 어른이 다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월래스의 순수한 마음 우리가 정말 월래스 같이 예수님을 모실 마음의 방이 준비되어 있는가. 이 연극은 실제로 미국에서 일어났던 일로 1977년 가이드 포스트와 다이제스트 등 월간지를 통해서 월래스의 성탄절이라는 칼럼으로 소개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부터 매년 12월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교회뿐 아니라 일반 문화계에서도 빈방이 있습니까?’ 하는 연극이 공연되고 있습니다.

2022년 성탄절에 만약 우리에게 주님이 오셔서 빈방이 있습니까?’ 물어볼 때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 것입니까? 여러분 마음에 예수를 모실 자리가 준비되어 있습니까? 여러분 마음속에 여러분의 탐욕 이기주의 교만 고집이 가득 차서 예수님 모실 어느 한 공간도 없는 그러한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저 내 살기 바빠서, 그저 돈 벌기 바빠서, 그저 세상으로 나와서 높은 자리에 가기 위해서, 그러한 세상의 명예 인기가 가득 차서 주님 오실 자리가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있지 않은지 어떻게 보면 나라고 하는 우상이 나의 마음에 딱 자리 잡아서 예수님 모실 자리가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있지 않은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월래스는 초등학교 2학년밖에 안 되는 그러한 지적 능력으로 머물러 있었지마는, 순수하게 정말 주님을 사랑해서 연극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요셉과 마리아를 붙잡았습니다.

여러분, 오늘 예수님이 여러분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실 때 주님, 내 마음의 중심에 오셔서 나의 주인이 되어 주시고 나의 일생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앞에 여러분의 삶을 맡기는 주님의 귀한 자녀가 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진정한 낮아짐의 뜻이 무엇이고 섬김의 뜻이 무엇이고 희생의 뜻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는 귀한 성탄절 되기를 주님으로 축원합니다.
 
 
<찬송가 108(113): 그 어린 주 예수>
 
1 그 어린 주 예수 눌 자리 없어
그 귀하신 몸이 구유에 있네
저 하늘 별들이 반짝이는데
그 어린 주 예수 꼴 위에 자네
 
2 저 육축소리에 아기 잠 깨나
그 순하신 예수 우시지 않네
그 귀한 예수를 나 사랑하니
새 날이 밝도록 함께 하소서

3 주 예수 내 곁에 가까이 계셔
그 한 없는 사랑 늘 베푸시고
온 세상 아기들 다 품어 주사
주 품 안에 안겨 살게 하소서 아멘
 
 
예수님의 낮아짐과 섬김과 희생이 우리 마음 중심에 자리 잡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다 주기 위하여서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가장 낮은 곳에 임하셨는데 우리는 아직도 더 가지려고만 하고 더 높아지려고만 하지 않았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그 귀한 뜻을 마음 깊이 깨달아 그 삶을 본받고 그 삶대로 살아갈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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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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