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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2022.06.19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유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아내와 자녀와 어린이와 더불어 야훼 앞에 섰더라”(역대하 20장 12~13절)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설교말씀>

오늘은 역대하 20장 12절, 13절 말씀을 본문으로 하여서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이와 같은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크게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우리가 한평생 무엇인가를 바라보며 삽니다. 여러분,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어느 날 교도소에 절도죄로 두 사람이 붙잡혀 들어왔습니다.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다시는 내가 이와 같은 삶을 살지 말아야지.” 하면서 늘 하늘을 바라보고 꿈과 소망을 가지고 교도소에서 나간 후에 살아갈 새로운 삶에 대해서 생각하며 매일매일 긍정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반면에 또 한 사람은 늘 땅만 바라보면서 “내가 어떻게 재수 없이 붙잡혀 와서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나. 내 인생 끝났다.” 늘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서 원망, 불평하며 살았는데 일 년 후에 저들이 형이 만기가 되어서 출소할 때 늘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하늘을 바라보고 꿈과 소망을 가졌던 사람은 유명한 시인이 되었고 늘 땅만 바라보며 탄식하며 살던 사람은 정신분열 증세로 정신병원에 가게 되었다는 이야깁니다.

저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사람이 무엇을 보고 생각하는 것에 따라서 그 사람의 운명이 달라진다.’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가느냐 참으로 중요합니다. 특별히 문제가 다가올 때, 어려움이 다가올 때, 절망적인 상황이 다가올 때 우리는 문제를 바라보고 절망하면 안 됩니다. 문제의 해결자가 되신 주님을 바라보고 꿈과 희망을 갖고 전진해나가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은혜 가운데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남유다 왕국의 네 번째 왕 여호사밧 왕 때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여호사밧 왕은 유다 나라를 하나님의 뜻 가운데 바로 세우기 위해서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우상을 철폐하고 모든 국민들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도록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아가도록 저들의 삶을 인도한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많은 우상들을 다 버리게 하고 우상을 섬기던 신당들을 다 철폐했습니다.

그러자 큰 부흥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유다 왕국이 부흥한다는 소식을 듣자 이웃의 나라들이 연합군을 만들어서 유다 왕국을 쳐들어왔습니다.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 저 나라가 강해지면 우리가 위협을 받겠다.” 해서 연합군이 공격해 옵니다.

 

1. 연합군의 공격

연합군의 공격에 대해서 성경은 이와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역대하 20장 1절, 2절입니다.

그 후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이 마온 사람들과 함께 와서 여호사밧을 치고자 한지라 어떤 사람이 와서 여호사밧에게 전하여 이르되 큰 무리가 바다 저쪽 아람에서 왕을 치러 오는데 이제 하사손다말 곧 엔게디에 있나이다 하니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그 후에’라고 하는 말은 여호사밧 왕의 개혁으로 나라가 영적 부흥이 일어나고 나라가 번영의 길을 가게 되었을 때 그때 대적이 쳐들어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잘 믿고 우리 믿음이 자라려고 하면 악한 원수 마귀가 문제들을 만들어서 문제의 연합군을 갖고 우리를 쳐들어오는 것입니다.

처음 예수님을 믿고 신앙 생활하며 믿음이 자랄 때는 큰 도전이 없고 문제가 없었는데 이제 믿음이 좀 자라서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될 때 여러 가지 공격이 다가옵니다. 갑자기 말 잘 듣던 아이가 속을 썩이고 부모에게 대들기도 하고 믿었던 사람이 배신하고 등을 돌리기도 하고 사업에 어려움이 다가오기도 하고 몸에 질병이 다가와서 내 자신을 큰 절망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이 우리에게 연합군을 만들어서 쳐들어온다 할지라도 절대로 두려워하거나 낙심하면 안 됩니다.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만군의 야훼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에 어떤 문제도 우리가 넉넉히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2절은 말씀합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물 가운데로 지날 때, 불 가운데로 지날 때,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내가 너를 도와줄 것이라. 내가 너를 도와 모든 어려움을 이기게 해줄 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고난의 때에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절망을 바라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모든 문제의 해결이 모든 질병의 치료가 다 주님의 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주님께 달려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갈 때 주님이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 앞에 기도해야됩니다. 부르짖어야 됩니다.

2. 하나님께 간구한 여호사밧

연합군이 쳐들어올 때 그 소식을 들은 여호사밧 왕의 마음에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여호사밧 왕이 모든 백성을 모아 하나님께 함께 간구했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한 여호사밧 왕에 대해서 역대하 20장 3절, 4절은 설명합니다.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야훼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유다 사람이 야훼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야훼께 간구하더라

“큰 무리가 공격해옵니다.” 하는 말을 들었을 때 듣는 순간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환난의 때 사람들이 쉽게 부정적인 말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더 낙심시킵니다. 조그마한 문제가 생겨나도 사람들이 “큰일났다. 야 이거 이러다가는 모든 것이 다 끝장나겠다.” 아니 조그마한 일을 그 사람이 더 크게 만들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날 도와주셔서 넉넉히 이긴다고 말씀하셔야지 “흐엑 이렇게 큰 문제가 다가와서 난 끝났다.” 하면 그 말에 자기가 사로잡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병원에 입원해도 “아유 아무것도 아니야. 금방 치료받고 건강해질 거야.” 이렇게 얘기하면 좋은데 용기를 주고 격려를 해줘도 부족할 판에 와서 “큰일났네. 이 병 걸리면 잘 못 낫는다고 하는데.” 또 어떤 사람은 와서 병원을 탓합니다. “아 이 병원은 이거 전문이 아니라는데 왜 일로 왔어. 절로 가지.” “아이고 내가 알아보니까 그 선생님이 별 볼 일 없대.” 그러면 병실에 누워있는 사람의 마음이 약해져 있는데 그 말 듣고 더 마음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꿈과 희망을 심어줘야 하지 염려, 근심, 걱정을 심어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늘 긍정적인 언어로 격려하고 용기를 주고 그 사람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믿음으로 일어날 수 있게 해줘야지 자꾸 부정적인 얘기를 갖다가 가서 쏟아 놓아서 더 그를 절망에 빠지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절망의 때에 희망을 주고 꿈을 주고 함께 손 붙잡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문제가 다가왔을 때 여호사밧 왕이 함께 모여 금식하며 기도하자고 선포했습니다. 역대하 20장 3절입니다.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야훼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 “금식하며 우리 함께 기도하자.” 여러분 어려움이 다가왔을 때 문제가 다가왔을 때 엎드려 금식하며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아가 바룩을 통하여 남유다가 멸망 당하기 전에 모든 백성이 금식할 것을 선포하게 했습니다. 예레미야 36장 9절입니다.

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의 제오년 구월에 예루살렘 모든 백성과 유다 성읍들에서 예루살렘에 이른 모든 백성이 야훼 앞에서 금식을 선포한지라

금식할 때 하나님의 응답이 임하고 우리 삶 가운데 놀라운 기적과 축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사야 58장 6절입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금식할 때 치료의 역사가 우리에게 급속히 임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58장 8절입니다.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야훼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고난의 때에 부르짖어 금식하며 기도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60년대, 70년대 참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먹고 살기도 힘들었고 웬 병에 그렇게 자주 걸리는지 안 아픈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우리가 세상에 의지할 것 없고 가진 것 없을 때 주님 앞에 나와 부르짖으며 금식했습니다. 부르짖고 또 부르짖고 또 부르짖었습니다.

기본적으로 금식했다고 하면 3일 일주일씩 기도원에 올라가서 금식하며 부르짖었습니다. 생활의 어려움 때문에, 가정의 문제 때문에, 몸의 질병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우리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금식하며 부르짖었더니 주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문제가 해결되고 병이 고침받고 주님의 기적이 임했던 것입니다.

요즘은 등 따습고 배부르니까 금식들을 안 해요. 한 끼만 금식하라고 그래도 “헤엑 굶어요? 먹는 즐거움을 뺏어가면 어떡하려고 하십니까?” 그래서 오산리 금식기도원이라는 이름이 무색해졌어요. 우리가 금식 성회를 열어도 식당에 늘 만원이랍니다. 금식을 하지 않고 열심히 와서 잡수시니까.

여러분 정말로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울 때는 주님 앞에 엎드려 금식하며 부르짖어야 되는 것입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한다는 것처럼 간절한 기도가 없습니다. 금식을 해보니까 얼마나 시간의 여유가 많은지 몰라요. 그 많은 시간에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 기적이 임하는 것입니다.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난의 때, 문제를 만났을 때, 어려움을 당할 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기도하면 기적이 임하는 것입니다.

 

3. 주님만 바라보는 신앙

여호사밧 왕은 그 어려운 때 금식하며 주님만 바라보았습니다. 주님만 바라보는 신앙에 대해서 역대하 20장 6절의 말씀을 우리가 보기 원합니다.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야훼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

12절에 참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할렐루야.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주님 이렇게 많은 무리가 몰려오는데 우리는 그들을 대적할 힘이 없습니다.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한 숫자도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주님만 바라봅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봅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봅니다. 모든 백성이 다 나와서 주님 앞에 서서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부르짖어 기도했던 것입니다. 역대하 20장 13절입니다.

유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아내와 자녀와 어린이와 더불어 야훼 앞에 섰더라

모두가 간절한 마음으로 다 나왔습니다. 어린아이까지 다 나와서 주님만 바라보며 “주여! 우리를 살려주옵소서.” 주님 앞에 서서 주의 도우심을 간구했던 것입니다.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사람 앞에 줄을 서지 말고 하나님 앞에 줄을 서시기 바랍니다. 사람에게 매달리지 말고 하나님께 매달리시기 바랍니다. 믿었던 사람들이 내가 어려울 때 등을 돌립니다. 가까웠던 사람한테 얘기했던 것을 나중에 내가 어려움에 처하면 그 사람이 그걸 가지고 더 나를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밖에 모르기 때문에 자기에게 유익이 될 때는 가까이도 지내고 좋은 말을 하지만 자기에게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손해가 될 때는 등을 돌리고 나쁜 말로 남들에게 나를 얘기해서 나에게 더 상처를 가져다주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만 의지해야 됩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예수의 사랑을 나눠줄 사람이지 믿고 의지하고 따라갈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주님만이 믿고 의지하고 따라갈 유일한 대상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 앞에 부르짖으면 주님이 우리를 불쌍히 보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이 불쌍하게 보셔야지 사람이 불쌍하게 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쯧쯧. 안 됐어.” 그렇게 동정하고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불쌍히 보시면 우리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아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우리의 병을 고쳐주시고 우리를 절망에서 건져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 13절, 14절입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야훼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주님 앞에 기도할 때마다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한 맹인 바디매오가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소리를 듣고 소리 질러 외쳤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7절, 48절입니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그는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유일한 꿈과 소원이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동냥하다 얘기를 들어보니 나사렛 예수라는 분이 오셔서 죽은 자도 살리고 병든 자도 고치고 눈먼 자도 뜨게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언제 예수님을 만나나. 언제 예수님을 만나나.” 하는데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예수님 지나가신다. 예수님 지나가신다.” 있는 힘을 다해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 주변 사람들이 “시끄럽다. 거지 주제에 맹인 주제에 왜 소리 지르고 난리냐?” 그런데 더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여러분 예수님의 발걸음이 멈출 때까지 부르짖어야 되는 것입니다. 응답이 올 때까지 부르짖어야 되는 것입니다. 부르짖고 또 부르짖고 또 부르지고 부르짖으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2000년도에 제가 순복음동경교회에 담임으로 파송됐습니다. 미국 베데스다 대학교 총장으로서 학력 인가를 다 마치고 조 목사님이 저를 부르시더니 “이제 동경으로 가라. 가서 교회를 지어라.” 가보니 교회를 지을 상황이 아닙니다. 동경에 와 있는 성도들 보니까 고생하는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중국에서 건너온 조선족들은 정말 밤에 나가서 밤새 접시를 닦고 고생을 해서 손이 퉁퉁 부었는데 새벽에 나와서 눈물로 기도합니다. 연변에 두고 온 자기 자식과 남편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2년만 고생하고 가면 10년 치 그 중국에서 온 가족이 살 수 있는 그런 생활비가 생기기 때문에 와서 그렇게 고생에 고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그곳에 와서 일하는 분들이 석 달만 지나면 비자가 끊기기 때문에 불법 체류자가 되어서 말할 수 없이 고생하며 지내고 있으니까 의지할 때는 주님밖에 없어요. 그래서 그냥 성전에 와서 웁니다. 순복음동경교회에 가보니까 모든 의자 위에 큰 크리넥스가 두 박스씩 있어가지고 그냥 밤새 울다 갑니다. 어떤 사람은 한 통 다 뽑아놓고 가요. 그냥 얼마나 우는지, 주님 날 불쌍히 여겨 달라고. 그래서 그때 가서 그분들과 함께 같이 울었습니다. “주님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우리가 이곳에 와서 돈을 벌겠다고 왔는데 너무나 살기가 힘듭니다.”

교회도 지금 자체 교회가 없이 임대 교회를 쓰면서 매달, 매달 많은 월세를 내야되고 “주님 우리에게 교회를 주옵소서.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기도할 때마다 “주님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성도들이 울고 저도 울고. 울면서 그냥 목회했습니다. 그런데요. 주님이 불쌍히 보시니까 하나님이 축복을 해주셔서 교회도 짓게 해주시고 저들의 생활도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고 앞길에 좋은 길을 열어주시고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여러분 주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으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기적이 임하는 것입니다. 축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언제나 하나님 앞에 엎드려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내 형편과 처지를 하시는 주님 내가 이렇게 아픕니다.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건강 주시고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이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고 우리 가정이 평안하게 만들어주시고 우리 직장이 사업이 주님 은혜 가운데 잘 되게 하여 달라.”고 눈물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총신대 총장으로 섬기는 이재서 총장님은 앞을 못 보는 맹인으로 죽으려다가 주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고 대학교 총장까지 되신 분입니다. 15살 때 몸에 병의 후유증으로 열병을 앓아서 눈이 점점 안 보이더니 1년 후에 완전히 눈이 멀어버렸습니다. 맹인이 됐습니다. 몇 번 죽으려고 하다가 ‘내가 죽기 전에 유서라도 쓰고 죽어야지.’ 그래서 점자라도 배우려고 서울로 올라와서 맹인 학교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목사님의 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인간에게는 네 가지 눈이 있다. 사물을 보는 ‘육안’, 지혜를 터득하며 가지는 ‘지안’, 마음으로 보는 ‘심안’, 하나님을 믿을 때 영원한 세상을 보는 ‘영안’이 그것이다. 그런데 사물을 보는 ‘육안’ 하나를 잃었다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말 것인가?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나아가라!

이 말씀 듣고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1973년 여의도에서 열린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에서 그가 주님을 만나고 그의 삶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저도 그때 대학생으로 이 100만 명이 모인 집회에 참여했었는데 정말 이전에 이 같은 많이 모인 집회가 없었습니다. 1973년 ‘빌리 그래함 크루세이드’로 시작해서 그다음부터 74년 ‘엑스플로 74’ 계속 이어져서 100만 집회가 열렸는데 내년이 50주년이 되어서 이제 50주년 대회를 또 합니다. 여기서 말씀 듣고 나서 그가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집회에 우연히 참석하여 우주와 나를 창조하신 절대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내 고민들은 완전히 사라지고, 내 안에 새로운 꿈들이 움트기 시작했습니다. 즉, ‘장애인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라는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장애인 선교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총신대학에 입학하여 3학년 때 장애인 선교단체인 ‘한국밀알선교단’을 창립했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서 학사, 석사, 박사를 받으면서 유학 중에 필라델피아, 워싱턴, LA, 뉴욕 등 미주 전역에 밀알선교단 지부를 설립하고 92년에는 ‘미주 밀알선교단’을 출범시킵니다.

1995년에는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밀알선교회를 통합해서 ‘세계밀알연합회’를 만드는데 현재 28개국에 100여개의 선교지에 밀알선교회가 있습니다. 각 나라에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들을 위한 선교회를 조직한 것입니다. 이를 공로로 해서 2004년에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한때 자살하려고 하던 소년이 예수님 만나 불쌍히 여김을 받으니까 이와 같은 축복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것입니다. 이재서 총장은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편애’를 받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려갔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준비해주셨습니다. 장애는 한마디로 말해 제게 기회였습니다. 실명했기 때문에 맹학교에 진학했고, 이후 밀알이라는 조직을 만들었으며,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됐습니다. 실명은 제게 아픔이었고 눈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축복의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의미 없는 고난은 없습니다. 조금만 인내하고 견디면, 그 고난에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분명 알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현재 맹인으로서는 총신대 역사상 최초로 총장님이 되어서 지금 연임하고 계시는데 저하고 가까운 사이로 연락을 하고 또 안부를 나누고 있는 귀한 분이십니다. 여러분 앞을 못 본다는 것이 절망이 아니라 주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 절망입니다. 어떤 문제를 만나도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을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음성가 448장 :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하는 자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아가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자녀 삼으셨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지라

어떤 문제가 다가와도 어떤 절망이 다가와도 어떤 병에 걸렸다고 할지라도 주님만 바라보고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절망을 바라보지 말고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주님만 바라보며 승리하는 저희 모두가 되도록 주님 은혜 내려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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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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