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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길에 동행하시는 예수님
2022.04.24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누가복음 24장 13~16, 30~32절)

인사 나눕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 반드시 일어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렇게 좋은 날에 저희들을 예배의 장소로 불러주신 것 감사합니다. 또 있는 곳에서 예배드리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모든 예배 처소 위에 복에 복을 더하여 주옵소서.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은혜가 임하게 하여주시옵소서.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속히 종식시켜주셔서 더 이상 무고한 희생자가 나타나지 않게 하여주시고 지구촌 어디에도 전쟁 소식이 들려오지 않게 하여주옵소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평화통일의 길을 모색할 수 있게 하여주시되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여서 복음이 북한 전역에 전파되어 복음으로 남북통일을 이룰 수 있게 하여주옵소서. 감사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복음성가 : 사랑하는 자여>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설교말씀>

이 찬양의 고백대로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누가복음 24장의 말씀을 가지고 “인생길에 동행하시는 예수님” 이와 같은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눕니다. 제목을 크게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인생길에 동행하시는 예수님.”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을 통해서 우리 인간의 삶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계절이 우리에게 매해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우리 인생에도 희망이 넘쳐나는 봄이 다가오고 열정이 넘치는 여름이 다가오고 추수하는 가을이 다가오고 고난의 겨울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희망의 봄처럼 좋아서 웃을 때가 있고 고난의 겨울처럼 슬피 울 때가 있습니다. 솔로몬이 말년에 지은 전도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도서 3장 4절에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그렇습니다. 우리가 웃을 때가 있고 울 때가 있고 슬퍼할 때도 있고 춤출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을 살다 보면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하는 것마다 다 안 돼서 그냥 계속 내리막길을 걸어갈 때가 있습니다. 좋은 일만 늘 있으면 좋은데 우리가 예상하지 않은 문제가 생겨납니다. 어려움이 생겨납니다. 고난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1. 내리막길을 가고 있는 두 제자

그런데 오늘 성경을 보니까 내리막길을 가고 있는 두 제자의 모습이 나옵니다. 누가복음 24장 13절, 14절에.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오늘 말씀 보니까 절망 가운데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루살렘은 해발 640m 위에 있는 높은 곳에 있는 도시이고 엠마오는 그로부터 저쪽 아래쪽으로 25리, 11km 떨어진 지역에 있는 작은 도시입니다. 그런데 이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길은 좁고 험해서 때때로 강도가 나타나서 지나가는 사람을 해치기도 했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그 길은 이 두 제자에게 있어서는 낙심의 길이요, 절망의 길이요, 슬픔의 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토록 믿고 의지하고 따르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어요. 꿈도 희망도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어깨를 쭉 늘어뜨리고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 지난 2년 동안 우리들의 모습이 그랬지 않았는가? 끝이 보이지 않고 이 코로나-19라는 것이 계속해서 또 괴롭히고 또 괴롭히고 또 괴롭히고 또 괴롭히면서 그냥 그냥 계속 내려막길을 갑니다. 영세 소상인은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힘들고,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고, 집에만 있다 보니까 아이들이 그냥 학교를 못 가니까 온몸이 쑤셔 갖고 막 난리를 치고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습니다.

정부가 이제 이제 더 이상 못하겠다. 손을 놓고 자유함을 줬는데 아직 코로나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한 집 건너 오미크론인지 뭔지 그게 또 확진 돼가지고 일주일은 쉬어야 되는 것입니다. 백신 맞으면 괜찮다 그래 갖고 1차, 2차, 3차까지 맞았는데 그 오미크론이 초청도 안 했는데 찾아오더라고요.

다들 우리가 피곤하고 지쳤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로 지금 우리가 내리막길을 가고 있습니까? 어떤 분은 하루가 멀다하고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갑니다. 제가 어떤 분 보니까 식사하고 나서 약을 한 움큼 먹어요. 아이고 이만큼 먹더라고요. 한 삼 사십 알은 되는 거 같아 족히. 옆에 있던 분이 “혼자 먹지 말고 나눠 먹자.”고 그러니까 “고혈압약 나눠 먹을래요?” 몸이 아프니까 몸이 아파서 만사가 짜증 나고 귀찮습니다. 아파보세요. 짜증나고 귀찮은 거예요. 어쩌다 한 번 감기 앓는 거 그나마 감기약을 먹고 나으면 되는데 일 년 내내 몸이 아프면 짜증이 나고 힘들고 어렵습니다. 내리막길 가는 거예요. 내리막길. 육신의 질병으로 가정에 아이가 속을 썩여서 가정의 내리막길로 사업에 어려움으로 사업의 내리막길로 절망의 내리막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이 내리막길을 가는 인생에 우리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와 동행하시고 함께 하시고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바로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인생길에 동행하시는 예수님

온 인류의 희망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인생길에 동행하십니다. 절망의 길에, 슬픔의 길에, 내리막길에 주님이 동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인생길에 동행하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길 원합니다. 절망에 빠져 힘없이 엠마오로 가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동행하셨습니다. 성경은 누가복음 24장 15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힘들고 외로운 인생길에 주님 찾아서 우리와 동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2천 년 전에 절망해서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과 함께 동행하신 예수님께서 지금 오늘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가 내리막길을 갈 때도 우리와 동행하시고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시고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위로자가 되어주시고 상담자가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외로운 길을 혼자 갈 때 누가 나의 말동무가 되고 같이 간다면 얼마나 그것이 위로가 되는지 모를 것입니다. 외로움이라는 것처럼 힘든 게 없어요. 아버님 돌아가시고 어머님 돌아가시고 홀로 남아 있어 외로울 때 그 누가 외로움을 위로해 주지 못하고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면 한없이 한없이 좌절하고 내리막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주님께서는 질병과 고난, 가난과 저주 온갖 상처로 얼룩져 내려가고 있는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와 동행하시는 것입니다. 밤잠을 자지 못하고 한없이 울고 있는 우리 곁에 와서 같이 울어주시는 것입니다.

가슴 아파 씨름하며 아파 통증 가운데 있는 우리를 위로하시며 같이 아픔을 느끼며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 되십니다. 우리가 울고 있는 그 자리에 주님이 함께하십니다. 고난의 자리에 주님이 함께하십니다. 고통받고 있는 자리에 주님이 함께하십니다. 배신당하고 상처받고 따돌림받은 그 자리에 주님이 함께하고 계신 것입니다. 병들어 누워있는 그 자리에 주님이 함께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이 홀로 먼 광야 길을 가는 야곱의 그 외로운 길에 동행하셨습니다. 야곱이 형이 받을 축복을 대신 다 가로채고 형한테 미움을 받아서 그 집에 같이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리브가가 “야 너 외삼촌 집에 가서 좀 있어라.” 그래서 지금까지 그 집에서 사랑만 받다가 보따리 짐 하나 메고 길을 가는데 그 길이 무려 800Km입니다.

서울-부산 거리의 한, 두 배쯤 되는데 그 길을 나 홀로 외롭게 그때 자동차가 있습니까 뭐가 있습니까. 혼자 터벅터벅 가는데 우리나라 노래에도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다고 그래가지고 광야에서 그냥 쓰러져 잡니다. 그때 외로워 쓰러져 잠을 자고 있는 그에게 꿈 가운데 주님이 나타나서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28장 15절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할렐루야! 절망해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과 동행하시면서 주님 말씀하십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얼마나 절망이 깊었던지 막달라 마리아가 슬픔에 젖어서 예수님을 보지 못한 것처럼 눈이 가리어져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16절입니다.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마음이 닫히고 영의 눈이 닫혀버리면 우리가 진실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사실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절망만 바라보고 절망의 소리만 하는 것입니다. 어둠에 갇혀서 어둠의 소리만 외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서 부정적인 얘기, 원망과 불평만 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 우리 영의 눈이 닫혀서 그렇습니다. 마음이 닫혀서 그렇습니다. 요즘 SNS에 얼마나 나쁜 말만 가득 써놓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는데 그 사람들 마음이 이미 닫혀서 악한 마음으로 점령됐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이 악하고 말하는 것이 악하고 보는 것이 악하고 행하는 것이 악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마음이 닫히니까 여인들이 무덤에 가서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무슨 얘긴가 했습니다. “천사들이 그러는데 예수님 부활하셨답니다.” “그래?” 마음이 닫혀 있으니까 그것이 마음에 와닿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돌아가셨는데 뭐 이제 우리가 뭘 하나? 이제 우리 살길을 찾아보자.” 하고 둘이 터벅터벅 내려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는데도 그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하고 마음이 닫혀져서 예수님의 죽음에 사로잡혀서, 절망에 사로잡혀서, 낙심에 사로잡혀서 그 길을 내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10년 믿어도 예수님께 붙잡혀 있지 아니하고 내 생각에 붙잡혀 있으면 눈이 가리어져서 부정적인 얘기를 하고 원망과 불평을 하고 스스로 주저앉게 되는 것입니다. 내 곁에 와 있는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낙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의 눈이 가려져 있으면 세상만사가 고달프고 귀찮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함께하시면 이 세상은 고달픈 인생이 아닙니다.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기쁜 것입니다.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나는 기뻐하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감사하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 내 마음에 계신데 얼마나 기뻐요! 나는 기쁩니다. 왜? 주님이 계시니까. 여러분 예수님이 계신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딨습니까?

아, 이번에 스케이트를 잘 탄 선수들이 쇼트트랙인가 뭔가 잘 타가지고 황 선수하고 최 선수하고 둘이서 평생 동안 그냥 하루에 닭 한 마리씩 평생, 닭 한 마리 보험을 받았어요. 그 BBQ 사장님이 “금메달만 따면 평생 닭 한 마리씩 주겠다.” 그래갖고 워낙 닭을 좋아하는 친구들이라 신이 났습니다. 하루에 한 마리씩.

여러분 닭 한 마리 갖고도 그렇게 기뻐하는데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데,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데 우리가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닭 한 마리와 예수님을 비교할 수가 있습니까? 닭 만 마리로도 비교할 수 없죠. 주님이 함께 계신데 주님이 우리의 모든 문제에 답이 되시는 것입니다.


3. 인생의 답을 주시는 예수님

인생에 답을 주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성경은 이어서 계속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저들과 가시면서 “지금 자네들 무슨 얘기하고 있나?” “네. 예수님이 돌아가신 지 사흘이나 됐는데요. 여인들이 무덤에 가보니까 무덤 문이 열리고 예수님이 안 보이더라고 얘기를 전해왔습니다. 천사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하는데.”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 말씀을 들으시고 저들에게 말씀을 풀어주십니다. 누가복음 24장 25절로 27절입니다.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구약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을 당하시고 부활하시고 이제 영광의 자리에 들어가실 것을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여러분, 이 하나님 말씀 안에 모든 답이 있는 것입니다. 모든 답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낙심할 때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를 위로를 주고 우리를 어려움에서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주고 이 말씀은 우리의 갈 길을 밝히 보여주고 이 말씀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주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지 삶의 모든 지혜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를 성도 되게 만들어주는 것이 이 말씀인 것입니다. 성도를 강한 믿음의 용사로 만들어주는 것이 이 말씀인 것입니다. 교회를 교회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사로잡힐 때 말씀을 지켜 행할 때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지켜 행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에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저들이 엠마오에 다다랐을 때 날이 저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이 예수님께 권유합니다. “선생님 날이 저물었는데 여기서 식사하고 좀 쉬었다 가시죠.” 그래서 식당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는데 예수님께서 간절히 축복기도를 하시고 떡을 떼어 줄 때 눈이 탁 떠졌습니다. 누가복음 24장 30절, 31절입니다.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떡을 받아먹을 때 눈이 뜨여졌습니다. 이 주막은 교회입니다. 교회에 와서 영생의 떡을 먹을 때 여러분 눈이 떠지는 것입니다. 영의 눈이 떠지는 것입니다. 절망의 눈이 희망의 눈으로 떠지는 것입니다. 어두운 눈이 밝게 되는 것입니다.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고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4장 32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성령이 임하면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감사가 넘쳐나야 됩니다. 우리가 그동안 너무나 오랫동안 내리막길을 갔습니다. 주여, 우리 마음이 뜨겁게 하여주셔서 다시 우리의 신앙이 회복되게 하여주옵소서. 코로나-19로 인해서 2년 동안 예배를 제대로 못 드리니까 감사가 사라졌습니다. 찬양이 사라졌습니다. 기쁨이 사라졌습니다. 주여 다시금 우리 신앙이 뜨거워지고 회복되어지게 하여주시옵소서.

엠마오로 내려가던 저들이 마음이 뜨거워져서 발걸음을 돌이켜 다시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갑니다. 예루살렘은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주님께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성도는 절대로 예배드리는 자리를 떠나면 안 됩니다. 시험이 다가오면 제일 먼저 다가오는 것이 교회가 멀어지는 것입니다. 교회가 멀어지면 안 됩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내리막길을 가고 있는 분은 다시 교회 중심의 신앙으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내리막길을 가지 말고 올라오시기 바랍니다. 성전은 예배드리는 곳이요 기도하는 곳이요 찬양하는 곳이요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곳입니다. 여러분의 첫사랑을 회복하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주님 앞에 나와서 예배드리고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을 섬기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일찍이 아프리카에 가서 아프리카 전역을 세 번이나 저들이 저 큰 대륙을 횡단하면서 복음을 전한 ‘데이빗 리빙스턴’ 선교사님 계십니다. 지금처럼 교통수단이 발달 되지 않은 그곳에서 길도 없는 곳에서 전국을 헤치고 나가면서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웠습니다. 처음에 횡단할 때 사자의 습격을 받아서 한쪽 팔이 다 뜯어져 나가가지고 이 팔이 거의 불구가 된 상태로 그런 몸으로 온갖 고난을 겪으며 그곳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영국에 있는 많은 분들이 그를 걱정해서 “영국에 돌아와서 쉬게 하자. 이제는 다른 사람을 보내서 그 일을 계승하게 하자.”고까지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글래스고우 대학에 초청해서 명예박사를 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글래스고우 대학에서 명예박사를 받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아프리카로 다시 돌아갈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다들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그 고난과 질병과 온갖 문제가 있는 곳에 왜 다시 가려고 하느냐? 죽음이 죽음의 위험이 곳곳에서 돌아가는 곳에 왜 다시 가려고 하느냐?” 할 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염려하지 마십시오.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세상 끝날 까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신 살아계신 주님이 나의 길동무로 원시림과 광야를 함께 걸어가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서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주의 복음을 전하다가 60세의 일기로 주님의 부름을 받고 천국에 가셨습니다. 여러분, 이 시간 주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뜨거워져서 다시 주님 앞에 돌아 나오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길에서 이제 다시 돌이켜 사명의 자리로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마음이 뜨거워진 제자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올라가서 이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도 다시 올라가야 합니다. 다시 올라가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져야 우리가 주님을 열심히 섬길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져야 우리가 무엇을 해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힘써 일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져야 이웃을 사랑할 수 있고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져야 봉사할 수 있고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져야 선교할 수 있고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져야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 보면 때때로 내리막길 인생을 맞게 됩니다.

절대 여러분 그때 포기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오늘 말씀을 기억하고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1618년부터 1648년까지 30년 동안 독일에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독일 30년 전쟁이라고 불리는 이 전쟁은 독일을 중심으로 해서 로마 가톨릭을 섬기는 나라와 프로테스탄트 우리 개신교를 섬기는 나라 간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전쟁이 하루도 아니고 30년입니다.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두 달밖에 안 됐어도 저런 피해를 입고 온 세계가 지금 그것 때문에 걱정하고 있는데 30년 전쟁이라니까 얼마나 그 피해가 컸는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인구 1,600만 중에 800만 명이 이 전쟁으로 죽고 그 다음에 남은 사람도 흑사병으로 각종 질병으로 죽어서 600만까지의 인구가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목회를 돕다가 목회자가 된 베냐민 슈몰크 목사님이 아버지 목회를 이어서 사역을 하게 됐는데. 목회 사역이라는 것이 이제 전쟁의 폐허가 된 각 동네를 다니면서 저들을 위로해주고 기도해주고 말씀으로 권면한 그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너무나 망연자실해서 그 잿더미 속에서 절망 가운데 있는 저들에게 목사님 찾아오셔서 말씀 전하시니까 너무나 기쁘고 감사해서 목사님 다녀가시면 다들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래서 온 지역을 다니면서 본인도 몸이 불편한데 다니면서 심방해서 말씀을 전하고 위로를 나눴습니다. 근데 어느 날 먼 길을 갔다 오는데 저 멀리 집이 있는 쪽에서 연기가 나는 것이 보였습니다. 웬일인가 하고 달려가 보니 목사님 사택에 불이 나서 집이 싹 탔습니다. “우리 두 아들 어디갔지?” 어린 아들 둘이 보이지 않습니다. 소리를 지르면서 “얘들아 어디있냐? 어디있냐?” 하면서 이 잿더미를 치우는데 저쪽 구석에 어린 아들 둘이서 부둥켜안고 새카맣게 타 죽어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어떻게 주의 종의 집에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내가 멀리 심방을 가지 않았더라면 이 아들들을 살렸을 터인데.’ 그 모습을 보고 사모님은 그 자리에서 그냥 정신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시체를 안고 부둥켜안고 한참 울고 있는데 갑자기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새 부르짖어 기도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고 주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예수님은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위해 이렇게 동산에서 밤새 땀방울이 핏방울 되도록 부르짖어 기도하시는데 내가 당한 이 슬픔은 예수님의 고난과 비교할 수 없구나.” 그래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죄인을 용서하십시오. 교만한 저를 용서하십시오. 약한 자를 도움으로써 의롭게 되었다고 착각한 저를 용서하십시오. 주님, 이제 무엇이든지 주의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주의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그래서 그 기도와 함께 영감을 얻어서 찬송가 가사를 썼습니다.


나의 예수님, 주님께서 뜻하신 대로!

My Jesus, as Thou wilt!

오, 내 뜻을 주의 뜻대로 하소서!

Oh, may Thy will be mine!

주의 사랑의 손에 내 모든 것 맡깁니다.

Into Thy hand of love I would my all resign.

슬픔을 통해서나 기쁨을 통해서나

Through sorrow, or through joy,

나를 주의 소유로써 다루시고

Conduct me as Thine own,

내가 “주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하도록 계속 도우소서.

And help me still to say, my Lord, Thy will be done!

이 가사를 독일의 작곡가 카르 마리아 폰 베버가 작곡한 오페라 ‘마탄의 사수’ 서곡의 곡조에 붙여서 만든 찬송이 찬송가 549장 ‘내 주여 뜻대로’입니다. 우리가 어떤 절망의 내리막길을 간다고 할지라도 주님을 만나면 우린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두 아들을 잃고 “내 주님께 다 맡깁니다. 내 일생을 맡깁니다.” 하고 고백해서 부르는 이 찬송이 오늘 우리에게 큰 위로와 용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찬송가 549장 (통 431) : 내 주여 뜻대로>

1절)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 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어떤 어려움 당해도 우리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의지하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하며 내리막길 인생이 아니라 오르막길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때때로 내리막길을 갑니다. 그러나 내리막길 인생길에 주님이 함께하신다는 이 놀라운 사실을 우리가 깨닫고 그 길에서 주님과 함께 믿음을 회복하고 열정을 회복하여 다시 오르막길 인생을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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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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