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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복이 될지라
2022.06.05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야훼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창세기 12장 1~4절)


오늘은 성령강림 주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충만 받아서 하나님 앞에서 복 받은 인생을 살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날 주님 앞에 나아와 찬양과 경배로 예배드립니다. 주님 홀로 영광 받으시고 큰 은혜와 축복으로 예배드리는 저희 모두에게 넘치게 채워주시옵소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속히 종식되어지게 하여주셔서 더 이상 무고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게 하여 주시고, 코로나19가 종식되어 모든 일상이 회복되어지도록 주님 도와주옵소서. 모든 예배가 회복되고 특별히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서 경제가 회복됨으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주님 은혜 내려주옵소서. 세계선교대회 가운데 주님께서 함께 하시고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 저는 창세기 12장 1절로 4절 말씀 가지고 “너는 복이 될지라” 이와 같은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번 크게 따라 해 주시기 바랍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

한 번뿐인 인생을 살아갈 때 정말 우리가 의미 있고 보람 있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까? 그 비결은 예수님을 잘 믿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되어서 주님 뜻대로 살아가면 그것이 복된 인생으로 그 삶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절망 가운데 방황하며 살다가 그 인생을 마치기 때문에 그 인생은 불행이요 절망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이 없다 보니까 세상에서 만족을 얻으려고 알코올 중독에 빠져보기도 하고 요즘 막 독버섯처럼 퍼지는 마약중독, 도박중독 이런 데 빠지게 돼서 인생을 망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 빠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셔야 인생의 목적을 알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올바른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는 아브라함이 우상숭배로 뒤덮인 갈대아 우르에 살 때는 그 삶이 절망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절망의 삶으로 뒤덮였던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으로 갈 때 그는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그가 복의 근원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결단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으로 그치면 안 됩니다. 아는 것을 내 마음의 확신으로 부여잡고 결단할 때 삶의 변화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1. 옛 사람의 모습을 떠나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본토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 그것은 오늘 우리 모두에게 주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옛 사람의 모습을 떠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과거를 떠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1절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아브라함이 살던 곳은 우상숭배가 만연한 갈대아 우르였습니다. 이곳은 수메르인이 ‘난나신’ 그러니까 ‘난나신’이라고 하는 것은 달을 섬기는 신인데 저기 보면 초승달이 보이는데 그 초승달을 섬기는 우상숭배의 중심지가 이곳이었고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을 지었던 시날 평지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여러 나라 국기를 보면 특별히 이슬람권에 있는 나라에서 이 초승달이 그 국기 속에 들어가 있는데 이것이 다 아브라함 때 그 수메르인들의 그들이 섬겼던 우상의 모습을 지금까지도 그대로 갖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이곳에 살면서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여호수아 24장 2절 보면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샘의 후손인 데라가 그곳에 살다 보니까 모든 사람이 다 우상을 섬기니 그냥 자연스럽게 우상을 섬기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자기 아들이 죽었습니다. 아들이 죽고 나니까 충격을 받아 그곳을 떠납니다. 창세기 11장 27절, 28절은 설명합니다.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여기 아들 세 명의 이름이 나오는데 막내 아들이 하란인데 하란이 거기서 죽었습니다. 롯을 낳아놓고 죽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그곳을 떠났습니다. 창세기 11장 31절입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그래서 하란에 와서 잠시 머물렀다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그곳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갑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복 받은 인생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잘못된 환경, 잘못된 과거, 잘못된 자리에서 과감히 떠나야 되는 것입니다. 옛 모습에서 떠날 때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붙잡고 있습니까? 우리가 섬기는 우상이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물질의 우상을 섬깁니다. 돈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그래서 뭐니 뭐니해도 머니(Money)가 최고다! 그래서 돈을 움켜쥐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정당하게 일을 해서 정당하게 돈을 버는 것은 그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러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냥 막 돈을 모으려다 보니까 무리하게 회사를 확장해서 오히려 어려움이 다가오고 회사가 파산하고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고 이러한 일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물질의 우상!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자를 주르륵 따라가면 권력의 우상이 있습니다. 권력이라는 것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그래서 10년 가는 권세가 없다고 그랬습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해서 열흘 붉은 꽃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10년이 아니라 5년마다 바뀌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줄서기 했다가 다시 권력이 바뀌면 낙동강 오리알처럼 다 그냥 물러 내려앉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물질을 섬겨서는 안 됩니다. 권력을 섬겨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우상들을 섬겨서는 안 됩니다. 세상 쾌락의 우상을 따라갔다가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위험한 우상이 ‘나’라고 하는 우상입니다. 모든 기준이 자기 자신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기쁘면은 행복한 것이고 자기가 불쾌하면 불행한 것입니다. 누가 날 칭찬하면 저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고 누가 날 욕하면 저 사람은 아주 못된 사람입니다. 모든 기준이 자기에게 있기 때문에 우리가 쓴소리를 제대로 들을 줄도 알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돌아보는 그 모습이 필요한데 ‘나’라고 하는 한 우상에 갇혀 가지고 그냥 ‘어화둥둥’ 자기만 위해주기를 바라고 사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은 자기를 바라보고 예수님 앞에서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나는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하는 그 모습을 하나님 앞에 보이는 사람들이 바로 성숙한 사람들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은 잘못된 나의 모습에서 과감히 떠나야 되는 것입니다. ‘나’ 중심으로 살았던 내 과거의 모습에서 떠나야 됩니다. 과거의 상처에서 절망의 자리에서 떠나야 됩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우상을 다 버리고 떠나야 되는 것입니다. 떠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머물러 있는 한 절대로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떠나야 됩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떠나야 되는지 여러분 자신이 압니다. 잘못된 습관에서 떠나야 됩니다. 잘못된 자기 성격에서 떠나야 됩니다. 하루에도 10번 이상 화를 내면서 “난 원래 화내는 사람이야.” 이렇게 살면 안 됩니다. 예수님 믿고 달라져야 됩니다. 10번 화내던 사람이 9번 내고 8번 내고 7번 내고 그렇게 변화되어야지 “난 원래 화를 잘 내니까 그렇게 알고 살아.” 이거 아닙니다. 이런 걸 떠나야 되는 것입니다. 잘못된 성격도 떠나고 잘못된 습관도 떠나고 떠나서 우리 주님이 예비해 놓으신 복 받은 자리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할렐루야!


2.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오늘 우리에게 두 번째로 주신 말씀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1절은 말씀합니다.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그런데 히브리서 11장 8절에 보면 어디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나라 했을 때 무조건 떠났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주님이 “가라.” 하시니까 떠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무엇 때문에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 각자 각자의 꿈과 비전이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내게 주신 꿈을 붙잡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여러분 게으른 사람이 사업을 성공하는 법이 없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노력해야 그 사업이 번창하게 되고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놀면서 수재(秀才)가 되고 박사가 된 사람이 없습니다. 노는 것 같아도 열심히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또 공부해서 그래서 학위를 따고 그래서 자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찬양대가 은혜로운 찬양을 했는데 아무나 이렇게 솔로를 하는 게 아닙니다. 갈고 닦고 갈고 닦아가지고 누가 아랫집에서 그만 좀 조용히 좀 하라고 “돼지 멱 따는 소리 그만 내라!”고 그래도 열심히 소리 질러가지고 이렇게 유학 갔다 와서 유명한 솔리스트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무나 되는 게 아니에요. 노력을 해야 됩니다.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꿈을 꿔야 됩니다. 거룩한 환상을 가져야 됩니다. 꿈과 환상을 갖고 나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앞으로 하나님 앞에서 위대한 사람으로 쓰임 받겠다’ 하는 꿈을 갖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그 인생을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할 때 우리에게 꿈이 임합니다. 사도행전 2장 17절입니다. 요엘서를 인용해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주님 안에서 거룩한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되는 것입니다. 있는 자리에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그걸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뉴스를 보다 보니까 미국의 명문대학인 콜롬비아 대학을 나와가지고 그가 파이낸스 이 경제학을 전문해서 유명한 금융회사에 들어갔는데 자기 꿈이 그 유명한 월스트리트가에서 금융회사에서 돈을 버는 게 자기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어느 날 자기에게 준 꿈이 음식 만드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 고액 연봉의 자리를 내려놓고 일 년에 몇십만 불 받는 자리를 내려놓고 “나는 음식을 배워야 되겠다.” 그래서 식당에 보조원으로 들어가서 그릇 닦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아니 명문대학을 나와 갖고 와서 그릇을 닦으니까 사람들이 수군수군합니다. “아니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저런 일 하나.” 그러나 그가 그렇게 노력하고 노력하고 노력해서 유명한 요리사로 알려지게 되었고 뉴욕 전체에 소문난 요리사로 이름이 꼽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에게 주어진 꿈이 무엇인지를 여러분 스스로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에게 주신 탤런트가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주신 각자 각자의 재능을 따라서 최선의 노력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복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하는 그러한 일로 그러한 삶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3. 너는 복이 될지라

주님 말씀하십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 창세기 12장 2절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한 번 따라하세요. “너는 복이 될지라.” “너는 복이 될지라.” “너는 복이 될지라.”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기 네 가지 축복이 나옵니다.

1)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2) 네게 복을 주겠다

3) 네 이름을 창대케 하겠다

4) 너는 복이 되리라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그를 복으로 만들어주셨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그를 축복하시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에게 저주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복덩어리가 되기 때문에 우리를 축복하는 사람들은 복을 받을 것이고 우리를 저주하고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3절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할렐루야. 우리는 복덩어리가 된 것입니다. 예수를 믿을 때 이미 복덩어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그를 알고 있든지 모르고 있든지 깨닫든지 깨닫지 못하든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 예수님을 믿을 때 아브라함의 복이 우리에게 임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4절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 아브라함의 복이 임한 것입니다. 복덩어리가 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통하여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믿지 않는 집안에 예수 믿는 내가 들어가면 그 집안이 다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회사에 내가 들어가서 예수를 잘 믿는 내가 열심히 일을 하면 그 회사가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학생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그 학교에 들어가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주의 뜻을 나타낼 때 그 학교가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죄의 노예가 돼서 저주받은 인생을 살지 말고 복 받은 인생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거룩한 꿈을 꾸면서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과 함께하십니다. 꿈꾸는 사람과 함께하십니다. 말씀의 사람과 함께하십니다. 성령의 사람과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그를 통하여 위대한 역사를 이루고 계신 것입니다. 그 인생이 아무리 망가졌고 실패자의 모습으로 있었다고 할지라도 주님 안에서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일어나면 그 실패자의 인생이 위대한 승리자의 인생으로 성공자의 인생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제가 기독교 TV에서 이지선 교수님의 간증을 듣고 굉장히 감동을 받아서 제가 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샀습니다. 『꽤 괜찮은 해피엔딩』이라고 하는 책을 냈더라고요.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그냥 하루 만에 다 읽어버렸는데요. 너무나 감동되는 얘기가 많아서, 궁금하신 분은 이 책을 사서 보면 됩니다.

22년 전 23살 대학교 4학년 때 오빠와 같이 이제 늦게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차가 작은 차였습니다. 그런데 술에 만취한 운전사가 와서 차를 들이받아서 2000년 7월 30일 날, 7중 추돌 사고가 났고 차가 다 불에 타고 온몸이 숯덩어리가 돼서 그를 꺼냈을 때 전신 55%에 3도의 중화상을 입었습니다. ‘3도의 중화상’이라고 하는 것은 이 피부 안에 진피층까지 손상돼서 시간이 흘러도 피부가 회복되지 아니하고 피부 이식 수술을 해야 되는 그런 사고입니다.

그래서 다른데 살을 떼어다가 갖다 붙여야 되는데 중환자실에서 깨어나서 화상 입은 자신의 모습을 보니까 “여기가 끝이다. 이제 다 끝났으면 좋겠다.” 원망 섞인 불평을 하나님께 했습니다. “하나님 나 어떻게 하실 거예요?” 나조차도 나를 사랑할 수 없는데 자기의 모습을 보니까 얼마나 흉측한지 이런 모습을 하나님이 왜 허락하셨는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변함없이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여기가 끝이 아니다. 너를 세상 가운데 반드시 세울 것이고, 너를 병들고 약하고 희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너가 희망의 메시지가 되게 할 것이다.

그 이후로 만 번이 넘는 고통스러운 수술을 받습니다. 그 다음에 수술을 지금까지 하고 있으니까 더 이상 숫자를 세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랬는데 피부를 떼어내서 이쪽에다가 다시 또 붙이는 수술이 떼어내는 것도 아프고 여기서 다시 붙으니까 여기서 또 떼어내서 붙이니까 얼마나 아프고 힘든지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고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더 고통스러운 것은 사람들이 자기를 보면 수군수군 거립니다. “저 사람 교통사고 당해서 저렇게 피해자가 됐대.” 근데 이분이 은혜받고 나서요. “나는 더 이상 피해자로 살지 않겠다. 교통사고 당했다는 말을 나한테 하지 마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다시 과거로 싹 돌아가갖고 그때의 악몽이 떠오른다고 합니다. 그 교통사고로 온몸이 불탔을 때의 모습으로 자꾸 그것이 기억나니까 자꾸 과거로 자기를 돌이키니까 “나는 이제 피해자가 아니라 나는 주님 안에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래서 이화대학교 유아교육과 과정을 마치고 유학을 떠나서 11년 반 만에 보스턴 대학에서 재활 상담학, 콜롬비아 대학에서 사회복지학, UCLA에서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받고 그리고 한동대학교 교수님으로 갔습니다. 할렐루야!

근데 이분 그 사고 나기 전에 한 번 사진을 한 번 띄워 줘보세요. 사진은 굉장히 젊고 발랄하고 이쁜 저 모습인데 저 모습은 흔적도 없이 다 사라지고 지금 이렇게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화됐습니다. 근데 간증을 하면서 눈물이 글썽이면서 이제 간증을 마무리할 때쯤 그 아나운서가 묻습니다. “만약에 과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하는 질문을 합니다. 만약 내가 그 사고가 나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사실 돌아갈 수 없죠. 그 질문 자체가 너무 아픈 질문인 것 같아요. 과거로 돌아갈 수 있었다면 어떻게 하셨으면 좋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답변을 합니다.

사고 이전에는 고통도 없었고 보기에도 예뻐 보여 그때가 훨씬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정작 삶을 살아보니 행복의 종류도 많아지고 크기도 커졌어요. 하나님께서 새롭게 주시는 것들 남겨진 것들에 대해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훨씬 더 많은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는데 이것을 몰랐던 사고 전으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할렐루야. 그는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이와 같이 말씀을 전합니다.

인생의 초점을 아픔이 아닌 회복과 성장에 두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견디고 버텨온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고 스스로를 격려하며 꽤 괜찮은 해피엔딩을 기대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언젠가 그래, 살아남길 잘했어라고 말할 날이 오기를 마음을 다해 응원합니다!

할렐루야! 아직도 과거의 상처에 절망에 갇혀 있는 분이 있습니까? 다시 일어나셔서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꽤 괜찮은 인생을 살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 살아남길 잘했어.” 결단할 수 있는 그러한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중환자실에서 40일 동안 누워 있었는데 하루 면회 시간은 20분이었다고 합니다. 의식이 돌아왔을 때 제일 먼저 떠올랐던 찬송이 우리 하용조 목사님 동생 하스데반 선교사가 지은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라고 하는 찬송입니다. 여기 보면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갑니다 고통 가운데 계신 주님’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이 우리의 고통을 알고 계시고 지금도 우리의 고통과 함께하시며 우리를 위로하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찬송을 부르며 새 힘을 얻고 지금 이렇게 일어나서 대학교 교수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인생이 값진 것입니다. 귀한 것입니다. 복 된 인생으로 값진 인생으로 의미 있는 인생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음성가 338장 :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갑니다

고통 가운데 계신 주님

변함없는 주님의 크신 사랑

영원히 주님만을 섬기리

여러분, 더 이상 과거에 머물러 있지 말고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너는 복이 될지라.” 약속의 이 말씀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한 번뿐인 인생인데 과거에 갇혀 살지 말게 하여 주시고 우리에게 예비 된 찬란한 미래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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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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