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2022.11.13
/ 창세기 37장 18~20절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창세기 37장 18~20절)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오늘 저는 창세기 37장 18절로 20절의 말씀 가지고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이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번 크게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우리는 태어나서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삽니다. 두 번 인생을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분명한 삶의 꿈과 목표를 갖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모든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그 성공의 비결을 보면 분명한 꿈과 목표가 있는 사람들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거룩한 꿈을 가져야 합니다. 거룩한 꿈을 갖고 꿈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꿈과 믿음은 하나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 2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꿈꾸고 믿고 바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 믿음이라고 히브리서 11장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믿음의 조상들이 꿈꾸고 믿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서 하나님의 큰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주님 안에서 거룩한 꿈을 꾸고 그 꿈을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요셉은 꿈이 많은 소년이었습니다. 늘 꿈을 꾸고 꿈을 이야기하며 살았습니다. 늘 꿈을 얘기하니까 꿈이 없이 살던 형들이 동생 요셉을 미워했습니다.
창세기 37장 5절입니다.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요셉은 장차 하나님께서 자기를 높이셔서 위대하게 사용하실 것을 꿈꾸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꾼 것을 형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창세기 37장 6절, 7절입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신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이 동생의 꿈 이야기를 듣고 형들이 더욱더 미워했습니다. 그다음 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형들에게는 삶에 대한 아무런 꿈과 비전이 없었습니다. 그저 매일같이 양들을 치며 사는 것이 그들의 삶의 전부였습니다. 꿈도 없고 목적도 없었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양치며 먹고 사는 것이 그들의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이 자라난 요셉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늘 꿈속에 살았습니다. 꿈을 꾸고 그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같은 꿈을 계속 꾸니까 그 꿈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또 얘기했습니다. 주님 안에서 거룩한 꿈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구체적이고 분명한 꿈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땅에 온 것은 우연히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귀한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 땅에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여러분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거룩한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사업하는 사람으로서의 거룩한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학생들은 학생으로서 의사는 의사로서 직장인은 직장인으로서 예술인은 예술인으로서 각기 있는 위치에서 꿈을 꿔야 합니다. 거룩한 꿈을 꾸고 꿈을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거룩한 꿈을 꾸었습니다. 장차 내가 하나님이 높이셔서 위대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 귀한 일을 맡게 될 것이라는 꿈을 꾸었습니다. 주님 안에서 구체적이고 분명한 꿈을 꾸고 꿈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저 목적도 없이 방향도 없이 물 위를 떠다니는 낙엽 같은 인생을 살지 말고 하루를 살아도 분명하게 거룩한 꿈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각자 각자 나의 삶에 대한 거룩한 꿈을 꾸고 꿈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야 합니다. 분명한 꿈을 가져야 됩니다. 지금까지 꿈이 없이 살았다고 하면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의 마음에 거룩한 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개인에 대해서 여러분의 자녀에 대해서 여러분 직장에 대해서 여러분 사업에 대해서 여러분 자녀들에 대해서 거룩한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주여! 내게 거룩한 꿈을 주셔서 주님 안에서 꿈을 이뤄나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2. 고난의 과정을 극복하라
그런데 꿈이 저절로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고난을 통과해야 되는 것입니다. 꿈을 꿀 때 우리에게 도전이 다가옵니다. 여러 가지 문제와 어려움이 생겨납니다. 꿈을 꾸니까 형들이 미워했습니다. 그런데 형들이 미워하고 주위 사람이 나를 흔들고 핍박을 해도 내가 가지고 있는 꿈을 분명히 붙잡고 바라보고 나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마음의 열정이 생겨납니다. 그 꿈을 위해서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꿈을 이루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와 축복을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성공이란 그저 하루아침에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꿈꾸고 믿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꿈꾸는 사람은 어떠한 고난이 다가와도 문제가 다가와도 넉넉히 이기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요셉은 꿈을 꾸었기 때문에 많은 시련을 당했습니다. 요셉이 시련 당한 것을 크게 네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그 모든 시련을 그는 꿈을 꾸며 믿음으로 이겨냈습니다.
로마서 5장 3절로 4절은 말씀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꿈꾸고 믿고 나아갈 때 이것이 우리에게 인내를 배우게 하고 우리가 이 모든 걸 잘 견딜 수 있는 훈련을 시켜서 연단을 받게 한 다음 꿈을 이루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요셉이 꿈을 꾸니까 형들이 미워했습니다. 첫 번째 시련은 형들이 그를 미워해서 그를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같은 형제끼리 그렇게 미워해서 자기를 죽이려고까지 하니 얼마나 그것이 어린 소년 요셉에게는 큰 고통이었겠습니까? 열 명의 형이 그를 죽이기로 작정을 하고 그가 아버지의 심부름 왔을 때 구덩이 속에 그를 던져 넣었습니다. 죽음 직전까지 갔던 그가 그 근처를 지나가는 상인에게 팔리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37장 28절은 설명합니다.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그의 나이 17살입니다. 17살에 그는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노예로 팔리게 됐습니다. 두 번째 다가온 시련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정말 귀하게 자랐던 그가 부잣집에서 귀하게 자랐던 그가 가장 낮고 천한 신분인 노예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노예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39장 1절입니다.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요셉은 노예로 팔려가서 인간 이하의 취급 받으면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당시 노예는 인격이 존중되지 않았습니다. 짐승처럼 하루종일 일 시키고 부리다가 병들고 약해지면 광야에 내다 버렸습니다. 그래서 짐승의 밥이 되어 죽는 것이 노예의 최후였습니다. 인격적으로 무시당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궂은일을 다 감당해야 했으며 조금이라도 쉬려고 하면 등의 채찍이 그냥 내려치는 그러한 고난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노예의 삶도 그의 꿈을 가로막지 못했습니다. 그의 꿈을 꺾지 못했습니다. 그는 노예로 살면서도 꾼 꿈을 가지고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노예로 팔려온 그 누구보다도 그는 눈이 부리부리하고 늘 꿈을 갖고 열심히 일을 해서 그 노예로 팔려 온 친위 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인정받는 그런 노예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39장 2절입니다.
야훼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래서 그가 많은 노예 가운데 총무의 직을 맡아서 집의 모든 일을 다 관리하게 됐는데 그다음에 세 번째 시련이 다가옵니다. 그 친위 대장 보디발의 아내가 그를 억울하게 모함을 한 것입니다.
창세기 39장 17절, 18절, 20절입니다.
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던져졌습니다. 그는 잘못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위 대장 보디발의 아내가 그를 모함해서 감옥에 집어넣은 것입니다. 그것도 보통 감옥이 아니라 왕의 신하들이 잘못하면 들어가는 그런 감옥입니다. 그러니까 거기는 특수한 감옥이라서 왕이 사면해 주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곳인데 그곳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아마 보디발이 신임했다가 배신을 당한 것 같은 그 생각 때문에 미워서 평생 그 안에 있다 죽으라고 넣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절망의 감옥도 이 요셉의 꿈을 막지 못했습니다. 요셉의 꿈을 가로막지 못했습니다. 요셉의 꿈을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감옥 안에서 꿈이 마음 가운데 불타올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셨던 것입니다. 감옥에는 다른 모든 사람이 낙심해서 절망에 처했을 때 그는 늘 하나님을 바라보며 꿈꾸며 믿음으로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젠가 나를 높이시고 주님의 귀한 일을 이루실 것이다.
창세기 39장 21절, 23절입니다.
야훼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야훼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야훼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얼마나 그가 꿈에 사로잡혀서 감옥 안에서도 모든 면에 본을 보였던지 간수장 요즘으로 말하면 교도소장이 감동을 해갖고 아예 열쇠 꾸러미를 죄수인 요셉에게 맡겨 자네가 이 감옥을 다 돌보라고 그 간수장의 일을 맡긴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죄수로 감옥에 끌려간 사람이 그 교도소장의 인정을 받아갖고 나와서 교도소를 관리하는 사람이 됐다고 하는 것은 이것은 기적입니다.
꿈꾸는 사람에게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어떠한 시련도 어떠한 문제도 어떠한 절망의 감옥도 꿈을 가둬 놓을 수 없습니다. 꿈꾸는 사람을 가둬 놓을 수 없습니다. 꿈을 꾸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삶 가운데 그가 어디를 가든지 형통하게 만들어주시고 은혜와 축복을 더해 주신 것입니다.
마지막 시련은 그가 그 감옥 안에서 바로 왕의 신하 둘을 만나서 꿈을 해몽해주었는데 한 사람은 3일 후에 복직이 되는 꿈이고 한 사람은 3일 후에 죽는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복직되는 자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창세기 40장 14절, 15절, 23절입니다.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술 맡은 관원장에게 “당신이 이제 곧 풀려날 텐데 매일 왕 옆에서 왕을 시중들 터이니 ‘내가 감옥 안에서 죄 없는 소년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를 풀어주십시오.’ 부탁만 하면 왕이 알아보고 나를 풀어줄 것입니다.” 그랬는데 사람이 화장실 갈 때 올 때 다르다고 이 술 맡은 관원장이 3일 만에 풀려나고 나서 그걸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요셉은 이제 관원장이 풀려났으니까 기쁜 소식이 올 것을 알고 다음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세수하고 옷매무새를 단장하고 소식이 오길 기다립니다. “사면!” 하는 소식이 올 줄 알고 기다리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한 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습니다. 분명히 관원장이 “내가 나가서 바로 왕에게 말해서 당장 자녀를 풀어줄게.” 이야기하고 나갔는데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석 달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 가장 큰 고통과 시련의 시간일 줄로 생각을 합니다. 감옥 안에서 그렇게 2년을 보냅니다. 그가 보낸 2년이 그가 지금까지 보낸 11년 노예 생활과 감옥 생활보다도 더 긴 긴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의 긴 시간도 그의 꿈을 가로막지 못했습니다. 밤이 깊으면 새벽은 밝아 오는 것입니다. 겨울이 아무리 춥고 길어도 분명히 희망의 봄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꿈꾸는 사람에게는 절망이 절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절망은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고난은 축복을 향해 나아가는 고속도로인 것입니다. 그는 절대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꿈꾸고 믿고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서 감옥에서 그가 고통 가운데 있을 때 다시 그를 높이 세워주셔서 2년 후에 바로 왕에게 꿈을 꾸게 하시고 아무도 그 꿈을 해몽하지 못할 때 그제서야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게 되어서 요셉이 풀려나갑니다. 그러고 나서 꿈을 해몽합니다. 바로 왕이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높인 것입니다.
요셉이 높임 받고 나서 그는 사랑과 관용을 베푸는 자로서 위대한 지도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루아침에 꿈을 해몽해주고 그가 총리가 되는데 성경은 이같이 말씀합니다. 창세기 41장 39절로 41절입니다.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마침내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17살 때 그 꿈을 얘기했는데 13년이라고 하는 긴 긴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 하나님의 때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거룩한 꿈을 가지면 우리에게 환란이 다가오고 어려움이 다가오고 문제가 다가오지만 때가 되면 꿈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꿈꾸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핍박합니다.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여러 가지로 고통을 줍니다. 그러나 그 어떤 시련과 고통도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도 우리의 꿈을 가로막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꿈을 무너뜨릴 수가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주님 안에서 가진 거룩한 꿈은 주님의 때에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요셉이 꿈을 이루고 난 다음 자기를 해롭게 한 사람들을 아무도 벌주지 아니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정도 물어보지 아니하고 화를 내고 자기를 감옥 안에 집어넣은 친위 대장도 그의 아내, 보디발의 아내도 불러다 벌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그들을 붙잡아다가 곤장을 100대 쳤다는 그런 말이 없습니다. 그 누구도 죄를 묻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감옥에서 나가서 왕에게 말해준다고 하고 잊어버린 술 맡은 관원장도 요셉은 벌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를 죽이려고 했다 노예로 판 형들이 그 앞에 와서 곡식을 사러 와서 무릎을 꿇었을 때 그들을 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자신을 밝히고 이와 같이 얘기했습니다.
창세기 45장 5절 8절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워서 이 같은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나중에 온 가족을 애굽에 초청해서 살게 했는데 아버지 야곱이 죽게 되니까 형들이 두려워 떨었습니다. 이제는 아버지가 죽었으니까 우리에게 복수할 것이다. 그때 요셉이 그들을 불러 다시 이야기합니다.
창세기 50장 19절로 21절입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요셉은 부와 권력을 가진 높은 자리에서 자기에게 해를 입히고 피해를 준 사람들을 벌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고 관용하고 용서를 베풀어서 그들을 품었습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사람을 품는 지도자인 것입니다. 남을 벌하고 상처를 주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고 품는 사람들이 진정한 지도자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어릴 때 유대인 자녀들에게 하는 교육이 “절대로 너는 남 험담을 하지 말아라. 남 흉을 보지 말아라.” 하는 것을 매일같이 가르치고 또 가르치고 또 가르친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끼리는 절대 서로 남을 물고 뜯지 아니하고 험담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한국에 온 이스라엘 대사와 제가 굉장히 친하게 지내면서 자주 뵙고 또 대사관 관저에 가서 식사도 하고 하는데 한 번도 이분이 남 험담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 미국에서 대사가 왔는데 그분이 유대계 미국인인데 이분이 동성애를 지지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같이 식사를 하면서 새로운 미국 대사를 막 비난했더니 한마디 대답도 안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오히려 부끄러웠습니다. ‘아 이분들은 남에 대해서 비판하지 않는구나.’ 우리 사회가 반성해야 됩니다.
우리는 무슨 일만 생기면 서로 남 탓하고 물고 뜯는데, 주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부터 먼저 남에 대해서 험담하지 않게 하여주옵소서. 나쁜 말 하지 않게 하여주옵소서. 좋은 말을 하고 서로를 칭찬하고 격려하고 부족한 일이 있으면 격려하고 아프고 상처 입은 사람을 품어주는 삶을 살게 하여주옵소서. 우리 모두가 이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들 가운데 많은 세계적인 지도자들이 탄생한 것입니다. 늘 관용하는 마음을 갖고 품었기 때문에 세계적인 지도자가 유대인들에게서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남을 밟고 올라가는 사람들은 결코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잠시 잘 되는 것 같아도 자기가 남에게 피해를 주고 남의 눈에서 피눈물 나게 한 사람들은 결국 자기도 부메랑이 되어서 고통 가운데 빠지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사랑으로 섬기는 지도자입니다. 베풀고 나누는 지도자입니다. 요셉 같은 지도자가 다 되기를 바랍니다. 거룩한 꿈을 꾸고 사랑하고 용서하며 베풀고 나누며 살아가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꿈꾸는 사람 류태영 박사를 소개하길 원합니다. 이분은 전북 임실 두메산골에서 머슴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얼마나 가난했는지 형제들은 많은데 그 아버지가 부잣집의 논에서 논을 지으면서 농사를 하면서 거기서 얻어 먹고 살았습니다. 정말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난 속에서도 어린 소년 류태영은 꿈을 꿨습니다. 이 지지리도 가난한 농촌을 내가 앞으로 변화시켜서 부유한 농촌으로 만드는 그러한 농촌의 지도자가 되겠다. 꿈을 꿨습니다.
그런데 그 두메산골에 교회가 들어왔습니다. 교회 조요셉 전도사님이 그 교회에 와서 예배를 인도하실 때 어머니랑 같이 교회를 나갔습니다. 근데 그 전도사님이 말하기를 “꿈꾸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이 다 들어주신다.” 그래서 그때부터 매일같이 새벽에 나가 꿈꾸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같은 기록이 나옵니다.
아침잠이 많았는데도 새벽이면 벌떡벌떡 일어나 교회로 달려가 기도했다. 장관이나 대통령 면회도 하늘의 별 따기인데, 하물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일을 어찌 게을리할 수 있겠는가. 나는 새벽기도에 나가 하나님께 소원을 말씀드리는 일을 단 하루도 거를 수가 없었다.
이렇게 어린 시절 새벽기도를 시작해서 한평생 그는 새벽 기도의 단을 쌓았습니다. 우리가 특별새벽기도 한다는 거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새벽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부르짖었습니다. “주님 내게 꿈이 있습니다. 내게 공부할 기회를 주셔서 앞으로 이 가난한 농촌이 부강한 농촌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남은 고등학교 졸업할 나이인 열여덟 살 때 그가 부잣집 어른의 배려로 중학교를 가게 됩니다. 한번 보니까 아이가 늘 책을 보면서 꿈을 꾸니까 “너 소원이 뭐냐?” “네. 공부하는 게 소원입니다.” “그래 내가 너 중학교 보내줄게.” 그래서 중학교를 갑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이제 서울에 올라와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또 그가 학업을 진행하는데 야간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낮에는 신문 돌리고 구두닦기하고 이런 온갖 궂은일을 하면서 그가 고등학교를 5년이나 다닙니다. 얼마나 가난하고 어려운 삶을 살았던지 그때 이런 기록이 나옵니다.
한 번은 신문을 배달하고 돌아가려는데 쓰레기통에 밥 덩어리가 버려져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 참지 못하고 주위를 살펴보다가 얼른 그것을 집어 들었어요. 밥에 묻은 연탄재와 모래를 떼어내고 그 밥을 다 먹어치웠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어요. 하지만 쓰레기통의 밥이나마 먹을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고난에서도 고난 가운데서 꿈을 잃지 않고 감사했습니다. 마치 요셉이 노예로 팔려가서도 꿈을 잃지 않고 감사하며 형통의 복을 받았던 것처럼 이 류태영 소년이 구두닦이도 하고 새벽에 신문을 돌리고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감사를 잃지 않았습니다. 겨울에 연탄을 떼지 못하니까 냉방에서 그냥 발을 동동 뛰다가 통금이 풀리고 새벽 종이 울리면 성경 찬송을 들고 교회로 뛰어와서 저 새벽에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니까 하나님 은혜가 임해서 다시 성령으로 충만해서 온몸이 뜨거워지고 감사해서 또 기쁨으로 도전하고 또 도전하였습니다. 그의 기도의 내용은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가 전부였습니다.
꿈꾸는 소년 류태형이 드디어 대학을 졸업하고 당시 농업 선진국인 덴마크로 가기 위한 꿈을 꿨습니다. 꿈을 꿨는데 어떻게 하면 내가 덴마크를 갈 수 있을까? 기도하는데 덴마크에서 가장 높은 분에게 편지를 써라. 보니까 덴마크에 국왕이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 덴마크 국왕 프레드릭 9세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프레드릭 9세 임금님 귀하 코펜하겐 덴마크.’ 편지를 써서 보내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편지가 국왕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내가 덴마크에 유학갈 수 있게 하여주옵소서.” 덴마크 국왕이 이 편지를 읽고 감동을 받아서 교육부에 지시해서 전액 장학생으로 류태영 박사를 덴마크에 유학을 오게 합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덴마크에 유학을 가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서 한국에 와서 시작한 것이 새마을 운동입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박정희 대통령 밑에서 새마을 운동을 전개해서 전국에 못 사는 농촌을 ‘잘 살아보자 잘 살아보자 새벽종이 울렸네’ 노래를 부르면서 농촌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꿈을 꿨습니다. ‘키부츠로 유명한 이스라엘에 가서 공부를 더 해야 되겠다.’ 그래서 또 이스라엘에 건너가서 공부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건너가서 4년 만에 석박사 학위를 받고 동양인 최초로 이스라엘 벤구리온 대학에서 국립대학 교수가 됩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건국대학교 교수와 부총장을 역임하고 은퇴한 후에 농촌과 청소년 발전을 위해 활동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꿈꾸는 사람 류태영과 함께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고백을 합니다.
우둔한 나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몰라 우왕좌왕하거나 갈등한 때가 많다. 그래서 더 성경을 읽고 공부하고 기도를 쉬지 않는다. 매사에 하나님께 물어야 그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을 읽고 말씀에 의지해 기도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바쁘고 다급한 일투성이인 현대사회에서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을 구할 수 없다.
여러분 주님 안에서 거룩한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꿈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꿈을 꾸며 나아갈 때 여러분 주위에서 여러분을 끌어내리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비난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꿈꾸는 사람은 주변에 누가 뭐래도 거기 개의치 않습니다.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그런 공격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꿈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꿈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꿈이 이루어지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거룩한 꿈을 꾸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꿈이 없이 살아왔다면 이 시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내가 그 꿈을 깨달아 알게 하시고 내 남은 여생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게 하여주시옵소서.
여러분 개인의 거룩한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자녀를 위한 거룩한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직장에서 여러분 가정에서 여러분 사업장에서 거룩한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를 택하고 부르셨사오니 내가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어떻게 쓰임 받을지 주여! 내게 꿈을 주시고 꾼 꿈을 이룰 수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요셉같이 불퇴진의 믿음으로 꿈을 이루는 그날까지 믿음으로 전진 또 전전해 나아가게 하여주옵소서. 거룩한 꿈을 꾸는 자가 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여서 놀라운 일이 이루어지게 만들어 주시고 하나님의 때에 꿈이 반드시 이루어지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찬송가 490장 (통 542): 주여 지난밤 내 꿈에>
1절 주여 지난밤 내 꿈에 뵈었으니
그 꿈 이루어 주옵소서
밤과 아침에 계시로 보여주사
항상 은혜를 주옵소서
후렴 나의 놀라운 꿈 정녕 나 믿기는
장차 큰 은혜 받을 표니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라
2절 마음 괴롭고 아파서 낙심될 때
내게 소망을 주셨으며
내가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니
앞길 환하게보이도다
3절 세상 풍조는 나날이 변하여도
나는 내 믿음 지키려니
인생 살다가 죽음이 꿈 같으나
오직 내 꿈은 참되리라
여러분의 꿈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여러분을 향한 꿈과 사명을 여러분 깨달아 알고 있습니까? 그 꿈에 붙잡혀 살고 있습니까? 꿈에 붙잡히면 꿈이 여러분의 미래를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아무런 의미 없는 인생을 살다 끝나게 됩니다. 지금 이 시간 거룩한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남은 여생 주님의 손에 붙잡혀 거룩한 꿈을 이루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여주옵소서. 거룩한 꿈을 꾸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꿈꾸는 사람이 되지 못하고 밤낮 과거의 얘기나 하고 살았던 연약했던 모습을 용서하여주시고 이 시간 이후 주님 안에서 거룩한 꿈을 꾸고 꿈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오늘 저는 창세기 37장 18절로 20절의 말씀 가지고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이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번 크게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우리는 태어나서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삽니다. 두 번 인생을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분명한 삶의 꿈과 목표를 갖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모든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그 성공의 비결을 보면 분명한 꿈과 목표가 있는 사람들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거룩한 꿈을 가져야 합니다. 거룩한 꿈을 갖고 꿈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꿈과 믿음은 하나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 2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꿈꾸고 믿고 바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 믿음이라고 히브리서 11장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1. 거룩한 꿈을 꾸라
모든 믿음의 조상들이 꿈꾸고 믿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서 하나님의 큰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주님 안에서 거룩한 꿈을 꾸고 그 꿈을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요셉은 꿈이 많은 소년이었습니다. 늘 꿈을 꾸고 꿈을 이야기하며 살았습니다. 늘 꿈을 얘기하니까 꿈이 없이 살던 형들이 동생 요셉을 미워했습니다.
창세기 37장 5절입니다.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요셉은 장차 하나님께서 자기를 높이셔서 위대하게 사용하실 것을 꿈꾸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꾼 것을 형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창세기 37장 6절, 7절입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신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이 동생의 꿈 이야기를 듣고 형들이 더욱더 미워했습니다. 그다음 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형들에게는 삶에 대한 아무런 꿈과 비전이 없었습니다. 그저 매일같이 양들을 치며 사는 것이 그들의 삶의 전부였습니다. 꿈도 없고 목적도 없었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양치며 먹고 사는 것이 그들의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이 자라난 요셉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늘 꿈속에 살았습니다. 꿈을 꾸고 그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같은 꿈을 계속 꾸니까 그 꿈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또 얘기했습니다. 주님 안에서 거룩한 꿈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구체적이고 분명한 꿈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땅에 온 것은 우연히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귀한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 땅에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여러분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거룩한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사업하는 사람으로서의 거룩한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학생들은 학생으로서 의사는 의사로서 직장인은 직장인으로서 예술인은 예술인으로서 각기 있는 위치에서 꿈을 꿔야 합니다. 거룩한 꿈을 꾸고 꿈을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거룩한 꿈을 꾸었습니다. 장차 내가 하나님이 높이셔서 위대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 귀한 일을 맡게 될 것이라는 꿈을 꾸었습니다. 주님 안에서 구체적이고 분명한 꿈을 꾸고 꿈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저 목적도 없이 방향도 없이 물 위를 떠다니는 낙엽 같은 인생을 살지 말고 하루를 살아도 분명하게 거룩한 꿈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각자 각자 나의 삶에 대한 거룩한 꿈을 꾸고 꿈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야 합니다. 분명한 꿈을 가져야 됩니다. 지금까지 꿈이 없이 살았다고 하면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의 마음에 거룩한 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개인에 대해서 여러분의 자녀에 대해서 여러분 직장에 대해서 여러분 사업에 대해서 여러분 자녀들에 대해서 거룩한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주여! 내게 거룩한 꿈을 주셔서 주님 안에서 꿈을 이뤄나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2. 고난의 과정을 극복하라
그런데 꿈이 저절로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고난을 통과해야 되는 것입니다. 꿈을 꿀 때 우리에게 도전이 다가옵니다. 여러 가지 문제와 어려움이 생겨납니다. 꿈을 꾸니까 형들이 미워했습니다. 그런데 형들이 미워하고 주위 사람이 나를 흔들고 핍박을 해도 내가 가지고 있는 꿈을 분명히 붙잡고 바라보고 나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마음의 열정이 생겨납니다. 그 꿈을 위해서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꿈을 이루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와 축복을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성공이란 그저 하루아침에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꿈꾸고 믿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꿈꾸는 사람은 어떠한 고난이 다가와도 문제가 다가와도 넉넉히 이기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요셉은 꿈을 꾸었기 때문에 많은 시련을 당했습니다. 요셉이 시련 당한 것을 크게 네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그 모든 시련을 그는 꿈을 꾸며 믿음으로 이겨냈습니다.
로마서 5장 3절로 4절은 말씀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꿈꾸고 믿고 나아갈 때 이것이 우리에게 인내를 배우게 하고 우리가 이 모든 걸 잘 견딜 수 있는 훈련을 시켜서 연단을 받게 한 다음 꿈을 이루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요셉이 꿈을 꾸니까 형들이 미워했습니다. 첫 번째 시련은 형들이 그를 미워해서 그를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같은 형제끼리 그렇게 미워해서 자기를 죽이려고까지 하니 얼마나 그것이 어린 소년 요셉에게는 큰 고통이었겠습니까? 열 명의 형이 그를 죽이기로 작정을 하고 그가 아버지의 심부름 왔을 때 구덩이 속에 그를 던져 넣었습니다. 죽음 직전까지 갔던 그가 그 근처를 지나가는 상인에게 팔리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37장 28절은 설명합니다.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그의 나이 17살입니다. 17살에 그는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노예로 팔리게 됐습니다. 두 번째 다가온 시련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정말 귀하게 자랐던 그가 부잣집에서 귀하게 자랐던 그가 가장 낮고 천한 신분인 노예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노예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39장 1절입니다.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요셉은 노예로 팔려가서 인간 이하의 취급 받으면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당시 노예는 인격이 존중되지 않았습니다. 짐승처럼 하루종일 일 시키고 부리다가 병들고 약해지면 광야에 내다 버렸습니다. 그래서 짐승의 밥이 되어 죽는 것이 노예의 최후였습니다. 인격적으로 무시당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궂은일을 다 감당해야 했으며 조금이라도 쉬려고 하면 등의 채찍이 그냥 내려치는 그러한 고난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노예의 삶도 그의 꿈을 가로막지 못했습니다. 그의 꿈을 꺾지 못했습니다. 그는 노예로 살면서도 꾼 꿈을 가지고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노예로 팔려온 그 누구보다도 그는 눈이 부리부리하고 늘 꿈을 갖고 열심히 일을 해서 그 노예로 팔려 온 친위 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인정받는 그런 노예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39장 2절입니다.
야훼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래서 그가 많은 노예 가운데 총무의 직을 맡아서 집의 모든 일을 다 관리하게 됐는데 그다음에 세 번째 시련이 다가옵니다. 그 친위 대장 보디발의 아내가 그를 억울하게 모함을 한 것입니다.
창세기 39장 17절, 18절, 20절입니다.
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던져졌습니다. 그는 잘못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위 대장 보디발의 아내가 그를 모함해서 감옥에 집어넣은 것입니다. 그것도 보통 감옥이 아니라 왕의 신하들이 잘못하면 들어가는 그런 감옥입니다. 그러니까 거기는 특수한 감옥이라서 왕이 사면해 주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곳인데 그곳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아마 보디발이 신임했다가 배신을 당한 것 같은 그 생각 때문에 미워서 평생 그 안에 있다 죽으라고 넣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절망의 감옥도 이 요셉의 꿈을 막지 못했습니다. 요셉의 꿈을 가로막지 못했습니다. 요셉의 꿈을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감옥 안에서 꿈이 마음 가운데 불타올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셨던 것입니다. 감옥에는 다른 모든 사람이 낙심해서 절망에 처했을 때 그는 늘 하나님을 바라보며 꿈꾸며 믿음으로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젠가 나를 높이시고 주님의 귀한 일을 이루실 것이다.
창세기 39장 21절, 23절입니다.
야훼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야훼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야훼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얼마나 그가 꿈에 사로잡혀서 감옥 안에서도 모든 면에 본을 보였던지 간수장 요즘으로 말하면 교도소장이 감동을 해갖고 아예 열쇠 꾸러미를 죄수인 요셉에게 맡겨 자네가 이 감옥을 다 돌보라고 그 간수장의 일을 맡긴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죄수로 감옥에 끌려간 사람이 그 교도소장의 인정을 받아갖고 나와서 교도소를 관리하는 사람이 됐다고 하는 것은 이것은 기적입니다.
꿈꾸는 사람에게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어떠한 시련도 어떠한 문제도 어떠한 절망의 감옥도 꿈을 가둬 놓을 수 없습니다. 꿈꾸는 사람을 가둬 놓을 수 없습니다. 꿈을 꾸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삶 가운데 그가 어디를 가든지 형통하게 만들어주시고 은혜와 축복을 더해 주신 것입니다.
마지막 시련은 그가 그 감옥 안에서 바로 왕의 신하 둘을 만나서 꿈을 해몽해주었는데 한 사람은 3일 후에 복직이 되는 꿈이고 한 사람은 3일 후에 죽는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복직되는 자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창세기 40장 14절, 15절, 23절입니다.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술 맡은 관원장에게 “당신이 이제 곧 풀려날 텐데 매일 왕 옆에서 왕을 시중들 터이니 ‘내가 감옥 안에서 죄 없는 소년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를 풀어주십시오.’ 부탁만 하면 왕이 알아보고 나를 풀어줄 것입니다.” 그랬는데 사람이 화장실 갈 때 올 때 다르다고 이 술 맡은 관원장이 3일 만에 풀려나고 나서 그걸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요셉은 이제 관원장이 풀려났으니까 기쁜 소식이 올 것을 알고 다음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세수하고 옷매무새를 단장하고 소식이 오길 기다립니다. “사면!” 하는 소식이 올 줄 알고 기다리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한 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습니다. 분명히 관원장이 “내가 나가서 바로 왕에게 말해서 당장 자녀를 풀어줄게.” 이야기하고 나갔는데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석 달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 가장 큰 고통과 시련의 시간일 줄로 생각을 합니다. 감옥 안에서 그렇게 2년을 보냅니다. 그가 보낸 2년이 그가 지금까지 보낸 11년 노예 생활과 감옥 생활보다도 더 긴 긴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의 긴 시간도 그의 꿈을 가로막지 못했습니다. 밤이 깊으면 새벽은 밝아 오는 것입니다. 겨울이 아무리 춥고 길어도 분명히 희망의 봄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꿈꾸는 사람에게는 절망이 절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절망은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고난은 축복을 향해 나아가는 고속도로인 것입니다. 그는 절대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꿈꾸고 믿고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서 감옥에서 그가 고통 가운데 있을 때 다시 그를 높이 세워주셔서 2년 후에 바로 왕에게 꿈을 꾸게 하시고 아무도 그 꿈을 해몽하지 못할 때 그제서야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게 되어서 요셉이 풀려나갑니다. 그러고 나서 꿈을 해몽합니다. 바로 왕이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높인 것입니다.
3. 베푸는 사람이 되라
요셉이 높임 받고 나서 그는 사랑과 관용을 베푸는 자로서 위대한 지도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루아침에 꿈을 해몽해주고 그가 총리가 되는데 성경은 이같이 말씀합니다. 창세기 41장 39절로 41절입니다.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마침내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17살 때 그 꿈을 얘기했는데 13년이라고 하는 긴 긴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 하나님의 때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거룩한 꿈을 가지면 우리에게 환란이 다가오고 어려움이 다가오고 문제가 다가오지만 때가 되면 꿈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꿈꾸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핍박합니다.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여러 가지로 고통을 줍니다. 그러나 그 어떤 시련과 고통도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도 우리의 꿈을 가로막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꿈을 무너뜨릴 수가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주님 안에서 가진 거룩한 꿈은 주님의 때에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요셉이 꿈을 이루고 난 다음 자기를 해롭게 한 사람들을 아무도 벌주지 아니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정도 물어보지 아니하고 화를 내고 자기를 감옥 안에 집어넣은 친위 대장도 그의 아내, 보디발의 아내도 불러다 벌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그들을 붙잡아다가 곤장을 100대 쳤다는 그런 말이 없습니다. 그 누구도 죄를 묻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감옥에서 나가서 왕에게 말해준다고 하고 잊어버린 술 맡은 관원장도 요셉은 벌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를 죽이려고 했다 노예로 판 형들이 그 앞에 와서 곡식을 사러 와서 무릎을 꿇었을 때 그들을 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자신을 밝히고 이와 같이 얘기했습니다.
창세기 45장 5절 8절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워서 이 같은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나중에 온 가족을 애굽에 초청해서 살게 했는데 아버지 야곱이 죽게 되니까 형들이 두려워 떨었습니다. 이제는 아버지가 죽었으니까 우리에게 복수할 것이다. 그때 요셉이 그들을 불러 다시 이야기합니다.
창세기 50장 19절로 21절입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요셉은 부와 권력을 가진 높은 자리에서 자기에게 해를 입히고 피해를 준 사람들을 벌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고 관용하고 용서를 베풀어서 그들을 품었습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사람을 품는 지도자인 것입니다. 남을 벌하고 상처를 주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고 품는 사람들이 진정한 지도자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어릴 때 유대인 자녀들에게 하는 교육이 “절대로 너는 남 험담을 하지 말아라. 남 흉을 보지 말아라.” 하는 것을 매일같이 가르치고 또 가르치고 또 가르친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끼리는 절대 서로 남을 물고 뜯지 아니하고 험담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한국에 온 이스라엘 대사와 제가 굉장히 친하게 지내면서 자주 뵙고 또 대사관 관저에 가서 식사도 하고 하는데 한 번도 이분이 남 험담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 미국에서 대사가 왔는데 그분이 유대계 미국인인데 이분이 동성애를 지지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같이 식사를 하면서 새로운 미국 대사를 막 비난했더니 한마디 대답도 안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오히려 부끄러웠습니다. ‘아 이분들은 남에 대해서 비판하지 않는구나.’ 우리 사회가 반성해야 됩니다.
우리는 무슨 일만 생기면 서로 남 탓하고 물고 뜯는데, 주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부터 먼저 남에 대해서 험담하지 않게 하여주옵소서. 나쁜 말 하지 않게 하여주옵소서. 좋은 말을 하고 서로를 칭찬하고 격려하고 부족한 일이 있으면 격려하고 아프고 상처 입은 사람을 품어주는 삶을 살게 하여주옵소서. 우리 모두가 이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들 가운데 많은 세계적인 지도자들이 탄생한 것입니다. 늘 관용하는 마음을 갖고 품었기 때문에 세계적인 지도자가 유대인들에게서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남을 밟고 올라가는 사람들은 결코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잠시 잘 되는 것 같아도 자기가 남에게 피해를 주고 남의 눈에서 피눈물 나게 한 사람들은 결국 자기도 부메랑이 되어서 고통 가운데 빠지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사랑으로 섬기는 지도자입니다. 베풀고 나누는 지도자입니다. 요셉 같은 지도자가 다 되기를 바랍니다. 거룩한 꿈을 꾸고 사랑하고 용서하며 베풀고 나누며 살아가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꿈꾸는 사람 류태영 박사를 소개하길 원합니다. 이분은 전북 임실 두메산골에서 머슴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얼마나 가난했는지 형제들은 많은데 그 아버지가 부잣집의 논에서 논을 지으면서 농사를 하면서 거기서 얻어 먹고 살았습니다. 정말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난 속에서도 어린 소년 류태영은 꿈을 꿨습니다. 이 지지리도 가난한 농촌을 내가 앞으로 변화시켜서 부유한 농촌으로 만드는 그러한 농촌의 지도자가 되겠다. 꿈을 꿨습니다.
그런데 그 두메산골에 교회가 들어왔습니다. 교회 조요셉 전도사님이 그 교회에 와서 예배를 인도하실 때 어머니랑 같이 교회를 나갔습니다. 근데 그 전도사님이 말하기를 “꿈꾸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이 다 들어주신다.” 그래서 그때부터 매일같이 새벽에 나가 꿈꾸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같은 기록이 나옵니다.
아침잠이 많았는데도 새벽이면 벌떡벌떡 일어나 교회로 달려가 기도했다. 장관이나 대통령 면회도 하늘의 별 따기인데, 하물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일을 어찌 게을리할 수 있겠는가. 나는 새벽기도에 나가 하나님께 소원을 말씀드리는 일을 단 하루도 거를 수가 없었다.
이렇게 어린 시절 새벽기도를 시작해서 한평생 그는 새벽 기도의 단을 쌓았습니다. 우리가 특별새벽기도 한다는 거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새벽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부르짖었습니다. “주님 내게 꿈이 있습니다. 내게 공부할 기회를 주셔서 앞으로 이 가난한 농촌이 부강한 농촌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남은 고등학교 졸업할 나이인 열여덟 살 때 그가 부잣집 어른의 배려로 중학교를 가게 됩니다. 한번 보니까 아이가 늘 책을 보면서 꿈을 꾸니까 “너 소원이 뭐냐?” “네. 공부하는 게 소원입니다.” “그래 내가 너 중학교 보내줄게.” 그래서 중학교를 갑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이제 서울에 올라와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또 그가 학업을 진행하는데 야간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낮에는 신문 돌리고 구두닦기하고 이런 온갖 궂은일을 하면서 그가 고등학교를 5년이나 다닙니다. 얼마나 가난하고 어려운 삶을 살았던지 그때 이런 기록이 나옵니다.
한 번은 신문을 배달하고 돌아가려는데 쓰레기통에 밥 덩어리가 버려져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 참지 못하고 주위를 살펴보다가 얼른 그것을 집어 들었어요. 밥에 묻은 연탄재와 모래를 떼어내고 그 밥을 다 먹어치웠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어요. 하지만 쓰레기통의 밥이나마 먹을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고난에서도 고난 가운데서 꿈을 잃지 않고 감사했습니다. 마치 요셉이 노예로 팔려가서도 꿈을 잃지 않고 감사하며 형통의 복을 받았던 것처럼 이 류태영 소년이 구두닦이도 하고 새벽에 신문을 돌리고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감사를 잃지 않았습니다. 겨울에 연탄을 떼지 못하니까 냉방에서 그냥 발을 동동 뛰다가 통금이 풀리고 새벽 종이 울리면 성경 찬송을 들고 교회로 뛰어와서 저 새벽에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니까 하나님 은혜가 임해서 다시 성령으로 충만해서 온몸이 뜨거워지고 감사해서 또 기쁨으로 도전하고 또 도전하였습니다. 그의 기도의 내용은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가 전부였습니다.
꿈꾸는 소년 류태형이 드디어 대학을 졸업하고 당시 농업 선진국인 덴마크로 가기 위한 꿈을 꿨습니다. 꿈을 꿨는데 어떻게 하면 내가 덴마크를 갈 수 있을까? 기도하는데 덴마크에서 가장 높은 분에게 편지를 써라. 보니까 덴마크에 국왕이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 덴마크 국왕 프레드릭 9세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프레드릭 9세 임금님 귀하 코펜하겐 덴마크.’ 편지를 써서 보내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편지가 국왕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내가 덴마크에 유학갈 수 있게 하여주옵소서.” 덴마크 국왕이 이 편지를 읽고 감동을 받아서 교육부에 지시해서 전액 장학생으로 류태영 박사를 덴마크에 유학을 오게 합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덴마크에 유학을 가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서 한국에 와서 시작한 것이 새마을 운동입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박정희 대통령 밑에서 새마을 운동을 전개해서 전국에 못 사는 농촌을 ‘잘 살아보자 잘 살아보자 새벽종이 울렸네’ 노래를 부르면서 농촌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꿈을 꿨습니다. ‘키부츠로 유명한 이스라엘에 가서 공부를 더 해야 되겠다.’ 그래서 또 이스라엘에 건너가서 공부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건너가서 4년 만에 석박사 학위를 받고 동양인 최초로 이스라엘 벤구리온 대학에서 국립대학 교수가 됩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건국대학교 교수와 부총장을 역임하고 은퇴한 후에 농촌과 청소년 발전을 위해 활동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꿈꾸는 사람 류태영과 함께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고백을 합니다.
우둔한 나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몰라 우왕좌왕하거나 갈등한 때가 많다. 그래서 더 성경을 읽고 공부하고 기도를 쉬지 않는다. 매사에 하나님께 물어야 그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을 읽고 말씀에 의지해 기도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바쁘고 다급한 일투성이인 현대사회에서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을 구할 수 없다.
여러분 주님 안에서 거룩한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꿈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꿈을 꾸며 나아갈 때 여러분 주위에서 여러분을 끌어내리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비난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꿈꾸는 사람은 주변에 누가 뭐래도 거기 개의치 않습니다.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그런 공격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꿈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꿈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꿈이 이루어지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거룩한 꿈을 꾸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꿈이 없이 살아왔다면 이 시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내가 그 꿈을 깨달아 알게 하시고 내 남은 여생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게 하여주시옵소서.
여러분 개인의 거룩한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자녀를 위한 거룩한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직장에서 여러분 가정에서 여러분 사업장에서 거룩한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를 택하고 부르셨사오니 내가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어떻게 쓰임 받을지 주여! 내게 꿈을 주시고 꾼 꿈을 이룰 수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요셉같이 불퇴진의 믿음으로 꿈을 이루는 그날까지 믿음으로 전진 또 전전해 나아가게 하여주옵소서. 거룩한 꿈을 꾸는 자가 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여서 놀라운 일이 이루어지게 만들어 주시고 하나님의 때에 꿈이 반드시 이루어지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찬송가 490장 (통 542): 주여 지난밤 내 꿈에>
1절 주여 지난밤 내 꿈에 뵈었으니
그 꿈 이루어 주옵소서
밤과 아침에 계시로 보여주사
항상 은혜를 주옵소서
후렴 나의 놀라운 꿈 정녕 나 믿기는
장차 큰 은혜 받을 표니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라
2절 마음 괴롭고 아파서 낙심될 때
내게 소망을 주셨으며
내가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니
앞길 환하게보이도다
3절 세상 풍조는 나날이 변하여도
나는 내 믿음 지키려니
인생 살다가 죽음이 꿈 같으나
오직 내 꿈은 참되리라
여러분의 꿈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여러분을 향한 꿈과 사명을 여러분 깨달아 알고 있습니까? 그 꿈에 붙잡혀 살고 있습니까? 꿈에 붙잡히면 꿈이 여러분의 미래를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아무런 의미 없는 인생을 살다 끝나게 됩니다. 지금 이 시간 거룩한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남은 여생 주님의 손에 붙잡혀 거룩한 꿈을 이루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여주옵소서. 거룩한 꿈을 꾸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꿈꾸는 사람이 되지 못하고 밤낮 과거의 얘기나 하고 살았던 연약했던 모습을 용서하여주시고 이 시간 이후 주님 안에서 거룩한 꿈을 꾸고 꿈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순복음가족신문
지면보기
행복으로의 초대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