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걸으라
2022.10.30
/ 사도행전 3장 1~8절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사도행전 3장 1~8절)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어젯밤 이태원에서 핼로윈데이 축제로 모였던 청년들이 밀려서 넘어지면서 오늘 아침까지 149명이 사망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삼가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또 지금 병원에 있는 많은 청년들이 빨리 건강이 회복되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안전사고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64년 동안 이 대성전에 많은 인파가 몰려들고 나가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안전사고가 없었던 것을 감사드리면서 앞으로는 더욱더 우리가 안전에 주의해서 나갈 때 밀지 말고, 천천히 나가시고 우리 그동안 항상 밀었거든요. 이번에도 뒤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사고가 났으니까 이런 부분에 있어서 우리가 각별히 주의하고, 또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했는데 꽃다운 청년들이 세상을 떠났으니까 그 가족들의 슬픔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그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빨리 아픔을 치료하고 다시 회복되어서 더 나은 내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리라 믿습니다.
오늘 사도행전 3장 1절로 8절 말씀 가지고 “일어나 걸으라” 이와 같은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일어나 걸으라.” 오늘은 교회력으로 말하면 종교개혁주일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로마 가톨릭의 부패의 여러 가지 내용들을 고발하면서 성 비텐베르크 성당에 95개조 반박문을 써서 붙였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오늘날 이렇게 우리 개신교가 각 교단별로 크게 부흥하여 전 세계에 선교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일개 신부에 불과했지만 로마 가톨릭이 형식과 예식에 갇혀 있어서 또 성 베드로 성당을 증축하기 위해서 면죄부를 팔면서 물질로서 그들의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했던 그 잘못된 것을 지적하면서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늘 우리 자신이 어떤 의식과 형식에 사로잡혀서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늘 우리는 날마다 우리 자신을 개혁해야 됩니다. 날마다 새로워져야 됩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낫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삶으로 우리 자신을 스스로 개혁하고 변화시켜 나가는 주님의 일꾼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의식 형식에 갇혀서 주저앉아있는 로마 가톨릭을 일으켜 세워 종교개혁을 일으킨 날이 바로 1517년 10월 31일인데 오늘 우리가 그 종교개혁의 뜻을 생각하면서 오늘 사도행전 3장의 말씀을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사도행전 3장을 보면 초대교회의 첫 번째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을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 시간에 고쳐 일어나게 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걷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사도행전 3장 2절은 말씀합니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여기 보니까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처럼 오늘날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절망에 주저앉아서 걷지 못하는 그래서 항상 무엇인가 구걸하는 거지같이 고난과 고통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알코올 중독이라는 것에 빠져서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 우리나라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매년 3천 명 이상이 희생되고 약 30만 명이라고 하는 부상자가 나온다고 합니다. 술에 만취돼서 운전대를 잡으니까 대형사고를 내는 것입니다.
도박중독에 빠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박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모든 재산을 다 털어놓고 나서도 또 도박을 하느라고 그가 정신이 황폐해진 상태로 주저앉은 채 마치 태어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 같은 그런 절망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게임 중독에 빠져 있습니다. 학교도 가지 아니하고 PC방에 가서 하루종일 게임하고 그래서 그 영혼이 파괴되어 사는 많은 청소년들이 있고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진짜로 심각한 것은 그동안 우리 대한민국이 마약 청정국가라고 했는데 얼마나 마약이 급속도로 퍼지는지 마약 중독에 빠진 수많은 이들이 폐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마치 성전 미문 앞에서 걷지 못하고 구걸하며 절망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그 사람과 같은 많은 절망에 처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 주위에 절망에 처한 사람들을 바라보고 그냥 지나갈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일으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탄식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7장 24절의 탄식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예수님 없는 삶은 그 자체가 절망입니다. 고통입니다. 괴로움입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마치 태어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이 거지같이 그와 같은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그를 일으켰습니다. 오늘 말씀 보니까 못 걷게 된 사람을 일으키는 능력에 대해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베드로 요한이 기도하러 올라가다가 그를 보고 발길을 멈춰 섰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절망에 처한 사람들을 그냥 지나가지 않고 발걸음을 멈춰서서 그를 사랑으로 돌보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가진 거 다 빼앗기고 강도에게 심히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을 때 가장 거룩하다고 하는 제사장이 보고 그냥 지나갑니다. 또 늘 성전에서 성전의 일을 섬기고 있는 레위인도 그냥 지나갑니다. 그런데 그 당시 자기들이 항상 열등하다고 생각하고 문제 있다고 생각한 사마리아인이 가다가 발을 멈추고 그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나귀에 태워 주막에 가 그를 쉬게 합니다. 누가복음 10장 34절입니다.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사랑은 말이 아니라 실천인 것입니다. 베드로가 가던 발걸음을 멈춰서서 나면서 걷지 못하는 이 앉은뱅이에게 선포합니다. 사도행전 3장 6절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일어나 걸으라. 일어나 걸으라. 베드로와 요한이 외쳤습니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그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킨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와도 그 문제를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위대한 능력을 주신 이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인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외칠 때 흑암의 권세가 물러가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할 때 병이 치료함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외칠 때 우리의 삶 가운데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십자가에 달리신 전날 밤에 제자들을 모아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위대함을 저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15장 16절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갖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로 절망에 처해 주저앉은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알코올 중독에 빠진 자여 일어나라! 도박 중독에 빠진 자여 일어나라! 마약에 빠진 자여 일어나라! 각종 정신 질환에 빠진 자여 일어나라!
우리가 그들을 고쳐야 됩니다. 치료해야 됩니다. 그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우리들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절망의 처한 사람을 그냥 보고 지나가면 안 됩니다. 그런 형식적인 종교인으로 살면 안 됩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예수님이 우리 마음 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절망에 처한 사람에게 다가가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라! 외쳐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내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선포했는데 오늘날 우리에게 은과 금이 생겼습니다. 물질이 풍부해졌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가 사라졌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지 못하고 우리가 여러 가지 문제 가운데 절망 가운데 고통을 당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때때로 죄의 노예가 되고 때때로 물질의 노예가 되고 때때로 사회적인 인기 명예의 노예가 돼서 우리들이 마치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자 같은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 시간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회복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니 일어나 걸으라! 일어나 걸으라! 여러분은 외치며 살아야 됩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흑암의 권세는 물러갈지어다. 절망은 떠나갈지어다. 질병은 물러갈지어다. 우리 가정을 괴롭히는 흑암의 권세는 떠나가라! 우리 아들, 우리 딸을 괴롭히는 흑암의 권세는 물러갈지어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지어다. 외쳐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예수님을 믿을 때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것을 이미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 갖고 있는 것을 지금까지 우리가 사용하지 않고 그저 문제와 어려움만 당하면 스스로 주저앉아 버렸는데 이제는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치고 일어나 걷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어제의 상처와 절망에 그저 주저앉아 있으면 안 됩니다. 이제 우리는 내일을 바라보고 주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의 미래를 바라보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야 됩니다. 우리는 기적을 체험하는 신앙을 갖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하고 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 순간 나면서 걷지 못한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나서 뛰고 걸으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성전에 들어갑니다. 사도행전 3장 7절, 8절입니다.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단 한 번도 걷지 못하던 이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고 뛰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성전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축복은 주님의 성전의 기쁨으로 나올 수 있는 축복인 것입니다.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된 자가 일어나 뛰어 성전으로 걸어 들어갔던 것처럼 우리는 이제 은혜의 자리로 뛰어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축복의 자리로 뛰어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기적의 자리로 뛰어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매주 그냥 형식적으로 습관적으로 드리는 예배 현장이 아니라 기적의 자리로 여러분 뛰어나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것은 일생일대의 축복이고 기적입니다.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이 놀라운 사실에 대해서 우리는 감사와 찬양을 해야 됩니다. 시편 기자가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시편 113편 1절로 3절입니다.
할렐루야, 야훼의 종들아 찬양하라 야훼의 이름을 찬양하라 이제부터 영원까지 야훼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야훼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여러분의 일생이 찬양과 감사의 일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일어나 뛰어 걸으며 하나님 앞에 보좌 앞에 뛰어나가는 그런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주와 가난과 절망에 주저앉아서 걷지 못하던 이러한 미문 앞의 앉은뱅이와 같은 그런 삶을 살았던 과거를 다 내던져버리고 이제는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고 뛰고 주님을 찬양하며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위대한 미래가 여러분 앞에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에 놀라운 축복의 미래가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이 장차 큰 인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는 자녀들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업이 주님 은혜 가운데 일어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큰 사업들이 될 것입니다.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하여서 영광을 받으시고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만 계시면 예수님의 권세만 있으면 우리는 어떤 문제도 어려움도 넉넉히 이기고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앤 혹스라고 하는 한 여성도의 간증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는 뉴욕주 한 시골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자라날 때 브루클린이라는 지역에서 자라났는데 글을 쓰는 재능이 있어서 기록을 보니까 14살 때부터 많은 시를 써서 신문 이런 데다 기고를 하고 그렇게 재능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런데 23살에 아주 자상한 남편을 만나서 결혼을 하고 세 자녀를 기르며 무엇 하나 부족함 없는 삶을 살고 있었는데 37살 될 때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너무나 주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것이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고 내가 주님 없이 어떻게 살까?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그 감사한 마음을 담아 시로 썼습니다. 그때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그때가 1872년 6월인데요.
내 영혼 속의 주님의 임재를 느꼈습니다. 그 순간,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주님이 없다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죠. 바로 그때에 ‘매 시간 주님이 필요해요’(I need Thee every hour.)라는 생각이 마음속에 솟구쳐 올랐어요.
그래서 이 가사를 가지고 찬송을 지어서 자기가 다니는 그 침례교회의 담임 목사님 로우리 목사님에게 가져갔습니다. 이 로우리 목사님은 아주 그 당시 많은 찬송을 짓고 또 작사 작업도 하고 은혜로 말씀 전하는 뉴욕 지역에 존경받는 목사님이셨는데 그 가사를 받고 나자 목사님도 감동이 되셔가지고 그 가사를 가지고 후렴을 덧붙여서 찬송을 하나 만들고 곡을 붙였는데 그 해 아이라 생키라고 하는 D. L. 무디 목사님의 동역자, 복음 사역자가 이 곡을 받고 너무 감동을 받아서 전국 침례교 교회학교 전국대회를 할 때 이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때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이 찬송을 듣고 큰 은혜를 받았는데 시간이 흘러서 이 찬송을 지은 지 16년 지난 후에 남편이 그만 세상을 떠납니다. 너무나 마음이 슬펐습니다. 그때 본인이 지은 찬송이 자기 마음을 얼마나 크게 위로했는지 16년 전 지은 찬송을 통해서 자기가 은혜를 받으면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나는 처음에 왜 이 찬송이 사람들의 마음을 그렇게도 움직이고 감동을 주었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내 자신이 어려운 처지에 이르게 되었을 때, 엄청난 상실감의 그림자가 내 앞길에 깊게 드리우게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이 찬송가 속에 담겨져 있었던 위로의 능력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원래 가사가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우리 찬송가는 번역이 좀 잘못됐는데요.
I need Thee every hour, Most gracious Lord;
은혜로운 주님, 매 시간 주님이 필요해요.
No tender voice like Thine Can peace afford.
주님의 부드러운 음성만이 날 평안하게 해요.
그 어떤 음성도 주님의 그 부드러운 음성만큼 나를 평안하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요 뒷부분은 롤리 목사님이 붙인 것입니다.
I need Thee, O I need Thee;
주님이 필요해요. 오, 주님이 필요해요.
Every hour I need Thee!
매 시간 주님이 필요해요!
O bless me now, my Savior,
나의 구세주, 이제 내게 복을 내려주세요.
I come to Thee!
내가 주님께 나아갑니다!
이 찬송을 작곡을 하여 불러서 많은 사람이 부르게 되었는데요. 이 혹스 여성도는 남편과 사별하고 30년을 넘게 살면서 마음의 불안함과 답답하고 괴로울 때마다 이 찬송을 부르면서 위로함을 받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걷지 못하는 우리가 걷게 된 것이 바로 주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준 것이 주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날마다 절망에 처한 자를 일으키고 주님의 치료 역사를 만방에 전하고 주님의 영광을 온 천하에 드러내는 주님의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찬송가 446장에는 번역이 조금 의역되어 있지만 원래 뜻을 생각하면서 오늘 이 찬송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찬송가 446장 (통 500): 주 음성 외에는>
1절 주 음성 외에는 참 기쁨 없도다
날 사랑하신 주 늘 계시옵소서
후렴 기쁘고 기쁘도다 항상 기쁘도다
나 주께 왔사오니 복 주옵소서
2절 나 주께 왔으니 복 주시옵소서
주 함께 계시면 큰 시험 이기네
3절 주 떠나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기쁘나 슬플 때 늘 계시옵소서
4절 그 귀한 언약을 이루어주시고
주 명령 따를 때 늘 계시옵소서
할렐루야! 주님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매 순간 우리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주님이 함께하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이 문제 많은 세상을 승리하며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주님 매 순간 매 순간 주님이 필요하오니, 주님 나와 함께하여주셔서 주님의 귀한 뜻을 이루어주시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매 순간 주님이 필요합니다. 주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한 번뿐인 인생 예수 잘 믿고 주님 뜻대로 주님 영광위해 살다가 주님 앞에 부름받을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어젯밤 이태원에서 핼로윈데이 축제로 모였던 청년들이 밀려서 넘어지면서 오늘 아침까지 149명이 사망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삼가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또 지금 병원에 있는 많은 청년들이 빨리 건강이 회복되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안전사고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64년 동안 이 대성전에 많은 인파가 몰려들고 나가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안전사고가 없었던 것을 감사드리면서 앞으로는 더욱더 우리가 안전에 주의해서 나갈 때 밀지 말고, 천천히 나가시고 우리 그동안 항상 밀었거든요. 이번에도 뒤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사고가 났으니까 이런 부분에 있어서 우리가 각별히 주의하고, 또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했는데 꽃다운 청년들이 세상을 떠났으니까 그 가족들의 슬픔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그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빨리 아픔을 치료하고 다시 회복되어서 더 나은 내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리라 믿습니다.
오늘 사도행전 3장 1절로 8절 말씀 가지고 “일어나 걸으라” 이와 같은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일어나 걸으라.” 오늘은 교회력으로 말하면 종교개혁주일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로마 가톨릭의 부패의 여러 가지 내용들을 고발하면서 성 비텐베르크 성당에 95개조 반박문을 써서 붙였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오늘날 이렇게 우리 개신교가 각 교단별로 크게 부흥하여 전 세계에 선교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일개 신부에 불과했지만 로마 가톨릭이 형식과 예식에 갇혀 있어서 또 성 베드로 성당을 증축하기 위해서 면죄부를 팔면서 물질로서 그들의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했던 그 잘못된 것을 지적하면서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늘 우리 자신이 어떤 의식과 형식에 사로잡혀서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늘 우리는 날마다 우리 자신을 개혁해야 됩니다. 날마다 새로워져야 됩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낫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삶으로 우리 자신을 스스로 개혁하고 변화시켜 나가는 주님의 일꾼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의식 형식에 갇혀서 주저앉아있는 로마 가톨릭을 일으켜 세워 종교개혁을 일으킨 날이 바로 1517년 10월 31일인데 오늘 우리가 그 종교개혁의 뜻을 생각하면서 오늘 사도행전 3장의 말씀을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1. 걷지 못하는 사람
사도행전 3장을 보면 초대교회의 첫 번째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을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 시간에 고쳐 일어나게 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걷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사도행전 3장 2절은 말씀합니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여기 보니까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처럼 오늘날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절망에 주저앉아서 걷지 못하는 그래서 항상 무엇인가 구걸하는 거지같이 고난과 고통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알코올 중독이라는 것에 빠져서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 우리나라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매년 3천 명 이상이 희생되고 약 30만 명이라고 하는 부상자가 나온다고 합니다. 술에 만취돼서 운전대를 잡으니까 대형사고를 내는 것입니다.
도박중독에 빠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박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모든 재산을 다 털어놓고 나서도 또 도박을 하느라고 그가 정신이 황폐해진 상태로 주저앉은 채 마치 태어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 같은 그런 절망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게임 중독에 빠져 있습니다. 학교도 가지 아니하고 PC방에 가서 하루종일 게임하고 그래서 그 영혼이 파괴되어 사는 많은 청소년들이 있고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진짜로 심각한 것은 그동안 우리 대한민국이 마약 청정국가라고 했는데 얼마나 마약이 급속도로 퍼지는지 마약 중독에 빠진 수많은 이들이 폐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마치 성전 미문 앞에서 걷지 못하고 구걸하며 절망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그 사람과 같은 많은 절망에 처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 주위에 절망에 처한 사람들을 바라보고 그냥 지나갈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일으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탄식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7장 24절의 탄식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예수님 없는 삶은 그 자체가 절망입니다. 고통입니다. 괴로움입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마치 태어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이 거지같이 그와 같은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2. 못 걷게 된 사람을 걷게 하는 능력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그를 일으켰습니다. 오늘 말씀 보니까 못 걷게 된 사람을 일으키는 능력에 대해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베드로 요한이 기도하러 올라가다가 그를 보고 발길을 멈춰 섰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절망에 처한 사람들을 그냥 지나가지 않고 발걸음을 멈춰서서 그를 사랑으로 돌보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가진 거 다 빼앗기고 강도에게 심히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을 때 가장 거룩하다고 하는 제사장이 보고 그냥 지나갑니다. 또 늘 성전에서 성전의 일을 섬기고 있는 레위인도 그냥 지나갑니다. 그런데 그 당시 자기들이 항상 열등하다고 생각하고 문제 있다고 생각한 사마리아인이 가다가 발을 멈추고 그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나귀에 태워 주막에 가 그를 쉬게 합니다. 누가복음 10장 34절입니다.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사랑은 말이 아니라 실천인 것입니다. 베드로가 가던 발걸음을 멈춰서서 나면서 걷지 못하는 이 앉은뱅이에게 선포합니다. 사도행전 3장 6절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일어나 걸으라. 일어나 걸으라. 베드로와 요한이 외쳤습니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그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킨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와도 그 문제를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위대한 능력을 주신 이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인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외칠 때 흑암의 권세가 물러가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할 때 병이 치료함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외칠 때 우리의 삶 가운데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십자가에 달리신 전날 밤에 제자들을 모아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위대함을 저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15장 16절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갖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로 절망에 처해 주저앉은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알코올 중독에 빠진 자여 일어나라! 도박 중독에 빠진 자여 일어나라! 마약에 빠진 자여 일어나라! 각종 정신 질환에 빠진 자여 일어나라!
우리가 그들을 고쳐야 됩니다. 치료해야 됩니다. 그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우리들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절망의 처한 사람을 그냥 보고 지나가면 안 됩니다. 그런 형식적인 종교인으로 살면 안 됩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예수님이 우리 마음 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절망에 처한 사람에게 다가가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라! 외쳐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내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선포했는데 오늘날 우리에게 은과 금이 생겼습니다. 물질이 풍부해졌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가 사라졌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지 못하고 우리가 여러 가지 문제 가운데 절망 가운데 고통을 당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때때로 죄의 노예가 되고 때때로 물질의 노예가 되고 때때로 사회적인 인기 명예의 노예가 돼서 우리들이 마치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자 같은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 시간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회복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니 일어나 걸으라! 일어나 걸으라! 여러분은 외치며 살아야 됩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흑암의 권세는 물러갈지어다. 절망은 떠나갈지어다. 질병은 물러갈지어다. 우리 가정을 괴롭히는 흑암의 권세는 떠나가라! 우리 아들, 우리 딸을 괴롭히는 흑암의 권세는 물러갈지어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지어다. 외쳐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예수님을 믿을 때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것을 이미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 갖고 있는 것을 지금까지 우리가 사용하지 않고 그저 문제와 어려움만 당하면 스스로 주저앉아 버렸는데 이제는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치고 일어나 걷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기적을 체험하는 신앙
여러분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어제의 상처와 절망에 그저 주저앉아 있으면 안 됩니다. 이제 우리는 내일을 바라보고 주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의 미래를 바라보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야 됩니다. 우리는 기적을 체험하는 신앙을 갖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하고 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 순간 나면서 걷지 못한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나서 뛰고 걸으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성전에 들어갑니다. 사도행전 3장 7절, 8절입니다.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단 한 번도 걷지 못하던 이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고 뛰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성전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축복은 주님의 성전의 기쁨으로 나올 수 있는 축복인 것입니다.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된 자가 일어나 뛰어 성전으로 걸어 들어갔던 것처럼 우리는 이제 은혜의 자리로 뛰어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축복의 자리로 뛰어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기적의 자리로 뛰어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매주 그냥 형식적으로 습관적으로 드리는 예배 현장이 아니라 기적의 자리로 여러분 뛰어나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것은 일생일대의 축복이고 기적입니다.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이 놀라운 사실에 대해서 우리는 감사와 찬양을 해야 됩니다. 시편 기자가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시편 113편 1절로 3절입니다.
할렐루야, 야훼의 종들아 찬양하라 야훼의 이름을 찬양하라 이제부터 영원까지 야훼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야훼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여러분의 일생이 찬양과 감사의 일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일어나 뛰어 걸으며 하나님 앞에 보좌 앞에 뛰어나가는 그런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주와 가난과 절망에 주저앉아서 걷지 못하던 이러한 미문 앞의 앉은뱅이와 같은 그런 삶을 살았던 과거를 다 내던져버리고 이제는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고 뛰고 주님을 찬양하며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위대한 미래가 여러분 앞에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에 놀라운 축복의 미래가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이 장차 큰 인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는 자녀들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업이 주님 은혜 가운데 일어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큰 사업들이 될 것입니다.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하여서 영광을 받으시고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만 계시면 예수님의 권세만 있으면 우리는 어떤 문제도 어려움도 넉넉히 이기고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앤 혹스라고 하는 한 여성도의 간증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는 뉴욕주 한 시골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자라날 때 브루클린이라는 지역에서 자라났는데 글을 쓰는 재능이 있어서 기록을 보니까 14살 때부터 많은 시를 써서 신문 이런 데다 기고를 하고 그렇게 재능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런데 23살에 아주 자상한 남편을 만나서 결혼을 하고 세 자녀를 기르며 무엇 하나 부족함 없는 삶을 살고 있었는데 37살 될 때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너무나 주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것이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고 내가 주님 없이 어떻게 살까?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그 감사한 마음을 담아 시로 썼습니다. 그때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그때가 1872년 6월인데요.
내 영혼 속의 주님의 임재를 느꼈습니다. 그 순간,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주님이 없다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죠. 바로 그때에 ‘매 시간 주님이 필요해요’(I need Thee every hour.)라는 생각이 마음속에 솟구쳐 올랐어요.
그래서 이 가사를 가지고 찬송을 지어서 자기가 다니는 그 침례교회의 담임 목사님 로우리 목사님에게 가져갔습니다. 이 로우리 목사님은 아주 그 당시 많은 찬송을 짓고 또 작사 작업도 하고 은혜로 말씀 전하는 뉴욕 지역에 존경받는 목사님이셨는데 그 가사를 받고 나자 목사님도 감동이 되셔가지고 그 가사를 가지고 후렴을 덧붙여서 찬송을 하나 만들고 곡을 붙였는데 그 해 아이라 생키라고 하는 D. L. 무디 목사님의 동역자, 복음 사역자가 이 곡을 받고 너무 감동을 받아서 전국 침례교 교회학교 전국대회를 할 때 이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때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이 찬송을 듣고 큰 은혜를 받았는데 시간이 흘러서 이 찬송을 지은 지 16년 지난 후에 남편이 그만 세상을 떠납니다. 너무나 마음이 슬펐습니다. 그때 본인이 지은 찬송이 자기 마음을 얼마나 크게 위로했는지 16년 전 지은 찬송을 통해서 자기가 은혜를 받으면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나는 처음에 왜 이 찬송이 사람들의 마음을 그렇게도 움직이고 감동을 주었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내 자신이 어려운 처지에 이르게 되었을 때, 엄청난 상실감의 그림자가 내 앞길에 깊게 드리우게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이 찬송가 속에 담겨져 있었던 위로의 능력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원래 가사가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우리 찬송가는 번역이 좀 잘못됐는데요.
I need Thee every hour, Most gracious Lord;
은혜로운 주님, 매 시간 주님이 필요해요.
No tender voice like Thine Can peace afford.
주님의 부드러운 음성만이 날 평안하게 해요.
그 어떤 음성도 주님의 그 부드러운 음성만큼 나를 평안하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요 뒷부분은 롤리 목사님이 붙인 것입니다.
I need Thee, O I need Thee;
주님이 필요해요. 오, 주님이 필요해요.
Every hour I need Thee!
매 시간 주님이 필요해요!
O bless me now, my Savior,
나의 구세주, 이제 내게 복을 내려주세요.
I come to Thee!
내가 주님께 나아갑니다!
이 찬송을 작곡을 하여 불러서 많은 사람이 부르게 되었는데요. 이 혹스 여성도는 남편과 사별하고 30년을 넘게 살면서 마음의 불안함과 답답하고 괴로울 때마다 이 찬송을 부르면서 위로함을 받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걷지 못하는 우리가 걷게 된 것이 바로 주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준 것이 주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날마다 절망에 처한 자를 일으키고 주님의 치료 역사를 만방에 전하고 주님의 영광을 온 천하에 드러내는 주님의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찬송가 446장에는 번역이 조금 의역되어 있지만 원래 뜻을 생각하면서 오늘 이 찬송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찬송가 446장 (통 500): 주 음성 외에는>
1절 주 음성 외에는 참 기쁨 없도다
날 사랑하신 주 늘 계시옵소서
후렴 기쁘고 기쁘도다 항상 기쁘도다
나 주께 왔사오니 복 주옵소서
2절 나 주께 왔으니 복 주시옵소서
주 함께 계시면 큰 시험 이기네
3절 주 떠나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기쁘나 슬플 때 늘 계시옵소서
4절 그 귀한 언약을 이루어주시고
주 명령 따를 때 늘 계시옵소서
할렐루야! 주님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매 순간 우리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주님이 함께하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이 문제 많은 세상을 승리하며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주님 매 순간 매 순간 주님이 필요하오니, 주님 나와 함께하여주셔서 주님의 귀한 뜻을 이루어주시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매 순간 주님이 필요합니다. 주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한 번뿐인 인생 예수 잘 믿고 주님 뜻대로 주님 영광위해 살다가 주님 앞에 부름받을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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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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